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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에필로그 | [연재] 살아 있는 괴담들의 밤 2015-01-20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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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들의 빗장을 열고 모니터 화면 밖으로 빠져나와 당신을 만나는 일,

 

오늘이 마지막이다.

 

그동안 살아 있는 괴담들의 밤을 함께한 당신에게 감사드린다. 덕분에 괴담이 지닌 어둠의 맛을 음미하며 즐겁게 작품 속을 여행했다. 나 제로의 이야기가 당신에게 어떻게 다가갔는지 알 수 없지만, 괴담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본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면 기쁘겠다.

 

각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괴담도 많았을 것이다. 오래전에 읽은 이야기책부터 신문, 잡지, 인터넷 그리고 누군가의 속삭임을 통해서 접한 이런저런 괴담들…….

 

당신은 아직 눈치채지 못했다.

 

당신이 떠올리는 순간 그 괴담들이 눈을 떴다는 것을.

 

 

 

 

 

 

 

 

떠올림은 소환이다.

 

괴담들은 좀비처럼 부스스 일어나 살아 있는 괴담들의 밤의 시간 속으로 걸어들어 왔다.

 

그리고 다시 당신을 잡아 끌었다.

 

닭발처럼 앙상하고 단단한 손가락을 벌려 당신의 머리채와 목과 사지를 사방에서 움켜쥔 수많은 손을 나는 보았다. 당신은 질질 끌려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사라진 밤의 시간 속에 들어와 있다. 의식하지 못한 채 몽환과 막연함 속에서 헤매고 있을 뿐이다. 의식의 경계는 물론 초침 소리조차 녹아버린 그 시간은 지금도 흐른다.

 

나는 살아 있는 괴담들의 밤마다 주문을 걸듯 당신의 귓가에 속삭였다. ‘나 제로의 존재를 여전히 믿기 힘든가?’, ‘캐릭터 정령이 실재한다는 사실이 과연 터무니없을까?’라고. 그래서일까. 당신은 캐릭터 정령이란 게 어디 있어, 하면서도 나 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마지막인 오늘도 나 제로와 이렇게 마주하고 있다.

 

당신은 적어도 나를 안다. 그리고 캐릭터 정령을 기억한다.

 

기억된다는 건 존재하는 것이고 소환되는 것이다.

 

고로 캐릭터 정령의 세계는 존재한다. 당신이 기억하는 나 제로로 인해.

 

 

 

 

 

 

 

 

 

 

지금 나는 당신 코앞까지 다가와 눈을 들여다본다. 당신의 볼을 살살 만진다. 내가 느껴지는가? 당신은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끝까지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 해도 상관없다. 당신이 느낌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나는 끈질기게 존재하는 것이다. 날 한번 생각한 이상 당신은 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소설이나 영화 속의 비현실적인 상황들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을까, 라고 누군가가 심각하게 말했을 때도 당신은 설마, 하며 코웃음쳤다. 저녁 아홉 시 뉴스에서, 동영상 자료 화면에서 그 상황이 버젓이 벌어지는 걸 두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그런 식으로 당신은 설마가 아닌 맙소사를 연발해야 했던 수많은 사건과 현상들을 경험했다.

 

설마맙소사사이에서 시계추처럼 오고 간 사건 사고와 현상들이 현재를 미래로 추동시키며 역사를 만들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또 설마를 혀끝에 매단다. 캐릭터 정령을 설마의 영역에 위치시켜 놓는다. 나는 상상한다. 캐릭터 정령의 세계 앞에서 언젠가 맙소사를 연발할 당신을. 그때 당신은 현기증을 느낄 것이다. 공포에 휩싸일 수도 있다. 내가 건넨 속삭임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오늘 당신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자마자, 나 제로는 새 작품의 주인공 캐릭터 속으로 들어간다. 운 좋게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다. 곧 작품이 서점 매대에 깔릴 것이고, 나는 활자들 뒤에 숨어 책을 집어든 독자들의 눈을 빨아들일 듯 들여다볼 것이다. 어쩌면 그들 중에 당신도 있을지 모르겠다. 당신과 나는 그 작품으로 인해 또 만날 것이다. 누구의 신작인지 궁금한가? 그건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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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괴담 도시에 거주하는 당신들의 눈은 반짝이는가. | [연재] 살아 있는 괴담들의 밤 2015-01-06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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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도시?

