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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방송으로 '사람세탁', 강용석은 정말 변했을까 | 정치 2013-08-13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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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강용석의 직설

강용석 저/박봉팔 편
미래지향 | 2013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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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세탁'. 누가 이 단어를 만들었을까? 세탁은 더러운 것을 씻어낸다는 말이다. 하지만 돈세탁은 뒷돈이나, 비자금을 감추기 위한 것으로 깨끗함이 아니라 더러움을 상징한다. 돈세탁만 아니라 '사람세탁'도 있는 모양이다. 더러움을 제거하고, 표백 단계에 이르렀다.

'아나운서 성희롱' 한 강용석

지난 2010년 7월 16일 성희롱 발언과 성추행 따위로 '성나라당'이라는 비아냥을 듣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을 충격에 빠지게 한 사건이 터졌다.

강용석 당시 의원이 대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 수 있겠느냐", "대통령이 너만 쳐다봐. 남자는 똑같다. 옆에 사모님(김윤옥 여사)만 없었으면 네 (휴대전화) 번호도 따갔을 것"이라는 말한 것이 4일이 지난 같은 달 20일 <중앙일보>를 통해 보도된 것이다.

강 의원은 끝까지 자신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성나라당'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한나라당은 그를 제명할 수밖에 없었다. 한나라당이 얼마나 충격에 빠졌는지 제명은 반나절만에 결정됐다. 하지만 의원직 제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난 2011년 8월 31일 '강용석 제명안'에 대한 표결 결과는 찬성 111명, 반대 134명, 기권 6, 무효 8명이었다. 의원 제명안 가결 요건인 재적의원의 3분의 2(198명) 찬성에는 한참을 못미쳤다.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국회의장을 지낸 김형오 전 한나라당 의원이 표결 직전 요한복음 8장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라는 성경 말씀을 인용한 것이 큰 영향을 끼쳤다. 의원직 제명 부결은 사실상 강용석에게 '면죄부'를 준 거나 다름 없었다.

김형오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강 전 의원은 이후 박원순 서울시장 작은 아들 병역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했고, 안철수 의원 '저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박 시장 아들 병역 문제는 결국 '사과'하면서 의혹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안 의원 저격도 '헛방'이었다. 결국 그는 지난 19대 총선에서 유권자 심판을 받았다.

이런 사안으로 낙마했다면, 대부분 정치인은 생명이 끝난다. 아니 부끄러워서라도 몇 년 간은 언론을 피한다. 하지만 그는 '당당하게' 종편과 케이블 방송에서 출연해 '아나운서 성희롱'과 박원순 시장 아들 병역 의혹 그리고 안철수 저격수 이미지를 거의 '세탁'을 넘어 '표백' 단계에 이르렀다. 만약 강용석 전 의원이 2011년 8월 제명당했다면, '당당하게' 방송에 출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강용석 전 의원 아니, 강용석 변호사는 <썰전>(JTBC), <강용석의 고소한19>(tvN), <유자식 상팔자>(JTBC) 따위에 출연을 통해 몇 마디 툭툭 던져 강용석이 '변'했다는 시청자들과 누리꾼들 '인정'을 받고 있다. 예를 들면 노무현 대통령이 'NLL를 포기'했다는 논란이 한창일 때인 지난 7월 4일 <썰전>에서 그는 "정문헌, 서상기는 사퇴해야 한다. 이 정도 얘기해 놓고 착오라고 하면 안 된다. NLL 대화록 전문을 보면 포기라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서상기, 정문헌 의원이 과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국정원 명예를 위해" 2007년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했다는 남재준 국정원장에 대해서도 "군인 출신이다. 단독 결정한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고도 했다.

"정문헌과 서상기 사퇴하라"로 이미지 세탁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unheim)에서 "강용석은 분위기를 파악한 겁니다"는 글을 남겼다. 누리꾼들도 "속이 시원하다"고 했다. 오히려 우익세력은 그를 성토했다. 변희재는 "강용석이 애국우파 진영에 빚진 것은 없어요. 자기 길을 가더라도 배신자 운운할 것 없다"고 했고, 정미홍 <더 코칭그룹> 대표도 "강용석은 정치인으로서 무엇을 노렸었는지 모르지만 그게 뭐든 앞으로 이루기 어렵겠습니다"고 했다.

3년 전 성나라당 아이콘이었던 강용석은 온데간데 없고, 친정인 새누리당과 "국정원 셀프개혁" 운운한 박근혜 대통령까지 에둘러 비판하는 강용석으로 부활한 셈이다.


기사 관련 사진그럼 강용석은 변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올시다'이다. <강용석의 직설>(도서출판 미래지향>이 증명하고 있다.

그는 변희재 대표와 고 성재기 남성연대대표가 NLL발언에 대해 비판한 것을 두고 "이해할 수 있다. 국가 안보에 관련된 일에 보수논객들이 얼마나 민감한지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어떤 사안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다르다고 변절자로 몰아가는 건 섣부른 판단이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강용석 성향이 어딜 가겠나.(웃음) 성재기와는 전화로 오해를 풀었다. 조만간 변희재와도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했다. 자신의 본질이 변하지 않았음을 스스로 밝힌 것이다.

강용석 "'아나운서 성희롱' 아직도 기억 안나"

특히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해 "국정원이 만일 박근혜를 당선시키려 마음 먹었으면 댓글만 달았겠나"라고 반문하면서 "문재인 3개, 박근혜 3개, 안철수 3개다. 이정희가 26개, 민주당이 28개, 범죄일람표를 보니 안철수 지지 댓글 3개에 국정원 직원이 추천을 누르기도 했더라"고 말했다. 이같은 주장은 새누리당과 <조중동> 주장과 한치도 어긋남이 없다. 특히 강용석을 상징하는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은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강변했다. 

"당시 술에 취해 실수했던 것이었다면 곧바로 인정했을 것이다. 그날 학생 30여명이 함께 있었고, 취할 정도로 마시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솔직히 어떤 발언을 했는지 지금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262쪽)

물론 정말 기억이 안 날 수도 있다. 강용석 말처럼 "그날만 총 11개의 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로 수많은 아나운서들이 받은 '상처'는 푸념이 된다. 아니, 잘 난 아나운서들이 죄없는 강용석을 성희롱한 '나쁜 놈'으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그리고 강용석 방송을 통해 옛것들을 깔끔하게 씻어내고 정치 복귀를 선언하고 있다. 

"정계에 복귀하기 전에 시청률 15%의 프로그램에 출연해 봤으면 좋겠다. 반짝 스타가 되고 싶은 욕심이랄까? 15%의 시청률은 대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중략) 지금 나는 '정치 방학' 중이다. 길고 긴 방학의 끝이 언제쯤일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지금 열심히 해둬야 나중에 좋은 성적도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7쪽)

방송으로 '이미지 세탁'한 후...

특히 그는 "내가 이 길로 가면서 뭔가를 이루면 내 방식도 하나의 모델이 될 거로 생각한다"는 말에는 말문이 막힌다. 지난 3년 동안 강용석이란 이름 석 자에게 상처받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제대로 사과한 적도 없다. 어떤 것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방송을 통해 이미지 세탁을 한 자신의 길이 모델이라고 한다. 강용석은 이처럼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강용석 본질을 또 하나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다. 

"이승만의 국부로서 역할은 토지개혁 때문에 가능했다. 토지개혁 때문에 6.25를 겪고도 민중 항쟁이 일어나지 않았다(중략) 경제발전이 가장 큰 업적이다. 수출주도형 경제발전으로 이끌어 나간 것은 박정희 아니고서는 추진할 수 없던 것이었다. 중화학공업, 제철, 조선, 건설, 전자, 중공업 등을 제대로 세운다는 것을 박정희 말고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93-95)

그리고 그는 전두환과 노태우도 "쿠데타를 정당화하려고 굉장히 노력했다"면서 "그런 식으로 정권을 잡은 독재자들치고는 나쁘지 않았던 편이다"고 한다. 그는 이어 "다른 유사한 나라들의 유사한 독재자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퍼포먼스가 좋았다. 이를테면 페론를 뒤집은 아르헨티나의 군부독재정권이나 미얀마, 제3의 세계 군부독재 정권들과 비교해보면 괜찮은 편이었다"고도 했다.

강용석 논리는 수구세력 주장과 별 다르지 않다. 방송에 출연해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을 비판하는 한 두 마디가 강용석 본질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미지 세탁을 통한 이미지 정치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미지 정치는 박근혜 대통령도 빠지지 않는다. 언론은  박 대통령이 국외 방문을 할 때, 정상회담 내용보다는 무슨 옷을 입었는지에 더 관심이 많을 정도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는 괜찮은 대통령"

그는 대통령이 어떤 자질과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지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은 예언자로서 능력이 있어야 한다. 예언뿐만 아니라 그걸 성취할 수 있는 비전이 있어야 한다. 또 조직하고 활동해서 그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걸 뒷감당하고 정리해서 마무리할 수 있는 능력, 그걸 다 갖춰야 대통령의 자격이 있다. 그런데 이걸 하나라도 제대로 하면 성공한 대통령이다."(본문 222쪽)

대통령 자격은 예언자 자질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예언자란 무엇일까? 예언자란 앞날을 미리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다. 예언자는 인민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아파하는 자이며, 인민을 탄압한 자들에게 저항하는 사람이다. 인민을 생각하는 않는 자는 예언자가 될 수 없다, 독재자 이승만과 군사반란으로 민주주의를 유린한 박정희와 전두환, 노태우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는가? 없었다.

강용석은 박정희를 높이 평가한 것이 "경제발전"이다. 수구세력 주장과 한치도 어긋남이 없다. 그는 김영삼과 노무현 평가를 박하게 했는 데 둘 다 "정권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권을 재창출하지 못한 이유로 낮게 평가받고, 민주주의를 유린했는 데도 경제발전을 했다는 이유로 높게 평가하는 것은 민주주의 의식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지난 8일 <썰전>에서 방송사들이 촛불집회를 보도하지 않는 것은 "이미 국정원 국정조사에 검찰 기소까지 된 상황인데 이슈가 인화성이 없는 이슈일 수 있다. 뭘 어쩌자는 거냐"라고 했다. 한 마디로 촛불집회는 '뉴스거리'가 안 된다는 말이다. 특히 그는 "동원을 열심히 해서 그런 것"이라며  "내가 이런 집회 한 두 번 해봤나. 장외 집회라는 게 동원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거다. 다 동원하는 것이다. 70~80%는 동원된 인력이다. 노무현 정권 때 매일 촛불집회 했다. 그때 다 동원해서 나갔다"고 했다.

