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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꽃삶 6 자유 | 숲노래 우리말꽃 2023-02-01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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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2023.1.28.

말꽃삶 6 자유

 

 

  우리 낱말책은 우리말을 실었다기보다 일본말이나 중국말을 잔뜩 실었습니다. 이를테면 한자말 ‘자유’를 국립국어원 낱말책에서 뒤적이면 다섯 낱말을 싣습니다.

 

자유(子有) : [인명] ‘염구’의 자

자유(子游) : [인명] 중국 춘추 시대 노(魯)나라의 유학자(B.C.506∼B.C.445?)

자유(自由) : 1.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 2. [법률] 법률의 범위 안에서 남에게 구속되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행위 3. [철학] 자연 및 사회의 객관적 필연성을 인식하고 이것을 활용하는 일

자유(自有) :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자유(刺楡) : [식물] 느릅나뭇과의 낙엽 교목

 

  첫 올림말로 삼은 “자유(子有) : [인명] ‘염구’의 자”인데, 더 뒤적이면 “염구(?求) : [인명] 중국 춘추 시대의 노나라 사람(?~?)”처럼 풀이합니다. 중국사람 이름 둘을 먼저 올림말로 삼아요. 참 엉터리입니다.

 

  둘레에서 널리 쓰는 한자말 ‘자유’는 셋째에 나오며 ‘自 + 由’ 얼개입니다. 오늘날에는 누구나 쓰는 낱말인 ‘자유’일 테지만, 일본이 총칼로 쳐들어오기 앞서는 이 한자말을 쓸 일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일본말도 중국말도 아닌 우리말만 썼고, 임금이나 글바치만 중국말을 쓰던 고려·조선이거든요.

 

  사람들은, 아니 우리들은 지난날 어떤 낱말로 “얽매이지 않고서 마음대로 하는 길”을 나타냈을까요?

 

 가두지 않다·묶지 않다

 가볍다·무게없다·앓던 이가 빠지다

 가뿐하다·거뜬하다·사뿐대다·서푼대다

 거리낌없다·거리끼지 않다·망설임없다

 

  가두지 않습니다. 묶지 않아요. 가두지 않으니 가볍습니다. 무게가 없다고 여길 만합니다. 옛말에 “앓던 이가 빠지다”가 있어요. ‘가볍다’하고 비슷하되 결이 다른 ‘가뿐하다’나 ‘거뜬하다’가 있고, ‘거리끼지 않고’ 움직이거나 한다고도 말합니다.

 

 거저·그냥

 턱·턱턱·탁·탁탁·톡·톡톡·툭·툭툭

 고삐 풀다·그냥두다·기지개를 켜다

 끄르다·끌르다·벗어나다

 

  그냥그냥 합니다. 톡톡 뛰거나 튀듯 합니다. 고삐에 매이면 괴로울 뿐 아니라 마음껏 움직이지 못  해요. 고삐에서 풀리면 비로소 마음껏 움직입니다. 기지개를 켜요. 모든 사슬이나 굴레를 끌릅니다. 위아래로 가둔 틀에서 벗어나요.

 

 풀다·풀리다·풀어내다·풀어놓다·풀어주다·풀어보다

 나·나다움·나답다·나대로·나를 이루다

 스스로·스스로길·스스로하다

 

  남이 풀어 줄 때가 아닌, 스스로 풀어낼 때에 가볍습니다. 내가 나를 풀어놓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입니다. 나답고 나대로 나아가는 길이 바로 ‘자유’로 가리키는 우리말입니다. “나를 이루”면서 ‘스스로’ 가는 길입니다. 누가 시키지 않고 내가 하는 삶이에요.

 

 우리길·혼길·혼잣길·홀길·혼넋·혼얼·홀넋·홀얼

 혼자·혼잣몸·혼잣힘·혼자리·홀자리·홑자리

 홀가분하다·혼자하다·홀로하다·혼잣짓·혼짓

 홀·홀로·홀몸·홀홀

 

  우리가 쓰는 ‘우리말’이듯, 우리가 가기에 ‘우리길’입니다. 남한테 기대거나 매이지 않고서 가기에 홀길이요 홀넋입니다. 혼자요 혼잣힘으로 일굽니다. ‘홀가분하다 = 홀 + 가분하다 = 홀로 가볍다’입니다. 혼자·스스로·나·우리가 나아가면서 일어서기에 가뿐합니다. 홀홀 바람을 탑니다. 이리하여 하늘로 나아가는 혼짓입니다.

 

 하늘·하늘같다·하늘빛·하늘빛살

 나몰라·나몰라라·눈감다·눈치 안 보다

 나다·내놓다·안 하다·하지 않다

 날개·나래·날갯짓·날갯짓하다·나래짓·나래짓하다

 

  하늘빛을 담는 나다움이 있고, 이웃이며 동무 곁에서 눈을 감는 몸짓이 있습니다. 스스로 짓는 길이 아니기에 안 하기도 하지만, 그저 싫어서 하지 않기도 합니다. ‘나다 = 나 + 다’입니다. 내가 나로 갈 수 있을 적에 내놓을 수 있고, 훌훌 내려놓기에 날개를 날고서 훨훨 춤을 춥니다. 홀가분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나 = 나다 = 날개’로 이어가요. 날갯짓이자 나래짓입니다.

 

 날개뜨기·나래뜨기·날개펴다·나래펴다

 날다·날아다니다·날아가다·날아오다·날아오르다

 활개·활개치다·활갯짓·활짝·활활·훨훨

 너르다·너른·널리·넘나들다

 

  두 팔을 활짝 펴는 ‘활개’라 한다면 더없이 시원하게 가는 길입니다. 거리낌없을 뿐 아니라 스스럼없습니다. 스스로 하기에 밝습니다. 혼자 이루면서 아무런 짐을 얹지 않기에 가벼워요. 널리 바라보고 너른 숨결로 피어납니다.

 

 열다·열리다·트다·트이다·틔우다

 노래·노래하다·놀다·놀이·놀음·놀틈·뛰놀다

 놓다·놓아두다·놔두다·놓아주다·놔주다

 손놓다·손떼다·손빼다

 

  마음을 열면서 가는 길입니다. 탁 틔우는 하루입니다. 날 수 있기에 놀 수 있어요. 놀 줄 알기에 노래할 줄 알아요. 놀고 노래하면서 뜁니다. 내가 나답게 살아갈 적에는 허물도 흉도 놓을 수 있어요. 나는 나로 서고, 너는 너로 서요. 서로서로 놓아줍니다. 붙잡거나 거머쥐거나 사로잡지 않습니다. 가만히 손을 놓아요.

 

 누리다·누림·누리기·쉬다·쉬는때·쉴참

 말미·짬·참·담배짬·담배틈·새참·샛짬

 숨돌리다·한숨돌리다·잎물짬·잎물틈·쪽틈·찻짬·찻틈

 틈·틈새·틈바구니

 

  오늘을 누리는 살림새입니다. 이곳에서 차곡차곡 손수 지으면서 하나씩 누리니, 알맞게 일하고 즐거이 쉽니다. 새참을 누려요. 일하는 틈틈이 말미를 내요. 누구나 가볍게 참을 즐기고, 서로서로 숨을 돌리면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잎물을 한 모금 마시는 틈새가 있으니 새삼스레 기운을 차려요.

 

 뒷짐·뒷짐을 지다·앉다·호젓하다

 마구·마구마구·마구잡이·막·막하다·아무렇게나·함부로

 마음·맘·마음껏·맘껏·마음대로·맘대로

 실컷·얼마든지·한껏·한바탕·한탕

 

  그렇다고 뒷짐을 지지는 마요. 호젓하게 앉을 적에는 즐겁지만, 모르는 척 마구마구 굴거나 아무렇게나 한다면 어지럽습니다. 내 몫이라고 함부로 다룬다면 그만 망가져요. 우리 마음을 우리 눈으로 실컷 볼 일입니다. 얼마든지 춤추고 노래하면 됩니다. 한바탕 일어서고 한껏 꿈을 키워요.

 

 마음날기·마음날개·마음나래

 멋·멋나다·멋스럽다·멋꽃·멋빛·멋대로·제멋대로

 생각·알아서·잘·제대로

 물방울 같다·바람같다·시원하다·후련하다

 

  바람처럼 마음으로 나는 넋입니다. 멋스러이 자라나는 숨결입니다. 얼핏 보면 제멋대로 같으나, 잘 생각해 보면 물방울처럼 맑으면서 반짝입니다. 그러니까 나부터 나를 제대로 보면 되어요. 시원하게 털어내고 후련하게 씻습니다. 안 시켜도 알아서 할 수 있을 만큼 스스로 갈고닦습니다.

 

 신·신명·신바람·즐겁다

 바람꽃·바람빛·바람새·바람이·어화둥둥·어둥둥

 바리바리·잔뜩

 

  나답고 홀가분한 날갯짓이란 신바람입니다. 신명나는 가락입니다. 신나서 활짝 웃습니다. 바람은 바람꽃일까요. 또는 바람빛일까요. 어화둥둥 덩실덩실 어깻짓이 가볍습니다. 바리바리 싸고 잔뜩 품다가도 새삼스레 바람이가 되어 하늘빛을 파랗게 머금습니다.

  노래하던 김남주(1946∼1994) 님이 남긴 노래 가운데 〈자유〉가 있습니다. 이분 노래 첫머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 때 나는 자유이다 / 땀 흘려 힘껏 일하지 않고서야 /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참다이 빛날 홀가분한 날갯짓을 노래한 글자락을 되읽으면서 “나는 자유이다”를 “나는 나이다”나 “나는 날개이다”로 새롭게 읊어 봅니다.

