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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인문학을 먹고 산다 | 기본 카테고리 2021-11-30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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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AI는 인문학을 먹고 산다

한지우 저
미디어숲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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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와 르네상스...

페스트가 유럽을 휘쓸어 거의 30%의 사람이 죽은 이후 세상은 많이 변했단다. 페스트가 물러간 이후의 세상을 우리는 르네상스의 시대라고 부른다.

페스트로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은 삶의 허무함을 느끼고 그동안 철옹성처럼 믿었던 신 중심의 세계관을 벗어나 사람 중심의 가치관으로 전환하게 됩니다.

신에서 인간 중심으로의 사고방식의 변화는 개개인의 자의식을 높이는 계기가 됩니다.

p37, 위기를 기회로, 르네상스를 맞이하라

살고자 바둥거리는 이웃이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 산다는 것의 덧없음과 허무함을 느끼게 될까? 그럴까? 내 경우에는 많이 아쉽고 마음이 아팠지만 왜 살아야하는가, 이렇게 살아서 뭐하지 하는 생각을 가졌던 기억은 없는 것 같다.

불가항력적인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지금의 시간을 만끽하고 현재를 중시하는 생활이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 삶은 나 혼자만의 것일 수있지만 (결국 혼자서 왔다가 혼자서 간다고 하니 말이다.) 생각보다는 많은 부분에서 내 삶은 부모와 형제, 배우자, 자녀, 친척, 친구 그리고 여러 이웃과 연관지어 있다고 본다. 죽음을 맞이한 그 순간, 그는 아무것도 아니다. 완전한 무無로 돌아간 것이니 어떤 의미도 없다. 결국 죽음에 대한 슬픔과 아쉬움 등에 관한 감정은 온전히 남은 자, 남겨진 자의 몫이다. 어쩌면 르네상스란 삶의 허무함을 느낀 것에서 시작되었다기 보다는 신에 대한 실망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인류의 개선은 그동안 점진적으로 이루어져 왔지만 나쁜 소식은 갑작스레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경향이 있어 사람들이 사회의 진보보다 위험성을 실제보다 크게 느낀다" (매트 리들리)

"인간과 그를 둘러싼 세상에서 완벽해지기보다 뒤틀린 목재처럼 부족하지만 점차 나아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스티븐 핑커)

"현대 사회는 낙관론자들의 주장처럼 지나치게 과학 지상주의와 통제 만능주의에 빠져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불안정한 존재이기에 어설픈 낙관론의 '파괴성'을 인식해야 한다 (알랭 드 보통)

"과거에 비해 현재가 좋아졌기 때문에 미래에도 더 나아진다고 믿는 것은 사고의 오류다. 더불어 인류가 진보한다는 생각은 아주 '유용한 허구'다 (말콤 글래드웰)

미래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어떤 사람들은 미래 모습은 지금보다 나아진 과학 기술의 혜택을 누리며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들은 바로 그 과학 기술이 인류를 멸망하게 하거나 과학 기술의 노예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미래는 정말 어떻게 될까? '터미네이터'의 바로 그 미래일까 아니면 '엘리시움'속의 그 엘리시움일까? 터미네이터의 세상은 이쪽 저쪽 모두 인간에겐 안좋다고 해야겠다. 엘리시움의 이쪽은 꿈에 그린 세상이지만 저쪽은 버려진 지구 그 자체다. 양쪽 모두가 다 좋은 영화를 찾기란 힘들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면 미래는 암울하다는 쪽에 손을 드는 사람이 좀더 많을까?

언젠가 책을 읽다가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모두 대체하는 미래를 생각해봤었다. 로봇이 평범한 인간들의 일을 모두 대신하고 그 평범한 사람들은 일을 빼앗기는 세상... 달리 생각해보면 여튼 생산해야하는 모든 것들은 로봇이 만들어내고 있으니 인간은 소비하면 되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사는 것은 사는 게 아냐!!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와중에서도 로봇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 더많은 부를 누리면서 살겠지만 그저 평범한 우리는 그냥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무슨 돈으로 소비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이어지겠지... 그래서 개인적으로 기본소득이라는 것에 찬성하는 편... ㅡ.ㅡ) 여하튼 생生을 살아간다는 기본적인 무언가는 하고 있는 것이니... 아무래도 나 역시 미래는 좀 암울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ㅠㅠ

인공지능 시대에 대체 불가능해지는 방법은 자신만의 고유한 잠재력을 발굴하고 자신만의 사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이고 품격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p230, 에필로그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논쟁적인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무언가 중에서 인문학이 한자리를 차지한다라는 것일게다.

