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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살펴보면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들이 몇 개 있는데, 나한텐 밤 9시의 커피가 그 중 하난거 같아. 이 어메이징한 커피, 밤 9시의 커피야! 난 이렇게 멋진 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어. 이게 내 대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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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술자리보다 더 알싸하고 짜릿한, 이건 어떤가! <서울독립영화제2008> | 시네마가 있는 풍경 2008-12-18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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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가 ‘대세’긴 대세인가 보다. 제34회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의 포스터와 트레일러에는 1970년대 만화를 연상시키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촌스러운 그림체와 문어체 말투, 요란한 음악 등 이거이거 완연한 ‘복고풍’이다. 그러나 낡거나 후지지 않다. 되레 중독성이 있다. 보고 또 보고 싶어진다. 에너지도 충만해 뵌다. 대체 이게 무어란 말인가! 묘한 것은, 국가권력의 퇴행성(복고)과 맞물려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1970년대 무소불위식 권력이 횡행하던 시절, 그에 절망한 혹은 환멸을 극복하기 위한 불온한(!) 문화적 저항들이 있었다. 지금-여기의 국가권력과 현실을 살펴보라. 어쩐지,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혹시……?


서울독립영화제2008 ‘상상의 휘모리’
www.siff.or.kr/indexkr.php

그리하여 어찌 그 현장이 궁금하지 않을쏜가. 그래서 찾았다. ‘서울독립영화제2008’ 개막식. 11일 저녁 서울 명동 인디스페이스의 공간을 급습(?)했다. 자고로 불온함은 어둠 속에서 잉태하는 법. 행여나 국가권력에 치명적인 해를 가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슬쩍 그들의 행적을 좇았다. 슬로건은 ‘상상의 휘모리’. 이런 역시나 복고. 아마 ‘상상력이 세상을 구원하리라’는 말을 하고팠나본데, 이건 68혁명 때도 이미 써먹은 수사가 아닌가. 그때도 누군가들은 상상을 통한 전복을 꿈꿨다. 도전과 반항, 불온함 가득한 상상을 휘몰아치면서 현실과 정면으로 맞섰던 그때. 이런 기시감이 있나. 40년 훌쩍 지난 동아시아에서 휘몰아치다니.

뭐 물론, 그저 흘려들어도 좋을 만큼의 농담이다. 화폐의 부작용이 커질 만큼 커져, 곪을 만큼 곪아, 금융위기라는 이름으로, 불황이라는 타이틀로 사람들의 목줄을 움켜쥔 이 시기. 도전과 가능성의 이름, 독립영화라고 그 파고를 맞닥뜨리지 않을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독립영화가 언제 꽃피는 봄날이었던 적이 있나. 뺄 기름기도, 감축해야 할 지방질도, 버려야 할 과소비도 없는 형편. 그래서 여느 때와 같이 올해도 그저 달린다. 늘 그 자리에서 우리를 반겨줬듯이. 그렇게 똑같이.

서울독립영화제2008은 12월 19일까지 계속된다

올해의 서독제에는 역대 최다인 623편이 공모한 결과, 경쟁부문에서 51편, 초청섹션에서는 35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특히, 국내 초청작 부문이 재밌다. 아니, 다시 열 받을지도 모르겠다. 바뀌지 않은 지금의 현실 때문에. ‘재밌거나, 열받거나’를 키워드로 한 9편의 ‘촛불영상’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여름을 밝힌 촛불정국의 기억을 다시 되새기면서 다시 우리에게 필요한 상상력을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 밖에도 독립영화감독들이 자원활동가로 활동하는 ‘일일 자원활동가’, 감독과 배우의 만남의 장을 마련한 ‘감독, 배우를 만나다’ 등의 행사가 있다. ‘Sex is cinema: 영화에서 성적 표현의 문제’ ‘거리의 촛불, 참여 미디어의 가능성’ 등의 세미나도 열린다.

개막식이 열리는 명동 인디스페이스

그렇다. 오늘, 명동이 빛나 보이는 이유가 있었다. 이런 서독제2008의 개막을 앞둔 설렘 때문이겠거니. 인디스페이스는 유난히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영화계 종사자는 물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북새통. 누군가는 오랜만에 만난 이와 반가이 인사하고, 다른 누군가는 영화로 담소에 빠져 있다. 영화제 자랑을 늘어놓으면서도 영화계를 걱정하는 소리도 있다. 모두들 휘몰아?는 서?제의 파고 앞에 뒤로 물러서지 않고 그냥 온몸으로 받아들일 자세다. 역시나 이날 개막식 티켓은 조기 매진됐단다.

