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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 다시 만나는 아버지의 참모습/창비 | 문학 서적 2022-12-08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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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저
창비 | 2022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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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빈소를 들락거리는 일도 많이 있게 되었다. 가까이 모시던 분들을 모두 빈소에서 떠나보내고, 영원한 이별을 했다. 집안의 어른들도 거의 내 곁을 떠났다. 지인 가족들의 빈소도 많이 찾았던 듯하다. 그런 세월을 보내다 보니 사람들이 마지막 가는 길에는 솔직해 진다, 많은 사람들의 진솔한 얘기들을 듣기도 했다. 그것들은 충분히 얘깃거리가 될 수 있을 듯하다. 언어에 향기가 묻어 있는 사람들은 그것들을 충분히 다듬어 맛깔나게 공유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빈소에서는 확실히 많은 이야깃거리가 탄생한다. 이 이야기는 빈소에서 이루어진 이야기를 재료로 하고 있다.

 

이야기는 아버지의 죽음과 상주로서 며칠을 생활하는 사이에 겪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물론 그 며칠 사이의 이야기가 고인과 상가에 들리는 사람들의 과거에 맞닿아 있다. 역순행적으로 과거의 나들이가 행해지고 과거의 삶들에 대한 진단도 이루어지고 있다.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왜 그렇게 일어나는가를 알 수 있도록 근원을 밝혀 나가는 내용으로 첨언해 나가고 있다. 아버지의 주검, 그것이 그렇게 만들고 있다. 그것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이 화자의 눈을 통해 매끄럽게 전개되어 나간다.

 

아버지의 죽음과 문상을 통해서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그려진다. 아버지는 자녀가 딸인 나 혼자 뿐이다. 내가 혼자 상주로 빈소에 앉았다. 나도 이제는 많은 세월이 얼굴에 다가와 있다. 이순에 가까이 닿아 있는 나는 빈소에서 아버지를 추억하면서 방문객들을 맞는다. 혼자서 빈소를 지킨다는 것은 무척 힘에 겨운 일이다. 나중에 4촌들이 찾아와 같이 상주 노릇을 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다소 시간적인 위안을 얻으며 두루 주변에 시선을 돌릴 수 있는 여유도 있게 된다.

 

아버지는 빨치산이었다. 지리산, 백운산에서 투쟁을 하였고 나중엔 남부군에 편성되기도 했다. 전쟁의 와중에 산에서 내려와 자수를 한다. 공산당 지하 조직을 건설하기 위해 위장 자수다. 당연히 정치적 조직에 참여하고 투쟁을 한다. 그러다 잡혀 감옥살이를 한다. 아버지는 비교적 이념에 투철한 모습을 보인다. 그는 비전향장기수가 되어 20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풀려난다. 그리고 정치적 온상인 서울로 가지 않고, 고향에 반내골에 정착한다. 농사를 지으면서 삶을 이루어간다. 주변의 시선이 따갑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과 어울려 살아간다. 나라에서는 불온한 사상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그를 늘 감시한다. 아버지는 공산주의의 철저한 신봉자다. 생활에서도 공산의 의미를 되새기는 삶을 산다. 주변의 가족들은 힘들게 만들지만 인민으로 생각하는 타인에게는 언제든 봉사할 마음이 되어 있다. 마을에서 살면서도 남의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고 돕는다. 주변에서 어려운 일이 있으면 그를 찾도록 할 정도로. 즉 아버지는 이념에 대한 신념이 강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리고 그것을 생활화하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자신의 삶보다는 옆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 가족의 삶보다는 민중들의 삶을 먼저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나에겐 그리 달갑게 여겨지지 않았다. 어머니와 자신을 힘들게 만드는 삶이기 때문이다.

