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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채에서 7 발바닥으로 | 내가 걷는 길 2022-12-27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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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2.12.21.

나그네채에서 7 발바닥으로

 

 

  나는 책집마실이 아니면 바깥마실을 안 하다시피 한다. 인천으로 돌아간 2007년부터 인천을 다시 떠난 2010년까지는 골목마실을 하려고 바깥마실을 했는데, 2011년부터 살아가는 전남 고흥 시골에서는 숲들바다로 가는 길이 아니라면 바깥마실을 하고픈 마음이 없다. 나는 어디로 어떻게 마실을 하든 몇 가지로 길을 나선다. 첫째, 걸어서 간다. 둘째, 자전거를 탄다. 셋째, 버스나 전철이나 기차를 탄다. 부릉이(자동차)를 몰 마음이 없을 뿐 아니라, 부릉종이(운전면허증)조차 안 땄으며, 앞으로도 부릉종이는 건사하지 않을 생각이요, 부릉이를 품을 마음이란 아예 없다. 다만, 하나는 있다. 열여섯 살에서 열일곱 살로 넘어설 즈음, 푸른배움터(중·고등학교)를 ‘정석항공고’나 ‘인천기계공고’로 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날개(비행기)나 부릉이(자동차)를 손질하는 사람(정비사)으로 일하는 앞날을 그리며 이모저모 살피던 그무렵, ‘사람이 몰지 않는 부릉이(무인 자동차)’가 나오면 그때에는 부릉이를 건사해 볼까 하고 동무들한테 얘기했다. 우리 어버이나 중학교 길잡이는 왜 인문계 아닌 실업계를 가려 하느냐고 타박하고 말려서 실업계로 가지 못 했고, 그 뒤로 부릉이는 없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자고 생각했다. 언제나 뚜벅뚜벅 걷는다.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기보다는 그냥 해바람을 맞으면서 걷기를 즐긴다. 전철을 타러 땅밑으로 한참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시커먼 길을 오가기보다는 그냥 해바람을 맞아들이는 길을 천천히 걸으려 한다. 이렇게 걸으면서 때바늘로 재곤 했는데, 버스나 전철을 타려고 기다리거나 움직이고서 타고 가기보다는, 처음부터 느긋이 걸을 적에 오히려 빠르더라. 이 대목을 느끼거나 아는 이웃이 있겠지? 아주 처음부터 걸어서 그곳을 다녀오기로 마음을 먹고서 그냥그냥 걸으면 되레 빠를 뿐 아니라 해바람을 쐬면서 우리 몸이 튼튼하고, 더구나 발바닥으로 골목마을 한복판이나 곁을 스치면서 ‘이웃이 살아가는 숨결’을 느낄 수 있고, 서울(도시) 한켠에 풀꽃나무가 어떻게 자라면서 사람한테 방긋방긋 눈짓을 하는지 알 수 있다. 게다가 서울 한복판에서도 크고작은 새를 만나고, 벌나비하고 손짓할 수 있고, 이따금 풀벌레노래까지 듣는다. 그런데 시골집을 떠나 서울(도시)에서 책집마실을 하노라면 어느새 등짐에 책이 가득하고, 품에 한 아름 책꾸러미를 안고서 걷는다. 바깥일을 보면서 책집을 다니면서 장만한 책을 이고 지고 안고서 길손집까지 간다. 그날그날 저녁하고 밤하고 새벽에 ‘오늘이나 어제 산 책’을 읽고 갈무리를 한다. 책집에서 먼저 한 벌 슥 읽고, 길손집에서 두 벌째 새로 읽고, 시골집으로 돌아가서 석 벌째 되읽으며, 책마다 겉그림이나 속종이를 긁느라(스캔) 넉 벌째 읽는다. 느낌글을 쓰려면 다섯 벌째 읽고, 책에서 고치거나 손보거나 바로잡을 글자락이 있으면 여섯 벌째 읽는다. 아름다운 책이라면 일곱 벌째 읽고, 아이들한테 읽히자면 여덟 벌째 읽고, 우리 책마루숲으로 옮기기 앞서 아홉 벌째 읽는다. 책은 발바닥으로 산다. 책은 손바닥으로 읽는다. 이웃은 발바닥으로 만난다. 이웃하고 손바닥으로 이야기한다. 이리하여 해거름에 길손채에 깃들고서 짐을 풀면 발바닥이며 종아리가 퉁퉁 붓는다. 붓고 아린 발바닥을 끙끙대면서 밤이며 새벽을 지나 아침나절에 이르면 “자, 오늘도 새로 걷고서 우리 시골집으로 돌아가자.” 하고 질끈 등짐을 메고서 다시 발바닥으로 땅바닥을 느끼면서 빙글빙글 웃는 낯으로 걷는다. 뚜벅뚜벅 걷고, 또박또박 쓴다. 따박따박 읽고, 나긋나긋 노래한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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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채에서 6 새우깡 5000원 | 내가 걷는 길 2022-11-28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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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2.11.27.

나그네채에서 6 새우깡 5000원

 

 

