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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믿어 (고전 역사 미술)
[사서로 읽은 항우와 유방] (1차) 장량의 이야기를 들어보소 | 리뷰를 믿어 (고전 역사 미술) 2019-09-14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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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서로 읽는 항우와 유방

신동준 저
인간사랑 | 2019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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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흔히 성악설은 순자가 처음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잘못이다. 한비자의 스승인 순자는 기본적으로 성과 정은 엄격히 나눌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한 까닭에 인간이 본래 악하다는 식으로 인성을 말하지는 않았다. 그는 사람이 맛난 음식과 미색 등에 혹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런 일로 결코 인성론의 논쟁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보았따. 다만 이런 흐름을 방치할 경우 국가공동체가 혼란에 빠질 수 없는 까닭에 일정한 제한을 가해야 하고, 그 제한은 윗사람이 솔선수범하는 예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 p.15

 

초한지를 읽은 적이 있다. 재미있게 읽긴 읽었는데, 읽으면서 내내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있었다. 유방의 참모로 명활약을 했던 장량은 왜 결국은 유방과 적대관계가 되어야만 했을까. 그 의문이 이 책을 읽다 보니 풀렸다. 어떻게 풀렸는지는 이 리뷰의 말미에서 확인하시고. 나 지금, 내 리류 구독자 낚시 중!

 

 

2.

당시 장량이 진시황 척살에 나선 것은 졸지에 평민의 처지로 영락한 산동 6국 귀족들의 울분을 대신한 것이다. 관중과 관동을 하나로 묶는 천하대세의 도도한 흐름을 거스른 극히 퇴행적인 것이었다. 21세기 제4차 산업혁명시대의 관점에서 볼 때 더욱 그렇다. 장량의 진시황 척살 음모를 결코 미화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럼에도 수천 년 동안 장량의 테러 시도는 '의거'로 미화됐다. 정서적으로 진한시대의 귀족들과 통하는 당송 이래의 사대부들 모두 장량이 진시황 척살에 실패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진시황을 '미친 폭군'으로 간주한 결과다.

- pp.37~38

 

『사서로 읽는 항우와 유방』은 소설이 아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역사적 의미와 진실을 파헤쳐가는 이야기다. 소설을 읽다가 어떤 의문점이 들었다면, 이 책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소설을 이미 읽은 독자들을 위한 해설서라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그래서 소설을 읽고 싶어서 이 책을 선택했다면 실패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은 소설대로 따로 읽어야 한다. 아무래도 소설에서 나오는 문체 묘사가 이 책에는 나오지 않으니, 소설 같은 역동적인 재미는 없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통한 자세한 해설이 나오니, 이야기를 얽어가면서 그에 대한 깊은 의미를 이해하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이 꽤 의미있는 책이 되겠다.

 

 

3.

유방과 항우를 비롯해 각지에서 자립한 여타 군웅들이 나름 몇 년 동안 정권을 유지하며 '토패'의 역할을 수행한 것과 비교할 때 장초는 반란정권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울 정도다.

그럼에도 사마천은 그런 진승을 높이 평가해 '열전'이 아닌 '세가'에 기록해 놓은 것이다. 나라의 형태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장초'를 두고 열전이 아닌 세가에 기록해 놓은 것은 지나쳤다. 객관성을 잃었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그 배경은 무엇일까?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으나 사마천이 진제국의 등장 자체를 사갈사한 결과로 보인다. 「여불위열전」에서 진시황을 마치 여불위의 자식으로못 박아 기록해 놓은 게 그 증거다.

- p.98

 

다양한 기록의 증거를 통해서 하나하나 미처 깨닫지 못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 이야기라 때로는 따라가기가 버겁기도 하다.  초한지를 딱 한번만 읽었기에 더욱 그렇다. 몇 번씩 읽고 자세한 내용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다면, 이 이야기들이 내게 더욱 깊게 박혔으리라.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속속 들어오고, 내가 의문점을 가졌던 이야기들에 대해선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에선 턱턱 무슨 소리인지 하고 막히곤 한다. 그래서 재밌기도 하지만, 지루하기도 하고, 쉬운 내용도 있지만, 어렵기도 하다.

 

 

4.

당초 항우는 그 모습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숙부인 항량의 휘하장수로 있었던 탓이다. 유방의 경우는 기병하기 전까지 비록 진나라 조정의 명을 거역한 결과이기는 했으나 일종의 군도로 있었다. 마치 마오쩌둥이 초기에 장제스 정부군에 쫓긴 나머지 정강산 안으로 들어가 비적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한 것과 갇닮았다.

- p.105

 

드디어 항우와 유방의 얘기가 전개된다. 그런데 여기서도 장량은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듯 하다. 아무래도 장량의 역할이 생각보다 꽤 컸기 때문이 아닐까.

 

 

5.

「항우본기」에 따르면 항우는 어렸을 때부터 문보다 무를 좋아했다. 어려서 글을 배웠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헀다는 기록이 그렇다. 장수 집안의 내력이 그같이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주목할 것은 그가 검을 배웠으나 이 또한 달가워하지 않은 점이다. 무인의 기본은 칼을 쓰는데서 시작한다. 왜 그랬을까? 「항우본기」의 기록이다. 항량이 노여워하자 항우는 이같이 항변했다.

"글이란 원래 사람의 이름을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검 또한 한 사람만을 대적할 수 있을 뿐이니 족히 배울 만한 것이 못 됩니다. 저는 만인을 대적하는 것을 배울 생각입니다."

- p.105

 

초한지 초반부에는 항우가 꽤 큰 비중을 차지한 듯 하다. 반면, 유방은 아주 민미했다. 힘이 너무나도 센 항우, 그리고 명문가 출신이었기에 너무도 당연한 전개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에서 항우는 그다지 비중이 크지 않다. 그보다는 그를 둘러싼 주변인물들에 초점이 가 있다. 적어도 내가 읽은 부분까지는 그렇다. 항우와 유방. 그들보다 중요한 것이 주변인물일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우리는 주연보다는 조연이 많다. 나도 내 인생의 주인공이지만, 엄밀히 말해 주연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도 어딘가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사서로 읽는 항우와 유방』에서도 조연에 그만큼 많은 초점이 가 있는 것이 아닐까.  조연들이 하는 역할들. 그 역할들이 유방과 항우를 만들어간다는. 조금은 이상하지만, 그럴듯한 논리로.

 

 

6.

장량이 유방과 재회한 뒤 최고의 참모로 활약한 것은 분명하나 그 이전 시기에는 그런 행보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2가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첫째, 장량은 초기만 해도 유방의 성공 가능성을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았을 가능성이다. 만일 유방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 쳤다면 유방이 항량의 군사를 빌려 풍읍을 손에 넣고자 할 때 종군하는 게 상식에 부합했ㄷ. 그러나 그는 그리하지 않았따. 유방이 자신이 고향인 풍읍을 손에 넣고 군별로 성장하면 좋고 그렇지 못할지라도 크게 상심할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을 공산이 크다. 유방과는 별도로 항량을 움직여 한나라의 재건을 꾀한 게 이를 뒷받침한다.

