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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는 타고나는가? 만들어지는가? | 사회 2020-10-07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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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

도리스 컨스 굿윈 저/강주헌 역
커넥팅(Connecting) | 2020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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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격변기에 재직했던 미국의 4명의대통령의 삶을 통해 리더의 자세와 역량에 대해 기술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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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생활의 연차가 쌓여갈수록 직위와 직책도 상승한다. 직위가 올라갈수록 특정사항에 대해 최종결정을 내려야 하는 일도 늘어난다. 물론 그 결정에 대한 책임도 함께 부여된다. 직위이 낮을 때 내린 판단이나 결정은 조직에 그리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으니 만일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 해도 그로 인한 폐해는 크지 않다. 하지만 상당한 직위에 있는 자가 내린 결정은 그 일로 인한 파급효과가 엄청날 뿐만 아니라. 잘못된 결정을 내렸을 때는 그로인한 패해가 해당 조직의 흥망성쇠를 결정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상황과 자주 마주칠수록 그 결정으로 파생될 결과를 생각하다보면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두려움이 자리잡는다. 어쩌면 그 결정이 한 조직의 흥망성쇠를 좌우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런 부담감에 짓눌려 있을 때 마주한 책이 바로 이 책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이다.

 

   조그만 조직의 개인도 이럴진대, 한 국가를 통치하고 매순간 국가와 국민의 내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내리는 결정은 그 무게감은 조그마한 조직의 일개인이 가지는 중앙감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일 것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한나라의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은 결정적 순간에 어떤 기준으로 판단을 내리고 일을 추친하는 것인지. 한 순간의 판단과 결정이 한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좌우할 중차대한 결정을 내리는 순간의 결단력과 그 추진력에 대해서.

 

   이 책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에는 역대 미국의 대통령 중 역사적 전환점에 서있었던 4명의 대통령이 등장한다. 노예해방을 위한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아메리카 합중국을 구원한 에이브러험 링컨, 미국의 참된 민주주의와 아메리카 합중국에서 자유의 발전을 꿈꿨던 그의 꿈과 이상은 연극계의 유명한 배우였던 존 월크스 부스의 총탄에 의해 이루지 못한 이상이 되었다. 월리엄 매킨리 대통령의 암살로 인해 그의 잔여임기 3년 반을 끝낸 뒤 미국 역사상 국민과 선거인단 모두에게 최대의 표를 확보해 연임에 성공한 미국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이었던 시어도어 루즈벨트. 석탄 파업을 해결하고, 미래세대를 위해 국립공원을 지정하여 자원자원을 보호하고, 경제적으로 공정한 운동장을 만들기 위해 트러스트를 혁파하는 규제 법안을 제정했던 그는 노령연금과 실업보험, 하루 8시간 노동, 단체교섭의 필요성등을 역설한 대통령이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최장수 대통령이며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세계 대공항에서 벗어나기 위해 뉴딜정책을 시행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 2차대전의 종결과 세계 평화를 구축하고자 네 번째 출마하여 당선된 그는 취임식 후 82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케네디가 암살된 후 대통령직을 물려받았던 린든 존슨, 케네디가 암살된 날부터 비전의 리더쉽을 보여주며 국내문제를 해결했던 그는 국제문제와 베트남에 대해서만은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국내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전문가들로부터 조언을 구했던 그는 국제문제와 베트남 전쟁에 관해서는 어느 누구의 조언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은 단편적인 의사결정으로 리더쉽의 실패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배경과 능력이 다른 기질의 네 청년이 미국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달랐다. 이들이 삶을 마무리할 즈음 대통령직 이후의 삶에 대한 생각, 죽음과 기억에 대한 생각도 달랐다. 그들의 이야기는 각각 다르게 끝났지만, 죽음 이후 자신이 남긴 업적으로 더 나은 미래가 펼쳐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았다. 여기 언급된 네 리더중 두 명은 대통령 재임 중 사망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깊은 상처를 입은 국가를 치유하는 데 집중하던 과정에서 암살됐고,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전쟁을 마무리 짓고 복잡한 평화과정을 준비하던 중에 사망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와 린든 존슨은 대통령직을 무사히 끝내고, 그 이후의 삶을 경혐 할 수 있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권력을 되찾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삶을 마감하는 그날까지도 그는 1920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계획을 세울 정도였다. 린든 존슨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같이 생활하고, 퇴임이후 그의 회고록 집필에 주력했던 저자는 린든 존슨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여하기는 했지만, 위에 언급된 4명의 대통령의 어린 시절을 비롯하여 그들의 성장기와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집권이후 중대한 의사결정을 내리기까지의 그들의 행동과 대통령 퇴임 후 생을 마감할 때까지의 모든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갖는 의문이 있다. “리더는 타고나는가? 아니면 만들어지는가?” “리더가 시대를 만드는가, 아니면 시대가 리더를 만드는가?”이 책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더불어 리더에 관한 중요한 교훈을 전달한다. 단순히 저자는 네명의 대통령의 성공한 이야기만을 전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시대의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 의사결정을 내렸으며, 결정된 사항을 처리하기 위해 어떤 전략과 방법을 시행했으며, 그로 인해 한 국가와 국민의 삶에, 그들의 사후에, 역사에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는지까지를 보여준다.

