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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배움…배움 있는 생각 | 인문 2014-12-03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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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우간린 저/임대근 역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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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 유성룡이 쓴 <징비록>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에 머무를 때 운주당이란 집을 지었다. 장군은 이곳에서 장수들과 함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투를 연구했다. 특히 졸병이라도 군사에 관한 내용이라면 언제든지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했다. 승전만 아니라 패전경험을 치열하게 논쟁하고, 토론을 했다. 한산대첩과 명량해전 승리 그리고 2323승은 장군의 탁월한 전략과 전술만 아니라 졸병부터 모두가 군사에 정통한 결과였다. 장군의 위대함이 어디에서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요즘 말로 하면 서로가 '멘토'가 된 것이다.

 

'비범'함이 아니라 '평범'했던 공자

 

 

 

이처럼 이순신 장군은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이 아니다. 처음부터 완전무결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런 이순신을 생각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 예수와 함께 '성인'으로 불리는 공자도 별 다르지 않았다. 성리학자들이 숭배했기 때문에 공자는 처음부터 고귀한 집안, 좋은 신분, 높은 벼슬, 그를 따르는 이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공자는 미천한 신분이었고, 얻은 벼슬도 질투와 시기와 모함 때문에 내놓았다. 간신들 질투를 받았고, 어떤 때는 생명 위협까지 받았다. 무엇보다 14년을 떠돌이 신세였다.

 

중국 경제학자이자 컨설턴트인 우간린이 쓴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위즈덤하우스)는 지난 2천년 동안 중국 사상과 정신을 지배해 온 <논어>, <공자가어>, <사기>, <공자집어> 따위 책들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풀이하면서 '성인' 공자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평범한' 공자를 보여준다.

 

하지만 평범하다고, 그의 가르침이 가치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더 쉽게 다가온다. 공자는 제자가 일흔두 명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운주당에서 졸병부터 장군까지 함께 전술과 전략을 논의 했듯이, 이들과 함께 세상을 두루 다니면서 공부했고, 토론과 논쟁했다. 공자는 제자에게서 제자는 공자에게서 제자는 또 다른 제자들에게 지혜를 얻었다. 공자의 가르침이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귀한 가르침이 된 이유가 바로 여기게 있다.

 

<논어> 위정(爲政)편에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음이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는 말이 있다. 현실을 벗어난 공부와 생각 없는 공부는 죽은 공부라는 말이다.

 

생각하는 배움…배움 있는 생각

 

세상에서 가장 싫은 것이 공부인 중학교 1학년인 우리 집 막둥이는 시간만 나면 아빠 꼭 수학을 해야 해요?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만 하면 되잖아요. 나는 체육과 음악이 좋아요. 수학 좋아하는 사람은 수학하고, 영어 좋아하는 사람은 영어 하면 되잖아요.”라고 묻는다. "그래도 학생은 공부를 해야지"라는 말 밖에 더 할 말이 없다. 수학은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기초학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오로지 대학가기 위해 미적분, 행렬, 함수를 배운다. 그리고 자연과학 분야가 아니면 대학에 들어가는 순간 수학을 손에 놓아버린다. 수학이 인생살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죽은 수학이 되어버린다.

 

이렇게 된 이유는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우리 풍토 때문이다. 대학을 옛날에는 '속세를 떠나 조용히 예술을 사랑하는 태도나 현실도피적인 학구 태도'를 뜻하는 '상아탑'(象牙塔, tower of ivory)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돈 더 많이 벌기 위해 '스펙'을 쌓는 곳으로 전락했다. 대학가서 하는 공부가 '영어'다. 기초학문과 인문학은 폐기처분 되고 있다. 이익을 남기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익을 남기려면 기초학문을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 애플 전 회장이었던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인문학과 실용학문은 함께 가야 한다. 우간린은 공자를 통해 살아있는 지식을 배워 활용하라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말장난' 같은 논쟁을 일삼은 것을 빌어 공자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을 가르쳤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공자는 "군자가 되어 인의의 이치를 행하는 데에는 동기가 좋아야 할 뿐 아니라 결과 또한 좋아야 하느니라"라고 말한다. 일을 잘해내려면 "가장 좋은 동기로 가장 좋은 효과를 쟁취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군자의 이치와 인의의 이치를 온전히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가르쳤다. 특히 문만 아니라 무도 함께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문(文)을 섬기더라도 무(武)를 준비해야 한다. 일을 할 때는 도리와 기술이라는 두 측면을 구분해야 한다. 강함과 부드러움이라는 수단은 모두 기술의 표현이다. 일을 하는 수단과 방식에서는 둘 모두를 갖추어야 하고, 둘 모두를 중시해야 한다. 부드러워야 할 때는 부드러워야 하고, 강해야 할 때는 강해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의 지혜다."(107쪽)

 

군자가 가져야 할 덕목은 동기과 과정 그리고 결과다. 도리와 기술, 수단과 방법이 함께 가야 한다. 이는 군자만 가져야 할 덕목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가져야할 삶의 자세요 지혜다.

 

 

권력과 법률로 사람을 징벌하면 패도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은 학문(공부)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대학 조차 돈 안 된다는 이유를 들어 인문학과를 폐지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해마다 10월만 되면 스웨덴에서 들려오는 노벨상 소식에 '왜 우리는 노벨상을 받지 못하는가?'라고 탄식한다. 하지만 11월 대학수능일이 되면 상위권 대학은 몇 점이 되어야 하는지 앞다투어 보도한다. 수능 만점자가 몇 명 나왔는지 전하기 바쁘다. 줄세우기도 변함이 없다. 일등이 모든 것을 다 갖는다. 2등 이하는 일등에 또 다시 줄을 선다. 그것은 권력이 된다. 그 권력은 힘을 지배한다. 지배를 거부하면 짓밟는다. 공자는 권력과 법률로 사람을 징벌하는 것을 패도라고 말한다.

 

"권력과 법률로 사람을 징벌할 줄만 하는 것을 패도(覇道)라 한다. 교화의 방법으로 백성이 스스로 고치고 바꿀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왕도(王道)라 한다. 패도는 주먹의 논리를 숭상하지만, 교화는 주먹보다 더 힘이 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97쪽)

 

 

 

대한민국은 독재를 경험한 나라다. 헌법을 유린하고, 시민을 총으로 죽였다. 왕처럼 군림했다. 저항하는 자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교화라는 말도 민주공화국에는 별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왕조 시대에는 백성을 교화했지만, 민주공화국 시민은 교화 대상이 아니라 주권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림과 탄압하는 권력은 반드시 패망한다는 것을 가르치 공자 가르침은 시대를 앞선 것이다.

 

자신에게 엄격하라

 

군림과 지배 그리고 탄압은 이른자 '권력자'들 전유물이 아니다. '평범한' 시민들도 누구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아버지란 이름으로, 선배라는 이름으로, 상사라는 이름으로. 지배자가 되지 않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군자가 되어야 한다. 군자란 "자신이 능력 없음을 부끄러워하고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않는다. 그래서 군자는 스스로 노력한다." 남탓하지 말고, 스스로 실력을 키우라는 말이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엄격해야 한다.

 

"자신에게 관대해서는 안 된다.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삶 또한 바르지 않은 것이니라. 그런데 어찌 내 자신을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이제 내면의 수련에 더욱 힘써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나도 모르는 사이에 퇴보할 것이다."(237쪽)

 

독재자 일수록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엄격하다. 마음을 바르게 쓰지 않는다. 강한 권력을 휘두를수록 "엄단", "일벌백계"라고 말한다. 당연히 그 대상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다. 공자는 "넓게 공부하라,성실히 행하라,신중하게 생각하라,분명하게 판단하라"고 말했다. 공자와 제자들은 이를 놓고 토론하고 논쟁했다.

 

 

이 같은 공자 가르침을 오늘 우리가 각슴에 새길 수 있는 것은 이들이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기록은 역사"라고 했다. 우간린도 공자에게 배울 점은 "기록하지 않으면 시간에 의해 진실은 잊힌다. 기록을 통해 그 진실을 복원하지 않는다면 진실뿐 아니라 역사에도 미안한 일이 일어날 것"(370)이라고 말한다. 기록하는 자, 진실을 지킬 수 있다. 그가 지혜로운 자다.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시대다. 암울하다. 거대한 벽이 가로 막혀 있는 느낌이다. 아니면 천길 낭떠러지에 나홀로 서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포기하지 말자. 길은 있는가?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를 손에 들어라.

 

"지혜로운 사람이 결국 원하는 인생을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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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위해 저항하라 | 인문 2014-10-23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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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잉에 숄 저/유미영 역/정종훈 그림
푸른나무 | 200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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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12월 5일 "내년에 날씨 좀 따뜻해지면 그때 다시 만나러 나오겠습니다" 라고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제 '역사'로 우리 마음속에 남았다.

 

대통령 노무현과 인간 노무현, 그 어떤 표현이든지 그는 해방 이후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기득권 세력에게 저항했다. 기득권은 모함과 조롱으로 그를 매도했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가 이제 몸으로 저항할 수 없지만 그가 남긴 정신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왜곡과 불의에 저항해야 한다.

 

사람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역사에서 적극적인 행동을 통하여 사회를 바꾸려는 사람을 기억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사회가 불의가 지배할 때 저항으로 이끌림을 당한 이들을 기억하여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억을 한다.

 

이 수동적인 저항은 자신만 희생당하는 것으로 끝날 수 있지만 사람은 역사 속에서 그들이 남긴 저항 정신을 마음에 새긴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이 가진 양심은 불의가 정의를 이기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바라는 마음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2차 대전 독일에서 뮌헨 대학을 중심으로 나치에 저항하다 처형당했던 '크리스토프 프롭스트와 한스 숄, 죠피 숄, 알렉산더 슈모렐, 크루프 후버의 실화를 바탕으로 잉게 숄이 지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은 수동적 저항이 몇 십 년 지난 오늘까지 우리에게 읽히는 이유가 그 예다.

 

나치에 대한 저항이라면 이들이 엄청난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은 그저 인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유와 정의, 삶을 위한 권리를 지키려고 했을 뿐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었다.

 

한스와 죠피는 "세상을 잊어버린 듯 바깥 세계와는 멀리 떨어진 작고 조용한 광산촌에서 보냈"고 한스는 "러시아와 노르웨이 민요"를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였다. 한스와 죠피, 알렉산더 슈모렐은  의대들 졸업해서 열심히 환자들을 돌보며,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가정을 꾸리는 시민으로 살았을 것이고, 후버 교수는 학생들에게 철학을 통하여 진리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 열정을 다하여 강의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치는 "사생활까지 간섭하는 훈련과 획일주의"와 "독일을 서서히 하나의 감옥으로 만들어 종국에는 아무도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는" 세상으로 만들었다. 독일을 집단 수용소로 만들어가는 것은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었다. 그들이 저항한 이유이다. 한스와 죠피가 나치를 향하여 저항에 나서자 아버지는 말한다.  

