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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빈 방에 돌아와 잠시 몸을 누이다! ㅎㅎ | 낭만쭈꾸미일상엿보기 2015-12-29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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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2개월 만에 회사에 복귀하고, 새로운 업무를 시작하기까지 며칠의 여유가 주어졌다.

 

그동안 시간적/심적 여유가 없어 돌아보지 못했던 곳들을 여기저기 살피다보니

결국 몇년 째 방치되어 있던 이곳에까지 발길이 와닿았다.

 

너무 오랜시간이 흘러 [근황]이랍시고 무언가를 끄적이기도 애매하지만

저 아래 마지막 글을 남기고 2년 쯤 뒤에 다시 예스로 복귀했고 몇몇 팀을 거쳤다.

 

그 사이 좋은 반려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예쁜 아이도 낳았다.

 

예전의 내가 궁금해 쓰윽~ 훑어내린 몇 개의 글들을 보니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거 같은데도 그게 벌써 5~6년 전이고,

새삼 하나하나 꼽아보니 주변의 참 많은 것들이 달라져있다.

 

블로그의 댓글로나마 연락을 하던 친구 중에 연이 끊어진 사람이 있는가하면

다시 읽어내리기에 부끄러운 끄적거림도 적지 않고(그 몇 년의 시간동안 내가 변한 거겠지),

이제 나의 일상은 이곳이 아닌 페이스북에 기록되고 있지만..

 

그래도 몇 년이 지나 우연히 만나게 된 나의 과거가 참 반갑다.

 

너무 오랜기간 비워두어 방에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지만,

잠시나마 가만히 몸을 누이고 다시 한 번 호흡을 가다듬어 본다.

 

씁씁후후, 야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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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좋아서 하는 밴드 - 옥탑방에서 | 낭만쭈꾸미일상엿보기 2010-06-29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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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지쳐있던 나에게 정말 큰 힘이 되었던 노래

가만히 귀 기울여 듣다가 눈물이 날 뻔 했다. ^^;;

 

밴드 이름마저 [좋아서 하는 밴드]라니..

이건 뭐 정말 좋아하지 않을 수 없잖아! ㅎㅎ

 

 

"나는 노래를 부르고 사랑을 나누고

 수많은 고민들로 힘들어도 하다가
 결국 또 웃으며 다시 꿈을 꾸었네

 여기 조그만 옥탑방에서"

 

 

음색도 분위기도 단연 최고!

 

결국 또 웃으며 다시 꿈꾸어야 하는거다. ^^

 

 

 

 

 

[가사전문]

 

# 1

 
다음으로 이사 올 사람에게 나는 말해주고 싶었지
고장난듯한 골드스타 세탁기가 아직 얼마나 잘 돌아가는지

 

무더운 여름날 평상을 만드느라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 평상 위에서 별을 보며 먹는 고기가 참 얼마나 맛있는지

 

하지만 이 집은 이제 허물어져 누구도 이사 올 수가 없네
마음속에 모아 놓은 많은 이야기들을 나는 누구에게 전해야 하나

 

나는 노래를 부르고 사랑을 나누고 수많은 고민들로 힘들어도 하다가
결국 또 웃으며 다시 꿈을 꾸었네 여기 조그만 옥탑방에서

 

 

# 2

 

비가 오면은 창문 밖을 두드리는 물소리가 음악이 되고
밤이 되면은 골목 수놓은 가로등이 별빛보다 더 아름답다고

 

하지만 이 집은 이제 허물어져 누구도 이사 올 수가 없네
마음속에 모아 놓은 많은 이야기들을 나는 누구에게 전해야 하나

 

나는 노래를 부르고 사랑을 나누고 수많은 고민들로 힘들어도 하다가
결국 또 웃으며 다시 꿈을 꾸었네 여기 조그만 옥탑방에서

 


보잘 것 없는 작은 일들도 나에게는 소중했다고

 

 

나는 노래를 부르고 사랑을 나누고 수많은 고민들로 힘들어도 하다가
결국 또 웃으며 다시 꿈을 꾸었네 여기 조그만 옥탑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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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IT 벤처 청년들, '전태일의 꿈'과 만나다" | 낭만쭈꾸미일상엿보기 2009-01-14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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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에 삶은 반성이며 가능성이며 항상 새로운 시작입니다." - 신영복

 

하루에 열두 번 가슴에 새기는 문구.

 

여전히 많이도 후회하고 반성하지만, 매일 "새로운 시작"을 꿈꾼다.

우리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기 때문이다.