 

   이 책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은 이 책을 만날 때 나의 의도에 대한 충분한 답을 주었다. 삶에 있어 목표를 설정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길을 가야하는지에 대한 답도 주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자신들의 오랜 꿈을 구현한 그들의 삶의 궤적 이면에 깃들인 무상함이 더 크게 와닿는 것은 아마도 이 계절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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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써라. 쓰고 읽어라 | 인문 2020-08-3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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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고미숙 저
북드라망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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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행위는 생명있는 자의 존재의 조건이란 저자의 말에 가슴이 아프다. 매구절 구절 필사하고 싶을 정도의 힘찬 문장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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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나는 같은 영화도 수 십 번을 넘어 백번이 넘게도 보는데, 왜 책은 한번만 보고 말지? 혹자는 말한다. 같은 영화를 여러번 보면 줄거리가 같은데 심심하지 않냐고? 한마디로 그건 영화의 참맛을 잘 모르는 이들의 이야기다. 같은 영화를 여러번 보게 되면 이미 아는 줄거리에 눈이 가기 보다는 대사 한마디 한마디와 감독만의 미장센이나 디테일, 그 디테일을 통해 감독이 표현하고자 하는 섬세한 의도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니 같은 영화를 수십 번을 넘어 수백 번을 봐도 영화가 주는 감동은 회 차가 더해갈수록 더했으면 더했지 시들해지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같은 영화는 수십 번을 보지만 같은 책을 3번 이상 읽어본 경험이 없다. 물론 일부 고전 같은 경우는 역자에 따라 달라지는 의미의 해석을 들여다보기 위해 한 고전에 대한 여러 역자의 책을 본적은 있지만, 한 저자의 같은 책을 3번 이상을 본적이 없다. 허니 어쩌면 그동안 내가 책을 보고 쓴 모든 리뷰는 그저 주마간산격으로 스쳐지나간, 말 그대로 수박의 껍질에만 혀를 대보고 그 맛을 파악하려는 어리석은 행위는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동안 책을 읽는다고 했지만, 어쩌면 나의 독서는 너무 전투적이었다. 고지를 향해 앞으로 만을 외치는 전쟁터의 병사처럼 그저 조금이라도 더 나아가기 위해 전진만을 부르짖는 양의 승부였지, 깨달음의 승부는 아니었다. 자본주의라는 세속의 한계에 갇혀 그러 했을거라는 변명도 어쩌면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한 독서를 추구한 나의 책읽기에 대한 변명의 일환일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들이 하나씩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책을 찾기보다 기존에 보았던 책. 이미 리뷰를 남겼던 서고 가득 쌓인 책들에 다시 시선을 주기 시작했다.

 

   오래전 인연을 다시 잇기 위한 책과의 만남들이 이어졌고, 그 만남으로 다시 만난 책은 내가 알던 모습이 아닌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 생소한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질책의 수단으로 이전에 YES 24에 남겼던 리뷰 몇 개는 삭제하기도 했다. 이제야 우리네 선조들이 같은 책을 수십번 수백번 읽으며 외우고 또 외웠던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이미 읽었던 책들과의 재회가 이루어지기 수십번, 매일 먹는 똑같은 밥이 지겨워지는 것처럼 새로운 별미를 찾고 싶은 욕구가 가슴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올 때 만난 책이 바로 고미숙의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이 책의 저자와의 특별한 인연은 뒤로 하고라도 이 책은 다시 책읽기를 시작하려는 나의 흐트러진 마음을 다 잡는데는 최고의 책이었다.

 

   저자는 말한다. 산다는 것은 천지인의 삼중주를 아는것이고, 그 앎의 구체적 행위는 바로 읽기와 쓰기다”( P47). “책은 삶의 토대이자 존재의 조건이다. 책과의 만남이 있고 그위에서 인생이라는 길이 시작된다.(P60) 우리가 삶의 지속을 위해 숨을 쉬는 것처럼, 삶을 영위하는 생명체로서의 가장 기본이 읽기와 쓰기라고 강변한다. 또한 읽기와 쓰기는 삶에 있어 가장 거룩한 행위이며, 우리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행위라고 애기한다. 그러니 어찌 우리가 읽기와 쓰기를 등한시 할것인가.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최고의 수단이 바로 읽기와 쓰기인 것을.

