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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장 사상의 중심에 있는 열자 이해하기/인간사랑 | 사상 서적 2021-06-15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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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열자

열자 저/신동준 역
인간사랑 |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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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자는 노장 사상의 흐름 속에 있지만 잘 읽혀지지 않았고, 잘 알려지지 않았던 책이다. 그러기에 작가의 실제 인물 진위 여부가 항상 문제가 되곤 했다. 이 책에선 존재했었고 도가 사상의 핵심에 그 위치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열자를 읽으면서 정말 그렇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보았다. 노자와 장자의 사상에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그것이 갑자기 그렇게 되었을까? 이런 의구심을 지니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을 풀어주는 것이 열자의 사상이다. 열자가 노자와 장자의 중간 위치에 있다는 말이다.

 

노자는 현실 세계에 관심이 많았다. 어떻게 해야 바른 정치가 되고 어떻게 해야 모든 사람들이 잘 살아가는 삶이 될 것인가에 초점을 두었다는 말이다. 그것이 인위적으로 무엇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고 자연 상태로, 자연의 흐름에 순응해 나가는 방식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장자의 사상은 현실 세계에서 많이 유리된 느낌이 있다. 우주를 이끄는 대종사가 있고, 인간은 미미한 존재고 부분일 따름이라는 생각이다. 그러기에 인간의 삶은 자연에 예속된 부분으로 봐도 무방할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서 열자의 역할이 있었다.

 

열자는 이들 사이에 중간자의 위치다. 현실 속의 인간의 삶에 관심이 많다. 어떻게 정치를 해야 하는가? 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하지만 자연의 질서에도 관심이 많다. 이들이 조합되어 수양과 진보의 길을 닦고 있다. 즉 노자의 도덕경과 장주의 장자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고 보면 되겠다. 열자는 엄밀히 말하면 입세간의 현실 정치에 관심을 두고 있어 출세간에 집착하고 있는 장자보다는 도덕경에 가깝게 보여 진다. 이는 무()를 중시한 장자보다 허()를 중시한 사실과 관련이 있을 듯하다.

 

현재 학계에서는 열자는 실존인물로 보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는 노자를 실존인물로 간주하는 학계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한동안 노자의 실체와 관련해 <장자>의 기록을 토대로 공자와 동시대의 노담이라는 설과 노래자라는 설, 후대 주나라의 태사 담이라는 설이 대립했으나 현재는 <노담>이 노자라는 주장에 거의 이견이 없는 실정이다. 사마천도 대략 같은 입장에 서 있다. <중니제자열전>에 나오는 기록이 그 증거다.

<공자가 엄숙히 섬겼던 사람은 주나라의 노자, 위나라의 거백옥, 제나라의 안평중, 초나라의 노래자, 정나라의 자산, 노나라의 맹공작 등이다.

 

노자를 빼더라도 위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실존인물이다. 그러기에 노자를 실존인물로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노자를 실존인물로 파악할 때 관윤자, 열자 등도 실존인물로 보는 게 타당하다. 그러면 열자는 왜 그리 기록이 미미했을까? 열자는 약소국인 정나라에 태어나 평생을 포의로 살았다. 그것이 그의 기록을 미미하게 만든 요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다.

 

열자의 사상은 귀허주의에 입각하고 있다. 여기서 허()는 명분에 사로잡혀 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입장에서 출발하고 있다. 세속적인 정념을 초월해 공허한 경지로 들어가야 한다는 주문을 담고 있다. 그것이 자연의 도에 이를 수 있는 첩경이라는 게 귀허론의 골자다. 귀허론은 만물의 생장소멸이 모두 자연스러운 것으로 특별히 기뻐하거나 슬퍼할 게 못 된다는 논리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외물의 간섭에 의해 이를 통찰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귀허론은 모든 것을 자연에 내맡긴 까닭에 외물의 움직임에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유유자적하면서 진정으로 자유를 누리자는 데 기본취지가 있다. 인간이 가야 할 길을 명명하고 있는 것이다.

 

열자의 양주편에 양주의 위아주의가 편재되어 있다. 이것이 <열자=양주=위아주의=극단적 이기주의=퇴폐적 향락주의> 공식을 만들었다. 열자의 현생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즐기는 낙생주의를 말했다. 그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정에 충실한 것으로 자연으로 돌아가는데 도움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후대의 향락주의로 인해 극단적 위아주의로 몰고 간 양주를 열자에 두었다는 이유로 동실시하는 상황을 만들었던 것이다. 결코 바르다고는 할 수 없다.

 

<익명>편에서 도가의 운명론을 직중 거론하면서 운명론에 관한 독특한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인간의 생명은 우주만물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얘기다 소위 자운론이다. 음양가의 숙명론과 묵가의 개운론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익명> 편에 이런 내용이 있다. 살 만할 때 사는 것은 천복이다. 죽을 만할 때 주는 것도 천복이다. 살만할 때 죽는 것은 천벌이다. 열자에는 또 우언(寓言)이 많다. 의인화한 사물들을 통해 풍자와 교훈의 뜻을 전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나온 방식이다. 도덕경이 도가사상의 대표 저서라면 장자는 도교 사상의 대표적인 저서다. 그 중간에 위치한 열자는 우언고사가 많다. 그것은 도가사상이 도교사상으로 변환하게 된 취지가 그래도 노정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우공이산, 조삼모사 등이 그 실례다.

