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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혼자 빛나는 별은 없다 | 북카페 2017-09-14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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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마을이 일자리를 디자인하다

하토리 시게키 저/김홍기 역
미세움 | 2017년 0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공동체경제는 어떻게 조직되고 진화하는가, 에 대한 하나의 좋은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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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연결’이었다. 

하는 일도 제각각, 살아온 배경·환경도 천차만별. 책 초반부, 별달리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은 이들이 ‘지역고용창출’이라는 빤한 목표로 모여 성과를 대충 나열한 작은 백서(白書)이겠거니 생각했었다. 책의 개요도 그리 말하고 있었다. ‘인구 15만 명의 일본 세토내해 최대 섬인 아와지 섬. 이곳에는 고용창출을 목표로 하는 ‘아와지 일하는 형태 연구섬’이 있다. 책은 4년 동안의 활동과 성과를 기록했다.’ 아와지 일하는 형태 연구섬? 익숙하지도 직관적이지도 않은 작명은 또 어떻고. 그런데 책을 넘기면서 제각각 풀어낸 이야기가 하나로 모이기 시작했다. 많은 것들이 연결되면서 그림이 그려졌다.


그러면서 불이 켜졌다. 

아, 이 조각들이 하나로 수렴되는 과정이 아와지 섬의 일자리 만들기, 더 나아가 공동체경제(마을경제)가 진화하는 과정을 드러낸 것 아닐까. 재미있는 연결이었다. 그것은 SNS의 교감 없는 연결과는 다른 무엇이었다. 책에서는 그것을 ‘편집’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밤하늘에 떠 있는 별과 별을 연결하여 별자리를 명명하는 것 같은 작업.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재료, 사람과 장소, 물건과 공간 등 모든 것이 연결됐다. 그것은 또 다른 흥미를 낳았다.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았던 상황이 만들어졌고, 아와지 섬의 매력이 드러났다.


일자리 창출 플랫폼 

‘아와지 일하는 형태 연구섬’(아래 아와지)을 ‘디자인’(좁은 의미의 디자인이 아닌 공간과 정보, 사람의 종합적인 조율을 디자인이라고 하자)한 것은 다양함이었다. 수퍼바이저, 지역 어드바이저, 사업추진원, 실천지원자, 지역주민 등 다양한 관점이 모였다. 건축, 기획, 예술, 디자인, 농업, 자영업자 등 다양한 일을 하던 사람들은 제각각의 의도야 어쨌든, 아와지에 새로운 ‘별자리’를 만들었다. 혼자 빛나는 별은 없었다. 사람이 가장 창의적으로 되는 때는 자신이 하는 일이나 생활 형태와 다른 사람을 만날 때라고 했던가. 물론 그것이 되기 위해서 더 중요한 것은 태도다.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태도. 다른 사람에게는 없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다른 사람에게는 있고 내게는 없는 것을 알고 함께 머리와 몸을 맞대는 것. 행간에서 그런 과정을 읽을 수 있었다. 4년 동안 숱한 갈등과 어려움을 겪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숱한 실패와 어려움도 겪었을 것이다. 어떤 우정이나 좋은 관계를 확인하더라도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은 피곤이나 피로를 동반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럼에도 그들은 그것을 충분히 즐기고 감내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시간과 관계의 축적은 또 다른 가능성을 낳는다. 무쓸모의 쓸모,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친구나 팔로어를 쌓으면서도 타자를 만나지 못하는 SNS의 연결과 다른 사회적인 연결 덕분이다. 아와지 섬이라는 특정 지역과 공간을 둘러싼 움직임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무엇이었을 것이다. 아와지 섬의 매력을 생각하고 찾으며 의논하는 것이 계속 됐다. ‘어떤 사회에서도 일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연수’ 등과 같이 별의별 이름의 연구회가 만들어졌고 실천했다. 그것을 나는 ‘(일상의)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일(사업 혹은 프로젝트)을 즐기는 기술과 그 과정에서 드러난 어려움을 감내하는 기술. 더불어 아와지 섬이라는 자장 안에서 만들어진 매력이 가세했다. “도와주러 갔다가, 관계 때문에 갔다가, 그들의 천재적인 ‘자리 만드는 방법’에 반했다”는 말이 그것을 방증한다. 