 

   저자의 추상같은 문장들이 가슴 깊이 파고 들어온다. 아프다. 그동안 읽기와 쓰기를 등한시 해온 삶의 시간들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자책감이 든다. 자책감에서 해방되고자 다시 책을 든다. 이 책에는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주옥같은 문장들로 가득 차있다. 다섯 번을 읽으면 밑줄을 치다보니 책의 거의 전부분에 밑줄이 처질만큼 감동 가득한 문장의 보고이다. 이대로 필사를 해도 좋을 문장들로 가득하다. 그 문장의 향기와 서릿발 같은 지청구를 듣기 위해 여섯 번째의 만남의 여정을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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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가인의 노래는 이시대 중년들을 위한' 씻김굿'이다. | 나의 생각, 나의 삶 2019-10-21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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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는 형님이 한분 계시다. 이분은 혈연, 지연, 학연 등 일반적인 관계로 맺어진 분은 아니다. 십 몇 년전 한 모임에서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다. 우리가 이름만 대면 아는 대기업의 최고위직에 있다가 이제는 은퇴해서 그룹 계열사의 오너로 계신다. 서로가 일상에 치이다보니 잘해야 일 년에 한번 얼굴을 마주할까 말까 하지만 자주 안부를 확인하는, 속을 털어놓고 애기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지인 중 한분이다. 모처럼 일정에 여력이 생겨 얼마 전 주말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만났다.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안부를 물었다. 같이 식사하며 이런저런 애기를 나누다 내가 송가인의 애기를 꺼냈다. 요즘 어떤 자리에 가던 기회가 되면 송가인 애기를 꺼내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형님. 송가인이라고 아세요?”

그 형님 왈 응 당연히 알지

내가 다시 말했다. “제가 요즘 송가인 땜에 사는 맛이 납니다. 노래는 들으세요?”

그 형님 왈 아니 못 들어?”

??? 아니 이 무슨 시츄에이션?? 안 듣는 것이 아니라, 못 듣는단다. 허 참????

궁금함에 물었다. “아니 형님 왜요?”

그 형님의 대답 송가인의 노래만 들으면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도대체 들을 수가 없어

 

   그날의 애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그 형님이 어느 날 늦은 시간 퇴근하니 집에서 형수님이 TV를 보고 계셨단다. 아마 미스 트롯이었던 듯 하다. 헌데 이 형님 티비 조선을 바퀴벌레보다 더 싫어한다. 행여나 채널을 돌리다 티비조선을 스치기만 해도 시청률에 0.0000001%라도 도움이 될까 아예 검색채널에서 삭제하신 분이다. 그런 분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퇴근해 집에 갔는데 형수님이 티비 조선을 보고 계시니 큰소리로 야단을 하신 모양. 옷을 갈아입고 씻으려고 세면장으로 가는데 문득 TV에서 노래 소리가 들렸단다. 그 노래 소리에 이끌려 세면장으로 가는 발걸음을 돌려 TV앞에 서서 처음 본 가수의 노래를 들었단다. 헌데 갑자기 가슴속에 뜨거운 것이 올라오면서 눈시울이 붉어지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뚝... 행여 형수가 볼까봐 얼른 서재로 들어가 처음 본 그 가수가 누구인가 인터넷으로 검색해봤단다. 그때 TV로 들은 노래가 김소유와 송가인이 함께 부른 진정인가요였단다. 유튜브에서 송가인의 영상을 발견하고 노래를 들었단다. 그 유명한 한많은 대동강”. 그 노래를 들으며 한없이 울었단다. 형수가 보니 씻는다던 사람이 갑자기 서재로 들어가 안 나오길래 형수가 들어가 봤더니 형님이 모니터를 보면서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듯 그렇게 울고 계셨단다. 깜짝 놀란 형수가 뭔 일 있나며 그렇게 물어도 형님은 말씀이 없이 눈물만 뚝뚝뚝... 그때 형수는 형님이 죽을 병 통보받고 그리 우는 줄 알고 한바탕 난리가 났단다. 물론 나중에 노래 한곡으로 그리 된걸 알고, 이해는 못하셨지만. 그 뒤로도 이 형님 송가인 노래만 들으면 눈물이 한없이 쏟아져 노래를 들을 수 없단다. 듣고 싶어도.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곰곰이 생각했다. 도대체 송가인 노래의 어떤 부분이 저리 강한 사람도 눈물을 흘리게 만들까? 송가인의 노래를 듣고 우는 사람은 그 형님뿐만 아니다. 주위에 아는 지인들 중에도 송가인의 노래만 들으면 눈물이 너무 쏟아져 듣지 못한다는 사람이 여럿 있다. 어디 그뿐인가? “뽕따러 가세” 3회에 출현한 서울 광장시장 육회집 어머니는 노래가 아니라 송가인이라는 이름 석자만 듣고도 그냥 펑펑 눈물을 흘리신다. 그 이유가 뭘까? 송가인의 노래에 어떤 마력이 있어, 한세상 부지런히, 강하게 살아온 이들을 무장해제 시켜 펑펑 울게 만들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할까? 너무나 궁금했다. 아니 다른 무엇을 떠나서도 송가인 노래의 어떤 부분이 그리도 많은 사람들이 축제의 장에 나와 송가인 노래 한곡을 듣기 위해 서너시간을 기다리게 만들까. 어디 그뿐인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이가 삶의 의욕을 느끼게 만들고, 정년퇴직 후 무료한 날들을 보내던 이가 웃음을 짖고, 그들이 스스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고백을 하게 만든다.

