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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연결된 사회 | 힐씨의 책 2022-09-13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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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나치게 연결된 사회

마르쿠스 가브리엘 저/오노 가즈모토,다카다 아키 편/이진아 역
베가북스 | 202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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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 팬데믹을 통과하며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 세계에서 철학자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지나치게 연결된 사회』 는 일본 PHP연구소의 오노 가즈모토와 편집부가 '신실재론'을 내세우며 주목받는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 Markus Gabriel 과 진행한 인터뷰를 편집한 형태로 엮은 책이다. 이전 슬라보예 지젝이 팬데믹을 철학적으로 사유한 책을 읽은 기억도 떠올려보면서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철학자의 생각을 마주해보는 시간. 

 

 

 

 

지나치게 연결된 사회

마르쿠스 가브리엘

베가북스

 

 

제1장 '사람과 바이러스의 연결' 에서는 같은 종, 즉 호모 사피엔스인 각 세계의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직면하여 동일한, 특정한 반응을 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바이러스 그 자체보다는 바이러스의 '표상'에 반응하고 있음을 먼저 이야기하며 시작한다. 그리고 팬데믹 이전과 달라진 지금의 모습을 여러 가지의 예로 설명하는데, 코로나19 위기를 맞아 유럽에서 취해진 록다운 조치에 대한 이야기를 근대 초기의 정치철학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과 연결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홉스의 이론은 기본적으로 록다운 이론인데 그의 저서 <리바이어던>의 표지는 국가에 의한 폭력과 경찰을 정당화하는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페스트가 유행했던 상황을 그린 것으로, 의사들이 페스트 감염 예방용 마스크를 쓰고 있다. 

 

 

이것이 칼 슈미트 등이 언급했던 국가의 비상사태를 가리키는 '예외적인 상태'인 것이다. 이 예외적인 상태에서는 정부, 즉 행정기관이 독재 체제로 통치한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말살하는 형태의 독재가 아닌 예외적인 상태에서 국가를 위협하는 문제가 국가의 결단을 좌우하는 독재 정치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놓여있는 상황이 이러하다는 것을 지적한다. 저자가 속한 독일에서는 '독재'라는 단어가 더욱 조심스러운 터라 그는 '유럽 국가들은 위생 독재의 모델을 도입했다' 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각 장의 말미에는 인터뷰와 별개로 저자의 칼럼이 수록되어 있는데 앞선 인터뷰에서 언급되었던 내용이 좀 더 부연 설명되어 있다. 1장의 경우 홉스의 사회계약설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하고 있다. 아이의 중학 교과서에서도 언급되는 내용이었던 터라 더욱 관심 있게 읽었다. 

 

제2장 '국가와 국가의 연결' 에서는 트럼프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미국의 예외주의를 이야기하고, 미국과 독일에서 쏟아진 음모론에 대해서도 다루는 등 국제 문제를 화두로 삼아 엮는다. 음모론의 온상으로 넷플릭스의 픽션영화들을 지목하거나, 정치화되어버린 언론, 소셜 미디어의 폐해를 지적한다. 일본에서 요청된 인터뷰다 보니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독일, 그리고 EU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일본의 상황 또한 지적하면서 나름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저자는 전반적으로 '윤리적' 인 부분을 강조한다. 윤리적인 정치가로서 독일의 정치가 앙겔라 메르켈을 언급하기도 하고, 윤리적 행동을 이끌어내는 사회의 조건은 무엇일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나눈다.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가운데, 세계화의 신자유주의적 해석이 환경을 파괴하고 막대한 피해를 가져왔기에, 신자유주의 경제가 만들어낸 부보다도 그것이 파괴한 부가 더 컸다고 주장하며, 그렇기에 신자유주의 경제 모델은 이제 끝날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는 제4장 '새로운 경제활동의 연결' 의 윤리 자본주의 미래와 연결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제3장 '타인과의 연결' 에서는 SNS의 심각한 문제를 풀어 해석한다. 본인이 바라지 않는 자기를 강요하는 SNS는 사람을 바꿔버린다는 지적은 크게 공감하게 되는 지점이다. '소셜 미디어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정체성(Identity)을 강매해 큰돈을 벌고 있다(p174)' 라며 새로운 소셜 미디어를 만들 것을 제안하기도 하고, 일본인, 독일인, 뉴요커의 커뮤니케이션을 비교하면서, 토론을 어려워하는 아시아인들을 위한 힌트를 제안한다. 디지털 교류가 크게 보급되어 있지만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사회적 고립이 높아진 통계를 제시하면서, 앞으로의 공동체와 '고독'의 형태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혼자 있는 것' 과 '고독'은 분명하게 구별해야 한다고 하면서 말이다. 

 

 

다양한 측면으로 '연결'과 변화에 이야기하던 저자는 마지막 제5장 '개인이 살아가는 본연의 자세' 에서 그가 '신실존주의(Neoexistentialism)'라 부르는 사고방식에 기반을 두고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다시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인생의 의미란', '신의 정체',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등의 근본적인 질문들이 글 사이에 놓인다.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일본 NHK 의 프로그램 '욕망의 자본주의 2019’, ‘욕망 시대의 철학 2020’ 등을 통해 일본에서 인지도가 더욱 높아진 철학자다. 

