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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읽는 눈] 시골에서 살며 사전을 짓듯 읽고 쓰다 | 시골살림도감 2017-07-2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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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살며 사전을 짓듯 읽고 쓰다
[삶을 읽는 눈] 백 번 읽을 책인가


  해마다 여름 한복판에 날씨가 폭 꺾이는 때가 있습니다. 틀림없는 여름 무더위입니다만, 어느 날 문득 새벽부터 선선하더니 낮에 땡볕이 내리쬐어도 땀이 흐르지 않다가 밤을 맞이하면 으슬으슬해서 이불을 꺼내어 덮어야 해요. 어제 바로 이런 날씨가 찾아왔습니다. 절기로 치면 중복하고 입추 사이입니다.

  흔히들 말하기를, 시골하고 서울은 달라서, 시골에서는 밤이나 새벽에 살짝 춥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도시에서는 낮 내내 달구어진 기운이 식을 틈이 없어요. 시골에서는 흙하고 풀하고 나무가 있을 적에는 낮 내내 햇볕이 아무리 내리쬐어도 해가 넘어가면 ‘달구어진 기운’이 더는 없습니다. 돌이나 시멘트나 아스팔트는 밤이 되어도 뜨끈뜨끈할 테지만, 풀이나 흙이나 나무는 밤이 되면 식어요.

  나무 밑에 서면 에어컨을 쐴 적보다 훨씬 시원하다고 합니다. 이런 말은 어릴 적부터 곧잘 들었으나 막상 시골에서 살며 우리 집 나무를 곁에서 늘 누리기 앞서까지 살갗으로 느끼지는 못했어요. 서울 같은 곳에서 어쩌다가 한두 번 아름드리나무를 마주하며 참 시원하네 하고 느낄 적하고, 시골 보금자리에서 늘 아름드리나무를 바라보며 참말로 시원하구마잉 하고 느낄 적은 사뭇 달라요.

  시골에서 살며 낫으로 처음 풀을 벨 적에는 만만한 일이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한 해 두 해 흐르고 세 해 네 해 가며 다섯 해 여섯 해를 지나는 동안 낫질은 하나도 안 대수롭다고 여깁니다. 서둘러서 할 일이 아닐 뿐더러, 결을 살펴서 슥슥 그으면 되는 일이라고 손으로 몸으로 눈으로 다리로 깨달아요.

  가게에서 사다 먹는 열매하고 손수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바로 따먹는 열매는 같은 맛이 아닙니다. 아이들도 바로 따먹는 열매맛을 누리고, 저도 바로 따먹는 열매맛을 누리면서 ‘맛이란 무엇인가’를 새삼스레 배웁니다.

  이른바 누리면서 배우는 삶입니다. 느끼면서 배우는 살림입니다. 그리고 나누면서 배우는 사랑이기도 해요.

  봄가을하고 겨울에는 마을 어귀 빨래터를 보름마다 치웁니다. 여름에는 이 빨래터를 열흘마다 치웁니다. 여름에는 물이끼가 더 빨리 넓게 자라요. 이제 마을 할매는 빨래터를 치우기 어려운 나이라 할 만하기에 저희가 여러 해째 빨래터 치우기를 도맡습니다. 오늘날 시골에는 집집마다 물꼭지가 있고 빨래기계가 있으니 굳이 빨래터로 빨랫감을 이고 지고 나오는 일이 없어요. 지난날에는 빨래터가 늘 북적였겠지요. 물도 이곳에서 길었을 테고요.

  빨래터를 보면 겨울에 아무리 추워도 물이 졸졸 흘러요. 겨울이라고 어는 법이 없습니다. 더욱이 여름에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좔좔 흐르고요. 못마다 물이 바닥까지 바짝 말라도 마을 빨래터에 흐르는 물줄기는 늘 같습니다. 참으로 한결같아요. 여름에는 더욱 시원하고 겨울에는 무척 따스한 물이에요.

  우리 식구가 시골에 보금자리를 틀지 않았다면, 마을에서 살며 이러한 살림살이를 곁에 두지 않았다면, 마을 분들이 모두 나이가 많아 빨래터를 못 치울 나이가 되지 않았다면, 빨래터 물줄기가 어떤 뜻인지 못 읽었으리라 생각해요.

  서울에서 살며 책을 읽기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내 집을 장만하자면 벅차고, 다들 일터를 오가느라 바쁠 뿐 아니라, 먹을거리를 장만하랴, 이것을 하랴 저것을 하랴 참으로 부산하지요. 짧은 길을 자동차로 달려도 어디나 늘 자동차로 가득하니 머리가 곤두서요. 버스나 지하철은 사람들로 넘실대기에 마음을 가다듬어 책을 읽기에 안 만만하다고 할 만해요.

  시골에서 살며 책을 읽기란 수월할까요? 보기에 따라 다를 텐데, 쑥처럼 쑥쑥 올라오는 풀을 베기도 하고, 살림을 꾸리기도 하고, 아이들하고 어우러지기도 하고, 여기에 저기에 마음을 쓰고 몸을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등허리가 결리면서 마룻바닥에 벌렁 드러눕습니다. 땀을 몇 바가지 쏟고 나면 손가락을 까딱할 힘마저 남지 않아요.

  이런 하루를 보내면서 책을 손에 쥘 적에는 눈부신 빠르기로 책을 잡아먹을듯이 읽습니다. 몸을 쉬면서 마음을 살찌울 이야기를 느끼거든요. 그렇지만 때로는 책을 매우 느리게 읽습니다. 읽은 대목을 다시 읽기도 합니다. 줄거리만 훑자고 책을 읽지는 않기 때문이에요. 밍밍하거나 싱거운 대목은 빠르게 읽어내지만, 뒷통수에 벼락이 치듯 찌릿찌릿한 이야기가 흐를 적에는 글씨를 하나하나 새기면서 읽고 되읽어요.


  네 식구가 함께 모여 영화를 볼 적에도 이와 같습니다. 시골에는 극장이 없으니 디브이디나 파일로 영화를 사서 봅니다. 우리 식구는 ‘볼 만한 영화’를 한 번만 보고 끝내는 일이 없습니다. 더욱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내처 보는 일이 없어요. 어느 대목을 다시 보려고 되감기 일쑤예요. 자막이 아무래도 틀린 듯해서 영어나 일본말을 새겨서 들으려고 자꾸 되감고요.

  볼 만한 영화라 한다면 적어도 다섯 번을 봐요. 다섯 번쯤 보는 동안 줄거리하고 배역에 얽힌 실타래를 헤아립니다. 열 번쯤 보면서 바탕자리를 둘러싼 속뜻을 헤아리고, 스무 번이나 서른 번쯤 보면서 영화 하나로 깊고 넓게 나눌 수 있는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어떤 분이 묻더군요. “어떻게 같은 영화를 서른 번이나 백 번을 볼 수 있어요?” 저는 그분한테 되물어요. “어떻게 백 번이나 이백 번쯤 볼 만한 영화를 즐겁게 안 보고, 딱 한 번 보고 그칠 영화만 자꾸자꾸 보시나요?”


  영화평을 쓸 만한 영화라면 적어도 서른 번쯤 보아야 한다고 느껴요. 영화평을 제대로 쓰려면 쉰 번쯤 보아야지 싶어요. 우리 이웃이 영화를 사랑하도록 북돋울 만한 영화평을 쓰려면 백 번 넘게 보아야지 싶고요.

  책을 다루는 글은 어떠할까요? 우리는 백 번쯤 되읽으면서도 늘 새롭게 배울 만한 이야기가 흐르는 책을 읽고서 느낌글(서평)을 쓸까요? 아니면 빨리빨리 책 한 권을 읽어치우고서 후다닥 느낌글을 쓸까요?

  백 번쯤 되읽어도 늘 새롭구나 하고 느끼는 책을 놓고서 쓰는 느낌글하고, 빨리 새로운 다른 책을 읽으려는 마음으로 어느 한 권 이야기를 딱 한 번만 읽고 나서 쓰는 느낌글은 달라도 아주 다를 수밖에 없으리라 봅니다.

  더 살펴본다면,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하구나 하고 여겨서 우리 집 책꽂이에 백 해쯤 건사할 만한 책인가 아닌가를 살펴서 읽을 적하고, 그냥 책을 읽을 적에도 느낌글을 쓰는 결이 달라요.

