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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창제는 세종 아닌 박연? | 인문 2013-06-23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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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박연과 훈민정음

박희민 저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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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은 앞으로 50년 더 살기가 어렵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 당신의 운명과 함께해서는 안 된다. 해례본을 공개하고 전문가들에게 맡겨 후손들을 위해 잘 보존될 수 있도록 해달라." - 2013.01.18 <한겨레>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갑갑한 운명'

지난해 9월 7일 대구고법 형사1부(재판장 이진만)는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을 훔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배아무개(50)씨에게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하면서 한 말이다. 언론들은 상주본 가치를 1조 원라고 했다. 1조 원이라면 돈으로 매기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운 일'이라는 말이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가치는 1조 원

훈민정음 해례본은 한글 창제 원리를 풀이한 한문으로 된 해설서로 훈민정음 창제 3년 뒤인 1446년(세종 28년) 편찬됐다. 서울 간송미술관에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국보 70호)과 같은 판본이다. 학자들은 상주본이 간송본보다 보존 상태가 좋고 학자의 어문학적 견해가 많아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고 <한겨레>는 같은 기사에서 보도했다.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2011년 방영)에서 이도(세종대왕)는 광평대군을 잃어면서까지 해례인 소이를 지켜 한글을 반포한다. 광평만 아니라 집현전 학사들이 죽어갔다. 심지어 금기 중 금기였던 시신해부까지 했다. <뿌리깊은 나무>만 아니라 우리는 한글날만 되면 한글이 얼마나 위대한 글자인지 자랑한다. 방송들도 한글창제를 한 세종을 칭송하며 우리는 감격한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아오톡에서 줄임 글자가 등장하고, 한글 파괴 현장이 나타나자 지하에서 세종대왕이 운다는 말도 들린다.

상주본 가치가 1조 원, 뿌리깊은 나무에서 이도 모습, SNS시대의 한글 파괴현상에 대한 분노의 공통점은 한글은 위대하며, 이 위대한 글자를 만든 분은 세종대왕이라는 점이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에서 나라를 구하지 않고 원균이 구했다는 것만큼 불경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항상 불경에 도전하는 이는 있기 마련이다. 한글날 556돌인 지난해 10월, <박연과 훈민정음>(박희민 지음, 휴먼앤북스 펴냄)은 훈민정음 창제자가 세종이 아니라 난계 박연(1378~1458)이라고 주장했다.

훈민정음 창제자가 세종이 아닌 박연?

기사 관련 사진
 <박연과 훈민정음>
ⓒ 휴먼북스

 

"훈민정음은 박연이 만들어 세종 25년(1443)에 임금의 이름을 발표하였다.  지금은 비록 하늘이 허공에 맞서는 기분이지만 언제가는 반드시 '박연의 훈민정음 창제'는 정설이 될 것이다."(6쪽)

뭐 이런 '개풀 뜯어 먹는 소리'가 어디 있느냐고 분노하겠지만, 밀양박씨 난계파 후손인 박희민씨는 <난계유고>(蘭溪遺稿),<세종실록> 따위 기록을 통해 나름대로 훈민정음 박연 창제설을 주장한다.

<난계유고>는 박연 시문집으로 16세손인 경하(景夏)가 1822년(순조 22) 초간했다. 김조순(金祖淳)과 김노경(金魯敬)의 발문이 수록되어 있다. 중간본은 1903년에 박심학(朴心學)에 의해서 간행되었고, 시 9수, 소(疏) 39편, 조하의절(朝賀儀節)과 가훈십칠칙(家訓十七則) 등 잡저 2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은이가 박연 창제설을 주장하는 근거를 보자. <세종실록> 세종 25년(1443) 12월 30일 훈민정음 창제에 대해 이렇게 기록되었다.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만은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니,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세종실록>(세종 25년 12월 30일)

박연이 훈민정음 창제한 3가지 이유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는 50일 후인 세종 26년 2월 20일 "중국에라도 흘러들어가서 혹시라도 비난하여 말하는 자가 있사오면,어찌 대국을 섬기고 중화를 사모하는 데 부끄러움이 없사오리까"라는 논리를 들어 훈민정음 반대 상소문을 올린다. 그러자 세종은 다음과같이 반박한다.

"네가 운서(韻書)를 아느냐. 사성칠음(四聲七音)에 자모(字母)가 몇이나 있느냐. 만일 내가 그 운서를 바로잡지 아니하면 누가 이를 바로잡을 것이냐(중략) '삼강행실을 반포한 후에 충신·효자·열녀의 무리가 나옴을 볼 수 없는 것은, 사람이 행하고 하지 않는 것이 사람의 자질 여하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꼭 언문으로 번역한 후에야 사람이 모두 본받을 것입니까' 하였으니, 이따위 말이 어찌 선비의 이치를 아는 말이겠느냐.(중략), '내가 만일 언문으로 삼강행실을 번역하여 민간에 반포하면 어리석은 남녀가 모두 쉽게 깨달아서 충신·효자·열녀가 반드시 무리로 나올 것이다." - <세종실록> 26년 2월 20일 재인용 178쪽

즉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한 사람의 세 가지 요건으로 "'운서를 아는 사람', '사성칠음에 자모가 몇인지 아는 사람', '백성에게 훈민정음으로 된 삼강행실을 반포하자고 주장한 사람'"이라고 주장했고, 여기에 합당한 사람이 박연이라는 것이 지은이 논리다.

그럼 박연은 '운서를 아는 사람일까?' <세종실록>에서 '운서'는, 세종 20년(1438) 1월 예조와 관련한 것에서 시작해 세종 32년(1450) 윤1월까지 총 7번 나온다. 운서란 <홍무정운>(洪武正韻)을 말하는 것으로 1375년 명나라 태조때 악소봉 등이 칙명으로 편찬한 것으로 한시를 지을 때 필요한 최신 이론서였다.

한글창제에 반대했던 최만리는 말할 것도 없고, 집현전 학자들도 운서를 잘 몰랐기 때문에 "집현전의 그 누구도 세종 25년(1443) 12월 30일 훈민정음 창제 발표 이전에 <운서>를 몰랐다. 따라서 집현전 학자들은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이 없다"면서 운서를 잘 아는 이는 박연이므로 한글창제는 박연이라는 것이 그 첫 번째 근거라고 박희민은 주장한다.

'사성칠음에 자모가 몇인지 아는 사람'

다음으로 '사성칠음'이다. 사성은 중국어 한자음을 그 성조에 따라 평성(平聲), 상성(上聲), 거성(去聲), 입성(入聲)을 말한다.  박연은 세종 8년(1426) 4월 25일 "옛날에 사문(師門])이 거문고를 탈 적에, 봄을 당하여 상현을 타면, 서늘한 바람이 뒤따라 이르고, 여름을 당하여 우현을 타면 눈과 서리가 번갈아 내리고, 가을을 당하여 각현을 타면 따뜻한 바람이 천천히 돌고, 겨울을 당하여 치현을 타면 햇볕이 뜨거웠으며, 사성을 총합하면 상서로운 바람과 상서로운 구름이 잠시 동안 모였다 하였으나, 이것은 오성의 감소된 것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세종실록> 재인용)는 상소를 올렸다. 즉, 박연이 사성을 잘 알고 있다는 말이다.

칠음은 궁(宮), 상(商), 반상(半商), 각(角), 치(徵), 반치(半徵), 우(羽)다. 누가 뭐래도 박연이 가장 잘 아는 아악의 칠음계다. <운서>에서 칠음은 아음(牙音), 설음(舌音), 순음(脣音), 치음(齒音), 후음(喉音), 반설음(半舌音), 반치음(半齒音)이다. 아악별좌를 지낸 박연은 사성과 칠음 곧, 28자를 창제했다고 말한다.

'백성에게 훈민정음으로 된 삼강행실을 반포하자고 주장한 사람'

훈민정음 창제 세번 째 조건인 '백성에게 훈민정음으로 된 삼강행실을 반포하자고 주장한 사람'이다. <난계유고> 1번 소(疏) '널리 가례와 소학, 삼강행실을 가르치고, 오음정성으로 풍속을 바로잡자는 상소'에 있다.

"백성에게는 삼강행실을 가르쳐 미풍양속을 이루게 할 것이며, 그뿐만 아니라 오음의 바른 소리를 가르쳐 민풍을 바로잡도록 하시기 바랍니다."<난계유고> 재인용, 184쪽)

따라서 "이 세 가지 요건을 갖춘 박연이야말로 훈민정음의 진정한 창제자"라며 "15세기 조선 최고 학자였던 박연은 조선의 음악을 정립하였을 뿐만 아니라, 음악 서적에 전문적 지식으로 천, 지, 인의 바람소리·물소리·목소리를 아우르는 훈민정음을 탄생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럼 세종은 무엇을 했을까?