 

일본  NHK, 욕망 시대의 철학 2020

 

그가 『지나치게 연결된 사회』 5장에 걸쳐 이야기하는 '연결'에 관련된 것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되는 듯하다.  '사람과 바이러스의 연결' , '국가와 국가의 연결',  '개인과 개인 사이의 연결' 이다. 이 세 가지에 관한 철학자로서의 견해를 마주하고, 그가 예견하는 윤리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다 보니 그의 다른 책들이 저절로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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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마이어의 최초의 공인된 전기, 「비비안 마이어」 | 힐씨의 책 2022-08-28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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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비안 마이어

비비안 마이어,앤 마크스 저/김소정 역
북하우스 | 202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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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친치아 기글리아노 그림의  「나는 비비안의 사진기」 란 그림책을 만났었다. 아이와 그림책을 읽어보며 비비안 마이어라는 인물에 대해 함께 찾아보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마침 아이가 좋아했던 「신비한TV 서프라이즈」 라는 프로그램에서 비비안 마이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녀석이 아는 사람이라며 좋아하기도 했었다. 


비비안 마이어란 인물에 대해서는 이렇게 짤막한 단편 지식으로 알기는 했었으나 막상 그녀의 작품을 감상해볼 기회는 없었다. 여러 미디어에서 보여주던 잘 알려진 사진들만 보고 그렇게 호기심을 접었었다. 그러다 이번 「비비안 마이어」 란 '공인된 최초의 전기' 라는 책을 보니 눈이 번쩍 뜨였다. 




비비안 마이어

Vivian Maier

보모 사진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삶을 현상하다

앤 마크스 지음

북하우스



대기업 임원으로 일하고, 「윌스트리트 저널」의 최고 마케팅 경영자로 일해왔던 저자는 보통 사람들의 행태를 분석해온 자신의 경력을 활용하여 세상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사진작가, 비비안 마이어의 생애를 둘러싼 비밀을 밝히기로 결심한다. 14만 장에 이르는 비비안 마이어의 아카이브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권한을 허락받고, 특유의 끈질김과 인내를 발휘하여 이 책의 집필의 기초를 마련한다.



덕분에 하드커버로 480여쪽에 이르는 이 책  「비비안 마이어」 에는 미출간 작품을 포함한 400여점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책 뒷부분에 정리된 찾아보기를 통해 비비언 마이어에 대한 키워드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저자가 참조한 방대한 분량의 참고 문헌 또한 수록되어 있다. ( 수록된 도판에 대한 찾아보기까지 제공되었으면 완벽한데! 아쉽게도 제공되지는 않는다. ) 





저자는 비비안 마이어의 유년기, 뉴욕에서 보낸 십대 시절을 서술하고, 프랑스와 뉴욕에서의 초기 작품들과 비비안 마이어의 행적을 함께 보여준다. 비비안이 사진 교실에 다녔다거나 정규 교육을 받았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지만 뉴욕에 있는 동안 사진계와 교류하려고 노력하는 등, 실제로 활동하는 사진작가들을 관찰하고 끊임없이 연습하면서 기술을 습득한 걸로 보인다고 말하는 저자는 '비비안의 사진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처한 보편적인 조건을 포착하는 능력이 뛰어난 작가로 비비안을 설명하고는 한다.'(p142) 라고 말한다. 



비비안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타인과 함께하는 능력을 발전 시키지 못하고 결핍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작업에서 만큼은 인간의 애정을 예리하고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초기 작품의 뮤즈였던, 자신이 돌보았던 조앤과 그 가족을 떠났을 때의 일화는 그녀가 냉정한 사람이라는 여러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뒷받침해주면서, 비비안 스스로도 '자신이 따뜻함을 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뉴욕의 뮤즈, 1952년



비비안의 강박적 '저장 장애' 에 대한 이야기도 안타깝다. 어린 시절에 좌절과 분열을 경험한 사람은 정체성 문제와 낮은 자존감에 시달리다 통제감을 얻기 위해 저장 장애가 올 수 있다고 한다. '그런 아이들은 흔히 사람을 신뢰하고 친밀감을 형성하는 데 문제가 생기며, 감정의 깊은 공허함을 채우려고 사람이 아니라 물건에 집착할 수 있다.'(p265) 라고! 비비안이 보모로 일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비비안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사진의 주제와 기술은 '피사체에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더 많은 이야기를 담기 위해 피사체를 조금 덜 보여주는 방식' 이다. '패턴을 인지하고, 공간을 배열하고 구성하며, 프레임 안에서 빛과 움직임을 적절하게 분배할 수 있는 능력'(p270)을 타고났다고 분석하는 이도 있다. 