사실, 민간과 행정의 연결(협치)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한국, 특히 서울의 마을공동체 사업에서도 ‘협치’는 쉽지 않은 과제다. 불협화음은 당연한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푸느냐’(솔루션)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사업 진행은 마냥 쉽지 않았다. 공공사업이니만큼 부담도 컸을 터. 협치는 필수지만 금성과 화성의 언어가 다른 걸 어떡해. 의식차이도 컸다. ‘우리가 지향하는 풍요로운 사회’라는 목표를 놓고도 해석은 제각각. 관공서에 맞춘 사업운영도 어려웠다는 실토도 나온다. 사업 초반부, “아와지 섬에서 사업의 시작은 효고 현의 협력을 어떻게 이루어낼 것인가에 달려 있었다”는 말은 협치가 쉽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나의 사례. 회의에서 NPO멤버 한 사람이 행정을 비판했다. 공무원은 당황했지만 또 다른 민간의 협치 파트너가 행정 비판 발언을 부정했다. 무작정 반대나 진영 논리가 아닌 다양함을 인정하고 합의를 이루자는 접근. 회의 결과는 좋았나 보다. 회의참석자는 이렇게 토로한다. “이런 동료가 있으면 일이 잘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모든 결과는 우연히 나오지 않는다. 

순조롭지 않은 협치의 과정, 다양한 지혜를 모으고 조정을 거쳤을 것이다. 매뉴얼이나 절차가 축적돼도 자동으로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 것이 현실. 어느 곳이든 이런 존재들도 있다. 행정에 의존하여 요구만 하는 주민, 무난한 대책과 성과에만 매달리는 공무원, 생활비 받듯이 보조금에 의존하는 단체. 아와지 섬에도 도와주기 위한 돈(보조금)이 사람과 지역을 망친 사례도 있고, 책에 실리지 않은 지뢰도 잠복해 있을 것이다.  

 

허나 완벽하고 어디에도 적용 가능한 솔루션은 없다. 

사람, 공간, 환경, 에너지 등 모든 것이 다르므로. 아와지 섬의 연결은 협력과 협치로 이어진 경우 같았다. ‘행복한 교통사고’라는 표현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연결했고 협력을 이뤘다. 다양한 관점이 결합했고 협동하는 지혜도 축적됐다. 그것은 이리저리 흩어진 천 조각이 바느질 한 땀 한 땀으로 연결됨으로써 근사하게 탄생한 조각보 같았다. 책 속의 이 말을 믿고 싶어졌다. 


“뜨거운 마음과 열정, 그리고 서로 협력하는 동료가 있으면 이런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 멋진 경험이었다. 행정과 민간이라는 장벽을 넘어 함께 사업을 성공시키겠다는 수평관계로 절차탁마했던 것도 대단히 기쁜 경험이었다.”(229쪽) 


이런 연결고리와 마음에 집중하자, 

아와지 섬 특유의 부가가치 상품 개발, 아와지 섬 특유의 관광투어 개발 등으로 이어진 마을경제 혹은 공동체경제의 확장은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졌다. 마을, 사람, 생활, 지역자원, 문화 등이 유기적으로 만나 일자리는 기본, 상품·서비스의 부가가치 향상은 물론 지속가능성을 갖춘 경제 형태와 이것을 지탱하는 일의 행태라는 또 다른 가치를 낳았다. 이는 취업을 위한 교육·기술향상, 지역 회사의 상품개발·마케팅, 사업 확대 등을 목표로 하는 우리 사회(마을경제)의 모습과 대비된다. 경제를 삶(생활)과 따로 떨어진, 돈을 버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건 너무 협소하다. 아와지는 액면 상으로 일하는 형태를 이야기하지만 이는 새로운 삶의 방식과 연결된다.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하게 만드는 공동체경제가 필요한 이유다. 인구 79만의 일본 후쿠이현의 사례를 다룬 《이토록 멋진 마을》에 나온 한 마을 상인의 통찰이 방향을 알려준다. “경제 행위란 본디 이타적 행동이 자신에게도 이득이 되는, 서로를 지탱해주는 조화의 힘이다.” 


조화는 연결의 결과다. 

아와지의 탄생전야인 2011년 여름 열렸던, 요리사들은 섬의 식재료를 활용한 요리를 하고, 도예가는 이를 담을 자기를 만들고, 누군가는 술을 들고 오는 등 한 사람 한 사람이 파티를 만드는 능력을 ‘셰어’하면서 시작한 ‘노플랜 파티(No Plan Party)’. 이 파티는 앞으로 변화될 아와지 섬의 모습을 함축했다. 기계적인 나눔(셰어)이 아닌 각자의 능력과 지혜를 모아 다양한 것을 ‘추렴’함으로써 혼자선 일어나지 않았던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낸 것. 이후 조금씩 확장된 관계는 연결을 거듭함으로써 아와지는 물론 아와지의 후생노동성 위탁사업 종료 후 ‘하타라보 섬 협동조합’으로 이어져 새로운 사업을 펼치고 있다. 공동체경제는 이렇게 진화할 수도 있다. 관계 속에서 살고 관계 속에서 가능성을 펼치는 것. 