촛불집회는 다 동원된 것?

노무현 정부때 자신들이 장외집회를 동원해봤다며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국회의'가 주최하는 촛불집회도 "동원"이라는 주장은 한 마디로 '억지'다. 몇 백명까지는 동원할 수 있다. 하지만 수 만 명을 어떻게 동원하는가. 한나라당식 동원 정치를 촛불집회에 적용하는 강용석을 보니, "나는 국정원에 아무 도움을 받지 않았다"며 "국정원은 스스로 개혁해야 한다"는 청와대 계신 분과 어떻게 그렇게 닮았는지. 하기야 같은 편 아니던가.

박상도 SBS 아나운서는 지난 6월 14일 전·현직 언론인들이 운영하고 있는 칼럼사이트 <자유칼럼그룹>에 '강용석의 변신은 무죄?'라는 제목 글에서 "예능의 새로운 아이콘이 된 강용석씨를 보며 돈 세탁하듯 이미지도 세탁 가능하다는 것을 느낀다"며 "오늘과 같은 날이 올 것을 예견했지만 이 정도로 (강 전 의원에 대한) 대중의 태도가 급변할 줄은 몰랐다"고 탄식했다.

박 아나운서 말을 새겨야 한다. 속지 말자, 강용석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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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서부터 직접 행동과 실천을 | 정치 2013-07-20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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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금, 여기의 아나키스트

김성국 등저
이학사 | 2013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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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

'무정부주의자'는 민주공화정이 흔들리는 2013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어떤 이들에게는 자신의 가슴에 아로새겨 현실 정치에서 이루고 싶은 단어일 것이다. 올해만 아니라 우리는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전두환 군부독재를 경험했고, 민주선거로 뽑힌 이명박정권도 반민주주의 행보를 보였다. 무엇보다 국가정보원이 부정선거를 통해 정치에 개입했다. 이 모든 것은 인간 본성과 양심을 억압하고 탄압한다.

"나의 양심은 나의 것, 나의 정의는 나의 것, 나의 자유는 최고의 자유"

푸르동(Pieer Joseph Proudho)은 "나의 양심은 나의 것이고, 나의 정의는 나의 것이고, 나의 자유는 최고의 자유"라고 했고, 크로포트킨(Peter Kropotkin)는 "민중은 권력에 쉽게 굴복하지만 그렇다고 권력을 숭배하지는 않는다"고 천명했다. 사회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로 '변화'(변절이 아님)한 고토투 슈스이는 일본군국주의를 이렇게 비판했다.

"그는 애국심이란 국민의 허구와 미신의 결과이며, 애국주의란 야수의 천성이자 미신이요, 광란이자 허구이며, 호전적인 마음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군국주의와 애국주의를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관계로 보아 함께 부정했고, 세계주의에 기초해 민족과 조국을 초월한 보편적 인류애를 강조했다."-'책세상문고 우리시대 029' 조세현의 <동아시아 아나키즘, 그 반역의 역사>(28쪽)

이들 말을 종합하면 인간 자체를 지독히 사랑하고, 체제와 구조, 권력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2013년 대한민국은 인간 자체를 존중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이 권력을 사유화하는 일까지 범하고 있다. 국가와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 주장과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다. 인간 자유와 양심을 지독히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 '당연한'것처럼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기사 관련 사진
 지금, 여기의 아나키스트
ⓒ 이학사

 

과연 우리는 "나의 양심은 나의 것이고, 나의 정의는 나의 것이고, 나의 자유는 최고의 자유"를 꿈꾼 푸르동이 바란 세상을 이룰 수 없을까?

"아나키스트의 저항 전선과 연합 전선은 모든 형태의 폭력적 억압을 거부하고 제거하는 데 집중한다. 나아가 상호부조와 협동을 통해서 자주 관리, 자치 질서, 자율 선택의 아나키 사회를 건설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아나키스트의 반폭력주의와 협동주의는 국가권력과 충돌하고 자본 논리를 공격하지 않을 수 없다."<지금, 여기의 아나키스트>(7쪽)

<지금, 여기의 아나키스트>(이학사)는 한국아나키즘학회가 주도한 아나키스트 협동 작업의 첫 작품으로, 한국 사회를 향한 '지금, 여기'의 아나키스트 열넷 사람 목소리를 담은 책이다.

아나키스트, 반폭력주와 협동주의

우리는 아나키스트를 현실을 무시한 이상주의라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민족주의와 국가주의가 견고한 나라는 더더욱 그렇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논쟁에서도 드러났듯이 모두가 '국익' 우선이다. 노무현을 비판하는 자들은 국익을 저버렸다 하고, 노무현이 NLL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반박하는 이들은 국익을 저버린 것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노무현 발언 속에 우리가 간과하면 안 되는 것이 바로 '평화'다. 평화는 내 편 네 편 모두가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고, 폭력을 거부한다. 이를 확대시키면 '국가주의'와 애국주의를 거부하면서 온 인류가 함께 살아가는 인류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다. 물론 노무현은 여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지금, 여기의 아나키스트>는 지금 당장 전 인류가 평화공동체를 이루자는 것은 아니다. 아주 작은 것에서 출발해보자고 제안한다. 아나키스트가 시대착오적인 공허한 이상주의가 아니라 "현실에 적용 가능하며, 작은 목표일지라도 현실 개선을 위한 구체적 대안을 준비하자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아나키스트 경제', '아나키스트 정치', '자유 공동체와 통일 문제', '민주주의의 급진적 확장으로서의 아나키즘', '공동체 운동과 아나키즘', '지역 통화 운동', '장애인 노동' 등 다양한 주제와 분야에서 아나키즘의 사유와 원리를 실천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NLL를 평화지역으로 만들려고 했던 노무현도 거대재벌의 폭력과 압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오히려 재벌은 이제 '00공화국', '00제국'이란 이름처럼 공화정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요즘 논란이 되는 '갑을관계'는 말할 것도 없다. 10%대 90%를 넘어, 1%대 99%대 사회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계급'을 인정하지 않지만, 우리 사회는 이미 '신계급사회'에 발을 내딛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이같은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더 많을 것이지만. 우리 사회는 양극화란 중병을 앓고 있다.

'신계급사회' 진입한 한국사회...반권력과 자유해방을 위해

김성국은 '한국 경제를 위한 아나키스트 대안'에서 "오늘의 한국 경제를 '중병을 앓으면서도 아직 괜찮다고 믿는 환자로' 규정"한다. 한국 경제 올바른 회생을 위해 그는 세 가지 아나키스트 처방을 내린다.

"일자리 나누기, 권력형 부정부패 청산, 탈물질주의의 생활화다. 이 처방들은 상호부조의 협동의 원리, 강제와 폭력을 거부하는 반권력의 원칙, 자유해방을 위한 자기 조직이라는 아나키시트 원칙에서 도출한 것이다."(26쪽)

한국 사회가 신계급 사회에 진입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지금 같은 양극화가 지속되면 어떤 상황으로 치닫게 될지 모른다. 그러므로 일자리를 나누고, 권력형 부정부패 청산과 탈물질주의 생활하는 인간의 자유로운 삶을 열어주는 길이다. 문제는 기득권 최정점에 있는 이들이 자신들의 견고한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점이다. 함께 살자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가 반권력과 자유해방으로 나아가자는 김성국 호소가 왠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그럼 자포자기할 것인가? 아니다. 강동권은 '아나키스트 정치 구상'에서 "우리가 '아나키스트 정치'를 통해 '모든 폭력과 강압으로부터 해방된 자율적인 인간이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공동체'인 '아나키스트 사회'를 만들어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그 방법은 '직접행동'이다.

"아나키즘의 이념은 직접행동을 통해 표출되고 실천되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도시 광장의 공론장과 인터넷 공론장이 유기적으로 결합되고 서로 피드백이 이루어지면서 시민 참여의 직접행동의 장이 지속적으로 열리며 확대되고 있다. 아나키즘은 직접행동을 통해 이론과 실천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혁명과 혁신을 현장에서 만들어온 오랜 전통이 있다. 따라서 우리가 '아나키스트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아나키스트 사회'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아나키즘의 오랜 전통인 직접행동이 필요하다."(67쪽)

"지금, 여기"에서부터 직접행동과 실천을

그렇다. 민중이 직접 나서야 한다. 양심과 정의 그리고 자유를 가진 민중이 직접 나서야 한다. 원래 국가와 권력은 민중이 양심과 정의, 자유를 꿈꾸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그것을 실현하는 것을 국가에 반하는 것이라면 탄압한다. 독재정권만 아니라 민주정권도 차이만 있을뿐, 국가라는 존재 자체가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민중이 직접행동하지 않으면 국가와 권력은 변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특히 2013년 7월 현재 대한민국 인민들은 직접행동을 통해서만이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음을, 양심과 정의와 자유를 지킬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NLL은 피로 지켜왔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피로 지키는 NLL이 되어서는 안 된다. 노무현이 제안한 것이 절대진리는 아니지만, 그가 추구했던 '평화'는 분명 이명박과 박근혜 그리고 이 땅의 반공세력을 지배하는 '반공주의'와는 다르다. 한반도 통일에도 아나키스트 정신이 필요함을 <지금, 여기의 아나키스트>는 말한다.

통일은 민중을 위한, 민중 스스로가 주체

이문창은 '분단 시대 한국 아나키스트 운동과 자유공동체'에서 "분단 체제로 인해 정치적 부자유, 경제적 불평등의 억눌림 속에서 사는 공동 운명체로서의 남북의 풀뿌리 민중에게 '자유공동체 운동'"이 대안임을 제시한다.

