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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 가자고요_ 낡고 오래된 것들에게서 온 사연들에 대하여 | 나의 서재 2018-06-19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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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놀러 가자고요

김종광 저
작가정신 | 2018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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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치 있는 입담가가 풀어놓는 한 편의 우화 같은 우리네 삶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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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치 있는 입담가가 풀어놓는 한 편의 우화 같은 우리네 삶의 이야기!

 

 

 

   눈을 뜨면 나무 서까래가 보이고 시선을 돌리면 다닥다닥 모여서 잠들어 있는 사촌 형제들의 숨소리가 가득 고인 방 안의 정경이 떠오른다. 분명 방바닥은 뜨끈뜨끈한데 코끝은 말도 안 되게 시려서 이불을 죄다 모아 끌어올려도 냉기가 가시질 않는 것은 왜인지. 유독 '빨간 휴지를 줄까, 노란 휴지를 줄까' 같은 음성이 들릴 것만 같은 재래식 화장실과 대체 무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큰 소 한 마리가 외양간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경운기 한 대가 위풍당당하게 마당에 놓여 있는 풍경까지. '싫어, 시골에 안 갈래.' 나는 유독 얼음장 같이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해야 하고, 몸을 구기고 구겨서 잠들어야 하는 게 너무도 싫어서 늘 명절만 앞두면 이번에는 결코 따라가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하고 또 다짐했는지 모른다.

 

 

 

   그러던 어느 해에 갑자기 그 낡은 기와집이 사라지고 붉은 벽돌이 겹겹이 둘러싸인 예쁜 양옥집 하나가 덩그러니 들어서게 되었으니, 그 풍경이 한없이 낯설었지만 어린 나의 눈에는 낡은 시골집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땐 그렇게도 좋았다. 사촌 오빠가 끌어주는 자전거를 타고 달렸던 좁은 길과 작은 담벼락을 돌고 돌면 나오던 구멍가게와 쥐불놀이를 하며 뛰어놀았던 마른 논밭은 이제 자동차가 지나가는 길과 대형마트와 아파트가 들어섰을 만큼 변해버려서 '시골'이라는 말이 무색해졌지만, 지난 날 시골이 간직했던 풍경을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이라도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그곳이 '고향'이라는 향수가 가져다주는 특별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지니고 있는 마음 속 특별한 고향, 범골의 상징성

 

 

   김종광의 <놀러 가자고요>는 옛날에 호랑이가 살았다 해서 범골이라 불리는 시골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한 일곱 편의 단편 소설과 그 외 두 편의 단편 소설을 함께 엮어 만든 소설집이다. 책은 우연히 국문학자인 임 교수가 자신의 고향인 범골에 관해 쓴 글을 읽고 이곳에서 살게 된 성염구가 마을을 대표하는 역사서를 기술하기 위해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 자료를 모으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범골사 해설」을 필두로 하여 모내기의 달인들, 견인의 달인들, 부업의 달인들 등 마을 마다 장기 하나쯤은 있다는 사람들을 다룬 「범골 달인 열전」으로 이어진다.

 

 

 

   특히, 표제작인 「놀러 가자고요」는 노인회장 김사또의 아내인 오지랖이 마을 사람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주말에 놀러가기로 한 것에 대한 참석 여부를 묻는 내용으로, 농촌 특유의 정서가 대화체에서 고스란히 묻어나와 의외의 웃음과 그네들의 삶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이어지는 「김사또」는 앞서 「놀러 가자고요」에 등장했던 노인회장과 그 아내의 이야기로 전형적인 시골 부부의 삶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무뚝뚝하고 신경질적이지만 자식이 온다는 소식에 좋은 고기를 얻어 먹이려는 아버지의 모습, 실수로 갈비찜을 태우게 되자 며느리에게 몰래 전화를 걸어 집으로 오는 길에 고기를 사오게 해 남편을 속이는 아내의 모습들은 일상적인 것에서 특별함을 자아내는 작가 특유의 작법이 장기처럼 발휘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임 교수는 사석에서는 솔직했다. "나는 고향, 고향 하면서 되지도 않는 감상에 빠지는 것들이 참 싫어요. 굶주려서 아무거나 주워 먹고 배탈 난 기억밖에 없어. 아버지한테 술주전자로 두드려 맞기나 하고, 꿈속에 다시 볼까 두려운 게 고향이여."

