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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흔들리는 중입니다_ 길가에 핀 들꽃에서 배우는 것들 | 나의 서재 2020-08-20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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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오늘도 흔들리는 중입니다

이재영 저
흐름출판 |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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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작고 연약하지만 싱싱한 뿌리를 내 안에서 키워내는 법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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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에서 만난 들풀과 들꽃이 전하는 작지만 단단한 삶의 위로!

아직은 작고 연약하지만 싱싱한 뿌리를 내 안에서 키워내는 법에 대하여!

 

 

  두 달 전부터 매주 주말 아침이면 동네 앞산을 오르고 있다. 평소 산이라 하면 가까운 주차장에 차를 대어놓고 가볍게 절에 올라가는 정도가 다였지만,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남편의 권유도 있고 해서 산에 올라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1시간 정도면 정상에 올라갈 수 있는 코스라기에 만만하게 봤더니 그만큼 경사가 무척이나 가팔랐다. 올라가는 내내 주변을 둘러보기는커녕 그저 하염없이 땅만 보고 올라가기에도 벅찰 정도였다. 그렇게 산을 찾은 지 네 번째쯤에 이르고서야 아침 새소리와 산 주변으로 흐르는 계곡물 소리, 듬성듬성 산 곳곳에 핀 작은 꽃들이 점차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징그러워 나도 모르게 소스라쳤던 벌레들도 이제는 덤덤하게 가던 길을 내어줄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조금만 더’ 하고 몰아붙이기를 거듭하다가, 내 안에 고여 있던 숨을 내쉬고 새로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오롯이 나만의 호흡과 속도에 집중하다보니 어느 새 내 안에 작지만 단단한 변화가 일어나는 느낌이다.

 

 

 

   자연이 주는 힘이란 이런 건가 보다. 머지않아 마흔을 앞두고 있고, 두 아이를 낳은 지금 나는 여전히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기 일쑤이지만 산을 오르고 있을 때면 내 안의 정직한 힘과 분명 괜찮아지고 있다는 희망을 들여다본다. 『오늘도 흔들리는 중입니다』의 저자 역시 이렇게 말한다. ‘걸으면 조금씩 송두리째 흔들렸던 삶의 중심이 잡힌다. 나를 물들였던 것들이 천천히 빠져나간다. 겹겹이 쌓였던 타인의 시선과 기대와 기준들이 사라진다. 바람이 한 겹, 햇살이 한 겹, 나무가 한 겹, 꽃이 한 겹, 흙이 한 겹. 아름다운 것들이 내 속에 스며들어 불필요한 것들을 밀어내고 순한 내가 남는다’고. 그렇게 산책길에서 만난 들풀과 들꽃에게서 위로를 얻고, 흔들리는 내 삶에 작고 연약하지만 싱싱한 새로운 뿌리가 자라나는 것을 느낀다.

 

 

 

 

 

 

분명히 모든 게 괜찮아질 거예요

 

  적어도 마흔쯤에 이르면 가정이나 직업, 인간관계와 같은 것들이 안정적이고 여유로워질 줄 알았다. 정작 나의 부모님이 그러지 못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어쩌면 마흔이라는 나이는 이상보다 현실을 더 직시하게 되고, 도전보다 타협에 익숙해져서 해결된 것 없이 시간만 흘러가고 있는 듯한 막막함에 오히려 더 불안해지는 시기인 듯하다. 프리랜서이자 가평에서 책방 ‘북유럽(Book You Love)’을 운영 중인 저자 또한 마흔이라는 나이와 함께 매순간 흔들리고 있는 오늘을 담담하게 고백한다. 누군가가 나를 픽 해야만 하는 프리랜서 인생에 일은 점점 줄어들고, 아이는 자라는데 내가 잘 키우는 건지 불안하고, 프리랜서 작가로 아내로 엄마로 딸로 언니로 며느리로 친구로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고, 갈수록 익숙해져야 하는데 왜 계속 서툴고 미숙한지, 마흔에 이르러서도 삶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그렇게 별일 없지 않을 텐데 별일 없는 척하는 사람들이 밉고 별일 없는 척조차 안 되는 내가 또 밉고, 내가 예상했던 인생은 이게 아닌데 하고 한탄하며 몇 날 며칠을 집 안에 틀어박혀 있던 어느 날, 그녀는 산책을 나가기로 한다. 딱 열 걸음만 걸어보자, 하고 했던 것이 열을 세고 또 더 세면서 마을을 벗어나 건넛마을에도 가보고 멀리 사는 이웃집에도 다녀오다 보니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크고 화려하지 않지만 푸른 하늘을 향해 전진하듯 얼굴을 들고 있는 주홍빛 유홍초, 더러운 하수구 주변에서도 잘 핀다던 고마리, 작정하고 캐내버렸다면 보지 못했을 우아한 크림색의 왕고들빼기 꽃, 여러 해 겨울을 나며 한 곳에서 오래 아주 깊숙하게 스며든 메꽃, 가을이 되면 화려하게 물드는 저 단풍에게서는 결핍을 들여다본다. 그렇게 우리가 본 적이 있거나 혹은 보았어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을 들풀과 들꽃에게서 그녀 자신과 삶을 마주한다.

