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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저/이재룡 역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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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북클러버 신청으로 독서 모임 멤버끼리 선정한 책. 오랜만에 의무적으로 읽은 책인데 의무로 하길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았으면 완독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을 거 같다.

스토리는 잘 읽히지만 생각보다 한 장 한 장 넘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캐나다에서 읽고 있는 중이라 이북으로 구매했어서 실두께를 몰랐는데, 내 단말기 기준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인 것을 발견해서 어쩐지 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느낌이기도 했다. 일단 두꺼운 두께의 책에는 망설임이 필연적으로 따라오니까. 작자가 말하고자 하는 개념과 관념들이 잘 와 닿지 않아서인지, 혹은 번역 소설의 어쩔 수 없는 단 점인 번역투의 문체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한 문장 문장마다 생각해 볼 만한 것들은 꽤 많은 것 같다.

 

1984년 발표된 소설로, 모든 것을 잘라내고 쉽게 말한다면 사랑소설이다. 하지만 사랑을 바라보는 철학적인 담론들을 위주로 전개해나가기 때문에 통속적 연애 소설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 당시에는 파격적이라고 하는, 시간의 흐름을 거스른 서술 형식 덕에 니체의 영원한 회귀와 대칭을 이룬다고 한다. 또한 소설의 형식적 측면에서 포스트 모더니즘 기법을 실험한 선구적 작품으로 평가된다고 한다. 현대작품에서는 이렇게 순차적, 서사적 구성을 따르지 않은 작품들도 많기에 내게는 이런 기법이 그렇게 독특하게 다가오진 않았으나, 그 당시에는 파격적인 시도였는가보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 반하는 탈현대 사상으로, 전통 건축물에서 모티브를 끌어온 현대 건축물이나 내외 공간을 뒤집은 해체주의 건축물, 장식적이거나 키치 스러운 디자인, 플롯을 뒤집은 소설이나 영화 등으로 대표된다. 플롯과 시간적 흐름을 파괴한 구성덕에 이 소설이 포스트 모더니즘 기법의 선구적 작품으로 평가가 되는 것 같다. 상징과 의미가 많은 고전인만큼 철학적 비유가 많아 매끄럽게 읽히기 어려운 와중, 꿈과 현실, 현재와 미래를 오가고 주인공의 시점도 계속 바뀌는 구성이 더 해져 책의 진도가 더더욱 더디게 나갔던 거 같다.

 

네 명의 대조적인 주인공이 등장한다. 끊임없이 다른 여자를 만나며 정착하지 않는 가벼운 삶을 살아 온 토마시와 그에게 찾아와 운명적 사랑을 믿으며 그를 정착하게 한 테레사,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비나와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으나 사비나에게 빠져 그 모든 안정을 스스로 깨고 나선 프란츠. 그들은 역설적이고 모순적이게 가벼움과 무거움을 각각 상징하는 것 처럼 보인다. 사랑의 책임과 자유, 영원한 사랑과 순간적인 사랑 등 주인공들의 성격과 관념으로 대표되는 그들은 역설적이고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들의 이런 대조적인 모습은 내가 생각하기에 밀란 쿤데라의 하나의 효과적 장치라고 생각이 드는데, 여러 여자와 사랑을 나누고 각기 다른 애정을 채우고 싶어하는 가벼운 토마시와 한 사람에게 집착적으로 사랑을 갈구하고 머무르려 하는 테레사를 보면 그들의 극단적인 모습에서 누구라도 무게를 쉽게 파악 할 수 있으리라 본다. 어찌보면 사랑의 한 형태와도 같지만 극단적 대조를 통해 그들의 다름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고, 우리 삶에서 없을 것 같지만 어딘가 있을법한 일들이라 공감도 잘 가는 거 같았다.

