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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가장 차가운 색: 레드 | 영화 리뷰 코너 2016-06-09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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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아가씨

박찬욱
한국 | 2016년 06월

영화     구매하기

 

 

 

일본 유명 드라마 중에 가정부는 보았다(家政婦は見た)란 작품이 있습니다. 이 가정부는 보았다란 작품은 가정부 미타를 이어 최지우 버전의 한국 드라마 수상한 가정부로 이어졌죠. 일본어로 '보았다'의 의미의 단어가 미타란 발음의 '見た'이고 이 발음을 사람 이름으로 재치있게 변용한 것이 마츠시마 나나코 주연의 드라마 가정부 미타인 셈입니다. 가정부는 보았다(家政婦は見た)의 경우는 일본 추리소설계의 거장 마츠모토 세이쵸의 작품을 드라마로 옮긴 것이라고 하는데 가정부 또는 하녀로 분류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여인이 부르조아 가정에 들어와서 그 가정의 범죄와 분열을 목도한다거나 그들 사이의 음흉한 욕망을 관찰한다거나 하는 것은 비단 이 일련의 가정부 시리즈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1960년대 개봉했던 김기영 감독의 영화 하녀 시리즈 내지 이후 만들어진 임상수 감독의 하녀 역시 부르조아 계급의 가장 깊숙한 욕망관찰할 수 있지만 본인의 신분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가정부/하녀라는 독특한 위치를 잘 이용한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영화 아가씨의 시작은 영화 인사동 스캔들도둑들암살을 섞어놓은 듯 합니다. 미장센이 화려하기로 유명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답게 영화의 초반부터 화면은 무척 아름답습니다. 하정우는 영화 인사동 스캔들에서 배우 김래원이 맡았던 캐릭터처럼 그림 복원 실력이 뛰어난 인물을 연기합니다. 어마어마한 소장품을 가지고 있는 일본인 코우즈키(조진웅) 일가를 한바탕 털어먹을 계획을 얘기하며 서로의 역할을 설명하는 장면은 마치 영화 도둑들의 초반, 태양의 눈물을 훔쳐내기 위한 모의를 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만들달까요. 암살 속 암살 모의장면마저도 생각나게 만드는 그 장면이 지나고 나면 주인공 숙희(김태리)가 코우즈키 일가의 거대한 저택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일명 하이스트 무비 또는 케이퍼 필름으로 불리는 장르처럼 시작된 영화는 저택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O의 이야기: 르네의 사생활 중 한 장면을 슬쩍 떠올게 만들더니 몽유병에 시달리는 클라라와 그런 클라라를 보살펴주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 비슷한 관계를 보여줍니다.

 

박찬욱 감독은 그동안의 작품을 통해 일본영화, B급영화 등 다양한 작품 속 이미지를 그에 영화에 반영해왔습니다. 올드보이는 일본만화에 바탕을 두고 특유의 현란한 반전을 통해 원작 이상의 작품을 만들어냈으며 친절한 금자씨의 경우 영화 사소리 시리즈 등의 여성 복수극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어느 정도 설명이 될 것입니다. 올드보이 속 반전 부분은 일본 B급영화 성수학원의 결말 부분과 비슷하며 르네의 사생활 속편에도 그 비슷한 복수극이 있었죠. 이번 아가씨의 경우 이러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적 취향을 엄청나게 많이 드러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눈치 빠른 관객이라면 숙희가 영화 속 대저택에 도착해서 집안을 둘러볼 때 벽에 걸린 초상화가 각도에 따라 표정이 바뀜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장면은 귀신에 홀린 집을 소재로 하는 공포영화들이 자주 쓰는 기법이겠죠. 비밀을 지닌 숙희는 마음의 병이 있는 아가씨 히데코(김민희)를 돌보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두 사람의 관계는 밀접해져서 주인과 하녀 이상의 심리상태에 빠지게 되죠.

 

하녀와 여주인의 은밀한 사랑이라면 사실 이런저런 에로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설정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진행되던 1부가 끝나갈 때 쯤에 반전을 시도합니다. 히스테릭하지만 성(性)에 있어서만큼은 순진한 것 같았던 히데코(김민희)는 저택에 숨겨진 음란 낭독회의 도구로 쓰여지던 존재였던 것입니다. 영화 책 읽어주는 여자여주인공 콘스탄스(미우 미우)가 소돔의 120일을 읽어야만 하는 상황에 그녀는 처해져 있었던 것이죠. 1부에서는 아가씨가 불쌍하게 느껴지고 2부에서는 숙희가 불쌍하게 느껴지는 과정을 통해 이 저택의 음란한 비밀이 드라마틱하게 밝혀집니다. (앞서 말했던, 보이는 각도에 따라 얼굴이 바뀌는 초상화가 이러한 반전을 암시했을까요?) 우리네 근현대사에 지식이 있는 분들이라면 덕혜옹주가 생각날 것도 같은 장면을 경계로 1부와 2부가 나눠지며 그 2부에서는 히데코의 은밀한 욕망 그리고 그 은밀한 욕망이 어떠한 트라우마 속에서 생기게 된 것인지를 묘사합니다.

