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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두 여인 | 기본 카테고리 2007-01-21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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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기대어 앉은 오후

이신조
문학동네 | 1999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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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두 여인. 50대 중반과 20대 중반. 20대 중반은 50대 중반을 비웃는다. 50대 중반은 20대 중반을 부러워하면서 약간은 시기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의 한 모습들이다.

기대어 앉은 오후 역시 그런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은해와 윤자는 같은 아파트에 서는 여성이다. 그들은 서로를 알지 못하지만 느낌으로 알고, 느낌을 더 하면서 서로를 알게 된다. 50대 여성 윤자는 손을 한 번씩 다른 방향에 둔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남편과 아들의 아침상을 통하여 반역을 꿈꾸지만 남편과 아들의 반응을 신통치 않다.

은해는 최대리에 대한 감정을 가진다. 최대라의 콤프렉스를 알아 차린 결과다. 최대리도 반격을 하여. 그의 이름을 은혜가 아닌 은해라 한다. 한 밤에 꿈을 꾸었지만 은해는 결국 최대리를 갖지 못한다.왜 그럴까 결국 그는 아버지의 가죽장갑과 수영강사를 통하여.

 

요즘 소설이 다 그렇지만 자기 혼자만의 세상을 이야기 한다. 남을 대하는 성격이 영 불만이다. 과연 수영강사는 은해를 어떻게 보았을까? 최대리는 은해를 어떻게 보았을까? 남편과 아들은 윤자를 어떻게 보았을까? 윤자와 은해가 가졌던 생각을 그대로 가졌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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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은 유치 | 기본 카테고리 2007-01-2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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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어느덧 일 주일

전수찬 저
문학동네 | 2004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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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은 유치하다. 설정이 그렇고 그렇다. 유부녀와 총각, 남편이 떠난 공간에 청년이 개입한다. 물론 그 전부터 개입했다. 총각도 유부녀 남편을 전부터 알고 지냈다. 일주일 간 일어난 유부녀와 총각 사이의 일 가운데 몇몇이 개입한다. 신호, 기연씨 오빠, 과장, 노숙자 아저씨.

일주일 동안 일어난 그네들의 사건 속에 개입된 이들을 다 설명하고자 하니 단조롭다. 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며, 그들이 준태에게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하는지 도지 모르겠다.

요즘 소설은 다 이런가? 그저 생각없이 읽을 수있게 하는 것이 글쓰는 이들의 일상인가? 독자들도 그것을 원하는 것일까?

글이란 구로와 같다. 구로하는 여인의 경험을 통한 글이 아니고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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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바나나맨은 아닐까 | 기본 카테고리 2007-01-2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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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구영웅전설

박민규 저
문학동네 | 2003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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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소설은 조금 어렵다. 어려운 소설가 중에 박상륭씨가 있지만 그와 다른 의미에서 어렵다. 어렵다는 말은 어디에 초점을 두어야 할지 고민이라는 뜻이다.

 지구영웅전설은 우리가 그 옛날 만났던 수퍼맨, 배트맨, 언더우먼, 아쿠아맨 등등이다. 가만히 이들의 면면을 보면 역시 지구방위특공대 미국이 만든 것들이다. 요즘 뿐만 아니라 그 때 역시 지구는 미국이 지켰다.

 '나'는 미국인이 될 수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백인이 아니기에, 그가 바나나맨으로 거듭났지만 언더우먼의 생리대 선물을 할정도이다. 과연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박민규도 그에 대한 질문을 가졌기에 이런 류의 소설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그도 답을 가지고 있을까?

 한미에프티에가 한창이다. 후세인은 이미 생을 끝마쳤다. 이란은 핵을 가질 수없다고 한다. 북한도 마찬가지이다. 원인과 이유에는 모두 미국이 있다. 그리고 미국이 곧 정의요 선이다.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이 기준에 부합하기 위하여 전세계는 오늘도 미국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있으면 이 땅의 군상들 역시 미국에 조아리기 위하여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서울시청 광장에서 모여 성조기를 태극기와 동등하게 아니 태극기 위에 두고 미국을 지켜달라, 악의 세력에서 이 나라를 지킨 미국에 경의를 표한다.

 지구영웅전설을 읽어면서 미국의 반대한다고 하지만 우리 스스로 이미 미국을 어쩔 수 없이. 싫어하지만 미국을 거부할 수없는 우리 현실을 반추했다. 박민규 역시 미국을 의식과 무의식 속에서 존경과 비판 중 어느 하나에 둘지 모르고 있음을 느꼈다. 미국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가득했지만 그렇지 못함을 드러내고 있다.

