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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에는 안 나오는 진짜 한국 현대사 | 역사 2016-01-02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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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대한민국은 왜?

김동춘 저
사계절 | 2015년 10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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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1월10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는 것이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생각하면 참으로 무서운 일"이라며 "정부는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가 담긴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들겠다고 국민들께 약속드린 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역량있는 집필진 구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박근혜정권은 시민 50-60%가 반대하지만 역사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역사학자 90%가 좌파라고 하고, 자신들이 검인증한 교과서가 '김일성 주체사상'을 가르치고 았다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박정희 독재정권이 시작했던 역사 국정교과서가 부활하고 있습니다. '올바른'이란 이름으로 말입니다. 한 마디로 지금 교과서는 '올바르지' 않다는 말입니다. 역사를 '올바름'으로 판단하는 것은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가능한 일입니다.  북한이 국정교과서를 가르치는 이유입니다. 그들만이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역사, 특히 한국 현대사를 제대로 이해할 때 우리는 다시는 일제식민지와 독재 시대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입니다. 박근혜정권은 우리 역사를 위대하게 기록해야 한다고 강변합니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지금 삶이 '헬조'이라고 합니다. 헬조선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가진 정치인도 있습니다. '무상급식' 때문에 서울시장에서 물러난 새누리당 오세훈은 "요새는 '헬조선' 등의 표현도 서슴없이 튀어나온다. 젊은 사람들 가슴 속에서 자긍심을 찾아볼 수 없다'며 배부른 소리나 하고 있다고 강변합니다. 정말 배부른 소리입니다.

 

 

 

1945년 8월15일 조국은  '해방'됩습니다. 하지만 지난 70년간 이 땅은 친일부역자들과 그 후손들이 지배하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견고하게 대한민국 지배세력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왜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한국 학술연구 분야 제3세대의 선두주자로 손꼽히는 성공회대학교 사회학과 김동춘 교수는 그동안 연구자·사회운동가·정부 관리라는 세 가지 역할을 수행하면서 대한민국 현대사라는 기억 창고를 차곡차곡 채워왔습니다.  

 

 

 

마침내 대중들을 향해 창고 문을 활짝 열었다. <대한민국은 왜?>(사계절)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굴곡진 노정을 거슬러 오르며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구체적으로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합니다.

 

 

 

출판사는 <대한민국은 왜?>는 오늘날 한국 사회가 마주한 정치·사회의 여러 문제, 특히 보통의 국민이 겪는 고통의 역사적 배경과 국제정치적 맥락이라는 퍼즐을 맞추는 책이라고 합니다.

 

 

 

김동춘은 대한민국을 첫째는 한국 근현대사의 기본 과제다. 개화·독립·민권 국가 수립이 좌절되면서 친일파의 주도로 근대화가 시작됐고, 해방 후 이들은 통일을 포기하는 대가로 친미로 옷을 갈아입고 자리를 지켰다. 둘째는 대한민국의 국가 이념이다. 특히 1950년 10월 황해도에서 벌어진 '신천학살'을 겪으면서 남한은 '월남자들이 만든 나라', 기독교 반공주의가 국교인 나라가 됐다. 마지막은 한국 근대의 성격이다. 한국의 근대는 외세와 분단의 압박 속에서 진행되었고, 그 결과 경제는 성장했지만 이상과 희망은 제거된 반쪽 국가라는 세 가지 '틀'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김동춘은 이 틀 위에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대한민국을 주도해온 친일-친미-반공-성장 세력 본질이 무엇인지 밝힙니다.  이 책은 이미 짜인 근대화론에 맞춰 쓴 역사가 아니라, 처음으로 시도되는 '한국 근현대사 위에 다시 쓴 근대화 이론'이기도 하다고 출판사는말합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식민지의 친일 세력이 해방공간에서 친미를 선택하고 반공 세력이 경제성장에 목을 맨 이유 등 '대한민국'을 기획한 세력 실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친일 1910~1945: 일본의 성공이 곧 조선의 구원이요 기회

(ㄱ). 조선의 독립 문제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 애족적이고 인민의 복지에 호의적인 관심을 가진 더 나은 정부(일본)를 가진다면 다른 나라에 종속됐다 해도 재앙은 아닙니다.
(ㄴ). 일제의 식민지 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며 (…) 이조 500년을 허송세월로 보낸 우리 민족에게는 시련과 고난이 필요했다.

(ㄱ)은 1889년 12월 28일 윤치호가 쓴 일기의 한 대목이고, (ㄴ)은 2014년 국무총리 후보에서 낙마한 문창극의 발언이다. 둘 사이에는 120년이 넘는 시간 차이가 존재하지만, 내용은 한 사람의 것처럼 똑같다. 이처럼 ‘친일’은 사라진 역사가 아니라 생생한 현실이다.


1910년 8월 29일 조선은 일본 제국주의 앞에 전복됐고 식민지 지배가 시작됐다. 그런데 조선인 가운데 망국을 슬퍼하지 않고 일본이 지배하는 ‘개화 세상’을 기회로 여긴 이들이 있다. 친일 세력에게 식민 지배는 조선의 종주국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바뀐 것에 불과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윤치호다. 윤치호는 일제에 적극 협력하며 제국의회 칙선의원이라는 조선인에게 허락된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다. 그에게는 3?1운동조차 어리석은 일에 불과했다. 반면 독립.민권 세력, 특히 안중근 같은 급진파의 저항은 일제의 탄압으로 좌절됐다.

  
 2. 친미 1945~1950: 점령군의 깃발 아래서 다시 기회를 잡다

(ㄱ). 반도의 남반부에서나마 자유와 독립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우방 미국의 은혜이며 (…) 한국 국민, 그리고 우리 자손들은 미국의 온정에 대한 사의를 영원히 간직할 것입니다.
(ㄴ). 언제부터인가 ‘광복절’의 기년을 1948년 대신 1945년에 맞춤으로써 광복이라는 말이 가지는 참뜻이 상실되고 역사적 기억에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ㄱ)은 1949년 6월 8일 이승만 대통령 담화의 일부이고, (ㄴ)은 2015년 광복절을 앞두고 이인호 KBS이사장이 발표한 글이다. 둘 사이에서도 시간을 뛰어넘는 동질성을 찾을 수 있다.
1945년 8월 15일, 제국주의 일본이 항복을 선언했다. 곧바로 38선 이북 지역을 소련의 군대가 점령했고, 9월 8일 미국의 군대가 38도 이남을 점령하면서 새로운 예속이 시작됐다. 스스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하고 미소 양국에 분할 점령된 조선은 백성의 권리와 자주독립이 보장되는 새 국가를 건설할 힘이 없었다. 결국 한반도의 운명은 새로운 지배자인 미국의 의지에 따라 결정됐다. 일제가 패망하면서 절멸의 위기를 맞이했던 친일 세력은 미군의 통치에 발맞추어 친미로 옷을 갈아입고 기사회생했다. 그들은 일제강점기 동안 장악한 재화와 산업?생산 시설을 바탕으로 독립 세력을 제압하고 ‘애국자’로 행세하기 시작했다.

3. 반공 1950~1970: 반공의 시녀가 된 자유와 민주

(ㄱ). 한국민들이 자기 집이 파괴되는 것을 묵묵히 참고 차라리 가옥이 파괴될지언정 적에게 나라를 뺏기어 독립된 국가에서 자유민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원치 않는다.
(ㄴ). 금년에 북한 공산 집단이 무모한 불장난을 저지를 가능성이 농후해 (…) 국민 모두가 전사라는 결의를 다져야 한다.

두 문장의 주인공은 이승만과 박정희다. 둘은 13년, 18년 동안 대통령으로 재임하며 영구독재를 계획했다. 이들의 독재를 유지시켜준 전가의 보도가 바로 ‘반공’이다.
처참한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으면서 민중이 공산주의 공포증에 휩싸인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권력자에게 대중의 공포는 이용하기 좋은 먹잇감이 됐다. 이승만 시절에는 당시 특무대장 김창룡이 휘두른 칼춤이 강산을 피로 물들였다.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킨다는 명목 아래, ‘국민보도연맹 학살사건’을 비롯해 대통령의 정적 제거, 간첩 조작 등이 그의 손으로 진행됐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는 아예 반공을 국시로 내세웠다. 이런 나라에서 국민들은 간첩으로 의심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정권에 대한 불만을 드러낼 수 없었다. 권력이 외부에 머물지 않고 개인의 사상과 행동을 자기검열하게 한 셈이다.

4. 성장 1970~2015: 영원히 반복되는 선先성장의 신화

(ㄱ). 경제가 잘되어야 국민이 배불리 먹고 등 따듯하고 포실한 생활을 해야 정치가 안정되고 국방도 튼튼하게 할 수 있지 않은가?
(ㄴ). 재벌의 불법을 용인해야 경제가 살아나고, 정당한 슬픔과 분노를 벗어던져야만 먹고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는 말은 (…) 정치적인 속임수일 뿐이다.

(ㄱ)은 재벌 중심의 경제성장 정책을 설명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던진 질문이다. 꼭 질문에 대한 대답처럼 보이는 (ㄴ)은 작가 김훈이 2015년 1월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대한민국이 이룬 경제 기적의 배경에 미국의 1970년대 동아시아 전략과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지만, 주류 세력은 여전히 박정희의 지도력만을 강조한다. “박정희 시절이 가장 좋았다”는 말이 지금도 그들을 떠받치고 있다.
1949년 10월, 반민특위가 해산당하면서 일제의 침략전쟁에 협력한 기업주들도 모두 풀려났다. 이후 그들은 정부의 지원과 특혜를 받으면서 몸집을 키웠다. 정치권에 선을 댄 기업들은 원조 물자를 독점하고 정부가 보유한 외환을 대부받으면서 재벌로 변신했다. 박정희 정권은 미국의 전략에 따라 일본의 사과와 배상 요구를 포기하는 대가로 ‘청구권 자금’을 받았다. 경제 개발을 위해 과거사 청산의 뚜껑을 덮어버린 것이다. 그 돈은 고스란히 재벌 기업으로 흘러갔다.

그럼 떠나야 합니까? 박근혜와 그 세력들은 '위대한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하지만 많은 젊은들이 '헬조선'이라고 생각하는 대한민국을 떠나야 합니까?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동시대 지식인의 기록이며, 이 땅의 시민들이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국가에 대한 참회록인 <대한민국은 왜?>가 그 작은 답을 주고 있습니다.

 

 

 

친일의 후예이고, 친미의 후예이며, 반공과 성장의 후예들이 지배하는 대한민국에 절망한 이들이 읽어야 합니다. 아프지만 절망하지만 읽어야 합니다. 아래는 내용 중 일부입니다. 김동춘은 "돈·지위·인맥 등 강력한 밑천을 가진 이들 부일 세력, 재력을 바탕으로 미국이나 일본으로 유학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해방' 후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려 했다. 8·15 이후 한반도의 역사, 그리고 대한민국사를 굴절시킨 식민지의 유산은 바로 이것"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나아가 "일제의 조선 지배에 협력하다가 태평양전쟁에서 일제가 패망하면서 절멸의 위기를 맞이했던 부일 협력 세력은 미군의 통치에 발맞추어 친미로 옷을 갈아입었다"면서 "일제강점기의 행적이 떳떳치 못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은 계속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이라 주장해왔으며, 최근에는 아예 그날이 사실상 '광복'일이라 주장한다"고 말합니다,

 

 

 

친일부역세력 후손들이 1948년 8월15일을 광복일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를 알 수 있ㅅ급니다. 다음 글은 친일부역세력들이 왜 그토록 이날을 광복일로 삼으려고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새기고 새겨야 할 말입니다.

 

 

 

급기야 2015년 8월 15일에는 ‘광복 67주년’이라고 플래카드까지 내걸었다. 1945년 8월 15일, 즉 조선의 온 백성들이 환호했던 그날은 부일 협력 세력에게는 악몽과 같은 사망 선고일이었지만,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한 1948년 8월 15일은 그들이 기사회생한 날이었다.(67쪽)


친일부역세력 후손들은 '반공'을 입에 달고 삽니다. 비판세력을 '빨갱이'로 몰아갑니다. 역사를 말하면서 진영논리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들 주장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김동춘은 "서청 등의 극우 청년 조직은 제주4·3사건에도 투입되어 테러와 학살로 악명이 높았고, 각종 정치 테러에 동원됐으며 여운형·김구 등의 요인 암살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이 짙다. 이렇게 반공투사를 자처한 월남자들은 휴전 이후 오늘까지 대한민국 사회를 극단적인 진영 논리로 갈라놓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글에서 확인합니다.

 

 

 

독재정권은 자신들 권력 유지 방법을 "'반공'을 핑계로 정적들을 제거하며 권력을 유지했고, 박정희 정권은 아예 '반공을 국시로' 내세웠다"고 말합니다. 이들 든든한 후원 세력은 바로 기독교입니다. 김동춘은 기독교가 '횃불 장작'이라면서 "'인간해방'의 이념으로 조선에 들어온 기독교는 일제강점기 초기에 독립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식민지 지배를 받던 백성들에게 인권과 정치적 자유 등의 사상을 고취하기도 했다"고 주장합니다. 결과는 기독교 부흥입니다.

