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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재리뷰(현대시/시집)
보들레르의 시집을 읽다! | 여중재리뷰(현대시/시집) 2021-07-2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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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초판본 악의 꽃

샤를 보들레르 저/이효숙 역
더스토리 |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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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서양문학사와 문학개론 류의 책들에서 숱하게 이름만으로 접했던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을 처음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주지하듯이 보들레르는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으로서, 기존의 제도와 문학적 권위에 반하는 작품들로 인해서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다. 기존의 종교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사탄'''을 찬미하는 듯한 그의 작품 세계는 충분히 기득권자들의 반감을 사기에 족했을 것이라고 여겨졌다. 시집의 제목인 <악의 꽃>이라는 표현 자체가 이미 상식적인 관념을 어그러뜨리는 것으로써, 관념화된 이상을 노래하는 기존의 경향을 벗어나 암울한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고자 한 시인의 의도를 담아내고 있다고 이해된다.

 

초판본 <악의 꽃>은 보들레르가 생존했을 때인 1857년에 출간되었지만, 여기에 수록된 6편의 시가 부도덕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이유로 검열에 걸려 출판금지가 되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 하나로 우울과 이상이라는 항목에 수록된 시 장신구의 첫 부분을 인용해 본다.

 

가장 소중한 여인은 벗고 있었고, 내 마음을 알고 있어서,

고리 나는 장신구들만 간직하고 있었고,

그 값비싼 것들이 그녀를 승리자처럼 보이게 했는데,

무어인들의 노예들이 호시절에 보였던 그런 모습이었다.

(보들레르의 시 장신구1)

 

 

당시 여성들을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여기던 관습에서 벗어나, 오히려 여성들을 장신구처럼 하던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그 여성들의 모습을 무어인들의 노예에 비유한 것이 문제였을 것이라 여겨진다. 물론 시의 나머지 부분에서도 이러한 시인의 현실 비판적인 면모는 유감없이 발현되고, ‘풍기문란이라는 이유로 삭제되고 벌금까지 부여받은 나머지 작품들 역시 시인의 날커로운 현실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이처럼 풍기문란의 혐의로 벌금형까지 받고 6편의 시를 삭제해야만 했지만, 보들레르는 이에 굴하지 않고 1862년에 초판본에 35편의 작품을 더해 전체 6부로 나누어 재판을 출판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사후인 1868년에 시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의 작품을 추가하여 증보판을 발행했다고 한다. 아마도 이 책은 1968년의 증보판에 수록된 작품까지 모두 포함하여 번역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후 벨기에 등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는 그의 시집이 출간되었지만, 정작 프랑스에서는 1949년이 되어서야 출판금지에서 풀려났다고 한다. 권력자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책과 시집을 자의적으로 출판금지 조치했던 1970~80년대 독재정권 시절 한국의 상황이 약 100여 년 앞선 프랑스에서도 벌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보들레르의 시는 작품의 내용뿐만이 아니라 표현 기법이나 시작 태도 등에서 새롭다고 평가되고 있으며, 이후 프랑스 시단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하여 기념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특히 주로인 기독교적 이념에 구애받지 않고. 오히려 이교도적인 면모를 드러낸 작품 경향이 문제되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보들레르는 재판 과정에서도 자신을 사실주의자로 평가되는 것을 거부했다고 하는데, 그의 작품에 드러난 상징주의적인 경향에 오히려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정신이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이해된다. 특히 에로틱한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사탄이나 이교도를 숭상하는 듯한 작품의 내용도 기존의 지배적인 관념과 충돌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비록 번역의 형태이지만, 이 시잡에 드러난 때로는 거칠고 직설적인 표현이 21세기에도 조금은 새롭게 보인다고 이해되었다.(차니)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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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 시인의 신작 시집을 읽다! | 여중재리뷰(현대시/시집) 2021-04-30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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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꽃으로 엮은 방패