 

지금 내 일상의 화두는 단연 "초심 잃지않기", 

"반성"과 "가능성", 그리고 항상 "새로운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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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벤처 청년들, '전태일의 꿈'과 만나다"
['사회적 기업'에서 희망 찾기·(上)]

 

'실업대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올해 봄쯤 청년 실업자들과 퇴출 노동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정부는 '제2의 촛불시위'를 막는 데만 관심이 쏠린듯하다. 실업자들을 위해 일자리로 정부가 내놓은 것은 토목, 건설 사업이 고작이다. 뉴딜정책이 추진된 1930년대 미국과 달리, 요즘 건설현장에는 사람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나마 생겨난 일자리도 일용직 비율이 높다. 정부가 추진하는 토건사업이 만들어 낼 일자리가 매우 불안정한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정부 정책의 초점은 일자리의 '양'에만 맞춰져 있다.

이런 식으로 설령 일자리가 늘어난다 해도 한국 경제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높다. 위기 극복의 관건은 내수 진작인데, 일자리가 불안한 이들은 번 돈을 움켜쥐고만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일자리의 '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질 좋은 일자리'는 어디에서 나올까. 당연히 '질 좋은 일터'에서 나온다. 결국, 이런 일터를 많이 만들어 내는 수밖에 없다. 신규 창업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그랬다. 위기가 고비를 넘긴 뒤, 당시 정부는 벤처 창업을 장려해서 일자리를 만들어 내려 했다. 물론, 이런 시도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있다. 그러나 신규 창업을 장려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대체로 동의한다. 문제는 '어떻게'다. 외환위기가 지나간 1990년대 말에는 전 세계적인 정보기술(IT) 호황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전 세계적인 동시 불황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규 창업에 나서는 것은 섶을 지고 불속에 뛰어드는 일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렇다면, 방법이 전혀 없을까. 일각에서는 '사회적 기업'이 한 방법일 수 있다고 말한다. 무리한 거품 경제에 기댔던 상당수 IT 벤처기업과 달리, '사회적 기업'은 착한 소비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유형에 가깝다. '알뜰하지만 의미 있는' 소비에 기대는 이런 기업은 거품이 꺼진 시대에 잘 어울린다.

'사회적 기업'에 관한 짧은 기획을 마련했다. 첫 번째 글에서는 전태일 열사가 꿈꿨던 일터에 다가가려는 기업 사례를 통해 '사회적 기업'의 의미와 가능성을 살폈다. <편집자>


 

"그저 따뜻한 미담 사례로만 소개되는 것은 싫다."

어떤 독자들에겐 이런 반응이 조금 의외일 수 있겠다. 이곳을 다룬 기사를 여러 번 만났던 독자라면 더욱 그럴 수 있다. 이런 기사에서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 전순옥 박사'라는 구절은 빠지는 법이 없다.

이어지는 내용도 대부분 비슷하다. 1970년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몸을 불살랐던 전태일 열사의 동생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왔다는 이야기, 그리고 오빠가 자신을 불태워 알렸던 봉제공장의 열악한 현실은 30년 뒤에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절망했다는 이야기가 뒤따른다. 이런 절망을 딛고 오빠가 생전에 꿈꿨던 노동조건을 현실에서 구현하고자 실제로 봉제공장을 세웠다는 설명이 다음 순서다. 서울 동대문에 있는 봉제기술학교 '수다공방'과 장충동에 있는 의류제조업체 '참 신나는 옷'에 관한 기사는 대개 이렇다.

"전태일이 꿈꿨던 공장도 '지속가능'하다"

▲ 전순옥 '참 신나는 옷' 대표. ⓒ프레시안

그런데 김진화 '참 신나는 옷' 부사장은 이런 보도가 조금 불만스럽다.

'참 신나는 옷'은 복마전 같은 의류시장에 뛰어든 '기업'이다. 자선단체도, 사회운동단체도 아니다.

이런 기업이 그저 '미담 사례'로만 소개되는 한, 전태일 열사가 생전에 꿈꿨던 공장의 모습은 현실과 영영 만날 수 없다는 게 김 부사장의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 전태일 열사가 꿈꿨던 방식으로 운영하는 기업도 꾸준히 이익을 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지난 5일 전순옥 '참 신나는 옷' 대표를 만났을 때도, 비슷한 반응이 돌아왔다. 기자는 "이런 사업이 갖는 의미와 가능성"에 대해 묻고 싶다고 했다. '가능성'이라는 낱말에서 전 대표가 반색을 했다. 냉큼 말을 받아 이어간 그에게서 좋은 일자리는 지속가능한 일터에서만 나온다는 설명이 쏟아졌다. '의미'만으로는 오빠인 전태일 열사가 꿈꿨던 공장을 만들 수 없다는 이야기다.

