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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동주의 공조 | 도서리뷰 2020-12-08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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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3도시

정명섭 저
Storehouse 스토어하우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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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혈압 상승수면 장매분노 조절 장애 등 다양한 증상이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불과 1시간 거리에 있는 군사분계선을 넘으면 발생한다고 한다개성은 동시에 북한에게 한국전에서 빼앗긴 의미있는 도시이기도 한다그쪽에서는 신해방지역이라고 부른다나.

 

소설 <3도시>는 바로 그 개성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주인공 강민규는 헌병수사관 상사 출신으로 뉴욕 탐정사무소에서 일한다다시 재개된 개성공단에서 속옷 공장을 운영하는 외삼촌 안종대 사장의 제안으로 관리부 과장으로 특채되어원재료와 재고가 주기적으로 망실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성으로 파견된다물론 자본주의 시스템 답게해결에 따른 착수금과 인센티브를 준다는 제안은 필수다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건 돈이라는 말이다.

 

개성공단이라는 존재 자체도 마찬가지다남쪽에서는 북쪽의 값싼 노동력이 필요하고북쪽에서는 남쪽이 제공하는 달러가 필요하다그들은 신성한 공화국 영토를 남쪽의 자본주의자들에게 제공한 것이 대단한 혜택이라고 생각한다반대로 남쪽에서는 그들이 갖지 못한 자본과 기술을 제공하는 것이 시혜라고 생각한다. 70년이라는 분단의 세월 만큼이나 한 가지 현상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극명하게 갈리는 것이 바로 개성공단의 현실이라는 점을 정명섭 작가는 예리하게 짚어낸다.

 

누가 봐도 뻔한 낙하산 인사인 강민규의 투입에 개성 현지인들은 반발한다현지에서 안종대 사장을 대신해서 모든 업무를 관장하는 법인장 유순태는 적대적이기까지 하다그는 낙하산 강민규가 오자마자 점령군 행세를 하면서 재고조사에 나서는 이유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한국에서라면 당장 라인을 멈추고, CCTV를 가동해서 재고의 입출고를 맞출 텐데 개성공단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한다하긴 개성공단에 입경하기 전에 모든 통신 장비들을 반납하고 들어가지 않았던가.

 

비비큐 치킨이나 씨유 같은 한국식 자본주의 시스템들이 가동하면서도한편으로는 철저하게 북한의 실세인 호위총국의 엄호와 감시를 받는 곳이 또한 개성공단이라는 공간이다지도자와 평양 방위를 맡고 있다는 우리의 경호실에 해당하는 호위총국은 개성공단이라는 돈줄기를 움켜쥐고 있는 형세다폐쇄적이고 자신에게 비우호적인 상황에서 강민규가 할 일은 사실 전무했다하지만 전직 헌병수사관답게 강제된 아날로그 방식을 이용해서 자신에게 맡겨진 사건의 실마리를 하나둘씩 추적하기 시작한다.

 

정명섭 작가는 분단이라는 구조에 살인사건을 추가하면서 장르적 재미도 추구한다현지의 법인장 유순태가 자신의 방에서 살해당하고강민규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어 북한 공안당국에 체포되면서 소설의 분위기는 급반전된다이때 취조실에 나타난 이가 바로 호위총국 소속의 오재민 소좌그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강민규에게 추방 명령을 선고한다하지만 자신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 위해 강민규는 자신에게 주어진 3일 동안 전력을 다해 사건해결에 나선다이 장면에서는 서로 원수 같은 남북이 힘을 합쳐 사건 해결에 나선다는 영화 <공조>가 연상됐다그리고 오월동주의 고사도 말이다아니 더 나아가서는 이현세 작가의 <남벌>도 떠올랐다외계인이 지구별을 침공하면지구인들은 힘을 합쳐 대항해야 할 게 아닌가.

 

분단이라는 역사적 현실 속에서요원해 보이기만 하는 통일이라는 조국과 민족의 역사적 대의를 위해 분투하는 각각의 모습을 정명섭 작가는 소설 <3도시>의 모티프로 삼았다수년 전남북간의 경색으로 중단된 남북경협은 다시 재개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개성공단이라는 형태로 어렵게 성사된 화해와 평화의 물꼬가 닫힌 것은 정말 애석하다소설에서 언급되고 있듯이남과 북 모두에 있어 평화로운 교류와 통일을 반대하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싶다적대적 공존이 어느덧 상수가 되어 버린 느낌이라고나 할까.