곽재구 저
창비 |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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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시 창작을 가르치던 시인은 금년 2월 정년을 맞았다. 간혹 캠퍼스와 인근 식당에서 만나던 그의 모습을 앞으로는 좀처럼 볼 수 없게 되었다. 정년을 앞두고 새로이 펴낸 시집에 수록된 시들을 읽다가, 문득 시인의 자화상을 보는 듯한 작품을 발견했다. ‘세월이라는 제목의 작품은, 오랜 '세월' 시를 쓰면서 살았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면서 쓴 것이라고 짐작된다. 처음 시를 쓰면서 주변의 '하얀 민들레'를 비롯한 모든 것에 시선을 던지다가, 문득 꽃이 핀 '언덕에 엎드려 시를 쓰'던 소년은 아마도 처음 시를 쓰던 시인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그리고 '천지사방 꽃향기 가득'한 세상을 '걷다가 시 쓰고', 시간의 흐름과 함께 밤을 맞은 시인이 아침과 무지개를 그려봤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리고 이제는 '무지개 뜬 초원의 간이역 / 이슬밭에 엎드려' 시를 쓰는 '한 노인'은 지금의 시인을 형상화한 것이리라. 자신의 시처럼 늘 넉넉한 마음을 사람들과 세상을 맞는 시인의 일상에 행복이 깃들기를 빌어본다.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을 천천히 감상하다가, 관심이 많이 갔던 몇 작품들을 감상해보자.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에요

웃고 있군요

샌들을 벗어 드릴 테니

파도 소리 들리는 섬까지 걸어보세요

(곽재구의 '채송화' 전문)

 

이 시집의 맨 처음에 실린 작품인데, 4줄로 이런 시를 지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시인의 역량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 2월 퇴직을 해서 이제 '자유인'이 된 시인의 세상을 보는 관점을 읽어낼 수 있을 듯하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하게 핀 채송화를 보고 느낀 시인의 감정이 그대로 잘 묻어나고 있다고 여겨진다. 채송화가 활짝 핀 모습이 마치 시인에게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군요'라고 말한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것은 항상 웃는 모습의 시인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화자는 아마도 바닷가에 핀 채송화를 보고 이 시상을 떠올렸을 것이라 짐작된다. 꽃에 시선을 빼앗긴 화자에게 더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는 듯, 꽃은 '파도 소리 들리는 섬까지 걸어보'라고 권유하는 것처럼 상상력을 발휘하는 시인의 감성도 흥미롭게 느껴진다.

 

나는 강물을 모른다

버드나무도 모른다

 

내가 모르는 둘이 만나

 

강물은 버드나무의 손목을 잡아주고

버드나무는 강물의 이마를 쓸어준다

 

나는 시를 모른다

시도 나를 모른다

 

은하수 속으로 날아가는 별 하나

시가 내 손을 따뜻이 잡는다

 

어릴 적 아기 목동이었을 때

소 먹일 꼴을 베다

낫으로 새끼손톱 베었지

새끼손톱 두쪽으로 갈라진 채 어른이 되었지

 

시가 내 새끼손톱 만지작거리며

괜찮아 봉숭아 물 들여줄게 한다

 

나는 내 시가 강물이었으면 한다

흐르는 원고지 위에 시를 쓴다

저녁의 항구에서 모여드는 세상의 모든 시를 읽을 것이다

(곽재구의 '세상의 모든 시' 전문)

 

어떤 이들은 세상의 모든 일들을 알고 있노라 떠벌리기도 하지만, 세상의 극히 일부분만을 알고 있을 따름이다. 시인은 시조차도 바로 그러하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시를 모른다 / 시도 나를 모른다'고 강조하면서, 시인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를 창작한다. 굳이 '시가 이것이다'라고 정의하지 않아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에 비친 모습을 그려낼 뿐이다. 그렇게 시를 쓰다 보면 마치 '은하수 속으로 날아가는 별 하나 / 시가 내 손을 따뜻이 잡'아서 새로운 작품으로 형상화되는 것이다. 때로는 '내 새끼손톱 만지막 거리며 / 괜찮아 봉숭아 물들여주게' 하는 것도 시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나는 내 시가 강물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토로하고, '흐르는 원고지 위에 쓰를 쓰'는 것이다. 그렇게 흘러서 '저녁의 항구에서 모여드는 세상의 모든 시를 읽'는 것이 시인의 소망이듯, 나도 역시 그렇게 나에게 다가온 시들을 읽으며 살아갈 것이다.

 

파수강 칠십리

겨울비 오네

영변 약산 사오십리

삭주 구성 칠팝십리

누가 접었나

나뭇잎 배 낮달 동무 되어 흐르는데

얼굴이 파란 새가

남으로 가는 영을 넘네

(곽재구의 '파수강 칠십리' 전문)

 

