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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령 의혹 조용기 목사님, 이걸 읽으셨다면... | 사회 2013-11-18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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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교회 가이사의 법정에 서다

강문대 저
뉴스앤조이(newsnjoy) | 2013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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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 소리가 난다. 아니 '억억억억' 소리가 난다.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가 교회 돈 수천억 원을 횡령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14일 여의도순복음교회 '교회바로세우기장로기도모임은 "조용기 목사 일가는 헌금 등 교회 재산을 횡령하고 불륜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제기한 의혹 내용은 ▲ 교회 재정 570억 원 출연해 만든 공익법인 사유화 ▲ 교회 재정 대출 건물 공사비 1600억 원 미환급 ▲ 삼남 조승제씨의 회사를 통한 교회재산 77억 원 부당 취득 ▲ 2004~2008년 총 600억 원의 선교비 사용처 불분명 따위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 것은 하나님에게

개신교 목사인 필자는 이런 기사를 접할 때마다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조용기 목사뿐만 아니라 교회 돈을 횡령해 세상 법정에 선 목사들이 심심하면 언론에 보도된다. 특정 목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 규모가 조금만 크면 이러한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으며, 아주 작은 교회라고 할지라도 감시받지 않는다면 목사가 헌금을 함부로 쓸 수 있다. 그러니 비판도 하기 힘들다. 하지만 '자아비판'을 해야 한다.

먼저 교회 돈 주인은 누구인가에서 출발하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 것은 하나님에게"(마태복음 22:21). 이를 <교회, 가이사의 법정에 서다>(강문대 지음,  뉴스앤조이 펴냄)에서는 "교회의 것은 교회가, 개인의 것은 개인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께 드린 돈, 쉽게 말해 교회 돈은 특정인이 함부로 쓰면 안 된다는 말이다.

기사 관련 사진
 <교회,가이사의 법정에 서다>
ⓒ 뉴스앤조이

 

<교회, 가이사의 법정에 서다>는 <뉴스앤조이가> 펴내는 '바른신앙시리즈' 다섯 번째 책이다. 지은이 강문대 변호사(법률사무소 '로그' 대표)는 교회 분쟁 관련 법률을 연구하며, 분쟁 교회들을 상담하고 중재 노력을 해 왔다. 그 열정과 노력의 결과물이 <교회, 가이사의 법정에 서다>이다. 총 4부로 구성되었는데 2부 '교회 재산' 부분이 교회돈 횡령과 관련이 있다.

목록을 보면 ▲교회 재산은 누구의 소유이고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 ▲교인이 교회에 회계장부 공개를 요구할 수 있나? ▲교회를 사고 팔 수 있나? ▲교회, 아무 곳에서나 신축할 수 있나? ▲목사는 소득세를 낼 의무가 없는가? 따위다.

<교회, 가이사의 법정에 서다>는  교회재정 문제를 '성경'과 '도덕성'문제로 접근하지 않고, 법원 판례 중심으로 접근했다. 성경은 교회 일을 세상 법정에 가져가지 말라고 한다(고린도전서 6:1~11). 하지만 이미 많은 교회와 신자가 세상 법정에서 다툼을 하고 있다. 그럼 지혜를 얻어야 한다.

목사가 '공동의회' 존중한다면 교회재정 횡령은 없어

조용기 목사도 세상 법정에서 다투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기도모임 장로들은 2008년 조용기 목사 은퇴 후 교회 재정 570억 원을 들여 설립한 '사랑과 행복 나눔재단'을 '영산 조용기 자선재단'으로 이름을 바꿔 조 목사와 그 일가가 사유화했다고 주장했다.

'사유화'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일반 사회에서도 예를 들어, 자신이 100억 원을 들여 공익재단을 만들면 그 돈은 자기 돈이 아니다. 사사로이 쓰면 처벌을 받는다. 하물며 교인들이 낸 헌금을 사유화했다면 이는 처벌 대상이다.

"공동의회의 결의를 거치지 않고 처분하였을 때 그 처분은 위법이므로 무효가 된다. 교회 대표자가 처분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다.(대법원 2000.10.27. 선고 2000다22881판결, 2009.2.12.선고 2006다23312판결등). 담임목사나 당회가 교인들의 의견 없이 단독으로 교회 재산을 처분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무효다. 따라서 교인들은 나중에라도 그 처분의 무효를 주장하면서 재산의 원상회복을 요구할 수 있다."(92쪽)

'공동의회'는 세례교인 이상으로 구성된 교회 최고의결기구다. '당회'(목사와 장로) 그리고 '재직회'(집사)가 있지만, 목사 청빙 등 교회가 결정해야 할 모든 결의는 공동의회를 통해 결정된다. 물론 한국교회 상황에서 당회가 결정한 것을 공동의회가 뒤집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공동의회는 목사 전형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방패막이다.

목사가 공동의회를 존중한다면 교회재정을 횡령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한국교회 교인들은 목사가 하려는 일을 찬성하지 반대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도 목사들이 잘 하지 않는다. 그러니 재정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공동의회를 거치지 않고, 교회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하면 배임죄다.

목사나 장로가 교회 소유의 재산을 교인 총회 결의 없이 처분(매도 또는 담보 제공)하였을 경우, 그 행위로 인해 목사나 장로 자신이 재산상의 이익을 얻거나 제 3자로 하여금 이득을 얻게 하여 교회에 손해를 가한 때에는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교회 소유의 부동산을 교인 총회 결의도 거치지 않은 채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제3자에게 매도하여 그 제3자로 하여금 재산상의 이득을 얻게 하거나, 금융 기관에 담보로 제공하여 대출을 받은 뒤 그 돈으로  자신이 재산상 이득을 취한 경우, 그 행위를 주도한 목사나 장로는 업무상 배임죄를 저지른 것이다.(94쪽)

교회 재산을 몇몇 교회 지도자들이 모여 처분하고, 이것을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주장한다면 하나님 이름을 팔아 자신의 배를 채우는 것과 다름없다. 규모가 작은 교회이든, 큰 교회이든 목사가 마음에 새기고 새겨야 할 일이다. 하나님께 바친 헌금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쓴다면 하나님께 죄짓는 것이다. 이는 배임죄보다 더 큰 죄다.

목사인 나도 이 죄를 지을 수 있다.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이 죄를 짓지 않기 위한 방법은 간단하다. 헌금은 하나님 것이니 그 어떤 경우라도 함부로 쓰지 말아야 한다. 교회 재정을 쓸 때 반드시 공동의회가 결의한 것만 쓰면 된다. 교회 재정을 쓸 때 불편하고, 시간이 지체될지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안 그러면 하나님께 심판받고, 세상 법정에서도 처벌받는다.

재정이 투명하지 않는 교회는 언젠가는 망한다

다음으로 교회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교회 재정 횡령 사건을 보면 투명하지 않은 집행이 많다. 어떤 목사는 수십억 원을 횡령해도 떳떳하고, 그런 목사를 "우리 목사님이 박해 받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재정이 투명하지 않는 조직은 언젠가는 망한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담임목사 권력이 큰 한국교회는 재정 투명성이 떨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멀리하는 이유다. 투명한 교회 재정의 지름길은 회계장부를 신자들이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교회에서 회계장부를 둘러싸고 다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 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흔한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교회가 평소 회계장부 등 문서를 성실히 공개한다면 최소한 이런 다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투명 사회'로  가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이때, 교회도 그에 발맞추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교회 행정에 의혹을 품고 있는 교인이라도 무차별적인 폭로나 마구잡이식 정보 공개 요청은 자제하여야 할 것이다. 법원은 그런 형태도 용납하지 않는다.(110쪽)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임준택 감독회장직무대행)가 교회 재정 장부 열람을 제한하는 법을 만들었다고 한다. 장부를 보기 위해서는 입교인 과반수에 해당하는 서명 동의를 받아야 한다.

안타까울 뿐이다. 왜 교인들이 교회 회계장부 공개를 청구할까? 투명성이 없기 때문이다. 마구잡이식 정보 공개를 막는 길이 투명한 공개에 있음을 잊지 말자. <교회, 가이사의 법정에 서다>는 한국교회 목사들이 서재에 꽂아 놓고 두고두고 읽어야 할 책이다. 교회 재정 횡령범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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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도 강제로 끌려왔다면, 일본군도 강제로 끌려와" | 사회 2013-08-2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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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저
뿌리와이파리 | 201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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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및 교과서문제)는 냉정히 대처하는 일본을 보면 일본쪽이 한수 위라고 생각한다"

 

MBC라디오 <지금은 라디오시대>를 최유라 씨와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조영남씨가 지난 2005년 4월 <맞아 죽을 각오로 쓴 100년 만의 친일선언>를 펴낸 후 일본 극우신문 <산케이>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정말은 책 제목 처럼 당시 이 발언은 "맞아 죽을 정도"로 엄청난 비판을 자초했었다. 특히 그해는 '을사늑약 100년', 공복60년과 맞물려 분노는 더 컸다. 그럼 아래 글을 읽고 든 생각은 어떤가?

 

 

"위안부의 피해는 보상되어야 하지만 조선인 위안부는 한국이 바라는 방식으로 기림을 받기에는 모순이 없지 않은 존재다."

 

"'위안부'도 강제로 끌려왔다면, 일본군도 강제로 끌려와"

 

쉽게 읽으면 일본 극우세력이 쓴 글로 보인다. 한 발 더 나아가 "똑 같은 가혹한 '운명'을 겪고도 그 운명에 대한 '태도는 위안부마다 달랐고, 지금도 다르다"면서 "그런 그녀는 일본군이 아닌 업자를 '폭행 주체로 기억한다. 혹독한 체험을 한 이들에게도 '즐거웠던' 순간은 없지 않았고, 군인에게 신세타령을 하면서 정신적 교감을 나누는 '교감'없지 않았다"는 주장까지 들어면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분노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쯤되면 영락없이 '친일파'다.

 

"일본군이 이용했다고 해서 아시아 전역에 있었던 그런 유의 시설들을 전부 '일본군 위안소'로 간주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위안부'들을 '유괴'하고 '강제연행'한 것은 최소한 조선 땅에서는, 그리고 공적으로는 일본군이 아니었다."(38쪽)

 

물론 그는 "군인이나 헌병에 의해 끌려간 경우도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개별적으로 강간을 당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말한다. 하지만 "'위안부'가 '강제로 끌려온' 피해자였다면일본 군인들 역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국가에 의해 머나먼 이국땅으로 '강제로 끌려온' 존재였다"며 일본군을 '강제성'에서 위안부와 같은 반열에 놓는 것을 보는 순간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잠깐 그를 '친일파'로 매도하기 전 위 글들이 담긴 <제국의 위안부>(뿌리와이파리)를 읽은 후, 판단을 내리자. 글쓴이 박유하 교수(세종대 일문과)는 민족주의를 넘어선 연대를 모색하는 한일 지식인모임 '한일, 연대 21'을 조직하는 등 탈제국·탈냉전적인 시각에서 동아시아 역사화해를 위한 연구와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학자다. 그가 쓴 책은 <반일민족주의를 넘어서>, <화해를 위해서―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 따위가 있다. <화해를 위해서―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는  2006년 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되고, 2007년에는 일본어판이 '오사라기 지로(大佛次郞) 논단상'(아사히 신문사)을 수상했다.

 

'소녀상'....위안부 리얼리티 표현이 아니라 '민족의 딸'로 보여주기 위한 것

 

박유하 연구와 활동 그리고 펴낸 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일제식민지를 겪은 우리가 일본을 무조건 비판하거나 비난하기보다는 이성적인 접근을 통해 새로운 한일관계를 시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서울 일본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도 "조선인 위안부와는 거리가 있다"면서 "리얼리터의 표현이라기 보다는 '위안부'를 바람직한 '민족의 딸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까지 한다.

