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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는다는 것. | 롤러의 리뷰 2021-05-23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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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일러스트 파이 이야기

얀 마텔 저/토미슬라프 토르야나크 그림/공경희 역
작가정신 | 2017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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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켜기 싫어 모바일로 리뷰 적다가 저장을 하지 않아 다 쓴 리뷰를 날려버렸다. 스트레스가 머리 끝까지 솟아 오르면서, 어째서 이 시스템은 임시로 저장도 안 해주는 것인지 편집기 탓을 했다. 리뷰 안 쓰고 말겠다고 핸폰을 집어던졌으나 다시 들었다. ‘살아남는다는 것’ 내 리뷰의 주제가 그것이었으니 나도 파이처럼 기필코 살아남기 위해서....라고 말하면 웃기지만 오기가 생겨서.

한번 읽고 영화로도 본 책이다. 예스북클럽 이북으로 읽으려다 일러스트 파이이야기가 종이책으로 있어 이 책으로 읽었다.

이 이야기는 새로운 나라에서의 삶을 기대하며 떠난 길에 가족 모두를 잃은 한 아이의 생존에 대한 이야기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소설에서 파이는 여러 번 살아남는다. ‘피싱 파텔’이 될 뻔하다가 기지를 발휘해 ‘삼!점!일!사!’ 파이라는 이름으로 살게 되고, 침몰하는 배에서 구명보트로 던져져 살아남는다. 그러나 구명 보트에서 하이에나의 먹이가 될 뻔했으나 얼룩말과 오랑우탄 덕분에 살아남고, 하이에나가 벵골호랑이 리처드 파커에게 잡아먹히자 이젠 호랑이에게 물려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한다.

그런 난감한 상황에 봉착했을 때 도움이 되는 것은 이전에 경험하고 듣고 본 지식들이다. 그때 파이에게 떠오른 것은 무서운 호랑이와는 서열을 나누는 것이 우선이라는 아버지의 말이었다. 동물의 세계는 그러했다. 몇 번의 대치 끝에 우위에 오른 것은 그걸 파악하고 있던 파이였다. 파이는 리처드 파커를 길들일 줄 알았다. 그후로 파이와 호랑이는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된다. 이후 일어나는 폭풍우와 식충의 섬에서도 함께 살아남는다.

북클럽 토론의 주제 중에 마침내 육지에 도착했을 때 파이의 안타까움은 뒤로 한 채 고개 한번 돌리지 않고 떠나버린 리처드 파커의 태도에 대한 의견들이 있었다.리처드 파커가 그럴 줄은 몰랐다는 것인데, 하긴 그 긴 여정동안 함께한 사이였는데 그렇게 가버리다니 파이로서는 리처드 파커에게 몹시 서운 했을 것이다. 하지만 동물은 동물일 뿐. 인간과의 우정이라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면 이 소설은 판타지가 되고 말았을 거다.

이 소설의 백미는 마지막 또 다른 이야기다. 인간의 이야기. 어떤 결말이 마음에 들었는가? 하는 것도 우리의 토론 중 하나였는데, 대부분 동물의 결말이었다. 인간은... 끔찍했으니까. 동종이어서 그런 걸까? 근데 동물은 그래도 되고, 인간은 그러면 안 되는 건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지만 그나마 동물의 이야기라서 왠지 아름다운 것도 같은 기분.

멋진 소설이었다. 다시 읽어도 좋은 소설이 진짜 좋은 소설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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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같지 않은 소설 | 롤러의 리뷰 2021-04-23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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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마르타의 일

박서련 저
한겨레출판 | 2019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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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련 작가의 첫번째 책인 <체공녀 강주룡>을 인상깊게 읽었다. 술술 넘어가는 문장과 역사 속에 존재했으나 알려지지 않은 한 여성을 밖으로 꺼내준 작가. 난 단번에 그의 애독자가 되었다. 두번째 책인 <더 셜리 클럽>이 그랬고, 이번 책인 <마르타의 일>도 좋았다. 세번째로 읽었던 <호르몬이 그랬어>만 조금 달랐다. 어? 내가 읽은 그 박서련 맞아? 단편이라 그런가? 했는데, <호르몬이 그랬어>의 작가의 말에서 '조금 모호해도 아름다운 문장을 쓰고 싶었고 감히 아무나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짓고 싶었'던 때의 글이라는 걸 알고는 다행이다 싶었다. '지금은 정확한 문장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며 누구에게나 공감의 여지가 있는 이야기를 찾아다닌다'고 하니 안심. 내 취향은 장편소설의 문체와 스토리이란 걸 이번 책 <마르타의 일>을 읽고도 깨달았다.

