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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미세먼지 매우 나쁨 | 시인의 방 2018-11-29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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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매우 나쁨]


미세먼지 매우 나쁨
마스크를 챙겨 주머니에 넣었다
급하게 나오면서 헤드폰을 움켜쥔다

이어폰이 고장나 작은 헤드폰을 들고 나왔다
휴대폰 음악 단자에 헤드폰 입력단자를 꽂고
헤드폰을 귀에 착용했다
찰랑거리는 피아노 건반소리가 세상의 소리를 차단한다
차소리, 사람소리, 기침소리, 바람소리가 작아졌다
약한 평안이 소리없이 찾아온다

멀리서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뀐다
하늘이 부옇다
미세먼지 매우 나쁨
초미세먼지 매우 나쁨
뛰면서 하얀 마스크를 꺼냈다
귀에 걸려고 했으나 귀는 헤드폰이 점령하고 있다

헤드폰을 벗어 목에 걸고
얼굴보다 하얀 마스크
귀걸이 부분을 귀에 걸고
콧잔등 금속을 눌러 코맞춤을 했다
내 얼굴 크기를 어찌 아는지 마스크도 딱 맞았다
다시 헤드폰을 귀에 덮었다
끊어졌던 음악이 이어진다

버스를 타고
흔들거리는 음악을 듣는다
버스 안내 목소리는 음악보다 세다
음표 사이를 뚫고 정확한 위치를 안내한다
버스에서 내려 지하로 또 내려간다

지하철에서는 책을 읽을 수 있다
팔을 비틀어 백팩 가방을 등에서 빼어내고
앞으로 가져온 뒤 가방 지퍼를 연다
희끗희끗 빛바랜 안경집에서 소중한 안경을 꺼낸다
지하철은 한 정거장 앞에서 이곳으로 달려 오고 있다

안경 역시 또 하나의 마스크인데
얼굴을 가리면서도 가리지 않는다
안경을 쓰려니 헤드폰을 벗어야 한다

헤드폰을 벗어 목에 걸고
내 얼굴보다 하얀 마스크를 귀에서 벗겨내 주머니에 넣고
안경다리를 귓등에 걸고
다시 헤드폰으로 귀를 덮는다

책을 꺼내고 샤프를 꺼내 밑줄 그을 준비를 한다
편안하게 숨을 쉬며,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다
덜컹거리며 한 줄씩, 한 문단씩,
새로운 세상으로, 알려지지 않은 감정으로 뛰어들어간다

지하철에서 내리면서
백팩 가방에서 팔을 비틀어 꺼내고
앞으로 돌리고 가방 지퍼를 연다
책을 옆으로 눕혀 가방에 편안하게 넣고
다시 헤드폰을 벗어 목에 걸고
안경을 벗어 가방에서 안경집을 찾아 집어넣는다
다시 하얀 마스크를 주머니에서 꺼내고
귀걸이 부분을 귀에 건 뒤 콧잔등을 맞추고
다시 헤드폰으로 귀를 덮고
에스켤레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온다

멀리 빌딩이 보인다
걸어서 4층까지 올라간다
사무실이 가까워지면
다시 헤드폰을 벗어 목에 걸고
다시 마스크를 귀에서 벗겨내어 주머니에 넣고
마지막으로 헤드폰 입력단자를 휴대폰 음악단자에서 빼낸다
그렇게 끝이 난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으니
창밖은 곧 비가 올 것처럼 부옇다
미세먼지 매우 나쁨이다
오늘은 하늘이 잘 보이지 않는다
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 햇볕 없는 창가
그러나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둔다
  
2018.11.28. 후조 요나단 이태훈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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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제부도에서 | 시인의 방 2018-02-11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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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부도에서>


겨울 제부도는
갈매기가 주인이다

낮은 바다 점령한 채
파도 소리에 맞춰 군무를 춘다

얼어버린 바다는
하얀 눈이 겨울만큼 쌓여 있고
파도는 그 경계까지만
마중을 나온다

눈에 파묻힌 돌섬은 마침내
모델의 자태로 숨을 멎게 한다
흰 눈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갈매기들은
저마다 종종걸음으로 햇빛을 쬐고
조울다 가끔씩 날개를 편다