비비안의 사진에서 배경으로 작용했던 사회문제에 대한 부분 또한 흥미로운 주제였다. '비비안은 미국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을 열린 마음으로, 포괄적이고 본질적으로 고민한 것'(p307) 같다는 다른 전문가의 의견을 인용한 저자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권리향상,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자립과 사회정의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인종 관계, 뉴욕



비비안의 자화상 사진의 변화도 눈여겨 볼 포인트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는 가치가 없더라도 그녀에게 중요한, 자신의 개인사와 관련된 아이템을 사진에 담은 오래된 습관에서 그녀의 인생을 유추해볼 수 있기도 하다. 그렇게 사진을 남기는 일상은 마치 지금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찍는 일상 모습과 같아서 친근감이 들면서, 나도 그녀처럼 기록을 남기도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 사실 나도 일종의 기록광, 어쩌면 저장장애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지라.. ) 그녀가 셀피(Selfie)의 원조라고도 불리는 이유다. 



컬러 자화상, 시카고, 1970년대 중후반



그림자 자아, 시카고, 1967~1968년


마침 일하는 곳 근처에서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터라 곧 방문 예정이다.  「비비안 마이어」를 읽으며 비비안의 생애에 대한 설명과 함께 그녀의 사진에 대한 이야기도 알아갈 수 있어 더욱 좋았다. 책 속에 수록된 사진 중 관심이 가던 작품을 실제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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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으로 만나보는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 밤톨군의 책 2022-08-28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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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예언자

칼릴 지브란 글/안나 피롤리 그림/정회성 역
책읽는곰 | 202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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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태어난 내 아이를 만나고 나서 온라인에 발췌해놓고, 벽에 붙여놓았던 글이 있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The Prophet )」 에 나오는 '아이들' 에 관한 글이다. 당시 류시화 시인의 번역으로 읽었었는데,  "그대들의 아이들은 그대들의 것이 아닙니다." 로 시작하는 시는 아이를 한 명의 인격체로 존중하고 사랑하리라는 내 다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했다.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을 주되 영혼의 집까지 주려하지 마십시오. 아이들의 영혼은 그대들이 꿈에서도 찾아갈 수 없는 내일의 집에 살기 때문입니다"



이 시를 멋진 일러스트와 함께 그림책으로 다시 만났다.  사랑, 결혼, 선과 악, 일, 자유 등의 삶의 근원적인 주제에 대하여 깊이 있는 통찰을 전하는 칼릴 지브란의 산문시  「예언자」 가 아이들 눈높이 맞춘 그림책으로 나왔다. 한 페이지,한 페이지 천천히 음미하며 읽는다. 




예언자

The Prophet

칼릴 지브란 지음, 안나 피롤리 그림

보통날의 그림책 - 02

책 읽는 곰



칼릴 지브란의 산문시는 두 줄의 프레임이 그려진 페이지에 제목과 발췌된 텍스트가 놓인다. 프롤로그처럼 진행되는 처음의 이야기는 가상의 도시 오르펠리스에서 12년간 머무르며 고향으로 데려다줄 배를 기다리던 예언자 알 무스타파가 주민들에게 작별을 고하면서 시작된다. 



모든 주민이 작별을 아쉬워하는 가운데 떠나기 전 한 가지 부탁이라며 그가 깨달은 진리를 들려달라고 청한다. 그에게 들은 진리를 아이들에게 전하고, 아이들은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전할 테니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거라면서 말이다. 처음의 시작은 '사랑' 에 대하여, 이어 '결혼' 에 대하여 이어지는 질문은 다른 이들의 '아이들', '나눔', '기쁨과 슬픔', '옷', '사고파는 일', '죄와 벌', '자유', '이성과 열정', '우정', '쾌락', '작별' 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예언자(The Prophet )」 원문은 스물 여섯가지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나 그림책에는 아이들과 이야기해볼 수 있는 열 세가지의 주제가 담겨있다. 



안나 피롤리 (Anna Pirolli)






일러스트레이터인 안나 피롤리 (Anna Pirolli) 는 이전 다비드 칼리와 작업했던 「난 고양이가 싫어요」 란 그림책에서 만나본 적이 있는데, 이번 그림책의 일러스트는 붉은 색을 주조로 한 선명한 색감의 상징적인 이미지들을 그려낸 터라 아기자기한 느낌의 이전 책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그림을 먼저 보고 어떤 주제에 관해 이야기 하는 것인지를 짐작해본다. 해와 달, 빛과 어둠. 이 장면은 '기쁨과 슬픔' 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대들은 슬픔과 기쁨 사이에 저울추처럼 매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비어 있을 때만 평온한 가운데 균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p20)





'죄와 벌' 에 관한 일러스트를 보자. 개인적으로 이 그림은 일러스트만으로는 의미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텍스트를 읽고 나서야 시 속의 '나무 전체의 묵인 없이는 잎사귀 하나도 노랗게 물들지 못합니다'(p27) 란 문장과 어울리는 장면이다. 텍스트가 놓인 옆 페이지에서 나무 주변의 붉은 색 옷을 입은 사람들을 노란 옷을 입은 이가 쳐다보고 있다는 것도 놓치지 마시길. 




