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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행복합니까? | 고전 2018-01-11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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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저/이영의 역
민음사 | 2000년 04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삶에 관해 많은 것을 생각게 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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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 그랬다. 고전이란 모두가 잘 알지만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라고.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대표작이며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이제야 만나니 말이다. 그것도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 왠지 모를 미안함에 한 문장 한 문장 더 정성스럽게 읽었다.

 

   솔제니친의 대표작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1956년에 소연방 최고재판소 군사심의관 회의에서 복권될 때까지 10년동안 작가 자신이 유형지를 돌며 경험한 수용소 생활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때의 수용소 경험은 이 작품을 비롯하여 솔제니친의 다른 작품인 암병동이나 1영역 안에서,수용소 열도등의 소재가 되었고, 현실에서 직접 목격한 역사적, 정치적 사건과 시대적 비극을 소재로 단순하고 소박한 언어로 묘사하고 있다.

 

   영하 수십도의 시베리아 한가운데에 있는 강제수용소에 수용된 슈호프. 수용소의 일과는 새벽 다섯시부터 시작된다. 아침에 기상해서, 점호, 식사, 강제노동에 동원되는 과정, 작업일정, 그 속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 등이 작가의 경험을 기반으로 지나치다시피 세세히 묘사되어 있다. 경험하지 않으면 결코 기록하기 어려운 글이다.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부족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함과 서로간의 경쟁이 존재하는 그곳도 하나의 세상이며 하나의 우주이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이 작품은 1970년 솔제니친에게 노벨상을 수여 한 작품이다. 이 작품 속에는 수용소에 수용된 여러 인간군상을 통해 소비에트 연방의 체제와 이념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다. 하지만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고, 이념보다는 자본주의의 논리가 온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지금에 와서 이념적 논쟁의 시선으로 이 작품을 바라보는 것보다는 삶의 논리로 바라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세상과 단절된 수용소의 하루를 그리고 있지만, 어쩌면 울타리가 없는 우리네 일상을 그린 작품이기도 하다. 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일터로 나가고, 일터에서 최선을 다해 하루일과를 마무리하고, 돌아와 저녁을 먹고, 저녁시간을 개인적인 소일거리로 채우다가 잠자리에 드는 우리네 일상도 그 모습만 달리할 뿐 수용소의 하루는 대동소이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우리에겐 자유가 있지만, 수용소내의 그들에겐 자유가 없다는 것만 빼고는 그들이 사는 하루와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는 같은 시간, 같은 하루이다.

 

슈호프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사회주의 생활단지>로 작업을 나가지도 않았으며, 점심때는 죽 한 그릇을 속여 더 먹었다. 그리고 반장이 작업량 조절을 잘해서 오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벽돌쌓기도 했다. 줄칼 조각도 검사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제자리 대신 순번을 맞아주고 많은 벌이를 했으며, 잎담배도 사지 않았는가. 그리고 찌뿌드드하던 몸도 이젠 씻은 듯이 다 나았다.

눈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이렇게 슈호프는 그의 형기가 시작되어 끝나는 날까지 무려 십 년을, 그러니까 날수로 계산하면 삼천육백오십삼 일을 보냈다. 사흘을 더 수용소에서 보낸 것은 그 사이에 윤년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208) 라는 마지막 문단은 이 책의 궁극적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한다.

 

   슈호프나 강제노동수용소가 아닌 곳에서 지내는 우리에게도 하루라는 시간은 똑같다. 그 하루가 슈호프처럼 행운만 있거나, 아니면 불행한 일로만 가득한 하루로 편협되어 주어지지 않는다. 슈호프는 오늘 하루가 자신에게는 더없이 행복한 하루라고 했지만, 책속의 그의 하루를 따라 가다보면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좋지 않은 일, 운이 없는 일도 있었지만 잠자리에 든 그의 뇌리에는 그 모든 기억을 뒤로하고 행복한 기억만 남았을 뿐이다.

