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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인문학 우리가 사랑한 저자 4편 : 김동춘 | 다시 인문학 우리가 사랑한 저자 2022-06-2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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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최근에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대선 이후 우울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난 수십년 동안 힘써 조심스럽게 구축해온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것을 보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입니다. 사실 이런 결과를 초래하게 만든 민주당과 문재인정부에 대한 실망이 더 큽니다. 한달 이상 뉴스를 보지 않았고, 지금도 TV 뉴스는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조금 정신을 차렸고, 뭐라도 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학생 청년 공부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청년들이 각종 혐오담론에 휩쓸리지 않고 제대로 우리 사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할 생각입니다.

 

『전쟁과 사회』가 제가 대학생 시절인 15년 전에 필독서였습니다. 여러 나라에 번역되어 좋은 평가를 받았고요. 그리고 최근에는 『시험능력주의』를 내셨는데요. (각각 책에 관해 이야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전쟁과 사회』가 나온 지 22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팔리고 있고, 읽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쟁과 사회』는 특별히 새로운 자료를 동원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사회의 통념과 금기를 깨는 역할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그 후에 제가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운동과 진실ㆍ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활동하는 등 애초에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그 책과 관련된 활동이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지금은 한국전쟁이나 과거사 문제와 약간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만 사실 제 연구 활동에 대해서는 국내보다는 외국에서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외국 연구자들도 계속 연락하거나 찾아오고 있고 외국 언론 인터뷰도 많이 했습니다.

 

『시험능력주의』는 만약 제가 과거사 운동에 관여하지 않았다면 10년 전에 나왔어야 할 책입니다.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을 그만두고 학교로 복직했을 때 이명박정부의 새로운 국가폭력 사건들이 터지는 바람에 이 사건들의 성격이 과거의 국가폭력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3권의 책을 더 썼습니다(『대한민국 잔혹사』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 『전쟁정치』). 그러다 보니 또 10년이 흘러버렸습니다. 『전쟁과 사회』를 쓰기 이전에도 교육과 불평등, 노동문제는 원래 제 연구 관심주제였는데, 과거사 관련 작업에 연루되느라 단지 늦어졌을 따름입니다. 한국의 교육문제와 노동문제를 연결해서 봐야 한다는 30년 전의 문제의식이 이번에 『시험능력주의』라는 책으로 나온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전쟁과 사회』를 집필하신 선생님께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한국전쟁과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처음에는 일방적인 침략에서 시작했고, 다음 단계에는 우크라이나 방어가 NATO와 미국의 대리전이 되어 국제전이 되었고, 지금은 장기전, 전쟁범죄 등이 부각되는 국면입니다. 무엇보다도 우크라이나는 한반도와 유사한 지정학적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 특정 외세에 의존하려는 내부의 정치세력들의 각축이 심각했습니다. 특히 친러세력이 물러가고 친서방세력이 집권하면서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점령하고 이번의 침략이 감행된 것입니다. 침략한 러시아에게 전쟁 책임을 물어야 하나, 그렇다고 해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잘못된 대처가 다 용인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국면은 과거 북한의 6?25 침략과 이승만의 처신을 연상하게 합니다. 북한에게 전쟁도발 책임을 묻는다고 해서 이승만의 과도한 미국 의존, 전쟁 초기 대량학살이 용인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의 러-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연시키는 미국의 전략도 한국전쟁 휴전 협정을 2년 지연한 미국의 태도와 매우 유사합니다. 어쨌든 우크라이나 처지는 정말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지금 진행되는 학살, 난민, 이산가족 등의 비극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향후 반세기 이상 지속될 것인데 말입니다.

 

김동춘, 하면 저는 국가폭력이라는 주제가 떠오릅니다. 최근에는 교육에 관해 고민하시는 걸로 압니다. 『전쟁과 사회』를 쓰셨을 때 선생님의 관심사와 현재의 관심사는 어떻게 변해왔을까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전쟁과 사회』 출간 후 제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한국사회의 판도라의 뚜껑이 열렸고, 제가 학살, 국가폭력 관련 각종 논의의 장에 계속 초청되었습니다. 『전쟁과 사회』 2부를 출간한 다음 노동이나 교육 등 사회학적 주제로 이동하려 했었으나 과거사에 발목이 잡힌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전쟁 연구나 학살 진상규명 활동을 계속하는 중에도 한국정치, 교육 등의 사회과학적인 주제의 논문이나 에세이 등은 계속 써왔기 때문에 관심이 이동한 것은 아닙니다. 사회학자로서 제 관심은 언제나 현재에 있습니다. 『전쟁과 사회』 역시 한국전쟁의 역사를 다룬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한국정치나 지배구조를 분석하고 설명하기 위해 과거를 끌어들인 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고찰해오셨습니다. 20세기의 대한민국, 21세기의 대한민국은 선생님이 보시기에 어떤 사회 문제가 중요할까요?

