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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은 악행을 저질러야 쌓을 수 있는가 | 독자와 저자사이 2022-01-23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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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토지 1

박경리 저
마로니에북스 | 2012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재물을 쌓기 위해 저지르는 악행을 허용하면서 동시에 비난도 하는 칠성이의 욕망이 장차 도모할 음모의 싹을 키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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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네 번째 책맛보기입니다. 제목은 무너지는 신분제 속에 똬리 틀고 있는 음모를 감지하다입니다. 소설은 이제 최참판댁을 벗어나 마을로 내려옵니다. 최참판댁 4대 독자 최치수의 하나밖에 없는 딸 서희가 엄마를 찾아 울부짖는 이야기를 뒤로하고 마을 사람들 저마다의 운명과 애환을 풀어내기 시작합니다.

 

맨 먼저 등장하는 집은 키크고 잘 생긴 용이네입니다. 용이네 초가지붕은 정갈하지만 울타리는 너절합니다. 이는 용이가 적당히 부지런하고 적당히 게으르다는 것을 대변합니다. 용이네 마루를 질러 세운 통나무 기둥에는 퇴색된 한자 글귀가 있습니다. 초가 기둥에 한짜 글귀라니, 그것은 어쩌면 일반 백성에게까지 스며있는 유교 무늬일 수 있습니다. 부모 장수나 자식 번영, 그리고 집안의 태평 무사를 바라는 짧은 문구가 용이네 마루 기둥에 깃들게 된 사연을 소설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그 통나무 기둥에는 글귀를 알아볼 수 없게 된 단구(短句) 조박지가 붙어 있었다. ‘부모천년수자손만대영(父母千年壽 子孫萬代榮)’,아니면 천하태평춘,사방무일사 (天下太平春,四方無一事)따위다. 용이 모친이 살아 있을 적에 신행 오는 외며느리를 위해 집 손질을 하면서 마을 김훈장한테 부탁하여 써붙인 것인 듯싶다. 그러니까 십 년이 넘은 옛날의 일이겠다.

 

자그마한 몸집에 까무잡잡하고 다부지게 생긴강청댁을 새며느리 새식구로 맞이하는 시어머니의 기대와 설렘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한자 글귀가 무색하게 당시 신랑 신부였던 용이와 강청댁은 십 년도 더 지났건만 아직 자식이 없습니다. 아침나절이면 강청댁은 마당을 비질하고, 용이는 외양간 소가 배고플 때가 지나서야 여물통에 쇠죽을 퍼넣는 일로 그들 부부는 하루를 시작합니다. 두 사람은 간밤에 사이좋게 지내지 못했는지 성깔깨나 있어 뵈는강청댁은 애꿎은 닭에게 몽당비로 화풀이를 해대며 신세타령을 합니다.

 

이눔의 살림살이 탕탕 뽀사부리고, 내사 그만 머리 깎고 절에나 가서......”

 

용이 들으라는 강청댁의 넋두리는 그저 허공에 흩어지고 용이는 일언반구 대꾸가 없습니다. 용이네 집에 칠성이의 커다란 목소리가 울려퍼집니다.

 

용이이-장에 안 갈 것가아아아아

 

장날에 내다팔 짚신 꾸러미를 둘러멘 칠성이가 삽짝을 들어섭니다. 용이와 함께 장날에 갈 요량으로 말입니다. 자식이 없는 강청댁은 자식 많은 칠성이네 부부가 부럽습니다. 밤새워 짚신을 삼았을 칠성이의 부지런함도 부럽습니다. ‘강짜 심하기로는 조선 팔도에서 강청댁을 따라올 자 없다고 생각하는 칠성이에게 강청댁은 용이 흉을 늘어놓습니다.

 

임이아배는 저리 부지런한께, 임이네가 와 안 편하겠소. 입안의 쇠같이 매사를 다 처리한께 무신 근심이 있겄소. 그런께 임이네는 피둥피둥 살이 찌제. 세상에 우리집 남정네 같은 게을뱅이가 있으까. 신발 밑창 빠지는 것도 모르구마요. 도모지 내 살림이다 하는 생각이 없인께.”

 

칠성이에게 쫑알쫑알 자신의 허물을 일러바치자 용이도 질세라 부아를 참지 못하고 약을 올립니다.

 

칠성이댁네같이 이삐고 야물기만 하다믄 짚세기만 삼아줄까, 깔진도 지어주지

 

깔진은 가죽신을 말합니다. 그런데 훗날 용이는 칠성이 아내 임이네와 부부 인연을 맺게 됩니다. 이처럼 어떻게 풀려나갈지 아무도 종잡을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고 소설 [토지]는 일깨워줍니다. 그러니 인생을 함부로 살 것도 아니고 만만히 볼 것도 아니라는 것을 실감시켜 줍니다. 사람들 저마다 처한 굴곡진 삶을 어떻게 다잡아 풀어갈지 소설 [토지]는 기대하도록 만듭니다.