훈민정음의 정착을 위해서 임금이란 강력한 힘이 필요했기에 박연이 문자를 창제했지만 세종의 이름으로 반포했다는 것이다. 그럼 세종은 한글창제에 무슨 역할을 했을까? 신하의 업적을 가로챈 것있을까?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세종 25년(1443) 12월 30일,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발표는 세종의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세종은 중국과 외교문제 등 '훈민정음 창제'로 빚어질 수 있는 국내외 온갖 어려운 문제를 혼자서 감당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건강히 악화된 세종 25년의 연말을 훈민정음 창제 발표시기로 잡은 것이다. 훈민정음을 만들려는 박연을 격려하여 이 일을 이루게 하고, 훈민정음을 임금의 이름으로 발표하여 강력하게 추진한 것이 세종의 역할이었다."(187쪽)

세종은 든든한 후원자라는 말이다. 한글을 누가 창제했는지 다양한 주장이 있다. 박연 창제설도 이들 중 한 이론일 수 있다. 한글창제는 세종대왕 단독창제설, 후일 문종이 되는 세자와 수양대군 등 '왕좌주도설, 또 세종대왕과 문종도 아닌 성삼문을 비롯한 '집현전 학자설', 그리고 세종대왕 둘째 딸인 '정의공주 도움설' 등이 다양하게 제기되었다. 그 중 정의공주 도움설 근거가 되는 죽산안씨대동보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세종이 우리말이 문자로 (중국과) 상통하지 못하는 것을 걱정해 훈민정음을 제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발음을 바꾸어 토를 다는 것에 대해 아직 연구가 끝나지 못해 여러 대군(大君)을 시켜 (이 문제를) 풀게 했으나 모두 미치지 못하고 공주에게 내려 보냈다. 공주가 즉시 이를 해결해 바치니 세종이 크게 칭찬하고 특별히 노비 수백 명을 내려 주었다."(죽산 안씨 족보인 '죽산안씨대동보' 중)

어떤 사람들은 이들도 아니라 신미대사(세종~예종, 생몰년 모름)가 창제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누가 한글창제를 했는지 다양한 이론이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한글창제가 세종대왕 단독설, 문종을 비롯한 왕자 그리고 정의공주설, 집현전 학자설, 신미대사 그리고 <박연과 훈민정음>이 주장한 박연설 모두 세종대왕이 없었다면 한글창제는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세종대왕 없는 한글창제는 불가능

훈민정음 반포 후 최만리를 비롯한 조정대신은 거세게 저항했다. 설혹 박연이 창제해도, 세종이 없었다면 한글을 반포할 수 있었을까? 박연이 아무리 천재적인 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세종이 적극 지지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다. 반포와 배급도 마찬가지다. 주자소가 없었다면 한글을 제대로 배급할 수 있었을까? 주자소를 만들기 위해 세종이 힘을 보태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다. 집현전 학자도 마찬가지다. 세종은 집현전에 인재를 모았다. 서얼 출신이라도 능력이 있으면 썼다. 집현전 학문 중심은 세종이었다. 문종을 비롯한 대군들과 정의공주 그리고 신미대사도 마찬가지다.

한 마디로 세종대왕은 '문화혁명'을 일으킨 위대한 군주였다. 박연 창제설도 문종과 왕자들, 정의공주, 집현전 학자, 신미대사 창제설처럼 또 다른 주장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세종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한글이 아니라 다른 문자로 말하고, 읽고, 쓰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훈민정음 창제자는 세종대왕이라는 주장은 흔들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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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농업, 죽은 학교를 살린다 | 인문 2011-09-1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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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변방의 사색

이계삼 저
꾸리에북스 | 201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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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시작과 함께 대한민국을 휩쓴 '안철수 신드롬'에 나 역시 휩쓸려 들어갔다. 그런데 한 발짝 물러나 '내가 왜 서울시장 선거에 관심을 가지지'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서울시장은 경남 진주에 사는 나와는 별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오세훈식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경상남도에서 일어나 현재 상황에 이르렀다면 온 나라가 이렇게까지 안철수 광풍에 휩싸였을까? 논쟁과 논란은 있겠지만 지난 3년 반 동안 철옹성 같았던 '박근혜 대세론'이 위협받는 정도의 '광풍'은 없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지방자치가 시작된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서울 '중심' 사회임을 안철수 광풍은 증명했다. 이처럼 서울은 아직 견고한 '중앙'이자 '중심'이다. 사람들은 이 중심에서 벗어나면 뒤처지고, 무언가 잃을까봐 오늘도 놓지 않으려고 발부둥치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다. 

 

사람 냄새 나지 않는 그곳에서 아웅다웅하며 다투기보다는, 중앙이 생각할 수 없는 진실이 살아 숨쉬는 공간인 '지방'이자 '변방'(邊方 :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가장자리 지역)에서 더 깊은 생각과 사색을 통해 지금 이 시대를 바라보려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경남 밀양시에 있는 밀성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이계삼 선생이다. <한겨레>에서 글을 통해 몇 번 만난 적이 있지만 익숙한 이름은 아니었다. 부산 청소년들이 직접 만드는 인문교양잡지인 <인디고잉(INDIGO+ing)>, 종이신문 <한겨레>, 인터넷언론 <프레시안>, 교육 월간지 <우리교육> 따위에 투고했던 글을 묶은 책 <변방의 사색>을 통해 그를 깊이 만났다. 

 

'교육 불가능' 사회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확인했듯이 기득권층은 아이들 밥그릇에까지 자본의 논리를 들이댄다. 줄을 세워 내 아이에게 친구를 이기도록 강요한다. 거기에 살림누리는 없다. 온통 어떻게 이길 것인가만을 외친다. 이계삼은 "수시모집 원수를 접수하는 3학년 교무실은 도떼기 시장", "공장 같은 학교", "껍데기가 알맹이를 완벽하게 밀어내고, 껍데기인지 알맹인지 구별도 못하는 학교교육"의 모습을 낱낱이 보여주면서 '교육 불가능'이라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해마다 졸업식 날만 되면 아이들이 속옷 바람으로 날뛰는 모습에 언론은 한탄한다. 지난해부터는 졸업식장에 경찰을 배치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우리 어른들은 그들을 탓하기만 한다. 하지만 이계삼을 묻는다.

 

"졸업식 날, 팬티를 입고 거리를 질주하는 이 아이들은 지금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이 사회를 향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아이들은 지난 10년간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이 질문에 우리가 답할 때다."(42쪽)

 

과연 강용석 의원 제명안을 부결시킨 한나라당 의원들과 표결에 앞서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한 국회의장을 지낸 김형오 의원, 그리고 가스통 들고 '빨갱이' 잡아야 한다는 할배들, 특히 원수까지 사랑할 책무를 지닌 나 같은 목사들이 저주와 정죄를 쏟아내면서 팬티 입고 내달리는 그 아이들에 '답'을 줄 수 있을까. 자신있게 답할 사람이 별로 없을 듯하다.

 

'교육 불로초' 찾아나섰지만, 헛될 뿐

 

그 옛날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아나섰듯이 우리는 '교육 불로초'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찾아다닌다. 연봉 18억 원을 포기한 스타강사 이범, 메가스터디를 일군 '손사탐'으로 불리는 온라인 강사, 파리목숨 같은 우리나라 교육부 장관과는 달리 20년간 교육부 장관이 안 바뀐 핀란드의 예를 '교육 불로초'라고 하며 좇고 있다. 과연 이것이 교육 불로초일까.

 

하지만 이계삼은 이범 특강을 듣고 "'교육'이 아니라 자기 아이만 생각나더라"라는 한 학부모를 말을 인용해 이범에게 '혹세무민'이라고 일갈하고, '손사탐'에 대해서는 더 냉혹한 판결을 내린다.

 

"손사탐 특강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창녀보다 못한 삶'이라고 아이들에게 들이대는 이 어이없는 공포의 상징 기제를 넘어서는 '다른 삶'의 형상이 우리에게 있는가를 생각했다. 결국 문제는 '삶'이었고, 이 싸움은 가치 투쟁이다. 열일곱여덟 살 아이들에게 '개새끼', '창녀'라고 들이대도 고발당하기는커녕 열광적으로 복종하는 이 현실을 만든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99쪽)

 

그럼 왜 이런 교육 불가능 상태가 되었을까? 이계삼은 학교교육이 '희망을 배신'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국어 선생님답게 요즘 아이들은 글쓰기를 할 때 '잘 모르겠다', '그냥', '그런 것 같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라며, 우리 시대 아이들은 생각 없는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아이들 무기력 권태 뒤에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거대하고 복잡하고 짜증나는 세계가'가 있다"고 진단했다.  

 

우리 아이들이 이런 교육 불가능 상태에서 허우적거리며 세계와의 대면을 외면하고 있는데, 어른들이 내놓은 대책은 이들을 더 생각없는 아이로, 억압 속으로 이끌어간다. 통탄할 일이다.   

 

"오늘날 아이들의 이러한 일탈과 저항을 학교는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가. 익히 알다시피, 학교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그저 학칙 처벌 규정을 턱없이 강화하고, 자퇴나 전학을 권고하거나, 퇴학시키거나, 아니면 아이들을 학교 바깥 기관에 떠넘기는 것밖에는 하지 못하고 있다."(136쪽)

 

교육 불가능 상태의 해결 방안은 인문학과 농업

 

대책이 현실을 더 악화시키는 것을 내 아이들을 통해 보면서 이계삼 선생의 주장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 책임이 우리 어른들에게 있는데 아이들에게 채찍 들고, 징계하고, 줄 세운다. 그러니 교육 불가능일 수밖에. 그럼 대안은 무엇인가? 이계삼은 굉장히 생경한 대안을 제시한다.

 

"나는 12세기 가톨릭 세계의 갱신을 꿈꾸었던 베네딕트 성인의 모토였던 '기도'와 '노동'이라는 말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그것은 종교적 언술이지만, 이것을 오늘날의 교육적 맥락으로 번역하면 '인문학'과 '농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148쪽)

 

우리 시대 교육계가 진단하는 것과 너무 다르다. 고개를 갸우뚱할 이들이 만을 것이다. 현실을 모른다고. 하지만 우리 시대는 인문학을 잃어버렸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하는 이유도, '대학입시'를 위해서다. 거기에 무슨 생명이 있고,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겠는가.

 

인문학은 곧 생각하는 힘이다. 생각하는 힘은 주체적인 사람으로 키운다. 전제사회, 기득권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문학을 통해 생각하는 힘을 우리 아이들에게 길러줌으로써 교육 불가능 현상의 해소는 시작된다.