"통일은 당연히 처음부터 이 땅을 지켜온 민중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따라서 통일을 되찾는 사업 또한 앞으로도 이 강산의 주인 노릇을 해야 할 우리 민중 스스로 몫이라는 데 대한 깊은 통찰 위에서 출발해야 한다(중략) 내 운명의 조타수는 바로 나뿐이라는 데 대한 민중의 깊은 자각이 요구되는 소이가 바로 여기에서도 존재한다. 지금이야말로 민중이 민중 자신의 생존권을 위해 이 땅의 주인 자리를 되찾느냐 영원히 노예의 쇠사슬에 묶여 지낼 것이냐의 분기점임을 맹성해야 할 때다."(129쪽)

이문창이 제안한 '자유공동체 운동'을 통한 통일은 생경하다. 그러나 읽어보니 가슴이 뜨거워진다. 민중이 통일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 땅의 주인은 바로 민중이기 때문이다. 조국 해방 이후 민중은 이 땅의 주인이 아니었다. 그 결과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NLL논란을 보라. 거기에는 민중이 없다. 민중이 나서서 통일을 이룰 때 영원한 노예에서 벗어날 것이다. 이같은 통일은 국익을 입에 달고 사는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방식이겠지만, 지향해야 할 통일방식이다.

<지금, 여기의 아나키스트>는 '지역공동체를 살리는 지역 통화' 에서 "지역 통화는 자본주의의 취약점인 인플레이션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막을 수 있다"면서 자본주의 경제 문제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지역통화를 제시한다. 또 "장애인을 발생시킨 자본주의 체제가 근본적으로 안고 있는, 무한 경쟁을 통한 착취와 억압의 구조적 모순의 위기를 탈중심적인 공동체연합, 국가주의의 거부, 직접민주주의, 자유주의적 공동체 사회 건설 따위"를 '아나키즘의 기본 이념을 통해 극복하자고 제안하는 정중규의 '장애인 노동의 르네상스를 꿈꾸며' 같은 글들을 만나 볼 수 있다.

"지금, 여기"에서부터 작은 실천을 할 때 우리는 "나의 양심은 나의 것이고, 나의 정의는 나의 것이고, 나의 자유는 최고의 자유"가 실현되는 '자유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이상주의인가? 도전도 하기 전에 포기하기에는 2013년 7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인간의 자유와 양심 그리고 정의가 너무 착취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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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자유인에서 다시 정치인으로 돌아가는 날을 기다리며 | 정치 2013-03-12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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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저
생각의길 | 2013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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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되었다면 2012년 12월 48%는 멘붕이 아니라 광화문과 온나라 곳곳에서 '브라보'를 외치며 단맛나는 술잔을 나눴을 것이다. 물론 51%는 멘붕에 빠져 쓰디쓴 술잔을 들이켰을 것이다.

자신을 '지식소매상'이란 부르는 유시민은 <어떻게 살 것인가>(아포리아)를 문재인 후보가 당선됐다면 <어떻게 죽을 것인가>로 정했을 것이라고 했다. 역사에 가정이란 참 의미없는 것이지만 <어떻게 죽을 것인가>로 나왔다면 나라꼴이 이처럼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해본다.

아무튼 10년 동안 정치에 몸담았던 유시민은 지난 달 "직업으로서 정치이 떠난다"며 '지식소매상'으로 돌아갔다.

그는 "정치는 글쓰기보다 훨씬 더 어렵고 여러모로 뜻깊은 일"이라고 했다. 글쟁이다운 답이다. 그러면서 정치는 자신에게 "내면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소모하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사실 멀쩡한 사람도 정치에 발을 내딛으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을 종종본다. 정치라는 환경이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든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인데 가면을 벗어 그런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내면을 소모하는 정치를 떠난 유시민은 "글쓰기로 되돌아왔다"고 했다. 곧 지식소매상으로 돌아간 이유인게다.

이 책을 쓰면서 나는, 오래 덮어두었던 내 자신의 내면을 직시할 기회를 가졌고 그것을 드러낼 용기를 냈다.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감추거나 꾸미는 습관과 결별했다. 내 자신의 욕망을 더 긍정적으로 대하게 되었다. 마음이 내는 소리를 들었다. 삶을 얽어맸던 관념의 속박을 풀어버렸다. 원래의 나, 내가 되고 싶었던 나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그렇게 해서 내가 원하는 삶을 나답게 살기로 마음먹었다.(본문에서)


왜 정치는 자신의 내면을 깊이 직시할 기회를 가져다 줄 수 없을까?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지만, 사람은 자신을 비판하고 채찍질 하기보다는 남에 비판하기를 더 좋아하고, 더 잘한다. 정치인은 더 그런 모양이다. 취임한 지 열흘도 안 됐는데 야당과 협상과 타협보다는 굴복을 요구하면서 '난 참좋은 대통령'으로 생각하는 그분을 보면 알 것같다. 그리고 정치란 내면을 채우기보다는 소모하는 것이라는 유시민 주장은 헛말은 아니다.

유시민은 이런 말을 한다. "이젠 정치적 자기 검열 없이 정직하게 말하고 싶다"고. 그러면서 "나는 정치의 일상이 요구하는 비루함을 참고 견디는 삶에서 벗어나 일상이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다"면서 "야수의 탐욕과 싸우면서 황폐해진 내면을 추스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이 아니라 내면이 의미와 기쁨으로 충만한 인간이 되기를 원한다"고 고백한다.

정치판을 야수의 탐욕이라고 표현한 유시민을 보면서 왠지 마음 한켠이 짠해진다. 유시민은 '노무현'처럼 반대세력과 맞서 싸운 적이 많다. 이런 그를 김영춘 전 민주당 의원은 "유시민은 왜 저토록 옳은 얘기를 저토록 싸가지 없이 할까"라고 평했다. 김 전 의원 말에 유시민도 "나는 논리적이라고 말을 했는데 그 말이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며 "맞다'고 인정했다. 이런 그의 모습을 비판하는 이들도 생겼지만, '노빠'가 '유빠'로 거듭날 정도로 열렬 지지하는 이들은 '노무현 다음은 유시민'이라고 말했다. 그 중에 나도 포함된다.

하지만 유시민은 "야수의 탐욕과 싸우면서 황폐"하게 만든 정치를 떠났다. 지식소매상으로 돌아간 유시민을 보면서 마음 한켠이 짠한 이유다. 하지만 그의 변명을 듣다보면, 짠한 마음을 거두어야 할 것 같다.

"정치를 하면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정작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할 시간은 언제나 부족했다(중략)왕의 심기를 살피는 신민처럼, 변덕스러운 여론을 언제나 최고의 진리로 받들어야 하는 정치인의 직업윤리가 너무 무거운 짐으로 느껴진다. 목적의식을 가지고 인간관계를 관리하는 것이 위선으로 보인다.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 삶의 존엄을 해치는 것이 정말 훌륭한 일인지 모르겠다."(본문에서)

"인간 존엄을 보장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 삶의 존엄을 해치는 것이 정말 훌륭한 일인지 모르겠다"는 말 속에는 자신의 존엄이 훼손당한 정치인이 과연 시민들 존엄성을 지켜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있다. 우리는 대의를 위해 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한다. 지난 선거때도 단일화는 '대의'였다. 유시민의 말을 꼽씹어봐야 할 것 같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나를 사로잡은 것은 존 칼빈(장 칼뱅)에 대한 날선 비판이다. 난 개신교 목사이면서 '칼뱅주의자'다. '자유주의자' 유시민은 개인을 사유와 행위의 주체라는 사실을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집단주의는 배결될 수밖에 없다. 그 중 하나가 칼뱅이다. 유시민이 집단주의 또는 전체주의라고 지목한 공산주의자 폴 포트가 이끈 크메르 루주와 종교개혁가 장 칼뱅이다.

폴 포트를 전체주의자로 규정한 것에는 쉽게 동의했지만, 칼뱅주의자인 나에게 자유주의자 유시민이 칼뱅은 전체주의자라며 강하게 비판한 것은 솔직히 선뜻 동의하기 힘들었다. 아직도. 하지만 그의 비판은 마음에 새기기로 했다.

무시무시한 폭력을 동원해 공포정치를 조직화한 지성적 금욕주의자 칼뱅의 동기는 고상했다. 그가 모든 '죄인'에 대해 냉혹했던 것은 악과 싸우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서는 도덕적 품성을 길러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계속되는 형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공포정치를 밀고나가는 것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부여한 의무라고 믿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신학적 정치적 견해에는 오류가 없다고 확신했다. 장 칼뱅은 현란한 신학 이론으로 무장한 광신자였다. 타인의 고통에 감응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아무 죄책감도 느끼지 않은 채 수많은 사람을 고문하고 죽였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정신과 심리학자들은 '사이코패스'라고 한다. 장 자크 루소가 나타나 칼뱅의 공포정치를 완전히 끝내는 사상의 혁명을 이룰 때까지 제네바 시민들은 무려 2백 년 동안 자유와 개성과 다양성이 사라진 무덤 속에서 삶의 의미와 환희를 빼앗긴 채 살아야 했다.(본문에서)

'광신자', '사이코패스','아무 죄책감도 느끼지 않은 채 수많은 사람을 고문으로 죽였다'같은 말은 신학교에서 배우지 않는다. 당연히 가르칠 마음도 없다. 아마 유시민 주장에 칼뱅주의자들은 '거짓말'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칼뱅 신학사상에 영향을 받은 청교도가 아메리카로 건너가 미국을 건국하고 그 정신이 면면히 이어나온 것을 안 다면 유시민이 주장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칼뱅주의자만 아니라, 개신교의 절대주의와 배타주의는 태생적으로 타종교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거북하지만, 칼뱅주의자들은 유시민의 신랄한 비판을 새겨야 할 것이다.

"직업으로서 정치를 떠난" 유시민은 황폐해진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돌아올까? 유시민은 지난 2007년 8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자연인 유시민은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별로 안 행복하다. 더 행복한 길이 다른 데 더 있는데…."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유시민에게 정치는 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한 사람의 생애가 자기가 바라는 마음으로 채워지기 어렵다. 내가 선출직 공직자로서 갖는 책임감이 있는 한편, 자유와 개인적 행복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늘 후자가 우세한 분위기에서 정치생활을 했다면 최근 2년 동안에는 책임의식이 지배적이었다. 지금은 책임의식이 주도하고 있다. 자유의 길은 접었다.