 

어디 있는 신도시냐고 누군가가 묻는다. 당신은 웃는다. 이제 웃을 만큼 괴담이라는 화두가 거북하거나 낯설지 않다. 당신이 괴담 도시에 사는 까닭이다.

 

괴담 도시를 묻는 그들에게 당신은 귀띔해주고 싶다.

 

당신들 사는 곳이 바로 괴담 도시라고.

 

 

 

 

 

 

 

 

 

 

 

 

 

물론 비아냥이 돌아올 게 분명하지만, 터무니없는 소리를 한 게 아니므로 당신은 개의치 않는다. , 떠오른 한 가지 의문에 멈칫한다.

 

괴담 도시에 살지만 과연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무거운 의문이다. 며칠 전 안부 전화를 준 지인의 지친 목소리와 다이어리에 적힌 수많은 약속과 전화번호가 머릿속을 부유하겠지만 당신은 고개를 젓는다. 당신의 존재와 당신이 맺은 이런저런 관계 모두가 허상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스쳐간 것이다. 의심 밑바닥에는 괴담 도시에 살고, 이 도시를 작동시키는 주체가 이야기라는 추정이 숨어 있다.

 

당신을 삼키고 당신 주변과 거리와 사람들과 사회를 재료로 삼은 괴이한 이야기 말이다.

 

당신은 들은 적이 있다. 괴담인 줄 알았다가 진실로 밝혀진 이야기들, 진실이라고 믿었는데 거짓으로 드러난 이야기들을. 그리고 밝혀지지 않은 채로 망각된 수많은 진실이 있다는 것도 안다. 당신은 자문한다. 인간이 아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것이 괴담이고 진실인가. 모호하다. 불확실성이 잠복한 현실에서 당신은 코끝을 실룩대기 시작한다.

 

불안이 밀생해 풍기는 공포라는 이름의 악취.

 

언제부터 당신 코끝을 따라다녔을까. 당신은 알지 못한다.

 

그 악취를 감지한 이들의 눈빛 사이로 이제 당신의 눈빛이 형형해진다.

 

 

 

 

 

 

 

 

 

 

 

 

 

당신이 느끼는 공포는 어디서 오는가. 신문이나 뉴스에서 접한 사건 사고 소식이 대부분이겠다. 언론 매체가 공포를 유통번식시키는 까닭이다. 그런 식으로 제공된 공포가 당신이 아는 것만 해도 족히 열 가지 아니 스무 가지도 넘겠다. 이를테면 싱크홀, 이상 바이러스, 테러, 재해, 묻지마 폭력. 죄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접했던, 누구나 자신들과는 상관없다고 믿는 공포다. 활자 속의 불안이었고 스크린 속의 공포였다. 그렇지만 어떤 징후를 보이는 사건 사고가 발생하고, 그 소식을 전하는 기사가 미래에 있을 수 있는 위험을 곧 닥칠 재난으로 묘사하는 식이라면 그 믿음은 깨진다.

 

불안과 공포는 쉽게 번진다. 당신은 빤한 질문을 던져본다. 언론 매체가 전하는 소식은 정확한가? 객관적인가?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까? 대답은 쉽지 않다. 당신은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불안을 응시할 뿐이다.

 

 

 

 

 

 

 

 

 

 

 

 

 

당신은 영화관의 어둠 속에 있다.

 

시선은 영화 시작 전 한 광고에 가 있다. 하마 체형에 두부살을 출렁이는 그(그녀). 미련해 보인다. 그런 그(그녀)가 잔인하게 외면당한다. 맘에 드는 이성에게, 면접에서, 쇼핑센터에서, 만원인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스꽝스럽지만 섬뜩하다. (그녀)의 고통과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전해진 때문이다. 포인트는 뒷장면에 있다. 고통과 공포에서 벗어나 날씬한 몸으로 당당해진 모습. A다이어트 프로그램을 선택한 결과다. 서비스를 받은 전과 후의 대비는 극명하다. 뚱뚱하지 않은 당신도 긴장과 공포를 느낄 정도다.

