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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베트남 신화를 읽으면 베트남 문화가 보인다 | 문학 2009-08-09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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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베트남의 신화와 전설 - 영남척괴열전

무경 편/박희병 역
돌베개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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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신화'하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단군신화와 그리스·로마 신화 정도다. 특히 그리스·로마 신화는 어떤 신화보다 우리 의식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신화까지 서양문명에 물들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편향된 신화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는 책이 있다. <베트남의 신화와 전설>이다. 베트남은 요즘 우리나라 농촌총각들과 결혼을 하는 베트남 여성 때문에 조금씩 그 나라 문화를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물론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는 총부리를 겨누고 전쟁까지 치런 아픈 경험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베트남 역사와 민화, 문화, 정치, 경제 모든 면의 책을 접하기은 매우 어렵다. 그런 와중에 <베트남의 신화와 전설>은 베트남 신화를 통하여 베트남 인민들의 의식 속에 자리잡은 그들만의 문화와 정체성을 조금이라도 더 알아가는데 작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은 14세기 후반경에 성립된 베트남의 신화전설집 '영남척괴열전(嶺南摭怪列傳)을 번역한 것이다.

 

<베트남의 신화와 전설>은 1·2부에 베트남 신화 스물두 편의 이야기를 묶었다. 신화 이야기들은 대부분 베트남 인민들이 조상들이 살아왔고,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자연·세계·역사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견지하고, 가치관을 가졌는지를 알게 한다.

 

우리에게 '단군신화'라는 건국 신화가 존재하듯이 베트남 민족의 기원과 국가 형성에 관한 신화를 수록한 최초의 문헌이기에 베트남 인민들에게 매우 소중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1부에 실린 '태곳적'은 베트남에 처음 나라가 세워진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 우리나라 <삼국유사>에 비견할 수 있다. 태곳적을 통하여 베트남은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아나려고 한다. 건국신화가 중요한 것은 타민족과 다른 나라의 지배를 벗어나려는 강한 의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태곳적은 베트남인 단순히 중국 변방에 자리한 제후국이 아니라 당당한 국가로서 존재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염제 신농씨를 베트남과 결부시키고 황제 헌원씨를 중국과 결부시키는 쪽으로 변용함으로써 베트남과 중국의 대립을 상정해 놓고 있다. 그리하여 신농씨와 치우가 헌원씨에게 패함으로써 마침내 광활한 중국 대륙은 한족이 지배하게 되고, 이후 신농씨의 후손은 중국의 남방에 있는 베트남을 대대로 다스리게 된 것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202쪽)

 

'물고기 정령'에는 용신 사상이 스며있는데 이는 중국에 대한 대항 의식을 담고 있는 신화다.  동해(베트남동해)에 물고기 정령이 있는데, 길이가 50장(丈)이 넘고 발이 여러 개로 지네와 같이 생겼다. 움직이면 바람을 일으키고, 비를 오게 하여 사람을 잡아먹는 정령이었다. 이 물고기 정령을 용군(베트남 건국시조 웅왕의 아버지)이 시뻘겋게 달군 쇠뭉치를 입 속에 쳐넣고 죽이고 백성을 어려움에서 구한다. 용군은 베트남 수호신 역할을 하는 것으로 중국 침략을 물리는 것을 용신사상을 통하여 중국에 대항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하룻밤에 새 생긴 못'·'동천왕'은 은나라를 침략을 물리친 일, '산원산 신령' 등은 중국에 대한 대항의식을 보게 된는데 우리와 마찬가지로 중국 침력하에 있었던 베트남 역사와 그 역사 속에 살았던 베트남 인민들의 저항 의식을 읽을 수 있는 신화들이다.

 

<베트남의 신화와 전설>에는 정령신앙뿐만 아니라  흉노를 물리친 '이웅중'과 앞에서도 언급했던 은나라를 물리친 '동천왕'을 통하여 베트남 인민들에게 자리잡은 민족 영웅을담았다.

 

불교와 관계된 신화도 있다. 하층여성의 독실한 불법 신앙을 통한 기적을 이야기한 '만랑', 도교와 불교의 각축에서 불교가 승리했음을 보여주는 '도행 선사', 천자의 병을 고치, 천자를 꾸짖는 '명공 선사', 하늘을 날고, 물 위를 걷고, 호랑이나 용까지도 선사 앞에 무릎꿇는 '공로 선사', "각해의 마음은 바다와 같고 통현의 도 역시 현묘하구나. 신통력이 조화를 부리니 하나는 부처요 하나는 신선일세"라는 말을 들은 '각해 선사' 이야기 우리를 상상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너무 상상력이 풍부하고, 허구에 물들었다고 책을 덮기 보다는 베트남 민중들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신화를 통하여 베트남의 문화, 역사, 생활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신화가 허구일지라도 모든 나라와 민족에게 신화는 존재하며, 신화를 통하여 그 나라와 민족을 정체성과 독특성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서양신화에만 관심을 가졌던 우리에게 같은 아시아에서 공동체로 살아가고 있는 베트남 문화를 아는 작은 길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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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에나 등을 탄 산토끼 | 문학 2009-06-12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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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세계 민담 전집 4

장용규 편
황금가지 | 2003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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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 '미개' '기아' '분쟁' '식민지'로 표현되는 대륙은? 잘 모르겠다면 '검은 대륙'이라 하면 알겠는가? 아프리카이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프리카는 이렇게 부정적이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문명과 문화를 이루었고, 가진 세계이다.

 

아프리카 지도를 펴놓고 남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을 찾아보라 그곳에는 아직도 수렵과 채집으로 생활 흔적이 있으며, 동아프리카 마사이족은 유목이 주된 경제이다. 아파르트헤이트와 만델라 대통령으로 잘 알려진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아프리카의 유럽'으로 불리울 정도로 극명한 차이가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분쟁이 끊이지 않지만 아직도 수많은 아프리카 인민들은 자기 선조들이 믿었던 민간 신앙에 더 익숙하다. 그들 신앙은 수천년, 아니 수만년을 이어온 신앙이기에 기독교와 이슬람교보다 그들 정신 세계를 더 지배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문명과 문화가 공존하는 아프리카를 우리는 서구제국주의의 침략과 식민지배 남긴 분쟁, 미개한 세상을 인식하게 했다. 하지만 우리는 아프리카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진짜 아프리카를 볼 수 있어야 한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스와힐리어과를 졸업하고, 남아공 더반에 있는 나탈 대학교에서 줄루 사회의 이상고마를 주제로 한 논문 '점술 사업: 크와줄루-나탈 변방의 다문화 사회에서 일하는 치유 전문가에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장용규 교수가 엮은 <세계민담전집 04 - 남아프리카>는 아프리카의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는 작은 발걸음이다.

 

아프리카는 지구에서 가장 큰 사막인 '사하라'를 경계로 남북이 확연히 갈린다. 그리고 남쪽은 인종과 문화에 따라 서부의 니그로와 중동부․남부의 반투 문화권이다. 오늘날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문화가 니그로와 반투 문화이다.

 

<세계민담전집 04-남아프리카 편>은 이 둘 중 반투 문화의 중심을 이루는 줄루족의 민담 스물아홉 가지와 코사 민담 일곱 가지, 마티벨레 민담 아홉 가지를 실었다.  줄루는 남아프리카 응구니 문화의 최대 종족으로 코사, 마티벨레도 이 문화에 포함됨으로써 결국 이 세 민담은 하나의 민담으로 볼 수 있다.

 

응구니를 대표하는 줄루 민담은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 성격과 장소에 따라 내용이 바뀔 정도로 즉흥성과 유연성을 지니고 있으며, 아이들이 청중일 때는 반드시 교육적인 효과를 염두에 둔다고 한다.

 

또 줄루 민담에는 산토끼, 카멜리온, 자칼, 하이에나, 캐코원숭이, 사자가 많이 등장하면서 사람과 말을 한다. 이는  자연에 대한 줄루 사회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줄루 민담에 자주 등장하는 산토끼는 교활한 존재로 어떤 때는 사자와 하이에나를 농락하여 누가 초식동물이고, 육식 동물인지 구분이 모호하다.

