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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북유럽 신화

케빈 크로슬리-홀런드 저/서미석 역
현대지성 | 2016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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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특히 여름이면 TV를 통해 항상 납량특집 '전설의 고향' 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구미호, 처녀귀신, 덕대골 등등 이불을 뒤집어쓰고 벌벌 떨면서도 그 끊을 수 없는 호기심에 실눈을 뜨고 시청했던 기억이 있다. 보통 우리나라에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각 지방의 전설과 민담을 드라마로 각색하여 만든 연속 사극물이었는데 그 인기가 상당히 높아서 많은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프로그램이었다. 오랜시간 입에서 입으로 또는 문헌으로 전해져 내려온 전설과 민담이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전설과 민담이 가지는 그 신화적 요소 때문이다. 꼬리가 아홉개 달린 여우 귀신, 밤마다 나타나서 새롭게 부임한 고을 원님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한(恨)을 품고 죽은 처녀 귀신, 내 다리 내놓으라고 외치며 쫓아오는 산 송장까지 현실과는 동떨어지지만 그래서 더 흥미로운 신화적 스토리텔링으로 인해 전설과 민담, 신화는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어느 민족 어느 나라에나 존재한다.

 

이러한 신화를 바탕으로 근 십여년 사이에 전 세계의 영화팬들을 열광시킨 한편의 시리즈물 영화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누구나 알고 있는 어벤져스 시리즈이다. 미국의 마블 코믹스에서 탄생시킨 애니메이션이 영화로 제작되어 매년 시리즈물로 개봉되면서 전 세계 영화광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이 영화 시리즈는 캡틴 아메리카, 헐크, 아이언맨, 블랙위도우, 스파이더맨, 호크아이, 앤트맨, 닥터 스트레인지, 블랙팬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등 셀 수 없이 많은 슈퍼 히어로들이 등장하여 세계를 위협하는 절대악과 싸워서 평화를 지킨다는 전형적인 선과 악의 대결구도를 그리는 액션 블록버스터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블 세계관이라 불리는 독특한 특징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주인공 히어로들이 활동하는 주 무대와 배경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가지의 시간과 공간적 배경 속에 중첩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처음부터 정주행해서 관람하지 않은 관객은 도대체 스토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즉 하나의 시공간적 배경 속에서 스토리가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 다발적으로 지구와 우주, 신들의 천상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히어로들이 등장하여 씨줄과 날줄 형식으로 한편의 이야기들을 만들어간다.

 

이러한 마블 세계관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 신들의 천상계 속에서 등장하는 히어로 중 한명인 토르와 오딘, 로키와 같은 신들의 원형적인 이야기는 다름아닌 북유럽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신화를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오늘 소개하는 책 <북유럽 신화>이다. 마블 어벤져스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의 대다수는 아마 영화 '토르'의 배경이 북유럽 신화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북유럽의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아이슬란드와 같은 소위 말하는 스칸디나비아반도 주변, 넓게는 발트해 연안 국가들은 너무나 유명한 바이킹족의 후손들이다. 이 바이킹족을 통해 오랜 세월 그들의 정신과 사상의 기원이며 원류가 된 신화적 스토리는 또 다른 유럽의 신화인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와 필적할 만한 탄탄한 설화적 구성을 갖는다. 그 안에서 북유럽 바이킹의 후예는 조상들의 얼과 용맹스런 기개를 배웠고, 삶의 지혜와 교훈을 전수받는다. 책을 펼쳐들고 독자는 우선 서론부에서 북유럽의 시공간적 배경, 그들의 우주관, 신들에 관한 이야기같은 사전 지식을 통해 북유럽 신화가 말하는 전체적이고 개괄적인 주제를 파악할 수 있다.