 

"우리가 정부에게 요구해야 할 무엇보다 중요한 사항은 바로 개개인의 자유로운 견해와 신념의 보장이란다. 내가 너희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비록 인생의 길이 험난하고 고달프다 할지라도, 너희들은 인생을 자유롭고 올바르게 살았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정부가 인민이 말하는 자유와 생각하는 자유를 빼앗을 때 저항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아버지 말에 울림이 있다. 말하고, 생각하는 자유를 되찾기 위한 저항이 험난하고 고달플지라도 가라고 말하는 아버지 마음은 어땠을까? 하지만 아버지는 가라고 했다.

 

말하고, 생각하는 자유가 70년이 지난 대한민국 이명박 정부도 말하는 자유와 생각하는 지유를 빼앗고 있다. 나치가 이들을 탄압하고, 결국은 한스와 죠피, 뮌헨 대학 학생들과 교수들을 탄압했듯이 이명박 정권도 자유를 달라는 시민들을 짓밟고 있다. 저항하는 이유가 자기들에게 있다는 비판까지도 못하게 한다.

 

인민이 말하는 자유와 생각하는 자유를 가지게 해달라고 저항할 때 나치는 대대적인 검거령이 내려져 일기장과 잡지, 노래를 모은 노트들을 압수하고 불태웠다. 그것을 본 한스는 "차라리 우리들의 몸에서 심장을 빼앗아 가라. 그러면 너희들도 아마 그것에 타 죽어버리라"고 했다.

 

시대가 평탄하면 제자들에게 정의와 양심을 위하여 살아라고 대다수 교수들은 말한다. 하지만 나치 같은 정권이 들어서면 정의와 양심은 독재자 앞에 팔아먹는다.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 정권 시절 양심을 팔아 부역한 교수들이 많았다. 하지만 어떤 교수들은 독재자 앞에 양심을 파는 부역을 거부하고 저항했다.

 

한스와 죠피, 알렉산더 슈모렐, 크리스토프 프롭스트가 나치에 저항할 때 뭔헨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강의했던 후버 교수는 "독일의 한 시민으로서, 독일 대학의 교수로서 그리고 한 정치적 인간으로서 독일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참여하고 그릇된 점을 공공연하게 폭로하면서, 그것에 맞서 싸우는 것인 권리일뿐더러 도덕적인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 역시 제자들과 함께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들은 모든 폭력에 대항하여 꿋꿋하게 살았고,  정의는 죽지 않는다는 말을 믿으며 살았다. 한 치의 타협도 없이 그들은 비굴하게 구원받으려 하지 않았다. 자유 만세를 외쳤다. 국가가 인민의 자유를 지배하려는 것에 저항했다.

 

국가의 통치작용이 드러나지 않을 때에만 국민은 행복한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통치작용이 뚜렷하게 부각 될 때에는 국민은 파멸의 길을 걷는다고 했다.

 

국가가 인민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을 존중해야 하며, 모든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나치는 아니었다. 당연히 저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강도는 다를 뿐 국가와 권력은 항상 인민의 자유를 자기들 통제 아래 두려고 한다. 그 때마다 인민은 저항했다. 저항하지 않으면 국가와 권력은 언제든지 인민에게 자유를 빼앗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은 저항했다. 이유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위해 그것이 그 때 그들에게는 당장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나치가 종말을 고하고 난 후 1947년 독일에서는 이 책을 학교 교재로 지정하여 13세부터 18세의 청소년들에게 의무적으로 읽도록 했다. 국가의 폭력과 인권 유린,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훼손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2014년 우리는 우리 자유를 위해 저항하고, 저항하는 지난한 싸움을 해야 한다. 우리와 미래시대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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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에 따라 사는 것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다 | 인문 2014-01-10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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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임영택,박현찬 공저
위즈덤하우스 | 2013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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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관련 사진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 위즈덤하우스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이는 안중근 의사가 남긴 유명한 말로 아이들에게 책 읽기를 강요할 때마다 자주 쓰는 말입니다. 두보는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書·남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강명관 부산대교수(한문학)는 <조선의 책벌레들>(2007년, 푸른역사)이라는 책에서 "인간의 역사는 곧 의도를 갖는 책의 역사들이다, 책을 쓰는 사람은 곧 책에 몰입하는 인간들이다, 다름 아닌 책벌레들"이라며 "누가 세상을 만드냐고 묻는다면 나는 책벌레들이 만든다고 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책의 역사에서 인간을 해방 혹은 억압한 책들의 투쟁을 본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정조때 이덕무는 '간서치(看書痴·책 읽는 바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평생을 함께할 책 한 권을 갖는 것은 무척 복된 일입니다. 책을 통해 용기를 얻거나, 살아갈 방향을 찾은 책이라면 두고 두고 읽을 것입니다.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임영택·박현찬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는 마오쩌둥·정조·정도전·간디·체 게바라· 제퍼슨 등이 책을 통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알려줍니다.

박 대통령, '동서양 고전 글귀로 바로 세웠다'고 했는데

우리나라 대통령들도 여름 휴가를 갈 때 읽을 책 목록을 공개하거나,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소개하곤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7월 2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13 서울국제도서전' 축사에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낼 때 성현들의 지혜가 담긴 동서양 고전들의 글귀가 저를 바로 세웠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줬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고전이 박 대통령 인생관과 가치관에 큰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에는 14명의 책들이 소개돼 있습니다. 저는 이 책에 언급된 여러 책 중 정조와 간디의 삶을 바꾼 책들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조선시대 세종대왕과 더불어 개혁 군주로 손꼽히는 정조. 그가 할아버지 영조와 나는 대화 한 장면이 <영조실록>에 실려 있습니다.

영조 : 국가에 군주를 세우는 것은 군주를 위한 것인가? 백성을 위한 것인가?
정조 : 군사(임금이자 스승이 되는 사람)를 세우는 것은 백성을 편안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영조 : 군사의 책임을 감당한 사람은 누구인가?
정조 : 요·순·삼대의 군주가 그랬습니다. 삼대 이후로는 감당한 사람이 드물었습니다.
영조 : 너는 군사가 되고 싶으냐? 천하를 다스리는 스승이 되고 싶으냐?
정조 : 천하를 다스리는 스승이 되고 싶습니다.
영조 : 그 뜻이 크구나. 사관은 잘 기록해 두어라. 만일 천하를 다스리는 스승이 될 수 없다면 군사도 될 수 없을 것이니 저 사관에게 부끄럽지 않겠는가? (본문 75쪽)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와 토론에서 '군주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천하를 다스리는 스승이 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정조는 그런 군주가 되기 위해 책 한 권을 스승으로 삼았는데 그 책이 바로 <서경>이라고 합니다. 정조가 말한 '군사'는 <서경>에 나옵니다.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치기 전 군대를 앞에 두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늘이 백성을 도와 임금을 만들고 스승을 만든 이유는 오직 하느님을 잘 도와서 사방을 사랑하고 편안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죄 있는 자를 처벌하고, 죄 없는 자를 도와주는 일에서 내가 감히 히늘의 뜻을 어기겠는가?"(본문 75쪽)

은나라 주왕이 임금과 스승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므로 징벌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봉건왕조 시대 '천자(天子)'도 하늘의 뜻을 거스리면 제거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하물며 민주공화국에서 인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배반한다면 인민의 힘으로 끌어 내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서경>은 "고요가 '임금이 현명하면 신하들이 어질어지고 모든 일이 편안해지네, 임금이 좀스러우면 신하들이 게을러지고 모든 일이 어긋나네'라고 노래를 부르자 순 임금은 절을 했다고 한다"면서 신하가 임금에게 경계의 말을 올리자 순 임금은 절을 할 정도로 귀와 가슴이 열린 사람이었다"고 전합니다.

정조, <서경>에서 소통 배워…'먹통 대통령' 박 대통령 <서경>을 읽으시라

귀와 가슴이 열린 임금, 그가 진정 백성을 위한 군주였습니다. 우리가 요·순 시대를 최고의 시대로 뽑는 이유는 많겠지만, 지도자들이 백성의 소리을 위하는 소리를 듣고 자신을 비판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 아닐까요.

정조는 '소통'하는 군주였습니다. 물론, 태생이 소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자리였습니다. 아버지 사도세자 죽음이 노론당에게 의한 것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노론당과 함께하지 않으면 자신 역시 언제 죽을 수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었습니다. 그는 "옷을 벗지 못하고 자는 때가 몇 달인지도 모른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정조는 결국 소통을 택했습니다.

"정조는 소통을 평생의 과제로 삼았다. 아바지는 당파싸움의 희생양이 되었고, 자신은 바늘방석 위에 앉은 세손 생활을 하다가 왕위에 올랐다. <서경>의 소통철학을 받아들이고 영조의 뜻을 이어 받아 탕평 정책을 계속 펼쳤다. 과거의 죄를 묻는 일은 최소한의 범위에서 처리하고자 했다. 반대 세력의 의견에도 귀 기울이고 오직 옳고 그름만을 따졌다."(본문 79쪽)

고전에 많은 것을 배웠다는 박근혜 대통령이 <서경>을 읽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읽지 않았다면 꼭 <서경>을 읽길 권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귀와 가슴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비판 세력의 말은 아예 듣지 않고, 비판 세력에 대한 가슴 역시 차갑습니다.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기보다는 오히려 잡아 넣기 바쁜 것 같습니다. 자신의 입으로 '국민대통합'을 외쳤는 데도 불통을 넘어 먹통이 된 모양새입니다. 야당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 모습을 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강자는 자신이 가진 것을 무기삼치 않고 약자와 눈높이를 맞추며 먼저 낮은 데로 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또한 과거의 잘못을 사과하려는 쪽이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진심을 보여줄 때 상대방은 내민 손을 잡아준다. 우리는 지금 불통이나 '쇼'에 불과한 소통이 아닌 진정성 있는 소통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정조가 그리워지는 이유다. 정조가 이루고자 했던 소통과 대통합을 통한 대동사회 건설의 꿈은 아직도 진행형으로 남겨져 있다."(본문 84쪽)

헨리 소로우는 <시민불복종>이라는 책에서 "사람  한 명이라도 부당하게 가두는 정부에서 정의로운 사람이 진정 있을 곳은 역시 감옥"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는 "정부가 자기에게 동조하지 않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가두는 곳, 노예의 나라에서 자유인이 명예롭게 살 수있는 유일한 감옥"이라고 했습니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가르쳐야"

불의한 정부에 복종하느니, 정의를 따르다가 감옥에 갇히는 것이 더 낫다는 말입니다. 간디는 <시민불복종>을 통해서 비폭력 무저항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는 정의롭지 못한 정부에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간디가 농장주에게 착취를 당하고 있는 농촌 지역 사정을 조사하려고 하자 판사는 그 지역을 떠나라고 명령하지만 간디는 따르지 않았습니다. 체포된 그는 명령에 불복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법을 준수하는 시민으로서 나는 우선 나에게 내려진 명령에 복종 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내가 찾아온 이 지역 사람들에 대한 나의 의무감에 상처를 입게 됩니다. 나는 지금은 그들과 함께 있어야만 그들에게 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나에게 내려진 명령을 무시한 것은 법적 권위를 존중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우리 존재의 더 높은 법, 즉 양심의 소리를 따르려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요게시차다 씀·정영목 옮김, <마하트 마 간디>, 한길사, 2001. 재인용 117~118쪽)

채동욱·윤석열 검사는 국정원 부정선거 진실을 파헤치려 하다가 박근혜 정권에 의해 물러났습니다. 아이들을 더 정의롭게 가르치려다가 징계를 당한 선생님을 내치지 않았다고 전교조를 노조가 아니라고 합니다. 프랑스 교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 부정선거로 당선됐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 하라"했다는 이유로 집권당 국회의원은 "대가를 치르게하겠다"고 협박성 발언을 당당하게 합니다.