 

산토끼는 고기를 굽는 데 정신이 팔린 하이에나 꼬리를 밧줄로 오두막의 기둥에 꽁꽁 묶었다. 그것도 모른 채 하이에나는 고기를 굽는 데만 열중했다. 고기를 다 구운 하이에나가 막 고기를 먹으려는 순간 산토끼가 고기를 낚아챘다. 하이에나가 산토끼를 잡으려고 했지만 기둥에 꼬리가 묶여 꼼짝할 수가 없었다. 산토끼는 하이에나의 고기를 빼앗아 배를 채웠다.(<교활한 산토끼>-27쪽)

 

산토끼는 하이에나를 타고 다니기까지 하며. 사자는 겉만 호사스러운 천덕꾸리기 일뿐이다. 이솝 우화와 줄루 민담 중 어느 것이 빠른지 몰라도 줄루 민담에도 산토끼와 거북이가 경주를 하는데 거북이가 이겼다. 산토끼에게 만날 당한 사자와 하이에나는 산토끼가 조금만 잘나 척 하면 산토끼가 거북에게 진 재미있는 이야기를 자주하여 당한 것을 앙갚음 해주는 이야기는 남아프리카 민담이 우리와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아님을 알게 한다.

 

하지만 줄루 민담에서 가장 큰 특징은 '카니발리즘'이다. 줄루 사회는 엄격한 가부장 사회로 남성 가장 지위는 절대적이다. 카니발리즘이 웃음과 패리디로 지배 계층의 권위와 전통에 도전하는 민중의 저항을 담고 있듯이 민담에 나오는 영웅들이 어린아이와 여성인 것은 엄격한 남성 중심 위계 질서에 대한 저항이다.

 

표범을 이긴 전사 템바 이야기, 고아인 쌍둥이 데마네와 데마자나가 식인종을 벌을 이용하여 물리친 이야기, 한 평생 소 등에서 살면서 도둑들을 물리친 소년 이야기, 추장 아내가 되어 금의환양 이야기는 현실 세계에서는 존재하기 힘든 강약관계가 역전된 사실을 보여준다.

 

<세계민담전집 04-남아프리카 편>에 묶은 민담 마흔네 편은 너무 빈약하고 그릇된 아프리카 문명과 문화에 대한 지식을 조금이나마  채워주고, 바로잡아 준다.

 

 

YES24 책읽는 주말 - 7월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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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거짓말쟁이 셍게 | 문학 2009-05-11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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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세계 민담 전집 3

유원수 편
황금가지 | 2003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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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800여년 전 칭키스 한 후예들이 고려를 침략하여 엄청난 피해를 입혔지만 싫지 않다. 20세기 한반도를 침략과 수탈로 식민지배를 한 일본제국주의와는 아직도 응어리가 풀리지 않는 것과는 비교된다. 물론 몽골은 800여년이고, 일제는 100년도 안 되었다고 비판할 수 있다.  

 

싫지않은 몽골이지만 아직 우리는 칭키스 한과 13섹초 유럽까지 정복한 대제국을 건설했고,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있는 나라 정도로만 알 뿐 자세한 것은 잘 모른다. 이럴 때 정치와 군사, 경제보다는 몽골 인민들 입속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민담'은 단순히 싫지 않은 몽골이 아니라 정감과 친숙함으로 더 깊어지는 나라가 될 것이다.

 

도서출판 황금가지 <세계민담 전집3- 몽골편>은 문화, 언어, 풍속, 사람들 생김새까지 우리 닮은 몽골 인민들의 의식주 및 몇백 년 간 그들 사상을 지배해 온 겔룩바 불교에 관련된 내용 따위 흥미로운 풍속을 맛진 입담에 실어 펼친 77편의 이야기들을 담았다.

 

우리 민족 그랬던 것처럼 몽골 인민들도 노래와 이야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몽골은 조상들이 불렀던 노래와 들려주었던 이야기들을 아직까지 잘 지켜오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잘하지 못한 일이다. <세계민담 전집 3-몽골편>에서는 중간중간 가락에 실어 부르는 운문 구절을 지니 몽골 식 이야기의 본래 형태를 충분히 맛볼 수 있다. 

 

몽골 민담에서 대표하는 두 주인공은 '척척 셍게'와 '바다이 탁발자'가 있다. 척척 셍게는 '엄청난 거짓말쟁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얼마나 셍게가 거짓말을 잘하는지 나중에는 가짜 거짓말쟁이 셍게까지 나타난다.

 

"엄청난 거짓말쟁이의 아들 당당한 거짓말쟁이

당당한 거짓말쟁이의 아들 척척 거짓말쟁이

척척 거짓말쟁의 아들 뛰어난 거짓말쟁이

뛰어난 거짓말쟁이의 아들 척척 셍게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가짜 생게의 엄청난 거짓말쟁이 타령'(265쪽)


별명처럼 그는 여름날 우리 집 근처에서 뻐꾸기가 우는데 언 가축 똥을 집어 던졌더니 맞아서 죽었다는 누가 들어도 뻔한 거짓말을 한다. 여름에 언 똥으로 뻐꾸기를 맞혀 죽였다는 뻔한 거짓말을 쉽게 하는 셍게다.

 

'올리야스태 총독' 이야기에는 셍게는 자기 아버지가 태어나기 전에, 할아버지 낙타를 돌봤다고 했다. 자기 아버지가 태어나기 전에 할아버지 낙타를 돌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올리야스태 총독이 화를 내자 셍게는 말한다.

 

"제 나라가 아직 생기기도 전에

보잘 것없는 몽골이

할아버지인 만주의 임금님께 부역하는 것은

제 아버지가 태어나기도 전에

할아버지의 낙타를 돌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우리 몽골 사람들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총독 각하!"-'올리야스태 총독'(157쪽)

 

이쯤 되면 뻔한 거짓말쟁이 셍게가 아니다. 나라를 빼앗긴 몽골 인민의 저항다. 용감한 군인들보다 더 강력한 입담을 청나라 총독에게 저항하고 있다. 착취자들을 향한 저항이다. 몽골 인민들이 셍게를 나쁜 거짓말쟁이로 비난하지 않는 이유이다.

 

뻔한 거짓말쟁이 셍게만 있나, 가난한 서민들 주인공 '바다이'도 있다. 바다이는 '탁발자'이다. 탁발자는 옛날 몽골 사회에서 한 끼 음식, 하룻밤 잠자리를 제공받는 대가로 설교와 염불을 해주거나 이곳 저곳 다니면서 들었던 사소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최하급 승려들이다. 바다이는 영악하지만 조금 덜 영악하다. 악랄한 면도 있지만 한 순간 착해진다. 지혜롭다가도  멍청해 보이는 사람이다. 바다이는 영주, 중국 상회 주인, 잘난 체하는 고위 라마들을 골탕 먹인다.

 

"영주님의 이름을 염불하듯이 외우면서

개 대가리가 솜털이 되도록 작대기질을 하면서

자갈길이 흙먼지를 일으키도록 속력을 내면서

가죽 털이 천 쪼가리가 되도록 돌아다니겠습니다"-'호쇼의 영주를 속이다'(308쪽)

 

민중들 피를 빨아 먹는 영주를 향한 바다이의 말은 민중들 마음을 속 시원하게 해준다. 셍게와 바다이는 이처럼 민중들이 원하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팍팍한 민중들 벗으로 살았던 것이다.

 

2009년 대한민국 서민들 삶도 팍팍하다. 팍팍한 서민들에게 셍게처럼 뻔한 거짓말이지만 웃으면서 들을 수 있고, 바다이처럼 권력자들을 골탕 먹이는 멋진 입담을 가진 이들이 많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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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저잣거리를 표현한 이옥 | 문학 2009-04-27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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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물을 찢어버린 어부

이옥 저/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편역
휴머니스트 | 2009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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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소품 문학을 풍부하게 일군 문인 이옥은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하층 여성, 천한 노비, 도적, 저잣거리의 다양한 인물군상들로 생생한 저잣거리 이야기를 글로 담았다.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가 펴낸 <이옥 전집 02- 그물을 찢어버린 어부>에는 가마 탄 도둑, 집단을 이루어 엽전을 주조하는 도적, 한 자리에 아홉 지아비의 무덤을 쓴 과부 이야기 따위는 조선시대 성리학 사유로 글을 썼던 선비들과 다른 문학 세계를 펼쳤음을 알 수 있다.  

 

이옥이 경남 합천 봉성(현 삼가면) 유배 때 보고 들은 이야기를 기록한 <봉성문여>에는 재미있고 살아있는 글들 25편이 실려있다. 눈길을 끈 글은 하얀색 저고리와 치마를 입은 영남 사람들을 모습을 생소하다는 글이다. 우리는 배우기를 우리 민족을 '백의민족'이라 불렀는데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우리나라는 푸른색을 숭상하여 백성들이 대부분 푸른 옷을 입는다. 남자는 겹옷과 장삼이 아니면 일찍이 이유 없이 흰옷을 입지 않았고, 여자는 치마를 소중히 여기는데, 더욱 흰색을 꺼려 붉은색과 남색 이외에 모두 푸른 치마를 들렀으며, 상의는 한 가지 색깔이 아니지만 삼년복을 입지 않으면 또한 일찍이 이유 없이 흰옷을 입지 않았다."(51쪽)

 

그런데 유독 영남만 남녀가 모든 흰옷을 입은 모습을 보았으며 특히 젊은 아낙들이 하얀색 옷을 입은 모습을 보고 청상과부로 의심했다고 했다. 더 이상한 것은 기녀와 무녀(巫女)만이 푸른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있었다는 글을 우리가 배웠던 것과 달라 그 시대를 이해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또 여자 이름은 '심(心)'자로 짓는데, 이를 매우 희한하게 여겼다고 말한다. 이유는 당시 우리나라 여자들 이름을 금매(琴梅), 단월(丹月)의 유(類) 자로 많이 지었기 때문이다. 99쪽에는 경상도 방언들을 많이 기록했는데 요즘에는 많이 쓰지 않는 말이라 경상도 사람이 읽기도에 생소했다.