 

ㄱ. 이웃을 보며 내가 일할 때 나는 나이다 / 땀 흘려 힘껏 일하지 않고서야 / 어찌 나는 나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ㄴ. 들꽃을 보며 내가 일할 때 나는 날개이다 / 땀 흘려 힘껏 일하지 않고서야 / 어찌 나는 날개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한자로 엮는 ‘자유 = 自 + 由 = 나·부터”라고 할 만합니다. 우리말로 바라보는 얼개라면 단출히 ‘나’요, ‘나다움’이고 ‘나로서’이자 ‘날개·날다’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숲을 이루는 ‘나무’도 홀가분한 숨빛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늘을 바라보며 날갯짓을 하듯 가지를 마음껏 뻗는 나무이고, 땅을 내려다보며 뿌리를 실컷 내리는 나무입니다. 하늘하고 땅 사이에서 서로 다르지만 나란히 활갯짓을 하듯 퍼지는 나무를 품어 본다면, 우리는 누구나 한결 푸르게 ‘나’로 서는 하루를 누릴 만하리라 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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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꽃삶 5 첫밗 첫꽃 첫씨 첫발 | 숲노래 우리말꽃 2023-01-05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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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2023.1.4.

말꽃삶 5 첫밗 첫꽃 첫씨 첫발

 

 

  글을 쓰는 모든 사람은 우리글·한글을 찬찬히 익힐 노릇입니다. 우리글·한글을 찬찬히 익히지 않는다면 글쓰기를 하더라도 ‘글’이라 할 만한 글을 못 여미게 마련입니다.

 

  말을 하는 모든 사람은 우리말·한말을 천천히 배울 노릇입니다. 우리말·한말을 천천히 배우지 않는다면 제 뜻이며 생각이며 마음을 알맞게 펴는 길하고 동떨어지게 마련입니다.

 

  우리글·한글은 모든 소리를 담습니다. 소릿값(발음기호)으로 삼아도 넉넉할 만큼 훌륭한 글입니다. 그런데 이웃글(이웃나라 글)도 그 나라 사람들 나름대로 온갖 소리를 담아요. 모든 글은 그 글을 쓰는 사람들 나름대로 그들이 듣고 받아들이는 소릿결을 담아내는 그릇입니다.

 

 커버

 カバ-

 

  영어 ‘cover’를 ‘커버’로 적으면 ‘한글’로 적는 셈이지만, ‘한말·우리말’은 아닙니다. 이웃나라가 ‘カバ-’로 적는다고 하더라도 ‘カバ-’가 ‘일본말’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일본도 그저 영어 ‘cover’를 소리나는 대로 적은 글일 뿐입니다.

 

 겉·껍데기

 마개·덮개·뚜껑·가리개·씌우개

 막다·덮다·가리다·씌우다

 

  소리가 나는 대로 적을 적에는 ‘소릿글’일 뿐, 아직 우리글도 한글도 아니라고 여길 노릇입니다. 뜻이며 쓰임새를 아이부터 한어버이까지 누구나 쉽게 알아차리면서 새길 수 있도록 풀어내거나 옮겨야 비로소 ‘우리글·한글’일 뿐 아니라 ‘우리말·한말’입니다.

 

시조(市朝) : 시정(市井)과 조정(朝廷)을 아울러 이르는 말

시조(始祖) : 1. 한 겨레나 가계의 맨 처음이 되는 조상 ≒ 비조 2. 어떤 학문이나 기술 따위를 처음으로 연 사람 3. 나중 것의 바탕이 된 맨 처음의 것

시조(始釣) : 얼음이 녹은 뒤에 처음으로 하는 낚시질

시조(施助) : [불교] 자비심으로 조건 없이 절이나 승려에게 물건을 베풀어 주는 일.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 = 시주

시조(時鳥) : 1. [동물] 철에 따라서 우는 새 ≒ 시금 2. [동물] 두견과의 새 = 두견 3. [동물] 올빼밋과의 여름새 = 소쩍새

시조(時潮) : 시대적인 사조나 조류

시조(時調) : 1. [문학] 고려 말기부터 발달하여 온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 2. [음악] 조선 시대에 확립된 3장 형식의 정형시에 반주 없이 일정한 가락을 붙여 부르는 노래 = 시절가

시조(翅鳥) :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

시조(視朝) : 조정에 나아가 정사를 봄

 

  국립국어원 낱말책을 뒤적이면 ‘시조’를 모두 아홉 가지 싣습니다. ‘시조’ 갈래에는 없으나 ‘시조새(始祖-)’도 있습니다. 한자로 적는 열 가지 낱말인 ‘시조’일 텐데, 한자를 소릿값으로 적은 ‘시조’ 열 가지는 우리말·한말일까요? 우리말·한말로 삼아도 될까요?

 

  곰곰이 보면, ‘市朝·始釣·施助·時鳥·時潮·翅鳥·視朝’ 일곱 가지는 우리나라에서 쓸 일이 없고, 쓸 까닭이 없습니다. 쓰는 사람조차 없습니다. 이런 낡은 ‘중국글’을 누가 쓸까요? 예전에 중국을 섬기던 임금·벼슬아치·글바치는 이런 고리타분한 중국글을 썼을 테지만, 오늘날에는 쓸 일도 까닭도 없을 뿐 아니라, 낱말책(국어사전)에서 털어낼 노릇입니다. 우리말·한말이 아닌데 왜 올림말로 실을까요?

 

  지난날 중국글인 한자로 글을 짓던 이들은 ‘時調’를 읊었습니다. 요새도 ‘시조’를 읊거나 짓는 분이 드문드문 있으나 거의 자취를 감춥니다. 예스러운 글이라서 사라진다기보다는, 우리 삶으로 녹여내거나 풀어내는 길을 헤아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여겨야지 싶습니다.

 

 노래·노랫가락·노래꽃

 글·글월·글자락

 글가락·가락글

 

  우리나라는 아직 ‘시(詩)’라는 중국글을 그냥 쓰고, ‘시가(詩歌)·시문(詩文)·시구(詩句)’에 ‘시조(時調)’에다가, ‘운문(韻文)’까지 씁니다만, 우리말·한말로 바라보자면 ‘노래’이거나 ‘글’입니다.

 

  처음은 노래하고 글로 바라보고 풀어낼 노릇입니다. 이다음에는 ‘노랫가락’이나 ‘노래꽃’처럼 새롭게 살펴볼 수 있고, ‘글월·글자락’처럼 살을 보탤 만합니다. 그리고 ‘글가락’이나 ‘가락글’처럼 헤아려도 어울립니다.

 

  중국글을 옮기는 소릿값으로만 적는다면 우리글·한글은 부질없거나 덧없습니다. 삶과 살림과 사랑을 담는 이야기로 여기면서 우리말·한말로 피어나자면, 우리 삶과 살림과 사랑을 돌아보면서 새말로 여밀 줄 알 노릇입니다.

 

 옛새·옛날새

 오래새·오랜새

 

  ‘시조새(始祖-)’는 오늘날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가 아닌, 먼 옛날 하늘을 날아다니던 새입니다. 그러니 ‘옛새’나 ‘옛날새’라 하면 되어요. 요새는 ‘오래가게’나 ‘오래마을’처럼 우리말 ‘오래-’를 곳곳에서 잘 살려서 쓰는 만큼, ‘오래새·오랜새’처럼 이름을 새롭게 붙여 보아도 어울립니다.

 

 한아비

 

  한자말 ‘시조(始祖)’는 어떻게 풀어낼 만할까요? 소릿값인 한글로 적는 ‘시조’로는 알아볼 수 없기도 하고, 헷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오랜 어버이라는 뜻으로 ‘한아비’라 할 만합니다. 이윽고 ‘뿌리·바탕·밑·밑동’이나 ‘밑뿌리·밑싹·밑자락·밑판·밑틀’처럼 짚어 볼 수 있습니다.

 

  수수하게 바라본다면 ‘앞사람·앞님·앞분’이나 ‘앞지기·앞내기·앞어른’이라 할 만하지요. ‘어제사람·옛사람·옛분·옛어른’이나 ‘예·예전·옛날·옛길’처럼 나타내어도 되고, ‘옛빛·오래빛·오랜빛’으로 그리거나 ‘어른·어르신’처럼 수수하게 바라보아도 되어요.

 

 처음·처음길·처음빛

 첫길·첫빛·첫밗·첫걸음·첫사람

 첫꽃·첫별·첫물·첫싹·첫씨

 

  처음을 이루는 어버이를 가리키려는 마음을 새롭게 바라본다면, ‘처음’이라는 우리말로 옮길 만합니다. ‘처음길’이며 ‘처음빛’처럼 조금씩 살을 붙일 만합니다. 조금 짧게 ‘첫길’에 ‘첫빛’으로 담을 만하고, ‘첫밗’으로 나타내어도 어울려요.

 

  이렇게 짚노라면, ‘시조’뿐 아니라 ‘조상·선대·선현·선조’ 같은 비슷하면서 다른 한자말도 이런 여러 우리말·한말로 옮길 만하다고 느낄 수 있어요. ‘시작(始作/시작점)·시발(始發/시발점)·시초·시점(始點)·원점(原點)·기점’ 같은 한자말도 이런 여러 우리말·한말로 풀어낼 만하다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효시·원류(源流)·원조(元祖)·원형(原形)·원형(原型)’ 같은 한자말로 골머리를 앓기보다는, 이런 여러 우리말·한말을 알맞게 가려서 쉽게 쓰면서 이야기꽃을 펴는 길을 열 만합니다.

 

 비롯하다·태어나다·나다·나오다

 씨알·씨앗·씨

 움·움트다·싹·싹트다

 

  첫발을 내딛기에 한 걸음씩 나아가면서 거듭납니다. 첫씨를 심기에 오늘부터 새롭게 짓는 말살림·글살림을 이룹니다. 첫물을 내놓습니다. 첫별이 뜹니다. 첫꽃이 핍니다.

 

  먼 옛날에 첫사람이 있었다면, 바로 오늘 이곳에는 우리말·우리글을 비로소 슬기롭게 가다듬으면서 배우고 익히고 나누고 누리고 즐기면서 가꾸는 첫사람이 있습니다.

 

  몽글몽글 움틉니다. 새록새록 싹틉니다. 처음에는 늘 조그마한 씨앗 한 톨이게 마련입니다. 아주 작은 곳에서 비롯합니다. 아기가 태어나듯 말이 태어나고, 마음이 나오고, 생각이 납니다.