 

   전형적인 고전적 한국 미인형의 복스러운 외모, 트롯이던, 국악이던, 락이던, 발라드던 장르를 가리지 않고 어떤 노래든 소화해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음악적 재능. 귀가 뚫리고 가슴이 뻥 뚫리게 만드는 살 떨리는 폭풍 가창력, 순수하고 솔직한 아이같은 품성, 꾸밈없고 정이 넘치는 인간미는 더 이상 애기하지 말자. 애기해야 입만 아프다. 최근에 뽕따러 가세1회부터 정주행 하며 송가인의 노래를 들으면 저게 어찌 사람의 능력일수 있나 저건 귀신의 능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만약 노래에 신이 있다면 아마 송가인의 능력과 같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그만큼 노래에 관한한 송가인의 능력은 넘사벽이다. 그러니 기존의 가수들과의 비교도 의미 없다. 가끔 TV속 음악프로에서 가수의 노래에 반응해 한 두 사람의 관객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가끔 봤다. 헌데 그때 그 음악프로의 노래가사는 대부분 부모에 대한 것이라던지, 아니면 헤어진 연인에 관한 내용이었다. 헌데 송가인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것은 노래의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흥겨운 노래를 듣는데도 눈물이 쏟아지는 건 무슨 일인가? 물론 송가인의 목소리에는 오랫동안 국악을 하면서 스며든 우리네 한의 정서가 강한 것은 사실이다. 송가인의 목소리에는 흥겨운 노래를 할 때도 한의 정서가 깃들어져 있지만, 구슬픈 노래를 할 때는 역으로 목소리에 흥이 깃들여있다. 이렇듯 이율배반적인 목소리가 바로 송가인의 목소리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송가인을 향한 전 국민의 폭발적인 애정공세는 설명이 안된다.

 

   송가인만의 목소리가 가진 그 마력. 듣는 이의 가슴속을 허락도 없어 파고들어와 뒤흔들어 폭풍 눈물을 쏟게 만드는 그 힘, 누구나 그녀의 노래를 처음 들으면 송가인의 포로가 된다. 처음엔 그 이유가 송가인의 성장배경에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다고 송가인의 성장환경이 불우하거나 어두웠던 것은 아니다. 송가인의 성격이 워낙 긍정적이고 활달한 면도 있지만, 집안환경으로 봐도 부모님 두 분 다 다정다감하시고, 정과 흥이 넘치시는 분이다. 거기다 위에 두 오빠를 둔 막내였으니 온 가족의 사랑은 독차지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어쩌면 송가인의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은 그런 성장과정이 한몫했을 것이다. 가수로 데뷔하고 나서 7년간의 무명생활이 송가인의 삶에 있어 어쩌면 가장 힘든 시기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만큼 큰 굴곡이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낸 것 같다.

 