인공지능AI에게 함몰되지 않고 인간으로서 존재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개인과 집단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기존의 성공을 모방만 할 것이 아니라 인간만이 가진 특성으로 우리만의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무엇이 당신을 인간으로 만듭니까?", "인간이란 무엇입니까?" 라는 좀더 근본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하게되고, 이러한 질문에 대한 심사숙고는 필연적으로 인문학적인 사고와 고찰로 이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인문학에 좀더 몰입하고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전히 비즈니스와 인문학의 시너지는 어디서 시작되는 것인지 모호하다. 현실감이 없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막연하다고 해야할까? 마치 무언가의 결과를 가지고 인문학에 어딘가와 짜맞추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졌다. 아니면 내겐 스토리텔링이니 뭐니 하는 그 무언가에 대한 것들이 너무나 먼 당신인지도 모르겠다.

인공지능 시대에 승자가 되는 방법이 여기에 있다고 알려주는 데 그것을 주워먹지 못하는 나는 저자가 볼 때 참 한심하다할 지도 모르겠다. 왜 그런 생각이 밀려오는 것인지...ㅠㅠ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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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즘의 오징어게임 | 기본 카테고리 2021-11-2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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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마키아벨리즘의 오징어게임

빅토 비안코 저/김진욱 역
국일미디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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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하다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읽은 사람은 많겠지만 그 중의 한 명은 내가 아니라는 사실... ㅎㅎㅎ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정말 '목적이 정당하면 수단이 정당화된다'고 말한 것일까? 뭐 그런 의문이 스물스물 올라오게 하는 책... 정말? 정말?

책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뭐 이런 것이 아닐까?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수단을 가리지말고 살아남아라...

이렇게 생각해도 될까?

지금까지의 위선적이고 체면 치레적이며 가면을 쓰고 행동하던 것들을 솔직하고 현실적으로 실천하라고...

빅토 비안코는 "지금과 같은 악惡한 시대에서는 독毒을 가지고 살아야 독毒을 다스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악惡할 수 있어?"라고 반응하며 자신을 포장하지만 깊이 들여다 보면 빅토 비안코가 전하는 메시지는 의외로 우리 자신 속에 잠자고 있는 우리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p5, 프롤로그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오른 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을 때려라'

예수가 '오른 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도 내어주라'고 하는 것은 당시 로마에게 억압받던 유대인들의 현실에서는 비폭력 순종 주의가 살아남는 방식이니 그리 말한 것일뿐... 그 결과가 억압하고 착취하던 로마는 결국 제국이 몰락했지만 서양 문화의 바탕이 되고, 현재도 이탈리아라는 나라로 남아 승승장구 하고 있으며, 유대인들은 그 긴 시간 국토도 갖지 못하고 떠돌다가 이제야 간신히 국가의 형태를 지니게 된 것 아니냐며... 결국 싸우고 투쟁해서 로마를 몰아내고 승리하여 살아남았어야 하는 것이 맞다고 말이다.

또 이렇게 주장한다.

'간음하지 말라'

석가모니가 보리수 나무 아래서 수행하는 동안 나체의 미녀가 유혹했던 것을 간신히 물리쳤던 것을 기억하고, 나중엔 아예 결혼도 하지말고 여자를 멀리하라는 식의 극단적인 방식을 도입했던 것과 중세 기독교의 마녀 사냥도 온전히 신에게만 몰입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것을 우려하고 염려하여 마녀 사냥을 통해 여자를 멀리하고 독신으로 살라고 하는 것은 인간, 그 중에서도 남성의 동물적 본능을 거스르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라고...

영웅은 호색한이었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며, 강한 힘을 가진 남자는 권력과 재력에 더하여 여성 편력까지 누리려고 하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우월성을 과시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말한다. 일부일처제는 억압의 결과물이고, 힘의 논리가 우월한 시대와는 맞지 않는다고...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말처럼...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경쟁자를 무찔러야 하며, 그래서 내가 승리자로 우뚝 서야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수단 중에는 가장 좋은 것이 경쟁자의 약점-특히 여자와 관련된, 정보원에게 돈을 주고서라도 아니 나아가 내가 성접대를 해서 만들어내서라도-을 틀어쥐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면 나쁜가? 나쁘지...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렇게 표현하는 것과 손자가 말하는 '미인계'는 뭐가 다른가 하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미인계는 36가지 계책 중에 하나이고 성접대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말이다.

