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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인문학 우리가 사랑한 저자 6편 : 정희진 | 다시 인문학 우리가 사랑한 저자 2022-08-2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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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안목이 공동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작가인 시대’에 먼저 독자가 되자 

 


 

 

최근에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대개 집에서 혼자 지냅니다. 제가 내향적 성격입니다. 외출이나 사람 만나는 일을 좋아하지 않아요. 거의 히키코모리입니다. 지면에 노출되고 (생계로)강의를 하니까 활달할 것 같지만, 성격과 직업이 맞지 않아 고생하는 편입니다. 게다가 제 관심사가 대개 사회적으로 시끄러운 일들이어서요(웃음). 


읽고 쓰는 일이 전부입니다. 여행이나 운동도 할 줄 몰라서 생활이 단순합니다. 사실 저는 잡념이 많아서 꼭 써 놓아야 해요. 출판을 비롯한 공개가 목적은 아니고, 어쨌든 제가 생각한 것은 잊을까 봐 일단 써 둡니다. 


바람직한 생활은 아닌 것 같아요. 집콕이라 건강이 좋지 않고, 점점 낯을 가리게 됩니다. 하지만 상대가 누구든, 배울 점이 있거나 공통의 관심사가 있다면 1:1의 집중적 대화를 좋아해서 제가 간혹 저희 집에 초대합니다. 그런 경우 밤새 이야기하죠.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를 완간하셨습니다. 보통 글쓰기 책은 한두 권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무려 5권으로 펴내셨는데요. 이 시리즈를 기획하고 묶은 의도가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분명한 기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제가 생각하는 글쓰기의 전제인, 인식론 전반을 쓰다 보니 5권이 되었어요. 이후 더 낼 생각은 없지만 이태준의『문장강화』 같은 ‘일반적인’ 글쓰기 책도 이어서 낼까 생각했어요. 명문장 모음과 그 해제, 표현력 향상법, 영어, 한자, 일본어와 우리말의 관계, 젠더 메타포 등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스킬’을 제공하는 책이요.

 
하지만 글쓰기 책들이 넘치는 시대에 저까지 비슷한 내용의 책을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글쓰기 책은 ‘공부란 무엇인가’에 관한 내용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최대한 그런 의도로 썼습니다. 그런 부분을 강조하고 싶다보니, 제 책은 모두 서문이 전체 분량의 15~20퍼센트 정도로 많습니다.


글쓰기의 기본적인 전제들, 이를테면 ‘쓰는 자신’에 대한 질문 ― 자아, 정체성, 위치성(position), 당파성, 입장(standpoint) - 이런 개념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쓰기 자체가 현실을 재현하는 행위이므로 융합, 통섭(通攝), 다학제적 접근, ‘트랜스’, ‘포스트’ 과정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개념과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제대로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글쓴이 자신과 사회를 모르는 글쓰기는 본인에게도 고통입니다. 물론 고통을 안 느끼는 분들도 있겠지만(웃음), 그런 상태에서는 ‘써 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독자의 위상, 말하기와 듣기의 정치학, 당대의 자본주의 의 성격, 이와 연동하는 출판 산업의 정체경제학에 대한 인식 없이 어떻게 구체적인 글이 나오겠습니까. 


최근 지인이 철학자 문규민 선생님의 글을 보내주었는데, 매우 공감했습니다. “ ‘읽는’ 인구는 줄어드는데 온갖 ‘쓰기’ 강좌만 늘어가는 것은 일종의 위험 신호다. 사실은 완전히 반대가 되어야 한다. 일단 어마어마한 독서 인구와 교양층이 존재하고, 그 중에서 작가 지망생들이 나오며, 그 워너비들 중에서 한줌의 실력 있는 저자가 나와야 하는 것이다. 이게 읽기와 쓰기 모두가 오래 갈 수 있는 건강한 구조다. 웬만한 교수나 학자는 우습게 여길 정도로 박식하고 달필이었던 일본의 한 작가는, 어떤 주제에 대해 양질의 책 100권은 읽어야 스스로 그에 대한 책 한 권을 쓸 수 있다고 했다.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아무튼 읽기와 쓰기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 읽는 사람은 많은데 쓰는 사람은 적은 게 맞는 것이다. 현재처럼 읽기는 빈곤하고 쓰기만 과잉인 상황은 완전히 뒤집혀야 한다.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아무나 써도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나 써도 되는 문화는 읽는 쪽과 쓰는 쪽 모두를 저질로 만든다.”