불의와 반민주주의에 저항하는 것은 민주시민으로 당연한 일입니다. 헨리 소로우는 <시민불복종>에서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먼저 가르치라"고 합니다. 물론 모든 법에 불복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공동체의 행복, 개인의 자유를 위협하는 법이라면 지키지 않는 불복종을 통해 그 법을 개혁하자는 것"입니다. "법을 준수하는 국가 구성원으로서 한 명의 국민보다 양심과 정의를 추구하는 한 인간의 입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여,'국민'이기 이전에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양심에 따라 사는 것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어

박근혜 정권, 아니 보수세력은 항상 '국가'를 강조합니다. 국정원 부정선거에 개입한 이들도 대부분 '나라'를 위해 한 일이라고 강변합니다. 하지만 그 국가가 정의롭지 못하면, 저항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국민이 먼저가 아니라 양심을 가진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소로우 주장이 지금 대한민국 인민들이 새겨야 할 중요한 내용입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정의를 위해 나 한 사람이 저항하면 그것이 밀알이 되어 수만, 수십만, 수백만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국정원 부정선거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유린당하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선한 사람이 되어 전체를 발효할 수 있는 효묘가 되어야 합니다. 양심에 따라 행동할 때입니다. 양심에 따라 사는 것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인민들이 양심에 따라 저항하는 것은 막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막으면 인민은 박근혜 정권에 불복종해야 합니다. 그게 민주공화국입니다.

박 대통령이 올 겨울 휴가를 떠나게 된다면, 꼭<서경>과 <시민불복종>을 챙겨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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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다른 길이 있다

김두식 저
한겨레출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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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관련 사진'사람' 열이 있으면 '생각'이 열입니다. 백이면 생각이 백입니다. 열과 백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려면 생각이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각자가 살아가는 가는 길이 다릅니다. 모두가 다른 길일 때 그 길은 아름답습니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면 모두가 적이 됩니다. 모두가 같은 길을 간다면 그 사회는 죽은 사회입니다.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판사라면 행복한 사회일 수 있습니다. 모두가 검사라면 그 사회를 숨을 쉴 수 없는 세상입니다. 선생님이 있어야 하고, 농사짓는 사람, 고기 잡는 어부 그리고 자동차를 고치는 정비사, 우리 사회를 깨끗하게 하는 청소노동자 어느 것 하나 고귀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여기 30명이 있습니다. '다름'을 '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어쩌면 이들도 '붉은 물'이 든 사람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서른 개의 생각과 서른 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2012년 1월부터 2013년 5월까지 <한겨레> 토요판에 연재되었던 인터뷰 '김두식의 고백' 가운데 서른 명의 이야기를 담은 <다른 길이 있다>(한겨레출판)에서 서른 명의 서른 개의 다른 생각과 삶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박경신 · 고종석 · 유시민 · 윤태호 · 문부식 · 이상호 · 김종배· 등등. "쓰지만 영근 삶을 살아온 서른 명의 인생 이야기"로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면 어느새 '다른 길'을 가는 것이야 말로 사람냄새 나는  '사람살이'임을 알게 됩니다.

서른 개의 다른 길...사람냄새나는 '사람살이'

김두식이 만난 이들은 어릴 적 부모 없는 삶을 살고, 군사독재가 쏜 독화살이 자신의 삶에 치유하게 힘든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감당해야 하는 병역의 의무를 피할 요량으로 미국시민권을 딴 박 교수가 그렇게 걱정하는 '우리나라'는 대체 어느 나라인지 꼭 한번 묻고 싶다."(37쪽)

누구보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한 보수신문 기자가 쓴 글입니다. 그 기자가 말한 박 교수는 박경신 고려대 교수입니다. 그는 지난 2011년 7월 자신의 블로그에 남성 성기 사진 5장과 귀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 그림을 연달아 올렸습니다. 파문이 컸습니다.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재판까지 갔으니 파문은 컸습니다.

박 교수는 <PD수첩>,언소주,미르네바, 군 불온서적 재판에 나가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중요한 재판에 나가 전문가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보수신문 기자가 "박 교수가 그렇게 걱정하는 '우리나라'는 대체 어느 나라인지 꼭 한번 묻고 싶다"고 한 이유를 어느 정도 알 것 같습니다. "대통령 퇴진하라"는 신부들을 향해 "조국이 어디냐"냐고 분노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과 닮아도 참 많이 닮았습니다. 박 교수는 방송통신심의위원이었습니다. 즉 '검열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올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검열자'가 발기된 성기사진을 올리다니

"제가 방심위원이 되면서 국민의 정신생활을 통제하는 '검열자'가 된 셈이잖아요. 국가가 국민의 머리에 들어가 직접 생각을 통제할 수는 없으니까 국민이 보고 듣는 것을 통제하는 방식을 취하는 거죠. 법학 지식을 이용해서 불합리한 통제를 막는 게 저의 임무인데, 국민이 검열 때문에 어떤 것을 보지 못하는지 기록이라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박경신 자료실'(blog.naver.com/kyungsinpark)이라는 제 블로그에 '검열자 일기'를 쓰기 시작했죠. 촌스러운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제가 쓴 논문이나 칼럼을 지인들과 나누는 소박한 블로그예요. 제가 양심적으로 판단해도 무리하게 삭제되거나 차단된 경우를 자료실에 남겨놓고 나중에 추가적인 논의나 연구를 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성기 사진은 '청소년유해물로 접근을 제한하자'고 타협했는데도 음란물로 삭제돼버려서 이건 꼭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죠."(38쪽)

검열자는 '칼질'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박경신은 칼질을 거부했습니다. 보수세력이 보기에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성의 과학>이라고 관련 전문가들이 내놓은 야심작을 보면, 발기된 총천연색 사진을 보여주면서 발기의 진화학적 유래, 즉 삽입의 용이성을 설명한다"며 "저는 그런 사진들이 당연히 허용되어야 하고, 청소년 유해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런 박 교수 주장에 동의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이는 생각이 다를 뿐이지, 박 교수 생각이 '틀린'것이 아닙니다.

서른 명 중 가장 가슴 아프게 만난 사람이 있습니다. 대학교 학과 선배인 문부식씨입니다. 문씨는 "광주의 비극을 상기시키고 미국과 전두환의 더러운 결탁을 고발"하려고 지난 1982년 3월18일 부산미화원 방화사건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그는 고신대학 신학생이었습니다. 목사가 되려고 한 사람이 벙화를 하고, 결국 사람까지 죽입니다. 1986년 학교에 들어갔는 데 4년이 지났지만, 상처가 남아 있었습니다.

'부미방' 문부식, 민주화에 기여하지 않는 '나'를 부끄럽게하다

그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한 때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에 글을 썼습니다. 문부식에게도 그 사건은 '트라우마'인 것같습니다.

"그 죽음에 대해 누군가 책임져야 한다면 그건 저라고 생각했고 스스로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자로서 법정에서도 무죄주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부산에 가더라도 미문화원 쪽은 쳐다보지도 못했어요. 유리창 깨지는 소리, 연기 속에서 달려 나오던 후배들의 모습, 이들이 짊어져야 했던 부채감들이 떠올라서"(214쪽)

왜 그가 "부채감"을 가져야 할까요? 부미방사건은 그 동안 군사독재만 저항했던 학생운동이 미국을 제국주의로 생각하는 계기가 됩니다. 문부식은 "눈이 많이 오던 겨울밤 오랜만에 동료들을 만나 술 한잔 걸치고 집에 왔지요. 혼자 자전거 타고 편의점으로 가다가 미끄러져 공중에 떴다가 자빠지고 난 뒤 생각했다"며 "'이런 젠장 내 인생은 뭐지?' 꽤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어울리던 친구들과 저는 다른 인생이었던 거죠. 그동안 지녀온 지적 자존심이 삭풍과 함께 날아가 버린 것 같은 쓸쓸함"이라고 했습니다. 문부식과 인터뷰를 마친 김두식이 쓴 마지막 글은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굴곡이 심했던 인생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문부식은 "나는 원래 길 잃은 인간으로 태어났으며 구원받는 것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도 않는다"는 존 스타인벡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네이팜탄 공장에 폭탄을 설치했다가 예기치 않은 희생자를 내고 평생 도망 다녀야 했던 영화 <허공에의 질주>의 반전운동가 부부가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영화 속의 그들과 달리, 문부식에게는 그를 끝까지 보호하고 지원하는 '조직'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사람을 쓰고 빨리 내다버리는 곳이 우리 사회인 것 같습니다. 문부식처럼 민주화운동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에게 자기 삶과 화해할 기회를 한번이라도 더 주는 것이, 저처럼 민주화 운동에 전혀 기여한 바 없이 과실만 따먹은 사람들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220쪽)

부끄럽습니다. 부미방 사건 자체(방화)는 동의할 수 없지만, 그를 통해 미국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고 민주주의 한 발 더 진보했습니다. 하지만 문부식을 지켜주고 보호해줄 조직은 없었습니다. 민주화란 열매는 다 따먹으면서 그들을 한 번 더 돌아보지 않는다면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를 가장 완벽하게 누리는 이들이 어쩌면 수구기득권입니다. 민주주의 열매를 따 먹고,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이들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있습니다.

<오마이TV> '이슈털어주는남자'(이털남) 김종배 시사평론가도 만날 수 있습니다. 김 평론가는 "언론비평지에서 주로 기자생활을 했는데 그 경험을 단 한번도 후회하지 않아요. 제도언론 기자들이 부서나 출입처 중심으로 세상을 본다면, 저는 언론판 전체를 넓게 봤다고 생각"한다며 "다른 건 몰라도 언론비평지가 정파적이 되어서는 안 되죠. 데스크 할 때 후배들에게도 팩트만 가지고 가야지 진영논리로 가면 안 된다고 강조했어요. 한겨레라도 잘못하면 비판하라, 조중동이라도 잘했으면 칭찬하라 그랬다"고 합니다. 언론이 '진영논리'에 매몰되면 안 되다는 것입니다. <조중동>처럼 수구기득권을 대변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오마이뉴스>같은 진보언론 역시 진보세력이 민주주의의 공의에 반하면 날선 비판을 하라는 말입니다. 해겨야 합니다.