둘째, 장량 스스로 군웅의 일원으로 등장코자 했을 가능성아다. 누대에 걸쳐 한나라의 재상을 지낸 명문가 출신 장량은 건달 출신 유방과 달리 병가를 비롯한 제자백가 학문도 깊었을 뿐만 아니라 진나라의 병탄으로 집안이 일거에 몰락한 데 따른 원한도 깊었다. 그가 전 재산을 기울여 자객을 구한 뒤 진시황 척살을 꾀한 이유다. 벼슬이라고는 기껏 지금의 파출소장에 해당하는 시골의 정장을 지낸 유방과는 차원이 다르다. 처음부터 흉중에 천하를 도모코자 하는 큰 웅략을 품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항우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초한지제 때 활약한 영웅들 가운데 유독 항우와 장량만이 명문가 출신이었따. 엘리트의식이 남달랐다고 보아야 한다.

- pp.129~130

 

이제  의문이 풀렸다. 장량은 처음부터 유방에게 충실하고자 하는 마음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충성한 척 했다고 봐야 맞을 것이다. 이제 장량의 이야기에 대해 오늘의 마지막 결론을 보자.

 

 

7.

제갈량의 삶도 두사람과 닮았다. 비록 장량처럼 진시황 척살을 기도하거나 저우언라이처럼 도시폭동을 꾀하지는 않았으나 스스로 관중과 악의의 후신을 자처하며 천하를 손 안에 넣고 주무를 수 있다고 자부한 게 그렇다. 스스로 천하제일의 책사를 자부하며 선전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가 조조를 찾아가지 않은 것은 이미 조조 휘하에 인재들이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 밑으로 들어가 포부를 펼치는 게 수지에 맞는 일이었다. 의형제를 맺은 관우와 장비를 이끌고 외톨이나 다름없이 떠돌아다니던 유비가 찾아오자 '천하삼분지계'를 언급하며 선뜻 따라나선 배경이다. 이들 3인 모두 제2인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몸으로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이들이 최근 새롭게 평가받고 있는 청대 말기의 명상 중국번과 더불어 역대 중국의 재상 가운데 최고의 재상으로 손꼽히는 게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장량이 유방을 만나 '패공이야말로 거의 하늘이 내린 인물이다'라고 칭송했다는  「유후세가」의 기록은 믿을 바가 못 된다. 원문은 '패공태천수'이다. 항간에 나도는 얘기를 그대로 옮긴 것이거나 후대인의 가필로 보는 게 옳다. 진시황 척살까지 시도한 장량으로서는 유방을 처음 만났을 때 난세의 시기에 올라타 구석진 시골 풍읍에서 몸을 일으킨 건달 출신 '고집 센 얼치기 토패' 정도로 간주했을 공산이 크다. 저우언라이가 마오쩌둥을 처음 만났을 때 촌뜨기 출신의 '고집 센 얼치기 공산주의자'로 본 것과 닮았다. 이같이 접근해야만 장량이 유방의 풍읍 탈환에 참여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횡양군을 등에 업은 채 한나로 고토 수복을 꾀한 과정이 자연스럽게 해석된다.

- pp.131~132

 

아, 이 부분을 읽고 나니, 꽤 시원하다! 초한지를 읽으면서 풀리지 않던 의문이 싸악 풀렸다. 물론, 난 이 책을 아직 끝까지 읽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하나의 의문점을 풀은 것만으로 이 책의 가치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더 많은 의문점이 있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오래 전에 읽어서. 그러나 가장 큰 의문점 한 가지는 풀었다. 앞으로 읽어가면서도 내가 기억하지 못했던 의문점에 대해서 하나씩 풀려나갈 것이 분명하다. 다만, 너무 길고 두꺼워서 빨리빨리 읽어내질 못할 듯해, 1차 리뷰를 먼저 남긴다. 무엇보다, 장량에 대한 의문점을 해소한 기쁨을 빨리 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이 책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으니, 최종 리뷰를 쓰게 될지는 모르겠다. 이만큼 정보를 내보였으니, 이젠 나의 『사서로 읽는 항우와 유방』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다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길지도 모르니, 그렇게 되면 최종리뷰를 작성하게 될 것이다. 

 

그냥 한번 읽고 소비되고 마는 그런 책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한번씩 들추어보는 그런 책이 될 듯하다. 이 귀중한 책이 내게 보내주심에 감사드린다. 오늘은 하늘이 더 맑아 보인다. (사실은 흐리다) 항우와 유방의 이야기도 과거와는 달라 보인다. 나의 개인사도 이젠 달라지겠지. 나를 압박하면서 나를 조이고 싶지는 않다. 조금 더 여유있게 살아가고, 조금 더 여유있는 리뷰의 재미를 느끼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 쓴다. 1차 리뷰를. 아주아주 느긋하게 쓰여질 최종리뷰를 위해서.

 

- 이 리뷰는 인간사랑에서 도서를 증정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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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삶과 죽음] 삶은 복잡하고 다양하니까. | 리뷰를 믿어 (고전 역사 미술) 2019-09-1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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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삶과 죽음

스튜어트 제프리스 저/강수영 역
인간사랑 | 201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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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마르크스주의자였지만 정당에 가입하지 않았고 사회주의였으나 자본가의 돈에 의존했고 자신들의 고고한 시선으로 경멸해 마지않았던 사회의 수혜자였다. 그들이 살았던 사회가 아니었다면 그들에게는 마땅히 글을 쓸 만한 소재가 전혀 없었을지 모른다.

- p.245

 

사실, 걱정이 먼저 앞선다. 나는 이 책의 반의 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내용도 방대하거니와 내가 선뜻 이해하기엔, 너무 깊고 넓은 사상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부분만을 이해하기로 했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마르크스주의자였지만 마르크스주의자를 따르는 무리는 아니었다. 독자적으로 자신들의 세력을 구축했으며 또한 그들의 세력유지를 위해 자본주의를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공산주의자와 비슷하긴 했으나, 결코 공산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래서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어려운 지점에 선다. 아아.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 리뷰를 써 나가야 하는 걸까, 고민하다가. 깊은 내용 따위. 나도 모르는 그런 내용 따위. 고양이나 줘버려. 그래서 깊은 내용은 다루지 않기로 했다. 그저, 몇몇 발췌한 부분만 보면서 흐름만을 이해해 보도록 하자.

 

2.

프랑크프루트학파는절대 혁명 앞에 몸을 낮추지 않았다. "철학자들은 지금까지 세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해 왔을 뿐이다. 문제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라고 커를 마르크스는 말했다. 그러나 프랑크프루트학파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의 포이베르바하에 대한 12번째 테제를 거꾸로 뒤집어버렸다.

1923년 출연한 이래 프랑크푸르트학파로 알려져 있는 마르크스주의 연구소는 정당정치와 거리를 두었고 정쟁에 회의적이었다. 회원들은 파시즘의 잔혹성과 서구 사회를 피폐화 시키고 정신을 옥죄는 자본주의적 억압을 비판하는 데는 장인적 기술을 보여주었으나 그들이 비판하는 대상을 바꾸는 일에는 소질이 없었다.