정부 지원 없이 버틸 수 있는 '사회적 기업'이 '질 좋은 일자리' 만든다

이런 설명은 '사회적 기업'에 대한 그의 생각과 떼놓을 수 없다. 노동부는 지난달 30일 '사회적 기업'으로 64곳을 인증했다. '수다공방'에서 기술을 익힌 노동자들의 일터인 '참 신나는 옷'도 여기에 포함됐다.

전 대표는 "'사회적 기업'이 해야 할 역할은 결국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정부와 언론의 생각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기관, 그래서 정부가 지원해야 할 곳"이라는 수준에 그치는듯하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하지만, 정부 지원 없이 버틸 수 없는 '사회적 기업'은 노동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하기 힘들다. 또, 일자리의 안정성도 떨어진다. 결국 불안정한 저임금 일자리에 그치기 십상이다. 질 좋은 일자리와는 거리가 멀다.

전태일의 기록…'모범업체 설립의 구상'

물론, 이익을 꾸준히 내서 넉넉한 임금을 안정적으로 준다고 꼭 질 좋은 일자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적절한 노동시간, 정신적·육체적 건강에 해롭지 않은 노동조건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 사회적 기업이 추구하는 질 좋은 일자리가 되려면, 여기에 몇 가지가 더 필요하다.

우선, 노동과정 및 노동의 결과물이 사회와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 김방호 '참 신나는 옷' 기획실장은 "일상적인 영업 활동이 사회정의와 공익에 기여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게 '사회적 기업'"이라고 설명했다. '참 신나는 옷'처럼 의류업체라면 유기농 면화로 만든 옷감에 친환경적인 염료를 쓰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또, 로비로 얼룩진 부당한 영업 관행을 거부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기업 경영과 이윤 분배에 민주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경영에 관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참 신나는 옷'에서는 매주 화요일 아침마다 사원 전체가 모임을 갖는다. 회사 안팎에서 벌어진 일들을 공개하고 토론하는 자리다. 그리고 <참 신나는 수다>라는 소식지를 매주 낸다.

평화시장 재단사였던 전태일이 꿈꿨던 공장에 다가가기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전태일 열사는 대학노트 30매 분량으로 '모범업체 설립의 구상'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전순옥 대표가 '수다공방'과 '참 신나는 옷'을 세우게 된 계기도 오빠가 남긴 기록이었다.

<전태일 평전>에 소개된 기록을 보면, "미싱 50대, 종업원 157명, 미싱사 급여 월 3만 원, 교사 5명을 월 급여 2만 5000원에 고용해 직공 교육, 8시간 노동"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참 신나는 학교'…공장 노동자 자녀들을 위한 공부방

공장에서 교사를 고용해 교육을 한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아무리 쾌적하고, 급여가 많더라도 일 속에서 노동자가 성장하지 못한다면 질 좋은 일자리가 될 수 없다. 기술 능력을 끊임없이 높여갈 수 있는 교육, 세상을 보는 눈을 보다 크게 뜨게 해주는 교육이 필수적이다.

'참 신나는 옷' 관계자들이 신경 쓴 것도 이 대목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외부 강사를 초빙해 강연을 한다. 봉제기술학교인 수다공방을 모태로 삼고 있느니만치 일상적인 기술 교육도 충실하다.

이와 함께 '참 신나는 옷' 에서는 노동자들의 자녀 교육 문제도 회사가 함께 풀어간다. 봉제공장에는 여성 노동자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들은 14시간 이상 노동에 시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녀 보육 문제는 이들의 최대 고민거리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수다공방이 만든 게 방과 후 공부방 '참 신나는 학교'다. 서울 창신동 근처의 초등·중학교 학생 35명이 이곳에서 공부를 하고, 만화 그리기 등 다양한 특별 활동을 한다.

노동자가 인간적인 조건에서 일할 수 있는 일터, 노동자가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익히며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시설, 노동자들이 일하는 동안 자녀를 믿고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이 서로 한 묶음이 될 때, 전태일 열사가 꿈꿨던 일터 공동체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게 수다공방 식구들의 생각이다.

"근로기준법 지키는 봉제공장도 정당한 급여 줄 수 있다"

▲ '참 신나는 옷' 작업장 내부. ⓒ프레시안

이쯤 되면 궁금증을 더 이상 억누르기 힘들어진다. '참 신나는 옷' 노동자들은 한 달에 얼마쯤 벌까. 30명쯤 되는 직원은 모두 정규직이다. 봉제사들은 한 달에 180만~250만 원쯤 번다. 다른 봉제공장에서 '시다'라고 불리는 보조 봉제사들이 이곳에서는 '제자'라고 불리는데, 이들은 한 달에 140만 원쯤 받는다.