"칼럼에 쓴 건 뭔데?"

"그럼, 고향을 나쁘다고 쓰나? 말은 나쁘게 할 수 있어도 글은 좋게 쓸 수밖에 없다니까. <좋은생각> 몰라?" / 48p

 

 

-그렇다니까. 저번 회의 때 나만 놀러 가는 거 반대했다니까. 곧 죽어도 놀러는 가야 한다는 거지. 우리 젊었을 때는 놀러 가는 게 의미도 있고 보람도 있었어. 촌놈들이 1년에 딱 한 번 때 빼고 광내고 유흥을 즐기다 오면 친목 도모를 넘어 보람 상조까지 되었어. 지금은 아니잖아. 놀러 다닐 만큼 다녔잖아. 아줌마도 안 다닌 데 없잖아? 그만큼 놀았으면 됐지. 곧 땅속에 묻힐 것들이 기어코 놀러 가겠다니, 어이가 없어, 어이가. 팔구십 노인네들이 버르적버르적 기어 다니는 거 보고 뭐라고 하겠어? 단체로 고려장 왔나 그럴 거 아냐. / 112p

 

 

 

 

 

 

   이어 「봇도랑 치기」에서는 이른바 농촌에서 청년들로 분류되는 이들의 고민과 애환을 무람없이 보여준다. 아직도 기계로 못 하는 농사일도 있단 말인가, 의아해하며 논바닥을 에두르는 구불구불한 봇도랑을 말끔히 퍼내는 작업을 하기 위해 청년들이 한 데 모였는데 한 때 개차반 청소년으로 동네에서 자자했던 나를 비롯하여,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없는 사손이, 스카이를 나와 범골을 빛낼 인재로 촉망 받았지만 졸업해서 수년째 백수인 이태백 등이 바로 그러하다. 도시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시골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현실, 그렇다고 얕볼 수도 없는 것이 농사일임을 뼈저리게 깨달으며 우리가 낡고, 하찮게만 여겼던 일들에도 다 사연이 있고 귀한 것들이 존재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김사또가 또 한바탕 질러댔다. "하필이면 다른 때 다 놔두고 모내기 철에 선거를 하냔 말이여. 농촌에서 가장 바쁠 때가 모내기 철 아니냐고. 그렇지 않아도 일할 사람이 읎는다, 그나마 일할 만한 사람을 선거판이 싹쓸이해버려. 뽑는 게 몇 개고, 하나 뽑는 거에 후보가 몇씩이냐. 여덟 개에 후보 다섯 명씩만 잡아도 후보가 40명이여. 그 40 후보 놈이 선거원을 열 놈씩만 써도 400명이다, 400명. 그놈들이 법이 정한 대로만 쓰겠냐? 무법적으로 쓰는 선거원까지 합치면 천 명은 다 선거운동하고 자빠졌다는 거 아니냐? 우리 호구시에 젊은 놈이 몇이나 있냐? 이 바쁜 농번기에 그나마 있는 젊은 놈 천 명이 선거운동 판에 가 있어." / 163p

 

 

아버지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내가 보기에도 '진짜 농부'들은 애오라지 논농사만으로 생계와 자식 학비를 도모하지는 못했다. 논농사는 그저 농부로서의 처량한 자존감을 지키는 일에 불과하거나, 도시 사는 아들, 딸, 손자 식량 대주기 위한 의무 수행처럼 보였다. 소나 돼지나 염소나 닭을 키웠고, 내 아버지처럼 노가다를 다녔고, 공장을 다녔다. 논농사만 지어서 먹고사는 집은 단 한 집도 없었다. / 186p

 

 

 