 

북유럽 신화는 그들의 신화적 배경을 4개의 수평면적인 공간으로 나눈다. 신들이 거주하는 아스가르드, 인간들의 세상인 미드가르드, 거인들의 세상인 요툰하임 그리고 죽은자의 세상인 니플하임이 그곳이다. 이 안에서 신들과 거인들은 끊임없이 갈등하고 싸우고 화해하는 등의 마치 인간사 속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일상을 동일하게 선보인다. 천지창조와 최초의 신과 인간, 거인들이 만들어진 이야기들을 읽고 있노라면 한가지 어렴풋이 스쳐지나가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유럽의 지배적 종교로서 기독교적 세계관이 가지는 독특한 특징이 책의 내용 속에서 알게 모르게 희미한 광채로서 비춰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억측이며 끼워맞추기식 해석일 수 있기에 자세히는 설명할 수 없지만 천국에 비견될 신들의 세상 아스가르드, 온 세상을 지탱하는 나무 이그드라실, 최초의 남녀 인간, 신 중의 최고 신 오딘과 그의 아들 토르, 사탄과 같은 존재인 비열한 신 루키, 지옥에 비견될만한 죽은 자의 세상 니플하임과 부활을 기다리는 죽은 전사들인 에인헤르자르 그리고 최후의 전쟁 아마겟돈과 비견되는 라그나로크까지 기독교적 세계관과 너무나 비슷하게 싱크되는 부분이 많아서 읽는 내내 더욱 더 흥미롭게 책장을 넘기게 된다.

 

그러나 독자는 단지 본서가 가지는 그 신화적이고 흥미를 유발하는 재미적 요소에만 만족할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전해내려오는 무형의 공통적인 가치와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전설과 민담, 신화가 말하는 선과 악의 대립이며 선은 필연적으로 악과 싸워 이긴다는 권선징악적 요소이며 교훈이다. 또한 다양한 신들은 어떤 때에는 믿고 협력하지만 또 어떤 경우에는 배신과 반목을 거듭하며 뺏고 빼앗기며 속고 속이는 인간사에서 발견하게 되는 그 추잡스럽고 탐욕스러운 애증의 행위들을 가감없이 시전한다. 더불어 배우자가 있음에도 다른 신들 또는 거인들과 통정을 통해 사생아를 낳음으로서 얼키고 설켜버린 가족관계는 신화가 가지는 그 도덕적 한계없음의 끝을 보여줌으로서 실제 인간 세상 속에서 벌어지는 그 복잡 미묘한 관계와 사회적 규범의 무력함을 풍자하기도 한다.

 

신화와 전설은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억울한 피해자들이 들끓었던 시대에는 원한에 사무친 원귀들이 구천을 떠돌며 자신을 해한 권력자들에게 원수를 갚는다거나 아니면 지극한 효심으로 늙은 부모를 공양한 효부들이 많던 시대에는 효심 가득한 이들에게 하늘이 감동하여 천혜의 선물을 내려준다는 전설과 민담이 전해내려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강력한 신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그보다 못한 인간들을 비롯해서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거인족들과 끊임없이 대립하고 싸워나간다는 설화적 스토리텔링이 자연스럽게 융화되고 녹아져 정형화 된 북유럽 신화 또한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와 같은 바이킹족이 중남부 유럽을 점령하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자신들의 민족적 정기와 정체성, 약탈 민족의 기개와 용기 등을 신화 속에서 찾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벤져스, 그중에서도 토르 시리즈를 통해 접한 마블 세계관의 원형이 되는 본서를 읽으며 이 후 등장하게 될 마블 시리즈의 개봉작들이 더욱 더 궁금해진다. 그리고 영화를 보며 항상 느꼈던 점 한가지는 어벤져스 시리즈의 전체적인 세계관을 구상하고 얼개를 구성한 마블의 기획력에 다시금 찬탄을 금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시공간이 다양하게 중첩된 세계관의 설정 자체는 천재적이며 얼핏보면 결코 연관성 없어 보이는 다양한 히어로들이 등장하는 시리즈물을 하나의 완벽한 플롯으로 끌고가는 마블의 뒷심 가득한 저력, 거기에 덧붙여서 전 세계 영화팬들의 팬심을 사로잡는 그들의 판타스틱한 마케팅력까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디즈니 사단만이 가지는 브랜드 파워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모르긴 몰라도 마블의 세계관을 구성한 기획자는 분명 역사와 인문학 분야의 해박한 전문가가 아닐까 생각한다. <토르 3 : 라그나로크>에 이어 토르 4편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다. 마치 학생이 시험을 잘 치르기 위해서 예습을 하듯이 마블의 팬이라면 토르 4편을 기다리며 먼저 본서 <북유럽 신화>를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더 흥미롭게 마블 시리즈를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안목이 생겨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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