사람은 누구나 복수의 페르소나(persona)를 가지고 있다. 집에서 자상한 아버지가 혹독한 상사가 될 수 있고, 학교에서 인기짱인 남자가 애인에겐 폭력남이 될 수 있다. 나는 공직자로서 마땅한 페르소나를 표출하지 못했다. 마음의 힘이 곧 내공인데 그런 점에서 박근혜씨를 보면 자기를 통제하는 능력이 놀라운 사람이다. 초인 수준이다. 내가 배워야 할 점인데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에게 굉장히 필요한 강점이다."-2007.08.22<오마이뉴스>"내가 싸가지 없다고? 맞는 말이다. '유시민 지지' 떳떳히 말 못한 '유빠'에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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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대통령으로 '좋은 놈' 한번 뽑아봅시다 | 정치 2012-07-28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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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이엠피터의 놈 놈 놈

임병도 저
책으로여는세상 | 2012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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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놈 놈 놈'이라는 책이 왔어요!"

"뭐라고? 그런 책이 어디 있니?"

"정말이예요. 이 책 보세요." 

 

지난 20일 막둥이가 건넨 책에는 분명 큼직하게 '놈 놈 놈'이라는 책 제목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눈 나쁜 나에게도 선명한데 안경 안 쓴 막둥이에게는 오죽하랴. 하지만 막둥이는 초등학교 5학년일 뿐이다. 책 제목의 내밀한 뜻을 알 리가 없다. 책을 받아들었다. 순간 제목 하나 참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놈'이란 그다지 좋은 뜻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듯이, 우리 글도 자세히 읽고 글쓴이 의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의 본명은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블로그 필명(아이엠피터)은 잘 알고 있다. 블로그 하는 사람, 특히 시사 블로그를 하는 사람 중 그를 모른다면 시쳇말로 '간첩'이다. 나 역시 하루에 꼭 한 번은 들어간다. 정치블로거 중 그보다 탁월한 글쟁이는 없을 것이다. 이런 그가 책 한 권을 펴냈는데 제목이 <놈 놈 놈>(임병도 씀, 책으로여는세상 펴냄)이다. 물론 원래 제목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다. 

 

마음속에서 '왜 대한민국은 평범한 사람이 보기에도 이상한, 전혀 상식 밖의 이들이 벌어지고 있지?'라고 고민을 시작했다.

 

아이엠피터는 '상식적인 사회를 꿈꾼다'고 했다. 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기술 대학원 원장도 자신을 "상식파"라고 했다. 대학원 다닐 때 한 교수님은 귀가 따갑도록, 끊임없이 말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라고. 상식의 사전적 의미는 "일반적인 사람이 다 가지고 있거나 가지고 있어야 할 지식이나 판단력"이다. 이게 지금 무너져버린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상식을 가지고 지난 4년을 이끌었다면 대한민국 현재 모습이 이렇게까지는 망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환경에 대한 상식이 있었다면 4대강을 밀어붙이지 않았을 것이고, 민주주의에 대한 상식이 있었다면, KBS 정연주 사장을 내치지 않았을 것이고, 거의 안하무인인 김재철을 MBC 사장에 앉혀 언론장악을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 달 조회수 50만... '상식사회' 꿈꾸는 정치블로거

 

이명박 정권 들어 정치블로그는 알게 모르게 '자기검열'을 했다. 나 역시 업쭙잖은 정치블로거 행세를 하고 있지만 자거검열을 많이 했다. 하지만 그는 꿋꿋하게 글을 썼다. 하루에 한 편씩 쓰는 그의 글을 보기 위해 한 달에 50만 명이 찾는다.

 

그의 주 타깃은 당연히 우리 '가카'이다. 아이엠피터는 이 책의 3장 '대한민국을 사유화한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패밀리들' 모음 글 중 '대통령 패밀리들만을 위한 노블리스 오블리제' 글에 다음과 같이 썼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설, 자신의 아들을 히딩크와 사진 찍도록 했다. 그 자리에는 4급이상 공무원과 기자들만 참여할 수 있었더.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 것이다.

 

 

히딩크가 명예 서울시민증을 받던 그날, 시청 바깥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특히) 아이들이 먼발치에서라도 히딩크를 보기 위해 아침부터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줄임)

 

그런데 수여식이 열린 바로 그 자리, 4급 이상 공무원과 취재진만 들어갈 수 있었던 그 자리에 아들 이시형은(이명박 사위도 있었다) 당당하게 들어가 있었다. 그것도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은 채. 더구나 살짝 들어가 멀리서 히딩크를 본 것만도 아니고 대놓고 무대 위로 올라가 히딩크와 사진까지 찍었다.

 

다른 내용도 있지만 이것 하나만 봐다 이 대통령은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비상식파'다. 대한민국에서 비상식파는 이 대통령만 아니다. 많다. 그중 한 사람이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해도 '대세론'이었는데 상식파 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의 광풍이 흔들리고 있다.

 

박 의원은 '5.16군사반란'을 "구국의 혁명", "대한민국 초석을 낳았다"고 했다. 이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는 기초 상식도 갖추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아이엠피터는 '여왕의 부활'이란 글에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원내대표로 있을 때 박근혜 의원과 만난 사실을 떠올린다. 당시 이 만남은 언론도 다루었는데 집권당 원내대표가 평의원을 만나기 위해 이곳 저곳을 다니고, 기다렸다.

 

당시 한나라당은 172명의 의원을 보유한 거대 정당이었다. 그 거대한 정당 원내대표가 일개 신하처럼 박근혜에게 달려가 의견을 묻는 모양새가 과연 정당정치가 제도화된 나라에서 있을 있는 일일까? 대한민국 최대 정당의 권력이 박근혜 일개 개인에게 있는 듯한 모습을 보면서 그들에게 있어 박근혜는 여왕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좋아하는 새누리당 아닌가? 미국은 원내대표가 실질적인 당 지도자다. 미국 같았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미국과 우리나라 정치현실이 다르다. 그래도 원내대표가 평의원을 '쪼르르' 찾아갔다. 박 의원이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 상식이 있었다면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박근혜은 평의원 시절, 황우여 원내대표를 자신에게 '쪼르르' 찾아오도록 만들었다. 민주주의 상식이 없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다 그놈이 그놈이라고? '좋은 놈'도 있다

 

아이엠피터는 이들 외에도 전두환, 나경원, 오세훈을 '상식'이라는 칼로 비판했다. 그들은 민주주의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비상식파'라는 말이다. 아이엠피터 말을 빌리면 '나쁜 놈'들이다.

 

그런데 그가 유일하게 '상식'에 바탕한 정치인을 꼽았는데 문재인 민주통합당 의원이다. 강기식(전 <경향신문> 편집국장)은 추천글에서 "그는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노골적으로 호소합니다. 문재인은 '좋은 놈'이기 때문이라는 그의 확신이 책 제목에서부터 확 느껴집니다"고 말할 정도이다. 아이엠피터는 문재인을 지지하는 이유를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문재인"이라고 했다.

 

나는 철저히 시민의 눈으로 문재인을 바라본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보고 있다. 정치에는 수많은 변수가 있지만 내가 시민의 눈으로 문재인을 바라본다는 것은 그에게서 '상식의 정치'를 바라보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 아이엠피터는 일명 '문재인 알바'일까? 아니다. 그가 문재인 의원을 만난 것은 노무현 재단에 취재하러 갔을 때 주차장에서 만난 것이 전부다. 물론 아이엠피터의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가 실현될지 아무도 모른다. 현재 지지율로만 판단하면 안철수-박근혜-문재인으로 3위이다.

 

하지만 결과가 어떠하든, 중요한 사실 하나를 그의 글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정치인은 모두 똑같다'는 말이 틀렸다는 점이다. 사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 보면 조국 해방 후 대한민국 60년 기득권을 유지한 이들이 주장하는 말이다. 다들 속았다. 정치가는 다 같은 '놈'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군사반란'을 일으켜 집권한 박정희·전두환과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같은 '놈'인가?  민주주의에서 '절대'란 존재할 수 없지만, 이들은 절대 같은 정치인이 아니다.

 

아이엠피터는 바로 정치인들은 다 똑같은 '놈'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그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 있다. 단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 관련 기사를 100편 이상 읽고, 관련 논문이나 보고서를 최소한 10~20편을 참조하면서 글을 쓴다고 한다. 흡사 산고와 같은 노력이다.

 

이런 글쓰기가 12월 19일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이 상식 있는 좋은 사람이 당선되는 데 작은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그는 자신의 아이들이 먼 훗날 책을 읽으면서, 대한민국이 참으로 행복해졌다고 이야기를 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는 지금은 참으로 불행한 나라라는 말이다. 불행한 나라를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없다. 내 아이들도 아빠 나이가 되었을 때는 '상식 있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를 바란다면, 그럼 12월 19일 상식 있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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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인, 어떻게 투표할 건가요 | 정치 2012-03-28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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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어떻게 투표할 것인가

김선욱,백종국,김회권 등저
IVP | 2012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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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를 북한이 장악한다면 일제 치하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 될 텐데, 현재 김정일 아들 김정은과 남한 내 좌파세력이 가장 미워하는 것이 미국, 이승만 대통령, 재벌, 그리고 기독교다. 공산주의는 교회를 다 때려 부수고 있으므로 마귀의 사상으로, 우리가 적화통일 시도에 맞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기독자유민주당이 이번에 대거 국회로 들어가 적색당 국회의원 수염이라도 잡고 늘어질 용기를 갖고 사상무장·신앙무장에 힘쓰자."

 

김홍도 목사(금란교회)가 지난 3월 1일 기독교지도자협의회(대표회장 신신묵 목사)와 나라와교회를바로세우기위한 국민운동본부(대표회장 최병두 목사) 주관으로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기독교 범교단 단체 및 애국 단체 연합 3.1절 기념대회' 설교에서 한 말이다.