  싸움터(군대)에 1995년 11월 6일에 끌려갔다. 1997년 12월 31일에 풀려났다. 나는 싸움터살이(군대생활)를 하며 딱 하루만 ‘외박’을 나갔다. ‘외출’조차 아예 나간 적이 없는데, 멧꼭대기에서 새벽부터 한나절을 걸어서 나갔다가, 일찍 해가 떨어진 멧길을 다시 한나절 낑낑대며 걸어올라오기도 싫을 뿐더러, 고작 한나절쯤 바깥바람을 쐬면서 술을 마신다 한들 달라질 일이 없다고 여겼다. 이런 데에 돈을 쓰기 싫었다. 품삯(군인 월급 + 격오지수당(또는 생명수당) + 연초수당)을 푼푼이 모아서, 나중에 이곳을 떠나면 책값으로 삼으려고 생각했다. 싸움터에서는 ‘진급휴가’라는 이름으로 ‘일병·상병·병장 진급휴가’를 석 판 받는다. 나는 강원도 양구 백두산부대에 깃든 터라, 다른 싸움터보다 말미가 이틀 길었다. 멧꼭대기 싸움터는 밖에 나가고 들어오는 데에만도 이틀이 걸렸다. 따로 ‘포상휴가증’을 석 판 받았으나 하나도 안 쓰고 뒷내기하고 윗내기한테 줬다. 열아홉 살에 짝을 맺어 아이도 둔 분들이 하릴없이 싸움터에 끌려왔더라. ‘아이 둘 있는 사내’는 ‘군면제’였는데, 이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끌려왔고, 윗분(중대장·행정보급관·대대장)들은 쉬쉬하며 그냥 두었다. 딱한 또래한테 내 휴가증을 슬쩍 주었고, ‘상병 진급휴가’ 보름치조차 둘로 갈라서 몰래 나눠 주었다. 우리 어버이는 내가 싸움터에 끌려간 뒤 전화도 없고 글월도 뜸한데다가 말미조차 안 나오니 몹시 걱정했단다. 어느 날 불쑥 찾아오셨더라. 어쩔 길 없이 처음이자 마지막 외박을 하려고 ‘양구군 동면’에서 밥을 먹고 길손집에서 하루를 묵는데, 밥집마다 미쳤는지 세겹살 한 접시(1인분)가 1만 원이요, 새우깡 한 자루에 5000원일 뿐 아니라, ‘여인숙보다 떨어지는’ 길손집 좁다란 한 칸이 7만 원이더라. 1997년 여름께였다. 우리 어버이는 아들을 보려고 찾아오느라 이날 100만 원 가까이 썼다더라. 길삯도 길삯이지만, 온통 바가지투성이였다. “넌 왜 휴가도 안 나오냐? 전화는 왜 안 하고?”“아버지 어머니, 여기서는 글월도 못 써요. 전화도 못 해요. 그나마 지오피에서 나왔으니 얼굴을 보는 외박이라도 하는데, 곧 훈련을 뛰니, 여기서 나갈 때까지는 아무 연락도 못 합니다.” “요새 편지도 전화도 못 하는 군대가 어딨냐?” “여기 와 보셨잖아요? 여기가 그런 데예요. 와서 보시니 왜 아무것도 못 하는 줄 아시겠지요?” “그러면 우리더러 찾아오라고 해서 외박이라도 나오지 그랬냐?” “에휴, 여기 바가지 오늘 신물나게 보셨지요? 이런 바가지를 뻔히 아는데 어떻게 오시라고 불러요?” “그래도 이렇게까지 바가지일 줄은 몰랐지.” “그러나 아들은 멀쩡히 살아서 돌아갈 테니, 걱정 마셔요.” 내가 깃들던 싸움터(군대)는 내가 이곳을 떠나고 석 달 뒤에 닫았다고 들었다. 너무 외지고 고단하고 말썽이 잦은 터라 닫기로 했고, 내 뒷내기는 뿔뿔이 여기저기로 흩어졌단다. 우리나라 마지막 뻬치카(갈탄 난로)가 있던 곳이다. 2022년 11월 25일에 강원 화천군 ‘이기자 부대’가 뿔뿔이 흩어지고 난 뒷이야기를 들었다. 화천군 밥집·길손집 지기는 파리가 날리고 괴괴하다고 하소연인데, 사람들 덧글은 하나같이 “추운 겨울에 따스한 이야기”라면서 그들을 나무란다. 그래, 이 나라는 싸움터(군대)를 낀 마을마다 허벌나게 바가지를 씌웠잖은가? ‘돈도 이름도 힘도 없어 강원도 멧골짝 싸움터로 끌려간 사내’를 벗겨먹은 그들이 무엇이 불쌍할까? 아니, 불쌍하지. 착한 마음도 참된 마음도 없이 오직 돈바라기 짓을 하던 그들은 삶·살림·사랑하고 등진 나날이었으니 불쌍할 뿐이다. 밖에서 500원에 파는 새우깡을 5000원에 팔아먹은 그들이니.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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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2.8.27.

나그네채에서 5 아이랑

 

 

  2022년 8월 27일, 작은아이하고 이틀째 제주에서 묵는다. 작은아이는 갓난쟁이일 무렵하고 이제 막 통통통 달음박질을 할 수 있던 무렵 배를 꽤 탄 적이 있다만, “응? 난 배를 탄 생각이 하나도 안 나는데? 난 배 탄 적 없는데?” 하고 말한다. 작은아이가 배를 탄 적이 없다고 말하더라도, 숲노래 씨는 작은아이랑 언제 어디를 다녀오는 어떤 배를 탔는지 다 떠올릴 수 있으나, 굳이 보태어 말하지는 않는다. “그렇구나, 그러면 숲노래 씨가 제주로 바깥일을 하러 다녀올 텐데 같이 갈까?” “음, 그럴까요?” 큰아이도 오랜만에 제주마실을 함께 하자고 얘기했는데, “어, 동생하고 같이 가요? 그러면 우리 집은 누가 지켜요? 나는 어머니하고 집을 지킬 테니까 동생하고 둘이 다녀와요.” 한다. 어쩜 이런 대견하며 의젓한 큰아이일까. “그래, 네가 우리 보금자리를 지켜주는구나. 그럼 이다음에 제주에 갈 적에는 둘이 가고, 그때에는 동생이 어머니랑 보금자리를 지키기로 하자꾸나.” 고흥에서 제주로 건너가기 하루 앞서 길손집을 살펴서 잡는다. 둘쨋날은 제주 〈노란우산〉 서광책집에 딸린 바깥채에서 묵기로 했고, 이다음날은 다시 제주시로 나가서 이틀을 묵는다. 한꺼번에 자리를 잡아도 되지만, ‘네이버호텔’로 자리를 잡을 적에는 하루 앞서 살필 적에 가장 싸더군. 보름이나 한 달쯤 앞서 자리를 잡으려면 외려 비싸더라. 어제오늘 작은아이랑 신나게 걷고 돌아다니고 마실을 하니, 저녁 일고여덟 시 무렵이면 둘 다 뻗어야 한다. 작은아이는 이내 꿈나라로 가고, 숲노래 씨는 바닥에 누워 등허리를 조금 펴다가 일어나서 새 길손집을 알아보고, 이튿날 다닐 길을 요모조모 따진다. 바깥마실을 할 적에는 아이가 그날 그때에 따라 몸이나 마음이나 생각이 바뀌기도 하니, 이 흐름에 맞추어 모든 벼리(일정)를 온통 새로 짜기 일쑤이다. ‘미리 짠 대로 밀어붙이’면 누구보다 아이가 고단하고 어버이도 힘들지. 아이가 그때마다 어떠한가를 물어보고 살피며 ‘미리 짠 벼리가 있어도 곧바로 바꾸거나 새로 살펴서 움직인’다. 나는 예전에 ‘아무것도 미리 안 짜고’ 다녔다. 이러다가 곁님한테서 옴팡 꾸지람을 들었고, 아직 허술하더라도 열이나 스무 가지 벼리(일정·계획)를 짜놓고서, 아이한테 넌지시 물어보고서 아이가 가장 바라는 길로 간다. 언제나 아이가 가르쳐 주고 이끌어 준다. 아이 눈망울로 생각하고 아이가 바라는 대로 할 적에 하루가 가장 아름답고 즐거우면서 빛난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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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2.8.27.

나그네채에서 5 아이랑

 

 