 과연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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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을까 | 기본 카테고리 2007-01-19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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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김영하 저
문학동네 | 2005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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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약간은 부담스러웠다. 나를 파괴할 권리가 과연 나에게 있을까? 모든 인간이 이 문제에 고민하면서 세상과 자기가 살가는 공간이 주는 부담감 때문에 한편으로는 동의할 수 있겠지만 선듯 동의할 수 없었다.

 작가 역시 '이 소설은 혹시 당신 내면에 숨어 있는 살해 충동의 문화적 표현입니까?'라는 질문에 들켜버린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 인간 모두는 내심 살해 충동이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을 결행할 마음이 없었고, 결행 후에 닥칠 법적 규제와 자기와 같은 인간의 눈초리 때일 것이다.

 k와 c는 한부모의 핏줄을 이어받는 이들이지마 자신만의 세상을 꿈꾸고 있다. 이 생각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한 여인을 두고 자신의 몸을 탐한다. 한 사람은 밋밋하지만 한 사람은 밋밋한 상대를 이해할 수없다. 물론 그도 아버지의 장례식에 몸을 적나라한 쾌락에 던지기도 한다.

 이런 인생살이가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일상이기도 하다. 밋밋한 사랑을 하고, 자기 쾌락을 위하여 핏줄의 슬픔을 외면하기도 한다. 콜라만 마시는 홍콩에서 온 여인, 과연 그가 홍콩에서 왔는지도 모른다. 왔다니 온 것이지. 그 여인은 자기를 돈으로 산 남자의 정액을 마시면서 구토가 무엇인지 알게되었다.

 남자의 정액을 마시면서 구토한 것은 그가 자기를 잉태게 한 아버지의 거부일 수있다. 남자는 정액을 통하여 쾌락을 일삼을 수 있지만 내심 자기 종족을 번식시키는 원초적 본능을 소유한지이다. 이를 부정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 부정은 자기가 경험하고, 의식한 부정일뿐 남자라는 인간은 근본은 그렇지 않다.

 이 모든 경험들이 나를 파괴할 권리일 수 있지만, 신을 믿는 이들에게는 또한 부정이기도 하다. 신을 부정하는 이들이 이를 동의할 수 있지만 신을 믿는 이들에게는 또한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다. 나는 후자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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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말하는 문자를 포기하는 안타까운 시대 | 기본 카테고리 2007-01-0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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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뿌리 깊은 나무 1

이정명 저
밀리언하우스 | 2006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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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끊임없이 알고자 한다. 우리 시대는 더 과하다 할 정도로 앎에 대한 욕망이 강하다. 하지만 나를 아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뿌리깊은 나무를 읽어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다. 세종은 나를 알고자했다. 나를 아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문자였다. 나를 말하고, 표현하는데 문자만큼 근본적인 것은 없다. 하지만 세종과 조선에게는 문자가 없었다. 자기를 말하고, 표현하는, 조선을 말하고, 표현하는 자기 문자가 없었다. 그러므로 아무리 위대한 지식과 이상을 가졌을지라도 그 지식과 이상은 중국의 문자에 갇혀있을 수밖에 없었다.

세종과 당시의 수구세력의 대결은 여기서 시작된다. 세종은 나를 알고자 했고, 수구는 내가 아니라 상국을 섬겼다. 이는 단순히 기득권 유지차원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자기가 되고자 하는 근본마음이 없었다.

누가 죽고, 몇 명이 죽었고, 어떤 원리가 숨어 있는지, 채윤과 최만리의 두뇌 싸움이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나를 아는 것에서 그 뿌리를 찾아야 한다. 수구세력과 개혁세력의 싸움도 아니다. 나를 표현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것이 문자임을 책은 묵묵히 말하고 있다. 이 시대 우리는 우리를 말하는 문자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 세종대왕이 만원짜리 인물에만 머물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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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만능이 더려면 정직해야 한다 | 기본 카테고리 2007-01-05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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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치 청산 - 시장경제만이 살 길이다

유정호 저
책세상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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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호의 [관치 청산-시장경제만이 살 길이다]는 왠지 이상한 냄새가 난다. 어디서 많이 들었던 말이기에. 얼마나 많은 신자유주의자들이 외쳤던 말인가/ 시장에 맡겨라. 시장을 믿어라. 하지만 그들은 먼저 신뢰를 보여 주지 못했다.

1960년대 이후 개발 독재가 나은 병폐가 분명있다. 관치의 열매가 어쩌면 1997년의 아이엠에프 일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의 책임은 없는가? ''관치''라는 말 자체가 풍기는 늬앙스는 굉장히 악의적인 표현이다. 왜 시장주의자들이 자기 책임을 회피하기 가장 적절한 단어일 수 있기 때문에. 관치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관치가 시장을 왜곡하고, 시장의 주체들과 결탁하여 나은 결과들이 문제이다.