 

보수 쪽에서 주장하는 경제제재를 통한 고사작전은 효용이 없다는 게 증명되었지만상대의 체제를 인정하지 않는 방식의 통일을 고집하는 게 문제다그들은 고난의 행군을 통해 상대에 대한 적개심만 키웠을 뿐이다잘못된 방식을 계속해서 고집하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상기시킬 필요도 없을 것 같다그간의 제재가 효과가 없었다면다른 방식을 시도해야 하는데 주변 환경이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예전에 분단 독일 체제 아래서서독이 전례를 보여 주었듯이 인적물적 교류를 확대해서 상대를 포용하는 전략으로 가면 되지 않을까이제 예전처럼 체제 경쟁을 할 시절은 아니지 않은가하긴 반대파들의 반발을 고려하지 않은 너무 이상적 접근 방식이라고 한다면 또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어쨌든 상호간에 불신에서 비롯된 경색에서 탈피해서발전된 미래로 나가는 그런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다.

 

강민규와 오재민의 파트너십은 인상적이었다앞으로도 계속되는 시리즈로 나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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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시험적 상징의 추락과 자각 | 도서리뷰 2020-04-2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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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미국의 아들

리처드 라이트 저/김영희 역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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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었다. 자고로 허명이란 존재하지 않다는 걸 리처드 라이트의 고전 <미국의 아들>을 읽으면서 느꼈다. 지금으로부터 자그마치 80년 전인 1940년일에 발표된 <미국의 아들>은 여전히 인종주의 족쇄에 갇혀 있는 미국의 오늘을 추적해 볼 수 있는 많은 단서들을 제공한다.

 

18631월 미합장국의 대통령 링컨은 노예해방령을 발표하면서 미국에서 공식적인 노예제의 폐지를 선언했다. 하지만 77년이 지난 1940년까지 미국 흑인들의 삶은 과연 어땠을까. 바로 소설 <미국의 아들>의 주인공 비거 토머스라는 20살 난 청년의 삶을 통해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버디와 베라 두 명의 동생들과 어머니까지 모두 네 명이서 단칸방에 사는 비거는 이미 타이어 절도혐의로 소년원 신세를 진 바 있다. 어머니는 구호소를 통해 얻게 된 백만장자 돌턴 씨네 집 운전사 일을 하라고 아들 비거에게 못이 박히게 잔소리를 늘어놓으신다. 그렇지 않고 못된 짓거리만 일삼으면 기다리는 것은 교수대일 거라는 무시무시한 예언은 첫 번째 장의 제목 두려움(fear)처럼 독자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든다.

 

다음 장면은 일거리가 없고 먹고 노는데 필요한 돈 마저 없는 청년 비거 갱들의 모습이다. 누군가에게는 모든 것을 경험하고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반면, 비거와 그의 친구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원천 봉쇄되어 있다. 사회적 모순으로 잉태된 그런 문제들을 그들의 탓만으로 돌릴 수 있을까. 누구는 백만장자 아버지를 둔 덕분에 세상을 누비면서 온갖 것들을 맛보고 구경하고 체험해 보지만, 돈 한 푼 없는 청춘들은 모여서 백인 아저씨가 운영하는 가게를 털 궁리를 하고 있다. 물론 그들은 불안하게 만드는 것 또한 강도짓을 하다가 잡힐 경우에 대한 걱정이다. 자신과 같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친구 거스를 폭력적으로 몰아붙이는 비거의 모습에서 어쩌면 저자는 앞으로 일어나게 될 비극의 전조를 예비해 둔 것인 지도 모르겠다.

