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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와 버들도령 | 문학 2022-01-1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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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연이와 버들도령

백희나 글그림
책읽는곰 | 202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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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희나 작가와 작품을 알고는 있었지만 일부러 찾아서 읽을만큼 흥미가 일지는 않았다. 친구가 선물해준 덕분에 읽게된 <연이와 버들도령>은 말 그대로 선물같은 책이었다. 어릴 때 TV에서 봤던 인형극의 주인공을 생각나게 하는 닥종이 인형, 인형과 실사의 결합으로 입체적인 분위기를 드러내고, 중국의 그림자극이라는 기법으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드러내는 등 그림 속에 푹 빠져들게 했다.

 


 

  그것만이었다면 아이들이 좋아할 만도 하네 정도로 끝났겠지만, 오히려 내 맘을 끌었던 것은 작가의 창작력이 가미된 내용이었다. 이 책을 읽은 후에 아이들이 어릴 때 읽었던 <반반버들잎 도령과 연이>라는 책을 읽어보았다. 권선징악이 뚜렷이 나타나는 전형적인 옛 이야기였다. 계모는 연이를 괴롭혔고, 연이와 버들도령은 어려움을 극복한 후에 행복하게 살았다. 계모는 벌을 받아 일찍 죽었다. 작가는 그러한 전래 동화에 조금씩 다른 색을 입혀 생각할 꺼리들을 던져주고 있었다.

연이는 나이 든 여인과 같이 살았어

  고정관념이 참 무서운거다. 당연히 계모라고 이야기될 줄 알았는데 나이든 여인이란 표현이어서  의외였다. 작가는 왜 계모대신 나이 든 여인이라고 했을까? 불특정 다수를 이야기하고 싶었던걸까?

  할수 없는 일인줄 알면서도 반항하지 않고 추운 겨울 날 상추를 찾아서 다니는 연이의 모습은 힘에 굴복하는 여린 존재로 보였지만, 가만히 있으면 얼어죽겠다는 생각에 돌문을 힘껏 밀어젖히는 모습에서는 힘든 현실에 맞부딫히는 강인함을 느끼게 했다. 사진으로는 그림의 아름다움이 감해졌지만 이 그림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지친 연이에게 따뜻한 밥을 해주고, 버들잎을 빈 밭에 뿌려 상추를 키워 건네는 버들도령. 진달래꽃을 한 아름 따주는 버들 도령.

 


 

  버들 도령도 외로웠는지 모르겠다. 힘들게 찾아와준 연이에게 원한느 것을 해주면서 본인도 즐겁지 않았을까? 아무리 극락같은 곳에 있어도 혼자라면 외롭지 않았을까? 버들도령은 연이의 뒤를 밟아왔던 나이든 여인에게 죽임을 당했다.

 연이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그리 슬프지 않았어. 오히려 버들도령을 만나서 도움을 받았던 일이 이상하게 느껴졌어. 연이에겐 그동안 좋은 일이 하나도 없었거든. 그래서 이런 기막힌 일이 닥쳤어도 그래, 그러려니 싶은거야. 그저 죽은 도령이 가여울 뿐이었지.

  외로움에 익숙해지고, 핍박받는 것에 익숙해지면 자기에게 다가온 행운이 오히려 믿기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그런 상실을 그냥 받아들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서인지 버들도령의 뼈를 모아두고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연이의 담담한 모습에 더 마음 아팠다.

 


 

 버들도령이 정말로 위급할 때 쓰라고 연이에게 건넨 풀을 뼈 옆에 두었을때 살이 돋고, 피가 돌고, 숨이 돌아왔다. '다시 살아난 버들도령과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고 할 줄 알았는데, 아마 그 곳에서는 행복하게 잘 살고 있겠지? 라는 작가.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느낌? 결정된 행복이라는 것은 없다.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는듯했다.

 

 나이든 여인은 어찌 되었냐고? 그야 나이가 들어 죽었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서 말야.

 

 아들과 책을 함께 읽고 그런 이야기를 했다. 연이와 버들 도령을 이용했다면 오히려 평생 배부르고 등 따시게 살았을텐데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어리석은 여자라고. 이용하는 것도 물론 나쁘지만 내 행복보다 다른 사람이 웃는 것을 참지 못하는 그런 시기와 질투가 오히려 자신을 외롭게 만들고 궁지에 몰아넣었던 것 아닐까?


  작가의 의도는 나와 달랐을지 모르나 내 방식대로 재미나게 그림책을 읽는 경험을 했다. 스무 살이 넘은 아들이랑은 속세에 물든 대화를 주고 받기도 했지만, 아직은 세상을 잘 알지 못하는 맑은 아이들과 책을 읽는다면 어떤 이야기들을 주고받을 수 있을지 기대가 되는 작품이다. 그림책은 아이들만 읽는다는 고정관념은 벗었다고 해도 그림책을 그리 자주 접하지는 못하고 있는데, 좀 적극적으로 그림책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희나 작가는 2020년 어린이 책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아스트리드린드그렌 추모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상의 존재도 처음 알게 되었는데, 앞으로도 좋은 그림책으로 아이들에게나 어른들에게나 따뜻한 이야기들을 많이 만날 수있는 시간들을 선물해주셨으면 좋겠다.  

 


 

 

woojukaki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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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눈을 가진 히토시 | 문학 2022-01-12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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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낙원 1

미야베 미유키 저/권일영 역
문학동네 | 2008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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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라는 작품으로 처음 만난 이후 참 많은 작품을 만났다. 버블 경제 시대를 배경으로 일본 사회의 현실을 파헤쳤던 소설은 600페이지가 넘는 장편임에도 지루한 줄 모르고 읽어나갔다. <모방범> 또한 3권 1536쪽의 방대한 분량을 자랑했지만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단순히 사건의 해결에 무게를 두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둘러싼 사회문제를 예리하게 파고들어가는 것이 미야베 미유키 소설의 매력이었다. 아직 1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낙원>도 그 연장선 상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방범>은 젊은 여성들만을 납치해 살해한 사건을 중심을 펼쳐지는 소설이었다. <낙원>의 주인공은 '모방범'사건 당시 르포라이터 마에하타 시게코다. 그녀는 '모방범'사건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데, 지인의 소개로 중년 여인 도시코를 만나게 되었다. 교통 사고로 죽은 아들 히토시에게 예지 능력이 있었던 것 같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히토시가 그린 그림들에서 자신이 죽을 것을 미리 알았다는 것, 그리고 히토시가 죽고나서야 세상에 드러난 16년 전의 살인사건에 대한 암시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결정적으로 '모방범'사건의 범행 장소를 그린 그림까지 있었다. 시게코는 도시코가 죽은 아들을 추억하고, 추억을 되새기고, 누군가와 히토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시게코는 히토시에게 정말 그런 능력이 있었던 것인지를 조사해주기로 했다. 9년 전 '모방범'사건도 결심을 굳히는데 한 몫을 했다. 그녀가 만난 많은 사람들은 '모방범'사건으로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초능력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히토시가 살인 사건에 대한 정보를 어디선가 입수했을지도 모른다는 전제하에 시게코는 조사를 해나갔다. 그런데, 살인 사건 관계자들, 히토시의 학교 선생님들, 아동 상담센터 선생님등을 만나는 과정에서 시게코는 확신하게 되었다. 히토시는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을 ······. 시게코의 확신은 16년 전에 일어났던 살인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고자하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살인 사건에는 어떤 진실이 숨어 있을지, 시게코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모방범'사건으로도 이어질지 궁금하다. '단장'이라는 제목으로 한 소녀가 주인공인 이야기 속 이야기가 있었다. 그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와 닿아있을지 감이 오지 않았다. 9년 전 사건에 마음의 빚과 두려움등이 남아있는 듯하지만,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는데, 그것 또한 2권까지 읽어야지만 모든 비밀이 풀릴텐데 빨리 2권을 만나러 가야겠다.

