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일본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의 원작이 드디어 번역되어 첫 선을 보였다.
한 은행원이 부정 부패와 싸우며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린 이 드라마에서 한없이 주인공을 응원하게 되는 그 유명한 드라마의 원작 이케이도 준의 『한자와 나오키』의 출간은 많은 일드 매니아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버블 경제시대, 일자리도 풍요롭고 은행은 어려운 기업들을 도우며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선망의 직종으로 꼽히며 입사하면 끝까지 안정적일 수 있으리라 여겼던 시대에 한자와 나오키는 산업중앙은행에 입사하게 된다.
아버지가 경영하던 중소기업이 어려울 때 자금을 지원해 주었던 은행의 도움으로 기사회생할 수 있었고 자신도 어려움에 처한 기업을 도와주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입사했지만 세월은 그리 자애롭지 못하다.
산업중앙은행은 도쿄중앙은행으로 인수합병되고 은행은 실적을 올리기 위한 약육강식의 장으로 변모했다. 이 보이지 않는 전쟁에서 융자과 과장으로 일하고 있는 한자와 나오키는 지점장 아사노의 독촉에 떠밀려 서부오사카철강에 5억 엔을 무담보로 대출을 해 주게 되지만 몇 달 못 가 이 회사가 도산하고 모든 책임이 한자와 나오키에게 향하게 된다.
보통 직장인들이라면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노라며 자포자기하며 울분을 삼키며 은행을 떠나겠지만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는 한자와 나오키의 추격이 시작된다.
저자 이케이도 준은 『한자와 나오키』를 통해 자본주의의 흐름에 떠밀려 어느 누구도 안정적일 수 없는 직장인들의 비애를 잘 보여준다.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잠깐의 부재는 곧 조직에서 도태되어지고 소수의 사람만이 꿈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이 비정한 현실을 한자와 나오키와 동료들의 모습에서 보여진다.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나 할까.
윤태호 작가의 유명한 작품 『미생』에서 회사를 나와 자신의 사업을 경영하는 선배가 오부장에게 "직장 안은 전쟁터이고 직장 바깥은 지옥이야"라고 말한 명대사가 있다. 이 소설 『한자와 나오키』에서도 전쟁과 지옥을 오가는 슬픈 직장인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직장인으로서 많은 공감을 자아낸다.
조직 사회에서 한 개인이 몰락하는 건 매우 쉽다. 특히 한국이나 일본과 같이 위계 질서를 중요시하는 조직 사회에서 저항은 감히 꿈 꿀 수도 없다.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에서도, 분명 잘 못 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결국 직원만이 부당한 처사를 받았고 오너는 당당히 복귀했다. 정의를 쫓기엔 시간과 경제적인 압박 등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는 현실 속에 한자와 나오키는 독자들에게 시원한 사이다를 선사해준다. 그의 고군분투에 조금만 힘을 내라고 응원하게 되는 건 현실은 비록 어렵더라도 이 작품에서나마 정의가 실현되기 바라는 대리 만족이 아닐까.
『한자와 나오키』가 우리에게 또 다른 만족을 주는 이유는 이 싸움이 결코 한자와 나오키 한 명만의 싸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하는 은행 융자과 직원들과 서무행원의 도움이 있었고 몰래 소식을 전해주며 그를 응원해주는 동료 도마리와 함께 악을 추적해 가는 다케시타가 있었기에 가능했기 때문이다.
현실은 여전히 힘들지만 한 개인의 싸움이 아닌 모두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함께 싸워가는 과정은 뭉클하기까지한다.
은행을 배경으로 그려지는 이 배경은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이다.
그리고 한자와 나오키는 우리와 같은 힘없는 직장인이지만 정의를 향한 그의 모습에 많은 직장인들이 공감하며 응원을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정의는 이긴다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면 가끔은 정의도 이긴다는 것을 보여주며 시원한 사이다를 선사하는 소설 『한자와 나오키』.
1권에 이어 2,3,4권이 출간될 예정라고 한다. 앞으로 더욱 큰 악들과 싸우게 되는 한자와 나오키의 다음 여정이 더욱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