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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제부도에서 | 시인의 방 2018-02-11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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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부도에서>


겨울 제부도는
갈매기가 주인이다

낮은 바다 점령한 채
파도 소리에 맞춰 군무를 춘다

얼어버린 바다는
하얀 눈이 겨울만큼 쌓여 있고
파도는 그 경계까지만
마중을 나온다

눈에 파묻힌 돌섬은 마침내
모델의 자태로 숨을 멎게 한다
흰 눈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갈매기들은
저마다 종종걸음으로 햇빛을 쬐고
조울다 가끔씩 날개를 편다

와, 크다
꼬마의 외침에
큰 날개 낮게 흔들며
노란 부리 가볍게 까닥이며
무심한 인사를 건넨다

갈매기 사라진 하늘엔
햇발 가득 오후가 걸려 있다

겨울바다는 멀리 있지만
깊은 파도는 끝이 없고
갈매기들은 조용히 발목을 담근다

바다 속으로 깊이 들어온 날
바다도 깃털에 얼굴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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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겨울 아이 | 시인의 방 2017-12-19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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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아이

 
 
아기가 태어난 그날
아버지는 웃었을까 울었을까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알지만
모든 아기도 죽는다고 말할  있을까요
 
언젠가는, 우리 모두는, 결국, 죽을 거야, 아니라면
우리 아기도 죽을 거야, 아는 
아버지는, 아기가 태어난 그날
웃었을까요 울었을까요
 
나는 신이
웃음을 향처럼 머금었지만 슬픔을 기침처럼 토해낸 
울면서 태어났습니다
너무 추워요
없는 이를 딱딱거리며
콧물을 훌쩍이며 태어났습니다
너무 추워서 아픈 날에


2017.12.19.
요나단, 후조 이태훈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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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 시인의 방 2017-11-0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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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포도 한 송이
다 먹고서야 알았네

작은 포도가
커다란 나무였음을

2017.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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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 시인의 방 2014-12-1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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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물만 마셔도 시린 이
바람만 불어도 신경 드러난 잇몸마냥
빨갛게 아프다


평생 비바람
눈보라 털어내며
뿌리 박은 줄 알았는데
파고드는 햇살 깊이 달라질 때마다
서로 다른 몸살, 계절마다 앓았다


꽃인 줄 알았는데
그림자였고
노래인 줄 알았는데
구름이었다


격한 노래 뿌리로 삼켜
이제는 흙이 되고 바위된 줄 알았는데
밤새 뜬눈 뒤척이며
산 하나도 벗어나지 못한


나는, 풀잎이었다

(2014.12.18. 요나단 이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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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 시인의 방 2014-10-22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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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미안하구나
제 가슴 태우는 네 붉은 단풍이 아름답다고만 생각했지
마지막 피 흘리는 고통의 시간임을 알지 못했구나

미안하구나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이파리들이 낭만 있다고만 생각했지
마지막 온기까지 다 뺐기고 죽음으로 인사하는 줄을 알지 못했구나

미안하구나
봄이 되면 저절로 초록빛 순한 잎 피워 올리는 줄로만 알았지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발끝부터 머리 꼭대기까지 단식으로 버텨낸 생존인 줄은 알지 못했구나

미안하구나
건강검진 한다고 밥 한 끼 굶어도 이리 
어질어질하고 죽을 것만 같은데
살기 위해 죽음 택하는 독하디 독한 너희를 
바람 불면 날아가는 가벼운 족속인 줄 알았구나

아직 살아 숨 쉬는 것만 같아
고운 단풍 책갈피에 곱게 펴 놓으면
햇살 따스한 날에
혹시 봄 나비로 부활하지 않을까
단식 끝내는 바로 그 날에

2014.10.20. 요나단 이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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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무-세월호 150일에 부쳐 | 시인의 방 2014-10-22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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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2일이면, 진도 앞바다에, 팽목항에 슬픔을 정박한 지 어느새 150일이 됩니다. 하루가 영원 같은, 실핏줄 투명해진 아픈 영혼들을 생각합니다. 어서 빨리 모든 것이 걷히고 제 색깔을 찾고 다시 하나의 풀잎, 하나의 웃음이 되면 좋겠습니다.