 

조선인 위안부'란 조선인 일본군과 마찬가지로 저항했으나 굴복하고 협력했던 식민지의 슬픔과 굴욕을 한 몸에 경험한 존재다. '일본'이 주체가 된 전쟁에 '끌려'갔을 뿐 아니라 군이 가는 곳마다 '끌려'다녀야 했던 '노예'임에 분명했지만, 동시에 성을 제공해주고 간호해주며 전쟁터로 떠나는 병사를 향해 '살아 돌아오라'고 말했던 동지이기도 했다. 그들은, '한복'을 입은 댕기머리 조선인이기도 했지만, 일본옷을 입고 일본머리를 한 청초한 '야마토 나데시코'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조선인 일본군과 마찬가지로 '식민지의 모순'을 가장 처절하게 살아낸 존재였다. 협력의 기억을 거세하고 하나의 이미지, 저항하고 투쟁하는 이미지만을 표현하는 '소녀'상은 협력해야 했던 '위안부'의 슬픔은 표현하지 못한다"(207쪽)

 

2011년 12월 세워진 '평화 소녀상'은 일본제국주의 만행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이들에게 박유하 주장은 충격이다. 특히 그는 "미국에 설립된 위안부 기림비는 '강제로 끌려간 20만명의 소녀'라는 문구를 담고 있다"며 "그러한 그 비는 '위안부'에 관한 대한민국의 '공식 기억'을 표한 것일 뿐 위안부 자체를 표한 것은 아니다"는데 까지 이른다. 위안부와 소녀상에 대한 그의 생각을 더 따라가보자. 미군기지 주변 여성들이 현대판 '위안부'라고 한다.

 

미군, '위안소'에서 자유롭지 못해...새겨 들어야

 

"'조선인 위안부'가 '군수품'이었다면, 강간당한 네덜란드 여성이나 중국인 여성은 '전리품'이었다. 물론, 전리품이든 군수품이든,' 일본군' '남성'에게 물건처럼 착취를 당했다는 점에서는 '남성 중심 국가'로서의 일본의 사죄는 당연하다. 그러나 그 경우의 일본 패전 후에 일본이 만들어준 위안소를 이용했고 한국전쟁 때 한국 정부가 만들어준 위안소를 이용했던 미국 역시 그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 그동안 미국이 이 문제에서 한국 편을 들어온 것은, 그들의 '위안소' 문제를 지적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219쪽)

 

박유하가 미군도 위안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런 여성들을 재생산하지 않기 위해서도, 위안부 문제에서의 미국의 위치를 제대로 보는 것이 동아시아의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박유하 이 지적은 우리가 새겨야 한다.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서는 분노하면서 미군 '위안부'는 성역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2년 10월28일 경기 동두천 보산동에서 한 여성이 성폭행 당한 후 참혹하게 살해(범인은 맥주병을 시신에 넣었다)당한 사건이 있었다. 범인은 미군 케네스 마클(당시 20세) 이었고, 피해자는 윤금이씨였다. 윤금이씨같은 이들을 일본군 '위안부'와 같다고 할 없지만, 가해자가 일본군에서 미군으로 바뀐 것을 제외하면 강제성과 여성들 인간존엄성이 파괴된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설혹 그렇다라도 이런 주장은 지난 5월 일본 오사카 시장 하시모토 도루(橋下徹)가 "성노예인지 아닌지는 국제사회로부터의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며 "세계 각국 군대는 제2차 세계대전때 같은 방식으로 여성을 이용하고 있었는데 일본만 비판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말한 것이 연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 정부에 '배상 요구'는 무리

 

위안부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에게 배상을 요구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협청구권협정으로 배상은 끝났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일본식민지때 강제징용했던 신일철주금(옛 일본제철)이 한국 법원의 판결이 확정되면 징용 배상금을 낼 의사를 밝히자, 일본 정부는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배상문제는)해결이 끝났다"고 했다. 박유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소송자들이 소송을 낸 근거는 위안부들이 '강제노동'과 '인신매매'를 당한 것이었다. 그것이 당시 국제법을 어긴 것이었다는 것이 '배상'요구의 근거였는데, 당시의 법을 실제로 어긴 직접적 주체는 일본국이 아닌 업자였다. 그런 의미에서 소송자들의 '법적 책임'과 '배상 요구' 자체에 무리가 있었다."(237쪽)

 

일본 우익세력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는 '한일청구권협정'이 나온 배경을 설명하면서 "한일협정은 또 하나의 제국이었던 미국이 주도하는 냉전체제하에서 이루어진 탓에 식민지배에 대해 철저하게 되물을 기회를 한일 양쪽에 주지 않았다는 점일 인식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박유하는 "반제국의 의미를 가졌던 저항이 그곳에서는 어느새 민족권력화되어 있었다"며 정대협이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차원 배상 요구를 강하게 비판하는 장면에 이르면, 받아들일 수 없는 단계에 이른다. 

 

위안부는 '민족'문제가 아니라 '인간존엄성'문제

 

특히 "수요 시위를 비롯한 정대협 활동에 어린 학생들을 대거 동원되는 상황은 극히 우려스럽다"면서 "그들이 새롭게 심어진 '반일'적 적개심을 넘어서 같은 또래의 일본 청소녀들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또 얼마나 많은 대립과 감정소모의 시간이 필요할까?"라는 말을 들으면 '위장된 일본 우익'이라는 세간의 평이 낯설지 않다. 그는 후기에서 이렇게 적었다.

 

"정대협의 '운동'을 거대한 '국가적 소모'라고 까지 느끼는 내 감성을 그저 '친일파'로 간주하려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빨갱이'이나 '친일파'라는 명칭이 그저 개인에 대한 공격 자체를 목표로 하는 세월이 이어지는 한 제국과 냉전으로부터의 '해방'은 오지 않는다."(320쪽)

 

박유하는 위안부 문제를 '일본'이 아닌, '제국'으로 희석시키고 있다. 책 제목 역시 <제국의 위안부>다. 이렇게 되면 '일본'에 대한 직접 책임을 묻는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무엇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일본군 '위안부'는 그들이 조선인 여성을 짓밟앗기 때문에 분노하기 이전에, 인간존엄성이 짓밟힌 문제다. 그러므로 어린 학생들이 소녀상 앞에서 분노한다.

 

책을 덮어면서 머리에 든 생각은 '박유하가 쓴 책을 일본 우익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겠구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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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아주 부드럽게 | 사회 2013-08-14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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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

김동춘 저
사계절 | 2013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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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수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다."


소련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한 말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런 '막말'이 있느냐고 분노할 수 있지만, 생각해 보면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히틀러는 유태인 600만 명을 학살했고, 캄보디아 폴 포트 정권은 자국민 200만 명을 학살했다.

정문태 국제분쟁전문기자는 지난 10일 <한겨레> 토요판 '미국은 사실상 제3차 세계대전 중' 기사에서 미국은 "19세기 말까지 단 한 해도 쉬지 않고 영토 확장 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인디언 원주민 300여만 명을 학살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필리핀 독립전쟁이었던 필리핀-아메리카전쟁(1899~1902년)에서 100만명 웃도는 필리핀 시민을 학살했다"고 지적했다.

"한 사람 죽음은 비극이지만 수백만명 죽음은 통계"

두세 사람이 살해 당하는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언론들은 이를 집중보도하고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는 경찰은 질타 받는다. 그런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자살폭탄이 터져 수십 명이 죽어도 짧게 보도될 때가 많다. 나치 부역자들에 대한 처벌은 아직 진행되고 있지만, 600만 명을 학살한 것에 비하면 약하다. 미국이 자신들 학살에 대한 책임을 졌던 적이 있었는가? 없었다.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수백만명 죽음은 통계라는 스탈린 말을 무조건 반박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남 탓할 처지가 아니다. 공권력에 의한 대규모 학살이 있었다. 제주 4·3사건, 거창사건, 노근리사건, 국민보도연맹사건 등등. 그나마 이들 사건은 잘 알려진 학살사건이다. 한국전쟁을 전후로 일어난 학살사건 중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건도 많다.

기사 관련 사진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
ⓒ 사계절

 

한국전쟁의 정치사회학을 시도하며 민중의 체험으로 전쟁의 의미를 캐물은 <전쟁과 사회>를 썼던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가 쓴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사계절 펴냄)는 아직도 우리 사회가 지독한 인간성 말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려준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한 그답게 국가권력에 의해 학살당한 것을 '통계'로 치부하면 안 된다는 점을, 국가권력이 자행한 학살을 철저히 조사하고, 다시는 이같은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을  '양심'을 가진 학자와 지성인으로서 호소한다.

"학살이나 국가폭력은 마치 암세포와 같이 그것과 전혀 무관한 구성원들의 정치·사회 의식과 도덕적 기반을 좀먹어 들어간다. 그래서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을 어떻게 위로하고 사회에 복귀시키고, 그 사실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하는 문제는 그 사회에서 극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7쪽)

"학살과 국가폭력은 암세포"

그는 "'기억의 정치'는 한 국가나 사회의 헤게모니, 국가 정체성의 문제이자 사회의 질서, 법과 도덕의 기본"이라며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일이 중요하고 또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국가를 만드는 일과 맞먹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국가권력이 자행한 학살을 바로잡는 일이 나라를 세우는 일과 맞먹는다는 말은 국가 권력이 인간존엄성을 결코 해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구세력은 노무현 정부 시절 과거사 청산을 추진하자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이라며 '색깔론'을 제기했다.

2005년 12월 진실화해위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비록 '누더기'로 출발하자 군·경 출신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 끝자락이었던 2008년 1월 30일에는 뉴라이트연합 등 90개 단체가 연합해 만든 '국정협'(대한민국정체성회복국민협의회)이 "6·25전쟁 중에 발생한 양민 희생자 사건을 왜곡하면서 특별법을 제정하고 특별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반국가 행위자를 두둔한 점을 바로 잡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국군, 경찰을 학살자로 모독한 사진 전시회 즉각 철회", "과거사위 발표 민간인 희생사건은 왜곡 날조된 엉터리다", "좌파정권 산물 과거사정리위 정리하라"고 외쳤다.

노무현 "국가가 자행한 폭력" 사과... 수구세력 "왜곡날조"

참고로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을 한 달 앞둔 2008년 1월 24일 울산 국민보도연맹 사건 희생자 추모식에 영상 메시지를 통해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된 행위를 '국가'를 대표해 사과했다. 이에 앞서 제주4·3사건에 대해서도 2003년 10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국가권력에 의해 대규모 희생'이 이뤄졌음을 인정하고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를 했다.

그럼 노무현 대통령과 수구세력 중 누가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했을까? 이럴 때 가장 중요한 잣대는 역시 대한민국 헌법이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했다. 국가는 그 어떤 행위로도 국민의 존엄성을 해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전쟁기 학살은 인간존엄성을 훼손한 것이다. 당연히 국가 이름으로 사과해야 한다.

예로든 헌법이 1987년 개정 헌법이라고 반박할 수 있다. 그럼 제헌헌법을 보자. 제8조 "모든 국민은 법률앞에 평등이며 성별,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했고, 제9조는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금, 수색, 심문, 처벌과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 체포, 구금, 수색에는 법관의 영장이 있어야 한다"고 천명했다.

