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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와 판타지의 동시성 | 도서리뷰 2021-12-0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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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디칸카 근교 마을의 야회

니콜라이 고골 저/이경완 역
을유문화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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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국경지대에서 군사적으로 충돌한 위기라는 뉴스를 들었다. 예전에는 하나의 제국이었었는데, 구 소련이 해체되면서 소련 산하에 있던 15개 공화국들이 모두 독립선언을 했다. 언어와 문화가 러시아의 그것과 달랐던 우크라이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7년 전, 우크라이나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러시아가 병탄하면서 양국 간의 긴장이 다시 고조되었다. 공교롭게도 내가 우크라이나 폴타바 부근 소로친치 출신의 니콜라이 고골의 작품을 읽는 동안에도 양국 간의 갈등은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 첨예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은 1809년 러시아가 제국이던 시절에 태어났다. 우크라이나의 소지주 출신으로, 고향에서 김나지움을 졸업한 고골은 성공하고 싶어하던 청년들이 그러하듯이 당시 제국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서 많은 일들을 경험했다. 그리고 발표한 시집이 실패하면서 시쓰기에서 소설 쓰기로 전향하기에 이르렀다.

 

그전에 유행하던 낭만주의 사조를 계승한 고골은 당시 러시아 문학계에서 유행하던 우크라이나의 세시풍속에 주목했다. 고향에 있던 어머니와 지인들을 동원해서 악마와 마녀가 등장하는 민담들을 수집해서 자신의 작품에 녹여내기 시작했다. 그 결과 발표된 것이 바로 1831년과 1832년에 발표된 연작 <디칸카 근교 마을의 야회>. 각각 4개씩의 소설들로 이루어진 <디칸카>의 화자는 루디 판코라는 이름의 벌치기다. 그는 고골 자신의 문학적 페르소나다.

 

구전으로 전승되던 우크라이나의 민담을 고골은 어떻게 문학적으로 변용했을까. 21세기 기준으로 보면, 인간사에 무시로 개입하는 악마와 마녀들의 이야기는 분명 판타지다. 소로친치 같은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야회는 수도의 무도회에 대척을 이룬다. 단편에 등장해서 주인공들에게 내주는 악마의 과제는 인간의 욕망을 대변하고 있는 그런 느낌이다. 아무래도 18세기적 한계인지 에피소들은 상당히 권선징악적 요소들을 품고 있다.

 

동시에 낭만주의 사조의 영향으로 남녀의 연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우크라이나 농촌 총각의 마음을 빼앗기 위해서, 여자 주인공은 대개 절색의 미녀로 규정된다. <성탄 전야>에서 마을에서 가장 독실한 대장장이자 칠장이인 바쿨라는 17세 소녀 옥사나의 미모에 반한다. 오로지 미모만이 옥사나에 대한 바쿨라의 사랑을 말해줄 뿐이다. 아름다운 여성은 반드시 변덕장이일 거라는 룰에 따라, 바쿨라는 옥사나의 사랑을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그녀가 제시하는 과제는 말마따나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야 가능한 수준의 그런 것이다. 옥사나는 바쿨라에게 무려 여왕의 구두를 요구한다.

 

아니 아무런 빽도 돈도 없는 가난한 우크라이나 대장장이 청년이 무슨 수로 여왕의 구두를 손에 넣을 수 있단 말인가? 그건 요즘 말로 하면 아마 하늘의 별을 따다 달라는 무리한 요구에 다름 아니다. 사랑하는 여인의 말도 안되는 요구에 절망한 바쿨라는 자포자기한 심정이 된다. 그러다 달을 숨기고, 선량한 사람들을 죄악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으려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갈 뻔한 위기도 맞는다. 결론은 그전 에피소드에 등장해서 바사브륙의 유혹하는 페트로의 경우처럼 악마의 과제에 현혹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친모가 아닌 계모들은 모두 마녀라는 확고한 이미지도 이미 이 시대에 굳어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소로친치 마을에서 천사 같은 처녀를 본 청년 파라스카는 하필이면 그녀의 계모에게 심하다 싶은 말을 했다가 곤경을 치르기도 한다. 그 외에도 고골은 19세기 작가답게, 여성성에 마녀라는 구시대적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19세기 지식인의 한계라고 해야 할까.

