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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의 날 것, 4285킬로미터의 홀로 걷기 | 비소설 2019-03-11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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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와일드

셰릴 스트레이드 저/우진하 역
나무의철학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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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의 날 것, 4285킬로미터의 홀로 걷기 [와일드]


 

낡아빠진 채 곧 주저 앉아버릴 것 같은 황토색 신발이 강렬하게 독자를 응시한다. 빨간 신발끈은 끌러진 채 아무렇게 걸쳐져 있다. 4285km라는 숫자는 도대체 그 숫자가 얼마만큼의 거리를 뜻하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어 허상에 놓인 누각처럼 느껴진다. 그저 wild, 와일드,라는 책 제목에서, 희망의 기록이다,라는 부제에서 이 책이 가지는 무게와 거침을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책을 구비해 놓은 지는 꽤 되었다. 몇 년 전부터 책꽂이에 계속 꽂혀 있었다. 다만 이번에 걷기를 하면서 같이 읽음으로써 그때 읽지 않고 오히려 지금 읽게 된 것이 더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걷기를 할 생각도 전혀 없었던 그때 읽었더라면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한 권의 책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걷는다]를 읽었을 때처럼, , 이 저자가 열심히 걸었구나. 나도 언젠가는 시도해 봐야지. 하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겠다고 사진을 올렸을 때, 이 책을 읽으면 걷고 싶은 마음이 폭발할 거라며, 봉주아 님이 댓글을 달아주셨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설날을 코 앞에 둔 21일부터 읽기 시작했다. 책이 너무 무거워 들고 다니며 읽을 수가 없다는 판단으로 회사에 두고 점심시간마다 읽었다.

 

545, 책 두께 검지 두 마디. 저자가 걸어간 거리 4285킬로미터, 걸린 시간 3개월.



 

당시 그녀의 나이 26.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남편과는 얼마 전 이혼한 상태.

이런 상황이었다고 해서 누구나 3개월간 미친 듯이 홀로 4천킬로미터 이상을 걷진 않는다. 그녀도 그랬다. 어떤 독한 마음을 품고 그 결심을 했던 건 아니었다. 어쩌다 눈에 뜨인 안내 책자를 보고 살짝 마음이 흔들렸던 것이다.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여행의 출발점에서 막상 이 여정을 시작하려고 하니 내가 지금 하려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깨달음이 몰려들었다. 문득 나는 여기서 멈추고 싶었다. 이 일은 너무 터무니없고 특별한 의미도 없었으며 게다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말도 안 될 정도로 벅찼다. 나는 아직 이 일을 할 준비가 완벽하게 안 되었던 것이다. (21)

 

시작은 그랬다. 출발도 어설펐다. 등산을 좀 다녀본 사람이라면 그녀처럼 그렇게 20킬로그램을 넘는 배낭을 준비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게 처음이었던 그녀는 이것도 있어야 할 것 같고 저것도 있어야 할 것 같아 모든 걸 배낭에 넣었다. 짐을 다 꾸리고 어깨에 멨으나 일어설 수조차 없었다. 그렇게 그녀의 시작은 시작되었다.

 

시작도 어설펐지만 과정은 시작보다 더 힘겨웠고 시간시간 고통과 불안은 더 커져만 갔다. 급기야 산꼭대기에서 그녀는 신발을 벗다 신발을 절벽 아래로 떨어뜨리고 만다. 이미 발톱은 썩어 네 개나 빠져버린 뒤였다.

 

정말 이 책은 2월 걷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내게 단비처럼 안겨왔다. 비록 4200킬로미터의 긴 여정의 걷기가 아닐지라도 나는 내 여정, 지하철 한 코스 걷기에서 두 코스로 늘리고 다시 세 코스로 늘려 저녁 퇴근길만 6킬로미터 넘게 걷게 된 것은 이 책의 힘이 컸다. 그녀도 힘든 날은 10킬로미터밖에 걷지 못했다고 했다. 10킬로미터면 내가 하루 걷는 거리와 비슷할 때도 있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내려 사무실까지 1킬로미터, 점심 먹고 3킬로미터 정도를 걷고, 퇴근길에 6킬로미터를 걸으면 얼추 10킬로미터의 거리가 되는 셈이니, 그렇게 계산하며 그녀의 하루 일정과 비교해보기도 했다.

 

걷는 이야기만 나오는 책. 물론 중간에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친해지고, 텐트를 같이 치고, 이야기를 나누는 삶의 다양한 퍼즐 속에서 그녀는 기쁨을 느끼고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런 이야기들의 결합은 한 편의 소설보다 더 재미가 있었다. 그녀의 걷기를 훔쳐보는 즐거움은 매우 컸다. 그녀의 발톱이 빠져나가는 것을 세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녀는 3개월의 트래킹 기간 동안 열 개의 발가락에서 여섯 개의 발톱을 뽑아냈다.

 

마침내 그녀가 그 긴 여정을 끝내고 다시 도시의 소음 속으로 들어오던 날, 나도 너무 기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살아있음에 대한 기쁨, 모든 과정을 통과했다는 성취감, 그런 감정들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이되었다.

 

나도 살아있고 싶었다. 나도 과정 속에 있고 싶었다. 걷기를 할 때 걷기 관련 책을 함께 읽으면서 하면 정말 시너지 효과가 난다는 것을 실감했다. 내 걷기도 꾸준히 좋아졌다. 그녀처럼 근육이 아프다고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내 몸은 더 좋아졌다. 경고와 위험 수준에서 날 위협했던 각종 건강 지표들이 단 몇 달의 걷기를 통해 표준 상태로 돌아왔다. 허리도 줄어 바지가 헐렁해지는 걸 느낀다.

 

2월에 읽은 책 중에 단연코 내게 별 다섯 개를 받은 이 책. 그녀는 4200킬로미터 트래킹을 한 뒤, 이혼을 아픔을 딛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그 아이들이 커서 엄마가 이랬단다 하며 15년 뒤에서야 그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15년 전의 경험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그 긴 세월 동안 모든 감정, 모든 동선, 모든 이야기를 하나도 잊지 않고 재현해 낸 그녀가 놀라웠다. 그리고 자녀들 앞에, 새 남편 앞에 자신의 과거를 솔직하게 책 속에서 밝히는 모습도 신선했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오프라에게 극찬을 받은 책이라고 했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그녀는 결국 자신의 이야기로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누구나 가슴에 자신의 자서전 한 권씩은 품고 있을 것이다. 걷기를 생각하고 있다면 이 책을 읽고 다시 용기를 내기를, 꿈을 품고 있다면 이 책을 읽고 그 꿈을 함께 성취해내기를. 실패하고 주저앉아 있다면 이 책을 읽고 다시 일어서기를.


아마 그렇게 될 것이다.



누구나 한 번은 길을 잃고

누구나 한 번은 길을 만든다.

(속표지 글에서)

 

 

반전은 마지막에 나왔다. 독서후기를 다 쓰고, 다시 책의 처음으로 돌아가 밑줄 그은 부분들을 워드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15쪽에 밑줄 그은 부분에 눈이 머물렀다.