아이까지 학살... 대한민국 헌법 부정

'문경 석달동 학살사건'이란 
문경 학살 사건은 1949년 12월24일 정오, 공비 토벌 명목으로 수색 정찰 중이던 국군 제2사단 25연대 2대대 7중대 2소대 및 3소대원 70여명이 경북 문경군 산북면 산간 마을 석달동을 지나가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집집마다 불을 지르고, 남녀노소 마을 주민 전원을 불러내 사냥 연습하듯 학살한 반인륜적 범죄다. 당시 학살로 마을 주민 136명 중 어린이 9명과 여성 44명을 포함해 모두 86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1.09.27 <시사인> "어린아이도 사냥 연습하듯 학살했다"

하지만 한국전쟁 학살은 헌법을 무시했다. 1950년 11월 8일 전북 남원 대강면 강석마을 주민 70명은 국군에게 총과 칼로 학살당했다. 그들은 "무학이거나 국졸이었으며,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사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지렁이 벽촌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다.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아이들이 학살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 김동춘은 경북 문경 석달동 학살 사건 추모비에 이런 시를 남겼다.

 

"산 넘어 넓은 세상 머물 곳 찾아/구천 떠도는 어매 아배 기다리며/석달 마을 산 모퉁이에/ 이름 없는 아기 혼들 울고 있네//아가들아 아가들아/ 이름 없는 아가들아/ 피 묻은 아베 조바위 쓰고/ 눈물 젖은 아베 고무신 신고 놀지/ 그 옛날 이야기 말해주렴/ 지나가는 길손이 발 멈추거든// 아가들아 아가들아 오늘 밤은/ 어매 품에 안겨 아베 등에 업혀/ 백토로 사라지기 전 그 옛날처럼/ 좋은 세상 꿈꾸며 잠들어라 - <이름 없는 아기 혼들>'석달동 양민 학살에 때 참살된 아기들을 생각하며'"(129쪽)

기사 관련 사진
 대전 산내 골령골 학살 현장 사진들. 위 왼쪽 차량적재함에 '논산읍' 글자가 보인다. 대전형무소 정치범들이 끌어내려지고 있다. 위 오른쪽 길게 파놓은 구덩이 둔덕 위 재소자들을 엎드리게 하고 등 뒤에서 헌병들이 총을 쏠 준비를 하고 있다. 아래 사진 민간 청년단원들이 구덩이의 시신들을 정리하고 있다.
ⓒ 사계절

 


아이들을 학살한 것이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아이들을 학살한 진실을 밝히는 것이 어떻게 군경을 모독한 것이 되는가. 오히려 아이들을 학살한 것이야 말로 대한민국 군과 경찰을 모독한 일이다.

김동춘은 "과거 청산은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죽음과 고통을 직시하면서 어떻게 새로운 삶은 추구할 것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며 "그것은 과거의 억울한 죽음을 다루고 있지만, 실제로는 미래의 생명의 가능성을 묻는다"고 했다. 국가권력이 자행한 학살을 제대로 조사하고, 사과해야만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책 중간에는 한국전쟁기 학살 현장과 유골 발굴을 담은 사진들이 수록되어 있다. 1950년 7월-8월 대구 형무소 재소자와 경산·청도 지역보도연맹원 집단학살사건, 1950영 7월 청주경찰서와 청주형무소 등에 구금된 청주·청원 지역보도연맹원 학살사건, 1951년 2-3월 경남 산청 외공리 학살사건 등등이다.

죽은 자보다 산 자가 더 고통스러웠던 지난 60년

특히 1950년 6월 28일경부터 7월 17일 새벽 사이 최소 1800여 명 이상의 보도연맹원과 재소자 등이 헌병대와 경찰 등에 의해 법적 절차 없이 숨진 대전 산내 골령골 집단학살 사건을 담은 사진 3장에서는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이게 대한민국 군과 경찰이 자행한 학살이었다, "빨갱이"라는 이유로. 살아남은 자도 빨갱이였고, 아니 죽은 이보다 더한 '산송장'이었다. 

"한국전쟁기에 국군과 경찰에 의해 학살당한 사람은 공식적으로 '폭도' 혹은 '빨갱이'였고, 살아남은 가족도 '빨갱이'였다. 지난 60여년 동안 피학살자들의 가족들과 기적적인 생존자들은 '산송장'이었다. 우리 사회는 산송장이 이웃에 널려 있는데 그 존재를 외면하면서 살고 있다. 도대체 그런 국가나 사회는 어떤 곳일까?"(59쪽)

김동춘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좌익 관련 피학살자들과 가족들을 세 번이나 죽였다고 주장한다. "학살 자체가 첫 번째이고, 1960년 당시 진상규명 요구를 폭력으로 틀어막은 것이 두 번째이며 그 유가족과 자식들을 모두 '빨갱이'로 취급하여 1980년대까지 연좌제로 묶어서 입도 뻥긋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 세 번째"라고. 이 말 앞에서 "난 아니"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기억해야 할 학살

이어진 그의 글 "특히 세 번째 학살은 정부가 단독으로 저지른 것이 아니라 언론, 사회, 이웃 사람들의 협력과 공모 아래 이루어진 것"이라며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도 침묵했고, 또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으며, 그들은 빨갱이였으니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고 자신의 묵인과 방관을 정당화했다"는 말에는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지금까지 나는 군경과 수구기득권만 학살에 책임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 번째 책임에 나 자신도 포함됨을 비로소 알았다.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는 "제주도의 서늘한 풍광 아래에서 검은 핏자국을 남기며 사라져간 사람들, 토벌작전·처형이라는 이름으로 무고하게 살해된 영령들을 추모하고 반추"하고 "국가와 반공주의의 이름으로 억압되어 있던 학살의 비밀을 끄집어내고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 학살의 기억을 되새기고자"한다. 그러기에 불편하다. 왜 난 그때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이다. 또 수구세력처럼 "전쟁통에는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인민군들도 양민을 학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억울한 죽음과 비통한 슬픔을 남긴 전쟁의 실체와 진실"을 밝힐 수 있고, "원통한 죽음은 제대로 기억"하는 일이므로. 만약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또 다시 지난 60년을 되풀이 할 것이다. 학살을 제대로 조사하고, 진실을 밝히지 않았기에 지금도 학살이 진행되고 있다. 아주 부드럽게.

"국가권력, 민주화 이후 부드러운 학살 자행"

"나는 민주화 이후에도 부드러운 방식으로 학살이 지속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공안 기관의 위법과 권력 남용, 도시 재개발 철거 현장에 난무하는 폭력과 노동 현장의 구사대 폭력, 빨갱이라고 덧칠을 해서 특정인들을 정치적으로 매장시키고 죽음으로 몰아가는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즉, 나는 학살은 전쟁기에 나타나는 매우 특수하거나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폭력으로 정치적 저항 세력을 완전히 무력화하거나 제거하는 권력 행사의 한 특수한 형태라고 보았다."(30쪽)

쌍용자동차 노동자 23명은 더 이상 살아있는 자들과 호흡하지 못한다. 현대자동차 최병승·천의봉씨는 290여일 동안 저 높은 하늘에서 싸웠다. 갑을 관계는 또 어떤가? 총칼만 들지 않았을 뿐 김동춘 표현처럼 "부드러운 방식으로 학살이 지속"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더 이상 이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김동춘이 던지는 마지막 호소에 귀를 기울이자. 그리고 기억하자.

"새롭게 발굴되고 해석된 역사는 죽어 있는 사실들이 아니라 현재의 지배구조의 기원을 고발해주는 문서다. 이 성과가 단순히 피해 당사자의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의 것, 시민의 것이 되고 또 인류의 것이 될 때, 우리는 인권과 정의가 넘치는 세상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4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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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으로 '사람세탁', 강용석은 정말 변했을까 | 정치 2013-08-13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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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강용석의 직설

강용석 저/박봉팔 편
미래지향 | 2013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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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세탁'. 누가 이 단어를 만들었을까? 세탁은 더러운 것을 씻어낸다는 말이다. 하지만 돈세탁은 뒷돈이나, 비자금을 감추기 위한 것으로 깨끗함이 아니라 더러움을 상징한다. 돈세탁만 아니라 '사람세탁'도 있는 모양이다. 더러움을 제거하고, 표백 단계에 이르렀다.

'아나운서 성희롱' 한 강용석

지난 2010년 7월 16일 성희롱 발언과 성추행 따위로 '성나라당'이라는 비아냥을 듣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을 충격에 빠지게 한 사건이 터졌다.

강용석 당시 의원이 대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 수 있겠느냐", "대통령이 너만 쳐다봐. 남자는 똑같다. 옆에 사모님(김윤옥 여사)만 없었으면 네 (휴대전화) 번호도 따갔을 것"이라는 말한 것이 4일이 지난 같은 달 20일 <중앙일보>를 통해 보도된 것이다.

강 의원은 끝까지 자신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성나라당'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한나라당은 그를 제명할 수밖에 없었다. 한나라당이 얼마나 충격에 빠졌는지 제명은 반나절만에 결정됐다. 하지만 의원직 제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난 2011년 8월 31일 '강용석 제명안'에 대한 표결 결과는 찬성 111명, 반대 134명, 기권 6, 무효 8명이었다. 의원 제명안 가결 요건인 재적의원의 3분의 2(198명) 찬성에는 한참을 못미쳤다.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국회의장을 지낸 김형오 전 한나라당 의원이 표결 직전 요한복음 8장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라는 성경 말씀을 인용한 것이 큰 영향을 끼쳤다. 의원직 제명 부결은 사실상 강용석에게 '면죄부'를 준 거나 다름 없었다.

김형오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강 전 의원은 이후 박원순 서울시장 작은 아들 병역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했고, 안철수 의원 '저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박 시장 아들 병역 문제는 결국 '사과'하면서 의혹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안 의원 저격도 '헛방'이었다. 결국 그는 지난 19대 총선에서 유권자 심판을 받았다.

이런 사안으로 낙마했다면, 대부분 정치인은 생명이 끝난다. 아니 부끄러워서라도 몇 년 간은 언론을 피한다. 하지만 그는 '당당하게' 종편과 케이블 방송에서 출연해 '아나운서 성희롱'과 박원순 시장 아들 병역 의혹 그리고 안철수 저격수 이미지를 거의 '세탁'을 넘어 '표백' 단계에 이르렀다. 만약 강용석 전 의원이 2011년 8월 제명당했다면, '당당하게' 방송에 출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강용석 전 의원 아니, 강용석 변호사는 <썰전>(JTBC), <강용석의 고소한19>(tvN), <유자식 상팔자>(JTBC) 따위에 출연을 통해 몇 마디 툭툭 던져 강용석이 '변'했다는 시청자들과 누리꾼들 '인정'을 받고 있다. 예를 들면 노무현 대통령이 'NLL를 포기'했다는 논란이 한창일 때인 지난 7월 4일 <썰전>에서 그는 "정문헌, 서상기는 사퇴해야 한다. 이 정도 얘기해 놓고 착오라고 하면 안 된다. NLL 대화록 전문을 보면 포기라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서상기, 정문헌 의원이 과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국정원 명예를 위해" 2007년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했다는 남재준 국정원장에 대해서도 "군인 출신이다. 단독 결정한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고도 했다.

"정문헌과 서상기 사퇴하라"로 이미지 세탁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unheim)에서 "강용석은 분위기를 파악한 겁니다"는 글을 남겼다. 누리꾼들도 "속이 시원하다"고 했다. 오히려 우익세력은 그를 성토했다. 변희재는 "강용석이 애국우파 진영에 빚진 것은 없어요. 자기 길을 가더라도 배신자 운운할 것 없다"고 했고, 정미홍 <더 코칭그룹> 대표도 "강용석은 정치인으로서 무엇을 노렸었는지 모르지만 그게 뭐든 앞으로 이루기 어렵겠습니다"고 했다.