   그러니 성장과정에서의 정서가 송가인의 노래 속에 깃들었다고 추측할 수는 없다. 난 송가인이 성장과정 속에서 보고 들은 환경도 일익을 담당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송가인의 어머님은 무형문화재 제 72호인 진도 씻김굿의 전수조교이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씻김굿에 대해 잠시 알아보자. 진도 씻김국은 다른 지역과 달리 화려한 무복을 입거나 작두를 타거나 극적인 효과를 두지 않고, 진도 당골(무속인을 지칭하는 말)들은 소복을 입고 한지를 오려서 만든 넋전을 들고 굿을 한다. 씻김굿의 전 과정은 노래로 시작되어 노래로 끝난다. 씻김굿은 밤새 당골의 노래로만 이어진다. 춘향가나 심청가를 완창하는 것과 맞먹는 6시간이 걸린다. 웬만한 명창들도 춘향가나 심청가를 완창하고 나면 몇 달은 몸살이 나서 병원에 입원할 정도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난 명창도 완창은 평생 서 너 번에 불과하다. 허니 씻김굿을 진행하는 당골의 입장에서는 가히 목숨을 내놓고 하는 굿이다. 씻김굿 중 가장 중요한 대목은 종천의 마지막 대목인 길 닦음이다. 하룻밤 내내 걸리는 씻김굿은 길닦음에서 절정을 이루는데. 끊어질 듯 애절하게 이어지는 삼장개비 곡조는 굿에 참석한 사람들의 눈물을 자아내게 한다. 즉 굿의 형식은 죽은 자의 한을 소멸시키고, 극락왕생을 바라는 행위이지만. 정작 씻김굿은 산자들의 한을 치유하고 그들을 위로하는 행위이다. ‘씻김 굿씻김의 대상은 죽은 자의 원한이 아니라, 망자를 떠나보내는 산자들의 애환을 씻어주는 것이다. 굿 막판에 한바탕 눈물을 흘리고 자신의 애환을 소멸시킴으로서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한다. 이런 씻김굿을 어린 시절부터 자주 접해왔던 송가인의 잠재의식속의 씻김굿에 깃들인 한의 정서와 치유의 정서가 녹아들어갔을 것은 기정사실이다. 그렇다면 송가인이 가수로 데뷔한 초창기부터 그런 정서가 발휘되어 송가인의 노래 속에 녹아들어가 있어야 한다. 헌데 아니었다.

 

   송가인의 노래를 접한 뒤로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해 송가인의 음원을 무작위로 수집해서 들었다. 헌데 들어보니 일부노래는 지금의 송가인보다 목소리는 청아한데 지금의 노래만큼의 감동이나 울림은 없었다. 심하게 애기하면 같은 사람의 노래가 맞나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노래가 달랐다. 음원의 제작연도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유튜브의 영상이나 음원의 최초 제작연도가 명시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정식 발매된 음원을 기준으로 확인해 볼 수밖에.

 

   송가인은 총 3장의 앨범을 출시했다. 1집은 201210월에, 2집은 20165월에, 3집은 20174월에. 1집과 2집은 조은심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했고, 3집은 우리가 아는 송가인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했다. 헌데 다 알다시피 송가인이라는 이름 석자가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미스 트롯이후였다. 그렇게 오랜시간 활동을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더불어 2012년에 최초의 앨범을 냈던 송가인이 성인 가요 신인상을 받은 것은 7년이 지난 20181월 이었다. 2017년 일 년동안 3집에 실린 거기까지만1,581회 공중파를 탄 것으로 인해 성인가요 공중파 싱글 신인 여자가수 상을 받는다. 이로 미루어볼 때 송가인의 존재가 조금씩이라도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3집 앨범이 출시된 다음부터 였다. 전체 노래를 들어보니 지금과 같은 감동을 주는 송가인의 음색은 2집의 일부곡과 3집에서 보인다. 1집은 완전히 다른 노래다. 송가인의 3집에 실린 거기까지만이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하며 공중파를 타기 시작했고, 그 결과물로 데뷔한지 7년 만에 신인가수상을 수상했으며, 이후 미스 트롯을 통해 송가인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더불어 2집과 3집 사이에 이름도 바꿨다. 그럼 2집과 3집 사이에 일년동안 송가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노래의 감성 자체를 완전히 바꾸고도 남을 그 무엇은 무엇일까?? 가장 정확한 것은 송가인에게 물어보는 것이 정답이겠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 추측해볼 수밖에.

 

   여러 신화나 기독교의 성경을 보면 신이 누군가에게 위대한 일을 맞길 때 제일먼저 그들의 이름을 바꿨다. 우리가 잘 아는 예수님의 열두제자 중 첫 제자인 베드로의 원래이름은 시몬이었지만 예수님이 반석이라는 의미의 베드로로 바꿨다. 이런 예는 많다. 그래서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한사람의 삶에 있어 커다란 변화이다. ‘조은심에서 송가인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어찌 보면 가수로서는 신의 한수이다. 송가인의 이름을 풀면 노래하는 아름다운 사람이니 지금의 송가인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이름이 아닌가. 그럼 이름도 바꾸고, 노래가 가진 감성도 바꾼 그 일 년 동안에 무엇이 송가인을 그리 바꾼 것일까?