 

 

 

그 결과 1900년에 1만 명도 되지 않았던 기독교 신자가 1940년에 이르러 35만 명을 헤아릴 정도로 불어났고, 해방 이후에는 세계 기독교 선교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선교 기적’이 일어났다. 하지만 기독교의 양적 팽창의 뒷면에는 권력과의 타협 혹은 권력의 위협이라는 그늘이 자리 잡고 있다. 사상적 이유로 이승만·박정희 정부의 의심을 받던 사람들은 교회나 성당에 나감으로써 ‘신원 보증서’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피학살자 유족들과 월북자 가족들도 남한에서 ‘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 교회에 나갔다. 제주4·3 당시 좌익으로 몰려 군과 경찰에 학살당한 피해자의 가족들이 국군에 자원입대해서 면죄부를 받으려 했던 행동과 비슷하다.(131~133쪽)

반공국가 대한민국, 기독교 국가 대한민국을 만든 주인공이 바로 미국이다. 이승만이나 장택상, 조병옥 등 미국에서 유학한 정치 지도자들은 미국을 맹신했다. 미국을 대한민국의 안보와 경제를 지원하는 우방국가, 동맹국가를 뛰어넘어 ‘피로 맺은 형제’로 격상시켰을 정도로 한국의 집권 주류 세력은 미국에 목을 맸다. 이승만의 하야를 종용한 것도 미국이고, 인권 외교라는 이름으로 박정희 독재를 위기로 몰아넣은 것도 미국이었기 때문에, 대중 역시 미국을 민주주의의 보루라고 믿고 있었다. 바로 이 반석 위에서 미국은 그들의 동아시아 정책에 따라 한국 현대사를 좌지우지했다. 단순히 한국 정권을 조정하고 경제를 장악한 것에 그치지 않고, 36년간 조선을 식민지 지배한 일본과의 과거사 청산 문제까지 매듭지어버렸다. 

시민의 고발이나 노조 활동이 죄악시되는 나라, 노동자나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진보정당이 생존할 수 없었던 과거의 ‘병영국가’가 오늘에 와서는 모든 사람들이 오직 종업원 혹은 ‘고객님’으로 불리는 ‘기업국가’로 변한 것이다. 민주화 이후 군부 엘리트가 권력층에서 탈락한 것은 의미 있는 변화이지만, 재벌이 민주화의 최대 수혜자가 되어 언론을 사실상 소유하게 되었고 법원과 검찰도 그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한국의 지배질서는 거의 변한 것이 없다고도 볼 수 있다.(265쪽)

 

 

 

 

 

 

 

 

아이들에게 사람사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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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로를 탄압하는 권력은 망한다! | 역사 2014-12-06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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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기 본기

사마천 저/김원중 역
민음사 | 2015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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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국가가 독재국가와 다른 점이 많겠지만 그 중 하나를 꼽으라면 국가가 시민에게 ‘말하는 자유’를 빼앗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지도자(권력)가 자신을 비판하는 시민들 목소리를 듣는다. 이것이 없는 나라는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또 하나는 지도자가 대물림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민이 자신의 지도자를 직접 뽑은 시간은 그리 멀지 않다. 우리나라는 겨우 66년이다. 박정희 유신독재 때는 그것마저 빼앗겼다가 다시 찾은 지 27년 밖에 되지 않았다. 아직도 한반도 북쪽은 권력을 대물림하는 ‘봉건왕조’와 다름없다. 지도자를 스스로 뽑을 수 있는 한반도 남쪽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주목할 점 봉건왕조 때도 황제가 대물림 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물론 고대중국 ‘전설’이지만 요 임금은 아들에게 천하를 물러주지 않았다. 사마천은 <사기본기>에서 그 이유를 다음과 말하고 있다.

“요는 아들 단주가 어리석어 천하를 이어 받기에는 모자라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정권을 순에게 넘겨주고자 했다. 순에게 넘겨주면 천하가 이로움을 얻고 단주만 손해를 볼 뿐이지만, 단주에게 넘겨주면 천하가 손해를 보고 단주만 이롭게 될 것이다.(47)

아들이기 때문에 자질과 능력이 없는데도 천하를 물러주면 온 나라가 손해를 보는 것이다. 국가지도자란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와 시민을 이롭게 하는 자질과 능력을 가져야 한다. 선거 때만 되면 전통시장에서 떡볶이를 먹고, 어린이집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놀고, 노숙자들에게 밥을 나눠주지만 ‘당선’된 후에는 쳐다보지도 않는 정치인들이 많다.

이들이 요 임금이 아들 단주에게 나라를 물러주지 않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권력을 대물림하는 것도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지만, 정치를 시민과 나라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는 것도 민주주의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다.

정치인은 시민을 지배하는 ‘지배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 그런데 권력을 잡는 순간 섬기는 자가 아니라 지배자가 되는 정치지도자가 많다. 군사독재시대만 아니라 민주주의가 뿌리 내린 현재도 이런 이들이 있다. 통탄할 일이다. 나라가 어지러운 이유는 정치인이 섬기는 자가 아니라 ‘지배자’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은나라 조기는 무정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늘은 백성을 감찰하면서 그들의 도의로써 기준을 삼는데, 내려 준 수명에 길고 짧음에 있어도 하늘이 백성을 요절시키거나 중도에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습니다. 백성이 덕을 따르지 않고 죄를 인정하지 않을 때는 하늘이 경고를  내려 그 덕으로 바로잡으려고 합니다. 그 때에야 비로서 ‘이를 어찌해여 하나?’ 라고 말합니다. ! 임금의 직분은 백성을 공경하여 하늘의 뜻을 잇는 것이며, 정해져 내려온 제사에 따라야지 버려야 할 도를 신봉하지 마십시오. (99)

임금이 할 일은 백성을 공경하는 것이며, 하늘의 뜻을 잇는 것이라고 했다. 무정제는 이를 받아들여 정사를 바로 잡았다. 당연히 은나라는 다시 부흥한다. 민주주의 시대도 마찬가지다. 시민이 권력을 비판하고, 권리를 주창하면 지도자는 귀를 기울이고, 그것이 헌법정신과 민주주의에 부합하면 당연히 따라야 한다. 그래야 나라는 발전한다. 선진국은 ‘경제’발전 이전에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 중 하나는 말하는 자유를 보장받는 것이다. 권력이란 본성은 백성의 비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주나라 여왕이 자신을 비방하는 것을 금지시키자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이 때 소공이 말한다.

“이는 말을 못하게 막은 것 뿐입니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물을 막는 것보다 심합니다. 물이 막혔다가가 터지면 다치는 사람이 반드시 많은 것처럼, 백성들 또한 이와 같습니다. 때문에 물을 다스리는 자는 둑을 터서 물길을 이끌고,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마땅히 그들을 말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132)

물길을 막으면 반드시 엄청난 재해를 안겨준다. 물길을 결코 막을 수 없다. 봉건왕조 때도 말하는 자유를 보장하라고 했는데 민주공화국 시민에게 말하는 자유를 빼앗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소공은 이어 “무릇 백성들이란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고 나서 입으로 말하는 것이니 성숙한 의견으로 받아들여 실행해야 한다”면서 “백성의 입을 막는다고 해서 며칠이나 막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충언했다.

하지만 여왕은 듣지 않았다. 나라에는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다. 그럼 여왕의 권력은 영원했을까? 아니다. 삼년 만에 백성들이 힘을 합쳐 모반해 여왕을 쳤다. 우리도 경험했다. 독재자들이 시민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진 독재정권 하에서 시민들은 말하는 자유를 잃어버렸다. 그들은 시민들 입을 막으면 권력이 영원할 줄 알았지만, 시민혁명으로 권좌에서 물러났고, 암살당하고, 절집으로 쫓겨났다. 이들 독재자들이 소공이 여왕에게 충언한 말을 권력을 잡았을 때 읽었다면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과 국회의원들 그리고 고위공직자는 시민의 말에 귀를 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다.

진시황이 이를 증명한다. 진시황은 법률과 도량 무게와 수레바퀴를 통일했다. 문자를 통일했다. 천하를 통일했다. 하지만 진나라는 오래가지 않았다. 말하는 자유와 생각하는 자유를 탄압했기 때문이다. 진시황제는 분서갱유를 했다. 그 주역 중 하나가 승상 이사다. 그는 “신이 사관에게 명해 진나라 기록이 아니면 모두 태워 버리도록 했다”면서 “제자백가의 저작을 소장하고 있으면 모두 군수와 군위에 보내 마구 태우게 하라”고 한다. 진시황은 이를 허락한다. 언론 통제요, 사상의 통제다. 전한 시기 문학가이며 정론가였던 가생이 추앙했던 말이다.

“진나라 시황제는 자신에게 만족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잘못하고도 끝내 변하지 않았다. 이세황제는 그것을 이어받았으므로 이를 고치지 않고 포악하여 화를 가중시켰다. 자영은 외톨이로 가까이 피붙이도 없었으며, 위태롭고 약했으나 보좌하는 신하가 없었다. 세 군주는 미혹되었으면서도 죽는 날까지 깨닫지 못했으니 패망 또한 마땅한 것이 아니겠는가?(266)

만약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진시황이 분서갱유를 실행하지 않고, 말하는 자유와 생각하는 자유를 보장했다면, 진나라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사람 생각을 묻지 않는 지도자는 나라를 이끌 자격이 없다. 잘못을 하고도 반성하지 않는 지도자가 나라를 이끌면 그 나라는 발전할 수 없다.

모든 것이 통제된 사회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면 아마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이다. 지도자가 하는 말을 어떤 누구도 반박하지 따르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란 ‘일사분란’,‘국론통일’이 아니라 다양한 생각으로 문제가 많고, 국론분열은 필연이다. 모든 시민이 같은 생각만 하는 나라는 민주국가가 아니라 전제국가일 뿐이다. 민주주의 반대는 전제주의다. 전제주의는 반드시 망한다.

한나라 효문제는 넷째였다. 부황 고조가 낳은 아들이 여덟이다. 황제에 오를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황제에 오른 이유는 어진 마음과 덕망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칭찬해 마지 않았던 성군이었다. 후대 왕들이 문제를 귀감으로 삼기를 바랐던 것이다.

진시황제가 말하는 자유를 빼앗고, 생각하는 자유를 짓눌려 패망으로 갔다면 효문제는 말하는 이들을 등용했다. 그가 황제에 오른지 2년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현명하고 선량하며 정직해 직언과 극언을 할 수 있는 자를 등용해 짐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바로 잡고자 하오. 이 일을 계기로 각자 자신의 직책을 정돈하고 요역과 비용을 절약하는 데 힘써 백성들을 이롭게 하시오.(422)

14년 때는 “부덕한 이 몸이 홀로 아름다운 그 복을 누리고 백성들이 함께 하지 않으면 이는 내 부덕함을 더욱 무겁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효문제는 겸손하고 덕망 있는 황제였다. 황제라면 백성의 고통을 아랑곳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효문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백성을 생각했고, 백성을 위했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했다. 조선 개혁 군주 정조는 ‘민본정치’를 넘어 ‘민국정치’를 했다. 민국정치란 ‘백성을 위한’, ‘백성에 의한’ 정치를 말한다. 놀라울 따름이다. 미국 대통령 에이브리엄 링컨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연설을 떠올리게 한다. 봉건왕조이든, 민주공화국이든 국가지도자는 ‘백성’, ‘시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황제는 백성에게 쫓겨나고, 민주공화국 지도자는 투표로 심판받는다.

과연 우리나라 국가지도자들은 진나라 진시황과 주나라 여왕이 간 길을 갈까? 아니면 온나라 무정제와 한나라 문제가 긴 길을 갈까? 우리 시대 필요한 지도자는 무정제와 문제 같은 이들이다. 우리는 이런 지도자를 뽑을 혜안이 가져야 한다.

<사기본기>는 황제라는 전제군주들을 대상으로 쓴 책이지만, 곳곳에 지도자는 시민을 탄압하고, 언로를 막는 순간 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요즘 정권이 언로를 막으려고 한다. 민주주의 역사를 후퇴시키고 있다. 독재로 회귀하려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참 위험한 일이요 통탄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이룬 민주주의인데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이렇게 변할 수 있는가? 집권자와 집권당은 잊지 말아야 한다. 언로를 막는 정권은 반드시 심판받는 다는 것을.

민주주의는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정치체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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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배움…배움 있는 생각 | 인문 2014-12-03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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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책 참여

[도서]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우간린 저/임대근 역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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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 유성룡이 쓴 <징비록>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에 머무를 때 운주당이란 집을 지었다. 장군은 이곳에서 장수들과 함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투를 연구했다. 특히 졸병이라도 군사에 관한 내용이라면 언제든지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했다. 승전만 아니라 패전경험을 치열하게 논쟁하고, 토론을 했다. 한산대첩과 명량해전 승리 그리고 2323승은 장군의 탁월한 전략과 전술만 아니라 졸병부터 모두가 군사에 정통한 결과였다. 장군의 위대함이 어디에서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요즘 말로 하면 서로가 '멘토'가 된 것이다.