그리고 주5일제와 하루 8시간 노동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경영진의 소득도 노동자와 차이가 없다. 이 회사는 지난해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단체복, 이스타 항공 승무원 유니폼, 현대기아차 그룹 글로벌 청년단 유니폼 등을 주문 제작해서 노동자들에게 월급을 줄 수 있었다. 자본금 5000만 원으로 문을 연 회사치고는 성공적인 경영을 해 온 셈이다.

물론, 이 회사의 급여는 대기업에 비하면 미미하다. 하지만, 동대문 일대에 있는 다른 봉제공장과 비교하면 훨씬 높은 급여다. 대부분 비정규직인 다른 봉제공장 노동자들의 한 달 평균 소득은 130만 원을 조금 넘는다. '시다'가 아니라 수십 년 경력을 가진 봉제사 임금이 그렇다. 이들 중에는 미싱 한 대 가진 '객공'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일감이 있으면 불려가서 일하고 일감이 없으면 자동해고 된다. 극단적으로 불안정한 고용형태인 셈.

"이익은 사회와 함께 나눈다"

▲ '참 신나는 옷' 작업장 외부. ⓒ프레시안

여기까지만 보면, '참 신나는 옷'의 시도는 성공적이다. 하지만 공장을 가동한 지 이제 겨우 석 달이 지난 회사가 성공을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 이 회사는 지난해 1월 설립됐지만, 미싱 10대를 갖춘 공장이 문을 연 것은 그 해 10월 1일이다. 개업식은 그보다 일주일 뒤에 했다. 회사 설립부터 공장 가동까지는 주로 서류 작업이 진행됐다.

김방호 기획실장에 따르면, 공장이 가동된 후 지금까지 매출 합계는 약 4억 원이다. 인건비, 재료비 등을 제외하고도 이익을 낼 수 있었다.

이 회사 정관에 따르면, 이익의 3분의 2는 사회에 환원하도록 돼 있다. 나머지 3분의 1 가운데 일부는 회사에 재투자되고, 나머지는 노동자들에게 분배된다.

재투자 비율이 높기 어려운 구조인데, 이런 기업이 언제까지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전순옥 대표와 김진화 부사장 모두 자신만만했다. 이런 낙관에는 이유가 있었다.

"몸으로 기술 익힌 '숙련 노동자'가 경쟁력이다"

김 부사장은 "의류 제조업에서 기계로 자동화할 수 있는 부분에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오랜 세월 속에서 사람의 손에 스며든 기술이 승부를 가른다는 것이다. 이런 승부처에서 이 회사가 유리한 고지에 서 있다는 것.

전 대표 역시 비슷한 설명을 했다. 이런 내용이다. "한국 봉제 산업은 1980년대까지 저임금에만 의존하는 구조였다. 1990년대 들어 봉제공장이 대거 중국으로 옮긴 것도 이런 구조 때문이다. 중국 노동자들의 임금이 더 싸니까 그걸 보고 간 것이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다시 한국으로 공장을 옮기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저임금에만 의존하는 구조가 한계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당연한 이야기다. 미숙련 저임금 노동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대부분 기계가 대체할 수 있다. 자동화 기술이 발달할수록 공장이 중국으로 옮겨가야 할 이유가 줄어든다.

결국 산업의 승부는 미숙련 노동자도, 기계도 대체할 수 없는 영역에서 판가름 난다. 평생 몸으로 기술을 익힌 숙련 노동자가 산업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뜻이다.

'시다'가 아니라 '제자'…대화하는 공장에 기술이 쌓인다

그리고 일터 문화가 민주적이고 개방적일수록 사람의 손에 섬세한 기술이 스며드는 데 유리하다. 봉제 기술은 책을 읽어서 배울 수 없고, 박사 학위로 보증할 수도 없다.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워야하는데, 민주적인 일터가 숙련노동자의 경험과 생각을 함께 나누기에 유리하다.

실제로 이 회사 작업장에는 권위적인 서열 문화가 없다. '시다'를 '제자'라고 부르는 데서도 엿볼 수 있는 특징이다. 하지만, 주문받은 물량을 납기일에 맞추지 어려운 상황이 되면 관리자가 생산직 노동자들을 호되게 다그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리고 숙련도가 떨어지는 노동자가 봉제기술을 손에 익히도록 하려면, 때로는 엄하게 규율을 세워야 할 때가 있지 않을까.