책은 충분히 친절하지 않다. 

그것이 외려 나았다. 책 읽는 사람이 빈 공간을 상상하고 채울 수 있으니까. 책을 덮으면서 김규항 선생의 말을 곱씹었다. ‘세상은 평범한 사람의 삶에서 작은 가치들이 쌓일 때 조금씩 좋아진다.’ 책을 통해 만난 아와지 섬이라는 세상도 그랬다.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고 연결하고, 남과의 비교가치를 따지지 않는 태도. 어떨 때는 태도가 비즈니스를 만든다. 공동체경제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돈을 벌기 위해 판매를 하는 것이 아니라, 판매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또 다른 가치를 건네주는 것. 


아와지 설립 준비를 위해 아와지 섬에 이주한 사업운영 구성원이자 주식회사 SHIMATOWORKS(섬과 일) 대표인 도미타 유스케의 말이 그 태도를 대변하고 있었다. “일은 실패하더라도 실패하는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저에게 중요한 것입니다.”(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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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먹는 밥, 살아가는 힘 | 북카페 2015-09-13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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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저녁 같이 드실래요? 1

박시인 글,그림
예담 | 2015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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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지도 못하게 '커피 만드는 남자'가 된 것에는 그날, 그녀와, 커피를 함께 마셨던 기억도 한몫한다. 그 기억 속 풍경과 함께 묻어나는 커피향의 알싸함이 나를 그리 이끌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 그 시절, 우리가 함께 마셨던 커피(향미)는 내 마음의 방 하나를 영원히 전세냈다. 나는 그 방을 뺄 수가 없다.  


도희와 해경의 함께 밥 먹는 이야기인 《저녁 같이 드실래요?》는 그 방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함께 마시고 같이 먹는다는 것의 의미를 새삼 되새김질했다. 우리는 같이 먹고 마시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아갔고 서로를 알아갔다. 서로 연결된다는 감정적 교류가 오간 것도 그런 순간들을 통해서였다. 


혼밥(혼자 먹는 밥)이 쓸쓸했든, 헤어진 연인과 리추얼처럼 나눴던 함밥(함께 먹는 밥)에 대한 관성이었든, 도희와 해경에게도 같이 밥을 먹는 일상의 행위가 꽤나 깊은 함의를 품고 있음을 알고 있는 것 같다. 도희는 '그냥 밥 먹고 이야기만 나누는 사이'라고 표현했지만, 나중에는 달라질 것이다. 그 표현에 담긴 의미가 얼마나 깊을 수 있는지 깨닫게 되리라 생각한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건, 기본적인 신뢰를 깔고 있다는 것이다. 손쉽게 "밥 한 번 하자"고 말하는 것 같지만, 그것에는 분명 함의가 있다. 이미 신뢰를 하고 있는 상태이거나 신뢰를 가지고 관계를 맺고 싶은 혹은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지게 될 때에야 그 말은 나올 수 있다. 나도 그렇지만 대부분 사람은 아무에게나 '밥(식사) 한 번 하자'고 말하진 않는다.    


실은 '밥 한 끼'가 주는 신뢰의 공유는 오래된 전통이다. 건배를 하는 서양의 전통에서도 그것을 찾을 수 있다. 서양에서 건배는 술에 독을 타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태도였다. 또한 밥을 같이 먹는다는 건, 함께 한 사람의 삶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행위가 누군가에겐 나처럼,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 될지도 모를 일이 되기도 하며 느낌의 공동체를 만들기도 한다. 책은 그것을 초반부터 말하고 있다. 


맛있는 음식과 더불어

낯선 이들을 친근하게 

만들어주고 

이미 친했던 사이는

더 큰 유대감으로 엮어주는

그 30~40분가량의 

소소한 식사 시간들... 


도희는 그런 소소한 시간을 아주 좋아하는 여자다. 해경도 그런 소소한 시간에 얽힌 추억이 많은 남자다. 두 사람은 그렇게 같이 먹는 소소한 시간이 주는 즐거움을 알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인 것 같다. 단순하게 혼자 먹는 게 외롭고 쪽 팔려서 '같이 밥 먹는' 상대로 서로를 선택한 것 같진 않다. 


요즘 흔히 쓰이는 함께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행위를 뜻하는 '소셜다이닝'도 어원을 따지면 그렇다. 고대 그리스의 '심포지온(Symposion, 향연)'이 그 어원이다. 오늘날, 강연회로 인식되고 있는 심포지엄(심포지온)은 원래 함께 식사와 술을 나누며 이야기하는 문화를 지칭했었다. 그러니,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건 인류의 DNA에 박힌 오래된 전통이자 문화였던 것이다. 