 

  그냥그냥 중국글 ‘시조’를 ‘時調’나 ‘始祖’라는 한자에 가두면, 우리글·한글은 그저 소릿값(발음기호)으로 그치고 맙니다. 중국바라기(중국 사대주의)라는 굴레를 이제부터 벗어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본바라기도 미국바라기도 아닌, ‘우리바라기(우리 스스로 우리 삶·살림·사랑 바라보기)’를 하면 됩니다.

 

  저마다 첫별입니다. 누구나 첫꽃입니다. 도란도란 첫씨예요. 어깨동무를 하는 첫발입니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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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꽃삶 4 낱말책 | 숲노래 우리말꽃 2022-12-31 07:23
테마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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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말꽃삶 4 낱말책

 

 

  ‘사전’은 한글로 적을 수 있되, 우리말은 아닙니다. 한자를 밝히면, ‘사전(辭典)’은 ‘국어사전’이나 ‘영어사전’을 가리킬 적에 붙이고, ‘사전(事典)’은 ‘백과사전’이나 ‘역사사전’을 가리킬 적에 붙입니다.

 

  한자를 익힌 분이라면 이쯤 대수롭지 않겠으나, 한자를 모르는 분이라면 헷갈리거나 머리가 아플 만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이름을 새롭게 써야 어울리고 즐거울까요? 우리는 앞으로 자라날 아이들한테 어떤 이름을 알려주거나 물려줄 만할까요?

 

  일본에 우리나라로 쳐들어온 즈음 주시경 님을 비롯한 분들은 ‘말모이’란 이름을 생각했습니다. 훌륭하지요. 말을 모았으니 ‘말모이’입니다. ‘말모음’이라고도 할 만해요. 그러나 조선어학회(한글학회)는 이 이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냥 ‘조선어사전(우리말 큰사전)’처럼 ‘사전’을 쓰고 말았어요. 북녘도 그냥 ‘사전’을 씁니다.

 

사전(辭典) : 말을 모으다

사전(事典) : 살림을 모으다

 

  두 가지 사전은 ‘말’을 모으느냐 ‘살림’을 모으느냐로 가릅니다. 국어사전은 국어를 모은 책입니다. 백과사전은 온갖 살림을 모은 책입니다. 곧, ‘사전(事典)’은 ‘살림모이·살림책’이라 할 만하고, ‘사전(辭典)’은 ‘말모이·말책’이라 할 만해요. 저는 말을 모은 책을 ‘낱말책’이라는 이름으로 가리켜 봅니다.

 

우리말꽃 . 우리말꾸러미 ← 국어사전

우리삶꽃 . 우리삶꾸러미 ← 백과사전

 

  어느 어르신이 ‘말꽃’이란 이름을 쓰면 어떻겠느냐고 얘기한 적 있습니다. 말을 그러모아서 꽃처럼 곱게 빛나니 단출하게 ‘말꽃’이라 할 만하다고 하시더군요. 이분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참 어울려요. 투박하게 가리키자면 ‘낱말책’이 낫고, 싱그럽고 뜻깊게 바라보자면 ‘말꽃’이 낫다고 느껴요.

 

  그래서 ‘국어사전’은 ‘우리말꽃’이나 ‘우리말꾸러미’라 할 만하다고 봅니다. ‘백과사전’은 살림을 담은 책이니 ‘우리삶꽃’이나 ‘우리삶꾸러미’라 하면 어울려요.

 

 빛꽃 길꽃 앎꽃 노래꽃

 

  우리가 쓰는 말을 놓고 ‘말꽃’이라 해보니, 다른 곳에서도 쓰고 싶더군요. 이른바 ‘빛그림’이라고도 하는 사진이라면 ‘빛꽃’이라 할 만하겠더군요. 과학은 삶을 밝히려는 갈래이니 ‘밝꽃’이라 하면 어떠할까 싶고, 철학은 생각을 가꾸어 삶길을 틔우는 실마리를 찾는 갈래이니 ‘길꽃’이라 해볼까 싶어요.

 

  다만, 혼자 해보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써야 맞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하나하나 ‘꽃’이란 말을 붙여 보면서 길을 찾아보고 싶을 뿐입니다. ‘앎꽃’처럼 써 본다면 ‘지식’이나 ‘인문학’을 가리킬 만하려나 하고도 생각하는데, ‘문학’을 ‘글꽃’으로 나타내거나, ‘시’를 ‘노래꽃’으로 나타내면 어울릴까 하고도 생각합니다.

 

 꽃아이 꽃어른

 

  우리 집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시골빛을 누리면서 뛰놉니다. 시골에서는 늘 들꽃을 만나기에,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꽃순이’에 ‘꽃돌이’로 자랐습니다. 아이라면 ‘꽃아이’일 테고, 어른이라면 ‘꽃어른’이나 ‘꽃어버이’일 테지요.

 

  꽃이란 대단하지요. 열매를 베풀기도 하지만, 열매가 아니어도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즐거우며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쓰는 살림에 ‘꽃’이란 이름을 붙일 적에도 해사하게 거듭나요.

 

비구름이 흘러간 하늘은

바다하고 나란히 파랗고

풀꽃나무 씨앗이 자라고

땅이며 마음은 푸르고

 

  틈틈이 넉줄꽃을 씁니다. 들레에서는 ‘사행시’라 합니다. 수수하게 ‘넉줄글’이라고도 하는데, 굳이 ‘넉줄꽃’을 쓴다고 말합니다.

 

벌써

 

벌써 꽃이 지네

“섭섭하다.”

이제 꽃이 지면

“천천히 열매가 익어.”

 

벌써 집에 가네

“아쉽다.”

이제 집에 가서

“씻고 먹고 또 놀자.”

 

벌써 끝이 나네

“허전하다.”

이제 끝을 맺고

“새 이야기를 펴거든.”

 

벌써 별이 돋아

“눈부시구나.”

이제 밤으로 가며

“반짝반짝 꿈길이야.”

 

  이웃이나 동무를 만날 적에는 열여섯 줄로 노래꽃(동시)을 씁니다. ‘노래꽃’이라는 낱말을 ‘시’를 가리킬 적뿐 아니라 ‘동시’를 가리킬 적에도 써요. 동시도 시도 그저 노래요 노래꽃이라고 느낍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이 네 철을 가르듯 넉 줄을 넉 자락으로 맞추어 열여섯 줄인 노래꽃입니다. 이러한 노래꽃은 큰아이가 아버지 곁에서 한글을 배우고 싶다고 하던 무렵 처음 썼어요. 아이가 배울 글은 아이가 지을 살림을 담은 말이기를 바랐고, 아이가 지을 살림은 스스로 푸른 숲에서 자라나는 마음을 물씬 품기를 바랐습니다. 또한 열여섯 줄은 낱말책으로 치면 뜻풀이하고 보기글을 더한 셈입니다. 노래꽃에 붙인 이름(제목)은 낱말책으로 치면 올림말(표제어)입니다.

 

  큰아이가 글을 배우고 싶다고 하면서 쓴 노래꽃이었으나, 이 노래꽃은 저절로 “어린이가 읽고 누리면서, 어린이 곁에서 어른 누구나 함께 읽고 누릴 이야기꽃인 낱말꾸러미”로 나아간다고 느꼈습니다.

 

  시골에서 살기에 시골사람인데, 시골사람을 슬쩍 ‘시골꽃’이란 이름으로 가리켜요. 서울에서 사는 이웃은 서울사람일 테지만 슬그머니 ‘서울꽃’이란 이름으로 가리킵니다. 시골꽃하고 서울꽃이 만나서 도란도란 수다꽃을 피운다면, 우리가 저마다 사랑스레 살림을 지피는 마음꽃을 지피는 씨앗을 심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온갖 곳에 꽃을 붙입니다. 꽃아이를 돌보다 보니 저절로 꽃아비가 되는 셈입니다. 말꽃을 짓는 삶길을 걷자니, 제 입이며 손에서 태어나는 말은 늘 꽃말이어야 하겠다고도 느낍니다.

 

 꽃 꽂다 꼬리 끝 꼬마 꼴찌 곱다

 

  우리말 ‘꽃’은 ‘꽂다’하고도 얽힙니다. 그리고 ‘꼬리’하고도 얽힙니다. ‘꼬리’란 ‘끝’을 가리키는데, ‘꼬마’하고도 맞물려요. ‘꼴찌’하고도 엮지요. 곧, ‘꽃’이란 ‘꽂’듯 피는 숨결이면서 ‘꼬리’처럼 ‘끝’을 이루는 ‘꼴찌’이자 ‘꼬마’이지만 ‘곱게’ 맺고 ‘곰곰이’ 돋아나는 숨빛이에요.

 

  씨앗에 싹이 트고 뿌리가 내리고 줄기가 오르고 잎이 돋아야, 비로소 꽃이 피니, ‘끝’에 있습니다. 맨 나중이라 할 ‘꽃’이니 ‘꼬마’요 ‘꼴찌’일 텐데, 얽히고 설키는 우리말 살림을 보노라면 ‘끝’이란 나쁘거나 뒤처지는 곳이 아닌, 언제나 처음을 여는 자리라고도 할 만합니다.

 

  아직 머나먼 길일 수 있는데, 끄트머리에서 겨우 태어날 낱말책이라 하더라도, 꽃으로 피는 고운 숨결을 말마디마다 살포시 얹으려고 생각합니다. 천천히 가노라면 찬찬히 이루겠지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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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꽃삶 3 파랗다 푸르다 | 숲노래 우리말꽃 2022-11-17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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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숲노래 우리말 2022.11.15.

숲노래 우리말꽃

 

‘파란하늘’하고 ‘푸른들’

말꽃삶 3 파랗다 푸르다

 

 

  빛깔말 가운데 ‘파랗다·파랑’이 있고, ‘푸르다·풀빛’이 있습니다. ‘-ㅇ’으로 맺는 빛깔말로 ‘파랑·빨강·노랑·하양·검정’이 있고, ‘-빛’으로 맺는 빛깔말로 ‘풀빛·보랏빛·잿빛·먹빛·물빛·쪽빛’이 있습니다.

 

 파란하늘

 푸른들

 

  ‘파랗다’는 하늘빛을 가리킵니다. ‘푸르다’는 들빛을 가리킵니다. 하늘은 바람으로 가득합니다. 아니, 하늘은 온통 ‘바람’이라 할 테지요. 이 바람은 여느 자리에서는 ‘바람’이되, ‘마파람·휘파람’처럼 다른 말하고 어울리면서 ‘파’ 꼴입니다.