 

 

 

클로버의 잎이 행복에서 행운으로 변하는 건 짓밟혀서라고 한다. 원래 세 장의 잎이 나야 정상인데 잎이 밟혀 생장점이 손상되어 기형적으로 잎이 하나 더 나는 것이라고. 그래서 시골 산책길에서는 찾기 힘들고 상대적으로 사람 많은 도시에서 행운의 네 잎을 발견하기 더 쉽다. 클로버의 이야기를 알게 된 후로 조금은 공평하다고 생각했다. 행복을 깨닫기 힘든 곳에 행운이 나타나고 행운을 찾기 어려운 곳에 행복이 가득하다는 것이. / 31p

 

 

가을에 핀 왕고들빼기 꽃은 봄과 여름 내내 어떤 선택도 받지 못한 것들의 결과다. 봄에 왕고들빼기의 토실한 알뿌리를 캘 때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비주얼. 만약 작정하고 왕고들빼기들을 다 캐내버렸다면 바람에 나부끼는 이 우아한 크림색의 꽃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왕고들빼기 꽃을 볼 때마다 선택되지 않은 기쁨에 대해 생각한다. 그 사람이, 그 회사가, 그 시험이, 그 아이디어가 나를 선택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기회이고 기쁨이라고 이 꽃이 말해주는 것만 같다. / 49p

 

 

사연을 알고 보니 천덕꾸러기가 된 지금의 신세가 안쓰럽다. 이렇게 질리도록 몰려 피지만 않았어도 지금처럼 잡풀 취급을 받지는 않지 않았을까? 좀 적당히 드물게, 어쩌다 만나 반가울 수 있도록 드문드문 피었다면 좀 더 많이 사랑받았을 텐데. 하지만 내 생각이야 어떻든 개망초는 이 순간에도 쑥쑥 자란다. 모든 잡풀이 그렇듯이 개망초 역시 밟아도 뽑아도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으로 치면 대단한 멘탈을 가진 존재다. / 56p

 

 

 