 

소련군이 체코를 장악했던 시기의 이야기라 기본적으로 짙게 깔려있는 시대적 배경 덕에 소설 자체의 분위기는 꽤 어둡다. 그 부분과 장면들을 매 번 자세하게 묘사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시대적 배경들이 등장인물들의 갈등과 고뇌를 더욱 고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 처럼 보인다. 주인공들은 계속 갈등하며 이동하고, 움직인다.

 

주인공들이 하나씩 가지고 있는 성질인 '가벼움'과 '무거움'은 키치와 더불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개념 중 하나로, 비유되는 모든 것들에 이 상징이 심어져 있다. 소설 속 등장하는 수 많은 상징들과 매체들은 어떤 형태로든 무게가 있다. 어떤 것은 가볍고, 또 어떤 것은 무겁게. 나는 결론적으로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인생 무상'과 '인생의 덧없음'을 보여주는 거 같다고 생각했는데, 어떠한 가벼운 사랑 혹은 무거운 사랑이든 받아들이는 사람의 만족에 달린 것이고 그 모든 것은 결국 덧 없다는 것을 대부분의 챕터에서 보여주려고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모두를 만족시킬만한 무한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사람마다 원하는 사랑의 형태는 다르나 그 형태의 만족은 개개인에게 달렸다는 것을 얘기하고자 하는 거 같았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지금까지는 배반의 순간들이 그녀를 들뜨게 했고, 그녀 앞에 새로운 길을 열어 주고, 그 끝에는 여전히 또 다른 배반의 모험이 펼쳐지는 즐거움을 그녀의 가슴에 가득 채워 주곤 했다. 그러나 여행이 끝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부모, 남편, 사랑, 조국까지 배반할 수 있지만 더 이상 부모도 남편도 사랑도 조국도 없을 때 배반할 만한 그 무엇이 남아있을까?

사비나는 그녀를 둘러싼 공허를 느꼈다. 그리고 바로 이 공허가 그녀가 벌인 모든 배신의 목표였다면?


 

독서 모임에서 처음 이 책을 선택했을 때 번역 된 다른 국가의 표지에 있는'모자'의 그림에 의문을 가졌었는데, 이 모자 또한 하나의 상징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비나의 모티프인 중산모자. 이 모티프는 교환되기도 하고 혹은 각자 다른 의미를 갖기도 한다. 책 표지나 책에서 나오는 단어들, '거울'이나 '모자', '회귀'등 다양한 상징들을 발견하며 이 들의 성질을 구분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나의 단어가 그 자체가 아닌 여러 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건, 상당히 어렵지만 재미있는 일이다. 그래서 이 책은 어쩐지 두 번 이상은 읽어야 할 거 같다. 이게 대체 뭔 소리지..? 싶은 부분들도 책을 다 읽고 다시 읽어보면 아, 작자가 그녀의 허무함-혹은 가벼움-을 말하고자 하는 거였구나! 라고 느낄 수 있었다. 두 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 분량이지만, 서평을 쓰려고 다시 앞부분을 뒤적이는 것 만으로도 이해도가 달라졌다는 게 느껴졌다.

 

강의나 설명이 필요한 책이라는 건 어찌보면 참 친절하지 않은 책이다. 작자가 아무리 심오하고 깊은 생각을 한다 하더라도 독자가 독자의 수준과는 관계없이 작자의 의도를 전혀 읽어내지 못한다면 그건 작자의 표현력이 너무 뛰어나거나, 혹은 독자와의 핀트가 어긋난 거 일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참 친절하지 못하다. 꿈이어도 꿈이라고 말해주지 않고, 갑작스레 전지적 시점과 주인공 시점이 교차되는 둥 충분하지 않은 설명과 구성을 철학적 문장들로 불편하게 배치해놨다. 그러나 그렇기에 독자들은 작자의 상징과 생각을 파악하며 토론을 할 수 있는 거고, 다양한 각도에서의 해석을 듣고 보며 본인의 시각을 넓혀갈 수 있는 거라 생각한다. 불편하고 불친절한 책이었지만, 생각해볼 여지를 잔뜩 안겨주는 만큼 보람 있는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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