 

 바람

 바다

 바닥

 바탕

 

  ‘파랑·파랗다’는 ‘바람빛’이라고 할 만합니다. 바람에 무슨 빛깔이 있느냐 할 텐데, ‘바람빛 = 하늘빛’이요, 우리 눈으로는 ‘파랑’으로 느낍니다. 다만, 이 파랑이라는 하늘빛이 비추는 ‘바다’는 ‘쪽빛’으로 물들기도 하되, 바다나 물에 바닷말이나 물풀이 끼면 ‘푸르게’ 물들기도 합니다.

 

  바다는 모름지기 ‘물빛’이거든요. 담거나 비추는 결에 따라 빛깔이 다릅니다. 곰곰이 보면 하늘도 해가 물드는 결에 따라 빛깔이 달라요. 동이 트면서 희뿌윰하지요. 얼핏 하얀하늘이 되고, 붉은하늘도 되며, 보라하늘도 됩니다. 노란하늘일 때도 있어요. 밤에는 까만하늘이고요.

 

  하늘이나 바람이나 바다나 물은 무엇을 품거나 담거나 안느냐에 따라 빛결이 바뀌는 셈입니다. 다만 ‘바탕’으로는 ‘파랑’이라는 숨결을 머금어요.

 

  곧 ‘파랑·파랗다’는 바탕을 이루는 빛이요, 바탕이란 ‘바닥’이기도 하지요. ‘바다’라는 곳도 물로 이룬 ‘바닥’입니다. 바다라는 곳은 바닥·바탕·밑을 이루면서 뭇숨결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입니다. 하늘·바람도 뭇숨결이 살아가는 바탕이지요. 사람도 짐승도 벌레도 풀꽃나무도 숨(바람·하늘)을 쉬어야 살거든요.

 

 풀

 풀다

 풀빛

 

  ‘풀빛’이란 ‘풀’을 나타내는 빛깔입니다. 풀은 들풀도 있으나 ‘푸나무’처럼 나무에 돋는 잎도 있어요. 풀잎하고 나뭇잎은 모두 ‘풀빛’입니다. 푸르지요. 갓 돋을 적에는 감잎처럼 노란빛이 어리기도 하고, 가을에 물들 적에도 노랗거나 바알갛기도 합니다.

 

  풀이란 ‘풀다’라는 낱말하고 얽힙니다. 온 들판을 덮는 풀은 뭍에서 살아가는 목숨붙이한테 먹을거리이자 살림물(약)이기도 합니다. 모든 ‘약초’란 ‘풀’입니다. ‘살림풀’을 한자말로 ‘약초’라 할 뿐입니다.

 

 푸지다

 푸짐하다

 

  풀은 들을 덮지요. 숲도 덮습니다. 가없이 많은 결을 나타내는 ‘푸지다·푸짐하다’라는 낱말은 ‘풀’하고 같은 말밑입니다. ‘풀·풀빛’이란, 뭍·땅을 가득 덮는 빛깔이자 숨결을 가리켜요. ‘파랑·바람·바다’는 하늘·물을 가득 이루는 빛깔이자 숨결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예부터 ‘푸르다·파랗다’를 옳게 살피고 가누고 가려서 씁니다. 그런데 더 들여다보면, 풀하고 바람은 만나지요. 사람도 풀도 바람(하늘)을 마셔야 살아가거든요. 풀이 푸를 수 있는 바탕은 바람(하늘)을 머금기 때문입니다. 또한 풀은 뭍이며 땅에서 바탕이자 바닥이자 밑을 이루는 결입니다.

 

  옛사람은 이따금 “파랗게 새싹이 돋는다” 하고도 말했습니다. 틀림없이 풀이요 풀빛인데 왜 ‘파랗다’를 넣었을까요?

 

 싱그럽다

 맑다

 

  풀이며 바람은 싱그럽거나 맑은 기운입니다. 풀을 “파란 새싹”이라 할 적에는 “싱그러운 새싹”이나 “맑은 새싹”이라는 뜻입니다. 이때에는 숨결을 가리키는 말씨이니, 빛깔을 가리키지 않는 만큼, 헷갈리지 않아야 할 노릇입니다.

 

  ‘푸르다’는 ‘풋’으로도 잇습니다. ‘풋열매·풋능금·풋포도’처럼 쓰고, ‘풋사랑·풋풋하다·풋내기’로도 씁니다. 이때에 ‘풋-’은 “푸른 빛깔로 익은” 하나하고 “아직 덜 여물거나 익은” 둘을 가리켜요. 푸른 빛깔인 능금도 달큼한 맛으로 누리고, 푸른 빛깔은 포도도 달면서 살짝 신맛으로 누립니다.

 

  한자로 ‘청(靑)’은 ‘푸르다’입니다. 그런데 ‘청색’이란 한자말을 ‘푸르다’뿐 아니라 ‘파랗다’로도 자칫 섞어서 쓰기도 하면서, 우리말까지 그만 뒤섞는 분이 많더군요. 곰곰이 보면 한자 ‘청(淸)’이 따로 있어요. 푸른 결이건 파란 결이건, 어느 나라 어느 겨레에서나 ‘싱그럽다·맑다’를 담습니다. 빛깔뿐 아니라 숨결을 가리킬 적에 ‘파랗다·푸르다’를 나란히 쓰다 보니 헷갈리는 분이 나올 수 있습니다만, 우리말 ‘맑다·깨끗하다·정갈하다’는 비슷하되 다른 낱말입니다. ‘싱그럽다·싱싱하다·생생하다’도 비슷하되 다른 낱말이에요.

 

  어느 결에서는 맑음을 가리키려고 비슷하게 쓰더라도, 빛깔을 가리킬 적에는 또렷하게 갈라서 쓸 ‘파랗다·푸르다’입니다.

 

  ‘맑다’를 ‘티없다’로도 가리킵니다만, 두 낱말 ‘맑다·티없다’는 같은 낱말은 아닙니다. 비슷하게 가리키되 다른 낱말입니다. 물과 같은 결이기에 ‘맑다’이고, 티가 없기에 ‘티없다’입니다. 우리말 ‘맑다’는 “티가 없는 결”이 아닌 “물과 같은 결”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물과 같은 결 = 바다 같은 결 = 하늘 같은 결 = 바람 같은 결”로 잇습니다.

 

 파리하다

 새파랗게 질리다

 서슬이 푸르다

 한창 푸른 나날

 

  ‘파랗다’에서 갈린 ‘파리하다’가 있습니다. “파랗게 질린다”고 말합니다. 몸이나 얼굴에서 핏물이 사라진다고 여길 적에 ‘파랗다’라 하고, 핏기운이 사라지면서 아파 보이기에 ‘파리하다’라 합니다.

 

  ‘푸르다’는 “서슬이 푸르다” 꼴로 씁니다. 핏기운이 가실 적에는 ‘푸르다’를 안 씁니다. “서슬이 파랗다”처럼 쓰는 일도 없습니다. “새파랗게 어린 녀석”처럼 말합니다. “푸르게 어린 녀석”처럼 쓰는 일은 없습니다. ‘푸르다’는 “한창 푸른 나날을 보낸다”처럼 씁니다. 두 낱말 ‘파랗다·푸르다’는 맞물리는 자리도 있으나, 둘은 또렷하게 다른 낱말입니다.  

 

[국립국어원 낱말책]

푸르다 : 1. 맑은 가을 하늘이나 깊은 바다, 풀의 빛깔과 같이 밝고 선명하다

파랗다 : 1. 맑은 가을 하늘이나 깊은 바다, 새싹과 같이 밝고 선명하게 푸르다

 

  그러나 이 나라(국립국어원)에서 펴낸 낱말책은 두 낱말 ‘푸르다·파랗다’를 엉터리로 풀이합니다. ‘푸르다’에 “하늘빛·바다빛을 닮는다”로 풀이하거나 ‘파랗다’에 “선명하게 푸르다”라 풀이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틀린 말풀이는 얼른 바로잡을 노릇이고, 반드시 뉘우칠 일입니다.

 

  그렇다면 왜 국립국어원을 비롯한 적잖은 사람들이 우리말 ‘푸르다·파랗다’를 헷갈리거나 잘못 쓸까요?

 

  까닭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어요.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배운 일이 드물거든요. 배움터에서는 ‘우리말’이 아닌 ‘국어’를 가르치고, 배움수렁(입시지옥)으로 치르는 ‘국어 시험’은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쓰거나 알거나 다루거나 익히거나 나누는 길을 짚지 않습니다. 온통 일본 한자말에 옮김말씨(번역어투)가 춤추는 ‘말비틀기’라고 할 만합니다. 더구나 낱말책(사전)조차 뜻풀이가 엉망입니다.

 

  배움턱을 한 발짝조차 디딘 적이 없이 시골에서 흙을 짓고 살아가던 수수한 어버이가 아이를 낳아 가르치던 지난날에는 ‘푸르다·파랗다’를 잘못 쓰거나 헷갈린 사람은 없었다고 여길 만합니다. 이와 달리 갈수록 ‘푸르다·파랗다’를 옳게 짚거나 가리는 사람이 빠르게 사라집니다. 이제는 시골에서 살거나 숲에 깃드는 어른이 확 줄 뿐 아니라, 시골에서 놀거나 숲을 품는 아이도 죄다 사라진 판이에요.