   함께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읽어서일까. 초등학생인 아이를 가평에서 기차를 태워 혼자 청평역까지 보내야 했던 에피소드를 읽는데 괜스레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정작 아이는 혼자 기차를 탄다는 사실에 여행이라도 떠나는 것처럼 들떠 있는데, 엄마로서는 마냥 아기 같은 아이를 혼자 보내려니 걱정과 불안한 마음을 감추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잔소리나 걱정 대신 운동화 끈이 풀어지지 않게 두 번 꽉 묶어 주며 잘할 거라고 엄마 혼자 마음을 다독이는 모습이 어쩐지 내 눈에까지 선하다. 그렇게 아이는 걱정 말라며 가방을 야무지게 매고 건물 안으로 총총히 사라지고,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누가 키우거나 돌봐주지 않아도 악착같이 잘 자라나는 들풀의 생명력을 보며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든 드러내며 뿌리내리는 그것들에서, 이제는 아이를 세상에 내놓아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깨닫는다. 나 역시 언젠가는 품에 안고만 있던 아이의 홀로서기를 응원해줘야 할 때가 다가올 텐데. 지금의 나로서는 그녀처럼 의연하게 마음을 다독일 자신이 없지만, 그때가 되면 이 이야기가 많이 생각날 것 같다. 그녀가 그러했던 것처럼 아이는 훌륭하게 잘 해낼 것이라고, 엄마인 나도 한번 잘해보겠다고 다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러나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그대로 나였을 것이다. 마음대로 이름을 짓고 그 이름으로 불린다고 한들 그저 나였을 것이다. 미국자리공이 바다를 건너 왔다고 해서 머루로 바뀌지 않았듯이 다르지 않았겠지. 그래서 그런가, 동네 뒷길에서 미국자리공과 미국쑥부쟁이와 미국제비꽃과 미국질경이를 만나면 픽 하고 웃음이 난다. 고작 배경을 바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했던 어리석은 시절의 내가 생각 나서. 요즘 나의 열망은 나를 바꾸는 게 아니라 나를 제대로 아는 것이다. / 73p

 

물건도 그렇지만 사람과의 관계도, 그밖의 많은 것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은 자연스레 정리되기 마련이다. 작은 관계, 작은 성취, 작은 성공, 작은 수고, 작은 행복, 작은 즐거움. 음악, 색깔, 향기처럼 아예 손에 쥘 수 없는 것들. 인생에 중요한 건 웅장한 게 아니라 작고 사소해서 긴밀하고 떨어지지 않는 그런 것들이 아닐까. / 208p

 

꽃다지처럼 살면 안 되는 걸까? 가볍게 꿈꾸고 가볍게 접었다가 다시 그 자리에 가벼운 꿈 하나를 채우고, 안 되면 또 금방 뽑았다가 다시 꿈을 넣어두면서 살면 안될까? 그렇게 매일 꿈을 지니되 지니지 않은 채, 가볍지만 놓치지 않으며 산다면 삶이 훨씬 산뜻하지 않을까? 왜 묵직해야 그럴듯하다고 생각할까? 왜 모든 다 원대해야만 할까? 성공도 실패도, 희망도 절망도, 사랑도 실연도 그렇게 기꺼이 뿌리를 내어주지만 금방 다시 자리 잡는다면, 그럴 수 있다면 세상살이가 좀 쉬워지지 않을까?

다시 피어난 꽃다지를 뽑으며 생각한다. 가볍게 한없이 가볍게,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게 한 번 살아보자고. / 215p

 

 

 

 

 

 

   저자는 산책을 하면서부터 무채색의 세상이 온갖 풀들에 의해 색이 입혀지는 걸 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슬금슬금 작은 연둣빛으로 시작해서는 어느 새 초록 범벅이 되는 흐름, 계절을 넘어서며 아주 작은 것이 눈에 띄지 않게 지속되다가 순식간에 판이 뒤집어지는 걸 목격한다. 씨를 뿌려놓고 언제쯤 근사한 풍경이 될까 너무 아득해 상상도 하지 않았는데 이태 만인가 모래사장을 덮친 파도처럼 외벽을 기세 좋게 자신의 초록으로 뒤덮었던 담쟁이가 그러하듯, 변화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다. 덕분에 다짐한다. 나도 천천히 바꿔보자고. 다시 시작해보자고. 당장 달라지길 바라지 말고, 처음부터 너무 열심히 말고, 차츰차츰 나아지도록 천천히 말이다.

 

 

 

   사실 마흔이라는 나이쯤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 것 중에 하나는, 당장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 애쓰느라 아등바등하면서 사는 일이 결코 내게 유익할 리 없을 뿐더러 또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세상은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변화란, 찬찬히 또한 묵묵히 어느 틈에 색을 바꾸고 불쑥 자라난 자연의 그것처럼 찾아온다. 그래서 나도 이제는 그녀처럼 조바심을 가지고 살지 않으려 한다. 마흔이 되어서도 나는 여전히 흔들리며 살 거라고. 그런 내 모습을 인정하며 다만 느리더라도 천천히 바꿔보자고 마음먹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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