 

자자 이제 비거의 백인 희생자가 등장할 차례다. 그녀의 이름은 메리 돌턴. 그녀의 아버지 헨리 돌턴 씨는 유색인종에 관대하다. 그는 비거를 고용하고, 후한 보수까지 약속한다. 아마 비거가 돌턴 씨와의 구두면접에 통과해서 취업에 성공한 토요일 저녁이었던 것 같은데, 바로 그 날 비거는 대형 사고를 치고 만다. 흑인들에게 온정적인 메리와 그녀의 애인이자 공산주의자 잰 얼론은 비거를 앞세우고 어니네 밥집에 들러 흑인들이 느끼는 분위기에 취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얌전하게 집에 돌아왔으면 좋았으련만 결국 사달이 나고 만다. 비거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그 범죄를 숨기기 위한 은폐를 시도한다. 그렇다고 그의 범죄가 숨겨질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계속해서 그를 쫓아다닐 환영의 원형이 독버섯처럼 피어오른다. 누군가의 선의가 그대로 전달되지 않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왜곡될 수 있다는 설정에 소름이 끼칠 정도다.

 

소설에서 놀라운 건, 주인공 비거 토머스가 살인이라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자각해 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점이다(무려 1940년에!!!). 그동안 자신과 자신의 주변인들이 모두 돌턴 부인처럼 장님이었다는 사실을 비거는 깨닫는다. 물론 무고한 사람을 죽였다는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하기는 하지만 개인적 각성의 정도는 그런 양심의 가책을 뛰어넘는다. 묘하게 자신감이 붙은 비거는 한술 더 떠서 메리의 실종을 공산주의자들이 기획한(당시 미국 사회가 갖고 있던 공산주의에 대한 불안과 또 다른 종류의 두려움을 엿볼 수 있다) 납치극으로 전환하면서 몸값을 받아내어 여자 친구 메리와 공모해서 도주(flight)를 기도한다. 비거 토머스가 순진하고 무지한 흑인 청년 역을 연기하던 중, 자신이 유기한 메리의 시신이 돌턴 저택의 난방로에서 발견되면서 극적인 전환점을 맞는다. , 그전에 검정 아니 흰 고양이가 비거의 어깨 위에 올라타는 장면에 대한 사실적 묘사는 에드거 앨런 포의 걸작 스릴러 <검은 고양이>에 대한 오마쥬처럼 읽힌다. 리처드 라이트가 유머감각이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비거는 이어지는 도주 와중에 연인 베시 미어스마저 살해하고(그 와중에 자신의 욕정을 채우는 파렴치한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숨막히는 탈주극을 전개한다. 이 소설이 영화로 이미 만들어졌던가? 정말 대단한 문학적 연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뒤를 쫓던 제리마저 권총으로 때려눕힌 비거는 결국 포위되어 사로잡힌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최고의 장면은 구치소에 갇힌 비거를 찾아온 이들이 등장하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종교인 해먼드 목사가 처음으로 등장해서 하나님에게 용서를 구하고 영혼을 구하라고 권고하고, 자신이 교묘하게 메리 살해누명을 씌우려 했던 잰 얼론까지 등장해서 변호사 맥스를 동원해서 자발적으로 돕겠다고 나선다. 흑인범죄라면 아주 치를 떠는 주 검사 버클리, 어머니와 버디-베라를 필두로 한 가족과 비거 갱단원들 마지막 돌턴 씨 부부까지 등장하면서 그야말로 수치심과 모욕감으로 어쩔 줄 몰라하는 비거의 영혼에 강력한 타격을 가한다.

 