뭘까???

소피스트들의 능수능란한 언변에 대해 논리적으로 파고 들기가 힘들었던 사례들을 보면서 저자의 이런 주장에 막상 반박이 쉽지 않은 것은...

그저 도덕적으로 인간적으로 나쁘다... 그건 아니다... 그렇게 말하면 될까?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성공하고 승리해야 한다면 나는 성공도 승리도 하지 않겠다... 이렇게 말하면 될까?

극단적이다. 너무 성공과 승리에만 치우쳐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는 것은 아니다 싶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성공하고 승리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은 반반이다. 그게 현실이고 사실이지 않을까...

 

세계는 에너지 자원과 식량 자원의 부족이라는 혼란 속으로 돌입할 것이다. 그리하여 봉착하게 되는 것은 배분의 문제다. 어느 나라가, 어느 곳이, 혹은 어느 개인이 보다 크고 많은 배분을 받게 되는가 하는 것에 대한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P217,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힘을 키워야 한다'

저자는 말한다. 지구 상에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기아에 힘들어한다. 말그대로 굶어죽고 있다. 인류가 생산하는 식량의 총량은 고르게 분배만 된다면 모든 사람들이 먹고 사는 데 문제가 없기는 할까? 세 번의 식사를 두 번으로 줄이고, 식사량을 반으로 줄이면 해결될까? 저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줄이고 줄여서 박애주의를 부르짖으며 살아가는 사회가 아니라 나에대한 분배량을 늘리고 늘리려는 사회가 현실 사회라고 말이다.

요는 저자는 이상과 현실은 다르고, 현실은 그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세상이며, 힘을 가진 자가 독식하는 그런 세상이니 그런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이렇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가난보다 평등하지 못한 것을 걱정"하며 살아야 할까? 내가 지금 오늘 저녁 먹거리를 걱정하고 있는데?

번역자는 이렇게 말한다. "빅토 비안코가 제시하는 처세론을 자칫 '악으로의 권유'로 잘못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이 책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한, 이른바 소화불량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라고... 이 책에 구석구석에 제시되어있는 주장을 역설적이며, 반어적 표현을 받아들여 이해하는 것이 저자의 의도일까?

저자는 왜 보다 긍정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말하는 대신 이독치독以毒治毒의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어쩌면 저자도 딱맞는 적절한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닐까 싶다.

성공 (사실 성공이라는 말의 기준은 사람들마다 다르겠다. 누구는 대통령이 되어야 성공했다고 하고, 누구는 그저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으로도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으니...)하기 위해 언제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해야 하는 지 과연 누가알까 싶다는 것이다. 성공이라는 것은 99%의 노력과 1%의 운일까 재능일까 뭘까?

저자의 주장에 공감은 별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곱씹어볼 수록 그렇게 까지 하지 않기 위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하는 질문이 남는다. 그 대답을 그 해법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또 뭘까 싶다.

게다가 난 그 찾은 해법을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는 있기는 한걸까?

왠지 그런 생각과 그에 따르는 반성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그런데... 제목에는 왜 오징어게임이라고 덧붙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의 관심을 끈 드라마의 한 부분들을 여기저기에 뒤늦게 덧붙인 것처럼 표현해놓았다 싶다. 이것도 책의 성공을 위한 저자의 방법이었을까? 저자의 주장을 비추어보면 딱 맞는 방법이긴 하지만 왠지 씁쓸해지는 것은 또 뭘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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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정신분석치료를 받고서 다시 태어나다 | 기본 카테고리 2021-11-19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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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니체!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서 다시 태어나다

윤정 저
북보자기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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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니체가 정신분석 치료를 받다니...

왜 그랬을까???

책은 니체가 정신과 치료를 받는 과정을 들려주고 있다.

한 챕터 한 챕터를 시작할 때만다 저자의 시詩인 듯 한 글로 운을 띄고는 니체와 정신과의사 (저자임에 틀림없다... ^^)와의 치료 과정 중의 대화가 이어지고, 이 대화를 통해 정신과의사의 분석 (전이 현상, 역전이 현상, 분석 공감)이 이어진다.