 

영화 한 편 본 느낌이다. 낯선 듯 낯익은 스토리지만 처음부터 몰입하게 만든다. 어느 부분에 가서는 결말을 상상할 수 있었지만, 과정이 추리 소설 못지 않게 치밀했다. 

 

봉사녀로 불리는 sns 셀럽 동생을 둔 수아. 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현타가 오기도 전에 낯선 이로부터 자살이 아니라는 문자를 받는다. 이후 의심스러운 정황이 발견되면서 수아는 그 비밀을 캐기 시작한다. 사이가 좋은 자매라 해도 각자의 삶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더 많을 것인데 언니인 수아는 경아를 잘 몰랐다. 그 마음이 수아를 죄책감으로 몰아갔을 것이다. 집에서는 경아로 불리고 자랐으나 리아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하고 봉사녀 명칭(!)을 받으며 셀럽이 된 리아의 sns로 보여지는 삶에는 죽음의 그림자는커녕 불행의 그늘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언제나 맑고 밝게 지내는 동생에게 오히려 질투가 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알고 보면 경아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 서로 경쟁하며 살아온 자매임에도 경아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던 걸  알게 된 언니 수아의 마음은 찢어졌을 거다. 조금만 더 경아에게 관심을 가졌다면, 그랬다면.....더군다나 그 과정을 좇아가면 갈수록 드러나는 일들에 분노하지 않을 언니가 어디 있을까. 가능했다면 나라도 똑같이 했을 것 같다(-.-)

 

사람들은 소통을 위해 sns를 하고 나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정작 sns에서의 소통은 이루어지기가 힘들다. 배설하듯 내뱉기만 하고 상대의 말은 귀담아듣지 않는 일이 태반이다., 설령 소통이 된다 하더라도 나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순간, 진실이든 아니든 필요없다. 공격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공격 당해 삶을 파괴당하거나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하면 공포스럽다. 

 

책을 덮으며 여성의 삶은 왜 이렇게 고달픈 걸까? 언제쯤 나아질까? 나아지기나 할 수 있을까? 의문만 던졌다. 소설이니까, 차라리 소설 같은 느낌이었다면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넘어갔을 텐데, 이 소설은 소설이라 말할 수가 없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일어나는 일이고 일어났던 일인 것만 같으니까. 다만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 그래서일까? 마지막 문장이 주는 궁금증보다는 이후의 일은 알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그로 인해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렵고 무서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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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오래전에, 백 가지의 방식으로 정해져 있던 운명 | 롤러의 리뷰 2021-03-29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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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키르케

매들린 밀러 저/이은선 역
이봄 |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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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오디세우스이다. 로마 이름으로는 율리시즈라고도 부르는 오디세우스(그리스식 이름)를 처음 본 것은 아주 어릴 때 본 영화 <율리시즈>였다. 커크 더글라스라는 배우가 나왔던 그 영화는 주말의 명화였는지, 명절의 특선영화였는지 모르겠다. 그 당시로는 특수 분장을 한 괴물들과 싸우는 주인공 율리시즈의 모험이 신기하면서도 재미있어서 푹 빠져본 기억이 난다. 그래서 지금도 율리시즈를 떠올리면 커크 더글라스의 얼굴이 떠오른다.

오랜만에 신화를 읽었다. 몇 년 전에 페넬로페의 이야기를 각색한 마거릿 애트우드의 <페넬로피아드>를 그동안 읽은 신화와는 다른 해석으로 재미 있게 읽은 기억이 나는데 이번에 읽은 <키르케>도 그랬다. 여성 작가가 본 신화 속 여성 인물에 대한 관점이 그동안 보여준 힘 없고 순종적인 약자의 모습이던 신화 속 이야기와는 다르게 주체적인 인물로 나와 흥미롭고 새로웠다. 