 

한편, 러시아 문학의 사실주의 사조라고 불리는 고골의 소설에 등장하는 사실적 묘사들은 기대 이상이었다. 싱그러운 우크라이나 초원에 대한 그의 묘사는 요즘 표현으로 말하자면 4K 유튜브 동영상 콘텐츠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바람에 일렁이는 우크라이나 대초원의 풀잎 하나에서부터 인간을 괴롭히는 악마가 달을 감춰 버리는 모습 등이 그렇다.

 

우크라이나 농촌 사회 저변에 침투한 러시아 특유의 관료제가 지닌 고질적 문제점에 대해서도 고골은 냉정한 비판을 마다하지 않는다. 마을의 촌장들은 위원님이라 불리는 관료들의 눈치를 보면서,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바쁘다. 종교의 영역을 담당한 정교회 사제들도 촌장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경쟁을 벌인다. 하나둘씩 솔로하의 집에 숨어들어 들었다가, 체면 때문에 석탄 자루에 몸을 피했다가 곤경에 처하는 장면을 고골식 블랙유머의 절정이 아니었던가.

 

퀴리 부인 전기를 읽으면서 러시아 제국이 폴란드를 지배한 이야기에 분개하곤 했었는데, 폴란드와 리투아니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서 그들을 괴롭히던 시절도 있었다는 이야기에 조금 놀랐다. 멀쩡한 우크라이나 처녀를 폴란드 귀족에게 시집보내겠다는 말이 갖는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오기도 했다.

 

악마와 사탄 그리고 마녀로 형상화되는 우크라이나 민중들의 욕망의 변용은 현재 우리가 매주 사는 로또의 그것과 형식만 다르지 본질은 다를 게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19세기 혹독한 러시아 농노제 시스템에서 우크라이나 농민들에게도 별다른 탈출구는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현재의 고달픈 삶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얻기 위해서라면 악마의 계약을 맺어 그가 요구하는 과제를 수행하고, 응분의 대가를 요구하겠다는 대장장이 바쿨라 같은 주인공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고전에서 현재를 읽어내는 것, 바로 그런 재미로 우리가 고전을 읽는 게 아니겠는가.

 

[뱀다리] 이 작품의 발표 시기가 1831-1832년인데 42쪽과 43쪽에 나오는 플라스틱 병은 아무래도 번역 상의 오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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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 | 도서리뷰 2021-07-10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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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저/홍한별 역
민음사 |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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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의 아우라가 빛나는 가즈오 이시구로가 신작 <클라라와 태양>으로 다시 돌아왔다. 여기서 하나 궁금한 것이 작가는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새로운 저작에 대한 압박을 어떻게 이겨냈을까라는 점이다. 새로운 작품을 구상한다는 자체부터가 압박이 되지 않았을까. 그런 난관을 뚫고 이런 작품을 발표했다는 자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얼개는 비교적 간단한다. 미래 세계의 어느 시점, 인공지능을 탑재한 에이에프가 상점에서 팔린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이패드나 갤럭시탭 같은 제품들을 누구나 다 사는 건 아니다. 자신의 경제적 상황에 맞는 이들만이 상품을 구매할 수가 있다. 그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 주기 위해 창조된 에이에프의 주고객들은 아이들이다.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더 외로움을 타는 걸까?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클라라가 등장한다. 2세대 제품인 클라라는 쇼윈도 바깥세상을 바라보면서 여러 가지 것들을 학습한다. 되돌아보면, 우리네 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모두 부지불식간에 그런 사회적 학습을 통해 배운 것들이다. 대인관계에서의 기술, 학교에서 친구들과 지내기, 직장 내 눈치보기 등등... 클라라 역시 비슷한 경로를 통해 인간화의 과정을 거친다. 에이에프의 존재 목적은 고객의 외로움을 달래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통해 외로움을 달래지 못하고 기계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인간의 모습이 처량하기도 하다. 하긴 우리 인간들이 음악감상이나 영화 혹은 독서, 게임 그리고 요즘 대세인 너튜브까지 모두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고 생각한다면 에이에프의 존재가 마냥 낯선 것만도 아닌 것 같다. 다만 하나의 방법일 수 있을테니 말이다.