 

공포를 이용한 광고는 넘쳐난다. 불안과 위기의식을 조성해 목적한 반응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광고도 일종의 괴담이다. 이런 식으로 생산되고 유통되고 소비되는 괴담이 당신을 삼킨다. 당신 주변과 거리와 사람들과 사회를 빨아들인다.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당신은 괴담 도시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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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괴담의 유포자와 통제자 | [연재] 살아 있는 괴담들의 밤 2014-12-23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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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과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 온기의 연대처럼 사회를 이루기 시작한 오래전, 그 두려움은 공포의 친구가 아니었다. 사회가 커지면서 달라진다. 다수의 목을 조이는 목줄이 되어버린 두려움이 당신이 익숙하게 알고 있는 두려움이다.

 

당신은 상상한다. 그리고 느낀다. 목줄의 한쪽 끝에서 전해오는 불길한 진동을.

 

그건 괴담이다.

 

공포스러운가. 당신이 공포를 느끼는 까닭은 괴담을 퍼뜨린 주체가 지배 세력이었다는 사실이 외려 낯설지 않다는 데 있다. 당신은 그 사례들을 알고 있다. 공포스러운 건 괴담이 아니라, 현실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중세 유럽의 마녀 하면 당신에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고 어린아이를 잡아먹는, 고깔모자를 쓴 노파의 모습. 동화나 소설 속에 남아 있는 마녀의 이미지다. 마녀사냥에 재물이 된 사람들이 정말 그랬는지, 그들이 사악한 마녀였는지, 당신은 더 이상 의문을 갖지 않는다. 괴담이 속삭이고 지배 이데올로기가 지어낸 이미지임을 아는 까닭이다.

 

괴소문은 빠르게 퍼진다. 마녀가 존재하며 그 마녀들이 악마와 내통해 마을에 해악을 끼친다는 소문이 귀와 입을 타넘는다. 입들이 몰려다닌다. 타인을 경계하고 의심의 손가락이 누군가를 가리킨다. 누군가를 고발해서라도 부당한 의심을 피하고 싶은 이기심이 공포와 결탁해 광기를 키운다.

 

불에 타들어가는 희생양이 비명을 지르자 손가락질했던 이들의 눈동자에 안도의 빛이 스친다. 개개인들의 목줄 한쪽 끝에 세속 권력과 야합한 교회가 있었다. 그들의 셈법으로 탄생한 마녀괴담이 죽음의 대량생산을 가능케 했다. 안도하는 이들의 목을 조이며 양심과 이성까지 불태웠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의 비극 역시 괴담에서 시작했다.

 

그 괴담의 진앙지가 지배 세력인 것도 마찬가지다. 대지진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워지자 일본인들의 불만과 불신이 불길처럼 솟았다. 그 불길의 방향을 조선인들에게 돌릴 셈으로 일본 정부는 괴담을 퍼뜨렸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넣고 폭동을 일으킨다는 소문이었다.

 

일본인들 사이에 번진 공포는 폭력과 살인으로 점화되기 시작해 6천 명 이상의 조선인을 학살하기에 이르렀다. 조직적으로 동원된 군인, 경찰, 민간인 자경단이 어떻게 잔인한 살인마가 될 수 있었는지 당신은 생각한다. 그들의 귀를 자극해 흥분시킨 차가운 혓바닥을 상상한다. 그것이 정부가 속삭인 괴담이었음에 소름을 지으면서.