 

'비범'함이 아니라 '평범'했던 공자

 

 

 

이처럼 이순신 장군은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이 아니다. 처음부터 완전무결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런 이순신을 생각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 예수와 함께 '성인'으로 불리는 공자도 별 다르지 않았다. 성리학자들이 숭배했기 때문에 공자는 처음부터 고귀한 집안, 좋은 신분, 높은 벼슬, 그를 따르는 이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공자는 미천한 신분이었고, 얻은 벼슬도 질투와 시기와 모함 때문에 내놓았다. 간신들 질투를 받았고, 어떤 때는 생명 위협까지 받았다. 무엇보다 14년을 떠돌이 신세였다.

 

중국 경제학자이자 컨설턴트인 우간린이 쓴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위즈덤하우스)는 지난 2천년 동안 중국 사상과 정신을 지배해 온 <논어>, <공자가어>, <사기>, <공자집어> 따위 책들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풀이하면서 '성인' 공자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평범한' 공자를 보여준다.

 

하지만 평범하다고, 그의 가르침이 가치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더 쉽게 다가온다. 공자는 제자가 일흔두 명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운주당에서 졸병부터 장군까지 함께 전술과 전략을 논의 했듯이, 이들과 함께 세상을 두루 다니면서 공부했고, 토론과 논쟁했다. 공자는 제자에게서 제자는 공자에게서 제자는 또 다른 제자들에게 지혜를 얻었다. 공자의 가르침이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귀한 가르침이 된 이유가 바로 여기게 있다.

 

<논어> 위정(爲政)편에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음이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는 말이 있다. 현실을 벗어난 공부와 생각 없는 공부는 죽은 공부라는 말이다.

 

생각하는 배움…배움 있는 생각

 

세상에서 가장 싫은 것이 공부인 중학교 1학년인 우리 집 막둥이는 시간만 나면 아빠 꼭 수학을 해야 해요?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만 하면 되잖아요. 나는 체육과 음악이 좋아요. 수학 좋아하는 사람은 수학하고, 영어 좋아하는 사람은 영어 하면 되잖아요.”라고 묻는다. "그래도 학생은 공부를 해야지"라는 말 밖에 더 할 말이 없다. 수학은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기초학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오로지 대학가기 위해 미적분, 행렬, 함수를 배운다. 그리고 자연과학 분야가 아니면 대학에 들어가는 순간 수학을 손에 놓아버린다. 수학이 인생살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죽은 수학이 되어버린다.

 

이렇게 된 이유는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우리 풍토 때문이다. 대학을 옛날에는 '속세를 떠나 조용히 예술을 사랑하는 태도나 현실도피적인 학구 태도'를 뜻하는 '상아탑'(象牙塔, tower of ivory)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돈 더 많이 벌기 위해 '스펙'을 쌓는 곳으로 전락했다. 대학가서 하는 공부가 '영어'다. 기초학문과 인문학은 폐기처분 되고 있다. 이익을 남기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익을 남기려면 기초학문을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 애플 전 회장이었던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인문학과 실용학문은 함께 가야 한다. 우간린은 공자를 통해 살아있는 지식을 배워 활용하라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말장난' 같은 논쟁을 일삼은 것을 빌어 공자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을 가르쳤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공자는 "군자가 되어 인의의 이치를 행하는 데에는 동기가 좋아야 할 뿐 아니라 결과 또한 좋아야 하느니라"라고 말한다. 일을 잘해내려면 "가장 좋은 동기로 가장 좋은 효과를 쟁취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군자의 이치와 인의의 이치를 온전히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가르쳤다. 특히 문만 아니라 무도 함께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문(文)을 섬기더라도 무(武)를 준비해야 한다. 일을 할 때는 도리와 기술이라는 두 측면을 구분해야 한다. 강함과 부드러움이라는 수단은 모두 기술의 표현이다. 일을 하는 수단과 방식에서는 둘 모두를 갖추어야 하고, 둘 모두를 중시해야 한다. 부드러워야 할 때는 부드러워야 하고, 강해야 할 때는 강해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의 지혜다."(107쪽)

 

군자가 가져야 할 덕목은 동기과 과정 그리고 결과다. 도리와 기술, 수단과 방법이 함께 가야 한다. 이는 군자만 가져야 할 덕목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가져야할 삶의 자세요 지혜다.

 

 

권력과 법률로 사람을 징벌하면 패도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은 학문(공부)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대학 조차 돈 안 된다는 이유를 들어 인문학과를 폐지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해마다 10월만 되면 스웨덴에서 들려오는 노벨상 소식에 '왜 우리는 노벨상을 받지 못하는가?'라고 탄식한다. 하지만 11월 대학수능일이 되면 상위권 대학은 몇 점이 되어야 하는지 앞다투어 보도한다. 수능 만점자가 몇 명 나왔는지 전하기 바쁘다. 줄세우기도 변함이 없다. 일등이 모든 것을 다 갖는다. 2등 이하는 일등에 또 다시 줄을 선다. 그것은 권력이 된다. 그 권력은 힘을 지배한다. 지배를 거부하면 짓밟는다. 공자는 권력과 법률로 사람을 징벌하는 것을 패도라고 말한다.

 

"권력과 법률로 사람을 징벌할 줄만 하는 것을 패도(覇道)라 한다. 교화의 방법으로 백성이 스스로 고치고 바꿀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왕도(王道)라 한다. 패도는 주먹의 논리를 숭상하지만, 교화는 주먹보다 더 힘이 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97쪽)

 

 

 

대한민국은 독재를 경험한 나라다. 헌법을 유린하고, 시민을 총으로 죽였다. 왕처럼 군림했다. 저항하는 자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교화라는 말도 민주공화국에는 별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왕조 시대에는 백성을 교화했지만, 민주공화국 시민은 교화 대상이 아니라 주권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림과 탄압하는 권력은 반드시 패망한다는 것을 가르치 공자 가르침은 시대를 앞선 것이다.

 

자신에게 엄격하라

 

군림과 지배 그리고 탄압은 이른자 '권력자'들 전유물이 아니다. '평범한' 시민들도 누구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아버지란 이름으로, 선배라는 이름으로, 상사라는 이름으로. 지배자가 되지 않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군자가 되어야 한다. 군자란 "자신이 능력 없음을 부끄러워하고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않는다. 그래서 군자는 스스로 노력한다." 남탓하지 말고, 스스로 실력을 키우라는 말이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엄격해야 한다.

 

"자신에게 관대해서는 안 된다.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삶 또한 바르지 않은 것이니라. 그런데 어찌 내 자신을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이제 내면의 수련에 더욱 힘써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나도 모르는 사이에 퇴보할 것이다."(237쪽)

 

독재자 일수록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엄격하다. 마음을 바르게 쓰지 않는다. 강한 권력을 휘두를수록 "엄단", "일벌백계"라고 말한다. 당연히 그 대상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다. 공자는 "넓게 공부하라,성실히 행하라,신중하게 생각하라,분명하게 판단하라"고 말했다. 공자와 제자들은 이를 놓고 토론하고 논쟁했다.

 

 

이 같은 공자 가르침을 오늘 우리가 각슴에 새길 수 있는 것은 이들이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기록은 역사"라고 했다. 우간린도 공자에게 배울 점은 "기록하지 않으면 시간에 의해 진실은 잊힌다. 기록을 통해 그 진실을 복원하지 않는다면 진실뿐 아니라 역사에도 미안한 일이 일어날 것"(370)이라고 말한다. 기록하는 자, 진실을 지킬 수 있다. 그가 지혜로운 자다.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시대다. 암울하다. 거대한 벽이 가로 막혀 있는 느낌이다. 아니면 천길 낭떠러지에 나홀로 서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포기하지 말자. 길은 있는가?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를 손에 들어라.

 

"지혜로운 사람이 결국 원하는 인생을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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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위해 저항하라 | 인문 2014-10-23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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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잉에 숄 저/유미영 역/정종훈 그림
푸른나무 | 200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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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12월 5일 "내년에 날씨 좀 따뜻해지면 그때 다시 만나러 나오겠습니다" 라고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제 '역사'로 우리 마음속에 남았다.

 

대통령 노무현과 인간 노무현, 그 어떤 표현이든지 그는 해방 이후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기득권 세력에게 저항했다. 기득권은 모함과 조롱으로 그를 매도했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가 이제 몸으로 저항할 수 없지만 그가 남긴 정신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왜곡과 불의에 저항해야 한다.

 

사람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역사에서 적극적인 행동을 통하여 사회를 바꾸려는 사람을 기억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사회가 불의가 지배할 때 저항으로 이끌림을 당한 이들을 기억하여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억을 한다.

 

이 수동적인 저항은 자신만 희생당하는 것으로 끝날 수 있지만 사람은 역사 속에서 그들이 남긴 저항 정신을 마음에 새긴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이 가진 양심은 불의가 정의를 이기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바라는 마음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2차 대전 독일에서 뮌헨 대학을 중심으로 나치에 저항하다 처형당했던 '크리스토프 프롭스트와 한스 숄, 죠피 숄, 알렉산더 슈모렐, 크루프 후버의 실화를 바탕으로 잉게 숄이 지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은 수동적 저항이 몇 십 년 지난 오늘까지 우리에게 읽히는 이유가 그 예다.

 

나치에 대한 저항이라면 이들이 엄청난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은 그저 인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유와 정의, 삶을 위한 권리를 지키려고 했을 뿐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었다.

 

한스와 죠피는 "세상을 잊어버린 듯 바깥 세계와는 멀리 떨어진 작고 조용한 광산촌에서 보냈"고 한스는 "러시아와 노르웨이 민요"를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였다. 한스와 죠피, 알렉산더 슈모렐은  의대들 졸업해서 열심히 환자들을 돌보며,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가정을 꾸리는 시민으로 살았을 것이고, 후버 교수는 학생들에게 철학을 통하여 진리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 열정을 다하여 강의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치는 "사생활까지 간섭하는 훈련과 획일주의"와 "독일을 서서히 하나의 감옥으로 만들어 종국에는 아무도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는" 세상으로 만들었다. 독일을 집단 수용소로 만들어가는 것은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었다. 그들이 저항한 이유이다. 한스와 죠피가 나치를 향하여 저항에 나서자 아버지는 말한다.  

 

"우리가 정부에게 요구해야 할 무엇보다 중요한 사항은 바로 개개인의 자유로운 견해와 신념의 보장이란다. 내가 너희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비록 인생의 길이 험난하고 고달프다 할지라도, 너희들은 인생을 자유롭고 올바르게 살았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정부가 인민이 말하는 자유와 생각하는 자유를 빼앗을 때 저항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아버지 말에 울림이 있다. 말하고, 생각하는 자유를 되찾기 위한 저항이 험난하고 고달플지라도 가라고 말하는 아버지 마음은 어땠을까? 하지만 아버지는 가라고 했다.

 

말하고, 생각하는 자유가 70년이 지난 대한민국 이명박 정부도 말하는 자유와 생각하는 지유를 빼앗고 있다. 나치가 이들을 탄압하고, 결국은 한스와 죠피, 뮌헨 대학 학생들과 교수들을 탄압했듯이 이명박 정권도 자유를 달라는 시민들을 짓밟고 있다. 저항하는 이유가 자기들에게 있다는 비판까지도 못하게 한다.

 

인민이 말하는 자유와 생각하는 자유를 가지게 해달라고 저항할 때 나치는 대대적인 검거령이 내려져 일기장과 잡지, 노래를 모은 노트들을 압수하고 불태웠다. 그것을 본 한스는 "차라리 우리들의 몸에서 심장을 빼앗아 가라. 그러면 너희들도 아마 그것에 타 죽어버리라"고 했다.

 

시대가 평탄하면 제자들에게 정의와 양심을 위하여 살아라고 대다수 교수들은 말한다. 하지만 나치 같은 정권이 들어서면 정의와 양심은 독재자 앞에 팔아먹는다.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 정권 시절 양심을 팔아 부역한 교수들이 많았다. 하지만 어떤 교수들은 독재자 앞에 양심을 파는 부역을 거부하고 저항했다.

 

한스와 죠피, 알렉산더 슈모렐, 크리스토프 프롭스트가 나치에 저항할 때 뭔헨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강의했던 후버 교수는 "독일의 한 시민으로서, 독일 대학의 교수로서 그리고 한 정치적 인간으로서 독일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참여하고 그릇된 점을 공공연하게 폭로하면서, 그것에 맞서 싸우는 것인 권리일뿐더러 도덕적인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 역시 제자들과 함께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들은 모든 폭력에 대항하여 꿋꿋하게 살았고,  정의는 죽지 않는다는 말을 믿으며 살았다. 한 치의 타협도 없이 그들은 비굴하게 구원받으려 하지 않았다. 자유 만세를 외쳤다. 국가가 인민의 자유를 지배하려는 것에 저항했다.