  2022년 8월 27일, 작은아이하고 이틀째 제주에서 묵는다. 작은아이는 갓난쟁이일 무렵하고 이제 막 통통통 달음박질을 할 수 있던 무렵 배를 꽤 탄 적이 있다만, “응? 난 배를 탄 생각이 하나도 안 나는데? 난 배 탄 적 없는데?” 하고 말한다. 작은아이가 배를 탄 적이 없다고 말하더라도, 숲노래 씨는 작은아이랑 언제 어디를 다녀오는 어떤 배를 탔는지 다 떠올릴 수 있으나, 굳이 보태어 말하지는 않는다. “그렇구나, 그러면 숲노래 씨가 제주로 바깥일을 하러 다녀올 텐데 같이 갈까?” “음, 그럴까요?” 큰아이도 오랜만에 제주마실을 함께 하자고 얘기했는데, “어, 동생하고 같이 가요? 그러면 우리 집은 누가 지켜요? 나는 어머니하고 집을 지킬 테니까 동생하고 둘이 다녀와요.” 한다. 어쩜 이런 대견하며 의젓한 큰아이일까. “그래, 네가 우리 보금자리를 지켜주는구나. 그럼 이다음에 제주에 갈 적에는 둘이 가고, 그때에는 동생이 어머니랑 보금자리를 지키기로 하자꾸나.” 고흥에서 제주로 건너가기 하루 앞서 길손집을 살펴서 잡는다. 둘쨋날은 제주 〈노란우산〉 서광책집에 딸린 바깥채에서 묵기로 했고, 이다음날은 다시 제주시로 나가서 이틀을 묵는다. 한꺼번에 자리를 잡아도 되지만, ‘네이버호텔’로 자리를 잡을 적에는 하루 앞서 살필 적에 가장 싸더군. 보름이나 한 달쯤 앞서 자리를 잡으려면 외려 비싸더라. 어제오늘 작은아이랑 신나게 걷고 돌아다니고 마실을 하니, 저녁 일고여덟 시 무렵이면 둘 다 뻗어야 한다. 작은아이는 이내 꿈나라로 가고, 숲노래 씨는 바닥에 누워 등허리를 조금 펴다가 일어나서 새 길손집을 알아보고, 이튿날 다닐 길을 요모조모 따진다. 바깥마실을 할 적에는 아이가 그날 그때에 따라 몸이나 마음이나 생각이 바뀌기도 하니, 이 흐름에 맞추어 모든 벼리(일정)를 온통 새로 짜기 일쑤이다. ‘미리 짠 대로 밀어붙이’면 누구보다 아이가 고단하고 어버이도 힘들지. 아이가 그때마다 어떠한가를 물어보고 살피며 ‘미리 짠 벼리가 있어도 곧바로 바꾸거나 새로 살펴서 움직인’다. 나는 예전에 ‘아무것도 미리 안 짜고’ 다녔다. 이러다가 곁님한테서 옴팡 꾸지람을 들었고, 아직 허술하더라도 열이나 스무 가지 벼리(일정·계획)를 짜놓고서, 아이한테 넌지시 물어보고서 아이가 가장 바라는 길로 간다. 언제나 아이가 가르쳐 주고 이끌어 준다. 아이 눈망울로 생각하고 아이가 바라는 대로 할 적에 하루가 가장 아름답고 즐거우면서 빛난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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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채에서 4 시애틀로 | 내가 걷는 길 2022-08-27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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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노래 2022.8.22.

나그네채에서 4 시애틀로

 

 

  나그네채를 알아볼 적마다 길손채 이름을 보면서 어쩐지 즐겁다. 굳이 날개(비행기)를 타고서 훌훌 떠나지 않더라도, 뉴욕이나 파리를 다녀올 만하고, 캐슬이나 궁전에도 깃들 만하다. 어제는 시애틀에 가기로 했다. 길손채 가운데 우리말로 이름을 지은 곳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드물다. 예전에는 모조리 한자말로 ‘○○여관’으로 붙이는 일본스러운 이름이었다면, 요새는 거의 영어로 ‘○○호텔’이라 한다. ‘○○모텔’이라 붙인 곳은 좀 묵은 티가 난다. 길손채는 으레 술집골목하고 나란히 있다. 웬만한 길손채는 왁자지껄한 거나꾼(주정꾼) 소리가 스며들고, 술에 절은 냄새가 올라오기도 한다. 또한 술집골목을 낀 길손채는 밤 열 시가 넘어서야 길손을 받기 일쑤이다. 왜냐하면, 밤 열 시까지 ‘잠자리놀이’를 즐기려는 젊은 순이돌이한테 빌려주면서 돈벌이를 하니까. 숲노래 씨처럼 ‘잠자리짝꿍’이 없이 책짐을 등에 손에 가슴에 잔뜩 안고서 묵으려는, ‘책짝꿍’만 데려오는 길손을 보면 그야말로 모든 길손채지기는 숲노래 씨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고무신차림을 깨달으며 “도대체 어디에서 오셨나요?” 하고 묻는 분이 수두룩하다. 장난스럽게 “깊은 두멧골에서 길(도)을 닦다가 이 땅(세상)에 내려왔습니다.” 하고 말하고 싶기도 하지만, “이 고장으로 강의를 하러 와서 책집에 좀 들렀습니다.” 하고 꾸밈없이(재미없게) 말하고 만다. 모든 길손집지기는 내가 ‘길꾼(도인·도 닦는 사람)’이라고 밝히기를 바라지 않을까? 이 눈치를 알면서 장난스런 말은 따로 안 한다. 가뜩이나 등에 손에 가슴에 책짐을 잔뜩 이고 지고 안느라 무거운데, 말장난은 안 하고 싶으니까. 얼른 내 자리로 깃들어 책짐을 끌르고서 고무신하고 옷을 빨래해서 널 생각을 한다. 아무튼 바깥일을 하러 나라 곳곳을 떠돌면서 언제나 ‘번쩍번쩍 눈부신 이웃나라’에서 하루를 묵는다. 그런데 티벳이나 몽골이나 버마나 부탄은 가기 어려울까? 케냐나 모잠비크나 아르헨티나나 칠레는 갈 수 없으려나? 하다못해(?) 네덜란드나 벨기에나 룩셈부르크나 터키나 체코나 폴란드나 핀란드는 갈 수 없으려나? ‘네덜란드호텔’이나 ‘칠레호텔’이나 ‘시에라리온호텔’이 있다면 기꺼이 이곳에 가 보려 한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시애틀호텔'은 경기도 부천에 있습니다.

부천역 언저리 길손채를 어느덧

예닐곱 곳을 찾아가 보았는데

여태 다닌 부천역 길손채 가운데 

'시애틀'이 가장 나았기에

이 글을 써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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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채에서 3 길삯 | 내가 걷는 길 2022-08-27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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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노래 2022.8.21.

나그네채에서 3 길삯

 

 

  2008년에 큰아이를 낳고서 시외버스를 탈 적에 ‘아기’는 일곱 살까지 길삯을 안 내도 된다고 들었다. 표사는곳에서도 버스일꾼도 ‘아기표’를 끊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시외버스에 빈자리가 사라지면 아기를 안는 어버이는 내내 버겁다. ‘일곱 살까지 아기 표를 끊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막상 ‘일곱 살 나이에 이르는 아이’들은 ‘자리를 차지하지 말고 어버이 무릎에 앉아서 가라’고 말을 바꾼다. 아기는 따로 표를 안 끊어도 된다면 ‘아기가 깃들 자리’는 표를 팔면 안 될 노릇이리라. 마땅히 아기가 깃들 자리로 치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겪고 나서는 ‘버스가 텅텅 비어’도 ‘어린이표’를 끊었다. 일곱 살이 안 되면 어린이표조차 없어도 된다고, 게다가 자리가 널널한데 굳이 왜 끊느냐고 묻는 버스일꾼한테 빙그레 웃으면서 “자리가 널널할 때에만 아기 자리가 있고, 자리가 차면 아기는 무릎에 앉히라면서요? 아기를 무릎에 앉히고서 네다섯 시간을 갈 수 있습니까?” 하고 조용히 되물었다. 아무 대꾸를 못 하더라. 아기가 짐짝이 아닌 아기라면, 아기가 탈 적에도 표를 주어야 한다. 다만, 길삯(표값)은 0원으로 하고서, 아기도 떳떳이 자리를 누리도록 하나씩 떼어주어야겠지. 아기는 칭얼거릴 적에는 어버이 품을 반기지만, 여느때에는 반듯한 자리에 팔다리를 뻗으며 누워야 튼튼히 자란다. 이 나라가 참말로 아기·아이·푸름이·어버이를 헤아린다면, 표사는곳에서 ‘아기표’를 끊어 주어야 한다. 버스뿐 아니라 기차에서도 ‘아기표’를 0원으로 끊어 주어서, 아기를 돌보는 어버이가 느긋이 바깥일을 보러 움직이도록 이바지할 노릇이다. 그렇다면 왜 여태껏 이 조그마한 일이 자리를 잡지 못 할까? 우두머리(대통령)도 벼슬아치(정치꾼·공무원)도 버스나 기차나 전철로 아기를 데리고 다녀 보지 않았으니 하나도 모르겠지. 그들 스스로 모르는 일을 어찌 하겠는가? 우두머리(대통령을 비롯한 기관장·지자체장)한테는 ‘판공비’가 아닌 ‘자전거’하고 ‘책꽃종이(도서상품권)’를 내주어야 한다. ‘운전기사 딸린 부릉이’가 아닌 ‘버스표·전철표·기차표’를 주어야겠지. 벼슬아치(군수·시장·도지사·구청장·국회의원·공무원)들은 오직 ‘대중교통’으로만 돌아다녀야 이 나라가 바뀐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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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는 그랬다 | 내가 걷는 길 2014-01-04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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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는 그랬다

