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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Life Goes on... | 21C's nomads 2021-09-22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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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초판본 야간 비행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저/윤정임 역
더스토리 |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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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오늘 하루는 해결될 것이다. (중략) 언제나 이런 식이리라, 언제나. 생전 처음 이 노익장의 투사는 자신이 지쳐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비행기의 도착은 전쟁을 종식하고 행복한 평화의 시대를 여는 그런 승리가 결코 아니다. 그는 단지 이제부터 걸어야 할 천 걸음에 앞선 한 걸음을 떼어 놓았을 뿐이다. (pp. 22~23)" 

 

  민간 항공사의 항로 책임자인 리비에르는 그날 밤, 칠레, 파라과이 아순시온, 파타고니아선 야간 우편기의 착륙을 기다리고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산업화가 속도를 내며 교통과 통신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1920년대로, 리비에르가 몸담고 있는 항공사 역시 더 빠른 우편물의 배송을 위해 육상교통수단과 경쟁을 하고 있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리는 철도와 달리 당시의 민간 항공기는 주간에만 운항하는 한계가 있었고, 이에 리비에르는 새로운 야간비행 항로를 개척하여 경쟁에서 앞서고자 하였다. 하지만 아직 초보적인 항공 기술로 인해 당시의 야간비행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고 나서 비상 랭프를 손으로 더듬어 제자리에 밀어 놓고, 그것을 손에서 놓았다가 다시 찾아보면서 램프가 미끄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손에서 놓았다. 레버들을 하나씩 건드려보고, 어둠 속에서도 확실하게 잡을 수 있도록 손가락을 훈련 시켰다. 손가락이 충분히 그것을 숙지했을 때 램프를 하나 켜서 정확한 계기들로 조종석을 정비했다. 그리고 잠수하듯 밤으로 진입하는 것을 오로지 계기판으로만 살펴보았다. (pp. 19~20)"

 

  깊은 바닷속을 유영하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같은 어둠 속을 순전히 조종사 손의 감각에 의존했다. 기상 상황이라도 악화되면, 기지국과의 교신마저 끊어져 그야말로 '창공의 미아'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목숨을 걸고 현장을 나는(fly) 그런 부하직원들의 귀환이니 리비에르의 하루하루는 전쟁터와 진배없을 터였다. 오늘 비행기의 귀환에 축포를 터뜨릴 수 없는 이유는 내일도, 모레도 계속해서 생때같은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밀어 넣어야 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들을 보내고, 기다리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리비에르의 삶. 목표를 향해 날아오르고, 그 와중에 운이 나쁘면 폭풍과 싸워야 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반복되는 팰르렝, 파비앵의 삶.

  문득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가 떠오르며, 그 의도야 어찌되었든 생택쥐베리와 카뮈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신을 기만한 죄로 무거운 돌을 밀어 산꼭대기에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 그러나 그 돌이 산꼭대기에 도달하면 산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시지프는 다시 처음부터 돌을 밀어 올려야 한다. '부질없고 고통스러운 일의 영원한 반복' 이것이 삶의 본질이다. 삶의 끝엔 행복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달콤한 결말을 쟁취하고자 희망을 품고 노력하던 인간은 어느 순간 삶을 깨닫게 된다. 무한 도돌이표가 새겨진 부조리라는 이름의 악보 위에서 진절머리 나게 재미없고 힘겨운 인생을 질릴 때까지, 그리하여 관에 들어갈 때까지 살아내는 것, 그것이 삶이다.

 

"리비에르는  작업 중이던 늙은 정비 감독 르루 앞에 멈춰 섰다. 르루 역시 40년째 일해 오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일에 모든 것을 바쳐 왔다. 밤 열 시가 넘어, 또는 자정에 그가 집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그에게 새로운 세계나 도피처가 펼쳐지는 것은 아니었다. (중략) 리비에르는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대답에 씁쓸함이 실려 있는지 알아보려고. 그러나 목소리에 슬픈 빛은 없었다. 이 남자는 자신의 과거 앞에서, 이제 막 아름다운 판자 하나를 말끔하게 다듬어 낸 뒤, "자, 다됐습니다."라고 말하는 목수처럼 평온한 만족을 누리고 있었다. (pp. 24~25)"

 