 

ps ) 블친이신 woojukaki님으로부터 최근에 선물 받은 책이다. 리뷰도 없었고, 책 소개글을 읽어도 생소했고, 읽는 동안에도 몰랐다. 그런데, 나난님의 리뷰에 달려있는 내 댓글을 보고 알았다. 내가 읽은 책이라는 것을. 아니, 어떻게 전혀 생각이 안날수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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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인생이란? | 문학 2022-01-09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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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평범한 인생

카렐 차페크 저/송순섭 역
열린책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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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인생을 살면 평범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제목이 너무나 평범해서 오히려 마음이 갔던 책이었는데 의외의 전개에 당황스러웠다. 그렇지만 그러한 전개 덕분에 이 책은 나에게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떠올랐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가장 많은 작품들로 만났던 작가인데, 카렐 차페크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싶다. 왜 이제서야 만나게 되었을까?

 

  노신사 포펠이 의사로부터 친구가 동맥경화로 죽었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어릴 때 같은 학교에 다녔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프라하 교통부에서 함께 일했던, 처신이 아주 분명한 사람이라고 기억하는 친구였다. 친구는 자신의 삶에 대한 글을 남겼고,의사는 포펠씨에게 그 자서전을 주었다. 의사와 포펠의 만남(책을 받음, 읽고 돌려줌) 사이에 자서전이 배치되어있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었다. 퇴직을 하고 정원을 가꾸며 노후를 보내고 있던 그는 어느 날 자신에게 다가온 죽음을 직감했고, 주변 정리를 해나갔다. 더 이상 정리할 것이 없다고 느꼈을때, 자신의 삶을 짧고 간결하게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생각은 처음에는 거의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리고 그걸 가지고 뭘 하려는 건가? 누굴 위해 그걸 쓰려는 건가? 이런 평범한 삶에 대해 쓸거리가 있을까? (중략) 사실, 아주 평범한 삶에 대한 전기를 쓰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어쨌든 이는 나의 사적인 일이다. -p16 ~p 18

 

  그의 생각에 동의하면서 느긋한 맘으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소목장이었던 아버지의 강인한 모습을 좋아했고, 따뜻한 어머니로부터 보호와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짧지만 첫사랑도 경험했다. 외로움을 타고 붙임성 없는 성격이었지만 대신 책을 좋아했고 공부를 잘했기에 상급학교에 진학했다. 대학시절 시를 쓰는 친구를 만나 특별한 체험을 했다. 역 발송계로 수습직 발령을 받아 일을 시작한 그는 역장의 딸과 결혼을 해서 안정된 가정을 이루었고, 프라하 철도청에 합류해 직업적으로도 만족한 삶을 살았다. 그의 인생은 평탄했다고 느껴졌다. 커다란 굴곡도 느껴지지 않았고, 살아가면서 조금씩은 겪게 되는 문제 정도? 아주 평범한 사람에 대해서도 이렇게 전기를 쓸 수도 있구나, 이렇게 인생을 정리해보는 것도 괜찮구나, 라는 생각을 할즈음 혼란스러운 상황이 펼쳐졌다.

 

  지금까지 만났던 그의 삶은 그의 인생의 아주 일부분이었다는 생각과 함께 , 진실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혼란스러워졌다.  여덟 개의 자아가 나타나서 다투기 시작했고, 어떤 자아가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앞선 상황들은 다른 모습으로 비춰졌다. 어린 시절 평범한 행복을 위한 구석 장소는 다른 아이들과 견주기에는 힘도 능력도 모자라는 아이의 저항이자 도피처였고, 사랑과 신뢰와 충실함뿐이었다고 생각했던 결혼 생활은 허상이었다. 평범하게 보였던 그의 일상들을 다양한 시선으로 보면서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공감되기도 했다.

 

  모두가 진실이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 속에, 이 평범한 인생 속에도 여러가지 동기가 존재할 수 있지 않은가? 아주 단순한 일이야. 인간은 이기적이고 태생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생각하기 마련이지. 잠시 그걸 잊고, 자신마저 잊은 채 자기가 몰두하는 일만이 존재할 때가 있는거야. 가만있어 봐. 그처럼 단순한 게 아니지. 그건 전혀 다른 두 개의 삶이야. 그게 문제라고! 뭐가 문제란 말인가? 둘 중 어느 것이 <진정한 삶>이라는 게 -p 151

 

 평범한 인생이란  어떤 인생일까 궁금했을 뿐이었는데,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진정한 삶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우리의 인생을 하나로 딱 정의할 수는 없을 것같다. 매 순간이 진실이 아니었다고도 말할 수 없을 것같다. 카렐 차페크는 여러 개의 자아를 등장시켜 한 인간의 인생을 다각도로 바라보았다. 서로 부딪히는 부분들이 있지만 모두가 한 사람의 인생을 규정하는 요소들이었다. 그리고, 한 사람을 규정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조상, 가족들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라고 단 하나의 모습으로 말할 수 있을까? 내 인생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보는 것도 어렵고, 하나의 잣대를 가지고 규정지을 수도 없다. 살아가는 동안은 미완성이다. 책 속의 주인공처럼 여러 개의 자아가 있어 상황에 따라 적절히 대처함으로써 내 인생을 완성해나가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평범한 인생의 모습일지도.