 


  1996년 1월에 군대에서 처음 휴가를 받아 강원도 양구를 벗어난 뒤, 지오피 경계근무를 마치고 다른 산속으로 주둔지를 옮기고서 두 번째 휴가를 받았는데, 나를 아끼던 고참 한 분이 한 가지를 부탁했다. 〈이등병의 편지〉 노랫말을 알고 싶은데 바깥에 나가면 알아보아 달라고 했다. 그래서, 이 노래가 담긴 테이프를 하나 장만하고, 노랫말을 종이에 옮겨적어서 부대로 돌아갔다. 노랫말 적힌 종이를 고참한테 건네고, 그러니까 이이는 전역을 곧 앞둔 병장이었는데, 더듬더듬 노래를 불러 주었다. 잘 부르는 노래는 아니었지만, 고참은 노랫말을 새기고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나는 김광석이 아닌데 내가 부르는 이 노래로도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는구나.


  고참은 테이프를 받아 이 노래를 몰래 한참 들었다. 김광석 님은 군부대로 공연을 다니시기도 했지만, 내가 있던 부대로 위문공연을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있을 무렵뿐 아니라 내 앞에 다른 이들 있을 적에도, 강원도 양구에서도 한참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간 비무장지대 아닌 ‘완전 무장지대’에서도 영토가 남녘이 아닌 북녘 경계에 있던 우리 부대로는 참말 어느 누구도 위문공연을 오지 않았고, 그런 일도 없었다 한다. 우리 부대에서는 ‘위문공연’이라는 말조차 아무도 몰랐다. 그래서인지는 모르나, 김광석 님 노래는 부대에서 ‘불온노래’였고, ‘반입금지 물품’ 가운데 하나가 김광석 님 노래테이프였다.


  언젠가 그 고참이 이 노래테이프를 듣다가 하사관한테 걸려서 빼앗겼다. 노래테이프를 부대로 갖고 들어온 나까지 하사관한테 불려갔다. 한참 꾸지람을 듣고 얼마 뒤, 하사관이 이 노래테이프를 들어 보았는지, 아무 말 없이 돌려주었다. 불온노래요 반임금지 물품 목록에 든 노래태이프였지만, 아무 말썽이 없이 지나갔다.


  이 노래테이프는 여러 사람 손을 거치면서 우리 중대에서 그야말로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돌아갔다. 이등병에서 일등병이 되고, 어느덧 병장이 되고 여섯 달 뒤에 전역할 무렵, 내가 아끼는 후배한테 이 노래테이프를 물려주었다. 이 노래테이프는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 너무 늘어져서 못 듣게 되었을까.


  그때에는 그랬다. 이 노래테이프가 걸릴까 걱정한 고참들은 겉에 붙은 스티커를 박박 벗겼다. 이렇게 하면 안 걸릴까 싶어. 그런데, 내무반검사를 하는 행정보급관이나 중대장이나 하사관은 ‘스티커를 벗긴 노래테이프’를 오히려 더 의심하고 빼앗는다. 참말, 그때에는 그랬다.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살아서 바깥으로 돌아가려고 노래 하나에 목숨을 걸었다. 4347.1.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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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걷는 길 2. 자전거와 함께 살기 | 내가 걷는 길 2013-11-11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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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걷는 길 2. 자전거와 함께 살기
― 한 해 동안 주마다 300킬로미터

 


  충주 무너미마을에서 이오덕 님 글과 책을 만지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이오덕 님 곁에서 이녁 말씀을 들은 분들 가운데 막상 이오덕 님 넋을 알뜰히 받아먹으며 스스로 마음을 키운 분은 뜻밖에 몹시 적구나 싶었다. 왜냐하면, 이오덕 님은 ‘나를 따르라’ 하지 않았는데, 모두들 ‘이오덕 제자’라는 이름을 내걸며 ‘이오덕 따르기’만 하기 때문이다. 이오덕 님은 사람들이 이녁을 ‘스승’이나 ‘선생님’으로 모시는 일을 매우 싫어하셨다. 모두 다른 사람이고 모두 다른 목숨이며, 서로 가르치고 배우며 함께 살아가는 넋이라고 말씀하셨고, 이러한 마음으로 아이들과 멧골학교에서 마흔두 해를 지내셨다. 그러면, 이 넋과 뜻을 제대로 살피면서 모두들 ‘제자’ 아닌 벗님으로서 ‘어깨동무’ 하는 두레나 품앗이를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이오덕 님이 쓴 일기를 날마다 읽으면서 새삼스레 생각했다. 이오덕 님 일기책은 2013년 봄에 드디어 ‘다섯 권으로 간추린 책’으로 예쁘게 나왔는데, 이 일기책에는 알짜 이야기가 많이 빠졌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오덕 님 넋을 새롭게 돌아볼 수 있을 텐데, 이번에 나온 일기책에서 빠진 알짜란 무엇인가 하면, 이오덕 님이 ‘이녁 둘레에서 제자라고 스스로 밝히는 사람(거의 다 현직 교사, 또 거의 다 초등학교 교사)’을 마주하며 느낀 아쉬움을 밝힌 글이다. 한국글쓰기연구회라는 모임을 이오덕 님이 여셨는데, 이 연구회 현직 교사들이 연수모임을 할 적마다 늘 술만 마시고, 제대로 된 공부모임이 이루어지지 않기 일쑤였다. 그래서 이오덕 님은 이 모임 집어치우고 모임이름을 ‘술 연구회’로 바꾸라는 말까지 자주 하셨다.


  연수모임이 아니더라도, 다른 회원(현직 교사)들이 저마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가르치고 배우면서 얻은 이야기를 글로 써서 내놓지 못하곤 했고, 회원들 스스로 저마다 다른 학교와 다른 아이들을 마주하며 느낀 이야기를 책으로 엮을 만큼 되어야 하는 줄 느끼지 못한다. 오직 이오덕 님만 혼자서 꾸준하게 글을 쓰고 책을 엮었을 뿐이다.