  주어진 시간을 현명하게 살아온 노인들은 삶의 민낯을 결국에는 눈치챈다. 산 정상에 돌을 올렸다는 기쁨도 잠시, 부하직원의 무사 귀환이 주는 환희도 잠시뿐,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저 묵묵히 오늘도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수행할 뿐이다. 늙은 정비 감독 르루처럼 말이다. 다람취 쳇바퀴 도는 것과 같은 반복되는 일상임에도 이를 받아들이면, 그 깨달음의 끝에서 평온한 만족감도 느낄 수 있다. 그것을 깨닫기까지 인간은 전 생애를 바치기도 한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칠레선 우편기가 돌아와 들떴던 기분도 잠시, 리비에르와 회사는 파타고이나선 우편기 조종사 파비앵이 악천후를 만났다는 것을 인지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채 마무리되지 않은 메세지를 마지막으로 간헐적인 교신마저 끊어져 버리고 그대로 파비앵의 파타고니아선 우편기는 실종된다.

 

"언젠가 다리를 건설 중인 공사장에서 부상자 한 명을 들여다 보고 있을 때였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기술자가 리비에르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다리가 처참하게 뭉개진 부상자의 얼굴만 한 가치가 있을까요?" 그 다리를 이용할 그 어떤 농부도 인근의 다른 다리로 돌아가는 수고를 덜기 위해서 이렇게 처참하게 한 사람의 얼굴을 짓이겨도 된다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리들은 세워진다. (중략) 사업은, 다리 하나를 건설하는 일에서도 개인의 행복을 부숴버린다. 이제 리비에르는 '대체 무슨 명목으로'라는 자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pp. 96~97)"

  전체 인류의 진보 앞에서 낱낱의 개인은, 그들의 삶은 희생되어도 그만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우리는 호모 사케르(homo sacer), '희생물로 바칠 수는 없지만 죽여도 되는' 무수한 생명들을 목도해 왔다. '무슨 명목으로' 파비앵의 목숨을 앗아가도 되는지 리비에르는 괴로워하지만, 여전히 생택쥐베리와 리비에르가 살던 시대에선 대의 앞에 개인의 존엄성은 쉽게 간과됐다. 다행인 것은 시간이 갈수록 진보의 방향이 점점 올바른 길로 향하고 있는 것 같아서이다.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일은 멈춰야 하는 폭력이다. 희생된 사람들을 기억하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 개인은 사라지고 태양신을 숭배하기 위한 신전만을 고대 잉카 제국이 남겼다면, 이제는 뉴욕 한복판에 마천루를 재건하는 대신 폭력 앞에 희생된 개인들을 추모하는 공간을 조성한다. 그리고 그것은, 희생된 생명은 오래도록 기억되고 영원성을 획득한다.

  파비앵의 실종이라는 비극 앞에서 절망하던 리비에르는 이내 냉정을 되찾는다. 칠레와 아순시온선 우편기에 싣고 온 우편물을 유럽행 비행기에 옮기고는 이륙을 명한다. 진보에의 갈망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자 숙명인 듯 하다. 아프리카에서 진화한 사피엔스가 유럽으로 진격한 역사, 세력다툼에서 배패했을 것으로 보이는 이들이 시베리아 동토를 지나 새로운 대륙으로 모험한 역사, 소문으로만 알고 있었을 미지의 대륙 오스트레일리아로 뗏목을 타고 건너간 자바인, 중력을 거슬러 달과 우주를 탐험하는 오늘날의 우주인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두려움 앞에서 물러섬이 없다.