이 작품의 제목에는 다음과 같은 주석이 붙어 있다. "파수강 : 해방 이전 청천강상류를 파수강이라 불렀다. 정주에서 도보로 한나절 길. 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는 파수강 변에서 쓰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시는 내용이나 제목에 붙은 주석으로 보나 김소월을 떠올리며 지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3행의 '영변 약산'은 김소월의 시 <진달래 꽃>에 언급된 지명이며, 4행에서 언급된 <삭주 구성>이라는 제목의 시도 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소월의 시를 읽으면서 시인을 꿈꾸고 작품 창작을 시작했다는 시인의 말이 떠오른다. 그리고 5행과 6행에서는 윤극영의 동요 <반달>을 연상시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남으로 가는 영을 넘''얼굴이 파란 새'는 아마도 시인이 그리는 소월의 모습일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우리고물상 지나

용당식물원 지나

낙원주유소 담장 위 노란 호박꽃

어린 태양의 축제 같아라

시가 찾아와 깜빡이등 켜고

길가에서 시 쓰는데 경찰이 달려오네

주정차 금지 구역 열심히 설명하는 젊은 경찰에게

면허증을 건네니

뭐 하셨소? 묻네

호박꽃이 좋아 시를 쓰는 중이었소, 하니

호박꽃이 좋으오? 또 묻네

아니오 평소엔 자두꽃을 좋아한다오

그가 천천히 면허증을 건네주며

다음번엔 자두꽃 핀 시골길에서 시를 쓰오, 하네

(곽재구, '자두꽃 핀 시골길' 전문)

 

이 작품에 담긴 상호들은 나에게도 매우 익숙하다. 순천을 가로질러 흐르는 동천가의 한적한 길에 위치한 간판들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인근의 아파트 공사로 인해서 교통량이 많아졌지만, 예전에는 자동차 통행도 그리 많지 않았던 길이다. 간혹 고가로 지나는 기차소리가 들려오기도 하지만, 차를 타고 그 길을 가다 보면 인근에 핀 꽃들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아마도 시인 역시 차를 타고 가다가 처음에 마주친 '낙원주유소 담장 위 노란 호박꽃'을 보며, '어린 태양의 측제 같'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 순간 문득 '시가 찾아와 깜빡이등 켜고 / 길가에서 시'를 쓰는 시인의 모습이 눈에서 그려질 듯하다. 그곳에 '주정차 금지 구역'이었던 듯, 시인은 여기에서 경찰과의 대화 장면을 그려내고 있다. '호박꽃이 좋아서 시를 쓰는 중'이라는 시인의 설명에, '호박꽃이 좋으'냐고 묻는 경찱과의 대화는 아마도 시인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장면일 것이다. 그러면서 '평소엔 자두꽃을 좋아한다'는 시인에게, 면허증을 거네주며 하는 경찰의 한 마디. '다음번엔 자두꽃 핀 시골길에서 시를 쓰'라는 기분좋은 대화로 작품은 끝맺는다. 시인의 시를 쓰는 감성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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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의 초기시들을 읽다! | 여중재리뷰(현대시/시집) 2021-04-17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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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흔들리지 않는 갈대

정호승 저
시인생각 | 2013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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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 명시선이라는 시리즈로 나온 이 시집은, 1991년에 이미 출간했던 시선집을 재출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1973년에 등단했던 시인의 20여 년 동안 발표했던 작품 가운데 선택된 시들이라고 하겠다. 물론 일부 작품은 재출간 과정에서 빠지거나 새로 채택되기도 했다는데, 나로서는 앞서 출간된 시집과 비교해 보지 못했기에 그 실상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시선집을 통해서 정호승 시인의 초기의 작품 경향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전체 4개의 항목으로 이뤄진 장절의 제목은 시인이 출간했던 시집의 제목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해당 시집에서 고른 작품들로 구성된 것이라 이해된다. 시인의 첫 시집이기도 한 <슬픔이 기쁨에게>는 정호승의 문학 세계를 독자들에게 뚜렷하게 각인시킨 작품들로 기억되고 있다. 여기에는 표제작인 슬픔이 기쁨에게가 첫 작품으로 수록되어 있다.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이 작품에서 시인은 우리가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이유를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한다. 그의 다른 작품들에도 슬픔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것은 대부분 우리 사회의 소외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감정 상태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리하여 살아가면서 우리가 간혹 잊고 사는 슬픔의 면모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기쁨은 단지 슬픔의 또 다른 한 형태일 뿐이라고 가르쳐 준다. 절절한 슬픔을 경험한 사람에게 진정으로 기쁨의 의미를 더 크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주위에서 누군가가 무슨 일을 성취하여 크게 기뻐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때로는 그로 인해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은 항상 자신을 뒤돌아보며 반성하게 한다. 그리하여 단지 내가 불행한 처지에 빠지지 않았다고 다행스럽게 여길 것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을 겪는 사람의 심정이 되어 울어줄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정호승은 우리가 잊기 쉬운 이웃에 존재하는 소외된 사람들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다.