3년 전 성나라당 아이콘이었던 강용석은 온데간데 없고, 친정인 새누리당과 "국정원 셀프개혁" 운운한 박근혜 대통령까지 에둘러 비판하는 강용석으로 부활한 셈이다.


기사 관련 사진그럼 강용석은 변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올시다'이다. <강용석의 직설>(도서출판 미래지향>이 증명하고 있다.

그는 변희재 대표와 고 성재기 남성연대대표가 NLL발언에 대해 비판한 것을 두고 "이해할 수 있다. 국가 안보에 관련된 일에 보수논객들이 얼마나 민감한지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어떤 사안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다르다고 변절자로 몰아가는 건 섣부른 판단이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강용석 성향이 어딜 가겠나.(웃음) 성재기와는 전화로 오해를 풀었다. 조만간 변희재와도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했다. 자신의 본질이 변하지 않았음을 스스로 밝힌 것이다.

강용석 "'아나운서 성희롱' 아직도 기억 안나"

특히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해 "국정원이 만일 박근혜를 당선시키려 마음 먹었으면 댓글만 달았겠나"라고 반문하면서 "문재인 3개, 박근혜 3개, 안철수 3개다. 이정희가 26개, 민주당이 28개, 범죄일람표를 보니 안철수 지지 댓글 3개에 국정원 직원이 추천을 누르기도 했더라"고 말했다. 이같은 주장은 새누리당과 <조중동> 주장과 한치도 어긋남이 없다. 특히 강용석을 상징하는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은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강변했다. 

"당시 술에 취해 실수했던 것이었다면 곧바로 인정했을 것이다. 그날 학생 30여명이 함께 있었고, 취할 정도로 마시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솔직히 어떤 발언을 했는지 지금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262쪽)

물론 정말 기억이 안 날 수도 있다. 강용석 말처럼 "그날만 총 11개의 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로 수많은 아나운서들이 받은 '상처'는 푸념이 된다. 아니, 잘 난 아나운서들이 죄없는 강용석을 성희롱한 '나쁜 놈'으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그리고 강용석 방송을 통해 옛것들을 깔끔하게 씻어내고 정치 복귀를 선언하고 있다. 

"정계에 복귀하기 전에 시청률 15%의 프로그램에 출연해 봤으면 좋겠다. 반짝 스타가 되고 싶은 욕심이랄까? 15%의 시청률은 대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중략) 지금 나는 '정치 방학' 중이다. 길고 긴 방학의 끝이 언제쯤일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지금 열심히 해둬야 나중에 좋은 성적도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7쪽)

방송으로 '이미지 세탁'한 후...

특히 그는 "내가 이 길로 가면서 뭔가를 이루면 내 방식도 하나의 모델이 될 거로 생각한다"는 말에는 말문이 막힌다. 지난 3년 동안 강용석이란 이름 석 자에게 상처받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제대로 사과한 적도 없다. 어떤 것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방송을 통해 이미지 세탁을 한 자신의 길이 모델이라고 한다. 강용석은 이처럼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강용석 본질을 또 하나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다. 

"이승만의 국부로서 역할은 토지개혁 때문에 가능했다. 토지개혁 때문에 6.25를 겪고도 민중 항쟁이 일어나지 않았다(중략) 경제발전이 가장 큰 업적이다. 수출주도형 경제발전으로 이끌어 나간 것은 박정희 아니고서는 추진할 수 없던 것이었다. 중화학공업, 제철, 조선, 건설, 전자, 중공업 등을 제대로 세운다는 것을 박정희 말고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93-95)

그리고 그는 전두환과 노태우도 "쿠데타를 정당화하려고 굉장히 노력했다"면서 "그런 식으로 정권을 잡은 독재자들치고는 나쁘지 않았던 편이다"고 한다. 그는 이어 "다른 유사한 나라들의 유사한 독재자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퍼포먼스가 좋았다. 이를테면 페론를 뒤집은 아르헨티나의 군부독재정권이나 미얀마, 제3의 세계 군부독재 정권들과 비교해보면 괜찮은 편이었다"고도 했다.

강용석 논리는 수구세력 주장과 별 다르지 않다. 방송에 출연해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을 비판하는 한 두 마디가 강용석 본질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미지 세탁을 통한 이미지 정치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미지 정치는 박근혜 대통령도 빠지지 않는다. 언론은  박 대통령이 국외 방문을 할 때, 정상회담 내용보다는 무슨 옷을 입었는지에 더 관심이 많을 정도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는 괜찮은 대통령"

그는 대통령이 어떤 자질과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지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은 예언자로서 능력이 있어야 한다. 예언뿐만 아니라 그걸 성취할 수 있는 비전이 있어야 한다. 또 조직하고 활동해서 그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걸 뒷감당하고 정리해서 마무리할 수 있는 능력, 그걸 다 갖춰야 대통령의 자격이 있다. 그런데 이걸 하나라도 제대로 하면 성공한 대통령이다."(본문 222쪽)

대통령 자격은 예언자 자질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예언자란 무엇일까? 예언자란 앞날을 미리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다. 예언자는 인민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아파하는 자이며, 인민을 탄압한 자들에게 저항하는 사람이다. 인민을 생각하는 않는 자는 예언자가 될 수 없다, 독재자 이승만과 군사반란으로 민주주의를 유린한 박정희와 전두환, 노태우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는가? 없었다.

강용석은 박정희를 높이 평가한 것이 "경제발전"이다. 수구세력 주장과 한치도 어긋남이 없다. 그는 김영삼과 노무현 평가를 박하게 했는 데 둘 다 "정권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권을 재창출하지 못한 이유로 낮게 평가받고, 민주주의를 유린했는 데도 경제발전을 했다는 이유로 높게 평가하는 것은 민주주의 의식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지난 8일 <썰전>에서 방송사들이 촛불집회를 보도하지 않는 것은 "이미 국정원 국정조사에 검찰 기소까지 된 상황인데 이슈가 인화성이 없는 이슈일 수 있다. 뭘 어쩌자는 거냐"라고 했다. 한 마디로 촛불집회는 '뉴스거리'가 안 된다는 말이다. 특히 그는 "동원을 열심히 해서 그런 것"이라며  "내가 이런 집회 한 두 번 해봤나. 장외 집회라는 게 동원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거다. 다 동원하는 것이다. 70~80%는 동원된 인력이다. 노무현 정권 때 매일 촛불집회 했다. 그때 다 동원해서 나갔다"고 했다.

촛불집회는 다 동원된 것?

노무현 정부때 자신들이 장외집회를 동원해봤다며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국회의'가 주최하는 촛불집회도 "동원"이라는 주장은 한 마디로 '억지'다. 몇 백명까지는 동원할 수 있다. 하지만 수 만 명을 어떻게 동원하는가. 한나라당식 동원 정치를 촛불집회에 적용하는 강용석을 보니, "나는 국정원에 아무 도움을 받지 않았다"며 "국정원은 스스로 개혁해야 한다"는 청와대 계신 분과 어떻게 그렇게 닮았는지. 하기야 같은 편 아니던가.

박상도 SBS 아나운서는 지난 6월 14일 전·현직 언론인들이 운영하고 있는 칼럼사이트 <자유칼럼그룹>에 '강용석의 변신은 무죄?'라는 제목 글에서 "예능의 새로운 아이콘이 된 강용석씨를 보며 돈 세탁하듯 이미지도 세탁 가능하다는 것을 느낀다"며 "오늘과 같은 날이 올 것을 예견했지만 이 정도로 (강 전 의원에 대한) 대중의 태도가 급변할 줄은 몰랐다"고 탄식했다.

박 아나운서 말을 새겨야 한다. 속지 말자, 강용석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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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그가 위대한 군주였던 이유를 알겠네 | 역사 2013-07-3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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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군주의 조건

김준태 저
민음사 | 2013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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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27명의 군주가 있었다(엄밀히 따지면 순종은 군주로 보기 힘듬). 그리고 대한민국은 박근혜 대통령까지 11명의 대통령이다(윤보선은 의원내각제하 대통령이었고, 최규하는 하야 함). 조선 개국이 1392년이니, 631년 동안 군주(대통령)는 겨우 38명뿐이다. 군주(대통령)은 하늘이 내린다는 말이 결코 헛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38명 중에도, 세종대왕 같은 위대한 군주가 있는가하면, 연산군과 광해군처럼 반정에 의해 왕위를 찬탈당한 군주도 있었다. 또한 박정희와 전두환처럼 군사반란을 일으켜 민주주의를 유린한 대통령이 있는가 하면, 김대중-노무현처럼 첫 비주류 정권을 탄생시킨 대통령도 있었다.

 

백성, 곧 인민이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에 어떤 군주와 대통령을 맞느냐에 따라 삶이 완전히 달라진다. 세종같은 군주를 모시고 살았던 백성들은 가장 태평한 시대를 보냈을 것이고, 연산군같은 폭군 지배 아래 살았던 백성들은 참혹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군사반란을 일으킨 박정희 치하에 살았던 인민들은 '병영국가'에서 산다는 경험을 했을 것이고, 지금와서 생각하면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적어도 사람답게 살았던 시대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군주(대통령)을 제대로 만나야 한다. 우리는 조선은 봉건왕조이므로 민주공화국를 살아가는 우리가 훨씬 더 사람답게 산다고 할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만은 분명 낫다. 하지만 군주다운 군주를 만났느냐를 따져 물어면 조선 백성보다 우리가 낫다고 할 수 없다.  

 

세종 "가뭄은 내 부덕함이요"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으로 추앙받는 세종대왕은 '한글창제', '측우기 발명', '해시계 발명', '대마도 정벌' 같은 업적을 남겼기 때문일까? 물론 그렇다. 하지만 세종은 자신이 잘 못했을 때 "내 책임이요"를 할 줄 알았고, 자신 주위에 "전하에게 유감입니다"라고 말하는 이들을 신하로 뒀기 때문이다.

 

스피치 라이터 김준태씨가 쓴 <군주의 조건>(민음사)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이는 분명히 형벌이 바르제 집행되지 못하여 죄 있는 자가 잘못 하여 용서를 받고 무고한 자가 도리어 화를 입어서 일 것이다. 쓸 사람과 버릴 사람이 바뀌었고, 충성스럽고 바른 말 하는 이가 홀대받고(중략)번다한 세금으로 인해 쪼들려서 원망과 한탄이 일어났으니, 평화로운 삶을 살지 못하게 된 이들이 얼마나 많을지 헤아릴 수 없다. 이는 모두 과인의 부덕함에서 비롯된 것이니, 내가 반성하며 스스로를 자책하기를 그만둘 수가 없다."(27쪽)

 

1427년 가뭄이 들자 세종이 내린 교서다. 영조도 천둥이 쳤다는 보고를 받은 후 "하늘이 경고하는 뜻을 보이시니, 어찌하여 발생한 것인가. 그 이유를 따져보니 잘못이 실로 과인에게 있다"는 교서를 내렸다.


가뭄을 자기 책임이라고 하는 세종과 천둥친 것을 자신의 잘못이라고 인정하는 영조를  '세종과 영조도 미신을 믿었는가?'라고 비판할지 모른다. 하지만 세종과 영조가 이런 교서를 내린 이유는 "이런 현상에 대해서도 임금의 반성을 의무화함으로써 군주가 불시에 자신을 성찰하고 점검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며 "군주로 하여금 잠시라도 마음을 놓거나 나태하지 않게 효과가 있었기"때문이다.