 

  들빛하고 하늘빛하고 바다빛을 늘 곁에 두면서 바라보지 않는 삶일 적에는 ‘푸르다·파랗다’라는 빛깔말을 삶으로 마주하거나 배우지 못 합니다. 모든 빛깔말은 들숲바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들숲바다를 삶자리에 두지 않는다면, ‘푸르다·파랗다’뿐 아니라 ‘노랗다·빨갛다·하얗다·검다’ 같은 밑말(기초어휘)이 어떤 뿌리이며 어떻게 퍼졌는가를 어림하기 어려울 만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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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꽃삶 2 살림꽃 | 숲노래 우리말꽃 2022-10-31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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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가정주부’가 아닙니다

말꽃삶 2 살림꽃

 

 

  저는 집안일을 신나게 맡습니다. 어버이 품을 떠난 스무 살부터 모든 살림을 혼자 했습니다. 그때가 1995년이니 혼살림 자취가 제법 길다고 할 만합니다. 1995년부터 혼살림을 하는데, 이해 가을에 싸움터(군대)에 끌려가요. 사내란 몸이니 끌려갈밖에 없습니다. 요새는 어떠한지 모르겠으나, 1994년에 경기도 수원에 있는 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을 적에 여러 소리를 들었어요. “자네는 왜 의사 진단서를 안 떼어오나? ○○만 원만 들이면 진단서 하나 쉽게 떼는데, 진단서가 있으면 바로 면제인데, 왜 안 떼어오지? 내가 자네를 재검대상자로 분류할 테니까 떼오겠나?” 하고 묻더군요.

 

  1994년 봄에 ‘장병 신체검사를 맡은 군의관’이 들려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저 ‘군의관이 척 보아도 면제 대상자이면, 그냥 면제를 매기면 되는데, 왜 목돈을 들여서 진단서를 떼오라고 하는지’ 알 길이 없더군요. 이날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니 우리 어머니 말씀이 “얘야, 거기서 그렇게 말했으면 어머니한테 말하지! 왜 재검을 안 받고 그냥 현역으로 가니! 그 돈이 얼마나 크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눈하고 코가 매우 나빠서, 이 두 가지로 ‘현역 대상 불가’였습니다만, 진단서가 없기에 그냥 스물여섯 달을 강원도 양구 멧골짝에서 싸울아비(군인)로 보냈습니다. 먼 뒷날, 나이가 마흔 살이 훌쩍 넘어간 어느 날 이때 일을 되새기다가 문득 깨달았어요. “아하, 그때 그 군의관은, 저(군의관 본인)한테 진단서 돈을 그자리에서 내주거나 계좌이체를 해주면 바로 진단서를 떼어줄 테니, 쉽게(편하게) 면제를 받으라는 뜻이었구나” 싶더군요.

 

[표준국어대사전]

가정주부(家庭主婦) : 한 가정의 살림살이를 맡아 꾸려 가는 안주인 = 주부

주부(主婦) : 한 가정의 살림살이를 맡아 꾸려 가는 안주인 ≒ 가정주부

안주인(-主人) : 집안의 여자 주인 ≒ 주인댁

 

  낱말책을 보면 ‘안주인’이라 나오는데, 이런 말은 없습니다. 다 일본스런 말씨입니다. 일본에서는 가시버시(부부)를 이룬 두 짝을 ‘주인·내자’로 가리킵니다. ‘주인 = 사내’요, ‘내자 = 가시내’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

내자(內子) : 1. 남 앞에서 자기의 아내를 이르는 말 2. 옛날 중국에서, 경대부의 정실(正室)을 이르던 말

집사람 : 남에 대하여 자기 아내를 겸손하게 이르는 말 ≒ 집

아내 : 혼인하여 남자의 짝이 된 여자 ≒ 규실·내권·처·처실

안사람 :‘아내’를 예사롭게 또는 낮추어 이르는 말

 

  일본스런 한자말 ‘내자(內子)’는 ‘가시내·순이’를 가리킵니다. 이 일본스런 한자말을 풀면 ‘내 + 자 = 집 +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낱말책에 실린 ‘집사람’은 일본스런 한자말 ‘내자’를 그냥 풀어낸 “무늬만 우리말”입니다.

 

  ‘아내’도 “무늬만 우리말”이에요. ‘안해(아내) = 안 + 애”요, ‘안사람’이란 소리인데, ‘집사람·내자’하고 똑같은 말입니다.

 

  무늬가 한글이라서 우리말일 수 없습니다. ‘집사람·안사람·아내’는 그냥 일본말입니다. 일본에서 가시내·순이를 “집에서만 머물며 집일을 도맡고 사내를 섬겨야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 가리키는 뜻입니다. 퍽 묵은 책에 ‘안해(아내)’란 글이 있기도 하다지만, ‘가시내·순이는 집안에만 머물 사람’일 수 없습니다. 낡은 틀(가부장권력)로 바라보는 이름은 말끔히 털 노릇이에요.

 

  참 터무니없는 말씨를 우리 삶터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쓰며 그냥그냥 지나칠 뿐 아니라, 낱말책 뜻풀이마저 엉망입니다. 이러다 보니, 저로서는 이 말씨를 그냥 쓸 수 없어요. 그래도 그럭저럭 써야 하려나 생각하다가 2007년에 이르러 새말을 찾기로 했습니다. 2007년에는 어느 이웃님이 쓰는 ‘옆지기’가 꽤 어울린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옆·곁’이란 비슷한말을 차근차근 뜻풀이를 하면서 ‘옆지기’는 더 쓰고 싶지 않았어요.

 

[숲노래 낱말책]

곁님 : 곁에서 늘 서로 아끼거나 돌보는 사람을 높이는 이름. 가시버시 사이에서 서로서로 쓸 수 있는 이름. 겨울을 함께 견디며 포근히 새날을 꿈꿀 만한 사이인 사람. 가시밭길도 꽃길도 나란히 걸어가면서 삶을 갈무리하고 기쁘게 펼 이야기를 간직하는 두 사람. (← 배우자, 피앙세, 아내, 안사람, 남편, 부인(夫人), 신부(新婦), 신랑(新郞), 와이프, 동반자, 반려(伴侶), 반려자, 자기(自己), 애인)

 

  아직 다른 낱말책에는 없는 낱말인 ‘곁님’입니다만, 2011년 즈음 비로소 ‘곁 + 님’ 얼개로 새말을 지어 보았습니다. 왜 ‘곁님’이란 말을 새로 지었느냐 하면, 우리말은 짝을 이룬 둘이나 여러 사람이 서로 부를 적에 ‘순이돌이’를 굳이 안 가릅니다.

 

  님이면 ‘님’이고, 남이면 ‘남’이고, 수수하면 ‘이’입니다. ‘이이·저이·그이’요, ‘이쪽·저쪽·그쪽’이에요. ‘이분·저분·그분’이나 ‘이님·저님·그님’ 모두 순이돌이 누구한테나 씁니다.

 

  시골 어르신들은 가시버시 사이에서 으레 ‘이녁’이라고 쓰시더군요. ‘집이’라는 말씨도 쓰시지요. 따로 어느 갈래(성별)를 긋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말답게 서로 짝꿍을 가리키는 이름도 따로 어느 갈래(성별)를 안 그어야 맞겠지요.

 

  “곁에 둔다”하고 “옆에 둔다”는 다릅니다. 한울타리를 이루면서 한집안을 이루는 사이라면 ‘곁’이요, 부르기 좋도록 두 글씨일 적에 어울릴 테니 ‘곁 + 님’으로 지었어요.

 

  굳이 ‘-님’을 붙였는데, 부름말로도 서로 높이고 스스로 높일 줄 아는 마음일 적에 시나브로 사랑으로 가리라 여겼습니다.

 

곁님. 곁씨

 

  때로는 ‘곁씨’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에서는 또래나 손아랫사람을 높일 적에 ‘씨’를 붙여요. 어린이나 푸름이(청소년)를 높이려는 말씨로 ‘어린씨·푸른씨’처럼 쓸 만합니다. 어린이는 어른을 보며 ‘어른씨’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얼개를 헤아리면 ‘곁씨’라 해도 어울려요.

 

  그러면 왜 ‘살림꽃’인가를 말할 때로군요. 앞서 집안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한자말 이름 ‘가정주부·주부’를 들었는데, 낱말책 뜻풀이가 좀 웃기지 않나요? 아니, ‘가정주부·주부’라는 한자말부터 너무 낡지 않나요?

 

  이런 이름을 왜 그대로 써야 할까요? 집안일은 순이만 맡아야 할 일이 아닙니다. 돌이도 함께 해야지요. 아니, 가시버시를 이루는 순이돌이가 서로 즐겁게 사랑으로 오순도순 누리면서 일굴 집안일이요 집살림입니다. 토막을 치듯 갈라서 할 일이 아닌, 기쁘게 오롯이 맡을 일입니다.

 

살림꽃 ← 1. 전업주부, 가정주부, 주부, 가사노동자, 관리자

살림꽃 ← 2. 주인(主人/주인장), 능력자, 언성 히어로, 베테랑, 백전노장

살림꽃 ← 3. 문화(문화적), 문화생활, 문화예술, 문명(文明/문명적), 대중문화, 일반문화, 인문(인문적·인문학·인문학적·인문지식)

살림꽃 ← 4. 실학(實學/실학자·실학사상), 노작(勞作), 노작교육, 생활의 지혜, 인생철학, 철학, 교양(敎養), 지식(知識), 지혜

살림꽃 ← 5. 워라벨(워킹 라이프 밸런스), 행복한 생활, 문화행정, 문화재, 문화유산, 전통문화, 전래문화, 전승문화, 고유문화, 유산(遺産), 미풍(美風), 미풍양속(美風良俗), 취미(취미생활)

살림꽃 ← 6. 일화(逸話), 평전, 길흉, 길흉화복, 경영, 경영 마인드, 경영정신, 인간의 가치, 가치, 인격, 인격체, 인권, 권리, 품위, 도리(道理)

살림꽃 ← 7. 발전(발전적), 성장, 발달, 번영(번영기), 번성(번성기), 번화(번화가), 번창, 융성, 향상, 팽창, 개화(開化), 일취월장, 진화(進化), 변화(변화무쌍), 변하다

 

  처음에는 수수하게 ‘살림꾼’이라 쓰는데, ‘-꾼’으로 맺는 우리말을 낮춤말로 여기는 분이 매우 많더군요. 그래서 ‘살림님’이나 ‘살림돌이·살림순이’로 슬쩍 말끝을 바꾸었더니 좋다고 하는 분이 많아요. 저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말끝을 새로 붙여 ‘살림꽃’하고 ‘살림빛’을 써 봤지요.