"둘째 줄에서, 최소한 비겁하게 살지는 말자"

기사 관련 사진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에 위치한 이한열기념관에서 과선배 이한열 열사 앞에 선 이상호기자 그는 "둘째 줄에서, 최소한 비겁해지 말자"고 한다.
ⓒ 한겨레출판

 

'삼성 엑스(X)파일'하면 떠오르는 정치인은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입니다. 그리고 언론인은 이상호 기자입니다. 그는 "둘째 줄에서, 최소한 비겁하게는 살지"말자고 합니다. 이런 삶을 살게 된 것은 지난 1987년 6월 항쟁 때 이한열 열사 때문입니다.

이 기자에 따르면 이한열씨는 2학년 과대표 자신은 1학년 과대표였습니다. 9일에도 이한열 열사가 "내일부터는 시민들이 나올 테니까, 딱 오늘까지만 홍보전에 같이 나가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한열 열사가 제일 앞줄에 서고 자신은 그 뒷줄에 섰다고 합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둘째 줄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상호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둘째 줄의 의미를 자꾸 생각하게 돼요. 가장 비겁한 게 둘째 줄인데, 기자는 직업적으로 둘째 줄에 설 수밖에 없어요. 첫째 줄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이 노동 환경과 비정규직 문제를 제기할 때, 기자는 아무리 훌륭해도 그걸 전하는 둘째 줄밖에 못 되니까요. 남의 삶을 통해 말하는 거간꾼에 불과하죠. 20대 때부터 한열이 형의 삶을 반추하다가 2003년 <시사매거진 2580>에서 배달호 열사를 취재하면서 확신을 갖게 됐어요. 내가 첫째 줄에 서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둘째 줄에서는 비겁해지지 말자!"(258쪽)

"둘째 줄에서는 비겁한 일"은 하지 말자는 그의 다짐 지금 이상호를 있게 한 것 같습니다. 사실 둘째 줄에 서면 편안합니다. 그리고 나도 둘째 줄에는 섰다며 자랑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비겁한 일이라고 합니다. 지금 맨 앞에서 공의와 정의를 외치는 이들은 "대통령은 물러나라"고 외치는 사제단입니다. 박근혜정권은 바로 이들을 종북이라고 합니다. 다름 자체를 부정해버립니다. 하지만 박근혜정권은 태생이 기득권입니다. 그러기에 어쩌면 더 비겁한 사람이 바로 '나'일 수 있습니다. 최소한 비겁한 삶은 살지 않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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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재판관도 때로는 압제자임을 증명해왔다" | 인문 2013-12-0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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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피고인이 된 변호사

한승헌 저
종합출판범우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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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9일 개봉하는 영화 <변호인>에서 '돈 없고, 빽 없고, 가방끈도 짧'은 세무 변호사 송우석(송강호 분)은"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라며 최후 변론을 한다.

"당신의 소중한 돈을 지켜드립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명함을 돌릴 정도로 '돈'을 좋아했던 송우석이 "국가란 국민입니다"라는 최후 변론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국민선택이 아니라 찬탈을 통해 권력을 잡은 것도 모자라 주권인 인민의 인간존엄성을 무참히 짓밟았기 때문이다. 이후 송우석이 어떤 변호인의 길을 걸었는지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은 현실에서 그를 '인권 변호사' 노무현으로 불렀다.

 

<변호인> 시사에 참석했던 한 여성 관객은 <오마이스타>와 인터뷰에서 "이번 영화를 통해서 그분을 더 좋아하게 됐다. 이래서 사람들이 '노무현 노무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반공법사건 전문 변호사', 한승헌

 

우리나라 변호인 중 송우석처럼 살아온 이들이 많다. '승소'보다는 '패소'를 밥먹듯이 한다. 돈 안 되는 변호를 밥먹듯이 한다. 그리고 변호인이 아니라 '피고인'이 된다. 이런 변호인에게 누가 변호를 맡길까. 하지만 사람들은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패소할 줄 뻔히 알면서도 그를 찾았다. '동백림 간첩단 연루 문인 사건,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론 탄압 사건', '민중교육 사건, '민청학련 사건', '통일혁명당' 사건 등등이다. 그리고 반공법 위반 필화사건과 '김대중내란음모사건'으로 두 차례에 걸쳐 21개월간 옥살이를 하며 1976에서 1983년까지 변호사자격이 박탈되었다. 이런 그를 두고 친구는 '반공법사건 전문 변호사'라고 했단다.

 

그는 감사원장을 지낸 한승헌 변호사다. 법조생활 55년을 맞아 <한승헌 변호사 법조55년 기념선집>이 나왔다. <한일현대사와 평화·민주주의를 생각한다>, <피고인이 된 변호사>, <권력과 필화>, <한국의 법치주의를 검증한다>로 구성됐다.

 

<피고인이 된 변호사>는 '변호사' 한승헌만 아니라 '사람' 한승헌을 만날 수 있다. 글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마다 박정희 독재정권과 전두환 독재정권을 지나 김대중-노무현 정부들어 공직에서 있으면서 겪었던 여러 경험들을 통해 그가 민주주의를 위해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다.  

 

'돈' 좋아하는 변호사 노무현이 '부림사건'을 맡으면서 인권 변호사로 삶을 변했듯이 한승헌은 '분지사건'과 김지하 <오적>을 맡으면서 '반공법전문 변호사' 길로 들어선다. '분지사건'은 1965년 남정현 소설가가 현대문학 3월호에 발표한 <분지>가 같은 해 5월 8일자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 <조국통일>에 실리자 중앙정보부가 반공법으로 잡아 넣은 사건이다. 한승헌은 지난 2009년 1월 19일 <한겨레> [길을찾아서] '시국사건 변론 첫발 '분지'에 내딛다' 글에서 분지사건 변론을 맡게 된 이유를 이렇게 회고했다.

 

얼마나 긴 대장정의 험난함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줄은 짐작도 못한 채, 그저 터무니없는 용공 혐의에 짓눌린 한 작가의 수난을 외면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검찰에 변호인 선임계를 냈던 것이다

 

"터무니없는 용공 혐의"를 박정희 정권은 뒤집어 씌웠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문학평론가 임중빈씨가 1970년 11월호 <다리>에 '사회참여를 통한 학생운동'이란 그을 썼다. 다음 해 3월 중정은 이를 문제 삼았다.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는 "은연중 우리 정부의 타도를 암시, 반국가 단체인 북괴를 이롭게 하는 내용"이라고 했다.

 

미 연방대법관 더글라스 "역사는 재판관도 때로는 압제자임을 증명해왔다"

 

시대가 그랬다. 무조건 "빨갱이"로 몰면 끝이었다. 한승헌은 "책에서 배운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니, 증거재판주의니, 임의성 없는 자백의 배제니 하는 재판상의 정의는 번번이 실종되었다"며 "재판은 오직 처벌을 위한 의식으로 전락한 느낌 마저 주었다"고 말한다.

 

"특히 유신독재 시절 대통령긴급조치사건을 다룬 군법회의에서는 개헌을 주장했대서 15년 징역이 구형되면 바로 그 다음날 틀림없이 15년 징역이 선고되곤 했다. 그러한 재판에 대해서 나는 '자판기 판결'또는 '정찰제 판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런 사법 풍토 속에서 나는 언제나 실패하는 변호사일 수밖에 없었다. 재판관이 검사의 편만 들 때에는 피고인은 하느님을 변호인으로 모실 수밖에 없다는 말이 절실한 명언으로 떠올랐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더글라스 판사가 "역사는 재판관도 때로는 압제자임을 증명해왔다"고 한 말을 되씹어보기도 했다."(36쪽)

 

"역사는 재판관도 때로는 압제자임을 증명해왔다"는 읽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그 판결이 권력이 바라는 '정찰제 판결'를 내리면 똑 같은 압제자가 된다. 독재자 박정희 치하 숱한 시국사건이 그랬다. 판사들은 더글라스 판사 말을 판결을 내릴 때마다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한승헌을 변호인에서 피고인으로 만든 '김대중내란음모 사건'은 헌법상 기본권은 사치품일 정도로 민주주의가 유린당한 사건이었다. 박정희와 전두환을 '군사반란자'와 '독재자'로 부르는 이유다.

 

군법회의도 예상을 초월한 촌스런 연극으로 진행되었다. 사선 변호사인 선임도 철저히 봉쇄되었다. 접견·통신권은 간 곳이 없다. '김대중내란 음모 사건'은 그러한 불법  조작의 극치였다. 우리들을 가두어놓고 전두환은 그 사이에 국회를 폐쇠하고 국보위(국가보위입법회의)를 만들더니 급기야 '체육관 대통령'이 되어 집권 야욕을 채웠다. 내란은 누가 했는가, 구형량  그대로 선고되는 판결, 창문은 켜녕 바늘구멍 하나 없는 육군교도소의 먹방생활…….헌법상의 기본권이니 형사소송법의 무슨 권리니 하는 것은 한낱 웃기는 사치품이었다(110쪽)

 

없는 용기를 다해서 양심을 지켜야 했다

 

전두환이 왜 '나쁜 놈'일까? 헌법을 무력화시켜 인간존엄성을 웃기는 사치품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권력을 찬탈한 자가 민주주의를 바라는 인민을 탄압한 것이다. 민주시민은 전두환에게 "네가 네 죄를 알렸다"라고 물어야 한다. 한승헌은 최후진술에서 "우리들의 형기의 장단이 아니라 유·무죄를 제대로 판단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민주화를 요구한 우리들이 민주화를 약속한 정부에 의해서 체포된 것은 매우 코믹한 일"이라며 "우리는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정부를 비판했다. 비판을 한 사람이 어떤 대우를 받게 되느냐로 그 나라의 민주의의 척도가 결정된다. 최근의 사회적 혼란은 정부를 비판할 자유가 없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법부는 김대중에게 사형, 문익환 20년, 이문영과 예춘호 12년 그리고 한승헌은 4년을 선고했다. 대법원 역시 1980년 10월 상고기각했다. 한승헌은 책에서 대법원 판사 13명(이영섭, 주재황, 한환진, 안병수, 이일규, 나길조, 김용철, 유태흥, 정태원, 김태현, 김기홍, 김중서, 윤운영)실명을 그대로 실었다. 더글라스 판사의 "역사는 재판관도 때로는 압제자임을 증명해왔다"는 말을 김대중내란음모 사건에 그대로 적용해도 무방할 것이다.

 

내란음모 사건이 33년만에 다시 부활했다. 과연 2013년 대한민국 사법부는 어떤 판결을 내릴까? 오로지 헌법과 법에 따라 판결해야지 만약 정치권력이 바라는 대로 판결한다면 "역사는 재판관도 때로는 압제자임을 증명해왔다"는 치욕을 겪게 될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치욕스러운 것은 같은 생각을 가졌다가 자신의 이익때문에 동지들은 배반하는 일이다. 독재권력은 배신을 이끌어내기 위해 어떤 때는 협박을 어떤 때는 회유를 했다. 이 같은 마수는 한승헌에게 있었다.