 

아버지를 '아배씨' 어머니를 '어매씨', 할머니를 '할매씨'로 불렀는데, 요즘은 '아부지' '어머이' '할매'로 부른다. 벼를 '나락'으로 부르는 정도가 지금도 쓰는 사투리였다. 사투리도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는 모양이다.

 

'심생의 사랑 이야기,' '정운창과 성 진사,' '소송을 좋아하는 풍속,' '류광억의 이야기,' '저자의 도둑 이야기'를 읽다보면 인물 하나하나의 이미지가 생생하게 그려질 뿐 아니라 조선 후기 향촌 사회를 지금 눈 앞에서 보는듯 하다. 소송을 좋아하는 풍속 이야기를 보자.

 

삼백전 짜리 송아지를 두고 세 사람이 동헌에 소송을 했다. 원님이 "그대들은 이 고을 양반이 아닌가? 또한 노인인데, 송아지 한 마리가 무슨 대단한 것이라고 세 사람씩이나 와서 이렇게 하는가 묻자 그들이 말하기를 "부끄럽습니다. 그렇지만 소송할 일은 반드시 해야지요"라고 했다.

 

또 돈 열두 푼 때문에 동원에서 육십리나 떨어진 마을에서 소송을 걸었다. 원님이 소송 경비가 열두 푼이 더 들 것인데 왜 소송을 했는지 묻자. 그가 말하기를 "비록 열두 꿰미를 쓸지라도 어찌 소송을 안 할 수 있겠습니까" 했다. 소송을 좋아하는 풍속에 대한 이옥의 생각은?

 

"그들의 풍속이 매우 억세고 융통성이 없어, 무슨 다툴 일이 있기만 하면 꼭 소송을 하는 것이다."(155쪽)

 

요즘도 고소 고발이 많은데 소송하는 일도 민족성인지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그의 글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시대를 평하거나 사회의식을 드러낸 글이 드물지만 있는 그대로, 세밀하게 표현함으로써 읽는 이들이 판단하도록 한다.

 

이옥 글을 읽을 때 눈에 띄는 점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사투리를 그대로 쓴 것처럼 도둑들의 은어, 시정의 음담패설, 욕설 따위 모든 민중이 말과 글을 썼고, 사투리와 여성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이언(俚諺)>에서 읽을 수 있다. '이언'은 우리나라 민간에서 쓰는 속된 말 내지 속담을 일컫는다. 그는 조선 땅에 살면서 '조선의 이언'을 노래했던 것이다.

 

차라리 가난한 집 여종이 될지언정/ 이서(吏胥) 아내는 되지 마소.

순라 시작할 무렵 겨우 돌아왔다가 / 파루 치자 되돌아 나간다네.

 

차라리 이서의 아내 될지언정 / 군인 아내는 되지 마소.

일 년 삼 백 육십 일에 / 백 일은 빈 방으로 지샌다네.

 

차라리 군인의 아내 될지언정 / 역관 아내는 되지 마소.

상자 속 능라(綾羅) 옷 있다 해도 / 어찌 오랜 이별에 값하리오.

 

차라리 역관의 아내 될지언정 / 장사꾼 아내는 되지 마소.

반 년 만에 호남에서 돌아오더니 / 오늘 아침 또 관서로 떠난다네.

 

차라리 장사꾼의 아내 될지언정 / 난봉꾼 아내는 되지 마소.

밤마다 어딜 가는지 / 아침에 돌아와 또 술타령. ('비조' 440~441쪽)

 

그리고 마지막 엮은 <동상기>는 희곡으로 1791년(정조 15년) 왕명에 의하여 노총각 김희집과 노처녀 신씨의 혼인이 성사된 일을 듣고 사흘 만에 완성한 것으로 총 4절로 구성되었고 우리 문학사에 그 유례가 없는 작품이라 평가받고 있다. 육담과 음담패설이 혼재된 구어체 문장, 혼례품과 혼례절차, 신랑 다루기 따위를 기록하고 있어 전통 혼례 풍속을 알 수 있다는 높이 평가할 수 있다. 

 

YES24 책읽는 주말 - 5월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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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가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 | 문학 2009-04-15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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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선비가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

이옥 저/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편역
휴머니스트 | 2009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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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이란 만 가지 물건이니 진실로 하나로 할 수 없거니와, 하나의 하늘이라 해도 하루도 서로 같은 하늘이 없고, 하나의 땅이라 해도 하루도 서로 같은 하늘이 없고, 하나의 땅이라 해도 한 곳도 서로 같은 땅이 없다"고 했다.

 

이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하나의 이(理)로 수렴되고, 그 이는 모든 사물에 내재한다는 성리학의 일리적 세계관을 해체하는 것이었다.

 

성리학의 일리적 세계관을 해체한 이는 누구일까? 1792년 정조가 출제한 문장시험에 소품체(小品體)를 구사하여 정조로부터 불경스럽고 괴이한 문체를 고치라는 하명을 받기도 했지만 그의 뜻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이옥(李鈺, 1760~1815)이다. 이옥이 남긴 작품 전집(총5권))이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를 통하여 나왔다.

 

이옥은 한평생 소품문 창작에 삶을 바쳤다. 소품문이란 천편일률적인 상투적 글쓰기에서 벗어나 이제껏 다뤄지지 않은 존재들, 즉 여성과 중인, 평민뿐만 아니라 풀과 물고기, 새, 그리고 담배 같은 기호품들을 주제로 삼았다.

 

제01권<선비가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는 김려가 남긴 이옥의 글을 부(賦)ㆍ발(跋)ㆍ기(記)ㆍ논(論)ㆍ설(設)ㆍ해(解)ㆍ변(辨)ㆍ책(策) 따위 장르를 실었는데 백성, 거미와 벼룩, 하얀 봉선화를 다루고, 주자와 노자 책을 읽고 쓴 독후감을 볼 수 있다.

 

백성을 생각했던 그가 남긴 글 중 '다섯 아들을 낳은 한 어미에 대한 부'에서 당시 백성들이 얼마나 고통과 아픔 속에서 살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백성은 오늘 서민으로 동일하게 살아가고 있다.

 

조선시대 아들을 다섯이나 낳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하지만 어미는 말한다.

 

"고을에 군정이 하나 더 보탰으니

관아의 관리들이야 기쁘겠지만

가난한 집에는 돈이 없는데

아들 보았다고 어찌 좋아하겠어요?

하늘은 이미 나의 원수이고

귀신조차 도와주지 않는군요.

보리밥만 한 그릇 축낼 뿐이라오.

아, 백성에게는 부역이 있고

부역에는 각각 징수가 있으니

군포를 마련하지만

오히려 기일이 대지 못한다오.

이로써 생각하면

어찌 어린애가 귀하겠어요?

어린애는 실로 귀할 게 없으니

그것이 적이 슬퍼하는 까닭이라오" (<이옥전집 1권>-'다섯 아들을 낳은 한 어미에 대한 부' 117-120쪽) 

 

태어난 생명을 기뻐하기보다는 부담스러워할 정도 백성은 피폐했다. 백성의 고통을 이토록 애절하게 쓴 그가 <노자>를 읽고 쓴 독후기는 성리학에 지배하던 조선 학문과는 다른 사유를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노자의 세계를 우리 삶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자 자유자제로 그 모습을 바꾸는 물이라며 예찬했다.

 

"물이여! 물은 막힘이 없고, 주가 됨이 없고, 부러워함이 없고, 업신여김이 없지만. 천지의 장부요, 만물의 젖이다. 물은 천하의 더러운 것을 받아들이지만 스스로 더럽지 않고, 천하의 갈림길을 가지만 스스로 불만스럽게 여기지 않는다. 위대하도다 물이여! 꿈틀거리기도 하고, 망망하기도 하여 내가 형용할 수 없구나. 아 내가 <도덕경>을 살펴봄에 그것이 물이었도다!"(<이옥 전집 1권-<노자를 읽고> 285쪽)

 

1집 제목인 '선비가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에서는 "가을은 음의 기운이 성하고 양의 기운이 없는 때"로 양의 기운을 타고 태어난 선비가 어찌 슬퍼하지 않으리요"한다. 그리고 이 슬픔에는 기운을 다해 스러져가는 나라 조선을 예감하고 있는 듯하다.

