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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8 개설

솔직히 우리 책보다 재밌다!
[스크랩] 비아북 박재호 편집장이 추천하는 '자본'과 마르크스 평전' | 솔직히 우리 책보다 재밌다! 2008-12-05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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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 「솔직히, 우리 책보다 재밌다!」는 현직 출판인들이 강추하는 다른 출판사 책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2주에 한번씩 편집자 분들이 감동깊게 읽은 타 출판사의 좋은 책들을 연재합니다.

 

 #1. Good-Bye Marx

 

자본 1-1
마르크스 저/강신준 역 | 길 | 2008년 05월

대학 새내기 시절, 지하 세미나를 한 적이 있다. 89년 노동자투쟁이니 91년 학원자주화투쟁이니 하는 그런 이슈가 있는 시대는 아니었으나 93년에 모인 새내기 사(史)학도의 각오는 지금 생각해도 비장했다. 우리는 망이, 망소이, 김사미 등의 가명을 지었다.(사실 사람들은 우리에 대해 별 관심 없었으나) 그리고 매주 토요일, 서울 시내에 있는 이웃 학교 빈 강의실에서 비밀리에 만남을 가졌다.(사실 언제, 어디서 하는지 그닥 상관은 없었으나)


물론 목적도 비장했다. 유비-관우-장비의 도원결의가 천하통일을 지향했다면, 망이-망소이-김사미의 포부는 《자본론》 독파!.(사실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여튼 20세기말에 뭉친 우리 조선의 민초들은 단계적인 마르크스 철학 세미나를 시작했다. 그렇다면 형식은? 발제와 토론으로. 주제는? 《변증법적 유물론》->《사적 유물론》->《정치경제학》-> 그리고 마침내 《자본론》! 

 

과연 그들은 《자본론》을 읽었을까? 이미 몇몇 분들은 낌새를 차리셨겠지만, 꿈은 꿈일뿐이다. 우리는 첫 단추부터 틀어지기 시작했다. 이유는? 휴… 책들이 너무 어려웠다! 초기에 ‘변유’는 서너 페이지를 읽는데 한 시간이 걸릴 정도였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쏟아지는 새로운 개념들과 싸우다보면 어느새 앞 장의 내용들이 기억나질 않았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서로가 이해한 개념들은 제각각 달랐기에 토론은 격한 논쟁으로 이어지고, 상한 감정은 뒤풀이에서 화해하는 악순환이 계속 되었다. 문제가 무엇일까? 왜 유독 마르크스의 책은 어려울까? 결국 우리는 ‘변유’ ‘사유’ ‘정경’까지 세미나를 했으나 그토록 원했던 ‘자본론’의 독파는 이루지 못했다.


솔직히 그러한 아쉬움은 미움으로 이어졌다. 유치하지만 마르크스는 나를 버렸고 나는 그의 책을 외면했다.

 

#2. 다시금 그를 사랑하게 해준 책, 《마르크스 평전》


 

마르크스 평전
프랜시스 윈 저| 푸른숲 | 2001년 06월
스무 살의 이별 후, 마르크스를 다시 만난 것은 서른두 살 멕시코에서였다. 당시 나는 또 다른 혁명가를 흠모했다.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부사령관 마르코스. 그의 반란군은 멕시코의 오지마을인 치아파스주에 거주했다. 그를 만나기 전, 나는 몇 달 정도 스페인어를 배우기 위해 멕시코시티에 있는 한 선배네 집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그 선배의 서가에서 무심코 펼쳐 든 책이 바로 《마르크스 평전》이다. 솔직히 이 책을 잡는 순간부터 나는 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마르크스와의 재회, 그 긴장감은 설렘으로 이어지고, 이 책은 읽는 과정 내내 페이지 넘기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재미와 짜릿함을 주었다. 왜일까?

무엇보다 이 책의 저자인 프랜시스 윈이 주인공을 바라보는 시각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이 책은 저자의 시각에 따라 전기나 평전이 얼마나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흔한 이야기로 시각 하나만 바꿨을 뿐인데, 평전이 이렇게 읽을거리가 많아질 수 있다니… 하는 생각이 든 작품이다. 그동안의 마르크스의 평전이 신화(선이든 악이든)의 프레임에 맞춰졌다면, 이 책은 마르크스의 인간적인 면모와 그의 가혹한 현실을 주목했다. 프로이센 출신의 망명자였지만 상류층을 동경하며 영국의 중간계급 신사로 살았던 조금은 허영심이 있는 마르크스. 그는 사교와 연회를 좋아했지만 대부분의 친구들과 불화를 일으켰으며, 가족에 헌신적이었지만 하녀를 임신시키기도 한 약점도 많고 허약한 인간이었다. 또한 지독한 가난으로 세 자녀를 잃고, 평생을 질병으로 살기도 했다. 그의 평생 친구이자 경제적 조력자인 엥겔스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마르크스의 작품은 아마도 세상에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 책은 유약하고 약점이 많은 한 인간이 시대의 모순에 맞서 끝까지 싸워나가는 과정을 때론 치열하게 때론 처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나는 마르크스의 인간적인 면모와 혹독한 시대 현실을 끝장내려는 불굴의 의지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를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 그 뒤, 쿠바의 아바나 어느 길가의 자판에서 마르크스의 스페인어판 《자본론》을 구하는 행운을 얻었다. 물론 읽지는 못했지만, 오늘 이 글을 쓰고 나니, 내 책장에 꽂혀있는 《자본론》이 유독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청명한 가을이다. 다시 대학 새내기 시절로 돌아가 《자본론》을 한번 도전해볼까(?) 하는 건방진 생각이 든다. 

비아북 편집장 박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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