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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에서 사람들이 살아갈 바른 방향을 찾는다 | 사상 서적 2020-10-17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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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논어, 양심 덕후의 길

윤홍식 저
봉황동래 |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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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영원한 고전으로 불리는 사서삼경 중의 하나인 논어, 공자와 제자들의 언행이 담긴 이야기를 묶은 책이다. 유교적 사상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성장해 온 우리들에겐 너무 친근하고 가까이 있는 책이다. 선조들의 생각이, 선조들의 언행이 모두 이 책에 연원을 두고 있다. 그러기에 공기가 인간들의 삶에 필수불가결한 것이듯이 이 책은 우리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책처럼 여겨져 왔다. 우리들의 의식구조와 삶의 양태를 많이 지배해 온 책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 책은 논어의 내용을 양심이라는 하나의 관점으로 잡아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 색다르게 재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논어 중 <양심>과 관련된 내용을 풀어서 독자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양심은 고운 마음이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선한 쪽의 마음을 양심으로 보면 되겠다. 우리는 성선설과 성악설을 안다. 결과는 현실과 비슷한 모습을 드러내지만 성선설과 성악설은 출발점이 다르다. 맹자를 중심으로 한 성선설은 인간은 원래 선하다는 것이다. 즉 인간은 태어날 때는 모두 착하다는 말이다. 그것이 성장하면서 나쁜 것들을 보고 듣고 익혀서 그런 품성이 되어 간다는 것이다. 악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의 현재는 성장 과정을 문제 삼고 있다. 그들도 근본은 착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근본부터 악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도 있다. 성선설이든 성악설이든 그것이 그렇게 문제가 될 것은 아니다. 오늘 그 사람이 어떤 성품을 지니고 어떤 성향으로 나타나는가가 문제다.

 

이 책은 오늘의 품성을 양심과 관련해서 풀어보고 있다. 물론 텍스터는 논어다. 논어에서 양심과 관련되는 내용을 가져왔다. 인생은 길을 가는 것과 같다. 그 길에서 핵심이 되는 것이 바른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는 공자의 인(), 노자의 자애(), 소크라테스의 정의, 부처의 자비(慈悲), 예수의 사랑,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찾아낸 인간의 길의 핵심이었습니다.”라고 전제한다. 이들을 보면 어떤 각도에서 이 글을 이끌어 나갈 것인가를 추정해 볼 수 있다. 인간의 바른 삶을 양심에 견주어 찾아가고 있는 글이라고 여기면 되겠다.

 

공자가 추구했던 양심은, 선과 악을 명확히 판단하고 늘 선을 추구하는 마음을 얘기한다. 누구나 이러한 양심을 가지고 있는데, 공자는 이러한 양심을 더 잘 이해하고 표현하기 위해 평생에 걸쳐 학문을 갈고 닦았다고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선악에 대한 분별력이다. 분별이 이루어지는 것이 양심을 계발할 수 있는 첩경이다. 우리는 양심의 소리를 듣고 있다. ()를 얘기하면서 공자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양심의 소리다. 양심의 소리를 잘 따라가다 보면 양심의 발달을 이룰 수 있을 것임을 말한다.

 

성인()은 사람들이 잘 듣지 못하는 양심의 소리를 선명하게 듣고, 이를 남에게 설명해 줌에 있어 탁월한 사람을 말한다. 즉 인간이 성인에 이르는 것이 목적이라면 양심의 소리를 하나하나 밝혀 나가고, 나아가 우주의 소리와 하나를 이뤄나가는 것이 공자가 생각한 양심발달이론이라 할 수 있겠다. 인간에게는 시비(是非)를 분별할 수 있는 보편적 판단능력이 있다. 맹자는 이것을 양지(良知)-타고난 판단능력라 불렀다. 이것을 다듬어 보다 나은 지혜를 얻어가는 과정이 학문이다. 즉 양지를 잘 다스려 자신과 타인에게 유익하게 하는 일을 학문의 목적으로 보면 되겠다.

 

책은 논어 1장 학이(學而)편을 제시해 여러 가지를 얘기해 나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얘기들을 항목으로 나누어 표현해 나가고 있다. 번역과 첨언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바를 전달해 준다. <배우는 기쁨과 나누는 즐거움>에서는 공유의 양심 덕후에 대해서 말한다. 양심은 나눔과 관련되어 있음을 인지할 수 있겠다. <효도와 공경은 사랑의 근본>에서는 사랑이 모든 일의 바탕이 됨을 표현한다. 사랑이 없으면 효도도 공경도 참과 거리가 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교묘한 말과 꾸민 얼굴>은 타인과의 만남에 경계를 하게 한다. 공자는 이런 사람은 인()이 없다고 했다. 양심적이지 않은 사람이 교언영색(巧言令色)을 하게 된다. 이런 사람은 상종하지 않도록 권유한다. 공자는 제후의 법도에 대해서도 들려준다. 신뢰, 백성 사랑, 백성 동원 때에 맞게 등은 공자가 제후들이 양심에 따라 다스리는 법도를 일깨워 주는 내용이다. 집안에서는 효성스럽고 집 밖으로 나가면 공손하고 언행이 신중해 남에게 신뢰를 줘야 하며 백성을 널리 사랑하되 인자한 이를 더욱 친애해야 한다는 덕목을 얘기하면서 양심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를 말한다. 공자가 많이 하는 얘기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공감하며 충분히 실천할 수 있는 내용이라 생각된다.

