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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책읽기
너나없이 날아오를 노래님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 | 이오덕 책읽기 2023-02-22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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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

이오덕 저
양철북 | 2017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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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읽는 하루

― 너나없이 날아오를 노래님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

 이오덕

 지식산업사

 1988.10.5.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이오덕, 지식산업사, 1988)라는 책을 처음 만나던 날 온몸으로 번쩍 하고 벼락이 떨어졌습니다. “어린이여야 하늘나라로 간다”는 말을 다르면서 새롭게 들려주는 말이 “어린이는 모두 노래님(시인)이다”라고 느꼈어요. 어린이 마음을 잊거나 잃으면 ‘어른 아닌 늙은이’요, 어린이 마음을 고이 건사하면서 즐겁고 아름답게 설 줄 알기에 ‘철든 사람’으로서 사랑꽃을 피우는 숨결이 되리라 느껴요.

 

  어린이를 가르칠 까닭이 없습니다. 어린이한테서 배우면 됩니다. 어른은 가르칠 몫이나 자리가 아닌, 배우고 사랑할 몫이자 자리입니다. 어린이는 배우는 사람이 아닌, 어버이를 가르쳐 어른으로 거듭나도록 북돋우는 빛살입니다.

 

  오늘날 배움터를 보면 하나같이 ‘어린이를 가르치려 듭’니다. 이른바 ‘교육·학습·훈육·양육·훈련·양성·육성’ 따위 일본스런 한자말을 함부로 들먹이잖아요? 이 모든 일본스런 한자말로 밀어대는 짓은 어린이 숨결을 짓밟고 어린이 마음을 망가뜨리고 어린이 넋을 들볶는 사나운 칼부림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어린이는 스스로 살림을 짓는 어버이 곁에서 모든 삶을 받아들입니다. 스스럼없이 지켜보고 꾸밈없이 바라보면서 나비처럼 날고 나무처럼 서지요. 어린이는 ‘어른 아닌 늙은이’처럼 ‘돈·이름·힘’ 앞에서 굽실거리지 않습니다. 어린이 마음을 잊다가 잃은 ‘어른 아닌 늙은이’가 언제나 ‘돈·이름·힘’ 앞에서 굽실거려요.

 

  우리가 어른이라면, 허울뿐인 늙은이가 참말로 슬기롭고 어질고 참하며 착하고 사랑스레 밝은 어른이라면, 어린이를 안 가르칩니다. 어린이를 돌아보면서 사랑하는 하루를 지을 뿐입니다. 우리가 어른이 아니기에, 자꾸 어린이를 가르치려 듭니다. 어른이 아닌 늙은이인 탓에 철이 안 든 채 자꾸자꾸 어린이를 길들이려 하지요.

 

  철든 숨결이자 눈빛이라면 아무도 안 가르칩니다. 보셔요. ‘스승’은 가르치는 자리나 몫이 아니에요. 스승은 스스로 살림을 짓는 삶을 누리면서 사랑을 길어올려서 펴는 사람입니다. 스승도 스님도 안 가르쳐요. 그저 곁에서 빙그레 웃고 노래하면서 기쁘게 북돋아 ‘어린이가 놀도록 자리를 내어줄’ 뿐입니다. 어린이가 마음껏 놀도록 마음을 쓰고 보금자리를 가꾸기에 ‘어버이에서 어른이란 이름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어린이를 가르치려고 닦달하면서 배움터(학교·학원)로 몰아세우기에 ‘어른 아닌 늙은이’예요.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는 어린이한테 노래짓기(시쓰기)를 안 가르칩니다. 어린이가 저마다 하늘빛으로 노래하는 사랑어린 마음이 어떻게 드러나는가 하고 차근차근 보여줄 뿐입니다. 그리고 ‘어른 아닌 늙은이’한테 들볶인 나머지 빛살을 잃고 말아 ‘낡은 굴레에 갇힌 딱한 아이들’이 ‘틀박이(기계)처럼 만들어내는 겉발림 동시’가 무엇인지 가만히 보여줍니다.

 

  노래하기에 어린이입니다. 놀기에 아이예요. 노래하며 놀기에 어린이요, 노래하며 노는 마음을 고스란히 건사하면서 사랑으로 돌보는 어진 숨빛을 밝혀서 든든하게 자라난 사람이기에 비로소 ‘어른’입니다. 이리하여, 어린이 마음을 고이 잇는 사람인 어른이라면 ‘일하며 안 지쳐’요. 즐겁게 놀이를 하듯 즐겁게 일할 줄 아는 어른은 ‘지치는 일’이 없고 ‘고단한 일’이 없습니다. ‘일 아닌 돈벌이’만 하기에 ‘어른 아닌 늙은이’일 뿐 아니라, 언제나 힘겹고 지치고 나른하고 괴로운 굴레에 스스로 갇혀서 못 헤어나오고 말아요.

 

  놀이하는 아이가 일하는 어른으로 피어납니다. 노래하는 아이가 사랑하는 어른으로 깨어납니다. 놀며 노래하는 아이가 살림을 짓고 숲을 품는 어른으로 눈뜹니다.

 

  놀지 못 한 아이는 그만 늙은이로 시들시들합니다. 노래를 못 부른 아이는 어느새 팍삭 늙어서 아프고 맙니다. 놀지 못 하고 노래하지 못 했으니 사랑이 아닌 ‘짝짓기’만 하려고 눈먼 몸짓에 허덕입니다.

 

  어린이는 누구나 노래님입니다. 어린이가 입으로 읊는 모든 말은 노래입니다. 어린이가 읊는 즐겁거나 슬픈 모든 말을 글로 옮기니 저절로 노래(시)를 이룹니다. 따로 글을 써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입으로 읊는 말씨를 글씨로 담아내면 됩니다. 구태여 종이에 글을 얹어야 하지 않습니다. 도란도란 주고받는 말을 잇고 살려서 이야기로 여미니 어느새 글자락으로 태어날 뿐입니다.

 

  우리가 어른이라면 노래하는 아이 곁에서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춥니다. 우리가 어른이라면 ‘낳은 아이’뿐 아니라 ‘이웃 아이’를 모두 상냥하게 마주하면서 하루를 짓는 빛나는 살림꽃을 도란도란 이야기로 들려주면서 환하게 웃을 테지요.

 

  아이들은 ‘직업훈련’이 아닌 ‘살림짓기’를 보고 듣고 함께하면서 자랄 적에 어른으로 섭니다. 우리는 아이들한테 일자리(직업)를 알려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놀이판을 마련하고, 노래판을 갖추어서, 마당이 넉넉한 보금자리를 가꾸면 됩니다. 나무를 심을 마당이 있어야 어른이라 할 살림입니다. 풀꽃을 곁에 두고 벌나비를 부르는 오늘을 지어야 어른스럽다고 할 삶입니다. 풀벌레랑 개구리하고 동무하면서 같이 노래하고 춤추기에 바야흐로 어른답게 빛나는 눈망울입니다.

 

  노래는 숲에서 흐릅니다. 살림은 숲에서 얻습니다. 말은 숲에서 태어납니다. 마음은 숲을 품으면서 푸릅니다. 생각은 숲하고 한동아리로 흐르면서 빛납니다. 사랑은 숲하고 사람이 한몸에 한마음인 줄 깨닫는 자리에서 씨앗 한 톨로 돋아납니다.

 

  노래를 부르고, 노래를 쓰고, 노래를 읽기로 해요. ‘시·동시·문학’이 아닌 ‘노래’를 함께 부르고 나누기로 해요.

 

ㅅㄴㄹ

 

슬픔을 느끼지 못하고 눈물을 흘릴 줄 모르는 사람은 참기쁨도 모릅니다. 그리고 시를 쓸 수 없읍니다. 어른들은 생명을 짓밟고 죽이기를 예사로 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차츰 나이 많을수록 사람은 이상하게 되어 갑니다. (4쪽)

 

옛날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연 속에 살면서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 벌레소리들가 함게 개구리소리도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로 느끼고 들었읍니다. 그런데 요즘 어린이들은 자연을 모르고 자연에서 떠나, 사람이 만들어 낸 기계적인 환경에서 기계들이 내는 소리만 들으면서 살지요. (12쪽)

 

“여자 놓든 남자 놓든 / 엄마 마음대로 놔,”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차라리 태어나지 말지” 하고 한탄하다가도 결연한 말로 “설움만 받고 크는 아기 / 어째서라도 나는 / 아기를 키우고야 말겠다.” 이처럼 맺고 있는 이 아이의 용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74쪽)

 

만약 어른들이 아이들을 자연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하여 삭막한 콘크리트 집 안에 가둬 놓고는, 온갖 잡동사니 지식을 공부라고 하여 머리에 쑤셔넣고, 점수따기 경쟁을 채찍질로 시켜서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모조리 병들게 하지만 않는다면, 어린이는 모두 시인입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삶의 이치를 저절로 느껴 아는 놀라운 시인이 된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137쪽)

 

생활을 얘기하는데 자연이 저절로 나타나 있고, 자연을 얘기하는데 삶이 그 속에 저절로 표현되어 있는 상태가 가장 좋다고 할 수 있지요. (159쪽)

 

머리로 시를 만들어 내어서는 안 되고, 사실과 진실을 정직하게, 즉 가슴으로 온몸으로 써야 하지만, 아직도 어른들은 머리로 글재주를 부리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199쪽)

 

여기에는 시 같은 것을 써 보이려고 어떤 몸짓을 하거나 말재주를 부린 흔적이 없읍니다. 시는 이런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정직한 마음, 이것이 시의 마음입니다. 시의 길이 곧 사람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20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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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품은 하루 (나무처럼 산처럼) | 이오덕 책읽기 2023-02-22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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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무처럼 산처럼

이오덕 저
산처럼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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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읽는 하루

― 해를 품은 하루

 

《나무처럼 산처럼》

 이오덕

 산처럼

 2002.10.10.

 

 

  《나무처럼 산처럼》(이오덕, 산처럼, 2002)이 나오던 무렵, 저는 서울 종로구 교동이라는 골목마을 작은집에서 살았습니다. 이제 ‘서울 종로구 교동’은 길그림에서 가뭇없이 사라지고 잿더미(아파트단지)로 바뀌었습니다만, 2002년 무렵 서울 한복판이라 할 그곳에 ‘밑돈(보증금) 1000에 달삯 10’인 오랜 나무집(목조주택)이 있었어요.

 

  아직 서울에서 살던 그무렵 둘레에서는 제가 살던 달삯집을 못 믿었습니다. “임마, 서울 종로구 한복판에 어떻게 보증금 1000에 월세 10짜리 집이 있냐?” 하고 따지더군요. 그러나 이렇게 따지던 분들을 데리고 저희 집으로 부르니 “와, 어떻게 이런 골목이 다 있고, 이런 골목에 일제강점기 적산가옥이 남았어? 저 앞 경교장보다 여기 이 적산가옥이야말로 근대문화유산 아니냐? 서울에 화장실 없는 적산가옥이 있다고?” 하면서 놀라더군요.

 

  이른바 ‘한일 월드컵’이 열린 2002년에 서울 종로구 교동 옆 ‘서대문구 냉천동·현저동’에도 ‘뒷간 없는 작고 값싼 달삯집’이 꽤 있었습니다. 그 작고 값싼 달삯집은 ‘밑돈 300에 달삯 10’이라든지 ‘밑돈 500에 달삯 10’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작고 가난한 살림칸을 용케 알아본다며 혀를 내두르는 분들한테 “저기요, 가난한 살림으로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작고 값싼 집이 잘 보여요.” 하고 얘기했습니다.

 

  나무디딤칸(나무계단)을 오르내릴 적마다 삐걱거리던 오랜 달삯집에는 모기그물조차 없고, 달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즐거웠어요. 봄부터 가을까지 ‘골마루 미닫이’를 다 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적산가옥이던 나무집은 2층에 골마루가 있고, 이 골마루에 붙은 오래된 미닫이를 열면 밤새 하얗게 밝은 을지로나 종각까지 훤히 보였습니다. 가까이 ‘경희궁’이 있는데, 이 경희궁 작은숲에는 다람쥐나 오소리나 족제비도 살았다고 느껴요. 왜냐하면, 여름날에 골마루 미닫이를 활짝 열고서 책을 읽을라 치면 으레 다람쥐나 오소리나 족제비가 불쑥 창턱에 올라앉아 빼꼼 들여다보다가 휙 사라졌거든요.

 

  작고 값싼 삯집에 깃드는 사람들은 나란히 작고 가난합니다. 그무렵 1층에 살던 가난한 이웃은 아주머니가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더라도 살림을 잇기 벅찼고, 그 집 아이는 하루 내내 혼자 토끼우리에 있는 토끼한테 배춧잎을 먹이면서 심심하게 놀았어요. 그 집 아저씨는 일을 않고 핀둥핀둥 놀기만 하다가 밤늦게 들어오는 아주머니를 때리면서 싸움이 불거지고, 이틀마다 경찰이 찾아와서 아저씨를 나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런 살림집에서 하루를 보내던 저는 서울 내발산동으로 일하러 다녔습니다. 한창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자료조사부장으로 일했어요. ‘국어사전 집필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너무 허름한 살림집에서 지낸다고 여긴 분들이 “그래도 그렇지, 사전 편집장이나 되는 자리에 있으면서 너무 가난한 집에서 살지 않는가? 월급이 그렇게 적나?” 하고 물으셨고, “몸뚱이 하나를 누이면 집이면 됩니다. 달삯은 많지도 적지도 않습니다. 저는 더 크거나 좋은 집에 돈을 쓸 마음이 없어요. 낱말책을 새롭게 쓰는 편집장이기에 ‘집에 들일 돈이 있다’면 ‘책을 사는 돈으로 쓰려’고 합니다.” 하고 대꾸했어요.

 

  낱말책을 여미든 이야기책을 쓰든 글꽃(문학)을 밝히든, 배부르게 살지 말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배부른 돈이 아닌 넉넉한 마음이 되어 하늘을 보고 별을 바라고 풀꽃을 품고 나무를 어루만질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잿집(아파트)에서 사는 몸이라면 낱말책을 여밀 만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글을 쓸 수 없고, 그림을 그릴 수 없으며, 빛꽃(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여깁니다. 왜냐하면, 잿집(아파트)은 발바닥이 땅바닥에 안 닿아요. 배부른 몸으로는 이웃을 읽지 못 하고 만나지 않아요.

 

  《나무처럼 산처럼》은 책이름대로 나무처럼 살아가기를 바라고 멧숲처럼 푸르게 노래하기를 꿈꾸는 마음을 들려줍니다. 나무가 들려주는 말을 듣는 마음을 속살이고, 멧새가 알려주는 노래를 나누는 길을 밝혀요. 시골에서 살든 서울에서 살든 우리 마음밭을 나무빛으로 보듬는 하루를 이야기합니다.