 

열자는 1부에선 인물론을 언급하고 2부에서는 주석론을 제시한다. 인물론에서는 생장론과 사상론을 언급하고 주석론에서는 편제와 주석으로 나누어 제시한다. 주석에는 자세하게 읽어볼 수 있도록 글의 전체적인 내용을 그려나간다. <천서> <황제> <주목왕> <중니> <탕문> <역명> <양주> <설부> 등으로 표현된다. 책의 대강을 알 수 있게 만들어준다. 모두 도가와 관련된 인물들의 이야기다. 그들을 통해 삶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를 명료하게 표현해 나가고자 하는 열자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옛 사람들의 얘기는 그들이 남긴 책을 통해 궁구해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책만 남아 있고 실존의 여부가 정확하지 않은 인물들의 이야기도 흔적이 명료하기에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후대에 와서 첨언하고 자신의 뜻이 부가되어 표현됨으로 실제의 모습이 많이 흐려진 경우도 볼 수가 있다. 이제까지 열자는 그렇게 인식되면서 소외된 경향이 없지 않다. 도가 가 이루어지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했으리라 인식되는 열자가 퇴폐주의의 경향을 보여주는 저서로 전락한 것이 그런 이유다. 이 책에서는 열자의 진면목을 밝혀주고, 도가에서의 위치를 찾고 있다. 열자에 기록된 자료를 궁구하면서 그의 사상들을 명료하게 밝혀주고 있고, 도가의 노자와 장자의 교량으로 그의 우치를 분명히 해주고 있다.

 

중국의 고전들은 한자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글자마다 뜻이 많아 다양한 해석이 가능했다. 그것이 역사 속에서 주석이 달리고 첨언이 되면서 왜곡된 경향도 없잖아 있다. 주석이라고 다 바른 해설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들의 사상이 담기기 때문이다. 원래 열자가 표현하고자 했던 의도를 바로 읽어나가는 것이 고전을 읽는 목적이다. 이 책을 통해 열자가 어떠한 존재고 중국 도가 사상에서 어떠한 가치가 있는가를 마음에 담았으면 좋겠다. 해석해 주고, 분별해 준 역자에게 심심한 감사가 된다. 책이 마음에 넉넉하게 다가든다. 깊은 통찰로 열자와 함께 머물고 싶은 생각도 든다. 피상적으로 읽은 입장에서 열자가 지닌 큰 의미를 새김질 해본다. 귀한 책이다. 보람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늘 옆에 두고 싶다.

 

#인간사랑의 지원을 받아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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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노자를 만난다면 조금 더 행복하지 않으랴 | 사상 서적 2021-05-05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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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금, 노자를 만날 시간

석한남 저
가디언 | 202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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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여러 사서들로 생각해 보건대 춘추 시대 말기에 실존했던 인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런데 그의 행적이 신비로워 전설적인 인물로 치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윤희를 위해 써주었다는 도덕경 5,600자는 엄연히 존재하고, 우리는 그의 실재를 부인하지 못한다. 그가 쓴 글을 우리는 노자라 부르기도 한다. 그의 사상과 삶은 이 도덕경을 통해 드러나 있고, 후인들은 그것을 통해 인지하는 시간을 가진다. 후세의 많은 사람들이 이 글에 많은 주석을 달고, 기록한 내용들이 남겨져 있다. 우리가 노자를 만나는 것은 그의 도덕경을 통해서다. 원본을 잘 읽어낼 수 있어야 노자의 근본을 깨달을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원본의 내용을 잘 알지 못할 때 주석본의 도움을 받는다. 주석본은 많이 나와 있다.

 

노자 주석의 주류는 하상공과 왕필이다. 하상공은 전국 시대 말기의 인물로 이야기하기도 하고 어떤 글에는 한나라 문제 때 사람이라고도 한다. 즉 하상공이 어떤 시대 사람일지라도 노자의 주석이 된 하상공본은 한 문제 이전에 기록된 것으로 보면 될 듯하다. 양생술을 중심으로 표현해 나간다. 왕필은 삼국 시대 인물이다. 젊은 나이에 죽었지만 노자에 대한 주석은 대단한 것이었다. 주역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는 것을 밝혀 낸 것도 후세에 노자에 대해 가장 많은 영향력을 준 것도 왕필본이다. 저자도 왕필본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다.

 

하상공본과 왕필본을 두고 오랫동안 정통성을 따지는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노자>가 무위치지의 치국과 양생술로 상징되는 치신 중 어느 쪽에 비중을 더 두고 있는지에 대한 골라잡기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더는 이런 행위 자체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성급하게 결론부터 내려놓고 <노자>를 읽기 시작하면 책을 덮을 때까지 스트레스만 받게 됩니다.

 

노자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게 한다. 그리고 노자의 주석본들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도 알게 한다. 한문은 뜻글자고 글자들의 의미하는 바가 상징적이기 때문에 많은 의미를 포괄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당대의 상황을 잘 알지 못하면 이해하는데 난감함을 겪을 수가 있다. 이것을 위해 당대의 지식에 뛰어난 자들이 책들에 주석서를 남겼다. 노자도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우리는 노자를 통해 이해 불가한 내용들은 이들 주석서를 통해 도움 받을 수가 있다. 주석서는 원문을 이해하는데 무척 요긴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책은 도덕경을 원문을 제시하고 전체 81장을 10장씩 끊어가면서 풀이를 해나가고 있다. 저자의 견해가 많이 담겨져 있다. 예문이나 인용도 저자의 경험이나 생각들을 제시해 나가며 가능하면 이해하기 쉽게 하려고 노력한다. 먼저 시작은 도()라는 글자의 의미에 대해서다. 도는 다양한 의미로 해독된다고 한다. 이 책 하나를 읽어가는 데도 도가 동일하게 사용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가령 명태라는 고기가 경우에 따라 노가리, 동태, 북어, 코다리, 황태로 불리듯이 말이다. 모든 원문의 글들을 저자의 관점에 따라 특별한 것들을 중점적으로 표현해 준다. 별 이견이 없는 내용은 번역한 상태로 두고 있다.