, 그전에 비거가 구치소에서 입수한 신문에 실린 자신의 범죄에 대한 언론에 반응은 기가 찰 지경이다. 그의 몽타주가 짐승 같다는 표현은 애교에 가깝다. 비거가 인간과 유인원 사이의 어떤 종이라는 비하로부터 시작해서 비거 같이 무식하고 교육 받지 못한 흑인들이 모름지기 백인 여성들을 유린하고 그런 끔찍한 범죄를 무시로 저지르기 때문에 인종차별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논조마저 등장한다. 문제의 해결을 위한 대안으로 흑백의 철저한 분리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주장 앞에서는 정말 할 말을 잃었다. 인종문제의 원인이 되는 사회구조적 모순의 해결 대신, 자의적이고 막연한 해결책으로 뿌리 깊은 인종 문제를 처리할 수 있다는 발상이 어리석어 보일 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저자 리처드 라이트는 미국사회에 여전히 만연한 인종문제의 본질을 무대의 전면에 올린다. 역설적으로 비거는 무고한 백인여성 메리를 살해하면서, 비로소 무한한 자유의 세계로 진입했다고 느끼게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폭력행사는 안 된다는 도식적 문제제기 대신 훗날 힙합 씬에서 주를 이루게 되는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흑인들의 분노와 증오를 폭발시켰다고나 할까. 한 마디로 말해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니르바나의 세계를 비거는 존재적으로 경험한 것이다. 살인이라는 극한의 폭력적이고 비정상적인 방식을 통해 자각한 비거는 절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짐승 같은 흑인의 가공할 범죄에 증오심을 불태우는 백인들을 저지하기 위해 주 방위군을 동원하고, KKK단까지 나서서 불타는 십자가가 등장하는 장면도 주목할 만하다. 해먼드 목사가 건네준 십자가와 극우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사용하는 상징이 동일하다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유대인 보리스 맥스 변호사에게 날아드는 협박의 수위는 또 어떤가. 최후 변론에서 변호사 맥스는 형량의 경감을 위해 유죄인정을 하고, 배심원 판결 대신 판사 재량에 의한 재판 진행을 요청하는 변호 전술을 구사한다. 조금은 장황해 보이는 맥스의 사자후 변론이야말로 <미국의 아들>에서 저자 리처드 라이트가 진짜 하고 싶은 말들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비거의 범죄를 옹호하려는 게 아니라, 왜 그가 그런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는지 참작해 달라는 요구를 주 검사 버클리는 비거의 범죄 동기를 밝히는 대신 이런 흉악한 범죄는 애시당초 싹을 잘라 버려야 한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고대 형법률로 대응한다. 비거가 짓지도 않은 죄까지 소설에 가까운 무논리를 동원해서 추가하고 선동하는 장면에서는 할 말을 잃어 버렸다. 다른 미해결 범죄까지도 비거가 저지른 범죄라고 인정하라며 윽박지르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니 재판 결과는 이미 결과는 뻔한 게 아니었을까.

 

헨리 돌턴의 보통 사람들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5백만 달러라는 금액의 자선 사업과 그가 운영하는 부동산 회사가 싸우스사이드 흑인들에게 걷어가는 백인들보다 비싼 집세라는 문제 또한 생각해 볼만한 문제다. 정말 유색인종들을 돕기 원한다면, 그런 사회구조적 모순부터 해결하는 게 우선이 아닐까. 당장의 의식주 해결이 미래의 윤택한 삶을 보장할 교육보다 우선이 아니었을까. 한편으로는 그들을 돕는다고 하면서, 또 다른 한편에서는 그들을 착취해 가는 자본이 지닌 이중성에 대한 리처드 라이트의 저격은 탁월했다.

 

당대 광범위하게 퍼진 야심찬 주 검사 버클리를 비롯한 사회기득권층의 공산주의에 대한 증오심은 유색인종/흑인에 대한 비하에 버금갈 정도다. 버클리가 초반에 어떻게든 비거가 잰 얼론과 공모해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식으로 사건을 재구성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지 않았던가. 검시소에서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될 베시 미어스의 시신까지 공개하면서 대중을 자극하고 선동하는 장면에서는 할 말을 잃었다.

 

리처드 라이트의 <미국의 아들>은 당당하게 창비 세계문학 2번째 작품으로 수록되었다. 다 읽고 나니 600쪽이나 되는 두툼한 분량의 이 책이 왜 지금까지도 고전으로 칭송받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않았고, 어쩌면 영원히 미해결의 과제로 남게 될 인종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갈등을 대변하는 캐릭터들을 극한의 상황으로 밀어 붙이면서 주어진 일련의 지난한 과제들에 대해 과연 어떻게 사유하고 반응할 것인지 리처드 라이트의 <미국의 아들>은 독자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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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화된 인간 세상의 드라마 | 도서리뷰 2020-01-26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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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배움의 발견

타라 웨스트오버 저/김희정 역
열린책들 | 2020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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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바쳐진 온갖 상찬의 행진을 보면서 책의 내용보다도 나는 과연 <배움의 발견>의 셀링 포인트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우리는 평범한 이야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서사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히어로가 온갖 세상의 역경을 딛고 마침내 성공을 거머쥐게 된다는 성공서사를 원한다. 그런 점에서 <배움의 발견>의 저자 타라 웨스트오버야말로 젊고 이상적인 롤모델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케임브리지와 하버드에서 수학한 역사학 박사님이라니!

