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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포럼 | 생각줍기 2016-04-05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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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선거(?), ‘우리’의 삶
김 동 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지난 3월 17일 유성기업 노동자 한광호 씨가 자살했다. 그는 금속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회사 측으로부터 11차례 고소를 당했고, 8번 경찰 조사를 받았으며, 3월 14일 회사 측이 3차 징계를 위해 출석을 요구하자 집을 나간 후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최근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원청회사인 현대자동차는 용역회사인 창조컨설팅과 긴밀히 협의하면서 유성기업의 조합원 손해배상 소송, 징계, 노조탈퇴 유도 작업에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주무부서인 노동부는 회사 측의 주도하여 설립한 어용노조가 교섭대표 지위를 갖는 것을 묵인하였으며, 검찰은 회사 측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는 단 한 건도 기소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 사회의 대다수는 심각한 우울증

   현재 유성 금속노조 조합원 반수 이상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직업집단 중 통상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이는 소방공무원의 5배 정도에 달한다고 한다. 결국 지난 2011년 이후 유성기업 금속노조 조합원들의 삶은 매일이 ‘전쟁상태’였고, 노동부, 검찰, 법원, 언론, 시민사회, 그리고 정치권은 ‘다른 세상’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너무 흔한 일이어서 별로 충격도 주지 않는 한 사람의 자살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의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사회를 어떤 사회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35%는 경쟁사회, 18.4%는 양극화사회라고 답을 했고, 평등사회, 공정사회라고 답한 사람은 1%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우리사회의 갈등이 단절·원한·반감·단죄의 감정 등 극단적 트라우마 상태로 빠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한국사회의 대다수 구성원들은 매우 심각한 우울증, 트라우마 상태에 있다는 보고가 많고, 이것이 11년째 한국이 OECD 자살률 1위의 고공행진을 하는 사실을 설명해 준다. 사회생활에서 극도의 불공정감과 원한, 분노를 갖고 있으나,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해결할 길이 없다고 생각할 때 사람들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다. 많은 한국인이 부당한 일을 겪거나 억울한 처지에 있지만 문제해결을 위해 노조, 관청, 정치권에 호소해 봐야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실 정치, 정당, 선거라는 것은 다수 국민의 가장 심각한 고통을 해결하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국민 67%는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말하며, 청년층의 투표참가율도 OECD 거의 최하위권이다. 지역구에서는 1등만 당선되는 현행 선거제도에서는 2위 이하의 표를 합친 것이 모두 사표가 되고, 이런 한계를 교정하려고 만든 비례대표 의석수도 전체의 4분의 1도 안 되고, 이번 그 비례의 공천마저도 납득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국민의 보통 삶과는 거리가 먼 국회

  현 19대 국회의원 중 정몽준 의원을 뺀 299명의 재산 평균은 28억4342만 원이다(18대 국회 평균 재산인 26억4384만 원). 이번 선거에서 각 당 비례대표들의 재산 평균은 24억 원이라고 한다(새누리당 평균은 41억 원, 국민의당은 23억 원, 더민주당은 12억 원, 지역구 출마자 포함하면 평균 23억). 2015년 현재 가구주 전체 재산평균이 2억 8천만 원이니까 거대 정당의 비례, 지역 후보들은 평균적인 국민들보다 9배나 부자인 셈이다.

  결국 이번 총선에서 어느 당의 누가 당선되더라도 국회는 자산 상위 1% 사람들로 채워질 것이다. 국민의 평균적인 부를 가진 사람들만이 국회의원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상위 1%에 속한 부자 국회의원들은 회사 측으로부터 11번이나 고소를 당한 일도, 온갖 괴롭힘을 당하는 일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그런가. 거대 여야 정당들의 정책이나 후보자 개인 구호에서도 일터에서의 이런 불공정과 괴롭힘을 시정하겠다는 목소리는 거의 찾을 수 없다.

