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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은교

박범신 저
문학동네 | 2010년 04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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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책의 이름이 참 아름답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것은 단지 그 이유 하나였다. 나혼자 상상을 해보았다. 은교? 은교? 하나는 가을동화란 드라마에서 문근영이 역할한 '은서'라는 소녀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이미지였으며 또 하나는 은빛 다리를 떠올려 보았다. 「은교」안에는 아름다움이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책을 몇장 읽어내려간 순간 내가 대단히 큰 착각을 했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경악을 했다.

 

「은교」는 이적요 시인의 1주기에 그가 남긴 노트를 자신이 죽고난 1년 후에 공개하라는 그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Q변호사가 노트를 펼침으로 시작된다. 노트에는 69세의  그가 열일곱 소녀 한은교를 사랑했으며, 그의 애제자였던 베스트셀러 작가 서지우를 자신이 죽였다는 경악스런 고백이 담겨져 있다. Q변호사는 이 놀라운 고백을 시인 이적요를 칭송하기 그지없는 문단에 바로 밝히기를 주저하며 잠시 시간을 번다. 그리고 은교와 만나 그녀에게서 전해받는 서지우의 일기까지 읽어가며 이적요-은교-서지우 이 세 사람이 지난 시간들속에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진실을 쫓는다.

 

「은교」는 작가가 말한 것처럼 정말 갈망 그 자체였다. 노인의 피끓는 사랑에 대한 갈망, 한 남자의 이룰 수 없는 문학에 대한 갈망, 관계속에서 안정됨을 얻고자하는 한 소녀의 갈망이 그대로 녹아있는 듯 하다. 처음에는 나 스스로도 이적요의 일기를 읽으며 '이 사람은 노망 든 것이 분명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얼굴 한쪽을 불쾌한 듯 찡그리며 이적요 시인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은교를 향한 욕망은 그가 스스로 말한 것처럼 비교적 양지바른 곳에 은거해 있었고 특별히 포악스럽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안에서 은교는 더욱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은교를 쇠별꽃같다 하였고, 그녀의 쇄골부근에 새겨진 문신을 통해 빅뱅을 꿈꾸는 듯 하다 표현했으며  '옴씬'한 발목과 하얀 손등이 시인 이적요의 글을 통해 은교를 아름다운 소녀로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아름다움은 각자의 심상을 결정하는 주관적인 기호에 따른 고혹이거나 감동이라는 그의 말이 나의 생각까지 움직이게 하였다. 은교, 너는 내 안에서도 어느새 아름다운 소녀로 자리잡았다. 은교에 대한 갈망이 커질수록 시인 이적요는 늙음에 대한, 문학에 대한, 죽음에 대한 갈망의 최고조에 이르는 듯 하다. 

 

 은교는 나에게 슬픔과 함께, 생애를 통해 경험해보지 못한,

청춘의 광채와 위로를 주었다. -194p.

 

시인 이적요의 갈망을 눈치챈 이가 바로 그의 제자 서지우다. 21살 대학에서 이적요 시인의 강의를  청강하다 운명적으로 만난 문학에 사로잡혀 서른 살이 훨씬 넘어서도 그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그... 천재성을 가지지 못했기에 그의 문학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다. 베스트셀러 <심장> 역시 이적요의 작품에 단지 그의 이름만 빌려주었을 뿐... 처음에는 서지우란 인물이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 알 수 없는 느낌이었는데 차차 그의 행동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로써는 절대 가질 수 없는 신성(천재성)을 지닌 시인 이적요에 대한 깊어지는 사랑때문이라는 것을. '당신을 죽여서라도, 당신의 명예를 지키고 싶은게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라고 적은 그의 일기를 통해 확실히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은교를 안으며 늙은 이적요는 천재성을 가졌지만 자신처럼 은교를 안을 수도 없고 그의 성기는 본인처럼 힘차게 발기할 수 없다고 속으로 소리치는 장면에서 그 역시 끊임없이 시인 이적요에 대해, 본인의 재능에 대해 갈망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선생님을 존경하고 사랑하고 있다.

때로 선생님이 나의 장애물이며 짐이라고 느낄 때도 있지만,

그 짐을 지고 가는 것이 선생님 없이 살아가는 것보다 백 배 낫다.

어떤 의미에서 선생님은 여전히 은교 이상이다. -327p.

 

열일곱 소녀 은교, 그녀는 일기 안에서 가장 아름다웠으며 싱싱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처음에 평범하게 보았던 변호사 Q 까지도 나중에는 은교가 나이가 느껴지지 않는 '신비한 눈빛'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녀 역시 그들이 살아있을 적에도 둘 사이를 헤메이며 왔다갔다 했지만 결국 시인 이적요와 서지우의 관계에서 낄 자리가 없을 정도의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음에 살짝 놀라웠다. 책 제목이 은교이긴 했지만 은교 자체보다는 은교를 통해 투영되는 시인 이적요와 서지우의 모습이 주를 이루었다. 그 때문에 시시각각 그녀의 속마음을 알 수는 없었지만 마지막 그녀가 시를 쓰고 있다는 말에서 아마 그녀가 가진 갈망의 파장과 시인 이적요가 지닌 갈망의 파장, 서지우의 갈망이 파장이 일정부분 아니 상당히 맞닿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관계가 성립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은교는 갈망의 대상인 동시에 갈망의 투영체인 듯 하다.

 

「은교」를 읽는 내내 느낀 것 중의 하나는 어휘의 다양함에서 느껴지는 깊은 맛이었다. 평소 우리가 쓰지 않는 어휘들이 참 맛깔스럽게 제자리를 찾아 빛을 내고 있었다. 낯설고 날선 문장들이 어찌나 나를 잡아 끌던지 무서울 정도였다. 또한, 읽는 동안 얼굴이 시시각각 변했던 것 같다. 찌푸리기도 하였고, 붉어지기도 하였으며, 인물들을 향해 피식하고 비웃음을 보내기도 하였다. 시인의 마음에, 서지우의 마음에, 은교의 마음에 들어가보고 싶어서 무단히도 노크를 해댔었다. 연애소설이라 하지만 인간의 근본적인 무언가를 말하는 듯 싶어 자꾸 그들 안으로 들어가서 파헤쳐보고 싶었다. 늙는 다는 것, 젊다는 것, 여자-남자라는 존재, 관능적이라는 것, 욕망이라는 것, 죽음이라는 것을…….

 

「은교」를 읽고나니 저밑바닥에 숨어있는 나의 본능도 본디 그 자리에 늘 있었다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하지만 시인 이적요의 본능이 은교를 만나기전 꼭꼭 숨어있었던 것처럼 나도 지금 그런 것 같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섬광같고 용광로처럼 들끓는 나의 욕망이 언제, 어떻게 화산 폭발처럼 표출될지 설핏 걱정이 되긴 하지만 한편으론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이러한 크고 작은 욕망과 갈망들의 부딪힘 속에서 우리는 성장하는 듯…. 그리고 죽을때까지 그 지겨운 싸움은 계속되는 듯 하다.「은교」는 매우 본능적 감각에 충실히 쓴 소설 같다. 그래서 부디 밤에만 읽으라고 하는 것인가? 하지만 읽다보니 어느 순간 아침이 밝아온다. 그 순간 충만했던 나의 원초적인 본능들도 살짜기 같이 숨어버렸다.

 

 생의 마지막에 너를 만나 경험한 본능의 해방이야 말로

나의 유일한 인생, 나의 싱싱한 행복이었다. -39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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