 

김홍도 목사 "기독당 국회 들어가 적색당 의원 수염 잡게 힘쓰자"

 

눈에 띄는 단어 중 하나가 '기독자유민주당'입니다. 설교시간에 특정 정당을 이렇게 지지해도 선거법 위반이 아닌지 궁금하다. '친북세력 척결'을 '하나님이 주신 사명'쯤으로 여기는 목사라고 쉽게 넘길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기독인들은 4월 11일 치러지는 총선에서 투표를 어떻게 할지, 그 기준은 무엇인지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홍도 목사의 절규(?)처럼 적색당을 없애기 위해 기독민주당과 새누리당 같은 보수우익 정당를 지지해야 할까. 아니면 민주당과 진보정당을 지지해 김홍도 목사 우려처럼 대한민국을 '붉은 물' 넘실 거리는 나라로 만드는 일에 동참해야 할까. 참 어렵다. 이런 고민을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불식시켜주는 책이 하나 나왔다.

 

기독교출판사인 한국기독학생회(IVP)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통해 어떻게 투표할 것인가를 9명의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이 모여 있는 <어떻게 투표할 것인가?>라는 책이 바로 그것. 기독교 전문가들이 주장한 것이기 때문에 비 기독교인들은 거부감이 들 수 있지만, 이런 선입관을 버리고 정독하면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으로 보인다.

 

기독인, 어떻게 투표할 것인가

 

이 책은 지난 2월 14일에 열렸던 '그리스도인의 정치 참여: 어떻게 투표할 것인가' 심포지엄에서 각 분야의 기독교인 전문가 아홉 명이 발표하고 토론한 내용을 정리하여 엮은 것으로, 기독교인들의 시민적 정치 참여에 대한 포괄적인 가이드를 제시하고 있다.

 

내용은 그리스도인의 정치 참여 원리와 한국 사회의 핵심 정책 이슈들에 대해 논의로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들은 각각의 전문 분야인 4대강, 핵에너지, 공교육 개혁, 세제 개혁, 재벌 개혁, 한미FTA 등 최근 한국 사회의 핫 이슈들을 조명하였으며, 최선의 기독교적 주장을 제시하되 이를 바탕으로 독자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특히 부록으로 '투표를 위한 체크리스트'를 수록하여, 핵심적인 내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해 놓음으로써 책을 통독하면 '묻지마 투표'가 아닌 제대로된 투표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인애, 공평과 정직' 없는 후보자, 기독 유권자 선택대상 아냐

 

경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백종국 교수는 정치학자의 입장에서 한국 사회에 필요한 바람직한 정치가 방해받는 원인을 천민자본주의라고 진단한다. 이를 기독인들이 어떻게 극복한 것인지 대안을 제시하는 데 하나님 성품인 '인애와 공평과 정직', 이를 실현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목표라고 주장한다.

 

천민자본주의 이론적 도구인 신자유주의는 굶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는 것이 시장을 교란하고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켜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해를 끼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들을 사랑하는 하나님 인애와 배치된다. 그러므로 기독 유권자들은 "오로지 시장의 자유와 국제경쟁력만 부르짖는 후보들은 인애를 추구하는 그리스도인 유권자들에게 선택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백 교수 견해다.

 

양극화, 돌봄적인 인애와 계약 공동체로 접목해야

 

김회권 교수(숭실대 기독교학과)는 우리 사회를 멍들게 하는 '황금만능주의' 경제논리에 눈뜰 것을 촉구한다. 구약성서학을 전공 김 교수는 성경에 나타난 경제 사상 핵심을 '압제에 대해서는 자유', 개인주의는 계약 공동체, 1%와 99%로 나뉜 빈부 양극화는 희년을 통한 형평의 정치를 촉구한다며 현실에서 이를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한 경쟁을 동력으로 삼아 개인을 동력화하고 생산성을 높이라는 한국 사회에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해서든지 상호 돌봄적인 인애와 계약 공동체주의라는 성경적 진리를 접목시키는 데 앞장서야 한다."(본문 103쪽)

 

과연 이를 정치를 실현한 정당과 후보가 누구인지, 시간을 낸다면 충분히 찾을 수 있다. 특히 한국교회가 '신자'니, '장로'에 의한 '묻지마 투표'를 했다가 지난 4년 동안 대한민국이 어떻게 되었는지 안다면 다시는 종교를 빌미로 표를 달라는 후보는 찍지 말아야 한다.

 

하기사 정치인보다 더 한국교회가 물질주의에 빠져 있고, 자본주의화되어 있다. 예배당 짓는데 2000억 원이 들어가고, 잊을만하면 교회 헌금을 횡령했다는 언론보도를 접하고, 헌금하면 복 받는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설교를 남탓할 것 없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피조물이 고통받는 것, 그리스도인 사명 감당하지 않았기 때문

 

김정욱 교수(서울대 환경대학원 명예교수)는 '땅을 정복하라'(창1:28)와 프란시스 베이컨이 "자연이란 것은 인간에 의해 길들여져야 하고, 인간은 이 자연을 길들이기 위해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오늘날 환경 문제를 야기 시켰다는 주장이 있어왔음을 상기시킨다. 이는 미국 청교도에게 영향을 끼쳤고, '개척정신' 토대가 된다. 이것이 한국교회에도 영향을 주었다. 자연을 지배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다. 나 역시 얼마 전까지만해도 자연은 정복 대상으로 생각했다.

 

4대강 삽질을 '살리기'라고 아직도 우기는 이명박 대통령(지난 12월 장로은퇴)도 어쩌면 창세기 1장 28절에서 알게모르게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숱한 기독인들이 4대강 삽질을 찬성하는 것 역시 자연을 정복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김정욱 교수는 "땅이 오염되고 그 안에 있는 피조물이 고통 받는 것은, 천만이나 되는 그리스도인이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인간의 죄악으로 고통받는 피조물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당연히 4대강 원상복구다. 원전, 지역개발 공약 남발 따위에 면밀히 살펴보라고 한다. 환경 정책에 대한 기준점을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학벌주의, 대학 서열화, 교육양극화 극복, 학생을 위한 교육 정책을 어느 정당과 후보가 제기하는가를 자세히 살펴보라고 조언한다. 이 정도면 4월 11일 치러는 19대 국회의원 선거는 '묻지마 투표'는 안할 것이다.

 

선거가 유권자 욕심 확인하고 실현하는 기회로 여기면 안 돼

 

중요하지 않은 선거는 없지만 이번 총선은 정부수립 후 18번 치렀던 선거 중 가장 중요한 역사의 변곡점이 되기에 충분하다. 이 책은 이렇게 끝맺는다.

 

"오늘의 한국문화는 총체적 위기 속에 있다. 근본적인 이유는 이 땅이 맘몬의 지배하에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 최고 가치는 돈에 있지 않은가?  이런 문화는 국가를 기업처럼 만들고 정치 지도자가 CEO를 자임했던 지난 몇 년간 더욱 악화되어 왔다. 돈이 전부는 아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선거가 유권자 자신의 욕심을 확인하고 그것을 실현할 기회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선출되는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책 속에 가치를 구현하려 할 때 우리나라는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나라가 될 것이다. 그래서 투표는 내가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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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새로운 연애

문성근,10만인클럽 공저
10만인클럽 | 2012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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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나 하면, 1994년이었다. 경남 진주에서 경기 수원까지 매주 통일호를 타고 오려내렸다. 7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어떤 때는 동행이 있어 괜찮았지만 얼마나 지루한지 모른다. 설혹 동행이 있더라도 7시간 내내 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10월 어느 날 수원역에서 내려 학교까지 버스를 타고 가는 데 <너에게 나를 보낸다>는 영화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첫 느낌를 표현하자면 백만 볼트가 온 몸에 흐르는 경험이었다. 그 때 다짐했다. 어떻게 해서든 저 영화만은 보겠노라고.

 

문성근, '야한 배우'로 첫만남

 

신춘문예에 당선됐다가 표절 시비에 휘말려 도색소설을 쓰고 있는 '문성근(나 분)'을 그렇게 처음 만났다. 학교 하루 빼 먹으면서까지. 그 때는 그가 문익환 목사 아들임을 몰랐다. 아주 야한 영화에 나오는 영화배우쯤으로 첫만남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책상위에 걸터 앉아 우리말을 또박또박 빈틈없이 하는 그를 보면서 그냥 야한배우가 아니라 '생각'있는 연예인으로 다가왔고, 어느 날인지 몰라도 문익환 목사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2002년 노무현을 울렸던 심연에서 울리는 연설을 들어면서 사람 살리는 세상을 위해 그가 얼마나 격정과 열정을 가졌는지 느꼈다. 직업이 목사라 교만을 조금 부리면, 연설을 하는 사람의 목소리와 얼굴 모습만 보아도 사람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한다. 아버지 문 목사를 참 많이 닮았다는 나름대로 판단을 했다.

 

이런 문성근을 책으로 만났다. 아니 '읽었다.'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이 발간한 <새로운 연애-"문성근을 읽다>를 통해서다. 사람을 '본다'가 아니라 '읽다'로 표현한 것이 흥미롭다. 본다는 감성에 가깝지만 읽다는 이성에 가깝다. '문성근'이 풍기는 그대로다.

 

물론 문성근은 책에서 "아버지 교수, 삼촌 교수, 작은고모 박사, 뭐 다 그런 식었다"면서 "다들 정신세계가 저보다 엄청 높은 분들이인까. 주눅 들어서 살았다"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지만 말을 알아들을 때부터 식탁에서 늘 들었던 역사, 정치를 이야기를 듣고 부친 문익환 목사를 통해 우리말을 제대로 배운 것이 몸에 배였는지 감성보다는 '이성'에 더 가까운 사람으로 다가온다.

 

그런 그가 2002년 노무현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했다. 노무현의 '눈물'은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노무현 눈물'은 다시 나올 수 없는 영상"이라고 했다. 자신의 '부고장'만 아니면 다 좋다는 정치인에게 진짜 눈물을 흘리게 한 그 힘은 과연 어디서 왔을까.

 

10년 전 노무현을 울리게 한 그가 이제 "15분 후면 내 육체의 생명이 끝나지만 나는 역사 속에서 살아갈 것"이라며 "내가 이렇게 싸안고 갈 테니 당신들이 좀 해주시라"는 울림을 더 이상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문성근은 노무현 대통령 유언을 해석하는데 1년 10개월이 걸렸다고 했다. 그 집요함과 열정이 심연에서 자리하고 있었기에 노무현은 그의 연설을 들어면서 울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문성근은 이제 '새로운 연애'에 나섰다. 정치와 연애. 정치를 연애하듯이 하겠다는 그를 보면서 이성이 아닌 참 감성적인 사람으로 다가왔다.