 

가뭄과 천둥치는 것까지 자신의 부덕함이라는 임금을 보고, 어떤 신하와 백성이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김준태는 세종과 이런 모습에 대해"자신이 보지 못했고 듣지 못했다 해도, 일을 그르쳤을 가능성이 단 1펀센트라도 있다면 그것을 막지 못한 임금의 잘못이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안타깝게도 지난 6년 동안 대한민국 대통령은 "내 책임이요"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사과'라는 단어가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자신이 임명한 청와대 대변인이 성추행을 범해 미국에서 몰래 도망왔는 데도 말이다. 봉건왕조 군주였던 세종과 영조, 민주공화국 대통령인 이명박과 박근혜 과연 누가 제대로 된 군주(대통령) 자격을 가졌을까?

 

세종은 딴죽거는 신하를 좋아했다

 

세종을 보면 봉건왕조 군주가 아니라, 민주공화국 대통령같은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는 데 그 중 하나가 비판자와 반대자들을 자기 곁에 뒀다는 점이다.

 

"세종이 심혈을 기울인 싱크탱크인 집현전의 초대 책임자는 세종의 장인인 심온을 죽이는 데 앞장선 중전의 원수 박은이었으며, 18년간의 영의정으로서 세종을 보좌한 황희는 세종이 세장에 책봉되는 것을 끝까지 반대하다 귀양을 간 세종의 '정적'이기도 했다. 이 밖에도 맹사성, 허조, 조말생, 최윤덕, 김종서, 최만리 등 당대의 명신들은 세종에게 서슴없이 반대 목소리를 냈던 인물이다."(121쪽)

 

특히 세종은 중전 소헌왕후를 사랑했다. 그런데 그토록 사랑했던 중전 아버지인 심온을 죽인 박은을 집현진 첫 수장에 앉혔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세종이 사람을 쓸 때는 공과 사를 따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인사정책은 정보의 '정'자도 모르는 사람을 국정원장에 앉혔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수첩인사'라는 비판을 받는 박근혜 대통령과 달라도 정말 다르다.

 

이조판서, 우의정을 지낸 허조 반대에 지친 세종은 "허조는 정말 고집불통이야"라고 토로했지만, 세종은 그를 썼다. 이유는 "강력한 반대자가 있어야 비로서 리더는 자신의 판단력에 의문을 던지게 되기"때문이다. 세종은 한 마디로 자기 정책에 '딴죽'거는 신하를 좋아했다. 허조 같은 반대자가 있었기에 세종이 추진한 정책은 더 튼튼해졌고, 정치가 더욱 견고해질 수 있었다. 만약 이명박 전 대통령이 최대 업적인 '4대강사업'을 감사원과 한나라당(새누리당)이 야당과 시민단체만큼은 아니더라도 50%만 반대했더라면 22조원이라는 혈세를 낭비하거나, '4대강 죽이기 사업'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무지렁이 백성 말도 들었던, 세종

 

박근혜정권도 별 다르지 않다. '대통령 지시'만 떨어지기를 바란다. 대통령에게 "이건 안 됩니다"라고 반대하는 이들을 볼 수 없다. 대통령과 다른 생각을 입밖으로 내지 못한다. 감히 대통령에게 다른 생각을 말하는 것은 '불경'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새다. 왜 박근혜 정부에는 허조가 없는가?

 

세종이 천재라고 생각하는가? 역사기록을 보면 세종은 분명 천재 소질이 있었다. 하지만 세종은 반대자들과 비판자들과 끊임없이 논쟁했다. 자신이 부족함을 안 것이다. 김준태는 "군주 스스로 자신이 완벽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기 손으로 더 이상의 발전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라며 "거기에다 사사건건 신하들의 선생 노릇을 하려 든다면 경박해 보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세종은 누구처럼 '깨알지시'하는 군주가 아니었다.

 

세종은 끊임없이 듣는 군주였다. "설령 무지렁이 농부의 말이라도 반드시 들어 보아서 말한 바가 옳으면 채택하여 받아들이고,적절하지 않은 말이라 해도 절대 죄를 주어서는 안 된다. 이는 임금이 저지를지도 모르는 오류를 미리 막고, 자칫 놓치기 쉬운 백성들의 사정을 확이하며, 나아가 임금 자신의 지혜를 넓히기 위해서이다."(117쪽) 라고 말한 이가 세종이다. 이에 비해 박 대통령은 1시간 동안 '깨알지시'를 할 정도로 자기 할 말만한다. 듣지 않는다는 말이다.

 

1시간가량 진행된 국무회의는 거의 박 대통령 발언으로 채워졌다. 신임 장관들은 포부와 각오를 밝힌 뒤 박 대통령 지시사항을 받아적었다.-3월 12일 <경향신문> 1시간 회의 내내 대통령 발언… 장관들은 지시사항 받아 적기 바빠

 

이런 박 대통령 깨알지시에 대해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지난 17일 민주당 원혜영 의원이 주도하는 '혁신과 정의의 나라' 포럼에서 "참모의 창조성 죽이는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박 대통령이 지시만 하는 대통령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취임한지 다섯 달이 넘었지만, 직접 국민 앞에 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다.

 

세종이 위대한 군주가 된 이유는 바로, 문제가 터졌을 때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고, 비판하는 신하를 많이 두었으며, 항상 열린 귀를 가졌기 때문이다. 세종 치하에 살았던 조선 백성들이 부러운 이유다. 우리는 과연 5년 후 이런 지도자를 뽑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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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이탈리아로 돌아올 수 있을까 | 예술 2013-07-20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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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모나리자는 왜 루브르에 있는가

사토고조 저/황세정 역
미래의창 | 2013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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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빈치는 과학과 예술분야 모두에서 탐욕스러울 정도로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맸던 사람이다. 미술분야에서 그가 처음으로 시도한 것은 모두 서양미술사에 기록될 만한 기념비적인 것들이다. 그는 성서 속 인물들을 그릴 때 머리 뒤에 후광을 그리지 않은 최초의 화가였다."(존 캐리가 쓴 <지식의 원전> 중)

존 캐리 주장이 아니더라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1452~1519)가 남긴 <최후의 만찬> <그리스도의 세례> <모나리자> <세례자 요한> 따위 작품만으로도 그의 위대성은 영원할 것이다.

다 빈치는 이탈리아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남긴 <모나리자>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 궁금하다. 이것만 아니라 다 빈치 남긴 작품 탄생 배경과 밝혀지지 않는 숨은 이야기들도 궁금하다.

책 <모나리자는 왜 루브르에 있는가>(미래의창)은 우리들 궁금증을 풀어준다. <피렌체 미술산보> <르네상스에 살았던 여성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만능의 천재를 찾아서> 같은 작품을 남긴 사토 고조는 <모나리자는 왜 루브르에 있는가>를 통해 <모나리자> 실제 주인공은 누구이고, <최후의 만찬>은 몇 번이나 복원됐으며 <세례자 요한> 속 숨은 메시지는 무엇인지를 밝혀주는 '다 빈치를 찾아 떠나는 이탈리아 예술 기행문'이다.

우리 옛말에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는 말처럼 다 빈치는 어릴적부터 천재성을 드러냈다. 14살 때 안드레아 베르키오 공방에 들어갔고, 메데치 가문 의뢰를 받아 피에로 묘비 제작에 참여하고, 스무 살에는 스승 베로키오 작품인 <그리스도의 세례>에 조수로 참여했다. 이때 독립해 <수태고지> <동방박사의 경배> 등을 그렸다. 다 빈치는 그림에만 천재성을 보인 것이 아니라 건축설계도 특출함을 드러냈다. 대표 작품이 밀라노 나빌리오지구 운하다. 교황 아들은 그를 인정해 기술 감독으로 불렀다.

"1499년 9월, 루이 12세가 이끄는 프랑스 군대가 밀라노 공국을 점령했을 때, 지휘관들 중에는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아들 체사레 보르자도 있었다. 그는 밀라노에서 다 빈치가 설계·계량한 운하를 보고 크게 감탄하여 훗날 다 빈치를 '건축 기술 총감독'으로 불러들이기도 했다."(본문 21쪽)

다 빈치가 죽은지 20년 후 프랑수아 1세를 섬겼던 피렌체 조각가 벤베누토 첼리니는 <예술론>에서 왕이 다 빈치를 "나는 조각·회화·건축 어느 분야든지 레오나르도만큼 많이 알고 있는 자는 이 세상에 없으며, 또한 그가 위대한 철학자였다고 믿는다"고 했다. 조각·회화·건축을 넘어 철학자 반열까지 오른 다 빈치를 찾아나서는 <모나리자는 왜 루브르에 있는가>는 읽는 이들로 하여금 존경심을 이끌어낸다.

<모나리자>와 함께 다 빈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최후의 만찬>은 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 성당 수도원에서 그렸다. 크기는 무려 가로 8.8미터, 세로 5.5미터로 대작이다. <최후의 만찬>은 1494년 수도원 식당 벽에 예수가 최후의 만찬을 나누던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라고 말한 것을 극적으로 그리라는 의뢰를 받고 그렸다.

"레오나르도는 처음 구상한 것처럼 누가 주님을 배신할지 궁금해 하는 사도들에게 덮친 불안과 걱정, 두려움을 훌륭하게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사도들의 얼굴에는 사랑·공포·분노 그리고 예수의 마음을 다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큰 슬픔이 감돌고 있다. 또한 이에 버금가게 유다의 완고한 태도·증오·예수를 배신하는 모습이 대조적으로 잘 표현되었다. 작품 속의 인물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그려져 있고 식탁보 원단의 질감까지도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어 실제 린넨 천보다도 훨씬 실물에 가까워 보였다."(본문 64쪽)

이렇게 위대한 작품은 탄생했다. 하지만 다 빈치가 죽고나서 123년이 지나자 습기와 침식때문에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이후 복원 작업이 이뤄졌는데 1726년, 1770년, 1946년, 1979년이다. 1999년 20년 복원 작업끝에 현재 모습을 갖췄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 주목할 점은 2차대전 때인 1943년 8월 16일 연합군이 밀라노를 대공습했을 때 수도원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후의 만찬>만 남았다.

"벽화가 살아남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공습이 있기 며칠 전,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의 신부들이 만약 공습이 발생하더라도 <최후의 만찬> 만큼은 지켜내야 한다며 벽화의 앞뒤 벽에 천장까지 흙 포대를 쌓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최후의 만찬>을 볼 수 있는 것은 모두 이러한 성당의 신부들의 노력 덕분이다."(본문 69쪽)

위대한 작품은 그리거나, 만든 이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할 때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음을 <최후의 만찬>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 <모나리자>를 보자. 모나리자는 세가지 이름이 있다. 이탈리아는 '라 조콘다', 영어는 '모나리자', 프랑스어는 '라 조콩드'다. 과연 모나리자는 누구일까? '모나'는 유부녀 이름 앞에 붙이는 이탈리아어 경칭이고, '리자'는 초상화 모델 이름이다. 우리 이름으로 하면 '리자 여사'"쯤 된다.

그럼 모델은 누구일까? 피렌체 유력자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의 아내인 리자라는 주장이 많다. 2008년 1월 14일,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도서관 측은 다 빈치 <모나리자> 모델이 피렌체 어느 거상의 부인이라는 증거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1530년 10월에 피렌체 시 관리가 고서적의 여백에 "다 빈치는 세 장의 그림을 제작 중이며, 그 가운데 하나는 리사 델 조콘도의 초상화다"라고 적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더 중요한 것은 모델이 누구인지 몰라도 이탈리아 고고학자인 카시아노 달 포초가 1625년 <모나리자>를 본 소감은 지금도 똑 같은 느낌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그림이었다. 그림이 스스로 말을 하지 않는 것만 빼고는, 그 밖의 모든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그림을 보는 이는 누구나 그 마력에 빨려들고 만다."(본문 120쪽)

그럼 <모나리자>는 어떻게 이탈리아가 아닌 프랑스에 갔을까? 다 빈치가 1516년 프랑스로 이사가면서 모나리자를 가져갔다. 이후 프랑스 귀족과 루이 14세·16세 그리고 나폴레옹을 거치면서 루브르까지 가게 된다.