 

농업이 죽은 학교를 살린다? '농자지천하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거창한 옛말까지는 가지 않을지라도, FTA에서 확인했듯이 농업을 공산품을 위한 들러리쯤으로 여기지 않는가. 이계삼의 대안이 틀리지 않았음을 농사를 지어보면 안다. 농사를 처음 짓는 사람도 씨앗을 뿌리면 생명이 움트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흙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탁월한 농부라도 콘크리트에서는 생명을 싹 틔울 수 없다.

 

농업이 생명인데, 삽집을 살리기라는 최고지도자

 

그런데 이 나라 최고지도자는 '삽질' 곧 콘크리트를 통해 강을 살리겠다고 나섰다. 삽질 종착역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있는 지금, 죽어가는 강을 보면서도 '살리기'였다고 우기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이계삼은 30년 전 은어떼가 번쩍번쩍, 숭어떼가 첨벙첨벙, 어린 송사리는 꼬리를 쳤던 강 둔치에서 살았다.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은 무릎까지 차오는 맑은 물이 드넓은 모래벌이었고, 햇빛을 받아 달궈진 모래톱이 은빛 융단이었던 것을 기억하면서 일주일간의 낙동강을 여행한다.

 

하지만 그가 본 낙동강은 흙탕물을 뒤집어 쓴 물고기가 꼴깍꼴깍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고, 물풀 하나 없고 송사리, 소금쟁이, 벌레 한 마리 없는, 생명이 완벽히 사라진 곳임을 알고 탄식과 절규한다.

 

공허하다. 헛것을 보는 듯 허망하다. 이 헛것의 물길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자전거를 탈 것이다. 헛것의 물길 위로 요트가 지나다닐 것이고, 유람선이 다닐 것이고, 좀 이어 화물선도 다닐 것이다. 실버타운이 들어서서 죽음을 앞둔 노인들이 이 헛것의 일렁임을 바라보며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볼 것이다. 헛것이다. 헛것으로 구축된 헛것들의 파노라마이다. 오직 헛것의 풍경을 위해, 지금 온 지축을 울리며, 강바닥을 탕탕 때리며 뒤집어엎고 파헤치는 이 참혹한 파괴와 죽음의 드라마가 이어지고 있다."(225쪽)

 

교육 불가능만 아니라 온 나라를 불가능 속으로 이끌고 있다. 죽임 잔치가 난무하고 있다. 파괴와 죽음이라는 드라마가 이어지고 있다는 탄식. 이 절규를 보면서 이계삼은 참 비관주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비관주의자가 아니다.

 

영혼을 맑게 해주는 선생, 아이들에게 가장 귀한 선물

 

<하느님의 눈물>같은 글로 우리에세 생명누리, 살림누리를 글로 만나게 해줬던 권정생 선생의 오랜 벗인 민들레교회 최완택 목사가 이계삼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교육이란 영혼이 맑은 한 사람이 한 개인을 만나 그 개인의 영혼을 맑게 해주는 것이다. 우리 시대는 위대한 젊은 스승을 한분 얻었다."

 

"영혼이 맑은 사람"이 영혼을 맑게 해준다. 내 아이에게 대박과 스타강사 만나게 해주는 것이 부모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에게는 아주 낯설다. 하지만 이보다 더 사람냄새나는 것이 있나. 내 아이에게 영혼을 맑게 해주는 선생을 만나게 해주는 것이 부모로서 가장 가치있는 일임을 알자.

 

책을 덮는 순간 콘크리트보다 더 견고한 교육 불가능의 큰 틈이 조금씩 갈라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 모두가 한 마음으로 함께하면 견고한 방파제처럼 철옹성 같았던 교육 불가능이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현장을 우리 눈으로 직접 체험하게 될 것이다. <변방의 사색>은 내 자식만 잘되고, 사람 냄새 없는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발부둥치는 우리에게 선한 채찍이면서 '살림누리'로 들어가게 하는 생명물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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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교회 보내지 마라 | 인문 2011-08-02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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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우리 아이 절대 교회 보내지 마라

송상호 저
자리 | 201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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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을 볼 때마다 '벽창호'도 이런 벽창호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고집이 세고,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벽창호는 따로 있다. 목사들이다. 다른 사람 조언이나 충고, 생각을 거의 '절대'에 가까울 정도로 듣지 않는다. 아마 이 대통령의 벽창호 같은 모습도 장로 일 하면서 목사에게 알게 모르게 배운 것일 가능성이 높다. 바로 내가 그 벽창호인 목사를 직업으로 가지고 있다.

 

목사가 벽창호인 이유는 스스로를 하나님께 선택받은 특별한 자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즉, '나는 너희들과 다르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무오하듯이 나도 무오하다는 이런 생각을 하니 다른 사람을 말을 들을 리가 없다.

 

그런데 이를 단박에 깨트리는 책 하나가 나왔다. <우리 아이 절대 교회 보내지 마라>(송상호)이다. 제목만 보면 '안티 기독교' 책으로 생각하겠지만, 이 책은 쓴 사람은 목사다. 한국교회가 예수를 '상품'으로 팔아먹고, 인간의 본성인 '생각하는 힘'을 빼앗아버리고, 세상을 '선-악'으로만 가르치는 것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서이다.

 

집으로 책이 도착하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단박에 읽어나갔다. 찔림과 통회가 폐부를 갈랐다.

 

폐부를 가르는 공감과 반성

 

예수님께서 지금 한국교회에서 오시면 2천억 원짜리를 건물을 허물어버리실 것이라는 주장에는 백 배 동감한다. 입시철만 되면 내걸리는 '수능100일특별새벽기도회' 같은 펼침막도 찢어버릴 것이다. 대학은 기도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통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인, 법조인, 경제인들이 많이 다니는 교회, 특히 이명박 정권 들어 "이명박 대통령 다니는 교회"라 자랑하며 이런 교회 가면 복 받는다고 하는 기복주의에 대한 일갈에 천 배 동감한다.

 

교회를 거부한 사람은 사회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천국으로부터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극한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했다. 장담컨대 교회가 이런 두려움의 장막을 걷어버리고 좀 더 솔직하게 말해준다면 80% 이상이 교회 가기를 그만두지 않을까.(99쪽)

 

"교회 안 나오면 벌 받는다는 두려움과 공포감"을 심어준다는 비판에는 만 배 동감한다. 목사가 강단에서 교인들에게 "헌금하지 않으면, 주일을 지키지 않으면 벌 받는다"라고 하는 순간 그것은 성경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일이다.

 

나는 칼뱅신학을 공부했다. 지금도 이 신학을 신봉한다. 하지만 칼뱅이 저지른 잔혹한 살육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책에서 칼뱅을 '살인자'에 비유한 것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지만 심장을 찌르는 것으로 통회할 수밖에 없었다.

 

'의심하는 힘' 빼앗은 교회, 독재와 다름없어

 

교회에선 머리로 생각하는 사람은 어울리지 않는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으면 된다. 결국 하나님을 대리하는 교회와 목사 앞에 무릎을 꿇으라는 이야기를 고상하게 돌려서 하는 것이다. 이는 괜히 나대지 말고 자신이 바보라는 걸 인정하라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130쪽)

 

이 지적이 가장 내 마음을 찔렀다. 인간이란 생각하는 자다. 전체주의와 민주주의, 독재자와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지도자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인민에게 생각하는 자유를 주는가'가 판가름한다. 그런데 교회는 생각하는 것을 빼앗았다. 곧 독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믿음이란 "믿습니다"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신을 알아가는 과정이 없는 신앙은 독단이 되고, 배타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결국은 세상을 선(기독교)과 악(세상-타종교)으로만 본다. 선은 악을 죽여야 한다.

 

"아메리카 인디언을 몰아내고 살해한 것은 구약성서 출애굽, 모든 것이 하나님 나라 확장, 하나님이 직접 행하신 선교"라고 합리화시키는 기독교는 반드시 회개해야 한다. 이런 비극을 낳게 된 것도 모두, 교인들에게 "믿습니다"만 요구하고 의심하는 것과 생각하는 힘을 빼앗아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 하셨다. 즉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 나와 신앙이 다른 사람을 정죄 대상이 아니라 함께 하고 사랑할 대상이다. 이는 곧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

 

"남편이 반대하면 교회 나오지 마세요"

 

지은이는 교회가 일요일은 "쉬는 날"이라고 하면서, 일주일 내내 공부에 찌든 아이들을 일요일만이라도 쉬게 해주면 안 될까 묻는다. 하지만 일요일뿐만 아니라 일주일 내내 교회로 부르는 목사들이 있다. 선교와 봉사, 구제, 성경공부 따위다. 교회로 불러내기 위한 방법을 보면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남편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데 아내만 다니는 경우도 참 힘들다. 그럴 때 목사들은 "고난을 기뻐하라"며 교회에 반드시 나오라고 말한다. 지은이와 조금 생각이 다르지만 나는 "남편이 반대하면 교회 나오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이유는 가정이 교회 출석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은이의 생각을 공감하게 된 것은 나와 비슷한 사상적 회의를 거쳤다는 점 때문이다. 하늘의 음성을 듣고, 신학을 했다. 그리고 "예수님 십자가로 죄 사함을 받으라"고 외쳤다. 하지만 천국에 대한 의문과 예수 십자가만 유일한 구원일까라는 인간이라면 반드시 그쳐야 할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되었다.

 

<도덕경>에서 '물은 네모 통에 담으면 네모가 되고 세모 통에 담으면 세모가 된다. 하지만 물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주해를 통해 기독교 옷과 불교 옷을 입든 그것은 자유임을 깨닫는다.