 

그동안 걸어온 남쪽도 쳐다보았다. 나를 가르치고 깨우쳐준 거친 야생의 땅이었다. (15)

 

제목으로 붙인 [와일드, WILD]는 사실 교묘한 트릭이었다. 자신의 정체를 숨긴 이중 스파이였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제목의 와일드를 생각하며 읽었다. 야생의 저 거친 땅, 4285킬로미터가, 사람의 발길을 거부하며 도도하게 눈으로 덮인 채 홀로 서 있는 그 산맥이, 곰이 나타나고 방울뱀이 도처에서 위협하고, 발을 부르트게 하고 발톱이 빠지게 하느 그 땅이 야생이라고 생각했다. 그 거친 땅을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하루에 30킬로미터씩 걸어나가는 살인적인 일정이 야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야생의 땅은 거친 PCT 트래킹 길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랬다. 야생의 땅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타인을 밟고 올라가야만 자신의 생존이 보장되는 도시,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왔던 바로 그 땅이었다. 우리의 신념과 가치관과 우주관을 붙잡고 있는 과거의 모든 것이 바로 야생이었다. 우리의 삶이, 생존현장이 바로 거친 땅이었다. 그녀는 야생의 땅을 거쳐 다시 야생의 도시로 들어갔다.


그녀는 자신의 엄마가 돌아가시던 날, 신의 존재에 대해 큰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신은 엄마의 죽음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화를 냈다. 그때는 스물여섯 살이었고 아이의 엄마가 되어보지 못한 때였다. 이제는 그 마음이 조금은 바뀌었기를 기대해본다. PCT 이후 진짜 신을 만났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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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개는 없다-[서평] 말리와 함께 한 4745일 | 비소설 2018-11-28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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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말리와 함께한 4745일

존 그로건 저/이창희 역
저스트북스(justBooks)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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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말리와 함께 한 4745]

 

이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저자인 존 그로건과 말리를 검색하면 말리와 함께 한 4745외에도 꽤 여러 권의 책이 나온다. 말리와 나」 「안 돼 말리」 「말리와 말썽꾼들」 「온가족이 함께 읽는 말리와 나. 저자는 말리 이야기로 꽤 유명세를 탔나보다. 아마도 추측하건대 이번 말리와 함께 한 4745은 기존 책들을 모두 합친 합본 성격의 책이 아닌가 싶다. 436쪽이니 래브라도레트리버 종의 말리만큼이나 묵직하다.

 

마지막 말리가 이 땅과 하직할 때는 나도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존 그로건과 그의 가족들에게 충성스럽게 사랑받았던 사고뭉치 말리였는데,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큰 개였는데, 나는 부끄럽게도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내심 부러워하였다.

 

혈통을 자랑하는 개지만, 말리는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는 막무가내 말썽꾸러기 개였다. 집에 있는 모든 것을 집어 삼켰고, 모든 것을 물어 뜯었으며, 침을 계속 흘렸고, 불안정했다. 래브라도레트리버는 사냥견으로 유명하다지만 말리는 비가 오거나 천둥이 치면 심각한 정서불안 증세로 온 문짝을 피가 나도록 다 뜯어버린다.



 

그가 저지른 수많은 만행과 기행은 책을 읽고 직접 수위를 느껴보라고 얘기하고 싶다.

 

말리가 하도 요란스럽게 삶을 즐기는 바람에 녀석이 지나간 곳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같았다. 말리는 내가 아는 개들 중에서 훈련소에서 쫓겨난 유일한 개다. 말리는 소파를 질겅질겅 씹었고, 방충망을 찢었으며, 침을 질질 흘렸고, 쓰레기통을 엎는데 선수였다. 지능으로 말하자면 죽는 날까지 제 꼬리를 물려고 뱅뱅 도는 수준이었다. 마치 개의 역사에서 새 장을 열려고 작심한 개 같았다. (, 392)

 

저자는 이런 개와 13년을 함께 보낸다. 그 사이에 세 아이가 태어나고 세 아이도 말리와 함께 자란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으며, 감당할 수 없는 개였지만 말리는 온 가족의 사랑을 받았다. 그 사랑의 이야기들이 430쪽 책에 가득히 적혀 있다. 그의 사랑 이야기 역시 책을 읽고 직접 수위를 느껴보라고 얘기하고 싶다.

 

말리에게 들어간 비용과 말리가 망가뜨린 것을 복구하는 비용을 다 합치면 작은 요트라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간에서 하루 종일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요트가 과연 몇 척이나 되겠는가?

... 말리는 가족으로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변덕스럽지만 사랑받는 아저씨처럼 말리는 그냥 말리였다. (, 317)

 

개의 1년은 인간으로 비교하면 7년과 같다고 한다. 말리가 존 그로건 가족과 13년을 보냈으니 7을 곱하면 91세가 된다. 말리는 늙었다. 마음은 청춘이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개가 되었다.

 

이런 일은 밤뿐만 아니라 하루 종일 일어났다. 부엌 식탁에서 신문을 읽다가 커피를 따르려고 일어서서 방을 가로질러 가면, 발치에 엎드린 채로 있던 말리는 내가 눈앞에 뻔히 보이고 곧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고통을 참으려 일어나 나를 따라왔다. 커피포트 옆의 내 발치에 편안히 엎드리자마자 내가 식탁으로 돌아가면 또 병든 몸을 질질 끌며 따라왔다. 몇 분 후에 오디오를 켜러 거실로 들어가면 힘들어하면서도 여전히 쫓아왔고, 내 주변을 맴돌다가 거실에서 나가려는 순간 신음 소리와 함께 픽 쓰러지기도 했다. (, 340)

 

늙는 일은 사람이나 개나 마찬가지로 고약하고 힘들고 품위가 떨어지는 일이다. 저자는 말리의 천진난만함을 보면서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게 좋은지, 짧은 인생을,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인생을 배운다.

 

이제 병원에는 저자와 말리만 남았다. 말리는 곧 죽을 것이다.

 

우리가 항상 너에 대해 무슨 얘길 했는지 알아?” 내가 속삭였다. “골칫덩어리라고? 전혀 아니야. 한순간이라도 그렇게 생각하지 마, 말리.” 말리는 이것을 알아야 했다. 그리고 알아야 할 것이 더 있었다. 이제까지 말리에게 한 번도 해주지 않은 이야기, 그 누구도 해주지 않은 이야기 말이다. 나는 말리가 죽기 전에 그 말을 해주고 싶었다.

말리, 넌 훌륭한 개야.” (380)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에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랑보다도 더 아름답고 가슴 따뜻한 천방지축 말리의 이야기를 만난 건 내게 축복이고 행운이었다. 동물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동물을 아직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말썽꾸러기가 주변에 가득한 사람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책을 펼치는 순간, 즉시 말리와 사랑에 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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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지역 출판사의 행복한 생존기-부산의 “산지니” 출판사 | 비소설 2018-11-20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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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

강수걸,권경옥,권문경,양아름,윤은미,문호영,박지민,정선재 공저
산지니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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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지역 출판사의 행복한 생존기-부산의 산지니출판사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



 

부끄럽게도 어줍잖게 한 2년 출판사를 운영한 적이 있습니다. 출판사를 운영했다고 하면 무슨 거창한 출판사를 차린 것으로 오해할 수 있겠습니다만, 사실은 제 책을 출판해주는 곳이 없어서 제가 출판사를 차려 책을 펴내어 보려고 차린 것입니다. 돈이 없으니 종이책은 출판할 수 없고, 전자책이라도 출판해보자 하고 마음을 먹었던 것입니다. 집주소를 사업장으로 두고 행복한 풀잎으로 등록하였습니다. 달마다 한 권씩 출판한다고 보고하고 첫 책은 오래 전에 써두고 출판하지 못했던 단편동화 숲속의 엉터리 왕을 전자출판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죠. “행복한 풀잎으로 검색하면 딱 한 권이 나옵니다. 물론 유페이퍼 전자책 출판사를 통해 다수의 단편동화와 장편동화를 출판했지만 여전히 출판사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딱 눈에 들어와 누가 가져가기 전에 얼른 채 온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산지니>라는 부산 출판사의 10년 생존기입니다. 여러 책을 동시에 읽는 저는 한 권의 책을 꽤 오랜 기간에 걸쳐 읽는 편인데 이 책은 집으로 오는 길 지하철에서 읽기 시작해 다른 책들과 섞어 읽으면서도 4일만에 완독하고 말았습니다.