여러 날에 걸친 (10차에 걸쳐 자유 연상이라고 명명된 치료 과정을 담고 있다) 치료 과정을 통해 니체에 들려주는 자신의 경험과 성장 과정을 알 수 있고, 그 이야기에 대한 정신과 분석 결과를 알게된다. 이런 구성이다.

전이 현상 : 어릴 때 형성된 자아의 패턴이 다른 대상을 만날 때마다 반복하는 심리적 현상

역전이 현상 : 전이 현상 속에서 자신의 오류를 새롭게 해석하며 살아가는 삶의 다른 모습

p30~31, 주석 중에서

첫째 날 치료 후 의사는 니체에게서 청교도적 도덕성과 자신의 학습 성과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이러한 것에 억압받았던 무의식적 환경을 보여준다며 전이 현상을 분석한다.

어린 시절의 경험과 기억이 어른으로 성장한 이후에도 불현듯 나타나곤 한다고 하던데... 니체의 사상 중 어딘가에 이런 전이 현상이 역전이 현상으로 보여지게 될 지 그리고 어떤 계기로 드러나게 될 지 자못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지난 번에 읽었던 저자의 '자아는 바이러스다'에서도 느꼈듯 정신 분석학에 대한 밑바탕이 전무한 나로서는 이해의 정도가 스스로에게도 탐탁치않다. 읽어가면서 조금 나아지려나???

죽음의 현장 속에서 살다

전선으로 가게 되었고, 가는 도중 프랑크푸르트에서 대대 기병의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심한 공포와 전율을 느꼈지요. 그때, 그 자리에서 저도 모르게 살려달라는 말이 튀어나왔죠. 생존경쟁 속의 미약한 표현이 아니라 싸우려는 의지, 압도하려는 의지, 권력에의 의지로써 표현되는 음성이었다고 생각됩니다.

p84, 다섯번째 자유연상에서 니체의 진술

니체는 보불전쟁 (1870~1871년, 프로이센과 프랑스의 전쟁)이 발발하자 조국의 부름에 거부할 수 없는 감정으로 입대하여, 간호병 생활을 하면서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다. "전쟁과 국가라는 구조주의 상황 속에서, 죽음의 고통을 이겨내려는 초월적 의지를 드러내는 새로움"은 의사가 발견하는 역전이 현상의 원인이다. 처음으로 발견되는 역전이 현상 관련 사항이라고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니체의 어린 시절, 자신의 학습 내용에 대한 자부심으로 손바닥 위에 성냥을 올려놓고 불을 붙여서 그것이 다 타도록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었다는 진술을 이전 자유연상을 통해 들었다. 그런 것이 싸우려는 의지이지 압도하려는 의지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실재로 실행된 무언가를 통해 이미 역전이 현상은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을까? '생존경쟁'이라고 하기에는 이런 어린 시절의 경험은 너무 미미한 것일까?

'비극의 탄생'은 비극을 탄생시킨다

아폴론적인 예술 속에서 미의 원리가 구체화된다면,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자신으로부터 어떠한 아름다운 형태를 창조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오히려 거칠고 억제될 수 없는 충동이며, 창조의 동력이죠. 이러한 비극적 신화는 디오니소스의 체험과 아폴론적 형식으로 구체화되는 것이죠. 모든 비극은 결국 아름다운 비극을 말살하면서 스스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지요.

p106, 여섯번째 자유연상에서 니체의 진술 중

아름답고 이상적이며 희극적인 면이 '아폴론적'이라고 하면, 자신의 존재가 상실로 무너져 내려 더 깊은 내면에서 발견될 수 있는 것이 '디오니소스적'이라고 니체는 말한다. '소크라테스'에 의해 어두워지고 천박해진 유럽 문화는 자신으로부터 어떤 아름다운 형태를 창조하지 않는 비합리적, 비논리적 바탕이라는 '디오니소스적'으로 회생되어야 한다고 자신의 철학의 일부를 정리한다.

분석가는 이러한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라는 모순적 대비를 통해 비극을 내포하면서도 균형과 조화의 역동적 미학을 만들어내는 역전이 현상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내가 기대했던 어떤 계기이자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니체에게 그리고 분석자에게 실망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이 책을 읽고 있는 내게 실망할 밖에... 무언가 니체의 꼬투리를 잡아간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철학을 공부하고 정신분석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경의를...