   「산후조리」는 구제역이라는 재앙이 바로 코앞에 닥쳐온 시점에서 자신의 소 '얼간년'의 산후조리를 하게 된 주인공 나의 사연을 담은 이야기다. 몇 안 되는 소이지만 팔기 전까지는 자식같이 키우는 마음으로 기른 얼간년과 이제 막 낳은 새끼마저도 한꺼번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어떻게 해서든 살려보려고 애쓰는 그녀의 모습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재앙 앞에서도 끈질기게 생명력을 유지하려는 지극한 모성을 엿볼 수 있다. 그 와중에 "큰며느리가 친손자 낳았을 때 도시로 올라가서 한 달, 딸애가 외손녀 낳아 데리고 왔을 때 두 달, 그걸로 산후조리 끝. 미안하다 아직 결혼 못 한 작은 아들아, 너는 알아서 해라, 내 인생에 산후조리 다시는 없다"고 선언했는데 이게 무슨 팔자냐며 푸념하는 모습은 꽤나 유머러스하게 그려지지만 한편으로는 애처로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만병통치 욕조기」 역시 평생을 농사일로 고단하게 살아온 엄마라는 존재의 애환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아프지 않은 데가 없는 엄마에게 이것만큼 좋은 게 없다며 무려 400만원에 달하는 욕조기를 판매하러 온 외판원 앞에서 사지 않겠다고 조목조목 반박하는 아내와 그런 그녀가 밉지만 한편으로는 시원하게 사드리지 못하는 주인공의 착잡한 심경을 매우 사실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이 외에도 [장기호랑이]와 [아홉 살배기의 한숨]은 옆에서 훈수를 두는 어른들이 못 견디게 싫은 아이와 끊임없이 한숨을 늘어놓는 아홉 살배기의 아이를 통해 세대 간의 갈등, 시대가 품고 있는 상처들을 담아내고 있어 이 또한 남다르게 읽히는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어른들의 훈수가 정말 싫었다. 또 안절부절못하는 아빠의 얼굴도 싫었다. 나는 장기판을 흩뿌리면서 "안 둬!" 하고 빽 소리를 질렀다. / 38p

 

 

우리가 아무리 반성을 해도 아이의 깊은 한숨은 끈질기게 계속되었다. 녀석은 폭격기 같았다. 녀석의 단어 마법 신기록은 120개를 돌파했는데 그중에 '폭탄(폭탄)'도 있었다. 녀석은 18평 공간에다 한숨 폭탄을 퍼부어댔던 것이다.

의사는 약 말고도 처방을 주었단다.

아이를 하루에 열 번 이상 웃겨라!

부모부터 항상 웃고 있어라! / 293p

 

 

 

 

 

 

   김종광 작가가 선보인 <놀러 가자고요> 속 작품들은 대체로 우리가 한 때 읽었던 <태평천하>, <삼대>가 지닌 문학성과 궤를 같이 한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는 꽤 보기 드문 작풍을 지닌 작가가 아닐까 싶다. 해학이라는 요소를 능청스럽게, 꾸밈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점 또한 큰 장점으로 받아들여진다. 무엇보다 인생의 말년을 살아가는 어른들의 삶을 감정적인 것에 호소하지 않고 사실적으로, 때로는 희망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 또한 긍정적이다.

 

 

"우와! 솔직히 저는 얘들이 못 살 거라고 봤슈. 워칙히 살았지? 살라는 의지들이 강했구만. 그려, 참 보기 좋다. 조금만 거시기하면 못 살겠다고 살기 싫다고 확 가버리는 인간들보다 너희들이 훨씬 낫다. 안 그러냐? 누구는 뭐 희망이 넘쳐서 사냐? 열심히 사는 게 사람의 운명이니께 그냥저냥 사는 거지. 사는 게 희망 아니야구." / 241p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조부모님들, 나의 부모님, 소똥 냄새가 은근히 피어올랐던 시골 앞마당의 정경들이 내내 떠나질 않았다. 범골이 상징하는 바가 바로 그것인 것 같다. 비록 외형은 많이 바뀌었지만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한결같은 고향의 이미지가 주는 따스한 포만감 같은 것 말이다. 평범하지만 우리네 정다운 일상을 포착하고, 그것에서 따뜻한 기억을 소환하게 하는 이 특별한 순간이 또 그리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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