 

"사실 '남산' 쪽의 압력이나 공작·협박은 쉽게 뿌리칠 수 있는 마수가 아니었다. 항복이나 훼절 또는 맹세를 강요하는 것은 다반사였다. 나는 특정 사건의 변호에서 손을 떼라는 협박에 맞서다가 단 하루 만에 붙들려가서 구속당한 경험도 있다.  반성한다거나  준법하겠다는 각서 한 장 쓰라는 것을 거부한 탓으로 한낮부터 밤늦도록 싸우기도 하고, 지방 교도소로 이감을 당하기도 했다. '남산'의 사건 조작이나 공작 의도에 순응하지 않고 버티기란 그리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한번 영합·굴복하고 나면 파멸이니 마찬가지니까  없는 용기를 다해서 양심을 지켜야 했다."(342쪽)

 

권력의 독기 앞에 좌절할 때도 있었지만, 물러서지 않아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고문도 견디기 힘들지만, 약점을 잡고 회유하는 것은 더 이겨내기 힘들다. 아주 작은 약점도 잡히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승헌이 회유와 협박을 당해도 남산(중정)에 굴복하지 않았던 것은 그가 '깨끗'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사실 종이 한 장 쓰고, 반공법전문변화사를 그만 두면 엄청난 부를 누릴 수 있었다. 한승헌은 "없는 용기를 다해서 양심을 지켜야 했다"고 말한다.

 

없는 용기를 내어 양심을 지켜야 할 정도로 박정희 정권은 폭압정권이었다. 이런 박정희를 '반신반인'이라고 한다. <피고인이 된 변호사>에는 67건이 나온다. 한승헌은 "크든 작든 이 나라 역사에 영향을 미쳤거나 각인이 된 그분들의 고난의 기록"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분들을 돕는다고 나섰던 저의 안간힘은 벌거벗은 권력의 독기 앞에서 좌절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저는 법정의 변호인석에서 물러설 수가 없었다"고 반추한다.

 

한승헌이 변호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권력의 독기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 변호사. 이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대한민국은 더 나은 민주주의로 발전할 것이다. 33년만에 내란음모죄로 재판받은 국회의원, 전교조를 '노조 아님', 민주정당을 '북한식 사회주의'를 한다며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한다. 독재자 박정희와 전두환이 내뿜었던, '권력의 독기'를 다시 뿜고 있다. 한승헌의 글을 가슴에 새기자.

 

"변호인의 소임은 법정안에서 변호활동을 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하지만, 공간과 시간의 한계를 넘어선 재판의 실상과 진실을 널리 알리는 일도 저의 사명의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재판이 불의와 거짓의 편에 기울어질 경우에는 변호사의 증언자적 소임이 한층 더 중요하다고 믿습니다."(3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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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창제는 세종 아닌 박연? | 인문 2013-06-23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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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박연과 훈민정음

박희민 저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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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은 앞으로 50년 더 살기가 어렵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 당신의 운명과 함께해서는 안 된다. 해례본을 공개하고 전문가들에게 맡겨 후손들을 위해 잘 보존될 수 있도록 해달라." - 2013.01.18 <한겨레>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갑갑한 운명'

지난해 9월 7일 대구고법 형사1부(재판장 이진만)는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을 훔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배아무개(50)씨에게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하면서 한 말이다. 언론들은 상주본 가치를 1조 원라고 했다. 1조 원이라면 돈으로 매기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운 일'이라는 말이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가치는 1조 원

훈민정음 해례본은 한글 창제 원리를 풀이한 한문으로 된 해설서로 훈민정음 창제 3년 뒤인 1446년(세종 28년) 편찬됐다. 서울 간송미술관에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국보 70호)과 같은 판본이다. 학자들은 상주본이 간송본보다 보존 상태가 좋고 학자의 어문학적 견해가 많아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고 <한겨레>는 같은 기사에서 보도했다.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2011년 방영)에서 이도(세종대왕)는 광평대군을 잃어면서까지 해례인 소이를 지켜 한글을 반포한다. 광평만 아니라 집현전 학사들이 죽어갔다. 심지어 금기 중 금기였던 시신해부까지 했다. <뿌리깊은 나무>만 아니라 우리는 한글날만 되면 한글이 얼마나 위대한 글자인지 자랑한다. 방송들도 한글창제를 한 세종을 칭송하며 우리는 감격한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아오톡에서 줄임 글자가 등장하고, 한글 파괴 현장이 나타나자 지하에서 세종대왕이 운다는 말도 들린다.

상주본 가치가 1조 원, 뿌리깊은 나무에서 이도 모습, SNS시대의 한글 파괴현상에 대한 분노의 공통점은 한글은 위대하며, 이 위대한 글자를 만든 분은 세종대왕이라는 점이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에서 나라를 구하지 않고 원균이 구했다는 것만큼 불경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항상 불경에 도전하는 이는 있기 마련이다. 한글날 556돌인 지난해 10월, <박연과 훈민정음>(박희민 지음, 휴먼앤북스 펴냄)은 훈민정음 창제자가 세종이 아니라 난계 박연(1378~1458)이라고 주장했다.

훈민정음 창제자가 세종이 아닌 박연?

기사 관련 사진
 <박연과 훈민정음>
ⓒ 휴먼북스

 

"훈민정음은 박연이 만들어 세종 25년(1443)에 임금의 이름을 발표하였다.  지금은 비록 하늘이 허공에 맞서는 기분이지만 언제가는 반드시 '박연의 훈민정음 창제'는 정설이 될 것이다."(6쪽)

뭐 이런 '개풀 뜯어 먹는 소리'가 어디 있느냐고 분노하겠지만, 밀양박씨 난계파 후손인 박희민씨는 <난계유고>(蘭溪遺稿),<세종실록> 따위 기록을 통해 나름대로 훈민정음 박연 창제설을 주장한다.

<난계유고>는 박연 시문집으로 16세손인 경하(景夏)가 1822년(순조 22) 초간했다. 김조순(金祖淳)과 김노경(金魯敬)의 발문이 수록되어 있다. 중간본은 1903년에 박심학(朴心學)에 의해서 간행되었고, 시 9수, 소(疏) 39편, 조하의절(朝賀儀節)과 가훈십칠칙(家訓十七則) 등 잡저 2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은이가 박연 창제설을 주장하는 근거를 보자. <세종실록> 세종 25년(1443) 12월 30일 훈민정음 창제에 대해 이렇게 기록되었다.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만은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니,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세종실록>(세종 25년 12월 30일)

박연이 훈민정음 창제한 3가지 이유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는 50일 후인 세종 26년 2월 20일 "중국에라도 흘러들어가서 혹시라도 비난하여 말하는 자가 있사오면,어찌 대국을 섬기고 중화를 사모하는 데 부끄러움이 없사오리까"라는 논리를 들어 훈민정음 반대 상소문을 올린다. 그러자 세종은 다음과같이 반박한다.

"네가 운서(韻書)를 아느냐. 사성칠음(四聲七音)에 자모(字母)가 몇이나 있느냐. 만일 내가 그 운서를 바로잡지 아니하면 누가 이를 바로잡을 것이냐(중략) '삼강행실을 반포한 후에 충신·효자·열녀의 무리가 나옴을 볼 수 없는 것은, 사람이 행하고 하지 않는 것이 사람의 자질 여하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꼭 언문으로 번역한 후에야 사람이 모두 본받을 것입니까' 하였으니, 이따위 말이 어찌 선비의 이치를 아는 말이겠느냐.(중략), '내가 만일 언문으로 삼강행실을 번역하여 민간에 반포하면 어리석은 남녀가 모두 쉽게 깨달아서 충신·효자·열녀가 반드시 무리로 나올 것이다." - <세종실록> 26년 2월 20일 재인용 178쪽

즉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한 사람의 세 가지 요건으로 "'운서를 아는 사람', '사성칠음에 자모가 몇인지 아는 사람', '백성에게 훈민정음으로 된 삼강행실을 반포하자고 주장한 사람'"이라고 주장했고, 여기에 합당한 사람이 박연이라는 것이 지은이 논리다.

그럼 박연은 '운서를 아는 사람일까?' <세종실록>에서 '운서'는, 세종 20년(1438) 1월 예조와 관련한 것에서 시작해 세종 32년(1450) 윤1월까지 총 7번 나온다. 운서란 <홍무정운>(洪武正韻)을 말하는 것으로 1375년 명나라 태조때 악소봉 등이 칙명으로 편찬한 것으로 한시를 지을 때 필요한 최신 이론서였다.

한글창제에 반대했던 최만리는 말할 것도 없고, 집현전 학자들도 운서를 잘 몰랐기 때문에 "집현전의 그 누구도 세종 25년(1443) 12월 30일 훈민정음 창제 발표 이전에 <운서>를 몰랐다. 따라서 집현전 학자들은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이 없다"면서 운서를 잘 아는 이는 박연이므로 한글창제는 박연이라는 것이 그 첫 번째 근거라고 박희민은 주장한다.

'사성칠음에 자모가 몇인지 아는 사람'

다음으로 '사성칠음'이다. 사성은 중국어 한자음을 그 성조에 따라 평성(平聲), 상성(上聲), 거성(去聲), 입성(入聲)을 말한다.  박연은 세종 8년(1426) 4월 25일 "옛날에 사문(師門])이 거문고를 탈 적에, 봄을 당하여 상현을 타면, 서늘한 바람이 뒤따라 이르고, 여름을 당하여 우현을 타면 눈과 서리가 번갈아 내리고, 가을을 당하여 각현을 타면 따뜻한 바람이 천천히 돌고, 겨울을 당하여 치현을 타면 햇볕이 뜨거웠으며, 사성을 총합하면 상서로운 바람과 상서로운 구름이 잠시 동안 모였다 하였으나, 이것은 오성의 감소된 것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세종실록> 재인용)는 상소를 올렸다. 즉, 박연이 사성을 잘 알고 있다는 말이다.

칠음은 궁(宮), 상(商), 반상(半商), 각(角), 치(徵), 반치(半徵), 우(羽)다. 누가 뭐래도 박연이 가장 잘 아는 아악의 칠음계다. <운서>에서 칠음은 아음(牙音), 설음(舌音), 순음(脣音), 치음(齒音), 후음(喉音), 반설음(半舌音), 반치음(半齒音)이다. 아악별좌를 지낸 박연은 사성과 칠음 곧, 28자를 창제했다고 말한다.

'백성에게 훈민정음으로 된 삼강행실을 반포하자고 주장한 사람'

훈민정음 창제 세번 째 조건인 '백성에게 훈민정음으로 된 삼강행실을 반포하자고 주장한 사람'이다. <난계유고> 1번 소(疏) '널리 가례와 소학, 삼강행실을 가르치고, 오음정성으로 풍속을 바로잡자는 상소'에 있다.

"백성에게는 삼강행실을 가르쳐 미풍양속을 이루게 할 것이며, 그뿐만 아니라 오음의 바른 소리를 가르쳐 민풍을 바로잡도록 하시기 바랍니다."<난계유고> 재인용, 184쪽)

따라서 "이 세 가지 요건을 갖춘 박연이야말로 훈민정음의 진정한 창제자"라며 "15세기 조선 최고 학자였던 박연은 조선의 음악을 정립하였을 뿐만 아니라, 음악 서적에 전문적 지식으로 천, 지, 인의 바람소리·물소리·목소리를 아우르는 훈민정음을 탄생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럼 세종은 무엇을 했을까?

