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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따뜻한 사람들과 순수, 긍정의 느낌을 나누고 싶다. 맑고 고운 삶이 되기를 소망하는 공간이다. 책과 그리움과 자연과 경외를 노래하고 싶다. 감나무, 메밀꽃 등이 가슴에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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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그곳에서 치열한 삶을 만나다/ 문힉동네 | 문학 서적 2023-01-23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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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하얼빈

김훈 저
문학동네 | 202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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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설렘과 함께한다. 둥글둥글 굴러가는 듯한 그의 언어가 내 마음에 감기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현의 노래를 읽을 때도 그랬고, 남한산성을 읽을 때도 그랬다. 그의 작품은 찾아서 읽은 듯하다. 이번 하얼빈도 그렇다. 그의 언어는 리듬이 살아 있다. 아마 유음을 많이 사용하고 의성어, 의태어를 사용하면서 반복과 열거의 표현, 말 잇기 표현 등, 리듬과 관련 있는 언어들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의 언어를 마주하고 있다 보면 금방 빠져드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마찬가지의 문체를 느꼈다. 나에겐 술술 잘 읽히는 문체다.

 

이 책의 내용은 저자가 젊은 시절부터 그려보고 싶은 소재였다고 한다. 아마 다른 작품을 쓸 때도 마음속에 내재되어 곰삭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이 세월과 함께 다시 표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그동안 해왔던 많은 고증과 자료를 통해서 이야기를 꾸며나갈 수가 있었던 모양이다. 황태자 이은의 도일부터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토를 표현하기 위해서 가져온 이야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안중근의 이야기는 젊은 시절 성당과 함께 표현한다. 천주교인으로 지역에서 위상이 있는 집안의 맏이로 그려진다. 그렇게 두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이토의 일본에서의 삶, 조선에서의 행적, 하얼빈으로 가게 되는 일 그리고 안중근의 천주교인으로의 삶, 가족관계, 블라디보스토크로 가게 되는 일, 그곳에서 독립군으로 활약하는 일, 또한 그곳 삶에서의 어려움과 이토를 저격하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경위 등이 그려진다. 성당에서 빌렘 신부와의 관계, 그리고 신부에게 학교를 세워줄 것을 부탁하는 이야기 등은 덤으로 그려지는 내용이다.

 

도주막의 어둠 속에서 잠을 청하는 밤에, 안중근은 이토의 육신에 붙어서 작동하고 있는 사태를 견딜 수 없어하는 자신의 마음이 견디기 힘들었다. 이토의 목숨을 죽여서 없앤다기보다는 이토가 살아서 이 세상을 휘젓고 돌아다니지 않도록 이토의 존재를 소거하는 자신의 마음이 가리키는 바라고 안중근은 생각했다. p89

 

이토를 죽이고자 하는 이유가 잘 드러나 있다. 저자의 안목이 이런 언어를 찾아낸 것이 아닌가 한다. 이토가 휘젓고 다니는 세상을 보기가 힘들어 그를 죽이겠다는 얘기다. 그것은 그동안 한반도와 한민족에게 이토가 행한 무수한 폭거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대동아 공영과 평화를 이유로 제시하고 있지만 그 내용에는 묘한 잘못이 들어 있다. 그들이 주축이 되어야 동양의 발전과 평화가 이루어진다는 이상한 논리다. 어느 민족이 일본 민족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서 숨죽이고 평안한 세상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그런데 이토를 비롯한 그들은 일본이 주축이 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그것을 방해하면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의 이상한 논리가 안중근과 같은 인물을 탄생시켰고 보면 된다.

 

하얼빈역 구내에서 철도는 여러 갈래로 겹쳐 있었다. 바이칼호수에서 오는 철도가 하얼빈역에 닿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오는 철도가 하얼빈 역에 닿았다. 평양에서 오는 철도와 대련에서 오는 철도가 하얼빈역에 닿았다. 북태평양과 바이칼이 하얼빈에서 연결되었고 철도는 하얼빈으로 모여서 하얼빈에서 흩어졌다. 하얼빈역에서는 옴과 감이 같았고 만난과 흩어짐이 같았다. p137

 

이토의 저격이 이루어진 하얼빈역의 상황을 얘기하고 있다. 사통팔달이 이루어진 교통의 요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한민족의 정기가 서려 있는 바이칼호수로 연결되어 있고, 이토가 만주를 방문하기 위해 기차를 출발한 대련과도 연결되어 있으며, 사건과 관련해 안중근의 식구들이 찾아온 평양과도 연결되어 있다. 또한 안중근이 이토의 저격을 오로지 목표로 출발한 블라디보스토크와도 연결되어 있다. 하얼빈은 교통의 요충지다. 그곳으로 이토가 찾아오는 것이다. 그것을 안중근과 그의 세력들이 노린 것이고. 거사는 성공을 했다. 그 역사적인 자취가 물의 흐름같이 흘러간 하얼빈역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 공간이기에 누구나 찾을 수 있은 열린 공간이었고, 그것이 저격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토가 죽지 않고 병원으로 실려 가서 살아났다면, 이토의 세상은 더욱 사나워지겠구나. 이토가 죽지 않았다면 이토를 쏜 이유에 대해서 이토에게 말할 자리가 있을까? 세발은 정확히 들어갔는데, 이토는 죽었는가, 살아나는 중인가. 죽어가는 중인가 p193

 

이토를 저격하고 난 후의 안중근의 마음을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다. 다양한 고증과 상상력을 동원해 저자가 그린 멋진 언어의 향연이다. <사나워지겠구나>란 말이 이토가 한반도에서 행한 악행을 한 단어로 적확하게 표현해 주고 있다. 쏜 이유를 이토에게 직접 얘기하고 싶어 하는 안중근의 마음이 저격의 이유를 알 수 있게 한다. 이토를 저격하는 이유를 말할 기회를 얻기 위해 저격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게 한다. 그것이 재판 과정에서 안중근의 단호한 자세와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다.