"<모나리자>는 1700년대 초 '태양왕'이라 불린 루이 14세 거처인 베르사유 궁전 살롱을 옮겨졌다. 루이 15세는 <모나리자> 미소를 싫어했고, 그림을 수행원 방으로 옮겼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모나리자>는 왕가 재산들과 함께 오랑주리의 지하 왕실 창고에 숨겨졌다고 한다. 그후 나폴레옹이 궁전 안에 박물관을 설립하자 그곳으로 옮겨져 공개 전시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루브르 박물관의 시초가 되었다."(본문 중에서)

<모나리자>는 한 때 이탈리아로 다시 돌아갔다. 지난 1911년 도난됐다가 2년 뒤 루브르 박물관에서 일한 적이 있던 이탈리아인의 피렌체 집에서 발견돼 우피치 미술관과 로마에서 잠시 전시된 뒤 루브르 박물관으로 반환되는 우여곡절을 겪는다.

한편, 지난해 8월 이탈리아 역사·문화·환경유산 국가위원회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보관된 모나리자를 이탈리아로 반환하기 위한 서명운동에 15만여 명이 참여했다"며 오렐리 필리페티 프랑스 문화장관에게 모나리자 반환을 공식 요청했다. 하지만 루브르 박물관측은 이탈리아 요청을 거부했다. <모나리자>는 이탈리아로 돌아갈 수 있을까? <모나리자> 가치를 아는 루브르 박물관이 되돌려 줄리는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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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생명 빼앗는 '노란 병'은 이제 필요없어요" | 어린이 2013-07-20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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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뢰밭 아이들

앙젤 들로누와 글/크리스틴 들르젠느 그림/김영신 역
한울림어린이 | 2013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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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2일 국제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은 '시리아 내전'에 대한 아동 인권 보고서를 펴냈다. 보고서는 "시리아 어린이 3명 가운데 1명이 폭행이나 총격을 당했고, 4명 가운데 3명은 주변인들의 사망을 경험한 것으로 확인된다"고 밝혔다. 시리아 내전만 아니라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전쟁이 일어나면 어김없이 어린이는 위험에 가장 먼저 노출된다. 폭탄은 어린이라고 해서 피해가지 않는다.

전쟁이 끝나도 아이들을 위협하는 무기들은 많다. '잔류 폭발물'로 불리는 불발탄과 지뢰다. 아프가니스탄, 보스니아 헤르체고바, 캄보디아, 콜롬비아, 이라크, 수단 등등 90여개 나라에는 수많은 잔류폭발물이 있다. 얼마나 많으면 '지뢰밭'이라고 할까. 해마다 이들 폭발물로 1만 5천에서 2만 명이 숨진다. 그 중 20%가 어린이다.

기사 관련 사진
 지뢰밭 아이들
ⓒ 한울림어린이

 


아이들에게 모든 것은 신기하다. 지뢰도 마찬가지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한 순간 아이들 생명을 빼앗아가 간다. <뽀뽀>, <뿡, 너 방귀 뀌었지?> <아이고, 오줌 마려워>를 통해 아이들과 낯 익은 앙젤 들로누와가 쓰고, 크리스틴 들르젠느가 그린 <지뢰밭 아이들>(한울림어린이 펴냄)은 40쪽 밖에 안 되지만, 어른이 저지른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지 낱낱이 고발하고,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반드시 선물해야 할 것은 '평화'임을 위한 말한다. '평화의 다큐멘터리'인 셈이다. 

열한 살 마르와는 부모님과 할아버지 그리고 할머니 그 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더 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때부터, 아주 오랫동안 '전쟁'을 모르고 살았다. 하지만 어느 날 비행기들이 "무서운 벌 떼처럼 윙윙거리"며 마을 위를 지나가면서 "커다란 회색 물건을 쉴새 없어 떨어" 뜨리고 갔다. 경찰관은 마르와와 동무들에게 찾아와 회색 물건을 만지지 말라고 했다. 무시무시한 말이었다.

하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마르와와 아마드는 공놀이를 하기 위해 숲속으로 갔다. 그때 아주 예쁜 '노란 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드와 나는 숲 속에 들어갔다가 반짝반짝 빛나는 노란 병을 발견했어요. 아마드가 그 병을 집어 드는데, 빛이 번쩍이더니 뜨거운 불길이 일었어요. 수천 개의 날카로운 조각이 내 얼굴과 가슴과 팔에 박혔어요. 아마드는 팔 하나와 다리 하나를 잃었어요. 더 이상 예전처럼 걷지도, 달릴 수도 없게 되었지요."

이제 아마르는 더 이상 축구를 할 수 없다. 예쁜 노란 병이 아마드 팔과 다리를 빼앗가버리 것이다. 어른은 탐욕으로 증오와 죽임을 만들었지만, 마르와는 지구 저편 "전쟁을 모르는 곳"에 사는 동무들에게 평화가 얼마나 고귀한 지 전하고 싶어 <지뢰밭 어린이>란 제목 편지를 썼다.

기사 관련 사진
 지뢰밭 아이들
ⓒ 한울림어린이

 


"나는 한 번도 전쟁을 겪어 보지 못한 친구들에게 우리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우리 이야기를 통해 모든 아이들이 두려움에 떨지 않고 세상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혹시라도 노란 병을 만날지도 모를 사람들을 위해 우리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비록 "세상에서 제일 뛰어난 의사 선생님도 아마드의 사라진 팔다리를 되돌려 줄 수 없습니다. 아마드는 팔 하나와 다리 하나를 절단해야 했지"만 마르와는 다른 동무들은 아마드처럼 팔과 다리를 잃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어른들이 전쟁을 만들었다면, 마르와와 아마다는 평화를 만들어 나간다.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란다.

"아마드는 작은 일부터 시작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큰 일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시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지뢰밭 아이들>은 어른들 머릿속에서는 나오는 평화에 대한 그 어떤 담론보다 가슴에 와닿는다. 전쟁을 평화로, 미움을 사랑으로, 증오를 화해로 만들어가는 마르와는 이름 모르는 지구라는 땅을 밟고 사는 아이들에게 편지를 쓴다.

"내 이름은 마르와예요. 나는 열한 살이고, 얼굴과 팔에 흉터가 많아요. 내 친구 아마드의 용기를 자랑하고 싶어서 우리 이야기를 했어요. 모든 아이들이 두려움에 떨지 않고 세상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요. 한 번도 전쟁을 겪어 보지 못한 친구들에게 우리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혹시라도 노란 병을 만날지도 모를 사람들을 위해 우리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아마드 팔다리를 빼앗가 '노란 병'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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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뢰밭 아이들. 1년에 1만-2만명이 지뢰같은 잔류 폭발물로 숨진다. 이들 중 20%가 어린이다
ⓒ 한울림 어린이

 


'노란 병'은 축구장보다 더 넓은 지역을 한꺼번에 초토화시킬 수 있는 '집속탄'이란 폭탄으로 항공기에서 쏟아져 나온 큰 폭탄이 공중에서 수백 개의 작은 폭탄으로 나뉘어 폭발하는 무시무시한 폭탄이다. 큰 폭탄(엄마 폭탄) 속에 작은 폭탄(아들 폭탄)이 여러 개 들어 있다고 해서 모자 폭탄이라고도 불린다.

특히 노란 색깔에 음료수 캔만 한 크기여서 아이들은 '노란 병'이라고 부른다. 한때 연합군에서 뿌린 구호 식랭팩과 색깔이 같아서 아이들에게 큰 위협이 되기도 했다. 아이들은 특유의 천진함과 신기한 물건을 만지고 싶은 호기심 때문에 더더욱 쉽게 위험에 빠지고 있다. 놀랍게도 우리나라는 집속탄 세계 2위 생산국이라는 불명예를 가지고 있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 몸을 해하는 노란 병 생산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책은 앞뒤 면지에 제주도 있는 '곶자왈 작은 학교' 아이들이 쓴 글이 실려있다. 그 중 하나를 옮긴다.

"평화는 '무기'를 싫어한다. 다툼은 할 수 있지만 다툼에 무기가 들어가면 전쟁이 터지기 때문이다. 나는 평화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몇몇 사람에게만 평화가 있다면 그것은 평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평화의 '평(平)'은 공평할 평! 평화의 뜻처럼 모든 사람에게 평화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평화가 공평하지 않다. 어떤 곳에서는 정말 평화롭지만 어떤 곳에서는 지금도 전쟁과 분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초5 하00)
'평화는 '마음 껏 뛰어노는 거'"(초3 김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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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서부터 직접 행동과 실천을 | 정치 2013-07-20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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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금, 여기의 아나키스트

김성국 등저
이학사 | 2013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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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

'무정부주의자'는 민주공화정이 흔들리는 2013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어떤 이들에게는 자신의 가슴에 아로새겨 현실 정치에서 이루고 싶은 단어일 것이다. 올해만 아니라 우리는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전두환 군부독재를 경험했고, 민주선거로 뽑힌 이명박정권도 반민주주의 행보를 보였다. 무엇보다 국가정보원이 부정선거를 통해 정치에 개입했다. 이 모든 것은 인간 본성과 양심을 억압하고 탄압한다.

"나의 양심은 나의 것, 나의 정의는 나의 것, 나의 자유는 최고의 자유"

푸르동(Pieer Joseph Proudho)은 "나의 양심은 나의 것이고, 나의 정의는 나의 것이고, 나의 자유는 최고의 자유"라고 했고, 크로포트킨(Peter Kropotkin)는 "민중은 권력에 쉽게 굴복하지만 그렇다고 권력을 숭배하지는 않는다"고 천명했다. 사회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로 '변화'(변절이 아님)한 고토투 슈스이는 일본군국주의를 이렇게 비판했다.

"그는 애국심이란 국민의 허구와 미신의 결과이며, 애국주의란 야수의 천성이자 미신이요, 광란이자 허구이며, 호전적인 마음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군국주의와 애국주의를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관계로 보아 함께 부정했고, 세계주의에 기초해 민족과 조국을 초월한 보편적 인류애를 강조했다."-'책세상문고 우리시대 029' 조세현의 <동아시아 아나키즘, 그 반역의 역사>(28쪽)

이들 말을 종합하면 인간 자체를 지독히 사랑하고, 체제와 구조, 권력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2013년 대한민국은 인간 자체를 존중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이 권력을 사유화하는 일까지 범하고 있다. 국가와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 주장과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다. 인간 자유와 양심을 지독히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 '당연한'것처럼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기사 관련 사진
 지금, 여기의 아나키스트
ⓒ 이학사

 

과연 우리는 "나의 양심은 나의 것이고, 나의 정의는 나의 것이고, 나의 자유는 최고의 자유"를 꿈꾼 푸르동이 바란 세상을 이룰 수 없을까?

"아나키스트의 저항 전선과 연합 전선은 모든 형태의 폭력적 억압을 거부하고 제거하는 데 집중한다. 나아가 상호부조와 협동을 통해서 자주 관리, 자치 질서, 자율 선택의 아나키 사회를 건설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아나키스트의 반폭력주의와 협동주의는 국가권력과 충돌하고 자본 논리를 공격하지 않을 수 없다."<지금, 여기의 아나키스트>(7쪽)

<지금, 여기의 아나키스트>(이학사)는 한국아나키즘학회가 주도한 아나키스트 협동 작업의 첫 작품으로, 한국 사회를 향한 '지금, 여기'의 아나키스트 열넷 사람 목소리를 담은 책이다.

