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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단수』기억들이 찾아와 마음을 뒤흔드는.... | 책읽기(2020년) 2020-12-22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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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저/홍은주 역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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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과거의 기억들에 천착하게 된다. 왜 그럴까, 라고 생각했던 의문이 지금에서야 이해된다. 지극히 현재진행형인 삶을 산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불쑥불쑥 옛생각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마도 자기가 원하는 어떤 것에 매진한 시기가 지나서일까. 살아온 날들이 더 길어서일까. 특히 유년시절 혹은 청년시절의 기억들이 불쑥 떠올라 흔히 말하는 추억에 잠기곤 했던 것처럼.


오래전의 기억들이 찾아와 마음을 뒤흔들게 되는 시기가 있다. 나이가 칠십이 넘다보면 더욱 그러할 것 같다. 영원히 산다는 생각을 버리게 되는 시기이기도 할 것이므로 우리는 과거의 기억에 매달리는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소설집 『일인칭 단수』가 특히 그러했다. 단편 소설이나 어쩐지 에세이처럼 읽혀졌다. 화자가 일인칭 이기도 하고 소설 속에 하루키라는 이름이 그대로 드러나 하루키의 기억속으로 다가가는 것 같았다. 그가 손짓하는대로 그의 기억속으로 다가갔다. 




여덟 편의 소설에서 느껴지는 건 역시 하루키의 느낌이 강하다는 거다. 음악을 좋아하고 야구를 좋아하고 판타지적인 내용이 가득했다. 하루키는 재즈를 좋아하여 재즈바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한 이유로 음악적인 색채가 짙었다. 소설 전반에 음악이 흐르는 느낌이랄까. 인생에 있어 다양한 삶을 경험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다양한 경험은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현명한 선택을 할 수도 있으며 작가에게는 소설의 자양분이 되므로 그렇다.


 「돌베개에」를 보면 그녀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다고 여길 만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같은 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우연히 하룻밤을 함께 하게 된 이야기를 그렸다. 좁고 볼품없는 자췻집으로 찾아왔던 여자는 단카를 지었었고 굵은 실로 엮어 간소한 표지를 입힌 자비출판이라고 할만한 가집을 보내주었다. 죽음에 대한 냄새가 짙은 단가였다. 사람은 눈 깜짝할 사이 늙어 버린다. 우리의 육체는 돌이킬 수 없이 시시각각 소멸을 향해 나아간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떠보면 많은 것이 이미 사라져버렸음을 깨닫는다. 강한 밤바람에 휩쓸려, 그것들은 - 확실한 이름이 있는 것이나 그렇지 않은 것이나 -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어딘가로 날아가버렸다. (24페이지,  「돌베개에」 중에서) 발췌 문장에서 이 소설집이 가진 하루키의 전반적인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가 가진 기억들이 소멸하기 전에 책 속에 붙잡고 싶은 마음들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여자없는 남자들』의 다른 버전인 것만 같다. 하루키의 소설이 기묘한 판타지적인 느낌이 강한데  「크림」도 그렇다. 대학에 들어가지 않고 재수생 신분일 때 같은 피아노 학원에 다녔던 여자애로부터 연주회 초대장을 받고 그 장소에 찾아갔던 에피소드를 말하고 있다. 초대장에 쓰여진 장소에 갔으나 커다란 철문에 굵은 쇠사슬이 친친 감겨져 굳게 닫혀 있었다. 기다리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정자의 벤치에서 쉬고 있었다. 스트레스성 과호흡 증세가 덮쳐왔다. 호흡을 가다듬으려 숫자를 세고 있을 때 그를 바라보는 한 노인을 발견했다. 노인은 그에게 '중심이 여러 개 있는 원'을 떠올려 보라고 했고 어느 순간 그 증세는 가라앉았다. 모르는 걸 알아내려는 인생의 크림을 생각하라는 그의 말을 오랜 시간이 지나서 떠올려보며 누군가에게 전해주는 이야기다.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에서는 하루키의 재즈 사랑이 그대로 드러난 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학생 때 쓴 글로 실재하지 않는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라는 음반이 있고, 직접 연주까지 했더라면 이라는 가정하에 쓴 글이었다.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은 이 음반이 실재하는 줄 알고 이걸 사려고 레코드가게를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 시간히 흐른후 일 때문에 뉴욕에 머물렀을 때 중고 레코드 가게의 찰리 파커 코너에서 이 타이틀과 곡명이 그대로 인쇄돼 있는 음반을 발견했다. 다음 날에 사도 되겠지하는 마음으로 레코드 가게를 나왔다가 다시 갔더니 그 음반이 처음부터 없었다고 했다. 하루키는 그 밤에 꿈을 꾸게 되는데 꿈 속에서 찰리 파커가 음악을 연주해주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물론 하루키는 소설가이므로 약간의 기억에 의존해 소설의 색깔을 다르게 입힐 수도 있지만 좋아하는 뮤지션이 꿈에 나타나 함께 시간을 보냈다면 그것처럼 좋은 게 또 어디 있을까. 