- pp.23~24

 

이렇게 보면 프랑크프루트학파는 실천적인 학파라기보다는 학문적인 학파로 보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사실, 지금 생각해 봐도 프랑크푸르트학파가 대체 무엇을 해 온 것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딱히 세상에 영향을 미친 것도 아니고, 그들의 사상을 널리 전파시킨 것도 아니고, 참 희한한 경우의 수에 프랑크푸르트학파가 존재한다. 희귀성이라면 희귀성이고, 또 그러면서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는 이론일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니, 이것 참 알 수 없는 학파다.

 

 

3.

소외는 인간적인 낯선 고립감의 일반적인 조건이다. 물화는 소수의 특수한 형태이고 상품의 물신화는 물화의 특수한 형태이다.

프랑크프루트학파의 사상가들이 보기에 이 모든 것은 자본주의체제에서 우리가 실제 세상 대신 환영 속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귀결된다. 세상은 거꾸로 뒤집혀서 사물이 인간이 되고 인간이 사물이 되었으며 사물은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 모두) 그 자체로 유령적 삶을 살고 있다.

- p.137

 

사실, 이 말은 프랑크프루트학파 자신을 가리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 자신을 투영한 우리는 모두 환영 속에서 살게 된다. 우리가 프랑크푸르트학파를 보는 것도 환영이 되고 만다. 그렇게 되면, 결국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환영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뭘까?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교묘한 결합이 프랑크푸르트학파에 지대하게 영향을 미친 것일까.

 

 

4.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견해로는 부르주아 가족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대체로 가족의 권력, 특히 아버지의 권위는 자유낙하 했다. 가족은 물질적 토대와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 사이를 매개하는 중요한 사회제도이지만 무능력해지고 있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현실화하려 했던 혁명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다른 제도들이 자본주의사회의 시민들을 좀 더 효과적으로 사회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p.230

 

이제, 프랑크푸르트학파는 가족의 권력변화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권력의 변화는 사회제도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더 이상 아버지가 경제적 책임을 지는 유일한 생계책임자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절대권력은 사라졌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발전은 권위주의적인 사회에 일침을 놓았다. 결국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근간인 마르크스주의가 아닌 다른 제도들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프랑크푸르트학파도 그로 인해 위축되었을지 모른다.

 

5.

벤야민의 사망소식을 들었을 때 아도르노 부부는 자살이라고 단정한 뒤 절망에 빠졌다. 아도르노는 숄렘에게 썼다. 만일 벤야민이 12시간만 더 버텼더라면 그를 구할 수 있었을 거라고. "이 일은 전혀 이해할 수 없네. 마치 그가 무기력에 빠져 자신을 없애버리길 바란것 같다네. 그는이미 구조되어 있었는데도 말이지."

벤야민의 사망 이후 과감한 이론들이 제기되어 그의 부재가 벌려놓은 틈을 채우려고 했다. 스탈린의 심복이 벤야민을 죽였다는 설도 있었다.

- p.312

 

『프랑크프루트학파의 삶과 죽음』에서 가장 많이 얘기하는 사람이 벤야민인 것으로 보아 벤야민이 프랑크푸르트학파에서는 가장 중요한 인물인 것은 틀림없다. 그런 그가 죽었으니, 이제 프랑크프루트학파는 새 국면을 맞이할 거라 얘기할 수 있는데, 사실 이후의 프랑크푸르트학파는 그닥 인상적이지 못하다. 앞서의 강렬하게 사로잡은 이론들에 비해, 조금은 식상한 듯한 이론이 전개되는 것 같기도 하고. 물론, 100%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쓰는 리뷰라 단정하지는 못한다.

 

6.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해방을 현존 사회 질서에의 적응을 거부하는 태도와 연결시킨 반면, 하버마스가 품었던 매우 특이한 희망은 자본주의의 침식효과를 버텨낼 수 있는 진정한 민주주의적 제도를 창조함으로써 사회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렇지만 아도르노의 절망은 옳았을지 모른다. 진정 우리는 제3제국을 오래 전 지나왔지만 민주주의에의 헌신이 썰물을 맞은 것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기능적으로 잘 조직된 공공영역이라는 개념은 사팔뜨기 낙관론자의 어리석은 꿈처럼 보였다.

- p.529

 

딱 여기까지만 하자. 이 방대한 학파의 내용을 제대로 다 이해한다는 것은 지금 당장은 어려운 일이다. 조금 더 많은 양의 독서, 조금 더 깊은 사색, 그리고 다양한 지식 습득. 그리고 난 후에야 이 학파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내가 이해한대로 정리하라며 이렇다.

 

프랑크프루트학파는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지금 처한 자신들의 현실에 비관적이었다. 그래서 나름 살 궁리를 하면서 자신들의 근간인 마르크스주의는 유지하면서 자본주의에서 자신들의 이론을 펼쳐간다. 그래서 그들의 이론은 일반인이 이해하기엔 어려워졌다. 그러나 그들은 죽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그들의 이론은 살아움직인다. 그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그 희한한 힘. 마르크스주의자이면서 또한 마르크스를 신봉하는 것은 아닌, 또한 자본주의에서 자본주의의 덕을 누리면서도 자본주의를 마냥 찬양하지는 않는. 그렇게 어디에나 속하면서 속하지 않는 그들의 오묘한 상태가 오늘날 그들이 살아가는 힘이고, 또한 우리가 프랑크푸르트학파를 알아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삶은 한가지가 아니니까. 삶은 복잡하니까. 삶은 다양하니까. 삶은 우리를 어딘가에 쉽게 적응하게 내버려 두지는 않으니까. 그렇게 프랑크푸르트학파가 우리 삶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 이 리뷰는 인간사랑에서 도서를 증정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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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의 역사] 상대의 적의도 소멸시킨다는 | 리뷰를 믿어 (고전 역사 미술) 2019-08-02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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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요가의 역사

야마시타 히로시 저/최수련 역
인간사랑 | 2019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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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옴진리교가 '옴신선의 모임'이라는 요가도장을 전신으로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운동은 요가의 본질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이 진상이다. 『요가 수뜨라』2.·35에서 '<요긴에게> 비폭력이 확립되어 있으면, 그 사람이 있는 곳에는 누구라도 적의를 포기한다'라고 했듯이, 비폭력은 요가 수행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타인에 대한 폭력을 인정하고 행사한다면, 그것은 이미 요가라고 할 수 없다)

- p.289 (요가는 '종교'인가 중)

 

 

 

나도 요가란 걸 배워 본 적이 있다.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주 2회씩 딱 한달!  그 후, 강사가 바뀌는 바람에 왠지 다시 적응하기도 힘들 것 같기도 하고 요가란 이 힘든 운동을 계속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서 하지 않은 기억이 난다. 강사가 하라는 대로 열심히 따라해 보기는 했지만, 사실 제대로 한 적은 단 한 차레도 없다. 물론, 그렇기에 운동효과는 꽤 컸다. 그래서, 요가는 다시 해보고 싶은 운동이기도 하고, 다시 배우기 싫은 운동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같이 가서 하자고 하면, 나도 덩달아 따라갈지도 모르지만, 그 이전까지는 이제 요가를 배울 일은 없을 듯 하다. 요가의 가장 중요한 덕목! 비폭력! 절대, 억지로 누군가를 끌고 갈 생각일랑 하지 말 것. 요가는 철저히 자발적인 운동이니, 권유 정도로 그치자. ㅎㅎㅎ. 나랑 같이 요가하실 분, 발 드세요!