일본의 만화나 영화, 책 등 다양한 작품을 보면서 감탄하는 것 중의 하나가 '같이 먹는' 것에 대한 묘사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인 영화 <카모메 식당>이나 만화《심야식당》도 그랬다. 화려하고 대단한 밥상이 아닌 편안한 마음으로 누군가와 밥상머리에서 담소를 나누고, 시간과 이야기를 공유한다는 것이 좋았다.  지금은 작고한 요네하라 마리는 《미식견문록》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아무튼 엄청난 먹보가 많은 우리 친지들은 맛있는 음식을 발견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먹이고 싶어하는 습성이 있다. 또 그것이 사람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이것을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여긴다. 좋은 음식을 만나면 함께 먹는 것. 미식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와 작지만 내가 품은 세계를 공유하고 상호 교류하는 섭생을 한다면 그 자체로 미식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 영화에서도 같이 먹는 것의 중요성을 잘 묘사하는 감독이라면 봉준호가 있다. <괴물>이나 <마더> 등에서 그것을 잘 보여줬다.


《저녁 같이 드실래요?》1권에서 음식과 얽힌 에피소드의 기억은 주로 해경의 것이었다. 다양성 측면에서 단연 도희를 압도했다. 도희가 3개월 전 헤어진 8년을 사귀었던 연인과의 기억밖에 없어서였는지는 몰라도. 나는 특히 [한 번의 이별, 두 명의 연인]이 기억에 남았다. 내게도 그런 약간은 비슷한 기억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도희는 비싼 핸드드립 커피까지 마시면서 이별의 순간을 맞이했다. 어떤 음식은 좋은 기억과 함께이지만 이별의 순간에 만찬을 즐기면서 헤어진다면 그때 먹은 음식은 어떻게 기억될까. 트라우마처럼 남게 되는 것일까. 카페에서 커피를 만들면서 헤어진 연인들을 본 적이 있다. 이별의 순간에 커피는 대부분 남아 있었다. 눈물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도희는 이후에 핸드드립 커피를 마셨는지 궁금해졌다. 


커피 한잔 할래요?  

밥 같이 먹을래요?


참 좋은 말이다. 같이 먹고 마신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생각해봤다. 나는 페이스북에 남들이 무엇을 먹었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뭘 그렇게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에 자신이 먹고 마시는 것을 올려대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맛도 향도 느낄 수가 없다. 


다만 나는 그 먹거리 사진 등에 어떤 이야기들과 사람과 사회를 연결시키는 힘이 있을 때는 눈을 초롱초롱 뜨게 된다. 밥이든 커피든 그것은 때론 누군가를 위로하고 다독이기도 한다. 함께 있는 사람 덕분이다. 나는 그 덕분에 삶을 재배치하고 좀 더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들었으니까. 무엇보다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다양한 기제가 먹거리를 단순한 끼니 이상으로 만든다. 그것까지 토핑처럼 가미할 수 있다면 《저녁 같이 드실래요?》 더 좋은 작품이 될 수 있겠지. 


이 작품이 단순하게 헤어진 연인들을 위로하려고 만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음식을 소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작가의 의도가 어떻든 이것을 읽고 보는 사람의 해석이 중요하겠지만, 나는 《저녁 같이 드실래요?》가 '함께 먹는 밥'을 생각하고 만들고 행동하게 만들면 좋겠다. 1편만 본 상태라 섣불리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흥미롭고 재밌게 만났다. 


다만 나는 웹툰으로 이 작품을 본 것이 아니기에 결론이나 진행과정은 알지 못하는 상태인데, 도희와 해경이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 빤한 길로 걸어가지 않으면 좋겠다. 두 사람의 '러브 모드'로 갈 것 같긴 한데,  내 욕심에는 '그냥 밥 먹고 이야기만 나누는 사이'로 진행되면서 다채로운 이야기를 길어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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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서점 협동조합, 우리도 한 번 해볼까! | 북카페 2015-08-31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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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같이 살자

송호창 저
문학동네 | 201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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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죽자' 대신 '같이 살자'고 말하고 행동한다면 헬조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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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카. 

미국 뉴욕 주의 작은 도시다. 시민운동가 10년, 인권변호사 10년을 정리하고 국회의원이 되기 전 송호창이 2년 동안 살았던 곳이다. 백수 송호창은 아내가 공부하러 간 사이, 낮에는 빨래를 널고 저녁엔 장을 보면서 이타카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다. 말하자면 마을 주민으로서 이집 기웃 저집 기웃거리면서 이방인이 이웃이 된 것이다. 