기억의 배열이 흐트러지는 질환을 갖고 있는 한 소녀의 오빠와의 에피소드인  「위드 더 비틀스」에서 비틀스 음반을 가지고 있던 소녀와 첫사랑 소녀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타인의 늙음에서 세월을 느끼고 서글픔을 느낀다는 내용이었다. 이 소설에서 하루키에게 동류의식을 느꼈는데 그가 나와 같은 활자중독에 가까운 습관을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책이 없으면 손에 잡히는 모든 인쇄물을 읽는 습관 말이다. 나 또한 읽을거리가 없으면 과자봉지나 상품설명서 등 모든 글자를 읽는다. 활자를 읽지 않고는 시간을 잘 보내지 못하는 부류인 그가 여자친구의 집에서 꺼내든 것은 '현대국어' 였다. 교과서를 받아들었을때 맨 먼저 훑어본 게 국어 교과서였고, 국어책에 수록된 작품들의 짧은 지문들이 안타까웠던 기억들을 떠올리게 했다. 


 「사육제」는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 가장 못생긴 여자와 함께 각자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말한 내용이었다. 서로 피아노 곡을 특히 좋아하여 슈베르트의 피아노소나타와 슈만의 피아노 작품 중 그 중에서 한 곡만 남긴다면 뭐가 좋을까라는 질문에 슈만의 「사육제」를 떠올릴 정도로 취향이 비슷했다. 시간이 지난후 뉴스에서 떠들썩한 소식으로 다시 찾아온 그녀를 마주하고 느끼는 감정들을 담은 소설이었다.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은 여행중 허름한 온천의 작은 료칸에서 만난 원숭이를 만난 기이한 이야기이다. 온천욕을 하고 있는데 원숭이가 다가와 등을 밀어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에피소드였다. 물론 다음날 주인에게 원숭이와 함께 마셨던 맥줏값을 내겠다고 했지만 그 료칸에는 캔맥주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목욕탕에 몸을 담궜을때 찾아왔던 원숭이는 기묘한 하룻밤 꿈과도 같은 존재였을까.




인생은 이기는 때보다 지는 때가 더 많다. 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지혜는 '어떻게 상대를 이기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잘 지는가' 하는 데서 나온다. (131페이지,「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 중에서)

「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은 변변찮은 실력이지만 오랫동안 응원해온 야구 팀에 대한 애정을 시집으로 엮은 이야기다. 스포츠에는 문외한이며 야구경기는 겨우 TV에서 국가대항전이나 지켜보는 나와는 많이 비교되는 내용이었다. 이 소설은 박민규 작가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연상시켰다. 야구장에서 경기를 지켜보며 느끼는 여러 감정들을 시로 표현하는 그의 야구에 대한 애정이 깊게 느껴졌던 소설이었다. 


표제작인  「일인칭 단수」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일 년에 고작 두세 번 입는 슈트를 차려입고 단골 바를 뒤로하고 한 번도 간 적 없는 바로 들어갔다. 보드카 김렛을 시켜놓고 미스터리 소설을 꺼내 읽다 만 곳을 이어 읽었다. 집에서처럼 독서에 집중할 수 없었음에도 계속 읽고 있었다. 한 여자가 다가와 그렇게 하면 멋있다고 생각하는지 시비를 걸고 있었다. 그의 친구의 친구라고, 기억나지 않은 삼 년전의 물가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며 부끄러운 줄 알라고 말했다. 이러한 터무니없는 일을 당했을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하루키처럼 조용히 술값을 계산하고 나올까. 아니면 도대체 누구냐며 그 여자에게 따질까. 몹시 불쾌한 상황일때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물었다.  


하루키다운 소설이었다. 어쩌면 에세이로도 읽혀지는 소설. 재즈와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그와 음반에 대한 기묘한 이야기. 말하는 원숭이라니 생각해본적이 있는가. 하루키만이 그릴 수 있는 하룻밤 꿈과도 같은 이야기였다. 다만 이 이야기는 그의 기억들에 의존해 생의 무상함을, 기억들이 찾아와 마음을 뒤흔드는 노년의 쓸쓸함을 나타낸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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