 

  회상 형식으로 전개되는 작품은 현재하는 자신에게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여러 개의 자아가 존재하며, 그 내면에 있는 자아들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진실을 찾아간다는 이야기다. 그럼으로써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도 이해하게 된다는 함의를 담아내며, 서로의 차이점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형제애를 실천하는 것을 지향하는 차페크 문학의 본질인 휴머니즘의 정수를 보여준다. - (책 날개 중에서)

 

 카렐 차페크는 카프카, 쿤데라와 함께 체코 문학의 길을 낸 국민작가로, <평범한 인생>은 1934년에 출간되었는데 <호르두발>,<별똥별> 과 함께 철학 소설의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책이라고 한다. '로봇'이라는 신조어를 세상에 알린 작가라고도 한다. 책의 진가를 제대로 말하기에는 내 언어가 부족하여 책 날개 내용을 인용했다. 카렐 차페크의 다른 작품들은 어떤 이야기들을 담고 있을지 궁금하다. 벌써 장바구니에 두 권의 책을 담아두었는데 빨리 만나봐야지.

 

ps ) 의사와 포펠씨는 여섯 페이지 정도의 짧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들의 이야기 또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책 표지 속에 숨겨진 선명한 파란색이 너무 예뻤다. 양장본인 것도 맘에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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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기 베인, 너의 앞날이 아름답기를 | 문학 2022-01-04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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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셔기 베인

더글러스 스튜어트 저/구원 역
코호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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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 디자이너로서 커리어를 시작해 유명 브랜드에서 20년 가까이 일한 저자 더글러스 스튜어트의 첫 소설로 2020년 부커상을 수상했다. 부커상은 영국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으로, 영연방 작가들이 영어로 쓴 소설들을 대상으로 수상작을 선정하며, 2005년에는 영연방 지역 이외의 작가가 쓴 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내셔널 부문이 신설되었다고 한다. 사실은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이 상을 받게되면서 나도 부커상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부커상의 권위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상을 받은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거라고 생각하기에 기대감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추천사들도 화려했기에 설레는 맘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읽는 내내 우울하고 조마조마했던 책이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고, 부모님의 사랑도 듬뿍 받았음에 틀림없는데 왜 애그니스는 저런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는걸까? 그녀가 원하는 것이 사랑이었다면 자식들을 위해 희생을 강요하기보다는 사랑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해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애그니스가 남자에게서 찾는 것은 사랑이라고 보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랑의 이름은 다양하겠지만 정신적인 것보다는 육체적인 것에 더 끌렸다고밖에 할 수 없는 남자 셕을 따라 나서기 위해 남편을 버린 애그니스. 자식을 버리지 않고 데려간 것만으로 모성은 살아있었다고 해야할까? 집 한칸도 없어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 살게된 애그니스는 어느 순간 외도를 일삼는 셕때문에 불행했고, 알코올중독에 빠져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어느날 셕은 전 남편의 딸 캐서린,아들 릭과 애그니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셔기를 데리고 장인의 집을 떠나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갔다. 애그니스는 희망에 부풀었지만 함께 하기위함이 아니었다. 이사를 한 후 그들을 버려둔채 다른 여자에게로 떠나버렸으니까.

 

  그런 남편이지만 그리워했고, 분노했다. 분노는 또 술을 찾게했고, 또 다른 남자를 찾았다. 술과 남자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애그니스. 애그니스는 어떤 상황에서든 화장을 하고, 몸치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쿠폰으로 음식을 사는 대신 술로 바꿔버리는 바람에 애들은 굶는 날이 많았다. 그런 상황이라면 애들이 비뚤어지기 마련일텐데,  캐서린,릭은 그런 엄마를 돌보며 자신의 일들을 찾아서 했다. 어린 셔기 또한 엄마를 걱정하는 맘에 학교에 빠지는 날이 많았고, 학교에 가서도 놀림을 받기 일쑤였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 노력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셔기에게 "개자식을 아빠로 줘서 미안해" 라고 말했을때는 통쾌했고, 희망을 가지게도 했다. 게다가 1년 정도 금주를 하는 동안 집안은 평화로웠고 셔기는 행복했다. 하지만, 왜 그렇게 노력하는 그녀를 가만두지 않는걸까? 자신의 의지가 부족한 애그니스가 가장 문제였지만, 제대로 살고자 하는 그녀를 흔들어대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너무나 화가 났다. 금주는 실패로 돌아가버리고 알코올 중독자의 삶으로 돌아가버렸다. 캐서린과 릭은 엄마를 떠났지만, 셔기는 엄마 곁에 남아 어린 아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엄마를 보살폈다. 아이를 위해서 엄마가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를 위해서 어린 셔기는 모든 것을 참아내야했다. 셔기는 엄마를 지키고 싶었지만 결국 엄마를 지키지는 못했다.

 

  어둡고도 분노를 유발하고 슬픈 이야기였다. 엄마를 버리지 못하는 셔기가 바보같았다. 엄마옆에서 모든 것을 맞춰주는 것이 엄마를 위한 일이었을까? 버려두면 정신 차리지 않을까?  화내고 떠나기를 바랬던 적이 너무나도 많았다.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소설이었다. 애그니스에게 화가 났고, 셔기의 인생이 안타까웠다. '형은 왜 나를 데리러 오지 않았어? ' 이 말이 가장 마음 아팠던 문장이었다. 누나도 형도 떠났지만, 엄마를 지켜야한다는 맘으로 버티고 있었던 셔기는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어쩌면 스스로는 할 수 없었지만 누군가 그 상황에서 자신을 꺼내주길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가난, 중독, 상실, 소외 ···

그러나 무엇보다, 이것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읽는 동안에는 너무도 화가 났었다. 무책임한 아빠, 알코올에 빠져있는 엄마, 나쁜 길로 자꾸 빠지게 하는 이웃들, 셔기를 괴롭히는 녀석들. 하지만, 책장을 덮고 떠오르는 감정은 이상하게도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애그니스를 진심으로 대했던 부모님, 엄마를 버리고 떠났지만 사랑했던 캐서린과 릭. 그리고, 엄마의 모든 것을 지켜보며 끝까지 함께 했던 셔기. 그런 따뜻함들이 오히려 오랜 여운으로 남았다. 위의 심사평에 공감할 수 있었다. 셔기는 나약한 아이가 아니었다. 자신 앞에 펼쳐진 상황에 책임을 지고,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문제도 스스로 해결해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게하는 셔기 베인이었다.