 

   우리네 삶은 행운이라는 시실과 불행이라는 날실로 엮어진 천과 같다. 행운과 불행은 거의 같은 분량으로 삶의 매순간 우리와 조우하지만 어느 쪽에 주안점을 두느냐에 따라 삶에 대한 만족감은 다르다. 행운과 불행 중 어떤 쪽을 주관적으로 보는냐는 스스로의 선택이다. 그 선택에 의해 슈호프처럼 강제노동수용소의 정치범에게도 어떤 하루는 행복할 수 있고, 자유세상에서 좋은 음식에 좋은 옷을 걸치고 사는 누군가에게 어떤 하루는 불행 할 수도 있다

 

   오늘이라는 단어를 영어로는 Today 라고도 하고 Present day 라고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은 누군가에게는 어제처럼 반복된 일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선물 같은 날인 것이다. 구태의연한 문구를 예로 들자면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살아간 오늘은 어제 세상을 떠난 누군가에겐 간절한 내일이었다.” 똑같은 시간이지만 누군가에겐 그저 지나가는 듯한 하루였고, 누군가에겐 선물 같은 하루가 되는 것이다. 그건 누가 정해주는 것도 아니고, 오늘을 사는 우리가 정하는 것이다. 죽는 것보다 살아내는 것이 더 힘겨운 수용소에서 슈호프가 살아 낸 하루는 일상에서 살아난 우리네 하루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하고 고통스러운 하루였다. 우리네 눈으로 보기에는 행복할 수 있는 그 어떤 조건도 없었지만, 그 어느 날이 행복했고, 그런 행복한 날이 삼천육백오십삼 일이 이어지고 슈호프는 형기를 마쳤다. 수용소의 일상에서 찾아낸 소소한 즐거움이 그가 살아낸 수용소의 하루를 행복한 하루로 만들었다. 자유롭게 사는 우리네보다 더 행복한 하루로 말이다. 슈호프를 통해 솔제니친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슈호프처럼 행복하냐고!

 

PS : 모처럼 쓰는 리뷰가 근 보름이 걸렸다. 오랫동안 글을 안쓰다보니 글 한편 쓰는게 이렇게 힘들줄 몰랐다. 역시 글은 기술이 아니라, 습관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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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사람을 위한 위대한 찬가. | 영화이야기 2017-12-31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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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987

장준환
한국 | 2017년 12월

영화     구매하기

 

 택시운전사를 비롯하여 최근에 현대사의 아픈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들이 많이 개봉한다

. 그만큼 세상이 바뀌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허기야 해직 언론인이었던 최승호 PDMBC의 대표이사로 임명되어 출근하는 광경을 뉴스로 접하고는 나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웠다. 세상이 바뀌긴 바뀌는 모양이다.

 

    지나간 역사 속에 사건을 재현하는 영화를 볼 때면 그 사건에 대한 지식은 그저 활자를 통해서 접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최근에 개봉하는 현대사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그 시대를 살아온 나 같은 세대에게는 기록을 통해 만나본 먼 애기가 아니라 바로 어제의 일처럼 기억이 생생하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하자면, 1979년에 대학에 입학해서 1988년에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하는데 거의 10년이 걸렸다. 물론 중간에 지금보다는 훨씬 복무기간이 길었던 군대에 간 기간을 계산하더라도 좀 오래 걸리긴 했다. 내가 대학에 다녔던 그 시간이 우리네 현대사에 커다란 사건 사고가 많았던 때였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극적인 전환기였다. 이 영화의 소재인 1987년의 그 사건도 대학시절 직접 보고 겪은 시간이기도 하다.

 