  저는 느낌글을 쓸 적에 어느 책이든 다섯 번쯤은 읽은 채 씁니다. 한두 번만 읽고서 느낌글을 쓸 수 있는 책은 없지 싶어요. 한두 번만 읽고서 더는 읽고픈 마음이 안 드는 책이라면, 이런 책으로는 굳이 느낌글을 쓸 뜻이 없다고 생각해요. 제 마음으로 스며들지 못하는 책을 괜스레 이웃님한테 알리고 싶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살면서 몸하고 마음을 싸목싸목 깨워요. 낫질을 하고 물질을 하고 흙질을 하고 호미질을 하고 나무질을 하면서 받아들이는 숨결로 책을 여러모로 다르게 마주합니다. 글쓴이나 그린이나 찍은이(사진을 찍은 이)가 작품으로 빚은 책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글쓴이나 그린이나 찍은이가 어떤 삶을 바탕으로 어떤 살림을 다루되 어떤 사랑으로 풀어냈는가 하는 대목을 읽으려고 합니다.


  글 한 줄에 흐르는 바람소리를 함께 누리고 나서 이를 느낌글로 담아내려고 합니다. 그림 하나에 서리는 냇물소리를 나란히 누리고 나서 이를 느낌글로 옮기려고 합니다. 사진 하나에 감도는 노랫소리를 같이 누리고 나서 이를 느낌글로 삭이려고 합니다.

  제가 하는 일은 사전짓기입니다. 사전 가운데 한국말사전(국어사전)입니다. 이러다 보니 온갖 책을 골고루 읽어요. 책을 지식으로만 읽기보다는 제 삶으로 옮기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 대목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면서 읽습니다. 앞으로 새롭게 짓는 사전에 밑돌이 될 만한 이야기를 어떻게 다지면 좋을까 하고 헤아리면서 읽어요.

  제가 앞으로 쓰려는 사전은 지식만 다루는 책이 아닌 ‘사람으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기쁨’을 다루는 책이 되도록 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저는 책을 읽을 적에 지은이가 어떤 사람으로서 어떤 사랑을 그리고 어떤 기쁨으로 살아가느냐 하는 대목을 읽고서 이를 느낌글로 적어 보려고 합니다.

  이러면서 이러한 느낌글을 ‘시골에서 아이들하고 오순도순 살림을 짓는 어버이 마음이랑 눈길’로 풀어내려고 하지요.

  백 번 남짓 즐겁게 볼 만한 영화를 함께 이야기해 보면 좋겠어요. 참말 우리 모두 영화 한 편을 백 번 넘게 보고서 조잘조잘 영화수다를 나눠 봐요.

  백 번 남짓 신나게 읽을 만한 책을 함께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요. 참말 우리 모두 책 한 권을 백 번 넘게 읽고서 재잘재잘 책수다를 나눠 봐요. 2017.7.27.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짓기)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최종규 저
스토리닷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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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읽는 눈] 뜻·꿈·사랑을 스스로 짓기 | 시골살림도감 2017-05-23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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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말) “삶을 읽는 눈”이라는 이름으로, 제가 살아온 이야기와 살아갈 이야기를 적어 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 집 아이들한테 물려줄 제 이야기이면서, 제 둘레에서 살아가는 여러 이웃님이 저한테 궁금해 하는 대목을 밝히는 이야기입니다. 부디 우리 젊거나 푸르거나 어린 이웃님이 씩씩하고 튼튼하고 사랑스럽고 넉넉하고 따사로운 마음결로 삶을 읽고 보고 느끼는 꿈을 키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글은 포항에서 대학교를 다니는 젊은 이웃님이 편지로 물어본 이야기가 있어서, 그 물음에 대답을 공개편지로 띄웁니다.


어떻게 그 길을 갈 수 있나요
[삶을 읽는 눈] 뜻·꿈·사랑을 스스로 짓기


  저는 1988년에 중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국민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들어가기 앞서 둘레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국민학교에서도 한 살 위인 언니한테 말을 놓았다가는 곧장 주먹이 날아왔습니다만, 중학교에서는 한 살 위라면 꼬박꼬박 높임말을 써야 한다고 했어요. 교사보다 선배가 더 무섭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가 들어간 중학교는 새로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구석진 곳에 있었어요. 선배라고 할 이들이 ‘선배 없이’ 학교를 다니는 데에 익숙하다 보니 3회째로 들어간 우리(후배)를 그리 닦달하지 않았습니다. 귀여워했지요. 이와 달리 또래는 무척 거칠었엉요. 툭하면 싸움이고 걸핏하면 거친 말이나 주먹이 춤추었습니다.

  사내만 모아 놓은 중학교는 날마다 몇 차례쯤 주먹다짐이 있지 않고서야 하루가 지나가지 않습니다. 어디에선가 누가 맞고 누가 때리고 책걸상이 날아다니고 밀걸레가 춤추었어요. 다들 바보스럽네 하는 생각이었는데, 그렇다고 이 중학교를 뛰쳐나갈 만큼 씩씩하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 끝무렵에 중학교만 마치고는, 아니 중학교를 그만둔 ‘국졸’ 가방끈으로 무슨 일을 하며 돈을 벌며 살아갈 만한지 알 길이 없었어요.

  날마다 싸움판이던 중학교를 가까스로 마친 뒤 고등학교에 가는데, 고등학교도 새로 생긴 곳입니다. 우리 형이 1회로 이 학교를 마쳤고 사촌 형이 2회 선배로 다닙니다. 저는 4회 새내기로 들어갑니다. 1회 2회 선배가 한집 사람으로 버젓이 있는 터라 중학교 적하고 대면 아주 조용합니다. 그렇지만 답답한 가슴은 엇비슷해요. 오직 대학입시만 바라보는 중·고등학교에서는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아갈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겨를도 배울 틈도 나지 않습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쳇바퀴질입니다.

  1980년대가 저물며 1990년대로 접어들지만, 아직 군사독재자가 대통령 자리에 있던 무렵이에요. 사회는 아프면서 어수선하고, 학교도 아프면서 어지럽습니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도 ‘어떻게 이 고등학교를 그만두며 혼자 조용히 살 수 있나?’ 하는 생각에 늘 젖어들었습니다. 우리 어버이가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분이었으면 굳이 학교를 안 다니고 흙살림으로 살아갈 만하지 않았나 하고도 생각했어요. 그러나 도시에서 나고 자란 몸으로 어느 시골에 어떻게 가야 하는가를 하나도 알 길이 없고, 이를 여쭐 어른도 없습니다. 담임 교사하고 진로 이야기를 할 적에 꼭 한 번 ‘농부’가 되는 길을 꺼내 보았다가 “농대 가려고? 거긴 뭣 하러 가?” 하는 소리에 다시는 ‘농부’ 되는 길을 입밖으로 내지 않았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저로서는 1994년에 처음 발을 디딘 대학교를 첫날부터 ‘이런 곳은 더 다닐 까닭이 없이 돈도 시간도 아깝다. 얼른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할 씨앗이 마음속에서 자랐다고 할 만해요. ‘새내기 새로 배움터(이무렵에 이런 말이 생겨서 대학교마다 퍼졌습니다. 줄여서 ‘새터’라고들 했습니다)’를 한다며 처음 대학교에 갔더니, 이날부터 술을 얼마나 무섭게 먹이던지요. 대학교에 첫발을 디뎠으니 ‘가볍게 소주 한 병을 대접이나 주전자에 가득 부어 한칼에 비우라’고 하네요.

  한 번만 치르면 되겠거니 하고, 이런 짓을 받아들였더니, 이튿날에도 다음날에도 이런 술자리는 이어집니다. 학기를 연 뒤로도 날이면 날마다 선배들은 새내기 대학생을 술자리로 이끕니다.

  어디에서 어떤 돈으로? 이렇게 저녁 너덧 시부터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면서 어떤 공부를? 이러면서 책을 한 권이라도 읽나?

  1994년 한 해 동안 선배가 날마다 마련하는 자리에 한 번도 안 빠지고 나가 보았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한 해를 치러 보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12월 31일까지 날마다 끝없는 술자리를 징하게 치르고 나서 1995년부터는 모든 술자리를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술자리에 가도 물만 한 모금 마시고 술상(술집이니까요)에 책을 척 올려놓고서 읽었습니다. 1995년 이해에는 집을 나와서 신문사 지국에서 먹고자면서 신문배달로 살림돈을 벌기도 했습니다. 새벽에 신문을 돌리려니 술을 마실 수 없기도 했어요. 신문배달은 술자리에서 빠져나오는 좋은 핑계였어요.