 

저자가 산지니 출판사의 대표인 강수걸 단독으로 되어 있지 않고 강수걸 외로 되어 있는 까닭은 이 책이 산지니 출판사의 대표인 강수걸 씨를 포함해 총 8명의 출판사 직원들이 모두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책은 출판사의 자유롭고 가족같은 분위기를 잘 전달해줍니다.



 

생존기라고 표현은 했지만 여느 가정집을 훔쳐보는 것처럼 출판사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다양한 구성원들의 입을 통해 읽을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산지니라는 부산 지역 출판사를 지금까지 살아있게 하고 10년 동안 수백 권의 책을 낼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강수걸 대표도 밝혔듯이 잘 나가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부산에서 출판사를 한다고 했을 때 모두 두 손 들고 말렸던 출판사. 특히 지방 출판사. 대부분 문인들이 자신들의 문학 작품을 출판하기 위해 운영하는 수준이던 지방 출판사 사이에서 산지니는 모름지기 모든 방면의 책을 골고루 출판하며 다양한 수상작도 많이 만들어냈습니다.

 

그래서 참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대신 행복했습니다. 한 분 한 분의 재밌는 글을 읽으면서 얼굴 가득 함박 웃음을 지으며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 이렇게 잘 성공했구나. 물론 밝히지 않은 행간의 아픔과 고통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하지만 이렇게 웃을 수 있는 건 성공이라고 봐야겠죠.

 

책에는 다양한 글들이 많이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들이 아기자기하게 알콩달콩하게 버무러져 있습니다. 막노동 현장에서부터 영화 촬영장으로의 변신까지. 또 일본 독자가 찾아온 흐뭇한 미담까지 두루두루 깨알 같은 재미가 가득했습니다.



 

사실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산지니에서 낸 수백 종의 책 가운데 제가 읽은 책이 단 한 권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충격이었습니다. 매년 200권씩 읽는다 하면서도 어찌 그 유명한 산지니가 생소한 출판사였을까. 혹시나 하여 인터넷으로 산지니의 출판물을 거듭 확인해 보았지만 눈에 익은 몇 권의 책이 눈에 들어온 걸 제외하고는 모두 생소한 책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책에서 책을 출판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나 작가와의 만남 시간을 복기한 내용들을 읽으며, 산지니 출판사가 참으로 제 취향의 출판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브라질 책을 소개한 글도 좋았고, 한나 아렌트와 하이데거의 연애를 다룬 이야기도 충격적이면서도 흥미로웠습니다. 홍콩의 본토주의나 중국의 흩어진 모래도 관심이 갔구요. 산지니가 그 유명한 오늘의 문예비평계간지를 펴내는 곳이었다니, 충격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닙니다.

 

부산에서 자란 저로서는 산지니 출판사가 더 소중하고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앞으로 산지니의 책을 차근차근 구해봐야겠습니다.

 

일단은 가볍게 소설 한 권을 구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좋은 출판사를 알게 된 기쁨, 또 좋은 책들을 알게 된 기쁨, 겹으로 행복한 시간들을 만끽했습니다. 산지니가 부산에서 영원히 좋은 출판사로 대를 이어 뿌리를 내리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300년이라는 브라질의 긴 노예제 기간 동안 흑인들은 그들의 노동력, 쓸모라는 단 하나의 척도로 평가되며 인간이 아닌 상품으로 거래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부모와 자식은 헤어져야 했고,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아프리카 각지에서 온 흑인들은 그들을 가축으로 부리는 백인들의 감시 하에 살아야 했습니다. (76, 브라질 흑인의 역사와 문화소개하는 글에서)

 

이정표가 남는 글이 생기면 사유의 지도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이론적인 공부방식을 거부하는 이유는 좌표를 찾아가는 방식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글 쓰는 사람에게 글쓰기란 거처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입니다. ... 글쓰는 행위를 저는 사상한다라는 동사로 만들고 싶습니다. 글쓰기는 자기 자신을 분열 상태로 내모는 행위입니다. (208, 윤여일 작가와의 만남)

 

내 글은 솔직한 글은 아닙니다. ... 글 쓰는 행위 또한 읽어주는 사람을 향해 있습니다. 실제 글을 쓸 때도 솔직하게 글을 썼지만, 읽힐 것을 염두에 두었기에 솔직하게 쓰지 못했습니다. (209, 윤여일 작가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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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보통씨의 짜-ㄴ한 일상분투기-괜찮아yo | 비소설 2018-11-12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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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괜찮아yo

버내노 저
세종서적 | 2018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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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씨의 짜-한 일상 분투기.



 

 

사실 안 괜찮지만,

괜찮다고 말하며 사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

 

보통씨라고 표현을 했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스스로는 유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내 기준으로 보더라도 보통이라는 기준은 넘어선다피어싱과 문신을 서너 개 붙이고 있는 여자라니감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읽고 있노라면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그녀의 정체성에 보통씨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왜냐하면 그녀의 생각과 삶이 바로 내 생각과 내 행동과 무척 닮아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내 생각과 내 행동은 어쩌면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행동이다.

 

우리는 곧 특별한 사람이 아닌 보통 사람들남자 사람이거나 여자 사람인대부분 철저한 의 정체성으로 험난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살아가는 우리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가 주인공인 특이한 책이다그러니까 각 에피소드의 모든 주인공은 작가 자신인 경우가 95%이고 나머지는 작가의 어머니나 애인친구 들로 채워진다철저하게 자기를 기준으로 이야기를 엮어낸다.

 

지나치게 살아있는 날 것이어서 키득키득 웃거나 울거나 한다.

 


 

이 책은 KT올레마켓이란 곳에서 웹툰으로 5년 이상 연재한 버내노의 작품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든 것이라 한다이렇게 촌스러운 이름이 있을까 싶어 인터넷을 찾아보니 KT올레마켓은 2016년에 케이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케이툰을 검색해 들어가보니 온갖 웹툰만화웹소설소설 들이 잘 차려진 한정식처럼아니 분식집처럼 좌악 펼쳐진다이곳에서 버내노는 자신만의 캐릭터로 5년 동안 장수하며 자신의 삶을 해학과 풍자로 그려내며 살아왔다.