 

   길가다가 개가 방귀만 뀌어도 인터넷에 올라오는 세상이다. 혹 송가인의 1집과 2집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거나, 가슴을 울렸다는 글이 있는가 찾아봤다. 없었다. 물론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누구 한사람 정도는 지금처럼 송가인의 노래를 듣고 감동을 받았다는 글이 있을 줄 알았다. 헌데 없었다. 인터넷을 뒤지고 또 뒤졌지만, 거의 최근의 글들만 있을 뿐이다. 그러다 영상하나를 발견했다. 송가인은 가수로 데뷔하고 나서도 무대에 서서 국악공연을 한 자료는 여럿 있었다. 그중에 20153월에 진도 씻김굿 공연을 한 영상이 있다. 영상이 워낙 짧아 송가인이 진도 씻김굿을 처음부터 집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올라와있는 영상에는 씻김굿의 마지막 대목인 길 닦음이었다. 앞에서 애기한 대로 씻김굿은 길닦음에서 절정을 이루는데. 끊어질 듯 애절하게 이어지는 삼장개비 곡조는 굿에 참석한 사람들의 눈물을 자아내게 한다고 했다.. 길닦음은 굿에 참석한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그들의 슬픔을 달래주고, 그들의 마음속에 담긴 애환을 풀어주며 굿에 참석한 이들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 대목이다. 송가인이 삼장개비 곡조로 읋조리듯 진행하는 영상 속 씻김굿의 장면은 엄숙하면서도 구슬펐다. 어쩌면 이게 아닐까? 송가인의 노래가 듣는 이의 마음속으로 녹아 들어와 그들에게 위로를 주고, 그들의 마음을 휘젓는 이유가 바로 이 씻김굿의 정서가 그녀의 노래 속에 녹아들어간 것은 아닐까?

 

   심리학에서는 말한다. 성장과정에서 본인의 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성향은 뭔가 계기를 만나면 자신도 모르게 폭발적으로 발현된다. 어쩌면 송가인이 성장과정에서 보고 들으며 잠재되어 있던 씻김굿의 정서가 그녀의 마음속에 잠들어 있다가 송가인이 직접 씻김굿을 집전하면서 가슴속에 잠들어 있던 잠재의식이 발현된 것이 아닌가. 3집과 씻김굿 공연의 시간차는 씻김굿의 감성이 송가인의 노래 속에 녹아들어가 숙성되었던 시간은 아닐까? 원래 무녀가 아닌 송가인의 입장에서는 씻김굿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연습하고 또 연습했을 것이다. 천부적인 재능이 있음에도 워낙 연습벌레로 알려진 송가인이기에 상당량의 연습을 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송가인의 잠재의식 속 씻김굿의 정서가 폭발적으로 송가인의 노래 속에 녹아 들어간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우린 송가인의 노래를 들으면 그렇게 마음의 위로를 받는 것이 아닐까? 김소유와 같이 부른 진정인가요에서 보여주었던 슬픔과 설움의 경계를 오가며 외줄타기를 하듯 감정의 골짜기를 위태위태하게 지나가며 노래를 이어가는 그 마력을 송가인이 2015년에 공연한 씻김굿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조금 더 부연설명을 하자면 김소유와 같이 부른 진정인가요에서의 송가인은 자신의 파트 첫 소절에서는 슬픔, 거의 무반주인 두 번째 소절에서는 하소연, 세 번째 소절에서는 설움을 표현해낸다. 갈수록 그 강도를 더해가는 슬픔의 감정선에 원곡자인 김연자는 폭풍눈물을 쏟아낸다. 김소유가 불렀던 1절에서는 지긋히 눈을 감고 감상하던 김연자가 송가인의 두 번째 구절과 세 번째 구절에서는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설움을 폭발시켜버린 것이다. 이것이 송가인의 노래가 가진 마력이다. 이것과 유사한 것은 용두산 엘리지를 부를 때 구사한 에드립을 활용한 3단 고음이다. 김연자는 일본진출로 한참 잘나갔지만, 사람 하나 잘못 만나서 엄청 고생했다. 이렇듯 삶에 애환이 많은 이일수록 송가인의 노래에 더 많이 감동하고 더 많이 위로를 받는다)

 