그리고 예정된 7시가 넘어서도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고, 480석을 가득 메웠다. 밖은 춥지만 안은 후끈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조명이 꺼지고 스크린에 느닷없이 등장한 마루치와 아라치. 영화제 오프닝 영상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들, 고민 한번 깊다. “상상력이 문제였단 말인가!” 마루치가 ‘상상력 결핍증후군’이라는 신종병을 놓고 고민하는 사이, 각종 직업군의 사람들과 독립영화인들이 교차하면서 상상력을 이야기한다. 그렇다. 지금 필요한 건, 뭐?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강렬한 상상력의 휘몰아침. 환멸을 참고 견디기 위한 상상력의 힘. 불가해한 존재를 믿고, 요정을 불러내는 그런 상상력. <헬보이> 시리즈와 <판의 미로>의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일찍이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상상력과 희망으로 버티어낼 수 있었다. 나에게 상상은 도피가 아니다. 진실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지금 우리에게 상상력이 필요한 이유.



‘장기하와 얼굴들’의 축하공연

그렇게 차츰 달아오르는 열기에 불을 붙인 인물은, 동방신기 제6의 멤버라는 소문이 도는, 인기가 차오르는 인디밴드 ‘장기하와 얼굴들’. 잠깐, 이들의 현재 인기가 어떤가 보자. YES24에선 동방신기, 빅뱅이 새 앨범을 냈을 때도 이에 꿀리지 않고 판매순위 3위를 하더니, 어느덧 지금은 2위다. 윤상에 이어. 아직 첫 앨범도 아닌 싱글인데 말이다. 이만하면 포크록밴드라는 정체성이 무색하게, ‘아이돌’ 아닌가! 장기하와 얼굴들을 좋아하는 팬들은 요즘, ‘장미중(장기하와 얼굴들에 미치고 중독된다)’를 외치고 있다는 믿거나말거나 후문.

서독제라고 다르지 않다. ‘장교주’를 연호하는 관객들의 환성이 그것을 증명한다. 무대에 올라 “아, 떨리는군요.”라는 말로 문을 연 장기하와 얼굴들은 인디끼리의 만남에 더욱 고무된 눈치다. 예의 어눌하고 어색한 말투로 할 말 다하는 캐릭터인 그들의 매력이 극장을 휘몰아쳤다. 무엇보다 압권은 쇄골 부근에 빨간 코사지로 장식한 장교주의 패션. ‘아무것도 없잖어’로 시작된 공연은 ‘말하러 가는 길’을 거쳐 인기절정의 ‘싸구려 커피’로 이어졌다. 관객들도 어깨가 들썩들썩. 그리고 올 것이 왔다. 호피무늬 원피스와 빨간 모자와 빨간 테 선글라스를 낀 ‘미미시스터즈’와 함께한 2부는 불온함으로 가득했다. ‘찌질’한 남성의 울부짖음을 담은 ‘나를 받아줘’에서 미미시스터즈는 담뱃불을 붙였고, ‘달이 차오른다, 가자’에서 그들은 팔을 허우적대며 달이 차오른다고 읊조렸다. 앵콜곡 ‘느리게 걷자’까지, 그들의 노래는 서독제와 궁합, ‘딱’이다. 한마디로, 휘몰아치는 상상력의 전조이자, 중독성 짙은 마력의 공연. 잠깐 엇나가자면, 그들의 레이블, ‘붕가붕가레코드’을 통한 장기하와 얼굴들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원한다면, 당신의 지갑을 열어라. 그들의 앨범을 사라.

사회자 권해효와 류시현

열띤 공연이 끝나고 등장한 개막 사회자는 올해도 어김없이 권해효, 류시현. 각각 8년째, 5년째 서독제의 사회를 맡고 있다는 그들은 만담 수준의 유려한 진행을 자랑했다. 10년 전 1998년의 국제통화기금(IMF) 시즌과 비교한 권해효는 화폐의 위기에 닥친 올해라고 힘 빠질 게 없단다. “언제 가진 게 있었어야지. 그러니 타격이 없어요.”라며 서독제의 굳건한 항해를 자축했다. 그리고 다른 10년을 축하했다. ‘한국독립영화협회’의, 독립영화배급사 ‘인디스토리’의, 영화제작사 ‘청년필름’의. 그리고 제안했다. 9일 동안의 신나는 축제를 즐겨줄 것을. 누구도 주인이 아닌, 관객과 감독이 주인 되는 축제를.