 

같은 책을 보면서 정말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도 이번에 깨닫게 되었다. 누군가는 온갖 역경을 딛고 성공한 입지전적 인물의 초상을 보았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스카이 캐슬을 떠올렸을 지도 모르겠다. 교육학은 전공한 분들은 홈스쿨링으로 자란 웨스트오버 집안에서 무려 세 명의 박사가 탄생했다는 점을 주목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이 책에서 무엇에 중점을 두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주목한 점은 바로 환경이다. 다른 곳도 아니고 전세계 최강 대국 미국(비록 깡촌 아이다호이긴 하지만) 비교적 가까운 시절에 종교적 신념 때문에 연방 교육과 의료 시스템을 일절 무시하고 홍스쿨링으로 아이들을 기른 부모가 과연 정상인가에 대해 묻게 된다. 웨스트오버 가정에서 가장 문제는 바로 아버지였다. 자신의 신념 대로 사는 것에 대해 무어라 말하고 싶진 않지만, 자식의 자식들에게마저 자신의 신념을 강요하는 건 도를 넘어선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제목으로 뽑은 'Educated'가 주는 의미를 곱씹어 보게 된다.

 

몇 명의 자녀는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출생증명서마저 없었다고 한다. 광신에 사로잡힌 아버지는 정부에 대항해서 싸우기 위해 소총으로 무장하고, 직접 총탄 만드는 기계마저 사서 종말을 대비했다고 저자는 서술한다. 이 장면에서는 아무리 총기사고로 무고한 생명들이 죽어나가도 도무지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미국의 총기규제에 대한 미국인들의 사고를 엿볼 수 있었다. 나의 안전은 내가 지킨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의문이긴 하지만 말이다.

 

다음에 등장할 장면은 기적의 연속이다. 정식 공교육을 받지 못한 저자가 독학으로 대학에 진학하고 세계 유수의 대학을 마치 도장깨기라도 하듯 수학하면서 일련의 성취를 이루는 장면이야말로 <배움의 발견>의 하일라이트다. 타라 웨스트오버가 그녀의 다른 형제들처럼 고등학교 졸업장마저 없었다면 이 책이 세상의 빛을 볼 수가 있었을까? 절대 아닐 것이다. 미안하고 냉정한 말이지만 세상은 그런 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홀로코스트와 카라바조 에피소드는 보통의 대학생 무리에 스며들지 못하는 저자의 현실을 드러내는 극적인 장치로 절묘하게 작동한다.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프롤레타리아 성공의 비결은 바로 교육이라는 것이다. 교육이라는 성공의 사다리를 통해 과거의 온갖 트라우마들을 딛고 딱 10년 만에 박사로 성공한 삼십대 초반 여성의 이야기야말로 독자 대중에게 호소력을 얻는 지름길이라는 점을 저자는 자신의 경력을 통해 입증해 보인다. , 왜 자꾸만 이렇게 삐딱하게 나가는 거지... 그나저나 그녀의 케임브리지 박사 논문 지도교수가 <자만의 덫에 빠진 민주주의>의 저자 데이비드 런시먼이라는 점은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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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로마에서는 | 도서리뷰 2020-01-14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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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설민석의 세계사 대모험 4

설민석,잼스토리 글/박성일 그림
단꿈아이 | 2020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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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어린이 만화를 읽었다설민석의 세계사 대모험 시리즈의 네 번째 권이라고 한다첫 번째 권은 잘 모르겠고, 2~3권은 독일 나치 시절의 히틀러에 대해나 이야기다네 번째 권에서는 기원후 80년 그러니까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아들로 황제가 된 티투스 시절로 돌아간다.