 

2.

에어로빅댄스의 경우, 때로는 격한 동작을 동반하여 관절이나 근육을 아프게 하는 경우도 있다. 심한 경우에는 근육이 절단되거나 호흡에 변조를 일으키는 등, 과도한 운동에 의한 문제도 표면화되었다. 특히 여름에 체력의 소모가 심하다는 지적도 있다. '건강'을 주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 피해의 측면도 주목되어, 차차 열기가 식게 되었다. 이리하여 요가가 다시 각광을 받게 되는 호기가 도래한 것이다.

- p.11

 

우리나라에도 한때 요가가 엄청나게 유행한 적이 있었던 거 같은데, 요즘은 그 시절에 비하면 좀 뜸한 것 같다. 문화센터나 문화원, 복지관 등의 문화강좌 커맄큘럼에 요가란 항목이 그다지 눈에 많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무슨 이름을 붙인 댄스 강좌 같은 것이 유행 중이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요가는 아직도 많은 분들에게 사랑을 받는 운동임에는 확실한 것 같다. 요가는 정말 특히, 남성들이 따라하기엔 어려운 운동인 것만은 분명하다. 남성의 기본적인 골격구조상, 요가의 동작이 잘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나 같이 유연성이라곤 없는 남성에게는 특히 더 그렇다. 그런데도, 요가를 해 봤던 이유, 또는 누군가와 같이 간다면 요가를 하고 싶은 이유는... 요가를 하고 나면 몸이 상쾌해지는 걸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요가에서 배운 동작을 모두 따라하지는 못하지만 그 동작을 따라하려는 시늉만 하는 것만으로도 굳었던 몸의 여기저기가 풀리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가는 어려우면서도 다가가고 싶은 운동이다.

 

3.

전통적인 요가에 대한 기초 소양이 없는 사람이 제법 구루인 척 이름을 내세우고, 자신만 만족하는 요가를 설명하기도 한다. 요가와 관계가 없는 것을 요가라 청하고, 때로는 별개의 독립된 체계와 요가를 '퓨전'이라는 이름으로 무절제하게 뒤섞고 있다. 요가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나 원어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조차 부족한 사람이 독선적인 요가책을 저술하던가, 외국 전문서를 번역하기도 하고 있다 .전자도 문제지만 후자도 곤란한 것이다.

- p.22

 

요가는 어려운 운동이지만, 때로는 그게 진짜 어려운 운동일까 하는 의문점은 존재한다. 물론, 쉬운 동작들은 아니다. 그런데, 가끔 요가와 관계없는 소양없는 사람들이 요가라 칭하면서 어려운 동작을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점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책은 요가의 자세나 동작에 관한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요가란 어떤 것이며 요가는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요가가 걸어곤 고행의 길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그야말로 <요가의 역사>에 관한 책이다. 그러므로, 요가에 대한 자세한 동작 같은 걸 원하셨던 분이라면 급 실망하실 예정이다. 그러나, 요가에 대한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한번쯤 일독하시면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4.

또한 여기서 말하는 '고행'(따빠스)이란 신체를 아프게 하는 엄한 수행이 아니라, 수행을 향한 강한 의욕·열의를 가리키며 요가와 양립하는 개념이다. 아이엥가는 높은 목표 실현을위해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 p.150

 

유레카! 요가는 신체를 아프게 하는 엄한 수행이 아니다. 요가의 고행은 목표 실현을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요가의 동작을 모두 다 따라하는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동작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세, 그 자체가 요가에서는 중요하다는 의미. 그러니까, 요가는 운동 이상의 의미를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5.

요가수행은 철두철미 비폭력·불살생의 가르침에 기초를두며, 또한 요가를 수행하면 상대의 적의도 소멸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실은 그것만이 아니라, 요가가 죽음을 극복한 경지, 생사를 초월한 지평으로 이끌어준다는 것도 알려주고 있다.

- p.185

 

그러니까, 요가의 진정한 의미는 수행을 통해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말을 실천할 수 있다는 말도 되겠다. 요가의 진정한 의미는 그 동작을 실행하는 자체가 아니라, 요가의 의미를 알고 깨닫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자세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6.

요가란 마음을 신체의 얽매임으로부터 해방하는 지혜이며 기술이다.

- p.293 (요가의 의의와...)

 

요가의 진정한 의의는 마음을 신체의 얽매임으로 해방하는 것. 신체가 나의 마음을 구속하여 때론 찌푸릴 때도 있고, 때론 적의가 가득한 삶을 살 때도 있지만, 요가를 통하여 그 신체의 연약함을 극복하고 비로소 마음의 어두움에서 해방되어 정신적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요가의 진정한 가치. 그리고, 그 깨달음.

 

『요가의 역사』가 가리키고 있는 지점이 바로 그 지점이 아닐까. 마음의 진정한 해방. 진정한 자유로움. 그러므로서 세상을 삐딱하게 보지 않는 지혜. 그 지혜가 나와 당신과 그리고 우리가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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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팔사략 (하)] 넉넉한 마음으로 (파블 16기 - 05월-05) | | 리뷰를 믿어 (고전 역사 미술) 2019-05-12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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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십팔사략 (하)

증선지 저/신동준 역
인간사랑 | 2019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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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진남북조 시대는 매우 역동적인 시기였다. 사상사적으로 볼 때 유교와 불교 및 도교 모두 상호 치열하게 경쟁적이면서도 상대의 장점을 적극 흡입해 사상통합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정치군사적으로 볼지라도 북쪽의 호인과 남쪽의 한족을 하나로 묶기 위한 다양한 정책이 실시됐다. 문화적으로도 남조의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문체와 북조의 간결하면서도 굳센 문체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상황에서 서로 장점을 베끼려고 노력했다. 20세기 초 청화대의 저명한 역사학자 진인각은 이를 호한융합으로 표현했다.

위진남북조가 전개되는 와중에 북중국을 통일한 왕조가 등장했다. 바로 탁발선비가 세운 북위이다. 북위는 이후 통일왕조인 수당 제국 건립의 바탕이 됐다. 북위의 수도는 석굴로 유명한 지금의 산서성 대동이었다.

- P.16

 

『십팔사략』상권이 송나라까지의 개괄적인 역사를 다루었다면, 하권에서는 송나라까지 왕조별로의 업적과 역사를 서술해 놓았다. 뭐 상권도 마찬가지고 하권도 마찬가지인데, 그냥 지루한 나열이 아니다. 나름 재밌으려고 많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여기서 잠깐! 네가 뭔데, 이 책을 평가해? 노력이라니? 이러시는 분. 혹시 있을지 몰라, 밝힌다. 내 맘입니다요!