   이 영화 1987은 제목 그대로 1987년에 있었던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소재로 한다. “탁하고 치는 억하고 죽었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이 사건과 연이어 발생한 이한열 열사의 사망사건 등이 계기가 되어 많은 국민들이 한 목소리를 내었던 6월 항쟁으로 이어졌고, 그로 인해 장기집권을 노리던 전두환 정권이 물러나고,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을 뽑던 간접선거에서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 직접선거로 바뀌었다. 어쩌면 지금 대한민국이 누리는 민주주의는 수없이 희생된 열사들의 피를 자양분 삼아 싹이 튼 것일 것이다. 많은 이들의 희생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다. 영화는 그 시절 대학생으로 직접 보고 들었던 사건을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재현해 낸다. 마치 시간여행을 통해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 것 같다. 그것은 단순히 영화가 내가 알고 있는 사건을 재현해서가 아니라,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소품들이 그 시절을 그대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유행, 그 시절의 이념, 최류탄과 백골단, 진실을 전하고자 하는 언론사, 하물며 등장하는 인물들의 패션과 소품까지도 강박관념에 걸린 것처럼 그 시간을 재현해 내었다. 이러한 모티브는 마치 그 시간을 다시 경험하는 듯한 느낌이다. 어쩌면 감독은 이런 사실적인 구현을 통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내용이 허구나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그 시간에 이루어진 진실임을 보여준다. 단순히 소품뿐만 아니라, 영화속 등장하는 인물도 주연배우뿐만 아니라, 잠시 스쳐가는 엑스트라성 인물까지도 사실감을 구현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더군다나 의외의 인물들이 깜짝 등장하여 영화의 몰입감을 더욱 더 높여준다. 이런 연출은 영화의 소재가 그저 진열장이나 액자 속에 갇힌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온전히 살아 숨쉬는 역사 속 진실이었음을 관객에게 다시 한번 각인시켜준다. 이를 통해 감독은 그 시대를 살아온 나같은 이에게는 감동을, 그 시대를 경험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진실의 눈을 뜨게 해준다. 이렇듯 눈앞에서 벌어지는 듯 현실감 있게 전개되는 화면을 보고 있자니 그때의 울분이 다시 솟구쳐 마음을 진정키 어려웠다. 흔히 역사 속 진실을 다루는 영화들이 그렇듯이 신파적인 요소들을 개입시켜 관객의 눈물을 이끌어내려는 경향들을 보인다. 헌데 이 영화는 철저히 사실관계의 나열을 통해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며 실만을 나열하듯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런 영화적 시선이 오히려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더 충실하게 한다.

   

 

    19876월 항쟁이 전 국민의 참여로 인해 직접 민주주의를 쟁취했다면 2016년의 촛불혁명은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국민들의 열망이 정권교체와 민주주의를 가져왔다. 어쩌면 19876월 항쟁이 대한민국에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위한 서막이었다면, 2016년의 촛불혁명은 민주주의의 완성이었다. 19876월 항쟁으로 직접민주주의는 쟁취했지만 그 시절 권력을 누리던 이들은 권력자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국민을 농락하고 국가를 자신들의 안위를 유지하는 수단으로만 삼았다. 그들 눈에 국민은 없었다. 하기야 지금도 지난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던 이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며 호시탐탐 자신들의 영욕을 되찾는 데만 혈안이 되어있다. 모든 것이 바뀌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1987년의 6월 항쟁과 2016년의 촛불혁명의 공통점은 바로 보통사람의 참여다. 1987년에는 넥타이부대로 상징되는 직장인들이, 2016년의 촛불혁명은 일부계층만이 아닌 가족단위의 전 국민이 전국 곳곳에서 같은 목소리를 내었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도 이상과 현상 속에서 가족들의 안위를 걱정하라는 대학생 새내기 연희가 바로 일반 서민을 대표하는 보통사람이다. 하나는 힘이 없지만, 그 하나가 뭉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이상과 현실사이에서 갈등을 느끼던 연희로 상징되는 보통사람들이 그 함성의 대열에 합세하여 같은 목소리를 내었을 때 이 땅에 민주주의를 회복되었고, 모두가 원하는 바가 이루어졌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 1987는 과거의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이 아니라, 촛불혁명의 위대한 행진에 같은 목소리를 내어 이 땅에 민주주의를 성숙시킨 대한민국의 모든 보통사람들을 위한 찬가이다.

    

   ‘한나라의 정치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의식 수준이다라고 하지 않던가.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룩하기 위해선 지난 시간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위정자들이 어떤 행위들을 했는지에 대한 진실에 접근하는 것은 그들의 진면목을 보기위해선 반드시 거쳐야할 과정이다. 국민들이 깨어있어야 위정자들도 잘못된 행위를 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현 정부에서 진행하는 진실규명을 위한 행위들은 바로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지난 시간의 진실을 아는 것, 그것이 이영화가 가진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온 나 같은 세대보다는 그 시절의 기억이 없는 젊은이들이 이 영화를 많이 보았으면 한다. 그래서 지난 시대에 권력자들이 어떤 행위들을 했는지 그 진실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권력을 가진 이들이 국민들을 두려워하고 잘못된 행위들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1987은 단순한 한편의 영화나 과거의 애기가 아니라, 2018년의 새로움을 위한 하나의 희망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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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 This is Me. | 영화이야기 2017-12-2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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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위대한 쇼맨

마이클 그레이시
미국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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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이자 마왕으로 불렸던 () 신해철이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 야기다. 자신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가 언제나 고민이었다고, 그 고민을 해결하고자 철학과에 갔지만 학문은 그런 고민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었다고. 근데 지금은 그 이유를 알았다고 했다.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사는 거라는 것을. 태어나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었기에 태어나는 순간 이미 그 목적을 달성했고 그 이후의 삶은 보너스란다. 그 보너스를 가장 알차게 쓰는 방법은 바로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그는 어느 강연회에서 말했다. “여러분 행복하세요라는 덕담과 더불어서.

