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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걷기예찬] | 비소설 2018-10-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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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걷기예찬

다비드 르 브르통 저/김화영 역
현대문학 | 2002년 0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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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걷기예찬]



 

학창시절에 열심히 외운 문장들이 있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우보 민태원 작가의 수필 청춘예찬1930년대 일제 강점기 아래 작성된 글임에도 불구하고 청춘들의 꿈을 무한대로 끌어올렸다.

 

청춘(靑春)!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鼓動)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汽罐)과 같이 힘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다. 청춘의 끓는 피가 아니더면, 인간이 얼마나 쓸쓸하랴? 얼음에 싸인 만물은 얼음이 있을 뿐이다. (청춘예찬 시작부분)

 

또 수필가 이양하의 신록예찬은 어떤가.

 

그러나 이 짧은 동안의 신록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참으로 비할 데가 없다. 초록이 비록 소박(素朴)하고 겸허(謙虛)한 빛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때의 초록은 그의 아름다움에 있어, 어떤 색채에도 뒤서지 아니할 것이다. 예컨대, 이러한 고귀한 순간의 단풍(丹楓) 또는 낙엽송(落葉松)을 보라. 그것이 드물다 하면, 이즈음의 도토리, 버들, 또는 임간(林間)에 있는 이름 없는 이 풀 저 풀을 보라 그의 청신한 자색(姿色), 그의 보드라운 감촉, 그리고 그의 그윽하고 아담(雅淡)한 향훈(香薰), 참으로 놀랄 만한 자연의 극치(極致)의 하나가 아니며, 또 우리가 충심으로 찬미하고 감사를 드릴만한 자연의 아름다운 혜택의 하나가 아닌가? (신록예찬 마지막 부분)

 

그것이 청춘이든, 신록이든 우리는 푸르른 것을 찬양하기에 아낌이 없다. 나아가 청춘과 신록을 합친 걷기 예찬은 내 삶에 찾아온 세 번째의 큰 기쁨이었다.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 걷는다는 것은 잠시 동안 혹은 오랫동안 자신의 몸으로 사는 것이다. (걷기 예찬 첫 문장)

 

걷기예찬의 첫 문장은 청춘예찬의 첫 문장과 비교해 손색이 없다. 청춘예찬이 첫 문장으로 피끓는 청춘들의 가슴을 자신 밖의 세계로 활짝 열어젖혔다면, 걷기예찬의 첫 문장은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길과 조우하되 그 속에서 자신과 만날 수 있도록 시선과 생각을 내면의 세계로 깊이 열어젖혔다.

 

걷기예찬을 걸으면서 읽을 수가 없는데 이것이 가장 큰 모순이다. 읽기 위해서는 앉아야 한다. 하지만 방법이 하나 있으니 걷다가 걷기예찬을 읽는 것이다. 만약 날씨 좋은 날이라면 한참을 걷다가 벤치에 앉아 이 책을 펼쳐보라.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청춘예찬이나 신록예찬과 비교할 수 없는 걷기예찬은 그것이 한 권의 책이기 때문이다. 앞선 두 예찬은 한 편의 수필로 그 길이가 얼마 되지 않지만 걷기예찬은 그런 수필이 200쪽 넘게 이어진다. 그런 수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쪽을 이루어가는 한 편의 수필들이 그만큼 완성도가 높고 매번 청춘예찬을 읽는 것처럼 나의 가슴을 뛰게 만들기 때문이다.



 

역자의 글을 읽어보면 이 책이 어떻게 우리 한글로 번역되어 왔는지를 알 수 있다. 실로 기막힌 우연, 기막힌 선택에 의해 우리나라에서 번역본이 나오게 되었는데 그 점에 대해서는 이 책을 고르고 번역해준 김화영 교수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가 기적을 믿는다면 김화영 교수가 프랑스 서점에서 이 책을 만나게 된 그 우연의 일치가 아닐까. 책도 한국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났고, 교수도 이 책을 만나고 싶어 안달이 났던 것이다.

 

작가 다비드 르 브르통 교수는 걷기의 최고로 혼자 걷기를 꼽는다. 혼자 걷기가 왜 으뜸 걷기인지는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나도 완전히 동의하는 바이다. 그래서 최근 점심을 먹고 나면 3킬로미터 정도를 탄천길따라 걷기를 하였다. 혼자만의 이 시간. 나는 생각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기도를 읊조리고, 관찰하고 소리들을 듣고 냄새들을 맡는다.



 

작가는 책 속에서 말 그대로 걷기에 대한 모든 것을 사색한다. 혼자 걷기는 물론 여럿이 걷는 것, 산책하는 것, 탐험하는 것, 도시에서 걷는 것, 순례자로 걷는 것을 경험과 문헌과 역사를 통해 공유한다. 걷는 행위가 어떻게 우리 몸의 가장 중요한 행위가 되는지 숨김없이 토로한다.

 

주옥같은 명문장들이 너무 많아 밑줄을 그으려고 하면 책이 몽땅 밑줄로 도배될지도 모르겠다.

 

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다.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온전하게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때 경험의 주도권은 인간에게 돌아온다. ... 걷기는 시간과 공간을 새로운 환희로 바꾸어놓는 고즈넉한 방법이다 ... 걷기는 어떤 정신상태, 세계 앞에서의 행복한 겸손, 현대의 기술과 이동수단들에 대한 무관심, 사물에 대한 상대성의 감각을 전제로 한다. (걷기예찬 21)

 

걷기예찬은 책을 읽음과 동시에 걷기를 실천하게 하는 실천문학책이다. 발이 근질거려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이 아름다운 문장들을 읽고 어떻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토록 많은 길들, 마을들, 도시들, 산과 숲들, 바다와 사막들이 있는 한 그곳에 이르고 그곳을 느끼고 그곳에 도달한 기쁨 속에서 우리의 기억을 껴안기 위한 그토록 많은 코스들이 또한 열려 있는 것이다.

 

오솔길, , 모래, 바닷가, 심지어 진흙탕이나 바위까지도 우리의 몸과 어울리고 존재한다는 희열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존재한다. (걷기예찬 261쪽 마지막 문장)

 

걷기는 예찬받아 마땅한 행위다. 발이 살아있는 한, 길이 저기에 있는 한, 우리는 걸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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