한국과 여러모로 달라서 흥미로운 지점이 많은 이 책에서 협동조합에 대한 이야기라고 빠지지 않았다. 마을공동체(지역사회)에서 협동조합을 한 경우인데, 동네서점이다. 버펄로 스트리트 서점. 이 동네서점이 협동조합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이 뭉클하다. 동네서점이 거의 고사하다시피 한 지금의 한국에서 이것은 미션 임파서블이다.


버팔로 스트리트 서점은 30년 이상 이타카의 교양과 정신문화를 함양하고 상징하던 마을의 지적놀이터였다. 동네 깊숙이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던 이 버펄로 스트리트 서점, 무너질 위기에 처한다. 여러 요인들이 복합된 것이지만 인근에 거대 프랜차이즈 서점이 생긴 것도 한 요인이었다. 


버팔로 스트리트 서점이 곧 없어질 것 같다는 소식이 주민들에게 퍼졌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한국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서점을 살리자는 운동이 펼쳐졌다. 그리고 나는 깜짝 놀랐다. 500명의 주민들이 3억 원을 모아 협동조합 형식으로 서점을 인수했다. 요즘 말로 하면 크라우드 펀딩으로 동네서점을 협동조합으로 살린 셈인데, 이 마을서점은 협동조합으로 다시 태어났다. 


주민들이 자신의 호주머니 쌈짓돈을 모아 자신들의 지적 놀이터를 계속 지키기로 한 것이다. 누구의 강요나 윽박도 아닌 자신들의 것을 자신들이 지키기로 한 것이다. 자본(프랜차이즈 대형서점)에 쉽게 투항하지 않기로 했다. 이것은 주민들의 자각과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다. 더구나 그들은 각자 쌈짓돈을 내놨다. 지적이다. 이 사람들. 지적놀이터를 지키는 지적 주민들. 멋있다~


그런 사례는 또 있었다. 지역 소비자와 생산자 공동의 협동조합인 그린스타(GreenStar). 이 협동조합은 1970년대부터 기반을 다졌는데, 주민들이 함께 협동조합을 결성했기에 가능했다. 그린스타는 주변 농장에서 나오는 안전한 곡물과 육류 등을 공급받으면서 다시 이를 주민들에게 제공한다. 생산과 소비가 매우 가깝다. 바람직한 협력 활동이다. 


몸 튼튼 마음 튼튼. 

백수 송호창이 만나고 경험한 이타카를 간접적으로 접한 나는 이 말을 자연스레 떠올렸다. 이타카 인민들은 신념과 관계로 소비한다. 대기업이나 거대 프랜차이즈의 주머니가 아닌 이웃의 살림살이를 불려주기 위해 그들은 소비할 곳을 스스로 적극 선택한다. 


이들의 협동(관계)이 어떤 정도인가하면 이들은 '블랙 프라이데이'(추수감사절 다음날로 초대형 할인 판매를 하는 날) 폭탄세일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이런 것이 지역 상인을 몰락시켜 언젠가 자신들에게 폭탄으로 돌아올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똑똑한 소비다. 지역 협동조합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송호창의 이타카 체류기를 서울의 어딘가에서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섞여 살기'의 열망이 마을공동체와 협동조합(사회적경제)을 통해 실현될 수 있을까. 이 책이 정답은 아니지만, 헬조선에서 더 이상 지옥불과 함께 살기 싫다면 이 책을 통해 좀 더 과감하게 상상하고 실천할 수 있다는 믿음을 키워갈 수도 있겠다. 꼭 동네서점이 아니더라도 이런 협동조합의 기적은 우리 사는 어딘가에서도 가능한 이야기면 좋겠다. 

 

우리는 흔히 '같이 죽자(너 죽고 나 죽자)'고 말한다. 그야말로 공멸이 심심찮게 일상의 대화에서도 흘러나오는 사회다. 경쟁과 비교 때문이다. 내가 안 되면 너도 안 돼야 한다는, 사촌이 땅 사면 이상하게 배가 아파야 하는 사회. 송호창도 '같이 죽자'가 더 이상 싫었던 게지. 같이 살자. 참 좋은 말이다. 그리고 일상에서도 그런 말이 자연스레 흘러나오고 행동도 그러하면 좋겠다. 입에 담을 수록 참 좋은 말이다. 같이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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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헬조선으로 불릴 수밖에 없는 이유 | 북카페 2015-08-30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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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대한민국 부모

이승욱,신희경,김은산 공저
문학동네 | 201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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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꼭 필요한 선동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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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헬조선, 불반도라고 부르는 것이 이젠 어색하지 않다. 일자리를 갖지 못하는 등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아야하는 청년 문제만으로 이곳을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다. 사회, 경제, 교육 등 총체적으로 문제가 드러나고 있으나 이것을 해결할 정치도, 제도도 없으며, 뭣보다 권력을 가진 이들의 의지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교육이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문제적 교육은 갈수록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교육열이라고 일컬어지는 분별없는 열정은 부모는 물론 아이들까지 무간지옥에서 허덕이도록 만들 뿐이다. 