 

국가의 통치작용이 드러나지 않을 때에만 국민은 행복한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통치작용이 뚜렷하게 부각 될 때에는 국민은 파멸의 길을 걷는다고 했다.

 

국가가 인민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을 존중해야 하며, 모든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나치는 아니었다. 당연히 저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강도는 다를 뿐 국가와 권력은 항상 인민의 자유를 자기들 통제 아래 두려고 한다. 그 때마다 인민은 저항했다. 저항하지 않으면 국가와 권력은 언제든지 인민에게 자유를 빼앗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은 저항했다. 이유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위해 그것이 그 때 그들에게는 당장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나치가 종말을 고하고 난 후 1947년 독일에서는 이 책을 학교 교재로 지정하여 13세부터 18세의 청소년들에게 의무적으로 읽도록 했다. 국가의 폭력과 인권 유린,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훼손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2014년 우리는 우리 자유를 위해 저항하고, 저항하는 지난한 싸움을 해야 한다. 우리와 미래시대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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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에 따라 사는 것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다 | 인문 2014-01-10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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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임영택,박현찬 공저
위즈덤하우스 | 2013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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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 위즈덤하우스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이는 안중근 의사가 남긴 유명한 말로 아이들에게 책 읽기를 강요할 때마다 자주 쓰는 말입니다. 두보는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書·남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강명관 부산대교수(한문학)는 <조선의 책벌레들>(2007년, 푸른역사)이라는 책에서 "인간의 역사는 곧 의도를 갖는 책의 역사들이다, 책을 쓰는 사람은 곧 책에 몰입하는 인간들이다, 다름 아닌 책벌레들"이라며 "누가 세상을 만드냐고 묻는다면 나는 책벌레들이 만든다고 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책의 역사에서 인간을 해방 혹은 억압한 책들의 투쟁을 본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정조때 이덕무는 '간서치(看書痴·책 읽는 바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평생을 함께할 책 한 권을 갖는 것은 무척 복된 일입니다. 책을 통해 용기를 얻거나, 살아갈 방향을 찾은 책이라면 두고 두고 읽을 것입니다.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임영택·박현찬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는 마오쩌둥·정조·정도전·간디·체 게바라· 제퍼슨 등이 책을 통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알려줍니다.

박 대통령, '동서양 고전 글귀로 바로 세웠다'고 했는데

우리나라 대통령들도 여름 휴가를 갈 때 읽을 책 목록을 공개하거나,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소개하곤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7월 2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13 서울국제도서전' 축사에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낼 때 성현들의 지혜가 담긴 동서양 고전들의 글귀가 저를 바로 세웠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줬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고전이 박 대통령 인생관과 가치관에 큰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에는 14명의 책들이 소개돼 있습니다. 저는 이 책에 언급된 여러 책 중 정조와 간디의 삶을 바꾼 책들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조선시대 세종대왕과 더불어 개혁 군주로 손꼽히는 정조. 그가 할아버지 영조와 나는 대화 한 장면이 <영조실록>에 실려 있습니다.

영조 : 국가에 군주를 세우는 것은 군주를 위한 것인가? 백성을 위한 것인가?
정조 : 군사(임금이자 스승이 되는 사람)를 세우는 것은 백성을 편안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영조 : 군사의 책임을 감당한 사람은 누구인가?
정조 : 요·순·삼대의 군주가 그랬습니다. 삼대 이후로는 감당한 사람이 드물었습니다.
영조 : 너는 군사가 되고 싶으냐? 천하를 다스리는 스승이 되고 싶으냐?
정조 : 천하를 다스리는 스승이 되고 싶습니다.
영조 : 그 뜻이 크구나. 사관은 잘 기록해 두어라. 만일 천하를 다스리는 스승이 될 수 없다면 군사도 될 수 없을 것이니 저 사관에게 부끄럽지 않겠는가? (본문 75쪽)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와 토론에서 '군주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천하를 다스리는 스승이 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정조는 그런 군주가 되기 위해 책 한 권을 스승으로 삼았는데 그 책이 바로 <서경>이라고 합니다. 정조가 말한 '군사'는 <서경>에 나옵니다.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치기 전 군대를 앞에 두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늘이 백성을 도와 임금을 만들고 스승을 만든 이유는 오직 하느님을 잘 도와서 사방을 사랑하고 편안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죄 있는 자를 처벌하고, 죄 없는 자를 도와주는 일에서 내가 감히 히늘의 뜻을 어기겠는가?"(본문 75쪽)

은나라 주왕이 임금과 스승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므로 징벌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봉건왕조 시대 '천자(天子)'도 하늘의 뜻을 거스리면 제거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하물며 민주공화국에서 인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배반한다면 인민의 힘으로 끌어 내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서경>은 "고요가 '임금이 현명하면 신하들이 어질어지고 모든 일이 편안해지네, 임금이 좀스러우면 신하들이 게을러지고 모든 일이 어긋나네'라고 노래를 부르자 순 임금은 절을 했다고 한다"면서 신하가 임금에게 경계의 말을 올리자 순 임금은 절을 할 정도로 귀와 가슴이 열린 사람이었다"고 전합니다.

정조, <서경>에서 소통 배워…'먹통 대통령' 박 대통령 <서경>을 읽으시라

귀와 가슴이 열린 임금, 그가 진정 백성을 위한 군주였습니다. 우리가 요·순 시대를 최고의 시대로 뽑는 이유는 많겠지만, 지도자들이 백성의 소리을 위하는 소리를 듣고 자신을 비판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 아닐까요.

정조는 '소통'하는 군주였습니다. 물론, 태생이 소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자리였습니다. 아버지 사도세자 죽음이 노론당에게 의한 것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노론당과 함께하지 않으면 자신 역시 언제 죽을 수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었습니다. 그는 "옷을 벗지 못하고 자는 때가 몇 달인지도 모른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정조는 결국 소통을 택했습니다.

"정조는 소통을 평생의 과제로 삼았다. 아바지는 당파싸움의 희생양이 되었고, 자신은 바늘방석 위에 앉은 세손 생활을 하다가 왕위에 올랐다. <서경>의 소통철학을 받아들이고 영조의 뜻을 이어 받아 탕평 정책을 계속 펼쳤다. 과거의 죄를 묻는 일은 최소한의 범위에서 처리하고자 했다. 반대 세력의 의견에도 귀 기울이고 오직 옳고 그름만을 따졌다."(본문 79쪽)

고전에 많은 것을 배웠다는 박근혜 대통령이 <서경>을 읽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읽지 않았다면 꼭 <서경>을 읽길 권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귀와 가슴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비판 세력의 말은 아예 듣지 않고, 비판 세력에 대한 가슴 역시 차갑습니다.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기보다는 오히려 잡아 넣기 바쁜 것 같습니다. 자신의 입으로 '국민대통합'을 외쳤는 데도 불통을 넘어 먹통이 된 모양새입니다. 야당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 모습을 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강자는 자신이 가진 것을 무기삼치 않고 약자와 눈높이를 맞추며 먼저 낮은 데로 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또한 과거의 잘못을 사과하려는 쪽이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진심을 보여줄 때 상대방은 내민 손을 잡아준다. 우리는 지금 불통이나 '쇼'에 불과한 소통이 아닌 진정성 있는 소통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정조가 그리워지는 이유다. 정조가 이루고자 했던 소통과 대통합을 통한 대동사회 건설의 꿈은 아직도 진행형으로 남겨져 있다."(본문 84쪽)

헨리 소로우는 <시민불복종>이라는 책에서 "사람  한 명이라도 부당하게 가두는 정부에서 정의로운 사람이 진정 있을 곳은 역시 감옥"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는 "정부가 자기에게 동조하지 않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가두는 곳, 노예의 나라에서 자유인이 명예롭게 살 수있는 유일한 감옥"이라고 했습니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가르쳐야"

불의한 정부에 복종하느니, 정의를 따르다가 감옥에 갇히는 것이 더 낫다는 말입니다. 간디는 <시민불복종>을 통해서 비폭력 무저항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는 정의롭지 못한 정부에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간디가 농장주에게 착취를 당하고 있는 농촌 지역 사정을 조사하려고 하자 판사는 그 지역을 떠나라고 명령하지만 간디는 따르지 않았습니다. 체포된 그는 명령에 불복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법을 준수하는 시민으로서 나는 우선 나에게 내려진 명령에 복종 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내가 찾아온 이 지역 사람들에 대한 나의 의무감에 상처를 입게 됩니다. 나는 지금은 그들과 함께 있어야만 그들에게 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나에게 내려진 명령을 무시한 것은 법적 권위를 존중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우리 존재의 더 높은 법, 즉 양심의 소리를 따르려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요게시차다 씀·정영목 옮김, <마하트 마 간디>, 한길사, 2001. 재인용 117~118쪽)

채동욱·윤석열 검사는 국정원 부정선거 진실을 파헤치려 하다가 박근혜 정권에 의해 물러났습니다. 아이들을 더 정의롭게 가르치려다가 징계를 당한 선생님을 내치지 않았다고 전교조를 노조가 아니라고 합니다. 프랑스 교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 부정선거로 당선됐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 하라"했다는 이유로 집권당 국회의원은 "대가를 치르게하겠다"고 협박성 발언을 당당하게 합니다.

불의와 반민주주의에 저항하는 것은 민주시민으로 당연한 일입니다. 헨리 소로우는 <시민불복종>에서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먼저 가르치라"고 합니다. 물론 모든 법에 불복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공동체의 행복, 개인의 자유를 위협하는 법이라면 지키지 않는 불복종을 통해 그 법을 개혁하자는 것"입니다. "법을 준수하는 국가 구성원으로서 한 명의 국민보다 양심과 정의를 추구하는 한 인간의 입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여,'국민'이기 이전에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양심에 따라 사는 것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어

박근혜 정권, 아니 보수세력은 항상 '국가'를 강조합니다. 국정원 부정선거에 개입한 이들도 대부분 '나라'를 위해 한 일이라고 강변합니다. 하지만 그 국가가 정의롭지 못하면, 저항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국민이 먼저가 아니라 양심을 가진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소로우 주장이 지금 대한민국 인민들이 새겨야 할 중요한 내용입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정의를 위해 나 한 사람이 저항하면 그것이 밀알이 되어 수만, 수십만, 수백만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국정원 부정선거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유린당하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선한 사람이 되어 전체를 발효할 수 있는 효묘가 되어야 합니다. 양심에 따라 행동할 때입니다. 양심에 따라 사는 것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인민들이 양심에 따라 저항하는 것은 막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막으면 인민은 박근혜 정권에 불복종해야 합니다. 그게 민주공화국입니다.

박 대통령이 올 겨울 휴가를 떠나게 된다면, 꼭<서경>과 <시민불복종>을 챙겨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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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 신채호, 그가 꿈꾼 세상은 '빈부의 차별이 없는 평등사회' | 역사 2013-12-19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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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신채호 다시 읽기

이호룡 저
돌베개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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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를 읽을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거든 역사를 읽게 할 것이다."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연개소문은 조선역사 4000년 이래 최고의 영웅"

 

단재 선생은 '민족주의자'인가

 

단재 신채호 선생(1880~1936)이 남긴 이 어록은 그를 '민족주의자'로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특히 <조선상고사>, <을지문덕 장군전>, <최영 장군전>, <이순신 장군전> 따위 저서와 고려시대 묘청이 일으킨 난을 '조선역사상일천년래제일대사건(一天年來日大事件)'라고 말하고,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을 사대주의로 비판한 것을 떠올리면 민족주의자로 단정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단재를 민족주의자로만 평가하면 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 되었다. <일제강점기 국내 아나키스트의 조직과 활동>, <신채호의 아나키즘> 따위 논문과 <한국의 아나키스즘-사상편>(지식산업사)을 통해 우리나라 아나키즘을 오랫동안 연구한 이호룡은 <신채호 다시 읽기-민족주의자의에서 아나키스트>(돌배게)에서 "신채호 사상의 진면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민족주의자 신채호보다는 아나키스트 신채호로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민족주의자' 신채호에게 익숙한 우리에게 이 같은 주장은 낯설다. 독자들에게 이 낯설음 해소시키기 위해 지은이는 단재가 <조선혁명선언>에서 주장한 '민중직접혁명론'이 아나키즘에서 주장하는 민중의 직접행동에 의한 사회혁명론을 한국인의 입장에서 정리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 단재는 민족주의자가 아닌가? 그렇지 않다. 그는 <이태리 건국 삼걸전>에서 "애국자 없는 나라는 비록 강하나 반드시 약해질 것이며, 비록 번성하나 반드시 쇠퇴할 것이며, 애국자가 있는 나라는 비록 약하나 반드시 강해질 것"이라고 했다. <대한의 희망>에서는 "금일 한인아, 희망에서 원력이 생기고, 원력에서 얄심이 생기고, 열심에서 사업이 생기고, 사업으로 국가가 생기나니, 힘쓸지어다. 우리 한인아, 희망할지어다. 우리 한인아"라고 했다,

 

이를 두고 지은이는 단재 선생이 "일본제국주의의 노골적인 침략주의 맞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제창"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아나키스트으로 사상의 변화를 경험한다. 단재 선생이 아나키즘을 서서히 받아들이게 된 건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을 거치면서부터다.