 

  해를 품으니 햇살처럼 눈부십니다. 해를 안으니 햇빛처럼 무지개입니다. 해를 그리니 햇볕처럼 포근합니다. 해바람비는 뭇목숨을 살립니다. 해바람비가 깃든 낟알하고 열매로 밥살림을 지으니 누구나 든든하면서 푸르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땅밑길을 지나는 전철을 아침저녁으로 타고서 일터를 오가던 2002년에 이오덕 어른 책을 읽고 거듭 읽는 동안 ‘아무리 매캐하고 시끌벅적하고 별빛을 만나기 어려운 서울 한복판이어도 풀벌레 노랫소리가 온몸을 휘감고 미리내가 밤마다 가만히 토닥여 주는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글 한 줄로 티끌을 훅 씻어내는 길을 보았습니다. 글 두 줄로 먼지를 싹 걷어내는 살림을 만났습니다. 글 석 줄로 앙금을 털어내는 사랑을 느꼈습니다. 글 넉 줄로 생채기가 아물도록 가꾸는 사랑이로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나무처럼 서고 싶습니다. 나는 나비처럼 날고 싶습니다. 나는 나로서 나답게 생각하려고 합니다. 나는 너랑 도란도란 어우러지는 살림살이를 지피고 싶습니다.

 

  나는 언제 어디에서나 숲빛이고 싶습니다. 내가 쓰는 글은 숲글이요, 내가 읊는 말은 숲말이며, 내가 부르는 노래는 숲노래이도록 온마음을 기울이고 싶습니다.

 

ㅅㄴㄹ

 

그분들은 모두 아이들을 위한 글을 쓰는 분들이었는데 매미 소리를 모르고 있었다. (5쪽)

 

사람이 그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개나 소나 돼지만큼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싶다. 사람이 무슨 학문이고 철학이고 예술이고 문학이고 떠벌리면서 거짓과 속임수로 살지 말고, 저 풀숲에서 우는 벌레만큼 고운 울림으로 자연 속에 어울려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그것이 내 꿈이었는데. (52쪽)

 

세상에서 사람의 아이치고 어른들 개 잡는 것을 보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구경할 아이가 어디 있겠는가? 이것이 아이들 마음이고, 하늘이 준 자연의 마음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하도 그런 어른들의 행동을 자주 보게 되고 그런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질서 속에 살다 보니 그만 그 아이들도 차츰 감각이 둔해지고 본성이 흐려지고 길이 들여져서 어느새 병든 어른으로 되어 버린 것이다. (81쪽)

 

이것이 모두 어린이들과 삶을 같이 하지 못 하고 책만 읽어서 시를 쓰고, 아이들을 멀리서 한갓 풍경으로 바라보고 생각만으로 썼기 때문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155쪽)

 

글쓰기만 해도 그렇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시나 소설 같은 것, 동화 같은 것이 아니면 글이 아닌 줄 압니다. 가치가 없는 글로 여깁니다. 서울이고 지방이고 각처에서 문학강좌 같은 것을 열고 있는데, 그런 자리에 가 보면 참 가관입니다. (180쪽)

 

지루한 글이 되었습니다. 잘못된 생각이나 잘못 쓴 말이 있으면 지적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 소름끼치는 인간들의 끝장을 부디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18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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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심는 어린이 (이사 가는 날) | 이오덕 책읽기 2023-02-2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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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도 쓸모 있을걸

이오덕 저/이혜주 그림
창비 | 200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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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읽는 하루

― 씨앗을 심는 어린이

 

 

《이사 가는 날》

 이오덕 엮음

 창작과비평사

 1984.10.30.

 

 

  《이사 가는 날》(이오덕 엮음, 창작과비평사, 1984)은 어린이·푸름이 글모음입니다. 이오덕 어른이 가르친 아이들이 쓴 글도 모으고, 한국글쓰기연구회 길잡이로 지내는 분이 가르친 아이들이 쓴 글도 모읍니다. 1984년에 처음 나온 책에는 책자취(판권)에 “편자와의 협약에 의해 검인 생략” 하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펴냄터인 창작과비평사(창비)는 1990년에 바뀐 한글맞춤길에 따라 책을 모두 판갈이를 해야 하던 무렵부터 슬그머니 ‘저작권자 이오덕’을 지우고서 ‘저작권자 창작과비평사’로 바꿔치기를 했습니다. 이오덕 어른은 돌아가시는 날까지 창작과비평사(창비)가 이렇게 ‘저작권 훔침질(도용)’을 한 줄 까맣게 몰랐습니다.

 

  이오덕 어른은 1984년에 처음 글모음을 선보일 적에는 ‘책 끝에’라는 이름으로 어린이·푸름이가 쓴 글이 어느 꾸러미(학급문집)에 실렸는지 낱낱이 밝혔는데, 창작과비평사(창비)에서 ‘저작권자 이오덕’을 지우고서 ‘저작권자 창작과비평사’로 바꿔치기를 하던 무렵부터 ‘책 끝에’도 슬그머니 잘라냈습니다.

 

  이오덕 어른은 ‘창비아동문고’에 어린이글이 꼭 있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어른들이 쓴 글만 어린이한테 읽혀서는 안 되고, 어린이 스스로 어린이 삶을 밝힌 어린이 목소리를 여럿 꾸준히 선보여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손수 《이사 가는 날》을 비롯한 여러 글모음을 엮어서 선보였습니다. 이렇게 선보여서 받은 글삯은 모두 한국글쓰기연구회에서 펴내는 달책(회보)을 펴내는 밑돈으로 삼았어요. ‘글쓰기 회보’라고 줄여서 가리키는데, 이 글쓰기 회보는 바로 ‘어린이 목소리를 살리고 사랑하는 줄거리’를 담는 작은 책이었습니다.

 

  창작과비평사(창비)는 이오덕 어른이 엮은 글모음을 1984년에는 ‘매절 계약’으로 냈습니다. 그무렵에는 우리나라에서 저작권법을 제대로 지키는 곳이 없다시피 했어요. 그러나 예전에도 틀(법)은 버젓이 있었고, 2000년부터는 ‘세계저작권협약’을 지키기로 한 우리나라이니, 늦어도 2000년부터는 이 틀을 어겨서는 안 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2000년 앞서 맺은 출간계약이라 해더라도 ‘매절계약은 무효이고, 그 뒤 새로 찍어서 매절 계약금을 넘게 나온 글삯(인세·저작권료)은 돌려받기(소급적용)를 할’ 노릇입니다.

 

  창작과비평사(창비)는 저작권법을 크게 어겼을 뿐 아니라 성명표시권(저작권자 표기)까지 ‘저작권자 이오덕’을 지우고서 ‘저작권자 창작과비평사’로 바꿔치기를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한두 해도 아닌 거의 스무 해를 이렇게 했지요. 그러나 창작과비평사(창비)에서는 이 말썽거리를 쉬쉬했고, 뉘우치지 않았습니다. 이리하여 창작과비평사(창비)에서는 이제 더는 이오덕 어른 책이 나오지 않습니다. 다 끊었거든요.

 

  어린이 숨결을 헤아리는 눈빛을 어린이가 스스로 쓴 글을 사랑어린 손길로 살펴서 여민 아름책인 《이사 가는 날》은 이제 다시 나오기 몹시 어려울 듯싶습니다. 헌책집에서 겨우 찾아볼 수 있는 책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헌책집이 있기에 새로 만날 수 있고, 헌책집이 있어서 두고두고 되읽히리라 봅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책숲(도서관)은 《이사 가는 날》처럼 오랜 책은 쉽게 버리거든요.

 

  1984년에 태어난 《이사 가는 날》은 1970∼80해무렵이라는 나날을 살던 어린 눈망울을 들여다보고 느낄 값진 이야기씨앗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순이를 깎거나 낮추려는 고약한 틀이 단단했는데, 어린이가 조용히 남긴 글자락에는 ‘어머니를 때리거나 괴롭히는 아버지’를 나무라는 이야기가 줄줄이 흐르고, ‘딸을 하찮게 여기는 나라’에 눈물젖다가도 새로 기운을 내어 ‘어린 동생(순이)’을 언니로서 씩씩하게 돌보겠노라 다짐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른답지 못 한 사람들을 꾸짖는 착한 마음을 어린이 글자락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작고 수수한 어린이 글모음 《이사 가는 날》은 1970∼80해무렵에 어린이·푸름이로 살던 맑은 숨빛이 ‘나중에 내가 어른이 되면 이 나라 이 땅 이 마을 이 집을 이렇게 바꾸어 사랑이 흐르는 아름터로 바꾸겠노라’ 하는 따사로우면서 듬직하면서 상냥하면서 환하면서 고운 마음이 듬뿍 흘러나온다고 할 만합니다. 지난날에는 아이였으나 오늘날에는 어른이 되어 이 나라를 새롭게 가꾸는 손길을 이 글모음으로 돌아볼 만합니다.

 

  저는 1982∼87년에 어린배움터를 인천에서 다녔습니다. 어릴 적에 어머니랑 신포시장으로 버스를 타고 저잣마실을 다녀올 적에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안 태우고 내쫓는 버스일꾼하고 차장’을 곧잘 보았습니다. 참말로 그때 적잖은 버스일꾼하고 차장은 ‘버스에 타려는 할머니나 할아버지’한테 대놓고 “이그, 늙었으면 집에서 드러눕거나 자빠질 것이지 뭣 하러 돌아다녀? 언제 죽으려나 몰라?” 하고 떠들었어요. 어린 마음에도 이런 말을 들으면 소름이 돋고 참 싫었습니다. 그러나 따지지 못 했어요. 그무렵에 어린이가 이런 엉터리짓을 따지면 억센 주먹으로 얻어맞았거든요. 사납고 무서운 주먹에 눌려 끽소리를 못 하던 지난날 아이들이었어요.

 

  우리 어머니는 제가 새파랗게 질리면서도 말을 참는 줄 느꼈고, 이다음 저잣마실을 할 적에는 버스를 안 타고 한참 걸었습니다. “안 힘드니?” “네, 안 힘들어요. 해를 보고 바람을 쐬니 좋은걸요.” “그래, 그 사람들은 저희도 늙으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는 줄 모르나 봐.” “네.” 어머니는 더 말하지 않고 걸었습니다. 이러다가 버스에서 차장이 사라졌습니다.

 

  1984년이면 저로서는 어린배움터 3학년인 나이인데, 그때에는 《이사 가는 날》 같은 글모음이 있는 줄 까맣게 몰랐습니다. 이해에 《몽실 언니》가 나왔으나, 그런 책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창비아동문고’라는 책은 1994년에 열린배움터(대학교)에 들어가서 번역가·통역사가 될 꿈으로 네덜란드말을 배우던 무렵,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제대로 익히려고 하면서 이오덕 어른 《시정신과 유희정신》이랑 《일하는 아이들》이랑 《삶과 믿음의 교실》을 만나면서 비로소 알았어요. 1994년 봄날 헌책집에서 《이사 가는 날》에 《우리 반 순덕이》에 《나도 쓸모 있을 걸》 같은 어린이 글모음을 만나서 읽으며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어요. 어린이일 적에 만나지 못 한 아름다운 글을 만나서 눈물이 흘렀고, 1984년 언저리에 ‘어린이가 스스로 제 목소리를 내도록 곁에서 사랑으로 보살핀 어른이 있었구나’ 싶어 놀랍고 반가운 마음에 울었습니다.

 

  어린이가 쓴 글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어린이가 쓴 글은 그저 사랑입니다. 어린이가 쓴 글은 훌륭하지 않습니다. 어린이가 쓴 글은 오롯이 마음을 담은 살림꽃입니다. 사랑을 놓고서 대단하다거나 안 대단하다고 가를 수 없어요. 살리는 꽃송이를 보면서 훌륭하다거나 안 훌륭하다고 나눌 수 없습니다. 사랑은 늘 사랑이고, 꽃은 언제나 꽃입니다.

 

  어린이는 늘 사랑이기에 어린이는 모두 ‘노래님·놀이빛’입니다. 구태여 ‘시인·가수’ 같은 허울스런 이름을 쓸 까닭이 없습니다. 어린이는 모두 노래하고 놀이합니다. 어린이는 모두 꽃으로 피어나고 마음밭에 꿈씨앗을 심습니다. 어린이는 천천히 자라나면서 나비처럼 날갯짓을 하기에 철이 드는 어른으로 섭니다.

 

  그래요, 철이 들기에 어른이고, 철이 안 들기에 늙은이입니다. 어린이를 사랑할 줄 알기에 어른이요, 어린이를 때리거나 괴롭히기에 늙은이입니다.

 

  오늘날에는 어린이 목소리를 고스란히 담아서 책으로 여미는 어른이 몇쯤 있을까요? 이 터전을 아름답게 사랑으로 가꾸어 내고픈 꿈을 씨앗으로 마음에 심는 어린이가 스스로 빛내면서 쓰는 글자락을 눈여겨보고 품는 어른은 몇쯤 있는가요?

 

ㅅㄴㄹ

 

무용이 다 끝나고 집에 와 보니 아버지께서 세수를 하고 계셨다. 아버지 얼굴을 가만히 살펴보면 굴 속에 들어가셔서 우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탄을 캐내고 월급은 조금밖에 없다는 것이 나타나 있다. (아버지―강원 사북국 5년 박영희/59쪽)

 

내가 1학년 때 부산 망미동으로 이사를 왔다. 나는 진주보다 부산이 더 좋은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인심도 없고 사치만 하고 돈밖에 모르고 자기들만 아는 체하고 옥에 갇힌 것같이 갑갑했다. (시골에 살다가 도시에 와 보니―부산 감전국 6년 정희웅/98쪽)

 

할머니께 “할머니는 무거운 것 들고 힘드실 텐데 왜 걸어가셔요? 차 타고 가시지요.”라고 여쭈었다. “뭐 오래 걸린다고 버스 타고 다니냐? 돈 아깝게…….” 어떤 아주머니는 짐 하나 없이 10분도 안 되는 거리를 차 타고 다니는데 우리 동네 할머니는 한 시간도 더 되는 거리를 걸어다니신다 … 그러면 왜 그러실까? 내 생각으로는 돈 때문이기도 하지만 차를 타면 마음이 편하지 않으셔서인 것 같다. 언젠가 버스를 타고 가는데 한 할머니께서 버스를 타려고 하니 차장 아저씨가 못 타게 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 버스 안이 비좁기는 했어도 할머니 한 분이 탈 자리는 있었건만 “늙은이가 집에나 있지 왜 돌아다녀?” 하며 태워 주지 않았다. (우리 마을 아주머니 할머니들―충남 대천여중 3년 김선미/117쪽)

 

우리 소는 내가 소를 먹이러 가면 좋아서 펄쩍펄쩍 뛴다. 그렇게 해서 매일마다 간다. 우리 소는 연한 것을 좋아한다. 소가 어떻게 먹이를 먹는지 자세히 관찰하여 보니까 연한 것을 먹고 난 다음 가만히 있다가 다시 올려서 씹는다. (우리 집 소―성주 대서국 4년 유해정/182쪽)

 

내 동생은 “오늘은 저녁놀이 깊게 잠을 자는구나. 어제 늦게 동안 물이 들어 피곤해서 잠을 자는구나.” 하고 말했다.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로 우리들은 저녁놀을 좋아했다. 나는 저녁놀을 향하여 “저녁놀아! 저녁놀아! 아름다운 저녁놀아! 내일도 모레도 저녁놀이 끼어 내 마음을 기쁘게 해 다오!” 하고 힘차게 외쳤다. (해질 무렵―경북 의성국 5년 김희정/200쪽)

 

나는 죄인을 착하게 만드는 것은 감옥도 아니고 법률도 아니고 경찰관도 아니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다만 사랑만이 가장 위대한 힘을 가지는 것이다. 우리도 학교에서 사랑에 대한 것을 배우고 노래도 부르는데 그냥 듣기만 하고 부르기만 한 것 같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많은 도움을 주었다. 장발장이 자베르 경감의 목숨을 살려 주었을 때 나는 정말 감동했다. 나에게 친절히 해 주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일은 쉽지만 나를 괴롭히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레미제라블을 읽고―경남 거창 샛별국 5년 김성경/25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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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버리고 숲을 품기 (시정신과 유희정신) | 이오덕 책읽기 2023-02-2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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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시정신 유희정신

이오덕 저
양철북 | 2020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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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읽는 하루

― 서울을 버리고 숲을 품기

 

 

《詩精神과 遊戱精神》

 이오덕

 창작과비평사

 1977.4.25.