   

 

실천하고 여력이 있거든 배우라. 백성들의 덕을 두텁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들은 공자가 양심에 따라 살아갈 것을 구하는 내용들이다. 성인의 5가지 덕목은 예절(), 성실(), 정의(), 지혜(), 사랑() 등이다. 이는 양심의 5가지 덕목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학문을 좋아하는 자세를 갖추라. 남을 알아주지 못함을 걱정하라.” 등과 같은 많은 얘기들을 양심의 덕목으로 제시해 이끌어 나간다. 공자는 논어를 통해서 인간이 어떤 길을 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가를 양심의 소리를 듣고 그것을 온전히 실행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양심은 어떤 결과를 만드는가를 살피고, 모든 양심에는 선의가 작용한다는 생각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 즉 양심이 가꾸는 이상적인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세상은 조화와 절제덕목이 지켜지는 자들이 가득할 것이며, 정의와 예절과 사랑잉태한 사람들로 거듭난 자들의 많은 세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게 되었을 때 군자들이 많이 나오고 서로가 믿고 의지하는 사회가 만들어져 나갈 것이라 본다. 이렇게 갖춘 사람들을 양심의 달인으로 부를 수 있겠고, 군자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을 잘 지키기 위해 경전을 만들게 된다. 공자는 양심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경전을 만들고 그것을 가르쳤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경전 공부를 얼마나 많이 했는가 보다, 삶에서 얼마나 양심을 잘 구현했는가를 더 중시했다. 그만큼 실제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부록에 양심경영의 6가지 원칙과 양심 노트를 제공하고 있다. 읽고 사용해 보면 복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양심경영 6가지 원칙은 몰입, 사랑, 정의, 예절, 성실, 지혜 등으로 제공하고 있다. 앞에 언급되었던 인의예지신에 몰입이 첨가되어 있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가장 근본이 되는 내용이 되겠다는 생각이다.

 

논어 속에서 양심과 관련된 내용을 가져와 선의 관점에서 인간들의 삶을 궁구하고 있는 글이다. 풀이한 내용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어떻게 해야 바람직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해 보게 한다. 삶의 가치가 상실된 오늘의 세상에서 가치를 느끼게 하고, 스스로 찾을 수 있게 만들어 나가는 책으로 보여 진다. 양심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궁구하게 만들고, 그것에 따라 이루어지는 세상은 평화, 순결, 정의 등이 살아 있는 세상이 될 것임을 생각하게 한다. 논어의 재발견이라는 사실을 우리들의 마음에 심고, 우리들의 삶을 가꾸는 등불처럼 인지하면 좋으리라 생각되는 고전 해설서다. 감사하게 읽고 마음에 <선함>에 대한 의식을 가져보는 기회가 되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인지하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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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정신분석학적 관점으로 접근한다 | 사상 서적 2020-07-29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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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법의 무지

슬라보예 지젝,알랭 바디우 등저/강수영 역
인간사랑 |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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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7인승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린 적이 있다. 당시에 법에 대한 우리의 무지가 작용했다. 차에 6명 이상을 태우고 버스전용도로를 타면 된다는 어설픈 법적 지식을 가졌다. 그래서 길도 바쁘고 차 두 대가 동시에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라서 앞차 스펙트라가 1차선으로 신나게 달리니까, 미심쩍어 하면서도 나도 1차선으로 차를 몰았다. 그리고 서울까지 잘 갔다 왔다. 문제는 갔다 오고 난 뒤에 일어났다. 집으로 차량 위반 딱지가 날아온 것이 아닌가? 그것도 3개나 한꺼번에 말이다. 하나에 범칙금이 9만원이었다. 꽤 오래된 일이니까 당시의 9만원은 무척 컸다. 그래서 경찰서까지 찾아가 따졌던 적이 있다. 무슨 법이 이러냐고. 한꺼번에 일어난 일이니까 하나만 나와야 바른 것이 아니냐고. 경찰서 당사자는 말했다. 모르고 그랬다고 법을 지킨 것은 아닙니다. 법은 융통성이 그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6장을 한 번에 걸린 사람도 있습니다. 범칙금을 다 지불했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그들과 따질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에게 법적 융통성이 있는 것이 아니니까. 따지려면 국회에서 따질 일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27만원을 범칙금으로 지불하면서 가슴 쓰렸던 기억이 있다.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과 나약한 개인(주체)이 가지는 공모에 의한 법의 무지가 만들어낸 위약금이다. 만일 법을 만드는 자들이 가까이 있다면 불합리성을 들어 논쟁을 삼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법은 가까이 있고 그 상징적인 무지는 너무 멀리 있어 어찌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억울한 면이 있다. 국민적 약속과 거기에 걸맞은 법적 규제에 대한 논의가 말이다.

 

이 책은 정신분석이론에 속하는 라깡의 이론이 중심이 된, 그것을 공부하던 학생들이 모여 특심을 가지고 만들어진 무기간제로 이루어진 잡지 <무의식의 저널 엄브라>를 번역한 것이다. 주체는 오직 법의 무지 속에서만 법에 충실할 권리와 자유를 얻게 된다.”는 명제를 제시하면서 이야기를 정신적인 쪽으로 몰아가고 있다. 모든 법이 제대로 구실을 하려면 그것을 인지하지 않는 상황이 주어져야 된다는 논리는 상당히 역설적이다. 하지만 법에 대한 두려움, 법에 대한 권위 등은 무지 가운데서 생성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것을 제대로 알면 이용해 법의 테두리에서 빠져나가게 되는 일이 많이 벌어진다. 그런 사람들이 많은 곳에 법질서가 제대로 성립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을 심리적인 요인으로 파악해서 보여주고 있는 책이 이 <법의 무지>란 책이다. 책은 2003년에 처음 나왔다. 그리고 한국어 번역판이 나왔고 2020년에 다시 재 간행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책이다. <>이란 것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해 볼 수 있는 좋은 저서라 생각된다. 정신분석이론을 곁들여 법이 어떠한 성격을 지녔는가? 살펴볼 수 있게 한다.