 

노자를 이해하는데 요긴하리라 여겨지는 성인에 대해 얘기한다. 유가에서 성인은 어질고 지혜로운 자라는 의미다. 하지만 노자는 다르다. 노자에서 말하는 성인이란 자연에 몸을 맡기고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생명의 세계를 펼쳐나가는 이상적인 인간을 뜻한다. 즉 무위를 실천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무위란 쉽게 정의하면 자연, 즉 사물의 본성에 어긋나지 않은 일을 말한다. 이 무위자연, 이것이 노자의 근간이 되는 내용이다. 백성들이 그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일하고, 먹고, 쉬는 이른바 무위지치, 노자가 꿈꾼 세상이다. 모든 국민이 정치에 목숨을 거는 오늘의 우리, 이런 나라가 과연 행복한 나라일까 생각해 보게 만든다.

 

은유는 직접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것을 표현하는 다른 방식이다. <노자>는 여성에 빗대어 쓴 은유가 많이 나온다. 그런데 후세에 이것을 민망하게 풀이하는 경우가 나온다. 이는 노자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자들의 결기에 불과하다. 기본적으로 존중의 태도를 지니지 못한 자들의 곡해다. 곡신, 현빈, , 근 등은 모두 도의 은유다. 이들을 제대로 인지할 때 노자가 바로 다가온다고 본다.

 

노자를 이해하는 데는 동서고금의 지식이 따로 있을 수 없다. 탕왕이 나오고 일본영화 <나라야마 부시코>가 예시된다. 성경이 인용되고, 서구의 사상가들이 언급되고 있다. 저자의 노자를 이해하도록 만들기 위한 노력의 하나라 볼 수 있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이 구절은 노자에서 아주 유명한 구절이다. 잘못 해석되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로 쓰이기도 하는데, 이는 물의 성질을 인용하여 덕이 높은 사람의 인격을 표현하는 말이다. 물처럼 부드럽고 낮은 곳에 머물며 만물을 윤택하게 하지만 다투지 않는 미덕을 비유한 말이다. 이처럼 구절에 관련하여 미비한 해석이나 문제가 있는 것들은 구체화하여 그려준다.

 

한자어의 직역이 많다. 한자어를 직설적으로 풀어야 그 의미를 해독하는 데도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추이예지, 공성신퇴, 토사구팽 같은 말도 있는 그대로 풀이한다. 그리고 그 속에 들어있는 의미를 깨닫게 한다. 그러면서 사람으로 갖추어야 할 기본을 얘기한다. 직설적인 풀이와 기본, 그것이 욕망을 버리는 것, 기슭의 삶으로 표현되어 나타난다. 노자는 그렇게 은인자중할 줄 아는 현인이었다. 책은 그런 삶을 지양하는 노자의 생각이 들어 있다.

 

대개가 그렇다. 원문이 제시된다. 직역된 풀이가 적혀진다. 그 가운데 직역으로 해석되지 않는 부분은 의역을 한다. 의역을 할 때는 일화를 소개한다. 일화는 동서고금에 상관없이 저자가 알고 있는 적당한 내용에서 가져온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해설이 담겨지고 저자의 의견까지 담긴다. 거의 같은 패턴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81장가지의 도덕경이 낱낱이 풀어져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노자가 조금 더 가까이 있다는 느낌이 들게 만든다. 한자의 독해에 어려움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저자는 그런 것들은 주석서를 참고하여, 가능하면 우리들이 만날 수 있도록 전하려 애를 쓴다. 책이 고맙게 다가오는 이유다.

 

노자는 정상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정상은 토사구팽처럼 위기에 봉착할 수가 있다. 항상 기슭, 골짜기의 삶을 마음에 두고 있다. 정상은 한 번 올라가는 곳이지 오래 머무를 곳에 못된다고 말하고 있다. 정상에 서 있으면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고, 힘 드는 상황이 쉽게 발생한다. 그러기에 노자는 높고 강함보다 낮고 부드러움을 지향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노자의 미학이다. 골짜기는 바람도 막아주고 기름진 공간도 있다. 그러기에 풍요롭고 포근한 모양을 지니는 곳이다. 그의 삶이 바람처럼 신비스러운 것도, 과도한 명예욕을 탐하지 않은 것도 이런 그의 철학에 기인하는 것이리라.

 

노자는 우리들에게 은인자중을 알게 한다. ‘무위자연을 생각하게 한다. 노자가 장자로 이어지면서 더욱 깊은 신비적 세계를 체험하게 하지만 노자는 무엇이 인간의 삶이 되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우리들에게 전해준다. 그 노자의 살아간 방식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지혜가 된다. 무엇 때문에 현실의 삶 속에서 아웅다웅하는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면서 위하는 삶이 되면 더없이 편안하고 넉넉한 삶이 될 것인데. 그런 삶은 자신을 조금씩 비울 때 가능하다. 우리는 노자를 통해서 그런 것을 배울 수 있다. 많은 현학적인 주석서도 있지만 결국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될 것이고, 노자는 우리들에게 비우는 건강한 삶을 일깨우고 있다. 우리는 오늘을 사는 지혜로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자도 그것을 권유하고 있다.