아나키스트, 반폭력주와 협동주의

우리는 아나키스트를 현실을 무시한 이상주의라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민족주의와 국가주의가 견고한 나라는 더더욱 그렇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논쟁에서도 드러났듯이 모두가 '국익' 우선이다. 노무현을 비판하는 자들은 국익을 저버렸다 하고, 노무현이 NLL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반박하는 이들은 국익을 저버린 것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노무현 발언 속에 우리가 간과하면 안 되는 것이 바로 '평화'다. 평화는 내 편 네 편 모두가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고, 폭력을 거부한다. 이를 확대시키면 '국가주의'와 애국주의를 거부하면서 온 인류가 함께 살아가는 인류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다. 물론 노무현은 여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지금, 여기의 아나키스트>는 지금 당장 전 인류가 평화공동체를 이루자는 것은 아니다. 아주 작은 것에서 출발해보자고 제안한다. 아나키스트가 시대착오적인 공허한 이상주의가 아니라 "현실에 적용 가능하며, 작은 목표일지라도 현실 개선을 위한 구체적 대안을 준비하자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아나키스트 경제', '아나키스트 정치', '자유 공동체와 통일 문제', '민주주의의 급진적 확장으로서의 아나키즘', '공동체 운동과 아나키즘', '지역 통화 운동', '장애인 노동' 등 다양한 주제와 분야에서 아나키즘의 사유와 원리를 실천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NLL를 평화지역으로 만들려고 했던 노무현도 거대재벌의 폭력과 압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오히려 재벌은 이제 '00공화국', '00제국'이란 이름처럼 공화정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요즘 논란이 되는 '갑을관계'는 말할 것도 없다. 10%대 90%를 넘어, 1%대 99%대 사회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계급'을 인정하지 않지만, 우리 사회는 이미 '신계급사회'에 발을 내딛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이같은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더 많을 것이지만. 우리 사회는 양극화란 중병을 앓고 있다.

'신계급사회' 진입한 한국사회...반권력과 자유해방을 위해

김성국은 '한국 경제를 위한 아나키스트 대안'에서 "오늘의 한국 경제를 '중병을 앓으면서도 아직 괜찮다고 믿는 환자로' 규정"한다. 한국 경제 올바른 회생을 위해 그는 세 가지 아나키스트 처방을 내린다.

"일자리 나누기, 권력형 부정부패 청산, 탈물질주의의 생활화다. 이 처방들은 상호부조의 협동의 원리, 강제와 폭력을 거부하는 반권력의 원칙, 자유해방을 위한 자기 조직이라는 아나키시트 원칙에서 도출한 것이다."(26쪽)

한국 사회가 신계급 사회에 진입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지금 같은 양극화가 지속되면 어떤 상황으로 치닫게 될지 모른다. 그러므로 일자리를 나누고, 권력형 부정부패 청산과 탈물질주의 생활하는 인간의 자유로운 삶을 열어주는 길이다. 문제는 기득권 최정점에 있는 이들이 자신들의 견고한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점이다. 함께 살자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가 반권력과 자유해방으로 나아가자는 김성국 호소가 왠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그럼 자포자기할 것인가? 아니다. 강동권은 '아나키스트 정치 구상'에서 "우리가 '아나키스트 정치'를 통해 '모든 폭력과 강압으로부터 해방된 자율적인 인간이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공동체'인 '아나키스트 사회'를 만들어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그 방법은 '직접행동'이다.

"아나키즘의 이념은 직접행동을 통해 표출되고 실천되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도시 광장의 공론장과 인터넷 공론장이 유기적으로 결합되고 서로 피드백이 이루어지면서 시민 참여의 직접행동의 장이 지속적으로 열리며 확대되고 있다. 아나키즘은 직접행동을 통해 이론과 실천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혁명과 혁신을 현장에서 만들어온 오랜 전통이 있다. 따라서 우리가 '아나키스트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아나키스트 사회'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아나키즘의 오랜 전통인 직접행동이 필요하다."(67쪽)

"지금, 여기"에서부터 직접행동과 실천을

그렇다. 민중이 직접 나서야 한다. 양심과 정의 그리고 자유를 가진 민중이 직접 나서야 한다. 원래 국가와 권력은 민중이 양심과 정의, 자유를 꿈꾸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그것을 실현하는 것을 국가에 반하는 것이라면 탄압한다. 독재정권만 아니라 민주정권도 차이만 있을뿐, 국가라는 존재 자체가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민중이 직접행동하지 않으면 국가와 권력은 변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특히 2013년 7월 현재 대한민국 인민들은 직접행동을 통해서만이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음을, 양심과 정의와 자유를 지킬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NLL은 피로 지켜왔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피로 지키는 NLL이 되어서는 안 된다. 노무현이 제안한 것이 절대진리는 아니지만, 그가 추구했던 '평화'는 분명 이명박과 박근혜 그리고 이 땅의 반공세력을 지배하는 '반공주의'와는 다르다. 한반도 통일에도 아나키스트 정신이 필요함을 <지금, 여기의 아나키스트>는 말한다.

통일은 민중을 위한, 민중 스스로가 주체

이문창은 '분단 시대 한국 아나키스트 운동과 자유공동체'에서 "분단 체제로 인해 정치적 부자유, 경제적 불평등의 억눌림 속에서 사는 공동 운명체로서의 남북의 풀뿌리 민중에게 '자유공동체 운동'"이 대안임을 제시한다.

"통일은 당연히 처음부터 이 땅을 지켜온 민중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따라서 통일을 되찾는 사업 또한 앞으로도 이 강산의 주인 노릇을 해야 할 우리 민중 스스로 몫이라는 데 대한 깊은 통찰 위에서 출발해야 한다(중략) 내 운명의 조타수는 바로 나뿐이라는 데 대한 민중의 깊은 자각이 요구되는 소이가 바로 여기에서도 존재한다. 지금이야말로 민중이 민중 자신의 생존권을 위해 이 땅의 주인 자리를 되찾느냐 영원히 노예의 쇠사슬에 묶여 지낼 것이냐의 분기점임을 맹성해야 할 때다."(129쪽)

이문창이 제안한 '자유공동체 운동'을 통한 통일은 생경하다. 그러나 읽어보니 가슴이 뜨거워진다. 민중이 통일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 땅의 주인은 바로 민중이기 때문이다. 조국 해방 이후 민중은 이 땅의 주인이 아니었다. 그 결과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NLL논란을 보라. 거기에는 민중이 없다. 민중이 나서서 통일을 이룰 때 영원한 노예에서 벗어날 것이다. 이같은 통일은 국익을 입에 달고 사는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방식이겠지만, 지향해야 할 통일방식이다.

<지금, 여기의 아나키스트>는 '지역공동체를 살리는 지역 통화' 에서 "지역 통화는 자본주의의 취약점인 인플레이션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막을 수 있다"면서 자본주의 경제 문제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지역통화를 제시한다. 또 "장애인을 발생시킨 자본주의 체제가 근본적으로 안고 있는, 무한 경쟁을 통한 착취와 억압의 구조적 모순의 위기를 탈중심적인 공동체연합, 국가주의의 거부, 직접민주주의, 자유주의적 공동체 사회 건설 따위"를 '아나키즘의 기본 이념을 통해 극복하자고 제안하는 정중규의 '장애인 노동의 르네상스를 꿈꾸며' 같은 글들을 만나 볼 수 있다.

"지금, 여기"에서부터 작은 실천을 할 때 우리는 "나의 양심은 나의 것이고, 나의 정의는 나의 것이고, 나의 자유는 최고의 자유"가 실현되는 '자유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이상주의인가? 도전도 하기 전에 포기하기에는 2013년 7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인간의 자유와 양심 그리고 정의가 너무 착취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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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율 높을 때 사람들은 더 안락했다네 | 사회 2013-07-20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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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부의 독점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샘 피지개티 저/이경남 역
알키 | 2013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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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으로 30인 미만 영세기업의 추가 인건비 부담액은 1조 6천억원에 달한다기업·소상공인에 부담을 주게 됐다."(경총)
"시급 5,210원은 소득분배율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화시키는 정책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소득 분배율 개선을 공약(公約)으로 제시한 바 있지만 사회 양극화만 가속시키는 최저임금 결정으로 결국 공약(空約)에 머물렀다"(민주노총)

지난 5일 내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7.2%(350원) 오른 5천210원으로 결정되자 경영자총연합회와 민주노총이 내놓은 반응입니다. 최저임금으로 김치째기 한그릇도 사 먹기 힘듭이다. 참고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한달 꼬박 일하고 받는 돈은 132만원 정도됩니다. 1년이면 1584만원입니다. 350원 올려주는 것도 아깝다는 재계를 보면서 문득 지난 4월 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이 공시한 지난 해 우리나라 회사원 평균 연봉이 떠오릅니다.


대한민국 '양극화'... 비정규직 1584만원 vs 삼성전자 등기임원 52억100만원

SK텔레콤 (9천882만원), 현대차(9천433만원), 삼성전자(6천970만원), LG전자(6천338만원),대우조선해양(7천719만원), 삼성중공업(7천651만원)이었습니다. 그리고 등기임원은 삼성전자(52억100만원), SK이노베이션(41억200만원), 삼성중공업(36억8천200만원), CJ제일제당(31억8천만원), SK C&C(31억5천400만원), SK텔레콤(30억9천500만원)  현대자동차(22억9천900만원), LG(25억1천400만DNJS) 따위였습니다.-(4월 4일 <연합뉴스>직장인 연봉 톱 SK텔레콤…평균 9천882만원 기사 참고)

비정규직 1584만원과 삼성전자 등기임원 52억100만원. 최저임금 노동자가 삼성전자 등기임원만큼 돈을 벌기 위해서는 한푼도 쓰지 않고 328년을 모아야 합니다. 정말 삼성전자 등기임원이 비정규직 노동자보다 328배만큼 기업 우리사회 양극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중산층이 몰락했음을 방증합니다.

중산층은 몰락은 사람으로치면 허리가 무너진 것과 같고, 세대를 말하면 3040대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이 알 수 있습니다. 중산층 몰락은 우리만 아니라 미국도 비슷합니다. 미국은 1950년대를 전후해 '중산층 황금기'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중산층 황금기는커녕, 몰락해버렸습니다.

기사 관련 사진
 <부의 독점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 알키

 

몰락을 보면서 '탄식'만 아니라 중산층 부활을 위한 대안을 제시한 책이 한 권이 나와 주목받고 있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스>와 <로스앤젤레스타임스> 그리고 프랑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등에 기고하면서 '경제 불평등' 큰 관심을 보여 노동전문기자로 잘 알려진 샘 피지캐티(Sam Pizzigati)가 쓴 <부의 독점은 어떻게 무너지는가>(알키 펴냄)입니다.

90% 세율 물리면 경제가 무너진다?

부제 '슈퍼 리치의 종말과 중산층 부활을 위한 역사의 제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부와 권력에 겁 없이 도전한 보통사람들과 그들의 지지자들의 알려지지 않은 역사"와 "부자들이 그들의 엄청난 특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늘어놓은 견강부회"를 파헤칩니다.