 

나 역시 1991년 신학교 복학 후 기독교 진리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했다. 민중신학과 토착화 신학을 파고들었고, 나중에는 노장사상에 심취했다. 그러면서 부산에서 서울을 가는 이동수단이 고속버스, 열차, 자가용, 비행기 등이 있듯이 종교도 기독교만이 진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와 비슷한 사상적 회의, 그리고 가치 충돌

 

그런데 나는 지은이의 결론에는 이르지 못했다. 아니, 나의 사상적 회의 결과는 천지창조, <여호수아서>에 나오는 태양 멈춤 사건, 예수님의 물 위를 걷는 사건, 오병이어, 십자가와 부활, 성경무오성, 예수의 유일구원론에 대한 동의였다. 그러므로 이를 비판한 지은이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이런 논쟁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기독교 2천 년 역사 동안 끊임 없이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과 성도들에게 "믿습니다"를 외치게 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의심하라고 한다. 의심을 통해 나와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고, 지은이와 같은 생각에 이를 수 있다. 그리고 서로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해야 한다. 그게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고 사랑을 말한 예수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기존교단을 탈퇴하고 독립교단에 가입하려고 할 때, "그 단체 신앙고백문이 '우리는 삼위일체를 믿으며…'라는 신앙고백을 함께해야 협의회의 동지라는데 도저히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했다(77쪽). 아마 틀림없이 그 신앙고백문에는 십자가와 부활, 유일구원론, 성경무오성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책을 덮으면서, 생각하는 힘을 빼앗고, 살육을 자행하고, 2천억 원짜리 교회당을 짓고, 교회가면 복 받고 교회 안나오면 벌 받는 것을 강요하는 것에 대한 비판에는 동의하지만, 지은이의 생각과 다르지만 사상적 회의를 통해 얻는 내 결론을 지켜나가는 것이 내 양심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은이 송상호 목사의 생각을 존중함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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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위해 저항하라 | 인문 2009-07-12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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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잉게숄 저/이재경 역
시간과공간사 | 2004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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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5일 "내년에 날씨 좀 따뜻해지면 그때 다시 만나러 나오겠습니다" 라고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제 '역사'로 우리 마음속에 남았다.

 

대통령 노무현과 인간 노무현, 그 어떤 표현이든지 그는 해방 이후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기득권 세력에게 저항했다. 기득권은 모함과 조롱으로 그를 매도했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가 이제 몸으로 저항할 수 없지만 그가 남긴 정신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왜곡과 불의에 저항해야 한다.

 

사람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역사에서 적극적인 행동을 통하여 사회를 바꾸려는 사람을 기억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사회가 불의가 지배할 때 저항으로 이끌림을 당한 이들을 기억하여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억을 한다.

 

이 수동적인 저항은 자신만 희생당하는 것으로 끝날 수 있지만 사람은 역사 속에서 그들이 남긴 저항 정신을 마음에 새긴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이 가진 양심은 불의가 정의를 이기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바라는 마음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2차 대전 독일에서 뮌헨 대학을 중심으로 나치에 저항하다 처형당했던 '크리스토프 프롭스트와 한스 숄, 죠피 숄, 알렉산더 슈모렐, 크루프 후버의 실화를 바탕으로 잉게 숄이 지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은 수동적 저항이 몇 십 년 지난 오늘까지 우리에게 읽히는 이유가 그 예다.

 

나치에 대한 저항이라면 이들이 엄청난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은 그저 인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유와 정의, 삶을 위한 권리를 지키려고 했을 뿐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었다.

 

한스와 죠피는 "세상을 잊어버린 듯 바깥 세계와는 멀리 떨어진 작고 조용한 광산촌에서 보냈"고 한스는 "러시아와 노르웨이 민요"를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였다. 한스와 죠피, 알렉산더 슈모렐은  의대들 졸업해서 열심히 환자들을 돌보며,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가정을 꾸리는 시민으로 살았을 것이고, 후버 교수는 학생들에게 철학을 통하여 진리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 열정을 다하여 강의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치는 "사생활까지 간섭하는 훈련과 획일주의"와 "독일을 서서히 하나의 감옥으로 만들어 종국에는 아무도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는" 세상으로 만들었다. 독일을 집단 수용소로 만들어가는 것은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었다. 그들이 저항한 이유이다. 한스와 죠피가 나치를 향하여 저항에 나서자 아버지는 말한다.  

 

"우리가 정부에게 요구해야 할 무엇보다 중요한 사항은 바로 개개인의 자유로운 견해와 신념의 보장이란다. 내가 너희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비록 인생의 길이 험난하고 고달프다 할지라도, 너희들은 인생을 자유롭고 올바르게 살았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정부가 인민이 말하는 자유와 생각하는 자유를 빼앗을 때 저항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아버지 말에 울림이 있다. 말하고, 생각하는 자유를 되찾기 위한 저항이 험난하고 고달플지라도 가라고 말하는 아버지 마음은 어땠을까? 하지만 아버지는 가라고 했다.

 

말하고, 생각하는 자유가 70년이 지난 대한민국 이명박 정부도 말하는 자유와 생각하는 지유를 빼앗고 있다. 나치가 이들을 탄압하고, 결국은 한스와 죠피, 뮌헨 대학 학생들과 교수들을 탄압했듯이 이명박 정권도 자유를 달라는 시민들을 짓밟고 있다. 저항하는 이유가 자기들에게 있다는 비판까지도 못하게 한다.

 

인민이 말하는 자유와 생각하는 자유를 가지게 해달라고 저항할 때 나치는 대대적인 검거령이 내려져 일기장과 잡지, 노래를 모은 노트들을 압수하고 불태웠다. 그것을 본 한스는 "차라리 우리들의 몸에서 심장을 빼앗아 가라. 그러면 너희들도 아마 그것에 타 죽어버리라"고 했다.

 

시대가 평탄하면 제자들에게 정의와 양심을 위하여 살아라고 대다수 교수들은 말한다. 하지만 나치 같은 정권이 들어서면 정의와 양심은 독재자 앞에 팔아먹는다.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 정권 시절 양심을 팔아 부역한 교수들이 많았다. 하지만 어떤 교수들은 독재자 앞에 양심을 파는 부역을 거부하고 저항했다.

 

한스와 죠피, 알렉산더 슈모렐, 크리스토프 프롭스트가 나치에 저항할 때 뭔헨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강의했던 후버 교수는 "독일의 한 시민으로서, 독일 대학의 교수로서 그리고 한 정치적 인간으로서 독일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참여하고 그릇된 점을 공공연하게 폭로하면서, 그것에 맞서 싸우는 것인 권리일뿐더러 도덕적인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 역시 제자들과 함께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들은 모든 폭력에 대항하여 꿋꿋하게 살았고,  정의는 죽지 않는다는 말을 믿으며 살았다. 한 치의 타협도 없이 그들은 비굴하게 구원받으려 하지 않았다. 자유 만세를 외쳤다. 국가가 인민의 자유를 지배하려는 것에 저항했다.

 

국가의 통치작용이 드러나지 않을 때에만 국민은 행복한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통치작용이 뚜렷하게 부각 될 때에는 국민은 파멸의 길을 걷는다고 했다.

 

국가가 인민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을 존중해야 하며, 모든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나치는 아니었다. 당연히 저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강도는 다를 뿐 국가와 권력은 항상 인민의 자유를 자기들 통제 아래 두려고 한다. 그 때마다 인민은 저항했다. 저항하지 않으면 국가와 권력은 언제든지 인민에게 자유를 빼앗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은 저항했다. 이유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위해 그것이 그 때 그들에게는 당장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나치가 종말을 고하고 난 후 1947년 독일에서는 이 책을 학교 교재로 지정하여 13세부터 18세의 청소년들에게 의무적으로 읽도록 했다. 국가의 폭력과 인권 유린,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훼손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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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ㅇㅇㅇ씨입니까?" 물으면... | 인문 2009-07-0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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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저/이세욱 역
열린책들 | 2003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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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단어로 조금 나아졌지만, 솔직히 자신에게 이 단어를 적용하면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바보 노무현'이 자기 이익을 위한 삶보다는 다른 이 특히 서민과 약자를 위해 어려운 길을 택함으로 얻었다면 우리들이 쓰는 바보란 시대에 뒤떨어지고, 무능력하고, 생각도 없이 살아가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노무현을 상징하는 '바보'가 꼭 필요한 세상이지만 얼마 없는 것이 문제이고, 우리가 쓰는 바보는 필요가 없지만 의외로 많아 문제이다. 이 바보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 진을 치고 있으면서 별 하는 일 없이 나랏돈을 축내고, 무능력하면서 능력 있는 척하고, 진보와 발전을 가로 막는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가 바보임을 모르고 다른 이는 무시하는 어리석음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나랏돈을 축내고, 무능력과 어리석음까지 겸비한 이들에게 기호학자이자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따위를 쓴 움베르트 에코가 지은 칼럼집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은 허를 찌를 듯한 웃음과 해학, 유머로 읽는 이들을 즐거움으로 이끈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은 에코가 기호학자에서 유머 작가로 변신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놀라운 분석력을 통하여 상대방의 얼을 빼놓는가 하면 장난기 어린 익살꾼이 되어 썰렁한 웃음도 마다하지 않는다.

 

제1부 실용 처세법에는 '기내식을 먹는 방법',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 '택시 운전사를 이용하는 방법' '세관을 통과하는 방법' '미국 기차로 여행하는 방법' 따위를 싣고 있다. 그 중 '미국 기차로 여행하는 방법'에서 에코는 "미국의 철도 교통을 생각하면 핵전쟁 이후에 달라질 세상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말한다.

 

이유는 "고장이 난 것도 아닌데 예닐곱 시간은" 늦고, "기차역은 썰렁하고 휑뎅그렁하기"하고, "차량은 불결하고 모조 가죽 좌석에는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을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미국 기차, 아니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에코의 일갈로 손색이 없다.