그런데 말꼬투리를 좀 잡아보면... '디오니소스적'이라는 것은 자신에게서 어떤 아름다운 형태도 창조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는데... 비극이라는 그 자체는 스스로 아름다운 비극으로 등장한다고 하면 비극은 '디오니소스적'은 아닌걸까? 그렇다면... '아폴론적'으로 등장한 이 비극은 어디서 창조되어 나오는 것일까?

새 하늘과 새 땅에 머물다

이제 자유연상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설명하는 대목으로 이어진다. 초인 사상과 영겁회귀 사상을 기술한 이 책은 어쩌면 니체의 모든 것을 담아놓은 것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 읽어봤지만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려서 이해하는 부분이 거의 없었던 같다. 다시 한번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여하튼 니체는 초인 차라투스트라를 통해 과거의 표현과 생각을 전이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 속에 모든 것이 응집되어 새로이 태어난 상상적 의미의 환상을 지닌 주체로 전이되어 머물러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새로운 행동으로전이되어 보편적 시각에서는 이상행동으로 드러낼, 순수한 몸짓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

이상행동으로 드러낼 순수한 몸짓...

문자란 참으로... 흠... 미친 자의 광란을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 마부에게 채찍질을 당하는 말을 부둥켜안으며 울부짓는 그 행동을 말하는 것일까? 그 전조를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통해 발견하고 있는 의사는 그 실마리를 어디서 찾은 것일까? 되풀이해서 읽어봐도 잘모르겠다. 뭘까??

정신분석자의 결론은...

마지막 챕터는 니체에 대한 정신분석 결과를 알려주는 내용으로 씌여져있다.

니체가 어릴적 꾸었던 꿈을 통해 가족의 청교도적 도덕관과 가치관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하고, 과대 망상과 광기어린 행동으로 보이는 아무하고나의 포옹과 키스, 채찍질당하는 말에의 동정과 같은 것들은 박애 정신의 한 표현이라고 분석한다.

매 차례의 자유연상 시간을 마치기 전 니체는 정신분석학에서의 '자아와 주체'에 대한 질문을 분석가에게 한다. 대상이 있어야 존재하는 자아와 형체가 없는 주체의 사이에서 고뇌하고 사유하던 니체... 그런 니체를 분석가는 "신은 죽었다"라는 선언이 막연한 초월적 신을 맹목적으로 믿으면서 의존 했던 신이 사라졌다는 의미이며, 전통적인 가치와 규범을 요구했던 신의 힘은 상실됐다는 선언이며, 스스로 주체가 되어 허무주의를 파괴한 자의 고백이며, 참회의 모습으로 분석될 수 있다고 결론짓는다. 탈문자의 몸짓이고, 숭고한 삶의 절정을 표현하는 그런 행동이었다며...

이렇게 정리해도 될까싶다. 여기까지가 내 이해의 한계다... ㅠㅠ

두번째 접하는 윤정 작가의 책은 한마디로 어렵다.

짧은 정신분석학에 대한 지식으로는 접근하기 힘들다는 느낌이다. 과연 얼마나 사유하고 사색해야 다가갈 수 있는 범주인지 내내 그것이 궁금하다.

한참동안 디오니소스의 십자가를 되뇌일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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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프리퀀시 | 기본 카테고리 2021-11-15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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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고스트 프리퀀시

신종원 저
자음과모음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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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없이 세계를 창조하는 이가 신이라면 규칙 속에서 세계를 구성하는 이가 작가이니, 이 책에 실린 모든 소설은 글쓰기에 대한 알레고리라 해도 틀리지 않고, 우리의 세계에 대한 이본異本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 절대적인 세계, 공짜가 없는 세계, 무릅써야 하는 세계, 앞면이 뒷면인 세계. 바로 이 세계가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굉음을 내며 함몰하는 우리의 세계이자 작가 신종원의 엄결한 주술적 유물론의 세계다.

p156~157, 해설 (이소, 문학평론가)

책을 읽었다. 그런데 읽었다기 보다는 문자를 봤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은 왜일까? 이소 평론가가 들려주는 해설에서도 표현하듯 "난해하다"와 "열렬한 팬이에요"의 평가 중 난 전자에 속하는 것 같다. 아니 확실하다.