 

"아 천지는 사람과 한 몸이요, 십이회는 일 년이다. 내가 천지의 회를 알지 못하니, 이미 가을인가. 아닌가? 어쩌면 지나 버렸는가? 내가 가만히 그것을 슬퍼하노라."(<이옥전집 1권>-'선비가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 445쪽))

 

YES24 책읽는 주말 - 5월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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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보다 더 실감나는 민중 이야기 '민담' | 문학 2008-07-10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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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세계 민담 전집 1

신동흔 편
황금가지 | 2003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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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담'은 한 민족이 수천 년 삶을 살아오면서 체득한 지혜를 담은 이야기다. 민담을 접하면서 이름 없이 태어났다 이름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민중들이 자신들 삶 속에서 자연관, 인생관, 우주관, 사회의식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다.

 

손자·손녀가 할머니 무릎에 누워 들었던 옛 이야기를 시간이 지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손자·손녀에게 이야기해주면서 민담은 만들어져 왔다. 민담에는 환상과 현실, 웃음과 해학을 통하여 자연과 우주, 인간을 보는 인식이 배여 있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선조들이 사고했던 세상을 만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민담은 지배세력과 기득권 세력이 승리한 역사를 문자로 기록하고 해석한 정사(正史)와 실록과는 다르다. 사실이 아니기에 역사로 신뢰할 수 없지만 민중은 정사와 실록보다는 자기 선조들이 상상과 현실, 웃음과 해학이라는 민담 속에 새겨진 자연과 우주, 인간을 만날 수 있기에 정사와 실록보다는 더 정감이 있다.

 

민담은 이런 의미에서 듣고, 읽기에 가치 있는 이야기이다. 출판사 <황금가지>가 펴낸 <세계민담전집>-2008년 6월 현재 16편(이란편)-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 민담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세계민담전집 1권>은 우리나라 민담을 엮었다. 구비문학을 연구하면서 <역사인물연구>를 펴냈고, <한국구비문학의이해>와 <한국인의 삶과 구비문학>을 공저한 건국대학교 신동흔 교수가 우리 민족이 전해온 이야기들을 구술자나 채록자의 1차 자료로부터 직접 뽑아 실었다.

 

<세계민담전집-한국편>은 3부로 구성되어있다. 1부 ‘신비와 경이의 세계’로 현실과는 동떨어진 환상세계를 이야기하는 민담을 실었고, 1부는 ‘일상사의 씨와 날’에는 환상과 상상세계보다는 현실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민담, 3부 '웃음은 죄가 없다'에는 희극과 해학이 깃든 민담을 엮었는데 모두 59편이다.

 

환상과 현실, 희극이 어우러진 민담을 편집하여 우리 민담이 어떻게 전해져 왔는지 알 수 있게 한다. 현실과는 전혀 동떨어진 환상만을 담은 민담이 아니라 현실을 반영하고, 웃음과 해학이 넘치는 민담 속으로 들어가다보면 10대, 20대, 30대 선조 할머니 무릎 위에 누워 직접 듣는 느낌을 받는다.

 

현실이지만 현실이 아닌 상상과 환상으로 우리를 이끈다. 한 편 한 편을 읽어갈 때마다 현실성과는 매우 동떨어졌지만 현실 세계 속에서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상상의 나래를 만끽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삼면인 바다로 된 반도 국가다. 반도 국가는 대륙 문화와 바다 문화를 잇는 다리 역활을 한다. 우리나라는 중국-한국-일본으로 이어진 문명 고리를 형성했고, 불교와 도교, 유교가 농업문명권인 우리 민족 속으로 들어오면서 우리 선조들은 다양한 민담을 만들어 전해주었다.

 

우리 민족은 물질의 풍부함과 풍성함보다는 결핍과 고난을 더 많이 겪었다. 민담에는 재산과 명예, 배필 등등 무엇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박탈당한 주인공들이 많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선녀와 나무꾼>에서 나오는 나무꾼은 나이 서른이 넘도록 각시를 얻지 못하고, 외로움, 작은 오두막집, 움직이는 것은 자기 몸 하나밖에 없는 궁핍한 삶을 살아간 사람이었다.

 

선녀를 만나면서 일어난 많은 일들은 읽는 이들에게 가슴 아리고, 눈물을 흘리게 한다. 마지막에는 하늘나라 사위로 인정받아서 예쁜 아내와 귀여운 두 자식을 데리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지만 고난과 결핍을 견디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다.

 

<우뚜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세상은 살기 아주 어려웠다. 권력자들이 자기 욕심을 차리기에 눈이 멀어 백성들 생활은 안중에도 없었다. 대궐에 있는 벼슬아치들은 뇌물을 받고 원님들은 자리를 팔았고, 원님은 백성들을 쥐어짜서 자기 배를 불렸다. 그라니 백성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었다."(166쪽)

 

우뚜리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자기배만 채우는 지배세력에 저항했다. 우뚜리 죽음으로 인민의 피를 빨아먹은 지배세력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지만 인민들은 새로운 자각을 하게 된다.

 

"우뚜리의 그 죽음을 결코 헛되이하지 않겠다고, 기필코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말겠다고."(172쪽)

 

<선녀와 나무꾼>이 환상담 같아 현실세계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지만 <우뚜리>는 현실에서 지금도 일어나는 일들이다. 지배세력이 민중을 착취하는 것은 어제일만 아니라 오늘도 일어나는 일들이다.

 

독자는 <우뚜리>를 읽고 마지막 백성들이 했던 말을 가슴에 새길 수밖에 없다. '기필코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말겠다'는 다짐은 어제와 선조들 문제가 아니라 오늘과 바로 자신에게 처한 일임을 알게 된다.

 

이런 저항을 담은 민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문제를 낼 때마다 우연히 해결책을 내는 머슴 이야기를 담은 <머슴의 꿈과 신비한 금척>, 단지 길을 다녀오는 것만으로 모든 행복을 한꺼번에 얻는 <구복여행>, 근심이라는 근심은 다 피해가는 <무소웅> 등을 통하여, 행복은 철저한 준비와 성실함으로만 일어나는 현실세계와 조금 달리 '저절로' 이루질 수 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다.

 

정승을 골려주는 대가를 만날 수 있는 <정승 골려주기>, <지혜로운 며느리>, <통인의 지혜로운 아내> 등은 자신과 가족, 집단에 닥친 어려움과 난제를 해결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지혜를 담았다.

 

59편을 모두 읽고 나면 우리 민담 속에는 폭력보다는 평화, 탐욕보다는 나눔, 아픔과 슬픔을 이기는 웃음과 해학, 현실이 고통스러워 내세만을 생각하는 패배주의보다는 현실을 극복하려는 꿋꿋한 삶의 자세, 나보다는 가족과 이웃, 사회를 생각하는 공동체 정신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한 편이 8-9쪽이기 때문에 초등학교 아이들도 함께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한증막 같은 이 더운 날 우리 민담 한 편을 읽는 것은 또 다른 피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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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아 너를 존귀히 여겨라 | 문학 2008-05-15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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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저/왕은철 역
현대문학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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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쁜 딸 서헌에게


 서헌아! 엄마가 점심으로 ‘울면’ 먹고, 빨래를 하다가 그만 양수가 터져 병원에 부리나케 병원에 달려갔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너를 만난 지 십년이 되었다. 스무날을 먼저 태어나 성격이 급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서헌이 보면 이런 태평스러운 아이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빠름이 지배하는 시대에 느림으로 살아가는 것도 좋은 삶의 방식이다.

 아빠는 너를 서헌이라는 이름보다는 ‘우리 예쁜 아이’라고 부른다. 왜 그럴까? 엄마와 아빠의 사랑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예쁘다는 말은 그냥 얼굴이 예쁜 것만 아니라 사람으로 태어난 너 자체가 존귀하고 존엄하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빠의 사랑으로 태어난 이 땅의 모든 사람은 존엄하고 고귀한 존재란다. 아니 사람으로 태어난 모든 이들은 존엄하다. 어떤 누구도 이 존귀함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없다. 제외시켜서도 안 되며, 제외되어도 안 된다. 이 존귀한 권리를 빼앗을 자는 아무도 없다. 이는 사람이 영원히 누려야 할 권리이며, 진리다.