 

  셔기는 리앤의 팔을 놓고 몇 발자국 앞으로 달려갔다. 아주 우아하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빛나는 구두 뒤축으로 딱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았다. -p 590

 

 셔기의 표정을 상상해본다. 분명 그의 눈은 웃고 있지않았을까? 셔기 앞에 펼쳐질 미래의 모습은 어떨지 모르지만, 그나마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결말이었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가족이다. 다른 사람은 보지 않으면 그만일 수도 있지만 평생 따라다니는 가족이라는 굴레는 힘들게 한다고 해서 벗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어쩌면 셔기와 같은 사람이 있기에 우리 사회가 무너지지 않고 지탱이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셔기 베인, 엄마를 버리고 도망치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이젠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같아. 엄마를 버리지 않고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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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높은 산 | 문학 2021-12-2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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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저/공경희 역
작가정신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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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 이야기]의 작가 얀 마텔의 소설로 2017년 국내에서 처음 출간된 이후 개정판으로 재출간되었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실의에 빠진 세 남자가 상실 이후의 삶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라는 설명을 듣고, 무거운 소설일거라는 생각을 했다. 판타지적인 요소와 함께 신비로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 소설은 짙은 슬픔을 느끼게 하는 무거움도 지니고 있었지만, 삶의 무게를 가벼운 것으로 만드는 희망, 극복의 메세지도 얻을 수 있었다. 세 편의 이야기는 완전히 독립된 이야기로 보였지만, 책장을 덮는 순간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었구나. 그리고,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침팬지는 인간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기도 했고, 종교적인 주제로서의 역할도 하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1부 집을 잃다.

 

  일주일 사이에 아내,아들, 아버지를 잃은 토마스는 뒤로 걷기 시작했다. 숙부는 뒤로 걷는 것이 애도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토마스는 세상에, 신에 반발하면서 걷는 것이라고 한다. 인생에서 소중한 모든 것을 빼앗긴 마당에, 반발 말고 달리 뭘 할 수 있겠냐면서. 이후에 국립 고미술 박물관에서 학예사 보조로 일하던 그는 포르투갈의 식민치하 노예무역이 활발하던 시절 노예들에게 세례를 주던 17세기 율리시스 신부의 일기를 발견했다. 신부의 일기를 읽던 토마스는 신부에게 동질감(둘 다 집이 없다는 점)을 느꼈다.

 

 사랑은 집이다. 매일 아침 수도관은 거품이 이는 새로운 감정들을 나르고, 하수구는 말다툼을 씻어 내리고, 환한 창문은 활짝 열려 새로이 다진 선의의 싱그러운 공기를 받아들인다. 사랑은 흔들리지 않는 토대와 무너지지 않는 천장으로 된 집이다. 그에게도 한때 그런 집이 있었다. 그것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p 35

 

 가족들이 모두 죽음으로써 그는 집을 잃었다. 토마스는 어떤 일을 계기로 파문을 당한 신부가 자신이 남긴 스케치를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십자고상을 찾아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있다는 교회를 찾아 떠나기로 했다. 1904년 리스본에서 특별한 물건이었던 자동차를 타고 포르투갈의 산으로 향하는 토마스는 조각품을 찾고 자신이 느끼는 상실감을 극복할 수 있을까? 아이를 죽이는 사고를 내고 토마스는 충격에 빠져 투이젤루라는 마을을 찾게 되는데, 그 마을의 교회에서 율리시스 신부의 십자고상을 만나게 되었다.

 

2부 집으로

 

  에우제비우 로조라는 병리학자다. 시체를 부검하여 시신이 들려주는 사연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것이 임무라고 말한다. 1938년 12월 그믐, 아내가 사무실로 찾아왔다. 아내는 그들이 즐겨 읽는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의 살해 미스터리를 복음서 위에 올려놓고 조명을 비추면, 관련성과 적합성, 합의와 동일성을 보게 되고 패턴이 맞아 떨어지고 서사적 유사점이 드러난다고 말했다. 에우제비우는 거슬리는 부분도 있었지만 아내의 말을 경청했다.

 

  뭐라고? 예수의 기적, 인간의 육신에 은혜를 베푸는 예수, 물 위를 걷는 예수, 다른 우화 작가들에 의해 구제된 우화 작가 예수, 살해 미스터리의 피해자인 예수,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에서 속삭이는 배후 인물인 예수 ㅡ 그 복잡한 이야기를 늘어 놓은 이유가, 그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종교적 위안을 느끼며 읽기 위해서라고? - p 200

 

  쭉 이어지는 아내의 말은 내 이해의 폭을 넘어서는 부분이긴 했지만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과 비교하면서 설명하고 있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아내가 사무실을 떠난 직후에 마리아라는 이름의 여자가 남편 라파엘을 부검해달라고 찾아왔다. 부검을 진행하며 에우제비우의 외과적, 병리학적 지식과 마리아와 라파엘의 삶이 교차되어 이야기되어진다. 그의 몸 속에서 나온 물건들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말해주고 있었고, 마리아는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침팬지와 작은 새끼곰도 들어있었는데, 5살에 사고로 죽은 아이를 라파엘은 새끼곰이라고 불렀었다. 슬픔과 경건함등 여러 감정들이 오가는 가운데, 남편의 몸 속에 자기를 넣고 봉합해달라고 말하는 마리아였다. "여기가 집이야, 여기가 집이야, 여기가 집이야."라고 말하며 라파엘과 함께 하는 마리아의 모습은 평화롭게 보였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곳, 그곳이 마리아에게는 집이었다. 라파엘의 몸에서 나온 물건들은 마리아가 가져온 가방 속에 모두 넣어졌다. 소설의 말미에서 에우제비우의 아내가 얼마 전에 죽었음을, 직접 아내의 시신을 부검했음을 알게 되면서 아내의 방문과 나누었던 대화들은 다른 의미로 읽혀졌다.

 

3부 집

 

 1981년 캐나다의 상원의원인 피터 토비는 병으로 아내를 잃고 아들과의 관계도 나빠졌다. 미국 대학 부설 시설인 침팬지 보호소에서 침팬지 오도를 만나게 되었다. 자석같은 끌림을 느낀 피터는 오도를 구입했고, 그와 함께 살기 위해 캐나다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향했다. 피터는 아주 어렸을때 부모가 캐나다로 이주해와서 캐나다 사람으로 살았지만 고향은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있는 투이젤루였다. 비어있는 집을 얻어 오도와 함께 평화로운 시간들을 보냈다.