 

그러니까 이 책은 웹툰을 인쇄한 책이다웹툰과 만화가 서로 다른 장르로 구분되어 있는 걸 보니 이 책을 만화책이라 부르기는 조금 모호한 면이 있다그녀의 블로그도 검색이 되길래 들어가 보았다총 180개의 글이 있는데 2018년 1월 이후에 글이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아마 많이 바쁜가 보다.

 

그림에서 보듯이 괜찮아yo 캐릭터는 지나치게 단순하다솔직히 말하면이거 초등학생이 그린 건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처음에는 웹툰을 책으로 펴낸 것이라 하여 대학생이 갓 된 둘째 딸에게 책을 건네주었다함 읽어봐그랬는데 좀 유치하다면서 그닥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래그럼 아빠가 읽을 게하고 다시 건네받았다.

 

사실 이런저런 일이 겹쳐 머리가 많이 무거웠고 숨 돌릴 틈 없이 옥죄는 업무 스트레스가 턱 밑에까지 차올라 있어 긴장과 불안은 최고조에 달해 있던 상태였다전날인 토요일도 아침부터 일터에 나가 밤 아홉시가 넘어 집에 돌아왔으니 그 엉망진창인 기분과 체력은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가 될 것이다.

 

어쩌면 그런 심리상태가 작용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머리도 띵한데 조금 보며 머리를 식혀야 겠다생각을 하고 한 장 두 장 넘기며 읽기 시작했는데손이 가요 손이 가하는 광고음악처럼옆에 무심코 놓아 둔 과자처럼 손이 계속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급기야는 오늘 이걸 다 읽어야겠다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혼자 주인공 버내노의 보통 일상을 함께 웃으며마음 아파하며고개 끄덕이며 길게 길게 동행하고 말았다.

 

월급을 꼬박 받는 직장인에서 프리랜서로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로 마음 먹고 나오는 장면은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는 대부분의 직장인에게서 통쾌한 대리 카타르시스를 주기에 충분했다물론 그 과정의 심리적 묘사가 탁월했고 물론 그 이후의 비참하거나 힘들거나 아픈 삶이 주는 실질적인 묘사 역시 또 다른 위안을 준다그것은 직장 안이거나 직장 밖이거나 대부분 비슷하다는 것과그런 시간과 삶이 하루하루 모여 자기의 인생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보통씨의 일상이기에 놀라운 일도드라마 같은 일도 없다그럼에도 그녀에게 고백한 세 살 연하 남친의 이야기는 따뜻하게 드라마틱해서 눈물이 찔끔했고,

 


 

연재라는 일정의 압박이 주는 무리로 인해 갑상선 암을 치료받는 이야기도 짠해서 눈물이 찔끔났다안구건조증인데완전히 말라버리진 않았나 보다.

 



타인의 삶을 훔쳐보는 책이지만내 삶을 훔쳐보는 것 같았고그래서 우리는 하나가 된 것 같았다묘한 치유가 일어났다.

 

웹툰 하나 보고 치유라니안 믿을지 모르겠지만,

 

모든 이야기는 치유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너와 나만이 아는 비밀이다.

이 책이 그랬다.

 

사실 안 괜찮지만,

괜찮다고 말하며 사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월요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자신의 삶을 투명하게 비추어준 버내노에게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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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슬픔을 치유하는 독서모임-슬픔을 건너가는 중입니다 | 비소설 2018-10-30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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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슬픔을 건너가는 중입니다

앤 기슬슨 저/정혜윤 역
세종서적 | 2018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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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슬픔을 건너가는 중입니다

슬픔을 치유하는 독서모임이 있다면....

 


 

독서는 치료제가 될 수 있을까.

그 가능성에 대한 해답을 이 책은 제시하고 있을까.

 

20058월말 허리케인 하나가 미국을 강타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육지에 상륙하기 전 1등급으로 강해진 상태로 미국을 덮쳤다. 미국 남동부를 강타했는데 뉴올리언스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폰차트레인 호 제방이 붕괴되면서 뉴올리언스는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기고 말았다. 뉴올리언스는 지역의 80%가 해수면보다 지대가 낮았는데 카틀리나로 폭우가 쏟아지고 제방이 무너지면서 도시로 들어찬 물은 빠져나가지 않고 그대로 도시에 머물렀으며 이 지역 주민 2만 명 이상이 실종되었다. 50만명의 시민 중 2만명이 실종되었다면 대부분 가구당 실종자가 있다는 얘기다. 도시는 물에 잠기고 모든 사람은 비탄에 잠겼다.



 

 

독서 모임을 시작할 때 책의 저자는 걷잡을 수 없는 정신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녀는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부서진 집에서 살 수가 없어 친척과 친구 집을 전전하며 돌아다녔는데 그 때 임신사실을 확인한다. 수년 뒤 폐허가 된 집으로 돌아오고 폐허 속에서 아이가 자라났다. 몇 년이 흘러 카트리나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날까 싶었는데 쌍둥이 동생들이 자살하면서 그녀의 삶은 다시 곤두박질치고 집안을 호령했던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그녀는 또 다른 실존적 위기에 처한다.

 

독서모임은 실존적 위기에 빠진 사람들의 독서클럽으로 정해졌다. 카트리나의 상흔이 여전히 남아있는 뉴올리언스 어느 집의 거실에서였다.

 

실존적 위기에서 허우적거리던 사람들은 서로 돌아가면서 책이나 짧은 단편을 정하고 함께 읽은 뒤 이야기를 나눈다. 발제자는 왜 그 책을 선택했는지 이야기하고 서로의 경험, 서로의 느낌, 서로의 감정을 나눈다.

 

이 책은 그 독서모임을 이끌었던 주인공 저자의 개인적인 감정과 느낌에 충실한 책이다. 그러니까 독서모임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저자의 실존적 아픔이 어떻게 독서모임 속에서 풀어지고 스며들고 화해하는지를 이야기하는 책이라고 보면 좋다. 앞에서 설명한 실존적 아픔은 오롯이 그녀만의 몫이다. 비슷한 아픔이 다른 회원들에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카트리나 허리케인으로 집을 잃었고 가장 어려운 시기에 아이를 가졌으며, 최근에는 두 동생이 모두 자살하면서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다.

 

책을 읽으면 이런 아픔, 이런 상실, 이런 고통이 씻은 듯이 나아질까, 원래의 상태로 회복될까. 겉표지 띠지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이 2017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다는 광고같은 문구가 차갑고 어두운 북유럽 밤하늘에 나타난 오로라처럼 반짝거린다. 최고의 책이라는 문구는 지나치게 상업적이고 과장되어 있다. 독자였던 나는 카트리나 같은 거대한 공동체 슬픔을 직접 겪어보지 못했다. 세월호만으로도 나는 휘청거리고 있다. 광주 민주화운동은 다른 책이나 영화로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직접 경험하지 못한 고통은 그 누구도 백 퍼센트 동질의 아픔으로 이해할 수 없다. 그건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아프고 아픈 책을 읽으면서 책 저자처럼 깊은 슬픔에 빠져들지 못했다. 나는 나만의 슬픔으로도 벅찼기 때문에 그녀의 아픔은 그녀의 아픔이었다.

