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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몽당연필의 책 이야기 2022-11-28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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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아고타 크리스토프 저/용경식 역
까치(까치글방) | 2014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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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간혹 악몽을 꿉니다. 꿈속의 전 전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습니다. 시가지로 진입한 적군들을 피해 어딘가 숨어 멀찌감치서 그들을 지켜봅니다. 줄지어 행군하는 적군의 군화 소리에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듯 하지만 꼼짝할 수가 없습니다. 어떨 땐 피난을 가기 위해 서둘러 짐을 싸기도 하는데 어이없게도 어떤 책을 가져가야 할까 고민하다가 잠에서 깨어나기도 합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전쟁을 겪지 않았는데 전쟁에 대한 꿈을, 그것도 잊을 만하면 반복해서 꾸다니……. 그 이유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막연히 전쟁에 대해 공포와 두려움, 그것 때문일까? 그렇다면 전쟁이 어떠한 것인지 실상을 알면 이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가? 쉽게 결론이 나질 않습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독서모임 선정책으로 읽게 된 책입니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이라는 표지 문구에, 아가사 크리스티를 연상시키는 저자의 이름에,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까지 더해져서 구입만 하고 내내 읽지 않았거든요. 

 

 

책은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치달을 무렵, 헝가리의 작은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쌍둥이 소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1부 [비밀 노트]는 전쟁으로 인해 끼니조차 연명하기 어려워지자 쌍둥이 엄마가 국경 인근의 시골 마을에 사는 할머니에게 쌍둥이를 맡기게 되는데요. 참혹한 전쟁으로 사람들에게서 선과 악의 경계가 무너지고 인간성조차 파괴된 가운데 형제는 오직 살아남기 위해 노동을 하고 더러움이나 연민, 고통으로 나약해지지 않도록 서로를 다그치며 단련을 해나갑니다. 형제는 ‘우리’가 되어 마치 한 몸처럼 살아갑니다. 

 

 

엄마는 우리에게 말했다.

“귀여운 것들! 내 사랑! 내 행복! 금쪽같은 내 새끼들!”

우리는 이런 말들을 떠올릴 적마다 눈에 눈물이 고인다.

이런 말들은 잊어야 한다. 이제 아무도 이런 말을 해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시절의 추억은 우리가 간직하기에는 너무 힘겨운 것이기 때문이다. - 27쪽.

 

2부 [타인의 증거]는 한 몸 같던 클라우스가 국경을 넘어 떠나버린 후 홀로 마을에 남겨진 루카스의 삶을 보여줍니다. 공허함과 외로움에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던 루카스는 아버지의 아이를 낳아 방황하던 야스민 모자를 보살피고, 책 쓰는 꿈을 간직한 서점주인 빅토르 등 조금씩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클라우스와 재회했을 때를 대비해서 클라우스와 함께 썼던 노트에 자신의 이야기를 적어나가는데요. 어느 날 클라우스가 기차를 타고 마을에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게다가 형제의 이름이 루카스(Lucas)와 클라우스(Claus), 철자의 순서만 바뀐 이름이 나타내는 건 뭘까요? 

 

 

나는 이제 깨달았네, 루카스. 모든 인간은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걸,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독창적인 책이건, 보잘것없는 책이건, 그야 무슨 상관이 있겠어. 하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혀질 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 흔적도 없이 스쳐 지나갈 뿐이네. - 302쪽.

 

 

마지막 3부 [50년간의 고독]에서는 루카스를 찾기 위해 국경을 넘어 마을로 돌아온 클라우스와 루카스가 드디어 만나게 되는데요. 놀랍게도 그동안 알고 있던 것들이 모든 것들이 뒤집힙니다. 클라우스가 실은 루카스였으며, 루카스도 실은 클라우스였던 것. 도대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이었던 것인가. 쌍둥이 형제는 존재했던 것인가. 혼란스러운데요. 작품 속 형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진짜 클라우스는 자신을 찾아온 루카스를 형제가 아니라며 단호하게 부정하는데요. 루카스의 자살 소식에 클라우스도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며 끝을 맺습니다.

 

 

이 모든 것은 거짓말에 불과했다. 내가 이 도시에서 할머니 집에 살 때, 분명히 나 혼자였고, 참을 수 없는 외로움 때문에 둘, 즉 내 형제와 나라는 우리를 상상해왔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 452쪽.

소년은 조서에 서명을 했다. 거기에는 세 가지 거짓말이 적혀 있었다.

국경을 같이 넘은 남자는 그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이 소년은 열여덟 살이 아니고, 열다섯 살이다.

이름은 클라우스(Claus)가 아니다. - 465쪽.

 

 

1부에서 한 몸 같던 쌍둥이 형제는 2부에서 국경선에서 헤어진 클라우스가 루카스가 만들어낸 허구일 거라는 대목에서 처음으로 그 존재가 부정되는데요. 3부에서 진짜 클라우스가 등장하면서 2부의 인식을 다시 뒤집어놓고 맙니다. 부정의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학창시절 배웠던 것이 문득 떠오릅니다. 그렇게까지 거듭 부정하면서까지 그들이 간절히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평생을 그리워하고 찾았던 존재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 드디어 완전체가 될 수 있음에도 단호하게 부정하고 외면하는 클라우스의 행동이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니 정말 안타깝지만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존재하지 않는 루카스로 인해 오랫동안, 그것도 사랑하는 이에게 줄곧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했다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 거짓말이고 형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나는 침대에 누워서 잠들기 전에 머릿속으로 루카스에게 말했다.……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궁금하다는 것, 그는 운이 좋다는 것, 그리고 내가 그의 처지가 되고 싶다는 것을, 나는 그가 더 좋은 처지에 있고, 나는 너무 무거운 짐을 혼자 짊어지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나는 인생은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무의미하고, 착오이고, 무한한 고통이며, 비-신(非-神)의 악의가 만들어낸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발명품이라고 그에게 말했다. - 5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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