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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꽃―푸르게 읽는 책 3. 솔로 이야기 | 푸른삶 푸른책 2019-08-05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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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꽃―푸르게 읽는 책

《솔로 이야기》 1∼7 / 타니카와 후미코, 대원씨아이, 2012∼2019



푸른목소리 : 사람을 마주하기(인간 관계)가 너무 힘들어요.



  김치하고 빵 이야기부터 할까 싶어요. 한국사람이라면 다들 김치를 잘 먹으리라 여기지요? 빵을 좋아해서 즐기는 푸름이가 많겠지요? 이때에 가만히 생각해 보기로 해요. 김치를 못 먹는 사람이 둘레에 있을까요? 밀가루가 깃든 먹을거리를 몸에 넣으면 끙끙 앓거나 뾰루지가 돋으면서 괴로운 사람을 둘레에서 보았을까요?


  달걀을 먹을 수 없는 몸인 사람도 있습니다. 잘못해서 달걀 기운이 섞인 밥이나 국이나 케익이나 빵을 먹었다가는, 그만 온몸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괴로운 사람이 있어요. 돼지고기를 먹을 수 없다든지, 소고기나 닭고기를 먹을 수 없는 사람이 있어요. 어른 가운데에는 술을 못 마시는 몸인 사람, 담배를 못 피우는 몸인 사람도 있습니다.


  자, 어떤가요? 한국사람이라면 으레 김치를 잘 먹거나 즐긴다고 여길 텐데, 김치라고 하는 ‘삭힌 푸성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몸이라면, 푸름이 여러분은 어떻게 마주하시겠어요? 김치를 먹을 수 없는 동무더러 “넌 한국사람이 아니야!”라든지 “너 한국사람 맞니?” 하고 따지거나 물으실는지 궁금해요. 몸에 받지 않아서 못 먹는 사람을 앞에 두고서 냠냠짭짭 맛나게 먹을 수 있을는지도 궁금합니다.


  모든 사람은 달라요.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많이 먹지만 도무지 살이 안 붙어요. 어떤 사람은 적게 먹는데 그만 먹는 대로 살이 붙어요. 어느 사람은 키나 덩치가 크지만 힘이 여리고, 어느 사람은 키나 덩치가 작지만 힘이 세지요. 어느 사람은 다리가 죽죽 뻗지만 달리기를 못하고, 어느 사람은 다리가 그리 안 길어도 달리기를 잘해요.


  얼굴이며 몸매이며 모두 다른 사람입니다. 자, 곰곰이 본다면 말이지요, 우리는 몽땅 다 다른 사람인 터라, 서로 사이좋게 어울리거나 지내기가 매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더없이 다른 사람이잖아요. 게다가 푸름이 여러분이 학교란 곳에 오기까지 만난 적도 말을 섞은 적도 없는 또래를 이 학교라는 곳에서 하루아침에 잔뜩 마주하지요. 더구나 하루 내내 낯선 또래하고 보내야 해요. 학교에서 만나는 어른도 매한가지일 테고요. 처음부터 서글서글해서 누구하고라도 잘 섞이고 말을 하는 동무도 있겠지만, 처음부터 낯설거나 서먹서먹할 뿐 아니라, 한 해가 지나고 두 해가 되도록 서먹서먹하거나 낯선 기운을 못 털어내는 동무도 있어요.


  앞서 김치 얘기를 꺼냈습니다만, 이는 제 얘기입니다. 저는 한국사람이면서 김치라는 곁밥을 거의 못 먹다시피 하는 몸으로 태어났어요. 마흔 몇 해를 살며 하도 김치에 시달리느라 이제는 한두 조각을 몸에 넣을 수는 있지만, 한두 조각으로도 몸이 괴로워하는 줄 느껴요. 저는 김치뿐 아니라 찬국수도 못 먹어요. 찬국수를 빚는 ‘삭힌 국물’을 몸에 넣었다가는 며칠쯤 배앓이를 합니다.


  이런 몸을 타고났는데, 누구를 미워할 수 있을까요? 제가 어릴 적이던 1980년대에는 ‘김치를 못 먹는다’는 꾸지람과 놀림과 꿀밤만 실컷 먹었습니다. 김치는 못 먹되 갖은 꾸중에 손가락질에 회초리를 먹어야 했어요.


  못 먹는 몸인 사람한테 못 먹는다고 놀리거나 때리기까지 하면, 이를 어떻게 견뎌야 할까요? 그래도 저는 용케 그 나날을 살아남아서 오늘까지 왔어요. 그래서 푸른벗한테 “사람을 마주하는 일, 인간관계” 이야기를 새롭게 들려주고 싶어요.


  우리는 참으로 다른 몸이자 마음이에요. 우리는 서로 다른 동무나 또래가 어떤 마음이거나 생각인지 하나도 못 읽거나 아예 잘못 읽어버릴 수 있어요. 이 대목을 마음에 품어 주셔요. 나는 아무렇지도 않으나 동무한테는 더없이 깊은 생채기일 수 있어요. 나는 손쉽게 털어내지만 동무로서는 열 해나 스무 해가 넘도록 마음이 다칠 수 있어요. 거꾸로 다른 동무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도 나는 아주 큰 일이 있고, 다른 동무는 가볍게 넘기지만 나는 서른 해 넘게 마음앓이가 되는 일도 있어요.


  어른이라고 해서 서로 사이좋게 지내지는 못해요. 어른 사이에서도 이 ‘인간관계’가 참 만만하지 않아요. 그러나 어른들은 이를 어떻게 풀까요? 잘 보셔요. 어른들도 서로 즐겁거나 슬기로이 어우러지는 길을 모르는 나머지, 삿대질을 일삼거나 막말을 퍼붓는 분이 있어요. 쉽게 다툰다든지 막짓을 해대는 분도 있지요.


  푸름이 여러분뿐 아니라 어른도 즐겁고 상냥한 사이가 되기를 바라면서 무척 애쓴답니다. 이때에 가장 바탕이 되는 한 가지라면 “내가 나를 사랑하자”라고 할 수 있어요. 푸름이 여러분이 바로 푸름이 여러분부터 깊고 넓게 사랑할 수 있다면, 쉽게 마음이 다치거나 잘할 줄 아는 것이 없어 보이는 바로 나를 스스로 사랑할 수 있다면, 말을 더듬거나 쭈뼛거리거나 어쩐지 서툴거나 엉성한 나를 내가 사랑할 수 있다면, 어렵다 싶은 ‘인간관계’도 살짝살짝 새롭게 푸는 길이 보이리라 느껴요. 힘들면 힘든 대로 있어도 되어요. 조바심을 안 내면 돼요. 끝까지 마음이 안 맞는 동무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이 맞는 동무하고 따사로이 마음을 나누는 길을 가노라면, 어느새 앙금도 실타래도 풀리라 봅니다.


 ......


  다른 사람을 마주하기 어렵다는 푸른벗한테 《솔로 이야기》라는 만화책 꾸러미를 알려주고 싶습니다. 이 만화책은 2012년부터 한국말로 나옵니다. 2019년에 일곱걸음이 나왔고, 앞으로 더 나오리라 생각해요. 책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이 ‘혼자’라고 느끼는 사람이 스스로 무엇을 생각하고, 둘레에 있는 사람이 저마다 어떤 마음이나 생각일까 하고 궁금하게 여기면서 만나고 헤어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 만화책은 사랑타령을 다루지 않아요. 이 마음은 사랑인가, 아니면 나 혼자 끄달리면서 휘둘리던 모습인가 하고 헤매는 모습을 다루고, 그윽하면서 포근하게 함께하는 고운 사랑을 어떻게 만나서 어떻게 가꾸는가 하는 살림을 다룹니다. 혼자이기에 쓸쓸하다고 느끼는 마음을 다루면서도, 혼자이기에 홀가분하게 씩씩하다고 느끼는 마음을 나란히 다룹니다.


  마음이 흐르는 결을 찬찬히 짚어 주기에, 또 이 마음을 스스로 곱게 다스리는 결을 넌지시 밝혀 주기에, 《솔로 이야기》라는 만화책이 참으로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혼자여도 좋다’가 아닙니다. ‘혼자이든 여럿이든 오늘 내가 스스로 즐거운 길은 어디일까?’를 생각하는 줄거리를 다루지요.


  동무나 또래뿐 아니라 어른이나 동생하고 마주하는 하루가 고단하다면, 그저 조용히 홀로 떨어져서 우리 마음을 읽어 보기로 해요. 그리고 속삭여 봐요. “오늘 하루도 애썼구나. 이제 푹 쉬렴. 사랑하는 나.” 같은 말을. “오늘 하루 힘들었니? 그래 이제 고이 쉬렴. 아름다운 나.” 같은 말을. “오늘 어떻게 보냈어?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모두 내려놓고 가만히 쉬렴. 상냥한 나.” 같은 말을. 푸름이 여러분이 스스로 깎아내리지 않을 수 있다면, 아무리 잘못하거나 엉성한 대목을 자주 느끼더라도, 이 모든 모습을 사랑해 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솔로 이야기 7

타니카와 후미코 글,그림
대원 | 2019년 06월

 

솔로 이야기 1

타니카와 후미코 글,그림
대원 | 2012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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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꽃―푸르게 읽는 책 5 크리스 조던 | 푸른삶 푸른책 2019-08-04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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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꽃―푸르게 읽는 책

《크리스 조던》 크리스 조던, 인디고서원, 2019.



푸른목소리 : 솔직히 작가가 안정적인 직업인가 생각도 들어서 망설이게 돼요.



  저는 사전을 쓰는 일을 합니다. 이밖에 온갖 집안일도 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일도 하고, 이웃을 만날 적에는 동시를 써서 건네는 일도 합니다. 이제껏 사전이라는 책을 쓰며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도맡는 살림을 건사하면서 배운 삶을 이야기로 들려주는 일도 하지요.


  아침저녁으로 우리 집 나무한테 말을 거는 일이라든지, 나무줄기에 손을 짚거나 볼을 대고서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일도 해요. 쑥잎이나 뽕잎이나 감잎을 훑어서 말린 다음에 찻잎이 되도록 덖는 일도 하고,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갖은 풀벌레를 물끄러미 지켜보는 일이라든지, 이 풀벌레를 손등이나 어깨나 팔뚝에 앉혀서 마음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일도 합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파랗게 빛나는 바람을 숨 한 줄기로 흐으읍 하고 마시면 제 몸은 어떤 파란빛으로 맑게 거듭나려나 하고 생각하는 일도 합니다. 비가 올 적에는 되도록 가볍고 짧은 차림새로 마당에 서서 빗물을 흠씬 맞으면서 몸씻이도 하고 빗물하고 신나게 노는 일도 해요.