 

<서울의 예수>라는 두 번째 시집은 정호승의 사회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1980년대 광주의 비극을 딛고 집권한 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담겨있다고 하겠는데, 표제작인 서울의 예수는 그러한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시적으로 잘 형상화하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특히 이 시집에 수록되었던 이별노래는 가수 이동원이 불러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기도 했고, 이후 많은 가수들에 의해 재해석되었던 작품이다. 세 번째 시집이었던 <새벽편지>는 시인의 감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죽음보다 괴로운 것은

그리움이었다

 

사랑도 운명이라고

용기도 운명이라고

 

홀로 남아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오늘도 내 가엾은 발자국 소리는

네 창가에 머물다 돌아가고

 

별들도 강물 위에

몸을 던졌다

(정호승의 '새벽편지 1' 전문)

 

누구나 다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요즘, 편지를 쓰는 사람은 아주 드물 것이다. 그래서 '새벽편지'라는 이 시의 제목이 의미하는 것도 쉽게 알아챌 수가 없을 것이다. '새벽편지'는 단순히 새벽에 쓴 편지라는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슨 말을 쓸까 밤을 꼬박 새우면서 온갖 고민을 한 이후에 쓴 편지이다. 시의 내용으로 보아 화자는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을 겪고 난 후에, 밤을 새우면서 고민한 끝에 이 편지를 썼을 것이다. '죽음보다 괴로운 것은 /그리움이었다.'라고.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서 쓰는 이 편지는 화자에게 '사랑도 운명이라고 / 용기도 운명이라고' 하는 자각에 도달한 것이리라. '홀로 남아 있는 용기가 / 있어야 한다고' 자위를 해보지만,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그래서 더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지 못하는 화자는 '오늘도 내 가엾은 발자국 소리는 / 네 창가에 머물다 돌아가고' 말았던 사실을 용기를 내어 편지에 고백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반늦게 쓸쓸히 돌아서는 화자에게 문득 강물에 비친 달을 보면서, '별들도 강물 위에 몸을 던졌다'라고 느꼈을 것이다. 화자는 상대방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이처럼 '새벽편지'에 담아 써 내려갔던 것이다.

 

마지막 항목은 1990년에 출간된 <별들은 따뜻하다>에 수록된 작품들 가운데 선택된 시들이다. 여기에 수록된 작품들은 아마도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탓인지, 사회 의식보타 개인적 감성이 두드러지게 표출되었다고 여겨진다. 이후에 출간된 시집들과 함께 읽으면서 비교하면, 시인의 감성은 그대로 묻어나면서 작품의 경향이 조금씩 달라졌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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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기형도를 기억하다 | 여중재리뷰(현대시/시집) 2021-02-05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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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거장에서의 충고

박해현,성석제,이광호 편저
문학과지성사 | 2009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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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기형도 20주기를 기해 만들어진 문집으로, '기형도의 삶과 문학'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이 책을 출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구입해서 가지고 있었지만, 그동안 서가에 꽂아두고 읽지는 않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 기형도 시에 대한 작품론을 쓰게 되면서, 그의 시집과 함께 비로소 읽어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모호한 표현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기형도의 시를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는 것이 오랫동안 이 책을 방치했던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더욱이 기념 문집의 특성상 지인들의 상찬이 많을 수밖에 없으니, 그 내용들에 대해서도 거북하게 느껴졌던 나의 인식도 작용했을 터이다.

 