 

문성근이 바라는 세상은 '사람사는 세상'

 

원래 이성이란 참 메마르다. 옳고 그름은 분명하지만 사람냄새를 맡기 힘들다. 그런데 감성은 사람냄새가 난다. 감성은 느낌이다. 그러므로 옳고 그름으로 사람을 재단하지 않는다. 울면 웃고, 웃으면 웃는다. 슬프면 슬퍼하고, 즐거워하면 즐거워한다. 이런 사회가 정말 사람사는 세상이다. 문성근은 자기 꿈이 "통일된, 사람사는 세상"이라고 했다. 이를 이루기 위해 '민란'에 나섰고. 정치에 발을 내딛었다. 새로운 연예를 한 것이다.

 

같은 시간,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 줄에 선 사람은 250만원, 비정규직 줄에 선 사람은 150만원 받는 사회는 사람사는 세상이 아니다. 이런 세상을 바꾸고 싶어 그는 민란을 시작했고, 정치와 연예를 시작한 것이다.

 

연예는 내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을 그에서 주는 것이다. 문성근이 정치를 새로운 연예로 규정했는데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왜 일까?

 

문성근을 '살인마(판곤)'으로 만든 것은 <조선>....

 

문성근을 영화에서 다시 만난 것은 2009년 김성홍 감독이 만든 <실종>에서 노모를 모시고 양계장을 하면서 달걀을 팔고나 단골로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백숙을 파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판곤'을 통해서다.

 

하지만 그 달걀과 백숙은 '사람을 잡아' 만든 사료를 먹은 자란 닭이었다. 한 마디로 판곤은 '살인마'였다. 함께 영화를 했던 추자현(현정 역)씨는 "진짜 살인마 같아서 너무 무섭다."고 얘기할 정도였다. 빈틈없는 집중력으로 캐릭터에 몰입한 문성근은 급기야 극 중 판곤이 감금한 현아에게 가혹행위를 하는 장면에서 감정 통제가 되지 않는다며 "이러다간 정말 현아를 다치게 할 것 같다"고 말해 연출자인 김성홍 감독과 스태프들을 당황하게 했다(다음 영화 '실종' 제작노트 참고).

 

스스로 감정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문성근을 살인마라는 악역을 이끈 힘은 누가 주었을까. 문성근은 이렇게 말했다.

 

결정적으로 악역에 자신이 붙은 건 참여정부 1,2년 차쯤 '조선일보가 악역이구나' 싶었어요. 조선일보는 조선일보 이익이 있고 그 이익과 민족사, 민주주의,민주공화국 이런 게 관계가 없는 거예요. 그러면서 남북분다, 동서 지역구도라는 지극히 상대적인 개념을 비집고 들어와 농락하는 거지요. 자기 패밀리의 이익을 위해, 말은 민족을 위해, 국가를 위한다고 하지만 제가 보기엔 저주거든요. 저주 마케팅을 하는 거예요. 그 저주로 얻는 건 뭐냐, 권력이죠. 그게 악이라는 거예요. 그걸 알아차리라고는 그 뒤부턴 악역을 기가 막히게 했습니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잡히지 않는 악의 정체가 확 오더라고요.

 

 

우리 역사에 죄 짓지 말자

 

그렇다. 조선일보는 오로지 조선일보 사익을 위해 존재하는 언론이다. 아니 언론이 아니라 저주의 본산이다. 조선일보라는 거대한 악이 1%가 대한민국 이익을 독점하는 구조로 만들었다. '어큐파이 조선일보'를 부르짖어야 할 정도이다. SNS시대기 도래하면서 조선일보의 의제 설정 능력이 이전보다 못하지만 아직도 종이신문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졌다. 표독스럽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가 살아있는 한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까? 문성근은 이런 말을 했다.

 

노무현의 죽음도 끔찍하지만 우리 역사가 흘러온 과정 전체를 생각해보면 죄송해서 견딜 수 없었다. 나라 꼬라지가 이런 게. 그럼 문익환은 왜 개고상을 했느냐. 문목만 아니라 전태일부터 그 많은 사람들 발버둥 쳐서 겨우 요만큼 왔는데 어디서 괴물이 나타나서 역사를 이렇게 쑤셔 박느냐. 기가 막히는 거지. 노무현이라는 사람의 죽음, 김대중 선생의 절규도 정말 무겁지만 그냥…, 역사에 살아 있는 것이 죄송하다.

 

이 글을 읽는 순간 파르르 떨렸다. 결론은 이렇다 우리 역사에 죄 짓지 말자. 제대로  투표해서. 조선일보의 저주를 끊어 제대로된 민주세상을 한 번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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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인민 스스로 쟁취하는 것 | 정치 2010-04-2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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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후불제 민주주의

유시민 저
돌베개 | 2009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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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에 명시된 이 위대한 명제는 너무나 분명하고 확실했기에 헌법 조문에만 있어도 별 문제될 것이 없다고 우리는 지난 20년 동안 생각했었다.

 

하지만 우리는 2년 전 광화문에서, 부산, 광주, 대구, 대전 그리고 자기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 뜨거운 마음으로 불렀다. 시민들이 민주공화국을 외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공화국은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시절에도 헌법 제1조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때는 헌법 조문에만 있었을 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전제정권'이라 불러도 상관 없을 정도로 민주공화국은 위협받았다. 그리하여 수많은 이들이 민주공화국을 현실에서 이루기 위해 피를 흘렸다. 그 대가를 통하여 민주공화국은 헌법조문만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민주공화국이 현실이 되자 우리는 피를 통해 얻은 이 대가를 너무 쉽게 잊어버렸다. 민주공화국은 선불제로 이미 값을 다 치렀다는 안일한 생각에 빠져버렸다.

 

이 안일한 생각이 지난 2년 동안 우리가 치른 경험이었고, 다시 우리는 민주공화국을 위해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지은 <후불제 민주주의> 1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지금도 읽어야 할 책이다. 유 전 장관이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은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손에 놓은 일종의 '후불제 헌법'였다면서 "그 '후불제 헌법'이 규정한 민주주의 역시 나중에라도 반드시 그 값을 치러야 하는 '후불제민주주의'"였다고 강조한다.

 

"헌법이 담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 조항 하나하나에는 인류의 문명사가 들어 있다. 자유와 평등, 인권과 평화, 복지와 사회적 안정을 갈망하는 인간의 오랜 꿈을 담은 헌법 조문들은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고뇌하고 싸우고 노력하고 헌신한 동서고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과 피로 쓰였다. 제헌헌법 덕분에 우리 국민들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얻었다. 양성평등이 대중적 의제가 되기도 전에 여성들이 동등한 참정권을 부여받았다. 산업화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노동3권이 주어졌다. 대한민국은 시민혁명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민주공화국이 된 것이다." (본문 23쪽)

 

즉 너무 쉽게 우리는 민주공화국으로 진입했다는 유 전 장관 주장을 언뜻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우리는 분명 4․19혁명과, 광주민중항쟁, 1987년 6월 항쟁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구 사회가 민주주의를 위하 치른 대가를 보면 피의 역사다.

 

한 예로 로자 룩셈부르크와 카를 리프크네히트에게 까지 영향을 끼친 로마 노예들을 위해 싸우다가 희생당한 스파르타쿠스, 프랑스 혁명처럼 민주주의는 피를 흘리지 않으면 결코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4․19혁명과, 광주민중항쟁, 1987년 6월 항쟁도 피의 역사다. 서구와 다른 점은 우리는 '민주공화국'을 세우기 위해 피의 역사를 경험한 것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으로 출발했지만 독재자들이 이를 배반했을 때, 우리는 그것에 저항한 것이고, 서구사회는 민주공화국 자체를 위해 피를 흘린 것이라는 점에서 서구 사회와 우리는 민주공화국 진입이 달랐다는 것이 유시민이 주장이다.

 

서구와 우리 사회가 민주공화국으로 편입하는 과정 달랐지만 우리는 그들이 흘린 피의 대가로 민주공화국이란 선물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이를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린 것이다. 한 번 주어지면 계속 주어질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하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권력자는 항상 이 민주공화국이 온전히 실현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인민이 권력자와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유 전 장관은 민주주의는 권력자가 경고는 새겨야 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상식과 교양이 부족한 지도자는 민주주의에 대한 일시적 위협 요인이 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런 면에서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주권 의식과 책임 의식이 부족한 국민 자신이다. 억제할 수 없는 주관적 욕망에 사로잡혀, 아무런 방법도 제시하지 않은 채 그 욕망을 무제한 충족시켜주겠다고 공언하는 거짓 구세주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는, 그리고 그 욕망이 충족될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면 가차 없이 돌아서서 또 다른 메시아를 고대하는 무책임한 주권자는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한다. 결국 민주주의는 시민 개개인이 스스로를 계몽하고 발전시키는 꼭 그만큼씩만 앞으로 나아간다." (본문53쪽)

 

권력자는 항상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행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은 특히 더 그 성향이 강하다. KBS․YTN․MBC를 장악하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비판세력 자체를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그를 우리가 뽑았다는 점이다. 나의 욕망 때문에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내팽개쳐버린 것이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자신을 계몽한 것만큼 발전한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주장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를 너무 쉽게 잊어버린 것이다.