  자, 이런저런 ‘일’, 제가 누리거나 하거나 짓는 일을 몇 가지 적어 보았습니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일을 꽤 해요. 다만, 저는 제가 하는 일을 가만히 꼽으면서 ‘일’이라고 했을 뿐, 이를 ‘직업’이나 ‘생계’ 같은 말로는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이러다 보니 저를 바라보는 이웃님은 저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알쏭달쏭하다고 하더군요. 이때에는 그저 제 이름 ‘숲노래’를 불러 주시면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나라밖으로 볼일을 보러 가자면 여러 가지 증명서에 제 ‘일’ 또는 ‘직업’을 적어야 합니다. 이때에 저는 “Korean-dictionary writer”라 적습니다. 이름 그대로 저는 “한국말사전을 새롭게 써서 꾸러미로 묶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이러한 돈벌이를 둘레에서는 ‘직업’이라 여깁니다.


  책을 새로 내놓기 무섭에 온갖 신문이며 방송에서 띄워 주고, 출판사에서 목돈을 들여 광고를 실어 많이 팔아 주는 글님(작가)이 있습니다. 이러한 글님은 한국에서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몇 안 됩니다. 척하고 책을 냈더니 10만 권이나 100만 권을 가볍게 팔아치울 수 있는 글님은 적어요. 이런 삶터를 헤아리자면, 푸름이 여러분이 “글을 써서 돈을 꾸준히 넉넉히 벌기란 어려운 일”이라고 딱 잘라서 말씀을 여쭈어야겠습니다.


  한 마디를 보태어, “돈을 꾸준히 넉넉히 버는 일”을 찾고 싶다면 “푸름이 여러분은 글을 안 쓰는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하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는 다른 곳에서도 매한가지예요. 돈을 꾸준히 넉넉히 벌 수 있는 길을 찾는다면, 작가로뿐 아니라, 청소부로도, 교사로도, 공무원으로도, 편의점 곁일꾼으로도, 가정저부로도, 미용사로도, 여느 회사원으로도, 공장 일꾼으로도, 그 어느 곳으로도 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돈을 잘 버는 일”이란 그저 돈을 잘 버는 일일 뿐, 우리 삶을 즐겁거나 아름답게 가꾸는 일이 아니에요. 돈을 잘 벌기에 신나거나 사랑스러운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푸름이 여러분은 “내가 바라는 이 길이 안정적인 직업이 안 될 듯하다”면서 걱정합니다만, “돈을 꾸준히 잘 버느냐 아니냐”는 푸름이 여러분이 어느 일을 어떠한 마음하고 몸짓으로 어느 만큼 오래도록 꾸준히 기쁘고 보람차게 하느냐에 달릴 뿐입니다. 어느 곳에서 어느 일을 하든, 푸름이 여러분이 즐겁고 착하며 참다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서 그 일을 한다면, 어느새 돈을 꾸준히 잘 버는 길을 걷기 마련이에요. 이와 달리 처음부터 “꾸준히 많이 돈이 될 만한가 아닌가”를 따진다면, 바로 이 돈이라는 사슬에 매여서 푸름이 여러분이 바라거나 꿈꾸는 길하고는 아주 동떨어지리라 느껴요.


  한 달 500만 원 벌면 넉넉한가요? 이쯤으로 넉넉하다면 한 달 490만 원은요? 480만 원은요? 470만 원은요? 460만 원은요? 자, 10만 원씩 내려 볼 테니까, 푸름이 여러분이 ‘이 밑으로는 안 된다!’를 잘라 보셔요. 어디에서 자를 만한가요? 그리고 10만 원을 더 주기에 더 나은 일자리가 될는지, 10만 원을 덜 받아도 한결 나은 일자리가 될는지, 푸름이 여러분이 깊이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저는 1994년이라는 해부터, 제 나이 열아홉이던 때부터 한국말사전을 스스로 새롭게 짓는 길을 걸었습니다. 다만, 그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길을 걷는 줄 알 뿐, 이 길을 걷는 제 삶이 “이 직업”이라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저는 스스로 마음자리에 꿈이라는 씨앗을 심은 삶으로 하루를 맞이하면서 누립니다. 그래서 제 하루는 ‘사전 올림말을 추스르고, 뜻풀이를 가다듬고, 보기글을 새로 쓰고, 이래저래 자료를 갈무리하는 일’로도 쪼개지만, 집안일이나 아이돌보기로도 쪼개고, 나무랑 풀이랑 어울리는 일로도 쪼개며, 풀벌레랑 새하고 노래하는 일로도 쪼개고, 해랑 비랑 바람하고 얼크러지는 일로도 쪼개요.


  어느 쪽이 좋은지 모르겠어서 망설인다면 둘 다 해보기를 바랍니다. 푸름이 여러분은 나이도 몸도 젊어요. 그러니 “돈을 많이 벌 만한 곳”에서도 일해 보시고, “돈을 못 받거나 적게 버는 곳”에서도 일해 보셔요. 꿈하고 닿는 자리가 어디인가를 몸으로 겪어 보시면 어느새 눈을 번쩍 뜨리라 생각해요.


+ + +


  “안정적인 직업”인가 아닌가로 망설이는 푸른벗한테 살그마니 건네고 싶은 책은 《크리스 조던》입니다. 이분은 영화를 찍는다고 해요. 이분이 찍는 영화에는 사람보다는 새가, 이 가운데 알바트로스라는 바닷새가 돋보인다고 합니다. 입으로 서로 말을 나눌 수 없는 사이인 새일 테지만, 크리스 조던 님은 알바트로스하고 “입으로 이야기하지는 않는다”고 해요. 알바트로스를 마주할 적에 “마음으로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바닷새하고 마주하면서 바닷새 한삶을 영화로 찍는 길이란 얼마나 “아슬아슬하면서 돈이 될랑가 안 될랑가 알 수 없는 일”일까요? 척 보기에도 딱 “돈 안 될 만한”, 이러면서 품도 힘도 잔뜩 써야 하는 일이로구나 싶습니다.


  그렇다면 크리스 조던 님은 왜 “더 넉넉하고 꾸준한 돈”이 아닌, “바닷새하고 동무가 되어 이 지구라는 별을 푸르게 가꾸는 길에 징검돌이 되는 일”에 온마음을 기울일까요? 부디 이 마음이 무엇인지를 푸른벗 스스로 헤아려 보면 좋겠습니다. 제 입에서 흘러나올 ‘정답’을 기다리지 마시고, “바닷새하고 마음으로 이야기를 하는 영화감독” 눈빛을 푸른벗 여러분 마음으로 읽고 느껴 주면 좋겠어요.


  바닷새가 이 지구라는 별에서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무엇을 먹다가 죽는지, 우리는 사람으로서 얼마나 사람다운 길을 가는지, 모두 고이 마음으로 살펴 주셔요. ㅅㄴㄹ






크리스 조던

크리스 조던 저
인디고서원 | 2019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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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꽃―푸르게 읽는 책 2. 칠색 잉꼬 | 푸른삶 푸른책 2019-07-22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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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꽃―푸르게 읽는 책

《칠색 잉꼬》 1∼7 / 테즈카 오사무, 학산문화사, 2011∼2012



푸른목소리 : 대학교로 가느냐, 취업을 하느냐, 갈림길에 섰어요.



  하고픈 일, 나아가고 싶은 길, 부딪히고 싶은 꿈, 이런 여러 가지가 있는데 선뜻 마음으로 붙잡아서 한발을 떼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래서 푸름이 여러분 어버이한테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한다면, 스스로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가 하고 돌아보면 좋겠어요.


  우리 앞길을 ‘쉽게’ 생각해도 되느냐고 되물을 만하겠는데, 거꾸로 생각해 봐요. 우리 앞길을 굳이 ‘어렵게’ 생각해야 할까요?


  쉬운 보기부터 생각해요. 자, 오줌이 마려우면 어쩌나요? 말도 안 하고 참나요? 똥이 마려우면 어쩌나요? 입을 꾹 닫고 참나요? 오줌이나 똥이 마려운데 말을 안 하고 참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몸이 힘들고, 나중에는 아프기까지 해요. 똥오줌이 마려운 일은 부끄럽지 않고, 부끄러울 수도 없어요. 그때그때 풀 뿐입니다.


  배고플 적에 어떻게 하나요? 졸릴 적에 어떻게 하나요? 다리가 아프거나 목이 마를 적에 어떻게 하나요? 덥거나 추울 적에는요? 요새는 학교마다 학교옷이 있는데, 봄가을에도 더운 날이 있고, 여름에도 추운 날이 있고, 겨울에도 포근할 때가 있습니다. 학교에서 어느 달부터 어느 달까지 ‘이 옷’만 입으라고 시킨다면, 더위나 추위는 안 따지고서 그대로 따라서 입어야 할까요?


  푸름이 여러분, 배고프면 스스로 지어서 먹든, 밖에서 사다가 먹든, 전화를 걸어서 갖다 달라고 하든, 챙겨서 먹을 노릇입니다. 누가 밥을 다 지어서 차려놓은 뒤에 “자, 밥을 먹으렴.” 하고 불러야만, 그때까지 배고파도 꾹 참아야만 하는지 묻고 싶어요. 다리가 아픈데 억지로 참으며 더 걸어야 하는지도 묻고 싶어요. 왜 끝까지 참아야 할까요? 아프거나 힘들면 쉬었다가 가거나 푹 쉬어도 되지 않을까요? 걷는 길이 멀면 택시를 부른다든지, 그냥 돌아가도 되지 않을까요?


  대학교하고 취업이라는 갈림길에 서면 선뜻 어느 하나를 고르기 어려울 수 있어요. 그러면 둘 다 고르거나 둘 다 고르지 않기로 해봐요. 서두를 일이란 없습니다. 둘 다 해보거나 둘 다 안 해보면 뜻밖에 스스로 잘 깨달을 수 있습니다.


  대학교에도 들어가고, 배움삯을 푸름이 여러분이 여러 가지 곁일을 해서 벌어 보기로 해봐요. 이렇게 여러 달 하노라면, 또 여러 해 하노라면 ‘이 둘 가운데 내 마음이나 몸에 걸맞는 길’이 어느 쪽인가를 매우 또렷이 알아챌 수 있습니다. 때로는 푸름이 여러분이 ‘대학교·취업’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해도 몸이 버텨내기도 해요. 그때에는 “아, 나는 두 가지를 다 해낼 수 있을 만큼 튼튼하고 씩씩하고 멋지네?” 하고 깨닫겠지요. 푸름이 여러분은 아직 모르기 쉽습니다만, ‘대학교·취업’을 둘 다 하는 젊은이가 제법 많습니다. 이 젊은이는 무척 씩씩하면서도 즐겁게 노래하면서 두 길을 같이 가요. 그리고 서른 살이나 쉰 살이나 일흔 살 나이에도 ‘돈을 버는 길·새로 배우려고 책을 꾸준히 사서 읽고 강의를 틈틈이 챙겨서 듣는 길’을 가는 분도 꽤 많아요.