 

 

  《시정신과 유희정신》(이오덕, 창작과비평사, 1977)이 어렵다고 얘기하는 분이 제법 많습니다. 1977년에 처음 나온 책은 “詩精神과 遊戱精神”처럼 한자로 적었기에, 이 한자를 못 읽느라 선뜻 손이 안 갔다는 분도 많습니다. 그러나 막상 책을 펴면 ‘한자를 드러낸 대목’은 없다시피 합니다.

 

  이오덕 님은 뒷날 《우리글 바로쓰기》를 펴냈지만, 전두환이 이오덕 님을 어린배움터에서 솎아내며 괴롭히던 때까지 글에 곧잘 한자를 썼습니다. 어린배움터에서 마지막까지 아이 곁에 있지 못 하고 떠나야 하고 나서, 열린배움터(대학교)에서 이태 동안 가르친 적이 있는데, 이무렵 우리나라 젊은이가 글을 너무 못 쓰고 말을 너무 모르는 줄 깨달았다지요. 우리 젊은이가 왜 이토록 말글을 모르는가 하는 뿌리를 파헤치면서 ‘우리말 우리글’부터 제대로 들려주고 배우지 않으면 이 나라가 통째로 썩고 뒤틀리고 흔들릴 수밖에 없겠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1990년 앞뒤로 몹시 바쁘게 하루를 보내었고, 부르는 곳이 있으면 어디라도 이야기꽃을 피우려고 달려가다 보니, 어느새 여린 몸이 더 지치고 말아 끝내 드러눕다가 권정생 님보다 먼저 흙으로 돌아간 이오덕 님입니다. 그동안 써낸 책 가운데 《시정신과 유희정신》만큼은 쉬운 우리말로 고쳐쓰고픈 마음이었지만, 옛글을 고쳐쓰기보다는 새글을 쓰는 일에 더 힘을 쏟느라 《시정신과 유희정신》은 1977년에 나온 판 그대로 남았습니다.

 

  총칼을 휘두르는 우두머리가 춤추던 1977년 무렵, 이 나라 앞길을 헤아리면서 꿈씨앗처럼 남긴 두 마디인 ‘시정신’하고 ‘유희정신’을 오늘 우리 어린이한테 들려줄 쉬운말로 옮기자면 ‘노래얼’하고 ‘놀이넋’입니다. “시정신과 유희정신 → 노래얼이랑 놀이넋”입니다. 한자말 ‘정신’을 앞뒤에서 다르게 풀었는데, 노래를 부르고 나누는 숨결은 ‘얼’을 차리면서 스스로 ‘알아’가는 길입니다. 놀이를 하고 노느는 숨빛은 ‘넋’을 깨우면서 ‘너나’없이 하나로 가는 살림입니다.

 

  우리말 ‘노래·놀이’는 말밑이 같습니다. ‘노’는 ‘높다·노을’하고도 맞물리고, ‘노을’을 줄인 ‘놀’은 ‘너울’을 가리키기도 하고, ‘노느다·나누다’로도 잇닿아요. ‘놀·너울’이란 ‘널리’ 뻗는 길이자, ‘너머’로 가는 다릿길입니다. 노래하고 놀이를 하기에 ‘넉넉’히 마음을 가꾸고, 누구하고나 ‘나눌’ 줄 아는 착하고 참한 숨소리로 퍼져요. 높이높이 오르는 노랫가락은 어느새 하늘에 닿아 파랗게 물드는 바람으로 번지고, 이 바람은 휘파람으로 감기고, 바다로 물결치고, 바닥(땅)으로 내려와서 마음밭(마음바탕)을 이룹니다.

 

  노래하고 놀 줄 알기에, 나비처럼 날개돋이를 하면서 홀가분하게 날아오르는 ‘나’를 만나요. 노래를 잊거나 빼앗긴다면 놀지 못 할 뿐 아니라, 날개가 꺾이고 ‘나’를 잃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린이가 노래하고 놀지 못 하도록 틀어쥐거나 억누르거나 짓밟으면서 셈겨룸(시험)으로 내모는 오늘날 배움터란, 어린이를 죽이는 수렁입니다. 모든 어린이가 시골에서든 서울에서든 마음껏 노래하고 놀도록 울타리를 걷어내고서 하늘빛으로 어울리는 ‘우리다움’을 찾을 적에 비로소 홀가분(자유)히 나래를 펼 수 있어요.

 

  《시정신과 유희정신》을 보면, ‘구경(완상玩賞)’이란 무척 무시무시한 짓이라는 대목을 낱낱이 밝힙니다. 구경꾼 어른이 어린이를 꼭두각시로 내모는 짓이 ‘동심천사주의’이고, 이 동심천사주의는 ‘윤석중·박목월·유경환’이 이끌었는데, 어느새 ‘동심천사주의 윤석중·박목월·유경환’ 같은 이들이 어린글밭(아동문학계)을 집어삼켰습니다. ‘구경 아닌 삶짓기’를 글(시·동화)로 담아내어야 어른일 텐데, 막상 우리나라에는 어른스레 글을 여미는 손길이 얕았고, 하나같이 돈(상업주의)에 팔려 ‘구경(완상)’하는 겉치레만 쏟아내었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나마 《시정신과 유희정신》이 처음 나온 1977년 무렵만 해도 아직 시골에서 살림을 짓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 뒤 쉰 해 가까이 흐르는 동안 시골은 아작났습니다. 이제 거의 모두 서울(도시)에서 살고, 서울에서도 잿집(아파트)에서 삽니다. 큰고장에서 골목집 살림을 잇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손바닥만 한 텃밭이나 마당을 누리면서 풀꽃나무를 흙에 묻고 돌보는 손길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어느 풀꽃나무도 꽃그릇을 안 반깁니다. 꽃그릇은 나쁘지 않되, 풀꽃나무한테는 사슬터(감옥)입니다. 그릇 크기를 넘게 자라거나 뻗을 수 없으니, 풀꽃나무로서는 그릇에 심기면 ‘갇혀’ 버리는 꼴입니다.

 

  우리는 언제쯤 모든 꽃그릇을 걷어치우고서 맨땅에 풀씨랑 꽃씨랑 나무씨를 심을 터전으로 가꾸려나요? 우리는 언제쯤 높다란 잿집을 걷어내고서 누구나 ‘마당·텃밭을 누릴 조촐한 집’을 보금자리로 삼으려나요? 우리는 언제쯤 어린이를 ‘배움터(학교)란 이름인 사슬터(감옥)’에서 풀어놓을 수 있을까요?

 

  스스로 ‘서울에 갇혀’서 ‘풀꽃나무를 꽃그릇에 가두’는 손길이기에, ‘어린이를 울타리(학교·학원)에 가두어’ 놓고도 ‘가르침(교육)’을 시킨다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맙니다. 둘레를 봐요. 시골에도 서울에도 빈터랑 풀밭이 사라졌습니다. 어린이가 뛰놀거나 쉬거나 깃들 데가 사라졌습니다. 서울에서는 쇳덩이(자동차)가 모든 곳을 차지하고, 시골에서는 죽음물(농약)하고 비닐이 몽땅 뒤덮습니다.

 

  갇힌 어린이가 할 수 있는 ‘짓’이라고는 고작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기는 손전화 빼고 무엇이 있을까요? 뛰놀 수도 쉴 수도 없도록 갑갑한 ‘꽃그릇 수렁(보기좋은 감옥)’에 갇힌 어린이를 알아보지 못 하는 눈길이니, 예나 이제나 숱한 글(동시·동화)은 ‘동심천사주의’에서 못 헤어나옵니다. 이뿐 아니라 ‘사실적 표현’을 한다는 글조차 ‘학교·학원생활 울타리’에서 못 벗어납니다.

 

  2020년을 넘어선 뒤로는 ‘이웃빛(동물권)’을 담는 글이 하나둘 나오고 배움책(교과서)에도 실린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숲에서 안 살고, 시골을 떠났고, 서울 높다란 잿집에서 쇳덩이를 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웃빛 글(동물권 문학)’을 쓸 수 있을까요? 흙을 밟지도 만지지도 않으면서, 풀꽃나무가 흙에 뿌리를 내리면서 해바람비를 마시는 터전에서 함께 살아가지도 않으면서, 참말 어떻게 ‘이웃숨결을 헤아리는 글’을 쓸 수 있을까요? 모두 겉발린 허울이지 않나요?

 

  오늘날처럼 온통 잿더미에 먼지투성이로 매캐한 판에서는 ‘그냥그냥 녹색·초록·그린·친환경·자연·생태’를 들먹이는 글이 아닌, ‘수수하게 숲을 품고 스스로 푸르게 하루를 노래하는’ 글을 쓰고 읽고 나눌 노릇입니다. 이제는 글을 쓰려면 서울(도시)을 떠나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어른’이란 이름을 밝히고 싶다면 모든 허울을 떨치고서 쇳덩이(자동차)를 버리고 잿집(아파트)에서 나와야 합니다. 맨몸으로 해바람을 쐬고, 맨손으로 빗물을 받고, 맨발로 풀밭에 서서 우리를 둘러싼 이 별빛을 오롯이 누리고 살림을 짓는 사랑을 일굴 노릇입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마당·텃밭이 있는 조촐한 보금자리’를 어린이랑 오순도순 열 해이고 스무 해이고 서른 해이고 가꾼 뒤에 붓을 들어야지요. ‘농사·농업’이 아닌 ‘여름지이·열매짓기·흙살림·들살이’를 해야지요. 돈바라기에 갇히는 ‘농사·농업’이 아닌 ‘손수 살림을 짓는 숨결로 손수 들숲바다를 맞아들이는 작은길’을 갈 적에라야 붓을 쥐어 글을 쓸 만한 사람인 어른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이오덕 님이 한숨을 쉬면서 나무란 ‘훔침글(표절작가)’ 이야기라든지 ‘겉치레글(위선·허례허식·가식적 문장)’은 우리 스스로 ‘어른 아닌 늙은이’인 몸으로 돈·이름·힘에 얽매였기에 불거집니다. 철이 들면서 어질고 참하고 착하면서 고운 사람이기에 ‘어른’입니다. 나이만 먹고서 나이를 앞세워 그저 윽박지르며 높낮이(위계질서)를 가르기에 ‘늙은이’입니다. 이른바 ‘선생·원로·기성세대’는 모조리 늙은이입니다. 우리가 어린이 곁에 서려면 ‘선생·원로·기성세대’ 같은 고리타분한 허물을 싹 털어내고서 수수하게 ‘어른’ 하나를 돌아볼 줄 아는 눈빛일 노릇입니다.

 

  《시정신과 유희정신》을 그냥 읽으면 그냥 못 알아봅니다. 《시정신과 유희정신》을 읽고 싶다면, 먼저 서울·쇳덩이·잿집을 버려야 할 뿐 아니라, 종잇조각(졸업장·자격증)도 버려야 하고, 이름값(선생·원로·기성세대)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쥐고서 들숲바다 가운데 한 곳으로 가기를 바랍니다. 멧골에 올라도 즐겁습니다. 풀벌레하고 새가 노래하는 곳에서 책을 펼칠 일입니다. 바다가 물결치고 바람이 일렁이는 곳에서 빗물수다를 들으면서 책을 넘길 일입니다.

 

  집안일을 하던 손으로 읽을 《시정신과 유희정신》입니다. 비질에 걸레질을 하던 손으로, 천기저귀를 갈고 빨래하던 손으로, 아기를 안고 젖을 물리던 손으로, 아이한테 자장자장 노래를 들려주는 눈망울로, 밤마다 별빛을 보고 낮마다 햇빛을 보는 눈짓으로,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달리는 몸으로, 껍데기를 버리고서 이웃이랑 어깨동무하는 매무새로, 천천히 읽고 새기면서 스스로 노래얼이랑 놀이넋을 밝힐 책 한 자락입니다. 같이 노래해요. 함께 놀아요. 나란히 이야기를 펴고, 새롭게 오늘을 써 봐요.

 

ㅅㄴㄹ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국이나 영국 같은 부유한 나라 사람들보다 더 좋은 옷을 입고 더 큰 집을 지어 살려고 하는가? (9쪽)

 

아동문학이 아동을 위한 문학이라면 그것은 당연히 아동의 건전한 성장과 그들의 미래가 밝고 빛나는 세계가 되기를 염원하는 작가의 철학을 기반으로 창조되어야 한다. 따라서 작가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사회적 현실을 양심으로 파악하고 아동의 생활을 정직한 눈으로 보고 거기서 진실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24쪽)

 

그런 ‘인간적’인 것을 찾아내는 노력, 그런 인간적인 것이 짓밟혀 시들어지는 것을 애통히 여기고 그것을 지키고 키워가는 작업, 이것이 교육이고 문학임을 확인하자. (66쪽)

 

아동이란 존재를 사회와 역사 속에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 주인공으로서 작가의 온 인생관과 문학관으로 이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작품에 좀더 절실하고 진지한 주제를 다루어야 할 것이다. (104쪽)

 

동심주의 동요가 가져온 해독은 아이들이 참된 시의 세계로 찾아가는 것을 완고하게 방해하고 있는 일뿐만 아니다. 그것은 또 아이들의 정신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113쪽)

 

우리가 창조하는 아동문학, 그것은 미국의 것도 일본의 것도 중국의 것도 그밖의 어떤 나라의 것도 될 수 없는 바로 우리 한국의 것이다. 한국이란 땅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주는 문학이요, 한국이란 특수한 풍토에서 피어난 문학이다. (136쪽)

 

아동문학의 간판을 내걸어 놓고는 아동을 멸시하고 아동과 상관없는 글을 쓰는 작가들도 문제지만, 얕은 손재주를 팔고 있는 상업주의의 유행도 문제고, 위선과 호언장담을 유일한 문단 처세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사람도 있어, 이들은 항시 정직한 작가의 발언을 봉쇄하기에 광분하고 이 땅의 아동과 민족의 앞날을 염원하는 양심적 작가들을 해치려고 하고 있다. (163쪽)

 

그토록 아이들을 사회와 절연된 세계에서 아무 생각 없이 귀엽게만 바라보는 것으로 작품을 쓸 수 있는 시인이 있었던가. (178쪽)

 

아이들은 철저하게 생활인인 것이고, 생활 속에서만 시를 느끼고 시를 생활하고 있는 것이 아동이다. (224쪽)

 

결국 동시는 시인의 세계와 아동의 세계가 하나로 일치되는 자리에서 비로소 참되게 씌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226쪽)

 

신현득의 동시는 사물을 달콤하고 아름답게만 보이려고 하는 순응주의로 하여 그 뜻한 바 교화적 의도조차 달성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사물 미화의 작기 방법은 근본적으로 그가 동심주의적 아동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때문이라고 본다. (252쪽)

 

글짓기 교육을 예술작품 창작교육으로 오해하고 있다. (334쪽)

 

우리 자신을 찾아 가지는 일이야말로 민족의 역사적 과제요 아동문학의 나아갈 길이다. (35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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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임 맘들임 꽃들임 (삶과 믿음의 敎室) | 이오덕 책읽기 2023-02-12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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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이오덕의 글쓰기 교육 선집

이오덕 글
양철북 | 2018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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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읽는 하루

― 길들임 맘들임 꽃들임

 

《삶과 믿음의 敎室》

 이오덕

 한길사

 1978.12.20.