  좌절과 고통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부조리한 삶이지만, 생택쥐베리는, 리비에르는, 파비앵은, 이 책을 공유하는 당신들과 나는 묵묵히 오늘을 살아낸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 본 서평의 제목은 이란 영화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동명의 영화제목을 빌려쓴 것입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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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학과 풍자로 웃고 있는 글자 뒤에 숨겨진 부조리에 대한 저항 | 21C's nomads 2021-08-28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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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니콜라이 고골 저/김민아 역
새움 |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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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과 정신을 갉아 꽃을 피운 위대한 작가 니콜라이 고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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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의 책을 써내기 위해 작가가 들였을 노고와 하얗게 지새웠을 수많은 밤들을 떠올리면 모든 작가들이 위대하게 느껴지며 존경심이 일어난다. 특별히 작가의 창의력에만 오롯이 의지를 하며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 싹을 틔워 긴 호흡을 이끌어 나가는 문학소설작가들이 쏟아 붓는 노력과 재능은 감히 상상하기가 어렵다. 여기 "가장 불가해한 러시아 작가 중 하나" "그 누구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라는 평을 듣는 러시아 작가, 니콜라이 고골(1809~1852)이 있다. 그의 단편 소설 다섯 편을 새롭게 엮어 출간된 니콜라이 고골 단편선 코(새움)을 읽고 나니 왜 그가 이러한 평을 듣는 위대한 작가가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고골은 소설 쓰기에 진심이었으며, 하얗게 밝힌 수많은 밤들과 육체적 에너지를 가차 없이 쏟아붓는 차원을 넘어, 자신의 영혼까지 갈아 넣어 작품들을 써내려 갔다. 해학과 풍자로 웃고 있는 글자들 뒤로 고골이 삶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살았고, 인간이란 존재를 얼마나 깊이 있게 고찰했는지가 느껴져 가슴이 먹먹해진다. 재치와 유머로 독자들에게 웃음을 던지고 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니콜라이 고골의 환상적인 단편선으로 이제 함께 승선해 보자.

  총 다섯 편의 작품 」, 외투」, 광인의 수기」, 소로친치 시장」, 사라진 편지가 차례로 실려있는데, 작품이 쓰여진 순서대로 새롭게 차례를 구성해 보니 「소로친치 시장」, 「사라진 편지가 1831년, 작가 나이 22세에 가장 먼저 쓰여졌고,  「광인의 수기(1835년, 26세)」, 「코(1836년, 27세)」,   「외투(1842년, 33세)의 순으로 세상에 나왔다. 작품 활동 초기에 쓰여진  「소로친치 시장의 경우 함께 실린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작품의 배경 묘사에 충실하며 글을 시작한다.

소러시아의 여름날은 얼마나 화창하고 얼마나 근사한지! 정오가 정적과 무더위 속에서 반짝일 때, 나른한 반구형 지붕처럼 땅 위로 휘어지는 푸르고 광활한 대양이 아름다운 대지를 가벼운 공기 중에서 포옹하며 충만한 만족감에 사로잡혀 잠든 듯 보일 때...(p. 166)

  '마치 한 폭의 그림을 그리듯' 작가가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우크라이나의 시골 마을을 따뜻한 시선으로 묘사하는데, 어쩐지 그 표현이 진부하고 '고골스럽'지가 않다. 아마도 이제 막 소설가의 세계에 진입하며 본격적으로 본인의 작풍을 찾기 전, 기성 문학 스타일을 그대로 따르거나 흉내낸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걸작에 대한 열망으로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단어를 선택하며 글을 써 내려갔을 청년 고골이 애잔하여, 지루하지만 대충 읽고 넘기기 미안해진다. 이후의 작품들에서는 배경이나 인물 묘사는 간략하게 처리하고, 바로 스피디하게 사건을 전개 시키는 변화를 보인다. 「소로친치 시장」과 「사라진 편지는 공간적 배경이 우크라이나로 도깨비, 악마 등이 등장하여 농군, 집시, 시골마을 사람들인 주인공들과 신경전을 벌이고 내기를 하며, 다툼을 일으킨다. 대부분의 전래동화에 나오는 도깨비나 귀신들처럼 두 작품에 등장하는 이들도 잔인하고 무시무시한 존재가 아닌, 어설프고 빈틈이 많은 친근한 캐릭터다. 예전에 외상술 담보로 인간에게 맡겼던 자신의 상의를 찾기 위해 소로친치 시장에 등장하는 악마, 여왕에게 전달할 편지가 숨겨진 모자를 지옥으로 가지고 간 악마가 일으키는 한바탕 소동은 오히려 시끌벅적한 축제판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한다.

  작가가 이 작품들을 쓸 당시에 처한 상황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떠했을지 감정이입을 하며 작품을 읽어가는데,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작가가 적어도 이 두 작품을 쓸 당시에는 앞으로 펼쳐질 인생에 희망을 걸고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그도 그럴 것이 고골은 아직 22세이다.