  그런데 ‘둘 다 안 해보는 길’도 이야기했습니다. 왜 둘 다 안 해도 된다고 이야기하느냐 하면, 어쩌면 두 길 모두 푸름이 여러분한테 안 맞을 수 있거든요. 대학교도 취업도 아닌 새로운 길이 여러분한테 있을 수 있어요. 이를테면, 집에서 집안일을 거들면서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는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냥 ‘우리 집안 가게(자영업)’를 물려받는 길도 있습니다. 시골에서 논밭이나 짐승우리를 돌보는 길, 이른바 농사꾼·축산업자가 되는 길이나, 바다에서 고기잡이가 되는 길이 있습니다. 글쓰기·그림그리기(작가)나 가게지기(자영업)나 농사꾼·고기잡이를 두고 ‘취업’이라 말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러나 이런 길도 있답니다. 무엇보다도 대학교·취업을 아예 생각하지 않고서 반 해나 한 해쯤 여행을 다니거나 조용히 집에 머물면서 지켜보면요, 아주 차분하게 두 길 가운데 한 쪽이 푸름이 여러분 마음에 깊이 꽂힐 수 있어요. 꼭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에 길을 골라야 하지 않습니다. 스무 살이나 스물한 살에 길을 골라도 됩니다. 스물두 살이나 스물다섯 살에 길을 골라도 좋고, 서른 살에 이르러 비로소 길을 골라도 되어요. 어느 길이든 다 같아요.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날 적에 길을 갈 뿐입니다.


  제가 걸어온 길을 밝혀 본다면, 저는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 대학교를 골랐습니다. 그러나 대학교는 제가 바라던 배움길이 아닌 줄 알아차렸어요. 대학교 강의를 듣는 첫날부터 느꼈고, 한 해 동안 아주 짙게 깨달았어요. 그래서 저는 대학교를 깨끗이 그만두기로 했는데, 이에 앞서 두 학기 동안 신문방송학과 네 해치 강의를 몽땅 들었어요. 네 해치 강의라지만 두 학기로 넉넉하던데, 두 학기 아닌 한 학기나 한 달 만에라도 ‘대학 네 해치 공부’를 스스로 마칠 수 있겠더군요.


  대학 배움길을 스스로 끊었으니 고졸 배움끈이 되었습니다만, 저는 혼자서 제 삶길을 배우기로 했고, 그렇게 혼자 조용히 노래하면서 이 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새롭게 제 꿈길을 여는 사람이 되었어요. 그렇다고 또래보다 늦게 ‘취업’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스물여섯 나이에 국어사전 편집장 일을 맡았어요. ‘부원’이 아닌 ‘부장’으로 말이지요. 푸름이 여러분, 무엇보다 마음소리에 따라서 새길을 가 보셔요. 이러면서 ‘즐겁게 걸을 길’ 하나만 차분히 바라보셔요.


+ + +


  “대학교로 가느냐, 취업을 하느냐, 이런 갈림길에 선” 푸른벗한테 《칠색 잉꼬》라는 만화책을 읽어 보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연극을 하면서 보석 훔치기를 하는 사람을 다루는 《칠색 잉꼬》인데, 이 만화를 빚은 테즈카 오사무라는 분은 ‘만화 하느님(만화의 신)’이란 소리를 듣습니다.


  테즈카 오사무 님은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한국을 식민지로 삼을 무렵, 일본에서 군수공장에 징용을 가야 했대요. 일본사람도 징용에 징병을 갔거든요. 그런데 이분은 군수공장에서 시키는 일을 하기보다는 몰래 뒷간에 숨어서 뒷간 벽에 만화를 그리면서 딴짓을 했대요. 이러다 들통나면 흠씬 얻어맞았다지요.


  일본사람이라지만 일본이 일으킨 전쟁을 끔찍히 싫어한 이분은 일본이 전쟁에서 진 일을 몹시 반겼고, 그 뒤로 일본 어린이·푸름이한테 ‘전쟁이 아닌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씨앗으로 심겠다’는 뜻으로 끝없이 새로운 만화를 그렸어요. 《우주소년 아톰》이나 《블랙잭》이나 《불새》나 《밀림의 왕자 레오》나 《리본의 기사》나 《아돌프에게 고한다》 같은 만화에서 이런 마음을 잘 읽을 수 있습니다.


  테즈카 오사무 님은 숨을 거두는 날까지 손에 붓을 쥐고서 만화를 그리셨대요. 그런데 이분은 연재만화도 열 몇 가지에, 만화영화까지 그렸는데, 틈을 쪼개어 영화를 새벽부터 밤까지 1분도 안 쉬고서 보았을 뿐 아니라, 이 바쁜 하루를 더 쪼개어 의학박사 논문까지 써내어 학위까지 따냈어요.


  얼핏 ‘너무 대단한 사람’을 얘기하느냐 물을 수 있을 텐데요, 이분이 대단하다면 남 눈치를 안 보고 스스로 하고픈 일만 꿈길로 바라본 대목이라고 느껴요. 우리도 남 눈치 아닌 우리 꿈길만 바라보고 나아간다면 갈림길에서 씩씩할 수 있어요. ㅅㄴㄹ



칠색잉꼬 박스세트

테츠카 오사무 글,그림
학산문화사 | 201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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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꽃―푸르게 읽는 책 1. 1파운드의 복음 | 푸른삶 푸른책 2019-07-20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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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꽃―푸르게 읽는 책

《1파운드의 복음》 1∼4 / 타카하시 루미코, 서울미디어코믹스, 2019



푸른목소리 : 내 생채기(상처·트라우마)를 어떻게 씻어야 좋을까요?



  푸름이 여러분한테 제 생채기 이야기를 먼저 들려주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푸름이한테는 제가 어린 날 겪은 생채기가 아무것이 아니네 하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래도 좋아요. 그러나 생채기는 생채기일 뿐이에요. 더 크거나 더 작은 생채기는 없습니다. 다만 제가 푸름이 여러분한테 들려줄 생채기는 제가 국민학교라는 이름이던, 그러니까 이제 초등학교라는 이름으로 바뀐, 여덟 살부터 열세 살까지 겪은 생채기입니다.


  오늘 저는 푸름이 여러분 앞에서 이렇게 멀쩡히 말을 해요. 더욱이 제법 또박또박 하지요. 그렇지만 저는 혀짤배기에 말더듬이였어요. 수줍음도 부끄럼도 잘 타서, 사람들 앞에서 말을 못하곤 했습니다. 어쩌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답니다. “뭐야, 저 아저씨, 말을 이렇게 잘하면서, 예전에 말더듬이였다고? 수줍음쟁이에 부끄럼이였다고? 못 믿겠는데? 거짓말 아냐?”


  저는 혀짤배기로서 말을 더듬는 이 몸을 고치려고 죽을힘을 썼는데 참으로 하나도 안 되었습니다. 죽을힘을 써도 안 되고 죽고 싶었으나, 죽지도 못했습니다. 뭐, 그때에 죽지 못했으니, 오늘 이렇게 푸름이 여러분 앞에 서서 말을 합니다. 아무튼 날마다 놀림을 받았어요. 요새는 모르겠습니다만, 예전에는 담임 교사가 날마다 읽기를 시켜요. 한 반 모든 아이가 국어 교과서를 한두 쪽씩 소리를 내어 읽도록 시키거나 동시를 외우도록 시켰어요.


  으레 첫마디부터 웅얼거리면서 소리가 엉키면서 더듬다 보니, 차가우면서 잔뜩 날이 선 조용하던 교실은 한바탕 웃음바다로 바뀝니다. 이를테면 “우리 나라는” 같은 첫 대목을 “으, 으이 아라는”이나 “응이 아라는”처럼 더듬었는데요, 한 반 동무들은 책상을 손바닥으로 치고 발로 바닥을 구르면서 까르르 깔깔 히히히 해댔고, 담임 교사마저 웃음을 참으려다가 피식피식하더니 출석부로 제 머리를 내리쳐요. 저는 놀림질에다가 주먹질까지 받았지요.


  말을 더듬는다고 얼마나 놀리고 손가락질하고 비웃었는지 몰라요. 저는 이 어릴 적을 떠올릴 적마다 아직도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아요. 이 일을 잊으려고 모진 애를 썼지만 안 잊혀요. 그런데 있지요, 6학년이던 열세 살에 아주 놀라운 일을 겪었어요. 예전에는 가시내를 매우 깔봤고, 가시내는 사내 앞에서 함부로 말을 하면 안 된다는 흐름에 셌는데요, 그래서 가시내가 뭔가 똑부러지게 말하면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 사이에서도 “여자는 입 다물어!” 같은 윽박질을 참 함부로 했답니다. 자, 이런 판에 어느 아이, 가시내인 아이가 넌지시 조용히 차분히 한 마디 했어요.


  “친구가 말하는데, 웃는 거 아니야.”


  제가 말을 더듬은 소리를 듣고 지난 다섯 해 반처럼 그때에도 반 동무들은 책상을 치고 바닥을 구르며 웃어제끼는데, 딱 한 아이, 더구나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면 안 된다고 여기는 찬밥처럼 내몰린 가시내인 동무 아이가 이런 말을 나즈막하게 한 마디를 했어요. 이 말 한 마디가 교실에 흐르자 쥐 죽은 듯 고요해졌습니다. 2분쯤 다들 아무 말을 안 했어요. 이때 외려 저는 더 떨었어요. 차라리 웃고 넘기면 속이 시원할 텐데, 2분이나 모두 아뭇소리 없이 있자니 더 어떻게 해야 할 줄 모르겠더군요.


  자, 이다음부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저는 말더듬을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까지 안고 살았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이 되어서야 거의 고쳤습니다. 어떻게 고쳤느냐 하면, 제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때에 아버지가 새집으로 옮겼어요. 예전 집은 마을 한복판이었고, 새로운 집은 논밭을 밀어 없애고서 올려세운 아파트였는데, 새집하고 학교 사이가 꽤 멀어요. 걸어서 두 시간 길인데요, 오가는 사람 없이 썰렁한 이 두 시간 길을 일부러 날마다 걸어다니면서 큰소리로 노래했습니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길이라 눈치를 안 보고 ‘돼지 멱 따는 소리’일는지도 모르나 세 해 동안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면서 말더듬을 조금씩 고칠 수 있었어요.