 

키르케. 티탄 신족에서 나와 신들의 우두머리가 된 올림푸스 신들과 공존하며 살고 있는 티탄 신족의 가장 강력한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딸. 이 정도면 엄친딸(!)인 것처럼 보이지만 키르케는 그렇지 않았다. 뭔가 모자란 듯한 딸이고 아비인 헬리오스의 마음에는 들지 않는, 눈에도 띄지 않는 그저그런 여식이었을 뿐이다. 그런 키르케가 어부였던 글라우코스를 좋아하게 된다. 신도 아닌 인간 어부와의 결혼을 아버지 헬리오스가 허락하지 않을 것을 알게 된 키르케는 외할머니 도움으로 마법의 약초가 피는 곳에서 글라우코스를 재워 신으로 만든다. 그를 신으로 만들면 당연히 청혼을 받으리라 착각했던 키르케는 글라우코스가 그녀가 아닌 스킬라를 선택하자 화(!)가 난다. (누가 자기를 신으로 만들었는데 배은망덕도 유분수지!...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 놈은 그 놈이고,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글라우코스와 결혼을 하려는 스킬라도 밉다. 결국 키르케는 질투에 눈이 멀어 마법을 부릴 줄 아는 지도 정확하게 모른 채 마법을 부려 스킬라를 세상 끔찍한 끔찍한 괴물로 만들어버린다. 그 죄로 키르케는 제우스와 아버지 헬리오스에 의해 아이아이에 섬에 영원히 갇히게 된다. 하지만 스킬라를 괴물로 바꿔버리면서 키르케는 자신이 마법을 부리는 여신이라는 걸 알게 되고 아이아이에 섬에서 약초를 연구하고 마법을 배우며 산다. 이제 그 섬은 마녀, 키르케의 섬이 된다.

사실은 여기까지 읽는 동안도 오디세우스가 나타날 것이라고는 몰랐다. 한데 그 섬에 오디세우스가 등장하면서 문득 떠오르던 장면. 그 옛날의 커크 더글라스. 아, 인육을 먹는 거인 족을 만나고, 폴리페모스의 눈을 찌르고, 칼립소에게 감금당하는 등 수많은 모험이 나오는 영웅 오디세우스의 영화 속에서 스쳐지나가듯 나오는 키르케. 그 마법의 섬에 살던 마녀가 키르케였던 것. 

 

영화는 영웅 오디세우스의 시점으로 그리다 보니 키르케는 오디세우스를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나쁜 마녀였다. 하지만 매들린 밀러는 그 보잘 것 없는(!) 하급 여신의 키르케를 주인공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써냈다. 그래서 마녀 키르케가 되는 순간부터 이야기는 재미 있어진다. 하지만 육아라니! 여신도 육아에 이렇게 힘들어하다니!(-.-)  매들린 밀러의 <키르케>는 내가 그동안 읽은 신화 이야기 중에서 가장 쉽고 흥미로웠다.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이 아까울 정도였으니까. 또 매들린 밀러가 중간중간 들려주는 다른 신들의 에피소드나 영웅들의 이야기는 이 책을 덮는 순간 다른 신화 책을 찾게 만들었다. 한동안 신화를 읽지 않았는데 신화를 다른 관점으로 본 책들이 궁금해진 것. 아, 또 있다. 매들린 밀러의 문체! 난 그녀의 서사에도 놀랐지만 문장들에 더 놀랐다. 휙휙 넘어가는 스토리에 정신이 빠졌음에도 밑줄긋기 바빴던 책이었음을. 그 문장을 적지 못해 아쉽지만.....(나중에 정리해야지)

 

이제 <아킬레우스>를 읽으려고 한다. 순서가 바뀌긴 했지만  <키르케>에도 소문으로 등장했던 '아킬레우스'에 관한 남성 서사를 매들린 밀러가 어떻게 그려냈을지 궁금해지고 말았다. 마치 관종(!)의 여신이라도 된 마냥, 영웅들의 우정과 사랑을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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