 

2.

당나라를 패망의 늪으로 밀어 넣은 것은 소금의 밀매를 통해 부를 쌓은 황소가 일으킨 변란이 일으킨 이른바 '황소지란'이다. 이 변란이 일어날 당시 염세와 차세, 주세는 사람들을 경악케 만들 정도로 높았다. 이들 모두 백성들의 생활필수품이었다. 가혹한 세금은 황제와 황친, 조정관원, 지방관의 사치에 충당됐다. 백성들이 사방으로 흩어진 이유다. 당의종 때 일어난 구포와 방훈의 난은 '황소지란'의 전조에 해당했다.

당시 황소는 소금 밀매를 통해 많은 재산을 모았다. 사서는그가 격검과 기사에 능했고 책도 어느 정도 읽은 것으로 기록해 놓았다. 그러나 사실 황소는 여러 차례에 걸쳐 진사과에 응시한 독서인이었다. 『전당시』애 그가 지은 사 두 수가 실려 있다.

- P.185

 

전공자를 위한 책이라고 할 수는 있어 다소 지루한 부분도 분명 있기는 있으나,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빨려든다. 비록, 리뷰를 위하여 속독으로 읽고 건너뛴 부분도 있으나, 차분히 자세하게 읽어도 재밌을 듯 하다. 특히, 중국 선사시대에서 송나라까지의 역사에서 몰랐던 부분은 발췌를 해가면서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할 듯 하다. 그러니까, 이 책을 중국역사사전으로 봐도 무방할 듯 하다.

 

3.

요즘 책읽기가 잘 안 되고 있었는데, 십팔사략을 통해 다시 회복된 듯한 느낌이 든다.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든다. 역사를 정리하는 재미, 새로운 역사를 알아가는 재미, 소설을 읽듯이 역사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 그런 재미들이 어우러져 내게 책을 읽으라고 권유하고 있다. 오늘은 어떤 책을 더 읽을 수 있을까. 그런 기대를 하며, 잠시 쉬었다 가는 오늘, 나의 도약을 기대한다. 그리고, 이 글을 보시는 그대의 도약도. 뛰자, 뛰자, 뛰어가자! 그러나, 조금은 여유있게 경쟁하지 말고, 넉넉한 마음으로 뛰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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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팔사략 (상)] 인재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능력. (파블 16기 - 05월-04) | 리뷰를 믿어 (고전 역사 미술) 2019-05-12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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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십팔사략 (상)

증선지 저/신동준 역
인간사랑 | 2019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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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풍의 훈훈함이여

백성 노여움 풀어주네

남풍의 때맞춤이여

백성 제물 쌓게 해주네

- P.42

 

 

 


 

 

 1.

중국에는 평화로운 떄가 있었을까?

아마도 있었겠지. 그런 시절이 있었으니 지금도 중국은 건재하겠지.

하지만, 역사 속에서 중국은 언제나 치열했다.

그 혼란 속에서도 재물을 쌓는 자는 존재했으니,

중국의 역사란 알다가도 모르겠다.

 

십팔사략은 중국의 역사를 단 두권으로 집대성해 놓은 책이다.

두권이라 하지만, (상)(하)편으로 나뉜 것으로 봐서 원칙적으로는

한권이라 할 수 있다.

(상)편이 700페이지가 넘는다.

그런데 겁 먹을 필요는 없다. 이 중에 반은 한문원문 표기이므로

실제적으로 읽을 분량은 300여페이지가 조금 넘는다고 할 수 있겠다.

중국역사를 전공하거나 한문을 전공하지 않는 분들은 굳이 한문까지 볼 이유는 없겠다 싶다.

그러니까, 이 책은 일반인들보다는 전공자들을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소설이 아니기에 일반인들이 읽기에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다.

광대한 역사의 페이지를 축약해 놓은 형태기 때문에 친절한 설명이나 재미 위주의 내용이라기보다는 역사를 나열해 놓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역사를 건조하게 나열한 다른 책들과 달라 나름 어느 정도의 나래이션 형태를 취함으로서 지루하지 않게 늘어놓아서 가독성이 안 좋은 편은 아니다.  항우와 유방의 이야기에선 재미 있게 서술해 놓았기에 읽는 재미도 준다. 그러니까, 일반인들이 이 책 전체를 읽기에 부담스러울 수 있으나 부분부분 발췌해가면서 읽는다면 십팔사략을 읽는 재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신통한 다이어리가 꽂힌 것처럼 말이다.

 

상편에서는 진시황, 유방과 항우, 제갈량과 사마의에 대한 내용도 같이 볼 수 있다.. 역사를 집대성해 놓은 책이라, 중국역사를 소설로 읽었던 내용을 축약해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제갈량과 사마의에 대한 구체적 대결은 자세히 묘사되어 있지 않아 아쉬운 부분이다.

 

2.

유비는 자신의 부인이 적군에게 끌려갔다는 말을 듣고도 그저 묵묵히 입을 다문 채,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또 조조에서 패해 관우와 장비와 헤어지고 처자의 생사조차 알 길이 없는 상황에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조조와 손권 등이 유비를 두고 '천하의 효웅'으로 칭한데서 알 수 있듯이, 눈물을 흘리는 것 자체가 그의 본래 모습과 동떨어진 것이다. 오히려 풍부한 시정을 갖고 있던 조조가 자주 눈물을 보였을 공산이 크다.

난세의 시기에 조조 및 손권과 함께 천하를 삼분한 유비는 객관적으로 볼 때 크게 내세울 게 없었으나 그에게는 남다른 장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인재를 알아보고 적절히 이용할 줄 아는 능력이다. 인재를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등용하는 능력은 제갈량도 그를 따르지 못했다. 그가 천하의 쟁쟁한 호걸들과 자웅을 겨를 수 있었던 근본 이유이다.

- P.574

 

중국과의 대립과 친선. 롤러코스터를 오가듯 우리나라의 정세는 시시각각 변한다. 이렇게 시시각각 변하는 정세를 중국의 역사를 보다 면밀히 들여다봄으로서 해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인재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능력.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이 아닐까. 아무런 장점이 없는 사람이 오히려 나라를 이끌어갈 수 있는 올바른 지도자가 될 수 있찌 않을까 한번 생각해 보며, 상권의 리뷰를 마친다.

 

  나 이거 다 읽었냐고?

읽었다. 다만, 속독과 정독의 적절한 조화가 있었으니 참고하시라...키키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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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고십] 징비록 - 반성하자 | 리뷰를 믿어 (고전 역사 미술) 2019-05-12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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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징비록

유성룡(류성룡) 저/김흥식 역
서해문집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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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론 나는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았다.

때로는 읽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에게 죄책감으로 얽매게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읽지 않았다고 해서 리뷰를 쓰지 않을 수는 없다.

 

2.

류승룡이 쓴 임진왜란의 기록.