 

195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 광풍 역시 다르지 않다. 미국에 비밀리에 활동 중인 공산주의자들이 있다, 라고 상원의회에서 목소리 한번 높이고는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벗어나 영웅이 된 남자, J. R. 매카시를 당신은 기억한다. 그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을 찍었고, 공권력은 기다렸다는 듯이 의심되는 인물들을 색출하기 시작했다. 언론은 무고한 사람들을 토끼몰이하며 공포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후 괴담을 퍼뜨리며 벌인 또 하나의 광기가 세계를 뒤흔든다. 당신은 싱겁게도 금세 떠올린다. 전쟁 명분을 얻기 위해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 창고를 갖고 있다는 거짓 정보를 의도적으로 흘린 미 부시 정부의 광기를.

 

 

 

 

 

 

 

 

 

 

공포를 조성해 모든 불만과 불신을 흡수할 적당한 적 혹은 희생양 지목하기. 예나 지금이나 지배 권력자들이 애용하는 방식이다. 심리전을 위해 괴담을 이용하는 것도 그대로다. , 괴담유포의 수단은 현대로 와서 변화를 보였다.

 

변화란 쉽게 권력자의 입이 되거나, 통제되지 않는 인터넷과 SNS의 출현이다.

 

이 수단은 이야기와 정보로 넘쳐난다. 힘없는 개인이 목소리 낼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되기도 한다. 은폐된 사실 폭로와 위험에 대한 경고성 글도 끼어든다. 불안을 조장하는 괴담으로 보일 수 있는데, 괴담인지 사실인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 때문에 누군가는 안도하고 누군가는 초조하다.

 

당신은 누군가의 안도와 누군가의 초조 사이에서 긴장한다. 긴장은 의심이다. 사람들이 집중하는 어떤 글에 대해 근거 없는 괴담이라는 낙인을 찍고 통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면 당신은 이제 의심할 것이다. 의심의 강도를 높일 것이다.

 

때론 괴담은 주의를 주기 위한 사이렌이거나 은폐될 위기에 처한 진실일 수 있으니.

 

그 진실의 위기가 바로 당신의 위기일 수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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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공포를 퍼뜨리는 어둠의 모습들 | [연재] 살아 있는 괴담들의 밤 2014-12-0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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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이 온다.

큰 놈인가. 거미줄에 걸려든 먹이의 크기와 모습을 진동으로 상상하며 거미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여덟 개의 다리가 느릿하다가 빨라지는 장단을 타는 건 희열에 들뜬 까닭이다. 그런 희열을 맛보며 나 제로가 탐해온 것은 당신도 알다시피 공포다. 현대로 올수록 나는 공포에서 비릿한 쇳내를 맡는다. 캐릭터 정령인 나로서도 아쉬움으로 긴장하게 되는 현상인데, 과거 마녀나 유령 같은 모호하고 기괴한 존재가 퍼뜨리던 고딕적 공포가 정겹게 느껴질 지경이다.



 

 

 

 

 

 

현대인이 느끼는 공포.


단정적으로 말하기란 간단치 않다.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개인들이 처한 사회적‧정치적 환경에 대한 민감한 반응이라고.  

당신은 더 적절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지 잠시 머뭇대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반응이 자연적‧생태적 환경의 자장 안에서 작동한다는 점에도 고개를 끄덕인다.


고릿적엔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었던 자연환경이 사회와 인간의 어떤 병리적 현상을 보여주는 거울이 된 지는 오래다. 파괴되고 오염된 자연의 복수는 섬뜩하다. 그건 유용성과 이윤의 관점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이 그대로 인간에게 향했다는 방증이다.

 

 

 

 

  

 

 


 악취가 난다.


인간에 의한 자연적‧사회적 환경의 파괴와 균열에서 새어나온 악취다. 그 악취가 인간관계에 침투해 삼투하듯 다시 가정, 사회, 국가로 퍼져나간다.


오염된다. 일그러진다. 뒤틀리고 무감해진다.


사회가 개인을 부품화하고 효용가치가 다하면 버리고, 가정은 폭력과 침묵을 키우며, 국가는 그들을 감시하고 불만을 말하면 낙인을 찍는다. 존재가 살해된 인간들 사이로 유령이 떠돈다. 불신이란 이름의 유령이다. 묻지마 폭행과 살인, 테러, 실업, 따돌림, 치명적 바이러스 감염, 사찰, 신상 털기, 재난….