 

  이처럼 ‘살림꽃·살림빛’이란 두 가지 우리말을 짓고 보니, 이 말씨로 담아낼 만한 여러 길이 확 트여요. 집에서 즐거이 일하는 순이돌이를 가리키는 밑뜻을 바탕으로 ‘베테랑’이나 ‘실학’이나 ‘문화생활’이나 ‘워라벨’이나 ‘인권’이나 ‘발전’까지도 ‘살림꽃’ 같은 수수한 우리말에 담으면 어떨까요? 즐겁지 않습니까? 우리 스스로 꽃이거든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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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에 창피한 ‘네이버 캠페인’ | 숲노래 우리말꽃 2022-10-09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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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네이버 캠페인’으로 뭘 하던데

더없이 낯부끄럽다.

네이버 일꾼이 볼는지 모르겠으나

그네들 누리집에 글을 가볍게 남겼다.

‘훈민정음’하고 ‘한글’을 가를 줄 모른다면

‘한글’하고 ‘우리말’을 가를 줄도 모르겠지?

참말로 창피하다.

 

세종은 ‘우리말을 지키고자 노력하지 않았’다.

세종 무렵에는 ‘한문만 썼는’데?

우리말을 지키려고 목숨을 바친 사람들은

바로 일제강점기 ‘주시경과 이녁 제자들’이다.

 

 

+ + +

 

 

세종 임금은 '훈민정음'을 엮었습니다.

'한글'이란 이름은 일제강점기에 주시경 님이

독립운동을 하면서 지었습니다.

 

1443-1446년에는 '한글'이란 이름은 아예 없었고

조선 500년에 걸쳐 '훈민정음'을 '암클'이란 이름으로

깎아내렸습니다.

 

조선 500년은 오직 한문(중국글)만 나라글로 삼았고,

개화기에 '국한문혼용'을 하던 이들은 

한문을 안 쓴다고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틀림없이 우리글이지만, 정작 제대로 쓰이지 못한 채 묻힌 훈민정음을

주시경 님이 처음으로 우리말틀(국어문법)을 세우고 가다듬고서

그 뒤로는 주시경 님 제자들이 조선어학회 일꾼으로 애쓰면서

가갸날을 거쳐 한글날이란 이름으로 오늘에 이르렀고

해방 뒤에도 1990년대까지도 '한자를 안 쓰고 한글로만 글을 쓰는 사람'은

무식하다고 놀림을 받았습니다.

 

한글날이 한글날인 까닭은

훈민정음과 세종을 기리는 뜻도 틀림없이 있으나

<독립신문> 편집장이기도 했던 주시경 님이

'한글'이란 이름을 처음 지어서

이 나라 사람들이 '우리말을 우리글로 담는 틀'을 비로소 세우고 알리고 가르치고 나누어

오늘날에 이른 발자취를 잊고서

함부로 글을 쓰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종 임금은 '훈민정음 창제'이지 '한글 창제'가 아닙니다.

훈민정음하고 한글이 어떻게 다른지,

또 우리말은 무엇인지를 가를 줄 모른다면

더구나 제대로 셋을 가를 줄 모르는 채

한글날 네이버 '캠페인'을 하니

참으로 창피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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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꽃삶 1 한글·훈민정음·우리말 | 숲노래 우리말꽃 2022-09-23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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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날’이 아닌 ‘한글날’인 까닭

말꽃삶 1 한글·훈민정음·우리말

 

 

  어릴 적에는 그냥그냥 떠오르는 대로 말을 하고, 둘레 어른이나 언니한테서 들은 말을 외워 놓았다가 말을 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틀리거나 엉뚱하거나 잘못된 말을 꽤 자주 읊으며 손가락질이나 놀림을 받았어요. “야, 그런 말이 어디 있니?”라든지 “내 말을 흉내내지 마!”라든지 “무슨 소리야? 다시 말해 봐.” 같은 말을 숱하게 들었습니다.

 

  어린이는 아직 ‘말(우리말)’하고 ‘글(한글)’을 또렷하게 가르지 못 합니다. 입으로 하니까 말이요, 손으로 적으니까 글이라고 알려준들, 적잖은 어린이가 ‘왼쪽·오른쪽’을 오래도록 헷갈려 하듯 ‘말(우리말)·글(한글)’도 헷갈려 하지요.

 

  어른 자리에 선 사람이라면, 아이가 ‘왼쪽·오른쪽’을 찬찬히 가릴 수 있을 때까지 상냥하고 부드러이 짚고 알려주고 보여줄 노릇입니다. ‘말·글’을 또렷하게 가르지 못하는 줄 상냥하고 부드러이 헤아리면서 느긋이 짚고 알려줄 줄 알아야 할 테고요.

 

  그런데 우리 배움터를 보면, 예나 이제나 배움터 구실보다는 배움수렁(입시지옥) 모습입니다. 배움수렁에서는 ‘왼쪽·오른쪽’이나 ‘말·글’이 헷갈리는, 또 ‘가르치다·가리키다’를 또렷이 갈라서 쓰지 못하는 어린이를 지켜보지 않아요. 셈겨룸(시험문제)을 한복판에 놓습니다.

 

  이러다 보니 어린이일 때뿐 아니라 푸름이일 때에도, 또 스무 살을 넘기고 마흔 살을 지나더라도 ‘우리말·한글’을 옳게 가르지 못 하는 어른이 꽤 많아요. 10월 9일 ‘한글날’은 한글을 기리는 날입니다. 우리말을 기리는 날이 아니에요. 일본이 총칼을 앞세워 쳐들어오면서 우리나라 숨통을 죄고 짓밟을 무렵, 그들(일본 제국주의)은 ‘우리말(조선말)’을 없애려 했습니다. 이즈음 우리나라에서는 주시경 님이 ‘훈민정음’이라는 우리 옛글을 ‘한글’이란 이름으로 바꾸면서, “우리말을 우리글로 담는 얼거리”를 비로소 처음으로 제대로 새롭게 세웁니다.

 

  진작부터 우리말을 버리고서 일본말을 쓰는 조선사람이 수두룩했지만, 우리가 쓰는 말(우리말)을 담는 글(우리글)을 새롭게 바라보면서 누구나 쉽게 익히고 삶으로 품으면, 우리나라는 일본 제국주의한테 안 잡아먹히리라 여긴 주시경 님입니다.

 

  주시경 님이 ‘우리말 얼거리(국어문법)’를 비로소 세우면서 가다듬고 추슬러서 내놓을 적에는, 조선사람뿐 아니라 일본사람도 주시경 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었고, 조선총독부조차 주시경 님이 들려주는 “우리말 이야기(강좌·강의)”를 귀담아들을 뿐, 함부로 막거나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들(조선총독부)은 오히려 조선사람 스스로 아직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손수 엮어낼 엄두를 못 낼 1920년에 《朝鮮語辭典》을 떡하니 내놓았습니다.

 

  깊이 본다면, 주시경 님은 ‘자주독립운동’이라는 큰뜻을 품고서 ‘훈민정음’을 ‘한글’로 바꾸어, 참말로 모든 한겨레가 말살림을 글살림으로 옮기면서 우리 넋과 얼을 지키는 데에 온마음하고 온힘을 바쳤습니다. 이런 엄청난 일을 꾀하고 벌일 적에 조선총독부가 왜 섣불리 주시경 님을 건드리지 못 했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저들 조선총독부는 조선을 사로잡고 억누르고 ‘한겨레넋(조선사람다운 넋)’을 없애려면, 저들 일본사람과 앞잡이(친일부역자)부터 우리말(조선말)을 제대로 알고서 배운 다음에, ‘글을 모르고 말만 아는 조선사람’을 휘어잡는 길을 펴야 했더군요.

 

  그러니까, 주시경 님은 일제강점기에 첫손으로 꼽을 만큼 검은이름(블랙리스트)에 들었으나, 오히려 ‘조선총독부로서도 배워야 할 사람’이었기에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고 하겠습니다. 조선총독부로서는 주시경 한 사람 목을 쳐서 없애기는 쉽지만, 이런 짓을 했다가는 ‘조선총독부로서도 조선말을 제대로 익혀서 앞잡이(친일부역자)를 부린다거나, 조선을 거머쥐는(식민 지배) 길’이 외려 어려울 만했습니다.

 

  주시경 님이 남긴 글을 살피면, 주시경 님 스스로도 이 대목을 잘 알았다고 느낍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한겨레옷만 입으려 했고, ‘가방’이 아닌 ‘보따리’만 챙겼어요. 주시경 님을 가리키는 덧이름 하나는 ‘주보따리’입니다. 둘레에서는 차림옷(양복)에 구두에 한껏 멋을 부릴 뿐 아니라, 한겨레스러운 모습을 버리지만, 주시경 님은 끝까지 ‘한겨레로서 한겨레다운 살림’을 지키고 돌보았습니다.

 

  저는 1982∼87년 사이에 어린배움터(국민학교)를 다니면서 이런 이야기를 배움터에서 듣고 익혔어요. 그무렵에는 세종대왕보다도 주시경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고, 우리가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크나큰 힘 가운데 하나는 ‘우리 말글’을 지킨 일이었고, 우리 말글은 바로 주시경 님이 ‘훈민정음’을 ‘한글’로 바꾼 때부터라고 가르쳐 주었어요.

 

  요즈막 어린배움터나 푸름배움터에서는 주시경 이야기를 거의 안 짚거나 안 가르친다고 느낍니다. 요새는 세종대왕 이야기만 넘칩니다. 그런데 세종대왕은 ‘한글’이 아닌 ‘훈민정음’을 엮었고, 훈민정음이란 ‘소리(소릿값·바른소리)’입니다. 훈민정음은 조선 무렵에 ‘조선팔도 글바치가 저마다 팔도 사투리로 중국말을 하기’ 때문에 ‘서울 및 임금터(궁궐)에서 이야기(의사소통)를 제대로 하려’면 ‘중국말을 읊는 소리(소릿값)부터 하나(통일)로 맞추어야 한다고 여기’면서 내놓았어요. ‘훈민정음 = 소리(발음기호)’입니다. 더구나 훈민정음은, 조선사람 누구나 한문을 똑같이 읽도록 맞춘 소릿값(발음기호)이지요.