 

분단문제와 남북한 대결보다는 동시대의 지구적 정치경제 질서의 규정력, 미중패권 갈등 속의 한국의 입지가 훨씬 더 중요해졌습니다. 이미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금융자본주의의 압도적 규정을 받고 있습니다. 더구나 기후 위기, 저출생, 고령화 등은 한국사회에 더욱 도전적인 과제입니다. 불평등은 이 시대의 가장 심각한 질병입니다. 경제는 선진화되었으나 사회는 여전히 후진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성장주의의 극복과 삶의 질 제고를 위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2022년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시면서 저술 활동도 활발히 하고 계시잖아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작업일 듯합니다. 선생님의 루틴을 유지하시는 비결, 궁금합니다.

 

저술활동 때문에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등한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25년 교수생활을 했기 때문에 강의 교재를 완전히 뜯어고치거나 강의 방법을 혁신하는 일에는 점점 게을러지는 점도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한겨레』 고정 칼럼 쓰는 일도 매우 신경 쓰이는 일 중의 하나였고, 외부 강연 요청도 많았습니다. 저술과 학교 강의를 병행하는 것은 사실상 쉽지 않고 두개를 모두 잘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논문도 꾸준히 썼기 때문에 저술이 아닌 논문 업적으로도 인문, 혹은 사회학 일반에서 상위 10%에 속한다고 나옵니다. 영어 논문도 10편 이상 썼습니다. 다만 학문적으로 더 탁월한 논문을 쓰지 못한 아쉬움은 있다고 스스로 평가합니다.

 

건강 유지를 위해 거의 매일 운동을 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뉴스 검색을 하거나 글을 씁니다. 신문 기사 스크랩 작업은 30년째 계속하고 있고, 신문, 페이스북 등에서 좋은 학술 발표회가 있으면 연락해서 자료도 계속 받아놓고 있습니다. 틈나는 대로 아이디어 메모를 하고, 그 메모들을 집필에 활용합니다. 3,40대에는 외부 활동에 시간의 1/3 정도를 투여했고, 사람들도 많이 만났으나 지금은 많이 줄였습니다.

 

MZ세대라고 하여, 한창 우리 사회에 MZ세대에 관한 담론이 많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시기도 하잖아요. 선생님께서 대학생이던 시절과 지금 대학생들은 어떤가요.

 

40년의 세월이 지났기 때문에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지금 학생들이 경제적으로는 대체로 유복하나 너무나 미래가 불안하고, 취업에 온 신경이 곤두서 있기 때문에 지적인 호기심이 있어도 그것을 밀고 나갈 여유가 없습니다. 옛날 학생들은 경제적으로는 어려웠으나 취업이 가능했기 때문에 사회참여나 학생운동에 관여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에 가지 않은 청년들은 사회에서 그림자 취급을 당합니다.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생각이 깊고 재능도 뛰어난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수한 청년들이 과도한 경쟁에 치여서 시들어가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청년들을 위한 공부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특히 이대남의 보수화 현상이 너무 우려되어 이들과 만나는 장을 만들어 나갈 작정입니다.

 

책이 알려지고 소비되는 방식이 10년, 20년 전과 비교하면 많이 달라졌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청년 학생들이 책을 사보지 않는 것이 가장 심각한 현상입니다. 너무 가벼운 책 위주로 팔리는 경향이 좀 안타깝습니다. 독자들이 유튜브, SNS등의 매체에 훨씬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라 생각되지만, 꼭 청년의 문제만은 아니고, 한국의 지식층이나 좋은 독자층이 얕다는 생각을 합니다. 교수나 연구자들이 논문형 글쓰기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일반 독자를 상대하는 글쓰기를 점점 어렵게 느끼고, 저술 작업은 연구 업적에 포함되지 않을뿐더러 경제적으로도 거의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출판은 번역서로 도배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좋은 독자, 좋은 필자가 나올 수 없는 조건인 것 같습니다. 인구상으로 한국어 독자 규모가 적기 때문에 영어권처럼 특정 주제를 깊이 파는 대작이 나오기 어렵고, 그런 책을 쓰더라도 팔리지 않기 때문에 연구자들도 의욕을 갖지 못합니다.