 

3·1운동을 통해서 민중의 저력을 확인한 뒤에는 민중을 민족해방의 주체로 보고 아나키즘을 수용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민족해방법론을 놓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대립하면서 그는 아나키즘을 민족해방 지도이념으로 정립하고, 아나키즘에 입각한 '민중직접혁명론'을 제시하였다. 이후 그가 전개한 민족해방운동은 아나키즘에 입각한 것이다."(6쪽)

 

"단재, 아나키즘 수용의 선구자"

 

이런 점에서 단재는 "아나키즘 수용의 선구자이며, 아나키즘에 입각한 민족해방운동론을 집대성한 인물로 한국의 대표적 아나키스트"라고 할 수 있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단재는 <신대한 창간사>에서 아나키즘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계급 투쟁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고 빈부의 차이가 없는 평등한 이상세계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과 공예의 진보된 결과로 일 기계가 백천 칠공의 직무를 대행함에 노동자는 호구의 벌이가 어렵고, 경제의 조직이 변천하여 연합회사가 중가함에 소자본가는 입족할 여지도 없도다. 우주의 불평이 이에서 더한 것이 어디 있으리오. 고로 우리도 미래의 이상세계는 빈부 평균을 주장하노라."(174쪽) 

 

단재는 <국제연맹에 대한 감상>에서는 "민족자결이 실행되면 '대소가 서로 안정되고 강약이 서로 의지하여' 평화로운 세상이 될 것인바, 이것이 바로 세계 인민이 평화회의에 바라는 바라"고 하였다. 민족주의를 넘어 전 세계 인민의 평화를 주창한 것이다.

 

<조선혁명선언>에서 "강도 일본이 우리의 국호를 없이 하며, 우리의 정권을 빼앗으며, 우리의 생존적 필요 조건을 다 박탈하였다"면서 "일본 강도정치 곧 이족 통치가 우리 조선 민족의 생존의 적임을 선언하는 동시에, 우리는 혁명수단으로 우리 생존의 적인 일본을 살벌함이 곧 우리의 정당한 수단임을 선언"하였다. 그냥 읽으면 조선 독립만을 강조하는 ㄱ서 같지만 아니다. 우리나라 독립이 새로운 정부 수립, 곧 국가 수립은 아니다.

 

"정부란 민중을 수탈하는 기구"

 

사실 단재는 민족주의처럼 국가주의를 처음부터 부정한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이 충신이라 함을 의논함>에서 "국가주의를 제창"했다. 하지만 아나키스트와 만나면서 그는 국가주의를 부정한다. 이유는 정부(국가)란 민중을 수탈하는 기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신채호가 일본제국주의의 구축(驅逐)을 주장한 것은 한국 민중을 일제의 강압으로부터 해방시켜 한국 민족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것었지, 한국의 독립 즉 민중을 수탈하는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신채호에게는 정부란 민중을 수탈하는 기구에 불과하였다."(199쪽)

 

'아나키스트' 단재 사상을 알 수 있다. 특히 단재는 <조선혁명선언>에서 "구시대의 혁명으로 말하면, 인민은 국가의 노예가 되고, 그 이상에 인민을 지배하는 상전 곧 특수세력이 있어, 그 소위 혁명이란 것은 특수세력의 명칭을 변경함에 불과하였다"고 단언한다. 한 마디고 '국가'라는 존재는 계급사회를 지향할 수밖애 없고, 혁명 역시 또 다른 계급을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국가주의를 부정한 것이다.

 

특히 1928년 4월 중국 텐진에서 개최된 재중국 한국인 아나키스트대회가 채택한 <선언>에서는 "정부를 지배계급이 무산민중으로부터 약탈한 '소득을 분배하려는 인육분장소(人肉分臟所·민중의 피와 땀을 착취해 지배층이 나눠먹는 곳)로 묘사하면서, 정부를 파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단재에게 민족해방운동은 조선이라는 국가를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곧 민중해방이요, 아나키스트 운동이었던 셈이다. 그럼 민중해방을 이루는 방법은 무엇일까? 단재는 <조선혁명선언>에서 '민중폭력혁명'을 주창한다.

 

"민중의 폭력혁명을 통해 평등사회"

 

"조선 안에 강도 일본의 제조한 혁명원인이 산같이 쌓이었다. 언제든지 민중의 폭력적 혁명이 개시되어 '독립을 못하면 살지 않으리라', '일본을 구축하지 못하면 물러서지 않으리라'는 구호를 가지고 계속 전진하면,목적을 관철하고야 말지니, 이는 경찰의 칼이나 군대의 총이나 간활한 정치가의 수단으로도 막지 못하리라."(215쪽)

 

이처럼 단재는 "민족해방은 테러나 폭동과 같은 직접행동을 통해 민중을 각성시키고, 그들을 혁명 대열에 참가케 하는 것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면서 "혁명이 성공하기 위해선은 두 가지의 요소 즉 '민중'과 '폭력'이 결합되어야만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단재는 대중 투쟁이 아무리 대규모라도 "폭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그 투쟁은 결코 성공할 수 없으며, 아무리 격력한 투쟁을  전개하더라도 민중이 대규모로 참가하지 않으면 그 투쟁 또한 성공할 수 없다"며 "즉 '혁명의 대본영'인 민중이 전개하는 폭력투쟁만이 혁명을 성공시킬 수 있다는 것"이라고 거듭 민중에 의한 폭력 혁명을 주창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정치란 지배계급의 교체일뿐이기 때문이다.

 

신채호의 민중직접혁명론은 바로 아나스키들의 '민중들의 직접행동에 의한 사회혁명론'에 근거하고 있는 것으로 아나키즘에 입각한 민족해방운동론이자 사회혁명론이었다. 신채호는 정치와 정치혁명을 부정하였다. 신채호에 의하면, 정치란 지배계급이 민중을 속여 백주애 약탈행위를 조직적으로 행하는 것으로서 민중의 생존을 빼앗는 민중의 적일 뿐이며, 정치혁명이란 지배계급의 교체에 불과하였다."(237쪽)

 

'폭력혁명' 동의하기 힘들지만...영원한 자유인 단재, 중요한 본 보여줘

 

그럼 단재 선생이 민중이 폭력을 통해 이룩하려고 한 사회는 어떤 사회였을까? 이호룡은 "'고유적 조선의', '자유적 조선 민중의', '민중적 경제의', '민주적 사회의', '민주적 문화'의 한국 사회로서, 빈부의 차별이 없는 평등사회"였다고 말한다. 단재가 꿈꾼 사회는 '대동사회'인 셈이다.

 

책을 덮으면서 '폭력혁명이 과연 빈부차별이 없는 평등사호, 곧 대동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고,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호룡이 마지막 글을 통해서  "자유로운 인간을 삶을 추구하였으며, 감옥에 있으면서도 아나키스트로서의 삶을 영위하였다. 생명을 다하는 그날까지 아나키스트운동과 역사 연구에 매진하고자 마지막 한 올의 불꽃까지 태웠다. 그럼으로써 영원한 자유인으로 남았다"고 평가한 단재 신채호의 삶은 2013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본을 보여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부록으로 <역사와 애국심의 관계>, <제국주의와 민족주의>, <신대한 창간사>, <성토문>, <조선혁명선언>, <낭객의 신년만필>, <선언>이 실려 있어 단재 선생 사상과 철학을 깊게 이해는 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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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는 쓰레기장이 아니다 | 사회 2013-12-14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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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국경 없는 과학기술자들

이경선 저/국경없는과학기술자회 기획
뜨인돌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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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시대다. 페이스북은 하루에 3억 건, 트위터는 하루 4억 건 포스팅, 유트뷰 동영상은 1초에 1시간 분량이 업로드 된다고 한다. 앞으로 더 빠르게 늘어나지 줄어들 가능성은 낮다. SNS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을 뒤로 돌려보면 스마트폰이 등장한 것도 불과 4-5년이고, 휴대전화도 10여 전이다. '벽돌'같이 생긴 휴대전화가 수백만 원이었다. 최신형 스마트폰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것이다.

아직도 시골 어머니 집에는 '우물'이있다. 식수로는 사용하지 않지만, 더운 여름 두레박으로 물을 퍼 등목을 하면 수돗물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시원하다. 어릴 적에는 지게를 졌다. 리어카만 들어가도 엄청 편리했다. 지금은 경운기로 농사짓는 이들도 거의 없다. 초등학교와 집이 10리가 넘었다. 1학년때부터 걸어다녔다. 추운 겨울 새벽 같이 일어났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무한속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문명이 사람을 이렇게 편리하게 만들었다.

대량생산이 '빈곤을 영속화'한다

무한속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문명은 사람을 '불편'함에서 벗어나게 했지만, 사람냄새나는 '참 좋은 세상'은 만들어주지 못한다. 경제도 '양극화'이지만, 정보사회에서 정보도 양극화이다. 그리고 기술문명 역시 '양극화'다. 경제와 정보 양극화는 많은 관심이 있지만, 과학기술문명 양극화는 별 다른 관심을 없었다. 양극화를 해소하는 방법 중 하나가 '함께' 나누어 쓰는 것이다. 독점은 사람냄새가 나지 않는다.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이와 함께 나누어 쓸 때 살아가는 세상은 참 좋은 세상이다.

'적정기술'. 생경한 단어다. '적정기술'이란 현지의 자원과 노동력을 이용하여, 현지인들의 필요에 맞게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운용되는 기술을 뜻한다. <국경 없는과학기술자들>(뜨인돌)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히말라야 오지에 태양열 발전기를 설치해 준 대학생봉사단, 수은중독의 위험에 노출된 인도네시아 금광지역 주민들을 위해 수은증기 회수기를 개발한 박사 등 책 속엔 분야별 20여 개의 사례들"이 실려있다.

"과학기술이 하나의 방향으로만 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지속가능한 또 다른 길이 있음"을 일깨워준다. 적정기술은 마하트마 간디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가 저작권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의 원조는 인도의 사상가이자 정치가였던 마하트마 간디였다. 그는 영국이 인도에 이식한 대량생산 기술들이 인도의 빈곤을 해결하기는커녕 인도인들을 기술의 특혜를 받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하고 실업 상태에 머무르는 대다수 민중으로 나누고, 이러한 구분 속에서 빈곤을 영속화한다고 비판했다."(21쪽)

자본가들은 '대량생산'을 통해 사회를 더 낫게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오히려 대량생산이 빈곤을 영속화한다고 간다는 주장한 것이다. 간디는 "세계 빈곤의 해결은 '대량생산(mass production)' 기술이 아니라 '대중에 의한 생산(prouduction by the masses)'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적정기술은, 기술중심이 아니라 사람중심

기술개발과는 다른 맥락이지만, 성장론자들은 '파이'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제가 발전하면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논리다. 하지만 경제가 성장해도 서민들 주머니는 항상 부족하다. 성장 열매는 자본가와 기득권 세력에게 돌아간다. 박근혜정권도 '알바 일자리'를 많이 만든다. 일자리 질은 생각하지 않고, 수만 늘리는 것이다. 사람이 중심이 아니라 일자리가 중심이 되어버렸다. 사람이 중심인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적정기술이 지향하는 바가 바로 인간중심이다.

적정기술의 정신과 실천은 이제 인간이 기술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에 맞춰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기술중심주의가 아닌 인간중심주의! 인간과 환경 모두를 위한 기술! 바로 이것이 21세기의 적정기술, 나아가 21세기의 기술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지난 세기의 낡은 슬로건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인간이 제안하고, 과학은 탐구하며, 기술은 순응하다.'(People Propose, Science Studies, Technology Conforms)"(31쪽)

사람이 희망이라고 했다. 자본이 중심이 되면 사람은 돈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SNS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로 역할을 해야지, 사람이 SNS에 매이면 결국 사람답게 살지 못한다. 기술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위해 기술이 존재해야지 사람이 기술을 위해 존재하면 결국 기계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널리 공유되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고, 어느 누구의 창조성도 가난하다는 이유로 무시되거나 꺾이지 않게 하는 과학기술"이 바로 "적정기술"이다. 기술이 이윤만을 추구할 때 그것은 사람을 따뜻하게 해주지 못한다. 하지만 적정기술은 사람을 따뜻하게 해준다.