제조 현장을 이끄는 신현섭 생산부장은 메모가 빼곡한 수첩을 내밀었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자잘한 문제들을 꼼꼼히 기록한 뒤, 이걸 바탕으로 노동자와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 이런 방식으로 아직까지는 큰 갈등 없이 현장을 이끌고 있다고 했다.

높은 품질은 '달콤한 일터'에서

▲ '참 신나는 옷'이 생산한 단체복들. ⓒ프레시안

'숙련 노동자'가 가장 큰 자산이라는 공감대는 이 회사가 만든 옷의 품질에 대한 자부심으로 이어진다.

전순옥 대표는 높은 품질을 바탕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여가겠다고 말했다. 이 회사가 만드는 단체복의 브랜드 명은 '스위트숍'(Sweet Shop)이다. '달콤한 일터'라는 뜻이지만, 노동자의 땀을 착취하는 일터를 뜻하는 '스웨트숍'(Sweat Shop)을 비꼰 표현이기도 하다.

천연소재로 만든 옷감에 천연염색을 한 제품이라는 점을 널리 알리면 머지않아 고급 브랜드로 자리 잡으리라는 게 이 회사 관계자의 생각이다.

"노동자 착취하고, 소비자 속이는 기업은 오래 못간다"

그렇다면 가격이 비싸질 텐데? 전순옥 대표는 "정당한 가격을 받는 게 옳다"고 대답했다. 이어 그는 "노동자를 착취하고, 소비자를 속이면서 싼 가격에 파는 방식은 오래 못 간다"라고 했다. 아토피 등을 일으킬 수 있는 재료로 만든 옷을 팔면서 싼 가격만으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것은 결국 소비자를 '속이는 일'이라는 설명이다.

또, 하루하루 끼니를 넘기기에 급급한 노동자는 '장인'이 될 수 없다. '장인'이 없는 공장에서 만들어낸 옷의 품질이 뛰어나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전 대표가 노동자에게 안정적인 생계를 보장해주는 공장이어야만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보는 것도 그래서다. 전 대표의 이런 생각을 '이상론'이라고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전 대표는 오빠와 마찬가지로 봉제공장 시다로 일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그는 뛰어난 손재주를 갖고 있는 기술자가 계속 성장하지 못하게끔 하는 구조에 대해 잘 알고 있다.

"1960~70년대 서울 동대문 일대에서 봉제공장을 운영하던 사장들은 큰 부자가 됐다. 노동자들에 게 자신의 저녁 한 끼 비용만큼 월급을 준 대가였다. 그런데 그렇게 경영한 결과가 어떤가. 30년이 넘게 지나도 동대문 일대 봉제공장에서 나오는 제품 수준은 늘 제자리걸음이다. 노동자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줘야 경쟁력도 생긴다."

"저임금-저품질 악순환 고리를 끊자"

▲ '참 신나는 옷' 사무직들. 사진 오른쪽 마지막이 김진화 부사장, 왼쪽 두 번째가 김방호 기획실장. ⓒ프레시안

김진화 부사장 역시 전 대표와 생각이 비슷하다. 그도 전 대표와 비슷한 길을 걸어온 걸까.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렸다. 30대 초반인 김 부사장은 1995년에 대학에 입학해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이어 그는 한 정보통신 벤처기업에 입사했다. 그리고 인터넷 포털 업체 '다음'에서도 일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전 대표와 사뭇 다른 이력이다.

김 부사장이 봉제공장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다음'에서 근무하던 지난 2006년 육아 휴직을 신청하면서부터다. 회사를 쉬는 동안, 그는 친구와 함께 남성복 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을 하면서 그는 저임금 노동자가 장시간 일하면서 저품질 제품을 만드는 의류 산업의 악순환 구조를 지켜봤다.

또, 의류 제조업으로 번 돈을 부동산 등 엉뚱한 곳에 투자하는 사장들도 많이 봤다. 임금을 쥐어짠 대가로 얻은 이익이 노동자와 해당 산업으로 흐르지 않는 구조인 셈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는 노동자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없다. 그리고 의류 산업의 수준 역시 어느 선 이상을 넘기 힘들다.

"'의미 있는 일' 하려면 퇴근 시간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런 경험 속에서 그는 전순옥 대표와 만났다. 서로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리며 살아온 전순옥 대표와 그가 봉제공장의 열악한 현실이라는 지점에서 만난 셈이다.

기존 기업의 문화와 사업 행태에 실망했던 그는 수다공방에서 새로운 가능성에 눈을 떴다. 누군가를 희생시키지 않는 기업 활동의 가능성이다.