 

오늘날 우리들의 실정에도 잘 들어맞는 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법질서가 무너져 가고, 법을 이용해 사욕을 채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요즘, 법이 특별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로스쿨 등을 통해 일반화 되어 가고 있는 시점에서, 이런 논의는 충분히 가치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법이란 것을 이용해 타인보다 조금 안다고 재산을 늘리는데, 타인과의 승부에서 이기는데, 명예와 지위를 얻어 가는데 얼마나 조잡스런 의식을 많이 보여주는 사회인가? 사람들이 대국적인 견지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홍익인간의 관점에서 인간들을 대해나가야 하는 것이 정상이거늘,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행해 나가는 작태는 한심하기 그지없다.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이 법의 무지는 법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가를 명쾌하게 우리들에게 보여준다. 내용이 모두 개념적으로 되어 있기에 무척 어렵다. 하지만 그것을 보통의 사람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다양한 예들을 통해 언급하고 있다. 그 예들은 자신의 경험한 사실들과 견주어 책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 책이 의식을 명쾌하게 만들어 간다.

 

책은 몇몇 학자들의 법과 관련된 정신분석적 이론을 들려준다. 스티븐 밀러, 야니스 스타브라카키스, 슬라보예 지잭, 캔디스 보글러, 마리나 드 까네리, 에띠엔느 발리바르, 알랭 바디우, 캘파나 세샤드리-크룩스 등이 그들이다. 이들의 이론을 분석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이 책을 읽는 목적이 되리라. 하지만 쉽지가 않다. 찬찬히 읽으면서 많은 시간 궁구해야 한다. 이들을 역자들이 비교적 간략하게 잘 제시하면서 우리들을 도와주고 있다. 법과 사상의 관계를 접근시킬 때 우리의 안목은 더 넓어질 것이고, 우리의 심리는 더욱 정제될 것이라 생각된다. 이 글에서는 이들의 세분화된 내용을 제시하기보다 이들을 통해 법이 어떻게 통용되는가 하는 정도를 살피면 되겠다.

 

그들은 법의 악용에 맞서 적법한 절차를 외치는 대신에 법 자체의 근원적 무지와 법 앞에 선 주체가 서로 공모하는 방식을 분석한다. 즉 이 글의 주된 내용은 법, 대타자가(주체의 바람과는 달리) 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이는 <법대로 해결>하면 잘 되리라는 믿음은 아무 근거가 없음을 말한다. 발리바르는 근대적 주체가 탄생하는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 법을 생각해 보자고 하고, 까네리, 바디우, 보글러, 밀러, 셰샤드리-크룩스는 각기 칸트 철학, 니체 음악론, 그리스 희비극, 정신분석적 치료, 시민 불복종와 동물 등을 다루면서 주체와 법 사이의 욕망의 변증법을 다루고 있다. 법은 욕망의 다름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국회)를 통해 집단적인 무지가 되고, 욕망이 되어 문자화된다는 생각이다. 이런 심리적 흐름을 이해할 때 법에 대한 인지도도 높일 수 있고, 법의 근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으리라.

 

주체와 법은 무지에서 공모한다. 법대로 보다는 인정대로 따르고 법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이 덕목으로 칭송받고 있는 한국 문화는 법과 주체의 무지가 공모함으로 법의 권위가 유지되는 한 예다. 그렇다면 법이 우리 문화의 전면에 나서고 있는 지금, 법에 대한 무지에서 앎으로 전환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법에 대한 문화적 과잉이야말로 법과 주체의 무지에 대한 역설적 증거라 할 수 있다. 법의 무지는 법에 대한 무지인 동시에 법 자체가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고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이 말은 법이 갖고 있으리라 여겨지는 권위와 투명성이 실은 가정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담고 있다. <법의 무지>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법이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기에 자꾸 바뀌고 고치게 된다는 사실과 법이 가지는 권위와 투명성은 법에 대한 <무지>로부터 출발한다는 일이다. 이를 인식해 내고 이끌어 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참 난해한 사회가 우리나라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다양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모두가 자신들이 옳다 한다. 그러기에 집단이기주의가 팽배해 진다. 지신들이 법적이고, 옳기 때문이기 때문에 주장이 타당하다는 논리다. 다른 쪽도 마찬가지다 중도는 없다. 토론의 양극을 보여주면서 서로가 옳은 사회, 서로가 법이라고 하는 사회, 이들은 문제가 참으로 많은 사회를 만든다. 그 심층적인 모습을 이 책은 우리들에게 들려주려 한다. 많은 예들과 논리들을 통해서 정신분석이론으로 따르게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들도 하나의 논란거리인 무지일 따름이다. 진리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정직한 법이 될 듯하다. 하지만 이 세상은 그렇지 못하다. 더구나 인간들의 삶은 더하다. 이런 삶을 이끌어 나가는 마당에 법에 대한 논의는 무지에서 출발하는 게 맞는 듯하다. 공감이 되는 이유다. 그것이 힘의 논리에 의해 정당화 되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옛날에는 <왕의 말이 즉 법이다.>란 얘기도 나온 듯하다.

 

YES24 뷰어클럽<인간사랑>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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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인의 입장에서 본 일본인들의 삶(2) | 사상 서적 2020-07-16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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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저/김윤식,오인석 공역
을유문화사 | 2019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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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의리 행하기>

전쟁 중 일본인들은 극단적인 자기희생이나, 서구인들이 화낼 필요가 없는 일에 곧잘 화를 내는 이유는 세상에, 조상들에 대한 책무 때문이다. 그들은 더불어 살아가는 자들의 채무와 책임에 큰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의 개념을 중요시 한다. 특히 천황의 ()을 일컫는 경우, 무한한 헌신이란 말로 사용된다. 자신이 이렇게 살고 있는 자체가 황은이라는 개념의 틀 속에 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전쟁 중 그들이 보이는 천황에 대한 경배를 이해할 수가 없다. 일본에서 ()은 부채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기에 ()을 입혔다는 말은 금기어 비슷하게 인식해도 된다. 그 말에 일본인들이 성을 내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미국에서 사랑, 친절, 너그러운 마음 등은 부수적인 대가가 요구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게 된다. 즉 행위를 받은 사람은 채무자가 된다. 그것을 이해할 때 일본인들의 <은혜>와 관련되는 일에 성을 내는 일을 수용할 수 있다. 일본인 속담에 ()을 받는 데에는 더없이 타고난 너그러운 마음이 필요하다.”란 말이 있다. ()에 대한 일본인들의 의식을 잘 인지할 수 있는 말이다.