  그나저나 제가 열세 살이던 국민학교 6학년 어느 날, 가시내 동무가 나즈막하게 읊은 “친구가 말하는데, 웃는 거 아니야.”라는 한 마디는 대단히 힘을 냈습니다. 그 뒤로도 제 말더듬은 그대로였는데, 제가 말을 더듬을 적에 이제는 아무도 안 웃었어요. 도리어 기다려 주더군요. 제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다시 말할 때까지 기다려 주었어요.


  저는 그때 저를 도와주었다고 할, 또는 동무를 그토록 오래 따돌리고 괴롭히던 한 반 모든 동무들 사이에서 어마어마한 한 마디를 들려준 그 가시내 동무를, 국민학교를 마친 뒤에 다시 만나지 못했어요. 그래서 그 동무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이 말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동무야, 네 한 마디가 나를 수렁에서 어떻게 건져냈는지 아니? 나를 따돌리고 괴롭히던 아이들을 네가 주먹으로 패준 것도 아니고, 그냥 말 한 마디뿐이었는데, 그 말이 우리 모두를 살렸어. 말더듬이인 나도, 말더듬이를 괴롭히던 철없던 아이들도, 모두 살린 한 마디야. 참 고맙단다. 고맙다는 말을 너한테 꼭 들려주고 싶어.”


+ + +


  “내 생채기(상처·트라우마)를 어떻게 씻어야 좋을까요?” 하고 묻는 푸른벗한테 살며시 건네고 싶은 책은 《1파운드의 복음》이라는 만화책입니다. 만화책을 여러분한테 건네고 싶습니다. 생뚱맞을까요? 네, 생뚱맞아요. 바로 생뚱맞기에 이 만화책을 건네려 합니다.


  《1파운드의 복음》을 그린 분은 1978년부터 여태까지 꼭 하루조차도 안 쉬고서 만화를 그립니다. 저는 이분을 “살아서 움직이는 만화 하느님”으로 여깁니다. 아마 푸른벗은 《이누야샤》란 만화를 보았을는지 몰라요. 또는 《경계의 린네》나 《란마 1/2》 같은 만화를 알는지 모릅니다. 이런저런 만화를 그린 타카하시 루미코란 분이 선보인 《1파운드의 복음》은 바로 ‘생채기’하고 ‘곁에서 돕는 말 한 마디’ 사이를 참으로 부드러우면서 재미있게 보여주어요.


  하나도 안 무겁게, 외려 익살스러운 줄거리로 짜서 보여준답니다. 그런데 이 익살스러운 줄거리로 짠, ‘생채기를 달래는 말 한 마디’를 보여주는 이 만화책을 읽는데, 저는 왜 이렇게 눈물이 날까요?


  푸름이 여러분, 아프면 그냥 우셔요.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도 좋아요. 누가 여러분을 보고서 “야! 쟤 좀 봐! 운다, 울어! 하하하, 쟤 뭐야?” 하고 놀리거나 손가락질을 하더라도 그냥 눈물을 흘리면서 우셔요. 남을 보지 마셔요. 남이 하는 말을 듣지 마셔요. 여러분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만 듣고, 여러분 가슴속에서 흐르는 따뜻한 사랑만 보셔요. 그러면 됩니다. 우리는 모두 가슴 따뜻한 하느님입니다. 이 만화책은 바로 이 대목을 그지없이 아름답게 그려요. ㅅㄴㄹ



1파운드의 복음 1~4

다카하시 루미코 글그림/김명은 역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9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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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삶 푸른책 44] 어버이한테 책을 읽어 주기 | 푸른삶 푸른책 2016-01-17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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ㅂ 책넋 돌보기

43. 어버이한테 책을 읽어 주기



  어버이는 아이를 낳아 돌보는 동안 말이랑 글을 가르치려고 그림책을 읽어 주곤 합니다. 아이가 자라서 그림책보다 긴 이야기를 바라면 동화책을 읽어 주곤 합니다.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면 아이는 어느새 어버이한테 책을 읽어 주기도 합니다. 이제 글을 마음껏 읽을 수 있기에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야말로 지치지 않으면서 책을 신나게 읽어 주기도 합니다.


  어버이 무릎에 앉아서 어버이한테 책을 읽어 주는 아이는 마음으로 무언가를 알는지 모릅니다. 아이가 어릴 적에 어버이가 얼마나 오랫동안 날마다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읽으면서 따스한 숨결을 나누어 주었는가 하는 대목을 마음으로 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아이가 어버이한테 책을 읽어 준다면, 어릴 적부터 이야기밥을 받아먹고 자란 기쁨을 새롭게 가꾸면서 어버이한테 새로 이야기밥을 베푸는 셈이 되리라 느껴요.


  배리 존스버그 님이 빚은 어린이문학 《내 인생의 알파벳》(분홍고래,2015)이 있습니다. 이 책은 어버이하고 아이가 어떤 사이로 지낼 때에 참다운 사랑과 삶과 살림이 되는가 하는 대목을 짚습니다. 세 가지 이야기인데, 첫째는 아이는 사랑을 물려받을 수 있어야 사랑스럽게 산다는 이야기예요. 둘째는, 아이는 어버이가 손수 짓는 삶을 지켜볼 수 있어야 삶을 기쁘게 배운다는 이야기예요. 셋째는, 아이는 어버이가 아이랑 어깨동무하면서 살림을 가꾸려는 숨결을 느껴야 비로소 아름다운 넋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펌프킨 너는 너만의 노래를 부르고 너만의 춤을 춘다는 거야. 너는 우리와 다르게 세상을 바라봐. 그거 알아? 삼촌은 가끔 우리 모두가 너처럼 세상을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해(44쪽).” 같은 대목을 가만히 헤아립니다. 아이는 아이일 뿐 어버이가 아닙니다. 어버이가 낳은 아이한테는 어버이 피가 흐르지만, 아이는 어버이가 시키는 대로 똑같이 할 수 없어요. 어버이는 어버이대로 삶을 누린다면, 아이는 아이대로 새로운 삶을 꿈으로 지어서 누립니다.


  그러니까, 아이는 아이답게 ‘아이 노래’를 기쁘게 불러요. 어버이도 어버이답게 ‘어버이 노래’를 기쁘게 부를 노릇이에요. 이러면서 아이하고 어버이는 한집에서 함께 살림을 가꾸는 사람으로서 사이좋게 손을 맞잡는 기쁨을 새롭게 노래로 부를 노릇입니다.


  아이는 어버이 눈치가 아닌 어버이 사랑을 볼 수 있어야 기쁘게 자랍니다. 어버이 눈치 때문에 쭈뼛거리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어버이 사랑을 받으며 넉넉하고 느긋하면서 즐거울 수 있어야 곱게 자라요. 어버이는 아이한테 꾸지람이나 눈치나 핀잔을 줄 노릇이 아니라, 어버이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가장 너르면서 따사로운 사랑을 줄 수 있어야지 싶어요. 어버이로서 아이를 낳은 까닭은 ‘아이가 어버이 말을 고분고분 잘 따르기를 바라는 뜻’이 아니라 ‘아이가 아이답게 새롭게 꿈을 지어서 새롭게 사랑을 나누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테니까요.


  《내 인생의 알파벳》이라는 책을 읽으면 “오래전 우리 가족이 화목했던 때가 어렴풋이 생각났다. 우리는 ‘버스 바퀴가 빙글빙글 돌아요’라는 동요를 목청껏 부르곤 했다 … 그 시절의 아빠는 다른 운전자들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았다(147쪽).”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내 모습을 돌아봅니다. 나는 두 아이를 돌보고 가르치는 어버이로서 이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다른 사람 눈치를 볼 일이 없습니다. 아이한테 이야기를 들려준다든지 아이한테 춤사위를 보여준다든지 아이한테 노래를 가르칠 적에 오직 아이만 바라보면서 이 몸짓이 됩니다. 이야기책에 나오는 아버지가 아이를 기쁨과 사랑으로 바라보면서 함께 노래하고 놀 적에 오직 이녁 아이만 바라보면서 웃고 노래하듯이, 나도 우리 아이하고 어우러져 놀 적에는 오직 우리 아이들만 바라보면서 웃고 노래합니다.


  다른 데를 보아야 하지 않아요. 어버이는 아이를 바라보면 됩니다. 아이도 다른 데를 쳐다보아야 하지 않아요. 아이를 따사롭게 바라보는 어버이를 느끼면서 어버이 낯빛하고 마음결을 고이 바라보면 즐거워요.


  그런데 《내 인생의 알파벳》이라는 책을 읽으면, 이 책에 나오는 아이는 집에서 제대로 사랑받지 못해요. 이 아이뿐 아니라 학교에서 마주하는 여러 동무들도 집에서 제대로 사랑받지 못하기 일쑤예요. 그렇다고 처음부터 이런 삶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 아버지가 자동차를 몰며 신나게 노래하고 웃었다고 해요. 그런데 동생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갑작스레 죽고(유아돌연사), 아이 아버지는 큰아버지하고 어떤 다툼이 생겨서 그만 집안에서 웃음도 노래도 춤도 이야기도 모두 사라졌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마주하는 여러 동무들도 어버이들이 저마다 이런 아픔과 저런 생채기가 있어서 어른 스스로 아픔하고 생채기에 휘둘리느라 바쁘다고 합니다.


  어른들은 어른으로서 이녁 몸 하나 건사하기에도 벅차서 그만 아이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셈이리라 봅니다. 아이들이 어버이를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기다린다고 하는 대목을 미처 느끼지 못한다고 할 만해요. 아이들이 마음이 타면서 괴로워하다가 그만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겠다고 여길 때까지도 어른들은 좀처럼 아이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어요.


  이야기책 《내 인생의 알파벳》에 나오는 아이는 집에서 사랑도 눈길도 못 받는 나머지 ‘살았어도 죽은 삶과 같다’고 여깁니다. 이 엉킨 실타래를 풀 길이 도무지 보이지 않아서 학교에서 어느 누구하고도 말을 한 마디도 안 섞는다고 해요. 때때로 종이에 글을 적어서 이 글을 보여주기만 할 뿐, 입술을 달싹일 생각도 거의 안 한다고 해요. 이러던 어느 날 도무지 견딜 수 없어서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하기로 하지요. 아이가 생일잔치를 맞이한 날, 어머니하고 아버지랑 항구를 거닐다가 갑자기 바닷물로 뛰어들어요.



