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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투 비 블루] Chet is Back! | 영화 리뷰 코너 2016-06-23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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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본 투 비 블루

로버트 뷔드로
미국, 캐나다, 영국 | 2016년 06월

영화     구매하기

 

 

 

 

The Fabulous Baker's Voice

 

쳇 베이커의 노래로 가장 많이 알려진 마이 퍼니 발렌타인을 제가 처음으로 접했던 것은 아마도 영화 사랑의 행로(The Fabulous Baker Boys)를 보던 중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감상했던 그 영화 속에선 여배우 미셀 파이퍼가 마이 퍼니 발렌타인을 불렀었죠. 남자 목소리로 불러진 마이 퍼니 발렌타인은 안소니 밍겔라 감독이 연출했던 영화 리플리를 통해 감상하게 되었답니다. 맷 데이먼이 (원작에선 알랑 드롱이 맡았던) 리플리 역할을 맡았던 그 영화에서는 주드 로가 주인공 리플리에 더 잘 어울리지 않나는 의견도 많았으며 알랑 드롱 출연작 태양은 가득히에 비해 영화 자체가 큰 인기를 누리진 못했습니다만, 마이 퍼니 발렌타인을 직접 부르던 맷 데이먼의 모습만큼은 대단히 인상적이었죠. 

 

한국에서 사랑의 행로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The Fabulous Baker Boys의 경우 Fabulous라는 단어가 다소 어렵게 느껴져서였는지 엉뚱한 제목을 달고 나왔는데 어쩌면 이 The Fabulous Baker Boys란 제목 속 Baker 형제의 Baker란 성(姓)은 기구한 운명을 살다갔던 Chet Baker에 대한 오마주의 뜻이 담긴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실제 형제인 제프 브리지스와 보 브리지스가 재즈 연주자 프랭크(보 브리지스)와(제프 브리지스) 캐릭터를 맡아 열연을 펼쳤으며 이들의 오디션에 참가한 가수 지망생 수지 다이아몬드 역을 미셀 파이퍼가 연기했었죠. 여가수 수지(미셀 파이퍼)가 부르는 몇 곡의 노래 중에 마이 퍼니 발렌타인이 있습니다. 재즈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강수지, 배수지(미스에이) 등 수지라는 이름을 가진 여러 가수 중에서 미셀 파이퍼가 연기하는 영화 속 수지 다이아몬드를 수지 중 으뜸으로 기억하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버드랜드를 떠나며

 

쳇 베이커(Chet Baker)는 미국의 재즈 트럼펫 연주자 겸 가수였습니다. 루이 암스트롱, 엘라 피츠제랄드, 빌리 홀리데이, 찰리 파커, 마일스 데이비드 등등 재즈 음악이라고 하면 흑인들의 세상이었을 때 쳇 베이커는 백인으로서 재즈 음악계에 뛰어들었던 인물이었죠. 영화 속에서는 쳇 베이커 외에도 많은 재즈 음악인들이 등장합니다. 이 영화 속에서는 주인공 쳇 베이커를 가장 압박하는 인물 중의 한 명이라고 볼 수 있는 캐릭터로 마일스 데이비드가 등장하는데 마일스 데이비드의 음반을 몇 가지 가지고 있는 저로서는 영화 속 마일스 데이비드 역으로 출연한 배우의 모습이 마일스 데이비드와 정말 많이 닮았다는 점에 깜짝 놀랬습니다.

 

쳇 베이커 역은, 90년대에 미남배우로 이름을 알렸던 에단 호크(1970~)가 연기를 맡았습니다. 쳇 베이커 역시도 젊었을 때 미남 재즈연주가로 엄청난 인기를 모았습니다. 에단 호크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젊었을 때의 꽃미모를 잃었듯이 쳇 베이커 역시도 나이가 들면서 젊었을 때의 외모를 잃었죠. 아니 그 이상으로 혹독한 노화를 겪게 됩니다. 쳇 베이커는 엄청난 마약중독자였었거든요. 니콜라스 케이지와 엘리자베스 슈가 나왔던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서 주인공 벤(니콜라스 케이지)이 알콜중독으로 죽어가듯 쳇 베이커는 마약중독으로 죽어가게 됩니다. 이 영화 본 투 비 블루는 어느 정도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와 비슷한 인물구도를 유지합니다.