 

카심 일당에게 쫓기던 설쌤과 알라딘대성 그리고 데이지는 시간여행의 오류로 16세기 이탈리아 피렌체가 아니라 고대 로마로 쓔웅램프의 요정 지니가 부상으로 힘을 쓰지 못하게 되면 일행은 노예상인에게 사로 잡혀 노예시장에 팔려 나가는 신세가 된다그리고 데이지는 실종되고.

 

고구려의 통일을 바라는 태학박사 설쌤과 알라딘/대성은 원로원 의원에게 노예로 팔린다그리스의 뒤를 이어 지중해 세계의 패자가 된 로마는 왕정과 공화정을 거쳐 제정에 도달한 모양이다네로 황제 이후 혼란을 제압한 군인황제 베스파시아누스의 장자 티투스는 유대전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은 역전의 용사기도 하다사건의 시간적 배경이 되는 80년보다 1년 전인 79년에는 폼페이 화산이 폭발하기도 했다고 한다.

 

만화의 저자는 고대 로마를 관통하는 역사적 관점보다는 아이들에게 보다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몇몇 유적과 사건들을 배치한 느낌이다씻지 않기로 유명한 중세 이전의 고대 로마에서는 대중목욕탕이 대유행이었다고 한다잘 사는 집에는 개인 목욕탕이 있었지만제정 로마시대에 대중목욕탕은 단지 몸을 씻는 것 외에도 사교의 장소로도 이용된 모양이다위생과 청결을 중시했던 로마시대 이후 왜 서양문화에서 씻는 걸 거부하게 되었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다음에는 원형경기장인 콜로세움과 검투사들이 차례로 등장한다그전에 원로원 의원의 노예 신분에서 티투스 황제의 개인 노예 신분으로 알라딘과 설쌤은 전환된다목욕탕에서 신나게 불러제낀 노래 덕분에 알라딘은 황제가 콜로세움에서 개최하는 축제행사의 사회를 맡기도 한다그곳에서 맹수 릴라킹과 맞붙어 싸우게 된 소년 알베르토를 구하기도 하는 활약을 펼치는 알라딘.

 

맹수 릴라킹과의 대전은 대성의 독가스 공격으로 피할 수 있었지만 당시 로마 최고의 검투사라는 아킬레우스와의 대결은 자못 흥미진진했다트로이 전쟁에 등장하는 영웅 아킬레우스처럼 검투사 아킬레우스 역시 발꿈치가 약점이었다는 건 안 비밀마지막 대결에 나서게 되는 철가면 검투사의 정체는 과연......

 

이탈리아편의 부제는 <로마에서 생긴 일>이다시간여행이라는 특이한 주제로 세계 곳곳을 모험하면서 누비는 가운데 역사적 의미가 깊은 곳을 찾아가 직접 체험을 하고 그러는 설정이 <설민석의 세계사 대모험서사의 기본 줄거리가 아닌가 싶다사실 가장 좋은 것은 바로 직접 체험이 아닌가 말이다워밍업 정도로 부담 없이 즐겁게 만날 수 있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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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아이들 미국에 가다 | 도서리뷰 2020-01-12 22:39
테마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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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시간의 지도

랜섬 릭스 저/변용란 역
폴라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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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한 가지 고백을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영화 <미스 페러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을 보지 못했다. 랜섬 릭스가 쓴 이전 소설 3부작도 읽지 못했다. 그래서 <시간의 지도>에 등장하는 임브린이니 할로개스트, 와이트 같은 어휘들이 낯설 수밖에 없었다. 결국 영화를 봐야했고(딱 절반 정도 봤다), 그래픽 노블로 첫 번째 에피소드를 만났다. 그러면서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문제는 두편의 전작들인 <할로우 시티><영혼의 도서관>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유추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올해 16세 소년 제이콥 포트먼은 그도안 자신이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진실은 그게 아니었다. 그의 유일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할아버지 에이브는 폴란드 출신으로 영국 웨일스의 외딴 섬 카이홀름의 이상한 아이들중 하나였다. 주인공 제이콥은 어릴 적 사진에서 본 80세에서 백살이 훨씬 넘은 이상한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면서 시간여행을 동반한 모험에 나서게 된다.