와, 크다
꼬마의 외침에
큰 날개 낮게 흔들며
노란 부리 가볍게 까닥이며
무심한 인사를 건넨다

갈매기 사라진 하늘엔
햇발 가득 오후가 걸려 있다

겨울바다는 멀리 있지만
깊은 파도는 끝이 없고
갈매기들은 조용히 발목을 담근다

바다 속으로 깊이 들어온 날
바다도 깃털에 얼굴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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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겨울 아이 | 시인의 방 2017-12-19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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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아이

 
 
아기가 태어난 그날
아버지는 웃었을까 울었을까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알지만
모든 아기도 죽는다고 말할  있을까요
 
언젠가는, 우리 모두는, 결국, 죽을 거야, 아니라면
우리 아기도 죽을 거야, 아는 
아버지는, 아기가 태어난 그날
웃었을까요 울었을까요
 
나는 신이
웃음을 향처럼 머금었지만 슬픔을 기침처럼 토해낸 
울면서 태어났습니다
너무 추워요
없는 이를 딱딱거리며
콧물을 훌쩍이며 태어났습니다
너무 추워서 아픈 날에


2017.12.19.
요나단, 후조 이태훈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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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 시인의 방 2017-11-0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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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포도 한 송이
다 먹고서야 알았네

작은 포도가
커다란 나무였음을

2017.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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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 시인의 방 2014-12-1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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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물만 마셔도 시린 이
바람만 불어도 신경 드러난 잇몸마냥
빨갛게 아프다


평생 비바람
눈보라 털어내며
뿌리 박은 줄 알았는데
파고드는 햇살 깊이 달라질 때마다
서로 다른 몸살, 계절마다 앓았다


꽃인 줄 알았는데
그림자였고
노래인 줄 알았는데
구름이었다


격한 노래 뿌리로 삼켜
이제는 흙이 되고 바위된 줄 알았는데
밤새 뜬눈 뒤척이며
산 하나도 벗어나지 못한


나는, 풀잎이었다

(2014.12.18. 요나단 이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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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 시인의 방 2014-10-22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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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미안하구나
제 가슴 태우는 네 붉은 단풍이 아름답다고만 생각했지
마지막 피 흘리는 고통의 시간임을 알지 못했구나

미안하구나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이파리들이 낭만 있다고만 생각했지
마지막 온기까지 다 뺐기고 죽음으로 인사하는 줄을 알지 못했구나

미안하구나
봄이 되면 저절로 초록빛 순한 잎 피워 올리는 줄로만 알았지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발끝부터 머리 꼭대기까지 단식으로 버텨낸 생존인 줄은 알지 못했구나

미안하구나
건강검진 한다고 밥 한 끼 굶어도 이리 
어질어질하고 죽을 것만 같은데
살기 위해 죽음 택하는 독하디 독한 너희를 
바람 불면 날아가는 가벼운 족속인 줄 알았구나

아직 살아 숨 쉬는 것만 같아
고운 단풍 책갈피에 곱게 펴 놓으면
햇살 따스한 날에
혹시 봄 나비로 부활하지 않을까
단식 끝내는 바로 그 날에

2014.10.20. 요나단 이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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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무-세월호 150일에 부쳐 | 시인의 방 2014-10-22 19:32
http://blog.yes24.com/document/7834709 복사 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9월12일이면, 진도 앞바다에, 팽목항에 슬픔을 정박한 지 어느새 150일이 됩니다. 하루가 영원 같은, 실핏줄 투명해진 아픈 영혼들을 생각합니다. 어서 빨리 모든 것이 걷히고 제 색깔을 찾고 다시 하나의 풀잎, 하나의 웃음이 되면 좋겠습니다.