 

유시민은 유신헌법을 만든 이들을 '양복 입은 침팬지'라고 일갈한다. 유신시대만 양복입은 전문가가 존재한 것은 아니다.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 '평화의 댐' 사건에서도 우리는 양복 입은 침팬지를 보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무슨 상황이 발생하면 전문가들은 자기 나름대로 논리를 들어 원인을 분석하지만 실은 권력자가 바라는 것을 변호해주는 것이다. 유시민은 바로 이 양복 입은 침팬지를 제압하지 않으면 "문명이 야만으로 복귀한다"면서 결국은 대한민국은 완벽한 파시즘 국가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침팬지 무리가 성문헌법을 도입한다면, 제1조는 이렇게 시작되는 게 합당하다. 우리나라는 전체주의 국가이다. 우리나라의 주권은 '짱'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짱'에게서 나온다. 힘이 제일 센 수컷이 '짱'을 먹는다. 이 나라는 완벽한 파시즘 국가다. 제2조 영토 조항은 아마 이런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 영토는 강 옆 바나나 숲에서 뒤쪽 봉우리까지이며 허락 없이 여기 들어와 과일을 따 먹는 놈은 모두 죽인다. '짱'은 모든 암컷들에 대한 성적 결정권을 가진다는 둥, 수컷들은 예외 없이 사냥 참가 의무를 진다는 둥, 마초 스타일의 파시즘 국가에 어울리는 조항들이 그 뒤를 이을 것이다." (본문 81쪽)

 

우리는 거의 '파시즘'과 비슷한 시대를 경험한 일이 있다. 이승만은 '국부'로, 박정희는 '영도자'로, 전두환은 가뭄이 있는 곳에 가면 '단비'를 내리는 대통령으로 추앙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민주주의를 외치는 자들을 옥죄이고, 총으로 무참하게 짓밟았다.

 

다시는 이런 경험이 우리에게 없어야 한다. 이유는 간단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이다. 민주공화국은 한 마디로 인민이 주인이라는 말이다. 대통령이 주인이 아니라 인민이 주인이다.

 

유시민은 "우리 마음 속의 왕을 죽여야 민주공화국이 산다. 대통령을 왕으로 생각하는 견해는 우리의 문화유전자 안에 남은 침팬지의 그림자일 뿐"이라며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아니며 또 그래서도 안 된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들어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려고 한다. 공권력은 그 옛날 대통령을 비판하면 무조건 잡아 갔듯이 2010년 경찰도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하라"는 펼침막을 걸었다고 잡아간다.

 

정말 한심한 일은 대통령과 집권세력은 텔레비전에 나와 국민이 법을 잘 지키는 것이 법치주의라고 설교하면서 자신들은 잘 지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은 법원이 전국교직원노조 명단을 일반에게 공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린지 4일 만에 공개했다. 법원 판결까지 무시해버리는 대단한 국회의원인 것이다.

 

이런 국회의원에게 유시민이 말한 "법치주의를 무너뜨리고 주권자인 국민에게 도전하는 발칙한 망동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는 경고를 들려주고 싶다. 자신들은 법치주이를 무너뜨리고 주권자인 시민에게 도전하면서 시민들은 법을 지키라고 강조하는 비극이 2010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러니 민주주의는 후불제이다. 끊임없이 값을 치러야 한다.

 

"대한민국은 앞으로 더 거세질지도 모르는 이 풍파를 잘 헤쳐 나갈 것이다. 많은 고난과 희생이 따르겠지만, 그 누구도 한번 자유를 맛보고 권리의 소중함을 체험한 국민들을 다시 권력에 대한 두려움과 맹목적 추종의 본능 아래 복속시킬 수 없다고 나는 믿는다. 동량재가 될 나무는 응달에서 자란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모진 비바람 속에서 뿌리 깊은 나무가 선다. 이 시련을 통해 한국 사회는 권력자의 선의에 의지하지 않는 민주주의를 제대로 세우게 될 것이다."(본문 46쪽)

 

민주주의에 대한 선의가 별로 없는 이명박 정권, 이 정권이 지배하는 2010년 우리는 민주공화국을 위해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민주공화국을 지키고, 발전 시킬 책임은 권력자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임을 명심해야 한다. 민주공화국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보따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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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인 당신은 역사가 될 준비와 행동을 하는가? | 정치 2010-01-0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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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진보의 미래

노무현 저
동녘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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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 시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직도 호흡하고 있는 남은 자들에게 남긴 말로 새기고 새겨야 할 말이다. 권력 정점에 섰던 권력자들 중 '시민'을 향하여 깨어있으라고 촉구한 이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없었기에 이 말은 아직도 우리 가슴을 울리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생각하는 '시민'은 누구일까?

 

노 전 대통령이 사람들 생각을 바꾸고, 우리 사회 공론 수준을 높이고,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남기기 위해 구상하고, 준비했지만 그만 유작이 된 <진보의 미래>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시민이란 자기와 세계의 관계를 이해하는 사람, 자기와 정치, 자기와 권력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적어도 자기의 몫을 주장할 줄 알고 자기 몫을 넘어서 내 이웃과 정치도 생각할 줄 아는 사람"(295쪽)

 

시민이란 결국 '나'만을 위해 사는 자가 아니라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는 자,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을 꿈꾸는 자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지금 이 더불어 사는 세상을 바라지 않고 있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은 더욱 더 경쟁을 부추기고, 이겨야 산다고 말한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노무현은 "민주주의든 진보든 국민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만큼만 가는 것 같다"면서 "시민운동, 촛불, 정권도 이 한계를 넘어설 수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즉,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을 탓하고 비판하기 전에 '시민'인 바로 당신 자신이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깨어있어라는 말이다.

 

그렇지 않고 시민이 머물면 역사와 민주주의도 머물고, 후퇴하면 역사와 민주주의도 후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깨어 각성하는 시민이 되면 역사와 민주주의는 진보한다는 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각이다. 그럼 노 전 대통령이 바라는 역사의 진보는 무엇인가?

 

"우리는 역사가 돈의 편이 아니라 사람의 편으로 가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다만, 그 막강한 돈의 지배력을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모든 힘을 다 짜내고 이를 지혜롭게 조직해야 할 것입니다".(21쪽)

 

깨어있는 시민이 만들어가는 진보란 시민이란 결국 '돈'의 노예가 아니라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다. 무엇인가 다르다. 2010년 권력 정점에 있는 분은 강을 파헤치고, 거대한 보를 쌓으면 '잘 살 수 있다'고 밀어붙이고 있다. 사람과 자연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돈'만 벌면 좋다고 밀어붙인다. 당연히 돈이 아니라 사람 편에 서라는 그의 외침이 그립고, 그립지만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 결코 적지 않음을 우리는 알게 된다.

 

그럼 시민은 어떻게 그 진보를 이루어야 하는가. 사람이 돈이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노무현은 말한다. "권력은 시민에게 있다"면서 "시민은 권리를 찾아야 한다. 시민이 주권자로 권리를 찾고, 올바르게 행사 해야 한다. 권리이자 의무이다.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시민 자신이 권력 주체임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이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야바위 같은 논리와 선전이 난무한다"고 노무현은 말한다. 그러면서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고 길을 찾을 수 있는 시민의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면서 "학습하고 생각하는 시민"이 돼라고 촉구한다. 학습하고 생각해야 할 시민이 이 사실을 망각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하면서 다시 한 번 시민의 생각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 시민은 물러서 있다. 민주공화국 시민이 자신의 권리가 침해받고 있는데도 깨어있거나 행동하는 양심으로 서 있지 못하다. 이런 현실에 대하여 안타까워하면서 시민에게 공부하라고 촉구하면서 '시민의 생각이 역사가 된다'고 부르짖는다.

 

"보수는 강자의 철학, 진보는 약자의 철학이에요. 그런데 왜 약자가 강자의 정책에 표를 던질까? 정치는 왜 강자인 소수의 편을 드는가? 왜 다수 서민에 의해 선출된 정권이 소수 부자의 논리를 수용하는가? 정책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역사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결국 시민이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 시민의 생각이 역사가 된다."(149쪽)

 

  
<노무현과 함께 하는 2010년>
ⓒ 노무현재단

강자가 약자를 위해 해주는 일이 없는데도 약자는 끊임없이 강자에게 표를 주었다. 왜 그런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시민'이 생각하지 않고, 깨어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결국 시민은 공부하고, 학습해야 한다. 공부하고, 생각하는 시민인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정권'을 바꾸는 것, 물론 맞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이 없으면 안 된다. 그럼 어떤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가? 바로 "부모와 아이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경쟁, 성공할 수 있는 교육, 패자에게도 가혹하지 않는 사회, 승자와 패자가 더불어 사는 사회, 이런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정책이다. 그리고 진보주의는 경쟁력과 일자리, 빈부격차를 완화할 수 있는 비전을 내놔야 한다.

 

이를 해결하는 방향은 '교육'이다. "우리들 전략은 무엇이냐, 아주 무식한 수준의 질문인데, 결국 사람들한테 마지막으로 하게 되는 메시지는 무엇이냐? 결국 교육이다. 교육의 균등, 그것을 위한 공공적인 투자, 인간에 대한 투자, 교육…사람에게 향하고 사람을 존중하는 방향성이 필요하다.

 

진보는 버스가 비좁아도 '같이 타자'는 것이고, 보수는 '야 비좁다 태우지 말라'는 것이라고 간명하게 정리한다. 결국 더불어 사는 세상,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은 진보이다. 진보의 가치는 이처럼 사람을 생각하는 것에 있다.

 

"그럼 이제 진보의 가치는 뭐냐? 연대, 함께 살자. 이거는 엄밀한 의미에서 하느님의 교리하고도 맞는 거 아니냐, 이런 생각입니다. 그리고 다 같이 하느님의 자식들로 평등하게 태어나서 서로를 존중해라, 그런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자유 평등 평화 박애 행복 이게 고스란히 진보의 가치 속에 있는 것이거든요."(213쪽)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렇게 진보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간명하다. 진보는 사람을 생각하기 때문에 돈이 아니라 복지, 분배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진보에게 희망을 거는 것이다. 진보가 바로 이것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그야말로 역사의 진보를 밀고 가는 역사의 주체가 필요합니다. 민주주의의 이상과 목표를 분명하게 품고 성숙한 민주주의를 운영해 갈 수 있는 시민 세력이 필요한 것이죠. 그래서 답은 민주주의밖에 없어요. 지배 수단이라는 것을 놓고 정치와 권력을 좌지우지하지 않도록 시민들이 똑똑히 제 몫을 다하자, 그것 말고 달리 있겠어요?"(309쪽)

 

그러므로 진보는 말이 아니라 이것을 만들어갈 시민은 육성해야 한다. 그러고 이는 어떤 누가 가르쳐주는 것이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바라도 나 자신이 시민이 될 준비를 하고, 깨어있을 때 이루어진다. 그렇게 되면 역사가 된다. 시민인 당신은 역사가 될 준비를, 그리고 역사로서 행동을 하고 있는가. 노무현은 지금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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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실패하지 않았다 | 정치 2009-12-20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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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성공과 좌절

노무현 저
학고재 | 2009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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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떠난 날은 늦은 봄을 지나 여름 문턱에 발을 내딛는 때였다. 그가 "운명이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을 때 내 마음은 얼어붙었고, 심장은 어떻게 뛰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얼어붙었던 마음이 채 녹지도 않았는데 북녘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몸마저 얼어붙었다. "운명이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그가 쓰다만 회고록을 2009년이 저물고 있는 이 때 한 장씩 넘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못다 쓴 <성공과 좌절>은 모든 사람이 바라는 '성공'보다는 '실패'와 '좌절'를 말한다. 한 나라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올랐다면 '성공'한 사람이 아닌가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삶은 "성공도 있었고 실패도 있었지"만 "지금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성공과 영광의 기억이 아니라 실패와 좌절의 기억들이다"고 자신의 삶을 평가했다.