책은 앞의 표지와 목차빼고 해설을 빼고 나면 140페이지가 채되지 않는 두께다. 이 두께의 책 속에 세 편의 단편 소설이 꽉 차있다. 작가가 구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하기보다 어떤 메시지든 만들어 낼 수 있는 자신의 매체, 미디엄medium으로서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는 말이다. 메시지를 전달받는 것보다 그 매체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 줄 미처 몰랐다는 느낌...

마그눔 오푸스

무슨 말인가 해서 네박사에게 물어본다.

마그눔 오푸스(라틴어: Magnum opus)는 중세 유럽의 연금술에서 유래한 낱말로 납과 같은 비금속(卑金屬 · base metal)을 금으로 변형하거나 철학자의 돌을 만드는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것 또는 그 일 자체를 의미한다. 마그눔 오푸스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영어로 "Great Work"인데, 한글 번역으로는 "위대한 일 · 위대한 학문 · 위대한 공부 · 큰 일 · 큰 학문 · 큰 공부" 등의 의미가 된다.

마그눔 오푸스, 즉, 위대한 일(Great Work)이라는 낱말은 서양의 밀교 전통 중 하나인 헤르메스주의 전통에서 영적 변형을 완성하는 것에 대한 은유로써 사용되었다. 이러한 은유 자체는 마치 불교, 특히 선종(禪宗)에서 깨달음을 성취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에 도달하는 것을 "장부일대사(丈夫一大事)를 마쳤다"라고 은유하는 것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위키백과

할머니가 며느리를 대신해서 태몽을 꾼다. 잉어를 잡았다. 그런데 거북이가 자꾸 돌려달라고 한다. 그냥 무시한다. 손자가 태어났다. 할머니는 자꾸 꿈을 꾼다. 아니 시달린다. 돌려달란다. 끝까지 거부한다.

아이를 키우는 것, 그것은 정말 연금술이 아닐까? 그 아이가 사회 경제 정치적으로 성공을 한 사람이 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인간이 되었다는 것은 그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부모에게도 살아간다는 것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마그눔 오푸스...

아나톨리아의 눈

어떤 주사위 게임이 있다. 규칙에 맞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두 개의 주사위에 나온 숫자만큼 말판을 놓아가는... 소설 속에서는 그 숫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쇼팽부터 티베트 고원의 여행자까지의 이야기...

주사위의 숫자를 따라가다 지금의 소아시아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말판을 멈춘다.

그런데 왜 아나톨리아일까? 이 지명에 집착하는 것은 저자의 메시지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 궁금하다.

고스트 프리퀀시


 

영화 식스 센스를 떠올려본다. 가까이는 내가 가장 좋아라하는 '쓸쓸하고 찬란하神 도깨비'를 생각해본다. 주인공은 죽은자를 본다. 그리고 대화를 하고 죽은 자와 교감하기도 한다.

고스트 프리퀀시... 영혼 주파수... (프리퀀시라는 단어에는 빈발, 빈도라는 뜻도 있지만 내 생각에는 이게 가장 그럴듯한 것 같다...) 영혼, 죽은자가 살아있는 자와 소통하기 위한 방법...

그 방법을 통해 죽은자는 소설가를 통해 무언가를 말하려한다. 그런데 그 죽은자는 누가 불러낸 것일까? 어떻게 소설가랑 조우하게 되었을까?

잘모르겠지만 이것이 작가가 이야기하는 주술적 유물론의 한 표현일까?

세 편의 단편 중에서 그나마 조금 이해했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마그눔 오푸스 정도...

"히알루론산과 콘드로이틴황산염으로 합성된 젤라틴 재질의 끈 모양 조직체"로 연결되어야 작가의 세계를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대역인지도 모를 주파수에 공명을 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것일까?

작가의 책은 은근히 나를 도발하는 것같다. 이대로 책을 덮어도 되는 것인지 물어보는 것 같다.

내 대답은...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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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에너지 | 기본 카테고리 2021-11-12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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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한국인 에너지

홍대순 저
쌤앤파커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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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어떻게 표현할까?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대충 이렇다.

"화끈하다, 정이 많다, 부지런하다, 잘 논다, 극성스럽다, 지고 못 산다, 의리있다, 한이 많다, 오지랖이 넓다, 남의 눈치를 본다 등등" (p17) 덧붙이면 "빨리 빨리"도 있지 않을까? 여튼 요즘 (설마 우리에게만 들리는 것은 아니겠지만...) BTS, 오징어 게임, K-pop 등등 우리 한국인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의 원동력이자 에너지는 무엇일까? 저자는 이러한 에너지가 어디서 왔는 지, 저력은 과연 무엇인지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리고, 저자가 정의한 저력과 원천은 이것이다.