 

출판계에서는 최근 몇년간 에세이의 시대, 투자를 향한 관심과 같은 흐름이 있었습니다. 이에 비해 인문학, 사회과학 책은 다소 힘을 못 받는 느낌이었는데요. 사회학자의 시선에서 보신다면 어떻게 분석할 수 있을까요. (인문학, 사회과학의 역할이나 미래 등도 두루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교보문고 등을 가보면 온통 자기계개발서, 경제경영서가 도배를 하고 있어서 절망감을 느낍니다. 제가 미국이나 프랑스에서 서점에 많이 가보았는데 이 정도는 아닙니다. 특히 프랑스는 전문서점이 분화되어 있고, 고서점도 대단히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경제력이 일본과 프랑스의 절반 정도라면, 책을 읽는 층과 필자군은 5분의 1, 아니, 10분의 1 정도인 것 같습니다. TV를 온통 도배하는 먹방, 여행프로 등 원초적 욕망이 한국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영화나 음악이 세계 반열에 오른 것은 분명히 자랑스러운 일이나 지적 기반이 없으면 선진국가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대학교육이 정상화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 국가에서 도서관 예산을 더 많이 지출해야 하고, 대형 출판사나 예스24 같은 온라인 서점이 좋은 필자군 양성을 위해 더 많이 투자해야 합니다.

 

선생님께 영향을 준 사람, 혹은 책을 꼽아주실 수 있나요?

 

학부 시절 함석헌, 리영희, 송건호 선생의 책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특히 송건호 선생의 현대사 관련 논문들과 저작들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김수영과 김지하의 시, 황석영의 단편, 이병주의 『지리산』, 박태순 등의 지식인 소설, 백낙청 선생의 평론 등도 기억이 납니다. 박현채의 경제 평론, 한완상의 책도 뺄 수 없습니다. 숨어서 읽은 마르크스, 돕, 스위지 등의 영어 원서로 읽은 경제학 책들, 루카치 등의 문화이론, 파울로 프레이리, 이오덕 선생의 교육 관련 글들, 역사학자 강만길과 사회학자 이효재의 분단문제 관련 글들, 재일학자 강재언 선생의 한국근대사 관련 책들도 생각납니다. 앙드레 군더 프랑크의 종속이론 관련 영어 원서들도 제3세계의 문제의식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20살 전후에 읽은 것들입니다. 20대 중반 석사과정 이후에는 연구를 위해 서구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저작들, 알튀세르, 그람시, 풀란차스, 월러스틴 등을 읽었고, 이것들이 내 학문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책이 있나요? 없다면, 혹시 쓰고 싶은 책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올 가을에 출간할 계획인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계속 불행한가: 한국의 사회정책과 사회적 재생산』을 마무리 작업 중입니다. 연구기관 지원을 받아서 『한국의 사상통제』 초고도 완성했는데, 아마 내년 중에 출간될 것입니다. 좀 여유가 되면 교수 생활을 마무리하기 위해 정치사회학 관련 이론서도 하나 쓸까 생각 중입니다. 학교 민주시민 교육을 위한 쉬운 교과서도 하나 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마 퇴임 후라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체력도 이전 같지 않아서 쉬엄쉬엄 쓰려합니다.

 

끝으로 예스24 독자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영상매체의 장점도 있으나 책만큼 깊이 그리고 오래 남는 영향을 주기 어렵습니다. 좋은 책을 읽었으면 SNS나 메일 등을 통해 널리 전파해주시길 바랍니다.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의 소감이나 평판에 많이 의존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독서 소감에 영향을 받기 쉽습니다. 독서시장이 살아야 문화 전반이 살 수 있습니다. 도서관 등에 책 구입 요청도 열심히 해주시길 부탁합니다.

 

제 글에 대해 더 관심이 생기시면 제 블로그에 에세이, 칼럼, 논문 들이 있으니 이용하시길 바라고, 혹 사회과학이나 역사에 관심이 있으시면 제 주변 사람들, 학생들과 관심을 공유하는 카페가 있으니 여기를 방문해주셔도 좋습니다. 더 깊은 이론적?학문적인 고민을 나누고 싶은 분들은 이메일로 직접 연락해주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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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dckim@s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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