 

사람의 채무는 덕행이 아니다. 변제가 덕행이다. 덕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보은에 몸을 바칠 때 시작된다. 미국의 채무자들이 계약서대로 이행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태어나면서부터 큰 은혜를 입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변제는 미국 체무자들의 그것과 비슷한 면이 있다. 일본에서 받은 은혜(채무)에 대한 한없는 변제를 기무라 한다. 기무는 보은인 효와 참황에 대한 충성이 있다. 이 두 기무는 강제성이 있다. 이 두 기무는 무조건적이다. 일본의 효는 경계가 있다. 직계에 해당하는 가족들에게 의무를 부여한다. 즉 부모와 자식, 손자 등으로 그 부양 의무를 지게 된다. 조카에 한해서는 그것이 양자의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의무가 없다. 이들의 관계에서 연장자에게 많은 책임이 부과된다. 하지만 아랫사람은 연장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해야 한다. 충은 성격이 조금 다르다. 충의 근본은 가까운 사람에게 복종하면서 생명을 바치는 일에 근간이 있다. 사실 메이지유신의 선각자와 지도자들은 쇼군과 싸우면서 자신의 영주를 위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쇼군을 충의 대상자로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막부를 무너뜨리면서 존왕의 칭호를 사용했다. 천황을 충의 대상자로 선정하고 싸운 것이다. 결과 천황은 그들에게 권력을 부여했다. 이들은 천황을 정신적 지주, 충의 대상으로, 계층제의 정점에 두는 것으로 환경을 만들어 나갔다. 이것이 전쟁이 끝이 날 때 천황의 항복 선언 한 마디에 모든 싸움이 중지될 수 있는 요인이 된다.

 

기리(義理) 일본에서 중요한 덕목이다. 충과 효는 동양의 공통적인 덕목이다. 하지만 기리는 일본 특유의 범주다. 일본인이 잘 쓰는 말에 <기리처럼 쓰라린 것은 없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갚아야 할 성질이기 때문이다. 기무(義務)는 상대가 곤란한 요구를 하더라도 당연히 행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리를 갚는 것은 내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기리는 두 가지로 나뉜다. 세상에 대한 기리(은혜), 이름에 대한 기리(명예) 등이다. 이들이 훼손되지 않도록 행해야 하는 것이다. 이 기리는 의부, 의모, 의형제 등, 맺어진 관계에 대한 도리를 다하는 것이 강력하다. 의부나 자신이 소속된 집단을 위해서 혈연관계도 단죄할 수 있는 것이 기리의 한 요소다. 우리의 이념에 따른 행동으로 봐도 약간은 이해할 수 있는 요소가 될 듯하다. 기리의 규칙은 어떻게 해서든 지켜야 하는 갚음의 규칙이다. 기리는 도덕규범이 아니다. 기리에 의해 강요당하면 자신의 정의감을 무시하기도 한다. 그것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개입되는 것도 아니다. <기리를 모르는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한 조처만 있을 따름이다. ‘기리의 세계는 서구의 부채 상환과 비슷한 개념이다. 시간이 흐르면 더욱 가중된다. 그리고 기리를 갚을 수 없는 상황이면 파산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세상으로부터 도망을 다니는 상황이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노력이든 물건이든 서로 주고받는 복잡한 관계는 장부에 기록하는 상황을 만든다. 조의금의 출납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일본인들은 모욕을 은혜만큼이나 강하게 느낀다. 어느 쪽이나 보답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훌륭한 행위다. 사람이 오명을 씻기 위해 행동하는 것은 빚을 갚는 것이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다. 모욕이 제거되지 않는 뒤집어진 세상은 바로 돌려놓아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보기엔 복수를 미화하는 모습이다. 일본인들은 경쟁 상태를 피하려 했다. 지게 되는 자의 치욕을 처리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치욕을 당한 자가 그것을 정상의 상태로 되돌리기 힘들 때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에 미연에 그것을 방지하는 그들의 삶이 양식화 되어 있다. 일본인은 실패나 비방, 배척 때문에 상처받기 쉽다. 그러기에 자신을 괴롭히는 경향이 많다. 이런 인물은 그 행위가 권태에 닿아 있다. 배척받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내부로 돌려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다. 일본인들의 가기 자신에게 행하는 가장 극단적인 공격 행위는 자살이다. 자살은 적절한 방법이면 오명을 씻고 평판을 회복하게 한다는 생각을 한다. 즉 자살은 죽음의 선택이고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일본인들의 영원불변의 목표는 명예다. 타인에게 존경 받는 것은 필수다. 그들의 침략 근거도 여기에서 가져온다. 세계 사람들에게 존경받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서구 열강들에 의해 군축 조약 같은 것은 그들에겐 모욕이었고 그것을 회복하기 위한 일이 세계 속의 지위 획득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일본인들의 인정의 세계는 타민족들과는 좀 다르다. 극단적인 의무의 변제와 철저한 자기 포기를 요구하는 일본의 도덕률은 개인의 욕망은 금기시한다. 그런데 불교의 금욕과는 다르다. 오관의 쾌락을 허용하는 면에서는 관대하다. 오히려 그것을 권장한다. 온욕과 같은 경우가 그렇다. 그들은 날마다 온욕을 즐기며 몸을 씻는다는 단순한 일보단 그곳에서 탐닉의 예술까지로 승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잠도 또한 애호하는 즐거움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중대한 일이 있을 때에는 과감하게 희생시킨다. 가령 군대교육을 위해서 잠을 희생시키는 것 등이다. 일본인은 연애와 결혼을 동일시하는 이상을 내걸지 않는다. 그들은 적령기가 되면 부모의 선택에 따라 맹목적으로 결혼한다. 그리고 아내와의 관계에서 매우 완고한 형식을 지킨다. 일본인의 결혼 목적은 집안의 대를 잇는데 있지, 사랑 나눔에 있는 것이 아니다. 결혼에서 다른 목적은 참다운 의미를 왜곡할 뿐이다. 그러기에 일본의 여유 있는 남자들은 정부를 두고 그녀를 가족의 일원으로 수용하지는 않는다. 만일 밖에서 아이가 생겨 집에 들이게 되면 본처가 아이의 어머니가 되고 여인은 종이 된다. 일본인은 의무 수행을 인생 최고의 임무로 정해 놓고 있다. 그들은 은혜를 갚는 일이 개인적인 욕망이나 쾌락의 희생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행복추구를 인생 최대의 목적으로 생각하는 사상은 그들에겐 놀랄만한 부도덕이다. 행복은 기분전환용으로 그들에게 인식된다. 그들이 얼마나 생명도 도외시하고 은혜와 충성에 매달리는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인의 인생관>