 

영화가 시작됨과 동시에 영화 속 영화가 시작되고 쳇 베이커를 연기하는 에단 호크처럼 영화 속 쳇 베이커를 연기하는 쳇 베이커가 자신의 모습을 연기함과 동시에 영화 속 여배우에게 구애를 합니다. 실제로 쳇 케이커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영화에 출연했던 적이 있긴 있었죠. 실제 사건을 고스란히 영화로 옮긴 듯 시작한 영화는 곧 리얼한 다큐멘터리 영화의 길을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애정관계가 복잡했으며 그 복잡한 애정관계가 마약으로 인해 난장판이 되었던 것이 쳇 베이커의 사생활이었습니다만 이 영화 속 쳇 베이커는 영화 촬영 중에 만난 여배우와 순애보적인 사랑을 이어갑니다. 그렇게 만난 여인과 데이트를 하던 중에 쳇 베이커 재즈 인생 최악의 시련이 다가오게 됩니다. 마약상들의 미움을 받았던 쳇 베이커는 폭행을 당하게 되어 구강을 크게 다치게 되었죠. 트럼펫 연주자로서는 치명적인 부상이었습니다.

 

 

가장 뜨거운 음색(音色): 블루

 

치아를 다치게 된 쳇 베이커는, 트럼펫 연주자로서의 생명이 끝났다고 모두들 평가할 때 그 평가를 뒤집기 위해 노력합니다. 마약의 유혹을 끊어보기 위해 시골의 부모님 집으로 가게 됩니다만 그런 그를 보는 아버지의 시선은 냉담했습니다. 아들에게 악기를 선물하며 음악인으로서의 첫 발걸음을 걷게 했던 아버지는 그 역시도 한때 음악인이었죠. 3류 연주자로서 변변치 않은 음악 생활을 하다가 시골로 내려와 가난한 촌부(村夫)가 된 인물입니다. 그런 아버지의 눈에는 입에 틀니를끼고 트럼펫을 부는 아들 쳇 베이커가 한심하게 보일 뿐이었죠. 어쩌면 그 냉담한 반응은 실패한 연주자로서 남고 말았던 자기 자신에 대한 냉담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골 집에서는 아버지가 쳇 베이커에게 냉담한 인물이었다면 도시의 연주 공간에는 재즈의 대가 마일스 데이비드가 쳇 베이커에게 냉담한 인물이었습니다.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여 엄청난 아우라를 보여준 마일스 데이비스는 버드랜드라고 불리는 재즈 공간 속 최고의 실력자였었죠. 버드랜드라는 공간의 버드는 아마도 찰리 파커의 별명에서 따온 것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재즈 영화 버드를 통해서도 알려진 찰리 파커는 영화 본 투 비 블루에서 주인공 쳇 베이커의 우상입니다. 쳇 베이커는 찰리 파커를 숭배하며 그와 같은 길을 가고자 합니다. 하지만 찰리 파커로 향한 길은 무척이나 험한 길이었고 그 무렵의 재즈연주자들이 으레 그렇듯이 쳇 베이커 역시도 마약에 빠지게 되었고 그는 그 중에서도 가장 중증의 마약중독자가 됩니다.

 

모든 프로듀서들이 쳇 베이커의 재기를 단념했을 때 쳇 베이커는 꿈을 위해, 사랑을 위해 다시 무대에 오릅니다. 틀니를 착용한 입에서 트럼펫 연주를 할 때마다 피가 흐르곤 했지만 쳇 베이커는 연주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버드랜드에서의 첫 공연 당시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서인지 선글래스를 쓰고 무대에 올랐던 쳇 베이커는 재기를 위한 무대에서도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밑바닥까지 떨어졌던 재즈 연주자는 재기를 위한 리허설 과정에서 마이 퍼니 발렌타인을 부릅니다. 여태껏 그의 재기를 도왔던 애인에게 눈길을 주면서 말이죠. 담담한듯 떨리는 목소리로 부르는 마이 퍼니 발렌타인은 사랑을 노래하는 연가(戀歌)이면서 예정된 죽음을 향해 가는 만가(輓歌)가 됩니다.

 

 

재즈 앤 아더 드럭스

 

쳇 베이커는 영화 속에 묘사된 것처럼 마약상의 폭행 속에 치아를 다쳐서 밑바닥으로 떨어지게 되었고 피나는 노력을 통해 재기를 시도하게 됩니다. 영화 속에 묘사된 것 같은 순애보적인 사랑은 그야말로 영화적 장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만 연주를 포기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재기를 향해 끝까지 트럼펫을 놓지 않았다는 점만큼은 사실이었죠. 영화 속 여주인공 제인 허구의 인물이며 이 인물을 둘러싼 이야기는 영화 속 영화 속 영화인 셈입니다. 미남배우, 청춘스타로 시작해서 중년배우의 길을 걷고 있는 에단 호크(요즘 들어서는 종종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속 에단 헌트와 이름이 착각되기도 하는 이름의 배우)는 그 자신이 흠모해왔던 음악인 쳇 베이커를 뛰어난 연기를 통해 생명력 있는 캐릭터로 영상화시켰습니다.