훈민정음의 정착을 위해서 임금이란 강력한 힘이 필요했기에 박연이 문자를 창제했지만 세종의 이름으로 반포했다는 것이다. 그럼 세종은 한글창제에 무슨 역할을 했을까? 신하의 업적을 가로챈 것있을까?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세종 25년(1443) 12월 30일,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발표는 세종의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세종은 중국과 외교문제 등 '훈민정음 창제'로 빚어질 수 있는 국내외 온갖 어려운 문제를 혼자서 감당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건강히 악화된 세종 25년의 연말을 훈민정음 창제 발표시기로 잡은 것이다. 훈민정음을 만들려는 박연을 격려하여 이 일을 이루게 하고, 훈민정음을 임금의 이름으로 발표하여 강력하게 추진한 것이 세종의 역할이었다."(187쪽)

세종은 든든한 후원자라는 말이다. 한글을 누가 창제했는지 다양한 주장이 있다. 박연 창제설도 이들 중 한 이론일 수 있다. 한글창제는 세종대왕 단독창제설, 후일 문종이 되는 세자와 수양대군 등 '왕좌주도설, 또 세종대왕과 문종도 아닌 성삼문을 비롯한 '집현전 학자설', 그리고 세종대왕 둘째 딸인 '정의공주 도움설' 등이 다양하게 제기되었다. 그 중 정의공주 도움설 근거가 되는 죽산안씨대동보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세종이 우리말이 문자로 (중국과) 상통하지 못하는 것을 걱정해 훈민정음을 제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발음을 바꾸어 토를 다는 것에 대해 아직 연구가 끝나지 못해 여러 대군(大君)을 시켜 (이 문제를) 풀게 했으나 모두 미치지 못하고 공주에게 내려 보냈다. 공주가 즉시 이를 해결해 바치니 세종이 크게 칭찬하고 특별히 노비 수백 명을 내려 주었다."(죽산 안씨 족보인 '죽산안씨대동보' 중)

어떤 사람들은 이들도 아니라 신미대사(세종~예종, 생몰년 모름)가 창제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누가 한글창제를 했는지 다양한 이론이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한글창제가 세종대왕 단독설, 문종을 비롯한 왕자 그리고 정의공주설, 집현전 학자설, 신미대사 그리고 <박연과 훈민정음>이 주장한 박연설 모두 세종대왕이 없었다면 한글창제는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세종대왕 없는 한글창제는 불가능

훈민정음 반포 후 최만리를 비롯한 조정대신은 거세게 저항했다. 설혹 박연이 창제해도, 세종이 없었다면 한글을 반포할 수 있었을까? 박연이 아무리 천재적인 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세종이 적극 지지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다. 반포와 배급도 마찬가지다. 주자소가 없었다면 한글을 제대로 배급할 수 있었을까? 주자소를 만들기 위해 세종이 힘을 보태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다. 집현전 학자도 마찬가지다. 세종은 집현전에 인재를 모았다. 서얼 출신이라도 능력이 있으면 썼다. 집현전 학문 중심은 세종이었다. 문종을 비롯한 대군들과 정의공주 그리고 신미대사도 마찬가지다.

한 마디로 세종대왕은 '문화혁명'을 일으킨 위대한 군주였다. 박연 창제설도 문종과 왕자들, 정의공주, 집현전 학자, 신미대사 창제설처럼 또 다른 주장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세종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한글이 아니라 다른 문자로 말하고, 읽고, 쓰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훈민정음 창제자는 세종대왕이라는 주장은 흔들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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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농업, 죽은 학교를 살린다 | 인문 2011-09-1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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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변방의 사색

이계삼 저
꾸리에북스 | 201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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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시작과 함께 대한민국을 휩쓴 '안철수 신드롬'에 나 역시 휩쓸려 들어갔다. 그런데 한 발짝 물러나 '내가 왜 서울시장 선거에 관심을 가지지'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서울시장은 경남 진주에 사는 나와는 별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오세훈식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경상남도에서 일어나 현재 상황에 이르렀다면 온 나라가 이렇게까지 안철수 광풍에 휩싸였을까? 논쟁과 논란은 있겠지만 지난 3년 반 동안 철옹성 같았던 '박근혜 대세론'이 위협받는 정도의 '광풍'은 없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지방자치가 시작된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서울 '중심' 사회임을 안철수 광풍은 증명했다. 이처럼 서울은 아직 견고한 '중앙'이자 '중심'이다. 사람들은 이 중심에서 벗어나면 뒤처지고, 무언가 잃을까봐 오늘도 놓지 않으려고 발부둥치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다. 

 

사람 냄새 나지 않는 그곳에서 아웅다웅하며 다투기보다는, 중앙이 생각할 수 없는 진실이 살아 숨쉬는 공간인 '지방'이자 '변방'(邊方 :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가장자리 지역)에서 더 깊은 생각과 사색을 통해 지금 이 시대를 바라보려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경남 밀양시에 있는 밀성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이계삼 선생이다. <한겨레>에서 글을 통해 몇 번 만난 적이 있지만 익숙한 이름은 아니었다. 부산 청소년들이 직접 만드는 인문교양잡지인 <인디고잉(INDIGO+ing)>, 종이신문 <한겨레>, 인터넷언론 <프레시안>, 교육 월간지 <우리교육> 따위에 투고했던 글을 묶은 책 <변방의 사색>을 통해 그를 깊이 만났다. 

 

'교육 불가능' 사회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확인했듯이 기득권층은 아이들 밥그릇에까지 자본의 논리를 들이댄다. 줄을 세워 내 아이에게 친구를 이기도록 강요한다. 거기에 살림누리는 없다. 온통 어떻게 이길 것인가만을 외친다. 이계삼은 "수시모집 원수를 접수하는 3학년 교무실은 도떼기 시장", "공장 같은 학교", "껍데기가 알맹이를 완벽하게 밀어내고, 껍데기인지 알맹인지 구별도 못하는 학교교육"의 모습을 낱낱이 보여주면서 '교육 불가능'이라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해마다 졸업식 날만 되면 아이들이 속옷 바람으로 날뛰는 모습에 언론은 한탄한다. 지난해부터는 졸업식장에 경찰을 배치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우리 어른들은 그들을 탓하기만 한다. 하지만 이계삼을 묻는다.

 

"졸업식 날, 팬티를 입고 거리를 질주하는 이 아이들은 지금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이 사회를 향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아이들은 지난 10년간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이 질문에 우리가 답할 때다."(42쪽)

 

과연 강용석 의원 제명안을 부결시킨 한나라당 의원들과 표결에 앞서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한 국회의장을 지낸 김형오 의원, 그리고 가스통 들고 '빨갱이' 잡아야 한다는 할배들, 특히 원수까지 사랑할 책무를 지닌 나 같은 목사들이 저주와 정죄를 쏟아내면서 팬티 입고 내달리는 그 아이들에 '답'을 줄 수 있을까. 자신있게 답할 사람이 별로 없을 듯하다.

 

'교육 불로초' 찾아나섰지만, 헛될 뿐

 

그 옛날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아나섰듯이 우리는 '교육 불로초'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찾아다닌다. 연봉 18억 원을 포기한 스타강사 이범, 메가스터디를 일군 '손사탐'으로 불리는 온라인 강사, 파리목숨 같은 우리나라 교육부 장관과는 달리 20년간 교육부 장관이 안 바뀐 핀란드의 예를 '교육 불로초'라고 하며 좇고 있다. 과연 이것이 교육 불로초일까.

 

하지만 이계삼은 이범 특강을 듣고 "'교육'이 아니라 자기 아이만 생각나더라"라는 한 학부모를 말을 인용해 이범에게 '혹세무민'이라고 일갈하고, '손사탐'에 대해서는 더 냉혹한 판결을 내린다.

 

"손사탐 특강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창녀보다 못한 삶'이라고 아이들에게 들이대는 이 어이없는 공포의 상징 기제를 넘어서는 '다른 삶'의 형상이 우리에게 있는가를 생각했다. 결국 문제는 '삶'이었고, 이 싸움은 가치 투쟁이다. 열일곱여덟 살 아이들에게 '개새끼', '창녀'라고 들이대도 고발당하기는커녕 열광적으로 복종하는 이 현실을 만든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99쪽)

 

그럼 왜 이런 교육 불가능 상태가 되었을까? 이계삼은 학교교육이 '희망을 배신'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국어 선생님답게 요즘 아이들은 글쓰기를 할 때 '잘 모르겠다', '그냥', '그런 것 같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라며, 우리 시대 아이들은 생각 없는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아이들 무기력 권태 뒤에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거대하고 복잡하고 짜증나는 세계가'가 있다"고 진단했다.  

 

우리 아이들이 이런 교육 불가능 상태에서 허우적거리며 세계와의 대면을 외면하고 있는데, 어른들이 내놓은 대책은 이들을 더 생각없는 아이로, 억압 속으로 이끌어간다. 통탄할 일이다.   

 

"오늘날 아이들의 이러한 일탈과 저항을 학교는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가. 익히 알다시피, 학교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그저 학칙 처벌 규정을 턱없이 강화하고, 자퇴나 전학을 권고하거나, 퇴학시키거나, 아니면 아이들을 학교 바깥 기관에 떠넘기는 것밖에는 하지 못하고 있다."(136쪽)

 

교육 불가능 상태의 해결 방안은 인문학과 농업

 

대책이 현실을 더 악화시키는 것을 내 아이들을 통해 보면서 이계삼 선생의 주장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 책임이 우리 어른들에게 있는데 아이들에게 채찍 들고, 징계하고, 줄 세운다. 그러니 교육 불가능일 수밖에. 그럼 대안은 무엇인가? 이계삼은 굉장히 생경한 대안을 제시한다.

 

"나는 12세기 가톨릭 세계의 갱신을 꿈꾸었던 베네딕트 성인의 모토였던 '기도'와 '노동'이라는 말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그것은 종교적 언술이지만, 이것을 오늘날의 교육적 맥락으로 번역하면 '인문학'과 '농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148쪽)

 

우리 시대 교육계가 진단하는 것과 너무 다르다. 고개를 갸우뚱할 이들이 만을 것이다. 현실을 모른다고. 하지만 우리 시대는 인문학을 잃어버렸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하는 이유도, '대학입시'를 위해서다. 거기에 무슨 생명이 있고,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겠는가.

 

인문학은 곧 생각하는 힘이다. 생각하는 힘은 주체적인 사람으로 키운다. 전제사회, 기득권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문학을 통해 생각하는 힘을 우리 아이들에게 길러줌으로써 교육 불가능 현상의 해소는 시작된다.