임진왜란하면 이순신이 쓴 난중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류승룡이 기록한 임진왜란의 생생한 기록도 전해져 온다.

 

3.

담력이 세고 용감한 권응수는 정대임과 함께 1000여며으이 군사를 거느리고 영전성을 포위했다. 그러나 아무도 두려워해 공격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그 중 몇 사람을 베자 모든 병사가 앞장서 공격에 나서기 시작했다. 우리 병사가 성안에 들이닥치자 왜적들은 창고로 숨거나 명원루 외로 피했으며, 그곳에 불을 지르자 사람 타는 냄새가 몇 리 밖에까지 퍼졌고, 살아남은 수십 명의 왜적은 경주로 도망가버렸다.

이때부터 신령·의홍·의성·안동 등지의 왜적들도 한 곳으로 모이게 되어 동부 지방의 안정을 되찾았다.

- pp.138~139

 

읽지 않았지만, 책 속의 어느 페이지를 펼쳐보면 이렇듯 생생한 묘사가 나온다. 물론, 류승룡이 직접 이렇게 쓸 수는 없겠지. 김흥식이란 번역가의 힘이다. 번역을 보면 마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임진왜란의 생생한 기억! 그 속으로 한번 빠져볼텐가!

 

4.

일고십 8월의 책이다. 아직 좀 시간은 있다. 요즘 내가 책을 많이 못 읽고 있다. 한번 뒤쳐진 독서능력은 좀처럼 올라올 줄 모른다. 책의 내용이 머리 속에 입력이 잘 되지 않는다. 그래도 서평당첨도서는 열심히 읽어서 리뷰를 정성스럽게 쓰려 노력 중이다. 다른 책들은 글쎄... 일단 사 놓은 거는 틈틈이 읽는 중이다.

 

오늘은 주일인데, 부처님 오신 날. 도대체, 교회 다니는 사람이 부처님 오신 날은 왜? 글쎄. 잘 모르겠다. 부처님 오시는 걸 불교에서는 축복해야 할 일이지만, 교회에서는 환영할 일은 아니니. 그러가, 난 분명히 믿는다. 부처님이 탄생한 것도 하나님 계획의 일부라고. 무엇인가 뜻이 있을 거라고.....

 

징비록! 임진왜란...그것도 우리나라 역사의 한 페이지. 그 거대한 전쟁에 담긴 역사의 의미도 우리에겐 분명 소중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 전쟁 속에서 우리는 반성하고 또 반성하고 다시 도약할 기회를 얻어야 할 것이다. 위정자 중에도 단순히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지지할 수는 없는 이유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사적인 욕심을 채우려고만 하는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반성할 줄 모르는 저 위정자의 욕심이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나 역시 반성하지 않는 것 아닐까. 징비록의 표지에 붙어있는 문구.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우리나라 반성하고 또 반성하고, 그리고 나부터 반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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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고십] (월든) 내 삶은 예술이 되어가고 있지!! 믿거나 말거나~ | 리뷰를 믿어 (고전 역사 미술) 2019-05-02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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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월든 (한글+영문판)

헨리 데이비드 소로 저/전행선 역
더클래식 | 2013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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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로우는 최소한의 도구로 최소한의 삶을 살 것을 이야기합니다. 비록 그는 2년만에 월든에서 벗어나 실제 삶으로 돌아가긴 했습니다만, 한동안 유행하고 있는 미니멀리즘과 연관지어 같이 생각해보면 좋을 듯합니다.

   

나는 내 인생에 넓은 여백이 있기를 원한다. (171)

     

여백이 있는 삶이라는 말 많이 들어봤을 겁니다. 우리는 어떤 여백을 생각해볼 수 있고, 그 여백을 만들기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 여백의 삶을 만들면서 살아가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닌 듯 합니다. 하지만, 우리 삶에 쉼표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연과정이겠지요. 여백의 미가 없다면 우리 삶이 결코 순탄하거나 행복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여백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 꼭 해야 할 것 중, 순위를 매겨 상위 세개에 집중하는 겁니다. 나머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들은 상위 세개를 한 후에 하는 것이죠. 사우이 세개에 포함되어야 할 것은 일에 관한 것, 취미생활에 관한 것(휴식관련), 인간관계에 관한 것. 이렇게 각각의 부분에서 딱 한가지씩만 정해놓고 해 보는 게 어떨까 생각합니다. 우선순위 세개를 분야별로 정해놓고 나머지도 있는 대로 늘어놓다 보면, 뭐를 먼저하고 뭐를 하지 않아도 되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월든.... 이 책을 통해서! 새로운 깨달음을~

 

 

2. 삶과 예술의 연관성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의 삶을 잘 살아내는 것만한 예술은 없다고 느껴지기도 했지요.

      

- 하루의 본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예술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사소한 부분까지도 숭고하고 소중한 시간에 음미해 볼 가치가 있도록 만들 의무가 있다. (138) 

 

내 삶의 어떤 부분이 예술일까? 혹은 예술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 이 질문을 보니, 이 책이 대충 어떤 느낌의 책일지 감이 오는 군요.  내 삶의 어떤 부분이 예술일까. 어려운 듯 하기도 하고, 알고 보면 쉬울 것 같기도 한 질문이군요.   내 삶은 책을 읽는 순간부터 예술이 되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그 순간에는 예술이 실존이 되었지요. 지금도 저의 예술은 계속 만들어가는 중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멋진 나의 예술을 기대하며, 다음 질문도 기대하겠습니다!

    

 

(질문 : 일고십 반장 휘연,

대답 : 일고십의 절대적 반항아 신다 (그냥 일고십 톡방에 프사가 그렇다는 얘기임. 실제 반항아 아님.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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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고십-2019년 4월 도서] (두 도시 이야기) 정당한 삶의 길 | 리뷰를 믿어 (고전 역사 미술) 2019-04-18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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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두 도시 이야기 (한글판)

찰스 디킨스 저/신윤진,이수진 공역
더클래식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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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 도시 이야기>에서 파리의 극단적인 귀족과 하층민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중 귀족들의 잔인성을 마차에 치여 아기가 죽고 말았던 이야기로 그리기도 하지요.

-       마차들은 으레 사람을 덮치고도 다친 사람을 그냥 버려두고 떠났으니까. 안 될 까닭이 무엇이란 말인가? (158)

생명의 존귀함을 논하여 우리는 귀족의 행태를 비난합니다. 그 당시 귀족들에게는 그런 생각이 당연한 것이었으며, 그들과 하층민을 아예 다른 종족으로 분류하며 합리적인 생각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에서 그들은 그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이유로 그들을 당연히비난할 수 있습니까?

- '당연히'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의 행태가 아무리 잘못된 것이었더라도 그들에게는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으며, 신분제사회에서는 그것을 악으로 보지는 않았으니까요. 예수님은 말씀하셨죠. 너희 중에 죄없는 자 이 여인을 돌로 치라. 아무도 그 여인을 정죄하지 못했습니다. 그 여인은 그 당시로서는 아주 치명적인 죄를 지은 여자였지요. 우리도 그들을 정죄하건나 비난할 수 없습니다. 대신, 그 당시의 그러한 당연함을 안타깝게 여길 수는 있겠지요. 그래서 오늘날은 그런 사태가 생기지 않도록,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아주 당연하게 타산지석을 삼아야 합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권력에 눈이 어두워, 돈에 눈이 멀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들을 비난하기보다는 그들의 마음이 그러함을 안타깝게 여기게 된다면 그 마음이 해결의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요. 그리 생각해 봅니다.