 

  세종대왕이 편 훈민정음이란, 조선팔도 사람들이 마음껏 쓰던 ‘사투리’를 오직 ‘서울말’로만 맞추라고 하는 틀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선팔도 글바치(양반·사대부·지식인)는 세종대왕한테 맞서는 글(상소)을 끝없이 올렸는데,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은 한문을 바르게 읽는 소릿값’이라는 뜻을 알렸으며, ‘훈민정음 = 자주독립’이 아닌 ‘훈민정음 = 중국 사대주의’라는 대목을 깨달은 글바치는 더는 세종대왕한테 안 맞섰습니다.

 

  조선 무렵에 훈민정음이라는 소릿값이 태어나고서 나온 여러 책을 살피면 훈민정음은 ‘우리글’이 아니라 ‘한문을 읽는 소릿값(발음기호)’일 뿐인 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다만, 세종대왕은 중국 사대주의를 더 깊이 다지고, 봉건주의를 한결 단단히 세우려는 틀로 훈민정음을 엮었지만, 사람들은 이 ‘소릿값(발음기호)’을 쉽게 다루면서 ‘우리 마음을 우리글로 옮기는 실마리’로 삼았습니다. 아주 드문 몇몇 글바치는 훈민정음으로 책을 남겼거든요.

 

  그리고 낡은틀(남성 가부장 권력)이 드센 조선 500해에 걸쳐 몹시 억눌리고 밟힌 순이(여성)는 한문으로도 글을 남겼으나, 이 훈민정음으로도 글을 남겨 주었습니다. ‘암클’이란 소리를 들은 훈민정음이되, 오히려 ‘순이가 살려주고 돌봐주었기에 살아남은 우리 글씨인 훈민정음’이라고 하겠습니다. 돌이(남성)로서는 정철·김만중·홍대용 님도 훈민정음으로 글을 남겨 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한글’은 주시경 님이 일제강점기에 새롭게 바꾸어 낸, 아니 처음으로 빛을 보도록 촛불을 켠 우리글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니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다”는 말을 하면 아주 틀립니다. 세종대왕은 중국 사대주의를 단단히 펴려는 뜻으로 ‘발음기호인 훈민정음을 엮었다’고 해야 올바릅니다. 주시경 님도 우리글을 새롭게 짓지는 않았어요. ‘발음기호였던 훈민정음’을 ‘누구나 말을 글로 옮기기 쉽도록 틀을 짜고 세우는 길을 처음으로 연’ 주시경 님입니다.

 

  한글날이란, 우리말을 우리글로 옮기는 첫발을 비로소 내딛은 새길을 기리는 하루입니다. 한글날은 ‘훈민정음을 기리는 날’이 아닙니다. 한글날은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음을 우리 나름대로 ‘글로 옮기는 길’을 처음으로 세운 그날(일제강점기에 자주독립으로 깨어나려던 땀방울)을 기리는 잔치입니다.

 

  예전에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했다”고만 말했으나, 요새는 갈수록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다”고 말하는 글이나 책이 쏟아집니다. 속내를 숨기면서 ‘우리말이 우리글로 피어난 길’을 사람들이 못 알아채도록 가로막는 슬픈 수렁이라고 느낍니다.

 

  세종대왕은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세종대왕은 그저 ‘새로 선 나라’인 조선을 더욱 단단히 봉건사회로 다스리려는 뜻이었기에, ‘조선팔도 사투리로 읊던 중국말’을 ‘서울말로 중국말을 읊는 틀’로 고쳐서 가다듬으려고, ‘훈민정음’이란 소릿값(발음기호)을 세웠을 뿐입니다.

 

  조선 오백 해는 중국을 섬긴 나날입니다. 중국 사대주의이지요. 일제강점기는 일본을 우러른 나날입니다. 슬픈 제국주의입니다. 사대주의하고 제국주의가 서슬퍼렇던 때에는 어떤 사람도 마음껏 생각하지 못했고, 말도 글도 홀가분히 펴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한복판이지만, 목숨을 바쳐 우리글을 갈고닦은 사람이 있어요. 일본 제국주의가 물러난 뒤에도 오래도록 군사독재가 이었는데, 이동안에도 우리말하고 우리글을 가다듬은 사람이 있습니다.

 

  한글은 주시경 님이 일구었습니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엮었습니다. 우리말은 다 다른 우리나라 사람들이 저마다 제 삶자리·보금자리에서 스스로 살림을 짓고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면서 수수하게 지었습니다. ‘한글·훈민정음·우리말’ 세 가지를 이제부터 우리 스스로 찬찬히 바라보고 아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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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길잡이 3 노독 여독 | 숲노래 우리말꽃 2021-12-03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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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우리말 길잡이

3 노독 여독

 

 노독을 풀 겸 → 길앓이도 풀고

 노독을 해소하지 못하고 → 지쳤는데 풀지 못하고

 여독도 풀지 않은 채 → 길앓이도 풀지 않은 채

 추위와 여독으로 → 춥고 힘들어 / 춥고 고단해

 산후 여독으로 고생하다 → 아기 낳고서 애먹다

 과거에 고문을 당한 여독으로 → 예전에 두들겨맞은 탓에

 

노독(路毒) : 먼 길에 지치고 시달려서 생긴 피로나 병 ≒ 길독·노곤

여독(旅毒) : 여행으로 말미암아 생긴 피로나 병

여독(餘毒) : 1. 채 풀리지 않고 남아 있는 독기 ≒ 후독 2. 뒤에까지 남아 있는 해로운 요소 ≒ 여열·후독

 

 

  집을 떠나 바깥에서 오래 돌아다니거나 머물면 지치거나 힘들다고 합니다. 이럴 적에 한자말 ‘노독·여독’을 쓴다더군요. 그런데 낱말책을 보면 한자말 ‘여독’이 둘입니다. 두 가지를 헤아린다면, 우리 나름대로 새롭게 옮기거나 손질하거나 풀어낼 만합니다.

 

  먼저 ‘餘毒’을 살펴볼게요. 이 한자말은 “남다 + 찌끄레기”입니다. 수수하게 ‘남다·있다’로 풀어낼 만합니다. 찌끄레기가 남는다고 할 적에는 뒤(뒷날)까지 찌끄레기가 잇는다는 뜻이요, 이러할 때에 ‘뒤끝·뒤앓이·뒷멀미’로 나타내지요.

 

  또는 ‘앙금·앓다·피나다·생채기’라 나타낼 만해요. 단출히 ‘찌꺼기·찌끄레기·찌끼’로 고쳐써도 어울립니다. 남아서 뒷날에도 이어가는 찌끄레기라면‘티끌·고름·멍·멍울’ 같은 낱말로 나타내도 돼요. ‘탓·때문’으로 고쳐써도 됩니다.

 

길앓이(길앓다) ← 노곤, 노독(路毒), 여독(旅毒), 녹다운, 피로(疲勞), 피곤, 피곤증, 방전(放電), 케이오(K·O), 무력(無力), 무력화(無力化), 무기력, 기진맥진, 맥빠지다, 탈진,  번아웃(burnout), 전의상실, 녹록하지 않다, 과부하

 

  다른 한자말 ‘路毒·旅毒’은 처음부터 새말을 지어 보고 싶어요. ‘길앓이’입니다. ‘길앓이’란 낱말을 지어 놓고 보니, 이 낱말은 ‘노독·여독’뿐 아니라 다른 한자말이나 영어를 담아내는 자리에도 쓸 만하겠어요.

 

  새로 지은 낱말을 굳이 한 자리에만 써야 하지 않습니다. 여러 곳에 어울리면 여러 곳에 즐겁게 쓰면 돼요.

 

 지치다·시달리다·고단하다·고달프다·졸리다

 기운없다·힘없다·힘겹다·힘들다

 느른하다·나른하다·녹초

 

  그리고 수수하게 쓸 말씨를 하나하나 헤아립니다. 지치니까 ‘지치다’라 하면 되어요. 기운이 없으니 ‘기운없다’라 합니다. 녹초가 되니까 ‘녹초’라 하지요. 우리를 둘러싼 수수한 말씨를 하나씩 떠올리면서 실마리를 풉니다. 여태 수수하게 쓰던 낱말을 가만히 떠올리면 새롭게 쓰임새를 찾아낼 만합니다. ㅅㄴㄹ

 

 

한 달내 쌓인 노독은 한 번 깊이 온 잠을 붙들고

→ 한 달내 쌓인 찌끼는

→ 한 달내 지쳐서

→ 한 달내 길앓이는

《맑은 하늘을 보면》(정세훈, 창작과비평사, 1990) 32쪽

 

게다가 노독마저 겹쳐 초췌한 모습이었다

→ 게다가 느른해서 깡마른 모습이다

→ 게다가 고단해서 여위었다

《야사로 보는 삼국의 역사》(최범서, 가람기획, 2006) 94쪽

 

여독에 지쳐버린 여행자들의 안식처로 제격인

→ 지쳐버린 나그네가 쉴 만한

→ 느른한 길손이 머물기 좋은

《한국의 아름다운 마을》(이영관, 상상출판, 2011) 85쪽

 

조선에 문맹자 많은 것은 일제통치가 남긴 여독 중의 가장 큰 것의 하나니까

→ 조선은 일본이 총칼로 억눌렀기 때문에 글못보기가 아주 많으니까

→ 조선은 일본이 총칼로 짓밟은 멍울로 글모르는 이가 무척 많으니까

《월북작가에 대한 재인식》(채훈·이미림·이명희·이선옥·이은자, 깊은샘, 1995) 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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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길잡이 2 코스모스 | 숲노래 우리말꽃 2021-11-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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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2021.11.22.

우리말 길잡이 2 코스모스

 

 

 코스모스가 만발한 정원에서 → 살살이꽃이 가득한 꽃밭에서

 코스모스 향기를 → 산들꽃내를

 어머니랑 코스모스를 심었어요 → 어머니랑 한들꽃을 심었어요.