  이오덕 님 일기를 원본으로 읽고, 책으로 나오지 못한 글을 원고지로 읽고, 이오덕 님이 온삶을 걸쳐 읽어 건사하신 책을 아침저녁으로 나란히 읽고, 이정우 님이 들려주는 아버지 이야기를 귀로 듣고, 《우리 글 바로쓰기》 책을 내려고 모은 엄청난 신문자료를 샅샅이 읽었다. 이러는 동안 곰곰이 생각 하나를 키웠다. 나는 이곳에서 이오덕 님 글을 모두 갈무리한 뒤에는 ‘내 넋을 살찌워 내 글을 쓰고 내 책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 이렇게 하지 못한다면 내가 이곳에서 이오덕 님 글과 책을 만지면서 차근차근 갈무리하는 뜻이 하나도 없겠다고 느꼈다.


  보리 출판사에서 어린이 국어사전 만드는 일을 할 적에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보리 출판사에서 ‘보리 어린이 국어사전’이 나오는 일을 하며 밥벌이를 하지만, 이 국어사전이 나온 뒤에는 내 나름대로 ‘내 넋을 더 살찌워 한결 아름답고 알찬 새 국어사전’을 혼자서 스스로 만들 만큼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한길사 김언호 대표가 저지른 말썽, 창비 김이구 님이 보여준 안쓰러운 모습, 보리 출판사 옛 동료들이 내 가슴에 새긴 생채기, 이런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속이 쓰려 죽을 노릇이었다. 마음속에서 솟는 눈물과 아픔을 달랠 길이 없었다. 이즈음, 2004년에, ‘발바리’라는 모임을 알았다. 서울 광화문에서 한 달에 한 차례 ‘떼거리 잔차질’을 하는 모임이다(http://bike.jinbo.net). ‘두 발과 두 바퀴로 하는 떼거리 잔차질’이라서 발바리 모임이다. 서울 한복판부터 자동차를 줄이고 자전거로 살아가자는 뜻을 알리려는 모임인데, 운영자도 주최자도 따로 없다. 스스로 모이고 스스로 달린다. 집회도 시위도 아닌 ‘자전거 타기’이다. 버스가 경적을 울리며 자전거 타는 사람을 윽박지르건 오토바이가 자전거 앞에서 배기가스 춤을 추건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또 천천히, 서울 시내 한복판을 한 시간쯤 달리는 모임이다.


  처음에는 이 모임에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서 함께했다. 그런데, 어차피 자전거모임에 갈 바에는 아예 충청북도 충주부터 서울까지 자전거로 달려야 제맛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는 동안 길눈을 익힌다. 길그림책을 펼쳐서 충주에서 서울로 가는 일반국도와 지방도로를 살핀다. 이정우 님과 서울이나 인천으로 볼일 보러 함께 움직일 적에 지나가는 일반국도와 지방도로를 눈여겨본다. 이러고서, 어느 날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새벽 여섯 시 즈음 길을 나섰다.


  얼마나 설레던지. 편도 150킬로미터를 자전거로 달린다.


  처음 자전거로 150킬로미터를 달리던 날, 다섯 시간 반이 걸렸다. 사이에 쉬며 도시락을 먹느라 이만 한 시간이 나온다. 한 번 이렇게 달리니 등허리와 팔다리가 되게 저리고 결리다. 도시락 먹느라 쉰 삼십 분을 빼면 다섯 시간 고스란히 달린 셈인데, 다섯 시간을 거의 쉬지 않고 달리자니, 땀이 물꼭지 틀어 놓은 듯이 떨어진다. 등에 멘 가방은 내 땀으로 젖고, 옷은 벗어서 짜면 땀물이 줄줄 흘렀다.


  팔다리 안 쑤신 데가 없지만 마음은 홀가분했다. 그래, 이제부터 자전거로만 다녀 보자.

  첫 주는 충주로 돌아가는 길에 시외버스를 탄다. 다음주부터는 오로지 자전거로만 오간다. 충주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다시 충주로. 여름, 가을, 겨울, 봄, 네 철을 고스란히 자전거로 달린다. 비가 오건 태풍이 지나가건 눈이 오건 자전거로 달린다. 비가 오면 비를 맞는다. 눈이 오면 눈을 맞는다. 이제 150킬로미터 편도를 달리는 길이 익숙해, 한 번도 안 쉬고 달리면 네 시간 반만에 서울에 닿는다.


  바보짓이라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재미있다. 네 시간 반을 한 차례도 안 쉬고 엉덩이에 불이 나든 말든 달린다. 비가 와서 온몸과 가방이 옴팡 젖어도 그대로 달린다. 꽁꽁 얼어붙는 한겨울에 손가락과 얼굴과 발가락 모두 꽁꽁 얼어붙어도 그대로 달린다. 한겨울에 너덧 시간 자전거로 달리면, 몸을 녹이는 데에 두 시간쯤 걸린다. 몸을 녹이느라 이불 뒤집어쓰고 새우처럼 몸을 말아 덜덜 떨면 아주 천천히 몸이 녹고, 피가 따스하게 다시 돈다. 이때에 느낀다. 나는 이렇게 살아서 숨쉬는 사람이로구나.


  서울에서 충주로 돌아갈 적에는 가방이 터지도록 책을 산다. 자전거 짐받이에 책을 십 킬로그램쯤 묶는다. 이러던 어느 날, 짐받이 붙인 안장 조임쇠가 부러진다. 서울을 벗어나 이제 막 용인을 지나는데 안장 조임쇠가 부러지네. 책이 너무 무겁구나. 아슬아슬한 자전거를 천천히 달려, 여느 날보다 한 시간 반쯤 더디 달려 충주에 닿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사람들이 아이들 태우려고 마련하는 수레를 장만하기로 한다. 다른 사람들은 수레를 자전거에 붙여 아이를 태우지만, 나는 서울에서 책방을 돌며 책을 200∼300권씩 장만해서 책을 싣는다. 45킬로그램까지 싣는 수레이건만, 나는 60∼80킬로그램쯤 되는 책을 싣는다.


  이제 수레를 단 자전거를 달려 충주에서 서울로 가자니, 가는 데에 네 시간 오십 분 걸린다. 수레에 책을 가득 채워 충주로 돌아가자면 아홉 시간 걸린다. 자전거가 너무 힘들겠지. 내 몸보다 자전거가 벅차겠지. 이렇게 자전거를 달리니, 바퀴가 이내 닳는다. 체인이 끊어진다. 여러 부속을 모두 갈아끼운다. 내 자전거는 몸통을 뺀 모든 부속을 여러 차례 간다.


  충주 무너미마을은 시골이다. 이정우 님과 읍내마실을 다니다가 장날에 신가게 들러 고무신을 함께 사곤 했다. 이무렵, 고무신을 처음 신으며 아주 좋았다. 비로소 내 발이 내 발답게 숨쉬는구나 하고 느꼈다. 남들은 뒷꿈치 까진다며 고무신을 안 신는다는데, 나는 겨울에도 맨발로 고무신을 꿸 적에 참 즐거웠다. 발가락 꼬물꼬물 숨을 쉬고, 발바닥은 땅바닥을 가까이 느낀다. 맨발 고무신으로 자전거를 달리면, 이 발바닥과 앞꿈치로 발판을 굴러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더 싱그러이 살아난다.