관치와 그들과 결탁한 일명 시장의 주체-자본가들- 사실 우리나라에 시장의 주체가 무엇인지 모르는 일들도 많은 모양이다. 시장에 맡겨라 하지만 시장을 자기 집 가계부 정도로 생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한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관치가 문제라면 시장경제의 주체, 곧 자본과 경영가들도 시장이 요구하는 원칙과 원리에 충실해야 한다. 과연 그들이 그렇게 했는가? 한보,대우를 알고 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삼성이 비판 받고 있는 여러 이유들, 과연 삼성은 유정호가 말하는 시장경제 정말 충실한 재벌인가?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국가는 개입할 일이 있으면 개입해야 한다. 관치 때문에 시장경제가 제대로 뿌리 내리지 못했다고 정부를 비판하지 말라. 시장경제 다운 시장경제를 먼저 자본과 경영가들은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시장은 아직 정직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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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제국주의가 아니였던가? | 기본 카테고리 2007-01-05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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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누구를 위한 협력인가

박지현 저
책세상 | 2004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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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하면 파리, 예술, 드골, 나치 부역자들을 청산, 자유주의, 자유, 평등, 박애, 프랑스 혁명 등등이다.

비시정부가 무슨 정부인지 잘은 모르지만 일반적인 관점으로는 독일에 부역한 정부로 알고 있다. 그러니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었다. 나는 비시 정부가 나치 부역 정부인지, 민족혁명을 통하여 새로운 프랑스를 재건하고자 했던 것인지, 민족 혁명을 통하여 독일 협력을 숨기고자 했느니, 나치주의의 변종인지 잘모르겠다.

모든 것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비시정권이 프랑스 인민 자체를 배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프랑스 인민을 위하여 어쩌면 변절과 부역을 했을지도 모른다. 프랑스가 독일에 패배하기 전까지 그들은 좌파, 우파, 극우파, 급진파, 파시스트 의 논쟁이 있었다.

"혁명은 장난이 아니다. 강철 같은 법의 지배를 받는 가차 없는 행동이다." "정당은 죽었다, 국가와 정부와 진영에서 통솔하고 선동하고 지지하는 일당 독재 체제를 세워야 한다."

"자연은 개인들을 통해 사회를 창조할 수 없다. 자연은 사회를 통하여 개인들을 창조할 수 있다." 페텡은 말하고 있다. 개인의 권리보다 집단적 인간권리를 강조하고 있다.

프랑스의 비시정부가 부역 정권인지, 나름의 정통성을 지닌 정부인지 그것은 프랑스 사람들이 평가할 일이다. 그런데 독일은 프랑스를 점령했을지라도 프랑스의 정신과 식민지를 점령하지 않았다는 저자의 결론은 새로웠다. 우리와 일제의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나게 한다.

하지만 프랑스는 식민지를 가진 제국주의였다. 그들도 사실 아프리카에서 수 많은 나라를 찬탈한 제국주의였음을 프랑스인들을 인정하고 있을까? 나는 항상 이런 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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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에 | 기본 카테고리 2007-01-05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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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성서로 읽는 디지털 시대의 몸 이야기

이종록 저
책세상 | 2004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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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람은 자기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 이 절대진리는 믿는 사람이 이종록의 [성서로 읽는 디지털 시대의 몸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형상의 지음을 받은 우리 몸을 죄악시 하는 잘못을 지금 우리도 범하고 있음을 안다.

사실 우리의 죄는 몸덩어리만 아니라 전인격이 죄덩어리이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사실 이 말은 기독교 진리의 핵심이다. 곧 예수를 말함이여 그 예수가 성육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셨다. 이것은 인간 이성이 결코 범잡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이다.

23쪽에서 이종록은 "하나님은 언제나 ''삶으로 초울''하는 존재이다." 말하지만 사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 곧 인간 안에 존재함을 증거하고 있다. 인간에 계신 하나님. 초월만이 아니라 내재하시는 분이다. 그는 성육신을 하나님의 초월의 가장 결정적 사건이라 하지만 인간에게 오신 사건으로 초월과 내재이다.