일본인의 인생관이 서구의 그것과 다르다. 그들은 인간의 의무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고 그것을 위해 사는 것이 덕이라 생각한다. 또 각각의 세계에서의 법도는 세계속의 조건이 변화함에 따라 행동기준도 변한다. 즉 일본의 최후의 일인까지 싸우는 자세가 천황의 항복으로 외국인에게 협력하는 양상을 보이는 모습이 예가 된다. 일본인은 자기 수행에 대해서는 특심이 있다. 그들의 자기 훈련의 개념은 능력 배양과 그 이상의 것(숙달)이다. 어떤 일에 임할 때 이런 수행은 배짱을 만든다. 그것은 인생을 맛보는 능력이 되어 간다. 이처럼 수양은 사람을 잘 갈아 예리한 칼로 만든다. 아이들도 이렇게 양육 받는다. 어른들이 정하고 그것을 따라하도록 규정하고 그렇지 않을 때 벌을 받으면서 소망을 억제하는 힘을 기른다. 아이는 남자에게는 대를 잇게 만드는 요소요, 엄마에게는 지위를 확보하게 만들어 준다. 아이를 통해 어른들의 성격이 규정되기도 하기에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은 무척 협조적이다. 일본인은 전승국이 되었을 때 항복한 적이 일본을 조소하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패배한 적에게 모욕을 주지 않으려 애썼다. 비방, 조소, 모욕, 경멸, 불명예의 징표를 강요할 때 적개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일본인은 그것에 대해서는 복수를 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패배의 당연함과 모욕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당연함에는 수긍하고 소용하는 자세를 보인다. 하지만 모욕에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응징하는 것을 보편적인 일로 삼고 있다.

 

이처럼 일본인은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 이중적인 모습이 국화(평화)를 사랑하면서도 칼(전쟁)을 선호하도록 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일본인들의 속성을 비교적 많은 자료들을 사용해서 객관적으로 분석해 보여주고 있다. 일본인이 2차 세계대전에서 보인 다양한 태도에 대한 해석으로 보인다. 일본인들이 죽을지언정 항복하지 않는 전쟁 중의 상황과 포로가 되었을 때도 기회만 주어지면 자살을 하려고 했던 일, 천황이 항복을 선언하자 그 기세등등하던 전투 자세에서 바로 고양이 앞에 쥐가 된 듯이 꼬리를 내리던 모습들이 설명되어 진다. 그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기리(의리),기무(의무), (은혜), 인정, , 자기수양 등의 말들이 사용되어 있다. 이 말들이 그들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가 하는 것을 살피면 그들의 관념에 잘 다가갈 수 있으리라 보고 있다. <각자 알맞은 위치 갖기>가 그들의 의식에 중요한 기능을 하고, 타인들과의 관계를 해명하는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동아공영권을 부르짖는 것도 그들이 위치 찾아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글 속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일본인들이 타국에 점령군으로 들어갔을 때 타국민들이 환영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고. 그처럼 그들은 전쟁과 점령이 당연한 것이었다는 생각을 가졌다는 말이다. 이런 사고를 이해하지 않고 일본인을 대한다는 것은 소통을 하지 않겠다는 다른 이름이다. 이 책은 일본인들을 알게 하고,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인들이 취한 행동을 알 수 있게 만드는 근거가 된다. 외국인이 쓴 일본인 이해의 고전이 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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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인의 입장에서 본 일본인들의 삶(1) | 사상 서적 2020-07-16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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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저/김윤식,오인석 공역
을유문화사 | 2019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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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

루스 베네딕트의 명작에 속하는 <국화와 칼>1944년 미국 국무부의 위촉으로 일본인에 대해 연구한 내용이다. 그는 일본에 방문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그것이 오히려 주관적인 감정이 개입되지 않을 수 있는 좋은 조건이 되었다는 후평이다. 그는 자료들을 모으고, 그 자료들을 분석하면서 일본의 정신과 행동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의 레이더망에 걸린 것이 일본인의 이중성이다. 그게 제목이 되었고 저자가 분석해 나가는 기본적인 바탕이 되었다. 이 책의 내용은 밝고 친절한 외양에 비수를 숨기고 있는 일본인들의 특성을 만나면서 궁구의 길을 열고 있다. 그 특징을 서양인과 비교해서 제시하기에 더욱 잘 다가온다.

미국인들은 일본이 지금까지 전력을 기울여 싸운 적 가운데 가장 낯선 적이었다. 이런 적을 대할 때 기존의 방식으론 안 되었다. 그들은 서양 전통과 전혀 다른 완전히 무장되고 훈련된 국민들과 싸웠다. 그 싸움에는 상대의 이해가 무엇보다도 요긴했다. 즉 일본인에 대한 이해가 전쟁을 어떻게 이끌어나가는가 방향이 되었다는 말이다. 일본인들은 이해불가하다고 생각이 되었다. 제목처럼 국화를 사랑하면서도 칼을 사랑하는 민족이었다. 일본은 <그러나 또한>이라는 말이 지극히 통용되는 민족이었다. 2차 대전 당시 진주만 폭격을 당했고 태평양의 많은 섬에서 조우한 잘 훈련된 그들과 상대하기 위해선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선결 과제가 되었다. 그래서 그 나라에, 그 민족에 다가갔다. 이 작업은 민족 간에는 차이가 있다는 강인한 신념과 그 차이를 인정하는 관용성을 함께 필요로 했다. 그리고 습관에 관한 것들을 중심으로 찾아가기 시작했다.