 

 

 

 

 

개인적으로 뮤지컬 영화를 아주 좋아한다. 하지만 흥행에는 별 도움이 안 되는지 영화사들은 뮤지컬 영화를 그렇게 많이 제작하지 않는다. 위대한 쇼맨은 쇼 비즈니스의 창시자이자 꿈의 무대로 전 세계를 매료시킨 남자 ‘P.T 바넘의 이야기를 소재삼아 탄생시킨 오리지널 뮤지컬 영화이다. 레미제라블이후 뮤지컬 영화로 다시 돌아온 등장한 휴 잭맨은 레미제라블에서 보다 훨씬 뛰어난 수준급의 춤과 노래를 보여준다. 휴 잭맨은 이제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전문 뮤지컬 배우가 되었다. 영화는 시작하자 마자 강한 비트와 절도있는 동작으로 한순간에 영화에 대한 몰입감을 증대시킨다. 그 몰입감은 묘한 긴장감과 더불어 영화의 엔딩까지 관객을 몰고간다. 영화는 뮤지컬 영화답게 경쾌하고 활달한 음악으로 가득하다. 가난을 딛고 자신의 어릴 적 꿈을 버리지 않고 성공한 한남자의 이야기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의 음악은 빠른 템포의 힘이 느껴지며 밝음을 선사한다. 물론 한사람의 인생여정을 표현하는데 밝음만 있을 수는 없다. 실패와 어두운 이야기도 있지만 그건 더한 유쾌함을 불러들이기 위한 양념에 지나지 않는다. 더군다나 바넘이 만든 지상 최대의 써커스무대가 이야기의 배경이니 영화 전체적으로 유쾌한 분위기와 즐거움이 따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거기에 가슴에 닿는 주옥같은 대사(상상력이 부족한 이의 인생은 고달프다 등등)는 보너스다.

 

우린 모두는 성공을 꿈꾼다. 헌데 우리가 말하는 성공이란 과연 무엇일까? 부를 이루어 좋은 집에서 좋은 음식을 먹는 것? 아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대상이 되는 것? 어쩌면 이 두 가지가 우리가 흔히 성공이라고 말하는 필요충분조건일 것이다. 하지만 부와 사회적 지위가 우리 삶을 행복하게 할까? 영화는 시종일관 그것을 묻는다. 삶에 있어서 진정한 행복은 부와 사회적 지위에 있지 않다고. 진정한 행복은 다른 곳에 있다고.

 

우린 부와 세상의 인정을 위해 무한정 바쁜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성공이라고 말하는 사회적인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정작 중요한 것은 포기하고 산다. 세상적인 성공의 기준이 결코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세상이 만든 기준을 향해 달려나간다. 영화속 바넘으로 분장한 휴 잭맨도 마찬가지다. 정작 소중한 것을 외면하고 사회적 성공을 위해 달려갈 때 자신의 행복은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는다. 그래서 자신이 진정 원하는 행복을 찾아간다. 기존의 누리던 지위와 부를 뒤로 하고서 말이다. 행복은 소소한 일상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늦지 않게 깨달은 그는 진정 행복한 이이다. 하지만 우린 그렇지 못하다.