"부자들에게 90퍼센트의 세율을 물리면 당장이라도 경제가 무너질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이 현재 미국 정계의 통념이다." (본문 17쪽)

"부자들에게 90퍼센트 세율 물리면 당장이라도 경제가 무너질 것으로 생각한다"는 말은 어디선가 많이 들었던 말입니다. 정부가 공제감면 일몰 도래 시 원칙적 폐지라는 방침을 세우자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15일 '법인세 관련 공제감면제도 기업 체감도 조사'(194개 대기업 대상) 결과를 통해 "급격한 공제감면제도 축소는 어려운 경제상황을 더욱 어렵게 할 수 있으므로 일몰 도래 시 원칙적 폐지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15일 <파이낸셜뉴스> '대기업 80% "법인세 공제감면 연장을"' 참고

<파이낸셜뉴스> 같은 기사에 따르면 한 재계 고위관계자는 "기업 관련 공제감면제도의 급격한 축소는 어려운 경제상황을 극복하려는 기업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세금을 조금이라도 올리면 경제계만 아니라 보수언론도 난리가 납니다. 그럼 세율을 올리면 경제가 파탄날까요? 피지개티는 단호히 말합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미국 경제는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 경제 상황은 아주 좋았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특히 좋았다. 1950년대 미국의 보통 사람들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존재였다. 이들이 바로 '중산대중mass middle class'이다. 대다수의 국민이 안정과 안락을 누리는 사회에서 살았던 시기가 바로 이때다." (17쪽)

세율 높을 때 미국 경제 안 무너졌고... 대다수 국민 안정과 안락 누려

세율을 올리면 경제가 무너진다는 부자들 논리는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MB정권='부자감세정권'으로 불릴 정도로 이명박 정권은 부자감세를 했습니다. 감세를 하면 부자들이 지갑을 열어 경제를 살린다는 논리였습니다. 하지만 그 돈은 서민들에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피지개티는 미국이 불평등사회가 된 것은 "21세기에 들어선 이후 미국인은 전대미문의 테러, 수조달러를 쏟아부어야 했던 전쟁, 그리고 대공항 이후 가장 규모가 큰 금융대지진 등 너무 많은 충격을 경험했다"면서 "그 결과 미국은 더 불평등해졌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부유층은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계속 재산을 계속 불려나가는 반면 평범한 사람들은 예전의 안정적인 생활을 되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그런 나라"가 되었다고 지적합니다.

미국 부자들이 1961년과 2009년 낸 세금을 비교하면 미국 사회가 얼마나 부자들을 위해 세율을 매겼는지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1961년에 전국 400대 고소득 신고자들은 요즘 가치로 평균 1,400만달러의 소득을 신고하고 평균 42.4퍼센트 연방소득세를 냈다. 이에 비해 2009년 대침체 기간에 400대 부자들이 올린 소득은 평균 2억 240만달러인데 겨우 19.9퍼센테를 연방소득세로 냈다. 물가상승률 감안한 금액으로 따져보면 요즘 400대 부자들은 반세기 전보다 거의 15배나 많은 소득을 올리지만 세금은 그때의 절반도 내지 않는 셈이다."(16쪽)

이렇게 반세기 만에 미국은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중산층은 가난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한 불평등국가가 됐습니다. 불평등 국가로 전락하자 "중산층 메카였던 캘리포니아는 고등교육에 투입하는 돈보다 더 큰 몫의 국가 예산을 감옥에 쏟아붓고 있다"고 피지캐티는 말합니다.

민주주의는 평등주의 지향 vs 금권주의는 특권 지향

문제는 민주주의와 금권주의가 함께 가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민주주의의 목표는 기회의 평등이고, 금권주의는 특권이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피지개티는 금권주의자들의 탐욕과 특권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데 "디자이너로 유명한 루이스 컴포트 티파니는 방이 무려 84개인 롱아일랜드 로렐턴 홀에서 150명 손님을 초대해 초호화 연회를 주최"하거나, "60미터짜리 요트를 구입했지만 몇 번 시도해 본 후 단념"했습니다.

불평등한 사회가 지속되면 될 수록 "미국은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역겹고 야만스럽고 한심한 국가가 될 것이 분명하다"고 지은이는 단언합니다. 미국을 빼고 '대한민국'을 넣어도 결론을 같습니다. 

"윌킨슨과 피킷은 불평등한 선진 사회에서 정신질환이 나타나는 비율이 평등한 나라보다 월등히 높다고 지적했다. 그런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평등한 사회에 비해 '감옥에 갈 확률이 5배나 높고, 병적 비만에 고통받을 확률은 6배나 높다.' 두 사회학자는 계속 설명했다.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불평등의 영향이 단지 극소수의 유복한 계층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영향은 대다수의 많은 사람에게 미친다.' (본문 517쪽)

이제 길을 찾아야 합니다. 월리스는 1944년 2월 시애틀에 모인 청중에게 "사람들이 알아야 할 정보를 충분히 확보하고 월스트리트의 이익보다 국가의 이익을 더 중요시하는 민주적 정부를 운영해갈 것인가, 아니면 월스트리트에서 돈을 받는 구시대의 정치가들이 워싱턴을 또 다시 월스트리트의 하수인으로 만들 것인가, 그것이 관건"이라고 말했습니다.

부자들이 언제나 승리하지는 않았다

민주주의는 금권주의에 자신의 권리를 내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민주시민은 평등을 지향하는 정부를 세울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 순간 그는 '빨갱이'로 전락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희망이요, 갈 길입니다. 아니 이렇게 가야 모두 더 안락하고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모두'에는 금권주의자 곧 슈퍼 부자들도 포함됩니다.

그럼 피지개티가 제시하는 대안은 무엇일까요? 세금을 부담할 여력이 충분한 사람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는, 상승률이 급격한 누진세율로 소득세율 90퍼센트 정책을 되살려야 한다는 혁명적 대안을 제시합니다. 90퍼센트 세금을 내도 부자들 소득을 지켜주고, 가혹한 세율을 피하기 위해 꼼수를 부리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피지개티는 이렇게 제안합니다.

"최고 세율과 최저 임금을 묶는다면, 최저 임금이 계속 오르는 한 부자들의 주머니에서 나가지 않고 굳는 돈은 더 많아질 것이다. 그 결과 부자들과 힘 있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데 남다른 관심을 가질 것이다. 우리는 이런 연결고리를 통해 연대 경제를 촉진시킬 수 있다. 금권주의 경제에서는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착취해서 더 부자가 된다. 최고 세율과 최저임금과 묶이는 연대경제에서는 부자들은 가장 가난한 자들을 옹호해서 더욱 부유해질 수 있다."(본문 524쪽)


불가능할 일까요? 포기는 금물입니다. 부자들 저항이 엄청나겠지만 책 원제가 그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The Rich don't Always Win'(부자들이 언제나 승리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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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성마비 이기고 교수된 이 사람, 참 괜찮습니다 | 에세이 2013-07-06 13:06
테마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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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

정유선 저
예담 | 2013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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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한 교회에서 부목사로 있을 때 만났던 장애인들이 모여 사는 작은 집이 있습니다. 이곳에 사는 분들은 대부분은 뇌성마비·자폐아를 가졌습니다. 이 분들을 만날 때마다 마음이 편안합니다. 아등바등하는 이도 없습니다. 자기 이익에 눈먼 이도 없습니다. 이 분들은 자신들 나름대로 꿈을 이루어갑니다. 그 꿈이 비장애인들이 보기에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때도 있지만, 참 고귀합니다.

이들처럼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비틀거리는 모습을 비웃고, 같이 출발했지만 다른 동무들은 벌써 저만치 달려갈 때 넘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기소개를 하고, 100미터를 달렸고, 뜀틀을 뛰어면서 '꿈'을 가졌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겉모습만 보고 "너는 안 해도 돼"라는 배려 아닌 배려와 "이건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라는 편견을 이겨내고 한국 여성 최초로 국외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버지니아 주 조지 메이슨 대학 교수인 정유선입니다. 그는 강의를 목소리 대신 보완대체 의사소통기기로 하는 데 일주일 내내 리허실을 합니다. 이를 아는 동료 교수들은 경의를 표했고, 메이슨 대학은 지난 해 '최고 교수'로 뽑았습니다.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예담)은 뇌성마비 장애를 이겨내고 "그 사람 참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찬사를 듣기까지 그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지 보여줍니다.

뇌성마비를 이겨내고 대학교수가 된 '참 괜찮은 사람', 정유선

"나의 걸음은 아직도 서툴고 흔들린다. 그래서 또 넘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흔들리는 걸음으로 지금까지 굽이 돌아가는 길을 당당하게 걸어온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나아갈 것이다. 꿈꾸는 대로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스스로 믿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면 내가 원하는 '참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고, '참 괜찮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기사 관련 사진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
ⓒ 예담

 

서툰 걸음 때문에 자주 넘어지면 그냥 좌절해버리고, 다른 사람이 나에게 도움만을 주기를 바라지만 그는 달랐습니다. 흔들리는 걸음으로 앞으로 당당하게 나아갔습니다.

그는 "뇌성마비가 '장애'가 아니라 "스스로 심리적 한계를 긋고 자신과의 싸움을 쉽게 포기해버리는 행위 그 자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 교수가 이런 생각을 넘어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뇌성마비 딸에게 늘 "교수가 돼라"며 "유선아, 네가 크면 멋진 집을 한 채 지어주마. 거기서 너는 장애인을 위해 좋은 일을 하거라. 아버지는 그 집의 수위를 할게"라고 말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또 "딸이 뇌성마비 판정을 받은 후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딸을 위해 끊임없이 동화책을 읽어주며 꿈을 심어준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정유선 교수 어머니 김희선 씨는 1960,70년대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안고, 연락선을 타고 가면 울릉도라, 뱃머리도 신이 나서 트위스트, 아름다운 울릉도!"를 부른 이시스터즈 멤버였습니다.

스스로 걷기는커녕 자기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딸에게 "교수가 돼라"는 아버지 말은 정말 '뜬구름'이고, 딸을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한 어머니때문에 정유선은 뜬구름같은 꿈을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혼자가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힘들과 괴로울 때 혼자가 아니었다

"내가 힘들고 괴로울때마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어떤 역경이나 고난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는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마음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고난과 역경이 없는 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는 "운명아. 덤벼라. 나는 도망가지 않는다. 나는 절대 등을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물론 정유선처럼 반드시 대학교수와 '최고 교수'가 되어야만 참 괜찮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가는 길은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남들보다 좀 더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걸을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아주 잘 닦인 아스팔트 길을 걸 수도 있다"는 정유선 말처럼. 장애를 가진 이, 장애가 없는 이, 많이 배운 이, 배우지 못한 이, 물질이 풍부한 사람, 그렇지 못한 사람. 다 다릅니다.

"비포장도로건 아스팔트건 누구나 자신의 길에서 장애물을 만나 부딪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장애물이 나타났을 때 등을 보이고 달아나느냐 맞서 넘어가느냐이다."

그 장애물을 넘고 넘어 산꼭대기에 분명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을 알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이들은 '나 혼자 만의 세상'을 꿈꾸지 않습니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갑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라는 것과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다는 정유선 말을 가슴에 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운명아, 덤벼라"...당당하게 나아가 '참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가자

기사 관련 사진
 정유선 조지메이슨대 교수가 강의하는 모습. 정 교수는 "나를 응원해주는 당신들이 있기에 나는 더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고 말한다.
ⓒ 예담

 


"나는 주어진 여건 속에서 충실히 살다보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다. 세상 사람들이 꿈을 이루어나가는 과정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하겠다."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나와 다른 운명에 굴복하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함께 같이 가자고 합니다. 눈으로 보기에 꿈꾸는 것이 다를지만, 가보면 같습니다. 함께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조지 메이슨 대학 최고 교수'가 너무 높아 함께 할 수 없는 정유선으로 생각하겠지만 그는 우리에게 "누구나 생각보다 뛰어나다,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마라"고 합니다. 편견 속에서도 당당하게 앞으로 살았던 정유선은 자신을 보고 다른 이들이 용기를 얻기를 바랐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비록 세상을 뒤흔들어 놓을 정도로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부족한 내가 꿈을 이룬다면 다른 이들도 용기를 얻을 것이라는 작은 소망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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