  이렇게 하며 1995년 11월에 군대에 스스로 들어갔고, 1997년 12월 31일에 사회로 돌아왔으며, 1998년 한 해 동안 대학교에서 부전공으로 신문방송학 과정 네 해치를 몽땅 듣고서 아쉬움 없이 자퇴서를 냈습니다. ‘고졸’이 되기로 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길을 어떻게 걸을 수 있었을까요? 두려움이 없었을까요? 네, 두려움은 따로 없었습니다. 중학교를 다니며 교실이며 운동장이며 어디에서고 주먹다짐이나 거친 말이 춤추더라도 ‘내가 내 마음과 말을 지키자’고 생각했습니다. 그 흔한 ‘○8’이라는 말을 한 번도 안 썼어요. 고등학교 세 해를 다닐 적에도 그 흔한 ‘개○○’라는 말을 혀에 한 번도 안 얹었어요. 같은 물에 섞이려는 마음이 없으니 누가 무어라 하든 한귀로 흘릴 수 있었어요. 내 입에서는 “그래? 그러냐? 그렇구나.” 하는 말만 흘렀어요.

  비록 우리 어버이한테서 자급자족을 배우지 못했고, 흙살림을 물려받지 못했습니다만, 돈이나 땅뙈기 하나 없는 몸이었으나, 저한테는 꿈이 있었어요. 제 몸뚱이조차 그리 안 튼튼하고 오랜 병을 마흔 살까지 달고 살기도 했습니다만, 이러거나 저러거나 저 스스로 이루려고 하는 뜻이 있었어요. 바로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입니다.

  어른이 되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나 하고 늘 생각하고 찾아보았어요. 어른이 되어 아이한테 삶을 물려주거나 보여주거나 가르치려면 스스로 어떻게 거듭나야 하는가 하고 언제나 돌아보고 살폈어요. 오늘은 어설프거나 엉성하더라도 이튿날에는 조금씩 나아지면서 새롭게 태어나자고 생각했어요.

  어느 분은 저한테 “그대가 살아온 길은 ‘세상 기준하고 하나도 안 맞아’”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대는 그렇게 살았어도 다른 사람더러 그렇게 살라고는 못 해.” 하고 말할 수도 있어요. “그대가 그렇게 사는 일은 그대 자유인데, 그게 돈이 되나?” 하고 물을 수도 있지요.

  그런데 있지요, 저는 고졸 가방끈이지만 1999년 여름에 출판사 영업부 일꾼으로 뽑혔습니다. 스물다섯 살 일입니다. 2001년 1월부터는 ‘국어사전 짓는 편집장’ 일을 맡았습니다. 2003년 9월부터는 ‘돌아가신 이오덕 님 유고와 원고 정리 책임자’ 일을 했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 강사 노릇도 했고, 한글학회에서 ‘공공언어 순화 작업’을 할 적에 이러한 일을 업무책임자로 이끌기도 했습니다. 지난 2016년에는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같은 한국말사전 한 권을 혼자 써내기도 했어요.

  젊은 대학생 눈으로 보기에 아직 사회살이가 두렵거나 까마득하다고 느낄 수 있어요. 일자리를 얻어 돈을 벌어야 집삯을 내고 살림돈을 댈 수 있다고 여길 수 있어요. 돈이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리라 생각할 수 있어요.

  틀린 생각은 아니에요. 그러나 우리 삶은 언제나 우리 ‘뜻’하고 ‘꿈’이 가장 밑바탕이라는 대목을 헤아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 삶은 우리가 스스로 ‘사랑’할 적에 즐거울 길을 씩씩하게 찾아낼 수 있다고 알아채면 좋겠어요.

  우리 길은 남이 알려주지 않아요. 스스로 생각을 기울여서 수수께끼를 풀어야 우리 길을 찾아내요. 우리가 스스로 수저를 들어 밥을 떠먹어야 배가 부르듯, 우리가 스스로 생각을 지어 삶을 이끌어야 꿈이나 뜻을 시나브로 이루어요.

  저는 갓 스물이 넘을 무렵 ‘스무 살까지 학교를 다니며 배운 모든 것은 아무 쓸모가 없네’ 하고 느꼈어요. ‘스무 살까지는 학교에서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을 쓸모없이 가르쳤구나 하고 몸으로 아로새긴 나날이었네’ 하고도 느꼈어요.

  저로서는 스무 살 적부터 0살이라고 생각했어요. 스무 살 나이를 모두 버리고, 그때부터 스스로 0살이니 처음부터 모조리 새로 하자고 다짐했어요. 남이 알려준 책이 아니라, 스스로 도서관하고 새책방하고 헌책방에 파묻혀서 책시렁에 가득 꽂힌 수많은 책을 통째로 읽어내자는 마음으로 날마다 새로 배우며 살았어요. 1994년에 0살인 셈이니 2017년은 스물세 살인 셈일까요? 이제 겨우 스물세 해째 삶을 배우는 셈이라고 할 만해요.

  사회가 일그러졌다고 느낀다면 이 일그러진 사회를 펴려고 애쓰면 된다고 생각해요. 또는 스스로 이 일그러진 사회에서 뛰쳐나와 새로운 사회를 짓는 길을 걸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우리 이웃님한테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 이제껏 몸으로 먹은 나이를 모두 털어내자고요. 우리 모두 0살이라는 마음으로 새롭게 한 걸음씩 내딛으면서 차근차근 다시 배우자고요. 이렇게 해 보면 되어요. 두려움이나 걱정을 마음에 심지 말아요. 즐거운 뜻과 기쁜 꿈을 고운 사랑으로 심어요. 둘레에서 부는 바람에 휩쓸리지 말고,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음을 읽어 봐요. 2017.5.23.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최종규 저
양철북 | 2010년 09월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최종규 저
스토리닷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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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읽는 눈] 먹는 쑥, 흙으로 돌아갈 쑥 | 시골살림도감 2017-04-24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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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타고 넘어와 쑥 캐는 마을 할매
[삶을 읽는 눈] 먹는 쑥, 흙으로 돌아갈 쑥


  봄을 맞이한 우리 집 밥상은 날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봄은 삼월하고 사월하고 오월이 사뭇 다르다 할 만큼 며칠 사이로 빠르게 달라지거든요. 하루하루 달라지는 결을 살펴서 나물을 훑습니다. 며칠마다 새로운 나물을 하고, 며칠마다 새로운 밥을 합니다. 저녁에 먹고 남은 밥이 있으면, 이 식은 밥으로 이튿날 아침에 볶음밥을 해서 따뜻하게 먹는데, 그냥 볶음밥이 아닌 ‘쑥볶음밥’을 합니다.

  쑥떡이나 쑥국이나 쑥밥이나 쑥지짐이는 익숙한 분이 많을 텐데, 쑥볶음밥은 낯선 분이 많을 수 있어요. 볶음밥을 하면서 쑥을 넣는다는 생각을 못할 분이 많을 테니까요.

  쑥볶음밥은 쉽습니다. 볶음밥을 할 적에 볶을 여러 가지를 밑손질을 먼저 해 놓습니다. 쑥도 미리 뜯어서 잘 헹군 뒤에 체에 놓고 물을 말립니다. 센불에 당근이며 감자이며 마늘이며 함께 볶다가, 양파하고 버섯을 넣어 더 볶고, 달걀을 풀어서 바지런히 섞은 뒤 불을 살살 줄여서 쑥을 잘게 썬 뒤에 넣어서 섞습니다.

  쑥볶음밥을 하면 아이들이 놀랍니다. “쑥을 그렇게 많이 넣어?” 하고요. 빙그레 웃으며 대꾸하지요. “많아 보여? 그렇지만 숨이 죽으면 아주 적지. 이만큼도 되게 적게 넣었단다.”

  삼월에는 봄까지꽃이나 곰밤부리나 갈퀴덩굴을 잘게 썰어서 볶음밥을 할 수 있습니다. 사월에 갓 돋은 감잎이라든지 뽕잎으로도 볶음밥을 할 수 있어요. 모시나 민들레나 소리쟁이로도 볶음밥을 할 수 있습니다. 어느 풀이든 맛난 볶음밥 ‘풀양념’이 되어요.