 

"미국에서 기차는 탈 수도 있고 안 탈 수도 있는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기차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관한 막스 베버 가르침을 무시하고 가난한 사람으로 남는 실수를 범한 죄에 대한 벌이다."(48쪽)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이다. 기차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는 나라가 경제대국이니, 경찰국가이니 하면서 지구 골목대장 노릇을 하려고 오늘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지구상에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읽는 이들은 '미국 기차로 여행하는 방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에는 '도둑맞은 운전 면허증을 재발급받는 방법', '반박을 반박하는 방법' '<맞습니다>라는 말로 대답하지 않는 방법'은 에코의 상상력이 얼마나 풍성한지 알 수 있다.

 

세상과 권력은 자기들이 던진 질문에 항상 사람들과 국민들에게 '맞습니다'라는 답만을 요구한다. 하지만 에코 생각은 다르다. 에코는 '맞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어느 세제회사 경품으로 받은 것임을 누구나 빤히 아는 백과 사전을 가지 집 거실에 버젓이 진열해 놓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 '맞습니다'라는 대답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질문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나폴레옹은 1821년 5월 5일에 죽었습니다"라는 질문에 당신은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백과 사전을 찾아 맞으면 "맞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인가? 하지만 에코는 이렇게 말한 답은 "훌륭하십니다"이다. 나폴레옹이 1821년 5월 5일에 죽었던 안 죽었던 상관이 없다. 아니 에코는 "훌륭하십니다"라고 했지만 나는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라고 답할 수 있다.

 

2009년 대한민국은 정부를 비판하는 집회면 잡아가는 세상이다. 집회에 나갔다가 경찰의 채증에 걸려 경찰이 당신에게 연락하여 "경찰입니다. ooo씨입니까?" 묻는다면 당신은 "맞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인가? 하지만 에코는 "ooo 짐 꾸려!"라고 답한다. 아니다, "야구 보러 갈까요" "제일 좋아하는 과일은 포도입니다"라고 대답해도 상관없다. 오직 "맞습니다"라는 말만 하지 않으면 된다. 우리는 에코처럼 할 수 있을까? 경찰이 "ㅇㅇㅇ씨 입니까" 물을 때에 "맞습니다"가 아니라 "포도 좋아하는데요"라고 멎지게 한 방을 먹이는 세상이 빨리 오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 어리석음은 우리를 화나게 한다. 그러나 그 어리석음에 대해 어리석게 반응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그 씨실과 날실의 미묘한 짜임새를 음미하면서 그것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에코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패러디는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진짜로 쓸 것을 미리 쓰는 것이다. 패러디의 사명은 그런 것이다. 패러디는 과장하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제대로된 패러디는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웃거나 낯을 붉히지 않고 태연하고 단호하고 진지하게 행할 것을 미리 보여줄 뿐이다(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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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고장난 문고리에서 시작하다 | 인문 2009-05-2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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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대학 새내기가 되었을 때 눈길을 끈 과목은 '철학개론'이었다. 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가니 '철학개론'이라는 제목을 붙인 책은 수없이 많았다. 재미있는 것은 제목부터 철학개론이듯 목차와 내용도 거기서 거기였다.

 

대학생이랍시고 철학을 배우기 위해 '철학개론'을 공부했지만 이내 철학에서 멀어지게 했다. 물론 소광희.이석윤.김정선 공저인 <철학의 제문제>를 통하여 철학의 'ㅊ'자는 알았지만 쉬우면서도 가볍지 않은 철학입문서와 개론서는 만나기 힘들었다.

 

철학이 어려운 이유는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어렵기도 하지만 '삶'과 별 관계 없이 철학을 논하고, 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철학을 '삶'과 함께 말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철학에 조금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노자: 국가의 발전과 제국의 형이상학>, <장자의 철학: 꿈, 깨어남 그리고 삶>이라는 책을 펴낸 강신주가 지은 <철학, 삶을 만나다>는 쉬우면서도 가볍지 않는 책이다. 강신주는 철학과 삶이 견우와 직녀처럼 사랑하는 연인 사이라고, 그래서 철학은 삶과 반드시 만나야 한다고 말한다.

 

"철학이 없는 삶이 맹목이라면 삶이 없는 철학은 공허한 것이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책을 쓴 이유도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책을 통해 저는 삶에 철학의 차가움을 제공하고, 철학에 따뜻함을 부여하고 싶습니다."(17쪽)

 

강신주는 제1부 '철학적 사유의 비밀'에서 철학이 결코 난해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삶을 영위하는데 핵심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제2부에서는 우리가 친근하거나, 친숙하다고 생각하는 '사랑', '가족', '국가', '자본주의'를 낯설게 바라보도록 이끈다. 제3부는 우리 삶을 어떻게 철학적으로 성찰할 것인지 말하고 있다.

 

그 옛날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말한 이후 사람들은 아무 생각없이 받아 들였다. 하지만 강신주는 생각 앞에 '항상'을 놓으면 문제는 달라진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화장실에 갈 때를 보자. 어제까지 이상이 없던 문고리가 열리지 않고, 변기 뚜껑이 부서져 있다면 우리는 '이건 뭐야 물건을 뭐 이따위로 만들었어!'라고 말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문고리는 무의식 속에 열었지만 오늘 문고리가 고장 남으로써 비로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문고리가 고장나지 않았을 때는 무의식 속에서 친숙했지만 문고리가 고장남으로써 '낯섦' 찾아오면서 인간은 생각이 활동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라 말한다.

 

"세계와 친숙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때, 우리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가 낯설게 다가올 경우, 오직 이때만 우리는 생각이란 말에 걸맞게 사유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사건과 마주치며 삶을 영위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시간이 내뿜는 기호와 무의미 속에서는 우리는 낯섦을 경험할 수밖에 없게 되지요. 이 점에서 우리의 '생각'은 바로 이 낯섦을 친숙한 것으로 바꾸려는 삶의 무의식적인 의지로부터 기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47쪽)

 

철학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문고리와 변기 뚜껑이 고장나는 것을 통해서 어떻게 고칠 것인가를 '생각'하는 순간부터 철학은 시작되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이 있는 우리 삶에서 철학은 시작된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따위 위대한 철학가들만 철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힘을 가진 모든 이는 철학이라는 봉우리에 오를 수 있다고 강신주는 강조한다. 

 

철학자들이 사유하고 조망했던 그 봉우리들을 우리의 삶과 사유를 통해서 조망할 수 있고, 그들이 올랐던 그 봉우리에 오를 수 있다. 철학자들만 생각과 사유를 통하여 위대한 철학 봉우리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생각과 조망, 사유를 통하여 그들이 올랐던 위대한 봉우리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철학자들이 올랐던 정상을, 그들의 안내에 따라 직접 올라가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다리는 튼튼해지고, 우리의 균형 감각도 단련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한 가지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이런 훈련도 결국 여러분만의 산봉우리를 찾기 위한 연습에 불과하다는 점을 말입니다.(76쪽)

 

결혼을 앞둔 대부분 예비부부들에게 사랑은 '둘'을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둘'을 끈덕지게 유지하는 것일까요라고 묻는다면 어떤 답을 할까? 우리는 지금까지 부부란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 배웠다. 하지만 강신주는 산과 등산가를 비교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내 바깥에 있는 사람임을, 그래서 만약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면 기적과도 같은 축복이자 은총이라는 사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진리이자 '둘'의 진리라고 강조한다.

 

"산에 올랐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산과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매번 산에 오를 때마다 우리는 '산'과 '우리 자신이' 씨줄과 날줄로 얽혀서 구성되는 '둘'의 관계를 무한히 펄치게 될 뿐입니다. 산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등산가들은 항상 산을 모르겠다고 겸손하게 고백하며, 산을 알기 위해서 다시 산을 찾을 뿐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사랑하는 산은 '둘'이라는 사랑의 관계를 끊임없이 발산하면서 그들을 매혹시키기 때문입니다."(131쪽)

 

국가는 무엇인가? 과연 국가는 인민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국가는 인민을 보호해줄 수 있는가? 하지만 국가가 생긴 이래 국가가 인민에게 자신에 대한 충성과 복종을 강요해왔을 뿐이다. 요즘 이명박 정권도 우리에게 복종을 강요하고 있지 않은가?

 

아리스토텔레스도 <정치학>에서 "국가는 전체이며, 개인은 그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개인은 고립되어서 자족적일 수 없으므로 전체에 모두 같이 의존해야 한다고"고 하지 않았던가. 이런 국가에 대하여 강신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의 소중한 자유를 양도해버리고 국가권력에 복종하기 시작한다면, 그리고 그런 메커니즘에 완전히 적응하게 된다면, 여러분은 자신이 자유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또 하나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국가가 자유인을 죽일 수는 있어도, 그 자유인으로부터 자유를 빼앗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163쪽)

 

우리 시대 최고의 경제체제라고 칭송하지만 자본주의는 약육강식이 지배한다. 강신주가 바라본 자본주의는 인간을 상품으로, 화폐를 신으로 만든 체계라고 일괄한다. 결국 인간은 삶의 대부분을 돈을 벌기 위해 산다면서 자본주의 속에는 애초부터 진정한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람이 살 만한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상품으로 그리고 화폐를 신으로 만드는 체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돈을 벌기 위해서 고단하게 보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단지 소비의 행복, 소비의 자유만이 존재했을 뿐이니까요. 우리는 자신만의 삶을 위해서 시간을 보내고 있지는 못합니다. 오직 잘 팔리는 상품으로 자신을 만들기 위해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보내고 있습니다.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서라면 언제든 학원에 나가지만, 역사 강의를 듣는다거나 혹은 판소리를 익히기 위해서 편안하고 여유 있게 학원에 나가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역사, 문학, 철학, 판소리 등을 배워서 무엇하겠습니까? 이런 것들은 여러분을 구매할 산업자본에게는 전혀 불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197쪽)