 

어쨌든 상점의 다른 에이에프들보다 월등한 공감대와 인지능력을 지닌 클라라는 14세 소녀 조시와 운명적 만남을 갖는다. 이시구로의 서사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주인이 등장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매장의 매니저는 에이에프들에게 약속을 하고도 나타나지 않거나, 아니면 구매하러 와서는 다른 에이에프를 고르는 경우도 있다고 클라라에게 알려준다. , 미래시대의 에이에프들은 태양을 자양분으로 삼아 가동한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태양은 근원자인 셈이다. 상점에 진열된 에이에프들이 조금이라도 태양과 접촉할 수 있는 명당 자리를 선호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소니에서 이미 소설의 판권을 사들여 영화화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엄마 크리시와 다시 매장을 찾은 조시가 클라라와 재회하는 장면이 어떻게 영상으로 만들어질지 나는 궁금하다.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클라라가 먼저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도 있었지만 클라라는 대신 조시가 자신을 찾아오기를, 그리고 자발적으로 선택해 주기를 바란다. 수동적 에이에프라는 존재에서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존재로 진화하는 결정적 순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클라라는 조시 가족의 낯선 일원으로 새롭게 출발한다. 조시의 엄마 크리시는 모든 부모들처럼 조시에게 더 나은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노력한다. 교류 모임인가를 통해 향상된 자녀들의 모임을 갖기도 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무한경쟁에서 촉발된 것으로 보여지는 향상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저자는 독자에게 설명해 주지 않는다. 우리 역시 클라라처럼 추정하고 추측할 따름이다. 그런 점에서 이시구로는 독자라는 그룹과 클라라를 동일선상에 올려놓고, 스스로 자가발전할 것을 주문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향상이라는 이름 아래 거행된 유전자편집이 조시가 골골거리는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미 조시의 언니 샐이 어린 나이에 죽었기 때문에(그 이유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조시의 부모들은 유일한 딸아이의 건강에 무척 많은 신경을 쓴다. 건강도 해야 하고, 또 애틀러스 브루킹스 같은 일류 대학에 들어가 최소한 부모보다는 나은 삶을 살길 원한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수행해야 할 미션이 너무 많다는 거다.

 

그런데 일주일에 무려 열 개나 되는 학원을 도는 우리네 아이들과 조시의 삶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방방이가 있는 카페에서 만난 어느 어린 친구의 말에 충격을 먹었다. 놀 시간이 없어서 자신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 동안, 그야말로 방방이의 끝까지 도달해 보겠다는 위력으로 마구 점프를 해대던 모습이 잊히지가 않는다. 그렇게 우리 인간의 삶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버겁다는 방증이 아닐까.

 

어쨌든 우리의 클라라는 자신의 주인 조시의 건강 회복을 위해서라면 모든 걸 희생할 각오가 된 에이에프다. 그렇다면 인간도 하지 못하는 희생과 헌신의 정신까지 탑재된 에이에프가 인간과 다를 게 무엇이냐라는 질문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자율판단에 근거해서 근원자 태양에게 조시를 위한 특별한 도움을 요청하고, 공해를 유발하는 쿠팅스 머신을 파괴하기 위해 자신의 기능을 감퇴시킬 지도 모르는 소중한 용액을 아낌없이 내줄 수 있다는 클라라의 선언은 감동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클라라의 말은 사람들의 감정이 메말라가는 시대에 명징한 인간 선언이 아니던가.

 

<클라라와 태양>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어벤저스 스타일의 스펙터클한 SF영화가 아닌 잔잔한 기조의 슬픈 동화가 될 것 같다. 가즈오 이시구로 작가는 진입장벽이 높다는 노벨문학상의 현학적 아우라 대신, 대중친화적 글쓰기를 선택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나는 더 좋았다. 물 흘러가듯이 그렇게 책을 만나고 책장을 덮었는데, 다양한 사유를 요구하는 긴 여진에 시달리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일까라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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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이 삶을 버티게 해 준다네 | 도서리뷰 2021-06-1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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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우리가 쓴 것

조남주 저
민음사 |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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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이어진 인연으로 어느 작가를 알게 됐다. 그리고 난 그 책을 또 다른 지인에게 선물했다. 재밌는 건, 나에게 그 책을 선물한 이가 그 사실을 잊고 있다는 점이었다. 역시나 무당파 조사인 장삼봉 선생 앞에서 태극권을 전수받던 장무기 생각이 떠오른다. 선행은 그렇게 베풀고 잊어야 하는 것이다.