“아빠, 왜 계속 비행기만 쳐다봐야 해요?” 아빠가 한숨을 쉬었다. “너무 뻔한 거 아니냐, 캔디스. 비행기를 보지 않으면 조종을 못하게 되고 그러면 비행기는 박살날 거야.” “가족도 마찬가지 아니에요?” 내가 그 말을 하자 아빠가 나를 보았다. 비행기가 괴상하게 우는 소리를 냈다. (185쪽)



  아이들은 누구나 삶을 배우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시험공부를 배우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제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배우고 싶습니다. 사랑이 없이 메마른 집이나 마을이나 학교를 쳐다보고 싶지 않습니다. 기쁜 일이 있으면 어깨동무를 하면서 함께 웃고픈 아이들입니다. 슬픈 일이 있으면 이때에도 어깨동무를 하면서 함께 울고 나서 마음을 달래고픈 아이들입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어깨동무를 하면서 하루를 새롭게 짓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어버이 자리에 선 분들은 아이가 많이 자란 뒤에는 딱히 책을 소리내어 읽어 주지 않습니다. 아이가 혼자서 책을 얼마든지 잘 읽으니까요. 그러면, 때때로 아이를 불러서 ‘나를 도와주렴?’이라든지 ‘나한테 선물을 줄 수 있겠니?’ 하고 물으면서 책을 함께 읽자고 해 볼 수 있고, 아이가 날마다 조금씩 책을 읽어 달라 해 볼 수 있어요. 생각을 함께 나누고, 따스한 기운을 같이 나누며, 이야기 한 꾸러미를 서로서로 나누는 저녁을 보낼 만합니다.


  무선조종 비행기가 박살이 나지 않게 하려면 무선조종을 하는 동안 비행기를 바라보아야 하듯이, 한 집안이 박살이 나지 않게 하려면 이 보금자리에서 서로서로 따스히 바라보면서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무선조종 비행기를 걱정하기에 무선조종 비행기를 지킬 수 있고, 아이와 어버이가 서로한테 마음을 쓰기에 서로 살가이 아끼면서 사랑을 따스히 지필 수 있습니다. 4349.1.17.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청소년과 함께 책읽기)



내 인생의 알파벳

베리 존스버그 글/정철우 역
분홍고래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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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삶 푸른책 34] 책을 선물하는 마음 | 푸른삶 푸른책 2015-08-0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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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책밭 가꾸기

33. 책을 선물하는 마음



  나는 동무한테 책을 한 권 선물할 수 있습니다. 동무는 나한테 책을 한 권 선물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나 아버지하고 책을 선물로 나눌 수 있고, 이웃이나 살붙이하고 책을 선물로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책을 선물할 적에는 ‘내가 좋아하는 책’이나 ‘내가 즐겁게 읽은 책’을 선물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 잘 팔리는 책’이나 ‘오랫동안 꾸준히 읽힌 책’을 선물할 수 있어요. 그리고, 책을 선물로 받을 사람한테 물어 볼 수 있지요. “어떤 책을 읽고 싶니?” 하고 동무한테 여쭌 다음, 동무가 바라는 책을 선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 어떤 일인가 하면, 동무가 책을 선물하겠다고 하는데 한 권만 골라야 하고, 나는 두 가지 책이 마음에 듭니다. 두 가지 가운데 어느 책을 골라야 할는지 선뜻 뽑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두 권 다 선물해 달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뭐, 이런 일이 닥치면 한 권은 선물로 받고 한 권은 손수 장만하면 될 테지요. 이 길이 가장 빠르고 즐겁습니다. 그렇지만, 나한테 ‘책을 살 돈’이나 ‘쓸 돈’이 바닥이 났다면? 이때에는 한 권은 도서관에 신청해서 빌려서 읽으면 됩니다. 아니면, 부업이나 심부름을 해서 ‘책을 살 돈’을 벌면 되지요.


  요즈막에 저한테 책을 선물해 주겠다는 이웃님이 있어서 두 권을 추려 보았습니다. 한 권은 《시인의 집》이고, 다른 한 권은 《집에 가자》입니다. 《시인의 집》은 여러 나라 여러 시인을 돌아보는 여행길을 다룬 책이고, 《집에 가자》는 삶을 노래하는 이야기가 깃든 시집입니다. 한참 두 권을 놓고 저울질을 하다가 한 권을 골랐습니다. 한 권은 선물로 받고, 다른 한 권은 손수 장만하자는 생각을 하다가, 새로운 생각을 하나 더 해 보았어요. 선물로 받자면 두 권을 다 받거나, 아니면 내가 스스로 장만해서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책 하나만 선물로 받자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책을 읽을 적에는 눈에 뜨이는 모든 책을 다 읽으려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 책상맡에 언제까지나 올려놓으면서 틈틈이 되읽을 만한 책을 그야말로 자꾸 읽고 거듭 읽으려 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 책읽기는 저마다 아름답습니다. ‘모든 책을 다 읽으려 하는 책읽기’는 새로 나오는 책마다 샅샅이 눈길을 두려는 몸짓입니다. ‘책상맡에 놓고 꾸준히 되읽으려 하는 책읽기’는 어떤 책을 마음속으로 품든 날마다 스스로 새로운 넋이 되려는 몸짓입니다.


  1938년에 태어나 2010년에 숨을 거둔 사노 요코 님이 있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사람입니다. 푸름이 여러분은 ‘사노 요코’라는 이름이 익숙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또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닐 무렵, 《백만 번 산 소양이》라든지 《산타클로스 할머니》라든지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라든지 《아빠가 좋아》라든지 《세상에 태어난 아이》라든지 《두고 보자 커다란 나무》 같은 그림책을 읽은 적이 있다면, ‘아하, 그 그림책을 그린 할머니!’ 하고 떠올릴 수 있어요.


  사노 요코라고 하는 할머니는 ‘할머니’ 이야기를 곧잘 그림책으로 그렸습니다. 그야말로 할머니 눈길로 그리는 그림책입니다. 그런데 그냥 할머니가 아닌 “산타클로스 할머니”이고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입니다. 뭔가 좀 다르지요?


  할머니도 산타클로스가 될 수 있습니다. 할머니도 축구 선수가 될 수 있습니다. 할머니도 교장 선생님이 될 수 있고, 할머니도 대통령이라든지 시장이 될 수 있습니다. 할머니는 뜨개질만 하거나 김치 담그기만 해야 하지 않아요. 할머니도 얼마든지 삶을 아름답게 가꾸거나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림책을 그리며 살던 사노 요코 님이 남긴 글을 묶은 《사는 게 뭐라고》(마음산책,2015)라는 책이 있어요. 죽음을 몇 해 앞두고 ‘마지막 삶을 실컷 누리면서 남긴 글’을 담은 책인데, “그렇다. 한국 드라마는 머리 쓸 필요 없이 마음만 움직이면 된다. 이따금 읽은 책이라고는 한국 관련 서적뿐이다. 덕분에 한국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다. 양반제도라는 구제 불능 제도를 접한 나는 조선인도 아니면서 조선이라는 나라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144쪽).” 같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무릎을 쳤습니다. 한국이라고 하는 나라를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던 ‘그림책 할머니’는 어느 날 ‘한류 연속극’을 하나 보았고, 그만 한류 연속극에 사로잡혔다고 해요. 병원에 누워서 연속극을 보고, 집에서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연속극을 보면서 아픔도 시름도 괴로움도 외로움도 달랬다고 합니다. 이러다가 궁금한 마음이 들어 ‘한국 역사나 문화를 다룬 책’도 읽었다는데, 이런 책을 읽다가 ‘양반’ 제도를 처음 알았다고 해요.


  한국에서 나고 자라는 사람이라면 학교에서 가르치는 ‘양반’ 이야기를 어느 만큼 압니다. 사람 사이에 계급이나 신분으로 금을 긋고는, 한쪽은 우쭐거리는 권력자가 되고, 다른 한쪽은 짓눌리거나 억눌리면서 시달립니다. 양반 가운데 손수 흙을 일군 사람이 더러 있으나, 양반은 손에 흙 한 톨 안 묻히면서 권력을 휘둘러 밥을 먹기 마련이었어요. 계급이나 신분으로 짓눌리거나 억눌린 ‘시골사람’은 흙을 일구면서도 제값을 받지 못한 채 세금이나 소작료로 엄청나게 떼이면서 고단한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옛날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사람 사이에 계급이나 신분을 들이밀면서 금을 그으면 몹시 괴로워요. 어른 사회에서는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으로 가르고, 학력에 따라서 일삯이 갈리는 얼거리가 있어요. 어른 사회에서는 대학교 졸업장에 따라 입사원서조차 못 내밀기도 해요. 양반 제도는 사라졌다고 하지만 새로운 계급 사회라고 할 만합니다. 학교에서 시험성적으로 학생을 줄세우려 한다면, 이때에도 ‘계급 학교’라고 할 테지요.


  《사는 게 뭐라고》를 읽으며 “또다시 옛날 엄마들은 대단하다고 입을 모았다. 계절마다 제철 음식을 궁리해서 만들었던 것이다(52쪽).” 같은 이야기를 읽으며 빙그레 웃었습니다. 참말 그렇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가난하거나 쪼들리는 살림이어도 예부터 지구별 어느 나라 어머니이든 ‘철마다 맛난 밥’을 마련해서 아이들을 먹였어요. 그런데 요즈음은 어머니이든 아버지이든 ‘제철 밥’을 제때 마련해서 먹일 줄 아는 어버이는 드물어요. 집 밖에서 돈을 주고 사다 먹는 밥만 있을 뿐입니다.


  푸름이 여러분은 무럭무럭 자라서 어른이 될 텐데, 집에서 ‘제철 밥’을 먹고 자란다면, 앞으로 푸름이 여러분이 어른이 되어 새로운 아이를 낳으면, 어버이한테서 배운 ‘제철 밥’을 지어서 먹일 수 있습니다. 집 밖에서 사다 먹는 밥에만 익숙하다면, 푸름이 여러분이 어른이 되어 새로운 아이를 낳을 적에 ‘스스로 겪고 배운 대로’ 집 밖에서 사다 먹이는 밥이 익숙해서 이대로 물려줍니다.


  책 한 권을 빌어 온갖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책 한 권을 선물하면서 수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집에서 함께 살거나 한마을을 이루며 같이 사는 사람들은 서로 사랑을 선물로 나눕니다. 책을 선물하듯이 사랑을 선물합니다. 책을 선물로 받듯이 사랑을 선물로 받아요. 어떤 책을 선물하거나 선물받을 적에 즐거울까요? 어떤 삶을 선물하거나 선물받을 적에 기쁠까요? 4348.8.7.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푸른 책과 함께 살기)



사는 게 뭐라고

사노 요코 저/이지수 역
마음산책 | 2015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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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삶 푸른책 25] 문학책을 읽는다 | 푸른삶 푸른책 2015-07-11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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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도화중학교 청소년하고 '책 이야기'를 나누려고 쓴 글입니다.