 

이 책은 나의 슬픔을 치유해주지 못했다. 이 책은 치료제가 아니다. 이 책은 저자인 앤 기슬슨의 이야기다. 그녀가 감당못할 시련 속에서 독서모임을 통해 어떻게 회복되고 있는지 그녀의 감정을 따라갈 수 있는 책이다. 결론적으로 본다면 이 책은 아직 치유의 과정에 놓여 있는 진행형의 미완성 이야기라고 여겨진다. 저자는 아직 지난한 길을 걷고 있다. 책이 치유제가 아니라 그 책을 매개로 모인 사람들이 서로에게 치료제가 된다. , 독서 그 자체가 아니라, 독서모임, 그러니까 서로 다른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그 시간과 공간을 통해 치유가 일어난다는 뜻이다. 누구는 빨리 회복되고 누구는 천천히 회복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전혀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책은 우리를 생각하게 하고 떠올리게 하고 용서하게 한다는 것을. 이겨내게 하고 견디게 하고 웃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을. 고통 속에 놓여 있다면 책을 읽자. 그리고 사람을 만나자. 그것이 바로 위대한 독서치유의 첫걸음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실존적 위기에 빠진 사람들의 독서클럽모임에서 2월에 함께 읽고 나눈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책을 주문했다. 그들은 짧은 단편을 읽었지만, 한국에 소개된 책은 폴란드 단편집으로 여러 작가의 단편을 모아놓고 있었다. 폴란드 단편집이라. 좋았다.