엔지니어의 입장에서 보자면 적정기술은 '최고의 기술'일 수 있습니다. 최선의 설계와 최적화된 맞춤 기술이 들어가야 하고, 지속성과 확장성까지 확보해야 하니까요. 그러면서 그 안에 이윤 추구를 뛰어넘는 따뜻함이 깃들어 있을 때, 바로 그게 진정한 적정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73쪽)

선한 빛, 생명의 물, 번쩍이는 빛을 선물

따뜻함을 함께하는 적정기술은 히말라야 오지에 선한 빛을 비춘다. 히말라야, 위대한 자연 앞에 사람은 한없이 겸손할 수밖에 없다. 신이 보호하는 이 아름다운 땅,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땅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가장 행복하다. 하지만 문명은 아직 혜택받고 있지 못한다. 그 중 하나가 전깃불이다. '네팔솔라봉사단'은 그들에게 빛을 선물하기로 했다. 수도 카투만두에서 자동차로 10시간, 걸어서 다시 12시간 오지마을인  라마호텔에 '선한빛'을 선물한다.

말 그대로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마을 사람들뿐 아니라 설치를 도와준 사람들, 그리고 이웃마을 사람들까지 모두 모여서 "3! 2! 1!"을 외치며 전깃불이 들어오는 순간을 만끽했지요. 한 주민은 우리가 오기 전에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는 꿈을 꿨는데 꿈이 현실이 되었다며 좋아하고, 또 다른 주민은 저희에게 '불을 가져온 신'이라는 별명을 붙여 줬어요.(128쪽)

그리고 온돌을 선물한다. 거기에는 국경도, 이념도, 피부색 구별도 없었다. '사람'만이 존재했다. 과학기술은 이렇게 선한 마음을 가지게 될 때 따뜻함을 선물한다. 이들이 전깃불을 선물했다면, 또 다른 사람들은 '물'을 선물한다. '팀앤팀 인터내셔널' 설립자 이용주씨는 1999년부터 아프리카 여행을 했다. 그는 거기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물'임을 알았다.

"물이 없이는 병원을 만들 수 없고,

물이 없이는 학교도 못 열고,

물이 없이는 공동체마저 존재할 수 없으며,

물이 없으면 아예 생명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멈출수 없는 사람들 중'

팀앤팀은 무조건 자신들이 다 수자원을 개발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다 함께 잘 사는 것'이다. 김두식 대표는 말한다.

"우리에게는 간단한 기술이 지구촌 어단가에서는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잊고 있습니다. 사실 최첨단 기술은 현지에 가면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철기시대 사람들에게 칼이나 창을 건너뛰어 갑자가 총을 쥐어 주는 겪이나까요."(84쪽)

그러면서 그는 "문명의 개념이 없고 현대적인 원리가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그들의 삶에 맞춘 기술, 스스로 관리하고 수리하고 발전 시킬 수 있는 기술을 제공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면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바로 그게 현장에서 적정기술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한다.

갑자기 4대강이 생각난다. 시민들 피땀흘린 세금 22조원을 삽질로 허비하면서 죽음의 강으로 만든 전직 대통령은 "녹조는 강이 깨끗하다는 증거"라는 막말을 했다. 그러고도 뜻뜻하고, 당당하다. 통탄할 일이다. 물을 죽여놓고 저렇게 당당한 사람은 MB가 처음일 것이다.

MB는 강을 죽였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들에게 사람과 자연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라고 말해야 한다. 여기 그런 꿈을 가진 이들이 있다. 카이스트 학생들로 이루어진 '섬광'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잃어버린 꿈을 적정기술을 통해 찾았다"고 한다. 이들은 "서로 다른 전공, 서로 다른 꿈을 가진 친구들이 모였지만,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내가 가진 지식과 기술로 이웃을 돕고 싶다는 것! 나보다는 남을 위한 과학자가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 꿈"을 가지고 있다.

"'섬광'은 순간적으로 번쩍이는 빛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섬광' 팀원들은 '섬김의 빛'이라는 뜻에서 팀 이름을 정했다. 어두운 곳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을 기술로 섬기며 반짝이는, 그런 빛이 되고 싶어서였다. 그들의 꿈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그들이 뿌린 빛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아가 세계 곳곳에서 더욱 반짝이기를 기대해 본다."(156쪽)

"우리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인간의 가치가 바로 세워지고 존중받는 세상, 땅과 하늘의 모든 자연이 인간과 조화를 이루는 세상, 소외와 빈곤의 고통, 억압과 착취의 폭력이 사라진 세상, 사람 살 만한, 나무 살 만한 그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은 특정한 사람들이 아니다. 바로 우리들이다. 그런데 기술은 우리가 쓰다남은 것을 갖다 주는 것이 아니다.

아프리카는 쓰레기장이 아니다

"언젠가 신문에 그런 기사가 난 적이 있어요. '한국에선 한물간 것, 제3세계에서는 유용하다'. 나는 이게 아주 제국주의적인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난 필요 없으니 너나 쓰라는 식이잖아요.(중략) 아프리카는 거지 나라도 아니고 쓰레기 처리장도 아닙니다. 나한테 필요 없는 걸 그들에게 주려고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적정기술은 보급이 아닙니다. 창조입니다. 창의적이어야 적정할 수도 있는 건데, 우리에게 쓸모없는 것들이 그들에게 유용하다는 생각이 가당키나 합니까."(283쪽)

조금 충격이었다. 솔직히 나 자신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나에게 필요없는 것을 갖다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적정기술은 '보급'이 아니라 '창조'였다. 아프리카가 페품처리장이 아님을 가슴에 새기자,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기술을 전수하고, 그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꿈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함께해야 한다. 적정기술이 바로 그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기술을 "테크놀로지technology의 원형을 테크네techne라고 썼다"고 한다. 이는 "인간의 자유의 이념을 성취, 구현한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기술의 원형적 의미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인간을 자연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시키며, 인간의 자유를 구현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산업혁명과 현대문명은 인간의 자유를 위한 기술이 아니라 억압하는 기술이 되어버렸다고 이들은 말한다. 이제 적정기술을 통해 사람을 억압하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를 구현하도록해야 한다.

"'인간이 제안하고, 과학은 탐구하며, 기술은 순응하다.'(People Propose, Science Studies, Technology Confor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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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선거라면 이 나라는 민주국가가 아니다 | 정치 2013-12-11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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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부정선거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황승현 저
책보세(책으로 보는 세상)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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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선거를 다시 하겠으며 내각책임제 개헌을 하겠다."

 

1960년 4월 26일 독재자 이승만이 발표한 하야 성명 일부입니다. 그는 다음 날 대한민국 4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사흘 후 하와이로 망명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살아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박정희 정권은 그가 1965년 7월 19일 숨지자 국립묘지에 안장함). 수구세력에게 '건국 대통령' 또는 '국부'로 추앙받고, 심지어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은 "세종과 맞먹는"다고 했습니다. 그런 그가 12년동안 머물렀던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이유는 40일 전에 치러진 4대 정부통령 선거 때문입니다.

 

'일찌기 없던 공포분위기'...3.15부정선거

 

그해 3월 15일 <동아일보> 1면 머리기사 제목은 <일찌기 없던 공포분위기>였습니다. 선거일이 15일이었는 데도 '투표'는 이미 14일부터 시작됐습니다. 대한민국 땅덩어리가 워낙 넓어 시차가 12시간 이상 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유당 정권은 대통령 이승만과 부통령 이기붕 이름이 기표된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었습니다.  선거일인 15일에는 투표용지 20장을 넣거나, 자유당 당원들은 기표소까지 들어가 감시했습니다. 기표소까지 따라 들어와 '감시'했으니 <동아일보> 1면 머리기사가 헛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투표자수보다 이승만과 이기붕 득표수가 더 많았다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독재자 이승만이 민주공화국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독재자 박정희도 '부정선거'를 저질렀습니다. 전두환도 이승만과 박정희보다는 못했지만, 군인을 동원한 부정선거를 시도했습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대통령 선거가 '부정선거'로 규정받은 적은 없었습니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한나라당은 대통령 선거가 '부정선거'이기 때문에 탄핵을 시도한 것이 아니라 열린우리당을 지지한 발언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1년내내 '부정선거' 의혹에서 단 하루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부정선거, 불공정선거로 치러진 대선에 불복하는 것이 민주주의 실현"

 

장하나 민주당 의원이 지난 8일 개인 성명을 통해 한 발언입니다. 그는 이어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가 총과 탱크를 앞세운 쿠데타로 대통령이 되었다면, 국정원과 사이버사령부를 동원한 사이버쿠데타로 바뀌었다는 것만 다를 뿐"이라며 "다가오는 6월 4일 지방선거와 같이 대통령 보궐선거를 치르게 하는 것이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내년 지방선거때 보궐선거를 주장했습니다.

 

박근혜, 1987년 이후 처음으로 '부정선거' 비판받아

 

'부정선거', '대통령 퇴진'은 지난 1년 동안 익숙한 단어이지만, 현직 국회의원 입을 통해 나온 것은 처음이라 파장은 컸습니다. 당연히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대선불복이냐"로 반박합니다. 이미 오래 전(?) 박근혜 대통령도 "난 국정원에 도움 받지 않았다"고 말했고, 야당 대표를 앞에 두고 "내가 댓글로 당선됐느냐"고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중 어느 한 사람도 지난 대선이 "공정선거"였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유는 이미 검찰이 시간이 부족해 121만건만 공소장에 기록했을 뿐, 국정원 직원들이 2200만건을 트윗 또는 리트윗 한 것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민주선거가 정당성을 갖는 이유는 '공정성'입니다. 공정성은 국가기관이 집권당을 위해 절대로 개입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는 국정원과 군사이버사령부가 SNS를 통해 개입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국가보훈처도 '동영상'을 제작해 박근혜 후보는 긍정적으로 문재인 후보는 부정적으로 홍보했습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18대 대통령선거는 '공정선거'가 아니라, 부정선거입니다.

 

그런데 부정선거라는 말만 꺼내도 "대선불복"이라며 "유권자를 모독하는 것"이라고 매도합니다. 이제 당당하게 말할 때가 됐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부정선거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책보세)입니다.

 

책은 "18대 대선에서 국정원, 군사이버사령부, 국가보훈처가 여론을 조작하여 선거에 개입한 상황을 청화대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

 

이어 "더불어 우리는 공정한 투표권을 상실당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다가오는 진실을 마주보지 못하고 외면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명백한 부정선거라고 해도 재선거를 요구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무력하다고 말한다"며 "이에 우리는 진정한 이 나라의 주권자임을 깨닫고 스스로 결단해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박 대통령, 가장 깨끗한 선거로 당선됐다고 말하지 못하나"

 

"선거의 공정성이 확고하게 지켜지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부정선거지, 공정선거가 아니고 부정선거도 아닌 상황이란 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내가 댓글로 당선됐느냐고 반박합니다. 새누리당도 마찬가지입니다. 댓글 몇 개가 당선에 영향을 끼쳤느냐고 따집니다. 하지만 댓글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끼치지 않아도, 국정원이 댓글이 단 자체가 공정성을 무너뜨렸습니다. 부정선거입니다. 책은 이렇게 묻습니다.

 

"왜 박근혜 대통령이 역사상 가장 깨끗한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이라고 말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왜 기껏한다는 말이 불복하지 말라고 말도 끝도 없이 고함지르는 것뿐이란 말인가? 18대 대선의 공명정대함을 명명백백하게 밝혀 나 같은 불온세력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지 못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27쪽)

 

"대선불복이냐"는 시민과 야당을 급박하는 박근혜정권은 지난 대선이 공정선거였는지 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불복하지 말라는 힐난은 부정선거 여부와 무관하게 그저 현재의 권력에 복종할 것을 요구하는, 부정선거 의혹을 둘러싼 사실 관계를 고의적으로 외면하는 기만적인 언사"라는 비판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부정선거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는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데 일부의 선거 부정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는 주장은 무엇보다 18대 대선 당시 공정선거를 장담하고 약속했던 여당과 정부의 고위관계자를 모욕하는 발언이지만 이 주장이 더 지독하게 모독하는 대상은 따로 있다"며 "예를 들어 그들의 말을 철석 같이 믿었던, 아니 믿을 수밖에 없었던 유권자들은 어떻게 되느냐 말"이라고 반문합니다. 즉 공정성을 훼손한 댓글 공작이야 말로 유권자 한 표를 모독했다는 비판입니다.

 

"관권을 동원한 명백한 선거부정이 벌어진 상황에서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변명을 무의식적으로라도 용납한다면 공정선거라는 개념은 마침내 무너지기 때문이다. 18대 대선의 선거 부정과 그 처리 과정 전체가 공정선거라는 개념이 이 땅에서 과연 성립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중대한 사태인 이유다."