 

조남주 작가의 소설집 <우리가 쓴 것>에는 모두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그 중에서 나는 예전에 어느 소설집에서 만났던 <현남 오빠에게>부터 다시 읽었다. 다시 읽어도 강현남 그놈은 나쁜 자식이더라. 근데 왜 이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마치 너튜브의 고민 상담소가 생각이 났을까? 한참 주가를 올리던 소문난 너튜버에게 진작에 자신의 고민을 상담했다면, 십년이라는 세월 동안 자신을 개스라이팅한 유사 남자친구에게 시달릴 일이 없었을 텐데. 상대방을 사랑한다며, 자기 마음대로 미래의 배우자에게 직업과 살곳을 비롯해 모든 것을 강제하다니... 21세기에도 여전히 그런 일들이 횡행할 수도 있다는 가정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첫 번째 단편인 <매화나무 아래>를 읽는다. 여기서 나는 충격적인 문장을 하나 발견했다. ‘늙는 것도 병’이다라는 문장이었다. 그렇게, 우리 인간은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는 그런 유한한 존재다. 아마 영맨들이라면 노(老)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으리라. 그저 아름다운 현재의 삶이 즐거울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어느덧 나이가 들어 병이 들고 자신의 건강 그리고 정신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되는 순간이 오리라. 아니 우리 모두는 그걸 알면서도 굳이 내색을 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점에서 우리 인간은 모두 위선적인 존재일 지도 모르겠다.

 

<오기>에서는 주변의 모든 걸 작품의 소재로 삼을 수 있는 작가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리고 보니 최근에 어느 작가는 사적인 대화를 소설로 만들었다가 진실이 드러나 뚜까 맞았다지 아마. 그런데 모든 게 내 입에서 튀어 나가는 순간, 그건 비밀의 틀에서 벗어나게 되는 게 아닐까? 요즘 읽고 있는 스페인 작가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새하얀 마음>에서도 나만 아는 비밀이란 절대로 존재할 수 없다는 걸 말하고 있지 않던가. 어쩌면 클리셰일지도 모르겠지만, 소설에 비밀이 존재할 수 있던가. 아니 나의 이야기를 소설로 만드는 것보다 더 두려운 건, 내가 신뢰한 사람이 어느 순간 적으로 돌아서는 게 더 무섭지 않을까.

 

아버지의 출가 아니 가출을 다룬 <가출>은 가장 유쾌하게 읽은 작품이다. 주로 애들이 가출을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아마 수십 년 동안 가장의 무게를 이길 수가 없었던 주인공의 아버지는 어느 날 가출을 감행한다. 그리고 보니 이웃 일본에서도 멀쩡하게 출근한다고 집을 나선 가장이 아예 실종되어 버리기도 했다지. 자신을 내리 누르는 삶의 무게에 지치다 보면, 모든 걸 훌훌 털고 그렇게 떠날 수도 있구나 싶은 설정이 가슴을 콕콕 찍어 누른다. 집 나간 사람은 집 나간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지론의 주인공 엄마는 대책 회의를 위해 모인 자식들을 위해 밥을 안치고 찬거리들을 분주하게 만들어낸다. 주인공의 오빠는 집 나간 아빠 걱정을 하는 척하면서 밥을 두 공기나 흡입해 버린다. 이 장면이 어찌나 웃기던지. 이런 디테일을 포착해낸 작가에게 이 자리를 빌어 경의를 표한다. 치매가 와서 나간 것도 아니고 ‘자기 앞가림을 잘 하시겠지’하며, 남은 식구들의 우애는 시간이 갈수록 깊어져 간다. 결말이 어떻게 되더라. 하긴 이런 서사에 결말 따위가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미스 김은 알고 있다>에서는 예전에 비정규직으로 회사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척척 해내던 미스 김 역의 김헤수가 자동으로 떠올랐다. 드라마 제목이 아마 <직장의 신>이었지. 실상은 정규직 못지않은 능력에 정규직들을 능가하는 업무 능력의 소유자지만 자의로 비정규직을 원하는 미스 김의 활약상을 그린 드라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끝까지 보지 않아 어떻게 결말이 났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작가는 역설적으로 회사라는 조직에서 가장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업무들을 처리하지만, 막상 그 일을 하던 이가 사라졌을 때 벌어지는 일들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마치 우리가 물과 공기의 중요성에 대해 1도 생각하지 않고 살지만, 막상 물과 공기가 없어진다면 바로 생존의 위기라는 걸 모르면서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미스 김의 소소한 복수는 귀엽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자신의 버킷 리스트 중의 하나인 오로라를 보러 가기 위해 대장정에 나서는 서사도 마음에 들었다. 우리네 부모님들은 당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해야 했기에 자신을 죽이고 그렇게 살아 오셨다. 하지만 신세대 노인들은 당당하게 말한다. 손주 새끼 보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딸이 어렵게 아이를 기르는 건 잘 알지만 또 그래도 그만큼 오로라를 보고 싶은 욕망도 강했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손주는 다음에도 봐줄 수 있지만 오로라는 평생에 한 번 볼까말까한 것이고 그렇게 보고 싶었다면... 우린 그렇게 양자택일의 순간에 선택을 강요받는다. 모를 일이다 그래.