 

  삶을 돌아보는 일은 달콤 쌉싸름한 일이다. 그는 향수에 젖는다. 어떤 사진은 벅찬 기억들을 불러온다. 어느 날 저녁, 아기 벤을 안은 클래라의 사진을 보다가 피터는 울음이 터진다. 벤인 자그많고 빨간, 주름투성이의 갓난아기다. 앙증맞은 손이 엄마의 새끼 손가락을 꽉 잡고 있다. 오도는 동요하지 않고 근심스럽게 피터를 바라본다. 침팬지가 사진첩을 내려놓고 그를 껴안는다.(중략) 쉽게 슬픔에 매몰되지 않으려 애쓴다. 대신 그가 두 사람을 사랑한다는, 단순하지만 중요한 사실에 초점을 맞춘다. - p 369

 

 세상을 떠나 내 옆에 없어도, 현재 마음의 거리가 생겨있어도 가족이라는, 사랑한다는 마음만은 변하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얻으며 위로를 받았다. 오도가 옆에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오도와 교감하는 장면들은 경이롭게 다가왔는데, 한 편의 동화를 보는듯했다. 어느 날, 오도가 들고 온 가방의 물건들을 보다가 피터는 자신들의 조상에 대한 이야기들을 알게 되었다. 1부, 2부, 3부의 이야기가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아주 신비로운 소설이었다. 가족을 잃고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이들의 마음 속 아주 깊은 곳에 있는 슬픔을 한없이 끌어올리는 글들에 무거워지기도 했지만, 그것이 정화되는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그 감정은 마지막 피터와 오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극에 달했다. 한낱 동물이라고 무시해버릴 수 있는 침팬지와의 교감을 통해 피터는 평화를 얻는듯 보였다. 이 책을 알듯 모를듯한 부분이 많아서 완벽하게 이해했다고는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책을 자꾸 자꾸 펼쳐보게 된다는 것, 소설 속 문장들을 곱씹어 보게 된다는 것, 슬픔이 가득하지만 왠지 아름답다는 느낌이 아주 강하게 든다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파이 이야기]가 다 읽은 후에야 읽고 싶어지는 이야기라면 [포르투칼의 높은 산]은 읽는 중에 이미 다시 읽고 싶어지는 이야기라고 했다. 그 말이 이상하게도 시선에 꽂혔는데, 읽고 나서 바로 다시 읽게 되었다. 종교적인 부분들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어렵게 다가왔지만 처음 읽으면서 놓쳤던 부분들을 발견했다. 내가 제대로 읽지를 못했었구나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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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해결의 열쇠는 백조와 박쥐 | 문학 2021-12-1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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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백조와 박쥐

히가시노 게이고 저/양윤옥 역
현대문학 |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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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야행>이라는 작품으로 히가시노 게이고를 처음 알게 되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기존에 출간되어 있던 책들을 찾아서 읽었고, 신간이 출간될때마다 바로 바로 읽었다. 단순한 사건 해결식의 추리 소설이 아니라 사회파 추리소설로써 인간과 사회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주제들을 많이 던져주는 면이 좋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식상한 스토리에 긴장감도 떨어져서 신간이 나와도 예전만큼 가슴이 뛰지도 않아서, 띄엄 띄엄 읽게 되었는데,  그런 중에 <백조와 박쥐>를 만났다.  2021년 작가생활 35주년울 기념하여 선보인 책 이라면 내가 좋아했던 그런 스타일의 작품이 아닐까 기대가 되었다.

 

  길가에 불법 주차된 차량이 있으니 단속해 달라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차에서 복부에 칼에 찔려 죽은 남자의 사체를 발견했다. 55세 시라이시 겐스케는 국선변호사로서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원한을 살만한 사람은 아니라고 했다. 탐문수사를 하던중 변호사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온 적이 있는 66세 구라키 다쓰로라는 사람을 찾아가게 되었다. 이후 그는 시라이시 겐스케를 자신이 죽였고, 공소시효도 지난 30여 년 전 살인 사건의 진범이라고도 자백을 했다. 자백을 했기 때문에 특별히 수사를 할 것도 없었고, 판결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해서 시라이시 겐스케의 딸 미레이와 구라키 다쓰로의 아들 가즈마는 의문을 품었다. 구라키의 진술을 전해들은 미레이는 아버지가 했을 행동이 아니라고 했고, 가즈마 또한 아버지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가즈마는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SNS에서 비난을 받고 있었고, 회사에도 당분간 나갈 수 없게 되었다. 그런 가족이 또 있었다. 작은 식당을 꾸려나가고 있는 아사바 모녀다. 그들은 구라키가 자백한 30여 년 전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구속되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면서 자살한 남자의 아내와 딸이었다. 딸 오리에는 결혼한 후에 그 사건이 알려져 이혼을 하고 아들과도 떨어져 살고 있었다. 구라키는 자신의 정체는 숨긴채 그들 모녀와 몇 년 전부터 왕래를 하고 있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진실을 알고 난 이후에도  모녀는 구라키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백을 함으로써 자신들은 범죄자의 가족이라는 오명을 벗고 구제받았다고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했다.

 

 구라키는 정말로 두 사람을 죽였을까? 굳이 공소시효도 지난 사건의 진범이라고 밝힐 이유가 있었을까? 피해자의 딸, 가해자의 아들이 진실을 알고 싶다는 공통된 소망을 가지고 사건을 파헤쳐나갔다. 처음 이 사건의 수사를 맡았던 경찰이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현재의 사건과 30년 전의 살인 사건은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 사건이 아니었다면 시라이시 겐스케의 살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많은 사람들의 삶은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그들이 알게된 진실은 엄청난 것이었다.  과거에 묶여 죄책감을 가득 안고, 또는 억울함을 가진채로 불안한 삶을 살고 있던 사람들은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역으로 몰라도 되는 사실을 알게됨으로써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차라리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옳다고 판단하고 행했던 한 사람의 행동이 몰고온 비극을 생각한다면 매 순간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생각해보게도 된다. 모든 사건이 명백하게 제 자리를 찾아갔을때, 모두가 제대로 앞을 향해 자기 몫의 삶을 살아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진실의 소중함 또한  알게 된다.

 

  죽어도 마땅한 사람이 있을까? 이런 인간은 없으면 좋겠다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어 죽여버렸다고 치자. 살인자는 용서받을 수 있을까? 누군가의 생명을 뺏는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 결국 살인자라는 멍에와 함께 자신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은 어떻게 해야할까? 법으로 그런 사람들을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강화할 수는 없는 걸까? 하지만, 법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은 너무나도 많아서 다수의 피해자가 생길 수 밖에 없는 경우도 많다.  범죄 장면을 목격했다. 가해자를 보호해주고 싶다. 어떻게 해야할까? 진실을 덮어야할까? 참 어려운 문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것들에 생각이 미쳤다. 그런 생각할 꺼리를 던져주는 것도 좋았지만, 30년 전의 사건과 현재의 사건을 치밀하게 연결해 두었고, 의외의 인물의 등장으로 사건이 마무리 되는 것등 아주 흥미로웠다. 최근에 읽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중에서는 가장 좋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의도와는 상관없겠지만, 뜬금없이 나는 내 가족에 대해서 '내 남편은, 내 자식들은 이런 사람이야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알고 있는 모습 외에 다른 면은 없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레이와 가즈마가 구라키의 진술에 의문을 품었던 것은 가까이에서 봐왔던 가족으로서 다른 부분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사건 해결의 출발점이었다고도 할 수 있었기에 그런 질문을 던져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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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는 여우 | 문학 2021-12-07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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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림 그리는 여우

카이야 판눌라 글/네타 레흐토라 그림/이지영 역
우리학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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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 엄마, 이 책 뭐에요?
나 : 응, 서평단 책.아주 오랜만에 당첨된 책이야~~
아들 : 그림책인데?
나 : 그림책이 얼마나 재미있는데, 그림을 그리는 여우라쟎아. 궁금하지 않아?
아들 : 음.... 여우, 하의 실종인데.