이 그림책은 '보통날의 그림책' 시리즈의 두 번째 권이다. 0세부터 100세까지의 전 연령을 아우르는 그림책을 엄선하여 독자에게 선보이는 시리즈다. 그렇기에 아이도, 함께 읽는 어른도 저마다의 느낌으로 책을 감상하게 된다.   



「예언자(The Prophet )」 는 1923년 뉴욕 크노프 출판사에서 처음 출간된 이래 1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단 한 차례도 절판되지 않은 책이라고 한다. 놀랍다. 순수한 문학서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철학적이고 순수한 철학서로 보기엔 너무나도 문학적이다. 레바논 출신의 작가인 칼릴 지브란이 짧은 생을 통해 추구했던 것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영성과 물질주의, 동양과 서양의 화해였다고 한다. 그리스도교를 모태 신앙으로 하여 성경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지만, 이슬람교나 그 신비주의 분파인 수피즘으로부터도 많은 영향 받았다. 그는 여성의 억압이나 교회의 폭정에 분노했고, 당시 서아시아를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으로부터의 자유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의 그러한 행적 때문에 한때 이슬람 사회에서는 칼릴 지브란의 책을 금서로 지정하고 불태우기도 했다. 



그림작가가 해석해 낸 또 다른 이미지를 만나는 시간이기에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칼릴 지브란의 시는 더욱 새로운 방향의 생각들을 이끌어 온다. 오랜 만에 만난  「예언자」 의 문장은 더욱 좋았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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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민진 "『파친코』 속편 원하지 않아, 한국인 3부작 완성할 것" | 끄적끄적 2022-08-2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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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이민진 작가가 한국의 독자들과 만났다. 『파친코』의 개정판 출간을 기념하며 2천여 명의 독자들과 함께한 북토크였다. 세종대학교 컨벤션센터 대양홀에서 이루어진 이들의 만남은 뜨거운 환대와 애정 속에서 2시간 동안 이어졌다. 

재일 조선인 가족 4대의 이야기를 그린 장편 소설 『파친코』는 2017년에 첫 출간된 후 전 세계 33개국에서 번역되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뉴욕타임스>, 아마존 등 주요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으며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회복과 연민에 대한 강력한 이야기"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2022년에는 애플TV가 제작한 동명의 드라마가 공개되며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다. 

한국에도 2018년에 『파친코』의 번역본이 출간됐지만, 지난 4월 판권 계약이 종료되며 절판됐다. 한동안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는' 소설이 되어 독자들을 애태웠던 『파친코』는 새로운 번역과 디자인으로 돌아왔다. 개정판은 작가가 의도한 구조와 흐름을 살리기 위해 원서의 구성을 그대로 따랐으며, 작품 특유의 속도감 있는 문체를 살리고자 노력했다.

재미 교포 1.5세대인 이민진 작가는 일곱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예일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후 조지타운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일했다. 건강 문제로 일을 그만두게 되면서 오랜 꿈이었던 글쓰기를 시작해 2008년 첫 장편 소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을 발표했다. 『파친코』는 두 번째 장편 소설로, 역사학과 학생이었던 1989년에 '자이니치(재일조선인)'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결심한 이후 30년 가까이 준비한 끝에 완성한 작품이다.



인생은 공평하지 않지만 아름다운 모험

현재 뉴욕에 머물면서 새로운 장편 소설을 집필하고 있는 작가에게 이번 북토크는 한국 독자들과 처음으로 가까이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그는 설레고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독자 분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듣고 싶다"고 말했다. 독자와의 질의응답에 앞서, 진행자(제니퍼 클라이드)와의 대담이 진행됐다. 북토크 참여를 희망하며 독자들이 남긴 질문들 가운데 다수를 차지한 물음들에 이민진 작가가 답했다.

『파친코』라는 소설이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파친코'라는 제목 자체가 인생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공평하지 않죠. 하지만 우리는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덕성과 선한 의도를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파친코』는 자이니치의 삶을 보여주는, 처음 영어로 기록된 소설입니다. 특히, 자이니치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는 작품입니다. (집필을 위해) 굉장히 많은 조사와 인터뷰를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의 일부는 아주 아름다운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픽션'이라는 것은 하나의 스토리이고 사실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여러분이 저의 거짓말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감정적으로 사실을 말해야 합니다. 역사를 기반으로 한 소설이기 때문에 정확한 팩트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 소설을) 쓰기 위해서 많은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초고는 자료 조사만을 기반으로 썼는데 너무 지루했습니다. 여러분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초고를 놔두고 새롭게 썼습니다. 

새로 (원고를) 쓸 때는 많은 일본분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면서 정말 흥미롭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가슴 아픈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초고는 내가 쓰고 싶은 것을 똑똑하게,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쓰기 위해서 너무나 지루한 책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소설을 재밌게 만들어주는 요소가 아니었죠. 그래서 초고를 버리고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조사를 토대로 감정도 담고, 또 캐릭터들의 경험을 담았습니다. 그러한 방식으로 작성했습니다.

『파친코』는 디아스포라 소설입니다. 사랑과 자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작가님에게 '사랑'과 '자유'란 어떤 의미일까요?