 

 

 

 

 

 

  영화 위대한 쇼맨은 나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너는 다른게 아니라, 특별한거라고 속삭여준다. 완벽해 보이는 누군가에게도 자신만의 단점과 콤플렉스는 존재한다. 단순히 특이하고 유별난 외모를 지닌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자신을 온전히 사랑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 인생에서 유일한 주인공은 오롯이 나다. 우리 모두가 얼굴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듯이 각자가 생각하는 삶의 기준과 각자가 느끼는 행복의 기준도 다르지만 우린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재단한 하나의 기준을 가지고 그 잣대를 모두에게 들이댄다. 거기서 벗어나면 특이한 것이고, 이상한 것이고, 낯선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같은 모습을 가진 이는 없다. 쌍둥이라도 다르다. 남과 다른 신체구조, 남과 다른 얼굴, 남과 다른 모습을 가진 나라는 존재는 세상에 하나뿐이다. 그 하나뿐인 존재를 인정하는 이 또한 나다. 그럼 세상의 기준은 남들이 만들어놓은 외적인 것들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는 내가 세상의 중심이고, 내가 세상의 기준이다. 내가 행복하면 그것이 세상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그의 삶은 행복한 것이다. 남들의 평가나 시선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느끼고, 내가 생각하고,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나이고, 그것이 바로 행복이고, 그것이 바로 삶이다. 그것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THIS IS ME! 우리는 누구나 특별하다.”

 

 

 

 

 

 

영화 속 음악의 완성도는 가슴을 뛰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음악이 주는 감동에 온몸에 전율이 일며 눈시울이 젖어졌다. 보기 드문 수작이다. 혹 평이 극단으로 갈렸던 라라랜드를 보고 뮤지컬 영화에 대한 그릇된 이미지를 가지고 계신분이라면(난 아주 즐겁게 보았지만...) 이 영화를 강추한다. 뮤지컬 영화에 대한 생각이 확 바뀔 테니 말이다. 거기에 삶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은 보너스다. 연말에 가족들과 동행하며 한해를 정리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P.S :  이영화의 OST는 꼭 들어보시기를 권합니다. 특히 'THIS IS ME'를 권합니다. 동영상을 올리려고 했더니 안올라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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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 | 살아가는 이야기 2017-11-17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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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이 이제 겨울의 문턱이 멀지않았음을 느끼게 하는 쌀쌀한 아침입니다.

 

잔뜩 어깨를 움츠리고 종종걸음을 치는데 눈길을 끄는 곳이 있었습니다.

 

계절을 모르고 핀 철쭉입니다.

 

겨울의 문턱에서 피어난 철쭉말입니다.

 

아마도 최근의 포근한 날씨로 인해 계절을 잊었던지, 세상을 빨리 마주하고픈 조바심에 저리 피어난지도 모르겠습니다.

 

저꽃은 알았을까요?

지금은 자신이 피어날 계절이 아니라는 걸...

하지만 어차피 피어난 것 되돌릴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피어날 계절이든 아니든 꽃으로서의 삶은 이어가야겠지요.

그시간이 그리 길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속된말로 하면 저 꽃은 시절을 잘못 만난 것입니다.

꽃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마음 한구석이 짠해지며 울컥해집니다.

눈시울이 시끈해집니다.

 

그건 감성이 여려진 탓일까요? 아님 나이탓일까요?

아니면  추워진 계절의 바람이 가슴속에 스며든 탓일까요?

 

그도 아니면

시절운을 잘못만나 찬바람에 부대끼는 꽃의 삶에

어느 누군가의 인생이 투영되어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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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앞에 청산해야 할 우리의 빚 | 영화이야기 2017-08-1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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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군함도