문 선생님 이야기는 저도 절실히 하고 싶은 말이었는데, 이 이슈에 관해 쓴 글은 있지만 ‘엘리트주의’라는 말을 들을까봐 검열이 있었어요. 당연히 모든 이들이 글을 써야죠. 그러나 그것이 모두 출간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저는 위 글을 읽고, 이후 제 책 출간 일정을 심각하게 재고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필자는 좋은 독자가 만듭니다. 지금 시대는 대의 민주주의, 직접 민주주의조차 무너졌습니다. 소위 팬덤 정치의 시대죠. 저는 ‘좋은 독자의 탄생’에 희망을 겁니다. 안목 있는 편집자, 좋은 독자가 바람직한 공동체를 만듭니다. 저 자신의 첫 번 째 정체성이 독자입니다. 저는 독자로서 그리고 모든 정권이 외치는 ‘지식정보화 사회’를 바라는 시민으로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합니다. 듣는 사람의 역량이 말하는 사람의 내용을 정하듯이, 독자와 필자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상호 관계가 지식 생산을 좌우합니다. 

 

『페미니즘의 도전』이 처음 출간됐을 때가 2005년이었습니다. 저도 대학생 시절 필독서로 읽었는데요. 그 이후 꾸준히 사랑받고, 표지도 여러 차례 바뀌었습니다. 이 책에 관해서 사연이 많을 것 같아요. 『페미니즘의 도전』의 역사에 관해 듣고 싶습니다.

 

예, 사연 많습니다(웃음). 일단, 출간된 지 17년이 지나서도 절판의 운명을 맞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스테디셀러’라고 하기에는 생각보다 많이 팔리지 않았습니다(웃음). 단지 그때나 지금이나 이런 책이 팔리는 현실이 의외고 감사하지요. 


출간 당시 저는 유학을 준비했다가 어드미션을 받은 상태에서 다시 진로를 변경해, 국내에서 박사논문을 쓰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마음이 급했죠. 빨리 논문을 끝내고 싶어서 출판사의 제안을 여러 번 사양했습니다. 논문에 집중하는 상황만으로도 힘에 벅찼고, 대학원 생활 내내 원고료로 생계를 유지했기에 여력이 없었어요. 생계의 일환으로 故전인권 선생님의『남자의 탄생』서평을 〈한국일보〉에 쓴 적이 있는데, 그때 제 글을 읽은『남자의 탄생』의 편집자이자 현재 출판사 교양인의 한예원 대표님께서 연락을 주셨어요. 제가 거의 6개월 정도를 거절한 것 같아요. 나중에는 출판사 전화번호만 떠도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였어요. 거의 도망 다녔는데, 어느 날 출판사에서 그간 제가 생계 때문에 쓴 글을 다 찾아 정리해서 보여주시더라고요. 너무 죄송한 거예요. 그때부터는 ‘갑을 관계’가 바뀌어서 제가 을이 되어 출간에 ‘협조’할 수밖에 없었어요. 원고를 보충하기 위해 100매, 200매 짜리 원고를 다시 쓰기 시작했고, 빨리 넘겼죠. 