'참 신나는 옷' 기획실장을 맡고 있는 김방호 씨도 비슷한 이력을 거쳤다. 그는 인터넷 포털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에서 일했다. 좋은 직장이었지만, 늘 답답했다. '밥벌이'와 '자아실현'이 제 각각인 현실 때문이다. 김 실장은 "예전에는 '의미 있는 일'을 하려면, 늘 퇴근 시간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게 참 싫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출근 시간이 '의미 있는 일'을 시작하는 순간이 되도록 하고 싶어서"라고 수다공방에 참여한 이유를 설명했다.

대학 동아리 선후배 사이인 김 부사장과 김 실장은 닮은 점이 많다. 한국 인터넷 산업을 대표하는 양대 기업에서 일했다는 점만이 아니다.

"'공무원' 되면, '불안'에서 벗어날까?"

이들은 모두 1990년대 중후반에 대학에 입학해서 학생운동을 했다. 학생운동 진영이 대학 사회 안에서 주류에서 밀려난 지 한참 지났을 때다. 대신, 당시에는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1980년대에는 목소리를 내기 힘들었던 다양한 흐름이 대학 사회 안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이들은 2000년대 초 정보기술(IT) 벤처 열풍을 겪으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벤처 열풍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지만, 긍정적인 면도 컸다. 창의적인 발상과 기술로 시장에 뛰어드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도전과 혁신을 장려하는 문화는 기존 대기업과 관공서에도 의미 있는 자극이 됐다. 불과 몇 년 전이지만, 대기업 입사와 공무원 시험 합격이라는 좁은 문으로만 젊은이들이 쏠리는 지금과 많이 다르다.

이제 30대 초·중반이 된 김 부사장과 김 실장은 '386세대'와도, '88만 원 세대'와도 다른 이력을 거쳤다고 여긴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20대 후배들에게 할 말이 많다.

또래 직장인과 20대 젊은이들이 공유하는 정서로 김 부사장은 '불안'을 꼽았다.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휩쓴 상황에서 미래가 불안하니까 너도나도 '공무원 시험'과 '재테크'에 몰두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이 된다고 해서, '10억 만들기' 재테크에 성공한다고 해서 영혼을 갉아먹는 '불안'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누구나 인정하는 '좋은 직장'에서 스스로 나온 경험을 갖고 있는 이들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머니게임 벤처' 대신 '의미 있는 일' 찾아 창업하길…"

평생 남과 경쟁하며 '좁은 문'만 바라볼 수는 없다. 스스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일을 골라 뛰어드는 선택을 영원히 미룰 수는 없다. 불안에 쫓기며 선택을 미루느니보다 젊은 시절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게 낫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벤처' 창업 열기에 대해서도 꼭 나쁘게만 보지 않는다. 착실히 기술력을 쌓아 좋은 제품을 만들어내는 기업가 정신보다 '머니게임'에만 몰두했던 이들이 잘못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오히려 젊은이들이 적극적으로 창업에 나서도록 장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세계적인 금융 위기로 실업자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 역시 건강한 기업가 정신을 갖춘 신규 창업자가 늘어나야 할 이유로 꼽힌다.

"386세대와 달리, 요란하지 않게 새로운 도전을"

하지만 2000년대 초 잔뜩 나타났던 젊은 사장들은 대부분 실패했다. 이런 경험이 생생한데, 다시 신규 창업을 장려하는 게 효과가 있을까. 더구나 '의미 있는 일'로 돈을 버는 기업을 세우도록 권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이가 얼마나 될까. 김 부사장의 대답을 옮기면 이렇다.

"물론, 몇 년 전과 같은 벤처 열풍은 바람직하지 않다. 당시 많은 벤처기업이 '도덕적 해이'에 빠졌고, 그래서 심각한 부작용을 남겼다. 이와 다른 형태로 창업을 장려하는 문화가 마련돼야 한다. '사회적 기업'을 활성화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다양한 유형의 사회적 기업이 활동하고 있는 영국에는 5만 5000곳 이상의 사회적 기업이 있다. 영국 노동자 가운데 약 5%가 사회적 기업에서 일한다. 사회적 기업이 고용하는 인구가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경제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사회적 기업의 역할은 오히려 확대될 수 있다. 젊은이들이 모두 공무원 시험만 쳐다봐서는 미래가 없다.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젊은이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사회적 기업은 이런 젊은이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기존 기업의 관행에 선을 긋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창업에 뛰어들어 대부분 실패했던 사례가 있지 않느냐고? 맞다. 한국에서 벤처 열풍은 이른바 386세대가 주도했다. 386세대답게 무척이나 시끌벅적한 방식으로 이뤄졌다. 우리 세대, 그리고 다음 세대가 도전하는 창업은 이런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요란하지 않지만, 내실 있게 준비한다면 386세대의 다음 세대에서 건강한 사회적 기업가들이 많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성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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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을 맞는 나의 소중한 친구들에게- | 낭만쭈꾸미일상엿보기 2008-12-12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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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99학번, 빠른 81년생.