 

 

  《삶과 믿음의 敎室》(이오덕, 한길사, 1978)은 우리나라가 일본 총칼나라(제국주의) 쇠사슬에서 풀려난 지 서른 몇 해 즈음 될 무렵, 이 나라 배움터가 어떤 민낯인가를 낱낱이 밝힌 꾸러미입니다. 이오덕 님은 1944년부터 길잡이 노릇을 했습니다. 배움터에서 한글 아닌 ‘국어(國語)’란 이름으로 일본글만 가르치고 읽어야 하던 때부터 길잡이 노릇을 했고, 이듬해에 일본이 물러나면서 바뀌는 물결을 지켜보다가, 한겨레가 두 동강이 난 채 서로 삿대질을 하며 피비린내로 싸우는 수렁을 가로질러야 했고, 어느덧 다시 총칼나라에 갇힌 캄캄한 굴레에서 누구보다 아이들이 죽어나가는 꼴을 코앞에서 보아야 했습니다.

 

  다른 길잡이는 몽둥이를 하나씩 장만해서 아이들을 다그치고 때리고 막말을 일삼았습니다. 이따금 맨손으로 다니는 다른 길잡이는 맨주먹과 발길질로 아이들을 두들겨패고 밟았습니다. 다른 길잡이는 아이들이 돈(사납금·육성회비·성금)을 안 내면 또 두들겨패면서 닦달을 해댔고, 시골이나 멧골에서는 숱한 길잡이가 ‘사택’에서 허구헌날 술을 퍼마시는 꼴도 쳐다보아야 했습니다. 이오덕 님은 몸이 여리기도 했으나 술 한 방울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말과 우리글을 쓰지만, 정작 언제부터 우리말과 우리글을 마음껏 쓸 수 있는지조차 제대로 안 가르치고 안 배우는 판입니다. 조선 무렵 세종 임금은 틀림없이 ‘훈민정음’이란 글씨를 여미었습니다. 우리글인 훈민정음입니다. 그러나 훈민정음은 “우리말을 담는 글”이 아닌 “우리가 내는 소리를 담는 글”로 흘러왔습니다. 세종 임금 스스로도 중국 한문으로 글을 썼고, 조선 오백 해 내내 임금과 벼슬아치와 글바치 누구나 중국 한문으로 글을 썼습니다. “우리말을 담는 글”이 아닌, “중국 한문을 읊는 소리를 담는 글”로 오백 해를 보낸 굴레였어요.

 

  일본이 총칼로 억누르던 때에는 숱한 사람들이 중국바라기에서 일본바라기로 돌아서면서 ‘우리말 우리글’이 아닌 ‘國語(일본말 일본글)’에 갇힌 나라였습니다. 중국도 일본도 물러간 1945년 뒤에는 되레 중국 한문과 일본 한자말이 뒤범벅이었지요. 여기에 영어까지 섞여 ‘우리말 우리글’은 늘 꼬랑지로 밀렸으니, ‘우리 숨결과 생각과 마음’을 ‘우리말 우리글’로 담아내려는 사람은 너무 드물었습니다. ‘무늬만 한글이되 우리 넋도 숨도 얼도 없는 껍데기 글’인 채 참 오래도록 스스로 굴레에 옭매였습니다.

 

  조선 무렵에 ‘백성·백정·천민·종(노비)’이란 이름이던 사람들은 글이 없이 살았습니다. ‘백성·백정·천민·종(노비)’이란 이름이던 숱한 사람들은 붓도 종이도 먹도 벼루도 구경할 겨를이 없을 뿐 아니라 만질 수 없고 책은 어림조차 못 했어요. ‘백성·백정·천민·종(노비)’이란 이름인 들꽃같은 사람들이 붓먹벼루종이를 구경하거나 만질라 치면 그만 나리(양반)한테 붙들려서 볼기(곤장)를 얻어맞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틀림없이 세종 임금은 ‘우리글 훈민정음’을 엮었으나 “백성·백정·천민·종(노비)하고는 그저 동떨어진 머나먼 길”이었습니다.

 

  ‘무늬만 우리글’이 아닌 “참으로 누구나 스스럼없이 생각을 말하면서 담아낼 수 있는 글”이 되기까지는 한참 걸렸습니다. 주시경 님은 1913년 무렵에 ‘한글’이란 이름을 퍼뜨려 주었는데, 이분이 1905년에 《국문문법》을 써내기 앞서까지는 “우리나라에 우리말을 담는 우리글은 싹트지 않았다”고 해야 올바릅니다. 작은이 주시경 님이 새롭게 눈뜨고서 바지런히 ‘우리말 가르치기’를 펴면서 ‘우리말이 어떤 얼개인가를 갈무리해서 말틀(문법)을 처음으로 세우기’를 할 즈음에야 비로소 ‘우리말 우리글’이 싹텄습니다. 이때까지 우리한테는 “우리말은 ‘백성·백정·천민·종(노비)’ 사이에 늘 있기는 했되, 언제나 중국 한문에 짓밟혔을 뿐이고, 우리글이란 까맣게 없던” 굴레였습니다.

 

  《삶과 믿음의 敎室》을 읽으면, 이 나라 배움터 이야기 못지않게 ‘우리말 우리글이 짓밟히고 허덕이면서 몸살을 앓는’ 이야기가 그득합니다. 이오덕 님은 왜 ‘교육’을 짚는 글에 ‘우리말 우리글’ 이야기를 자주 폈을까요? 모든 가르침과 배움은 바로 ‘말’로 하거든요. 참다이 가르치고 배우는 길은 ‘참다운 말글’로 펴게 마련입니다. 늘 쓰는 말부터 참답지 않다면, 아무리 훌륭한 책을 손에 쥐더라도 슬기로이 못 가르치고 아름답게 못 들려주며 착하게 못 밝힙니다. 우리말을 우리글에 담을 적에 드디어 홀로서기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짓고 가꾸는 삶이기에 참말·참넋·참길을 이룹니다. 남(권력자·지식인)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기에 거짓말·껍데기·겉치레를 뒤집어쓰거나 내세웁니다. 겉으로 말쑥하게 차려입어야 어른스럽지 않습니다. 삶을 스스로 짓는 마음을 말에 담고, 이 삶말을 글로 고스란히 옮기면서 오늘 하루를 사랑하면서 꿈을 그릴 줄 알기에 어른스럽습니다.

 

  나이만 먹으면 늙은이일 뿐입니다. 철이 들어야 어른입니다. 나이만 먹은 늙은이였던 숱한 꼰대는 ‘선생(先生 : 먼저 태어난 사람)’이란 이름을 허울로 내세웠습니다. ‘먼저 태어났다’는 몽둥이를 마구 휘두른 그들이지요. 아이들을 짓누르면서 길들인 늙은이가 온나라를 뒤덮던 우리 민낯이에요.

 

  나이를 먹기보다는 철이 들기를 바라는 마음이기에 비로소 ‘길잡이’일 수 있고 ‘스승’으로 섭니다. 길을 잡아서 먼저 나아가는 참하고 착한 사람이 ‘이슬받이’입니다. 스스로 삶을 가꾸고 살림을 지으며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아름다운 사람이 ‘스승’입니다. 가르치기에 스승이 아니에요. 스스로 삶·살림·사랑을 짓는 하루를 스스럼없이 보여주면서 손을 맞잡거나 어깨동무를 하기에 스승입니다.

 

  길잡이나 스승은 위에 올라서지 않습니다. 길잡이나 스승은 나란히 섭니다. 가시밭길이나 자갈길을 나란히 걷는 길잡이요 스승입니다. 앞으로 꽃길이 되도록 함께 가꾸려는 길잡이입니다. 머잖아 숲길을 이루도록 함께 땀흘리고 웃음짓고 노래하는 스승입니다.

 

  일본 우두머리만 총칼나라를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우두머리도 총칼나라를 앞세웠습니다. 예나 이제나 임금도 나라지기도 벼슬아치도 글바치도 총칼(전쟁무기)을 너무 좋아합니다. 총칼을 물리치고서 오직 사랑으로 붓을 잡고 호미를 쥐려는 마음하고는 아주 등진 그들이자 우리들입니다. 모든 총칼은 사람들을 길들이려 합니다. 모든 풀꽃나무는 스스로 곱게 물듭니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마음을 들여야 사람다우면서 사랑다우면서 삶이자 살림다울까 하고 생각해야지 싶습니다.

 

  껍데기를 스스로 벗고서 아이하고 손잡을 수 있습니까? 허울을 기꺼이 벗고서 아이 곁에서 노래하고 춤출 수 있습니까? 겉치레를 말끔히 물리치고서 아이랑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는 살림지기로서 오늘을 그리고 가꿀 수 있습니까?

 

  아이한테서 배우기에 눈이 밝은 어른입니다. 어른한테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넌지시 가르치기에 마음이 맑은 아이입니다. 참다운 사이라면 높낮이가 없습니다. 참답지 않은 사이라서 높낮이를 세우고 틀(질서·권위)에 가두려 합니다. 아이들은 틀에 가두면 죽습니다. 풀꽃나무도 틀에 가두면 죽어요. 물을 틀에 가두면 썩어버리고, 바람을 틀에 가두면 빛을 잃습니다.

 

ㅅㄴㄹ

 

20여 년 전 나는 ㄱ도 어느 중학교에 근무한 일이 있다. 그때 ㅂ교장 선생은 손수 ‘교양봉’이라고 쓴 1미터 길이의 몽둥이 하나를 직원실 한쪽 벽에 걸어 두었었다. 교육을 하려면 어느 정도 두들겨패야 한다는 것이 ㅂ교장 선생의 신념이었다. (33쪽)

 

나무심기만 하더라도 그것을 돈을 얻는 수단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무를 자연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생명의 모습으로 대하고 애정으로 심고 가꾸도록 해야만 비로소 교육이 되는 것이고 산림녹화도 참되게 이뤄질 것이다. (51쪽)

 

우리나라의 교사들은 어떤가? 유감스럽게도 내 동직자들은 기계로 전락해 있다. 단추를 누르면 돌아가고, 그만두라면 멈춰서는 비참한 기계다. 환경정리고, 청소고, 문서 처리고, 점수따기 시험준비 교육이고 시킴을 받아 마지못해 한다. 그래서 지시와 명령이 없으면 정작 해야 할 교육은 할 줄 모른다. (60쪽)

 

오늘날의 학교는 육체노동을 천하게 여기는 교육을 하고 있다. 인격으로 감화시키는 정신교육이 없고 일하는 즐거움을 맛보게 하는 노작교육을 등한히 하고, 그저 점수따기 경쟁을 시키고, 겉모양을 갖추는 것에만 신경을 쓴다. (101쪽)

 

교육자로서 교육 문제를 생각하는데 졸업장이니 자격증이니 학위니 하는 것만을 따진다는 것은 교육을 그르치는 결과밖에 가져올 것이 없다고 본다. (109쪽)

 

어린이들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공부를 해서 장차 어른이 되면 돈벌이를 많이 해서 부자가 되거나 높은 벼슬자리에 앉는 것을 성공으로 생각하지 말아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125쪽)

 

일선의 교사들은 문인들이 쓴 이런 문학작품의 창작 이론이나 입문서 따위를 보고 그것을 그대로 아이들 교육에다 적용해서 지도하려 하였으니, 이것이 우리 글짓기 교육을 크게 잘못되게 이끌어 온 요인이 되었다. 그것은 산문 쓰기에서 생활을 떠난 거짓스런 얘기를 만들어내는 재주를 익히게 하여 어린이다운 순진성을 버리게 하고, 시가 될 수 없는 짝짜꿍 동요짓기로 저보다 나이 어린 아기들 흉내를 내게 하여 아이들의 정신을 퇴화시켰던 것이다. (159쪽)

 

문학교육(문학작품 감상 교육)은 생활을 정직하게 쓰는 글짓기·시짓기 교육과 병행해야 한다. 이것이 아이들로 하여금 장차 문학작가가 될 수 있는 소질을 닦고 인간적 기반을 쌓게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어릴 때부터 무슨 문학작품을 쓴다고 해서 어른들 흉내나 내는 사람은 결코 작가가 될 수 없고 참 시인이 되지도 못할 것이며, 건강한 마음을 가진 인간이 되기도 어렵다. (188쪽)

 

사투리나 순수한 우리말 땅이름도 귀한 문화재라고 하는 말들을 최근에는 더욱 듣게 되어 반갑다. 그러나 우리말이 이조 5백 년과 일제 36년에 이어 여전히 수난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은 우리말 교육이 보급되어 있는 오늘날이기에 더욱 한심스럽게 생각된다. (228쪽)

 

물론 이것은 전체의 아름다움을 보인다는 뜻이 강조될 것이다. 그러나 개인보다 전체가 우선되고, 그것을 고심해서 연출하는 아이들보다 구경하는 관중이 본위가 되고, 내면보다 겉모습이 중시되고, 인간적인 아름다움보다 기계적인 통제의 아름다움이 찬양된다고 할 때, 그런 사회는 창조의 샘물이 말라 버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23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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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고 일하면서 스스로 (글쓰기 더하기) | 이오덕 책읽기 2023-02-1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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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글쓰기 더하기

이오덕 저
양철북 | 2017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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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읽는 하루

― 놀고 일하면서 스스로

 

 

《글쓰기 더하기》

 이오덕

 양철북

 2017.9.25.