  이오덕 님이 이녁 삶을 언제나 글로 꼬박꼬박 적어서 남기셨듯, 나도 자전거로 이 땅을 달린 이야기를 꼬박꼬박 적어 놓는다. 누가 읽어 주거나 말거나 대수롭지 않다. 자전거를 타고 충주와 서울을 오가는 동안 겪거나 만나거나 느낀 이야기를 그날그날 저녁에 조곤조곤 적바림한다. 자동차들이 얼마나 자전거를 깔보고, 때로는 갑자기 밀어붙이며 괴롭히는지 적는다. 아주 드물게 ‘자전거를 지켜 주려’고 밤에 내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며 다른 자동차를 막아 주는 분을 만나고, 내 옆을 스쳐 지나가며 ‘화이팅!’ 외쳐 주는 분을 만나는데, 이런 분들 이야기도 적는다. 바보스러운 사람들을 많이 겪은 만큼, 아름다운 사람들도 많이 겪는다. 그래, 그렇지. 이오덕 님 곁에서 ‘이오덕 제자’라고 내세우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바보스럽게 스스로 삶을 못 가꾸는 사람이 있을 테고, 조용히 아름답게 삶을 잘 가꾸는 사람이 있을 터이다. 왜 모든 사람들이 다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그러나, 이런 생각에 이를 때마다 슬프다. 왜 모든 사람들이 다 아름답게 살아가지 못하는가?


  자전거로 국도를 주마다 300킬로미터 달리며 느낀다. 어느 국도이든 사람이 걸을 자리가 없다. 사람이 걸을 자리가 없으니 자전거가 달릴 자리가 없다. 국도란, 시골에 난 길이다. 도시 한복판에는 따로 ‘인도’가 있다. 사람들 거니는 자리가 도시에는 있다. 그런데, 도시를 벗어나자마자 ‘사람이 다닐 길’은 송두리째 사라진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할매와 할배가 어디 마실을 다닐라면, 찻길 가장자리에서 아슬아슬하게 움직여야 한다. 시골에서는 자동차가 할매와 할배 들이받아 죽이는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시골 할배들은 자전거에 불을 안 붙이고 밤마실을 다니시는데, 시골 국도에서 사람들은 100킬로미터나 120킬로미터까지 마구 달리곤 하니, 그만 밤에 할배 자전거를 치고는 뺑소니로 사라지는 일이 잦다.


  왜 국도 한쪽에 시골사람 걸어다닐 자리를 안 만들까. 왜 국도 한쪽에 시골사람이 걷고 자전거로 다닐 자리를 안 만들까. 관광상품으로 ‘자전거 나들이’ 하는 길을 수백 수천 억 원을 들여 짓지 않아도 된다. 아니, 이런 관광상품을 만들기 앞서, 마을사람이 자동차 걱정을 하지 않고 느긋하게 다닐 자리를 마련해야 옳지 않은가. 제대로 된 거님길을 마련하면 자전거길은 저절로 생긴다.


  응어리진 마음을 풀려고 타는 자전거였는데, 두 달 넉 달 여섯 달, 이렇게 흐르고 흐르는 동안 외려 마음이 더 아프다. 이 나라 행정과 정치와 문화와 산업 모두,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새삼스레 몸으로 배우니, 자꾸자꾸 아프다.


  뼈빠지게 자전거로 달려 한밤에 충주에 닿는다. 아홉 시간을 달린 끝에 다리힘이 거의 풀려 마지막 오르막을 가까스로 달린다. 땀에 젖은 옷을 벗는다. 알몸인 채 방바닥에 드러눕는다. 처음 이곳에 오던 일을 떠올린다. 나는 서울에서 무너미마을로 올 적에 시외버스를 타고 생극이나 무극에서 내린다. 되도록 생극에서 내리는데, 생극에서 내리려 한 까닭은, 생극면에서 신니면 광월리 무너미마을까지 걷는 길이 무척 곱기 때문이다. 무극(금왕읍)에서 내려 걸으면, 자동차가 너무 많아 한갓지지 못하다.


  생극면에서 내려 무너미마을까지 오는 데에 12.4킬로미터이다. 빠른걸음이라면 한 시간 사십 분이면 닿는다. 숲바람 마시고 들내음 맡으며 느긋하게 걸으면 두 시간이나 두 시간 반쯤 걸린다. 걸어서 오느라 땀투성이 되면, 보리밥집에서 일하는 노금옥 아주머님이 “전화 하지, 왜 걸어왔어요. 이 더운 날에(또는 이 추운 날에).” 하고 말씀하신다. “길이 좋아서 걷고 싶어서요.”


  이오덕 님 글을 갈무리하던 네 해를 더듬는다. 자가용 안 몰고 버스를 타고 면소재지에 내려 천천히 걸어서 이오덕 님 무덤으로 찾아온 손님이 다섯손가락으로 꼽을 만큼밖에 없다. 모두들 자가용으로 달려오고, 또 자가용을 몰아 무덤 언저리까지 간다. 이오덕 님이 굳이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새소리·바람소리·개구리소리·풀벌레소리 누리면서, 숲노래와 풀노래 듣던 넋을 짚거나 헤아리지 않는다. 꼭 글쓰기연구회 교사들한테뿐 아니라, 다른 분들, 이른바 스스로 ‘이오덕 제자’라는 분들을 볼 때면, 부디 큰길가 보리밥집부터 무덤까지라도 걸어서 오십사 하고 바라지만, 이렇게 걷는 사람이 없다. 이오덕 님이 듣던 꾀꼬리 노래를 듣거나 소쩍새 울음을 들으려 하는 사람이 없다. 감잎 지는 빛깔과 구름 흐르는 빛결 받아안으려는 사람이 없다. 자가용 유리창으로 어떤 소리와 빛을 맞아들일 수 있을까. 자가용에서 어떤 이웃을 사귈 수 있을까. 자가용 달리면서 시골 논흙 밭흙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문득 생각한다. 이오덕 님은 운전면허증을 딴 적 있을까. 아마 면허증을 딴 적이 없지 싶다. 이오덕 님은 자가용을 몬 적이 한 번도 없는데, 가만히 보면 처음부터 ‘자가용과 사귀지 않’았다. 그래, 맞구나. 처음부터 자가용하고 사귀지 말아야지. 4346.11.1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내가 걷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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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걷는 길 1. 큰 출판사와 싸우다 | 내가 걷는 길 2013-11-10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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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걷는 길 1. 큰 출판사와 싸우다
― 이오덕 님 책과 한길사·창비·보리

 


  내가 걷는 길을 이제는 말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이제부터 말할 만한가 하고 헤아려 본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한테, 시골에서 옆지기랑 아이들하고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한테, 따로 어디에 몸을 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한테, 이름도 힘도 돈도 없을 테니, 내가 걷는 길 이야기란 대수롭지 않을 만하다. 내가 걷는 길 이야기는 내가 나한테 들려주는 이야기이면서,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들을 아버지 살아온 이야기이다.