단적으로 볼 수 있는 통계만 봐도 그렇다. 한해 평균 158명의 청소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나라, 청소년 자살 증가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 등 불명예는 꼬리를 문다. 청소년 전체 사망 중 자살 사망 비율이 2000년 14%에서 2009년 28%로 10년 새 2배나 늘었다.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이 어떤 곳인지를 보여주는 이 통계. 그렇다면 아이들을 지옥으로 내모는 사람들은 누굴까.   


《대한민국 부모》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준다. 다른 누구도 아니다. 부모다. 부모에게도 그러니, 이곳은 지옥이다. 우리는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니 엄친딸(엄마 친구 딸)이니, 우스개처럼 말한다. 이런 미친 단어가 있나. 내 자식의 오리지널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아이에 빗대 아이를 다그치는 이상한 풍토가 이 땅엔 있다. 


그 저변에는 교육열이라는 이름의 불안열이 있다. 불안을 동력으로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극한으로 치닫는다. 어떻게 살아야할지 중심이 없는 부모는 그저 아이를 다그치기만 한다. 옆집 엄마의 한 마디에 대책 없이 흔들린다. 내 스스로 만든 지옥에 아이까지 끌어들이는 형국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 외에 다른 가치는 없다. 아이에게 전파해 줄 수 있는 가치가 없으니 물려줄 것이라곤 내 마음의 지옥뿐이다. 즉, ‘함께 살자’가 아닌 ‘함께 죽자’의 구조. 자신의 불안을 아이에까지 전이하는 나쁜 구조. 


나는 자식도 없고, 결혼도 않았지만, 《대한민국 부모》는 지금 이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야할 필독서다. 우리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내게 자식이 없다고 남의 일이 아니다. 내 조카의 일이며, 그 부모는 내 지인들이다. 주변의 부모인 친구나 선후배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이 스스로 만든 감옥을 엿본다. 자신의 아이를 다른 아이와 비교함으로써 스스로 만든 마음의 감옥에서 수형생활을 한다. 자율적으로 들어간 그 틀에서 그들은 나올 생각을 않는다. 아니 못하는 것 같다. 내 아이를 믿지 못하고, 남들보다 뒤처질 거라는 무한 불안만이 똬리를 틀고 있다. 그것을 위해 자신이 할 일은 돈을 벌어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것이라고 철썩 같이 믿는다. 


이 견고한 논리에 맥없이 투항한 이유를 저자들은 심리 상담 현장에서 길어 올린 생생한 예를 통해 설명해준다. 정서적으로 애착관계를 가진 사람과 분리된다고 생각할 때 느끼는 감정이 불안이다. 아이와 엄마의 관계에서 분리가 발생할 때, 아이뿐 아니라 엄마도 불안해한다. 정서적으로 불안한 부모가 아이와의 분리를 받아들이기 힘든 건 자명하다. 부모는 아이를 끝까지 지켜야한다는 명목으로 ‘헬리콥터 부모’가 된다. 


그것은 곧 불안사회에 대한 심리학적 근거의 제시다. 아이보다 부모의 불안이 훨씬 더 크다. 아이의 불안은 부모의 불안이 전이된 것이다. 즉, 부모의 불안일 뿐, 아이의 불안은 아니었다. 그러나 부모의 불안을 보면서 자란 아이도 불안해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부모는 아이를 다그칠 뿐이다. 


불안 때문에 두뇌 회로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일까. 문제는 시스템이다. 잘못된 시스템 때문에 부모와 아이 모두 지옥도에 빠졌는데, 그 지옥도에서도 아이를 다그치기만 한다. 잘못된 시스템을 고치려고 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우리는 몇해 전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들었다. 고3 남학생이 성적을 강요하는 엄마를 살해하고 8개월간 집에 방치해 둔 사건. 아이의 패륜을 탓하기 전에 무엇이 엄마를 살해하도록 몰아갔는지 그 근원, 우리는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을까. 글쎄. 이 책을 보면서 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부모 공부’가 아닐까 생각했다. 부모가 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누군가(스스로를 포함해서!)를 보호해야 함을 감안하면 공부가 필요하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들이 '나(우리)는 보호받고 있구나, 나(우리)는 안전하구나' '내(우리)가 성장해도 되는 곳이구나'라는 생각을 들게 해야 한다. 그러나 부모든 어른이든 꼰대가 됐다. 요즘 아이들, 패기가 없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아이들을 더 내몰기만 한다. 