  희망과 따뜻함을 노래하던 고골의 시선이 「광인의 수기에서부터는 조금씩 어두워지고 그로테스크해지기 시작한다. 작품의 배경은 이제 유년 시절의 따뜻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시골 마을을 벗어나 칼바람이 부는 러시아 페테르부르크로 넘어온다. 고골은 아주 잠깐 하급 관리로 관료 사회에서 일을 한 적이 있는데, 이 때 현실의 벽에 크게 부딪히며 일종의 '현타'를 세게 맞은 것처럼 보이고, 인간 내면의 위선적이고 부조리한 모습에 큰 실망을 느끼게 된 듯하다. 페테르부르크에서 하급 관리로 일하는 주인공들( 「코의 코발료프,  「외투의 아카키 아카키예비치,  「광인의 수기의 포프리신)은 나이가 많거나, 가진 재산이 없거나, 타인에게 호감을 주기에는 부족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등 선망의 대상과는 거리가 먼 군상들이다. 아마도 고골이 잠깐 몸담고 일했던 관직에서 만났었을 법한 인물들일 것 같은데, 그 인물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미래를 투영해 보고는 좌절했을 수도 있고, 안타까워했을 수도 있겠다. 전체 작품에서 딱 한 번 고골이 직접 등장하여 목소리를 낸 부분으로 추측되는 부분이 있다.

얼마 전에 입사하여 다른 사람들의 본보기대로 그(주인공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를 비웃었던 어떤 젊은이는 무언가에 관통당한 듯 돌연 멈추었고 그때부터 그에게는 모든 것이 변해서 다르게 보이는 것 같았다. (중략) "나는 너의 형제다."라는 또 다른 말이 울려 퍼졌다. 그러면 가련한 젊은이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고, 그 후 살아가면서 인간의 내면에 비인간적인 것이 얼마나 많은지, 세련되고 우아한 태도 속에, 아아, 심지어 고상하고 정직하다고 인정받는 사람에게 난폭한 무례함이 얼마나 많이 감추어져 있는지를 보면서 수차례 몸서리를 쳤다.( 「외투」 p. 65)

  예민하고 예리한 고골은 인간 내면의 저열함과 위선을 낱낱이 고발한다. 작품  「코에서는 코를 잃고 인생 최대의 위기에 처한 사람이 의지하기에는 지나치게 속물적이고 이기적인 이름만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서장을 등장시킴으로써 상류사회의 위선과 기만을 고발한다. 그렇다고 주인공인 코발료프가 순수한 피해자인 것만은 아니다.

"그런데 저는 소령입니다. 동의하시겠지만 제가 코 없이 다니는 건 점잖지 못한 일입니다. 보스크레센스키 다리에서 껍질 벗긴 오렌지를 파는 장사꾼 여자라면 코 없이 앉아 있을 수 있죠"(p. 21)  

  자신이 받은 모욕과 무시를 본인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에 대한 업신여김으로 되갚음으로써 정신 승리를 하고 삶을 계속 살아갈 동력을 잃지 않는 입체적인 주인공의 모습에서 어쩐지 우리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는 듯하여 씁쓸하다.

   「외투에 등장하는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조금 다른 결의 인물이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때로는 서로를 의지하고, 대부분의 시간은 시기하고 질투하는 일반 사람들과는 달리 철저히 고립된 생활을 하지만 결코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서 삶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찾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세속적인 욕심을 모르고 소소한 일상에 감사하는 삶을 몸소 실천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신의 직무에 그토록 푹 빠져 사는 사람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열심히 일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니, 그는 애정을 갖고 근무했다. 여기, 이 정서 일에서 그는 자신만의 각양각색의 유쾌한 세계를 보았고, 그의 얼굴에는 만족감이 떠올랐다. 말하자면 그의 마음에 드는 어떤 글자들이 있었는데, 그 글자들을 만나게 되면 그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pp. 65~66)

    검소함을 넘어 궁상스러운 주인공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페테르부르크의 혹한에 어쩔 수 없이 인생 최초로 사치를 부리며 고가의 외투를 맞추게 되고, 새로 바뀐 외투를 걸친 후 처음으로 세속적인 욕망을 품어본다. 아주 잠깐 욕망에 찬 시선으로 세상을 한 번 바라봤을 뿐인데, 운명은 그에게서 전부인 외투를 앗아가고 결국 비극적 결말을 선물한다. 역시 삶은 부조리하다.