 

2.     <두 도시 이야기>에서 가장 큰 주제는 아마 연좌제가 아닐까 합니다. 찰스 다네이이자 시몽 에브레몽드는 자신의 귀족이라는 지위에 환멸을 느끼고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납니다. 하지만 결국 그 윗대에서 했던 악마적인 행위로 인해 죽음을 대가로 치뤄야 하는 운명을 마주하게 되죠.

-       선생님, 전 이 아이를 위해서 속죄하는 일이라면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다 할 거예요. 그러지 않으면 이 아이는 가문의 유산을 물려받아도 절대 번창할 수 없을 거예요. 다른 누구라도 이 잘못에 대해 속죄하지 않으면 언젠가 이 아이가 죗값을 치러야 할 거 같은 생각이 들어요. 제게 재산이라고 할 만한 것이 좀 있습니다. 보석 몇 가지밖에 안 되지만 만약 그 여동생을 찾을 수만 있으면, 제가 죽더라도 이 아이로 하여금, 어미의 동정과 슬픔을 잊지 않고 그 재산으로 불행한 가족에게 배상을 함으로써 죗값을 갚는 것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471)

그의 엄마는 아이가 잘 살 수 있기를 바라며, 그에게 그런 삶을 살지 않도록 그리고 그 윗대의 일들을 속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비록 그는 한 번은 타당한 이유로 살아남았지만, 마담 드파르주의 복수로 인해 결국 사형을 선고 받게 되지요. 그런 그의 운명은 인과응보일까요?

 

- 사람에게 당연히 따라오는 보상이나 죄에 대한 대가는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이 얼마나 반성을 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또 때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사람은 누구라도 회이의 마음을 품게 마련이지만, 그럴 때 마음을 비우면 삶에서 많은 것을 얻게 되곤 하지요. 그러므로 인과응보라기보다는 죄를 회개하기 위한 기회라고 보는 것이 맞을 거라 봅니다.

 

3.     파리의 시민들은 결국 자신들이 원하던 대로 귀족들을 몰아내고 서서히 나라 전체를 점령해나갑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렇게나 갈구하던 자유, 평등, 박애를 얻게 되지요.

-       만약 공화국이 정말로 가난한 사람들한테 좋은 일을 한다면 그리고 그들이 덜 굶주리고 덜 고생한다면, 그 애가 오래 살 수 있을텐데. 어쩌면 늙어 죽을 때까지 살 수 있을텐데. (532)

 

  하지만 그들을 대표하는 것은 그런 사상이 아닌 기요틴인 듯합니다. 어제와, 오늘의 피가 섞이고, 내일의 피까지 준비되어 있다는 문장으로도 알 수 있다시피 매일같이 그들은 희생물이 필요했고, 그를 통해 자신들의 결속력을 다지고, 굳건한 의지를 표명한 듯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던 것일까요? 그들이 저지르고 있는 무차별적인 살인은 응당 치뤄야만 하는 대가일까요?

 

- 정당성을 위한 폭력은 용인될 수 없지요. 어떤 경우라도. 그렇게 얻은 정권은 결국 또 몰락하게 될 거구요. 귀족들을 몰아내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 뒤의 이념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빈부이 격차가 점점 심해지는 요즘, 폭력사태를 권력을 꺾는 당연한 도구로 여겨질 때, 역사는 다시 한번 후퇴합니다. 정당한 테이블이 필요하고, 열띤 토론과 협상이 필요하고, 그리고 적극적 경청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 곧 우리가 원하는 것은 '살인'이 아닌 정당한 나라이고, 정당한 삶입니다. 그것을 위해 노력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미래를 올바르게 이끌어갈 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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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고십-2019년 3월 도서](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인간은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태어난 존재 | 리뷰를 믿어 (고전 역사 미술) 2019-04-18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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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저/조석현 역
알마 | 2016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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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연님의 질문

 

1.     이 책의 모든 환자는 뇌에 문제가 생긴 사람들입니다. 뇌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꽤나 인지하고 있다. 이런 뇌에 문제가 생기면 그 상태는 치명적인 경우가 많다.

 

 

 

-       인간은 기억만으로 이루어진 존재는 아닙니다. 인간은 감정, 의지, 감수성을 갖고 있는 윤리적인 존재입니다. (69)

-       정상적인 인간은 그저 계속해서 변화하기만 하는 감각의 집합체가 아니라 지속적인 개체 혹은 자아에 의해 통일을 유지하는 확고한 존재이다. (215)

 

<길 잃은 뱃사람>에 나오는 지미와 같이 기억은 없지만, 종교활동 등을 통해 영혼의 존재를 확인한 듯 합니다. 이 때 우리는 인간의 정의를 어떻게 내릴 수 있을까?

 

- 나에게는 종교가 있다. 기독교다. 예전에는 내가 교회 다닌다는 사실을 떳떳하게 밝히지 못했다. 왠지 모르게 창피했다. 그보다 더 전에는 교회를 거부한 적도 있고 교회를 욕한 적도 있다. 하지만 난 지금 교회 다닌다는 사실을 떳떳하게 밝힌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잘못하는 경우는 많지만 하나님이 잘못한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나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셨고, 앞으로도 들어주시려고 준비한다. 물론, 바로바로 이루어주신 것은 아니다. 내가 태어나서 살고 있는 것이 버거울 때는 하나님을 원망했다. 사람은 잘못할 수 있기에 그래서 서로간에 안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바로바로 나의 소원을 들어주신 것은 아니지만, 결국 언젠가는 내가 기도한 대로 모든 것을 들어주셨다. 나는 인간의 정의를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태어난 존재라고 말하고 싶다. 언젠가는 하나님의 선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 믿기에. 그래서, 나는 오늘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야기한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으며, 다시 부활하시어 그가 우리를 구원하신 메시아임을 증명하셨다.

그 예수님을 이야기하는 것이 하나님의 선이며, 언젠가는 나도 모르고 우리 모두가 모르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선을 이룩할 것이라 믿는다.

 

 

1번에 대한 답만을 준비했다. 2번도 있는데, (아래 글 참고) 2번은 중복된 얘기가 될 것 같아 생략한다. 책 얘기를 하라고? 미안하다. 책은 못 읽었다. 그래도, 이렇게 책의 일부가 정리된 휘연님의 글이 있으니, 안심하고 리뷰용 답글을 남긴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책에 대한 정보는 가늠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나만의 생각이라고, 빠져들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그대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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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 교육방법론] 어느 특별한 날을 위해 (파블 2019-3월-리뷰 05) | 리뷰를 믿어 (고전 역사 미술) 2019-03-17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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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에라스무스 교육방법론

에라스무스 저/김성훈 역
인간사랑 | 2019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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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억력이 "장소"와 "형상"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최고의 기억력은 무엇보다도 다음이 세 가지 요소, 즉 이성, 방법, 주의에 의존한다. 우선 기억력은 어떤 것을 완벽하게 이해하는데 달려 있다. 다음으로 우리가 잠시 잊고 있던 것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 방법이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기억하고 싶은 것을 매우 주의 깊게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야만 한다.