 

히데코(김민희) 이전에 코우즈키(조진웅)의 노리개가 되어 음란 낭독회도구가 되었던, 히데코의 이모(문소리)는 저택에 심어진 벚꽃나무에 목을 매고 자살을 합니다. 히데코(김민희)의 침실 창에선 그녀가 목을 매고 죽었던 활짝 핀 벚꽃나무가 빤히 보였죠. 이모의 죽음,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토로하는 히데코를 보며 하녀 숙희(김태리)는 자신도 겪었던 어머니의 죽음을 얘기해줍니다. 어머니 그리고 죽은 어머니를 대체할 수 있는 존재였던 이모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던 히데코와 히데코처럼 어머니가 없는 상태로 자랐지만 '(숙희를) 낳고 죽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는 어머니의 말을 전해 들음으로 인해 어머니의 죽음을 극복하게 된 숙희의 모습이 대비되죠.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여성만이 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죽음마저도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모성(母性)을 통해 여성성(女性性)에 대한 긍정적인 공감을 하게 되었던 하녀 숙희를 만난 히데코는 어느새 숙희에 대한 마음을 열게 됩니다. 남성적인 욕망의 도구가 되어 그 틀 안에서 감금되어 성장해오고 그 과정에서 남성의 뒤틀린 욕정을 표현해낸 음란한 서적을 소리내어 낭독하며 그 음서 속 장면을 시연하기까지 했던 히데코(김민희)는 새로운 하녀 숙희에게 색다른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 과정이 이어지면서 급기야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느끼게 되죠. 숙희를 먼저 저택에 보내어 히데코의 마음을 사로잡게 해놓고는 뒤늦게 저택에 도착한 가짜 백작 후지와라(하정우)는 히데코(김민희)에게 접근을 합니다. 앞서 히데코와 관계가 발전하게 된 숙희는 히데코와 후지와라, 두 사람의 남녀 이성관계를 질투하게 됩니다.

 

을 위해 사랑을 버릴 것이냐, 사랑을 위해 돈을 버릴 것이냐 조마조마한 가운데 숙희는 후지와라 백작(하정우)과 히데코(김민희)의 농간에 넘어가게 되고 이 과정은 2부에서 히데코(김민희)의 내레이션을 통해 설명되게 됩니다. 히데코의 돈을 노린 한바탕 사기극은 히데코숙희의 탈출로 이어지게 되고 히데코는 일본으로 건너가서 후지와라 백작(하정우)과 간단하게나마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모종의 음모로 인해 히데코 대신 정신병원에 갇힌 숙희는 간신히 정신병원을 탈출하게 되고 숙희를 자기 대신 정신병원에 넣은 히데코(김민희)는 백작(하정우)을 보기좋게 속여 넘기고 또 한 번의 자유를 선택하게 되죠. 히데코의 이모부이며 거대한 저택의 실질적인 주인이며 음란 낭독회의 주최자이기도 한 코우즈키(조진웅)는 사람을 시켜 자신의 저택에서 도망친 남녀를 붙잡으려고 합니다.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에서 태양의 눈물을 훔치려고 모여든 사람들이 서로 속고 속이듯이 히데코 또는 히데코의 돈을 노리는 사람들 역시도 서로가 속고 속이게 됩니다.

 

일본에서 온 백작인양 너스레를 떨던 조선인 후지와라(하정우)는 진짜 일본귀족이 되기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는 코우즈키(조진웅)와 죽이 잘 맞는 관계였고 후지와라가 가짜 그림을 그려주면 코우즈키가 돈 많은 일본인 귀족들에게 진품 희귀본인양 팔곤 했었죠. 이 두 사람은, 훔치려는 존재이며 훔침을 당하는 존재이지만 사실 그 꼴이 아주 많이 닮은 캐릭터입니다. 진짜가 되고 싶은 가짜욕망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죠. 그리고 이 두 사람은 성적 욕망을 끝없이 탐닉하는 존재로 영화 속에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실체는 보잘 것 없다는 것으로 영화 속에 그려지죠. 대단한 플레이보이인양 거드름을 피우는 후지와라(하정우)이지만 하녀 숙희에게 사추리를 잡히고 민망한 놀림을 당하며 체면을 구기기도 합니다. 대단한듯 설치고 다니지만 기실 대단할 것이 없는 이 남자들의 실체를 슬쩍 설명하는 장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숙희와 히데코가 손을 잡고 들판을 뛰어 도주하는 장면이나 가학적인 음란함으로 가득 차 있었던 낭독회의 소재가 된 희귀음서를 한껏 훼손하는 장면은 페미니즘적인 요소마저도 느껴지게 만듭니다. 하지만 기껏 탈출해서 여성해방적 성유희를 즐기는 두 여주인공이, 남성의 성기 부속물이자 SM의 도구를 떠올리게 만드는 쇠구슬을 이용해서 성적 유희를 즐긴다거나 두 사람의 체위를 비추는 카메라의 시선이 레즈비언의 성행위를 관음적으로 즐기는 남성적 시선으로 느껴진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여성해방 영화의 순수한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음서 수집광 코우즈키(조진웅)나 음화를 베껴 진품인양 그려내는 후지와라(하정우)처럼 이 영화 역시 하나의 재미있는 음서요, 흥미로운 음화의 경지에 머물고 만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되었다면 과잉해석일까요.