  그래도 최악 상황을 막기 위해 선거 참여는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거대 정당의 정치 독점, 지역의 일상 정치활동 부재,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 생색내기 비례대표 의석, 하향식 공천, 그리고 노동자나 영세자영업자 등 경제적 약자의 세력화 등의 과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선거는 ‘그들의 잔치’일 뿐일 것이다. 선거가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면 사회적 갈등은 해결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가 자체가 걷잡을 수 없는 위기상태로 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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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어쓰는 다산이야기 | 여유당 2016-04-04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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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과 제주도

  지난주에는 오랜만에 제주에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주대학교 인문대학에서 운영하는 인문학최고지도자 과정에 특강 요청을 받고 찾아갔습니다. 역시 제주는 아름답고 다양성이 많은 섬이었습니다. 아직 만개는 아니었지만, 벚꽃이 한창 피어나기 시작하고, 유채꽃은 참으로 보기 좋게 만개하였고, 다른 많은 꽃들이 육지에서 찾아온 손님들을 반겨주고 있었습니다. 강의를 마치고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나의 죽마고우 한 친구와 연락되어 밤이 늦도록 막걸리 한잔에 많은 담소를 나누고 잠자리에 들면서, 제주에 오고 보니 제주와 다산에 대한 이야기 하나를 생각해내고 그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요즘 세상에 많이 알려진 제주의 옛날 기생 만덕(萬德)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796년, 지금부터 200년이 훨씬 더 되는 때에, 기적(妓籍)에 실린 기생이던 여인 만덕이 정조대왕의 부름을 받고 나라에서 운영하는 역마(驛馬)를 통해 서울에 와서 임금을 뵙고, 그의 소원인 금강산 구경에, 중(僧)들이 띰은 가마를 타고 관광을 했던 사건이 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역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때의 만덕에 대한 사연을 다산의 글에서 읽어보겠습니다.

  “나는 만덕에게 세 가지의 기특함과 네 가지의 희귀함이 있다고 말하겠다. 기적에 실린 몸으로 과부로 살면서 수절함이 하나의 기특함이고, 많은 돈을 기꺼이 내놓아 빈민을 구제함이 두 가지 기특함이고, 바다의 섬에 살면서 산을 좋아함이 세 가지 기특함이다. 종의 신분으로 역마를 통해 상경하고, 기생으로 중들이 메는 가마를 탈 수 있었고, 외진 섬사람이 궁궐의 임금에게서 많은 선물을 받고 사랑을 받았으며 눈의 눈동자가 겹눈인 장애인이면서 그런 대접을 받은 네 가지가 바로 그의 희귀함이다(「탐라 기생 만덕이 얻은 진신대부의 증별시권에 제함」”

  1795년은 제주도에 흉년이 들어 수많은 백성들이 굶어 죽어가던 때인데, 만덕이 많은 의연금(義捐金)을 내놓아 많은 백성들이 살아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소식이 서울에 알려지자, 나라에서는 그의 소원을 묻고, 그의 소원을 해결해주는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그의 첫 번째 소원은 서울에 와서 궁궐에 들어가 임금을 뵙는 일이고, 두 번째는 금강산을 구경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 두 소원을 해결하려 역마를 통해 상경하게 하고 임금이 직접 맞아 많은 선물을 주고 금강산 구경까지 시켜주었는데, 이 때문에 일개 기생이자 종의 신분이던 만덕은 천하에 이름을 날렸고 오늘에도 만덕에 대한 대대적인 행사가 열리면서 제주도의 상징적 여인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다산은 오래 전에 아들에게 내려준 가계(家誡)에서, “형태가 있는 것은 없어지기 쉽지만, 형태가 없는 것은 없어지기 어렵다. 스스로 자기 재물을 사용해버리는 것은 형태를 사용하는 것이고, 재물을 남에게 나누어주는 것은 정신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물질로서 물질적인 향락을 누린다면 닳아 없어질 수밖에 없지만, 형태 없는 것으로 정신적인 향락을 누린다면 변하거나 없어질 이유가 없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만덕은 천하고 낮은 신분으로 많은 돈을 벌어 가난한 이웃을 도와준 의인이었습니다. 기생이면서 홑몸으로 수절하면서 거만의 재산을 가난한 이웃에게 바쳤으니, 그의 이름이 천추에 전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이래서 시혜(施惠)가 가장 큰 덕이라고 말해집니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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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만큼은... | 오늘 2016-04-0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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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만큼은(‘좋은 글’ 중에서)

오늘만큼은 ‘기분 좋게 살자.’