결국 책이 나왔는데, 출간되자마자 일주일에 200권씩 팔린 시기도 있어서 출판사에서도 놀랐던 모양이에요. 여성학, 젠더, 퀴어, 장애 관련 책들은 독자가 한정되어 있는데 말이죠. 그때도 지금도 의외로 남성들의 반응도 좋았어요. 당시에는 남성들은 이 책을 ‘페미’ 책이라고 보기보다는 “아, 세상에 이런 면이……” 이런 반응이 많았어요. 지금 20대 남자들은 아마 이 책의 존재 자체를 모를 것 같아 다행입니다(웃음). 남성 지식인들도『페미니즘의 도전』을 인문학 책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북 토크를 천정환 선생님이 주최해주셨고, 후지이 다케시 선생님은 “더 급진적이지 못해 아쉽다”고 하시더군요. 


남녀 모두 독자들의 반응은 비슷했어요. 아마 이 책이 오래 버티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이 뒤집어지는 경험을 했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이 책을 페미니즘 정체성의 정치라기보다는 보편적인 교양서라고 생각해주신 것에 감사하고 희망을 느낍니다.『페미니즘의 도전』을 읽고 여성주의에 입문했다는 분, 여성학을 전공하게 되었다는 분, 대학생 때 필독서였다는 등 격려를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전적으로 출판사의 작품이고, 우연의 산물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잡념과 개인적 인생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사적인 인간’, 비사회적인 사람입니다. 책을 출간할 의도가 전혀 없었고, 한국 사회에서 박사과정 학생이 책을 내는 것은 여전히 자연스럽지 못한 일이라 주변 눈치도 많이 봤어요. 즉 저로서는 굳이 낼 이유가 없던 책이었죠. 물론 증쇄나 개정판이 나올 때는 매번 윤문과 교정 작업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출판사에 미안해서요. 이 책은 한예원 대표님과 공저입니다. 대표님은 이 책이 잘 될 줄 확신하셨대요. 


이후 다양한(‘황당한’) 출판 관계자, 편집자들을 많이 만나게 되면서 한국 사회에서 출판 편집자의 위상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안목 있는 편집자가 생각보다 많지 않고, 재생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저는 안목 있는 편집자와 독자가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나빠졌잖아요. 한계 없는 자본주의, 욕망의 시대에 사람들의 인식을 진전시킬 수 있는 많지 않은 방법 중 하나가, 독자의 운동이라고 봅니다. 


17년 전보다 지금 페미니즘이 후퇴한 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자유주의의 틈새―여성이 성역할 대신 개인적 주체가 된―로 대중화를 이루었지만, 여성학 책을 읽는 이들은 줄었어요. 제가 그때 피해자 중심주의를 비판했는데, 지금은 피해자 절대주의라는 말이 나올 정도니까요. 놀라운 일이지만 난민이나 성적 소수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여성주의도 있어요. 여성주의를 남성 문화와 같은 방식의 ‘출세주의’로 오해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차피 불가능합니다. 

 

『21세기에는 바꿔야 할 거짓말』(한겨레출판)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까지 너무 많이 말한 사람들, 즉 백인 서구 이성애자 중산층 비장애인 젊은 남성들은, 그 동안 너무 떠들었으니까 이제 목소리를 조금 낮추고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좀 들어보자는 것.”이라고요. 이 책이 나온 때가 21세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이고, 지금은 벌써 2022년입니다.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우리사회의 분위기는 어떻게 변했나요. 백인 서구 이성애자 중산층 비장애인 젊은 남성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확실히 더 많아진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문제는 현대 철학의 근본 이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인류 문명은 누가 말하고, 누구의 경험이 진리로 작동해왔는가에 의해 좌우되었죠. 탈식민주의나 포스트 구조주의와 여성주의는 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입니다. 이 세 가지 사상은 공히, 권력과 지식에 공모를 주장하지요.