 

(예스24) 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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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분석은 글쓰기로 부터 시작되는 것/인간사랑 | 사상 서적 2021-05-02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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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라이팅 정신분석과 문학

알렌카 주판치치,장 미셸 라바테 등저/강수영 역
인간사랑 | 202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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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쓸 것인가? 이 질문은 글을 읽고 쓰는 사람들에겐 한결같은 질문이다. 그리고 정답도 없다. 어떤 일에 왕도가 없듯 글을 쓰는 일에도 왕도나 정답 같은 것은 없다. 단지 조금 도움을 줄 수가 있을 뿐이다. 그 도움에 해당되는 내용을 우리는 타인의 언변에서 가장 많이 얻는다. 이 책도 그런 각도에서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면 될 듯하다.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동양에서는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이라는 말을 한 사람이 있다. 이 말은 보편적인 글쓰기의 능력을 기르는 일에 대해 얘기하는 내용으로 보면 되겠다. 글쓰기를 잘 하려면 많이 모방을 해봐야 한다는 말도 한다. 스스로 해보지 않고 글을 잘 쓸 수는 없다는 말이다. 물론 천부적으로 능력을 부여받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들도 배움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 배움의 과정은 습작과 독서 등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 책은 어떻게 글을 쓸 것인가? 라는 물음에 각자의 이견을 개진한 8사람의 이야기를 모아 놓고 있다. 그들은 정신분석학적인 입장에서 모임을 해나가면서 의견을 공유하고 함께 의견을 제시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무의식의 저널 <엄버라>와 관련을 맺어가면서 글쓰기를 하고 있다.엄브라는 프로이트가 자신이 상담했던 피분석가들의 사례를 로 쓴 역사적 장면에서 출발해 정신분석적 글쓰기를 궁구한다. 즉 정신분석의 원초적인 장면을 불러내어, 기원에서부터 작동한 문자의 기록행위를 전면화한다. 이처럼 프로이트는 임상기록을 통해 자신이 분석한 이들의 실재를 담는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의 기록 충동은 정신분석이론을 오늘날까지 지속시킨 힘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프로이트가 내 준 길을 따라 분석과 글쓰기를 해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기록물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패터슨은 미국 뉴저지 소도시의 버스 운전자의 일주일 삶을 보여준다. 그는 반복적인 일상을 살고 있다. 아내 로라는 늘 꿈을 꾸고 그 꿈을 남편에게 얘기하며 그것을 실현하고 싶어 한다. 반면 패터슨은 자신의 삶에 대한 기대도 꿈도 없는 듯하다. 단지 시를 쓰는 일을 제외하고는. 그는 시를 통해 늘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세계와 조우를 하고 있다.

패터슨이 쓰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비 오는 풍경, 성냥갑, 아내에 대한 사랑 등 그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시에 쓰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의 시는 자신을 향해 있다. 모든 글을 궁극적 도착지가 글 쓰는 사람 자신이듯 말이다.

 

수록된 논문의 저자들은 프로이드가 내어준 글 길을 따르면서, 바틀비와 늑대인간, 키에르케고르와 올리프, 술 취한 노아와 히스테이라롤 스타인 등을 뭔가를 쓰고 있고 쓸 수밖에 없는 정신분석적 주체로 등장시킨다. 신경과학의 발견과 긴 명상의 시간에 따르는 서예와 예술, 중교와 법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면서 프로이드 뿐 아니라 라깡마저도 분석대상으로 삼는 데 주저하지 않는 저자들은 글, 또는 쓰기라는 행위를 정신분석이론의 주요한 계기로 간주한다.

정신분석학을 위한 모든 담론들이 근본적으로 쓰기를 통해 한 기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너무도 중요한 핵심적인 사실을 상기시킨다. 즉 주요 이론가들이 의존하는 매체가 글이라는 것 때문에 분석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도 생각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정신적인 요소를 문서화한다고 생각했을 때 법의 규제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즉 우리가 성문화된 법을 따른다면 누구도, 심지어 신조차도 그것을 나무랄 수가 없게 된다는 말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이처럼 자신을 나타내는 일이며, 객관적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도구가 된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고양한 지식도, 지혜도 언어를 통해 이루어왔다. 그 언어가 바탕이 되어 있는 우리들의 정신세계는 분석의 대상이 된다는 말이다. 이들을 추구하는 것이 정신분석학자들의 몫이라 여겨진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글들은 무엇인가 쓸 수밖에 없는 정신적인 존재를 얘기한다. 그리고 그 수단이 되는 언어와 행위가 되는 글쓰기를 말한다. 꽤 많은 논문들이 제시되어 있다. 그들이 주는 바는 정신과 글쓰기로 요약된다. 정신적 행위가 지속적이고 고차원적으로 되어가는 일이 언어라는 수단으로 이루어지고, 언어는 그 정신적 행위를 담는 그릇이 된다. 상보적으로 보다 나은 형태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들을 쓰기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 논문들이 여기에 제시된 것들이다.

 

글쓰기와 정신분석의 관계를 이론화할 공간을 마련한 일이 저자들이 나누는 이런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이 곳을 통해 서로의 의견을 개진하고 분석하면서 쓴다는 것을 정리하고 있다. 쓴다는 것에서 출발하지 않는 논리적 질문은 없다. 이론을 구체화하고 분명하게 하는데 쓴다는 것이 절대적이다. 그것은 정신적인 작용이 쓴다는 행위를 통해 구체화되고 가지런하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정신의 분석법을 결국은 쓰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쓰기는 이렇게 많은 것을 정리하고 쌓아올리는 역할을 한다. 생각의 진보와 쓰기는 서로 상보적인 관계가 될 수밖에 없음이다.