남에게 상냥한 미소를 짓고, 어울리는 복장으로 조용히 이야기하며, 예절 바르게 행동하고, 아낌없이 남을 칭찬하자.

오늘만큼은 ‘이 하루가 보람되도록 하자.’

인생의 모든 문제는 한꺼번에 해결되지 않는다. 하루가 인생의 시작인 것 같은 기분으로 오늘을 보내자.

오늘만큼은 ‘계획을 세우자.’

매 시간의 예정표를 만들자. 조급함과 망설임이라는 두가지 해충을 없애도록 마음을 다지자.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자.

오늘만큼은 ‘30분정도의 휴식을 갖고 마음을 정리해 보자.’

깊이 생각하고 인생을 관조해 보자. 자기 인생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얻도록 하자.

오늘만큼은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말자.’

특히, 아름다움을 즐기며 사랑하도록 하자.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 믿음을 의심하지 말자.

오늘만큼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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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편지에서 | 생각줍기 2016-04-0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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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에 한 사람(마더 데레사)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난 한 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 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하지만 만일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만큼 줄어들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가족에게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한 번에 한 사람씩이라는 복녀 마더 데레사 수녀님의 글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다 이루려는 마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만나는 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사랑이 필요한 것이지요. 지금 그 시작이 필요합니다. 한 번에 한 사람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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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산책 | 오늘 2016-04-0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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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민주주의야!”
박 원 재(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

  제후국들이 천하의 패권을 두고 약육강식의 경쟁을 벌이던 중국 전국시대, 전국칠웅(戰國七雄)의 하나인 한(韓)나라에 소후(昭侯)라는 군주가 있었다. 그가 하루는 술에 취해 잠이 들었는데 왕의 모자를 담당하는 관리가 소후가 추울 것을 염려하여 옷을 덮어주었다. 잠에서 깨어난 왕이 고마움에서 시립한 신하에게 누가 자신에게 옷을 덮어주었냐고 묻었다. 신하들이 모자 담당관이 그랬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소후는 왕의 의상 담당관과 모자 담당관 모두를 처벌하였다(모자담당관은 사형시켰다는 판본도 있다). 의상 담당관은 응당 자기가 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모자 담당관은 제 일이 아닌데 월권을 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한비자가 법치를 주장한 까닭은

  조직경영은 모름지기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거해야 함을 강조할 때 많이 인용되는, 『한비자』에 나오는 유명한 일화이다. 여기에 담겨 있는 한비자의 생각은 업무가 명확히 분장된 관료 시스템을 먼저 확립하고 해당 직책에 임명된 관리가 규정된 업무를 제대로 수행했는지를 따져 군주가 이에 따른 상과 벌만 정확히 행사한다면 국가경영은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모자 담당관이 자신에게 선의를 베풀었음에도 소후가 그를 처벌한 것은 이 때문이다. 사적인 판단에 따라 자신의 권한을 벗어난 일을 행함으로써 국가의 공적 시스템을 무시한 죄목이다. 국가경영은 인치(人治)가 아니라 법치(法治)에 의거해야 한다는 동양 법가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관점이다.

  그런데 한비자의 이런 생각의 갈피 속에서 민주주의적인 문제의식의 한 측면을 발견한다면 지나친 견강부회(牽强附會)일까? 여기에는 ‘보통 사람’과 ‘절차적 공정성’에 대한 사고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한비자는 자신의 법치론은 태평성대를 이끈 요(堯)·순(舜)과 같은 성군이나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걸(桀)·주(紂)와 같은 폭군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 수준의 군주를 염두에 두고 기획된 것이라 말한다. 이유는 명확하다. 치란(治亂)의 양 극단을 상징하는 요·순이나 걸·주 같은 군주가 다스리는 시대는 천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반면, 역사 대부분의 시기는 그저 그렇고 그런 중간치 군주에 의해 나라가 통치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아버지 잘 만나서 왕노릇하는 군주들의 시대가 대부분인 이상 통치론은 모름지기 이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이다.