이 문집이 출간된 지 10여 년이 흘러, 기형도가 죽은 지 벌써 30년도 더 지났다. 1989년 종로의 허름한 영화관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어, 사후에 지인들에 의해 출간된 시집이 바로 <입 속의 검은 잎>이다. 나이 30이 못 되어 죽은 것을 '요절'이라고 한다면, 기형도가 전형적으로 그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최근 그의 시를 다시 읽으면서, 나이를 먹은 탓인지 조금씩 그의 시와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이 문집에 실린 글들은 시인에 대한 상찬으로 일관되어 있기에, 기형도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그의 시집을 옆에 두고 이 책에 거론된 작품들을 다시 읽으면서, 그와 비슷한 시대를 살아냈던 터라 시의 내용들이 어느 정도 이해되기 시작했다. 기형도의 시는 198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좀처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시인의 개인사를 다룬 작품들도 적지 않기에, 그의 생애와 연보를 통해서 그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시는 비유와 은유가 많아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이런 점들이 그의 시를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것은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석의 여지가 많다는 점, 그리고 시인의 생애나 창작 배경을 무시하고 독자의 입장에서 읽어내려고 노력할 때 그렇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나친 상찬으로 일관하고 있는 이 책을 읽지 않고, 그의 시를 직접 읽는 것이 훨씬 유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 3부로 구성된 이 책의 목차에서, 1부는 질쿠는 나의 힘이라는 제목으로 기형도를 읽는 시간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여기에서는 후배 세대 시인들의 좌담을 통해서, 그들에게 끼친 기형도의 형향이 무엇인지를 다루고 있다. 이밖에도 기형도의 문학적 연대기와 그의 시 세계를 간략하게 정리하는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기억할 만한 지나침이라는 제목의 2부에서는, 기형도와 개인적 인연이 있었던 이들의 추모의 글들을 모아놓았다. 여기에 먼지 투성이의 푸른 종이라는 제목의 3부에서, 기형도 문학에 대한 비평들이 배치되어 있다. 조금은 거리를 두고 읽으면서, ‘동료문인들의 기형도에 대한 인식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인의 생애나 창작 배경을 안다면, 작품이 더욱 잘 이해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그러한 배경 지식을 떠나서 작품을 먼저 내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작품은 시인의 손을 떠난 순간 독자들이 자유롭게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상찬 위주의 글이 수록된 이 책을 읽으면, 오히려 작품에 대한 선입견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어쨌든 최근 그의 시를 다시 접하면서, 몇몇 작품들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시의 본질이 '모호성'으로 운위될 수 있다면, 기형도의 시는 모호성을 통해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 거리를 제공해준다고 여겨진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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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시인'의 진면목을 접하다! | 여중재리뷰(현대시/시집) 2020-11-26 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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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우리는 미화되었다

제페토 저
수오서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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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에 쓰인 '댓글 시인'이라는 표현이 나에게 무척 생소하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시인의 필명은 생소하지만, 그가 남긴 한 편의 시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이슈 가운데 하나인 열악한 노동 현실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음을 잘 알고 있다. 근래 정치권을 중심으로 '그 쇳물 쓰지 마라'라는 노래 챌린지가 진행되면서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법 제정으로 이어지기를 노력하고 있는데, 그 원작이 바로 이 책의 저자인 댓글 시인 제페토이다. 하림과 이지상을 비롯한 몇몇 가수들이 그 시에 곡을 붙여 노래로 만들기도 했는데, 정작 원작자가 '제페토'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댓글시인'이었다는 사실을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그 작품이 탄생했는가를 새삼 알게 되었다. 아울러 저자의 작업 방식과 다양한 관심 영역을 이해할 수 있었고, 아울러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의 창작 동기와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거의 매일 온라인에서 다양한 기사들을 읽고, 때로는 그와 관련된 댓글을 시 형식으로 기록하는 것이 바로 저자의 창작 방식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SNS 활동을 거의 하지 않으며, 남의 글에도 댓글을 달지 않고 또 잘 보지 않는다. '댓글'이 가진 긍정과 부정적 측면을 잘 알고 있으나, 비록 그 수가 작더라도 오히려 악성 댓글로 인해 상처를 받는 경우가 더 많고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경험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담당한 수업을 위한 카페를 제외한다면, 아마도 이 블로그가 거의 유일한 나의 SNS 활동 공간일 것이다. 내 글에 달린 것이 아니라면 남들의 댓글에도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에, '인터넷 뉴스를 읽고 시 형식의 댓글'을 쓰는 저자를 알지 못하는 것이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했던 것이다. 그러나 시를 좋아하고 전공하는 입장에서, 뜻밖의 인연으로 만난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시인의 작품과 창작 방식을 접할 수가 있게 되었다는 점은 예상치 않은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시집들과 달리,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은 그 창작 동기를 명확히 알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인터넷에 공개된 기사나 다른 사람들의 글 혹은 사진을 보고, 시인이 그에 촉발하여 지은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을 보면서, 시인의 관심 영역이 방대할 뿐더러 그 감성이 무척 세심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독자들이 책을 읽으면서 왜 저자가 그 작품을 창작하게 되었고 그 속에 담긴 감성이 무엇인지, 독자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작품과 함께 제시된 기사나 사진 등을 보면서 시인의 창작 동기와 의미, 그리고 그 감성을 이해하는데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방식으로 시를 지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시인이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일단 빠르고 거칠게 완독을 했지만, 다시 차분하게 시와 함께 그 동기가 되었던 기사 혹은 사진들을 음미하면서 정독할 시간을 갖기로 했다.(차니)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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