‘다른 목소리들’이 들리고 이제까지 침묵해 왔던 이들의 말하기 시작한 것은 확실히 바람직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는 동시에 ‘모두가 작가’인 당대 출판 문화와 연동하죠. 그러나 사회적 약자가 말한다 해도, 그것이 곧 기존의 언어를 대체하거나 대항하는 언설(counter discourse)이 될 수는 없습니다. 사회적 힘의 관계에서도 그렇지만, 모든 언어는 순수하거나 투명하지 않으니까요. 저의 언어를 비롯, 모든 언어는 오염된, 사회적으로 협상, 조율된 것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인터뷰도,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웃음). 지식의 발전은 그 사회의 수용력이 달려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사회는 정말 지식 후진국이에요. 반공, 진보, 자본, 가부장제, 종교, 권위 의식... 갖가지 체제들이 우리의 표현력과 상상력을 가로 막고 있지요. 반공과 진보는 반대 세력 같지만, 저의 경우 진보 진영과 여성주의 동료의 시선을 가장 의식합니다. 그들을 의식한 자기 검열이 가장 강력하지요.


순수한(pure) 언어는 없습니다. 세상에 진공 상태가 가능하겠습니까. 하이브리디티가 현실이죠.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의 언어도 기존의 언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말하기를 멈추지 않아야 하고 동시에 우리 자신이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태도가 되어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소통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소통이 왜 안 되는가를 생각하면서 자신에게로 재귀(성찰)할 때 그리고 스스로를 갱신하는 개인이 많아질 때, 비로소 어떤 가능성이 열리겠죠. 



 

『82년생 김지영』, 『엄마는 페미니스트』,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등 2016년에서부터 2~3년 정도 여성서사, 페미니즘에 관한 책이 다수 출간되었습니다. 저명한 외국의 페미니즘 이론서도 다수 소개되었고요. 그에 비해 최근에는 이 주제에 관한 책을 향한 관심이 덜한 것 같습니다. 최근 출판 동향에 관해 어떻게 보시나요.


이렇게 여성 관련 책이 넘쳐난 적은 없었던 듯합니다. 여성들이 ‘자기 경험 드러내기’가 가장 두드러진 현상이죠. 신자유주의의 개인화 현상이자 그간 언어화되지 않았던 여성들의 삶이 재현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건 거의 한(恨)의 폭발입니다(웃음). 저도 예외가 아니고요. 남성 문화는 여성들이 어떻게 사는지 몰라요. 여성들이 젠더 폭력, 일상, 가족사, 섹슈얼리티, 노동 등 삶 전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5천 년 역사의 뒤집기죠. 


하지만 ‘경험’은 언제나 논쟁거리죠. 경험은 정치적으로 선택된 기억이기 때문에 경험 자체를 쓴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은 탈정치적이죠. 모든 경험은 분석되고 설명되고 해석되어야 합니다. 경험이 텍스트라면, 그 경험에 대한 컨텍스트(맥락)가 더 중요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여성의 삶은 또 다시 데이터의 운명을 필할 수 없고 대상화될 것입니다. ‘여성’이 언어 생산의 주체가 되어야죠. 


‘강남역 사건 이후’, 크게 두 가지 경향이 있었다고 봅니다. 하나는 앞서 말씀드린 당사자,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갖게 된 - 사회 구조의 피해자로서 - 여성의 자기 서사 즉 “글을 쓰자”는 운동이 있었고요, 또 한 가지 현상은 기존의 서구 여성학 고전들이 전문가들에 의해 재번역, 재출간되고 있습니다.『여성성의 신화』,『우리의 의지에 반하여』부터 고전적 이론가인 마리아 미즈, 줄리엣 미첼, 안젤라 데이비스의 책까지 정말 반가운 현상입니다. 아시다시피 전자는 초반에 거의 폭발적인 반응이 있었고, 후자의 독자는 어느 정도 목적 의식적인 의지가 있는 분들이죠.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젠더가 작동하는 원리를 분석하는 로컬에서의 지식 생산은 여전히 매우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현장에서 우리의 문제를 분석해야죠. 정체성의 정치를 넘어서 사회 구조에 개입하고 사회 정의의 개념을 넓히는데 여성주의 시각은 절실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 권김현영, 한채윤, 루인 선생님이 함께한 ‘도란스(트랜스)’ 총서나 최근에 나온『돌봄이 돌보는 세계』,『시간을 빼앗긴 여자들』 같은 여성주의 시각으로 한국 사회를 분석하는 책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사실 근본적인 문제는 차세대들이 여성학은 물론이고 책 자체를 읽지 않는 상황에다가 여자로 태어났으니 여성학은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여성주의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여성만큼 언어가 절실한 집단도 없는데 말이죠. 남성 문화든 자본주의든 지배 세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피지배자의 각성과 언어인데, 그런 상식이 사라졌어요. 