<해무>
안개는 점점 짙어지고, 점점 어두워져, 이제는 너나 구분이 없어졌구나. 바다 건너 저편에는 사랑하는 부모님, 아들, 딸들이 조용히 누워 있는데, 처음에 해무는 내 사랑하는 이들을 받쳐주는 사랑이었고, 진실이었는데, 안개는 점점 짙어지고, 점점 어두워져, 이제는 너나 구분이 없어졌구나. 너와나는 언제부턴가 피아가 되었고, 서서히 이편과 저편으로, ‘너 와 나’가 되어,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또 바다는 침묵에 빠졌구나. 침묵은 영혼의 굶주림 속에 하나둘 지쳐갔고, 가족을 찾아 바다 속으로 몸을 던지는 또 다른 생명들도 숨을 헐떡이며 지쳐갔고, 가라앉은 해무는 점점 커지고 점점 부풀어 올라 이제는, 너는 나에게 숨겨지고, 묻어지고, 변색되고, 다시 채색되고, 너를 알아볼 수 없는 나, 나를 알아볼 수 없는 너가 되어, 아, 그렇게 돌아오진 않겠지. 저편이 되어 나에게로 돌아오지는 않겠지. 언젠가는 걷히겠지. 걷히겠지. 그렇게 가을은 오고 또 눈발이 해무를 뚫고 바다 속으로 바다 속으로 네 명찰을 찾아 얼굴과 얼굴을 부비고 황홀한 키스를 하겠지. 아, 내 사랑이여. 이제는 돌아오려무나. 안개를 걷고 바람처럼 내게 안기려무나. 하늘의 티끌이 되기 전에, 내가 먼저 사라지기 전에.


(2014.09.12. 하루가 영원 같을 150일째에. 작은 시인, 요나단 이태훈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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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게 | 시인의 방 2012-04-05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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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게

 

무심했다

가지치기라며 팔다리 잘라내도

그 정도 아픔은 참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햇살 푸르니까

강 파헤치고 돌로 막아도

실뿌리 뻗어내려 스스로 살아나리라 믿었다

외다리로 움직이지 않는 것은

주어진 운명이라

그저 감내하며 축복으로 여기라 했다

인간이라는 우월감으로

너를 죽이고 살리고 옮겨댔다

아들의 딸의, 그 아들의 딸들이 너를 만날 수 있다는 걸

까마득하게 잊고서 말이다

늘 하늘 향해 노래하고 기도한다는 걸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렇게 완전하게 아름다웠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도 못한 채

우리는 사라질 것이면서 말이다

 

2012.04.05. 요나단 이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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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reset) - 2012 새해를 맞으며 | 시인의 방 2011-12-31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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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reset)
      - 2012 새해를 맞으며

5
4
3
2
1
0이 되는 그떄
모든 사람이 다시 평등해지는 그때
당신의 짐을 리셋하라
주홍같이 붉은 죄가
흰눈처럼 되는 그때
모든 사람에게 같은 365일이 다시
은혜로 주어지는 그때
지갑 속에 두툼한 선물로 들어오는 그때
당신의 시간을 리셋하라
다시 시작하라
포기하지 마라
앞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자들도 실상
타원형 트랙에서 바깥에 서 있는 자들이니
쫄지마라
하나님께서 흰눈처럼 모든 것을 덮고
다시 시작할 새로운 시간을
새로운 포도주를
꽉꽉 눌러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축복의 잔이니
겸손떨며 사양하지 마라
덥석 받고 냉큼 마셔 버려라
스윽 입가 훔치며 가슴을 탕탕 쳐라
이제 모든 것은 똑같아졌다고
다시 한번 해보자고
햇살에 반짝거리는 하얀 출발선에
쾅쾅 두 발로 뛰어 다가서라
리셋.
내 영혼은 깃털만큼 가벼워졌다

 

 

2012. 01. 01.
요나단 이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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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오면 | 시인의 방 2011-12-07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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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오면

 

 

나를 위한

첫눈이 필요해

죄없어 순결하고

나의 죄마저 모다 덮어버리는

1년치 허물 몽땅 태워버리는

나를 위한

첫눈이 필요해

그 날이 오면

모든 죄인들이 풀려나고

모든 가난한 자들이 희망을 품고

모든 힘든 자들이 쉼을 얻으리

그 날이 오면

나는 기뻐 춤을 추고

나는 기뻐 노래 부르고

나는 기뻐 죽을지도 몰라

 

첫눈이 오면

나는 다시 사랑에 빠질 거야

온 몸 깊숙이 눈 속에 묻어 버리는

다시는 뾰족머리 내밀지 않을

함몰된 사랑

첫눈이 오면

온 세상 뒤덮는 당신이 오면

아아, 나는 그렇게 사랑에 빠질 거야

 

2011년 12월 7일

요나단 이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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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것은 | 시인의 방 2011-11-1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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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것은


가 버려라, 가 버려라, 악을 쓰고 소릴 질러도 가지 않고
오너라, 오너라, 빌고 또 빌어도 오지 않는 건
갈 때가 있고, 올 때가 있음이니
그대 조용히
텅빈 가슴 하늘에 묻고
소리 없이 울지어다
해맑게 웃을지어다
울 때 울고 웃을 때 웃어야 하는 것처럼
지금이 바로 그때
죽도록 사랑하여라

2011.11.10. 요나단 이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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