 

바틀비의 화법에 주목하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그것은 불쾌감을 준다. 꼭 고용주의 내면에 자리한 무의식적인 욕망을 표출하고 있는 듯하다. 이 문장에 의미를 찾아가는 행위는 다른 모든 것들에 우선됨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문장의 분석과 독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언어가 가져다주는 공식은 이면의 의미를 새김질하게 만들기도 한다. 신경문학에 대하서도 말한다. 문학은 외부로 열림을 약속해 준다. 그것은 확장된 공간이 될 것이다. 철학, 과학이 가질 수 없는 외부적 상황을 글쓰는 이루어나갈 수 있다. 넓은 폭을 문학에서 유용하게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마이클 스탠쉬의 <글과 말하기 치료> 알렌카 주판치치의 <바틀비의 자리> 캐서린 말라부 <신겨문학> 루씨 캔틴의 <문자의 실행: , 실재 공간> 장 미셀 라바테의 <문학해석에 저항하는 문자: 라깡의 문학비평> 캐서린 밀로 <왜 작가인가?> 시기 요트칸트의 <깊와 문자, 라깡과 키에르케고르> 트레이시 맥널티<제약의 작동: 상징적 미학을 향하여> 등이 이 책에 담겨져 있다. 정신분석과 글쓰기를 연결시킨 논평들이다. 그들은 라깡의 평가에 심취해 있다. 라깡이 간 길을 답습해 가고 있는 사람들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모든 예술의 역사가 정과 반, 그리고 합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면서 진전해 왔다. 이들의 이런 사고도 정신분석과 글쓰기를 관련시켜 보다 심층적이고 진보된 글쓰기의 답을 만들어낼 것으로 이해된다. 이들이 들려주고 있는 얘기를 통해 의식의 심층과 글쓰기의 상관관계를 개별적으로 조명해 보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이유가 될 것이다. 노력하면 개인의 심리적인 요소 안에서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정신분석학은 어렵다. 무의식의 세계를 재료로 하고 있는 것들이기에 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애매모호하다. 이런 비가시적인 것은 논리적 추론을 통해서 그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저자들이 하고 있는 작업이 쉽게 마음에 다가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책이 어려운 말들이 사용되어 있다. 부분적으로 이해해도 전체적으로 가면 비워진 구석이 많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부분과 전체 어디에 초점을 두고 읽어야 할지 난감한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가만히 책을 덮는다. 하지만 또 다시 꺼내게 된다. 다시 열심히 읽는다. 그래도 온전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이런 일련의 행위들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 내가 이 책을 읽는 상태다. 좀 더 궁구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듯하다. 글을 쓰는 것을 뭐 이렇게 심오하게 얘기하는가? 그냥 있는 것을 그대로 옮기고, 연습해서 더 나은 표현 방법을 찾아가면 될 것인데 말이다. 오늘도 책을 옆에 두고 전전긍긍한다. 쓰기를 통해 이 책도 좀 더 가까이 다가오는 듯하다.

 

*인간사랑의 지원을 받아 읽었습니다. 그리고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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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를 통해 아낌과 용기를 읽는다 | 사상 서적 2021-04-19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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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낌과 용기

백유상 저
염근당 |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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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낀다는 말은 자린고비처럼 돈이나 물건을 남을 위해 쓰지 않고 자기만 독차지하고 있다는 뜻도 있으나, 상대를 애지중지하고 아껴준다는 좋은 뜻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아낀다는 말이 두 가지 의미로 나누어지기 이전에 근본적으로 이 말이 만들어지게 된 대전제는,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며 또한 지금도 사라지고 있는 과정 중에 있다는 말이다. 즉 아낌은 사라짐을 막고자 하는 노력이다.

 

용기를 말할 때는 항상 두려움이란 말과 동행한다. 두려움에서 용기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두려움의 시작은 상실감에서 온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잃어버릴까 하는 마음이 상실감이다. 이 상실감에서 벗어나는 것이 용기다. 힘을 내어 두려움을 떨쳐내는 것이 자신을 보다 낫게 만들어가는 길이 된다.

 

전개

 

이 이야기의 근본 이야깃거리는 맹자다. 맹자를 통해서 저자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얘기를 해나가고 있다. 아낌과 용기를 맹자를 통해, 그의 모든 생활을 통해 가져오고 있다는 말이다.

유학은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고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제시한 학문이라 할 수 있다. 공자에 의해 <>을 제시하였고 그 모델로 군자를 제시했다. 군자는 모든 사람이 추구해야 할 이상형이고, 인을 바탕으로 덕을 숭상하고 각자가 본문에 충실하면서 예를 지키는 자들을 말한다. 맹자는 이 공자의 사상을 심화, 발전 시켰다. 우선 인간의 본성을 인의예지로 구분하여 체계화했고 사단 개념을 설정했다. 사단은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으로 인의예지를 구현하기 위한 실마리를 뜻한다. 사람은 사단의 발현을 통해서 자기본성의 실체를 인식하게 되고 감정과 행동을 일으키는 변화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본성의 회복을 염원하면서 양성을 목표로 삼았고, 이것은 성선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의 본문에는 아낌과 용기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맹자>의 곡속장과 호연지기장을 해설한 부분과 이와 관련된 내용들을 깊이 있게 들여다 본 부분으로 나누어 구체화할 수 있다. 앞부분은 내용 해설의 성격을 지니며 지식의 도움을 삼으면 된다. 뒷부분에서는 맹자의 인과 의 사상을 개괄하면서 인간의 본성에 관한 다양한 문제들을 거론해 보고 있다. AI를 소재로 가져와 인간의 본성을 얘기해 나가는 것은 신선하다. 또한 어떤 일의 시비와 선함을 다루고 있는 부분은 맹자의 사상에 잘 접목해 들어갈 수 있도록 유도해 준다.