여성주의는 대중화되었지만 여성학 연구자들이 재생산되는 구조도 없습니다. 제가 이번 신간에 강유가람 감독의 다큐 <우리는 매일매일>에 대해 썼는데, 감독에게 이 작품을 만든 배경을 물었더니 “여성주의를 공부하고 싶은데 가르치는 곳이 없어서”라고 하더군요. 참고로 강유가람 감독은 여성학 석사로 오랫동안 여성운동과 여성학 공부를 해왔습니다. 공부 네트워크가 있는 분인데도 그런 절박함을 느낀다는 데에 놀랐습니다. 


여성주의는 다른 사상과 마찬가지로 오랜 숙련 시간이 필요한 공부입니다. 지식이나 정보로서 여성주의를 안다는 것과 사유 방식으로서 여성주의를 체화하고 응용하는 과정은 거의 별개의 영역입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다나 해러웨이의 사상 전반을 기후 위기와 연결시켜 저임의 강사료를 받고 제대로 강의할 수 있는 연구자가 몇 명이나 될 것 같습니까. 즉 여성학은 공부는 어려운데 대우는 열악합니다. ‘학자’로 생각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제가 ‘학자’ 정체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저를 ‘작가’라고 부를 때는 당황스러운 정도가 아니라 화가 납니다. 이건 위계의 문제가 아니라 개념이 없는 거죠. 여성주의자 대신 ‘female’ 학자를 뽑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수업 시간은 많고 급여는 적은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여성학자들이 많습니다. 이는 한국의 대학 붕괴와 연결된 아주 복잡한 문제죠. 한국사회에서 독립 연구자, 독립 여성 연구자가 생존할 수 있는 기반이 없습니다. 


한편, 제 생각에 한국 사회의 역량(?), 수준으로 볼 때 여성학 책 시장은 포화 상태 이르지 않았나 조심스럽게 진단해봅니다. 독자도 필자도 소멸하고 있지 않은가... 온라인 서점의 성별, 연령별 구매 통계가 나오잖아요. 20-30대는 남녀 불문, 전멸입니다. 제가 학술서이자 인문학서이자 대중서로서, 여성주의 시각의 단행본 한 권을 쓰려면 최소 1년은 생업 포기하고 공부만 해야 합니다. 물론 그 과정은 즐겁지만 얼마나 팔릴까를 생각하면, 출판사나 나무에 미안하죠. 

 

이 기획의 제목이 ‘다시 인문학’입니다. 인문학, 사회과학의 역할을 묻고 싶습니다.

 

인문학은 인간의 조건입니다. 저는 자연과학, 예술, 인문학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물론 저뿐 아니라 많은 이들의 생각이죠. 인간은 언어(담론, 지식) 없이는 사유할 수 없습니다.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은 접근하기 쉬운 언어지요. 핵물리학도, 계량경제학도, 바이오산업도 모두 언어입니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공부는 사회 공동체 사유의 기초이자 기본적인 공통 분모를 향한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공대생이나 의과대학 로스쿨 교육에서 인문학 비중이 지금보다 몇 배 이상 높아져야 합니다. 이것은 단지 그들에게 인문학적 인식이 필요하다는 의미를 넘어서, 지식의 융합 차원에서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인문학은 의학과 공학 자체를 발전시킵니다. 출간 예정인『지구를 구할 여자들』은 젠더 인식이 어떻게 발명으로 이어졌는가를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가 아니라 “젠더가 발명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수많은 사례를 들어 분석하고 있습니다.