 하지만 누리(세상)에 태어난 모든 아이와 사람들이 존엄하고 예쁜 것은 아니었다. 같은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태어난 환경과 문화에 따라 존엄보다는 오히려 천하고, 비천한 자로 대접을 받는 이들이 아직도 누리에 있었다. 이 존엄한 가치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

 서헌아 지난 해 여름, 아빠가 뙤약볕에서 남강 둔치와 어린이 공원에서 일할 때에 네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었던 나라 이름이 기억나는지 궁금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질로 잡혀 두 사람이 죽었던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던 나라 말이냐? ‘아프…’ 그래 ‘아프가니스탄!’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도했지만 두 분이 생명을 잃었다. 우리 모두가 슬펐고, 마음이 아팠다. 첫 만남은 좋아야 되는데 슬픔과 고통으로 만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네 마음이 나쁜 생각으로 가득 차면 안 되는 데 안타까울 뿐이다. 

 아빠는 얼마 전 우리가 경험한 일보다 더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만남을 또 했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라는 책을 통해서다. 17세기 아프가니스탄에 살았던 시인 ‘사이브에타브리지’라는 분은 카불(아프가니스탄 수)을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었고/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었네”라고 읊었다. 책 제목을 여기에서 지었다. 1959년부터 2003년까지 마리암이라 이름 지어진 한 여성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라.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일까? 뜨거워 사람이 살지 못하는 나라일까? 정말 뜨거워 사람이 살지 못하는 나라였을까? 아프가니스탄은 배움이 없는 사람도 ‘시’를 외우는 아름다운 나라였다. 배움이 없는 마리암 조차 시를 읊는 나라이니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인지 알겠지.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시’를 읊고,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 있는l 이토록 아름다운 나라가 마리암을 통해서 아빠에게 다가올 때는 슬픔, 아픔, 고통, 시리도록 추운, 고통스러운 나라였다.

 아빠와 딸이라면 만날 함께 밥 먹고, 놀고, 잠자고, 여행도 가잖아. 아빠와 서헌이 처럼. 하지만 마리암과 아빠 잘릴은 그렇지 못했다. 같은 집에 살지 않았다. 한 번씩 찾아와서 선물을 줄 뿐이었다. 마리암은 그런 아빠가 좋았다. 그런데 잘릴은 마리암이 아빠라 부를 수 없는 아빠였다. ‘하라미’였기 때문이다. 우리말로 ‘사생아’라는 뜻인데 생각하면 할수록 고통스러운 뜻이라 나중에 커서 네 스스로 알아보기를 원한다.

 마리암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결코 침해받을 수 없는 존귀함을  침해받는 끔찍하고, 안타까운 삶을 시리도록 아픈 삶을 살았다. 해님이 천 개라면 사랑이 넘쳐야 하는데 마리암은 사랑을 받지 못했다. 사랑이 아니라 사람다운 대접을 받지 못했고, 폭력과 고통만이 마리암에게 주어졌을 뿐이다. 죽임과 살육, 증오가 흘러 넘쳐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나라였기에 뜨거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싹하고 추웠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이 아프고, 시린 여성의 삶을 말과 단어로 표현하면서 낱말 하나 하나를 아름다움으로 채웠다. 아름다운 단어가 이토록 끔찍함을 담아낼 수 있을까? 아빠는 낱말 하나, 한 구절, 한 장씩을 읽어가면서 너와 같은 딸이자, 여성이 천한 존재로 비천한 자로 취급받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그 아름다웠던 나라 아프가니스탄이 끔찍한 전쟁과 테러로 죽임이 난무하는 나라가 되었는지 안타깝고, 어떤 때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어느 날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한 아빠를 찾아 나선다. 아빠는 만나주지 않았다. 아빠 없는 누리가 된 것이다. 딸 마리암이 아빠는 없는 곳으로 갔을 때 엄마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정말 가슴이 시리고, 아픈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더 안타까운 일은 아빠 잘릴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마리암보다 나아가 서른 살이나 많은 남자와 결혼을 하게 했다. 딸을 정말 사랑한다면 마리암 엄마와 마리암이 걸어왔던 길을 더 이상 걷지 않게 해야지만 잘릴은 아직 여성을 억압하는 문화구조에 저항할 능력이 없었다. 마음 한 자리에는 자리 잡고 있었지만.

 사랑 없이 태어났던 마리암 처럼 또 다른 마리암이 태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비극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면 비극은 또 다시 잉태하게 되어 있다. 마리암과 결혼할 남자는 라시드였는데 라시드는 “내 고향에서는 눈길 한 번 잘못 던져도, 말 한 마디 잘못해도 칼부림이 나. 내가 태어난 곳에서는 여자의 얼굴을 남편만 볼 수 있어.”라고 할 만큼 여성을, 곧 마리암을 사람, 사랑하는 존재가 아닌 짐승, 물건으로 생각했다. 엄마 나나가 이를 예상한 것일까? 엄마는 말했단다. “단 하나의 기술만 있다. 그것은 타하물(참는 것)이다”고. 마리암은 물었다 무엇을 참아야 하는지. 그 때 엄마는 말했다. 참을 일은 많고도 많다고.

 사랑하지 않는 사랑과 결혼해야 했고, 라시드 폭력에 참아야 했고, 탈레반은 여성에게 화장품과 장신구를 금하며, 공공장소에서는 웃어서는 안 되고, 학교에 다닐 수 없으며, 간통을 하면 돌로 쳐죽인다는 것을 통하여 나나가 말한 참을 일이 무엇인 알게 된다. 마리암에게 참음은 고상한 인격이 아니라 인간이 아닌 치욕과 모욕을 견디는 참음이었다. 이는 참음이 아니요 강요이며, 모욕이다. 이런 참음은 곧 죽음이다. 인간이 아닌 짐승처럼, 죽음을 강요하는 세상과 문화에 너는 모욕으로 살아가지 말고, 참지 말고 거부하면서 당당한 인간으로 살아가야 함을 잊지 말아라. 마리암에 강요된 참음은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거부해야 할 억압이다. 이 비극, 억압을 마리암 스스로 거부하고 끊기에는 사화와 구조가 견고했고, 마리암은 아직 무력했다.

 하지만 비극은 한 여성을 만나면서 굴레를 조금씩 벗기 시작한다. 여성 라일라를 만난다.그는 배움이 있고, 여성이면서 인간으로 존중받았지만 가족이 폭격 때문에 죽었을 때 마리암 남편 라시드에 의하여 구출 받았다. 마리암은 처음에는 자기보다 예쁘고, 잘난 라일라가 싫었다. 어쩌면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닌 자로 살아가는 자신과 여성이면서 인간으로 살아가는 라일라에 대한 거부감이 들었을 거다.

 여성이자 사람으로 살아왔던 라일라도 라시드를 만남으로써 비극으로 바뀐다. 라시드는 마리암과 라일라에게 사랑을 통하여 맺어진 남편과 아내가 아니라 독재자였으며, 자신들을 물건으로 취급한 자였다. 독재자란 오로지 자기 권력과 이익을 위하여 밑에 있는 자들을 억압하고, 권리를 빼앗는 자다. 그런 의미에서 라시드는 독재자였다. 라시드는 자신만 인간이었을 뿐 마리암과 라일라는 사람이 아니었다.

 독재자가 통치하는 시대는 비극을 만들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사람이 없다. 사람이 없다는 것은 육신은 사람으로 보이지만 인격과 사상, 이념에는 자유가 없다. 마리암과 라일라는 육신은 인간이자, 여성이었지만 그들은 참아야 하며, 무참히 짓밟히는 존재였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통탄스러운 비극이다.

 억압과 폭력이 난무하면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은 짓눌려 살지만 언젠가는 스스로 자기들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독재가 인간을 파멸시키는 존재임을 알게 되고 스스로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독재에 항거하게 된다. 마리암과 라일라도 자신들에게 압제했던 독재자, 곧 라시드에게 저항한다. 둘은 같은 폭압 구조에서 벗어나려는 공동운명체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폭력을 견디다 못해 도망치다 붙잡혀 온 라일라에게 잔인한 폭력을 휘두르던 라시드를 마리암이 삽으로 쳐 죽이는 모습은 잔혹한, 끔찍한 살해이지만 한 여성이 새롭게 거듭나는 순간이다. 여성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고, 라일라만은 잃을 수 없음을 깨달은 마리암의 항거였다. 폭력과 비열함, 인간이 아닌 짐승처럼 살게 했던 라시드를 향한 아니, 인간을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모든 문화와 정치, 사상과 이념을 향한 일격이었다.