<해무>
안개는 점점 짙어지고, 점점 어두워져, 이제는 너나 구분이 없어졌구나. 바다 건너 저편에는 사랑하는 부모님, 아들, 딸들이 조용히 누워 있는데, 처음에 해무는 내 사랑하는 이들을 받쳐주는 사랑이었고, 진실이었는데, 안개는 점점 짙어지고, 점점 어두워져, 이제는 너나 구분이 없어졌구나. 너와나는 언제부턴가 피아가 되었고, 서서히 이편과 저편으로, ‘너 와 나’가 되어,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또 바다는 침묵에 빠졌구나. 침묵은 영혼의 굶주림 속에 하나둘 지쳐갔고, 가족을 찾아 바다 속으로 몸을 던지는 또 다른 생명들도 숨을 헐떡이며 지쳐갔고, 가라앉은 해무는 점점 커지고 점점 부풀어 올라 이제는, 너는 나에게 숨겨지고, 묻어지고, 변색되고, 다시 채색되고, 너를 알아볼 수 없는 나, 나를 알아볼 수 없는 너가 되어, 아, 그렇게 돌아오진 않겠지. 저편이 되어 나에게로 돌아오지는 않겠지. 언젠가는 걷히겠지. 걷히겠지. 그렇게 가을은 오고 또 눈발이 해무를 뚫고 바다 속으로 바다 속으로 네 명찰을 찾아 얼굴과 얼굴을 부비고 황홀한 키스를 하겠지. 아, 내 사랑이여. 이제는 돌아오려무나. 안개를 걷고 바람처럼 내게 안기려무나. 하늘의 티끌이 되기 전에, 내가 먼저 사라지기 전에.


(2014.09.12. 하루가 영원 같을 150일째에. 작은 시인, 요나단 이태훈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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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게 | 시인의 방 2012-04-05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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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게

 

무심했다

가지치기라며 팔다리 잘라내도

그 정도 아픔은 참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햇살 푸르니까

강 파헤치고 돌로 막아도

실뿌리 뻗어내려 스스로 살아나리라 믿었다

외다리로 움직이지 않는 것은

주어진 운명이라

그저 감내하며 축복으로 여기라 했다

인간이라는 우월감으로

너를 죽이고 살리고 옮겨댔다

아들의 딸의, 그 아들의 딸들이 너를 만날 수 있다는 걸

까마득하게 잊고서 말이다

늘 하늘 향해 노래하고 기도한다는 걸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렇게 완전하게 아름다웠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도 못한 채

우리는 사라질 것이면서 말이다

 

2012.04.05. 요나단 이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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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reset) - 2012 새해를 맞으며 | 시인의 방 2011-12-31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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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reset)
      - 2012 새해를 맞으며

5
4
3
2
1
0이 되는 그떄
모든 사람이 다시 평등해지는 그때
당신의 짐을 리셋하라
주홍같이 붉은 죄가
흰눈처럼 되는 그때
모든 사람에게 같은 365일이 다시
은혜로 주어지는 그때
지갑 속에 두툼한 선물로 들어오는 그때
당신의 시간을 리셋하라
다시 시작하라
포기하지 마라
앞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자들도 실상
타원형 트랙에서 바깥에 서 있는 자들이니
쫄지마라
하나님께서 흰눈처럼 모든 것을 덮고
다시 시작할 새로운 시간을
새로운 포도주를
꽉꽉 눌러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축복의 잔이니
겸손떨며 사양하지 마라
덥석 받고 냉큼 마셔 버려라
스윽 입가 훔치며 가슴을 탕탕 쳐라
이제 모든 것은 똑같아졌다고
다시 한번 해보자고
햇살에 반짝거리는 하얀 출발선에
쾅쾅 두 발로 뛰어 다가서라
리셋.
내 영혼은 깃털만큼 가벼워졌다

 

 

2012. 01. 01.
요나단 이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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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오면 | 시인의 방 2011-12-07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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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오면

 

 

나를 위한

첫눈이 필요해

죄없어 순결하고

나의 죄마저 모다 덮어버리는

1년치 허물 몽땅 태워버리는

나를 위한

첫눈이 필요해

그 날이 오면

모든 죄인들이 풀려나고

모든 가난한 자들이 희망을 품고

모든 힘든 자들이 쉼을 얻으리

그 날이 오면

나는 기뻐 춤을 추고

나는 기뻐 노래 부르고

나는 기뻐 죽을지도 몰라

 

첫눈이 오면

나는 다시 사랑에 빠질 거야

온 몸 깊숙이 눈 속에 묻어 버리는

다시는 뾰족머리 내밀지 않을

함몰된 사랑

첫눈이 오면

온 세상 뒤덮는 당신이 오면

아아, 나는 그렇게 사랑에 빠질 거야

 

2011년 12월 7일

요나단 이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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