 

대미를 장식하는 건 역시나 코로나 시절 너무 일찍 찾아온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제목부터 멋지다, <첫사랑 2020>이라니. 2020에도 첫사랑이 있구나 싶다. 역병의 시대에 꼬맹이들은 서로에게 호감을 표시하고 사귀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주변의 여건이 그럴 수가 없다. 작은 여행사를 운영하시는 아버지의 일감이 코로나로 없어지니 당연히 수입이 줄고, 그러면 학원도 마음 대로 갈 수가 없다. 같은 학원에 다녀야 썸 타는 친구와도 만나고 그럴 수가 있는데 그럴 여건이 되지 않는다. 안경 위로 솟아오르는 김처럼 갑갑한 이야기들이다.

 

조남주 작가의 <우리가 쓴 것>에는 평범하면서도 동시에 특별한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평범하지만 무언가 울림이 있는 이야기들을 픽업해 내는 작가의 기술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한편으로는 물어 없이 고구마 한 자루를 먹고 있는 듯한 경험도 곳곳에서 했지만 말이다. 전반적으로 만족한다.

 

#조남주#우리가쓴것#0판1쇄#미리뷰어#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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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딱뚝딱 입체 종이접기 1권 | 도서리뷰 2021-06-06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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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뚝딱뚝딱 입체 종이접기 1 탈것(땅), 큐브

편집부 저
도서출판스쿨존 | 202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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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종이접기를 좋아했다. 그 시절에는 정말 종이접기 책이 별로 없어서 요즘처럼 다양한 스타일의 종이접기를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종이접기 책을 본다고 하더라도, 책에 나와 있는 대로 따라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요즘에는 너튜브가 하도 인기다 보니 어지간한 것들은 보고 따라할 수가 있지 싶다.

 

이번에 만난 <뚝딱뚝딱 입체 종이접기>는 그런 걱정들을 한 방에 날려준다. 일단 따라서 만들기가 쉬운 게 장점이다. 어디어디에 풀칠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표시가 되어 있어, 잘 접은 다음 풀을 붙인 뒤 조립하면 완성이다.

 

 

이번 시리즈는 모두 3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나의 픽은 1권인 탈것(땅)이었다. 탈것이 모두 8개로 구성되어 있었고 후반에 큐브 네 가지가 추가로 들어있다.

 

첫 번째 픽은 바로 <공주님 마차>였다. 나의 경험을 되살려 보면 항상 설명을 읽지 않고 무턱대고 급발진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들어가는 글을 읽고 시작했다. 항상 그러는 건 아니다. 우선 작은 조각부터 조립하라고 한다. 그렇지, 보통 큰 조각들부터 하기 마련인데 작은 조각부터 하는 게 우선인가 보다.

 

다음 가위로 오린 조각들을 굳이 풀로 붙일 필요는 없다고 한다. 나도 그전부터 종종 사용하던 방법이었는데 사실 풀칠을 해서 작은 조각들을 맞붙이기가 쉽지 않다. 이미 예전에 여러 번 해봐서 잘 알고 있던 바다.

 

 

 

 

그래서 책은 셀로판 테이프나 양면 테이프를 추천한다. 여담이지만 얼마 전에 만난 동화에 등장하는 테푸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테푸 할아버지는 테푸(테이프)로 거의 모든 것들을 수리하시는 놀라운 기술을 보유하신 분이었다. 우리의 감정까지도 다 고치시나 그랬었지 아마. 사실 풀칠로 정교한 작업하기가 쉽지가 않다. 풀의 점성이 약해서인지 어쩐지 풀칠한 종이가 떨어지면 난감해지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좀 더 강력한 셀로판 테이프나 양면 테이프가 효과적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뚝딱뚝딱 그렇게 공주님 마차가 완성됐다. 어린 친구들이 하는 종이접기보다 레벨업이 되었는지 조각들을 오리기가 쉽지 않다. 예전에는 뜯어내는 시스템이었는데 이제는 직접 모든 걸 다 오려야 한다. 가위질하던 꼬맹이가 손이 아프다고 징징댄다. 결국 어른이 나서야 하는 타이밍인가.