'디아스포라'는 그리스 용어이지만 구약 성경에서 유대인을 지칭합니다. 유대인의 경우에는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한국인으로서 제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한국인이든 중국인이든 프랑스인이든, 디아스포라는 21세기의 사회적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환경 디아스포라도 있습니다. 기후 변화로 인해 살 수 없는 지역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죠. 어떤 이유로든 모국이나 고향을 떠났을 때, 여러분의 가족과 가족 구조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 생각해 보면 굉장히 슬픈 이야기입니다. 

어디를 가든 그곳에서 그곳을 바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저도 한국을 떠나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살고 있는 미국을 바꿔놓을 수 있을까요? 제가 일곱 살에 한국을 떠났을 때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여러 사람을 만나 볼수록 우리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고 그것이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랑과 자유는 깊이 연결돼 있습니다. 정말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 사랑 받는 사람을 자유롭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 없이는 여러분의 삶을 절대로 자유롭게 살아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의미가 있고 우리는 각각 사랑 받도록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일곱 살 때 한국을 떠나셨습니다.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은 어땠나요?

저는 아주 평범한 중산층이었습니다. 서교동에서 자랐고요. 저희 아버지는 '피어리스'라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화장품 회사의 마케팅 임원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연세대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시고 동네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셨습니다. 집을 생각하면 항상 저의 자매들이 떠오릅니다. 세 자매였거든요. 동생과 제가 참여할 수 없었던 크리스마스 파티들이 기억납니다.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들을 위한 파티라서 저와 동생은 참여할 수 없었고 큰엄마 집에 보내졌던 기억이 납니다. 여전히 속상합니다.(웃음)

『파친코』의 등장인물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파친코』의 등장인물의 경우, 제가 의도적으로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30년 동안 많이 생각하고 조사해서 이 책의 모든 단어를 다시 작업했고, 모든 등장인물에 대한 작업이 어려웠습니다. 속편 계획이 없냐는 질문을 받는데요. 절대로 없을 겁니다. 원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이제 독자들의 인물들입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너무나 강력한 것입니다. 독자가 상상하는 것이 작가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클 수 있거든요. 여러분의 마음에 여러분의 선자, 한수, 김창호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눈으로 상상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들의 상상력이 더 찬란하고 화려하고 다채로울 수 있습니다.



『파친코』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저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소설의) 첫 번째 문장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는 말입니다. 모든 평범한 사람들은 억압을 받거나 어려움이 있어도 반항할 수 있고, 불평등 앞에서도 저항할 수 있고, 낙심을 해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불공평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매일 억장이 무너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아가세요. 전진하세요. 인생이라는 모험은 아름답거든요.

여러 인터뷰를 통해서 차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작가로서, 아시안 여성으로서, 이민자로서,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혐오나 차별에 대해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으세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혐오, 억압, 차별이 없다고 이야기하거나 우리가 그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하기 쉽습니다. 저는 부모입니다. 만약에 제 아이가 불평등을 겪게 된다면 그냥 잊어버리자고 이야기하기가 쉬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아이가 학교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하면 잘 들어봐야 합니다. 우리가 억압과 불평등에 대해서 언급하면 항상 큰 대가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집단적으로 행동한다면 그 대가는 점점 작아집니다. 제가 늘 분노하고 계속 소리를 지르면 사람들이 저에게 귀를 기울여주지 않겠죠. 그래서 차분하게 이야기합니다. 여러분도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할 때는 차분하게 이야기하십시오.

우리의 식민지 지배 역사를 다음 세대가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요? 우리는 다음 세대를 어떻게 도와야 할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는 아주 복잡합니다. 단순히 좋은 편, 나쁜 편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한국인들 중에 부도덕한 일에 참여했던 것을 발굴하기보다는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다음 세대에게 실제 있었던 일을 사실로 전달하고 안 좋은 일들도 사실적으로 전달한다면 혐오의 감옥에서 스스로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늘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면 이 또한 하나의 감옥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랑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 세계에서 한국인으로서 공정한 대우를 받고 싶다면,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 혹은 귀화한 외국인에 대해서도 똑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베트남 여성이 한국의 농민과 결혼할 때 어떤 차별을 받고 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또한 한때 외국인으로서 차별 받지 않았습니까?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다음 세대가 자유롭고 생산적인 세계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사실을 전달하고 우리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차기작이 궁금합니다.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메리칸 학원(American Hagwon)』을 쓰고 있습니다. 교육과 지혜에 관한 소설이고요. 정말 고통스럽게 집필하고 있습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느린 사람입니다. 거북이입니다.(웃음) 그렇지만 천천히 가더라도 건강만 허락된다면 끝까지 완성할 겁니다. 『네임 레코그니션(Name Recognition)』도 쓸 예정입니다. 제가 어떻게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을 배워나갔는지 쓸 예정입니다. 