 

-성공하면 자살할 생각이었는가?

-아니다. 한국의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해서는 단지 이토를 죽인 것만으로는 죽을 수 없다.

-그런 원대한 계획이었다면 범행 후 체포당하지 않으려 했을 텐데, 도주할 계획을 세웠는가?

-아니다. 나쁜 일을 한 것이 아니므로 도주할 생각은 없었다.

 

질문이 답변을 누르지 못했다. 질문과 답변이 부딪쳐서 부서졌고, 사건의 내용을 일정한 방향으로 엮어나가지 못했다. 답변이 질문 위에 올라탈 기세였다. 피고인은 자신에서 불리한 진술을 힘주어 말했다. 전술은 유불리를 떠나 있었다. p234

 

안중근의 조사를 담당했던 검찰관은 미조부치다. 그는 신문을 하는 과정 속에서 안중근의 말을 막아야 하는 경우를 많이 만난다. 입을 그냥 두었다가는 조사고 뭐고 안중근을 영웅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안중근의 재판을 맡은 자는 재판장 마나베다. 위에 제시한 단락은 재판정에서의 진술이다. 이 진술을 보면서 안중근이 어떤 인물인가를 새삼 인식할 수 있다. 이토를 죽인 것이 전쟁의 일환이지 나쁜 일이 아니다. 그는 적의 가슴에 총을 겨누는 당연한 일을 했고 범행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적과의 싸움에서 일부는 성공을 하고, 포로가 된 것이다. 정말 당당한 언사가 행해지고 있다. 정당한 주장과 의연한 기개를 느낄 수 있는 대사다. <답변이 질문 위에 올라탈 기세였다.>는 말은 질문자들이 말문이 막히고 당황한 상황이 됨을 얘기한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통쾌한 일이다. 저자의 언어가 상큼하게 다가온다.

 

안중근은 말한다. 나는 헛된 일을 좋아해서 이토를 죽인 것이 아니다. 나는 이토를 죽이는 이유를 세계에 발표하려는 수단으로 이토를 죽였다. 나라가 처한 무척 어려운 상황에서 세계에 조선이 살아있음을 말하기 위해 독립전쟁의 의병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적을 사살했다. 살인범이라는 것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 안중근은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독립군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 그때 일본군을 포로로 잡았는데, 전쟁이기에 포로를 죽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이 나중에 일본군들을 안내해 와서 독립군 부대가 궤멸된 적이 있다. 그 일로 안중근이 동포 사회에서 무척 곤란을 겪는다. 그때의 일들이 참모중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도록 했다. 안중근은 사실 인권을 존중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토는 그렇지 않았다. 이토는 그들의 야욕을 이루기 위해 조선의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것이 결국 안중근을 비롯한 한민족에게 많은 상처가 되고 안중근을 자격수가 되는 길로 인도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안중근은 사형이 언도되고, 같이 저격하려고 하다가 실패하고 붙잡힌 우덕순은 3년 형을 언도 받는다. 안중근은 자신이 저격을 한 것은 조선을 알리기 위함이라는 서실을 얘기하기 위해서 자신의 정신으로 이끌어 주었던 빌렘 신부와의 면담을 요구한다. 빌렘은 프랑스인으로 안중근의 젊은 삶에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이다. 그는 이토 저격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종교인인 빌렘의 입장에서는 사람을 죽이는 일을 달리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의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의 경우로 보면 되겠다. 사형수로 있으면서 안중근은 종교인들에게 많은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물론 일본은 그를 중죄인으로 취급한다. 당연히 조선의 많은 사람들은 통쾌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영웅으로 칭송하지 않았나 싶다. 이토 저격 사건을 두고 사람들마다 관점을 달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자신을 중심에 두고 상대를 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사형수가 민족의 영웅이 되는 결과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안중근은 조선으로서는 영웅이다. 생명을 다해 조선의 위상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명동 성당의 대목구장 뮈텔 등 종교인들은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그것이 일제,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안중근에게 소홀히 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물론 일본인에게는 무서운 죄인으로 생각되지 않았을까? 이들의 묘한 관계를 세밀하게 그려서 보여준다. 김훈은 이야기를 재정리하는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복이다. 이 책은 김훈과 안중근이 만나 당대 민족의 열기와 결기를 잘 보여준다. 우리는 하얼빈을 읽으면서 시대적 아픔과 민족에 대한 진한 사랑을 확인하는 기회를 가진다. 민족혼이 담긴 멋진 소설 한 편 읽었다. 책을 잡고 있는 시간이 너무 빨리 흐름을 인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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