 라시드와 여성을 짓밟는 문명과 문화, 사상을 향한 일격으로 모든 것이 끝났지 않았다. 한 사람이 죽고, 한 사람이 거짓된 문명을 향한 일격은 한 순간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인간을 거스르는 자를 향한 일격이 오히려 죄가 되어 감옥에 갇혔다. 감옥에 갇힌 마리암은 “내 딸아. 이제 이걸 알아라. 잘 기억해둬라. 북쪽을 가리키는 나침반 바늘처럼, 남자는 언제나 여자를 행해 손가락질을 한단다. 언제나 말이다. 그것을 명심해라.”는 엄마 나나의 말이 그를 다스렸다. 인간을 파괴하는 문명이 얼마나 견고한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라시드가 죽었지만 아직도 마리암은 ‘하라미’의 굴레, ‘여성’이라는 굴레와 억압에서 해방되지 못했다. 마리암 생명이 끝나는 순간, 총구가 그를 향해 달려올 때 하라미로 태어났던 마리암, 쓸모없는 존재였던 그를 돌아본다. 잡초였던 그를 반추한다. 육신 장막이 마지막 땅을 떠나는 순간 마리암은 진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사람으로서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고 했다.

 자신을 대신하여, 여성을 짐승으로 대하는 문명에 대항한 마리암을 기리면서 라일라는 태어난 생명에게 마리암이라는 이름을 새겨준다. 라일라는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존엄한지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여성은 완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라시드, 탈레반이 제거되어 여성에게 해방아 찾아온 것 같지만 아직도 아프가니스탄은 전쟁과 테러와 증오가 난무한 곳이다. 다시 새겨보면 여성을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일은 라시드, 탈레반의 전유물이 아니다. 민주주의와 자유를 회복시켜 준다고 했지만 아직 아프가니스탄은 죽임이 자리하고 있다.

 놀라운 일이 있다. 아버지이지만 아버지라 부를 수 없었던, 아버지가 아니었던 잘릴은 죽음을 앞에 두고 마리암에게 편지를 썼다. “네가 헤라트에 왔던 날, 만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 …너를 내 딸로 삼지 않고, 그곳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살게 했던 걸 후회한다.…사랑하는 마리암. 나를 용소해다오. 나를 용서해다오. … 내가 전에는 그러하지 못했지만, 네가 다시 한 번 문을 두드리면 문을 열고 너를 맞아들이고 너를 가슴에 안을 기회를 주면 좋겠다.”

 마리암은 이 편지를 읽지 못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후회와 회한을 담은 잘릴의 편지가 마리암에게 무슨 상관이 있을까? 편지 한 번으로 억압받았던 마리암, 폭력에 짓밟힌 영혼에 용서를 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을 압제, 억압한 자들은 너무 쉽게 용서를 구한다. 말 한마디로 모든 잘못을 덮고 넘어가려고 한다. 우리는 이런 일에 저항해야 한다.

 서헌아 아빠가 네게 말하고 싶은 것은 너는 사람이다. 이것만큼 귀하고 고귀한 것은 없다. 사람이 사람으로 존중받는 일만큼 귀한 것은 없다. 누리에는 탈레반뿐만 아니라 정치철학과 사상, 이념, 종교라는 이름으로 남성, 여성, 어린이, 어르신뿐만 아니라 자기와 다른 사상과 철학을 가진 자들을 억압하는 세력이 너무도 많다. 어떤 것도 ‘인간’ 그 자체를 억압할 수 없다. 억압하는 것에는 저항해야 한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마리암과 라일라라는 두 여성을 중심으로 여러 사람들이 얼마나 인간 존엄성을 해하고, 훼손당하는지를 보여주지만 우리 모두가 이 참혹한 인간성 말살을 범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이런 사회와 문명을 용서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너 자신을 발견하면서 너 자신을 존중하면서, 다른 이도 너와 똑같은 존귀한 자임을 항상 마음에 담고 살아야 한다. 네가 살아가는 세상은 결코 너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성별과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천하게 대해서는 안 된다. 네가 존귀한 것만큼 모든 사람도 똑 같이 존귀함을 잊지 말아라.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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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반추하라 | 문학 2008-05-10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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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모리

이세벽 저
GOODBOOK(굿북) | 2008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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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월 어느 날. 경기도 수원 아주대학교 앞 한 건널목에서 나는 죽음 냄새를 경험한 적이 있다. 빨간색 신호등이 건너지 말라는 신호를 끝내고, 초록색으로 바뀌면서 건너가도 된다는 신호를 보냈다. 다른 때는 그냥 걸었지만 그 날은 나도 모르게 옆으로 눈을 돌렸다. 저 멀리서 택시 하나가 달려왔다. 떨어졌던 발을 되돌렸다.


 하지만 옆에 있던 한 남자는 그냥 걸어갔다. 죽음에게로. 죽음이 0.01초 사이에 갈렸다. 그 이후 나는 초록색 신호등이 들어와도 결코 제일 먼저 건너는 법이 없다. 0.01초가 죽음을 갈랐다. 아직도 그 남자가 부르짖었던 소리가 귀에 선 하다. “야 이 새끼야!” 과연 그 외침은 누구를 향한 것이었을까? 택시 기사, 아니면 ‘죽음’에게. 아스팔트는 그 자체로 생명이 없지만, 죽음이 남긴 핏자국은 죽음냄새를 더욱 짖게 했다.


 2008년 3월 28일 1년 7개월 만에 처 할머니를 찾아뵈었다. ‘아흔아홉 살(白壽)’을 사셨다. 아니 일백한 살을 사셨다. 죽음이 그 앞에 드리워져 있었다. 의식 없는 멍한 눈빛은 이미 죽음을 풍기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처 할머니 죽음을 알리는 부고(訃告)가 왔다. 일백한 살을 살든, 한 살을 살든 길고 짧음이라는 차이뿐 죽음은 항상 그 자신에 앞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생명’은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과 평생을 싸운다. 죽음은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에게 드리워진 장애다. 거부하고 싶지만, 거부할 수 없는 존재. 죽음 앞에 ‘무기력,’ ‘무능력,’ ‘비굴.’ ‘담대함,’ ‘태연함’은 교차한다. 죽음과 끊임없는 싸움을 하면서 서서히 인간 모두는 죽음 앞에 자신을 놓아주게 된다.


 이 죽음과 싸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이가 있으니 ‘모리’다. 그는 ‘죽음’이다. 어느 날 무엇인가를 가진 존재, 권력과 금력, 학력, 환경에서 죽음과는 관계없던 방송국 성 감독은 시청률 때문에 고민하는 중 ‘모리’를 섬뜩함, 소름만 경험되어지는 살아있는 죽음, 곧 모리를 만난다. <죽음대역배우 모리>는 인간에게 죽음과 가장 밀접하지만 죽음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이들에게 죽음을 만나게 해주는, 죽음 그 자체를 보여준다. 죽음과 싸우지 않고 죽음 그 자체인 모리를 통하여.


 그 놈은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태어나면서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이름’이 없다. 성 감독은 사람이라면 있어야 할 따뜻함과 온기라고는 느낄 수 없는, 섬뜩함과 소름만 느껴지는 존재, 그냥 그 자리에 있는 냄새나는, 구역질나는 더러운 냄새보다 더 역한 죽음냄새 풍기는, 이름 없는 그에게 ‘모리’ 곧 ‘죽음’이라고 불러준다.


 죽음을 만난 경리, 간호사, 해미. 그들은 죽음에 이르는 존재이면서도 왜 동지애가 아니라 섬뜩함과 소름 때문에 스스로 생명을 놓고 만다. 생명으로 태어났지만 죽음을 향하여 달려가는 이들이 죽음을 만나자 섬뜩하여, 역겨워 죽음을 이기지 못하고, 가혹하리만큼 섬뜩함 때문에 결국 생명을 놓았다. 나 자신이 죽음과 만났을 때도 달리 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다.


 종필과 진수, 연주는 죽음이 자신 앞에 있지만 역겨움을 느끼지만 조금 다르다. 성공과 자본을 위하여, 연민과 따뜻함으로 접근한다. 그리고 죽음 그 자체를 연기 해 달라고 한다. 모리는 그냥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죽음이 죽음을 보여주는 행위는 쉽다. 아무리 탁월한 연기자로 할지라도 죽음은 연기일 뿐 그 자체가 아니다. 꾸며진 상황에서 나오는 죽음이라는 연기는 사람에게 큰 감흥을 줄 수 없다. 하지만 죽음이 죽음을 보여주는 행위는 섬뜩함, 음습함, 소름 그대로다. 전 사회는 이 죽음 앞에 온갖 것을 다 동원하여 논쟁하였다.


 “이 세상에서 오직 모리 너 한 사람만이 완벽한 죽음을 생산할 수 있어. 죽음 그 자체를 온몸으로 재현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너뿐이야. 숨도 쉬지 않고 체온도 죽은 사람처럼 낮고. 사람들은 카메라 앞으로 바짝 당긴 진짜 죽음을 보게 될 거야. 멀리서 대강 보여주는 가짜 죽음이 아니라 클로즈업된 죽음. 하긴 드라마를 통해서 사람들은 어느 정도 느끼고 있을 거야. 너의 존재에 대해서 말야.”