이런 어른들의 생각은 잘못됐다. 부모가 그런 환경을 못 만들어줬다. 윽박만 지른다고 아이들이 저절로 그렇게 될 리가 없다. 부모들이 베이스캠프가 먼저 돼 줘야 한다. 베이스캠프가 불안하니까, 아이들은 베이스캠프에 묶여서 못 떠난다. 


이 책은 충격적인 것만 예만 모아놓은 게 아니다. 부모 딴에는 모든 희생을 치러서 의사를 만들어 놨더니 “당신의 아들로 산 것은 지옥이었습니다. 저를 다시는 찾지 마십시오”라는 메시지만 남기고 연락이 끊긴 아들은 지금 가장 보통의 아들일 수 있다. 자기 삶도 서사도 없는 부모, 부부간의 관계도 깨진 채 껍데기만 남은 가정은 우리 대부분의 가정일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자신의 삶을 꾸릴까. 부모에게 대놓고 ‘찌질이’ ‘미친년’이라고 부르는 비정상이 정상처럼 흘러가는 세상. 과연, 대한민국 부모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슬픈 족속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부모는 어떠해야 할까. 이 책이 건네는 진단서는 꽤나 약발이 있어 보인다. 포기. 인간의 성찰과 성장은 포기하는 순간부터 일어날 수 있다. 포기의 다른 말은 곧 수용이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오리지널을 인정하면서 남의 아이와 비교하지 않기. 오롯이 내 아이를 내 아이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부모도 아이도 지옥도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대한민국 부모》은 선동적이다. 이 선동은 먹혀야 한다. 그래야 부모도 아이도 산다. 그것이 헬조선에서 벗어나게끔 하는 일이다. 이 책의 문제 해결 진단은 그런 면에서 꽤나 유효해 뵌다. 기존 사고의 틀에서는 그것을 해결할 수 없다.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없애는 것입니다. 저희가 제안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우려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는 비현실적이 되어야 합니다. 문제를 없애고 새로운 현실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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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반짝반짝 빛나는 | 북카페 2015-08-19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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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모든 요일의 기록

김민철 저
북라이프 | 2015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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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상이 아주 조금 더 풍성해지고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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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관일 것이다. 

한 중년의 남자가 버스 안에서 책 보다가 눈물을 흘린다면?!

누군가는 측은하게, 또 누군가는 신기하게, 다른 누군가는 별꼴이라는 듯.

혹시 감동적인 휴머니즘 가득하거나 지적 결핍을 채우는 책인가보다 생각해주는 사람도 드물게 있겠지만.


뜬금없지만, 

선글라스는 단순히 태양을 피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눈물이 그렁거릴 때 이를 숨기기에도 제격이다.


간혹, 어떤 책은 눈물을 그렁거리게 만든다.

이 책도 그랬다. 그날따라 빡빡한 일정과 험난한 동선을 거쳐 사무실로 돌아가던 버스 안. 아직은 따가운 햇살이 남아 있던 여름날의 오후. 나는 느닷없이 울컥했다.

뭐 감동 충만하거나 극적이거나 이야기를 만나서가 아니었다. 

그냥 일상의 덤덤한 기록인데, 감정샘이 흘러넘쳤다. 


저자의 리스본의 단골집, 마르셀리노의 음악과 공연이 내 눈앞에도 펼쳐졌고, 

음악으로 충만하고 위로를 받는 순간의 감정이, 

때론 세상을 제멋대로 변주하는 음악의 힘이 내 몸을 휘감았다.


그런 풍경이 나의 어떤 추억속에도 있었기에, 

나는 그만 책이 그려낸 (내 안의) 풍경에 풍덩 빠지고야 말았다.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눈물샘이 물장구를 쳤다. 휘발된 줄 알았던 그때의 감정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기 때문일 것이다. 참 별스럽지도 않은 일상의 세세한 풍경들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음을 새삼 확인하는 순간. 좋았다. 눈물이 나쁜 건 아니지만, 선글라스가 새삼 고마웠다. 나의 눈은 마음 놓고 선글라스 뒤에서 우물샘을 만들었다. 


저자가 벽 이야기를 건넬 때는, 내가 벽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없음에도,

그 여자의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거짓말처럼,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고 했던 저자처럼 나도 왠지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웠졌다. 지금도 모르겠다. 벽 이야기와 사진이 뭐라고!!!!! 