  천 년에 한 번 올까 말까한 성군을 상정하고 통치론을 입론하는 것은 넌센스다. 그렇게 되면 나머지 구백 여년은 언감생심 성군정치는 흉내도 못내는 고만고만한 군주들에게 감당할 수도 없는 짐을 지우는 우를 범해 국가경영을 망쳐버리기 십상일 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에 희망을 거는 정치를 고집한다면 이는 수주대토(守株待兎)의 고사처럼 나무그루터기를 지키고 앉아 토끼가 걸려 넘어지는 요행을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비자는 비판한다. 그렇다면 답은 자명해진다. 천 년에 한 번 오는 요·순을 염두에 두고 국가경영의 얼개를 세움으로써 나머지 시대를 혼란에 빠뜨리지 말고 보통의 군주가 오더라도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는 상시적인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핵심이다. 이것이 한비자의 법치사상에 깔려있는 기본적인 문제의식이다.

  요약하자면, 한비자는 시스템을 상수로 하고 그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을 변수로 하는 통치론을 구상한 셈이다. 운영자의 자리에 어떤 군주가 오더라도 국가가 시스템에 의해 제대로 굴러갈 수 있게 하려는 취지에서이다. 한비자의 생각이 민주주의의 문제의식과 어떤 측면에서 맞닿을 수도 있다는 발상이 발동하는 부분은 이 대목이다. 바로 ‘보통사람’을 주권자로 상정하고 ‘시스템’,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주권자에 의해 확립된 ‘절차’에 의거하여 작동되는 국가에 대한 신념을 양자가 공유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제라고? 경제는 경제논리로만 해결되지 않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대목은 동시에 한비자식의 구상이 잠시 오버랩만 될 뿐 결코 민주주의와 만날 수 없는 근원적인 간극을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는 무엇보다 한비자의 법치에서 주권자는 ‘보통 군주’ 1인임에 비하여 민주주의는 원칙적으로 공동체 구성원인 ‘보통 사람들’ 모두라는 데서 분명해진다. 근래 엉뚱한 계기로 회자되고 있는,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이른바 주권재민의 원리가 한비자의 법치 프레임에서는 처음부터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 간극으로부터 너무나 익숙한, 민주주의 결코 훼손될 수 없는 토대를 역설적으로 확인한다. 민주주의는 특정한 계급이나 계층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 주체가 되어 자신들이 결정한 절차에 의거하여 각자의 의사를 표시하고 합의점을 도출해가는 정치적 제도라는 사실이다. 이 점에서 민주주의의 형식상의 최소조건은 모든 구성원의 공의(公議)에 의해 확립된 절차의 준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근래 우리 사회는 곳곳에서 이 최소조건이 뒷걸음질 치며 삐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사회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합의된 절차의 준수라는 원칙이 하나씩 뭉개져가고 있다. 심지어 대의민주주의 상징인 정당정치가 이를 앞서 실천(?)하는 아이러니를 목도하는 것이 현실이다. 주권재민의 원리에 따라 합법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권력들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의해 허수아비로 내몰리는 것도 모자라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줄을 서는 장면이 연일 연출되고, 이를 통해 공당(公黨)이 사당(私黨)으로 변질되는가 하면 정체성까지 새로 규정받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 덕이 아니라 힘에 의한 법치를 정당화한 한비자의 구상보다도 못한 정치현실이다. 1인 주권자와 시스템이라는 한비자의 두 축 가운데 전자는 시대착오적으로 부활하고 있는 반면, 후자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정치권은 문제는 경제라며 근시안적인 진단에만 매달린다. 그리하여 한쪽에선 저들이 경제를 발목잡고 있다고 호소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반대로 저들이 경제를 망쳤으니 심판해달라며 읍소한다. 내로라하는 경제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다는 정당에서 경제문제는 더 이상 경제논리로만 해결되지 않는다는 상식에 처음부터 무지한 건지 아니면 일부러 무시하는 건지 도시 요령부득이다. 이를테면 이번 장에서 한몫 잡으면 되지 다음 장까지 생각할 게 뭐 있냐는 식이다. 국가경영에 대한 어떠한 원려(遠慮)도 없이 이처럼 외곬으로 내닫는 형국에서 정치인들이 때만 되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 휘두르는 그 경제에 궁극적인 활력을 불어넣는 가장 강력한 사회적 자본이야말로 민주주의라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쇠귀에 경 읽기일 터이다. 그러니 한때 유행하던 패러디를 다시 한 번 호출할 수밖에. “바보야, 문제는 민주주의야!(It’s the democracy, Stup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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