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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비폭력 | 정치기사 2016-01-16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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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국주의는 우리 할머니들을 성노예로 삼았고, 할아버지들을 강제징용했다. 일본 정부는 아직까지 종군위안부 국가개입을 부정하고, 강제징용 상징인 군함도를 논란 끝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다. 1950726일 미 제1기병사단 제7기병연대 예하 부대는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 철로 위에 피난민들에게 기관총을 무차별 난사했다. 생존자들은 200여명이 죽었다고 증언한다. ‘노근리 민간인 학살사건이다.

 

지난 해 대한민국 군대는 임 병장윤 일병사건을 겪었다. 전쟁터에서 전우를 지키고 보호할 군대가 오히려 전우를 죽이는 폭력이 난무했다. 오늘도 같은 하늘 아래 살지만 폭격으로 죽어가는 이들, 특히 어린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2013년 생화학 무기에 노출되어 고통 속에 죽어가는 시리아 어린이를 보면서 울지 않는 이들은 없었다.

 

스벤 린드크비스트는 <폭격의 역사>에서 거의 습관화된 폭격의 근본 이유는 언제부터인가 바로 서구인의 머릿속에 깊숙이 박혀 있는 타 인종 특히 비서구인에 대한 경멸감, 즉 인종주의라고 말한다. ‘폭격폭력으로 대치시켜도 의미는 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서구인들(백인들)은 자신들만이 정의고, 선이다. 다른 인종은 군인과 민간인을 구별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어른과 아이를 구별하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일본인은 ‘1등 국민이고, 우리 민족은 조센징으로 비하한 일제가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에게 가한 폭력도 넓게 해석하면 인종주의다.

 

폭력 없는 세상, 과연 가능할까? 비폭력 세상, 이 땅에서 이룰 수 있을까? 폭격이 밥 먹는 것처럼 일상이고, 어린아이마저 죽임 당하는 현실 앞에 이 같은 바람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가능성에 삶을 걸었던 이가 있다. 마하트마 간디다. 1965<레닌 평전>으로 퓰리처상을 받고, <간디의 삶과 메시지>, <간디평전>, <인도의 성웅 간디 2> 따위로 간디 연구 최고 권위자인 루이스 피셔 (Louis Fisher)<간디의 삶과 메시지>에서 간디의 비폭력주의는 무엇보다도 인간적 윤리에 대한 믿음이라고 말한다.

 

일본 수상 아베는 종군위안부를 인신매매로 명하고, 오사카 시장을 지낸 극우정치인 하시모트는 "위안부가 (일본)군에 폭행·협박을 당해서 끌려갔다는 증거는 없다. 있다면 한국이 내놨으면 좋겠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인간존엄성을 무참히 짓밟은 폭력에 일말의 반성조차 없다. 양심과 윤리 의식 자체가 없는 망언이다. 양심에 화인 맞은 이들은 자신들이 자행한 폭력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필연이다.

 

간디는 다르다. 그는 국가와 민족, 인종보다 사람자체가 먼저다. 사람이 먼저이니, 폭력이 아니라 비폭력을 삶의 근본으로 삼았다. 피셔는 간디의 비폭력주의는 인종, 사회, 국가 사이의 분쟁을 예방하기 위한 하나의 기술이라고 했다. 국가와 민족 그리고 인종을 앞세우면 자신들만 정의고, 옳고, 선이다. 일제가 그랬고, 서구제국주의가 보여주었다. 당연히 박해 받는 민족과 국가와 인종은 저항할 수밖에 없다. 폭력은 필연이다. 무차별 폭격과 폭력을 자행하는 이들과 나라가 더 강한 무기와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잔인성은 더 배가된다.

 

간디는 이에는 이처럼 폭력에는 폭력이 아니라 비폭력으로 저항했다. 피셔는 간디 비폭력주의는 진실, 사랑, 봉사, 심사숙고의 방법과 수단, 말이나 행동으로 남을 해치지 않는 것, 상이함에 대한 관대한 용납, 무욕, 그리고 물질을 최소한으로 추구하는 절제가 포함 된다고 한다. 패권자들은 전쟁을 시작하며 정의와 선을 위해서라는 논리를 제시한다. 무차별 폭격과 폭력으로 민간인, 어린이와 여성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깊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물질만 생각하는 그들에게 어린이와 여성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전쟁을 통해 먹고사는 군사복합체 그리고 그들을 통해 배를 불리는 권력은 혼연일체다. 탐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아니 탐욕이 근본이다. 절제 없는 폭력 일상화다. 죽임을 낳을 수밖에 없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권력자들은 자신들 는 탐욕으로 채우면서, 약자들이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짓밟는다. 1928년 인도는 노동분쟁과 민족주의 분쟁으로 혼란했다. 간디는 총독 어원에게 당신은 한 달에 월급 2만루피(7,000달러)를 이상입니다. 하루에 700루피(233달러)입니다. 그럼 인도인 평균 수입은 2아나(4센트)를 넘지 못합니다. 당신은 인도인 평균보다 5천배나 넘게 번다는 편지를 쓴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최소한 물질은 권력이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시대가 달라도 변할 수 없다. 이는 탐욕이 아니다. 이를 막는 것이 폭력이다. ‘6030’ 내년 최저임금이다. 1시간 일해도 한 끼 식사가 버겁고. 8시간을 일해도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5만원이 안 된다. 어원에게 쓴 간디 편지가 2015년 대한민국 최저임금노동자를 위해서도 손색이 없다.