 


 

 

 자주 접해보지 않은 핀란드 그림책이다. 핀란드 하면 무민 그림책만 떠오른다. 기록 사서로 일하고 있는 카이야 판눌라, 일러스트레이터자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네타 레흐트라의 첫 번째 책이다. 이 그림책으로 어린이 청소년 문학상인 핀란디아 주니어 상 후보에 올랐다고 한다. 오랜만에 읽는 그림책이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는 여우라고 하니 두근 두근하는 마음으로 만났다. 첫 번째 그림을 보자마자 몇 년 전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미술 도구를 마구 샀던 기억이 나서 웃어버렸다. 이제 막 데생을 끝내고 스케치에 들어가면서 무슨 욕심을 냈던건지. 여우는 나보다 나았다. 고민하면서도 그림 그리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신나서 그림 도구를 안고 오는 여우, 붓을 들고 '무엇을 그릴까'고민하는 여우의 모습은 활기차고도 진지해보였다.

 


 

 

  아기 오소리를 그려주고 싶었는데 잠시도 제자리에 있지 않았고, 사과를 그리려다 먹어버려 그릴 대상이 사라지기도 하고, 들판의 풍경을 그리려고하면 뛰어다니는 토끼들 때문에 방해를 받았고, 그림 그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우연히 만나게 된 초록색 스카프 여우와 그림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면서 친구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정원이라고 상상한다면, 무엇이든 다 그릴 수 있다'는 초록색 스카프 여우의 말을 듣고 풍경을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  풍경화를 그리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던 동물들이 함께 있는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리고 여우는 생각했다. '살아있는 것들이 담긴 풍경을 그리는 일은 참 즐겁다고.'

 


 

 

 문득 그런 날이 있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혼자 있고 싶은 날. 지금 여우가 그랬다. 누구랑도 만나고싶지 않고, 얘기하고 싶지 않아서 다른 동물들이 있는 곳을 피해 숲을 돌던 여우는 누군가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이 발자국을 따라가볼까?' 응? 누구랑도 만나고싶지 않다며? 만나고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단지 외로워서가 아니었을까? 집에 찾아온 초록색 스카프 여우에게 자신이 어떻게 지냈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털어놓을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여우와 스라소니는 장미를 심었다. 화단에 줄 맞추어 심었는데 장미는 삐죽삐죽 화단 밖으로 나왔고,그런 장미가 못마땅해 줄기를 뜯어내 화단 밖으로 던져버렸다. 다음 해 장미꽃이 필무렵 아기 오소리가 큰 병에 걸려 죽었는데, 여우는 가장 아름다운 장미 꽃다발을 만들어 아기 오소리 무덤에 가져다 놓았다. 슬픔에 빠진 여우가 돌보지 못했음에도 장미들은 정원을 가득 채웠다. 정원에 아무렇게나 피어난 장미들을 여우는 어떻게 했을까? 예전의 여우였다면 뽑아버렸겠지만 '정원이 모두 장미로 뒤덮여도 괜찮아.'라고 말했다. "여우야, 너 많이 변했구나." 가을에 여우는 부끄러워서 꼭꼭 숨겨왔던 그림들로 전시회를 열었다.

 


 

 그림에 있던 나무는 풍성해졌고, 바깥 풍경은 달라졌어요. 그림 속 동물들은 훌쩍 컸고,어떤 이는 이제 볼 수 없어요. 여우의 그림 속에는 숲 속 동물 친구들이 사랑하는 것들이 담겨 있어요. 이것들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아요. -p 59

 

  세 편의 이야기로 나뉘어 있지만 하나의 이야기였다. 여우의 성장기라고도 볼 수 있을 것같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고민하면서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되고, 뭔가 하나를 고집하기 보다는 다른 것과의 조화도 생각하게 되고, 우울하고 외로울땐  친구와 수다를 떨기도 하며 이웃들과 무언가를 공유하며 살아가는 여우. 그러고보니 우리는 인생이란 큰 도화지에 가지각색의 그림을 그리면서 살아가는 것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다시 만날 수 없는 아기 오소리, 초록색 스카프 친구, 아름다운 자연등 다양한 그림들로 채워진 여우의 전시회를 보며 내 삶의 그림들로 전시회를 한다면 과연 어떤 그림들로 채워질까 궁금해졌다.

 

여우의 그림 전시회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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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스쿠의 매직숍 푸른 고도 | 문학 2021-12-07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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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푸른 고도

모리사와 아키오 저/민경욱 역
서울문화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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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 고도 (靑い孤島) , '외딴섬'보다는 '푸른'에 초점이 맞춰져 활기가 넘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모리사와 아키오 소설의 느낌을 알기때문일 것이다.

 

  다스쿠는 고물 페리 '시치조마루'를 타고 도쿄만을 빠져나온지 15시간만에 고오니가시마에 도착했다.  '킹 오브 벽지'로 칭해지는 그 섬의 촌장과 회사 사장의 인연으로 섬 활성화 기획 공모전에 참여했고, 그 일의 책임자로 파견된거였다. 사장의 의도는 적당히 활성화 지원금이나 챙기자는 의도였고, 그런 일에 적임자는 다스쿠였다. 누구도 가고싶어하지 않는 섬이었고, 다스쿠는 회사에서 "쓸모없는 놈"으로 취급되고 있었기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분노했으나 유급 휴가다 생각하고 대충 놀다가 돌아오지라는 마음으로 가게 되었다.

 

  총 인구 백구십 명 정도에 상점도 딱 하나, 주유소도 하나, 관광객도 거의 오지 않는 섬이었다. 미남 청년 에다노 쇼의 안내로 3일간 섬을 돌아보았다. 아름다운 경치에 놀라고, 친절한 사람들에게 매료되어갔다. 장소도, 사람도 멀리서 봐서는 알 수가 없다. 가까이 다가가서 바라보기 전까지는. 하지만, 섬은 동서로 나뉘어 서로 반목하고 있었다. 100여년 전에 만들어진 분열의 분위기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었고,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완전히 섞이지는 못했다. 에다노 쇼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화합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오히려 배척을 받고 있을 뿐이었다.

