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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엄하게 가르치지 않는가_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시키는 엄한 교육의 힘 | 나의 서재 2019-08-06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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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왜 엄하게 가르치지 않는가

베른하르트 부엡 저/유영미 역
뜨인돌 | 2014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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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훈련 사이에서 오늘도 고민하고 있는 부모와 교사들을 위한 교육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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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조화와 원칙, 일관성과 질서 안에서 엄격해져야 할 때!

자유와 훈련 사이에서 오늘도 고민하고 있는 부모와 교사들을 위한 교육법!

 

 

   어린이집을 다녀올 때만 해도 기분이 좋았던 아이가 또 심통이 났다. 간식으로 챙겨준 과자를 적당히 먹고 마는 듯하다가 저녁을 먹을 때가 다 되어서야 갑자기 다시 과자를 찾으며 마구 졸라대는 것이었다. 나는 단호하게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했고, 그 이유를 차분히 얘기하면서 설득하려 했는데 아이가 뜬금없이 완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아이라면 당연히 고집을 부리기 마련이고, 또 항상 울음으로써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던 아이가 느닷없이 발이나 팔 힘으로 나를 밀치며 고집을 부리니 일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간 아이의 여린 성향을 고려해 큰 소리를 내거나 따끔하게 혼을 내기보다는 아이가 이해할 때까지 설득해왔고, 또 그것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통했고 적정한 수준의 타협까지 이끌어냈기에 엄하게 훈육을 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걱정이 들었다. 아이의 자존감을 떨어뜨리지 않는 방편으로 대화를 통해 얼마든지 고집과 이기심을 내려놓게 할 수 있고, 아이에게 자유를 주되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만 정확히 지켜주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나의 교육법이 혹시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도 되었다. 더군다나 자녀 교육에 관한 여러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히려 중심을 잡기가 더더욱 힘들어지는 것 같다.

 

 

 

왜 다시 엄한 교육인가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느냐는 부모, 가족, 교사가 어떤 환경을 조성하느냐에 달렸다. 다시 말해 교육 환경이 아이의 성장에 영향을 주는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때문에 많은 부모들이 자녀 교육에 관한 강의나 서적에 관심을 기울이고 우리 아이에게 맞는 교육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섣불리 아이를 지도하고 억압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아이의 표현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타고난 성향과 자존감을 높여주는데 마음을 기울인다. 예전에 읽은 한 자녀 교육서에서는 “부모가 우려하는 아이의 나쁜 흥미는 대부분 부모의 엄격한 통제에 자극을 받아 생기는 경우가 많다. 특히 육아에 있어서 먹고 마시고 싸고 자는 일은 정교한 관리 혹은 표준적인 관리는 필요하지 않으며 우리 몸에는 강력한 건강 조절 기능이 있기 때문에 아이의 건강을 자동적으로 지켜 주는 최고의 영양제는 기분 좋은 감정이라는 점을 잊지 말라”고 강조하기까지 한다. 부모와 사회가 원하는 기준에 아이를 따르게 하지 말고 아이의 마음과 타고난 대로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기를 조언한다. 대부분의 육아서들이 이렇게 아이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법을 강조한다.

 

 

 

   우리 삶에서 혹은 자녀 교육에 있어서 훈련이나 복종, 권위와 같은 말은 이제 비민주적이고 비인간적인 것이 되었다. 특히 아이들의 삶은 어른의 삶보다 더 급진적으로 민주화되었다. 아이의 인권과 존엄을 존중하고 자유방임적인 교육이 대두되면서 요구하기보다는 지원해주고, 개입을 하지 않고, 아이가 스스로 자연스럽게 훈련할 수 있다고 믿으며 제약이나 권위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질서, 근면, 정확성, 예의 바른 태도 같은 부차적 덕목들은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이에 강도 높게 독일 교육제도를 비판해 온 저명한 교육자이자 독일 명문 살렘학교 교장인 베른하르트 부엡은 “엄격하게 가르치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독일은 히틀러 정권 이후 자유주의 교육이 확산되면서 현재까지 아이들의 인권과 자유를 존중하는 교육관을 내세웠다. 하지만 아이들은 예절과 배려를 모른 채 컸고, 그 결과 자신의 욕망만 남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미성숙한 존재가 되었다. 어른들이 지나치게 사랑하고 배려하는 동안, 아이들은 정작 사랑할 줄 모르고 배려할 줄 모르고 책임질 줄 모르는 존재가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베른하르트 부엡은 이러한 자유주의 교육의 폐해를 강도 높게 비판하며 이제는 사랑 안에서 아이를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시키는 엄한 교육이 필요할 때라고 강조한다. 다시 말해 이 세상에 있는 선한 가치를 지기키 위해서는 엄격하고 일관성 있는 태도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아이들에게 진리 앞에서 겸손할 것을 요구해야 하며, 그런 과정을 거칠 때 아이들이 삶의 질서를 세우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고,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 어른이 된다고 단언한다.