  쑥이 한창 돋을 무렵 마을 할매들이 자꾸 우리 집 뒤꼍이나 마당을 넘봅니다. 우리 집은 농약을 한 방울도 안 치는 터라, 풀이 자라도 웬만하면 그대로 두었다고 잘 클 즈음 낫으로 톡톡 끊어서 눕히는 터라, 봄이면 온통 쑥밭이 되어요. 우리 집 쑥을 몰래 가져가려는 마을 할매가 많습니다.

  마을 할매는 허리가 구부정한 채 걸으시면서도 밭을 가르는 돌담을 타고 넘어와서 쑥을 몰래 캐려 합니다. 마을 할매는 이녁 밭에서는 쑥을 못 캐지요. 쑥을 따로 키우지도 않을 뿐더러, 할매 밭은 온통 농약투성이일 터이니 쑥을 섣불리 캘 수도 없습니다.

  우리 집에 아무 말도 안 하고 담까지 타고 몰래 들어와서 쑥을 캐는 할매를 말립니다. “할매, 여기는 저희 밭이에요. 밭에 호밀씨를 잔뜩 뿌려서 호밀이 이렇게 올라왔는데 호밀을 마구 밟으면서 쑥을 함부로 뜯으시면 안 돼요.” “쑥 저렇게 놔두면 누가 먹나? 좀 가져가면 안 되나?” “안 되지요. 저희가 먹을 쑥을 할매들이 몰래 다 캐 가면 저희는 뭘 먹어요? 좀 먹을 만하게 크면 몰래 들어와서 샅샅이 캐 가니 저희는 못 먹어요. 게다가 할매가 선 그 자리에는 옥수수를 심었는데, 옥수수싹이 다 밟혀요. 생각해 보세요. 제가 할매 밭에 몰래 들어간 적 있나요? 제가 할매 밭에 몰래 들어가서 저 마늘이나 배추 몰래 뽑아 가도 되겠어요? 이렇게 몰래 마구 캐 가시면 안 돼요. 저희한테서 쑥을 얻고 싶으면 얘기하세요. 그러면 저희가 드릴 수 있는 만큼 저희가 캐서 드릴 테니까요.”

  저희는 쑥을 캐서 먹기도 하지만, 쑥꽃이 필 때까지 그냥 두기도 합니다. 꽃이 피는 쑥은 꽤 크게 자랍니다. 쑥꽃이 피고 쑥씨가 맺는 쑥대는 잘 베어서 말려 놓으면 쑥불을 피울 적에 아주 좋습니다. 씨앗을 맺은 쑥대를 말리면, 쑥대가 마르면서 나는 냄새로도 무척 향긋하지요. 잘 마른 쑥대를 태워서 쑥불을 피우면 모깃불도 되고 집안에 고운 내음이 퍼집니다. 쑥불을 태우고 나온 재를 밭에 주면 흙이 좋아해요. 따로 쑥불을 피우지 않고 쑥대를 베어 눕혀 놓으면 다른 풀이 거의 안 돋기도 합니다.

  먹을 쑥은 철을 살펴서 알맞게 먹으면서 누립니다. 굳이 안 먹고 두는 쑥은 쑥불을 피우는 쑥대 구실을 합니다. 쑥불을 안 피우고 그대로 베어 놓기만 해도 땅을 살리는 거름 구실을 하지요.

  마을 할매는 저희처럼 쑥대나 다른 풀이 흙으로 저절로 돌아가서 거름이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냥 농약을 치고 비료를 칩니다. 저희는 이 땅에서 아이들이 맨발로 뛰어놀고 나무를 타며 놀기를 바라기에 쑥을 고이 건사하면서 알맞게 누립니다.

  낮밥으로 쑥지짐이를 합니다. 두 아이는 쑥지짐이를 석 장을 먹습니다. 두 장을 더 해서 접시에 옮깁니다. 나중에 아이들이 주전부리로 먹도록 둡니다. 여기에 석 장을 더 합니다. 쑥지짐이 석 장은 마을회관으로 들고 갑니다. 낮밥을 자시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텔레비전을 보며 쉬는 마을 할매들한테 주전부리로 쑥지짐이를 드립니다. “이 귀한 것을 주시오? 이녁 아이들 주셔야 하지 않소?” 하고 말씀하시는 마을 할매들한테 “봄이니까 봄맛으로 했어요. 저희도 배불리 먹었어요. 주전부리로 드셔요.” “그라오? 그러면 고맙게 먹겠소. 자 다들 한 점씩 잡솨 봐. 맛나네.” 2017.4.24.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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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읽는 눈] 찔레무침 한 접시 | 시골살림도감 2017-04-2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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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무침 한 접시
[삶을 읽는 눈] 제철을 먹으려는 살림


  겨울이 저물고 봄이 찾아올 무렵 우리 식구는 우리 보금자리에서 돋는 풀이나 겨울눈을 찬찬히 살핍니다. 바야흐로 새봄에 어떤 기쁨을 누리면서 살림을 지을 만한가 하고 헤아립니다. 매화나무에 꽃이 피고 지면 머잖아 매화알이 익을 테니, 매화알을 재워 둘 큰 유리병을 챙기고 햇볕에 말립니다. 매화알은 꽃이 먼저 피고 지는 만큼 먼저 익으니 먼저 훑어서 건사합니다. 이다음으로 모과꽃이 피고 지기에 모과알을 건사해서 모과잼을 졸이려고 부산하지요.

  봄을 알리는 숱한 들꽃은 우리한테 나물도 되고, 봄내음을 베푸는 향긋한 숨결도 됩니다. 흰민들레가 꽃망울을 터뜨리는 삼월 한복판에 찔레나무에 새잎이 돋습니다. 새잎이 돋으면서 새 줄기가 뻗으려고 싹이 오르지요. 찔레싹은 사월 한복판에 살짝 훑습니다. 한 번 훑고서 다시 한 번 훑을 수 있습니다.

  여느 봄나물은 꽃이 피어도 꽃이 달린 채 무쳐서 먹지만, 찔레싹은 조금이라도 때를 놓치면 곧 단단해지면서 줄기로 거듭나요. 보드라운 때에 얼른 훑어야 합니다. 더욱이 찔레싹은 사람만 좋아하지 않아요. 진딧물이나 풀벌레도 좋아합니다. 우리가 하루나 이틀쯤 찔레싹 훑기를 미루면 진딧물하고 풀벌레가 찔레싹에 잔뜩 달라붙어요. 찔레싹은 이런 진딧물하고 풀벌레한테 이기려고 더 바삐 단단하게 굳겠지요.

  찔레싹을 훑어서 나물로 무칩니다. 전라도 고흥에서는 ‘찔구’라고 하는 찔레입니다. 아이하고 함께 찔레나무 곁에 서서 찔레싹을 훑습니다. 아이한테 찔레싹을 어떻게 훑는지 보여줍니다. 잔가시나 큰가시가 있으니 잘 살펴야 한다고 이릅니다. 한 손으로는 길다란 가지를 잡고서 다른 한 손으로 찔레싹을 뽁뽁 뽑듯이 살짝 눕혔다가 잡아당기면 이쁘게 훑을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막상 말로 들어도 몸으로 옮기자면 잘 안 될 수 있어요. 해 보고 또 해 보아야 손에 익힐 만합니다. 가시가 정 두려우면 가위를 써서 자르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아무렇지 않게 맨손으로 찔레싹을 훑습니다. 이러다가 마음을 살짝 딴 데 팔면 그만 가시에 주욱 긁혀서 피가 나요.

  어느 모로 본다면 찔레싹 훑기를 비롯한 나물하는 일은 스스로 고요한 마음이 되어 살림을 짓는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언뜻 보기로는 제철에 누리는 봄나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깊이 보자면 제철을 살피고 누리자는 살림살이입니다. 넓게 바라본다면 제철에 맞는 제일을 하면서 제대로 바람을 마시고 볕을 쬐면서 흙을 밟자는 뜻입니다.