 

~~~~~~~~~~~

 

저녁 내내 브래드는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남의 이야기를 듣고, 손님을 접대하고, 끊임없이 들락날락하며 간식을 축내는 아이들에게 달려가서 주의를 주고, 아이들을 재우느라 분주했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 즉 우리가 읽은 글들에는 서로 우의를 나누는 단순한 행위가 바로 삶을 즐기는 일이며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짧은 생을 최선으로 활용하는 방법 중 하나라는 가치가 담겼음을 지적했다. (039)

 

우리는 먹었다. 흡사 메뚜기 떼처럼 사정없이 먹어치웠다. ... 우리는 강한 사람들이고 우리는 먹는다. 빵은 이방인들끼리 나누는 사랑인 것이다. (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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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걷기예찬] | 비소설 2018-10-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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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걷기예찬

다비드 르 브르통 저/김화영 역
현대문학 | 200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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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걷기예찬]



 

학창시절에 열심히 외운 문장들이 있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우보 민태원 작가의 수필 청춘예찬1930년대 일제 강점기 아래 작성된 글임에도 불구하고 청춘들의 꿈을 무한대로 끌어올렸다.

 

청춘(靑春)!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鼓動)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汽罐)과 같이 힘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다. 청춘의 끓는 피가 아니더면, 인간이 얼마나 쓸쓸하랴? 얼음에 싸인 만물은 얼음이 있을 뿐이다. (청춘예찬 시작부분)

 

또 수필가 이양하의 신록예찬은 어떤가.

 

그러나 이 짧은 동안의 신록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참으로 비할 데가 없다. 초록이 비록 소박(素朴)하고 겸허(謙虛)한 빛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때의 초록은 그의 아름다움에 있어, 어떤 색채에도 뒤서지 아니할 것이다. 예컨대, 이러한 고귀한 순간의 단풍(丹楓) 또는 낙엽송(落葉松)을 보라. 그것이 드물다 하면, 이즈음의 도토리, 버들, 또는 임간(林間)에 있는 이름 없는 이 풀 저 풀을 보라 그의 청신한 자색(姿色), 그의 보드라운 감촉, 그리고 그의 그윽하고 아담(雅淡)한 향훈(香薰), 참으로 놀랄 만한 자연의 극치(極致)의 하나가 아니며, 또 우리가 충심으로 찬미하고 감사를 드릴만한 자연의 아름다운 혜택의 하나가 아닌가? (신록예찬 마지막 부분)

 

그것이 청춘이든, 신록이든 우리는 푸르른 것을 찬양하기에 아낌이 없다. 나아가 청춘과 신록을 합친 걷기 예찬은 내 삶에 찾아온 세 번째의 큰 기쁨이었다.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 걷는다는 것은 잠시 동안 혹은 오랫동안 자신의 몸으로 사는 것이다. (걷기 예찬 첫 문장)

 

걷기예찬의 첫 문장은 청춘예찬의 첫 문장과 비교해 손색이 없다. 청춘예찬이 첫 문장으로 피끓는 청춘들의 가슴을 자신 밖의 세계로 활짝 열어젖혔다면, 걷기예찬의 첫 문장은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길과 조우하되 그 속에서 자신과 만날 수 있도록 시선과 생각을 내면의 세계로 깊이 열어젖혔다.

 

걷기예찬을 걸으면서 읽을 수가 없는데 이것이 가장 큰 모순이다. 읽기 위해서는 앉아야 한다. 하지만 방법이 하나 있으니 걷다가 걷기예찬을 읽는 것이다. 만약 날씨 좋은 날이라면 한참을 걷다가 벤치에 앉아 이 책을 펼쳐보라.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청춘예찬이나 신록예찬과 비교할 수 없는 걷기예찬은 그것이 한 권의 책이기 때문이다. 앞선 두 예찬은 한 편의 수필로 그 길이가 얼마 되지 않지만 걷기예찬은 그런 수필이 200쪽 넘게 이어진다. 그런 수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쪽을 이루어가는 한 편의 수필들이 그만큼 완성도가 높고 매번 청춘예찬을 읽는 것처럼 나의 가슴을 뛰게 만들기 때문이다.



 

역자의 글을 읽어보면 이 책이 어떻게 우리 한글로 번역되어 왔는지를 알 수 있다. 실로 기막힌 우연, 기막힌 선택에 의해 우리나라에서 번역본이 나오게 되었는데 그 점에 대해서는 이 책을 고르고 번역해준 김화영 교수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가 기적을 믿는다면 김화영 교수가 프랑스 서점에서 이 책을 만나게 된 그 우연의 일치가 아닐까. 책도 한국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났고, 교수도 이 책을 만나고 싶어 안달이 났던 것이다.

 

작가 다비드 르 브르통 교수는 걷기의 최고로 혼자 걷기를 꼽는다. 혼자 걷기가 왜 으뜸 걷기인지는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나도 완전히 동의하는 바이다. 그래서 최근 점심을 먹고 나면 3킬로미터 정도를 탄천길따라 걷기를 하였다. 혼자만의 이 시간. 나는 생각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기도를 읊조리고, 관찰하고 소리들을 듣고 냄새들을 맡는다.



 

작가는 책 속에서 말 그대로 걷기에 대한 모든 것을 사색한다. 혼자 걷기는 물론 여럿이 걷는 것, 산책하는 것, 탐험하는 것, 도시에서 걷는 것, 순례자로 걷는 것을 경험과 문헌과 역사를 통해 공유한다. 걷는 행위가 어떻게 우리 몸의 가장 중요한 행위가 되는지 숨김없이 토로한다.

 

주옥같은 명문장들이 너무 많아 밑줄을 그으려고 하면 책이 몽땅 밑줄로 도배될지도 모르겠다.

 

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다.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온전하게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때 경험의 주도권은 인간에게 돌아온다. ... 걷기는 시간과 공간을 새로운 환희로 바꾸어놓는 고즈넉한 방법이다 ... 걷기는 어떤 정신상태, 세계 앞에서의 행복한 겸손, 현대의 기술과 이동수단들에 대한 무관심, 사물에 대한 상대성의 감각을 전제로 한다. (걷기예찬 21)

 

걷기예찬은 책을 읽음과 동시에 걷기를 실천하게 하는 실천문학책이다. 발이 근질거려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이 아름다운 문장들을 읽고 어떻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토록 많은 길들, 마을들, 도시들, 산과 숲들, 바다와 사막들이 있는 한 그곳에 이르고 그곳을 느끼고 그곳에 도달한 기쁨 속에서 우리의 기억을 껴안기 위한 그토록 많은 코스들이 또한 열려 있는 것이다.

 

오솔길, , 모래, 바닷가, 심지어 진흙탕이나 바위까지도 우리의 몸과 어울리고 존재한다는 희열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존재한다. (걷기예찬 261쪽 마지막 문장)

 

걷기는 예찬받아 마땅한 행위다. 발이 살아있는 한, 길이 저기에 있는 한, 우리는 걸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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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형 번역가의 민낯 “번역가 모모씨의 일일” | 비소설 2018-09-27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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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번역가 모모 씨의 일일

노승영,박산호 공저
세종서적 | 2018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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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생계형 번역가의 민낯 번역가 모모씨의 일일”]

 

 

참 재미있게 읽었다. 프리랜서라는 직업의 자유로움, 번역이라는 전문성이 갖는 고품격. 특히 나처럼 언어 습득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는 번역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풍겨오는 아우라를 감당하기 힘들다.

 

올해 초에 또 다른 번역가의 민낯 책을 읽고 서평을 쓴 기억이 난다. 이 책과 비교해보면 그때 책은 작가도, 글도 너무 날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생선 회의 신선함도 좋지만 때로는 어느 정도 숙성이 된 깊은 맛도 필요하다. 이 책은 번역가가 아닌 독자가 책을 읽으면서 책을 읽는 순수한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적당히 숙성이 되어 있다. 만약 당신이 번역가 지망생이라면 이 책은 숙성 정도가 아니라 멘토 도서가 될 수도 있다.

 

이 책은 노승영, 박산호라는 두 번역가가 그 동안 다양한 매체에 기고한 글을 모으고 추려 번역가의 삶을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펼쳐낸다. 아주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면 보통은 작가의 이름이 아닌 번역가의 이름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나 역시 번역의 소중함을 잘 알면서도, 작가 이름을 외우기도 힘든 두뇌라 번역가 이름까지 뇌 공간을 제공하지 못했다. (이 자리를 빌어 그 동안 읽었던 수많은 번역 책의 한국 작가들에게 고마움과 경의를 표합니다.)

 

 


그런데 두 저자 가운데 박산호라는 이름이 이상하게 낯이 익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 같았다. 그랬다. 최근에 읽었던 얼음 속의 소녀들을 번역한 바로 그 사람이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토니와 수잔도 그의 작품이었다.

 

내친 김에 노승영 작가도 찾아보았다. 읽으려고 찜해 둔 책이 상당히 많은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직접 읽은 책은 누구를 구할 것인가한 권이 있었다. 어쨌든 이 책의 저자들이 내가 읽은 책의 번역가였다니, 사실은 내가 이미 만나왔던 사람들이라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책은 번역이라는 작업” “생계형 번역가의 하루” “살펴보고, 톺아보고, 따져보기” “번역가의 친구들” “번역가를 꿈꾸는 당신에게의 다섯 주제로 나뉘어져 있다. 두 작가가 적당한 순서로 돌아가며 번역이 어떤 일이며, 번역료는 어떻게 계산하고, 어떻게 번역을 하고, 번역가의 친구관계는 어떻게 되고, 번역가가 되려면 영어공부를 어떻게 하면 되는지 등을 친구에게 얘기하듯 술술 풀어놓는다.

 

책 꼭지 하나하나 참 재미있다. 맛깔난 글솜씨가 책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그러니까 글맛이 있는 특수분야의 이야기. 번역가가 아니면 생각하거나 경험할 수 없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번역의 일은 혼자와의 싸움을 하는 것이고, 혼자만의 공간에서 사투를 벌이는 작업이다. 그래서 그 특수성에 맞는 사람이 이 일을 하는 것이 좋다. 또 책 한 권을 번역하는 데 보통 두세 달이 걸리고, 그 동안은 수입이 없고, 시간을 자유로이 쓸 수 있으며 책 한 권을 끝냈다고 알아서 책을 또 번역하라고 보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러니까 자유로운 직업은 시간이 자유로운 만큼 일감도 자유롭다는 것. 익히 알고 있는 범주의 정보지만 실제로 그 일을 하고 있는 번역가들에게 그 체감의 깊이는 얼마나 되는지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글 행간에 숨어 있는 틈새에서 발견한다.

 


 

번역가에게 영어 실력이 아니라 왜 우리글 쓰는 실력이 중요한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사전을 찾는 품을 들여야 하고, 한글 지원 사이트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때로는 원저자에게 그 뜻을 묻는 메일을 보내기도 하고, 때로는 동료들에게 도움을 구하기도 하는지, 번역이라는 일이 가지는 특수성이 얼마나 다양한지 우리는 번역가들의 글을 통해 간접체험을 할 수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이제 우리는 번역본 책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질 것이다. 번역자의 이름을 살피고 그가 이전에 어떤 책들을 번역해 왔는지도 살펴볼 것이다. 문학이란 번역가가 없으면 세계로 퍼질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맨부커상을 원저자와 번역가가 왜 함께 수상하는지 우리는 이해하게 될 것이다. 번역가의 문학적인 번역 노력이 없다면, 문화가 다르고, 사는 방식이 다르고, 먹는 것이 다르고, 사는 공간이 다른 타국 사람에게 원저자가 생각했던 그 머릿속 느낌을 제대로 전해줄 수가 없다. 그만큼 번역가의 역할은 중요하다.

 

 