 

 섬 사람들은 다스쿠가 살기 좋은 섬으로 바꾸어 줄거라고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다스쿠는 삼사람들고 생활하는 동안 정말로 이 섬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장의 전화 한 통화로 활성화 지원금을 뜯어내러 온 나쁜 사람으로 오해를 받게되고 만다. 오해를 받은 채로 섬을 떠날 것인가? 하지만, 그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섬 가이드를 맡아주었던 촌장 아들 에다노 쇼, 술집에서 일하는 금발의 미녀 루이루이, 에다노 쇼의 애인 나나, 히키고모리면서 검퓨터 전문가인 세이야, 신사의 무녀 쓰바키히메와 가렌, 오랫동안 섬에 살면서 지혜를 터득한 오토메 할머니. 이 섬에 들어온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동화되어가고 있는 리카코씨.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되고, 진심은 통하는 법이다. 그들과 함께 동서화합을 이끌어내고, 오해도 풀게되었다. 이 과정이 약간 억지스럽긴 했다. 오랫동안 묵은 감정이 이렇게 쉽게 해결된다고? 이 섬에 왔던 목적도 당당히 이루어냈다. 웬만한 섬여행 마니아가 아니라면 찾지도 않았을 섬을 사람들이 오고싶어 안달하는 섬으로 탈바꿈 시켰던 것이다. 섬만 바뀐 것이 아니었다.

 

  유소년기부터 줄곧 '대체품' 취급을 당해왔다. 그런데 쇼를 만난 뒤로······ 아니, 이 섬에 온 뒤로는 조금 달라진 기분이 든다. 동군, 서군을 불문하고 나름대로 몸을 움직여 '도움'을 주기만 하면 고지마 다스쿠라는 '개인'의 존재를 흔쾌히 받아들여준 사흘간이었다. 물론 내가 마을과 일하는 사람이라 그저 손님으로 대했을 뿐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 -p218

 

 주변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주고 믿어준다는 것이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이 사회는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곳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는 소설이었다. 정이 많은 사람들과 따뜻한 이야기들이 가득할 것이고, 그래서 읽고나면 행복한 마음이 들거라는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모리사와 아키오의 소설을 지금까지 8권을 읽었는데,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꼭 등장을 했는데,그게 좋았다. 이 소설에서는 BTS 의 <매직 숍>이라는 곡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내가 나인게 싫은 날,영영 사라지고 싶은 날, 문을 하나 만들자, 너의 맘속에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곳이 기다릴 거야. 믿어도 괜찮아 널 위로해줄 Magic Shop....."-p240

 

 Magic Shop 을 나오는 순간 우리는 조금은 달라져있지 않을까? 나를 온전히 마주본 그 순간이 지나고나면 ······.어쩌면 다스쿠에게 고오니가시마가 매직 숍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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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낳은 내 과거가 나를 어디로 끌고 갈것인가 | 문학 2021-11-3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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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마음

나쓰메 소세키 저/송태욱 역
현암사 | 2016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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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으려고 샀지만 몇 년동안 책장을 장식하는 역할만 하고 있는 책들은 너무 너무 많다. 어느 날 갑자기 그 중 하나를 읽게 될때면 드는 생각은 두 가지. '사두면 다 읽는다니까', '이렇게 재미있는데 왜 이제서야 읽었지?'. 이 책도 그랬다. '일본 근대 문학의 정수 20세기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 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 수준은 되지 않지만, 분명 인간의 복잡하고도 다양한 감정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100년 전, 고리타분한 이야기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현암사의 나쓰메 소세키 사후 100주년 기념 완역본 국내 최초 소설 전집 중에서 두 번째로 읽게 된 책이다. 주인공 '나'와 선생님의 우연한 만남으로부터 시작되는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높낮이가 없는 길을 천천히 달리는 기분이었다. 물론 개인차는 있을테지만.

 

  특별한 이유가 아니어도 끌리는 사람이 있다. 나에게 선생님은 그런 존재였다. 도쿄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던 나는 여름방학을 이용해 가마쿠라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해수욕장에서 중년의 한 남자를 알게 되는데, 도쿄에 돌아온 이후에도 그 만남은 계속되었다. 사람과의 교류를 싫어하고, 일도 하지 않은채 아내와 단 둘이 살고있는 선생님을 자주 찾아가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 우연히 마주쳤을 뿐인데, 궁금하고, 알고 싶고, 가르침을 받고 싶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았다.

 

 나는 어렸다. 하지만, 모든 인간에 대해 젊은 피가 이렇게 고분고분하게 돌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왜 선생님에게만 이런 마음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중략) 가엾은 선생님은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사람에게 , 가까이 할 만한 사람이 아니니 그만두라는 경고를 보냈던 것이다. 남이 반가워하는 것에 응하지 않는 선생님은 남을 경멸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경멸한 것 같다.-p 25

 

  아내와의 관계가 나빠보이지도 않았는데, 사랑은 죄악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받을 것은 제대로 받아두는 것이 좋을거라는 충고도 했다. 과거의 일로 사람을 믿을 수 없지만, 죽기 전에 단 한 사람이라도 믿고 싶다는 선생님은 나가 그런 존재가 되어주길 바랬다. 세상에 대해 무관심하고 고독에만 빠져있는 듯해 보이는 선생님.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의 아버지는 건강이 좋지 않았던 탓에 졸업 후에 본가에 돌아가 있게 되었다. 선생님으로부터 도쿄로 와줄 수 있겠느냐는 편지를 받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병세가 계속 나빠져서 도쿄로 가지는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장문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 내가 알고 싶어하던 선생님의 과거를 담은 글이었는데, 그조차도 차분히 읽을 틈이 나지 않아서 페이지만 넘기다가 한 문장에 시선에 꽂혔다.