50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유산, 철학과 정신

p18, '시작하며' 중

저자의 이야기를 좀더 들어보기로 하자...

한국인의 에너지는 무엇인가?

세계화 4.0은 '사람 중심의 세계화'로 전 세계가 물질자본주의, 자국우선 경향, 사회 양극화 등으로 국제사회 협력과 세계화의 도덕적 재무장이 요구되는 시기다.

'정情'을 비롯하여 타인에 대한 배려와 양보, 나눔 같은 '이타심'은 우리의 오래된 전통이자 가슴속에 살아있는 본성이다. 이것은 지금 지구촌의 공존과 번영을 위해 가장 필요한 시대 정신이기도 하다.

p53, '한국인의 에너지는 무엇인가' 편

신명과 신기神氣, 정情, 자유분방함, 쇠젓가락, 뚝배기와 냄비

한국인 에너지의 원천을 이야기하며 꺼내어든 화두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소제목을 조금 변형했다...)

88서울 올림픽 때도 경험하지 못한 대규모 응원... 어쩌면 2002월드컵은 우리 한국인을 세계에 각인시킨 그 무엇 중 손꼽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바탕에 어쩌면 흥에 못이겨 신명나게 놀다가 난장을 펼쳐놓은 것이 바로 그것인지도 모른다.

역사서에도 동이의 흰 옷입은 사람들은 흥에 겨워 춤추며 논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하니 자못 진중함을 가져보려 해도 결국 잘 못하는 것이 우리가 아닐까?

그런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까치밥을 남기고, 정情을 나누기도 하면서, 쇠젓가락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우뇌의 창조적 활동력을 가지고 가끔은 냄비와 같이 급하기도 하지만 뚝배기같이 은근하게 오래 오래 온기를 지니고 있다는 이것에서 우리의 에너지가 나온다고 저자는 들려준다.

얼과 혼을 잃어버린 한국인

문화사대주의, 왜독倭毒

어쩌면 우리는 가끔 아무 생각없이 우리나라가 미국과 중국, 유럽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하고, 후진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물론 상대적으로 나은 점이 있기도 하지만 우리의 것도 결코 무시의 대상이 되거나 꺼려야 하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흔히 들어보았음직한 발렌타인데이, 할로윈데이에 대응하는 칠월칠석에 대한... 발레에 대한 살풀이춤... 등의 사례를 일일이 들지 않아도 조금은 우리의 것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어보인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강요한다는 것도 말이 안되지 싶다. 강요의 결과는 하시라도 반감으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기에 조심스럽다.

어떻게해야 할까? 우리의 문화인 한복, 한식, 국악... 뭐 이런 것들이 우리의 생활에서 어색하지 않고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으면서도 일상적으로 입고 보고 듣고 먹고 놀고 하게 될 수 있을까 말이다...

사랑하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유일한 박사, 문화지킴이 전형필 선생, 4대에 걸친 애국 헌신으로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이남규 선생과 후예, 독립을 위해 헌신한 여러 지사와 열사, 의사들... 한국을 사랑한 여러 이방인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행동하게 했을까? 그 저변에 한국인의 정과 홍익인간에 기반을 둔 함께 살아가자는 마음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딱 잘라 어떤 것이 이유이자 원동력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어느 누구도 쉽게 정의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큰 마음 한구석에 반드시 정情은 꼭 있을 것 같다. 그저 그럴 것 같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한국 속의 세계, 세계 속의 한국

쿠쉬나메, 고구려 개마무사, 해외 속의 한국인

고선지 장군과 장보고... 저 옛날부터 우리의 이름을 널리 알린 빛나는 영웅들이 있었다. 지금도 여러 분야 다양한 지역에서 그들의 노력과 수고가 한국인임을 한국이라는 나라를 빛내고 있을 것이다.

반대로 저자의 지적은 조금 뼈아프다고 생각한다.