 

 

  《글쓰기 더하기》(이오덕, 양철북, 2017)는 예전에 나온 《와아, 쓸 거리도 많네》(1993)하고 《이렇게 써 보세요》(1993)를 하나로 묶었습니다. ‘지식산업사’에서는 “이오덕 글쓰기 교실”이란 이름을 걸고서 다섯 자락으로 책을 펴내었는데, 그동안 글삯을 제대로 안 치렀을 뿐 아니라, 얼마나 찍고 팔았는지 이오덕 어른한테 알리지도 않았어요. 참다 못한 이오덕 어른은 지식산업서한테 책을 그만 내라고 숱하게 알렸으나 지식산업사는 대꾸를 않고 자꾸자꾸 내놓기만 했습니다.

 

  이오덕 어른은 어린이 누구나 스스로 살피고 생각하고 가다듬어 글빛을 밝히도록 이끄는 꾸러미를 여미었습니다. 곁에서 어른들이 지켜보아도 나쁘지 않되, 어린이 누구나 아무런 눈치를 안 보면서 마음을 밝힐 수 있기를 바랐어요. 맞춤길이나 띄어쓰기를 따박따박 챙기기 앞서, 글에 담을 마음을 눈여겨보려 했고, 글로 새롭게 태어나는 삶을 어린이가 스스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랐어요.

 

  남한테 읽히려고 쓰는 글이지 않습니다. 남이 잘 읽어 주어야 할 글이지 않습니다. 내가 쓰고 내가 되읽으면서 마음을 다독일 글입니다. 나 스스로 오늘을 아로새기는 동안 생각도 숨결도 차분히 추스를 수 있는 글이에요.

 

  병아리는 이따금 ‘삐약삐약·삐악삐악’ 울는지 모르나 늘 이렇게 울지 않습니다. 개구리는 가끔 ‘개굴개굴’ 울 수 있으나 늘 이렇게 울지 않아요. 아직 찬바람이 부는 이른봄이나 늦겨울에 멧개구리가 먼저 깨어나는데, 멧개구리 울음소리는 다릅니다. 풀벌레도 저마다 울음소리가 다르고, 같은 메뚜기나 귀뚜라미가 여치나 풀무치여도 서로서로 다르게 울어요.

 

  어른들이 소릿글로 옮긴 대로 울음소리나 노랫소리를 옮겨적을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 귀로 들은 대로 적으면 됩니다. 우리 눈으로 본 대로 그리면 됩니다. 우리 다리로 걸어다닌 대로 쓰면 됩니다. 우리 손으로 돌보고 가꾸고 보듬은 대로 담으면 됩니다.

 

  모든 하루는 달라요. 다 다른 하루를 고스란히 쓰면 되기에 쓸거리는 날마다 새롭고 흘러넘칩니다. 모든 삶은 새롭습니다. 언제나 새롭게 맞이하는 삶을 쓰면 즐거우니 스스로 느끼고 배우고 생각하면서 누린 나날을 차근차근 여미면 돼요.

 

  따로 길잡이가 있어야 글을 쓰지 않습니다. 글을 쓰는 내가 나한테 길잡이입니다. 글쓰기를 하고픈 어린이는 어린이 스스로 길잡이요 읽님(독자)이면서 글동무입니다. 걱정을 하기에 걱정이 피어나고, 골을 부리기에 골부림이 자라납니다. 생각을 하기에 생각이 자라나고, 마음을 기울이기에 마음이 빛나요.

 

  《글쓰기 더하기》라는 이름이 붙어 다시 나온 꾸러미에는, 모든 글빛은 스스로 지으니 늘 스스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늘 스스로 노래하고 꿈꾸면서 붓을 쥐자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다른 곳을 기웃거리지 말아요. 가르쳐 줄 어른을 찾지 말아요. 배움터(학교·학원)에 나가야 하지 않습니다. 이 책 저 책 많이 읽어야 글살림을 북돋우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기에 오늘 이곳을 헤아릴 수 있어요. 어제 하루를 되새기기에 어제에서 오늘로 이어 모레로 가는 길을 알아볼 수 있어요. 새날을 꿈으로 그리면서 마주하기에 가시밭길도 꽃길도 스스럼없이 누비면서 마음 가득 빛줄기가 퍼집니다.

 

  글을 더 많이 쓰기보다는, 하루를 온통 신나게 놀 수 있기를 바랍니다. 책을 더 많이 읽기보다는, 집안일을 거들고 밥도 차려 보고 걸레질이며 비질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른들이 태워 주는 부릉이(자동차)에서 내려 느긋이 햇볕을 쬐고 바람을 마시면서 마을길을 걸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흙을 만지면서 풀꽃을 토닥이지 않은 삶이라면 풀도 꽃도 나무도 사귀지 못 하고 만나지도 못 할 뿐 아니라, 풀꽃이며 나무 이야기를 못 씁니다. 책이나 그림으로 만나는 새나 풀벌레로는, 새나 풀벌레가 사람 곁에서 어떤 이웃인지 알 길도 없을 뿐 아니라, 숲빛 이야기를 마음으로 삭여서 쓸 수도 있습니다.

 

  빗방울을 손바닥에 얹어서 가만히 보는 동안 비내음을 글로 옮겨요. 눈송이를 혓바닥으로 받아서 슬며시 맛보는 사이에 눈꽃을 글로 얹어요. 마음을 더하는 글이고, 생각을 더하는 글이며, 사랑을 더하는 글입니다. 어른스럽게 쓰는 글이란, 멋있는 글이나 똑똑한 글이나 자랑하는 글일 수 없습니다. 어른스러이 일구는 글이란, 삶을 그리고 살림을 담고 사랑을 노래하는 글입니다.

 

  아이 곁에서 함께 붓을 쥐고 종이를 펴 봐요. 어른으로서 어른답게 모든 시끌벅적한 부스러기는 내려놓고서 맨발로 풀밭을 디디면서 맨손으로 나무줄기를 쓰다듬는 하루를 살아내고서 글 한 줄을 써 봐요. 맨몸으로 비를 맞으면서 ‘바다에서 피어나 구름이 되어 찾아온 물빛’을 느끼면서 함박웃음을 지을 수 있을까요? 비가 와서 길이 막히지 않습니다. 비가 와서 온누리 티끌을 맑게 씻어 줍니다. 바람이 불어서 춥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어서 온누리 먼지를 훅훅 털어 줍니다.

 

  어른으로서 어린이한테 알려주고 읽힐 글이란, 햇볕을 담고 빗물을 싣고 바람을 품은 글이어야지 싶습니다. 어른으로서 먼저 스스로 읽고서 어린이랑 나눌 글이란, 풀꽃나무를 곁에 두면서 들숲바다를 사랑하는 마음이 새록새록 싹트는 글이어야지 싶습니다.

 

ㅅㄴㄹ

 

개구리가 당하는 고통을 생각하는 사람다운 마음이 이 글을 쓰게 한 것이지요. 사람다운 마음은 이와 같이 세상의 참모습을 보게 하고, 훌륭한 행동을 하게 합니다. (29쪽)

 

이런 모든 소리를 기계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이 듣고, 그렇게 들은 것을 그대로 글에 옮겨 적으면 그 글은 살아납니다. (35쪽)

 

별난 일, 놀라운 일이라야 좋은 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날마다 겪는 평범한 일이 가장 좋은 글감입니다. (61쪽)

 

도시 문명을 만들어 살던 사람들은 “자연을 정복한다”고 했습니다. ‘정복’이란 말은 나쁜 것들을 쳐서 굴복시킨다는 말입니다. 자연이 왜 나쁠까요? 사람은 자연이 없으면 잠시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자연을 먹고 마시고 숨쉬고 그 자연에 안겨서 살다가, 죽으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사람입니다. (125쪽)

 

우리는 누가 쓴 글을 읽더라도 그 글을 쓴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가를 판단해서 그 글의 가치를 매겨야 합니다. (233쪽)

 

요즘은 어린이들도 어른들 말을 하는 것 아닌가요? 텔레비전과 신문과 책으로 어른들이 하는 유식한 말(이게 바로 병든 말입니다)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 아닙니까? 말을, 산과 들에서 뛰어놀고 일하면서 익히는 것이 아니라 책과 텔레비전으로 배우는 것 아닙니까? (290쪽)

 

아기들도 잘 알 수 있는 말이 좋은 말이고 깨끗한 우리말입니다. 이 ‘미소’란 말은 일본사람들이 쓰는 중국글자말을 따라 잘못 쓰게 된 말입니다. 어른들이 뽐내어 쓰는 유식한 말에는 이와 같이 잘못 쓰는 말이 아주 많습니다. (29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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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무너미마을 느티나무 아래서

이오덕 저
한길사 | 2005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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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읽는 하루

― 죽살이 고갯길에서

 

 

《무너미마을 느티나무 아래서》

 이오덕

 한길사

 2005.8.24.

 

 

  《무너미마을 느티나무 아래서》는 이오덕 어른이 죽살이 고갯길에 쓴 노래(시)를 갈무리한 두 가지 꾸러미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오덕 어른은 마지막으로 이 땅에서 하루하루 누리는 동안 우리말·우리글을 갈닦는 눈빛을 추스르려 하면서, 어린글꽃(어린이문학)이 슬기롭고 참하게 서는 밑틀을 들려주려 하면서, 그동안 다른 일을 먼저 하느라 뒷전으로 놓던 노래쓰기를 바지런히 했습니다.

 

  이오덕 어른은 이원수 님이 들려준 이야기를 듣고서 오래도록 글꽃쓰기(문학창작)를 멈추고 글꽃보기(문학비평)에 마음을 쏟았습니다. 이원수 님은 우리나라 어린글판(어린이문학판)에서 글을 바르게 보고서 말을 바르게 하는 사람이 너무 적은 탓에 글꽃을 여밀 사람들이 눈빛이 흐리고 글빛마저 흐리다고 안타깝게 여겼어요. 이원수 님이 지켜보기로 이오덕 어른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곧바르게 글을 보고 말을 옮길 줄 안다고 생각했다지요. 1977년에 나온 《시정신과 유희정신》을 비롯하여 2002년 《어린이책 이야기》까지 쉬잖고 글꽃보기를 남겨 놓았습니다.

 

  곰곰이 보면, 이오덕 어른은 멧골에 깃들어 어린이 곁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던 무렵에 노래쓰기하고 글꽃쓰기에 힘을 쏟았습니다. 큰고장으로 나와서 말글을 살리고 어린글꽃을 북돋우는 길을 걸을 적에는 멧골도 멧꽃도 멧새도 멧숲도 곁에 둘 겨를이 없었어요. 더는 큰고장에서 지낼 기운이 없다고 여겨 멧골을 품은 시골로 옮기고서야 다시금 글꽃쓰기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를 보면, 멧골이나 시골에서 살며 글꽃(문학)을 여미는 분이 매우 적습니다. 들숲바다는커녕 흙빛이나 풀내음조차 모르는 채 글쓰기만 한다고 볼 만합니다. 여름짓기가 아닌 ‘농업·농사’는 온통 ‘비닐·농기계·풀죽임물(농약)·죽음거름(화학비료)’으로 물들었어요. 흙과 풀과 해바람비를 등진 채 ‘농업 ·농사’만 하는 길이라면 시골에서 살더라도 노래를 잊거나 등지게 마련입니다.

 

  비닐을 치는 일꾼은 노래를 안 부릅니다. 풀죽음물을 뿌리는 데에서는 입조차 벙긋할 수 없습니다. 죽음거름은 냄새가 고약하니 더더욱 입을 다뭅니다. 농기계가 시끄러운 데에서는 아무도 북이나 장구나 꽹과리를 치지 않습니다.

 

  또한 부릉거리는 쇳덩이(자동차)를 모는 이들도 노래하지 않아요. 쇳덩이가 가득한 시커먼 길을 내달리는 이들은 다른 쇳덩이를 쳐다보느라 마음을 기울여야 하니 노래를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스스로 노래하지 않고, 들노래도 숲노래도 바닷노래도 온통 잊어버리고 등지는 오늘날입니다. 이제는 들숲바다에 해바람비에 풀꽃나무를 모조리 잊고서 글만 쏟아내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판입니다.

 

  생각해 봐요. 들숲바다에 해바람비에 풀꽃나무를 잊은 이들은 아이들도 잊게 마련입니다. 아이들이 느긋이 놀다가 낮잠도 들고 나무타기를 하면서 하루를 소꿉잔치로 누빌 짬을 빼앗은 이들이 어떤 글을 쓰는가요?

 

  《무너미마을 느티나무 아래서》는 《고든박골 가는 길》하고 나란히 나오기로 했으나, 《고든박골 가는 길》이 2005년 4월 15일에 나오고, 《무너미마을 느티나무 아래서》가 2005년 8월 24일에 나옵니다. 처음에는 실천문학사 한 곳에서만 이오덕 어른 노래를 ‘유고 시집’으로 내려 했는데, 한길사 쪽에서 굳이 나눠서 같이 내자고 떼를 쓴 탓에 두 곳에서 따로 나왔는데, 한길사는 나눠서 ‘같은 날’에 내자는 다짐조차 어겼습니다.

 

  한길사는 2003년 11월 5일에 《살구꽃 봉오리를 보면 눈물이 납니다》를 함부로 냈습니다. 이오덕 어른이 한길사 김언호 씨한테 ‘이오덕·권정생이 주고받은 글월’을 보여주기는 했으나 책으로 내라고는 안 했는데, 몰래 챙겨서 때를 기다렸다지요.

 

  막짓을 일삼은 한길사였는데, 작가회의에 이름을 건 여러 글꾼이 한길사 쪽에서 부린 떼를 받아들여서 이오덕 노래책을 2005년에 두 곳에서 나란히 냈고, 이제는 판이 끊어졌습니다.

 

  책은 왜 쓰고 왜 읽어야 할까요? 노래는 누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부르는가요? 왜 이오덕 어른 책을 굳이 펴내어 그들 이름값을 높이는 길에 써먹으려고 잔꾀를 부려야 할까요?

 

  이오덕 어른이 피맺힌 목소리로 한 줄 두 줄 적은 〈죽어야 한다〉를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죽음은 안 나쁩니다. 죽음은 늘 삶하고 맞물립니다. 우리말은 ‘죽살이’라 합니다. 죽음을 앞에 놓고 삶을 뒤세웁니다. 떠나기에 찾아들고, 내려놓기에 일어섭니다. 잠들기에 깨어나고, 스러지기에 거듭납니다.

 

  모든 허울을 걷어치워야 아이들이 살아날 새터를 열 수 있습니다. 모든 껍데기를 쓸어내야 아이들이 꿈꾸고 노래할 숲누리를 이룰 수 있습니다. 모든 겉치레를 벗어던져야 아이들이 마음껏 생각날개를 펴면서 온누리에 아름다이 웃음노래가 퍼질 수 있습니다.

 

  밤이 깊을수록 낮이 따뜻합니다. 밤새 고요히 몸을 쉬면서 꿈을 그려야 한낮에 환하게 하루를 일구면서 즐거이 땀흘립니다. 밤은 밤빛이고 낮은 낮빛이에요. 밤은 밝은꿈으로 나아가는 밝은씨앗입니다.