 

곡속장에서는 제 나라 선왕이 맹자에게 제 환공, 진 문공에 빗대어 패도 정치를 묻고 있다. 그것에 대해 맹자는 공자에게 그들의 얘기를 들은 적이 없으니 할 얘기가 없다고 하면서 왕도정치를 설명해 나간다. 이처럼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어놓고 자신이 듯하는 대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방법을 맹자는 많이 사용했다. 패도와 왕도에 대한 견해를 분명히 한 것이다. 아마 선왕도 <왕천하> 자질을 가지고 있었기에 빠르게 패도를 접고 왕도로 대화를 이룰 수 있게 되었을 것이리라.

 

이처럼 맹자의 책을 중심으로 얘기를 풀어내고, 설명해 나간다. 원문이 제시되어 있고, 그것에 대한 설명이 붙어 있다. 이런 흐름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맹자의 서적이 주된 자료가 되고 있다는 말이다. 맹자에선 많은 예화가 들어 있다. 예화들만 읽어도 많은 분량이 될 듯하다. 책은 그들을 조각내고 구석에 있는 내용까지도 잡아낸다. 진중한 읽기가 되어야 하겠고, 성찰이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서(대학, 중용, 맹자, 논어) 가운데 하나인 맹자를 전체적으로 읽은 적이 없다. 부분적으로는 읽었을 것으로 여겨지나 총괄적으로 만난 적이 없는 듯하다. 그런데 이런 기회로 맹자의 모습을 대강 짐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아낌과 용기>라는 타이틀로 맹자가 가까이 다가왔다. 맹자의 삶이 다가왔다. <맹모삼천지교>라고 우리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맹자가 책으로 이렇게 가까이 다가오기는 일반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데, 이 책은 그것을 가능케 하고 있다. 자세한 풀이는 그것을 더욱 쉽게 하고 있다.

 

성선설에 입각한 맹자의 사상은 본래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의 원상태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의 삶 속에 근본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자연적인 상태로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인과 의가 제대로 확립이 된다고 생각을 한다. 맹자의 핵심 사상이 인과 의다. 이것을 실천하고 갖추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삶이라고 여긴다.

 

<맹자>를 통해서 우리가 만나고 있는 말들이 많다. 하지만 맹자에서 나온 줄은 모르고 있다. <오십보백보> <조장> <농단> <호연지기> <왕도정치> <확충> <여민동락> 등 우리가 많이 본 말들이다. 이 말들이 맹자에서 나왔다. 맹자를 알면서 이 말들의 실제도 더욱 잘 알 수가 있게 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어원을 모르고 사용했던 많은 말들이 내 뇌리 속에 그 근본 부터 다가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은 행복한 결과의 한 요소다.

 

호연지기장에서 용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자 공손추가 재상이 되어 권력을 쥐게 되면 관중처럼 나라를 다스리는 마음이 움직일 것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 맹자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40이 되면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그는 말한다. 그런데 맹자가 정작 제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40이 되면 노력과 수양에 의해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경지에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부동심을 갖는 것도 큰 용기에 의한 것이다. 용기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때 강력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은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용기는 두려움을 이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책은 맹자에 대해서 더 얘기해 나간다. 맹자가 어떤 사람인가? 아낌의 이치는 어떤 것인가? 이익과 욕심은 왜 발동하는가? 본성을 왜, 어떻게 길러야 하는가? 확충과 여민동락에 대해서 얘기한다. 맹자의 근본 사상에 해당하는 내용들을 제시해 나가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수천 년 전의 생각이 어떻게 우리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을 느껴볼 수 있겠다. 인간의 삶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 근본은 같은 것임을 느껴본다. 책이 맹자의 사상을 통해 오늘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밝히고 있다. 그 중심에 아낌과 용기가 있다. 맹자는 오늘도 우리들에게 바람직한 삶을 일깨우고 있다.

 

인간의 본성을 AI와 대비해서 얘기한다. 인간은 본성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생명의 터전인 몸과 거기에 깃든 정신, 그것을 운영하는 기라는 것에 대해 얘기한다. AI도 본성이 있을까 묻기도 한다. 인간이 AI와 다른 점이 바로 정신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임을 우리는 잘 안다. 인간은 아무리 복제해도 똑같은 인간이 될 수 없다. 그것은 기를 중심으로 하는 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생명을 운행하는 기, 우주의 힘 등이 언급된다. 그것이 인간 삶의 근본을 이루기 때문이다.

 

결말

 

책의 마무리 부분에 가서 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언급한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기본적인 철학적 의미를 던져두고 선에 대해서 얘기한다. 아낌과 용기에 대해서 다시 언급한다. 그들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로 관통됨을 보여준다. 삶이란 가치 있는 삶이 되어야 하고 그 본질에 선한 기운이 있다는 것이다. 이 선한 기운은 아낌을 전제로 용기에서 나온다고 본다. 맹자가 우리들에게 전해주는 인생의 의미, 그것을 아낌과 용기라는 말로 풀어내고 있는 책이다. 고전를 현대적으로 풀어 우리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오게 만든다. 고금의 소통은 이렇게 노력함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많은 내용을 이 리뷰에서 다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맹자의 사상과 맹자가 어떻게 우리들에게 읽히는가를 만나면 되는 책이라 여겨진다. 독자는 스스로 주어진 것에서 찾아가는 낚시꾼이다. 이 책에서 좋은 느낌을 많이 건져 올리길 기원한다.