..


ㄹ 책빛 먹기

24. 문학책을 읽는다



  시는 문학입니다. 수필과 소설도 문학입니다. 희곡도 문학입니다. 시집이나 수필책이나 소설책이나 희곡집은 모두 문학책입니다. 그러면, 시나 수필이나 소설이나 희곡이라고 하는 문학에는 무엇을 담을까요? 문학이라고 한다면, 무엇이 문학이 될까요?


  모든 문학에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이야기를 담지 않는다면 문학이 되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없이 틀거리(형식)만 시를 닮거나 수필을 닮거나 소설을 닮거나 희곡을 닮는대서 문학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겉모습이나 무늬만 보면서 문학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아요.


  이야기를 담을 적에는 틀거리가 엉성하더라도 아름다운 문학이라고 말합니다. 이야기를 담지 못할 적에는 틀거리가 빈틈없더라도 문학이라는 이름조차 안 붙입니다. 커다란 음식점을 보면 길가에 유리 진열장을 마련해서 ‘모조품 요리’를 놓기도 합니다. 참말로 먹음직스럽게 만들어 놓은 ‘모조품 요리’입니다만, 이 모조품을 가리켜서 ‘요리’나 ‘밥’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모조품’이거나 ‘인형’이거나 ‘거짓’이거나 ‘가짜’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지은 것을 훔치거나 가로채서 뽐내려 할 적에도 ‘거짓’이라고 해요. 이때에는 ‘훔친 것’이라는 이름까지 붙습니다. 이른바 문학에서 ‘표절’이라고 하는 작품은, 겉보기로는 매우 뛰어나 보이기도 할 수 있으나, 표절 작품은 ‘거짓 작품’이거나 ‘훔친 작품’이지요. 다른 사람 작품을 훔치면서 제 이름값을 높이거나 돈을 벌려고 하는 몸짓으로 쓴 글은 ‘문학’이 아닙니다. 한때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더라도, 참모습이 드러난 날부터 이러한 글은 믿음을 모조리 잃습니다. 스스로 즐겁게 지은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1975년부터 2015년까지 전남 보성에서 집배원으로 일한 류상진 님이 있습니다. 이분은 마흔 해에 걸쳐 시골마을 집배원으로 일한 발자취를 손수 찬찬히 적바림해서 《밥은 묵고 가야제!》(봄날의책,2015)라는 책을 선보였습니다.


  시골 집배원이 쓴 책을 놓고 ‘문학’이라고 말하는 평론가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골 집배원은 이녁 이야기를 이녁 누리사랑방(블로그)에 올렸을 뿐, 문학잡지에 이녁 글을 올린 적이 없습니다. 시골 집배원으로서 쓴 글을 신춘문예 같은 자리에 보낸 적이 없고, 문학상을 탄 적이 없습니다. 그저 시골 집배원입니다. 시인이나 수필가나 소설가 같은 이름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 ‘집배원’이라는 이름만 있습니다.


  시골 집배원 류상진 님이 쓴 책을 보면, “금메 영남떡이 아니고 율리떡이랑께 그라네!”(27쪽)라든지 “그랄지 알았으문 내가 회령 장터에 있는 택배로 갖고 가서 부치껏인디!”(82쪽)라든지 “금메 그란당께! 딴 집에 더 크고 널룹고 이삔 편지통도 많은디 해필 우리 집 째깐한 통에다 새끼를 까놨당께. 안 쫍은가 몰것네!”(153쪽)라든지 “와따아! 이 사람아, 그란다고 술 한 잔 묵을 시간도 읍서?”(217쪽)라든지 “안 그래도 애기들은 온다 그란디 방은 차디차고, 그라다 우리 손지들 감기라도 걸리문 또 ‘할메가 지름 애낄라고 방에 불도 안 때놨다!’ 그라문 으짜껏이여?”(284쪽)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모두 시골마을 할매랑 할배가 집배원 일꾼한테 들려준 말입니다. 시골 집배원으로 일하는 분은 이녁이 늘 마주하는 시골 할매랑 할배가 들려주는 말을 고스란히 ‘마음에 담은’ 뒤 글로 차근차근 옮겼습니다. 《밥은 묵고 가야제!》라는 책에 나오는 온갖 이야기는 ‘전남 보성 고장말’입니다.


  시골사람이 쓰는 시골말은 표준말이 아닙니다. 서울처럼 커다란 도시에서 사는 사람이 쓰는 서울말은 시골말이 아닙니다. 서울말은 표준말이 되고, 표준말은 서울말이 됩니다. 모든 신문과 방송과 책은 서울말이자 표준말로 나옵니다. 내가 쓰는 이 글도 시골말이 아닌 서울말이거나 표준말입니다. 내 입에서는 시골말이 흐르더라도 내 글은 서울말이거나 표준말이 되어야 하는 사회입니다.


  그러면 한 가지를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밥은 묵고 가야제!》라는 책에 나오는 시골 할매랑 할배 이야기를 ‘전남 보성 시골말’이 아닌 ‘서울 표준말’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요? 이때에는 어떤 이야기가 될까요? 시골에서 흙을 부치면서 사는 할매랑 할배가 날마다 빚는 이야기를 ‘서울 표준말’은 어느 만큼 담아낼 만할까요?


  시골 말씨를 써야 꼭 시골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지 않습니다. 시골 말씨가 아니어도 시골 이야기는 얼마든지 잘 들려줄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겉모습이 아닌 알맹이로 나누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껍데기가 아닌 속마음으로 주고받기 때문입니다. 서로 아끼는 마음이 따스하기에 이야기를 나눕니다. 서로 보살피는 사랑이 곱기에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시나 수필이나 소설이나 희곡이라는 이름이 붙는 문학은, 바로 이 대목을 살필 때에 태어납니다. 삶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따사로이 나누는 이야기가 될 때에 문학이 됩니다. 삶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여러 틀거리로 알맞게 짜서 주고받을 수 있는 이야기로 가꿀 수 있으면 언제나 문학이 됩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문예창작학과를 다녀야 문학을 하지 않습니다. 내 마음속에 흐르는 이야기가 있어서 이 이야기를 찬찬히 헤아리면서 즐겁게 글로 옮기면 모두 문학이 됩니다. 문학상을 받거나 문학잡지에 글을 실어야 문학을 하지 않습니다. 글 한 줄을 쓴 적이 없더라도 ‘입으로 구성지거나 구수하거나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삶을 짓는다면, 이때에도 아름다운 문학을 하는 셈입니다. 입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삶은, 전문용어를 빌자면 ‘구비문학’입니다.


  다만, 방송이나 인터넷에서 떠도는 정보나 소식을 입으로 읊는 일은 문학이 아닙니다. 내가 스스로 겪은 일을 내 나름대로 마음으로 삭여서 이웃하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려고 할 적에 비로소 문학입니다.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헤아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면, 이러한 이야기도 문학입니다.


  문학책은 종이로 묶은 책으로도 읽고, 이웃이나 동무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삶으로도 읽습니다. 우리 어버이가 나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로도 문학을 즐기고, 마을 할매랑 할배가 입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로도 문학을 맛봅니다. 4348.7.8.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청소년과 책읽기)



밥은 묵고 가야제!

류상진 저
봄날의책 | 2015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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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삶 푸른책 26] 교과서는 책인가 | 푸른삶 푸른책 2015-06-02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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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 책빛 먹기

25. 교과서는 책인가



  학교에서는 교과서를 가르칩니다. 학교에서는 교과서를 바탕으로 시험을 치릅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모두 교과서를 씁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지식이어야 시험 문제로 다룰 만하고, 시험 문제를 잘 외워서 맞출 수 있어야 ‘공부를 잘 한다’고 여깁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서는 과목에 따라 한 권씩 있습니다. 한 학기에 교과서 한 권을 떼기도 하고, 한 해에 교과서 한 권을 떼기도 합니다. 열 과목이나 스무 과목을 학교에서 배워야 한다면, 짐짓 많아 보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 학기나 한 해에 열 권이나 스무 권에 이르는 교과서를 배운다고 한다면,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서는 대단히 적습니다. 한 해에 교과서 열 권을 뗀다면 한 달에 한 권도 못 떼는 셈이요, 한 해에 교과서 스무 권을 뗀다면 한 달에 한 권 반쯤 겨우 떼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학교 바깥쪽을 헤아리면, 날마다 새로 나오는 책이 무척 많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새로 나오는 책을 모두 다 읽지 못합니다. 그런데 책은 날마다 꾸준하게 새로 나와요. 학교 안쪽을 들여다보면, 교과서 아닌 책을 볼 틈을 내기가 만만하지 않습니다. 학교 안쪽에서는 시험 문제 때문에 교과서를 단단히 붙잡아야 하고, 학교 바깥쪽에서는 학원에서 교과서를 더 깊이 붙잡도록 이끕니다.


  조지 카치아피카스 님이 쓴 《아시아의 민중봉기》(오월의봄,2015)라는 책이 있습니다. 800쪽 가까이 되는 책으로, 필리핀·버마·티베트·중국·타이완·방글라데시·네팔·인도네시아에서 어떤 ‘민중봉기’가 있었는가를 들려주는 책입니다. 800쪽짜리 책이라고만 여기면 두툼할는지 모르나, 아시아 여러 나라 이야기를 갈무리한 책이라고 여기면 ‘얇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나라 이야기만으로도 얼마든지 더 두툼할 테고, 한 나라에서 일어난 어느 한 가지 이야기만으로도 얼마든지 두툼한 책 몇 권을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시아의 민중봉기》를 읽으면 “19세기 말 스페인 제국이 몰락하면서 미국이 필리핀에 대해 권리를 주장했다. 미국인들의 ‘명백한 운명’에 복종하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독립운동이 분쇄되기 전까지 미국은 약 20만 명의 원주민을 학살했다(80쪽).” 같은 이야기가 아무렇지 않게 흐릅니다. ‘20만 명 원주민 학살’이 필리핀에서 있었다는데, 학교에서 가르치거나 배우는 교과서에 이런 이야기가 나올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에서 쓰는 역사(세계사) 교과서에서는 필리핀 이야기를 어느 만큼 다룰까요?