 

  죽음터이자 잿터인 서울을 스스로 웃으면서 떠날 줄 아는 마음이라면 어른스럽습니다. 멧새가 노래하는 곁으로 보금자리를 옮기면서 웃는 숨결이라면 어른답습니다. 차디찬 서울에서 쇳덩이를 몰아내고서 나무 한 그루랑 풀꽃씨 한 톨을 심으면서 푸르게 바꿀 하루를 그리는 손길이라면 어른입니다.

 

ㅅㄴㄹ

 

아침마다 감나무 밑에 간다 / 감나무 밑에 깔려 있는 단풍잎은 / 이 세상에서 가장 고운 감나무 단풍잎은 / 하느님이 땅 위에 수놓은 고운 보자기 (감나무 단풍잎/15쪽 1999.10.)

 

설날은 떡국 먹고 술 마시는 날인가? / 윷놀이 화투놀이로 즐기는 날인가? 세배하고 인사하고 나이 한 살 더 먹었다고 / 좋아하는 날인가? / 아니다 / 그런 날이 되어서는 안 된다 // 설날은 지난해 지난 날 돌아보고 / 앞날 생각하고 앞길 바라보고 / 올해는 부디 잘 할 수 있기를 비는 날인가? (설날에 거는 전화―아이들에게/74쪽 1998.1.28.)

 

벼랑 끝까지 와서도 / 사람들은 미친 춤을 추고 있구나 / 춤을 추면서 외치는 소리가 하늘과 땅에 차고 / 넘쳐서 어지럽구나 멀미가 나는구나 / 더 빨리 달리는 차들! / 더 넓고 쭉 곧은 길을! / 더 높은 빌딩을! / 더 많은 구경거리를! / 더 맛좋은 먹을거리를! 더 달콤하고 / 향기 넘치는 마실거리를! / 그리고 아이들을 하루바삐 어른으로 / 만드는 교육을! (예언/88쪽 1998.11.5.)

 

농업이 죽어야 한다 / 축산도 죽어야 한다 / 담배도 인삼도 다 죽어야 한다 // 공장도 망하고 / 기업도 쓰러지고 / 학교도 문을 닫야 한다. // 방송과 신문―그 언론이란 것 / 싹 없어져야 돼. / 문학과 철학, 과학, / 또 무슨 무슨 온갖 학문도 / 종교와 예술 따위도 어디 부딪혀 박살이 나 버려라 / 벼락을 맞아라 … 소설, 시, 동화고, 에세이고 뭐고 / 무슨 주의 무슨 운동 / 다 망해라 망해. / 모조리 예자리 다 뻗어 버려라 // 그래야 사람이 살아나지 / 그래야 땅이 살고 하늘이 살고 / 아이들이 살아나지. (죽어야 한다/168∼169쪽 2001.1.6.아침)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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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쓰고 읽도록 (어린이책 이야기) | 이오덕 책읽기 2023-02-09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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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어린이책 이야기

이오덕 저
소년한길 | 2002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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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을 읽는 하루

― 누구나 쓰고 읽도록

 

《어린이책 이야기》

 이오덕

 소년한길

 2002.7.30.

 

 

  《어린이책 이야기》(이오덕, 소년한길, 2002)는 2000년 언저리에 나온 여러 어린글꽃(어린이문학)을 놓고서 줄거리와 얼거리와 말씨를 하나하나 짚으면서 우리가 어른으로서 어른답게 살아갈 넋은 무엇인가 하고 밝히는 꾸러미입니다. 재미만 흐르는 글이어서는 아이 눈을 버릴 뿐이요, 서울만 쳐다보는 글이어서는 서울아이도 시골아이도 몽땅 가두는 굴레일 뿐이요, 아이들이 쉽게 익히고 수월하게 생각을 펴도록 북돋우는 말씨를 글로 옮기지 않는다면 ‘글바치 힘자랑(문단 기득권 권력)’이 될 뿐이라고 거듭 밝히기도 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낱말을 하나하나 따질 노릇입니다. 토씨 하나까지 오래도록 헤아릴 노릇입니다. 둘레(사회·학교)에서 널리 쓰는구나 싶은 낱말이나 말씨라 하더라도 굳이 글에까지 써야 하는가 하고 생각할 노릇이면서, 둘레에서 널리 쓰지만 오히려 이 ‘둘레에서 널리 쓰는 말’을 바로잡거나 가다듬거나 고쳐서 새말을 엮거나 지을 길을 생각하기도 할 노릇입니다.

 

  누가 나라지기가 되더라도 그이가 나라지기로서 옳고 바르고 참하고 착하고 아름답게 나라살림을 펴도록 지켜보고 따지고 목소리를 낼 노릇입니다. 잘 하는 일은 손뼉을 치면서 북돋우고, 잘못 하는 일이라면 따끔하게 나무라면서 바로잡도록 새길을 알려줄 노릇입니다.

 

  어린이가 읽을 글은 어떤가요? 어린이한테 ‘아무 말씨’나 담은 글을 읽히려 하지는 않나요? 어린이 낱말책조차 ‘교과서에 실린 낱말’을 바탕으로 엮는 우리나라입니다. ‘어린이 자람결’을 바탕으로 엮는 어린이 낱말책은 아직 하나조차 없습니다. 숱한 그림책에 어린글꽃도 ‘교과서 학습진도 연계’에 얽매입니다. 더구나 ‘배움곁책(교과서·학습지)’을 내놓는 펴냄터에서 어린글꽃을 나란히 내놓고, 어린글꽃을 내놓던 펴냄터에서 배움곁책을 내놓기까지 하는 판이에요. 돈에 미쳐 돌아간다고 여길 만한 오늘날입니다.

 

  어린이한테 착하고 참하고 아름다운 새길을 들려주면서 북돋울 몫을 할 어른일 텐데, ‘어른다운 어른’은 자꾸 사라지면서 ‘나이든 사람’만 늘어납니다. 나이만 먹기에 어른이 될 수 없습니다. 나이만 먹을 적에는 ‘늙은이’입니다. 어린이가 참답게 읽으면서 착하게 살림을 꾸려서 아름답게 사랑을 꽃피우는 길을 밝혀야 비로소 어린글꽃입니다. 어린글꽃조차 ‘학습 보조도구’로 삼는 판이라면 이제는 어린이한테 아무 글을 안 읽힐 일이라고 느낍니다. 아니, 어린배움터(초등학교)조차 싹 걷어치워야 하지 않을까요?

 

  마침종이(졸업장)를 거머쥐도록 다녀야 할 배움터가 아닙니다. ‘서울에 있는 열린배움터(대학교)’에 철썩 붙도록 바탕을 다지는 어린배움터일 수 없습니다. 나중에 돈 잘 버는 일자리를 얻도록 읽는 ‘문화교양 인문책’일 수 없습니다. 온나라가 돈판으로 흐르고, 어린글꽃을 쓰는 사람조차 돈바라기로 기운다면, 어린이는 돈만 쳐다보고 돈만 아는 굴레에 갇히게 마련입니다.

 

  《어린이책 이야기》는 숱한 글꾼이 자꾸 놓치거나 잊거나 뒷전으로 내모는 대목을 찬찬히 짚으려고 합니다. 아이들이 읽고 느끼고 돌아볼 ‘삶’이란 그저 ‘먹고살기’에 그칠 수 없다는 대목을 짚어 줍니다. 어린이 누구나 ‘사랑으로 가꿀 삶’과 ‘숲빛을 품는 삶’과 ‘스스로 살림을 짓는 삶’과 ‘서로 푸르게 북돋우면서 나누는 삶’과 ‘참답게 어른스레 피어날 꽃송이로 걸어갈 삶’을 어린글꽃에 담자는 생각을 들려줍니다.

 

  어린글꽃뿐 아니라 어른글꽃도 아무 낱말이나 쓰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생각해 봐요. 아이들한테 아무 밥이나 먹여도 될까요? 아이들이 아무 데서나 살아도 될까요? 아이들이 아무 책이나 쥐어서 읽어도 될까요?

 

  가장 정갈히 다스린 밥옷집을 아이들한테 내어주고, 가장 알뜰히 여민 살림살이를 아이들한테 남겨주고, 들짐승과 새와 풀벌레가 넉넉히 어우러지는 푸른 들숲바다를 아이들한테 물려줄 노릇입니다. 가장 곱게 돌본 우리말과 우리글을 아이들한테 들려주면서 알려줄 때라야 비로소 ‘어른’이란 이름을 쓸 수 있습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아기였습니다. 사랑을 받고 자라는 길에 아이로 뛰놉니다. 어느덧 어린이로 우뚝 서면서 철이 들고, 팔다리에 힘이 붙을 즈음 푸르고 젊게 새길을 여미는 사람으로 피어나지요. 서로 사랑이란 눈빛을 마주하자면, 저마다 스스로 사랑씨앗을 온몸과 온마음에 새길 줄 아는 하루를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이가 스물이나 마흔이나 예순을 먹기에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나이만 먹으면 그저 늙은이입니다. 나이를 잊고서 하루하루 새길을 닦고 새빛을 찾으며 사랑을 길어올려 나누는 숨결일 적에 고요히 맑은 어른입니다.

 

  어린글꽃은 스스로 어른으로 자라려는 마음인 사람이 쓸 글입니다. 문학상에 뽑히려고 발버둥을 친다거나 문학잡지에 내놓는 글이 아닌, ‘작가’ 따위 이름에 얽매이려는 사람이 써대는 글이 아닌, “나부터 사랑으로 돌보면서 어린이랑 함께 푸른씨앗을 온누리에 포근히 심는 손길로 문득 환하게 웃음짓는 기쁜 숨결로 쓸 글”로 나아갈 어린글꽃입니다.

 

  《어린이책 이야기》는 어린이책을 읽는 눈길을 보여주면서 어린이책을 쓰는 손길을 함께 이야기합니다. 어린글꽃을 읽고 싶다면 푸른눈길로 거듭나야지요. 어린글꽃을 쓰고 싶다면 푸른손길로 피어나야지요.

 

ㅅㄴㄹ

 

우리말에는 높이거나 낮추는 말의 등급이 많은 것이 문제가 되어 있다. 말이 이렇게 되어서 우리들의 생각이나 행동이 자유스럽지 못하고, 민주사회를 창조해 가는 일도 온갖 어려운 일에 걸리고 빠져들고 부딪히고 하여 제대로 안 된다 … 아이들이 쓰는 글을 보면 흔히 “아빠께서”라고 쓰는데,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는 않고 혀짤배기 소리로 된 ‘아빠’라 하면서 여기에다가 높인말 ‘께서’를 붙였으니, 이런 우스꽝스러운 말이 또 있겠는가. (29쪽)

 

정작 이 이야기를 읽고 가장 기뻐하고 힘을 얻어야 할 아이들에게는 이 작품이 절망을 안겨 주는 것으로 된다고 안 할 수 없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 어른들의 보호를 받고, 어른들에게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어린이들이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제 힘으로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없더라도 온갖 어려움을 참고 이겨내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런 길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쓴다는 것이 대단히 어렵겠지만, 우리 아이들을 살리는 길이 그 길밖에 없다고 본다. (94쪽)

 

이렇게 말하면 많은 글쟁이들이 대답할 것 같다. “모두가 널리 쓰고 있는 말 가지고 뭘 그렇게 자꾸 따지는가? 무슨 말이든지 오랫동안 쓰면 저절로 우리말이 되는 것 아닌가?” 하고. 그런데, 이런 어거지말이 바로 왕조시대의 귀족 양반들의 논리요, 식민지 시대와 군사독재 시대, 그리고 신판 제국주의 외세 추종자들이 우리말과 우리글, 우리 얼을 팡먹는 글쓰기로 기득권을 지키려고 하는 속임수다. (110쪽)

 

무슨 말이든지 서울사람들이 쓰면 아주 앞선 말로 여겨서 요즘은 다른 지방의 어머니들도 많이 따라서 흉내내게 되었다. 이래서 모든 병든 말의 원천이 서울이다. (246쪽)

 

이밖에 그림에 대해서도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나 이만 줄인다. 부디 다음에 나오는 책은 좀더 조사와 연구를 많이 하고, 우리말도 더 올바르게 써서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유익한 그림이야기 책이 되도록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말한 의견에서 혹시 잘못 말한 것이 있을지 모르는데, 그런 것이 있으면 지적해 주기 바란다. (308쪽)

 

70년대 초, 그 암흑의 시대에 아무리 꽉 닫혀 있는 학교 안에서 공부만 해야 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고등학교를 나와 대학에 들어가려고 했던 나이라면 나라와 민족에 대한 생각은 어느 정도 있었을 터인데, 그런 고민을 했다는 이야기는 거의 없고 언제나 개인의 문제와 기분만으로 살았던 것 아닌가 싶고, 또 그때를 회상해서 글을 쓰는 지금에도 아무 생각 없이 그런 지난날 이야기를 쓰고 있다고 느껴지는데, 내가 글을 잘못 읽은 것일까? (348∼349쪽)

 

다만 여기서 존재한다는 말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고 싶다. “이 돌이 여기 존재한다”고 하는 말과 “이 돌이 여기 있다”는 말은 어떻게 다른가? … 아이들도 잘 아는 말 ‘있다’를 쓰는 것이 좋다. (37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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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은 커서 어떤 어른이 될까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 | 이오덕 책읽기 2018-03-0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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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

이오덕 엮
양철북 | 2018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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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은 커서 어떤 어른이 될까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
 이오덕 엮음
 (1979.1.22. 청년사)
 (2018.2.2. 양철북)


어제 학교에서 돌아와서 점심을 먹고 나물을 뜯으러 가니까 우리 큰엄마 무덤 앞에 할미꽃이 예쁘게 피어 있습니다 그걸 보다가 내비 두고 딴 데 가서 나물을 뜯어 가지고 와서 집에 갖다 놓고 다시 우리 큰엄마 무덤 앞에 가서 할미꽃을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하얀 털이 보얗게 묻어 있습니다(할미꽃, 상주 공검 2년 권명분 1959.2.27.)

노란 풀잎들은 이제 봄이라고 올라옵니다. 노란 풀잎은 아기처럼 부드럽고 작았습니다. 나는 풀잎을 만져 주었습니다. 풀잎들은 좋다고 웃는 것 같습니다. 그래 나는 그것을 보고 참 기뻤습니다(풀잎, 상주 공검 2년 임도순 1959.3.16.)


  시골을 떠난 이가 대단히 많습니다. 시골에서 먹고살 길을 찾을 수 없어 서울로 떠난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서울은 도시를 가리키는 이름이면서 한국에서 첫손 꼽는 도시 이름이기도 합니다. 전남 고흥이라는 시골에 살면서 마을 할매나 할배가 ‘서울’을 말할 적에는 행정구역 서울이기보다는 도시인 서울을 말하기 일쑤입니다. 다른 시골에서도 엇비슷해요. 예부터 시골이 아닌 곳을 서울이라고 했어요.

  우리는 지난날을 쉬 잊고 마는데,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이 서울에서 살지만, 지난날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시골에서 살았어요. 지난날에는 임금을 비롯한 몇몇 사람이 서울에서 살았어요. 또 궁궐이 서울에 있기 앞서 그 고을에서 흙을 부치며 살림을 이은 텃사람이 그곳에서 살았고요.