수많은 사건 사고 속에서 개개인은 안전한가? 당신은 안전한가? 믿을 수 있을까? 인간이 인간을, 개인이 사회를, 국민이 국가를? 믿었던 어떤 안전장치가 사실은 다 거짓이었고 입 벌린 함정일 수 있다는 의심이 자라 불안이 된다.


누구라도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은 당신의 일상 속에 내재화된다.


지진이 공포스러운 건 단순히 땅이 흔들려서가 아님을 당신은 알고 있다. 인간이 겪는 공포와 죽음이 빌딩과 제반 생활 시설의 철제 구조물들과 날카로운 유리 조각과 콘크리트 더미가 인간을 공격하기 때문인 것도 알고 있다.


그 앎과 환기는 잠시 불안으로 흔들리다가 당신의 나른한 일상 속에 잠복한다. 당신을 숙주 삼아 불안을 키운다. 어떤 자극을 받으면 당신을 찢고 나와 당신을 삼키는 공포가 된다.


인간을 위해 인간이 만든, 인간의 삶에 속하는 것들이 공포가 되어 인간을 죽이는 일은 그렇게 계속된다.

 

 

 

 

 

 

 

불안과 공포를 깨워 뒤흔드는 수많은 진앙지들.


당신은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답은 없다.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든 그게 답일 수 있다.


나 제로는 크게 세 가지로 본다.


하나는 사실을 알리고 주의를 주기 위해 사이렌을 울리는 측, 두 번째는 공포를 운용해 경제적‧정치적 이해타산을 꾀하는 측, 그리고 세 번째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모르는 외면과 묵인이란 이름의, 인간 개개인의 내면에 들어앉은 일상의 악이라는 측.

어쩌면 진앙지는 주체와 방식과 의도만 조금씩 달라졌을 뿐, 과거나 현대나 마찬가지였는지 모른다.


단정적으로 말하기란 간단치 않다.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괴담이 실은 괴담이 아닌 사실이었다는 의혹과 불안 그리고 공포. 그것이 어느 깊은 진앙지에서 온 사이렌의 파괴력이 될 수 있다.


당신은 목격한 적이 있다. 또 당신은 알고 있고 지금 느끼고 있다.
사람들 속으로 퍼진 불안과 공포가 어떤 사이렌의 파괴력 자체가 될 때 그 현상을 주시하고 경계하고 통제하는 또 다른 공포가 움직인다는 것을,


당신은 단 한순간도 공포의 자장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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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공포를 좇아 건너 탄 괴담 소설들 | [연재] 살아 있는 괴담들의 밤 2014-11-25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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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소리에도 색이 있다면 검게 물들 어둠의 시간.

작은 소리에도 신경줄 당기는 적막이 사방을 조여온다.

캐릭터 정령들의 세계가 존재할까, 라는 의문을 당신은 다시 떠올린다. 그 문장은 적막 속에 이미 녹아버린 뒤다. 당신은 안전띠를 놓친 기분으로 주춤 모니터 앞으로 상체를 당긴다.


당신은 안다.

나 제로가 공포를 좇아 건너 탄 소설들이 당신을 기다린다는 것을.


 

 

 

 

 

 

제목만으로도 강렬한 전율이 밀려오는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조너선 하커의 캐릭터로 분한 나는 심장이 튀어나올 듯한 긴장을 다스리며 드라큘라 성으로 들어간다. 거울에 비치지도 않고, 먹지도 죽지도 않는 드라큘라를 대면한 느낌은 한마디로 고딕적 어둠의 정서로 충만한 공포였다. 그 공포는 관 뚜껑을 열었을 때 더 강렬해진다. 죽은 것인지 잠든 것인지, 맥박이며 호흡이며 심장 뛰는 기미조차 없는데도, 볼에 발그레하게 생기가 도는 드라큘라의 모습에서 오는 공포.
 