 

한 번은 마을이 힘을 합쳐 모내기를 하는데, 우리 집 차례가 되었다. 그날은 어떤 일이 있어도 일 년 농사인 모내기를 위해 자신의 집에 마음을 다해야 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먼 이웃이 사고를 당했다고 연락이 왔다. 아버지는 집의 일을 아내에게 맡기고 사고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집안일은 도외시하고 그 사고를 자신의 일인 양 처리해 준다. 집의 일은 엄마가 고생을 하며 마무리하고 있는데 자신은 뒤늦게 집으로 들어온다. 약방에 감초처럼 곳곳에 끼어들면서 가족을 힘들게 만든다. 그 일은 엄마의 심장을 빡빡 긁어 놓는다. 하지만 인민을 내세우며 같이 빨치산 생활을 했던 어머니의 입을 막는다. 이런 일들이 나에겐 달갑게 여겨지지 않는다.

 

이야기가 전개되어 나가면서 아버지의 삶이 하나씩 드러난다. 아버지가 빨갱이가 되어 조카가 진학하는데도 방해가 된다. 당시에 공익을 위한 단체(육사)에 들어가려면 연좌제를 적용했다. 가족 중에 누가 나라에서 생각하는 불온사상을 가진 자가 있으면 신원조회에 걸리게 되어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조카가 그런 경우를 당한다. 육사가 조카의 꿈인데, 연좌제에 결려 떨어지고 낙담을 하게 된다. 그 전까지 나와도 살갑게 지냈는데, 그 일이 있고 난 후 서먹해지는 관계가 된다. 아버지의 지난 삶이 조카의 진로를 막아버리는 결과를 만든 것이다. 그 일은 일가들에게 깊은 상처가 된다. 그러니 아버지를 그들은 좋아할 수가 없다.

 

황사장에게 조금씩 끌려가던 노인이 되돌아 침을 퉤 뱉었다. 빨갱이에게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저 노인 하나뿐이겠는가. 그게 아버지가 살아온 세월이었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심장이 두근거렸다. 경우 바르고 똑똑한 아버지가 21세기인 지금도 누군가에게는 함부로 침 뱉어도 되는 빨갱이인 뿐이었다. p133

 

흔히 공비라고 이름 붙여진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좌익 활동을 한 사람들을 대하는 일반인들의 심리가 드러난다. 이것은 반공으로 교육된 당대의 시대적 흐름도 한 몫을 할 듯하다. 공산주의라고 하면 이를 갈고 반대하도록 한 시대적 정신이 노인의 언행이 되어 나타나고 있다. 빨갱이라고 이름 붙여진 모든 이들에 대한 혐오와 증오가 표현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았을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 집단에 소속된 사람들의 이념은 종교적인 그것처럼 타협이 없다. 자신이 가진 생각들이 무조건 옳다. 그것에 방해가 되면 처단을 해야 한다. 그 지독한 언행이 일반인들에겐 주눅이 들게 만든 것이다. 인민을 위한다면서 실상은 자신들의 이념을 성취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던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분노일 게다.

 

어이, 황사장. 나가 분이 나겠능가, 안 나겠능가. 자네도 쪼가 생각을 해보소. 나는 베트콩들허고 싸우다가 다리 벵신이 됐는디, 나헌티는 땡전 한푼 안 줌시로 저런 뽈갱이놈 멩 끊어졌다고 군수에 국회의원에, 화환이 시방 말이 되능가? 쩌놈이 독립군이여, 애국자여? 반역자여. 반역자!” p133

 

시대가 바뀌고 사회주의적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제도권 속에도 들어왔다. 그들이 국회에 진출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도 끼리끼리 힘을 모으는 계기가 되었고, 힘을 발휘하기도 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빈소에 놓인 정치인들의 화환, 그것은 그들의 정치적 수단이기도 했으리라. 민중들에게 조금이라도 자신들을 알리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리라. 그것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일반인들에게 악담의 요소가 되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이질감이 아닐까? 무엇이 옳고 그른가는 독자의 몫이다. 하지만 이념과 사상보다는 인정의 소중함을 먼저 생각하는 삶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한다.