나는 동생을 보았습니다. 내 동생은 젖이 먹구져서 울었습니다. 달개도 안 되고 자꾸 웁니다. 나도 눈물이 나서 동생을 업고 가두둘 가서 동생을 젖을 먹여 가지고 왔습니다 (담배 심기, 안동 임동동부 대곡분교 2년 권순교 1969.5.25.)

오늘 소 뜯기로 가니까 어디서 논매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우리도 크면 저런 농부가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 상주 청리 4년 최인모 1964.7.20.)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이가 시골 어른이 됩니다. 시골 어른은 새롭게 시골 아이를 낳습니다. 시골사람은 시골살림을 가꾸고 시골노래를 부릅니다. 시골노래를 부르면서 시골살이를 누리는 동안 시골마을이 사랑스럽고 시골숲이 푸릅니다.

  시골이 가장 나은 삶터라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시골이든 서울이든 우리 스스로 사랑을 짓고 나누며 돌볼 줄 알면 넉넉하리라 여겨요. 그런데 왜 예부터 ‘서울 깍쟁이’ 같은 이름이 돌았을까요? 왜 예부터 ‘시골뜨기’라는 이름이 퍼졌을까요?

  ‘시골 깍쟁이’나 ‘서울뜨기’라는 말은 없습니다. 이런 말을 쓰는 사람도 없을 테고요. 이 얼거리를 헤아려 본다면, 서울에서 살면 깍쟁이처럼 된다는 뜻이고, 시골사람은 서울사람한테 등골이 뽑히는 어수룩한 모습이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서울사람이 무뚝뚝하거나 제 밥그릇만 챙긴다고는 여기지 않아요. 서울사람이면서 아름답고 착하며 너른 마음씨를 건사하는 이웃이 많아요. 시골사람이면서 씁쓸하고 얄궂으며 좁은 마음씨로 휘둘리는 이웃이 있고요.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라는 시골 어린이 글모음을 읽으면서 자꾸만 묻고 싶습니다. 이오덕 어른이 1950년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멧골자락 어린이를 마주하면서 삶을 읽고 살림을 바라보는 동안 어떤 이야기를 먼먼 뒷날 어른하고 어린이한테 남기고 싶었는가를 묻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을 먹고 나와 순희와 빨래를 했습니다. 내가 두 가지 빨 동안에 순희는 한 가지밖에 못 빨았습니다. 내가 일곱 가지, 순희가 여섯 가지 빨 때 또 순희네 새형님과 순희네 어머니와 빨래를 한 버지기, 한 세숫대씩 가지고 와서, 나는 우리 것을 다 빨고 순희네 것을 빨아 주었습니다 20가지 빨아 주고 내가 발을 씻으니 순희네 새형님과 순희 어머니가 고맙다 합니다 (빨래, 안동 임동동부 대곡분교 3년 김후남 1969.5.25.)

산 그림자가 마당에 들 때 저녁밥을 했습니다. 보리쌀을 씻고 또 씻어 가지고 물을 바개수에 부어 가지고 또 씻었습니다. 그래서 고만 씻고 솥에 물을 부어 놓고 앉혔습니다. 앉혀 놓고 불을 넣었습니다. 불을 넣어 놓고 밥이 퍼지나 상근 있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퍼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장재기를 꺼냈습니다. 한 가재이만 나두고 다 꺼냈습니다. (밥하기, 안동 임동동무 대곡분교 3년 성숙희 1969.6.)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라는 시골 어린이 글모음에는 어차피 우리는 시골지기가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어린이 마음이 환하게 드러납니다. 아무래도 시골지기가 되겠구나 하는 마음을, 나고 자란 터를 새로 일구면서 살자는 뜻이 드러나요.

  어린이로서 어른을 바라보는 눈길이 드러납니다. 어린이로서 어른한테서 느낀 아쉽거나 안타까운 생각이 드러납니다. 어린이로서 어른한테서 기쁘게 배우고 고마이 받아들이는 슬기로운 살림살이가 드러납니다.

  그래요. 그렇더군요.

  어린이는 모두 배웁니다. 즐거움도 배우고 미움도 배워요. 기쁨도 배우고 슬픔도 배워요. 사랑도 배우고 따돌림도 배워요.

  그렇지만 어린이는 어른하고 다르더군요. 어른들이 미워하거나 싸우거나 괴롭히는 짓을 보여주더라도 이런 모든 얄궂은 틀을 훌훌 털어버리는 몸짓을 보여주곤 해요. 그리고 어린이인 터라 어른이 보여주는 모든 얄궂은 틀을 고스란히 물려받아서 따라하는 몸짓을 보여줘요.

  더 파고든다면 어른들 모습이란, 이 어른들이 예전에 어린이였을 적에 옛날 어른한테서 보고 듣고 배운 모습이지 싶어요. 먼먼 옛날부터 흐르고 흐른 얄궂은 모습을 우리 어른들이 바로잡거나 고치거나 가다듬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이 이를 똑같이 따라할 수 있어요. 때로는 우리 어른들 어리숙한 짓을 털어낼 아이들이 있을 테고요.


교실에서 밖을 내다보니 아가시 꼭두배기가 고개를 들고 우리 공부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다가 바람이 불면 고개를 요리조리 돌립니다. 바람이 시기 불면 온 둥치가 막 날립니다. 가재이는 우리 교실에 걸어올라 카는 것 같습니다 (아가시아, 상주 청리 3년 김용구 1963.6.14.)

마늘밭 밑에는 샘물이 있고 옆에는 또 우리 밭이 있다. 위에는 논이 있고 논 옆에는 장길이 있다. 한참 하다가 땀이 하도 흘러서 물을 좀 먹고 또 시작했다. 작은누나는 삽가래로 뜨고 나는 흙덩어리를 털었다. 또 땀이 나서 낯을 씻고 물을 먹고 발을 적셔서 시작했다. 숙이는 물이 땀으로 되어서 나보다 더 많이 났다 (마늘 캐기, 안동 길산 3년 이상덕 1977.7.)


  여덟 살 나이라면 밥을 지을 줄 알던 예전 시골 어린이 모습을 읽습니다. 열 살 나이라면 어린 동생쯤 얼마든지 업고 다니면서 어를 줄 아는 예전 시골 어린이 모습을 읽습니다. 열두 살 나이라면 어른 못지않게 지게나 등짐을 짊어지고서 살림 한 자리를 톡톡히 맡던 예전 시골 어린이 모습을 읽습니다.

  오늘 우리 어린이는 어떤 모습일까요? 오늘 우리 어른은 어떤 모습인가요?

  떠난 어른은 어린이 글모음에서 군말을 안 붙입니다. 오직 시골 아이 글만 줄줄이 보여줍니다. 추운 겨울부터 새봄을 지나 여름하고 가을을 맞이하는 한 해 네 철을 가로지르는 이야기를 가만히 보여줍니다.

  눈물짓는 아이들 삶을 아이들이 손수 적도록 이끌어 줍니다. 웃음짓는 아이들 노래를 아이들이 스스로 활개치도록 북돋아 줍니다.

  글쓰기란 이렇군요. 잘남도 못남도 없는 있는 그대로가 아름다운 글쓰기로군요. 오직 고운 사랑 한 가지로 마음을 가꾸는 길을 우리가 스스로 여는 글쓰기로군요.


내캉 용한이와 미술이와 교문을 나왔을 때 미술이가 넌 엄마 물에 빠졌다고 했다. 용한이와 내캉은 울면서 집으로 왔다. 누나는 나가고 밖에서 울고 있으니 작은누나가 왔다. 나는 엄마 물에 빠졌다고 했다. 나는 누나보고 용한이와 강에 가 봐라고 하고 나는 할머니 못 나가게 한다고 했다. 누나와 용한이나 나가디만 또 집으로 오고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신 일, 안동 길산 6년 김요섭 1978.7.20.)

나는 어제 담배 조리를 하고 나니 손이 검었습니다. 또 손을 씻고 보니 담배 냄새가 났습니다. 엄마 손에는 냄새가 더 많이 났습니다. 나는 엄마한테 냄새가 왜 이렇게 나노 물어보았습니다. 엄마는 담배 조리를 또 했습니다. 방에 가서 시계를 보니 9시였습니다. 나는 그만 잤습니다. 하늘에는 별이 반짝반짝 놓여 있었습니다. 별이 예쁘게 보이는 것도 있었습니다 (담배 조리, 안동 길산 2년 이인경 1978.9.16.)


  아버지가 돌아가신 일을 아이가 쪽종이에 적습니다. 이윽고 어머니마저 돌아가신 일을 아이가 쪽종이에 적습니다. 이 아이는 오래지 않아 멧골집을 떠납니다. 맏이로서 어린 동생들을 홀로 건사할 수 없어서 텃마을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갑니다. 그때 이오덕 어른은 이 어린 제자한테, 학생한테 어떤 말을 건네고 어떤 손길을 보냈을까요. 두 어버이 죽음을 그야말로 차분히 적바림한 아이를 지켜보아야 한 이오덕 어른은 아이한테 어떤 말을 들려줄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오늘날 ‘제3세계 어린이 노동’을 이야기합니다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나라도 얼마 앞서까지 ‘제3세계’인 줄 잊기 일쑤입니다. 서울에서뿐 아니라 시골에서 여덟아홉 살 아이들이 ‘담배 조리’를 한 줄 잊거나 모르기 일쑤이지요. 새벽부터 밤까지 어버이 곁에서 쉴 틈이 없이, 아예 놀 틈조차 없이 일손을 거들던 시골 아이들은 먼먼 딴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 이야기입니다.


돌미는 산에서 추워서 울고 있습니다. 소나무도 산에서 추워서 벌벌 떨고 있습니다. 소나무는 바람이 부니까 싫다고 떠드는 소리가 왕왕하고 들립니다. 돌미하고 소나무하고 친한 친구가 되어서 이야기를 하며 벌벌 떠는 것 같습니다 (산, 안동 임동동부 대곡분교 2년 김민한 1969.10.9.)

어제 점심때 새끼를 꼬고 있었다. 아버지는 짚을 많이 쥐고 하는데 보니 새끼가 아주 굵고 내가 까 논 것은 아주 가늘다. “아버지요, 왜 고키 굵기 까요?” “집 일 새낑깨 굵기 까지 웃째.” “나는 가만히 앉아서 깍까?” “그래 아문따나 깔라마.” 나는 짚뿍시기에 앉아 새끼 까 놓은 것을 붙들고 짚을 둘 집어 들고 양쪽에 끼어서 손으로 비비니 부시륵부시륵 한다. 그래 나는 막 빨리 깠다 (새끼 꼬기, 상주 청리 3년 깅경수 1963.11.18.)


  2000년대를 살아가는 한국에서는 ‘일하는 어린이’가 드물다 하지만, 이 얘기도 남녘 얘기일 뿐입니다. 한겨레인 북녘을 바라보면서 ‘일하는 북녘 어린이’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를 생각할 수 있어야지 싶어요.

  그리고 ‘일을 안 하는 남녘 어린이’는 앞으로 어떤 어른으로 자라날 만한가도 생각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참말로 ‘일을 안 하는 남녘 어린이’는 앞으로 슬기롭거나 씩씩하거나 튼튼하거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마을일꾼·집일꾼·나라일꾼·누리일꾼’이 될 수 있을까요? 손에 물을 안 묻히고서 시험공부만 잘 하는 아이들이 앞으로 이 나라에서 어떤 몫을 맡을까요?

  밥을 할 줄 모르고, 옷을 기울 줄 모르며, 집을 지을 줄 모르는 아이들이 앞으로 이 나라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일을 고되게 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참말로 일을 고되게 해서는 안 되지요. 그러나 일을 모르기에 놀이를 모르지 싶어요. 즐거이 나누는 일하고 멀어지기에 즐거이 나누는 놀이하고도 멀어지는구나 싶습니다. 일할 줄 모르면서 살림할 줄 모르는 어른이 되고, 일하는 기쁨을 모르면서 사랑하는 기쁨을 모르는 어른이 되지 싶어요.


어머니가 “머심아를 해 입히야지 지집아를 해 입히마 되여?” 이캅니다. 그래 내가 “지집아는 머래여, 지집아나 머심아나 다 같지.” 이캉개 어머니가 “떠 줄라 캐도 돈이 있어야지.” 이캅니다. 그래 내가 “엄마 주머니에 있대.” 이캉개 어머니가 “내 주머니에 봐라, 돈 십 환도 없다.” 이카미 주머니를 보이줍니다. 그래 주머니를 보니 십환도 없습니다 (치마, 상주 공검 2년 정영자 1959.1.31.)

목화가 두 다물 남았는 것을 열심히 땄습니다. 목화를 따니 손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내가 돌배나무 밑에서 쉬다가 또 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손을 빨리 빨리 놀려서 따다가 목화나무에 똑바로 눈 밑에다 찔렸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따 가지고 내가 보따리에 싸 가지고 이고 다라기에 미고 큰언니는 홑이불에 이고 작은언니는 다라기에 봉실봉실한 것을 이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목화, 안동 임동동부 대곡분교 3년 심필련 1968.12.9.)


  상냥하게 웃고 싶은 마음을 가만히 읽어 봅니다. 상냥하게 이야기하고 싶은 뜻을 조용히 읽어 봅니다.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는 어른인 우리들이, 푸름이인 우리들이, 어린이인 우리들이 앞으로 크면 스스로 무엇이 되려 하느냐를 넌지시 묻는 책이지 싶습니다.

  지난날 멧골 아이들은 이오덕 어른한테 “그러면 이오덕 어른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하고 물었지 싶어요. 마흔 살 어른이지만 쉰 살 어른이 되면 어떤 모습이 되겠는지 묻고, 쉰 살 어른이지만 예순 살 어른이 되면 어떤 몸짓이 되겠는지 물으며, 예순 살 어른이지만 일흔 살 어른이 되면 어떤 살림이 되겠는지 묻는다고 할까요.

  어린이만 큰다고 느끼지 않아요. 어른도 큽니다. 열 살 어린이는 무럭무럭 커서 스무 살에 어떤 꿈을 펴려는지 생각을 짓습니다. 자, 마흔 살 어른이나 예순 살 어른인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크려’ 하는지 돌아보면 좋겠어요. 서른 살 어른이나 일흔 살 어른인 우리는 앞으로 ‘커서’ 어떤 새로운 어른으로 우뚝 서려는지 차근차근 헤아리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이오덕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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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별님처럼 새로 태어나는 글 (글쓰기, 이 좋은 공부) | 이오덕 책읽기 2017-06-06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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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글쓰기, 이 좋은 공부

이오덕 저
양철북 | 2017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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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배움책 44



작은 별님처럼 새로 태어나는 글

― 글쓰기, 이 좋은 공부

 이오덕 글

 양철북 펴냄, 2017.5.18. 16000원



  스스로 배우는 삶이 있기에 글을 쓸 수 있다고 느낍니다. 스스로 배우는 삶이 없다면 글을 쓸 수 없다고 느낍니다. 오늘 하루 새롭게 배우는 이야기가 있기에 어제 글을 잔뜩 썼어도 오늘은 오늘대로 새롭게 글을 쓸 기운을 얻는다고 느껴요. 어제하고 다른 오늘을 살아가기에 오늘은 어제 쓰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를 쓸 수 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렇다면 스스로 배우는 삶이 있기에 글을 쓸 뿐 아니라, 글이나 책을 읽을 수 있다고도 할 만할까요?