 

실제의 쳇 베이커와 거의 흡사한 것 같은 그러나 다른, 이 캐릭터는 어쩌면 에단 호크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해보게도 됩니다. 여주인공 제인의 직업을 여배우로 설정해서 오디션에 참석하고 영화감독을 만나게 만들었고 그런 과정에서 이제 막 재기의 길을 걷기 시작한 쳇 베이커는 외로움을 느끼게 되죠. 청춘이란 단어가 가장 잘 어울렸던 배우 중의 한 명인 에단 호크청춘이란 포장지를 벗어던지고 트럼펫을 입에 물었을 때의 그 모습, 그리고 마이 퍼니 발렌타인을 나지막히 부를 때의 모습은 그야말로 쳇 베이커가 에단 호크의 몸을 통해 다시 태어난 듯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입니다. (에단 호크는 여배우 우마 서먼과 결혼했다가 이혼했던 적이 있는 인물이죠.)

 

제이크 질렌할과 앤 해서웨이가 출연한 영화 러브 앤 드럭스(정확하게는 러브 앤 아더 드럭스)에는 불치병에 걸린 여인을 사랑하는 제약회사 직원의 이야기가 그려집니다. 이 영화 속 마약중독은 그야말로 불치병과 같은 것이죠. 쳇 베이커가 어떤 인물이라는 것을 이 영화가 만들어진 미국, 그리고 재즈 음악에 관심있는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그의 최후 역시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구요. 한국사에 관심있는 분들이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죽음을 맞이했음을 알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까요. 그렇게 비극적인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인데 영화는 그 비극적인 죽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마치 영화 러브 앤 드럭스에서 두 연인의 만남과 사랑, 불치병으로 인한 시련, 그럼에도 계속되는 사랑만을 그려내듯 이 영화는 쳇 베이커의 재기 무대까지만 그려냅니다. 하지만 그 불치병, 즉 마약중독은 쉽게 치유될 수 없는 것이었고 중독성이 약한 대체약물로 버텨나갔던 쳇 베이커는 꿈에 그리던 무대 버드랜드의 컴백 공연을 앞두고 마약이 없어 고민하게 됩니다. 쳇 베이커는 그 자신의 음악적 성지(聖地) 버드랜드로 돌아왔습니다만 그와 동시에 심각한 마약중독자로서도 다시 돌아오게 되었죠. 그야말로 Chet is Back이 된 셈입니다.

 

 

Chet is Back

 

쳇 베이커의 연인 제인은, 그토록 어렵게 끊어왔던 마약중독의 세계로 쳇 베이커가 다시 돌아갔음을 주사기 바늘 끝의 사용 흔적으로 알게 됩니다. 무대로 향한 쳇 베이커의 모습과 빈 대기실에 남겨진 주사기를 본 여인을 교차적으로 보여준 이 영화는 이 두 사람의 이별, 그리고 쳇 베이커의 최후를 영화가 끝나갈 때 자막으로 알려줍니다. 러브 앤 드럭스에서 두 연인의 힘든 투병기를 끝까지 보여주지 않고 사랑이란 이름의 행복한 감정 속에 영화를 서둘러 끝맸었던 것처럼 이 영화 역시도 고통과 죽음으로부터 몇 발자국 앞에서 서둘러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 속 인물들의 배치입니다. 주인공 쳇 베이커는 그 자신의 우상 찰리 파커를 닮아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찰리 파커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버드랜드를 꿈꾸죠. 하지만 현실 속 그는 실패한 연주자인 시골 촌부 아버지의 모습에 가깝습니다. 퀭한 눈빛으로 냉담하게 쳇 베이커를 대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묘하게도 쳇 베이커의 실제 말년 모습에 가까운 외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재즈라는 음악 장르로부터, 찰리 파커라는 우상으로부터 쳇 베이커를 멀리 떼어놓으려는 존재는 아버지 그리고 마일즈 데이비드가 있습니다. 쳇 베이커는 그 두 존재의 냉담함을 떨쳐내기 위해 트럼펫을 불고 또 불게 되죠.

 

여배우이자 연인인, 제인이란 가상의 캐릭터를 통해 쳇 베이커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실패한 3류 연주자에서 전설적인 음악인 찰리 파커로 변해가는 예술가의 모습을 지켜보게 되죠. 하지만 버드랜드에서의 컴백과 엇갈려 가상의 캐릭터 제인은 마약중독의 길을 다시 걷게 되는 쳇 베이커의 곁을 떠나갑니다. 그 장면은, 영화 속 쳇 베이커가 아닌 아닌 실재의 쳇 베이커로 되돌려 놓는 순간이겠죠. 이 영화를 보고 있다보면 마이 퍼니 발렌타인 노래 속 Stay(머물러)라는 가사가 유난히 기억에 남게 된달까요. 머무르지 못함을 알기 때문에, 붙잡아도 떠나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Stay란 가사에서 더욱 더 절절한 느낌이 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959년, 젊은 시절의 쳇 베이커

 

 

 

1987년의 쳇 베이커 (1929~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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