 

그러니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자유롭고 공평하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을 얻어내야만 한다. 하지만 오늘도 이 땅의 노동자들은 30원때문에 생명도 끊고, 파업도 해야 한다. 최손한의 인간의 권리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를 도와줄 세력은 그리 많지 않다. 어떻게 해야 할까? 맑스는 말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린 시대이다. 철학은 불편하고 불쾌한 학문일 수 있다. 강신주는 행글라이더를 타 본 일이 있는지 묻는다. 행글라이더를 타면 온갖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만난다. 하늬바람, 마파람, 강한 바람, 산들바람 따위를 만난다. 바로 그 바람 하나하나를 타게 되면서 처음 내리고자 했던 곳이 아닌 전혀 다른 곳에서 내릴 수 있듯이 예상치 못한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찬 삶을 꿈꾸라고 한다. 국가와 자본주의에 대한 진단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결국 자신을 존중하고, 자유를 무한히 사랑하면서 물질이라는 노예가 되지 않아야 사람이다. 여기에 이르는 길을 가기 위한 첫걸음은 의외로 간단하다. 철학은 고장난 문고리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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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백과서전 | 인문 2009-05-0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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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벌레들의 괴롭힘에 대하여

이옥 저/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편역
휴머니스트 | 2009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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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소품 문학을 풍부하게 일군 문인 이옥은 하층 여성, 천한 노비, 도적, 저잣거리의 다양한 인물군상들로 생생한 저잣거리 이야기를 글로 담는 일을 좋아했다.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가 펴낸 <이옥 전집 3>은 이옥이 지향한 또 다른 문학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이옥 전집 3권에는 <백운필>과 <연경>을 실었다.

 

<백운필>은 이옥 문학 백미로 비둘기, 도요새, 꿩, 매 사냥 따위 새 이야기와 장수피, 용, 범치, 청어 따위 물고기 이야기와 승냥이, 말, 소, 여우, 고양이 따위 짐승 이야기, 거미, 이와 벼룩, 나비, 송충이, 좀벌레 따위 벌레 이야기, 거울, 파리채, 오이 생활 주변의 자질구레한 사물들을 담아 조선시대 백과사전으로 불러도 문제없다.

 

<연경>은 '담배'를 뜻하는 것으로 담배 재배, 담배가 우리나라에 어떻게 들어왔고, 성질, 담배 도구와 쓰임새를 적었다.

 

새와 물고기, 곡식, 벌레, 사물, 채소, 꽃 따위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기 위해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한자사전인 <훈몽자회(訓蒙字會)>, 역관들의 주로 보던 만주어 한어사전 <한청문감(漢淸文鑑)>, <본초집해(本草集解)>, <술이기(述異記)> 비롯해 많은 의학서적들을 인용했다. 이쯤 되면 이옥의 독서량이 얼마나 방대했는지 알 수 있다. 책 한 권을 펴내는  위해 쏟았던 이옥의 열정과 집요함, 성실함은 부럽기도 하고, 얄팍한 지식나부랭이로 책을 펴내는 요즘 사람들은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모르게 한다.

 

요즘 도심 비둘기들은 '평화'보다는 사람들을 귀찮게 하는 새가 되어 버렸다. 그럼 이옥 살았던 시대 비둘기는 어떤 대접을 받았을까?

 

비둘기란 새는 이미 시각을 깨우쳐주지도 못하고, 제사상에도 오르지 못하는 것으로, 다만 그것이 서로 좋아 장난치는 모습이 극히 예쁘고 거리낌 없을 취할 뿐이다. 못된 아이들과 방탄한 자들이 기르는 것도 오히려 부끄러운 일인데, 간혹 늙어 물러난 재상이나 부잣집 젊은이들이 울을 울긋불긋하게 만들어 놓고 뜰에서 기르기도 한다. 문득 주인의 품위가 열 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이는 후생들이 경계할 만한 일이라 할 수 있다.(66쪽)

 

비둘기가 사람들을 품위를 열 발 아래로 떨어지게 하는 것이라고 이옥을 설명하고 있다. 후생들에게 이를 경계하라고 했는데 지금 우리는 비둘기를 아직도 '평화'를 상징하는 새로 생각한다. 새에 대한 생각도 시대마다 다른 것 같다.

 

요즘은 없지만 우리 조상들은 새 점을 친 모양이다. 93쪽에는 새집 점 이야기를 했다. 까치는 남쪽에 있으면 상서롭고 북쪽에 있으면 해로 일이 있다고 했다. 제비집이 기둥 안에 잇으면 식구가 불어나고, 기둥 밖에 있으면 노복들이 흩어져 도망간다는 점괘가 있다고 이옥은 전한다. 하지만 이옥은 이런 새집 점은 믿을만 하지 않다고 말했다.

 

요즘 우리를 괴롭히는 벌레는 무엇일까? 벼룩과 이는 없어졌다고 하지만 한 번씩 어린 아이들 머리에서 머릿니가 나왔다는 보도가 나오는 것을 보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이옥 시대에는 많은 벌레들이 나와 괴롭혔던 모양이다.

 

오뉴월이 교차할 즈음, 바람이 무덥고 비가 지루하게 내려 습기 차고 후덥지근해지면 모기·파리·벼룩·이 외에 또한 벌레들이 많다. 분진(粉塵)처럼 하얗고 아주 미세하여 식별할 수 없는 것이 상 위에서 꿈틀거려, 자세히 살펴보면 벌레이다. 창틈에서 또닥또닥 먼 마을의 다듬이질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이 있는데, 자세히 들어보면 벌레이다. 밤에 누워 있는데, 크기가 기장 알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팔을 타고 올라오는데, 어루만져 살펴보면 벌레이다. 방 안 지척 간에 어찌 이리 벌레가 많은가? (181쪽)

 

<연경>은 담배 이야기를 담았다. 담배는 언제쯤 들어왔을까? 이옥이 살았던 시대가 정조 시대이다. 그 때에 2백 년이 되었다고 했으니 4백 년이 넘었다. 이옥은 담배가 들어온지 2백 년이 되었는데도 문자로 기록한 것이 있어야 할 터인데, 편찬하고 수집한 자들이 이를 기록하였다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다면서 안타깝다고 했다.

 

결국 자기가 <연경>을 통하여 담배 재배와 담배가 우리나라에 어떻게 들어왔고, 성질, 담배 도구와 쓰임새를 적었다. 눈에 띄는 것 하나는 담배를 피워서 안 될 때와 장소에 대한 이야기이다.

 

'높은 분 앞에서는 안 된다'고 했다. 아마 이 때부터 어른 앞에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되는 풍습이 생겨난 모양이다. '아들과 손자가 아버지와 할아버지 앞에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는 아버지와 할아버지 앞에만 아니라면 나이는 상관없다는 투로 이해해도 되지 않을까? 조선시대는 어릴 때부터 담배를 피웠음을 보여준다. 물론 손자가 성인일 수도 있지만. '천한 자가 귀한 사람 앞에서 안 된다'는 말은 이옥 역시 조선시대 지배계급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대목은 '혹심한 더위나 가뭄이 들 때 안 된다'와 '태풍이 불 때 안 된다'는 말이다. 재해를 당했는데도 한가롭게 담배를 피우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인지, 아니면 자연재해가 담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풍습이 있었는지 정확한 설명이 없지만 참 재미있는 이야기임은 분명하다.

 

<백운필>은 당시 유행한 백과전서적 글쓰기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담배의 경전인 <연경> 또한 담배라는 소재가 매우 특이하며, 문체도 색다르다. <백운필>과 <연경>은 보잘것없는 사물이라도 기록할 가치가 있으면 책을 담는 충분한 자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런 것까지도 책으로 썼던 이옥의 치열한 산문정신을 보여준다.

 

 

YES24 책읽는 주말 - 6월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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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가 아닌 다른 대안 | 인문 2009-01-1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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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한국 자유주의의 기원

이나미 저
책세상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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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한국 보수주의자들이다. 궁금한 것은 그들이 말하는 '자유'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답을 알고자 하여 이나미씨는 <한국 자유주의의 기원>를 썼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우리 사회의 역사 속에 존재하는 자유주의는 쿠무인가를 보고 싶어한다.

 

이나미는 보수적 정치가들이 외치는 '자유'는 "기득권을 지키고자 하는 자유이르모 '보수주의'라는 다른 이름을 불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럼 이나미가 규정한 보수주의는 무엇일까"

 

"보수주의는 존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다. 보수주의는, '이념'이 아니라, '욕망'이다. 보수주의는, 어느 문인에 의해 아주 적절히 지적된 바와 같이, '이념'이 아니라 '욕망'이다. 즉 사회를 굳건히 떠받치기 위해 '존재해야 하는' 필수적인 신념이 아니라 '그냥 존재하는 욕망'이다." (11쪽)

 

보수주의가 신념이 아니라 단지 자신들의 기득권과 안락함을 잃고 싶지 않은 욕망이 내용의 전부라고 일갈한다. '신념'이 아욕망이라 할 때 모든 사람은 어느 정도 보수주의를 갖고 있다. '욕망'으로만 산다면 사회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극복'해야 한다. '자유주의'를 '보수주의'와 동일시하는 한국 사회 보수적 정치가들 논리는 여기서 무너진다.

 

이나미는 '자유주의'를 이나미는 <브리태니커> 정의한 "봉건제와 절대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자유 평등의 인간상과 합리주의를 계승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재산과 교양을 지표로 하여 빈곤한 계급을 정치과정에서 제외시키고 자산가 계급에 봉사한다는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었다"를 동의한다.