  저는 이 물음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스스로 배우려 하기에 글을 쓰기도 하지만 글을 읽기도 해요. 날마다 스스로 새롭게 배울 수 있는 삶이기에 스스로 새롭게 글을 쓰기도 하고 읽기도 한다고 느껴요.



글쓰기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저마다 쓰고 싶은 것을 쓰는 일인데 그것이 안 되고 있다. 쓰고 싶은 것을 쓰는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 (16쪽)


글쓰기 교육의 목표가 아이들을 소설가나 시인으로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에 다른 의견을 제시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17쪽)


아이들이 글을 쓰는 행위는 밥을 먹는 행위와 같다. 먹고 싶어서, 배가 고파서 먹는 것이지, 먹기 위해 먹는 것은 아니다. (19쪽)


쓰고 싶은 것을 쓰게 해야 한다. 쓰고 싶은 마음을 일으키도록 해야 한다. 글을 쓰는 데 기쁨을 느끼는 아이만이 글을 쓰는 데서 성장한다. (20쪽)



  우리는 둘레에서 구경한 이야기를 글로 써 볼 수 있습니다. 둘레에서 구경한 이야기를 ‘관전평’이라고도 합니다. 스스로 겪지는 않았으나 두 눈으로 지켜본 느낌을 적는 글이에요. 이 관전평은 보는 자리마다 다 다른 글이 나옵니다. 가까이에서 볼 적하고 먼발치에서 볼 적하고 다를 테니까요. 다만 스스로 겪거나 하지 않은 채 구경하며 쓰는 글은 으레 벽에 부딪혀요. 손수 김치를 담가 보고 나서 글을 쓸 적하고, 김치를 담그는 사람을 옆에서 구경하고서 쓰는 글은 달라요. 손수 씨앗을 심어서 돌본 끝에 거둔 살림을 짓고서 쓰는 글하고, 씨앗심기나 거두기를 옆에서 구경하고서 쓰는 글은 다르지요. 아이를 돌보고 가르치면서 쓰는 글하고,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를 옆에서 구경하면서 쓰는 글도 달라요.


  요즈음 사회를 돌아보면 ‘구경글(관전평)’이 대단히 많습니다. 운동경기를 지켜보고서 쓰는 글은 모두 구경글(관전평)이지요. 연속극이나 책을 보고서 쓰는 글도 구경글에 들 만해요. 이러한 구경글이 ‘구경’을 넘어서려면 한 가지를 담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본 이야기를 스스로 삶에 녹여야지요. 즐겁게 보았구나 싶은 대목을 속으로 삭여서 삶으로 펼칠 적에는 ‘구경’이 아닌 ‘삶’이 됩니다. 이를테면 흙살림 이야기를 책으로 읽기만 했을 적하고, 흙살림 이야기를 읽고 나서 이를 몸으로 옮겨서 흙을 만져 새롭게 느낄 적에는 사뭇 달라요.


  아이를 돌보며 가르친 다른 어버이 이야기를 책으로만 읽다가, 비로소 우리 스스로 아이를 낳아 몸으로 부대끼며 돌보는 나날을 누려 본다면 이때에도 사뭇 다르구나 싶은 대목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몸으로 부대끼는 동안 ‘내가 내 나름대로 부대끼며 배운 이야기’를 ‘내 글’로 써 보자는 생각이 들곤 해요.



옛날부터 ‘글은 사람’이라고 했다. 글을 보면 그 글을 쓴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22쪽)


어린이들은 문학을 창조하지 않는다. 창조할 능력이 없다고 하기보다 그런 문학이란 것을 창조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왜 그런가? 어린이들이 어른들에 오염되지 않고 순수한 어린이의 마음 그대로라면 그들의 말과 행동은 그대로 진이요, 미요, 선이기 때문이다. (28쪽)


땅과 어린이의 삶이 또 너무나 비슷하다. 땅은 그것을 가꾸고 섬겨야만 거기 생명이 싹트고 풍성한 열매가 맺을 수 있듯이, 어린이의 삶도 그것을 지키고 가꾸지 않으면 결코 아름다운 생명이 피어날 수 없고, 살아 있는 글이 써질 수 없다. (39쪽)


농사짓기와 글짓기는 그 원리가 사랑이라는 점에서도 같다. 농사일은 땅과 곡식에 대한 사랑이 없이는 잘될 수 없다. 이해타산으로 화학비료와 농약을 함부로 뿌려 땅을 혹사하고 오염시키고 땅에서 빼앗기만 할 때, 농토는 척박해져서 곡식은 병들고 결국 농사는 파멸의 날을 맞을 것이다. (41쪽)



  이오덕 님이 쓴 《글쓰기, 이 좋은 공부》(양철북,2017)를 읽습니다. 이 책은 1983년에 처음으로 나왔는데, 이오덕 님은 이 책에서 밝힌 이야기를 이녁이 2003년에 숨을 거두고 흙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고이 가꾸었어요.


  “글은 사람”이라고 하는 대목을 깊이 돌아보았고, ‘글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사람됨’을 헤아리면서 한길을 걸으셨어요. 억지로 꾸미거나 매만지는 글이 아니라, 스스로 짓는 삶을 스스로 즐겁게 글로 옮길 수 있도록 이웃들한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할 수 있어요.


  《글쓰기, 이 좋은 공부》는 ‘글쓰기란 더없이 좋은 배움길’이라고 하는 뜻을 밝혀 주는구나 싶습니다. 글쓰기를 하면서 삶을 가꿀 수 있다는 뜻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삶을 가꾸기에 글을 쓰고, 날마다 즐겁게 배우며 좋은 살림을 짓기에 저절로 글감이 샘솟는다고 하는 얼거리를 찬찬히 알려주기도 해요.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 삶을 놓고 말해 본다면, 아이하고 부대끼며 가슴 가득 샘솟는 사랑이 있기에, 이러한 사랑을 신나게 글로 씁니다. 남한테 보여주려고 쓰는 글이 아닙니다. 스스로 가슴이 벅차면서 터져나오는 글입니다. 굳이 책으로 묶겠다는 뜻으로 쓰는 글이 아닙니다. 스스로 마음에 기쁜 숨결이 넘실거리기에 밤잠을 잊으면서 쓸 수 있는 글입니다.


  여행길에 글을 쓰는 분들도 이러한 마음이기 마련이에요. 여행길에 새로 배우는 삶이 있기에, 이 좋은 배움을 차곡차곡 되새기려고 글을 써요. 날마다 새로 얻고 누리는 기쁜 삶을 누구보다 나 스스로 되돌아보려고 글로 쓰지요.



글이란 단순히 글자라는 부호를 집합시켜 놓은 것이 아니다. 글은 사람의 생각, 정신을 나타낸다. 글은 곧 길(진리)이다. (43쪽)


지금까지의 글쓰기 교육은 손끝으로 잔재주를 부리도록 가르쳐 왔다. 이러한 재주 부리기는 문예 교육이란 이름으로 초등학생들에게는 말장난을 일삼도록 하였고, 중고등학생들에게는 주로 애상과 회고 위주인 일부 문인들의 글을 흉내내도록 하였던 것이다. (63쪽)


어른들이 쓰는 글은 반드시 문학작품이어야 하는가? 문학이 아닌 글을 쓸 수는 없는가? 쓸 필요가 없는가? 문학작품이 아닌 글은 가치가 없는 것인가? (68쪽)


어른이 쓰는 시나 어린이가 쓰는 시나 다르지 않다. 시란 괴상한 말재주도 수수께끼 놀이도 아니고 가슴을 울리는 감동인 것이다. (85쪽)



  이오덕 님이 들려주려는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입니다. 참말로 ‘글은 길’이라고 할 만하지 싶어요. 이 말씀마따나 ‘말은 마음’이라고 할 만할 수 있을까요? 마음을 나타내는 말이요, 저마다 살아갈 길을 스스로 밝히는 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말’하고 ‘글’을 ‘마음’하고 ‘길’이라고 여길 수 있다면, 우리는 글쓰기를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될 만합니다. 글재주나 글솜씨를 굳이 안 키워도 되는구나 하고 느낄 만합니다. 그저 고운 마음이 되면 넉넉해요. 그저 즐겁게 삶길을 걸으면 되어요. 문학을 해야 글이 아닐 테니, 우리 스스로 시인이나 소설가나 수필가 같은 이름이 없더라도 흐뭇할 수 있어요. 따로 책을 써내지 않더라도 조용조용 우리 삶을 정갈하게 글로 옮기는 기쁨을 날마다 누릴 수 있어요.


  글을 쓰는 동안 생각을 갈무리합니다. 글을 쓰는 사이에 우리가 스스로 걷는 길을 씩씩하게 바라봅니다. 글을 쓰고 나서 우리 생각을 새롭게 보듬습니다. 내가 쓴 글을 내가 스스로 되읽는 동안 내 마음을 새삼스레 깨닫고 내가 걸으려는 길을 더욱 알차게 가꾸려는 몸짓이 됩니다.


  글을 쓰기 앞서 어수선해 보인 생각이라면, 글을 쓰는 동안 고요히 그러모아서 가꿀 수 있으리라 느껴요. 스스로 품은 생각을 알뜰살뜰 가꿀 수 있으면, 이 글쓰기란 배움이면서 기쁨이고 보람이면서 다짐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어린이들에게 어른의 그림을 베껴 그리게 한다면 얼마나 어려워하겠는가? 그런데 그렇게 베껴 그리는 노릇을 몇 번쯤 시키고 나면 그다음에는 그전에 그렇게 재미있게 그리던 자신의 그림을 그만 못 그리게 되고, 언제까지나 남의 그림을 보고 흉내내는 짓밖에 할 줄 모른다. (101쪽)


어린이들에게 글을 쓰게 하는 까닭은 그들의 삶을 풍부하게 해 주기 위해서다. 삶을 가꾸는 일이 없이는 어떤 교육도 이루어질 수 없다. (109쪽)


말을 순화한다는 것은 겉도는 말이 아닌 살아 있는 말을 쓴다는 것이다. 살아 있는 말은 살아 있는 사람의 창조성 있는 삶의 자세에서 나오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순수한 우리 자신의 마음을 찾아 가지는 것이 된다. (125쪽)



  ‘베껴쓰기’는 자칫 흉내내기로 그치기 쉽다고 느낍니다. 다른 사람이 쓴 훌륭해 보이는 글을 베껴서 적어 보는 일은 나쁘지 않을 터이나, 다른 사람이 쓴 훌륭하구나 싶은 글만 자꾸 베끼고 또 베끼는 동안 정작 우리 이야기는 한 줄도 못 쓰기 마련이에요. ‘다른 훌륭한 글’을 베끼다 보면 어느새 ‘내가 쓴 수수하거나 투박한 글’은 안 훌륭하다고 여길 수 있어요. 다른 사람들 글만 훌륭하다고 여기는 사이에 우리가 저마다 짓는 살림살이는 글로 쓸 만하지 않다는 생각에 젖어들기도 해요.


  이오덕 님은 《글쓰기, 이 좋은 공부》에서 ‘베끼는 그림’이 얼마나 고된 노릇인가 하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들한테 ‘어른 그림을 베끼도록 시키’면 아이들은 이 짓을 괴로워하다가 어느새 이런 ‘흉내 그림’에 길든다고 이야기해요.


  아이들이 ‘어른 글’을 베껴서 쓰도록 이끈다면, 우리 어른들 스스로 우리 이야기를 수수하거나 투박하게 써 보기보다는 자꾸 ‘훌륭해 보이는 다른 사람들 글’만 베껴쓰기(필사)를 하다 보면, 참말로 자꾸자꾸 나를 나 스스로 낮보거나 얕보는 버릇이 몸에 붙으리라 느낍니다.


  잘 그리든 못 그리든 우리 그림을 우리 손으로 그릴 적에 즐거워요. 잘 쓰든 못 쓰든 우리 글을 우리 이야기로 엮어서 쓸 적에 즐거워요. 잘 찍든 못 찍든 우리 사는 이야기를 우리 손으로 상냥하게 사진으로 찍어서 나눌 적에 즐거워요.



시를 읽고 맛보는 재미, 시를 느끼고 시를 붙잡아 쓰는 재미는 마음이 따뜻해지고, 또는 뜨거워지고, 풍성해지고, 깨끗해지고, 긴장하게 되는 재미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이 착해지고 진실해지고 순화되는 데서 느끼는 기쁨이라 하겠다. (273쪽)


일기장을 ‘검사’한다는 말은 아주 나쁜 말이다. 검사할 것이 아니라, 읽어서 아이들의 마음과 생활과 가정환경을 알고 깨달아 교사가 배우는 것이다. (306쪽)


아이들의 글은 아이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한 것을 자기 말로 정직하게 쓴 것이다. 그러니 글이 있기 전에 말이 있었고, 말이 있기 전에 삶이 있었던 것이다. ‘삶→말→글’이지, ‘글→글’이 아니며, 삶이 없이 글은 써질 수 없다. (343쪽)



  살아서 싱그러이 숨쉬는 말을 글로 옮겨 봅니다. 꾸미지 않는 마음을 글로 담아 봅니다. 겉치레가 아닌 속가꿈이라는 생각으로 말 한 마디를 글 한 줄로 가만히 그려 봅니다.


  착한 길을 걸으려는 뜻으로 글을 씁니다. 꼭 시나 수필 같은 갈래에 들지 않더라도 오늘 하루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로 씁니다. 대단한 문학이 아니라 하더라도 오늘 하루 새로 지은 살림을 일기로 꾸준하게 적어 봅니다.


  삶이 말이 되고, 이 말이 글로 되는 흐름을 되새깁니다. 나한테 없는 모습이 아닌 나한테 있는 모습을 스스럼없이 바라봅니다. 어제를 되짚으면서 오늘을 씩씩하게 가꾸려는 마음이 글꽃으로 피어나도록 담금질을 합니다.


  작은 들꽃을 마주하면서 기쁨을 배우기에 들꽃 이야기를 씁니다.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가로지르는 구름과 제비와 왜가리를 바라보기에 구름과 제비와 왜가리 이야기를 씁니다. 아이를 돌보며 짓는 보금자리를 즐겁게 맞아들이면서 아이 이야기를 씁니다. 삶을 글로 쓰고, 살림을 글로 씁니다. 생각을 글로 쓰고, 사랑을 글로 씁니다. 서로 아끼는 기쁨을 글로 쓰고, 서로 나누는 웃음을 글로 씁니다. 서로 짓는 노래를 글로 쓰고,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를 글로 씁니다. 오늘 이곳에서 작은 별님처럼 새로 태어나는 글 한 줄입니다. 2017.6.6.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이오덕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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