이어서 올해 서독제에 자신의 작품도 출품한 임창재 이사의 개막선언이 있었고, “영진위의 모든 사업은 독립영화를 위한 사업이며 독립영화의 든든한 후원자로 제 역할을 하겠다.”라고 다짐한 영화진흥위원장 강한섭의 축사가 있었다. 서독제 관련한 식구들(외빈)과 김조광수 심사위원장을 위시한 심사위원들에 대한 소개와 무엇보다 서독제의 든든한 주인공인 경쟁작과 초청작의 감독들이 인사를 나눴다. 오오, 놀라워라. 이토록 많은 감독들과 함께하는 자리라니. 감독(들)의 휘모리.

조영각 집행위원장

결코 빠질 수 없는 개막식의 후반부 하이라이트는 조영각 집행위원장이 장식했다. 처음으로 양복을 입고 나타났다는 그의 패션은, 결코 장기하에 뒤지지 않는 센스를 보여줬다! 빨간색 나비넥타이는 단연 압권. 관객들의 열광 섞인 환호성이 그의 새로운 패션에 대한 품평을 대신한다고나 할까. 조 위원장은 올 서독제가 특별히 준비한 2가지를 소개했다. 하나는, 상상마당, 미디액트와 함께 진행하는 제작지원사업. 에로티시즘을 주제로 옴니버스 단편 3편을 제작, 내년 서독제에서 선보이고 내후년에 개봉키로 했다. 세고 야한, 무엇보다 새로운 체위(!)를 개발한 영화들이 선보일 것이라는 조 위원장의 호언장담이 있으니, 내년을 기대해도 좋겠다. 나머지 하나는 지난 1999년에 가졌던 ‘감독, 배우를 만나다’를 이번에 다시 열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영화관을 가득 메운 관계자와 관객들

마지막으로 개막작 <푸른 강은 흘러라>의 강미자 감독과 주연배우들의 인사가 있었다. 변화하는 중국 연변사회를 담은 새로운 청춘영화로 소개된 이 작품은 오랜 숙성을 거쳤다. 3년 전 프로듀서를 맡은 이지상 감독에 의해 기획된 <푸른 강은 흘러라>는 쉽지 않은 상황에서 마침내 완성돼 관객들과 만났다. 강 감독이 10년 전 단편 <현빈> 이후 만든 첫 장편인 이 영화. 연변 작가인 량춘식의 중편 『하류의 물살』과 단편 「푸른 강은 흘러라」, 김남현의 단편 「갈등-문제의 소녀」를 토대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힘겹게 영화를 완성한 강 감독의 말이 인상 깊다. “영화가 자기 생명력을 갖고 움직이고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3년 전 기획했는데, 아직 이 영화가 유효한 것으로 봐서, 세상에 나올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영화 상영. 영화는 뭐랄까. 참으로 푸르다. “푸르름은 낭만이야/푸르름은 광대무변이지/그것은 숙원의 약속이고/그것은 옥같은 고백이야”로 시작된 영화는 낯설면서도 청량한 감정을 불어넣는다. 숙이와 철이라는 70년대 풍의 주인공 이름부터 문어체의 연변말 대사들이 전자라면, 선생과 학생들, 친구들 간의 관계 속에서 엿보이는 건강함과 애틋함은 후자다. 이 영화를 보자니, 아직 가보지 못한, 두만강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곳에서 “푸른 강” 하고 외치고 싶었다. 누군가와 함께 간다면 두만강처럼 푸르게 살자는 약속이라도 덜컥 해버릴지도 모른다. 이런 청춘영화, 참으로 생소하지만 반갑다. 재개발된 청계천보다 아직 가보지 못한 두만강이 훨씬 낫다.

개막작 상영이 끝나고 인근에서 얼큰한 뒤풀이가 있었다. 곤드레만드레, 달짝지근, 그날 새벽녘의 명동은 분홍빛으로 물들었다는 후문이다. 기분 좋은 시작. 서독제는 그렇게 문을 열었다. 오는 19일까지 신나는 축제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신산하고 강퍅한 현실과 맞물려 거친 상상력이 휘몰아치는 서독제로 발걸음을 향하는 것도 좋겠다. 송년회 술자리 대신, 송년회 서독제는 어떤가. 알코올보다 더 황홀하고 짜릿한 상상력이 당신을 업!시킬 지도 모른다. 달이 차오른다, 가자. 잊지 마라. 달이 진 다음에는, 소용없다. 참, 이번 서독제2008에는 ‘아침에 주문하면, 저녁에 도착하는’(사회자 권해효의 코멘트다) YES24가 공식후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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