『네임 레코그니션』을 먼저 집필하고 있었는데 『아메리칸 학원』에 더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아메리칸 학원』은 벌써 몇 년 동안 집필하고 있습니다. 홍콩, 대만, 한국, 싱가포르, LA, 보스턴, 뉴욕, 워싱턴 D.C.의 학원들을 방문했습니다. 호주도 방문했고요. 이 소설은 서울, 시드니, 보스턴, LA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많은 조사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학원을 운영하시는 분들, 학생들, 학부모님들, 학원에 참여하는 여러 사회적 계층들을 인터뷰했습니다. 이 소설을 꼭 쓰고 싶습니다. 한국인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주제이죠.

오늘 이 자리에서 한국 독자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십니까? 

여러분, 꼭 아셔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독서를 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를 다듬어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독자로서 갖고 계신 힘을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측정 불가능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세상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담이 끝난 후, 즉석에서 독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파친코』에 대한 일본 독자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일본 독자들은 『파친코』를 많이 사랑해줬습니다. 특히, 재일 교포분들이 많은 편지를 보내주셨고요. 어제도 사인회에 찾아와주신 분들이 (소설이) 너무 좋았다고 감동적이었다고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저는 재일 동포들의 역사를 지켜주고 싶고, 일본 역사의 중요한 일부이기 때문에 이분들의 이야기를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재일 동포들의 경험은 독특하고, 미국이나 호주에 있는 교포들의 경험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재일 동포들이 『파친코』가 좋았다고 이야기한 것은 최고의 찬사입니다.

차기작 『아메리칸 학원』이 '한국인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 될 거라고 하셨는데요. '교육'이라는 주제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전 세계의 한국인들에게 무엇이 제일 중요한가, 질문을 해봤습니다. 제가 브라질, 캐나다, 독일, 호주, 뉴질랜드에 있는 한국인들 수천 명을 만나서 물어보면, 여성이든 남성이든 한국인들은 교육에 대한 신념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학원을 통해서 더 교육받고 싶어 하는 거잖아요. 학원에 대한 도덕적인 가치 판단을 어떻게 하느냐와 무관하게, 교육의 목적은 나와 아이의 자기 계발을 위한 것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학원에 대해서 쓴 겁니다.

저는 한국 여성으로서 아버지가 있습니다. 가정을 하자면, 아버지와 페미니즘이나 아시아 여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의견 충돌이 생긴다면, 우리 관계를 깨지 않으면서 아버지에게 이야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제가 모든 아버지를 일반화할 수 없지만,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깨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버지의 사랑이 깊었다는 겁니다. 사랑을 많이 받으신 거예요. 나쁜 아버지였다면 이 관계가 깨지는 것에 대해서 걱정도 안 할 겁니다. 아버지가 딸을 깊이 사랑한다면 딸을 더 알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딸을 더 알기 위해서는 아버지에게 딸이 자기 자신을 보여줘야죠. 어떤 사람인지. 내 자신을 완전히 보여주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지만, 공정하게 이야기하고 대하기 위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셔야 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분노가 있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대해서 속상한 게 너무 많은 사람인데, 그래도 예의를 지키면서 이야기합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할 건지 생각하고 이야기를 하세요. 아버지가 이 말을 듣고 어떤 감정을 가질지 생각을 하고 이야기하세요. 항상 진실을 이야기하고, 나의 약점을 아버지에게 보여주면 아버지가 나를 더 사랑할 거라는 희망을 갖고 이야기를 해보세요.

『파친코』는 3부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부를 시작할 때마다 '에피그래프(epigraph)' 형식으로 찰스 디킨스, 박완서, 베네딕트 앤더슨의 글이 실려 있는데요. 그 의미가 궁금합니다.

제가 어떤 동기를 가지고 1부, 2부, 3부를 작성했는지 알려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저는 '박완서' 작가에게 영감을 많이 받았습니다. 예를 들어서, 한국에 살고 있는 여성이 한국만 보기 때문에 모두가 다 한국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어린아이의 시각이 저에게 굉장히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2부를 시작하면서 그것을 포함했죠. 

'베네딕트 앤더슨'은 인류학자로서 굉장히 중요한 책을 저술했는데, 우리가 인류학과 여러 부족주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보여주는 책입니다. 이런 부분에 제가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21세기 한국인은 아주 글로벌한 개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상 그렇습니다. 엘리트 한국인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평범한 한국인들도, 돈이 많지 않더라도, 아이를 영어 유치원에 보내면서 글로벌한 인재로 키우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죠. 이것이 어떻게 보면 굉장히 감동적이기도 합니다. 