 

(예스24) 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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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만든 고전 모음집 | 사상 서적 2021-02-20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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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딸에게 보내는 인문학 편지

맷 뷔리에시 저/김미선 역
유노북스 | 202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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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둘을 키웠다. 자랄 때의 그 애틋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보석과 같은 존재로 마음에 다가왔다. 그렇게 그들이 내 주위에 머물렀다. 이제는 성장해 자신의 길들을 가고 있지만 그들이 성장하는 과정들을 지켜보는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더 평안하도록,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도록 간구하는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것은 기도하는 심정이었다. 그런 딸들에게 향하는 내 언어는 어떠했을까? 그것은 육아일기를 쓸 정도였다. 물론 그 일기를 지금은 자신들이 가져가 추억거리로 사용하고 있다. 그 속에서도 나타나지만 딸들을 향한 마음은 보호, 사랑, 성장, 행복으로 귀결되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할 수 있을 듯했다. 언어의 배열은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온통 보석으로 치장을 할 수가 있겠지? 그런 반면에 강인한 쇠로도 담금질할 수 있길 기원하겠지? 딸에 대한 사랑과 배려는 모든 아빠가 가지는 인지상정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책은 딸 사랑이 만들어낸 책이다. 인문고전 교육학자 맷 뷔리에시가 딸 바이올렛에게 좋은 생각을 전하기 위해 엮은 책이다. 서구 사상가들의 얘기가 주류를 이룬다. 혼란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유용한 책이 될 듯하다. 뷔리에시가 동양사상에 대해서도 지식이 있었다면 조금은 책이 달라졌으리라 생각된다. 동양 사상가들의 얘기가 없는 게 조금은 아쉬움으로 남기도 한다. 하지만 딸에게로 향하는 마음을 자신의 지식 속에서 용해해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한 가치로 다가온다.

 

내용

 

많은 사상가들의 얘기가 제시된다. 그의 관심 분야인 고전에서 많은 내용을 가져왔다. 저자는 그것이 최고의 지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곳곳에 지식과 지혜를 향한 저자의 마음이 표현된다. 딸이 지녀 나갔으면 하는 내용들, 실천해 나갔으면 사는 지혜들이 수두룩하게 제시된다. 저자의 딸에 대한 곡진한 사랑이라고 여겨진다. 이렇게 살아간다면 나름의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로 스스로의 물음에 답을 할 수 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책은 4 Part로 나누어서 전개해 나간다. 4 Part<네가 진정 원하는 삶을 살아라.> <올바른 선택에 두려워 마라>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해 보렴> <모두를 위해 더 좋은 길을 찾을 거야> 로 이루어져 있다. Part마다 6-7개의 항목을 제시해 성현들의 말을 가져왔다. 그 말들이 충분히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표현되어 나간다. 딸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보면 되겠다. 물론 자신이 공부한 내용들을 집대성해 놓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정리해 딸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편집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사야 할 것이다. 그 정성어린 정리는 책이 딸에게만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유용하게 와 닿는 사실로 나타난다. 가치 있게 지닐 수 있는 책이다.

 


 

소크라테스도 모르는 게 있었어. 그러나 적어도 그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지. 아빠는 네가 내 삶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정말 몰랐어. 대단한 걸 안다고 생각했지. 덴버에 있는 직원이 내가 말하는 대로 했으니까. p29

 

딸에게 많은 성현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최고의 말들을 전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글이다. 그만큼 딸을 사랑한다는 말일 게다. 딸이 모든 것에 의문을 가지며 성장할 것을 원하는 아빠는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가져왔다. 소크라테스가 현명함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우리가 많이 애용하는 말이다. 이 말을 통해 현명한 자는 늘 의문을 가지는 자임을 말하고자 한다. 세상에서 의문은 바로 지혜로 연결됨을 말한다. 지혜는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 저자는 딸에게 지혜로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하게 살아가는, 행복하게 사는 삶을 원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엘리트의 이익을 위해 도덕을 가장한 비즈니스에 속고 있었어. 우리는 빚을 갚고, 약속을 기키고, 규칙에 따라 움직이지. 엘리트 부자들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결과에 상관없이 거짓말하고, 개인적 이익을 위해 무슨 규칙이든 다 어겨. 그리고 일단 원하는 걸 얻으면, 같은 일을 반복하지. 네가 똑똑하다면, 너는 그들처럼 행동하겠지. 그리고 정의가 뭔지 신경 쓰지 않고 일을 진행하겠지. p59

 

법을 잘 아는 자들이 법을 어기면서 법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탐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기득권자들은 법의 울타리를 잘도 벗어나면서 사욕을 채운다. 법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질서를 지키기 위한 것인데, 그 질서의 울타리를 벗어나 버리면 법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권력이라는 것은 그렇게 작용한다. 범인들이 법을 지키려고 그리 애쓰는 일을, 권력을 가진 자들은 내가 누군데 너희들이 나를 어떻게 해라는 내로남불의 사고방식을 보인다. 이럴 때 법은 생존의 기틀마저 위협을 한다. <법은 만민 앞에 평등하다.> 이 말이 통용되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권력자가, 법을 다루는 자들이 법에 의해 처벌을 받을 때 보다 온전함을 향해 간다. 저자는 법에 대해, 규칙을 다루는 자들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에서 이야기를 하면서 정의란 것을 일깨워 보고 있다. 딸에게 정의롭게 살도록 하고 싶은 마음에서 일 게다.