저는 ‘다시 인문학’이라기보다 ‘언제나 인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은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증거입니다. 또한 인문학의 경계도 특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사철부터 인류학 등은 물론 자연과학 전반, 전쟁사, 과학사, 인구학, 영화, 인간관계 모든 것이 인문학의 영역이죠. 결국 인문학은 인간과 사회, 자연과의 관계 전반을 다룹니다. 그냥 존재 조건이에요. 인문학이라는 말이 따로 있는 것이 이상하네요(웃음). 

 

오랜 기간에 걸쳐 저술 활동도 꾸준히 하고 계시잖아요. 책과 영화를 보시고, 추천사라든지 영화비평도 꾸준히 해오셨습니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작업일 듯합니다. 선생님의 루틴을 유지하시는 비결, 궁금합니다.


현장 연구나 인터뷰를 할 때도 있지만 주로 집에 있고요. 일상의 특정 부분에서는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라 시간이 많습니다. 관리가 귀찮아서 15년 이상 삭발 상태로 살 정도였어요. 소비 활동도 거의 없습니다. 루틴이라고 할 만한, 자기 관리 능력은 부족합니다. 체력 관리를 위해 운동을 하거나 즐거운 일을 찾지 못해요. 예전에는 거의 매일 조조로 극장에 갔어요. 코로나 이후로는 집에서 보지만, 책상 앞에서 영화보기에 적응될까봐 두렵습니다. 마틴 스코세이지도 넷플릭스로 영화를 찍고 있으니, 인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저는 프랑스 문화원 세대예요. 예전에는 하루에 여러 편 영화를 보는 날이 많았지만, 지금은 하루 한편 정도고, 책은 종류에 따라 달라서 계산이 어렵네요. 대개는 제가 모르는 분야, 사회적으로도 관심이 적은 분야의 책을 읽습니다. 예전부터 일본 관계서, 일본의 사회 현상에 대한 책을 좋아했습니다. 일본의 근대를 모르면 한국 사회를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많은 나라지만, 우리와 차이는 그 문제를 ‘쓰는’ 지식인층이 굉장히 두텁다는 점이죠. 그런 점은 부러운 사회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공부를 잘하지는 못하는데, 공부나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모두 앉아서 하는 여행이죠. 인생의 다른 부분은 거의 ‘루저’인데, 공부와 글쓰기에 대해서는 승부욕이랄까? 욕심이 많고 그래서 오버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집중력이 좋다”는 이야기는 어려서부터 들었어요. 아마도 저의 비사회성, 타자성, 열등감 이런 부분을 글쓰기로 보상받고 싶은 욕구가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공부와 글쓰기 외 다른 일은 피곤하기만 할 뿐 재미가 없어요. 


최근에는 읽는 시간보다 쓰는 시간이 많아서, 조절하려고 노력합니다. 잘 안 됩니다(웃음). 쓰기는 마감이 있으니까요. 추천사나 해제는 ‘돈을 받고 좋은 책을 읽는 기회’여서 거절하지 않는 편인데, 이 노동은 밖에서 보기보다 노동량이 많습니다. 읽다보면 당연히 번역이 이상하거나 오탈자나 비문이 보이죠. 그래서 결국은 ‘감수’가 되고, 편집자나 저자, 번역자와 논의를 하다보면 일이 커집니다. 제가 주로 설명을 하게 되므로 어려운 노동입니다. 대면 관계이기도 하고 분명 틀린 번역인데, 제 의견을 수용하지 않은 번역자도 있죠.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제가 직장 생활이나 결혼 생활 여부와 관련 없이, 평범한 중년 여성은 아니죠.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 중 하나가 ‘일반인 퀴어’입니다. 부모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두 분 모두 가족 제도와 어울리지 않는 개인적인 분들이었어요. 부모 역할보다는 각자 실존적(?) 고뇌가 많으셨던 것 같습니다. 공기업 간부였던 아버지는 제가 일곱 살 때 “사마 천처럼 쓰지 않으려면 글을 쓰지 말아야 한다”, 국어 교사였던 어머니는 “절대로 교원(교수나 교수)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건 선생질이다. 작가(소설가)만이 사상가다.” 그런 황당무계한 말을 하신 분이었어요(웃음). 결국, 두 분 모두 자의든 타의든 직장 생활을 그만두셨고, 이후 저는 집안의 생계부양자 ‘K-장녀’가 되었습니다.