 

전남 구례가 이 글의 무대다. 그곳의 사투리가 걸쭉하게 상황을 잘 표현해 나가고 있다. 조금은 거친, 그러면서도 인정이 묻어나는 언어는 소통의 요긴한 도구가 된다. 사투리가 있기에 이념이 다른 사람이라도 서로의 가슴으로 다가갈 수가 있다. 이 글에서 사투리는 그 인정을 드러내는데 일목 담당하고 있다. 분노를 표현한 사투리가 안으로 자꾸 말려드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은 동질성 때문이다. 사투리가 이 글에서 하는 기능이 대단하다. 사람들의 마음을 순화시키는 기능까지 한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한 몫을 당당히 하고 있는 방언, 소설적 소중한 장치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많은 이슈를 접할 수 있다. 아버지의 장례를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뛰어주는 사람들의 따뜻한 인정, 경희를 통해서 종교인들에 대해 느끼는 관점, 빨갱이와 민노당 지부 결성 등을 통한 정치적 동지들의 유대감, 고향 반내골에서 생활하면서 만나는 농민들의 삶의 힘겨움, 아버지를 잃게 만들고 공부를 못하게 된 동생을 통해 가정을 파괴하게 만드는 이념의 허구성, 어린 담배 친구와 만남을 통해 인간적으로 인민에게 다가가는 아버지의 신념의 삶, 박선생을 통해 인정으로 만나는 삶의 소중함 등이 말해진다. 아버지의 인민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상가의 문상객들에 의해 재현된다. 서늘하고 처연했던 상가가 활기를 띠게 되는 것은 아버지의 인품 때문이 아니랴 생각된다. 아버지의 삶을 재현해 보게 만드는 문상객들의 모습을 만나면서 상주 아리의 시선은 차츰 변모해 간다.

 

평생을 공산주의자로 살았던 아버지는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었다.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진지한 모습으로 죽었다. 죽음이 상당히 희극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공산주의자로 가정의 삶에 등한시했던 아버지에 대한 화자의 의식은 냉소적이다. 처음 시작은 그렇게 느껴진다. 더구나 가족을 그리 고생시키고, 결국엔 치매를 가지고 살아가다 그런 결과를 만들고 있음에 따뜻한 시선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를 빈소에서 아버지와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면서 변모해 나간다. 희극적인 언행이 진지한 모드로 변해간다. 아버지의 소멸을 통해 아버지가 행한 삶의 가치를 다시 조명하게 되면서 자신의 삶으로 이끌어낸다. 즉 소멸한 아버지를 불멸의 존재로 소생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념이나 사상, 신념과 상관없이 가장 따뜻하게 인간적으로 살다간 아버지를 다시 일깨워보는 화자의 눈시울이 느껴진다.

 

화자는 아버지의 삶 속에 신념을 가지고 지식인으로 살았던 아버지의 모습을 찾는다. 공산주의 이념 때문에 정치적 동지들과 연계를 했던 일을 만나고 그것이 현재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본다, 가끔씩 들려준 정치적 이야기 속에서 아버지의 신념을 다시 느끼고, 투쟁 당시 질 것을 뻔히 알고 한 싸움 속에서 굳센 결기를 볼 수가 있었다. 정부의 민간인 학살 사건에 분노를 느꼈고, 타인의 어려움을 자신을 일처럼 돌보고, 아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격려한 속에서는 인정을 느낄 수 있었다. 장지를 두고 논의를 행하는 정치적 동지들의 모습에 감사와 덧없음을 동시에 느끼기도 했다. 결국 장지는 아버지가 좋아했고 많이 머물렀던 곳에 뿌리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씩 행해 나간다. 이념을 배웠던 학교, 인정을 나누었던 삼거리, 빨치산 활동을 했던 지리산, 백운산, 또한 아이와 담배를 피우며 자격증 합격하면 술을 사겠다고 약속했던 자리까지. 아버지가 마음을 나누며 살았던 곳에 아버지를 영원히 살게 하겠다는 생각을 실천한다. 아버지를 아버지답게 놓아주는 장지를 선택을 한다.

 

집단으로 인간들을 보면 그것은 기계에 불과하다. 집단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인간을 얼마나 매몰하게 하는지 모른다. 이 글을 통해 개인은 개인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함을 느꼈다. 개인이 가진 장점을 살필 수 있는 안목, 그것이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다시 생각해 본다. 우리는 민족의 역사 중, 아픈 손가락의 하나인 빨갱이라 불리는 사람들, 그들을 재조명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책속에서 빛을 발견한 느낌을 지닌다. 좋은 책을 읽었다는 생각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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