또, 저는 학자들을 존중합니다. 저는 평생을 바친 학자들의 노력을 근간으로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찰스 디킨스의 경우에는 집에 대한 인용구가 굉장히 영감을 많이 준다고 생각하고요. 제가 어렸을 때 디킨스의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디킨스는 평범한 사람들을 정말 사랑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대담에서 국제결혼에 대해 짧게 이야기해주셨는데요. 저는 우리나라에서 국제결혼 비율이 가장 높은 곳에서 왔습니다. 이주 여성에 대해서, 또 몇 년 전에 제주도 난민과 관련해서도, 우리가 21세기적이지 못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세상에서 제가 젊은 아시안 여성으로서 윗 세대를 존중하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우리가 한국인에 대한 편견을 더 만들어내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한국인들을 인터뷰해보면 전 세계 어디를 가든지 '한국 남자는 이렇다, 저렇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럼 저는 '한국 남자를 몇 분이나 아십니까?'라고 질문합니다.(웃음) 저는 항상 웃으면서 이런 질문을 드립니다. 그 분이 편견을 만들어내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오는 여성들에 대한 편견을 경험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요. 5천 년이 된 국가가 순수 혈통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왔는데 통합을 하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 통합을 출발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국인들은 외국인 혐오증이 있다'고 계속 이야기하면,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질문자는) 그 공동체에 계시지만 외국인 혐오를 안 하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많은 한국인들이 편견을 갖고 있다는 말 자체를 안 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질문자의) 고향에도 이주 여성들을 친절하게 대하셨던 분들이 계실 것이고, 이러한 부분들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생각해 봤을 때, 어떤 상황이든 진실해야 합니다. 내가 잘못했다, 잘못 생각했다, 잘못 말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사과를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사과를 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우리가 진실을 생각하지 않고, 개개인의 한국인을 생각하지 않고, 계속해서 편견을 만들어낸다면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없습니다. 너무 순진한 생각일 수 있겠지만, 새로운 세상이 올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일본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랐고 지금은 한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코스모폴리턴'이라고 생각합니다. 특정 인종이나 문화와 무관한 사람이라고 정체성을 만들었는데요. 여전히 정체성 확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이 질문을 통해서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 말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내가 누구인지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많은 분께서 (저를) 칭찬해주셔서 굉장히 감동받았습니다. 동시에 놀랍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께서 저를 생각하시는 것처럼 저는 스스로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느리고, 실수가 많고, 똑똑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똑똑했다면 소설을 네 권쯤은 집필했을 것 같습니다.(웃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나에 대한 내부적 정의와 외부적 정의 사이에서 진실을 만나게 해야 하는데 이것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완벽하게 정립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스스로를) 한국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미국 시민이지만 서울에서 태어났고 한국에서 만들어진 사람이죠. 저의 아버지는 북한 원산 출신이시고, 저의 어머니는 남한의 부산 출신이시고, 저는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모든 지리적 진실들이 통합해서 저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저는 거부하지 않습니다. 모든 요소들, 모든 라벨들이 합쳐져서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저에게 '당신은 X입니다'라고 이야기하면 저는 'X가 아니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X에 대해서 반드시 고려는 할 것입니다.

한국에서 『파친코』의 두 번째 번역본이 나왔는데요. 앞서 출간된 책과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습니다. 

번역가들의 작업은 신성합니다. 너무 어렵거든요. 저는 여러 언어를 하는 사람들을 정말 존경합니다. 날아다니는 것만큼 위대해 보입니다. 번역가가 충실히 번역을 했기 때문에 저는 바꿀 것이 하나도 없었고요. 두 번째 번역본이 나올 때 더 많은 관여를 했는데, 구조적인 틀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제가 이 책을 3부로 구분했는데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각 장에 붙인 제목을 이전에 출판된 것에는 뺐고, 또 제가 중요시했던 디테일을 살렸습니다. 두 번째 번역본을 신승미 번역가가 번역해주셨는데요, 너무너무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변호사로 일하시다가 어떻게 작가로 전향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2년 동안 기업에서 변호사로 활동했고, 신입 변호사 역할을 굉장히 잘했습니다. 신입 변호사로서 하는 일은, 문서를 보고 문제가 있으면 파트너에게 이야기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해서 긴 보고서를 작성했죠. 그 일이 제 성격에 잘 맞았습니다. 일을 잘해서 정말 많은 일을 배당 받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한 압박이 있는 상황이었죠. 20대, 30대가 되면 정말 몸이 안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변호사를 그만둘 때는 굉장히 간단했습니다. '내가 20대, 30대에 죽을 거라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런데 소설 집필이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습니다.(웃음) 다른 사람들은 좀 쉬운지 모르겠지만 저는 정말 어렵습니다. 


이민진 작가는 모든 질문자들과 눈을 맞추며 이름을 묻고 불렀다. 마음을 담아 이야기를 듣고 대답을 돌려줬다. 질의응답이 끝난 후에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한 집에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라는 집에 살고 있습니다. 그 집에 거주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응원합니다."



*이민진

전 세계에서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 경계인으로서의 날카로운 시선과 공감을 바탕으로 한 통찰력으로 복잡다단한 역사와 인간의 본질을 포착하며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을 잇는 작가'라는 찬사 속에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다.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다. 예일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후 조지타운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일했으나, 건강 문제로 그만두게 되면서 오랜 꿈이었던 글쓰기를 시작했다.