 

기존 영국에서의 3부작을 마무리지은 랜섬 릭스 작가는 이번에는 미국을 무대로 올린다. 전작 <영혼의 도서관>에 아마도 나오는 악마의 영토를 벗어난 이상한 친구들은 루프 붕괴로 재조정되면서 루프에서 벗어나서도 급속하게 노화되지 않고 일상을 살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능력이 사라진 건 아니다. 미국의 흔한 십대들처럼 딜리버리 피자를 먹고 쇼핑몰에 가서 또래들처럼 살게 된 것이다.

 

랜섬 릭스는 새로운 3부작을 시작하면서 소설의 공간적 무대를 구대륙에서 신대륙으로 옮겼다. 물론 이상한 아이들을 위협하는 할로개스트와 와이트들과의 투쟁은 계속된다. 제이콥과 친구들은 할아버지 에이브가 남긴 비밀 아지트에서 발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한 때 에이브의 동지였던 H를 만나고 새로운 싸움에 나서게 된다. 다음 무대는 미국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맨해튼이다. 역시 시리즈답게 V를 찾으라는 다음 미션을 남기면서 마무리된다.

 

영화와 소설의 다른 점 때문에 불꽃소년 엠마 캐릭터가 좀 헷갈렸다. , 영화에서 불꽃소녀는 올리브가 아니었던가. 소설에서는 엠마를 불꽃소녀라고 부르던데. 한편, 아무래도 소설이 판타지의 정수를 보여준 영화보다 풍부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영화에서 팀 버튼이 조정한 캐릭터 상의 변화는 상당했다. 게다가 에이브는 엠마를 버리고 보통 사람이 되기 위해 섬을 떠나지 않았던가. 당연히 판타지 소설에서 빠질 수 없는 로맨스로 대를 건너 뛰어 엠마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제이콥.

 

현실세계에서 제이콥의 부모님들은 허튼 소리 시리즈를 늘어놓는 제이콥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아마 나라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외삼촌들과 결탁해서 제이콥을 정신병원에 보내려는 순간, 이상한 아이들이 플로리다에 도착하면서 새로운 무대가 짠하고 열린 것이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 아닐 수 없다. 상상 속의 친구들과 어울리는 제이콥을 어느 부모가 수긍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결국 페러그린 원장과 상의 끝에 진실을 알리려고 하지만 어머니는 현실을 부정해 버리고 기절해 버리고, 아버지는 현실을 감당할 수 없다며 기억 삭제를 요청한다. 제이콥은 자신의 할아버지 에이브처럼 보통 사람의 삶을 원하지만 결국 자신의 할로개스트들을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렇다면 이왕 이상한 아이가 될 바에야, 세상을 위해 그리고 이상한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 특별한 일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오른다. 역시나 십대다운 발상이 아닐까.

 

<시간의 지도>에서는 캐릭터 무게 중심이 상당히 제이콥에 집중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이상한 아이들의 실질적인 리더로 미국 생활을 그들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맡아서일까. 엠마와 썸도 타야지, 부모님들과의 갈등도 해결해야지, 할아버지 에이브가 남긴 수수께기 같은 인물 H도 찾아야지, 그런 와중에 이상한 아이들을 위협하는 할로개스트들과 끝없이 싸워야지... 참으로 열일하는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또다른 주목할 만한 점으로는 전작 시리즈에서 랜섬 릭스가 영롱한 판타지에 집중했다면 이번 새로운 시리즈에서는 미국 사회를 관통하는 부조리한 역사의 이면들을 정확하게 타격한다. 그 어느 때보다 둘로 갈라진 미국 사회에 던지는 하나의 문제의식이라고나 할까. 그런 점에서 이상한 아이들과 페러그린 원장의 시간여행은 유용한 수단이 아닐 수 없다. 도무지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이 대표적인 예로 등장한다.

 

일단 영화부터 마저 본 다음 기회가 된다면 전작들도 하나씩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궁금한 건, 팀 버튼이 계속해서 나머지 시리즈들도 영화로 만들지 다음 영화들은 언제 개봉하는지 등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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