 

8월 15일의 전과 후는 확연히 다르다. 15일 이후의 저녁이면, 앞선 날들의 밤의 열기와는 사뭇 다른 바람이 볼을 스친다. 그 바람은 마음까지 파고든다. 그게 자연의 이치라는 것을 확인시키듯. 그리고 이 책도 다르다. 더 좋다 나쁘다 이런 것이 아니라, 다르다. 그래서 다른 책을 읽을 때 느끼는 바람과 달랐다.


차곡차곡 쌓인 일상을 자신만의 삶의 태도로 가져간 기록. 

세상에 남을 대단한 업적도 아니고, 세상을 밝게 만든 훌륭한 선행도 아니다. 그저 일상.

자신의 형편 없는 기억력을 커밍아웃하면서 시작했던 저자의 이야기는 읽고 듣고 찍고 배우고 쓰는 모든 '기록저장소'를 열람하는 구조로 돼 있다. 이 모든 기록이 카피라이터인 저자의 커리어나 직업적 성과를 위해 착출되거나 희생된 것이 아니었다. 그 자체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삶에 스며든 것. 


나는 그게 좋았다. 선글라스 뒤로 숨은 눈물도 그런 것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프랑스와 지중해를 꿈꾸던 김민철이 정신의 지중해에 도착했다는 것.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내일의 태양을 기대하지 않는 것. 지금의 이 태양을 남김없이 사는 것. 

내가 사는 이곳이 행복하지 않다면 다른 곳이라고 오죽하랴. 

나도 헬조선을 떠나고 싶다고 부르짖지만 실은 안다. 짧은 찰나의 행복이라도 그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안다면, 어디서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여기가 무조건 아니라고 떠난다손, 다른 곳에서라고 행복의 급행열차 티켓을 손에 넣을 수 없다는 것을. 


그렇다. 나는 내가 일상이라는 계절을 살아가고 있음을 안다.

저자가 말했듯, 좋아하는 사람과의 친밀한 소통보다 의무적으로 만나야만 하는 사람들과의 대화에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보고 싶은 책보다는 봐야만 하는 서류에 더 많은 시간이 할당된다는 것을. 그것이 또한 일상임을. 


언제부터인가, 그 일상을 쳇바퀴니 뭐니 폄하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매일매일 엇비슷한 것 같아도 나는 그것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아채버렸다. 

대단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 일상이 모이고 쌓여 내 삶을 만든다는 것을 눈치챘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그러면서 잘 되지 않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조금씩 잘 되고 있다고 믿고 싶은 것인데, 

나는 잘 늙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저자가 말하듯 내 토양을 잘 가꿔야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이 내 삶에 도움이 되리라는 보장 따위는 없다. 좋은 토양이 되는데 비료가 됐는지, 그럴 가능성이라도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가 없다. 나는 이 책에 대해 쓰고 있고, 그것은 나에 대해 내 삶에 대해 쓰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막연하게, 듬성듬성, 띄엄띄엄 나의 토양은 계속 움틀거리고 꼼지락거릴 것이다. 씨앗이 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필요의 씨앗이 뿌려지면 그 토양에서 건강한 새싹이 자라길 빌 뿐이다. 


책을 보고 나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쓰는 사람' 그리고 '써야만 하는 사람'임을 새삼 알았다.

내가 업으로 삼고 있는 커피도,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하는 모든 활동들도, 그밖에 내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시시콜콜 만나고 접하는 모든 것들도, 나는 써야만 정리가 되고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보고 듣고 읽고 만나고 배우고 맡고 느끼고 경험하는 그 모든 것을 나는 씀으로써 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들이 모두 좋은 것만은 아니었지만, 나쁘면 나쁜 대로 그게 내 삶이고 토양이니까.  


이 책에는 저자 김민철이 살아온 시간과 만남과 선택과 마음이 새겨져 있다. 모든 것은 아닐지라도 김민철의 어떤 얼굴이자, 김민철의 지금까지의 어떤 인생을 담고 있다. 나는 김민철을 알지 못하지만, 책을 통해서 그의 어떤 일상과 기록을 만나서 참 좋았다. 내 일상이 좀 더 반짝반짝 빛나게 해줬다고나 할까. 그래서 고맙다.  


그의 단골집, 마르셀리노. 

가본 적도 없고, 가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지도 못하지만, 

문득 그곳에 인사를 하고 싶어 졌다. 

 

안녕, 내일 또 봐! 오브리가도.


그건 어쩌면 내 일상에게 건네는 인사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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