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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 증언문학가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 | 인문-사회-철학 2018-09-27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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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주기율표

프리모 레비 저/이현경 역
돌베개 | 2007년 0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2018년 읽은 최고의 책 후보작품. 평생 간직하고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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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증언문학가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




표지가 책 제목과 딱 닮았다. 짙은 남색의 표지는 정갈하고 단단하다. 그러나 밝아서 공포감을 줄여주며 분노를 잠재워준다.

 

은색으로 구획을 나누고 프리모 레비의 작가 이름을 흘림체로 흩어 놓아 규칙성과 자유로움을 동시에 연출했다.

 


 

표지는 이 책의 성격을 한 마디로 표현해준다. 만지면 단단한 멍울처럼 아픔이 느껴지지만 그 속에는 부드럽고 밝은 생살이 심장 고동과 함께 물처럼 흐르고 있다.

 

프리모 레비와 관련된 책으로는 추천도서로 올렸던 서경식의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를 시작으로, 프리모 레비의 저작 이것이 인간인가에 이은 세 번째 책이었다. 현재는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네 번째 책으로 읽고 있다.

 

이것이 인간인가는 실제 아우슈비츠에서 생활한 경험을 토대로 쓴 글이어서 책 표지의 구부린 사람처럼, 인간적인 생활을 하지 못한 수용소의 참상에 초점에 맞추어져 있었다면, “주기율표는 자신의 전공인 화학 주기율표를 하나씩 표제로 내세워 다양한 기억들을 소환하며 자유롭게 쓴 글이다.

 

실제로 프리모 레비의 저작 중 가장 많은 인기를 얻었다는 말처럼, 나에게도 주기율표작품이 참으로 좋았다. 아르곤, 수소, 아연, , 칼륨, 니켈, , 수은, , , 세륨, 크롬, , 티타늄, 비소, 질소, 주석, 우라늄, , 바나듐, 탄소의 21개 화학원소를 제목으로 놓고 자신의 유년시절, 전쟁시절, 수용소 시절, 수용소 이후 시절 등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모든 장면들을 무차별로 불러내어 이야기를 이어간다. 뒷표지의 표현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지루하지 않고 담백하고 생경하며 즐겁기까지 하다.

 


 

뉴욕타임즈가 치유의 힘과 평정의 힘, 화려한 상상력이 낳은 걸작!”이라고 평가한 말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책 제목만 보고는 화학책 아니냐고 질겁하는 사람이 있지만, 화학은 매개체일 뿐 책은 그의 머릿속 기억과 창조력이 무한하게 펼쳐진 진솔되고 아름다운 한 삶의 이야기다.

 

그의 작품 주기율표가 아름다운 건 그가 아우슈비츠 생존작가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그만의 글들이 슬프게도 우릴 맞이한다. 그의 과거와 미래와 현재를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린 그의 글, 단어 하나하나 읽으며 그와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내 감방에는 희미한 전등불이 하나 있었는데 밤에도 켜 있었다. 겨우 글씨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빛이 희미했지만 그래도 나는 쉴 새 없이 독서했다. 내게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기율표, 197)

 

이 글을 읽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그리고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자신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음을 알고 쉴 새 없이 독서했다는 그를 떠올려 본다.

 

내 감방에는 쥐가 한 마리 있었다. 쥐는 곧 내 친구가 되었지만 밤이 되면 내 빵을 갉아먹었다.”

(주기율표, 197)

 

내 먹을 양식을 빼앗아 먹는 친구라니. 그런 친구라면 친구라 불러선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프리모 레비는 외로워서 쥐를 친구 삼았다. 마음을 나눌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배구공에 눈코입을 그려놓고 친구 삼았던 주인공을 기억한다. 그리고 탈출하는 과정에서 윌리를 놓쳐 버리자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비명을 질렀던 것도 기억한다. 결코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었다.

 

산다는 것. 견딘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혹독한 일인지 저자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담담하게 자신의 삶을 가락으로 풀어 놓았다. 그가 가장 혼란스러워했던 장면은 바나듐편에 나온다. 나는 그가 왜 자살했을까를 생각할 때, 이 뮐러 박사와의 관계에서 유추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프리모 레비가 아우슈비츠에서 기적적으로 화학 전공자로 인정받아 연구소에서 일하게 될 때 만난 뮐러 박사가 나중에 프리모 레비가 취업한 회사의 거래 고객이 되어 편지를 주고 받게 된다. 그리고 뮐러 박사는 프리모 레비의 저작물도 읽은 상태였다. ‘이것이 인간인가에 나온 사람이 자기가 맞다고 확인도 해 주었다. 프리모 레비는 당시 상황에 대해 뮐러 박사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는데, 결국 자신의 생각과 같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아마도 그것이 그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우슈비츠라는 불합리하고 비인도적인 상황을 현장 연구소 담당자로서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판단, 그리고 그것이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허망함, 그 시선과 결론이 도처에 퍼져 있고 결코 자신의 시선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이 사회에 대한 절망, 그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의 아름답고 즐거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물론 아우슈비츠의 끔찍한 기억도 있고, 가슴 아픈 이야기도 있지만, 그가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하고 나서 어떻게 살아갔는지, 그의 생존했던 삶의 이야기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엿볼 수 있다. 그는 떠나고 없지만, 그의 작품은 영원할 것이다. 결코 밝혀지지 않을 것 같았던 나치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잔인함을 세상은 그의 글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주기율표는 그의 이름표와 같다. 짙지만 밝은 남색 표지처럼 어둡고 고통스러웠지만 다시 태어났던 고향으로 돌아와 그의 삶을 이어간 프리모 레비의 밝은 삶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책이다. 고이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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