사회적 나이 29세, 생물학적 나이 28세의 애매모호한 정체성.

 

내년 2월이면 어느덧 고등학교 졸업 10년차, 대학에도 10학번 차이가 나는 새내기들이 입학을 한다.

그리고... 나의 친구들 대부분이 서른을 맞이한다. 

 

항상 "우리, 친구 아이가~"를 외쳐왔지만(아니, 사실 사회에 발을 내딛기 전에는 나이와 학번의 불일치는 고민조차 해보지 않았던 문제였다.), 서른 이라는 나이 앞에선 왠지 "빠른 81"임을 힘주어 강조하게 된다. 아직 준비가 덜 된 탓이다.

 

 

어린시절 하루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안달내는 아이들 마냥,

20대 초반부터 "멋진 서른"을 꿈꾸었던 나는,

그만큼 "서른"이라는 나이에 대한 환상도 많았다.(사실, 지금도 그렇다.)

 

서른되기 전에 이것은 꼭! 해봐야지~ 하고 계획을 세워둔 것도 많았고,

서른이라는 나이에 이루고 싶었던 목표들도 넘쳐났다.

그리고 서로의 곁에서 "그의 서른"과 "나의 서른"을 조금은 호들갑스럽게 함께 축하하고 싶었던 사람도

두어명쯤 있었다.(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 1.

 

내 스스로 서른이라는 나이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나의 위시 리스트 중엔 나보다 먼저 서른을 맞이하는 소중한 친구들에게 꼭 해주고 싶었던 일들도 있었다.

 

기타를 배워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직접 불러주고 싶었고,

(내가 무지 좋아하는!!)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와 같은 책의 맨앞장에 간단한 메모를 적어 그/그녀

들의 서른을 조금은 의미있게 축하해주고 싶었다.

 

올 가을을 노렸지만 "이직" 등의 문제가 겹치면서 결국 기타를 배우지 못하고 연말을 맞이했으며,

정신없음을 핑게로 그/녀들과의 만남도 잘 못 챙기고 있다. 어흑-(그러나 "나이 서른엔 내가 하고싶은 일을 찾겠다"던 목표엔 한발짝 더 가까이 다가선 셈이니, 조금은 위안이 된다. ^^)

 

 

집안 문제로 힘들었던 나의 10대를, 그리고 너무나 다양한 경험들에 정신없이 휘둘렸던 나의 20대를 묵묵히 지켜봐준 내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기타는 내년에 내가 서른을 맞이할 때, "내가" 직접! 불러줄께~ㅋㅋㅋ)

 

 

원래 도종환 시인의 시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연말, 그리고 스물에서 서른으로 넘어가는 시점의 친구들에게 딱 적합한 글귀가 있어 옮겨왔다.

기타 반주 대신, 서른맞이 축하는 일단 이 글로 대신할께~^^

 

친구들아, 우리 정말 멋진 30대를 맞이하자꾸나! 주변도 좀 돌아보면서.. (므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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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종환 시인이 [프레시안]에 연재하는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라는 코너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바로가기 :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81208142707&section=04

 

 

한 해의 마지막 달―십이월은 설레임과 고통으로 옵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 가슴 아팠던 기억으로부터 자신을 정리하고픈 마음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 꿈꾸게 하는 달입니다. 자신의 나이 앞에 담담하고 겸허하게 서 있게 하는 달입니다. 삶의 무게랄까 인생 그 자체랄까 그런 것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달입니다. 특히나 이십대에서 삼십대 또는 삼십대에서 사십대로 넘어가는 해의 십이월은 옷깃을 여미며 걸음을 멈추게 하는 달이기도 합니다.

이십대에서 삼십대로 넘어가야하던 해의 겨울,
"난 앞으로 몇 년 더 스물아홉에 머물러 있을래." 내가 이렇게 우스갯소리를 하자 친구가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습니다.

"응, 올해는 이 년째 스물아홉, 내년에는 삼 년째 스물아홉이에요. 그렇게 말하겠단 말이야." 하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세월이 이쯤에서 한동안 더 머물러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기 때문일 겁니다.