 

공정성을 잃어버린 지난 대선이 '부정선거'라면 중대한 사태입니다, 그럼 이제 "부정선거라 하더라도 승복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당연히 하야하고 재선거를 실시하면 된다"는 말입니까? 장하나 의원 같은 경우 후자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부정선거라 하더라도 하야와 재선거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니 박근혜 대통령이 부정선거로 당선됐다고 말하는 사람도 "부정선거라 하더라도 하야와 재선거는 안 된다"에 방점을 찍고 있는지 모른다고 묻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부정선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겁박에 무력해진 나머지 그들이 오히려 시인할까 바 겁에 질려 있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겉으로는 '부정선거라며 당장 책임을 져야 한다'며 분개하고 있지만, 실은 하야라는 경우만큼은 두려워하고 있다는 뜻이다."(91쪽)

 

그러면서 "문제는 권력도, 보수언론도, 부정선거 가능성이 있는 18대선도 아니다. 문제는 괜한 갈등과 분란을 일으킨 우리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지금 바로 이 문제 앞에서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짜 문제는 "대선불복이냐"는 말 한마디로 지난 1년을 버틴 박근혜 정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부정선거라면 이 나라는 민주국가 아니라는 말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부정선거라면 이 나라는 민주국가가 아니다.

 

"공정한 선거가 치러져도 민주주의 국가이고, 부정선거가 저질러져도 민주주의 국가라면, 그것은 민주주의 국가 개념을 희화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부정선거가 일어났을 뿐 아니라 그것이 은폐되기까지 한 땅을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말하는 데 조금이라도 주저한다면, 이는 민주주의 국가가 라는 확신 때문이 아니라 그저 이곳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고통스러운 진실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100쪽)

 

문제는 지금 우리가 많이 무력해져 있다는 점입니다. "언론이 장악되고 민주주의가 훼손된 이 땅의 참혹한 현실을 견디며 우리가 지치고 무력해진 상태"입니다. "부정선거가 확증된다고 하더라도 권력이 이를 순순히 시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 또 권력의 그 후안무치한 태도에 자칫 저항이라도 한다면 무력한 우리들은 도리 없이 잔인하고 비열한 탄압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 설 수 없습니다. 이런 두려운 현실이 우리 앞에 있지만 나아가야 합니다.

 

"본질적으로 투표권은 우리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공정선거를 통해 정당한 경쟁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는 유권자의 기대가 실현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기대권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정의로운 일이기 전에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이라면 당연히 감당해야 할 필연적 의무입니다."(본문에서)

 

부정선거 의혹 제기는 정의로운 일이기 전, 민주시민이 감당해야 할 의무

 

부정선거란 내게 주어전 한 표가 "내 의지를 실현할 기회를 근본적으로 강탈당했음을 의미한다"면서 "간단히 말해 그것은 당신이 원하는 후보가 당선될 수 있었음엗 선거 부정으로 인해 그 가능성을 부당하게 탈취 당했다는 걸 뜻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당신이 박 후보를 찍지 않았다고 당당히 말하는 것이야말로 부정선거의 직접적 피해 당사자일 수 있는 당신의 억울함을 표출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냐"고 묻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18대 대선이 부정선거라면, 논리적으로든 현실적으로든 하야와 재선거밖에는 다른 어떤 결론도 있을 수 없다고 믿는다."(237쪽)

 

이제 주권자인 우리는 스스로 결단해야 합니다. 비록 우리는 권력과 장악된 언론때문에 무력감을 느끼지만, 무력감을 인정하고 '18대 대선은 부정선거인가?'라는 질문을 끝까지 지켜내야 합니다. 하야와 재선거가 누군가에게 요구하거나 부탁할 사안이 아닌 이 나라의 주권자인 우리 스스로 결단할 문제라고 <부정선거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는 말합니다.

 

"18대 대선은 혹시 총체적 부정선였던 것은 아닌가? 무력한 우리 모두가 권력을 향해 이 질문을 서슴없이 던질 때, 동시에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이 이 질문의 당사자라고 함께 선언할 때, 그리하여 자신이 갑진 투표권 한 장을 지키려는 우리의 절규가 마침내 정당한 것으로 판명 됐을 때, 우리는 무력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바로 무력했기 때문에 이 질문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었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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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줄에서, 최소한 비겁하게 살지는 말자" | 인문 2013-12-0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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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다른 길이 있다

김두식 저
한겨레출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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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관련 사진'사람' 열이 있으면 '생각'이 열입니다. 백이면 생각이 백입니다. 열과 백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려면 생각이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각자가 살아가는 가는 길이 다릅니다. 모두가 다른 길일 때 그 길은 아름답습니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면 모두가 적이 됩니다. 모두가 같은 길을 간다면 그 사회는 죽은 사회입니다.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판사라면 행복한 사회일 수 있습니다. 모두가 검사라면 그 사회를 숨을 쉴 수 없는 세상입니다. 선생님이 있어야 하고, 농사짓는 사람, 고기 잡는 어부 그리고 자동차를 고치는 정비사, 우리 사회를 깨끗하게 하는 청소노동자 어느 것 하나 고귀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여기 30명이 있습니다. '다름'을 '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어쩌면 이들도 '붉은 물'이 든 사람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서른 개의 생각과 서른 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2012년 1월부터 2013년 5월까지 <한겨레> 토요판에 연재되었던 인터뷰 '김두식의 고백' 가운데 서른 명의 이야기를 담은 <다른 길이 있다>(한겨레출판)에서 서른 명의 서른 개의 다른 생각과 삶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박경신 · 고종석 · 유시민 · 윤태호 · 문부식 · 이상호 · 김종배· 등등. "쓰지만 영근 삶을 살아온 서른 명의 인생 이야기"로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면 어느새 '다른 길'을 가는 것이야 말로 사람냄새 나는  '사람살이'임을 알게 됩니다.

서른 개의 다른 길...사람냄새나는 '사람살이'

김두식이 만난 이들은 어릴 적 부모 없는 삶을 살고, 군사독재가 쏜 독화살이 자신의 삶에 치유하게 힘든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감당해야 하는 병역의 의무를 피할 요량으로 미국시민권을 딴 박 교수가 그렇게 걱정하는 '우리나라'는 대체 어느 나라인지 꼭 한번 묻고 싶다."(37쪽)

누구보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한 보수신문 기자가 쓴 글입니다. 그 기자가 말한 박 교수는 박경신 고려대 교수입니다. 그는 지난 2011년 7월 자신의 블로그에 남성 성기 사진 5장과 귀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 그림을 연달아 올렸습니다. 파문이 컸습니다.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재판까지 갔으니 파문은 컸습니다.

박 교수는 <PD수첩>,언소주,미르네바, 군 불온서적 재판에 나가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중요한 재판에 나가 전문가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보수신문 기자가 "박 교수가 그렇게 걱정하는 '우리나라'는 대체 어느 나라인지 꼭 한번 묻고 싶다"고 한 이유를 어느 정도 알 것 같습니다. "대통령 퇴진하라"는 신부들을 향해 "조국이 어디냐"냐고 분노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과 닮아도 참 많이 닮았습니다. 박 교수는 방송통신심의위원이었습니다. 즉 '검열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올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검열자'가 발기된 성기사진을 올리다니

"제가 방심위원이 되면서 국민의 정신생활을 통제하는 '검열자'가 된 셈이잖아요. 국가가 국민의 머리에 들어가 직접 생각을 통제할 수는 없으니까 국민이 보고 듣는 것을 통제하는 방식을 취하는 거죠. 법학 지식을 이용해서 불합리한 통제를 막는 게 저의 임무인데, 국민이 검열 때문에 어떤 것을 보지 못하는지 기록이라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박경신 자료실'(blog.naver.com/kyungsinpark)이라는 제 블로그에 '검열자 일기'를 쓰기 시작했죠. 촌스러운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제가 쓴 논문이나 칼럼을 지인들과 나누는 소박한 블로그예요. 제가 양심적으로 판단해도 무리하게 삭제되거나 차단된 경우를 자료실에 남겨놓고 나중에 추가적인 논의나 연구를 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성기 사진은 '청소년유해물로 접근을 제한하자'고 타협했는데도 음란물로 삭제돼버려서 이건 꼭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죠."(38쪽)

검열자는 '칼질'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박경신은 칼질을 거부했습니다. 보수세력이 보기에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성의 과학>이라고 관련 전문가들이 내놓은 야심작을 보면, 발기된 총천연색 사진을 보여주면서 발기의 진화학적 유래, 즉 삽입의 용이성을 설명한다"며 "저는 그런 사진들이 당연히 허용되어야 하고, 청소년 유해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런 박 교수 주장에 동의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이는 생각이 다를 뿐이지, 박 교수 생각이 '틀린'것이 아닙니다.

서른 명 중 가장 가슴 아프게 만난 사람이 있습니다. 대학교 학과 선배인 문부식씨입니다. 문씨는 "광주의 비극을 상기시키고 미국과 전두환의 더러운 결탁을 고발"하려고 지난 1982년 3월18일 부산미화원 방화사건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그는 고신대학 신학생이었습니다. 목사가 되려고 한 사람이 벙화를 하고, 결국 사람까지 죽입니다. 1986년 학교에 들어갔는 데 4년이 지났지만, 상처가 남아 있었습니다.

'부미방' 문부식, 민주화에 기여하지 않는 '나'를 부끄럽게하다

그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한 때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에 글을 썼습니다. 문부식에게도 그 사건은 '트라우마'인 것같습니다.

"그 죽음에 대해 누군가 책임져야 한다면 그건 저라고 생각했고 스스로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자로서 법정에서도 무죄주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부산에 가더라도 미문화원 쪽은 쳐다보지도 못했어요. 유리창 깨지는 소리, 연기 속에서 달려 나오던 후배들의 모습, 이들이 짊어져야 했던 부채감들이 떠올라서"(214쪽)

왜 그가 "부채감"을 가져야 할까요? 부미방사건은 그 동안 군사독재만 저항했던 학생운동이 미국을 제국주의로 생각하는 계기가 됩니다. 문부식은 "눈이 많이 오던 겨울밤 오랜만에 동료들을 만나 술 한잔 걸치고 집에 왔지요. 혼자 자전거 타고 편의점으로 가다가 미끄러져 공중에 떴다가 자빠지고 난 뒤 생각했다"며 "'이런 젠장 내 인생은 뭐지?' 꽤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어울리던 친구들과 저는 다른 인생이었던 거죠. 그동안 지녀온 지적 자존심이 삭풍과 함께 날아가 버린 것 같은 쓸쓸함"이라고 했습니다. 문부식과 인터뷰를 마친 김두식이 쓴 마지막 글은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굴곡이 심했던 인생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문부식은 "나는 원래 길 잃은 인간으로 태어났으며 구원받는 것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도 않는다"는 존 스타인벡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네이팜탄 공장에 폭탄을 설치했다가 예기치 않은 희생자를 내고 평생 도망 다녀야 했던 영화 <허공에의 질주>의 반전운동가 부부가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영화 속의 그들과 달리, 문부식에게는 그를 끝까지 보호하고 지원하는 '조직'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사람을 쓰고 빨리 내다버리는 곳이 우리 사회인 것 같습니다. 문부식처럼 민주화운동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에게 자기 삶과 화해할 기회를 한번이라도 더 주는 것이, 저처럼 민주화 운동에 전혀 기여한 바 없이 과실만 따먹은 사람들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220쪽)

부끄럽습니다. 부미방 사건 자체(방화)는 동의할 수 없지만, 그를 통해 미국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고 민주주의 한 발 더 진보했습니다. 하지만 문부식을 지켜주고 보호해줄 조직은 없었습니다. 민주화란 열매는 다 따먹으면서 그들을 한 번 더 돌아보지 않는다면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를 가장 완벽하게 누리는 이들이 어쩌면 수구기득권입니다. 민주주의 열매를 따 먹고,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이들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있습니다.

<오마이TV> '이슈털어주는남자'(이털남) 김종배 시사평론가도 만날 수 있습니다. 김 평론가는 "언론비평지에서 주로 기자생활을 했는데 그 경험을 단 한번도 후회하지 않아요. 제도언론 기자들이 부서나 출입처 중심으로 세상을 본다면, 저는 언론판 전체를 넓게 봤다고 생각"한다며 "다른 건 몰라도 언론비평지가 정파적이 되어서는 안 되죠. 데스크 할 때 후배들에게도 팩트만 가지고 가야지 진영논리로 가면 안 된다고 강조했어요. 한겨레라도 잘못하면 비판하라, 조중동이라도 잘했으면 칭찬하라 그랬다"고 합니다. 언론이 '진영논리'에 매몰되면 안 되다는 것입니다. <조중동>처럼 수구기득권을 대변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오마이뉴스>같은 진보언론 역시 진보세력이 민주주의의 공의에 반하면 날선 비판을 하라는 말입니다. 해겨야 합니다.

"둘째 줄에서, 최소한 비겁하게 살지는 말자"

기사 관련 사진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에 위치한 이한열기념관에서 과선배 이한열 열사 앞에 선 이상호기자 그는 "둘째 줄에서, 최소한 비겁해지 말자"고 한다.
ⓒ 한겨레출판

 

'삼성 엑스(X)파일'하면 떠오르는 정치인은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입니다. 그리고 언론인은 이상호 기자입니다. 그는 "둘째 줄에서, 최소한 비겁하게는 살지"말자고 합니다. 이런 삶을 살게 된 것은 지난 1987년 6월 항쟁 때 이한열 열사 때문입니다.