 이 강력한 요구는 어쩌면 돈 때문에, 성공 때문에 요구되는 인간 깊숙이 묻혀 있는 돈에 노예가 되어버린 근성이 폭발한 것인지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직접 경험할 것이지만 죽음을 연기해달라는 이 요구는 이미 죽음보다는 돈에 자신을 맡긴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이것을 요구하는 이들의 결과가 어떨지 암시하고 있다.


 “구더기가 들끓는 것처럼 더러웠고 인육을 삼킬 듯 잔인했으며 모든 것을 파괴해버릴 것처럼 포악했다. 또한 악의 근원이 현현한 듯 음험하기 짝이 없었다. 모리에게서 풍기던 어둠의 냄새, 죽음의 냄새는 무겁게 내려앉은 먹구름으로 바뀌었고 배어나던 슬픔은 예리한 칼날의 광기로 변했다.”


 읽는 이들은 점점 죽음으로 인도된다. 모리는 연기를 하지 않는다. 그냥 자신을 보여주는 것 일뿐이다. 어둠의 냄새, 광기 같은 슬픔. 과연 죽음 앞에 놓인 독자는 어떤 마음일까? 단어 하나하나를 읽어가면서 모리와 만나는 독자는 어떤 느낌일까?


 그에게 죽음 냄새가 아니라 연민 어쩌면 사람냄새를 맡은 연주는 <죽음대역배우 모리>에서 독특한 캐릭터다.  스스로 죽음이라는 길목에 들어선 경험 때문이었을까? 죽음에게 연주는 따스함과 부드러움으로 접근하여 인간이 가진 생명을 향한 갈망을 일깨워준다. 하지만 왠지 이는 낯설다. 죽음에게는. 


 그리움, 기다람, 애절함, 기쁨, 행복, 괴로움, 외로움은 사랑이 주는 선물이라고 말한다. 사랑. 연주를 향한 사랑, 연주를 껴안고 싶은 욕망. 모리는 인류가 지닌 의식 속에 뿌리 깊게 자라잡고 있던 공동체적 감성을 자극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죽음! 공포! 연민! 이 모든 것! 아니면 악마적 기질. 모리는 섬뜩한 죽음을 나타내어야 했다.


 공포와 연민으로 얼룩진 죽음을, 그런 죽음을 통하여 인간은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0.01초라는 찰나 같은 시간을 통하여 인간은 죽음이라는 공포를 스스로 경험한다. 1995년 1월 어느 날 나에게 자리 잡은 그 죽음처럼 말이다.


 사마디 앙트가 ‘죽음’을 만난 공포와 섬뜩함에서 온 몸으로 뿜어내는 그의 강렬한 죽음을  깨달음과 영감으로 바뀐다. 연주와 함께 죽음은 죽음을 연기하면서 사마디 앙트와 핸리를 통하여 죽음을 단순히 공포와 두려움, 섬뜩함이 아니라 깨달음과 영감을 부여해주는 ‘삶과 죽음’을 만들어가는 장면은 독자들에게 죽음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연주는 모리에게 가슴과 목을 내어준다. 연주 목을 뜯어먹지 않을까? 이는 이미 인간이 할 수 있는 연기가 아니었다. 살점을 깨물어서 피가 흐를 때보다 더 섬뜩하고 위태로운 장면이었다. 모두는 말리고 싶어 했다. 연주 뒤에 선 모리는 이미 죽음 그 자체였고, 죽음을 향하여 고개를 들고, 죽음과 입맞춤, 슬픔이 밀려오는 상황 연출. 사실 죽음은 삶을 알게 한다. 죽음 없는 삶은 가치가 없다. 인생은 연기라고 했던가.


 핸리 교수는 말한다. ‘삶과 죽음’을 다 만든 후에


 “죽음이 없다면 누가 삶을 극진히 사랑하고, 누가 연인을 아끼며, 누가 그토록 애써 땀을흘리며 누가 그토록 열정적으로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밤을 지새우며, 누가 그토록 하루 하루를 소중하게 여기며, 누가 그토록 세월을 아쉬워하고 누가 그토록 실패를 두려워하겠는가? 어떤 사람들에겐 죽음이 독이 되고 또 어떤 사람들에겐 죽음은 삶에서 도망치려는 길목뿐이지만 또 다른 어떤 사람에겐 최선의 선택이기도 하다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지만 죽음을 무시하거나 잊어서도 안 되며 죽음을 피할 이유도 없고 죽음을 기다릴 필요는 더더욱 없다.”


아흔아홉 살을 사신 처 할머니가 한 줌 재가 되어 우리 앞에 놓였을 때 문득 든 생각은 ‘허무’였다. 정말 한 줌 재였다. 그 재로 남기 위해서 우리는 아웅 거리면서, 죽일 놈 살릴 놈 하면서 산다. 하지만 죽음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삶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하루 하루를 소중히 여기지 않을 것이다. <죽음대역배우 모리>는 우리에게 죽음, 곧 흙으로 돌아가는 우리 자신을 반추하게 한다. 1995년 1월 수원 아주대학 앞에서 나에게 들려왔던 “이 새끼야!” 역시 죽음을 외면하지 말고, 진지한 삶을 살아야 함을 경고한 소리로 자리매김하기를 원한다.


죽음은 공포가 아니다. 죽음은 섞은 냄새가 아니다. 죽음은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게 하는 중요한 삶의 가르침이다. 죽음을 생각하면서 산다는 것은 삶을 포기하고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더 삶 되게,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게 하는 중요한 원인임을 <죽음대역배우 모리>는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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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에 대하여 | 문학 2008-01-02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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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우리는 왜 지금 낭만주의를 이야기하는가

김진수 저
책세상 | 200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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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나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2절 후반부다. '낭만'을 떠올릴 때마다 왠지 이 노랫말이 떠오른다. 애수와 피폐한 심연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노랫말은 '낭만적' 정서는 울려줄 수 있지만 '낭만적'과 '낭만주의'는 별 관계가 없다고 <우리는 왜 지금 낭만주의를 이야기하는가>에서 김진수는 말한다. 


낭만주의를 애절함과 서글픔을 담은 사상이 아니라 문학과 예술에서 진보성과 근대성을 핵심으로 파악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김진수는 낭만주의를 '마술 지팡이'라 말한다. 이는  낭만주의 스펙트럼은 넓어 한 마디로 규정하기 힘들다는 것을 뜻한다.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의 그림 <절규>라는 작품이 있다. 근대의 보편적 이성과 과학을 향한 맹신의 인간이 얼마나 비참한 최후를 맞는지 고발한 작품이다. 18세기 인간은 기독교 절대성에 반기를 들면서 인간 이성과 과학증명을 통하여 인간 이성과 사유가 유토피아를 형성해주리라 확신했지만 과학은 전쟁과 환경오염은 지구 종말을 예견할 정도다.  


절대 하나님을 배격했지만 오히려 우리 시대 인간은 자본을 신격화했으며, 이성이 낳은 보편성을 주장하지만 자본에 함몰된 인간은 자본을 신으로 숭배하면서 오히려 경제중심의 획일화를 낳게 되었다. 이성이 보편성을 통하여 인류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광기가 지배하는 세상으로 인도했다. 과연 인간에게 구원의 길은 있는가? 


김진수는 <우리는 왜 지금 낭만주의를 이야기하는가>에서  희망을 찾고자 한다. 마술 지팡이처럼 다양성을 지닌, 세밀함과 함축성을 지닌 사랑과 상상력을 가진 낭만성 또는 낭만주의는 18세기 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오만한 이성에 의해 무너져가는 세계를 변혁시킬 수 있는, 우리에게 남은 하나의 가능성이다.  


'낭만적'이라는 말의 어원적인 의미인 '소설(romance)같은', 중세 기사문학류의 공상적, 모험, 영웅담, 신비함이지만 이는 낭만주의가 아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낭만주의는 계몽주의 시대 이성의 절대적 권위에 반기를 들고 나와 세계 변혁을 꿈꾸던, '계몽을 계몽하는' 낭만주의로 환상에 대한 탐닉과 몰입이다. 


'환상'이란 '이성의 가능성과 한계'를 묻고자 했던 칸트 철학이 '이성의 한계' 바깥의 영역으로 남겨 두었던 그 지점을 탐사함으로써 자신의 사상을 구축하는 개념적 도구이다. 