삼십대에서 사십대로 넘어가던 해의 십이월 마지막 밤은 조용히 술 한 잔을 마셨습니다. 어떤 비장한 생각 같은 것도 들고 나이에 대한 무거운 책임 같은 것도 동시에 느끼게 해서였습니다. 어떤 나이든 나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일 텐데도 십이월의 하루하루는 그걸 허용하지 않습니다. 내 어릴 적 우리 아버지의 나이가 된다는 것. 그것은 책임져야 할 내 얼굴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십이월의 복판에 서면 꼭 한 가지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부디 내가 공연히 초조하지 않아야겠다는 것, 제 나이에 스스로 주눅이 들어 몸을 움츠리거나 행동과 생각을 미리 선험적인 나이의 중량에 묶어 버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 그런 생각 말입니다. 나이에 미리 겁먹지 말고 다가오는 시간 앞에 조용히 깊어져 가는 모습을 지니고 싶은 것입니다. "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세월 앞에 은은한 모습으로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십이월은 우리를 조용한 모습으로 돌아오게 합니다. 어리석은 욕심들을 버리고 가난한 마음으로 돌아오게 합니다. 눈을 씻고 다시 한 번 세월을 정갈하게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면 십이월은 한 해 동안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것, 탐욕과 어리석음과 성냄에 싸여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씩 다시 보이는 달이기도 합니다. 나뭇잎을 다 버린 나무들이 비로소 뿌리에 대해 생각하게 되듯 밖으로 향했던 마음들이 자신의 내부 깊은 곳으로 천천히 다시 모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욕망의 수천 개 나뭇잎이 매달렸던 가지 끝에서 나무 둥치로, 나이테가 또 하나 늘어나는 나무의 가운데로 돌아오게 합니다. 본래의 제 생명, 제 자아의 물관부로 돌아오게 합니다. 거기서 들이쉬는 한 모금의 겨울바람. 십이월은 그 속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롭게 살아가야 할 남은 날들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인생은 그렇게 성급하게, 조바심을 내며 달려가기만 할 것이 아니라고 십이월에 부는 바람은 옷자락을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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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다시 가슴이 뜁니다. | 낭만쭈꾸미일상엿보기 2008-10-11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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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소위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시작한 지

어느덧 4년 하고도 반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로 여기저기 치이며 휩쓸려 다니다가

"좋은 사람들"과 "자유로운 분위기"에 매료되어 "이곳"에 둥지를 튼 지도

벌써 3년 5개월이 되어갑니다.

 

"책과 함께하는 곳"이라 좋았고, "(궁극적으로) 문화포털"을 지향하는 곳이 나의 직장이라는 게 참 좋았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늘 약간의 아쉬움과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 대학시절 내가 고민했던 것들과 점차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

바쁜 일상을 핑게로, '직장인이 다 그렇지'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안하며,

가끔 짬이나면 '쉬고싶다'는 생각에 (당장 눈앞에 닥친 내문제가 아닌) '다른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되는 일들을 하나 둘 외면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가슴 한켠엔 (그게 어떤 것인지 정확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스스로에 대한 원망과 무언가에 대한 부채감(?)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고 늘 스스로를 변명했습니다.

 

점차 "가슴 두근거림"을, "분노하는 법"과 "부끄러움"을 잊어버렸고, 때문에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법"을 잊어가고 있었습니다.

 

 

'서른 즈음엔 꼭 하고싶은 일을 찾겠다'는 생각에 발을 동동 구르며 조바심도 내보았지만, 점차 그 목표는 희미해져 갔습니다. 그냥 그렇게 일상이 채워지고, '모두들 이렇게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사람들의 말을 조금씩 믿게 되었습니다.

 

 

 

# 그런데 제게 작은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선배가 날려준 링크 하나!

"?!"로 시작했으나, 어느새 "!!!"로 변해버린 그 기회가 더없이 소중해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고민은 오랜시간 붙들고 있었지만, 결심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직 미완성인(어찌보면 이제 막 시작된) 불안한 길이지만,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께 길을 만들어갈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쁘겠지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그리고 그 "가슴"을 "손"과 "발"로 만들어 가려면 아무래도 더 많이 고민하고, 공부해야 할 꺼 같습니다. 그런 '즐거운 상상'과 '긴장감'이 일상에 적지 않은 활력이 되고, 덕분에 다시 스스로를 다져야겠다는 각오를 갖게 되는 요즘입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다시 가슴이 뜁니다. ^^ 

 

 

 

* 나로 하여금 ?!를 갖게 한 링크 하나 : http://h21.hani.co.kr/section-021013000/2008/08/021013000200808140723046.html  

 

* 나로 하여금 !!!를 결심하게 한 기사 :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9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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