 

절제와 무욕이 폭력을 없애는 길이라고 말한 간디는 한 발 더 나아간다. 우리가 간디를 주목할 이유다, 피셔는 간디는 탐조등을 내부로 향하게 하라’”라며 과오는 우리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그렇다, 폭력은 저 멀리, 타인에게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서 시작된다. 당연히 폭력을 막는 길도 나에게서 시작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나라를 보자. 정치권만 아니라 지지 세력도 싸우고, 다투고, 증오가 난무한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세력이 집권하지 못하면 그날부터 비판한다. 아직 우리나라는 종교 분쟁과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 다행스럽다. 하지만 종교편향논란이 조금씩 불거지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종교분쟁도 일어날 수 있다. 가장 잔인한 전쟁이 종교간 전쟁이다. IS 학살이 그 증거다. 간디는 하나의 종교적 분쟁이나 인종적 폭동이 다른 분쟁이나 폭동을 야기하는 화약고로 즉각 변할 것이다면서 그래서 하나의 전쟁이 터지면 그것이 독소를 생성해 공포를 조성하고, 군사적 체제를 강화해 제2, 3의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더욱 짙어진다. 폭력은 그 스스로 영속화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폭력이 폭력을 잉태하고, 전쟁이 전쟁을 낳는다. 전쟁은 그 잔인성을 더 해간다. 폭력은 두 배 세 배된다. 생명을 가장 사랑하고, 평화를 만들어가야 할 종교가 죽임을 낳는다.

 

이 비극의 사슬을 끊는 길은 무엇일까? “‘비겁과 폭력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폭력을 선택하겠다비겁함이야말로 인간의 자존심과 존엄성을 해친다는 간디 가르침이요, 살았던 삶이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폭력을 자행하면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을 왜 순종하지 않느냐고 말해야 한다. 말하지 않는 것이 비겁함이다.

 

독일 프리드리히 마틴 니묄러 신부는 나치가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노동운동가', '가톨릭교도', '기독교도', '이웃', '친구'를 잡아갈 때 침묵한 결과,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나를 잡으러 왔을 때 내 주위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나를 위해 이야기 해줄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 고통당할 때 지켜주지 않으면 나를 지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겁하지 말고, 폭력에 저항할 때만 비폭력 누리를 만들 수 있다.

 

<간디의 삶과 메시지> 항상 양심의 명령에 귀를 기울였기에 간디는 다른 사람들 양심을 대변하고, 나아가 인류 양심의 대변자가 될 수 있었음을 말한다. 간디가 전 생애를 통해 일관적으로 보여준 자세는 바로 행동하는 양심이었다고 천명한다. 간디는 독재자가 될 수 있었다. 독립운동을 한 이들이 독립 후 독재자로 길로 들어서는 것을 세계 역사에볼 수 있다. 하지만 간디는 민주주의자의 마음도 가졌다. 따라서 권력이 아니라 사랑으로 상대방을 정복했다.

 

매일 밤 그는 대부분이 힌두교도인 기도 군중을 향해 코란의 몇 구절을 낭독하는 데 반대하는지 물었다. 보통 두세 명이 반대했다. 그 반대자들은 코란을 낭독하는 동안 조용히 있을 것인가? 그들은 그러겠다고 했다. 다수는 그 반대자들을 불쾌하게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코란을 낭독했다. 이것이 관용과 수양의 살아 있는 교훈이었다. 모든 사람의 의견이 같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비폭력적일 수 있었다.”(281)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을 갖는 세상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을 바라고 시도하는 사람은 독재자요, 국가는 전제국가다. 반대자를 용납하지 않는 지도자는 독재자요, 사회는 전체주의다. 간디는 그 길을 가지 않고, 비폭력 삶을 살았고, 비겁함을 버리기 위해 폭력에 저항했다. ‘종교 분쟁을 막기 위해 온힘을 다했지만, ‘종교폭력으로 삶을 놓았다. 간디는 실패했는가? 아니다. 간디가 그렇게 갔을지라도 우리는 비폭력 삶을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함석헌 선생은 간디의 길이란 제목 글에서 "간디의 길이란 어떤 길인가? 그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스스로 부른 대로 그것은 사티아그라하다. 진리파지(眞理把持)이다. 참을 지킴이다. 또 세상이 보통 일컫는 대로 비폭력운동이다. 사나운 힘을 쓰지 않음이라고 말한다. 이어 혹 무저항주의란 말을 쓰는 수도 있으나 그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쉬운 이름이다. 간디는 옳지 않은 것에 대해 저항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는 죽어도 저항해 싸우자는 주의라고 말한다. 옳은 일에는 저항해야 한다.

 

62,089 그리고 249. 간디가 감옥에 있었던 날이다. 2089일은 인도 감옥, 249일은 아프리카 감옥이다. 투옥과 단식을 거듭하면서도 인종, 계급, 종교의 차별을 뛰어넘으려 했던 간디의 비폭력 삶을 <간디의 삶과 메시지>는 드러낸다. 피셔는 발로 뛰면서 <간디의 삶과 메시지>를 썼다. 그는 1942년과 1946년 간디의 아쉬람을 두 차례 방문하고 그를 직접 취재했다. 그때의 경험과 함께 당시 주요 인물들을 만나고 그것을 녹여냈다는 점에서 이 책에서는 여느 평전과 다른 생생함을 느낄 수 있다.

 

아이들에게 사람사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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