 

1897년 말 포근한 초겨울의 장날 용이와 칠성이는 장터로 향합니다. 용이는 닭 두 마리를 넣은 망태를 걸머지고 칠성이는 짚신 꾸러미를 울러 메고서 말입니다. 19세기 말 당시 이 땅에 사는 남자들에게 장보기는 보편적인 일상이었습니다. 장터 주막에는 용이의 사랑 착한 월선이가 있습니다. 용이가 장에 가는 날이면 강청댁의 심사가 곤두설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할 듯합니다.

용이와 칠성이는 초겨울 햇볕을 받으며 빠른 걸음을 옮깁니다. 두 사람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걷습니다. 21세기 우리들이 자연스럽게 뉴스거리를 서로 주고받듯이 말입니다. 재작년부터 실시하다가 백성들의 반발에 부딪쳐 잠시 주춤해진 단발령에 관해 칠성이가 언급합니다. 친일개화파는 단발령을 추진하고 친러수구파는 민심 수습차 단발령을 철회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세상이 하도 바삐 돌아간께 그런가, 상놈들이 날친께 그런가. 요새야 양반들도 어디 체통 채리던가? 상투도 먼지 짜르고, 서울 양반들은 홀태바지 입는다 칸께 세도도 다돼가는가 비여. 안 그렇나, 용아

 

양반의 권세가 예전과 달라졌음을 이미 백성들은 감지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신분제가 해체되고 개화기로 전환되고 있는 과도기를 살고 있는 그들입니다. 소설 [토지]의 시대적 배경이 대한제국이 선포된 1897년부터 1945년 해방까지이니 어쩌면 이 땅에서 신분제가 어떻게 와해되어가는지 그 과정을 다루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대한제국이 선포되기 전에 대대적인 동학농민봉기가 있었습니다. 봉기를 진압하는 와중에 청일전쟁이 일어났고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에 의해 명성황후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죽임을 당한 그해에 친일개화파를 통해 이 땅에 단발령은 실시됩니다.

 

쇄국의 상징인 흥선대원군이 수구파로 규정될 때 개국 개방을 주창한 고종과 명성황후 측은 개화파였습니다. 진보를 표방했던 명성황후 측이 집권하면서 기득권이 되자 가렴주구를 일삼는 부패한 수구 권력이 되고 맙니다. 백성은 들고일어나 명성황후를 벌하려 했고 명성황후는 몰래 궁을 빠져나와 달아나면서 권력 실세는 다시 대원군으로 넘어갑니다. 그 난리통이 임오군란이었습니다. 임오군란때 분노가 하늘을 찔렀던 이 땅의 백성들은 명성황후 장례식에서는 오열하는 진풍경이 벌어집니다. 이 땅의 백성들은 두루두루 정이 많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한번 마음 주고 정 준 사람이라면 무슨 짓을 일삼아도 믿고 싶어 하는 일편단심 때문일까요?

 

동학 농민 봉기의 선봉에 섰던 백범 김구는 21세이던 1896년에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일본 군인을 살해했습니다. 동학 농민을 때려잡는 능력이 출중했던 안중근은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이유로 명성황후 시해를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동학 농민, 명성황후, 김구, 안중근 등 그들 모두, 아니 우리 모두의 정체성이 애매모호해 집니다. 이 배경에는 어쩌면 권력 실세들의 은밀한 움직임이 조종하고 있는게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대륙의 끄트머리에 자리한, 열강들의 힘에 좌지우지되는 이 땅의 지정학적 위치에서 이 땅의 실존과 권력은 외교적 동맹과 깊은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이 땅에서 권력자가 된다는 것은 천운일 수 있으며, 그 권좌는 항상 위태로울 수 있고, 자칫하면 권력을 누릴 수 있는 기간이 길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그렇지만 지리산과 악양 들판을 곁에 둔 하동 평사리에 위치한 최참판댁은 4대째 최치수에 이를 때까지 그 권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5대째 최서희에 이르러서는 혈통이 여성으로 옮겨지면서 앞으로 권위를 지켜나가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서희가 어떻게 최참판댁의 부와 권위를 이어갈지 과연 이어갈 수 있을지에 주목해서 소설 [토지]를 즐기는 것도 재미날 듯합니다. 장터가는 길에 용이와 나누는 대화에서 벌써 칠성이는 별당아씨와 구천이가 종적을 감춘 최참판댁의 권위에 도전하기 시작합니다. 그 대화를 잠시 엿보기로 합니다.

 

최참판댁 그 나으리 말이다. 남사스런 일이 있읐으믄 집구석에 죽치고 있을 일이지. 와 벌렁거리고 댕기는지 모르겄더라고. 그 꼴 보니 기집이 샛서방하게도 됐더라 그 말이구마.”

입정이 와 그리 더럽노

우리네 상놈들이사 본시 못 배웠인께 예의범절 안 차린다고 무슨 죄가 되나.”

상놈은 사람 아니가. 사람우 도리는 상놈 양반 다 마찬가지다. 최참판댁 은덕으로 살믄서 헐뜯는 거 아니다

허허, 허파에 바람 들겄네. 무신 은덕고?”

조상 적부터 그 댁 땅 부쳐 묵고살믄서 헐뜯어 쓰겄나.”