 

이 편지가 자네 손에 닿을 무렵이면 나는 이미 이 세상에 없을 걸세. 진작 죽었겠지.-p 146

 

  나는 도코행 기차에 올라 선생님의 편지를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누구에게도, 아내에게조차도 알리지 못했던 과거가 쓰여있었다. 어쩌면 아무 일도 아닐 수 있었지만 자신에게 아주 강한 윤리적인 잣대를 가져다댄 것이 선생님의 외로움, 고독의 시작이었다. 일찍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냈으면 좋지 않았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 소설은 상,중,하로 나뉘어져있다. <상-선생님과 나>에는 선생님과의 첫만남으로부터 함께 했던 시간들 속에서 선문답처럼 주고 받언 이야기들이, <중, 부모님과 나>에는 방학과 졸업 후에 집에 와 있는동안 가족들과의 이야기가 주였고, <하, 선생님과 유서> 는 선생님의 유서였다. 주인공인 나와 선생님이 주고받는 말 속에서 우린 인간이 가진 여러 속성을 보게 되지만, 아버지에게도 많은 관심이 갔다. 죽음으로써 자신을 얽매고 있던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선생님에 비해 아버지는 생에 끈을 꼭 쥐고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아주 평범하고 일반적인 아버지.  '나'는 선생님을 아버지보다 위에 놓는 경우도 많았지만 말이다. 좀 부당한 느낌이 들었다. 속세에 살고 있는 아버지, 왠지 차원이 다른 곳에 살고 있는 듯한 선생님. 옳고 그름이 있다기보다는 삶의 방식, 생각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했다. 그리고, 아버지를 유독 부각시킨 것은 선생님 과거의 한 대목을 설명하기 위한 방편이었던싶다.

 

  문득 한 사람의 과거를 모두 알게 되고, 죽음의 의미까지 알게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될까싶었다. 인간을 알게 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까? '나를 낳은 내 과거'라는 이 문장에 유독 오랫동안 시선이 머물었다. 나를 낳은 내 과거가 나를 어디로 끌고갈 것인가? 라는 질문 하나가 남았다. 나쓰메 소세키가 의도한 바는 다를지라도 어쩔 수가 없다. 내가 읽은 '마음'은 나의 것이니까.

 

  나를 낳은 내 과거는 인간 경험의 한 부분으로서 나 이외에 누구도 말할 수 없는 것이니 그것을 거짓 없이 써서 남기는 내 노력은 자네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인간을 아는 일에 헛수고는 아닐거라고 생각하네.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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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마음대로 안될 때...먼저 이 책을 만나보세요 | 인문 2021-11-2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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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마음이 마음대로 안될 때

이경애 저
인간사랑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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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이 아플 때 우리는 약을 먹거나 병원에 가기도 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돌아보며 나를 살핍니다. 그런에, 마음이 아프고 힘든 데는 무심합니다. 마음은 몸의 증상처럼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으니 아픈지 모르기도 합니다. 마음은 아픈 게 아니라 나약할 뿐이라는 생각도 방해가 됩니다. -p 10

 

  모든 것이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듯이 어쩌면 마음의 병이 신체적인 병보다도 훨씬 심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마음이 아픈 것도 병이라고 인식하고 병원을 찾는 사람도 있지만, 여전히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을까봐 두려워하는 경우도 많다. 저자는 TV 교양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송작가로 10년간 일했고, 심리를 공부한 후에 현재는 14년차 상담자로 대학 상담센터와 사설 상담기관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심리 상담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왜 필요한지에 대해 '가을님' 이라는 가상의 내담자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실제 상담 사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인상 깊게 보았던 영화, 드라마, 책의 내용도 많이 인용하고 있었는데, 저자의 의도대로  상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린 비슷비슷한 문제를 품고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닐까? 그래서인지 내담자들의 사례와 저자가 들려주는 자신의 경험을 듣고 있으니 딴 세상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이기도 해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다. 실제로 상담을 받은 듯 마음이 많이가벼워지는 경험을 했고 앞으로 적용해보고 싶은 해법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20대때 많이 했던 고민 중 하나가 이것을 시작해도 될까? 괜히 시작했다가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하면 어떡하지하는 거였다. 결과적으로는 제대로 시작조차 하지 못한 것들이 부지기수였다. 저자도 대학원 진학을 두고 비슷한 고민을 했었는데, 친구의 한 마디가 큰 도움이 되었고, 지금까지 상담사로 일하고 있다한다.

"경애, 대체 언제까지 고민할래. 이제 고마 해! (그만 해)" -P127

  결과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욕심, 잘 해내야한다는 부담이 결정의 걸림돌이 된다는 평범한 진리도 중요하지만, 저자의 고민을 한 방에 날려준 친구의 한 마디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같다. 혼자서 끙끙 앓기보다는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 이것이 심리 상담의 중요한 장치가 아닐까?

 

  50대가 되면서 친구들과 이야기는 기승전 갱년기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좋지 않은 쪽으로의 변화를 보며 한숨을 짓고, 잃어버린 많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흔이 가까워지면서 나이 먹는 것에 심란해하고 있는 '가을님'에게 저자는 <다가오는 것들>이라는 영화를 예로 들어 이야기했다. 많은 것을 잃었지만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50대의 나탈리는 이렇게 말했다한다.


 '이런 생각을 해, 애들은 독립했고, 남편도 엄마도 떠났지...나는 자유를 찾은거야. 살면서 한 번도 겪지 못했던 온전한 자유! 놀라운 일이야. 이건 낙원이잖아.'-P159

 

 각자 처한 상황은 다르겠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느끼는 마음들은 비슷하지 않을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차이일 것이다. 저자는 영화의 제목이 '잃어버리는 것들'이 아니고 '다가오는 것들'이라는 점이 재미있다고 말했는데, 이 말을 듣는순간 내 머릿 속에 빛이 들어오는 듯했다. " 그래, 나도 잃어버린 것만 생각하지 말고, 새로이 얻게되는 것들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해보자." 고 마음 먹게 되었다.

 

 누구나 살면서 막다른 길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고민의 깊이가 깊어지고 노력해봤자 벗어날 수 없다는 느낌이 커질때 우리는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야합니다. 오랜 고민 끝에 '다른 방법이 없다' 싶을 때가 다른 누군가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 본문 중에서

 

  용기를 내어 상담에 응하려고 해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은 부담감이 많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상담을 할 때면 과거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고 했는데, 현재의 문제가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라고 했다. 내담자는  과거의 상처가 너무 깊어서 이야기를 꺼려하는 경우가 있을텐데 저자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상담을 진행해나가는 지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었다. 이렇듯 상담자가 내담자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내용들이 많아서 심리 상담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듯했다.

 

  최근에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새끼'라는 프로그램을 본적이 있다. 내담자의 일상을 관찰하고, 과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한 후에 조금씩 변화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느낀 것이 있었다. 문제를 숨기기보다는 드러내놓고 도움을 청하는 것의 이로움이었다. 숨기기만 했다면 더 나빠졌을 가능성이 높았겠지만 다른 이의 의견을 듣고, 함께 해결해나가려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마음이 힘든 것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적극적으로 타인의 도움을 받으려고 해보는 것은 어떨까? 내 이야기를 털어놓기만 하는 것으로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심각했던 문제가 조금은 가벼워질지도 모르니까. 심리상담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 책을 먼저 한 번 만나보라고 말하고싶다.

 


 

인간사랑 출판사로부터 선물로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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