 

<자신에 맞는 위치 가지기>

전쟁에는 관행이 있다. 서양인의 관점에서 보는 관행이 일본인에겐 전혀 맞지가 않다. 그 까닭은 정신적인 문제에 있다. 서구가 전쟁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공존공영, 자유무역을 위반한 것에 대한 응징이고 일본은 다르다. 일본은 모든 세계가 계층적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자는 자신에 맞는 위치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만들기 위해 전쟁을 한다는 것이다. 중국이 제대로 위치를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바로잡기 위해 전쟁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또한 전쟁에 대응하는 자세도 너무 다르다. 서구는 싸움에서 질 것 같으면 항복을 한다. 그래서 생명을 구한다. 일본은 그것을 비겁한 짓으로 규정한다. 전쟁은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것이고, 항복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집단으로 항복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전쟁에서 의무관이 동행하는 경우도 드물다. 전쟁은 죽기로 싸우는 것이라는 관점이 이런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계층제도가 중시된다. 미국에서는 각국의 불가침, 타국의 내정 불간섭, 국제간의 화해 및 신뢰, 평등 등 기본적으로 존중되는 신념을 보인다. 그러기에 이들 사이의 간극은 좁힐 수 없는 생각과 행동의 차이를 보여준다. 미국이 전쟁에 참여하고 주장하는 것은 올바른 분노를 가지고 이런 계층제도와 싸운다는 명제다. 이것이 일본과의 전쟁을 하는 그들의 명분이 된다. <부모에게 의견을 말하려는 사람은 머리를 기르려는 승려와 같다.>란 말이 일본에 있다. 그만큼 질서가 중요하단 말이다. 위치에 관한 일본인들의 사고는 확고하다. 고기는 물에 있어야 하는 것과 같이 장남은 맏형으로 성격을 가져야 한다. 즉 책임감과 특권을 얘기한다. 일본은 계급제도가 철저했다. 사무라이, , , 상 등으로 계급화 되어 있었고 그 정점에 쇼군이 있었다. 쇼군은 무사의 수장이다. 또한 쇼군에게 정치를 일임하는 천황이 있었다. 천황은 정치에 관여하지 않지만 그 위치에 있으면서 일본 나라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그것은 신앙적인 성격을 지니고 나타난다. 천황이 속세의 일에 관여하고 안 하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막부가 개설되고 통치를 해나가면서 이들은 더욱 분명해졌다. 인도의 카스트제도와는 조금 다른 일본의 계급제도를 보이기는 한다. 각자의 위치에서 하는 일이 규정되어 있고, 그것은 보호를 받았다. 또 계급간의 이동이 어느 정도 공인되었다. 즉 일본은 모두 자신의 위치에서 보호받는 입장이 되었고, 계급간의 충돌 등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서로 용인하면서 필요할 때는 능력에 따라 이동도 가능한 수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각자의 신분에 대한 만족도는 높았다 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나머진 신에게 의탁하는 성향을 만들었다. 일본과의 전쟁 시 미국이 어려움을 느꼈던 이유고, 일본인들의 천황을 향한 신앙적인 추종의 한 이유가 된다.

 

왕정복고를 모토로 이룩된 메이지유신은 서구인의 관점으로 볼 때는 보수적인 고립정책을 실시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신정부가 취한 방침은 반대였다. 다이묘의 과세권을 없애고, 다이묘 및 사무라이들에게 정부에서 봉록을 지급했다. 번의 장벽이 철폐되고 계급 사이의 불평등이 철폐되었다. 이런 개혁은 메이지 정부 수립을 위해 싸웠던 대다수의 소망과는 상반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조선침략>이라는 계획 실행을 지지했고, 봉건제도 회귀를 소망했다. 그리고 그들은 <사이고 다카모리>를 중심으로 반기를 들었다. 하지만 이들은 정부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그러면 평판 나쁜 개혁을 단행한 세력은 누구인가? 그들은 사무라이 하층 계급과 상인계급의 <특수한 연합> 세력이었다. 그들의 목표는 일본을 세계열강의 대열에 서게 하는 것이었다. 메이지 정치인들은 번, 사무라이, 농민 등에게 새로운 위치를 부여하고자 했다. 그것이 조금의 반발이 있었지만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강력한 지배권 행사를 했다. 그리고 개혁을 진행시켰다. 정치적 계층제의 수뇌부는 천황을 직접 배알할 수 있는 중신들, 임명된 관리들이었다.

메이지 정치가들의 종교적인 분야의 일은 개인 신앙의 자유에 맡겼다. 단지 <국가 신토>는 국가의 통제를 받는 영역이다. 이는 국기에 경례를 하는 것과 같은 국민적 상징에 정당한 경의를 표하는 것을 기본 취지로 했다. 천황 숭배는 이 바탕에 있다. 조금도 신앙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기에 그들에게 국가적으로 충성을 가르치는 일은 지당한 것이었다. 그들의 숭배는 천황과 신사 등이다. 그것은 하나의 생활로 당위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신사는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고 찾고 즐기는 공간이 된다. 군수뇌부는 천황을 직접 배알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그들은 천황의 이름을 빌어 그들의 방책을 강제할 수 있다. 군부가 내각을 조종할 수 있는 이유다. 고위 현역 장교가 육. 해군 장관의 자리에 앉지 않으면 어떤 내각도 성립할 수 없었다. 군부의 독자적인 행동은 이런 힘의 논리에 있다. <만주사변>도 이런 구조 속에서 일어났다. 경제 부분도 먼저 국가가 조정했다. 그리고 그것을 민간에 헐값에 넘겼다. 중공업부터 손을 댄 일본 산업은 종교분야와 마찬가지로 이원성을 가졌다. 귀족제의 필요성이다. 정치적으로 우호적인 가문을 선택하여 알맞은 지위를 갖도록 한 것이다. 정부는 이런 재계의 유력 가문과 연을 맺으며 보호, 비호하며 재정적 권리를 가졌고, 재벌은 막대한 이익을 얻는 상호보완적인 형태가 되도록 했다. 일본인은 스스로에게 요구한 <알맞은 지위 수용>이라는 도덕 체계가 다른 나라에서 받아들여 질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지 않았다. 일본군 장교나 사병은 점령국에서 자신들을 환영하지 않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들에게 낮은 지위지만 지위를 부여하려고 했는데 말이다. 다른 국가에서 보면 그들 패악한 생각의 진원지가 바로 메이지 시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메이지가 전쟁에 어떻게 관여하고 있는가를 잘 드러내고 있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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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답게 사는 삶을 추구하는 페미니즘의 모든 것 | 사상 서적 2020-07-14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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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초보자를 위한 페미니즘