 

그럼 우리나라는 언제쯤 '자유주의가' 들어왔을까? 이나미는 <독립신문>에 주목한다. 유교가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조선시대는 '자유주의적' 성격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독립신문> 대중을 상대로 '자유주의'를 전파했다고 이나미는 주장한다.

 

"독립신문은 주로 그 동안 유교에 의해 경시되었던 이익 개념과 상업에 대해 재평가하며, 개인의 생명권, 재산권, 자유권과 경젣적 독립을 강조했다."(14쪽)

 

문제는 <브리태니커>가 말한 자유주의 개념처럼 빈곤한 계급을 정치과정에서 제외시키고, 자산가 계급에 봉사하는 사상이 녹아 있고, 자유주의 개념이 성립되었을 때 서구는 제국주의가 싹트면서 제국주의를 미화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나미는 자유주의를 다시 기억해야하지만 '자유주의'가졌던 특징을 비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독립신문>은 '자유'를 어떻게 이해했을까? <독립신문> 1899년 1월 10일자 '인권자유'에서 "자유라는 것은 우리 마음에 있는 욕심대로 하는 것이 아니요 욕심을 능히 어거하야 좋은 일이면 나의 마음대로 하고 그른 일이면 하지 아니하는 것이 실상 자유의 본질"이라 했다.

 

<독립신문>이 자유를 주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유교' 강조하는 '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자유주의 핵심이 이익과 행복을 자유롭게 추구하는 주의인데 아직들은 '자유'를 '옳음' 곧 '의'를 포함하지 않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독립신문> '유교' 지배 이데올리기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지만 자유주의 핵심 개념인 '독립'을 "자기 힘과 재주가 있으면 벌어먹고 세상에 자주독립한 백성이 되어 빈부 귀천 간에 사람마다 자기 십상에 자유권을 가지고 있으며"로 규정하고 "양반은 이제 더 이상 백성으로부터 세금을 걷을 권리가 없다"고 양반을 비판하였다.

 

이는 <독립신문>이 유교에 경시되었던 이익 개념과 상업에 대한 재평가, 개인의 생명권, 재산권, 자유권을 강조하여 우리나라에 자유주의적 내용들을 도입하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개인의 자유와 독립, 재산권을 강조하는 '자유주의'가 어떻게 '제국주의'와 짝하게 되었을까?

 

"'인간의 권리'에서 '인간(men)'은 전 인류가 아닌 백인, 그중에서도 남성을 의미했으며 '개인의 자유'에서 '개인'은 우수한 개인을 의미했다. 인간은 자연을, 남성은 여성을, 백인은 흑인을 지배할 권리를 가지며 따라서 인간, 개인은 백인 남성을 의미했다. 이렇게 자유주의와 제국주의는 양립했으며, 시기적으로도 동시대의 산물이었다." (77쪽)

 

결국 자유주의는 '인간' 개인의 자유와 독립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남성과 백인 우월주의와 적자생존이라는 서구제국주의를 정당화시키는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우리가 강하면 약한 나라를 지배할 수 있고, 우리가 약하면 강대국에 지배받을 수 있다는 논리도 성립될 수 있어 일본제국주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동조하는 세력도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된다.

 

나아가 이나미는 한국의 자유주의는 서구 자유주의의 전통과 마찬가지로 민권의 신장이 아닌 민권을 제한하는데 노력했다고 주장한다. 백성과 신민, 인민과 국민 등 여러 가지 민 개념을 그들의 의도에 따라 차등을 두었다고 한다.

 

개화파인 윤치호는 "민중은 무식하고 어리석으며 품위 있고 질서 있는 운동을 일으킬 능력이 없다"고 했으며 <독립신문>은 "평민은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가는 한 정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으며"라고 했다.

 

"개화파는 유교의 전통적인 민 개념을 공유하면서 민을 철지히 불신했다. 그들이 민권을 주장한 이유는 자신들의 개인적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것이었고, 따라서 그들의 자유주의 사상은 우민관과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144쪽)

 

이렇듯 한국 자유주의는 서구제국주의가 자유주의와 손을 잡았듯이 박영효는 친일인사가 되었고, 민권을 소리높여 주장했던 독립협회는 동학농민전쟁 진압을 위해서 외국군대의 조선 땅 진주를 주장했다.

 

자유주의를 마냥 외친다고 무조건 좋아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구라도 '자유주의'를 주장할 수 있지만 그 자유주의 본질을 안 다면 자유주의가 아닌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것이 이나미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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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에 신념을 파는 지식인들 | 인문 2008-11-30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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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편
후마니타스 | 2008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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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이란 누구인가?' 여러 정의가 있겠지만 사르트르가 “지식인은 우리 시대의 모든 갈등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다. 지식인은 억압당하는 자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고 한 지식인에 대한 명제는 아직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식인이란 진리를 억압하고, 가난한 자 편에 서서 권력과 불의에 저항하는 자를 뜻하는 것이다. 그럼 지금 우리 사회에 진리를 억압하고, 가난한 자 편에서 서서 권력-정치, 경제, 언론-에 저항하는 지식인은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 사회에서 저항하는 지식인은 '죽었다'고 선언 한 책이 나왔다. 물론 이 책은 지식인의 죽음을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진리와 불의에 저항하는 지식인이 다시 부활을 고민한다. 2007년 4월부터 9월까지 4개월 동안 언론사로서는 처음으로 지식인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자 변론문을 모은 <경향신문>이 펴낸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이다.

 

사르트르 말처럼 지식인이란 태생적으로 저항하는 자이다. 하지만 민주화 20년 동안 우리 사회 지식인은 “이제 사회는 외세에 억눌린 민족을 구원하고, 민족의 나아갈 길을 이끄는 안내자, 민중 이익의 수호자, 위대한 저항 정신의 상징으로서 지식인을 원하지 않는다”가 되었다.

 

도도한 역사 물결에 저항적인 지식은 휩쓸려 가버린 것이다. 그리고 권력과 불의에 저항하는 지식인이 아니기에 오히려 권력을 위하고, 권력 체제를 지키는 수호자일 뿐이다. 권력 수호 전위대로 초라하게 전락해버린 지식인 사회라고 통렬히 비판한다.

 

저항하는 지식인에서 권력에 순응하는 지식인, 자본에 순응하는 지식인으로서 지식인의 죽음을 재촉한 것은 독재권력이 아니었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면서 학력 위주의 지식인 개념을 독창성과 능동성 위주로 확장시킨 '신지식인상'이 도입되면서부터였다.

 

평생 민주주의를 위하여 힘썼던 김대중 정부 시절 학문과 지성을 통하여 권력에 저항했던 지식인을 '신지식인상'을 대처하여 결국 지식인은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자'일 뿐, 비판적 이성이 거세된 전문가로 대체되었다는 비판은 마음을 아프게한다.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지식인은 '경제권력'과 어울리게 된다. 경제권력에 순응하는 지식인은 결국 "대학은 재벌 총수들에게 명예박사를 주지 못해 안달이고, 산학협동은 '산학일체'로 진화 중이며 대기업 연구용역비를 받는 상당수 교수들은 재벌개혁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는다."(23쪽)

 

우리 사회 지식인들은 저항했다. 시대정신으로 불린 함석헌과 리영희 저작들, 장준하의 선구적 활동, 백낙청 김현의 비평 의식. 이들은 ‘진실’을 말하기 위하여 저항했다. 그 저항은 사라졌고, 자본 권력의 도도한 흐름에 휩쓸려버린 것이다.

 

우리 사회가 갈수록 양극화되고, 가난한 자와 억압당하는 자가 인간적 삶을 누릴 수 없는 데도 지식인은 저항하지 않는다. 신분제 사회로까지 나아가는 현실이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지식인은 죽은 자이다.

 

"한국사회의 물질적 구조적 변화를 빠트리고 지식인상의 변화를 말할 수 없다. 서울대 입학상 중 상류층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가는 현실을 덮어둔 채, 소득격차가 학력격차로 이어지고 학력격차가 신분 고착화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말하지 않고, 여전히 미국 박사가 최고곡 학연과 인맥이 우선시되는 문제 괄호를 치고 지식인상을 논한다는 것은 난센스가 아닌가 하지만 그러하기에 더더욱 '지식인'은 되새겨야할 화두다. 과거에도 지식인은 학력과 신분으로 규정되지 않았다. 지식인이라 본시 실천적 개념이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존재'가 아니라 '행위'다. 허위에 저항하고, 현실을 인간화하며 가야 할 길을 묻는 한 그는 언제나 지식인인 것이다."(56쪽)

 

지식인들은 ‘지식인의 죽음’을 부른 요인을 ‘신자유주의 및 세계화’ ‘자본종속과 시장논리지배’ ‘서구 학문 중심주의 및 의존’이라고 말하다. 서구학문 중심주의가 얼마나 심각한지 서울대 사회과학대 경제학과 교수 34명 중 31명, 정치학과 11명 중 10명, 외교학교 11명 중 10명, 사회학과 14명 중 9명이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지적은 우리대학 현실이 얼마나 서구 특히 미국 중심인지 알게 한다. 보수와 진보가 별 다르지 않았다.

 

우리가 양성한 지식인이 없다. 우리를 말하고, 우리 사회를 말할 수 있는 지적 풍토는 없고, 껍데기라도 미국에서 배웠다는 이유만으로 자생적 지식인의 학문 성과가 더 탁월하지만 인정하지 않는 '지식인사대주의'도 보수와 진보할 것 없이 팽배해 있다는 비판은 진보지식인들이 새겨할 내용들이다.

 

특히 5장에서 다루고 있는 '경제권력과 지식인'은 앞에서 지적했듯이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지식인들이 이제는 자기 신념을 자본에 팔아버렸다는 강한 비판은 경제권력이 정치 권력 우위에 자리잡았음을 알게 한다.