 

 

다음 미션은 노랑노랑 택시와 큐브다. 솔직히 말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공주님 마차에 도전했다가 기진맥진해서 그 다음에는 좀 더 쉬워 보이는 노랑노랑 택시에 도전했는데 이것도 쉽지가 않다. 세상 일이 다 그렇듯, 쉬운 게 하나 없다. 그렇게 택시를 완성하니 나니 이번에는 큐브를 만들어야 한단다. 아이고...

 

 

큐브는 더 작은 조각이어서 만들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 품도 많이 가고, 풀칠하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어찌어찌해서 정육면체를 다 붙인 다음에, 마지막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다. 큐브는 그런 식으로 무한반복하면 동물얼굴을 만들 수가 있다.

 

 

 

<뚝딱뚝딱 입체 종이접기>는 오리기와 붙이기에서 좀 난이도가 높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아무래도 그런 만큼 완성된 뒤의 만족감이나 성취도는 예전에 띠어내기식 종이접기에 비해 월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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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좋은 날에는 | 도서리뷰 2021-05-23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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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좋은 날엔 꽃떡

김바다 글/이은선 그림
책고래출판사 | 202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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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시장에 가면 떡을 사먹곤 한다. 나의 최애 떡은 바로 증편이다. 돌아가시는 나의 할머니는 인절미를 그렇게 좋아하셨다. 할머니는 인절미가 있다면, 밥도 드시지 않을 정도로 인절미를 좋아하셨다. 진짜 오래전, 그야말로 전설 같은 이야기인데 북한에 진주한 로스케들은 쫄깃한 인절미를 씹다가 질려서 따발총을 쐈다나 어쨌다나. 진짜 믿거나 말거나다.

 

김바다 작가의 <좋은 날엔 꽃떡>에는 뭐랄까 공동체 의식이 살아 있던 시절의 나눠먹기에 대한 로망 혹은 판타지가 배어 있는 그런 느낌이다. 예전에 아파트에 이사하고 그러면 인사떡을 돌리곤 했었는데 하도 인심이 각박해지다 보니 인사떡은 무슨... 그리고 보니 나도 2년 지금 사는 집에 이사올 적에 이사떡을 돌리지 않았다. 안주고 안받기가 시대정신이 된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림동화에서는 나눔의 미덕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주인공 아줌마는 꽃떡을 만들긴 좋아하신다. 그리고 좋은 날에는 각종 꽃떡들을 만드시다가 결국 떡집을 차리기까지 하신다. 나눔과 베품의 미덕에 대한 향수라고나 할까. 나눔을 받는 건 환영하지만, 또 나누는 데는 인색한 게 우리 현대인이 아니던가.

 

어쩌면 잘 볼 수 없는 혹은 이루어질 수 없는 로망이기 때문에 스토리텔링은 잔잔하고 또 한편으로는 애절하기도 하다. 지금처럼 도시화가 진전되기 전까지는 그래도 사람사는 맛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 같지 않다. 닭장 같이 획일적인 아파트에 살면서 삶의 방식도 그에 맞게 변화한 걸까. 그리고 좁다란 케이지 안에 갇혀서 알을 생산해내는 닭들의 모습과 하루의 일용할 양식을 벌고 휴일을 보내고 그러는 우리네 모습과 무엇이 다른 걸까. , 너무 멀리 나간 모양이다.

 

김바다 작가의 주인공이 빚어내는 아름답고 맛나 보이는 꽃떡을 보는 이들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된 그런 느낌도 든다. 너무 이쁘니 차마 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보기에도 좋아 보이고, 맛나 보이는 그런 꽃떡을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손이 갔을까.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누군가의 노동이 투입되었다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꽃떡집 주인 아줌마는 자신이 그렇게 만든 떡으로 마상한 이들을 위로하고 돕기까지 한다. 완전천사표가 아닌가.

 

모든 정 중에 가장 무서운 게 자고로 밥정이라고 했다. 서먹서먹한 자리에서도 무언가 먹을 걸 나누면 이야기가 시작된다. 최근 참가했던 공방에서 젓가락 깎기에서도 바나나와 떡(그렇다 모임에 나오신 분 중의 한 분이 맛나 보이는 떡을 가져다 주셨다!) 그리고 음료수를 먹다 보니 자연스레 말문이 트이더라.

 

짧은 그림동화를 만나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누굴 만나기도 그렇고, 음식을 먹으러 가기도 꺼려지는 그런 시간이다. 좋은 날에는 맛있는 걸 먹으면서 나누는 그런 시간들이 그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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