- pp.33~34

 

지금은 운전도 못하고, 면허증도 나의 증명에서 사라졌지만 (물론 차도 없다), 한때는 나도 운전을 "잘"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도 억울하게 남아 있는 한 기억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차선위반 딱지가 내게 날아왔다. 항변을 하기 위해 경찰서로 향했는데, 거기 있는 어떤 여형사가 나보고 이렇게 물어본다. 이 운전자가 내가 맞느냐고. 내가 뭐라고 다른 말을 하려 하자, 그 형사는 내게 "맞느냐, 안 맞느냐" 그것만 말해라, 라고 강압적인 태도로 몰아부친다. 결국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벌금을 내고 말았다. 그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운전한 건 내가 맞지만, 내가 차선을 위반한 건, 앞에 사고가 나서, 옆으로 비켜가느라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거다. 그걸로 딱지를 떼면 안 되지 않느냐. 앞에 사고 차량이 있어서, 다른 길로 가라고 유도해놓고 이제 와서 딱지를 왜 떼느냐. 그때 못했던 말은 아직도 내 마음 속에 남아 지금까지도 억울함으로 남아 있다. 그러니까, 그때 사고 난 척 유도해놓고 일부러 딱지를 뗐다는 이야기다. 지금은 그러지 못할 거다. 그렇게 했다간 난리가 날 테니까. 하지만, 그 시절에는 그런 일이 많았다. 일부러 실적을 올리기 위해 함정을 파놓고 딱지를 끊는 경우. 그 말도 그 당시에는 말 못하다가 이제 와서야 한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이긴 하지만, 언젠간 말하고 싶었던 것이기에, 나는 여전히 그 당시를 기억하고 있다. 에라스무스  교육방법론은 그런 나의 기억을 환기시켰다.  그때 그 여형사의 태도를 이해 못했지만, 지금에서야 그 당시의 분위기, 상황들이 그런 것들이었음을 이해하니까. 때로 나는 진짜 민주주의는 지금부터 시작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억압, 폐쇄, 강압적인 시대들이 여태껏 이어져 왔던 것은 아닐까.

 

 

2.

레무스와 로물루스도, 하나는 성품이 음침하고 근엄했지만, 다른 하나는 느긋한 성질이어서 서로 마주보기 힘들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의 이름도 로무스에서 로물투스로 바뀌었다. 카인과 아벨도 상이한 형태의 삶을 영위하였기에 서로 사이가 좋지 않고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무릇 사랑이 깊어지려면 서로 닮은 점이 많아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시인들도 많이 노래했다. 보기를 들면, 나르키소스는 세상의 모든 사랑에 일절 무심하다가 샘물에 비친 자기 모습에 매료되어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었다. 물에 비친 그림자만큼 우리 자신과 닮은 것이 또 있겠는가? 따라서 배움이 있는 사람은 배움이 있는 사람에게, 정신이 멀쩡한 사람은 멀쩡한 사람에게, 다소곳한 사람은 다소곳한 사람에게, 정직한 사람은 정직한 사람에게 마음이 끌리기 마련인데, 각자가 타인에게서 자기 자신의 성품을 보기 때문이다. 다른 몸에 투영된 자신의 모습에 끌리는 것이다. 만일 그러한 비슷함이 영혼의 선량함, 즉 경건, 정의, 절제와 같은 참된 선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그로부터 나오는 우에도 그런 덕목을 장려하려는 특질들인 정직, 진실, 진심, 견실, 영원에 바탕을 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비슷함이 덧없는 세상이나 심지어 조악한 품성에 의한 것이라면, 교사는 어떤 올바른, 유쾌한, 변치 않는 우애도 가능하지 않음을 일러주어야 할 것이다.

- pp.60~61

 

에라스무스 교육방법론의 본문은 짧다. 전체 책의 반도 채 되지 않는다. 대신, 편지 글이 나머지 반을 차지한다. 그래서 에라스무스의 핵심을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는 비슷한 사람에게 끌린다. 교육방법도 그와 비슷하다. 자신이 하려는 공부와 비슷한 방법에 끌린다.

 

교사는 단순히 수업의 전체 개요만 짚고 넘어가지 말고, 꼭 알아야만 하는 중요한 논점들을 확인해야 한다. 학생들은 그들 스스로 그러한 것들을 정확히 재현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중간에 힘들고 어렵다고 그만두지 말고 심지어 한 달이 걸려도 끝까지 해야 한다. 나는 새로운 단어가 나오면 무조건 종이에 옮겨 적는 아이들의 행태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행동을 통해 기억력은 오히려 감퇴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것에 관해 몇 자 짧게 적어두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기억력이 뛰어나다면 굳이 글자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 p.68

 

핵심은 이거다. 중요한 논점들을 짚고 넘어가는 것. 그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에라스무스 교육방법론』의 본문이 짧은 것이리라. 때론, 걸어가는 길 위에서 내가 파악해야 할 핵심이 무엇일까, 나는 지금 잘 가고 있는 것일까, 『에라스무스 교육방법론』은 아동에 대한 교육방법이 아니라, 우리의 전반적인 교육에 대한 의미를 한번 짚어보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교육의 보편적인 고전적 방법론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다. 이 방법론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누구나가 이미 실천하고 있는 방법론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고전이 괜히 고전은 아니다. 누구나 다 알지만, 다시 한번 새겨보고 싶은 이야기, 다시 한번 듣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는 것이 고전이 아닐까.

 

 

3.

그곳에 나는 있었다. 여전히 포도밭 사이를 걸으며 온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 혼자뿐이었다. 사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였다.

- p.101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든, 우리는 여전히 길 위에 있을 뿐이다. 그 길에 서 어느 곳을 갈지는 선택할 수 있어도, 그 길에서 무엇을 하게 될지, 누구를 만나게 될지, 무슨 기회가 길 위에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그 길 위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걸을 수 있다면 걸을 것이고, 나무를 심을 수 있다면 나무를 심을 것이고, 집을 만들 수 있다면 집을 만들 수 있을 것이고, 그저 아무것도 안하고 하늘만 바라보고만 있고 싶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 어느 길에서는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어느 길에서는 치열한 경쟁을 하기도 하고, 어느 길에서는 멈춰서 책을 보기도 하겠지. 우리는 같이 길을 가긴 하지만, 결국은 혼자서 가는 인생이다. 혼자서 가는 인생에 좀더 의미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면 좋겠다. 함께여도 혼자고 혼자여도 함께인 어느 특별한 날을 위해, 에라스무스가 함께 하길 바라며.

 

- 이 리뷰는 인간사랑에서 증정받은 도서로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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