 

“심각한 문제는 돈 그 자체가 아니라 지식인의 신념을 팔아 버린다는 데에 있다. 기억 프로젝트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학문적 소신을 버리면서 무리한 결론을 내려주는 것이다.” 128쪽)

 

이는 지식인 개인문제가 아니라 ‘기업문화’의 변화에 기인함을 지적하고 있다. 기업은 이제 돈만 버는 조직이 아니다. 돈만 버는 조직으로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사회적인 사업을 통하여 기업이 이윤을 남기는 시대이다. 물론 궁극적 목적은 이윤이다.

 

기업 이윤을 목적으로 하지만 이윤은 사회와 나눔으로 말미암아 이윤만을 위한 기업이 아니라 사회와 공익을 위한 기업임을 인식하게 함으로써 기업 발전이 우리 사회 발전의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이데올리기를 심어줌으로써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가 먹혀 들어가고 있다.

 

“기업의 영역이 정부는 물론 전 사회로 확장되고 있고, 기업 없이는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이 불가능하다는 담론이 확고해진 상황에서 지식인 개인으로서 택할 수 있는 길은 기업에 속하든지, 아니면 척을 지든지 둘 가운데 하나밖에 없는 셈이다."

 

‘재벌에 좋은 것이 한국에 좋은 것이다’는 이데올로기에 의한 지배로 들어섰기에 지식인은 이제 재벌에 좋은 것이 한국에 좋은 것이라는 이 이데올로기적 지배장치의 생산 기술자로 전락했다는 지적은 충격이다.

 

하지만 비극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통적인 지식인은 죽었지만 대중지식인들이 등장하고 있다. 인터넷은 대중 지식인들이 지식을 나누는 공간이며, 지식인들이 독점했던 지성을 논쟁과 물음을 통하여 대중지성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지식인의 죽음으로 통탄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성공간인 인터넷을 통하여 우리는 억압과 불의에 저항하고, 선(善)의지를 통하여 새로운 지식인으로 자리매김하면 된다. 그 중 하나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제도도 대중지식인을 통한 대중지성을 만들어가는 귀중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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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미술사 | 인문 2008-06-08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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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러시아 미술사

이진숙 저
민음인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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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러시아 혁명부터 1990년 소비에트연방 해체까지 우리에게 러시아는 낯선 나라였다. 나 역시 문학에서 톨스토이와 고리끼 정도만 만났을 뿐이다. 공산 이념과 대립된 국가 체제는 정치 영역뿐만 아니라 문화 영역까지 만남을 가지지 못하게 하였다.

 

러시아도 미술이 있을까 하는 의심을 가지게 하지만 러시아 미술은 놀랍도록 풍요롭다. 놀랍고 풍요로운 러시아 미술을 만날 수 있는 좋은 책이 있다. 러시아 미술 연구자 이진숙씨가 쓴 〈러시아 미술사〉이다.

 

지구에서 가장 추운 나라 러시아에는 뜨거운 열정과 정열로 가득 찼던 미술가들이 있었다. 이진숙은 이 책에서 12세기 이콘화(성화)에서부터 21세기 현대화까지 미술가들이 그림을 통하여 어떤 정신을 담았고, 그림이 어떻게 변천되어 왔는지 그림 하나 하나를 소개하고, 해석하면서 한국 독자들에게는 생경한 러시아 미술사를 만나게 한다.

 

"'삶과 미술을 결코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은 러시아 미술 그 자체의 내재적 속성이기도 하다. 나를 열광시키고 격정적인 사랑에 빠뜨린 러시아 미술 작가들이 그토록 미술에 담고 싶어던 것은 바로 '삶' 그 자체였다."(10쪽)

 

이진숙은 자신을 열광시고, 격정적인 사랑에 빠뜨린 러시아 미술을 150장에 이르는 도판을 활용해 이콘화-이동파-상징주의와 모더니즘-러이사아바가르드-사회주의 리얼리즘-현대화에 이르기 까지 그 시대 미술을 통하여 화가들이 그림을 통하여 러시아와 러시아인, 러시아 풍경을 어떻게 그렸는지 독자들을 인도한다.

 

러시아 민속문학자 니콜라이 르보프가 러시아를 '격렬한 삶'으로 표현했던 것처럼 러시아 미술인들은 삶과 미술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았다는 러시아 미술사로 들어가보자.

 

러시아 미술은 '이콘화(성화)'에서 시작한다. 이콘화 없는 러시아는 상상할 수 없다. 1971년 러시아 혁명 전에는 마을의 조그만한 교회, 농부의 오두막집, 귀족의 저택과 차르의 궁전에 이르기까지 러시안이 있는 곳이라면 이콘화가 있었다.

 

이콘화는 러시아 정교가 무엇을 지향했는지 알게 한다. 서양 미술에서 예수상은 온화하고, 인자하지만 이콘화 <손으로 그리지 않은 구세주>에 그려진 예수는 온화한 예수상에 익숙한 우리를 당황스럽게 한다. "한 일 자로 굳게 다문 입, 크게 부릎뜬 눈에는 분노와 결의가 함께 어려 있"는 손으로 그리지 않는 구세주는 천편일률적인 중세미술을 달리 보는 시각을 가지게 한다.

 

하지만 안드레에 루블료프가 그린 <우리의 구세주> 앞에 서면 불교의 '측은지심'을 생각나게 할 정도로 예수의 눈빛은 죄를 벌하는 심판자가 아니라 하찮은 존재들의 아픔, 어리석음과 탐욕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죄를 짓는 자들을 바라보게 한다. 이는 루블료프가 러시아 민중의 절절한 소망을 '성화'로 진정 그림이 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한다.

 

하지만 루블료프가 이콘화를 통하여 성화를 민중이 원하는 절절함을 표현했지만 서구화를 통한 개혁을 추구했던 17세기 말 냉혹한 개혁군주 표트르 대제는 이콘화 중심의 러시아 미술을 격변시킨다.

 

냉혹한 표트르는 서구화를 프랑스식 궁정문화가 번창하고 로코코풍의 미술양식을 양상했다. 결국 러시아 민중과 삶은 사라져버렸다. 러시아 정신과 러시아 민중을 담은 미술은 껍데기만 남았을 뿐이다.

 

껍데기만 남은 러시아미술에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략과 1825년 터진 데카브리스트 반란은 러시아에 새로운 자각을 일으킨다. 나폴레옹 침략은 러시아 민족의 자각을 불러 일으켰고, 데카브리스트 반란은 사회변혁을 표출시켰다.

 

알렉산드로 이바노프는 <민중 앞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종교적인 의미에서는 구세주를 기다리지만 러시아 민중에게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 하지만 당시 러시아 미술은 이바노프를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1870년 이동파가 등장함으로써 러시아 미술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이동파는 정치적·경제적으로는 후진국이면서도 정신적으로 이것을 극복하려 했던 지식인들 중심의 민주적 미술 유파였다. 세계 미술사에 이처럼 철두철미하게 반체제적 성격을 유지한 미술운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동파는 ‘삶의 진실’을 추구한다는 러시아 미술의 전통을 극대화시켰다.”(149쪽)

 

민중과 괴리되었던 러시아 미술이 이제 민중 속으로 들어갔다. 인상파가 지배했던 서유럽과 다른 러시아 만의 미술 세계를 이동파는 그렸다. '삶의 진실'을 담기를 원했다. 파리로 간 페로프는 마네가 <풀밭 위에서의 식사>와 <올랭피아>로 살롱을 뒤흔들며 새로운 미술, 인상주의를 준비하는 역동성와 활발함을 목격했지만 "그림 그리는 기술의 측면에서는 눈에 뜨는 진척이 있었지만, 거기서는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창조할 수 없었다고" 할 정도로 인상파와 이동파는 만날 수 없었다.

 

부르주아들의 행복한 도시를 담는 인상파와 러시아 민중을 담는 이동파가 만날 수 있는 공간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동파에게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민중을 담은 내용은 있었지만 민중을 그리는 형식은 부족했다. 이를 극복한 이가 일랴 레핀이다.

 

일랴 레핀이 그린 <볼가 강에서 배를 끄는 인부들>을 보는 순간 멍했다. 스타소프는 이 그림을 보고 이렇게 평했다.

 

"아주 짧은 시간에 작가는 성숙해서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러시아 미술이 창조해 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림을 들고 나타났다. 레핀은 고골리에 비견될 만한 리얼리스트고, 아마도 고골리만큼 심오한 러시아의 민족성을 지니게 되었다."(215쪽)

 

<볼가 강에서 배를 끄는 인부>는 11명인 거대한 배를 끈다. 현실 속에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레핀은 11명 개별 인물을 통하여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인부들이지만 다양한 삶의 흔적을 통하여 인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렸다.

 

레핀은 이 작품을 통하여 힘겨운 사회적 모순을 실제 민중들의 형상 속에 완전히 녹여 냈다. 그러기에 크람스코이 표현대로 '기념비성을 획득한 최초의 풍속화'라는 찬사도 낯설지 않다.

 

"레핀의 모든 그림은 레핀 개인만의 진보가 아니었다. 그것은 러시아 미술 전체의 진보였다. 그의 모든 그림은 사건이었다."(222쪽)

 

레핀의 정신은 아방가르드 화가들을 통해 20세기로 이어졌다. 러시아 미술은 삶과 미술을 분리하지 않았다. 동양인에게는 서양인이지만 서유럽 사람에게는 동방인 나라. 러시아. 그리고 러시아 미술은 우리에게 생경하지만 삶과 분리된 그림들, 무슨을 담고 있는지도 모르는 그림들 앞에 선 우리들에게 <러시아 미술사>는 분명 사람 냄새 나는 러시아 풍속화를 만나게 한다.

 

"언제나 그들, 러시아인들 하는 말은 크게 울리고 불꽃이 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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