 

농업이 죽은 학교를 살린다? '농자지천하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거창한 옛말까지는 가지 않을지라도, FTA에서 확인했듯이 농업을 공산품을 위한 들러리쯤으로 여기지 않는가. 이계삼의 대안이 틀리지 않았음을 농사를 지어보면 안다. 농사를 처음 짓는 사람도 씨앗을 뿌리면 생명이 움트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흙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탁월한 농부라도 콘크리트에서는 생명을 싹 틔울 수 없다.

 

농업이 생명인데, 삽집을 살리기라는 최고지도자

 

그런데 이 나라 최고지도자는 '삽질' 곧 콘크리트를 통해 강을 살리겠다고 나섰다. 삽질 종착역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있는 지금, 죽어가는 강을 보면서도 '살리기'였다고 우기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이계삼은 30년 전 은어떼가 번쩍번쩍, 숭어떼가 첨벙첨벙, 어린 송사리는 꼬리를 쳤던 강 둔치에서 살았다.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은 무릎까지 차오는 맑은 물이 드넓은 모래벌이었고, 햇빛을 받아 달궈진 모래톱이 은빛 융단이었던 것을 기억하면서 일주일간의 낙동강을 여행한다.

 

하지만 그가 본 낙동강은 흙탕물을 뒤집어 쓴 물고기가 꼴깍꼴깍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고, 물풀 하나 없고 송사리, 소금쟁이, 벌레 한 마리 없는, 생명이 완벽히 사라진 곳임을 알고 탄식과 절규한다.

 

공허하다. 헛것을 보는 듯 허망하다. 이 헛것의 물길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자전거를 탈 것이다. 헛것의 물길 위로 요트가 지나다닐 것이고, 유람선이 다닐 것이고, 좀 이어 화물선도 다닐 것이다. 실버타운이 들어서서 죽음을 앞둔 노인들이 이 헛것의 일렁임을 바라보며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볼 것이다. 헛것이다. 헛것으로 구축된 헛것들의 파노라마이다. 오직 헛것의 풍경을 위해, 지금 온 지축을 울리며, 강바닥을 탕탕 때리며 뒤집어엎고 파헤치는 이 참혹한 파괴와 죽음의 드라마가 이어지고 있다."(225쪽)

 

교육 불가능만 아니라 온 나라를 불가능 속으로 이끌고 있다. 죽임 잔치가 난무하고 있다. 파괴와 죽음이라는 드라마가 이어지고 있다는 탄식. 이 절규를 보면서 이계삼은 참 비관주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비관주의자가 아니다.

 

영혼을 맑게 해주는 선생, 아이들에게 가장 귀한 선물

 

<하느님의 눈물>같은 글로 우리에세 생명누리, 살림누리를 글로 만나게 해줬던 권정생 선생의 오랜 벗인 민들레교회 최완택 목사가 이계삼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교육이란 영혼이 맑은 한 사람이 한 개인을 만나 그 개인의 영혼을 맑게 해주는 것이다. 우리 시대는 위대한 젊은 스승을 한분 얻었다."

 

"영혼이 맑은 사람"이 영혼을 맑게 해준다. 내 아이에게 대박과 스타강사 만나게 해주는 것이 부모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에게는 아주 낯설다. 하지만 이보다 더 사람냄새나는 것이 있나. 내 아이에게 영혼을 맑게 해주는 선생을 만나게 해주는 것이 부모로서 가장 가치있는 일임을 알자.

 

책을 덮는 순간 콘크리트보다 더 견고한 교육 불가능의 큰 틈이 조금씩 갈라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 모두가 한 마음으로 함께하면 견고한 방파제처럼 철옹성 같았던 교육 불가능이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현장을 우리 눈으로 직접 체험하게 될 것이다. <변방의 사색>은 내 자식만 잘되고, 사람 냄새 없는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발부둥치는 우리에게 선한 채찍이면서 '살림누리'로 들어가게 하는 생명물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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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교회 보내지 마라 | 인문 2011-08-02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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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우리 아이 절대 교회 보내지 마라

송상호 저
자리 | 201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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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을 볼 때마다 '벽창호'도 이런 벽창호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고집이 세고,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벽창호는 따로 있다. 목사들이다. 다른 사람 조언이나 충고, 생각을 거의 '절대'에 가까울 정도로 듣지 않는다. 아마 이 대통령의 벽창호 같은 모습도 장로 일 하면서 목사에게 알게 모르게 배운 것일 가능성이 높다. 바로 내가 그 벽창호인 목사를 직업으로 가지고 있다.

 

목사가 벽창호인 이유는 스스로를 하나님께 선택받은 특별한 자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즉, '나는 너희들과 다르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무오하듯이 나도 무오하다는 이런 생각을 하니 다른 사람을 말을 들을 리가 없다.

 

그런데 이를 단박에 깨트리는 책 하나가 나왔다. <우리 아이 절대 교회 보내지 마라>(송상호)이다. 제목만 보면 '안티 기독교' 책으로 생각하겠지만, 이 책은 쓴 사람은 목사다. 한국교회가 예수를 '상품'으로 팔아먹고, 인간의 본성인 '생각하는 힘'을 빼앗아버리고, 세상을 '선-악'으로만 가르치는 것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서이다.

 

집으로 책이 도착하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단박에 읽어나갔다. 찔림과 통회가 폐부를 갈랐다.

 

폐부를 가르는 공감과 반성

 

예수님께서 지금 한국교회에서 오시면 2천억 원짜리를 건물을 허물어버리실 것이라는 주장에는 백 배 동감한다. 입시철만 되면 내걸리는 '수능100일특별새벽기도회' 같은 펼침막도 찢어버릴 것이다. 대학은 기도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통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인, 법조인, 경제인들이 많이 다니는 교회, 특히 이명박 정권 들어 "이명박 대통령 다니는 교회"라 자랑하며 이런 교회 가면 복 받는다고 하는 기복주의에 대한 일갈에 천 배 동감한다.

 

교회를 거부한 사람은 사회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천국으로부터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극한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했다. 장담컨대 교회가 이런 두려움의 장막을 걷어버리고 좀 더 솔직하게 말해준다면 80% 이상이 교회 가기를 그만두지 않을까.(99쪽)

 

"교회 안 나오면 벌 받는다는 두려움과 공포감"을 심어준다는 비판에는 만 배 동감한다. 목사가 강단에서 교인들에게 "헌금하지 않으면, 주일을 지키지 않으면 벌 받는다"라고 하는 순간 그것은 성경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일이다.

 

나는 칼뱅신학을 공부했다. 지금도 이 신학을 신봉한다. 하지만 칼뱅이 저지른 잔혹한 살육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책에서 칼뱅을 '살인자'에 비유한 것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지만 심장을 찌르는 것으로 통회할 수밖에 없었다.

 

'의심하는 힘' 빼앗은 교회, 독재와 다름없어

 

교회에선 머리로 생각하는 사람은 어울리지 않는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으면 된다. 결국 하나님을 대리하는 교회와 목사 앞에 무릎을 꿇으라는 이야기를 고상하게 돌려서 하는 것이다. 이는 괜히 나대지 말고 자신이 바보라는 걸 인정하라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130쪽)

 

이 지적이 가장 내 마음을 찔렀다. 인간이란 생각하는 자다. 전체주의와 민주주의, 독재자와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지도자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인민에게 생각하는 자유를 주는가'가 판가름한다. 그런데 교회는 생각하는 것을 빼앗았다. 곧 독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믿음이란 "믿습니다"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신을 알아가는 과정이 없는 신앙은 독단이 되고, 배타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결국은 세상을 선(기독교)과 악(세상-타종교)으로만 본다. 선은 악을 죽여야 한다.

 

"아메리카 인디언을 몰아내고 살해한 것은 구약성서 출애굽, 모든 것이 하나님 나라 확장, 하나님이 직접 행하신 선교"라고 합리화시키는 기독교는 반드시 회개해야 한다. 이런 비극을 낳게 된 것도 모두, 교인들에게 "믿습니다"만 요구하고 의심하는 것과 생각하는 힘을 빼앗아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 하셨다. 즉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 나와 신앙이 다른 사람을 정죄 대상이 아니라 함께 하고 사랑할 대상이다. 이는 곧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

 

"남편이 반대하면 교회 나오지 마세요"

 

지은이는 교회가 일요일은 "쉬는 날"이라고 하면서, 일주일 내내 공부에 찌든 아이들을 일요일만이라도 쉬게 해주면 안 될까 묻는다. 하지만 일요일뿐만 아니라 일주일 내내 교회로 부르는 목사들이 있다. 선교와 봉사, 구제, 성경공부 따위다. 교회로 불러내기 위한 방법을 보면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남편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데 아내만 다니는 경우도 참 힘들다. 그럴 때 목사들은 "고난을 기뻐하라"며 교회에 반드시 나오라고 말한다. 지은이와 조금 생각이 다르지만 나는 "남편이 반대하면 교회 나오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이유는 가정이 교회 출석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은이의 생각을 공감하게 된 것은 나와 비슷한 사상적 회의를 거쳤다는 점 때문이다. 하늘의 음성을 듣고, 신학을 했다. 그리고 "예수님 십자가로 죄 사함을 받으라"고 외쳤다. 하지만 천국에 대한 의문과 예수 십자가만 유일한 구원일까라는 인간이라면 반드시 그쳐야 할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되었다.

 

<도덕경>에서 '물은 네모 통에 담으면 네모가 되고 세모 통에 담으면 세모가 된다. 하지만 물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주해를 통해 기독교 옷과 불교 옷을 입든 그것은 자유임을 깨닫는다.

 

나 역시 1991년 신학교 복학 후 기독교 진리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했다. 민중신학과 토착화 신학을 파고들었고, 나중에는 노장사상에 심취했다. 그러면서 부산에서 서울을 가는 이동수단이 고속버스, 열차, 자가용, 비행기 등이 있듯이 종교도 기독교만이 진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와 비슷한 사상적 회의, 그리고 가치 충돌

 

그런데 나는 지은이의 결론에는 이르지 못했다. 아니, 나의 사상적 회의 결과는 천지창조, <여호수아서>에 나오는 태양 멈춤 사건, 예수님의 물 위를 걷는 사건, 오병이어, 십자가와 부활, 성경무오성, 예수의 유일구원론에 대한 동의였다. 그러므로 이를 비판한 지은이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이런 논쟁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기독교 2천 년 역사 동안 끊임 없이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과 성도들에게 "믿습니다"를 외치게 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의심하라고 한다. 의심을 통해 나와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고, 지은이와 같은 생각에 이를 수 있다. 그리고 서로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해야 한다. 그게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고 사랑을 말한 예수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기존교단을 탈퇴하고 독립교단에 가입하려고 할 때, "그 단체 신앙고백문이 '우리는 삼위일체를 믿으며…'라는 신앙고백을 함께해야 협의회의 동지라는데 도저히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했다(77쪽). 아마 틀림없이 그 신앙고백문에는 십자가와 부활, 유일구원론, 성경무오성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책을 덮으면서, 생각하는 힘을 빼앗고, 살육을 자행하고, 2천억 원짜리 교회당을 짓고, 교회가면 복 받고 교회 안나오면 벌 받는 것을 강요하는 것에 대한 비판에는 동의하지만, 지은이의 생각과 다르지만 사상적 회의를 통해 얻는 내 결론을 지켜나가는 것이 내 양심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은이 송상호 목사의 생각을 존중함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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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위해 저항하라 | 인문 2009-07-12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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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잉게숄 저/이재경 역
시간과공간사 | 2004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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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5일 "내년에 날씨 좀 따뜻해지면 그때 다시 만나러 나오겠습니다" 라고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제 '역사'로 우리 마음속에 남았다.