류승완
한국 | 2017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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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이 영화에 대해 말들이 많다. 가해자 격인 일본은 영화내용이 날조이고 역사왜곡이라고 관제 언론을 총동원하여 성토하고, 피해자중 하나인 중국은 관영 CCTV를 통해 숨겨진 흑 역사를 밝혔다고 찬사를 보냈다. 국내에서는 진실과 허구사이의 각론들이 난무하고, 스크린 독점에 대한 폐해를 부각시키고, 역사적인 아픔을 상업적인 허구로 치장했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이런 평들은 이 영화에 대한 의의를 생각할 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얼마 전 직원들과 식사하다 나눈 대화다. 직원 왈 전 이번에 영화 군함도홍보를 보고 군함도의 존재를 알았다고 했다. 내가 물었다. ‘작년인가 제 작년인가 군함도(하시마 섬)를 일본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때도 국내에서 시끄러웠는데, 그때는 몰랐냐?’ . 그랬더니 직원 왈 그때는 일본관련 일이라 관심을 두지 않아서 몰랐다고 했다. 그 직원은 40대다. 요약하자면 영화 군함도의 광고를 보고 군함도의 존재를 알았고, 그 섬에 끌려가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죽어간 한 맺힌 우리네 선조들의 애한을 알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의미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한다. 역사 속 알려지지 않은 진실을 모두가 알게 하는 것. 그것 말이다. 기억을 되돌려보면 나 또한 학창시절에 군함도에 대한 애기를 들어본 적은 없다. 역사시간이던, 다른 수업시간이던. 그저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많은 사람들이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는 정도가 내가 알고 있던 전부였다. 군함도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위안부 문제로 한참 시끄러울 때 모 방송국 TV 프로를 통해서다. 일제 36년은 고통스럽고 아픈 기억이라는 이유로 우린 그 내막을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다. 어쩌면 그 시절 동족을 배신하고 자신들의 영달과 안위를 위해 일본인들보다 더 우리를 핍박하고 이용했던 친일파나 그 후손들이 예전의 누렸던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고, 해방 후에도 자신들의 반민족 행위가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진실을 은폐하고 숨기고자 했는지 모른다. 그랬기에 친일파의 후손들은 아직도 단죄되지 않고 기득권을 유지하며 이 땅에서 또 다른 외세의 힘을 등에 지고 국민들을 핍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던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역사 속의 아픈 현실들을 들춰내고 알아가고자 하는 것은 아픔을 들춰내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픔을 제대로 알고 치유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군함도 뿐만 아니다. 얼마 전 본 박열이란 영화도 마찬가지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폭발하는 민심을 달래기 위해 조선인들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 살해한 6,600여명의 조선인이 살해당한 관동 대학살의 진실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없던 죄를 만들어 스스로 재판정에 섰던 박열의 존재도 우린 그 어느 역사책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다. 이처럼 감춰진 역사 속 진실을 깨내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 그리고 아픈 과거지만 그 과거를 제대로 들여다보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런 영화가 주는 가장 큰 의미가 아닌가 한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일제 강점기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많이 제작되고, 관객들에게 좋은 호응을 받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군함도는 단순히 일제 강점기의 힘없는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당한 아픔만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다. 영화 속 악단장 강옥의 역할을 맡은 황정민은 누가 조선인 아니랄까봐 맨날 싸움질이다.’라는 대사를 여러 번 반복한다. 또한 영화 속 오말년의 넋두리처럼 조선인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도 바로 조선인이었다. 그들을 위안부로 내보낸 이도, 강제징용으로 내몬 이도, 유곽으로 팔아넘긴 이도, 독립운동을 하는 조선인을 잡아 가두는 이도 바로 조선인이었다, 군함도에서 일본인을 위해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것도, 영화 말미 탈출하는 조선인들의 등 뒤에서 총을 쏜 이들도 같은 조선인이었다. 힘 있는 자들의 개가 되어 그들이 던져주는 먹이에 눈이 멀어 그들을 대신해서 자신의 동족을 핍박한 이들. 자신들의 안위와 이익을 위해 같은 조선인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사용했을 뿐이다. 일본인보다 더한 아픔과 고통을 선사한 이들도 같은 조선인이었다. 헌데 그들은 지난 일제 강점기에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에도 그들은 존재한다. 지금도 강대국의 앞잡이가 되어 그들을 신()인양 숭배하고, 그들에 의지해서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국민들에게는 어떤 해학이 가더라도 법과 원칙을 무시하고 강대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위정자들 말이다. 어쩌면 군함도는 일제 강점기의 아픈 기억을 되살리고 잊지 말자고 애기하는 영화가 아니라, 우리를 가장 힘들게 했던 친일파를 기억하고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들을 단죄해야 함을 일러주는 영화는 아닐까.

 

 

   역사가 없는 민족에게는 미래도 없다고 했다. 아픈 역사이지만 그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은 역사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해방 후 친일파에 대한 제대로 된 단죄가 없었기에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그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서 일제에 충성해 나라도 민족도 외면한 그들을 지금이라도 제대로 단죄하는 일이 바로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는 일이고, 후손들에게 역사의 진정한 교훈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것이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지금이라도 역사에 저지른 잘못에 대해 처벌을 해야 하는 것은 강력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없애 끝까지 그들의 죄를 묻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역사와 민족에게 잘못한 죄를 묻는 것. 그것이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청산해야할 이 시대의 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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