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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소설은 상실과 여정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2013-07-30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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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억관 역
민음사 | 2013년 07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그의 대표저서들을 읽고 있으면 소설의 중심 궤는 ‘상실’과 ‘여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엇인가를 상실한, 모든 면에서 준수한 모던한 도시남자가 상실을 찾기 위해 떠나는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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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주요 키워드는 상실이란 생각이 든다. 그의 대표저서들을 읽고 있으면 소설의 중심 궤는 상실여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엇인가를 상실한, 모든 면에서 준수한 모던한 도시남자가 상실을 찾기 위해 떠나는 여정. 이것이 무라카미 소설의 중심이지 않을까?

 

이번 작품은 작가가 힘을 빼고 쓴 소설이라고 한다. 이전의 난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되는 <1Q84>를 생각하면 쉽게 접근하고 소화할 수 있는 문체라고 생각된다. 어쩌면 작품의 무게감만 보고 있으면 기존의 대작들에 비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려하고 난해한 문체로 구성된 작품이 좋은 작품 혹은 교양 있는 작품이 아닌 만큼 이번 작품 또한 나름의 관점을 가지고 접근해 보는 게 좋을 듯하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색채가 없다는 말은 어쩌면, 현대사회를 영위하는 우리들에게도 통용되는 말이라 생각된다. 여기서 색채란 개성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자신의 자의식(자아)의 부재를 말하는 듯하다. ‘완벽하다고 생각되었던 고등학교 시절의 그룹으로부터 잘려나간 뒤부터 그는 죽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자살까지 생각한 그는 결국 살아남게 되지만 진정으로 색채가 없는, 자기주체를 잃어버린 인간이 되고 만다.

우리 또한 과정은 다르지만 비슷한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상실은 필연적이고 필수적이다. 우리가 사회를 살아감에 있어서 모든 것을 품고갈 수는 없다. 사회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내주지만 그와 같이 많은 것을 앗아간다.

 

다자키 쓰쿠루가 완벽했던 그 그룹에서 잘려나간 이유를 처음 알았을 때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는 도중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시로(유즈)가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는 소설이 끝나고 나서도 의문이다. 단지 주인공과 그의 친구들이 예상만 들을 수 있다.

하루키의 소설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세계정신이다. 인간의 의지를 뛰어넘는 세계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정신’. 우리가 운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는 운명과 어쩔 수 없는 것이 자주 등장한다. 때로는 설명이라는 객관적인 것도 의미가 없을 때도 있다(1Q84). 우리는 운명론에 대해 반감을 가지지만 하루키는 이 운명을 다르게 사용하고 있다. 조금 더 능동적인 요인으로 말이다. 시로가 자신을 강간한 사람으로 쓰쿠루를 지목한 것도, 나머지 친구들이 동조한 것도 말이다. 핀란드에서 구로와의 대화에서도 알 수 있다고 생각된다. 쓰쿠루를 좋아한 구로, 그리고 자신을 향하는 질책. 이 모든 것이 그러지 않았다면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하는 구로. 하지만 쓰쿠루는 과정과 방향이 어떻게 되었든 그 끝은 이렇게 됐을 것이라 말한다. 24시간 시로 곁에 머물 수 없는 구로이기에 결국 그녀는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구로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이다.

하루키는 거대한 힘(세계정신)을 숙연하게 받아들여 인간에게 짊어지어진 큰 짐을 덜려고 했는 것이다. 때론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큰 문제에 봉착했을 때, 자신에게 향하는 혐오를 견디기 힘들 때 세계정신이라는 어쩔 수 없는 것은 쓰러져가는 우리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 된다.

 

구로에게 했어야 하는 말. 적적한 말은 항상 뒤늦게 찾아온다는 그 말. 소설 마지막에 공개되는 그 문장은 이 소설의 한 가운데를 가로지른다.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에 휩쓸려 사라져 버리지는 않았어.”p.436

 

모두에게 상처가 된 그날의 아픔. 하지만 그 속에서도 명백한 것은 하나 있었다. 그렇게 완벽했던 그룹이라고 말하는 곳에서의 자기 자신. 서로를 강하게 믿고 의지했던, 그들을 선택했던 자신은 추억이라는 기억 속에 자리 잡는다. 시간의 가혹한 흐름, 아무리 단단히 붙잡고 있어도 휩쓸릴 수밖에 없는 시간의 흐름. 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 가슴 속에 남겨진 기억이라는 것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기억을 되뇌었을 때, 가슴 아픈 상실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잠시 잃었던 그때의 색채를 찾아갈 수 있는 실마리를 얻게 되는 것이다.

아오, 아카, 구로와의 만남을 통해 깨달은 것, 깊은 숲에서 길을 잃고 난쟁이에게 붙잡히기 전에 해야 할 것. 그것은 내 가슴으로 진정 원하는 사라를 붙잡는 것이다. 깊은 숲의 난쟁이란 바로 시간이다. 우리는 쓸데없는 자존심 혹은 두려움 때문에 중요한 것을 놓치곤 한다. 우리는 시간에 붙잡혀서는 안 된다. 신이 아니기에, 완벽하지 않기에 우리는 중요한 것을 과거로 묻어 놓아서는 안 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또 다시 상실의 아픔을, 색채를 잃게 될 것이다.

쓰쿠루는 역을 만드는 사람이다. 역은 정해진 시간에 빠르게 달리는 열차를 멈춰 세우는 역할을 한다. 외향과 그 형태가 완벽하지 않아도 역이가진 목표와 계획이 있다면 우선 존재해야 한다. 이유는 달리는 열차를 세우기 위해서이다. 이 상황 저 상황을 따져가며 그녀를 잡기에는 시간이 많지가 않다. 그녀는 달리는 열차이다. 쓰쿠루가 원하는 진정한 것은 사라라는 그녀였고 그것만으로도 족하는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을 쓰쿠루는 상실의 아픔, 여정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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