   위의 형님과 대화를 나눌 때 물었다. “송가인의 노래를 듣고 무엇이 그리도 형님을 울렸는지?” 그 형님 왈 나도 몰라. 헌데 송가인의 노래를 듣는데, 그 노래 소리가 마치 누군가 내 어깨에 다정하게 손을 올리고, 참 힘들지 고생했어라며 따뜻하게 위로해 주는 느낌을 받았단다. 내가 만난 어떤 여자 분은 송가인의 노래를 들으면 따뜻한 손이 가슴을 어루만져주며 자신의 마음속 설움을 달래주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글을 쓰는 나도 처음에 송가인의 노래를 듣고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헌데 그건 슬픔의 눈물도, 기쁨의 눈물도 아니었다. 그건 치유의 눈물이었고, 위로의 눈물이었다. 한바탕 울고 나선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우린 누구나 살면서 가슴속에 많은 애환을 지니고 산다. 삶의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쌓아갈 수밖에 없는... 남자라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가장이라는 이유로,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억울하고 서러운 일이 있어도 속 시원하게 어디 가서 한번 크게 울어보지도 못하고, 하소연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며 무거운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꾸역꾸역 살아왔다. 억울해도, 힘들어도 내색하지 못하고, 제대로 위로 한번 받지 못하고, 그 모든 울음을 가슴속에 묻으며 산다. 그러다보니 세월은 가고 나이는 들었다. 이제는 몸도 예전 같지 않고 사랑하는 이들은 하나 둘 곁을 떠나고, 귓전을 흘러가는 바람한줄기에도 마음에 서리가 내려앉는다. 하지만 아직도 힘들다. 부모를 부양해야하고, 자식들은 아직 제몫을 못한다. 나이가 들어 힘도 빠지고, 여기저기 치인다. 하지만 그래도 이 악물고 살아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이 땅의 한 많고 서러움 많은 중년들이다. 헌데 어느 날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가수의 노래가 들려온다. 그 가수의 노래는 귀로 들리지 않는다. 마음으로 들려온다. 어디 들려오기만 하는가. 허락도 받지 않고 그 노랫가락은 우리네 가슴속을 휘젓고 들어온다. 그리고 휘젓고 들어온 그 노래 가락은 어느 순간 따뜻한 손길이 되어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우리의 애기를 들어 주고, 우리의 슬픔과 삶의 애환을 어루만져준다. 그것이 바로 송가인의 노래가 가진 힘이다.

 

   씻김굿은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산자를 위로하는 굿이다. 그들의 삶의 애환을 위로하고, 그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행위이다. 송가인의 노래는 씻김굿이다. 송가인의 노래는 이 땅의 중년들의 아프고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는 씻김굿이다. 이 땅의 가슴 아픈 이들을 위한 치유의 은사(恩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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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 여기. | 영화이야기 2019-09-24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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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애드 아스트라

제임스 그레이
미국 | 2019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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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720일 깊은 새벽. 아버지가 나를 흔들어 깨우셨다. TV를 보라고 깨우신 거다. 그날은 인류 최초로 달에 첫발을 디딘 역사적인 날이었다. 난 그때 국민학생이었다. 졸린 눈을 비비고 흑백TV를 마주했다. 화면속에서는 놀라운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인류가 최초로 달에 간 것이다. 그 장면은 전 세계로 생중계되었고, 흑백화면 속 흐린 화면은 심장이 벌렁거릴만큼 감동적이었다. 중계가 다 끝나고 마당으로 나왔다. 아직도 깊은 새벽이었다. 인류가 첫발을 내디딘 달은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하늘 가운데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 달을 보며 화가 났다. 왜 인류최초로 달에 인간을 보낸 나라가 대한민국이 아닌 미국인가가 그렇게 억울했다. 이다음에 커서 위대한 과학자가 되어 대한민국 최초로 인간을 달을 보내는 과학자가 되겠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서 다짐했다. 그때부터 나의 꿈은 과학자였다. 그로부터 수 십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 대한민국은 달에 인간을 보낼 정도의 기술을 갖지 못했고, 난 과학자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때의 그 다짐 때문인지 그 이후로 우주와 관련된 책이라면 닥치는 대로 봤었고, 우주를 소재로 한 영화라면 무조건 관람했다. 과학자가 되지 못한 아쉬움을 그렇게 풀었던 듯 하다. 그래서 난 수많은 영화 중 우주의 대서사시라 할 수 있는 스타워즈에 그렇게 열광하고 지금도 틈만 나면 지나간 영화를 DVD를 통해 감상하는 모양이다.

 