   「광인의 수기속 하급 관리 포프리신은 내성적이고 소심하다. 그는 상사인 국장의 서재에서 깃털 펜을 깎는 심부름을 하는데, 이것을 굉장히 영예롭게 생각한다. 국장의 총애를 받는다는 착각보다 그를 더욱 기쁘게 하는 것은 '백조'처럼 고고하고 아름다운 국장의 딸을 가끔 볼 수 있고, 그녀도 자기에게 반했다는 망상 덕분이다. 스스로를 지적이며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포프리신이 그녀와 이어질 수 없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직급이 낮은 것 뿐이라고 자위하지만, 신분에 대한 콤플렉스는 점점 그의 영혼을 갉아먹고 정신은 쇠약해져 개와 대화를 나누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며 유쾌하게 작품 활동을 하며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고골은 지나치레 진지하고 예민했으며, 날카로웠다. 만족스럽지 못한 작품을 불태우고, 다시 작품을 쓰고, 또다시 불태우기를 반복하며 아슬아슬하게 창작활동을 이어나간 고골. 끝까지 정신을 놓치지 않기 위해 성지 순례까지 떠났던 그이지만 결국 비극적인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자신의 정신과 영혼까지 갉아먹으며 작품을 쓰느라 본인의 삶은 위태롭고 힘들었지만, 우리는 그의 환상적이고 훌륭한 글들을 읽을 수 있기에 미안하고도 감사하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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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전문 서적에서 에세이로 자유롭게 장르를 넘나들며 독서를 고찰하는 흥미로운 책 | 21C's nomads 2021-08-10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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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독서의 역사

알베르토 망구엘 저/정명진 역
세종서적 | 2020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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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책의 제목을 보고 혹은 저자의 명성을 미리 알아보고 그 책에 대한 나름의 기대를 가지고 책읽기를 시작한다. 「독서의 역사」 알베르토 망구엘- 2018년 구텐베르크 상 수상자! “책과 독서, 인류의 끝없는 갈망과 독서 편력의 서사시!” 깨알같은 글씨가 빼꼭히 들어찬 제법 두툼한 분량, 독자를 책으로 이끄는 인상적인 한줄평과 임팩트 있는 책 제목, 그리고 대단한 상을 수상한 작가의 이력까지, 잘 쓰여진 고퀄의 여타 책과 동일한 공식에, 적어도 실패하지는 않겠구나 하는 기대감을 안고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차가운 라떼와 함께 하며 한 장 한 장 넘기기 시작한 책은, 그러나 나의 이러한 기대감에 물음표를 던졌다. 명성에 비해 그 내용이 난삽했고, 어떤 챕터는 마치 학위 논문인 것 마냥 지나치게 디테일해서 당황스러웠다.(이 책을 선택한 독자 중 정보의 입출력 작동 메커니즘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예기치 못한 당혹감에서 허우적거리던 중 다행스럽게도 초반 몇 장이 끝나갈 즈음부터 책의 흐름은 독자들이 이 책에서 기대했을 법한 궤도에 본격적으로 올라타기 시작했고, 뒤로 갈수록 흥미를 더해갔다. 낭독에서 묵독으로의 독서 패션 변화상, 절대성이 부여된 책 읽기에서 능동적인 해석을 허용하는 독서로의 변화, 두루마리 형태에서부터 포켓용 페이퍼백까지 다양한 책의 형태, 책 분류의 역사 등 독서 행위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인류의 역사 흐름에 따라 고증된 사실을 근거로 안내하는 모습에서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독서에 대한 열정이 지극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과정을 추적하는 알베르토 망구엘의 지식은 단순히 도서관장 수준을 넘어 인류학, 역사학, 고고학, 언어학 등을 두루 섭렵한 인문학자 수준으로 느껴졌다. 그를 우리는 진정한 인문학자로 부를 수 있으리라.
이 책은 독자에게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는 인문학 서적에서 독서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을 풀어내는 에세이로 그 장르를 자유자재로 너울너울 넘나드는 기술방식을 취하는데, 그 방식이 처음에는 낯설다가 이내 익숙해지고 나니, 새롭고 신선하게 느껴졌다. 또한 책을 읽으면서 동일한 경험을 종종 느껴봤던 같은 독서인으로서 동질감, 연대감을 느끼게 해 주는데, 그 소속감은 이 책의 저자인 알베르토 망구엘과만이 아닌 저 옛날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시작하여 파리 바이런 호텔에 앉아 프랑스 소네트를 독일어로 번역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에까지 이른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역사 속 인물과의 경이로운 조우와 공감대를 형성시켜 주는 마법같은 책, 「독서의 역사」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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