  찔레싹을 훑을 적에도, 훑은 찔레싹을 흐르는 물에 헹굴 적에도, 한동안 그늘에서 물을 말릴 적에도, 큰 냄비에 물을 끓여서 찔레싹을 1분 30초나 2분 즈음 데칠 적에도, 잘 데친 찔레싹을 집게로 건질 적에도, 바야흐로 고추장이랑 된장으로 따로 무칠 적에도, ‘우리 신나는 봄살림’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된장으로 한 소쿠리를 무치고, 고추장으로 한 소쿠리를 더 무칩니다. 두 가지 찔레무침을 아이 입에 넣어 줍니다. 된장찔레무침도 고추장찔레무침도 맛나다고 합니다. 두 가지 찔레무침을 접시에 덜어서 마을회간으로 들고 갑니다. 우리가 짓는 봄살림을 이웃 할매하고 가붓이 나눕니다. 마을논에서 흐드러지는 유채꽃내음을 담아 봄찔레맛을 품습니다. 2017.4.21.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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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읽는 눈] 흰민들레로 꽃밭을 이룰 꿈 | 시골살림도감 2017-04-18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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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민들레로 꽃밭을 이룰 꿈
[삶을 읽는 눈] 재미난 살림짓기를 바라는 길


  우리 식구가 전남 고흥에 깃들던 2011년을 떠올려 봅니다. 그즈음 마을 어디에서나 흰민들레를 보았습니다. 고샅에서도 논둑에서도 길가에서도 흰민들레는 매우 흔했습니다. 이무렵에는 제비가 매우 많이 찾아왔어요. 우리 집 대문 바로 앞에도 흰민들레가 씩씩하게 뿌리를 내려서 하얀 꽃을 피우고 동그랗게 고운 씨앗을 맺었습니다.

  마을 어디에나 흔하던 흰민들레는 차츰 줄어듭니다. 마을 어느 집이나 농약을 많이 쓰기도 하고, 논둑이나 길가를 차츰 시멘트로 덮으면서 이제는 웬만해서는 흰민들레를 구경하지 못합니다. 이러면서 제비까지 해마다 매우 크게 줄어들어요. 제비가 흰민들레를 보려고 이 나라를 찾아오지는 않을 테지만(그러나 우리가 모를 뿐, 제비가 꽃을 보려고 찾아올 수도 있겠지요), 이 땅을 오래도록 지켜 온 작은 숨결이 사라지는 흐름하고 제비가 줄어드는 흐름하고 맞물린다고 느껴요.

  수많은 들풀이나 들꽃이 사라지듯이 흰민들레도 삶터를 지키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 수수하게 흔하던 목숨은 아주 조그마한 삽질에도 쉬 힘을 잃거든요. 찻길을 낸다며, 아파트를 세운다며, 공장이나 골프장을 지어야 한다며, 큰 발전소하고 송전탑이 들어서야 한다며, 여기에 관광지를 꾸려야 한다며, 작고 수수한 목숨은 하루아침에 밀려서 사라지기 일쑤입니다.

  우리 식구가 건사할 수 있는 땅은 아직 넓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식구가 건사하는 보금자리와 뒤꼍하고 도서관학교에서 피고 지는 흰민들레는 우리 손으로 돌볼 수 있습니다. 해마다 씨앗을 받아 우리 집 마당하고 뒤꼍에 새로 심거나 씨앗을 날립니다. 우리 도서관학교에서도 곳곳에 흰민들레씨를 심습니다.

  이 흰민들레는 꽃받침이 꽃을 감싸는 노란민들레와 함께 무척 오래된 이 나라 들풀·들꽃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우리 집 뒤꼍에는 오랜 노란민들레가 한 포기 함께 있습니다. 이 오랜 노란민들레를 퍼뜨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아직 여러 포기로 퍼지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해마다 어김없이 피어나 노란 꽃송이를 베풀어요. 해마다 봄에 물끄러미 바라보고, 봄이 저물 무렵 고맙다고 절을 합니다. 가을볕에 따사로울 적에 다시금 꽃을 피우는 이 민들레를 마주하면서, 이 따순 고장에서는 한 해에 두 차례씩 찾아오니 참으로 좋아라 하고 노래를 합니다.

  오랜 들풀·들꽃이기에 흰민들레하고 노란민들레를 가꿀 마음이지 않습니다. ‘므은들레’라는 옛이름처럼 온 들에 흐드러지던 민들레가 우리 보금자리에 흐드러질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이른바 보릿고개라 할 만한 봄철에 맛난 잎을 내어주면서 고운 꽃을 피우는 민들레가 새롭게 가득한 민들레밭을 한켠에 일구고 싶은 마음입니다.

  곰곰이 보면 민들레는 다른 어느 풀꽃보다 ‘아이 손을 타면서 씨앗을 퍼뜨립’니다. 어느 풀꽃도 민들레처럼 아이들이 곳곳에 흩뿌려 주지 않습니다. 민들레뿐 아니라 박주가리도 솜털을 매단 씨앗이라 바람을 타고 잘 날아가요. 그런데 민들레씨는 아이들이 냉큼 알아보고 냉큼 꺾어서 냉큼 후후 불어서 날려 주지요. 이곳에도 날려 주고 저곳에도 날려 주어요. 개미가 제비꽃씨를 물어서 곳곳에 심어 주듯이, 아이들은 민들레씨를 후후 날려서 온 들이며 숲에 푸른 숨결이 깃들도록 북돋웁니다.

  잎이 오를 적에는 나물로 삼고, 꽃이 돋을 적에는 꽃으로 반가우면서 향긋하다가는, 씨앗을 맺을 적에는 더없이 즐거운 놀잇감이 되어 주는 풀꽃이 민들레이지 싶어요. 흰민들레 꽃밭이 한쪽에 퍼지면, 다른 한쪽은 노란민들레 꽃밭이 퍼지기를 빌면서 밭자락을 돌봅니다. 민들레가 자라는 집, 이른바 ‘민들레집’이 되는 일도 재미난 살림짓기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2017.4.18.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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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읽는 눈] 우리는 씨앗을 이렇게 심어요 | 시골살림도감 2017-04-05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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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씨앗을 이렇게 심어요
[삶을 읽는 눈] 보금자리를 일구는 작은 손길


  바야흐로 봄을 맞이하면서 씨앗을 심습니다. 겨우내 이 봄날을 기다렸습니다. 즐겁게 우리 보금자리에 심을 씨앗을 헤아렸어요. 추위가 가시고, 땅이 녹고, 바람이 산들산들 불고, 볕이 따스한 봄날을 기다렸어요.

  시골에 살든 도시에 살든 밭을 가꾸는 분이라면 누구나 씨앗을 심어요. 그리고 저마다 스스로 좋아하는 결에 맞추어 씨앗을 심을 테지요.

  우리 보금자리에는 그리 넓지는 않으나 마당하고 뒤꼍이 있어요. 이 가운데 어제 하루 뒤꼍에 옥수수 씨앗을 심습니다. 그제는 비트 씨앗을 심었는데, 곧 다른 씨앗도 차곡차곡 심으려고 생각해요.

  저희는 서두를 마음이 없이 씨앗을 심습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움직이면서 씨앗을 심습니다. 어른 혼자서 심지 않아요. 먼저 어른이 호미질하고 낫질을 보여준 뒤에 아이들도 함께 호미질을 합니다. 다만 낫질은 아직 안 시키지만, 큰아이가 열 살이니 이제 큰아이도 곧 낫질을 익히도록 할 생각이에요.

  먼저 저희 보금자리에서 씨앗을 심는 몸짓을 간추려서 적겠습니다.


 ㄱ. 날씨를 살핀다. 날씨를 살펴서 씨앗을 언제 심어야 잘 자랄는가를 헤아린다.

 ㄴ. 땅을 살핀다. 어느 자리에 씨앗을 심으면 우리 보금자리에 한결 싱그러운 바람이 불는지 헤아린다.

 ㄷ. 씨앗을 고른다. 한 가지 씨앗만 잔뜩 심지 않는다. 작은 땅뙈기여도 여러 씨앗을 골고루 심는다. 알맞춤하게 심고, 한꺼번에 심지 않는다. 며칠 사이를 두고 나누어 심는다. 옥수수를 보기로 든다면, 서른 알을 심었으면 사나흘이나 너덧새 뒤에 다시 서른 알을 심고, 또 사나흘하고 너덧새 사이를 두고서 서른 알을 심는다. 한꺼번에 거두지 않게끔, 다시 말하자면 옥수수를 거둘 적에 늘 그때그때 가장 싱그러운 열매를 얻어서 먹도록 며칠씩 사이를 두어 심는다.

 ㄹ. 땅을 갈지 않는다. 씨앗을 심을 자리만 호미로 쫀다. 씨앗 자리에 풀뿌리가 깊으면 이때에만 풀뿌리를 뽑는다. 다른 풀은 그대로 둔다.