   이 영화 애드 아스트라는 우주 개척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영화 제목은 우리말로 하면 별을 향하여란 뜻이다. 라틴어인 "PER ASPERA AD ASTRA"역경을 헤치고 별을 향하여로 달 탐사를 수행하다 희생된 아폴로 1호의 영웅들을 기리는 말로 케네디 우주센터 기념비에 적혀있는 유명한 말이다. 우주비행사인 미 육군 소령로이 맥브라이드(브래드 피트)”는 어떠한 경우에도 심장박동이 80회를 넘어가지 않는 냉철함의 소유자다. 그는 삶에 있어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임무를 소중히 했고, 감정보다는 이성을 중시했다. 그의 냉철한 성격 때문인지 그의 부인도 그의 곁을 떠났다. 그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그의 그런 성격은 부친을 닮았다. 우주비행사였던 부친은 우주에 존재할지도 모를 또 다른 생명체를 찾기 위한 여정을 위해 해왕성으로 떠난 이후 소식이 두절되어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헌데 어느 날 그 아버지가 살아있으며, 그의 위험한 실험으로 써지현상이 자주 발생하여 지구의 안전을 위협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써지에서 자유로운 지하 통신기지가 있는 화성으로 향한다. (이 이상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언급을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인류 최대의 의문. 이 넓은 우주에 지구의 생명체 말고 다른 생명체가 있을까? 라는 의문을 소재로 영화는 풀어나간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이 넓은 우주공간에 지구에만 생명체가 존재하고, 인간 같은 지적생명체가 지구에만 존재한다는 것은 공간의 낭비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그 어딘가에 또 다른 지적 생명체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지구에 생명체가 탄생하기 까지 거쳤던 수많은 우연들이 포함되어 발생되어야 한다. 그 확률을 생각하면 또 다른 생명체가 우주에 존재할 확률 또한 극도로 낮아진다. 하지만 지구에는 그 낮은 확률로 인해 이렇듯 많은 생명체가 존재하는 우주의 푸른 구슬이 되었다. 이 영화는 우주에서 소재를 빌어 왔을 뿐 궁극적인 질문은 바로 우리의 삶을 향한다.

 

   중간중간 브래드 피트의 독백으로 영화가 진행된다.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소재들은 그의 독백에 다 깃들여 있다. 이 영화는 브래드 피트의 연기 하나로도 그 가치가 증명된다. 그는 아무 영화나 출현하는 배우는 아니다. 난 개인적으로 그가 출현한 영화중 가을의 전설을 최고로 친다. 난 그 영화이후 브래드 피트의 절대적인 팬이 되었다. 이야기가 잠시 다른 곳으로 흘렀다.

 

   영화는 지루할 수도 있다. 헐리우드식 액션물에 깃들여진 시선들에게는 아주 지루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이래야 한다. 삶에 대해 궁극의 질문을 던지고, 그걸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 그런 영화가 진정한 영화이다. 볼만한 영화가 없어 일주일에 개봉관을 2번 이상 찾던 발걸음이 뜸했는데 모처럼 좋은 영화를 만났다. 영화는 우주개척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정작 그 시선은 우리네 삶을 향한다. 우린 언제나 내일의 희망을 이야기 한다. 내일을 위해 오늘의 희생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내일이 우리에게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내일내일 하지만, 그 내일에게 버림받은 오늘은 우리네 삶에서 버림받은 시간이 되고 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 날 우리에게 내일이 없는 그날이 득달같이 찾아오면 그제서야 우린 우리에게 선물된 삶이라는 시간에 충실하지 못했음을 알게 된다. 삶이란 지금 이 순간 내가 있는 이곳의 시간들이 모아져 만든 결정체이다. 내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 지금 이순간이 내 삶이다. 내일이라는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은 누구도 보장하지 못한다. 헌데 우린 보장받지 못한 내일을 위해 오늘을 포기한다. 오늘 내가 누릴 행복을, 오늘 내가 누릴 기쁨을. 오늘 내가 누릴 즐거움을. 영화 속 브래드 피트는 말한다. “알지 못하는 것을 찾아 나서기 보단 현재 우리가 가진 것에 충실하라. 그게 우리에게 부여된 삶에 가장 충실한 일이라고. 지금 현재 이 순간 나와 같이 한 모든 것들이 삶에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영화는 우주를 소재로 빌어 와 우리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성취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나누는 사랑이라고 .삶에서 우리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일은 바로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라고.

 

   이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이 영화를 보았으면 한다. 그만큼 좋은 영화다. 영화가 끝나고 쉬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만큼 감동이 오래 이어지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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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진정한 k-pop이다 | 살아가는 이야기 2019-09-16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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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진정한 한류이고, 이것이 진정한 K-pop이다.

윤민수와 치타의 가창력이야 원래 알려져 있지만 송가인의 가창력이 결코 그들에게 지지 않는다.

 

판소리 춘향전의 사랑가를 모티브로 해서 떠나간 님에 대한 마음을 세사람의 뮤지션이 각기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했다.

 

현대와 과거가 절며하게 어울러진 편곡과 그곡을 훌륭히 소화한 세사람의 뮤지션의 콜라보레이션이 기가막히다.

 

이렇듯 과거와 현재, 국악과 현대음악이 어울려진 팝이 진정한 K-pop이다.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송가인. 윤민수, 치타의 "님아"


https://youtu.be/9deMMBdm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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