  “경제적 기능이 마비 상태인 버마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국내에서 철거민 수십만 명이 빈궁한 생활을 한다. 최고 군사 지도자들은 엄청난 재산을 축적하는 반면, 90퍼센트의 버마인들은 하루 1달러 이하로 살아간다(166쪽).” 같은 이야기도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한국에서 어린이와 푸름이가 배우는 역사 교과서에서는 버마 이야기가 어느 만큼 나올까요? 버마가 군사독재 때문에 모진 아픔을 겪어야 했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군홧발에 짓눌린 채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인다는 이야기를 학교에서 교과서로 배우거나 듣거나 엿볼 수 있을까요? 버마뿐 아니라 다른 아시아 이야기도 매한가지입니다. 아시아 이야기뿐 아니라 한국 이야기도 매한가지예요. 우리가 학교에서 가르치거나 배우는 교과서에서는 ‘한국에서 가난하고 힘겹게 살면서 굶주리는 이웃’ 이야기를 얼마나 다룰까요? 교과서에서는 우리 역사나 사회나 문화 이야기를 어떻게 다룰까요?


  곰곰이 돌아보면, 교과서에서 민중봉기 이야기를 다루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민중봉기 이야기를 시험 문제로 내기도 어려울 수 있습니다. 군사독재나 쿠테타나 학살 이야기를 교과서나 시험 문제로 똑똑히 다루는 일은 매우 드물다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교과서는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 가운데 몇 가지를 간추려서 담습니다. 교과서 한 권에는 모든 이야기를 담지 못합니다. 학교에서 교과서를 찬찬히 익힌다면, 어떤 지식을 놓고 큰그림을 그린다든지 테두리를 잡는다든지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교과서로는 속살을 샅샅이 파고들지는 못합니다. 어느 때에는 교과서로 겉훑기조차 제대로 못할 수 있습니다.


  문학 교과서에서는 시를 몇 꼭지나 실어서 읽힐까요? 문학 교과서는 소설을 한 권이라도 차근차근 다룰 수 있을까요? 과학 교과서는 우주 물리학이나 양자 물리학을 얼마나 짚을까요? 국어 교과서는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얼마나 잘 쓰거나 헤아리도록 북돋울까요?


  《아시아의 민중봉기》라는 책은 “민중이 들고일어날 때, 그들의 용감한 행동은 춤·시·산문·연극으로 신화화했다. 그러나 오만한 권력 앞에서 침묵한다면, 승리한 폭군의 내실 외에 어디에서도 그들을 찬양하지 않는다(332쪽).” 같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민중’은 ‘오만한 권력’ 앞에서 고개를 꺾거나 돌리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민중은 언제나 씩씩하고 기운차게 일어나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길을 걸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민중은 누구일까요?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민중입니다. 민중은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모두 민중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이라면 옳고 바르면서 착하고 참답게 살아야 사람입니다. ‘사람’일 때에는 슬기롭게 생각하고 사랑스레 꿈을 꾸어야 사람입니다. ‘사람’이기에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이웃을 아낍니다. ‘사람’인 만큼 아름답게 노래하고 곱게 웃으면서 기쁘게 삶을 짓습니다.


  교과서는 교과서입니다. 학교에서 학생한테 기초 지식을 알려주려고 쓰려고 엮는 교과서입니다. 그러니, 학교를 다니면서 교과서로 배우는 동안, ‘교과서 아닌 책’을 늘 곁에 둘 수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눈길을 틔워야 하고, 스스로 생각을 가꾸어야 합니다. 스스로 눈높이를 북돋아야 하고, 스스로 마음을 일구어야 합니다.


  교과서는 교과서일 뿐, 책은 아닙니다. 교과서는 어린이와 푸름이가 ‘책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길잡이 구실을 합니다. 문학 교과서가 시나 소설을 드문드문 몇 가지만 살짝 추려서 보여줄 수밖에 없는 까닭은, 문학 교과서는 바로 ‘문학책으로 가는 길’을 가만히 보여주면서 우리가 스스로 기쁘게 나아가도록 도우려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교과서도 온갖 지식을 맛보기로만 가볍게 보여줍니다. 학문을 하든 살림을 돌보든 사랑을 하든,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 수많은 책을 품에 안으면서 너른 바다를 헤엄칠 줄 아는 숨결로 거듭나야 합니다. 삶에서 이야기를 짓고, 삶에서 보람을 찾으며, 삶에서 뜻을 이룹니다. 학교에서 시험성적이 덜 나오더라도 교과서에 덜 매이면서 ‘책’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시험성적만 잘 나오는 몸짓으로 학교를 마치면, 사회에서도 삶에서도 ‘눈뜬 장님’이 되기 일쑤입니다. 4348.6.2.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청소년 책읽기)

 

 

아시아의 민중봉기

조지 카치아피카스 저
오월의봄 | 2015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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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삶 푸른책 31] 책을 읽어 마음을 가꾼다 | 푸른삶 푸른책 2015-05-31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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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책밭 가꾸기

30. 책을 읽어 마음을 가꾼다



  책은 마음을 살찌우려고 읽습니다. 그래서 책은 ‘마음밥’이라고도 합니다. 몸을 살찌우려면 즐겁게 밥을 지어서 맛나게 먹으면 됩니다. 쌀밥이든 보리밥이든, 또는 고기밥이든 풀밥이든, 언제나 즐겁게 노래하면서 먹을 때에 몸을 살찌우는 밥, 이를테면 ‘몸밥’이 됩니다.


  그런데, 몸밥을 한 번 생각해 봐요. 잔칫밥을 차릴 적에 맛있는 몸밥일까요? 잔칫밥도 멋진 몸밥이 되리라 생각합니다만, 꼭 잔칫밥이어야 몸을 살찌우지는 않는다고 느껴요. 왜 그러한가 하면, 거북하거나 힘든 자리에 앉아서 잔칫밥을 받는다면 아무래도 제대로 먹기 어렵습니다. 바늘방석에 앉으면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 콧구멍으로 넘어가는지 모를 수 있어요.


  라면 한 그릇을 김치 한 조각하고 먹는다고 해서 몸을 못 살찌운다고 하지 않습니다. 고작 라면 한 그릇이어도 고마움을 온마음으로 느끼면서 먹으면 아주 기쁘게 기운을 낼 수 있어요.


  영양소를 고루 살펴서 밥을 먹기도 해야 하지만, 우리 몸은 영양소만으로 크지 않습니다. 영양소를 ‘다루거나 어루만지거나 보듬는 손길’이 ‘따사롭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스며들어야 비로소 몸을 튼튼하게 다스릴 수 있습니다.


  이희인 님이 쓴 《어디에도 없던 곳 인도양으로》(호미,2013)는 여행책이자 사진책입니다. 인도양을 둘러싼 아시아 여러 나라를 돌아본 이야기를 담으면서,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을 사진으로 곱게 보여줍니다. 스무 해나 서른 해쯤 앞서를 헤아리자면, 그무렵에는 인도양으로 나들이를 가는 사람이 매우 드물었습니다. 마흔 나 쉰 해쯤 앞서를 헤아리자면, 그무렵에는 바다 건너 일본으로 나들이를 가는 사람조차 몹시 드물었어요.


  인도양 둘레에 있는 아시아 여러 나라는 퍽 가난합니다. 나라 살림살이는 여러모로 홀쭉하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면, 가난한 나라에서 사는 이웃사람은 웃을 일이 없을까요? 이 대목을 곰곰이 짚어 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사는 사람한테는 기쁨이나 보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가난하지 않은 나라에서 사는 사람한테는 기쁨이나 보람이 더 클까요, 아니면 외려 작을까요?


  여행을 자주 다닐 수 있기에 더 ‘좋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습니다. 그저 여행을 자주 다닐 뿐입니다. 여행을 못 다닌다고 해서 더 ‘나쁘지’ 않습니다. 그리고 ‘좋지’도 않습니다. 그저 여행을 못 다닐 뿐입니다.


  마음이 넉넉할 때에 언제나 넉넉하게 아침을 열고 하루를 누립니다. 마음이 넉넉하지 못할 때에는 언제나 메마르거나 쓸쓸하거나 힘들게 하루를 보내고야 맙니다. 마음이 따스할 때에 언제나 따스하게 이웃을 사귀고 동무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마음이 따스하지 못할 때에는 언제나 날카롭거나 짜증스럽게 하루를 보내고야 말아요.


  “여행의 참맛은 꼭 이름난 유적이나 휴양지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우연히 맞닥뜨린 소소한 풍경 속에 있는 게 아니랴 싶습니다(114쪽).” 같은 이야기처럼, 이름난 곳에 가 보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여행을 꼭 가 보아야 하지 않습니다. 이 대목을 더 헤아린다면, 우리는 꼭 대학교에 가거나 유학을 다녀와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꼭 학교를 마치거나 학원에 다녀 보아야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대학교를 안 가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대학교에 가든 말든, 이에 앞서 ‘나는 이 삶에서 무엇을 하려는가?’를 먼저 제대로 바라보면서 깨우쳐야 합니다. 오늘 이곳에서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즐거울까 하는 대목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대학교에 가든 안 가든 내 삶은 어수선하거나 어지럽습니다. 오늘 내 보금자리에서 어떻게 살림을 꾸리거나 공부를 해야 기쁠까 하는 대목을 스스로 찾지 못한다면, 학원을 여러 곳 다니든 학원을 아예 안 다니든 내 생각을 튼튼하게 세우지 못합니다.


  마음을 살찌우려면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마음을 가꾸려면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밥을 지을 적에 어떤 마음이 되어 밥을 짓는지 가만히 살펴보셔요. 빙글빙글 웃고 노래하면서 밥을 지으실 적에 밥맛이 어떠한지 살펴보셔요. 부엌에서 춤까지 추면서 밥을 지으실 적에 밥맛이 어떠한지 살펴보셔요. 그리고, 잔뜩 찡그린 채 투덜거리면서 밥을 지으실 적에 밥맛이 어떠한지 살펴보셔요.


  우리는 어느 때에 밥을 맛있게 먹을까요? 우리는 어느 때에 밥 한 그릇이 참으로 고맙구나 하고 느낄까요?


  “버스를 타고 아누라다푸라를 떠나는데 숲 사이를 흐르는 냇물에서 사람들이 목욕을 즐기는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61쪽).” 같은 이야기를 조용히 돌아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목욕탕에 가야 몸을 씻을 수 있다고 여기지만, 한국에서도 얼마 앞서까지 골짜기나 냇가에서 몸을 씻었습니다. 한겨레 옛집에는 ‘씻는 방(욕실)’이 따로 없어요. 마을마다 냇가가 있으니 냇가에 가서 씻어요. 또는 골짜기에 가서 조용히 씻어요.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거나 냇가에서 빨래를 하지요. 밥을 짓는 물도 냇가에 가서 긷거나 우물에서 풉니다. 이제는 집에서 물꼭지를 돌리면 물이 콸콸 흐르지만, 이렇게 살림을 꾸린 지 그야말로 얼마 안 된 우리 겨레 삶이에요.