[아가서]는 사실 음란할 정도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 성적 표현을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우리 성경은 너무 완곡하게 번역하였다. 서로의 몸을 본다. 몸을 보는데 왜 음란하게 읽히지 않을까? 그들은 젊은 몸만을 사랑하지 않았다. 늙은 몸도 사랑하였다. 에로스에서 아가페로 그들은 승화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내어 주었다.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인간은 몸 자체이다. 몸은 그저 우리 육신 덩어리가 아니다. 바로 인간 자신을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몸을 천하게 여기는 일을 해서는 안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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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를 제대로 읽을 자 있는가 | 기본 카테고리 2007-01-05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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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철학에서 이야기로 - 우리 시대의 노장 읽기

김시천 저
책세상 | 2004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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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장을 말하는 것 자체가 그들을 비웃을 수 있다. ''도''가 무엇인지 묻고 말하는 순간 이미 ''도''가 아니라는 말도 되지 않는 유아적 지식을 가진 나 자신이 김시천의 [철학에서 이야기로-우리 시대의 노장 읽기]를 접하고 얼마나 나 자신 다시 한번 우스운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김시천은 매튜스가 철학은 보편적 진리의 추구나 고취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새로운 활력을 얻었다 말한다. 이런 말에 용기를 얻을 인간 군상을 많으이라. 철학하는 이들이 막걸리 마시고, 흰고무신 신고, 머리털 깎지 않고 고상한 척 하면서 고매한 인격을 자랑하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우낀 자들인지 속으로 비웃었는가? 요즘도 이런 인간들 많다. 김시천의 이 말을 나는 좋게 생각한다.

노장사상(?) 노장철학(?) 찾이는 무엇일까? 김시천이 예로 든 박이문은 사상은 철학보다 더 포괄적이기 때문에. 박이문은 "도를 도라 말하면 그것은 영원한 도가 아니다"에서 잘 드러나듯이 궁극적 존재와 언어의 관계에 대한 이론이다. 즉 노장사상의 핵심은 언어철학이다.

철학만들기가 아니라 철학하기를 제안한. 김시천. 진리를 담고 있는 닫힌 경전이 아니라 역사와 나란히 전승된 삶의 이야기로서의 노장을 보고자 한다. 이것이 김시천이 하고자 한 글의 내용이다.

서양과 노자가 만난다. 김시천을 노자를 어느 날 갑자가 서방으로 사라져 버린 후 종적이 묘연해진다고 말한다. 서양이 노자를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런 질문을 자주 하면서 서양은 우리를 너무 모른다고 한다. 그럼 과연 우리는 서양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김시천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 ''제대로''읽는 것보다느 ''어떻게'' 읽는가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웰치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읽는 행위는 창조 행위이다" 노자와 도덕경은 어떻게 읽는가? 서양은 이를 어떻게 읽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대로 이해했는가? 이것보다. 사실 우리도 노자와 도덕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읽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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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은 너희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대상이다 | 기본 카테고리 2007-01-05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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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탄핵, 감시 권력인가 정치적 무기인가

조지형 저
책세상 | 2004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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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3월 12일 11시 56분 국회의장 박관용이 ''대통령노무현의 탄핵안이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이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약 3분 어머니께서 전화로 "저 죽일놈들" 이 말을 되풀하시면서 통곡한 일도 생생하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당시 이 땅의 사람들 70%는 그들의 선택에 분노했다. 200년 이상 된 미국 헌법에 배운 대한민국 헌법. 그들이 만든 탄핵제도, 그러나 우리는 정말 전문적, 체계적인 탄핵에 대한 연구결과가 없었다. 헌법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탄핵을 결의한 자들이나. 그것을 받아 결정한 헌법재판관들이 똑같았다. 그들 헌법전공가 없었다는 것은 정말 비극이었다. 우끼는 이야기 아닌가? 하위법은 알면서 상위법을 모르는 자들이 판관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우기는 현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을 탄핵소추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대상 자체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탄핵은 어떤 범죄를 소추하고 처벌하는가? 헌법 65조 제 1항은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라고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중대한 범죄이다.

조지형은 미국 헌법을 대한민국 헌법이 많이 배웠기 때문에 미국의 탄핵 사유로 우리나라 탄핵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클린턴은 한 여성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탄핵 재판을 받았지만 무죄였다. 닉슨은 워트게이트 사건으로 탄핵 직전 스스로 물러났다. 링컨 이후 대통령이 되었던 존슨도.

이 글을 쓴 때는 탄핵직전이었지만 이제 시간이 흘러 노무현대통령은 직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헌법을 너무 몰랐다. 탄핵이란 엄청난 사건을 경험하고 헌법을 조금 알았을 뿐이다. 그것도 정파와 지지성향에 따라 다르다. 헌법은 특정 정파와 지지성향에 따라 달리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앞으로 헌법을 정적을 제거하거나 자기들의 정치적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한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이다. 지도자는 항상 탄핵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고, 탄핵의 결정권을 가진 자들은 또 정치적 목적으로 헌법을 악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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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9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