 

대통령 노무현과 인간 노무현, 그 어떤 표현이든지 그는 해방 이후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기득권 세력에게 저항했다. 기득권은 모함과 조롱으로 그를 매도했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가 이제 몸으로 저항할 수 없지만 그가 남긴 정신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왜곡과 불의에 저항해야 한다.

 

사람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역사에서 적극적인 행동을 통하여 사회를 바꾸려는 사람을 기억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사회가 불의가 지배할 때 저항으로 이끌림을 당한 이들을 기억하여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억을 한다.

 

이 수동적인 저항은 자신만 희생당하는 것으로 끝날 수 있지만 사람은 역사 속에서 그들이 남긴 저항 정신을 마음에 새긴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이 가진 양심은 불의가 정의를 이기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바라는 마음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2차 대전 독일에서 뮌헨 대학을 중심으로 나치에 저항하다 처형당했던 '크리스토프 프롭스트와 한스 숄, 죠피 숄, 알렉산더 슈모렐, 크루프 후버의 실화를 바탕으로 잉게 숄이 지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은 수동적 저항이 몇 십 년 지난 오늘까지 우리에게 읽히는 이유가 그 예다.

 

나치에 대한 저항이라면 이들이 엄청난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은 그저 인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유와 정의, 삶을 위한 권리를 지키려고 했을 뿐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었다.

 

한스와 죠피는 "세상을 잊어버린 듯 바깥 세계와는 멀리 떨어진 작고 조용한 광산촌에서 보냈"고 한스는 "러시아와 노르웨이 민요"를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였다. 한스와 죠피, 알렉산더 슈모렐은  의대들 졸업해서 열심히 환자들을 돌보며,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가정을 꾸리는 시민으로 살았을 것이고, 후버 교수는 학생들에게 철학을 통하여 진리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 열정을 다하여 강의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치는 "사생활까지 간섭하는 훈련과 획일주의"와 "독일을 서서히 하나의 감옥으로 만들어 종국에는 아무도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는" 세상으로 만들었다. 독일을 집단 수용소로 만들어가는 것은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었다. 그들이 저항한 이유이다. 한스와 죠피가 나치를 향하여 저항에 나서자 아버지는 말한다.  

 

"우리가 정부에게 요구해야 할 무엇보다 중요한 사항은 바로 개개인의 자유로운 견해와 신념의 보장이란다. 내가 너희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비록 인생의 길이 험난하고 고달프다 할지라도, 너희들은 인생을 자유롭고 올바르게 살았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정부가 인민이 말하는 자유와 생각하는 자유를 빼앗을 때 저항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아버지 말에 울림이 있다. 말하고, 생각하는 자유를 되찾기 위한 저항이 험난하고 고달플지라도 가라고 말하는 아버지 마음은 어땠을까? 하지만 아버지는 가라고 했다.

 

말하고, 생각하는 자유가 70년이 지난 대한민국 이명박 정부도 말하는 자유와 생각하는 지유를 빼앗고 있다. 나치가 이들을 탄압하고, 결국은 한스와 죠피, 뮌헨 대학 학생들과 교수들을 탄압했듯이 이명박 정권도 자유를 달라는 시민들을 짓밟고 있다. 저항하는 이유가 자기들에게 있다는 비판까지도 못하게 한다.

 

인민이 말하는 자유와 생각하는 자유를 가지게 해달라고 저항할 때 나치는 대대적인 검거령이 내려져 일기장과 잡지, 노래를 모은 노트들을 압수하고 불태웠다. 그것을 본 한스는 "차라리 우리들의 몸에서 심장을 빼앗아 가라. 그러면 너희들도 아마 그것에 타 죽어버리라"고 했다.

 

시대가 평탄하면 제자들에게 정의와 양심을 위하여 살아라고 대다수 교수들은 말한다. 하지만 나치 같은 정권이 들어서면 정의와 양심은 독재자 앞에 팔아먹는다.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 정권 시절 양심을 팔아 부역한 교수들이 많았다. 하지만 어떤 교수들은 독재자 앞에 양심을 파는 부역을 거부하고 저항했다.

 

한스와 죠피, 알렉산더 슈모렐, 크리스토프 프롭스트가 나치에 저항할 때 뭔헨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강의했던 후버 교수는 "독일의 한 시민으로서, 독일 대학의 교수로서 그리고 한 정치적 인간으로서 독일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참여하고 그릇된 점을 공공연하게 폭로하면서, 그것에 맞서 싸우는 것인 권리일뿐더러 도덕적인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 역시 제자들과 함께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들은 모든 폭력에 대항하여 꿋꿋하게 살았고,  정의는 죽지 않는다는 말을 믿으며 살았다. 한 치의 타협도 없이 그들은 비굴하게 구원받으려 하지 않았다. 자유 만세를 외쳤다. 국가가 인민의 자유를 지배하려는 것에 저항했다.

 

국가의 통치작용이 드러나지 않을 때에만 국민은 행복한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통치작용이 뚜렷하게 부각 될 때에는 국민은 파멸의 길을 걷는다고 했다.

 

국가가 인민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을 존중해야 하며, 모든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나치는 아니었다. 당연히 저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강도는 다를 뿐 국가와 권력은 항상 인민의 자유를 자기들 통제 아래 두려고 한다. 그 때마다 인민은 저항했다. 저항하지 않으면 국가와 권력은 언제든지 인민에게 자유를 빼앗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은 저항했다. 이유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위해 그것이 그 때 그들에게는 당장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나치가 종말을 고하고 난 후 1947년 독일에서는 이 책을 학교 교재로 지정하여 13세부터 18세의 청소년들에게 의무적으로 읽도록 했다. 국가의 폭력과 인권 유린,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훼손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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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ㅇㅇㅇ씨입니까?" 물으면... | 인문 2009-07-0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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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저/이세욱 역
열린책들 | 2003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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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단어로 조금 나아졌지만, 솔직히 자신에게 이 단어를 적용하면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바보 노무현'이 자기 이익을 위한 삶보다는 다른 이 특히 서민과 약자를 위해 어려운 길을 택함으로 얻었다면 우리들이 쓰는 바보란 시대에 뒤떨어지고, 무능력하고, 생각도 없이 살아가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노무현을 상징하는 '바보'가 꼭 필요한 세상이지만 얼마 없는 것이 문제이고, 우리가 쓰는 바보는 필요가 없지만 의외로 많아 문제이다. 이 바보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 진을 치고 있으면서 별 하는 일 없이 나랏돈을 축내고, 무능력하면서 능력 있는 척하고, 진보와 발전을 가로 막는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가 바보임을 모르고 다른 이는 무시하는 어리석음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나랏돈을 축내고, 무능력과 어리석음까지 겸비한 이들에게 기호학자이자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따위를 쓴 움베르트 에코가 지은 칼럼집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은 허를 찌를 듯한 웃음과 해학, 유머로 읽는 이들을 즐거움으로 이끈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은 에코가 기호학자에서 유머 작가로 변신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놀라운 분석력을 통하여 상대방의 얼을 빼놓는가 하면 장난기 어린 익살꾼이 되어 썰렁한 웃음도 마다하지 않는다.

 

제1부 실용 처세법에는 '기내식을 먹는 방법',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 '택시 운전사를 이용하는 방법' '세관을 통과하는 방법' '미국 기차로 여행하는 방법' 따위를 싣고 있다. 그 중 '미국 기차로 여행하는 방법'에서 에코는 "미국의 철도 교통을 생각하면 핵전쟁 이후에 달라질 세상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말한다.

 

이유는 "고장이 난 것도 아닌데 예닐곱 시간은" 늦고, "기차역은 썰렁하고 휑뎅그렁하기"하고, "차량은 불결하고 모조 가죽 좌석에는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을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미국 기차, 아니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에코의 일갈로 손색이 없다.

 

"미국에서 기차는 탈 수도 있고 안 탈 수도 있는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기차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관한 막스 베버 가르침을 무시하고 가난한 사람으로 남는 실수를 범한 죄에 대한 벌이다."(48쪽)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이다. 기차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는 나라가 경제대국이니, 경찰국가이니 하면서 지구 골목대장 노릇을 하려고 오늘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지구상에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읽는 이들은 '미국 기차로 여행하는 방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에는 '도둑맞은 운전 면허증을 재발급받는 방법', '반박을 반박하는 방법' '<맞습니다>라는 말로 대답하지 않는 방법'은 에코의 상상력이 얼마나 풍성한지 알 수 있다.

 

세상과 권력은 자기들이 던진 질문에 항상 사람들과 국민들에게 '맞습니다'라는 답만을 요구한다. 하지만 에코 생각은 다르다. 에코는 '맞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어느 세제회사 경품으로 받은 것임을 누구나 빤히 아는 백과 사전을 가지 집 거실에 버젓이 진열해 놓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 '맞습니다'라는 대답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질문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나폴레옹은 1821년 5월 5일에 죽었습니다"라는 질문에 당신은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백과 사전을 찾아 맞으면 "맞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인가? 하지만 에코는 이렇게 말한 답은 "훌륭하십니다"이다. 나폴레옹이 1821년 5월 5일에 죽었던 안 죽었던 상관이 없다. 아니 에코는 "훌륭하십니다"라고 했지만 나는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라고 답할 수 있다.

 

2009년 대한민국은 정부를 비판하는 집회면 잡아가는 세상이다. 집회에 나갔다가 경찰의 채증에 걸려 경찰이 당신에게 연락하여 "경찰입니다. ooo씨입니까?" 묻는다면 당신은 "맞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인가? 하지만 에코는 "ooo 짐 꾸려!"라고 답한다. 아니다, "야구 보러 갈까요" "제일 좋아하는 과일은 포도입니다"라고 대답해도 상관없다. 오직 "맞습니다"라는 말만 하지 않으면 된다. 우리는 에코처럼 할 수 있을까? 경찰이 "ㅇㅇㅇ씨 입니까" 물을 때에 "맞습니다"가 아니라 "포도 좋아하는데요"라고 멎지게 한 방을 먹이는 세상이 빨리 오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 어리석음은 우리를 화나게 한다. 그러나 그 어리석음에 대해 어리석게 반응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그 씨실과 날실의 미묘한 짜임새를 음미하면서 그것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에코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패러디는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진짜로 쓸 것을 미리 쓰는 것이다. 패러디의 사명은 그런 것이다. 패러디는 과장하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제대로된 패러디는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웃거나 낯을 붉히지 않고 태연하고 단호하고 진지하게 행할 것을 미리 보여줄 뿐이다(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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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9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