누리아 바렐라 저/안토니아 산톨라야 그림/박도란 역
시대의창 |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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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역사를 보낸 우리나라에서도 모든 사회들이 남성 위주로 흘러 왔다. 모권 사회가 있었다고 하지만 사회가 형성되고, 국가가 만들어 지면서 남성들이 힘을 소유하고 난 뒤 여성들은 그들의 권익을 침해당하면서 살아왔다. 이것은 우리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인간들의 보편적인 삶의 양식이었다. 책에서도 봐서 알겠지만 여성들의 권익을 주장하게 된 것도 근대에 들어오면서 부터다. 그만큼 성에 따른 차별로 고통당하면서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인식하는 삶이 이루어져 왔다. 지금도 가부장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여성들이 주장하는 권리, 자유는 당치도 않는 것으로 들릴 지 모르겠다. 하지만 성에 따른 인간에 차이가 있을 리 없다. 소중한 생명체고 인격체다. 이런 것들을 인식하고 권리를 찾아가는 운동이 페미니즘 운동의 한 요소가 되리라. 이 책은 이런 페미니즘이 어떻게 이루어져 왔고, 어떤 사람들이 관여했으며,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는가를 기본적으로 살펴보게 만들고 있다.

 

페미니즘이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당하는 현실을 자각하고, 그 차별을 없애서 사회를 변화시키기로 연대한 여성들의 정치적 담론이다. 즉 여성이라는 것 때문에 다양한 것에서 남성과 역할의 차이를 가지게 되는 것에 대한 반발이다. 이 페미니즘은 기존 체제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한다. 그러기에 쉽게 수용되지 않는다. 저자가 마드리드에서 주로 활동한 관계로 그 쪽이 중심이 되어 표현된다. 그래서 스페인왕립학술원에서의 모든 작품들에 언급된 여성 비하를 문제 삼고 있다. 페미니즘의 색은 보라색이다. 1911년 미국의 한 봉제공장에서 불이 났고 수많은 여성들이 죽었다. 그때 그들이 만지던 원단이 보라색이었고, 연기가 보라색이었다고 한다. 그 여인들을 추모하면서 보라색을 상징적인 색으로 여겼다. 그것이 보라색이 페미니즘의 색이 된 까닭이다.

 

역사적으로 남. 여는 절대로 동등하지 않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작품에서도 공공연히 그렇게 다루어져 왔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남녀의 본질과 의무에 대한 논쟁이 이었으나 여성이 남성의 영향력 아래 있는 것을 부인하지는 못했다. 그런 가운데 크리스틴 드 피잔이 등장한다. 그녀는 1364년 베네치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작가로서 인정을 받았고 천부적인 재능으로 종종 논란에 휩싸인다. 그의 작품은 여성들의 하문에 대한 접근 권리가 침해되는 것과 같은 주제를 다루었다. <여인들의 도시>는 남성들이 만드는 전쟁과 무질서가 없는 도시는 어떤 곳일지 상상하는 내용을 담았다. 풀랭 드 라 바르가 성에 관한 많은 논쟁 중에 등장한다. 그는 이성이라는 척도를 적용시켜 <성별이 없다>는 논리를 펴면서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책은 페미니즘을 3단계로 나눠 그려나간다. 그것을 물결이란 말로 제시해 나간다.

 

<1의 물결>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이르는 시기로 두 가지 현상이 일어났다. 민주주의를 싹 틔운 정치혁명과 대량생산의 산업혁명이 그 두 가지다. 이들은 필연적으로 자유, 평등, 동지애, 계몽주의 등에서 여성은 소외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가 법 앞에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정치 강령이 왜 여성들만 외면했는가? 는 정말 의문 사항이다. 여성들의 <진정서> 제출, 시위 등이 이루어졌지만 국회에선 <시민의 권리>를 얘기하면서 여성은 뺐다. 2년 후 올랭드 드 구즈는 이 선언을 반박한 <여성의 시민 권리 선언>을 내놓았다. 그녀는 그 시대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녀는 여론을 공론화하기에 힘썼지만 처형당하고 만다. 그에게 씌운 혐의가 가관이다. 4,000 쪽이 넘는 저작을 가진 그에게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는 죄명으로 처형시킨 것이다. <여성의 시민 권리 선언><1조에 여성은 자유롭게 태어나 남성과 함께 법 앞에 평등하다.>란 내용이 들어 있다. 메리 울스턴 크래프트는 내가 투쟁하는 이유는 나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같은 성별을 변호하기 위해서다고 하면서 독립된 인생은 모든 덕목의 기초가 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여성의 권리 옹호>에서 여성들의 권리 투쟁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해나간다. 이 책이 지금은 페미니즘의 기본서로 잘 알려져 있다. 1793-95년 사이에 여성들에 대한 정치적인 탄압이 있었고, 많은 여성들이 희생되었다. 올랭프 드 구즈가 단두대에 오른 것도 이때다. 대다수 유럽 여성들의 손발이 묶이는 상황이 되었지만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었고, 그것은 지속적인 투쟁으로 나타났다.