야아야! 성인군자 같은 소리 마라. 고방에 쌀이 썩어나가는 기이 뉘덕고? 흥 머지않았다. 종놈이 상전 기집 뺏는 판국인데, 아 국모도 머리끄뎅이 끌고 가서 개같이 죽있다 카는데, 높은 벼슬아치들도 서울서는 몰죽음을 당했다 안 카던가? 또 민란이 나야...”

 

용이와 칠성이가 장터에 가는 초겨울쯤에는 이 땅에 독립문이 세워진 때입니다. 친중에서 친일로 넘어가던 시기인 셈입니다. 독립문에서 의미하는 독립은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라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말합니다.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이 땅이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기정사실화하는 상징물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 사신을 맞이하고 접대하던 영은문과 모화관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웁니다. ‘영은모화의 뜻은 은혜로운 중국의 사신을 환영하고 중국을 흠모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씁쓸한 것은 독립문 앞에 영은문의 기둥돌을 그대로 남겨두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친중이었던 이 땅이 친일로 넘어간 흔적일 수 있으며 이 땅이 과연 독립된 적이 언제이었던가 울적하게 만듭니다.

 

19세기 말 이 땅은 중국과 러시아가 설마 일본에 패하리라는 것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섬나라 일본은 대륙을 향한 야망을 품고서 이 땅을 잠식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섬나라 일본으로서는 덜 위태로운 생존 터전을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대륙을 품고 싶었을까요? 식량조차 구하기 힘든 추운 땅에 살던 칭기즈칸이 따듯한 곳을 찾아 악명을 날렸듯이 말입니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인지상정인듯 칠성이가 용이에게 말합니다.

 

다같이 세상에 나와가지고 우리는 평생 보리죽이란 말가?”

그리 원통커든 삼신할매보고 물어보라모. 비렁땅에 뿌린 씨는 비렁땅에서 자라기 매련이지. 내 거 아니믄 개똥같이 볼 일이지. 재물 많다고 속 편한 것도 아니더마

니 그 잘난 소리 마라! 이 칩운 날에 멀쩡한 사내놈이 짚세기 몇 키레 닭우 새끼 몇 마리 짊어지고 우죽우죽 장에 가는 꼴 좀 생각해보란 말이다. 재물이믄 육도벼슬도 한다. 내사 아둑바둑해볼라누만. 머 최참판네도 고래적부터 만석꾼이더나? 조상 적에 백성들 피 빨아 모운 재물 아니가. 흉년에 보리 한 말에 논 뺏아서 모은 재물 아니가. 돈 있인께 도둑놈도 양반이구나. 죄 안 짓고 우찌 돈을 모우노? 도리? 사람의 도리? 도리를 지키서 부자가 되나 양반이 되나. 얼매나 남의 등을 쳐서 간을 꺼내 묵는가, 그 수단에 따라 부자도 되고 양반도 되고. 아 김평산도 양반은 양반 아니가. 그 사람을 양반 대접할 놈 하낫도 없다. 돈이 없인께 그렇지.”

말이 와 그리 돌아가노. 평산이 양반 도리를 지키기 땜에 재물을 못 잡았다 그 말이가? 재물이 없어 양반 대접 못 받는다 그 말이가? 내 생각에는 가난해서 양반 대접 못 받는 게 아니고 도리를 안 지켜서 대접을 못받는다 싶은데?”

, 그거사 머 그 사람 운이 없어서......최참판네도 이제 망조 들었지, 망조 들어. 사대독자에다 이제는 비리갱이 겉은 딸아아 하나니께 절손 아니가? 아무리 삼신당을 뫼셔봐야 무신 소용 있을꼬. 젠장 자손이야 우찌 되든 내 당대에나 한분 소리치고 살아봤으믄 좋겄다!”

칠성이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재물을 쌓기 위해서는 어떤 비행이나 악행도 허용될 수 있는 것같이 말하는가 하면 또 그 악행을 저주하고 비난하고. 결국 자기 자신만을 위해 잘사는 수단이면 비록 죄악일지라도 찬양할 만한 값어치가 있다는 심보인 모양이다.

 

어깨가 딱 바라진 칠성이는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이 둘째 마디에서 잘라져 나가고 없습니다. 그렇게 된 사연을 소설 [토지]는 다음과 같이 들려줍니다.

 

보리죽 먹는 농사꾼은 되지 않겠다고 칠성이 고향을 등지고 나간 것은 그의 나이 이십 세 전의 일이었다. 몇 해 후 마을로 되돌아온 그는 장가를 들고 자식을 낳고 원치 않았던 농사꾼으로서 고향에 주질러 앉고 말았는데 마을 사람들은 돌아온 칠성이의 가운뎃손가락이 잘려진 것을 두고 뒤에서 쑥떡거렸다. 등짐 장사할 무렵, 수절하는 어느 마을 과부를 겁탈하려다 물어뜯긴 거라는 것이다.

 

책맛보기를 접으면서 칠성이와 귀녀의 신분상승 욕망이 합치된 어떤 음모가 똬리를 틀고 있음을 감지합니다.

 

리틀도서관 매주한권 휴먼터치https://youtu.be/pkDs2nWTDe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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