파친코 1
파친코 1
이민진 저 | 신승미 역
인플루엔셜
파친코 2
파친코 2
이민진 저 | 신승미 역
인플루엔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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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비밀 통로 | 밤톨군의 책 2022-08-18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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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내 비밀 통로

막스 뒤코스 글그림/이주희 역
국민서관 | 2022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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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막스 뒤코스의 이름을 보고 전작인 『비밀의 집 볼뤼빌리스』, 『잃어버린 천사를 찾아서』, 『비밀의 정원』 등을 떠올렸다가 그림체가 너무 달라져서 깜짝 놀랐다. 표지의 그림책 작가 이름을 확인하지 않았더라면 막스 뒤코스의 작품인지도 몰랐을 듯! 2022년 랑데르노상 그림책 부문 수상작 『내 비밀 통로』 의 이야기다.

오래된 안락의자 같은 그림책이다. 『내 비밀 통로』 는 안락의자에 편안하게 앉아서 오래도록 머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글도 심플하고 편안하다. 무엇보다 결말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지는 이야기다. 내가 좋아하는 이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그들도 사랑하게 만들고 싶다.

Un album comme un bon vieux fauteuil : on s’assoit dedans, on y est a l’aise, on pourrait y rester longtemps, seul ou a plusieurs. L’ecriture est simple et confortable (encore !), et surtout, surtout, surtout, on avance dans l’histoire en se demandant comment elle va finir. En bref, c’est un album comme on les aime, et qu’on a envie de faire aimer a ceux qu’on aime en le leur offrant.

-랑데르노상(Le prix Landerneau Album Jeunesse 2022) 심사평 중에서



내 비밀통로

Mon passage secret

막스 뒤코스 ( Max Ducos )

국민서관

하드커버의 그림책 표지에는 오래된 회색빛의 돌로 된 터널로 이어지는 비밀통로의 입구가 정사각형으로 뚫려있다. 두 명의 아이들이 컷아웃된 구멍을 통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소년은 빛을 비추고 있고, 소녀는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가리키고 있다. 표지를 넘기며 우리는 비밀통로 속에 있는 그 '무엇'이 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시작이다.

비 내리는 일요일, 조부모의 오래되고 낡은 집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는 리즈와 루이는 비가 오니 밖에 나가 놀지도 못하고, 심심해서 죽을 지경이다. 일러스트 속의 이런 모습, 낯설지 않다. 요즘 아이들은 이럴 때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있을테지.



그런 아이들에게 할아버지는 ‘내 비밀 통로’를 찾아보라는 말을 건넨다.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탐험을 시작한다. 아이들의 탐험은 2층 할아버지 방에서 시작하고 '보물'을 찾아내 할아버지에게 가져간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그런데 그것 말고 내 비밀 통로는 못 찾은 거냐?" 라고 한다. 아이들은 할아버지의 힌트에 따라 욕실로, 서재로, 지하실로 탐험의 공간을 옮겨간다. 이제 지루하기 짝이 없던 공간이 모험의 세계로 완전히 탈바꿈한다. 아이들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가져올 때마다 할아버지는 계속 "그런데 그것 말고 내 비밀 통로는 못 찾은 거냐?" 라고 묻는다. 이 반복은 할아버지의 '비밀 통로' 는 어디에 있으며, 그 속에는 무엇이 있을지 끝까지 궁금하게 하는 요소다.




그림책 초반의 표정과는 매우 다른 아이들의 표정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집 안의 모든 것이 이제 아이들에게는 비밀 통로를 여는 장치처럼 여겨진다. 지루하게 여겨졌던 일상이 ( 스마트폰이 없어도, 게임기가 없어도 ) 얼마든지 즐거워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하다. 집과 그 주변이 훌륭한 놀이터이며 무엇보다도 상상력이 있으면 일상은 지루하지 않다.

문득 여름방학마다 갔었던 나의 외가집이 떠오른다. 외갓집에는 벽장을 열면 속에 계단이 있었고, 계단을 오르면 다락이 나왔었다. 용기를 불러일으켰던 다락방의 묘한 분위기와 더불어, 외할머니가 보관하시던 여러 물건들이 있었는데 동생과 내게는 매우 신기한 것들이 많았던 것이 떠오른다. 이제 내 부모님은 아파트에 사시다보니 내 아이에게는 장소가 불러일으킬 모험심은 크지 않겠지만, 녀석도 역시 창고로 쓰이는 방을 뒤지며 이런 저런 보물을 찾아내고는 했다. 나조차도 잊고 있던 추억의 물건들을 아이를 통해 발견하면 얼마나 기쁘던지.



할아버지의 진짜 '비밀 통로' 는 책 속에서 직접 확인해보시길. 막스 뒤코스의 재기발랄함을 느낄 수 있다. 문득 마지막 페이지에서 할아버지가 추억에 젖어 놀고 있는 기차놀이셋트를 보니 보관장소가 마땅치않아 동네에 나눠줬던 아이의 기차놀이 셋트가 떠오른다. 그림책 속 모습 같은 구성이었는데 말이다. 아이는 기차놀이셋트보다는 파워레인저 엔진포스 G12를 더 아쉬워하는 듯 하지만. 문득 막스 뒤코스의 추억들 또한 그림들 속에 숨어있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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