번역가의 일상이 궁금하다면, 내가 읽고 있는 이 책이 어떤 과정을 통해 쓰여진 것인지 궁금하다면, 번역일을 해볼까 꿈꾸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책이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선택한 당신의 손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생계형 번역가의 삶, 그 민낯을 구수하게 읽어낼 수 있는 참 알차고 쫄깃쫄깃한 책이었다. 그나저나 구글번역기가 맹위를 떨치고 있고 인간을 능가하는 지능형 로봇이 세상을 지배한다면, 번역가는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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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희망의 장애아동 버스운전기 | 비소설 2018-08-2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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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는 스쿨버스 운전사입니다

크레이그 데이비드슨 저/유혜인 역
북라이프 | 2017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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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쿨버스 운전사입니다>


꿈과 희망의 장애아동 버스운전기

여기에서 “꿈과 희망”이라는 부제를 붙인 건 아이들에게도 “꿈과 희망”을 준 버스였지만 저자 자신에게도 “꿈과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해서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그 “꿈과 희망”을 고스란히 전달해 받을 수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에게 이 버스 운전 경력이 “꿈과 희망”이 되었다고 판단하는 근거는 그의 파란만장한? 작가의 여정에 있다. 그는 에이전트까지 둔 전업자가로 출발했다가 쫄딱 망한 뒤 파선선고를 받고 우편함에 꽂힌 구인광고지를 보고 스쿨버스 운전사가 되었다. 그는 1년간 장애아동의 등하교를 책임지는 버스 운전기사를 한 뒤 다시 작가로 성공하게 된다.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제65회 간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제70회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등 세계 유수 영화제 3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러스트 앤 본> 영화의 원작 소설가가 되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책은 작가가 삶의 여정에서 실패라는 경험을 한 뒤, 포기하지 않고 인생을 받아들인 두 번째 삶, 잠깐 스쳐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이 1년의 경험 때문에 나머지 삶들이 보다 의미 있어지고 완성되어진 그런 중요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그가 장애아동들과 엎치락뒤치락 하며 보낸 1년의 삶이 자신에게도 꿈이 완성되고 희망이 성취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그렇게 본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라는 책이 나왔다. 비슷한 류의 책이라고 오해하면 안 된다.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라는 책은 버스기사인 저자의 눈을 통해 버스를 타는 사람들의 시선, 의미, 관계를 탐구하고 해석한 개인 성찰형 에세이이다. 그에 반해 이 책 “나는 스쿨버스 운전사입니다”는 저자가 특수아동 버스를 몰며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가고 바깥에서 봐 왔던 장애아동들의 마음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동화되어 가는 과정을 유쾌하게 풀어낸 소설 같은 책이다.

그래서 국내 책이 다소 무거운 느낌, 짙은 장미와 같은 책이라면, 노란 바탕에 깜찍하게 디자인된 이 책은 화사한 개나리와 같은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저자가 매우 낙천적이고 유머 가득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이 1년 뒤에도 계속 저자의 차를 타고 싶다고 할 정도로 그는 열여섯 살 아이들과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저자는 다시 글을 쓰고 작가가 될 힘을 얻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책 속 글들이 시종 유머로 가득 차 있다고 실제 그의 버스기사 삶이 행복에 겨운 것은 아니다. 언급이 자제된 부분이 있겠지만, 그가 운전한 3077번 버스에는 자기의 행복한 세상을 추구하는 자폐아동 개빈, 가벼운 언어장애를 가진 어린 소녀 나자, 지적장애가 있지만 스타워즈 전문가를 자처하는 백과서전 빈센트, 취약X증후군을 앓고 가끔 미친 인격을 보여주는 올리버, 그리고 뇌성마비가 있었지만 자동차 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휠체어 생활을 하게 된 제이크가 탑승했다. 그림이 그려지는가. 버스기사들은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상황을 전파할 수 있는 무전기를 가지고 있다. 아이들은 괴성을 지르기도 하고 오줌을 지리기도 하고 창문에 머리를 찧기도 한다.

상상할 수 있을까. 내가 만약 3077번 버스의 운전사라면 나는 어떻게 무얼 할 수 있을까.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3077번 버스를 몰게 된 저자는 아이들을 천사로 생각하며 아이들을 지켜주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진짜 천사라는 걸 발견한다.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선생님 운전사를 만나게 되고, 인생에서 가장 멋진 1년을 보내게 된다. 제이크는 저자와 깊은 유대를 가지며 친구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이 멋진 작가 운전사를 만난 덕분에 3077번 아이들도 행복했고, 저자도 “버스가 망가진 나를 살려줬다”며 다시 글을 쓰게 되었지만,
무엇보다도 책을 읽는 독자들도 그런 감정에 녹아들고 뭔가 긍정적인 행위로 이어질 가능성을 안게 된다는 것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행복감, 자연과 이웃을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시선, 뭔가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이런 것들이 싹터 옴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 이 책은 얼마나 멋지고 황홀하며 가치 있는 책인가.
이런 삶을 살아낸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며, 몇 년 뒤에 이렇게 완벽하게 그 때의 삶을 복기해 낸 저자의 정신력에 박수를 보낸다.

이제 나도 다시 뭔가를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저자가 3077번 버스를 만난 것처럼, 나도 이 책을 만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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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책을 무서워한다 - 다라야의 지하비밀도서관 | 비소설 2018-08-1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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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

델핀 미누이 저/임영신 역
더숲 | 2018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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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책을 무서워한다.

<다라야의 지하 비밀도서관>



 

너무나 무심했던 시리아 내전과 다라야 민주화 운동.

 

혼자 사는 것에 바빠 지구촌 이웃의 아픔에 이리도 무관심한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먼 시리아에서 독재자 아사드에 대항하고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을 내 건 젊은 청년들에게도 미안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그들과 끊임없이 연락을 취하며 세상이 그들을 보고 있음을 알려주고, 전쟁터 한 복판에 숨겨진 책보물 도서관의 존재를 알려준 저자에게도 감사했다.



 

시리아 내전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서 사전 정보를 조금 더 알고 책을 읽는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시리아는 터키와 이라크, 레바논, 이스라엘을 국경으로 두고 있는 국가이며, 1971년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하페즈 알아사드부터 2001년 이후 현재까지 장기 집권하고 있는 바샤르 알아사드에 위해 통치되고 있다. 시리아 내전은 중동의 민주화 시위의 영향으로 소규모 평화시위로 시작했지만 정권 유지에 불안을 느낀 아사드는 과도한 대응으로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오히려 사태는 더 커지고 말았다. 그리고 2015년 러시아에 지원을 요청하였고, 이에 대응하여 미국과 이스라엘 등이 가세하면서 복잡한 국제전으로 바뀌었다.


(처참한 다라야 시내 모습)

 

2018년으로 시리아 내전은 8년째에 접어 들었는데, 이 책은 내전 한 가운데에 있던 2012년부터 최종적으로 모든 시민과 자유시리아군이 철수한 2016년까지의 다라야 도시와 그 도시에서 저항한 젊은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 델핀 미누이는 프랑스 출신의 저널리스트이며 중동 지역 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다라야는 정부군에 의해 4년간 모든 도로, 물자 등이 봉쇄된 채 엄청난 폭탄으로 집중 공격을 받으면서 폐허가 되었다. 2015SNS에 올라온 다라야 전쟁터 속의 도서관 사진을 보고 접촉을 시작한 그녀는 총과 함께 책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고 책에 빠져든 시리아 대학생들과 어렵게 접촉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이후 다라야가 결국 정부군의 폭격을 견뎌내지 못하고 모든 시민과 자유군이 퇴출한 20168월까지의 기록, 그들과의 연락을 통해 알아낸 내전 상황, 젊은이들의 평화와 자유에 대한 마음의 기록물이다. 끝내 희생자가 되고 만 지하 비밀도서관의 창립자 오마르의 죽음은 해피엔딩을 기대했던 독자들에게 아직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음을 기억하게 한다.

 

참담한 전쟁의 포화 속에서 책을 통해 평화를 꿈꾸고 희망을 노래한 젊은 전사들의 이야기가 과장없이 여과없이 이 책을 통해 노출된다. 그리고 책이 총보다 얼마나 강력한 무기인지 이 책을 통해 알게 된다. 억압자들은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귀를 닫게 하려 하지만, 자유는 날개를 달고 있어서 미세한 틈을 비집고 날아오른다. 드럼통폭탄, 화학물질 폭탄이 수도 없이 떨어지는 전쟁터에서 책은 마지막 희망이고 마지막 기쁨이었다.

 

그들은 책을 통해 통치자들이 얼마나 나쁜 집단인지를 깨달았다.

 

이제 우리의 과거에 눈을 뜨는 것이 중요합니다. 의심과 절망의 순간에 과거는 왜 우리가 싸워야 하는지를 일깨워주었습니다.” (074)


(CNN이 촬영한 다라야의 비밀도서관 내부, 동영상 캡춰)

 

정부는 책을 숨겼지만 폐허 속에서 주워낸 책을 통해 청년들은 오히려 싸워야 하는 절대적인 이유를 발견했다. 그들은 폐허 속에 세운 도서관에서 어린왕자를 읽고,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읽었다. 시리아의 역사를 읽었고, 사라예보의 역사를 읽었다. 그들은 포화가 멎은 밤, 서로 모여 토론을 했으며 책을 통한 성숙을 마음껏 받아들였다.

 

이제 다라야에는 더 이상 그 도서관이 남아 있지 않지만, 이 책을 통해 다시 부활했고, 이 책을 통해 죽어간 젊은 저항자들이 다시 살아났다. 총칼과 폭력으로 자유를 억압하고 권력을 유지할 수는 있겠지만, 책을 불 태우고 지식과 지혜를 왜곡시킬 수 있겠지만, 진정한 진리는 폐허 속에서도 다시 피어오를 것이다.  다라야는 죽지 않았다. 다라야의 역사는 현재 진행중이다. 우리나라도 광주 민주화운동 등이 비슷한 모습으로 민족의 아픔으로 남아있다. 자유를 향한 모든 역사는 여전히 진행중이며, 불씨는 우리 가슴에 여전히 남아있다.


(이 책의 저자, 델핀 미누이)

 