 

신인배우 김태리의 발견은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귀여운 이미지의 배우 하연수를 떠올리게 만들다가도 80년대 뭇 남성들의 가슴을 뛰게 했던 안소영까지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순수와 섹시를 오가는 그녀의 이중적인 연기는 눈부셨습니다. 김민희 역시도 놀라운 연기를 펼쳤는데 그녀의 연기는 2부의 내레이션낭독회 장면을 통해 눈부시게 빛납니다. 격찬하고 싶은 두 여배우의 연기를 보며 그녀들이 연기하는 캐릭터의 감정에 몰입해서 영화를 보았지만 한 장면에서만큼은 그 몰입에서 벗어나 그녀들의 행동에 심리적으로 격한 반대를 표하게 되는 장면이 있었으니 이 두 여인이 코우즈키(조진웅)의 소장품훼손하는 장면에서입니다. 저 또한 건담에 마징가며 철인28호까지 이런저런 수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인간이며 어린 시절 애써 모은 장난감 로봇이 어머니의 손에 의해 훼손당했던 아픔이 있는지라 그 장면에서만큼은 심리적으로 그녀들의 행동에 반대하고 말았었죠. 

 

이 영화 속에는, 불에 가까이 다가가면 그 뜨거움 때문에 본능적으로 움직이게 된다고 하는 대사가 반복되어 나옵니다. 두 여주인공의 손에 의한 소장품 훼손이 아니라 코우즈키의 비밀스런 고문실에서 일어난 실화(失火)로 인해 소장품이 불타버리고 코우즈키로 하여금 그 소장품이 불타는 광경을 직접 보게 했다면 어땠을까요? 불타는 소장품 속에 코우즈키(조진웅)도 같이 불타 죽는다면 콜렉터로서의 적절한 죽음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후지와라를 고문실에 데려와서 의자에 묶어놓고 양초뜨거움을 이용해 고문을 하다가 후지와라(하정우)의 잔꾀에 의해 의식이 몽롱하게 되어 양초를 바닥에 떨어뜨리게 되고 그렇게 화재가 시작되어 소장품들에 불이 붙기 시작, 다급해진 코우즈키(조진웅)는 수조의 물을 부어 불을 꺼보려고 하지만 좁은 수조감금되어 있던 대형문어가 코우즈키의 얼굴에 달라붙고 그 문어의 흡판이 코우즈키와 입과 눈, 코를 막아버린다면 어떨까요?

 

수조에 감금되어 꿈틀거리던 문어는 저택에 감금되어 어릴 때부터 비밀스런 음란도구로 성장해온 히데코(김민희)와 히데코의 이모(문소리), 즉 남성적 욕망에 의해 학대 받아왔던, 가련한 처지의 여성을 상징하는 존재가 될 것이며, 좁은 수조에 가둬 키워왔던 문어가 그 수조 밖으로 나오고 그렇게 밖으로 나온 문어에 의해 고통받다가 죽어가는 코우즈키의 모습은, 가학의 대상이요 음란의 도구였던 존재들로부터 복수를 당하는 셈이겠죠. 이렇게 엔딩을 바꿨더라면 쇠방울 달린 기구로 두 여주인공이 성행위를 하고 그 두 여인의 성행위를 지켜보게 되는 장면으로 영화를 끝맺게 하는 것보다는 좀 더 여성친화적인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양초라는 것이 남성의 성기와 비슷한 길쭉함을 지녔기에 변태적 수집광 코우즈키(조진웅)가 바로 그 음경의 이미지이며 변태적 욕망의 도구인 양초에 의해 몰락을 맞이하게 되었다라, 그리고 그 과정에는 오랜 시간 감금의 고통을 맛보며 SM의 도구가 되었던 문어의 역할도 컸더라... 이렇게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했다면 더욱 재미있는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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