미국 연방의원이 되고, 어느 나라의 장관이 되고, 세계 은행의 총재가 되고...하면 각종 미디어에서 자랑스런 한국인으로 떠오른다. 그런 뉴스를 들으면 저자는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외국인이 성공하는 것을 찾아보기 힘들어서 저들이 과연 선진국이구나 하고 생각이 든단다. 우리끼리는 거시기라고 말해도 알아들을 수 있는 그런 마음을 열어놓고 대하는 사이이지만 외국인들에게는 너무 닫혀있지 않은가 싶다. 다문화 가정... 그런 가정에 대한 각종 우대를 베풀기 전에 다문화 가정이라고 구별짓는 것부터 없애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난 좀 편협한가보다. 외국인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 신경안쓰겠다 하면서도 멈칫거리는 것을 보면 말이다. ㅠㅠ

문화 유산, 새로운 국부 창출의 보고

기업경영에 문화유산을 입히면 제품은 명품으로 거듭나고, 해당 산업경제만 성자하는 게 아니라 연관된 관광, 놀이 등 서비스 산업에도 파급효과를 준다. 마치 해가 떠올라 온 세상을 환히 비추듯, 이러한 접근은 새로운 경제적, 사회적 가치 창출의 플랫폼이 된다.

p194, '문화유산, 새로운 국부창출의 보고' 편

고인돌과 갤럭시, 혼일강리도와 디지털 대항해 시대, 직지부터 반도체까지

처음 위와 같은 조합이 별로 다가오지 않았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일까?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 여기가 아닌가 싶다.

우리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현재의 기술과 산업에 접목해서 새로운 시각으로 발전 방향을 제시한다는 것은 정말 저자의 내공이 깊고, 연구 성과가 많구나 싶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고인돌에서 알 수 있는 조상의 천문학적 지식과 갤럭시라는 스마트폰 상품명을 묶어 스토리텔링을 이루고, 반구대 암각화에서 볼 수 있는 고래와의 인연을 바탕으로 한 관광 산업의 활성화라던지 하는 제안은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팍스 코리아나를 향해

홍익인간弘益人間은 '널리 인간과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뜻으로 이타심, 공동체 의식, 상생과 공존, 조화와 평화의 개념이 포함된다. 우리 선현들은 자본주의, 물질주의가 만연한 21세기가 아니라 이미 5,000년 전에 이러한 철학을 완성했다.

pp249, '팍스코리아나를 향해' 편

팍스 코리아나... 저자는 미리 전제를 깐다. 자신이 이야기하는 팍스 코리아나의 '팍스'는 과거 식민제국의 침탈과 착취, 식민지 통치, 군사력 지배 등 제국의 의미가 전혀 아니라고...

팍스 로마나... 전형적으로 이긴자의 입장에서 자기맘에 들도록 해석하고 평가한 결과물이라 나는 생각한다. 일제가 대동아를 소리치는 것과 팍스 로마나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여하튼 저자의 팍스 코리아나는 무엇일까 살펴보자...

고구려 기마무사의 기상을 발휘하여 시장 개방, 기업 친화적 환경 조성, 노동 문제 해결을 통해 GDP 10만달러 달성...

동방예의지국, 군자의 나라로 불린 한국인의 심성을 되찾아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살아난 풍요로운 사회적 자본의 구축...

숙제하지 않고 출제하는, 앞서서 창조적으로 선도하는 나라로의 도약...

IMF 시절의 금모으기 운동, 태안 원유 유출 때의 자발적 청소 참여 등 한국인의 정情, 의리 문화의 확산...

홍익인간 정신을 바탕으로 한 인류애의 구현...

더불어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넘치는 대한인大韓人으로 살아가자고 저자는 목소리를 높인다.

우와~~ 한마디로 환상적이다.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이 이런 모습아닐까?

너무 낙관적이고 낭만적이며 허황되다고 뭐라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그런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기대감과 꿈,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왠지 뿌듯해지고 가슴 먹먹해지지 않는가?

일전에 읽은 '라이프 트렌드 2022'에서 이런 표현이 있었다. 작은 행동small action이 모여서 큰 행동, 큰 변화가 되는 것이다 라고... 오늘 내가 생활한복을 입고, 국악방송을 들으며, 스파게티보다는 막국수를 먹는 것들이 팍스 코리아나를 이루는 데 얼마나 보탬이 될까 싶지만 주변에 더 많은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하면서 우리 문화를 보듬는다면 언젠가 그런 세상이 오지 않을까?

그 세상이 오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오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래본다.

아직까지도 읽어보지 않은 우리 고전 읽기를 시작해봐야겠다. 그것이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바래보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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