~~~~~~~~~~~~~~~~~

 

책은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수단이자 영원히 무지를 몰아내는 방법입니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부 엘에즈도 역시 스물세 살이었다. (035)

 

살아남은 그는 책이 주는 유익함을 믿었다. 등의 상처는 치유할 수는 없다고 해도, 마음의 상처를 달랠 권리는 있는 것이다. ...

 

책은 지배하지 않습니다. 책은 무언가를 선사해주죠. 책은 거세하지 않습니다. 책은 성숙하게 합니다.” (037)

 

책은 속박에 저항하는 기억의 산물이었다. 또한 시간과 굴복과 무지에 대항하는 퇴적물이었다. (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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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코끼리를 삼킨 사물들 | 비소설 2018-07-19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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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코끼리를 삼킨 사물들

함돈균 저
세종서적 | 2018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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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를 삼킨 사물들>

 

부제로는 보이지 않는 것에 닿는 사물의 철학이라고 달았다.

참 맛깔나는 책이다.

제목에 나오는 코끼리는 당연히 어린왕자에 나오는 이무기가 삼킨 그 코끼리다.

그러니까 어른들 눈에 엉뚱하게 비쳤던 그 모자가 사실은 이무기이고, 모자처럼 보인 이유는 이무기가 코끼리를 삼켰기 때문인데, 어른들은 그저 겉모습만 보고 모자라고 판단해 버렸다.



 

그래서, 이 책 코끼리를 삼킨 사물들은 저마다 이무기의 다른 변형이다. 표지를 보면 좀더 자세하게 알 수 있다. 코끼리를 이루고 있는 온통 산만한 저 사물들은 모자이고, 빨대이며, 구두, 반창고, 가위, 책 같은 사소한 것들이다. 코끼리 몸을 좀더 자세하게 들여다 보면 바코드 리더기와 드론 같은 최신 사물도 보이고, 옛 가옥이나 빌딩, 계단 같은 이색적인 사물도 보인다. 결국 그것들은 겉으로 보기에 코끼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저마다의 다른 깊이와 넓이로 존재하는 사물들이다.



 

문학평론가인 함돈균은 문학 고유의 정치성과 예술적 전위를 철학적인 시야로 결합시키는 현장비평가라고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의 성격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그의 이력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책은 눈만 돌리면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사물들을 저자만의 시선으로 철학적으로 그러나 무뚝뚝하거나 난해하지 않은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참 재미있게 읽었다. 몰래 숨겨놓은 곶감 빼먹듯 아껴가며 하나의 사물씩 탐독했다. 거의 70개에 가까운 사물들이 저자의 눈에 포착되어 아낌없이 다른 모습으로 관찰되고 사유되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물이라고 생각되는 가위, 단추, 라디오, 만년필 같은 것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사물로 접근하기 어려운 신상 잇템인 귀도리(나는 이 책에서 귀도리를 처음 알았고 얼른 인터넷으로 찾아 보았다. 나는 아직 한번도 실제 귀도리를 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아마 이제 알았으니 이번 겨울에는 만나볼 수 있으리라.) 텀블러, 구르프, 핫팬츠, 핫바디 같은 것들도 있고, 인형뽑기 기계, 콘센트, 스툴, 스쿨버스, 주유기 같은 사회적인 것들도 있다.

 

어떤 사물이든지 작가의 눈에 포착되면 벗어날 길이 없다. 사물인터넷이 4차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고 있다. 모든 사물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그 사회가 오면 우리는 행복해질까.

 

모르겠다. 우리는 사물을 사물 그 너머에 있는 추억으로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참빗이나 철조망 같은 그런 사물들이 우리에게 주는 아픔과 아련함 같은 그 뾰족한 무엇. 그래서 실타래는 우리에게 문제라는 것은 풀어내야 하는 것이라고, 실마리를 찾아 끈기 있게 풀기 시작해야 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는 것이면 좋겠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인데, 이 책이 참 쓸모 있고 좋은 건, 사물이라 이름 붙인 다양한 작은 것들 어딘가에 깊이와 넓이와 사유와 행복과 감사와 사랑을 숨겨놓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면 결코 책에 소개되지 않았을 많은 작은 것들이 이제는 외롭지 않게 되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물들을 작가의 글로 만나볼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사람에게 유년기가 잇는 것처럼, 사물에도 유년기가 있을 수 있다. 모든 사물이 세상에 출현하는 최초의 순간을 떠올려보라. (008)

 

사람살이는 곧 인공 사물과 관계 맺는 일이다.

삶은 도구와의 관계 연속성 안에 있다. 사람들은 흔히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의 연속이 인생이라 생각하지만,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우리는 사람보다 도구들과 만나는 시간이 더 길다. (009)

 

(가위) 어릴 때 자주 들리던 엿장수 아저씨의 가위소리.

그 가위는 아무것도 자르지 않는다. 두 개의 날이 엇갈리며 만들어내는 명랑한 율동감과 소리 자체로 음악적 퍼포먼스를 구현할 뿐이다. (020)

 

(노란 리본) 우리의 봄은 결코 2014년 세월호 사건 이전의 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변색된 봄의 이미지는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사물에 대한 사람의 감수성을 이전이후로 확연히 나누는 절단면, 이것을 철학자 들뢰즈는 사건이라고 불렀다. ‘사고처리되면 끝나지만, ‘사건은 집요하고 철저하게 해석되어야만 한다. (059)

 

(다이어리) 마법은 그때 시작된다. 이 사물은 시간의 주인이 되려는 개인의 의지와 소망을 담은 노트다. ... 미래는 본래 내가 제어할 수 없는 불확실한 방향에 놓인 시간의 속성을 뜻하는 말이다. (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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