 

<2의 물결>

여성 참정권 운동에 대해 언급한다. 먼저 미국의 여인들은 독립 투쟁에서 남자들과 같이 투쟁했다. 그 경험이 노예제도의 폐지를 위해 단결했다. 여성 작가 해리엇 비처 스토의 <돔 아저씨의 오두막>은 반노예주의 소설로 반노예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신대륙에 등장한 교회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들은 여성이 교육 받는 것을 지지했다. 이들을 통해 여성들의 힘이 서서히 성장하면서 루크레티아 모트,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 등이 나오면서 여성의 인권 신장에 큰 역할을 했다. <세네카 폴스 선언>은 투표권 확보, 책임과 능력 면에서 동등함의 내용을 담고 있다. 스탠튼과 앤서니는 1868년 국제여성참정권햡회를 조직한다. 그리고 1869 외이오밍 주에서 처음으로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인정한다. 그리고 1920년 미국 전역에 여성의 투표가 가능해 졌다.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은 조금 빨랐다. 1832년이라 한다. 1866<여성들의 탄원서>가 의회에 제출되었지만 수용되지 않자 리디아 베커를 중심으로 영국여성참정권협회는 지속적으로 저항 움직임이 일었다. 1902년 전국여성참정권연합의 대표였던 팽크허스트에게 징역 3년의 판결이 내려졌고, 여성들은 그녀가 교도소에서 나올 수 있도록 힘을 모았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왕은 모든 여성참정권론자들을 사면하고, 여러 직업에 남성들을 대신해서 투입될 여성들의 조직을 팽크허스트에게 맡겼다. 그 후 1917년 비로소 여성참정권 법안이 가결되었다. 해리엇 테일러, 존 스튜어트 밀 등은 여성 참정권 운동의 지평을 확대하고 강화하는 정치이론의 기초를 세웠다. <여성의 종속>이란 책 속에 밀의 여성관에 대해 잘 나타나 있다. 그 외의 여성들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로

 

 <플로라 트리스탄>-세계의 불행은 여성의 권리에 대한 망각에서 온다.

<클라라 체트킨>-페미니스트 운동의 기반을 닦은 사람, 공산주의자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노동계급의 자유, 여성의 권리를 위해 투쟁한 사회주의자

<엠마 골드만>-여성 스스로가 일으키는 혁명을 주장

<시몬 드 보부아르>-2의 성, 진정한 페미니스트.

 

  

<3의 물결>

여성참정권자들의 위대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2차 세계대전은 여성 운동의 상실을 가져온다. 전쟁이나 재해 등은 물리적인 힘을 요구하게 되고 그렇게 되었을 때, 나약한 여성성이 돌출하게 된다. 여성들도 스스로 의존적인 삶을 선호하게 되고, 좋은 게 좋다는 의식이 된다. 이럴 때 베티 프리단이란 인물이 등장한다. 그녀는 아주 똑똑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능력에도 불구하고 연구를 포기하고 생업에 종사하며 가정을 꾸리는 것을 선택한다. 그럭저럭 잘 지낸다. 하지만 그 사건이 일어난다. 노동조합 신문을 만들던 그녀에게 사직 통보가 온 것이다. 이렇게 노동의 현장에서 내쫓긴 그녀는 프리랜서로 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이 여성성의 신화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것들이 바탕이 되어 <여성성의 신화, 1963>을 구상하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여성들에게 공감을 얻었다. 이 책에선 여성에게 부여된 최고의 가치이자 임무는 바로 자신만의 여성성을 실현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내용은 전 세계로 번역되면서 페미니즘의 고전이 된다. 1966년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한 전미여성기구는 가장 영향력 있는 페미니스트 단체 중 하나가 된다. 여기에선 정치, 경제, 직업 등에서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 시스템 개혁을 주장한다.

 

그 후 신좌익 운동, 여성해방 운동 등이 일어나고 가부장제, 젠더 등의 용어들이 사용되기 시작한다. 젠더란 용어는 <성의 역할에 따라 달라지는 규범과 행동>를 뜻하는데, 생물학적인 것과는 상관없이 교육된 것이란 의미다. 이들은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타파되어야 할 것들이다. <케이트 밀릿>성의 정치학을 퉁해서 여성의 삶이 실제 변화하는데 많은 기여를 한다. 하지만 새로운 주장이 생기면 반대 세력들의 반발도 심하게 된다. 그러면서 물이 차고 넘치면 흐르듯이 페미니즘은 세계적으로 흘러넘치게 되었다. 책은 페미니즘의 형태도 몇 가지 제시해 주고 있다. 차이의 페미니즘, 제도적 페미니즘, 에코 페미니즘, 사이버 페미니즘 등이 그것이다. 다양한 페미니즘 활동들이 일어나면서 여권의 신장도 함께 이루어지고 성 평등도 당연한 것이 되어가고 있는 오늘날이다. 책은 저자들을 중심으로 그려나가기에 스페인의 페미니즘을 부록 형태로 제시해 주고 있다. 교육권, 참정권 등이 주된 내용이 되어 투쟁과 결실로 나타나면서 노력했던 많은 분들이 소개되고 있다. 지금은 이 페미니즘이 자유롭게 살고 싶은 여성들에게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동조하는 남성들도 많다.

 

당연하고, 분명한 일인데 이렇게 고통의 과정 속에 이루어져 왔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아픔이 인다. 고려 때 만적이 왕후장상이 씨가 따로 있느냐라 부르짖으며 기존의 질서에 대항했던 일이 떠오른다. 여성, 남성, 사농공상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없다. 부모와 성장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 관계들이지. 그러니 모두가 공평하고 평등하다. 단지 얼마나 노력하고 얼마나 지혜로운가에 따라 질서가 만들어져 갈 따름이지. 근본적으로 성에 따라 역할과 질서를 구분 짓는 일이 바른 것인가? 아마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이 페미니즘에 동조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그런 내용을 조금 더 알 수 있게 우리들을 만들어 나간다.

 

YES24 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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