그건 훅 끼쳐오는 낯섦에 대한 이해 불가한 모호함의 다른 이름이다.


『드라큘라』의 고딕적인 공포는 포에 와서 달라진다. 음울한 공포다.

『어셔가의 몰락』에서 어셔의 저택으로 향한 로드릭 어셔의 친구인 나는 기이한 풍경에 사로잡힌다. 외딴 저택과 영지의 단조로운 풍경, 황량한 벽, 맥 빠진 눈과 같은 창문들, 무성한 사초들, 희멀건 줄기를 드러낸 썩은 나무들. 그 모습들이 영혼의 지독한 우울함을 속삭인다고 느끼고 감응하는 자신을 본다.


그건 근원적 내면의 어둠이며 포의 공포이다.

 

 

 

 

 

 

 

 


만약 당신이 아침에 벌레의 모습으로 깨어난다면?


아마 상상해본 적 없을 것이다.


당신은 카프카의 『변신』 속 그레고르 잠자의 이야기가 허구가 아니라 바로 당신의 이야기일 수 있다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외면했다. 어쩌면 당신은 내가, 그리고 그레고르 잠자가 느낀 공포가 견딜 수 없는 어떤 것임을 막연히 짐작했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


그 공포란 존재가 삭제되어 버린 막막함, 소름 끼치는 절망이었다.


그 공포가 로버트 블록의 『사이코』에서는 폭력적으로 움직인다.


『사이코』는 히치콕의 영화로 더 알려졌지만, 소설 『사이코』에 깔린 공포는 영화 못지않다. 무엇보다도 히치콕이 영화화를 결정하는 데 영감을 준 욕실 살인 장면은 소설 속에 깔린 긴장과 공포가 인상적이지 않았다면 돋보일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섬뜩한 살인을 저지르는 이 장면은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단지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


그 이유를 만들어낸 인간의 마음이 이빨이자 날카로운 칼이 되는 공포.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단편소설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는 평범한 인간들이 자신도 모르게 만들어내는 공포를 다룬다. 저널리스트 피터 캐릭터로 분한 나는 교양을 갖춘 지식인이라 자부하는 이들의 모임 멤버다. 피터 역시 단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명을 피 말리듯 괴롭히고 죽음으로 몰아가는 행위에 동참한다. 그러다 문득, 이들의 표정과 웃음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다음 희생자가 나일 수도 있다는 의혹과 두려움 때문이다.

 

 

 

 

 

 

 

 

여행 중 일행 하나의 제안에 따라 마야의 정글 속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맞닥뜨린 폐허.

그 주위를 떠도는 형언할 수 없는 묘한 불안감.

그것의 정체는 무엇인가.


스콧 스미스의 『폐허』에서 제프 캐릭터로 분한 나는 그것의 정체 앞에서 공포에 휩싸인다. 사람의 목소리와 핸드폰 소리를 흉내 내 유인할 줄 아는 똑똑하고 교활한 덩굴식물. 하지만 인간을 공포에 빠뜨려 죽이는 것은 외부의 괴물이 아니라 스스로 괴물이 되어가는, 그 바닥을 알 수 없는 인간의 어두운 내면이었다.


눈, 코, 입이 얼굴에서 사라지는 증상을 보이던 사람이 숨 막혀 버둥대다 죽었다.
괴담이라고 믿었겠지만, 실은 괴담이 아닌 사실이었다는 누군가의 절박한 폭로를 접한다. 싹튼 의혹은 공포로 증폭되기 시작한다.


김휘의 소설집 『눈보라 구슬』에 수록된 단편소설 <괴담 라디오>에는 그런 공포가 깔려 있다. 여기서 인터넷 음악 방송 괴담 라디오 디제이 J로 분한 내가 본 공포는 지금까지 앞에서 이야기했던 공포들을 아우르는 근원적 공포다.


믿었던 어떤 안전장치가 사실은 다 거짓이었고, 시커멓게 아가리를 열고 있는 함정일 수 있다는 끔찍한 믿음의 배신.


그 공포는 현대인의 나약한 존재에 잠복한 불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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