"낭만주의에서 환상은 이성적 사고로는 켤고 이를 수 없는 인간과 자연의 통일성 또는 의식의 통일성을 형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추상적인 원리들에서 근거하는 사고 과정과는 달리 환상은 미적 창조력의 통일성을 보증해준다." (33쪽) 


낭만주의는 진보적인 보편시다. 진보적이라는 것은 무한히 성장해가는 역동성을 말한다. "영원히 생성 발전하여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실로 낭만시의 본질"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주관성을 부여하며, 예술의 자율성과 미적 근대성을 천명하고 있다. 이것은 계몽주의가 이성을 통하여 통합을 주장햇던 것과는 다르다.  


낭만주의의 예술적 미학적 근대성은 이성보다는 자아의 직관과 정신에 토대를 둔다. 낭만주의 예술관은 삶과 현실의 합리화와 관계없다. 예술 자체의 고유한 형식과 개성을 중시하여 예술의 혁명성을 가졌다.  


"낭만주의에서 예술의 형식은 더 이성 미의 표현이 아니라 이념으로서의 예술 그 자체가 된다. 말하자면 예술은 순간적으로 자신을 의식하고 스스로 표명하며, 이러한 표명 속에서 스스로 해명하는 것 외에, 어떤 다른 과제, 어떤 다른 특징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로지 예술 작품은 통고할 뿐이다. 낭만주의 예술 작품은 오로지 스스로를 천명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64쪽) 


낭만주의를 이성주의자들은 '반동적' '신비적' '공허하다' '주관적'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낭만주의는 근대적 합리성과 다른 의미에서 근대성을 가졌다. 이것이 미적 근대성이다. 근대성을 이성에만 제한 시킬 것이 아니라 낭민주의 미적 근대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은 인류 진보에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사실 근대성은 이성에 의한 합리성과 예술과 미의 자율성을 통하여 발전했다. 낭만주의란 그저 눈물 흐르는 로맨스가 아니다. 이성의 합리성과 함께 예술과 미적 자율성을 통하여 근대성을 형성한 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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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편 | 문학 2008-01-01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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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조국의 별

고은
창비 | 1997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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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그를 말하기에는 내가 너무 미약하다. 고은 선생을 처음 접한 것은 장편 소설 <화엄경>을 통해서다. 화엄경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참됨, 거룩, 추구와 탐색이 어우려진 아름다움을 말한다. 고은 선생은 <화엄경>에서 길을 나선 어린 선재를 화엄의 본체라 했지만 기독 신도이기에 깊은 사유를 못했다.


 


고은 선생은 <불교신문>의 초대 주필로 글을 쓰면서 조지훈 선생 추천으로 <현대시>에 시 <폐결핵>을 발표했으며, 서정주 선생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봄밤의 말씀> <눈길> 등을 발표해 문단에 발을 내딛었다.


 


조지훈과 서정주 추천에서 보듯이 처음에는 순수시에 더 깊은 관심을 보였지만 <문의 마을에 가서>를 기점으로 사회비판의식이 강한 시를 쓰기 시작하여1978년에 발표한 장시 <갯비나리>는 1970년대의 참여시를 민중을 말함으로써 역사의식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시집으로 <조국의 별>(1984), <전원시편>(1987), <아침이슬>(1990), <해금강>(1991)을 비롯해, 대하시 <만인보(萬人譜)>(1986년부터 발간하여 작년 말미에 26권이 나옴)를 내면서 지금도 시를 통하여 인민을 말하는 분이다.


 


오래만에 <조국의 별>을 펼쳤다. 1984년 초판 본이 아닌 1991년 4판 본이지만 색깔은 많이 바랬다. '걸레'라는 시가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는 아직도 걸레질을 하신다. 며느리가 넷이나 있지만 손수 걸레질을 하신다. 왜일까? 생각해본다.


 


바람 부는 날


바람에 빨래 펄럭이는 날


나는 걸레가 되고 싶다


비굴하지 않게 걸레가 되고 싶구나


우리나라 오욕과 오염


그 얼마냐고 묻지 않겠다


오로지 걸레가 되어


단 한군데라도 겸허하게 닦고 싶구나



걸레가 되어 내 감방 닦던 시절


그 시절 잊어버리지 말자



나는 걸레가 되고 싶구나


걸레가 되어


내 더러운 한 평생 닦고 싶구나



닦은 뒤 더러운 걸레


몇 번이라도


몇 번이라도


못 견디도록 헹구어지고 싶구나


새로운 나라 새로운 걸레로 태어나고 싶구나


 


사람들은 깨끗한 누리를 원하고, 깨끗한 옷을 원하지만 온누리는 다 더럽다. 깨끗한 옷을 입고 밖에 나가 조금만 있어도 더러워진다. 더러운 것을 어느 누구 하나 깨끗하게 닦으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깨끗한 세상을 원한다. 시인은 내가 걸레가 되어 깨끗한 세상,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를 원한다.


 


시인은 조국의 별이 되기를 원한다. 조국은 어둠에 처해있다. 어둠만 가득한 조국에 별이 되어 내 자식들에게 초롱초롱한 가슴, 멍든 몸으로 쓰러질지라도 별이 되어 조국에 희망을 주고자 한다.



별 하나 우러러보며 젊자


어둠 속에서


내 자식들의 초롱초롱한 가슴이자


내 가슴으로


한밤중 몇백 광년의 조국이자


아무리 멍든 몸으로 쓰러질지라도


지금 진리에 가장 가까운 건 젊은이다


땅 위의 모든 이들아 젊자


긴 밤 두 눈 두 눈물로


내 조국은


저 별과 나 사이의 가득 찬 기쁨 아니냐


별 우러러보며 젊자


결코 욕될 수 없는


내 조국의 뜨거운 별 하나로


네 자식 내 자식의 그날을 삼자


그렇다 이 아름다움의 끝


항상 끝에서 태어난다 아침이자


내 아침 햇빛 떨리는 조국


오늘 여기 부여안을 일체 결합의 젊음이자 - 조국의 별


 


조국은 별과 나 사이를 이어주는 기쁨이다. 조국의 뜨거운 별이 되어 네 자식 내 자식 상관없이 그들에게 희망을 주기를 원한다. 이는 아름다움이며, 떨리는 아침 햇빛이다. 그리고 이는 젊음이다.


 


시인의 시선은 이제 아르헨티나로 향한다. 조국의 별이 되고자 노래했지만 그는 이제 민중과 인민이 사는 곳으로 삶의 정황을 넓힌다. 아르헨티나를 노래한다. 아르헨티나는 시인이 살았던 시대처럼 권력이 인민을 압제한 비극의 땅이다.


 


새야 새야 아르헨티나는 너무 멀구나
땅을 뚫어야 가겠구나
아르헨티나에는 새 세상이 왔단다
새 세상이란
지난 날이 하나하나 밝혀지는 세상 아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해골 구덩이가 파헤쳐졌다
몇만 개의 뼈들이 햇빛에 드러났다
새 세상이란 파묻은 것이 밝혀지는 세상 아니냐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뼈들이 말하는 세상 아니냐



아르헨티나의 어디에서는
어린애들의 해골 구덩이도 파헤쳐졌다
엄마 엄마 엄마 울음 소리가 파헤쳐지자
새 세상 아르헨티나에 온세상이 다시 메아리쳤다
이 세상 기막히구나 어린애가 적이 되어 처형되다니
7년 동안 병정들은 오리지 쐈다 파묻었다
어린애들이 무죄가 죄가 되어 파묻혔다



아르헨티나의 어머니들은
꺼이꺼이 살아남은 어머니들은
이제부터 제 자식의 해골을 하나하나 파내어야 한다
삽을 들고 달려가서
남편과 아들딸의 손발 잘린 시체더미를 파헤쳐서



뼈 한 개 부둥켜안고 우는 어머니에게
그 아르헨티나에 새 세상이 왔다
새 세상이란
새 세상이란
꼭 이렇게 와야 하는 것이냐



아르헨티나에는 새 세상이 왔단다
아르헨티나에는 새 세상이 왔단다
- 아르헨의 어머니


 


비극의 땅 아르헨티나에 희망이 솟았다. 희망은 어머니에게서 시작되었다. 열달 뱃속에서 고이고이 간직하다, 구로하여 낳은 아들이 해골이 되었을 때 어머니들은 시체를 파헤쳤다. 독재와 군부 폭압정권은 그들 육신을 파괴했지만 아르헨 어머니를 죽일 수는 없었다. 아르헨 어머니는 해골로 남은 아들을 파헤쳐 새누리를 이루었다.


 


<조국의 별>에는 시 89편이 수록되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대부분의 시들이 개인을 말하는 경향이 짙어 사회와 인민을 말하는 것이 더물다. 그러기에 <조국의 별>같은 시편은 80년대를 말하고 있지만 요즘 시들이 담지 못하는 사회와 인민을 만날 수 있는 좋은 시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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