 

코스모스(cosmos) : [식물] 국화과의 한해살이풀

코스모스(cosmos) : [철학] 질서와 조화를 지니고 있는 우주 또는 세계

コスモス(cosmos) : 1. 코스모스 2. 우주. 질서와 조화 있는 세계 3. 국화과의 1년초

 

 

  이름을 새로 짓는 길은 어렵지도 쉽지도 않습니다. 꽃이나 풀이나 나무한테 이름을 새로 붙이는 일은 쉽지도 어렵지도 않습니다. 누구나 할 만합니다. 스스로 마음을 기울여 가만히 마주하면서 사랑이라는 숨빛을 밝혀서 생각을 지으면 어느새 이름 하나가 사르르 풀려나오기 마련입니다.

 

  이웃나라 꽃이름을 우리말로 옮기기는 어려울까요? 어렵다고 생각하면 어려울 만합니다. 그러면 이웃나라에서 이 꽃이름 하나를 어떻게 누가 지었는가를 그려 보기로 해요. 이웃사람은 꽃이름을 어떻게 지었을까요?

 

  우리가 가리키는 꽃이름은 모두 먼먼 옛날부터 수수하게 살림을 짓고 흙을 만지며 아이를 낳아 돌보던 어버이가 지었어요. 때로는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나는 아이들이 문득 지었지요. 오늘날에는 꾼(전문가)이 이름을 지어야 하는 줄 잘못 여깁니다. 때로는 꾼이 지어도 되어요. 그러나 모름지기 모든 이름은 삶을 짓고 살림을 가꾸며 사랑을 속삭이는 사람들 누구나 스스로 짓습니다. 이러한 이름을 달리 가리키자면 ‘사투리’요 ‘마을말·고을말·고장말’입니다.

 

  나라지기나 나라일꾼이 지어 주는 이름을 외울 때도 있겠지요. 우리가 즐겁게 지은 이름을 나라에서 받아들여 널리 쓸 때도 있어요. 어느 쪽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스스로 생각을 밝히는 눈빛이면 넉넉합니다.

 

 살살이꽃

 

  이 땅에서는 ‘코스모스’를 두고 일찍부터 ‘살살이꽃’이라 했습니다. 살살 춤추듯, 살몃살몃 춤사위를 펴듯, 잔바람에도 가벼이 흔들리면서 가느다란 줄기가 의젓한 꽃이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입니다.

 

  바리데기 옛이야기에도 ‘살살이꽃’이 나옵니다. 옛이야기에서는 “살을 살리는 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나름대로 옛이야기하고 맞물려 ‘코스모스’에 새 숨결을 불어넣을 만해요. 바리데기 옛이야기에 나오는 ‘살살이꽃’은 오늘날 ‘코스모스’하고 다를 만하지만, 이름은 나란히 써도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결을 더 돌아보면, ‘살살’ 춤추듯 잔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산들꽃·산들산들꽃’처럼 담아낼 만해요. 가볍고 싱그러우면서 시원한 바람을 가리키는 ‘산들’을 꽃이름으로 옮겨 봅니다. ‘산들’하고 맞물리는 ‘한들’을 넣어서 ‘한들꽃·한들한들꽃’처럼 새롭게 이름을 지어도 어울려요.

 

 산들꽃·한들꽃

 산들산들꽃·한들한들꽃

 

  이름짓기를 대단하게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스스로 마음에 사랑이라는 숨결을 얹으면 누구나 이름을 즐거이 짓기 마련이에요. 누구는 ‘흔들꽃’이나 ‘춤꽃’이란 이름을 붙일 만해요. 누구는 ‘설렘꽃’이나 ‘두근꽃’이란 이름을 붙이겠지요. 설레거나 두근거릴 적에 몸을 흔들기 마련이잖아요? 춤을 추는 듯한 꽃이니 ‘춤꽃’이라 해도 어울려요.

 

ㅅㄴㄹ

 

나는 바람으로 당신은 코스모스로 우리의 들판길 사랑은 시작되었습니다

→ 나는 바람으로 그대는 살살이꽃으로 우리 들판길 사랑을 열었습니다

→ 나는 바람으로 너는 한들꽃으로 우리 들판길 사랑이 피었습니다

《맑은 하늘을 보면》(정세훈, 창작과비평사, 1990) 8쪽

 

이토록 일본에서 사랑받고 상륙하자마자 전국에 퍼진 코스모스가

→ 이토록 일본에서 사랑받고 들어오자마자 널리 퍼진 살살이꽃이

→ 이토록 일본에서 사랑받고 스며들자마자 두루 퍼진 산들꽃이

《플로라 플로라, 꽃 사이를 거닐다》(시부사와 다쓰히코/정수윤 옮김, 늦여름, 2019) 185쪽

 

.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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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길잡이 1 국민학교·초등학교 | 숲노래 우리말꽃 2021-11-14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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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2021.11.14.

 

우리말 길잡이

1 국민학교·초등학교

 

 

 국민학교 이상의 학력이라면 → 어린배움터를 나왔다면

 국민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 씨앗배움터를 마치고서

 당시의 국민학교를 회상하면 → 그무렵 첫배움터를 떠올리면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셋 → 어린배움터에 다니는 아이가 셋

 인근 초등학교에 배정받았다 → 둘레 씨앗배움터로 간다

 초등학교 생활은 공부도 중요하지만 → 첫배움터에서는 배우기도 해야 하지만

 

국민학교(國民學校) : [교육] ‘초등학교’의 전 용어

초등학교(初等學校) : [교육] 아동들에게 기본적인 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학교.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만 6세의 어린이를 입학시켜서 6년 동안 의무적으로 교육한다. 1995년부터 ‘국민학교’ 대신 쓰이게 되었다

 

 

  우리는 1996년에 이르러서야 어린이가 다니는 배움터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다만, 나라(정부)에서 앞장서지 않았어요. 나라는 그때까지 팔짱을 끼었습니다. 아무리 ‘국민학교’란 이름이 일본이 총칼로 우리나라를 짓밟던 무렵에 ‘국민학교령’으로 ‘황국신민학교’란 이름을 내세웠다 하더라도, 1941년부터 1995년까지 자그마치 쉰네 해나 쓰지 않았느냐고 콧방귀였습니다. 어린이가 다니는 배움터 이름을 고치자고 목소리를 높인 사람들은 자그마치 쉰네 해 동안 나라가 팔짱만 끼고서 아이들을 모르쇠하지 않았느냐고 외쳤어요.

 

  자, 이 두 가지를 생각해 볼까요? 나라는 ‘자그마치 쉰네 해를 쓴 이름을 바꿀 수 없다’요, 사람들은 ‘자그마치 쉰네 해나 팽개친 엉터리 이름을 이제부터 바꾸자’라 했어요.

 

  쉰 해 넘게 쓴 이름이기에 바꾸면 안 될까요? 쉰 해 넘게 얄궂은 찌끄레기를 퍼뜨렸기에 이제부터 바로잡고서 새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요? 익숙한 이름을 버리기란 어려울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더 생각해 봐요. 누구한테 익숙할까요? 어린이한테 익숙할까요, 어른한테 익숙할까요? 쉰네 해를 썼다는 ‘국민학교’는 바로 어른한테 익숙합니다. 배움터에 다닐 어린이나 배움터를 다니는 어린이는 이름에 어떠한 뜻이 서렸는가를 알면 “뭐야? 그런 이름이라구? 그럼 바꿔요!” 하고 목소리를 내지 않을는지요? 어제를 살았고 오늘을 살며 모레를 살아가는 길이라면, 이 자취를 살펴야지 싶습니다.

 

  그러면 이름을 어떻게 고치느냐인데, 어린이가 다니는 곳이니 ‘어린이’란 이름을 넣을 적에 가장 어울려요. 그렇지요? ‘학교 = 배우는 곳·터’입니다. 이 얼거리를 살피면 ‘배움곳·배움터’처럼 이름을 고칠 만합니다. ‘학교’란 이름이 익숙한 어른한테 맞추지 말고, 이제 새롭게 배우는 길에 접어들 어린이 자리에서 헤아리며 맞출 노릇입니다. 배우는 곳이기에 ‘배움곳’이라 하면 되고, 배우는 터이기에 ‘배움터’라 하면 됩니다. 더 줄여서 ‘배곳·배터’라 하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린이가 배우는 곳 : 어린이 + 배우다 + 곳 = 어린이배움터·어린배움터

 

  말짓기는 가장 쉽게 생각하면 됩니다. 말짓기는 어린이 눈높이로 어깨동무하면서 바라보면 됩니다. 어린이가 배우는 곳이기에 ‘어린이배움터’란 이름을 얻어요. 이 이름을 줄여 ‘어린배움터’나 ‘어린배곳’처럼 쓸 만합니다.

 

 어린이터·어린터

 씨앗배움터·씨앗터

 첫배움터·첫터

 

  이밖에 이름은 더 생각할 만해요. ‘배움’이란 말을 굳이 안 넣어도 돼요. ‘어린이터’나 ‘어린터’라 지어도 되고, 어린이는 앞으로 푸르게 우거질 숲으로 무럭무럭 자랄 밑바탕이라는 뜻으로 ‘씨앗 + 배움터’라 할 만합니다. 처음 배운다는 뜻으로 ‘첫 + 배움터’라 해도 어울려요.

 

  이렇게 차근차근 이름을 짓노라면 ‘어린터·어린배곳’이나 ‘씨앗터·첫터’처럼 길이까지 퍽 짧게 새말을 얻습니다. 한자말을 쓰기에 더 짧지 않아요. 스스로 슬기롭게 생각을 기울이면 우리말로도 넉넉히 짧게 지을 뿐 아니라, 한자말보다 훨씬 짧으면서 쉽게 살필 만한 낱말을 엮기도 합니다.

 

 

여덟살박이 올해 국민학교 이학년 사내아이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 여덟살박이 올해 어린이터 두걸음 사내아이 이제 무얼 할까

→ 여덟살박이 올해 첫배움터 두발짝 사내아이 이제 무얼 할까

《맑은 하늘을 보면》(정세훈, 창작과비평사, 1990) 16쪽

 

초등학교는 등수를 매기지 않기 때문에

→ 어린배움터는 줄을 매기지 않기 때문에

→ 씨앗배움터는 줄을 세우지 않기 때문에

《선생님, 더불어 살려면 어떻게 해요?》(정주진, 철수와영희, 2020) 70쪽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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