 

삶을 놓기 며칠 전에 쓴 글이니 자신의 삶을 어느 정도 정리한 후에 한 글이라 읽는 순간 마음 한 켠이 아프다. 특히 "정치를 하면서 이루고자 했던 나의 목표는 분명히 좌절이었다"고 말하면서 "시민으로 성광하여 만회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 부끄러운 사람이 되었다고 말았다"는 글에는 살이 타들어가고, 뼈가 녹는 아픔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그에게 정치인으로서 실패와 좌절은 용납할 수 있겠지만 시민으로서 '부끄러운 사람'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얼마 후 그는 삶을 놓았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이는 자신을 부끄러운 사람으로 평가하는 노무현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어느 권력이 자신의 삶을 부끄럽다고 순순히 인정했는가.

 

그리고 노무현은 자신의 삶을 실패와 좌절이지만 진보와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희망의 끈을 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당당하게 민주시민으로서 자신을 삶을 살아가라고 촉구하고 있다.

 

"나의 실패를 진보의 좌절, 민주주의의 좌절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사고는 역사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할 일 있고, 역사는 자기의 길이 있다."(17쪽)

 

그렇다. 수구세력은 끊임없이 노무현을 비롯한 민주세력의 작은 흠집을 엄청나게 큰 것으로 키우면서 민주세력을 무능하면서 부패한 집단으로 매도한다. 그리고 지난 2년 이명박 정권은 모든 공권력을 다 동원하여 민주시민을 옭아매고, 민주주의를 외치는 함성을 짓밟았고, 시민들 목소리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았다. 벽창호가 따로 없었다. 벽창호 앞에 민주시민들을 좌절하고, 어쩔 수 없다는 절망을 하고 있다. 민주세력은 이 절망에서 이겨내야 한다.

 

19쪽 '사죄의 글로 쓰려고 한다'는 부분에서 노 전 대통령은 "부끄러운 시민으로 사죄하고참회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삶을 놓았다. 이 부분을 읽는 순간 그가 삶을 놓치 않고, 계속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를 그리워하고,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통곡을 했을까? 답은 의외로 쉽다. 우리는 그가 살아있을 때 한 순간도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자신을 한 순간도 놓아주지 않는 언론을 향해 "정말 언론은 사회의 공기일까? 정도를 넘으면 흉기가 된다. 카메라도 볼펜도 사람도 생각도 흉기가 된다 … 텔레비전을 보면서 항상 생각해보던 일이지만 남의 일이 아니고 내가 당해보니 참 아프다"면서 "제 집 안뜰을 돌려주기시바랍니다"고 절규했다.

 

우리는 그를 이렇게 떠나보냈다. 그를 떠나보낸 후 후회하고 통곡한 우리들, 그럼 그가 좌절과 실패했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그는 '참다운 사람들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다가 좌절했다.

 

참다운 사람들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이란 인민이 주권자로서 권리를 누리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시장권력)은 서로 견제하면서도 항상 인민이 주권자로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용납하기 싫어한다. 이를 견제하는 힘은 선거에서 나온다는 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각이다.

 

"선거를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주권자는 정치권력과 시장권력 아래에서 지배받는 개인이 될 수도 있고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을 조정할 수 있는 상위 주권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말하는 민주주의 미래입니다."(273쪽)

 

민주주의 미래가 선거에 달려있다는 그의 주장은 지난 2년을 돌아보면 얼마나 옳은 진단인지 알 수 있다. 인민 위에 정치권력과 시민권력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다. 사람이 준중받지 못하는 세상, 그곳은 희망이 없는 곳이다. 2009년 현재 정치권력의 현주소다. 이를 극복해야 한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이 일을 민주세력이 해야 한다.

 

그리고 마음에 남은 한 글귀가 있다. 마음이 아프고, 다른 어떤 글보다 가슴을 찔렀다.

 

"대통령 자리가 뉴스를 보기에 힘든 자리입니다. 이제는 좀 살만해지겠지요(웃음)"(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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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장 사진으로 본 '인간' 노무현 | 정치 2009-12-05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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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재단 편
학고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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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를 사진과 동영상이 아니라 눈으로 직접 만난 것은 딱 한 번으로 1991년 3월 18일이다. 18년 전에 만난 날짜까지 기억하는 이유는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 9주년 초청 강사로 내가 다녔던 대학에서 초청했기 때문이다.

 

그가 연설한 내용이 무엇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굉장히 열정적이었고, '민주주의'라는 말을 많이 썼던 것 같다. 민주주의를 외치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련그린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그가 대통령 직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꼭 찾아가리라 마음 먹었지만 차일피일 하다가 그만 영원히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 그를 직접 만나지는 못하지만 그가 어릴때부터 대통령 노무현과 농부 노무현, 그리고 삶을 놓았을 때 수많은 이들이 그를 떠나보내는 진한 눈물을 찍은 사진을 통해 만나게 되었다. 노무현 재단이 엮고, 학고재가 펴낸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담은 442장의 사진집이다.

442장 사진 중에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바라보는 사진 한 장이었다. 언제 찍은 사진인지 설명이 없어 정확한 날짜는 모르겠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바라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 눈이 참 선하다. 이제 두 분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아리게 한다. 이 사진 옆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씨 뿌리는 대통령이 따로 있고, 열매 거두는 대통령이 따로 있는 것 같다. 일하는 사람도, 또 평가를 하는 사람도 깊이 있게 생각해야 할 대목이다.

 

그렇다. 정권이 바뀌어도 정부는 바뀌지 않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뿌린 씨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열매를 거두었다. 그러면 당연히 노무현 전 대통령이 뿌린 씨를 이명박 대통령은 열매를 따야 한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이 뿌린 씨는 아예 쳐다보지 않을뿐더라 오히려 파헤치고 있다. 정권과 정부도 구별하지 못하는 참 어리석은 일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권력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전직 대통령'보다는 '농부 노무현' 또는 '사람 노무현'으로 살았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권세보다는 농부와 사람으로 살아가는 그를 많은 사람들을 따랐다. 그에게 손가락질을 했던 이도, 사람 노무현에게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그는 권력을 내려놓을 수 있었을까? '현직'이 아니기 때문에?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는 현직에 있을 때 권력을 자기 손아귀에 지는 것이 아니라 인민들과 함께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권력은 대통령이 아니라 인민이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왕의 권력이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분배돼서 왕이 누리던 것을 일반 국민들이 누리게 되는 사회, 그것이 역사 발전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소위 권력이나 특권이 일반 국민들에게 퍼져나가는 과정, 그것이 역사 발전이다.(2006년 2얼 26일 출입기자오찬, 176쪽)

 

인민에게 권력을 내주는 일, 그것이 역사 발전이라는 그의 철학에 감동할 수밖에 없다. 그는 말했었다 권력을 쥔 자가 그 권력을 인민에게 내주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지금 우리가 그것을 경험하고 있다. 권력이 아닌 사람을 택한 노무현과 그 권력이 매몰되어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참으로 비교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가권력이 합법적으로 행사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랑스러운 역사든, 부끄러운 역사든, 역사는 있는 그대로 밝히고 정리해나가야 합니다. 특히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잘못은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국가권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합법적으로 행사되어야 하고, 일탈에 대한 책임은 특별히 무겁게 다뤄져야 합니다.(2006년 4월 3일 제주 4·3사건 희생자 위령제 추도사, 102쪽)

 

이명박 정권은 유난히 '공권력'을 강조한다. 공권력이 존재하는 이유가 인민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것인데도 오히려 공권력을 동원해 인민의 정당한 권리를 빼앗고 있다. 공권력에 복종하라는 정권치고 시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시민을 먼저 생각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권력을 시민에게 돌려 주려고했다. 즉, 권력이 아닌 사람을 택한 것이다.

 

권력을 가진 자가 권력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시민들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무엇을 바라는지를 알아야 한다. 바로 이것이 소통이다.

 

사람은 소통하고 살아야 한다. 지배하는 사람도 있고 지배받는 사람도 있는데, 내 희망은 이 차이가 작기를 바라는 것이다. 지배하는 사람과 지배받는 사람 사이에 가장 큰 단절은 소통이 안 되는 것이다. 생각이 다르고 이해 관계가 다르고 따로 사는 거다. 이런 게 오래가면 권력을 가진 사람은 잘 살겠지만 일반 국민들은 살기가 어려워진다. 권력은 높아지고 소통은 안 되기 때문이다. 권력을 가진 자와 국민이 소통이 돼야 한다.(2006년 8월 28일 경복궁 신무문 · 잡옥채 개방행사, 192쪽)

하지만 지금은 그가 바랐던 소통이 아니라 단절된 세상이다. 권력이 시민들을 목소리를 아예 듣지를 않는다. 그러니 시민들 삶이 팍팍하다. 제발 우리 목소리 좀 들어 달라는 말을 한다고 오히려 닥달이다. 그가 그리운 이유다. 권력이 귀를 닫았다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노 전 대통령 말처럼 시민이 하나가 되어 저항하여 권력이 시민들 목소리를 듣게 해야 한다. 다른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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