 

알프스의 갈리아와 이탈리아 사이에 있는 루비콘 강으로 왔을 때, 카이사르는 상념에 젖어 들었다. 이제 위험에 한 발짝 내딛은 참이었고, 엄청난 이에 자기 자신을 내던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흔들렸다. 그는 경로를 다시 한 번 검토하고 진군을 멈췄다. 그러면서 생각을 이리저리 바꿔 가며 머리를 굴렸다. 강을 건너면 얼마나 많은 재앙을 인류에게 가져다줄지. 마침내, 계산은 접어 두고, 다소 격앙된 분위기로 앞으로 어떻게 실현될지 모르는 일에 자신을 내맡긴 채,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말을 남기고 강을 건넜다. p156

 

카이사르는 갈리아 지방을 정복하는 상황을 통해 큰 세력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당시 최대의 군벌이었던 폼페이우스와 상대할 능력이 된다. 갈리아 지방의 정복은 유럽 역사에서 로마를 거대한 나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로인해 로마는 큰 힘을 소유한 나라가 된 것이다. 여기서 큰 역할을 하는 카이사르는 로마의 중추적인 세력으로 성장하게 되어, 폼페이우스를 물리치고 로마를 장악한다. 그리고 원로원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자신이 통치해 나가는 나라를 만든다. 그는 서구 역사를 뒤바꿔 놓았다. 그는 영토도 두 배로 늘렸고, 공화정을 뒤집어 제국의 초석을 닦았다. 뒤를 이은 로마 제국은 전 세계에 유래 없는 문화 및 지적 유산을 남겼다. 즉 서구 유럽 국가들이 영원히 로마 제국의 영향 아래 놓이게 한 것이다. 루비콘 강을 건넌다는 것은 그런 제국을 만드는 결단이었다. 결단은 신중하게 그리고 결단을 내렸으면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전형을 보여준 카이사르, 결단은 삶의 행로에 있어 중요한 사항이 됨을 보여준다. 자신의 삶에 있어 결단을 내려야할 때 머뭇거리지 않는가? 한 번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새로운 질서를 도입하는 행위가 어렵고 위험하며, 성공할 여부도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혁신을 일으키는 사람들의 적은 기존 환경에서 잘 살던 사람이며, 새로운 질서 아래 잘 살게 될 사람들은 미온적인 옹호자가 될 터이기 때문이다. p200

 

질서를 바로 잡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보다 위험한 처지에 놓여 있다. 이들은 중림이 될 수 없다. 강력한 위치에 서서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 적을 만드는데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언제나 변화에 대항한다. 열심히 노력하고 성공을 몇 번 거두기만 하면 적을 극복할 수 있을 뿐만 아이라 그들을 이길 수도 있다. 네가 두려움의 대상이 될지 사랑을 받을지 둘 중의 하나만 고를 수 있다면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게 낫다. 그러면서도 마키아벨리는 지도자란 무릇 경멸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괜찮은데, 기피의 대상이 되면 곤란하다. 즉 잔혹해 져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반면에 성공저인 삶을 위해서 질서를 세우는데 모든 힘을 쏟아야 한다.

 

역사적으로 많은 예시를 봐 왔듯이, 위대한 인물들이 기여한 독자적인 공로 덕분에 이 세상이 변화했어. 아빠는 소크라테스와 에이브러햄 링컨,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이 없었다면 세상이 퍽 달라졌을 것 같아. 그들은 <공산당선언>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융통성이 없고 체제에 순응하는 신조 아래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거든.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모두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말은 공산주의적인 감상이야. 공화국 체제 내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 말을 믿지 않아. 우리는 개개인의 우수성을 믿지. 차이점을 기꺼이 인정하고 불평등을 권장해. p372

 

세상은 고정되어 있지도 않고 우리의 삶도 그렇다. 현재는 그것이 급변하고 있다.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영원하지 않다. 우리들도 그렇다. 재화도 고향도 사유재산도 모두 변한다. 그런 가운데 특별한 자들이 나와 패러다임을 바꾸어 나가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 간다. 바이올렛, 강인함, 인내, 활발한 기질이 네게 있다. 그것이 가장 큰 재산이다. 그런 기질이 학점, , 권력, 명예 등보다 더욱 큰 자산이다. 너는 그것을 타고 났다고 믿는다. 앞으로 더욱 강해지고, 명랑함을 잃지 마라. 그것이 변화되는 삶 속에서 자신을 지켜줄 밧줄이 된다.

 


 

책에 등장하는 재료는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책들, 영웅전을 쓴 플루타르코스, 마태복음, 누가복음 등 성경,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등이다. 마키아벨리, 몽테뉴, 셰익스피어, 존 로크, 루소, 애덤 스미스 등도 제시되는 인물이고 <로마제국 쇠망사> <미국의 독립선언문> <미국 헌법> <공산당 선언> 등도 이야기 재료로 사용되고 있는 책이다. 다양한 고전들이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함께하고 있다. 물론 고전 교육학자인 저자의 안목에 잡혀든 이야기들일 것이다. 그 이야기들이 무척 흥미롭게 감동적이다. 그것을 우리는 읽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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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정성을 다해 고르고 있다. 딸을 향한 한없는 사랑이 이런 글들을 모을 마음을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나도 딸만 둘을 두고 있지만 어려서부터 몸의 일부분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마음에 담긴다는 말일 게다. 그런 딸의 내일을 위해서 고르는 문장들이라면 어쩐 문장이 될까?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들이리라. 저자의 취향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들만을 고르리라. 그래서 충고와 격려, 기쁨과 다짐이 들어가는 내용들로 채워지리라. 이 책도 그렇게 여기면 되리라 생각한다. 딸에게 주는 마음을 자신에게 주는 마음이라 생각하고 수용한다면 독자들에게도 가득한 사랑으로 담겨질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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