 

 

교육의 본질은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이는 교육자를 뜻하는 ‘페다고그’(Pedagogue)라는 단어를 살펴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단어는 그리스어에 어원을 두고 있는데, 고대 그리스에서 주인의 아이를 교육 장소로 데려가던 노예를 말하니다. 데리고 가는 사람은 아이가 따라올 것을 기대하지만 아이들은 본질상 순순히 따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페다고그는 말을 듣지 않고, 반항하며, 규율을 지키지 않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 위해 온갖 수간을 동원했습니다. / 20p

 

 

교육하려는 사람은 아이들을 훈련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훈련은 교육학의 미운 오리 새끼입니다. 동시에 모든 교육의 기초이기도 하지요. 훈련에는 인간이 싫어하는 모든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복종, 포기, 절제, 인내. 훈련은 쾌락의 원칙이 아닌 성과의 원칙을 따릅니다.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제한하고 규제를 두고 심지어 명령하기도 합니다. 좋은 훈련은 타율로 시작해 자율로 끝난다고들 합니다. 훈련의 마지막 열매는 자기훈련(self-discipline)입니다. 그런데 이 훈련은 교사의 강압이 아닌 아이에 대한 ‘사랑’을 바탕에 두어야만 제대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 21p

 

 

 

 

 

 

   칸트가 ‘규칙에 복종하는 것’과 ‘자유를 누릴 능력’을 조화롭게 가르치는 것을 교육의 큰 과제로 보았듯, 베른하르트 부엡 역시 조화와 균형 안에서 ‘일관성’ 있는 교육, 합당한 리더십에 따른 ‘권위’, 아이들의 가능성을 믿어 주고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훈련’, 교육의 시작과 끝이라 할 수 있는 ‘질서’, 가정의 붕괴가 만들어 낸 교육의 위기를 타개할 유일한 해결책인 ‘좋은 공동체’, ‘놀이’ 안에서 재능을 계발하고 아이를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시키는 방법들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말하는 일관성이란, 부모나 교사가 자신의 결정을 의심하지 말고 교육의 원칙으로 정한 잣대를 매일 흔들림 없이 적용하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아이와의 대치 상황을 견뎌 내기가 힘들어서, 기다려줄 여유가 없어서 번번이 결심을 무너뜨리기 일쑤 아니던가. 저자 역시 같은 경험을 공유하며 결국 교육의 위기는 시간 부족에서부터 시작되는 거라고 지적한다. 일관성 있는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시간이 든다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부모와 교사들이 시간을 어떻게 쓸지 미리 잘 가늠하고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자신을 위해서도 유익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엄격한 일관성을 아이들에게 거부감 없이 전달하기 위해서는 유머 역시 필요하다고 한다. 아이들을 존중하면서 구사하는 진정한 유머는 아이들의 마음을 열게 한다. 그 바탕에는 따뜻한 인간애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교육은 스스로를 시험할 기회를 허락하고, 좌절의 경험까지도 허락할 수 있어야 합니다. / 23p

 

 