 ㅁ. 씨앗을 심고서 물을 안 준다. 씨앗을 심은 뒤에는 씨앗 자리 둘레에서 자란 풀을 낫으로 베어 빙 두르듯이 덮어 준다.

 ㅂ. 씨앗을 심기 앞서 씨앗을 손바닥에 얹고서 몇 분쯤 햇볕을 쬐어 주며 씨앗한테 말을 건다. 이 씨앗이 우리 보금자리에 기쁘게 깃들어 새롭게 깨어나서 우리 식구 몸을 아름답게 살찌워 주기를 바란다는 뜻을 마음으로 속삭인다.

 ㅅ. 씨앗한테 우리 마음을 속삭였으면, 이 씨앗을 입에 머금는다. 다른 곳에서는 씨앗을 물에 불린다든지, 젖은 천이나 솜에 두어 싹이 트도록 할 텐데, 우리는 우리 몸에 있는 침으로 씨앗이 깨어나도록 북돋아 준다. 씨앗을 심을 적에는 ‘입에 머금은 씨앗’을 한 톨씩 뱉아서 심는다.


  먹을거리를 얻겠다는 뜻으로 씨앗을 심어요. 다만 먹을거리를 그냥 얻을 마음은 아니에요. 더 많이 얻으려는 뜻이 아닌, 늘 즐거우면서 아름다운 살림이 되기를 바라면서 씨앗을 심어요.

  그래서 저희 집에서는 땅에 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습니다. 비늘을 씌우지도 않습니다. 밥찌꺼기하고 똥오줌을 땅한테 돌려줄 뿐입니다. 이밖에 다른 것을 더 주지 않으나, 저희가 우리 밭뙈기하고 씨앗한테 주는 것은 따로 있어요. 바로 우리 사랑을 주어요. 아이들은 밭뙈기이며 마당이며 신나게 넘낟들면서 뛰어노는 동안 웃음하고 노래하고 이야기를 씨앗한테 베풀어 줍니다. 저는 마당이나 뒤꼍 풀밭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씨앗하고 함께 있습니다. 씨앗을 심은 자리 둘레로 풀이 우거지려 하면 알맞게 낫으로 베어 땅에 덮어 줍니다.

  뿌리를 뽑지 않아요. 풀뿌리를 뽑으면 그만 흙이 갈 곳이나 힘을 잃거든요. 풀이 뽑힌 자리는 비가 조금만 내려도 흙이 쓸려요. 풀을 뽑지 않고 그대로 두거나 위쪽 줄기를 베어서 덮으면 비가 아무리 드세게 내려도 흙이 안 쓸립니다.

  풀뿌리를 뽑지 않고 그대로 두면, 우리가 심은 씨앗은 다른 풀뿌리를 붙잡고 더욱 튼튼히 자랍니다. 다른 풀줄기를 잘 베어 땅바닥에 덮으면 햇볕이 아무리 뜨겁게 내리쬐어도 밭뙈기 흙이 안 말라요. 풀줄기는 마르면서 흙으로 돌아갈 뿐 아니라, 흙이 늘 촉촉하고 기름짇도록 북돋아요.

  저희가 그리 넓지 않다 싶은 땅뙈기를 이렇게 건사한다고 볼 수 있어요. 넓은 땅뙈기라면, 이른바 수천 평이나 수만 평이라면 저희처럼 건사하기 어렵겠지요. 저희는 저희 먹을거리만 얻으려 하니 알맞춤하게 작은 밭자락을 이렇게 건사할 만합니다.

  땅뙈기 한쪽은 나무가 자라서 시원스레 그늘을 베풀면 여름 내내 시원하면서, 이 둘레에서는 풀이 그리 높이 못 자랍니다. 나무는 나무대로 나무 열매를 베풀어 주고요. 다른 자리는 우리가 심은 씨앗으로 남새를 얻으면 이대로 즐거우면서 틈틈이 낫질을 해서 풀을 다룰 수 있고, 남새도 잘 돌볼 만합니다.

  차근차근 함께 심고, 조금씩 함께 돌보며, 즐겁게 함께 거둡니다. 봄날은 신나는 마당살림을 짓는 하루입니다. 2017.4.5.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짓기/살림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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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읽는 눈] 대학 안 가고 책만 읽어도 됩니다 | 시골살림도감 2017-04-04 08:22
테마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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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안 가고 책만 읽어도 됩니다
― 대학 졸업장과 책읽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학 안 가고’ 책읽기를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학 안 가고’ 그림그리기를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학 안 가고’ 춤추기를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학 안 가고’ 노래하기를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대학교 ‘졸업장’을 따야 하지 않아요. 졸업장을 거머쥐고는 이 종잇조각으로 돈을 더 잘 버는 자리를 찾아야 하지 않아요. 돈을 잘 버는 자리를 찾으려고 하면, 그만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놓치고 말아요.

  흔히들 ‘대학교도 경험’이요, 대학교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대학교에서 맺은 만남으로 오래도록 좋은 길을 열 수 있다고도 합니다. 틀리지 않은 말이에요. 그러나 이는 ‘졸업장을 거머쥐어 돈을 잘 버는 일자리를 얻자’고 하는 마음하고 이어져요.

  생각해 봐요. 좋은 경험은 대학교에만 있을까요? 대학교 바깥에는 좋은 경험이 없을까요? 사람은 대학교에서만 만날 수 있을까요? 대학교에서 맺은 만남, 이른바 ‘학연’이라고 하는 줄을 붙잡아야 ‘성공’을 할까요?

  대학 교육에 들이는 돈하고 시간하고 품을 헤아려 보면 좋겠어요. 그 돈하고 시간학고 품을 ‘남들하고 똑같이’ 학과수업에 과제에 선후배 어울리기에 영어 점수에 들이지 말고, 네 해 동안 세계여행을 누려 봐요. ‘졸업장 아닌 세계여행 경험’을 쌓아 봐요. 굳이 대학교 틀에 얽매여 ‘시험점수(토익·토플)를 따려는 영어 공부’는 내려놓고서, ‘온몸으로 세계 곳곳에서 부딪히며 영어를 배워서 써’ 봐요.

  대학교에 들어가서, 이른바 ‘미대(미술 대학)’에서 그림을 배워도 나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다르게 해 볼 수 있어요. 대학등록금이나 교수 지도에 이끌리지 말고, 스스소 붓 하나 쥐고서 네 해 동안 온누리를 골골샅샅 돌아다니면서 스스로 천천히 그림을 그려 봐요. 구태여 세계여행을 하며 그림을 그리지 않더라도 한국이라는 나라를 골골샅샅 누벼 봐요. 자전거를 타든 두 다리로 걷든, 네 해 동안 붓하고 종이하고 물감만 챙겨서 온 나라 구석구석 다니며 그림을 그려 봐요.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을 적에도 이와 같아요. 꼭 대학교 문예창작학과나 사진학과에 들어가야 하지 않아요. 이름난 교수나 스승을 찾지 말고, 스스로 모두 온몸으로 부딪히면서 배워 봐요. 네 해라는 시간을 들여서 이 땅을 교수로 삼고, 여러 마을을 스승으로 삼아 봐요. 숲과 들과 바다와 골짜기를 교수로 삼고, 바람과 구름과 나무와 꽃을 스승으로 삼아 봐요.

  대학교 다닐 네 해뿐 아니라 고등학교를 다니는 세 해, 여기에 중학교를 다니는 세 해도 생각해 봐요. 모두 열 해라는 나날인데요, 이 나라 중·고등학교 여섯 해는 ‘대학바라기 입시지옥’이에요. 아이들을 여섯 해 동안 입시지옥에 몰아넣지 말고, 또 푸름이 스스로 입시지옥에 뛰어들지 말고, 저마다 씩씩하고 당차게 ‘학교 밖’으로 나와 봐요. 3 + 3 + 4, 이렇게 열 해 동안 시골에서 흙을 만지면서 아침에는 땅을 일구고, 낮에는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고, 저녁에는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해 봐요. 열네 살 푸름이가 열 해 동안 아침 낮 저녁을 모두 손수 짓고 배우며 부대끼는 살림으로 보낼 수 있다면, 이때에 우리는 얼마나 새로우면서 아름다울 만한가 하고 생각해 봐요.