  2003년 8월 31일을 끝으로 나는 출판사 일에서 손을 뗀다. 1999년 8월 8일에 보리 출판사 영업부 일꾼으로 출판사에 첫발을 뗐고, 이곳에서 2000년 6월 30일까지 일했다. 이해 11월 30일까지 전화기를 끈 채 조용히 책만 읽으면서 살았고, 2001년 1월 1일부터 보리 출판사 계열사인 토박이 출판사에서 ‘보리 어린이 국어사전’ 만드는 편집장 일을 했다.


  처음부터 국어사전 만드는 일을 할 생각이 없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에 들어갈 적에는 통역사나 번역가 일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대학교에서 내 전공 외국말을 너무 엉터리로 가르치는 바람에, 통역사 꿈도 번역가 꿈도 모두 접었다. 대학교는 다섯 학기만 다니고는 그만두었다. 시간과 돈이 너무 아까웠다. 통역사와 번역가 되는 공부를 하면서 한국말을 새롭게 배웠다. 다만, 나한테 한국말을 가르친 스승이나 교사는 아무도 없다. 오직 혼자서 수백 권에 이르는 국어사전과 수천 권에 이르는 국어학 책을 살피고 뒤지고 읽고 하면서 스스로 가르치고 배웠다. 외국말은 외국말대로 제대로 배우면서 한국말을 한국말대로 제대로 익혀야 통역사나 번역가 노릇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외국말 배우는 길이 끊어졌다. 얼결에 한국말 공부만 그대로 했고, 이 공부가 오늘날 내가 하는 일이 된다.


  나중에 토박이 출판사에서 일할 적에 들은 이야기인데, 처음 보리 출판사 영업부 일꾼으로 뽑힐 적에, 윤구병 선생이 나를 한 해만 책마을 현장과 실무를 겪게 한 뒤, 이듬해에 ‘보리 어린이 국어사전 편집’ 일을 맡길 생각이었다고 했다. 새로운 ‘어린이 국어사전’을 만들자면, 대학 학벌에도 어떤 편견이나 주의주장에도 물들지 않은 젊은 사람이 편집장이 되어 자료를 모으고 갈무리하고 엮어야 한다고 했다.


  국어사전 만드는 일은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었다고 느낀다. 그런데 아직 섣부른 길이었을까. 더 배우고 갈고닦을 배움길이 있었을까. 토박이출판사 사장인 윤구병 님 옆지기 님하고 세 차례 실랑이가 있었다. 토박이출판사 사장을 맡기로 한 윤구병 님 옆지기 님은 회사 관리만 맡겠다 하셨으나 자꾸 편집 일을 넘보셨다. 이러시면 안 된다고 하며 두 차례 실랑이가 지나가고 세 차례 실랑이가 생기자, 나어린 내가 그만두어야겠다고 깨달았다.


  나이로 치면 책마을에서 더 일할 수 있지만, 아쉬움이 남지 않았다. 어린이도서연구회 간사 자리로 오라는 말을 들었지만, 또 전화기를 끈 채 한 달을 살았다. 전화기를 다시 켠 날, 충주 무너미마을에서 전화 한 통 왔고, 이튿날 충주 무너미마을을 찾아갔다. 이곳에서 이오덕 님 큰아들인 이정우 님을 처음 만났고, 이 자리에서 “아버지 글을 맡아 줄 수 있겠나?” 하는 말씀을 들었다. “저는 실업자라서 벌이가 없어 이곳을 오가는 찻삯이 없어요. 버스삯만 주신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고 이야기했다.


  무너미마을에서 하룻밤 자고 서울로 돌아갔다. 사흘쯤 서울 시내 헌책방들 다니면서 무척 오랫동안 책만 읽었다. 앞으로 내가 걸어갈 길이 무엇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려 했지만, 갈피가 잡히지 않아, 무턱대고 온갖 책을 읽고 살피면서 마음을 다스렸다.


  돌아가신 이오덕 님이 지내던 방에서 일을 했다. 이오덕 님이 지내던 방과 책을 둔 방은 온통 먼지투성이였다. 처음 일한 때부터 석 달 즈음, 먼지를 닦고 쓸며 치우는 일만 했다. 책에 묻은 곰팡이를 닦고 햇볕에 말렸다. 축축하고 눌러붙은 원고를 모두 바깥으로 내놓아 해바라기를 시켰다. 어릴 적부터 코가 나빴는데, 하루 내내 먼지를 마시다 보니 코가 더 나빠졌다. 그래도 시골바람 마시면서 코와 몸을 달랠 수 있었다.


  한창 먼지와 씨름하면서 이오덕 님 남긴 글과 책을 갈무리하던 11월 10일, 갑자기 큰 일이 하나 터졌다. 큰 출판사 한길사에서 이오덕 님과 권정생 님이 주고받은 편지글을 몰래 함부로 내놓았다. 가을걷이를 마쳤으나, 다른 일이 아직 많은 시골인데, 이정우 님은 열 일을 젖혀 놓아야 했다. 충주에서 안동까지 여러 차례 오가면서 권정생 님과 이야기를 하고, 또 전화로도 한참 이야기를 했다. 나도 원고 갈무리는 멈추었다. ‘말썽을 일으킨 한길사에 보낼 내용증명’을 쓰느라 여러 날 걸렸다. 내용증명을 쓰고 나서 권정생 님한테 전화를 걸어 이대로 할까요 고칠 곳 있나요 하고 여쭈었다. 내용증명을 다 쓰고 나서, 매체에 알릴 기사를 썼다. 기사를 다 쓰고 나서는 권정생 님을 찾아가서 보여 드렸다. 몇 군데를 손질해서 올리기로 했다. 오마이뉴스라는 데에 기사를 올리고, 다른 언론사에 보도자료로 띄웠다.


  이때부터 여러 날 격려전화를 받기도 했지만, 비방선전도 들어야 했다. 내(최종규)가 이오덕 님 글을 갈무리하는 일을 맡고서 ‘잘난 척’한다는 비방선전이었다. 윤구병 님한테서 사랑을 받아 ‘보리 어린이 국어사전 편집장’이 되더니, 이번에는 ‘이오덕 원고 정리 책임자’가 되어, 내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까분다’는 비방선전이 뒤따랐다. 이런 비방선전은 내 귀로 바로 들어오지 않았다. 이정우 님이 이녁한테 이런 비방선전을 알리는 전화가 온다고 말씀해 주었고, 책마을에 있는 선배들이 술 한잔 사 주겠다고 하면서 ‘누가 말했는지는 알려 하지 말고 이런 뒷소문이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한길사가 저지른 말썽은 열흘째가 되어서야 겨우 마무리되었다. 한길사 김언호 대표는 ‘출고정지 안 하겠다’고 닷새를 버티었고, ‘출고정지 하겠다’고 했어도 닷새를 더 책을 팔았다. 이정우 님은 짐차를 손수 몰아 파주로 달려가서, 출고정지를 해서 창고에 그대로 남은 책을 짐칸에 싣고 돌아왔다. 이 책들을 모두 불태워 없애려고 하다가, 권정생 님이 “정우야 태우지는 말아라. 책이 불쌍하다.” 하고 말씀해서 태우지 못했다. 이정우 님은 “그러면, 무너미에 아버지 생각하며 찾아오는 손님한테 한 권씩 드릴까요?” 하고 여쭈었고, “그렇게 해라. 그 책을 팔지는 마라.” 하고 말씀했다.