이 기자에 따르면 이한열씨는 2학년 과대표 자신은 1학년 과대표였습니다. 9일에도 이한열 열사가 "내일부터는 시민들이 나올 테니까, 딱 오늘까지만 홍보전에 같이 나가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한열 열사가 제일 앞줄에 서고 자신은 그 뒷줄에 섰다고 합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둘째 줄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상호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둘째 줄의 의미를 자꾸 생각하게 돼요. 가장 비겁한 게 둘째 줄인데, 기자는 직업적으로 둘째 줄에 설 수밖에 없어요. 첫째 줄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이 노동 환경과 비정규직 문제를 제기할 때, 기자는 아무리 훌륭해도 그걸 전하는 둘째 줄밖에 못 되니까요. 남의 삶을 통해 말하는 거간꾼에 불과하죠. 20대 때부터 한열이 형의 삶을 반추하다가 2003년 <시사매거진 2580>에서 배달호 열사를 취재하면서 확신을 갖게 됐어요. 내가 첫째 줄에 서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둘째 줄에서는 비겁해지지 말자!"(258쪽)

"둘째 줄에서는 비겁한 일"은 하지 말자는 그의 다짐 지금 이상호를 있게 한 것 같습니다. 사실 둘째 줄에 서면 편안합니다. 그리고 나도 둘째 줄에는 섰다며 자랑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비겁한 일이라고 합니다. 지금 맨 앞에서 공의와 정의를 외치는 이들은 "대통령은 물러나라"고 외치는 사제단입니다. 박근혜정권은 바로 이들을 종북이라고 합니다. 다름 자체를 부정해버립니다. 하지만 박근혜정권은 태생이 기득권입니다. 그러기에 어쩌면 더 비겁한 사람이 바로 '나'일 수 있습니다. 최소한 비겁한 삶은 살지 않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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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재판관도 때로는 압제자임을 증명해왔다" | 인문 2013-12-0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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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피고인이 된 변호사

한승헌 저
종합출판범우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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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9일 개봉하는 영화 <변호인>에서 '돈 없고, 빽 없고, 가방끈도 짧'은 세무 변호사 송우석(송강호 분)은"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라며 최후 변론을 한다.

"당신의 소중한 돈을 지켜드립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명함을 돌릴 정도로 '돈'을 좋아했던 송우석이 "국가란 국민입니다"라는 최후 변론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국민선택이 아니라 찬탈을 통해 권력을 잡은 것도 모자라 주권인 인민의 인간존엄성을 무참히 짓밟았기 때문이다. 이후 송우석이 어떤 변호인의 길을 걸었는지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은 현실에서 그를 '인권 변호사' 노무현으로 불렀다.

 

<변호인> 시사에 참석했던 한 여성 관객은 <오마이스타>와 인터뷰에서 "이번 영화를 통해서 그분을 더 좋아하게 됐다. 이래서 사람들이 '노무현 노무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반공법사건 전문 변호사', 한승헌

 

우리나라 변호인 중 송우석처럼 살아온 이들이 많다. '승소'보다는 '패소'를 밥먹듯이 한다. 돈 안 되는 변호를 밥먹듯이 한다. 그리고 변호인이 아니라 '피고인'이 된다. 이런 변호인에게 누가 변호를 맡길까. 하지만 사람들은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패소할 줄 뻔히 알면서도 그를 찾았다. '동백림 간첩단 연루 문인 사건,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론 탄압 사건', '민중교육 사건, '민청학련 사건', '통일혁명당' 사건 등등이다. 그리고 반공법 위반 필화사건과 '김대중내란음모사건'으로 두 차례에 걸쳐 21개월간 옥살이를 하며 1976에서 1983년까지 변호사자격이 박탈되었다. 이런 그를 두고 친구는 '반공법사건 전문 변호사'라고 했단다.

 

그는 감사원장을 지낸 한승헌 변호사다. 법조생활 55년을 맞아 <한승헌 변호사 법조55년 기념선집>이 나왔다. <한일현대사와 평화·민주주의를 생각한다>, <피고인이 된 변호사>, <권력과 필화>, <한국의 법치주의를 검증한다>로 구성됐다.

 

<피고인이 된 변호사>는 '변호사' 한승헌만 아니라 '사람' 한승헌을 만날 수 있다. 글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마다 박정희 독재정권과 전두환 독재정권을 지나 김대중-노무현 정부들어 공직에서 있으면서 겪었던 여러 경험들을 통해 그가 민주주의를 위해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다.  

 

'돈' 좋아하는 변호사 노무현이 '부림사건'을 맡으면서 인권 변호사로 삶을 변했듯이 한승헌은 '분지사건'과 김지하 <오적>을 맡으면서 '반공법전문 변호사' 길로 들어선다. '분지사건'은 1965년 남정현 소설가가 현대문학 3월호에 발표한 <분지>가 같은 해 5월 8일자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 <조국통일>에 실리자 중앙정보부가 반공법으로 잡아 넣은 사건이다. 한승헌은 지난 2009년 1월 19일 <한겨레> [길을찾아서] '시국사건 변론 첫발 '분지'에 내딛다' 글에서 분지사건 변론을 맡게 된 이유를 이렇게 회고했다.

 

얼마나 긴 대장정의 험난함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줄은 짐작도 못한 채, 그저 터무니없는 용공 혐의에 짓눌린 한 작가의 수난을 외면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검찰에 변호인 선임계를 냈던 것이다

 

"터무니없는 용공 혐의"를 박정희 정권은 뒤집어 씌웠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문학평론가 임중빈씨가 1970년 11월호 <다리>에 '사회참여를 통한 학생운동'이란 그을 썼다. 다음 해 3월 중정은 이를 문제 삼았다.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는 "은연중 우리 정부의 타도를 암시, 반국가 단체인 북괴를 이롭게 하는 내용"이라고 했다.

 

미 연방대법관 더글라스 "역사는 재판관도 때로는 압제자임을 증명해왔다"

 

시대가 그랬다. 무조건 "빨갱이"로 몰면 끝이었다. 한승헌은 "책에서 배운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니, 증거재판주의니, 임의성 없는 자백의 배제니 하는 재판상의 정의는 번번이 실종되었다"며 "재판은 오직 처벌을 위한 의식으로 전락한 느낌 마저 주었다"고 말한다.

 

"특히 유신독재 시절 대통령긴급조치사건을 다룬 군법회의에서는 개헌을 주장했대서 15년 징역이 구형되면 바로 그 다음날 틀림없이 15년 징역이 선고되곤 했다. 그러한 재판에 대해서 나는 '자판기 판결'또는 '정찰제 판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런 사법 풍토 속에서 나는 언제나 실패하는 변호사일 수밖에 없었다. 재판관이 검사의 편만 들 때에는 피고인은 하느님을 변호인으로 모실 수밖에 없다는 말이 절실한 명언으로 떠올랐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더글라스 판사가 "역사는 재판관도 때로는 압제자임을 증명해왔다"고 한 말을 되씹어보기도 했다."(36쪽)

 

"역사는 재판관도 때로는 압제자임을 증명해왔다"는 읽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그 판결이 권력이 바라는 '정찰제 판결'를 내리면 똑 같은 압제자가 된다. 독재자 박정희 치하 숱한 시국사건이 그랬다. 판사들은 더글라스 판사 말을 판결을 내릴 때마다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한승헌을 변호인에서 피고인으로 만든 '김대중내란음모 사건'은 헌법상 기본권은 사치품일 정도로 민주주의가 유린당한 사건이었다. 박정희와 전두환을 '군사반란자'와 '독재자'로 부르는 이유다.

 

군법회의도 예상을 초월한 촌스런 연극으로 진행되었다. 사선 변호사인 선임도 철저히 봉쇄되었다. 접견·통신권은 간 곳이 없다. '김대중내란 음모 사건'은 그러한 불법  조작의 극치였다. 우리들을 가두어놓고 전두환은 그 사이에 국회를 폐쇠하고 국보위(국가보위입법회의)를 만들더니 급기야 '체육관 대통령'이 되어 집권 야욕을 채웠다. 내란은 누가 했는가, 구형량  그대로 선고되는 판결, 창문은 켜녕 바늘구멍 하나 없는 육군교도소의 먹방생활…….헌법상의 기본권이니 형사소송법의 무슨 권리니 하는 것은 한낱 웃기는 사치품이었다(110쪽)

 

없는 용기를 다해서 양심을 지켜야 했다

 

전두환이 왜 '나쁜 놈'일까? 헌법을 무력화시켜 인간존엄성을 웃기는 사치품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권력을 찬탈한 자가 민주주의를 바라는 인민을 탄압한 것이다. 민주시민은 전두환에게 "네가 네 죄를 알렸다"라고 물어야 한다. 한승헌은 최후진술에서 "우리들의 형기의 장단이 아니라 유·무죄를 제대로 판단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민주화를 요구한 우리들이 민주화를 약속한 정부에 의해서 체포된 것은 매우 코믹한 일"이라며 "우리는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정부를 비판했다. 비판을 한 사람이 어떤 대우를 받게 되느냐로 그 나라의 민주의의 척도가 결정된다. 최근의 사회적 혼란은 정부를 비판할 자유가 없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법부는 김대중에게 사형, 문익환 20년, 이문영과 예춘호 12년 그리고 한승헌은 4년을 선고했다. 대법원 역시 1980년 10월 상고기각했다. 한승헌은 책에서 대법원 판사 13명(이영섭, 주재황, 한환진, 안병수, 이일규, 나길조, 김용철, 유태흥, 정태원, 김태현, 김기홍, 김중서, 윤운영)실명을 그대로 실었다. 더글라스 판사의 "역사는 재판관도 때로는 압제자임을 증명해왔다"는 말을 김대중내란음모 사건에 그대로 적용해도 무방할 것이다.

 

내란음모 사건이 33년만에 다시 부활했다. 과연 2013년 대한민국 사법부는 어떤 판결을 내릴까? 오로지 헌법과 법에 따라 판결해야지 만약 정치권력이 바라는 대로 판결한다면 "역사는 재판관도 때로는 압제자임을 증명해왔다"는 치욕을 겪게 될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치욕스러운 것은 같은 생각을 가졌다가 자신의 이익때문에 동지들은 배반하는 일이다. 독재권력은 배신을 이끌어내기 위해 어떤 때는 협박을 어떤 때는 회유를 했다. 이 같은 마수는 한승헌에게 있었다.

 

"사실 '남산' 쪽의 압력이나 공작·협박은 쉽게 뿌리칠 수 있는 마수가 아니었다. 항복이나 훼절 또는 맹세를 강요하는 것은 다반사였다. 나는 특정 사건의 변호에서 손을 떼라는 협박에 맞서다가 단 하루 만에 붙들려가서 구속당한 경험도 있다.  반성한다거나  준법하겠다는 각서 한 장 쓰라는 것을 거부한 탓으로 한낮부터 밤늦도록 싸우기도 하고, 지방 교도소로 이감을 당하기도 했다. '남산'의 사건 조작이나 공작 의도에 순응하지 않고 버티기란 그리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한번 영합·굴복하고 나면 파멸이니 마찬가지니까  없는 용기를 다해서 양심을 지켜야 했다."(342쪽)

 

권력의 독기 앞에 좌절할 때도 있었지만, 물러서지 않아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고문도 견디기 힘들지만, 약점을 잡고 회유하는 것은 더 이겨내기 힘들다. 아주 작은 약점도 잡히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승헌이 회유와 협박을 당해도 남산(중정)에 굴복하지 않았던 것은 그가 '깨끗'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사실 종이 한 장 쓰고, 반공법전문변화사를 그만 두면 엄청난 부를 누릴 수 있었다. 한승헌은 "없는 용기를 다해서 양심을 지켜야 했다"고 말한다.

 

없는 용기를 내어 양심을 지켜야 할 정도로 박정희 정권은 폭압정권이었다. 이런 박정희를 '반신반인'이라고 한다. <피고인이 된 변호사>에는 67건이 나온다. 한승헌은 "크든 작든 이 나라 역사에 영향을 미쳤거나 각인이 된 그분들의 고난의 기록"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분들을 돕는다고 나섰던 저의 안간힘은 벌거벗은 권력의 독기 앞에서 좌절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저는 법정의 변호인석에서 물러설 수가 없었다"고 반추한다.

 

한승헌이 변호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권력의 독기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 변호사. 이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대한민국은 더 나은 민주주의로 발전할 것이다. 33년만에 내란음모죄로 재판받은 국회의원, 전교조를 '노조 아님', 민주정당을 '북한식 사회주의'를 한다며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한다. 독재자 박정희와 전두환이 내뿜었던, '권력의 독기'를 다시 뿜고 있다. 한승헌의 글을 가슴에 새기자.

 

"변호인의 소임은 법정안에서 변호활동을 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하지만, 공간과 시간의 한계를 넘어선 재판의 실상과 진실을 널리 알리는 일도 저의 사명의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재판이 불의와 거짓의 편에 기울어질 경우에는 변호사의 증언자적 소임이 한층 더 중요하다고 믿습니다."(3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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