  대학 교육 네 해에 들일 돈으로 책을 사서 읽는다면, 거의 사오천만 원에 이르는 책을 사서 읽을 수 있어요. 엄청나답니다. 사오천만 원에 이르는 돈을 스스로 책방에 가서 책을 골라서 읽고, 이렇게 읽어서 모은 책으로는 저마다 마을도서관을 열 수 있지요. 네 해에 걸쳐 사오천만 원에 이르는 돈으로 책을 읽어서 모아 두었으면, 앞으로 이 책으로 헌책방이나 마을책방을 열 수 있기도 해요. 마을도서관도 열 수 있지만, 스물네 살 젊은이 나름대로 새롭고 재미나게 멋진 책방을 열 만해요.

  어느 모로 본다면 아직 이 나라에 마땅한 ‘교육개혁 정책’이 없으니 아이들도 어른들도 고달프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굳이 정치꾼이나 공무원이 엄청나거나 대단하거나 놀라운 정책을 내놓아 주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될 만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스스로 다 함께 ‘대학바라기를 그만둔다’면 하루아침에 대학입시뿐 아니라 중·고등학교 얼거리도 달라질 만하지 싶어요. 우리 스스로 ‘굳이 대학교에 안 가도 되지 않나?’ 하고 생각할 수 있다면, 나아가 씩씩하게 ‘대학입시를 안 치른다’면, 또 대학입시를 안 치를 생각이 단단할 적에는 아예 중·고등학교조차 굳이 안 다닐 만하다고 깨달을 수 있다면, 바보스러운 교과서나 학교폭력 같은 말썽거리도 하루아침에 풀릴 만하지 싶어요.

  너무 빠듯하고 메마르게 치고박으면서 밟고 일어서서 1등이 되려는 다툼판이 되다 보니 대학교도 중·고등학교도, 게다가 초등학교마저도 뒤틀리지 싶어요. 이제는 우리 스스로 생각을 바꾸어서 하나씩 새롭게 해 보면 좋겠어요. 이래저래 여러 가지 길을 우리 나름대로 내 볼 수 있어요.

ㄱ. 대학 교육에 드는 돈으로 책을 사서 읽는다. 이렇게 네 해 동안 책을 사서 읽어서 모인 책으로 마을책방이나 마을도서관을 열 수 있다. 저절로 일자리를 스스로 지을 뿐 아니라, 마을살림을 북돋우는 멋진 길이 됩니다.

ㄴ. 대학 교육에 들일 돈이나 시간이나 품으로 시골에서 흙을 짓고 살림을 배우며 산다. 저절로 자급자족을 이루고, 밥이며 옷을 손수 지으니 대량생산하고 맞물리는 소비를 안 할 수 있다. 생태나 유기농 같은 이름이 없이도 아름답게 잘 살 수 있다.

ㄷ. 대학 교육에 바칠 돈이나 시간으로 세계여행을 한다. 네 해 동안 맨몸으로 세계 여러 나라를 두루 돌면서 새로운 말을 익힐 뿐 아니라, 새로운 살림(문화)을 겪어내면서 눈이 트이고 말과 마음 모두 활짝 여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거듭난다. 당찬 마음과 몸이 되어 우리 앞길을 스스로 뚫을 수 있어요.

ㄹ. 대학교에서 배우지 않고, 스스로 나라 구석구석 다니면서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으면서 스스로 깊고 너른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러는 동안 저절로 작품이 예술로 태어날 테니, 교수 연줄이나 학벌이 없어도 얼마든지 세계에 기쁨을 나누어 주는 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남들이 다 한다고 우리까지 해야 하지 않아요. 남들이 하건 말건 우리 스스로 무엇을 하면 즐거울까를 생각해야지 싶어요. 남들 하는 대로 좇는다면, 입시지옥에서 아이들이 살아남도록 내몬다면, 또 우리 스스로 입시지옥이나 취업지옥에서 ‘혼자 살아남기’를 하려고 악을 쓴다면, 사회는 앞으로도 늘 그대로이리라 느껴요.

  졸업장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껍데기를 안 쓸 수 있다면, 삶을 스스로 짓고 살림을 손수 가꾸는 길로 갈 수 있다면, 우리는 다 함께 슬기로이 어깨동무할 만하다고 생각해요. 2017.4.4.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최종규 저
양철북 | 2010년 09월


 

책 홀림길에서

최종규 저
텍스트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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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살림 도감] 나무 | 시골살림도감 2017-02-1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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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게 우거진 나무를 타며 놀자

[시골 살림 도감] 나무



  시골살림에서 손꼽는 즐거움으로 나무를 으레 꼽아요. 시골살림에서는 흙도 물도 바람도 돌도 풀도 좋아요. 이 가운데 나무는 우리 살림집을 이루어 줍니다. 살아가는 바탕에 나무가 크게 자리를 차지한다고 할 만해요.


  나무가 있어 추운 겨울에 불을 지피며 따뜻할 수 있습니다. 나무가 있기에 기둥을 세우고 도리를 얹으면서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나무가 있으니 마루를 깔고 평상을 짜며 책걸상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나무가 있어 주니 종이랑 연필을 얻어 우리 이야기를 글이나 그림으로 갈무리해서 책으로 엮을 수 있습니다. 나무가 있는 동안 온누리에 싱그러운 숨결이 가득하여 맑은 바람을 언제나 즐거이 쐴 수 있습니다.


  시골이 아닌 도시에서 살아도 나무를 널리 누릴 수 있어요. 아파트가 아니라면 나무로 지은 오래된 골목집을 찾아 깃들 수 있고, 마당 있는 작은 골목집 한쪽에 나무를 심을 수 있고, 집안 살림살이를 나무그릇으로 바꿀 수 있겠지요.


  가만히 보면 우리 겨레는 먼 옛날부터 나무로 지은 집에서 살고, 나무에서 살림을 얻어요. 나무 곁에서 하루를 누려요. 여름에는 그늘을 베풀어 주는 나무요, 겨울에는 땔감으로 따스한 불길을 나누어 주는 나무입니다. 여름에는 꽃을 주고 가을에는 열매를 주며 겨울에는 찬바람을 막아 주기도 하는 나무예요.


  마당에 나무 한 그루 크게 서니 ‘우리 집’을 쉽게 알아봅니다. 마당에 선 나무 한 그루는 철 따라 해가 어떻게 움직이며 달라지는가를 잘 알려줍니다. 마당에 선 나무에 온갖 멧새가 찾아들어 노래를 부릅니다. 마당에 선 나무에 나비가 알을 낳아 애벌레가 깨어나요. 애벌레는 잎을 야금야금 갉아먹다가 번데기를 틀고는 새로운 나비로 깨어나지요. 새는 애벌레를 찾아 나무로 찾아들고, 애벌레는 새한테서 벗어나려고 요리조리 숨듯이 자라다가 나비로 거듭납니다.


  나무하고 함께 사는 동안 여러 삶을 지켜봅니다. 나무가 자라는 동안 아이들 몸이며 키가 자라요. 갓난쟁이 무렵에는 나무 둘레에서 기더니, 어느덧 나무를 타고 오르려 하고, 나무를 타고 오를 만한 나이에는 나무한테 귀를 살며시 대면서 나무가 들려주는 말을 가만히 듣습니다.


  마실길에 만나는 나무한테 다가섭니다. 나무를 온몸으로 붙잡고 올라 보려 합니다. 숲이나 골짜기나 바닷가에서 만나는 나무가 반가워서 큰 소리로 부릅니다.


  사람은 살림을 지으려고 나무를 알맞게 벱니다. 그러나 나무가 몽땅 없어지도록 베지 않아요. 나무를 몽땅 베어서 숲을 밀다가는 그만 보금자리도 마을도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나무가 언제나 푸르게 우거진 숲일 적에 사람살이도 아름다울 수 있어요. 밥도 집도 주는 나무요, 더위와 추위를 막아 주는 나무요, 모든 목숨이 숨을 쉴 수 있도록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나무예요.


  나뭇가지는 장난감 구실을 합니다. 나뭇가지는 바지랑대 노릇을 합니다. 나무를 깎고 다듬은 널은 징검다리 같은 놀잇감이 되어 줍니다. 나무를 만지는 손에 나뭇결이 스밉니다. 나무를 바라보는 눈망울에 나뭇빛이 어립니다. 나무하고 함께 노는 몸에 나무내음이 번집니다.