아이는 거짓말을 하고, 변명을 하고, 다른 사람 탓을 합니다. 교육자는 그때마다 반응을 보이며, 분명하고 확실하고 용기 있게 진실을 말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어른이 혹시나 부정직하게 행동하고 그것을 아이가 알게 될 경우 정직에 대한 모든 노력은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른도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한 경우에는 용기를 내어 진실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는 정직하지 못한 모습을 고백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깨닫고 어른의 고백을 받아들이고 정직이라는 가치를 마음에 새기게 될 것입니다. / 29p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부모와 지속적으로 힘 대결을 펼친다. 아이들은 부모가 까다롭게 군다고 생각하고, 부모는 아이들이 까다롭게 군다고 생각한다. 이 팽팽한 대결은 결국 부모와 아이 모두를 지치게 한다. 이때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어른의 권위다. “자신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를 다스릴 줄 아는 자에게 이 넓은 세상과 만물은 복종하리라.” 독일 시인 파울 플레밍의 시에 나오는 문장을 인용하며 저자는 ‘권위’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한다. 흔히 복종과 지배라는 단어 앞에서는 눈살을 찌푸리게 마련인데, 진정한 권위가 만들어 내는 지배는 누군가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게 아니라 합당한 리더십으로 누군가를 완벽하게 보호해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이다. 아이들에게 나갈 방향을 보여주고 잣대가 되어 주는 권위, 모범이 되고, 목표를 제시하고, 경계를 그어 주는 동시에 경계를 뛰어넘도록 독려하는 권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권위와의 만남은 자립심을 길러 주고, 권위에 부딪히고 저항하는 과정은 견고한 인성을 기르는 첫걸음이 된다고 말한다. 특히 청소년기는 자기를 발견하고 자신을 찾아 나가는 변혁의 시기인데 이때 제대로 된 권위를 만나지 못하면 성숙은 그만큼 늦어진다. 권위 있는 어른이 없다는 것은 즉, 아이들이 흔들리고 부딪히면서 깨닫고 성장할 수 있게 만드는 존재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아이가 태어나면서 시작되는 권력 구도와 무거운 책임을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너무 일찌감치 아이와 파트너가 되어 이런 힘을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 아이들에게는 사랑에 기반한 부모의 힘, 부모의 권위가 필요하다. 부모가 그런 권위를 행사할 때, 교육은 성공할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민주주의는 높은 수준의 훈련을 바탕으로 하고, 아이들은 서서히 이것을 습득하고 배워 나가는 중입니다. 어린 친구들이 스스로 자신과 공동체를 위해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것을 실행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이상적인 계획일 뿐입니다. 용기를 타고나는 사람들은 드뭅니다. 자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것들은 다른 모든 덕목과 마찬가지로 힘든 성장 과정을 지나면서 얻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이를 위해 아이들에게 적절한 환경과 조건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 91p

 

 

교육이란 결국 이기심과 게으름을 극복하도록 매일 아이들을 다듬어 가는 작업입니다. / 97p

 

 

“인간은 제대로 놀 때 완전하다”라는 실러의 말에는 인류학적 지혜가 녹아 있습니다. 놀이는 목적이 없는 자유로운 활동이며 가벼운 마음으로 자유를 연습하게끔 합니다. / 146p

 

 

 

 

  결국 베른하르트 부엡이 자신의 책 <왜 엄하게 가르치지 않는가>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우리가 아이들을 교육할 때 외적 질서와 내적 질서, 강제와 자유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었다. 반드시 엄격할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와 ‘균형’이라는 두 단어를 기억하고 잘 활용하는 데에서 교육의 열쇠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하고 있다. 즉, 교육을 할 때는 타인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아이의 훈련을 돕는 일과 아이가 주도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주는 일, 외적으로 질서를 잡아 주는 일과 아이 스스로 내적 질서를 잡게 하는 일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교육은 대치되는 개념들 사이에서 끝없이 균형을 잡는 일이다. 부모와 교사는 적극적으로 이끌어주는 것과 스스로 자랄 수 있도록 기다리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원칙과 관용 사이에서, 훈련과 사랑 사이에서, 일관성과 배려 사이에서, 통제와 신뢰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것이다. 이 상반되는 개념들은 서로에게 필요한 개념이며, 그것들을 잘 선택해 활용할 때 비로소 진정한 교육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왜 엄하게 가르치지 않는가>를 읽으며 그간 아이 앞에서 수없이 망설였던 것들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아이의 고집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마음의 휴식을 얻은 대가가 아이의 고집을 더 키운 것은 아닌지 후회가 되었다. 또 아직 자유를 스스로 활용할 줄 모르는 아이에게 자율성을 키워주겠답시고 방치하거나 내 아이는 잘 할 거라는 믿음으로 방만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도 해보았다. 그간 권위랍시고 부모의 고집만 내세운 것은 아닌지, 이 책으로 권위의 의미를 새로이 새겨보며 균형 있는 교육을 실천하기 위한 나만의 교육 철학을 세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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