  말썽은 가라앉았지만, 책마을에서 나를 두고 입방아 찧는 엉뚱한 소문에 시달렸다. 게다가, 한길사 말썽이 가라앉은 뒤 ‘창작과비평사(창비)’ 말썽이 터졌다. 이오덕 님이 공책에 남긴 일기책을 어느 날 커다란 상자 하나에서 찾아냈는데, 이 일기책을 살피다가 창작과비평사에서 이오덕 님이 낸 ‘아이들 글모음’이 ‘인세 계약’이 아닌 ‘매절’로 낸 책인 줄 알게 되었다. 더욱이, 어느 해부터인가 창작과비평사는 《우리 반 순덕이》며 《이사 가던 날》이며 《웃음이 터지는 교실》이며, 모두 다섯 권에 이르는 책 간기(판권)에 저작권을 아예 ‘창비’라 적고, ‘이오덕’이라는 이름까지 지워 없앴다.

 

  너무 터무니없는 일이로구나 하고 느껴, 저작권심의협의회에 정식으로 여쭈었다. 창비 출판사에서 ‘인세 계약’ 안 한 잘못 하나, ‘저작권 표시 의무 위반’ 잘못 둘, ‘미지급 인쇄 소급 적용’ 안 한 잘못 셋, 이렇게 세 가지로 저작권법을 어겼다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창비 어린이책 책임자로 있는 김이구 님한테 내용증명을 보냈다. 이러한 일이 있으니 바로잡기를 바란다고 알렸다. 이때까지 지급을 하지 않은 인세를 지급할 것, 이제까지 몇 권 팔았는지 자료를 보낼 것, 이오덕 님한테서 저작권리 물려받은 이정우 님과 새 계약서 쓸 것, 이렇게 세 가지를 이야기했다. 창비 김이구 님은 ‘창비는 법적으로 아무 하자가 없다’고 답장을 보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법정에 소송을 걸기로 했는데, 이 소식을 들은 글쓰기연구회 교사들과 둘레 사람들이 ‘죽은 아버지 이름에 먹칠을 하는 짓’이라면서 법정 소송을 하지 말라고 말렸다. 무엇이 먹칠일까. 잘못을 그대로 안고 가는 일이 먹칠일까, 잘못을 밝혀 바로잡는 일이 먹칠일까. 글쓰기연구회 교사들은 한길사에서 낸 책을 절판시킨 일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분들은 ‘잘못 만든 책이라 하더라도, 한 번 나온 책은 그대로 유통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한 달이었나 두 달이었나 석 달이었나, 이오덕 님 글 갈무리하는 일이 자꾸 뒤로 밀리면서 엉뚱한 소송글과 내용증명을 써야 하니 답답했다. 나는 이렇게 큰 출판사와 싸우려고 무너미마을에 오지 않았는데, 그동안 큰 출판사들이 이오덕 님 책을 놓고 벌인 잘못이 자꾸 드러난다. 그리고, 이런 일을 맺고 풀 적마다 내 뒤에서 나를 나쁘게 말하는 소문이 커진다.


  창비 출판사는 드디어 편지를 보냈다. 인세 미지급금으로 500만 원을 주고, 새 계약으로 인세 3퍼센트를 주겠다고 말했다. 잘못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너무 하잘것없는 보상금과 인세율을 말했기에, 이정우 님은 “그렇게 할 바에는 아버지 책을 모두 절판시키시오. 이제 창비에서 아버지 책이 나오는 일이 없도록 하세요.” 하고 말했다. 창비아동문고는 이오덕 님이 기획해서 염무웅 님과 함께 만들었지만, 어느새 이오덕 님 이름이 창비아동문고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모두 창비 출판사 스스로 훌륭하고 뛰어나서 이런 책들을 기획하고 어린이문학작가들 글을 모으거나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일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내가 일하기도 한 보리 출판사에서 나온 이오덕 님 책 가운데 이오덕 님이 ‘출판사 편집부가 내(이오덕) 원고를 허락 안 받고 엉뚱하게 고친 곳이 200군데가 넘으니 바로잡으라’고 보낸 글과 ‘바로잡을 곳을 빨간 볼펜으로 적바림한 책’을 찾았고, 이 글을 바탕으로 보리 출판사에 전화를 걸었더니, 편집부 차장과 편집자 한 사람은 내 전화를 비웃으면서 ‘그렇게 안 하겠다’고 했다.


  보리 출판사는 아직도 그 책 그 글을 출판사 편집부에서 임의로 고친 대로 낸다. 나는 많이 지쳤고, 큰 출판사하고 싸울 힘도 마음도 사라졌다. 이정우 님도 나더러 “이러다가 평생 출판사하고 싸우기만 하겠다”고 해서 이오덕 님이 남긴 글과 책을, 무너미마을에서 조그맣게 만들어서 ‘책방에는 배본을 안 하고’ 읽히는 길을 찾기로 했다. 보리 출판사는 이 책 말썽에서 그치지 않았다.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라는 책을 이정우 님 허락을 안 받고 계약서도 안 쓴 채 몰래 펴냈다(처음에는 보리 출판사에서 이 책을 내는 일을 허락하고 계약서를 썼지만, 출간약속을 오래도록 지키지 않아 계약파기를 했다. 계약파기를 한 뒤에 이정우 님이 자비출판으로 작은 책을 만들었는데, 보리 출판사에서 갑자기 무단출간을 해서 책방마다 배본을 했다).


  한길사가 무단출간 말썽을 일으킨 지 한 해가 채 안 되었는데,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를 네 권으로 나누어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 《방학이 몇 밤 남았나》, 《꿀밤 줍기》, 《내가 어서 커야지》를 내놓았다. 보리 출판사 정낙묵 사장은 책을 내놓고 배본까지 다 끝낸 다음, 책을 들고 무너미로 왔다. 책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잘 만든 책이니 아이들한테 읽혀야 합니다’ 하고 말했다. 훌륭한 글을 바탕으로 잘 만든 책이니 읽힐 값어치가 없다 할 수 없다. 그러면, 제대로 허락을 받고 계약서를 쓸 일이다. 계약파기를 하기 앞서 책을 잘 만들어서 내놓을 일이었다. 책에 실은 그림도 ‘이런 그림을 싣겠습니다’ 하고 알려야 했다. 그러나, 이오덕 님이 아이들 가르치면서 그리도록 한 그림하고는 사뭇 동떨어진 그림을 이 책에 끼워넣었다. 정낙묵 사장은 이정우 님한테 ‘우리는 출고정지도 절판도 안 합니다’ 하고 말하기까지 했다.


  한길사는 출고정지와 절판을 시켰지만, 보리 출판사는 오늘(2013년)까지도 이 책들을 출고정지는커녕 절판조차 시키지 않는다. 그야말로 제멋대로인 셈이다. 그리고, 이렇게 제멋대로인 출판을 하는 사람들이 힘을 떨치는 책마을이라면, 다시는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를 탔다. 모든 일을 다 잊고 자전거를 탔다. 충북 충주부터 서울까지 자전거를 탔다. 한 주에 한 번씩, 자전거로 서울로 갔다가, 다시 자전거로 충주로 돌아오기를 되풀이했다. 꼭 한 해를 이렇게 지냈다. 나는 내가 살아갈 길을 다시 그려야 하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4346.11.1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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