공부(工夫)는 글자 그대로 자신을 훈련시키는 노동입니다. 공부의 특성상 겸손함을 유지할 수 밖에 없어요. 인간이 아름다울 때입니다. 예술이나 공부는 모두 고통에 대한 자각이나 관심에서 시작됩니다. 기존의 시각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고민하면서 공부가 시작되니까요. 문제 제기하는 인간, 문제의식을 갖는 사람은 아름답고 진보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공부는 새로운 것에 대한 추구이므로, 공부를 좋아하면 나쁜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부를 안 하면 보수적이고 부패하기 마련이죠. 


억지로 하는 공부? 이런 개념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아, 질문에 답하자면, 글을 쓰는 에너지라면 제 안의 분노와 고통 쓰기의 즐거움 ! 루틴은 자기 몰두적 일상?

 

선생님께 영향을 준 사람, 혹은 책을 꼽아주실 수 있나요?

 

제가 처음으로 감동받은 글은 중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심훈의 글이었는데, 그때는 교과서에 나오는 필자니까 시험 문제에도 나올 수 있다는 지나친 범생 의식의 발로로 『상록수』를 찾아 읽었어요. 당시에는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이후 저는 어쩔 수 없이 계몽적인 인간이 된 것 같아요. 영향을 준 책이라? 읽을 때 마다 바뀌어서…… 전환점이 된 책들은 있죠. 제가 20대에 엔지오에서 회원 활동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제2의 성』을 일곱 번 이상 읽은 것 같아요. 옛날 버전이죠. 저는 그때 여성 의식보다는 서구의 방대한 지식에 놀랐던 것 같습니다. 프로이트 사상의 독특성과 그의 극도의 성실성과 탐구욕도 자극이 되었고, 제가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서 앤드류 솔로몬이나 어빈 얄롬을 만난 것도 행복했고, 그 다음에는 몸과 공간에 관한 책들을 주로 읽었는데 기존의 문명사가 정신과 시간을 중심으로 구성된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렌즈를 얻었죠. 


지적으로 가성비가 높은 책들이 있습니다. 피에르 클라스트르나 라인하르트 코젤렉 책을 정독하면, 다른 책 여러 권 읽은 효과가 나죠. 그런 저자들을 좋아합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국회도서관에서 논문 검색을 하는데, 문제의식은 좋지만 전개가 쉽지 않은 논문들도 많은 시사점을 주기 때문에 읽기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지나치게 세련되거나 안정된 문체의 책, 주장이 없는 책들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호오가 분명한 편이어서 자의식, 공주병, 왕자병, 자기도취가 드러나는 내용 없는 글들은 별루인데, 이런 책들이 잘 팔릴 때면 열 받습니다(웃음). 한국 문학은 좋아하지만 외국 문학은 읽지 않은 편이구요. 문학은 사회 역사적 배경과 번역의 이슈가 있어서, 어떤 언어로 쓰여졌는가에 따라 읽는 방도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모국어 외의 책은 문학이든 아니든 독자의 번역 과정, 노동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한국어로 된 좋은 책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늘 염두에 두고 사는 분이 있습니다. 모두 남성이라서 검열이 작동합니다만, 한국 소설가 정찬 선생님과 탈식민주의 학자 일본의 도미야마 이치로 선생님입니다.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감히 닮고 싶고 동시에 성별이나 국적 혹은 개인의 탈렌트? 캐릭터 차원에서 제게 끊임없는 좌절감을 느끼게 하는 분들이죠. 다만, 저는 그 분들의 성실성을 배우고자 할 뿐입니다. 정찬 선생님은 열한 권이 넘는 장편 소설과 70여 편의 중단편을 쓰셨어요. 미발표작도 상당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는 다 읽었고 여러 번 읽은 작품도 많습니다. 작품 자체도 너무나 ‘한국적이지 않아서’ 놀라운 데다, 팔리지 않고 비평이 없어도 계속 쓰신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저는 그렇게 못 살아요. 그냥 수도승이신 거죠. 물론 페미니즘이 비판하는 초월적 남성입니다. 그러나 저는 정찬 선생님이 자본주의와 투쟁하는 몇 안 되는 인류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만의 세계가 확고한 외롭지 않은 인간이죠.