  예부터 물 한 방울을 고이 아끼며 살았습니다. 집안에 물꼭지가 없기에, 누구나 으레 물동이를 이고 물을 길러 다녔어요. 참말 물 한 방울을 허투루 쓸 수 없던 지난날입니다. 예부터 밥풀 한 톨을 함부로 흘리지 않고 밥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예전에는 누구나 손수 논밭을 일구어 쌀을 얻어서 밥을 지었으니, 게다가 나무를 해서 아궁이에 불을 때어 솥에 밥을 지었으니, 밥풀 한 톨을 허투루 흘릴 수 없습니다.


  책 한 권을 손에 쥐고 지식을 쌓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식만 쌓으려고 책을 더 읽거나 자꾸 읽거나 많이 읽는다면, 내 마음을 살찌우지 못합니다. 책은 빨리 읽어야 하지 않고 느리게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고전명작을 꼭 읽어야 하지 않고, 베스트셀러나 추천도서를 반드시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읽을 책은 그야말로 ‘마음밥’이 될 수 있는 ‘사랑스러운 한 권’이어야지 싶습니다.


  즐겁게 노래하는 마음으로 짓는 밥일 때에 몸을 살찌우듯이, 기쁘게 춤추며 꿈꾸는 몸짓으로 읽는 책일 때에 그야말로 마음을 살찌웁니다. 어느 책을 우리 손에 쥐든 늘 밝게 웃으면서 활짝활짝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8.5.31.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청소년 책읽기)

 

 

어디에도 없던 곳 인도양으로

이희인 저
호미 | 2013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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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삶 푸른책 19] 내 이웃 삶을 읽는다 | 푸른삶 푸른책 2015-04-15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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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 책숲 느끼기
18. 내 이웃 삶을 읽는다


  왜 책을 읽는가 하고 누군가 묻는다면, 저는 늘 ‘내 마음을 읽고 싶어서’라고 말하다가, 한 마디를 덧붙여 ‘내 이웃 삶을 읽으면서 내 이웃이 어떤 마음으로 사랑을 가꾸려 하는가를 읽고 싶어서’라고 말합니다. 책을 읽다 보면 내가 걷는 길이 어떠한 삶인지 더 또렷하게 헤아릴 수 있으면서, 내 이웃이 오늘 어떤 삶을 가꾸는지 환하게 살필 수 있습니다.

  마음에 아름다운 생각을 가득 일으키는 책을 꾸준히 되읽습니다. 마음에 사랑스러운 꿈을 넉넉히 북돋우는 책을 새롭게 되읽습니다. 아름답다고 여겨 ‘같은 책’을 기쁘게 되읽습니다. 사랑스럽다고 느껴 ‘같은 책’을 언제 어디에서나 새롭게 되읽습니다.

  가네코 미스즈 님이 빚은 동시집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소화,2006)가 있습니다. 1903년에 조그마한 바닷마을에서 태어난 뒤, 1930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저승길로 간 분이 쓴 동시집입니다. 시골 바닷마을에서 작은 책방을 꾸리면서 틈틈이 동시를 썼다고 하는데, 헤어진 남편한테 딸을 빼앗길까 봐 걱정하면서 스스로 죽었다고 합니다. 이분이 쓴 동시는 이분 남동생이 오래도록 건사했다 하며, 1984년에 이르러 비로소 책으로 태어나며 널리 알려졌다고 해요. 이웃 일본에서도 아주 오랫동안 잠자다가 깨어난 동시집이고, 한국에도 느즈막하게 알려진 책입니다.

  작은 동시집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를 읽는 동안 조용한 바닷마을 바람이 부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이를테면 “마을의 끝은 / 저녁놀 붉은 놀 / 봄이 가까운 걸 / 알 수 있는 날(내일).” 같은 노래라든지, “어머니, / 뒤꼍 나무 그늘에, / 매미의 옷이 / 있었어요(매미의 옷).” 같은 노래를 읽으면서 바닷바람을 가만히 느낍니다. 이렇게 저녁놀과 매미를 살며시 느끼면서 동시를 쓴 분은 왜 서른 살조차 안 된 나이에 스스로 숨을 끊어야 했을까요. 어린 딸아이를 지키려는 어버이는 어떤 길을 걸어야 했을까요.

  가시내가 사내를 두들겨패는 일이 아주 드물게 있다고 하지만, 이런 일은 참말 드뭅니다. 주먹질은 으레 사내가 일으킵니다. 사내는 으레 가시내를 두들겨패려 합니다. 더욱이, 사내는 으레 총칼을 손에 쥐려 하며, 사내는 으레 군인이 되어 이웃을 죽이거나 괴롭히는 싸움터로 뛰쳐나갑니다.

  “참새의 / 어머니 / 그걸 보고 있었다. // 지붕에서 / 울음소리 참으며 / 그걸 보고 있었다(참새의 어머니).” 같은 노래를 곰곰이 읽습니다. ‘사람 아이’가 ‘참새 아기’를 붙잡는 모습을 보면서 쓴 동시입니다. ‘사람 아이’는 ‘참새 아기’를 붙잡고는 하하 웃습니다. ‘사람 아이’를 낳은 어머니도 제 아이가 참새 아기를 갖고 노는 모습을 보며 웃는다고 합니다. 동시를 쓴 아주머니는 이 모습을 슬프게 바라봅니다.

  사람이 ‘참새가 읊는 말’을 알아듣는다면, 섣불리 ‘참새 아기(새끼 참새)’를 붙잡아서 히히덕거리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이 ‘풀이 읊는 말’을 알아듣는다면, 함부로 농약을 치거나 땅바닥을 삽차로 파헤치는 일도 없으리라 봅니다. 더 헤아려 본다면, 우리는 ‘이웃인 사람’이 품는 마음도 잘 모르기 일쑤예요. ‘이웃인 작은 짐승과 벌레와 푸나무’가 읊는 말도 알아들으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웃인 사람’이 아프다 하거나 슬프다 하는 말을 알아들으려 하지 않아요.

  책 한 권을 손에 쥐어서 지식을 더 얻을 수 있습니다. 책 백 권을 신나게 읽어서 지식을 많이 쌓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잘 생각할 노릇입니다. 지식을 왜 더 얻으려 하는가요? 지식을 왜 많이 쌓으려 하는가요? 더 얻은 지식으로는 어떤 일을 할 생각인가요? 많이 쌓은 지식으로는 무슨 일을 하는가요?

  책으로 얻은 지식은 없으나 착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책이나 학교로 얻은 지식이 없지만 참답고 아름답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을 본 일조차 없는데 이웃과 사랑을 따스하게 나누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와 달리, 책으로 얻은 지식이 많지만 참답지 않고 착하지 않으며 아름답지 않은 사람이 있어요. 온갖 지식을 많이 쌓았는데 짓궂거나 얄궂거나 쓸쓸한 짓을 일삼는 사람이 있어요.

  책을 더 읽어야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책에 앞서 마음을 아름답게 가꿀 때에 비로소 훌륭한 사람이 됩니다. ‘좋은 책을 더 많이 읽어’야 똑똑한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이웃을 아끼고 돌볼 줄 아는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따스하고 넉넉한 사랑으로 삶을 지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똑똑한 사람이 됩니다.

  “아무도 모르는 들녘 끝에서 / 파란 작은 새가 죽었습니다. / 춥디추운 해 저물녘에 // 그 주검 묻어 주려고 / 하늘은 흰 눈을 뿌렸습니다. / 깊이깊이 소리도 없이(눈).” 같은 노래를 조용히 읽습니다. 내 이웃은 누구인지 생각하면서 삶노래를 가만히 읽습니다. 시는 삶노래라고 느낍니다. 삶을 노래하는 글이 바로 시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나한테 아름다운 이웃을 그리는 노래가 바로 시이고, 내가 이웃한테 아름다운 벗님으로 다가서면서 부르는 노래가 바로 시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더 많은 책을 알아야 하지 않습니다. 책을 한 권만 읽었어도 마음자리에 사랑스러운 지식을 담으면 됩니다. 더 많은 이웃을 사귀어야 하지 않습니다. 이웃을 한 사람만 사귀어도 마음자리에 아름다운 숨결을 심으면 됩니다.

  볼볼볼 기어가는 개미 한 마리를 밟지 않으면서 걷습니다. 재빠르게 기어가는 땅강아지를 보고는 걸음을 멈춥니다. 땅강아지가 건너편으로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립니다. 자전거를 몰다가 길섶에 나비가 앉아서 날개를 쉬는 모습을 보았으면 살며시 손잡이를 틀어 나비가 안 밟히도록 에돌아 갑니다.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진 꽃잎이나 나뭇잎을 주워서 흙땅으로 옮깁니다. 길을 걷다가 떠돌이 개를 만나면, 내 손이나 주머니에 있는 먹을거리를 땅바닥에 조용히 내려놓습니다.

  모두 사랑스러운 이웃입니다. 이 지구별에서 싱그러운 바람을 함께 마시면서 살아가는 이웃입니다. 나라마다 쇠가시그물을 잔뜩 박아서 ‘국경’을 세우기도 하지만, 지구별 테두리에서 보면 쇠가시그물이나 국경은 덧없습니다. 구름이나 바람한테는 아무런 국경이나 국적이 없습니다. 사람한테는 적이나 적군이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모두 이웃입니다. 이웃을 아끼려고 한다면 총칼을 비롯한 모든 전쟁무기와 군대를 녹여서 없앨 노릇입니다. 이웃이니까요. 이웃하고는 어깨동무를 해야지요. 쇠가시그물을 잔뜩 박으면서 총부리를 겨누느라 애먼 하루를 보낼 노릇이 아니라, 서로 빙그레 웃으면서 숲과 들을 아름답게 일굴 때에 비로소 사랑이 피어난다고 느낍니다.

  나는 네 이웃입니다. 너는 내 이웃입니다. 책 한 권을 읽으면서 먼먼 나라 이웃을 살갑게 느낍니다. ‘이웃이 나한테 베푼 아름다운 선물’인 책 한 권을 만난 기쁨을 곰삭이면서 글 한 줄을 즐겁게 씁니다. 4348.4.15.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청소년과 책읽기)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

가네코 미스즈 저/서승주 역
소화 | 2006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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