  이리하여 우리 집에서는 아침에 일어나서 맨 먼저 하루를 그린 뒤에 나무한테 찾아가서 속삭입니다. 잘 잤니, 오늘은 날이 어떨 듯하니, 오늘도 기쁘게 푸른 바람을 베풀어 주렴, 하고 말을 겁니다. 나무 밑을 걷고, 나무줄기를 쓰다듬습니다. 겨울을 씩씩히 나고 새봄에 터지려는 움을 살며시 들여다봅니다.


  얼마 앞서 파뿌리를 마당 한쪽에 심다가 어린 유자나무를 만났어요. 지난해일는지 지지난해일는지 유자차를 담고서 유자씨를 밭 한쪽에 뿌렸는데 이 가운데 하나에 싹이 텄나 봐요. 작은 씨에서 깨어난 작은 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랄 날을 기다립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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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살림 도감] 마당 | 시골살림도감 2017-01-08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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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일터·쉼터·모임터가 되는 이곳

[시골 살림 도감] 마당



  저희는 도시에서 사는 동안 늘 ‘숲’을 그렸어요. 시골 아닌 도시에 살 적에 숲을 그렸다니 참 바보스러울 수 있어요. 그렇지만 숲은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도 짙푸르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시골사람도 도시사람도 숲내음을 마시면서 싱그럽고 즐거웁고 튼튼하게 살림을 꾸릴 수 있어야 아름다운 나라가 되리라 여겼어요.


  시골에 뿌리를 내리려 하면서 ‘그냥 시골’이 아닌 ‘숲을 이루는 보금자리로 즐거운 시골’을 꿈꾸었는데요, 이다음으로 그린 한 가지는 ‘마당’이에요. 우리 집이 숲이 되고, 우리 집에 너른 마당이 있으면 참으로 즐겁고 아름다우리라 생각했어요.


  눈을 감고 가만히 그려요. 누구나 제 보금자리가 숲이 되어 숲바람이 불고, 너른 마당에서 어른은 일하고 아이는 놀면서 살림을 짓는 모습을 그려요. 우리가 어디에서나 이처럼 삶을 지을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멋진 하루가 되겠지요.


  우리 집 나무는 고이 자랍니다. 고이 자라며 우거지는 나무는 여름에 그늘을 시원하게 베풀고, 겨울에 찬바람을 막아 주어요. 마당에서 나무를 누리면서 햇빛이 움직이는 결을 살피면, 여름해와 겨울해가 어떻게 다른가를 새삼스레 느낄 수 있어요. 달력에 적힌 날짜나 절기가 아닌, 몸으로 익히는 하루가 돼요.


  해가 뜨고 지는 자리를 헤아리면서 마당살림을 가꿉니다. 그늘하고 볕을 알맞게 다스리면서 늘 새로운 살림을 북돋아요. 저희 집 마당은 마을에서 그리 안 넓지만 우리 깜냥껏 이 마당을 여러모로 씁니다. 아이한테는 놀이터요, 어른한테는 일터이고, 다 같이 쉼터이면서, 손님이 들면 모임터예요. 밤에는 봄가을 여름겨울 언제나 별을 보는 ‘별터’가 되고, 철마다 향긋한 ‘꽃터’를 이루며, 맛깔스러운 ‘나물터’로 거듭나요.


  놀이터인 앞마당을 아이들은 맨몸으로 빙글빙글 달립니다. 아버지더러 손을 달라 하면서 저희를 꽉 잡고 뱅글놀이를 하자고 부릅니다. 목말을 태워 달라 하면서 아이 손에 안 닿는 높은 나뭇가지를 만지고 싶습니다. 동백꽃이 피면 높다란 곳에 핀 동백꽃을 목말을 타고 보려 해요.


  아이들이 마당에 자리를 깔고 소꿉놀이를 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돕니다. 작대기를 들고 휘휘 하늘을 젓습니다. 공을 차거나 던집니다. 뒤꼍에서 흙을 퍼서 마당으로 옮긴 뒤 흙놀이를 합니다.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바람개비랑 달려요. 이불을 널어 해바라기를 시키면 이불 사이로 살며시 숨는 이불놀이를 해요.


  마당이란 그야말로 마음껏 뛰거나 달리거나 춤추거나 노래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에서는 아이나 어른 모두 마음껏 못 걸어요.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다녀야지요. 길에서는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살피느라 어지러워요. 아이들이 이모나 할머니나 큰아버지를 보고 싶다 해서 도시로 마실을 가면 처음에는 버스도 타고 반가운 얼굴도 봐서 좋아해요. 이러다가 뛰지 말라고, 목소리도 낮추라 하면 아이들이 몹시 힘들어 해요. “얘들아, 여기는 우리 집 마당이 아니란다. 아랫집 사람 옆집 사람이 다들 싫어해.” 하고 타이르면 “노래도 못하고, 달리기도 못하는데, 얼른 집으로 돌아가자!” 하고 말해요.


  그러고 보니 학교 운동장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목청껏 떠들며 노는 까닭을 알 만해요. ‘마당이 그립기’ 때문일 테지요. 좁은 도시에 갇히듯이 사니까, 그나마 학교 운동장에서 신나게 떠들면서 달리고 싶겠지요.


  시골집 마당은 아무 걱정이나 근심이 없습니다. 그저 신나게 놀 수 있어요. 그예 느긋하게 일할 수 있어요. 모깃불을 태우고, 나무를 살며시 안으며 속삭여요. 밤에는 마당에 서서 별바라기를 해요. 어디 멀리 나가지 않아도 돼요. 마당에서 모두 다 누려요. 어느 모로 보면 우리는 ‘마당겨레’인지 모르겠어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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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시골살림도감' 이야기를 쓰는가? .. | 시골살림도감 2017-01-02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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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림도감'을 새롭게 씁니다. 지난 2016년 가을부터 쓰려고 생각했으나, 지난해에는 틀하고 차례만 짜 놓았고, 글은 2017년 1월 1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씁니다. 왜 '시골살림도감'을 쓰는가 하는 머리글을 조분조분 적어 봅니다.


+ + +


  《시골살림도감》이라 하니 뭔가 대단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네, 뭔가 대단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희는 도시를 씩씩하게 떠나서 시골에서 즐겁게 뿌리를 내리거든요. 2011년에 전남 고흥에 깃들었으니 2017년에 일곱 해째입니다. 우리 집 작은아이는 2011년에 태어났으니 일곱 해를 오롯이 시골돌이로 자라요. 큰아이는 2008년에 도시에서 태어났으나 일곱 해째 시골에서 자라며 어느덧 시골에서 더 오랜 나날을 누리는 시골순이가 됩니다.


  시골살이 일곱 해란 길 수 있고 짧을 수 있습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분한테는 아무것이 아닌 나날일 테고, 도시에서만 지낸 분한테는 퍽 긴 나날일 만해요. 저희는 시골살림을 썩 야무지게 한다고 여기지 않으나, 저희 나름대로 아주 천천히 한 걸음씩 새롭게 내딛자고 생각합니다. 어느 모로 보면 어설프고 투박하고 굼뜨고 못 미덥고 어수룩하고 어리숙하고 얼뜬 살림일 수 있어요. 그렇지만 모든 살림을 처음부터 하나씩 새로 배운다는 마음으로 저희 보금자리를 가꾸려고 해요.


  이러면서 시골 이웃님이나 도시 이웃님한테 나즈막하게 이야기를 걸어 보자는 뜻으로 《시골살림도감》을 엮습니다. 대단할 것도 대수로울 것도 없을 만하지만, 아주 작거나 수수한 것에서 ‘시골에 뿌리를 내리며 아이들하고 새 하루를 노래하는 숲을 꿈꾸는 배움마당을 짓는 몸짓’을 갈무리하려 해요. ‘귀농·귀촌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아니라 ‘시골에서 즐겁게 살림을 지으며 삶을 배우는 사랑을 어떻게 누려 볼까’라는 마음을 적어 보려 합니다.


  대단한 것이 없습니다만, 참말로 대단한 것이 없기에 시골살림이 아기자기할 만하지 싶어요. 대수로운 것이 없습니다만, 참으로 대수로운 것이 없기에 시골살림이 앙증맞구나 싶어요. 시골 할매나 할배처럼 구수하거나 살갑거나 알뜰하거나 멋스럽거나 포근한 살림이 되자면 저희가 앞으로 이 보금자리에서 ‘할매 할배’ 나이가 되어야 할 테지요? 아장걸음으로 시골살림을 노래해 보려 합니다. ‘일곱살박이 시골 아재’ 이야기를 너그러이 헤아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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