도미야마 이치로 선생님은 매일 네 시에 일어나 종일 공부하십니다. 오키나와 자본주의로 시작하여 다루지 않는 영역이 없으신데, 이 분도 공부 자체를 좋아하십니다.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 교원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본인, 학생은 물론 사회적으로 재앙이죠. 하지만 도미야마 선생님은 정치적, 윤리적, 학문적, 인격적으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분입니다. 버틀러나 스피박은 영어권에서 활동하는 ‘세계적’ 학자잖아요? 그들은 여성주의자지만 ‘미국인’으로서 보편적 권력을 누립니다. 도미야마 선생님처럼 비서구권에서, 로컬에서 그만한 학문적 성취를 한 지식인도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오사카대학을 거쳐 지금은 도시샤 대학에 계신데 남미, 유럽, 아프리카, 남아시아 전 세계 곳곳에서 그의 사상을 공부하러 학생들이 몰려옵니다. 


특히 타자화하지 않는 글쓰기를 위한 그의 몸부림은 그 자체로 사회 운동이죠. 대상을 설정하고 “내가 그들을 설명한다, 내가 그들에게 배웠다, 나는 진보다”는 글쓰기가 만연한 한국사회에서 그의 글은 낯설 수밖에 없습니다. 제도권에서 공부하지만 그 자체로 사회운동가인 드문 지식인이죠. 박사 후 연구생으로 일본으로 갈 계획도 있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책이 있나요? 없다면, 혹시 쓰고 싶은 책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미발표 원고가 많습니다. 서평은 읽을 때마다 쓰고요, 우울증, 건강 약자와 장애의 경계, 일본 자이니치 지식인들의 북송 사업, 한국의 사회운동, 군 위안부 운동, 증언사, 성산업과 남성 섹슈얼리티, 국제정치, 국가이론, 군사주의에 관한 외국 원서를 번역 정리한 글들... 


거의 완성된 책은 두 권입니다. 식민지 남성성을 주제로 한 박사논문을 전면 개조, 확대한 글과 젠더 폭력과 섹슈얼리티에 관한 책이 대기(?) 중인데, 요즘은 글을 쓰는 것과 출간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읽는 사람이 없는데, 쓴다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에 말씀 드린 대로 독자는 없고 필자는 넘치는데, 저까지 참여할 필요가 있을까? 팔리지 않을 (학술서를) 굳이 책을 내야 할까? 많은 고민이 됩니다. 


필자 뿐 만 아니라 출판업계 종사자들 모두가 얼마나 공을 들여야 한 권의 책이 나오는지 아실 겁니다. 저는 남의 책도 제 자식 같아요. 그래서 제 책을 기증하지도 않고, 친구들 책도 사서 봅니다. 한국은 출판 대국인데, 대부분 수험서이고 몇 개월을 버티지 못하는 책들이 많습니다. 종이 낭비입니다.

 

끝으로 예스24 독자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말씀”이라기보다,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좋은 독자가 좋은 사회를 만듭니다. 말씀드린 대로, 저 역시 글쓴이보다는 좋은 독자가 되려고 노력합니다. 독자의 성장과 사회 정의가 선순환을 이룬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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