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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생명 빼앗는 '노란 병'은 이제 필요없어요" | 어린이 2013-07-20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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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뢰밭 아이들

앙젤 들로누와 글/크리스틴 들르젠느 그림/김영신 역
한울림어린이 | 2013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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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2일 국제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은 '시리아 내전'에 대한 아동 인권 보고서를 펴냈다. 보고서는 "시리아 어린이 3명 가운데 1명이 폭행이나 총격을 당했고, 4명 가운데 3명은 주변인들의 사망을 경험한 것으로 확인된다"고 밝혔다. 시리아 내전만 아니라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전쟁이 일어나면 어김없이 어린이는 위험에 가장 먼저 노출된다. 폭탄은 어린이라고 해서 피해가지 않는다.

전쟁이 끝나도 아이들을 위협하는 무기들은 많다. '잔류 폭발물'로 불리는 불발탄과 지뢰다. 아프가니스탄, 보스니아 헤르체고바, 캄보디아, 콜롬비아, 이라크, 수단 등등 90여개 나라에는 수많은 잔류폭발물이 있다. 얼마나 많으면 '지뢰밭'이라고 할까. 해마다 이들 폭발물로 1만 5천에서 2만 명이 숨진다. 그 중 20%가 어린이다.

기사 관련 사진
 지뢰밭 아이들
ⓒ 한울림어린이

 


아이들에게 모든 것은 신기하다. 지뢰도 마찬가지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한 순간 아이들 생명을 빼앗아가 간다. <뽀뽀>, <뿡, 너 방귀 뀌었지?> <아이고, 오줌 마려워>를 통해 아이들과 낯 익은 앙젤 들로누와가 쓰고, 크리스틴 들르젠느가 그린 <지뢰밭 아이들>(한울림어린이 펴냄)은 40쪽 밖에 안 되지만, 어른이 저지른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지 낱낱이 고발하고,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반드시 선물해야 할 것은 '평화'임을 위한 말한다. '평화의 다큐멘터리'인 셈이다. 

열한 살 마르와는 부모님과 할아버지 그리고 할머니 그 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더 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때부터, 아주 오랫동안 '전쟁'을 모르고 살았다. 하지만 어느 날 비행기들이 "무서운 벌 떼처럼 윙윙거리"며 마을 위를 지나가면서 "커다란 회색 물건을 쉴새 없어 떨어" 뜨리고 갔다. 경찰관은 마르와와 동무들에게 찾아와 회색 물건을 만지지 말라고 했다. 무시무시한 말이었다.

하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마르와와 아마드는 공놀이를 하기 위해 숲속으로 갔다. 그때 아주 예쁜 '노란 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드와 나는 숲 속에 들어갔다가 반짝반짝 빛나는 노란 병을 발견했어요. 아마드가 그 병을 집어 드는데, 빛이 번쩍이더니 뜨거운 불길이 일었어요. 수천 개의 날카로운 조각이 내 얼굴과 가슴과 팔에 박혔어요. 아마드는 팔 하나와 다리 하나를 잃었어요. 더 이상 예전처럼 걷지도, 달릴 수도 없게 되었지요."

이제 아마르는 더 이상 축구를 할 수 없다. 예쁜 노란 병이 아마드 팔과 다리를 빼앗가버리 것이다. 어른은 탐욕으로 증오와 죽임을 만들었지만, 마르와는 지구 저편 "전쟁을 모르는 곳"에 사는 동무들에게 평화가 얼마나 고귀한 지 전하고 싶어 <지뢰밭 어린이>란 제목 편지를 썼다.

기사 관련 사진
 지뢰밭 아이들
ⓒ 한울림어린이

 


"나는 한 번도 전쟁을 겪어 보지 못한 친구들에게 우리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우리 이야기를 통해 모든 아이들이 두려움에 떨지 않고 세상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혹시라도 노란 병을 만날지도 모를 사람들을 위해 우리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비록 "세상에서 제일 뛰어난 의사 선생님도 아마드의 사라진 팔다리를 되돌려 줄 수 없습니다. 아마드는 팔 하나와 다리 하나를 절단해야 했지"만 마르와는 다른 동무들은 아마드처럼 팔과 다리를 잃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어른들이 전쟁을 만들었다면, 마르와와 아마다는 평화를 만들어 나간다.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란다.

"아마드는 작은 일부터 시작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큰 일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시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지뢰밭 아이들>은 어른들 머릿속에서는 나오는 평화에 대한 그 어떤 담론보다 가슴에 와닿는다. 전쟁을 평화로, 미움을 사랑으로, 증오를 화해로 만들어가는 마르와는 이름 모르는 지구라는 땅을 밟고 사는 아이들에게 편지를 쓴다.

"내 이름은 마르와예요. 나는 열한 살이고, 얼굴과 팔에 흉터가 많아요. 내 친구 아마드의 용기를 자랑하고 싶어서 우리 이야기를 했어요. 모든 아이들이 두려움에 떨지 않고 세상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요. 한 번도 전쟁을 겪어 보지 못한 친구들에게 우리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혹시라도 노란 병을 만날지도 모를 사람들을 위해 우리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아마드 팔다리를 빼앗가 '노란 병'은 무엇일까?

기사 관련 사진
 지뢰밭 아이들. 1년에 1만-2만명이 지뢰같은 잔류 폭발물로 숨진다. 이들 중 20%가 어린이다
ⓒ 한울림 어린이

 


'노란 병'은 축구장보다 더 넓은 지역을 한꺼번에 초토화시킬 수 있는 '집속탄'이란 폭탄으로 항공기에서 쏟아져 나온 큰 폭탄이 공중에서 수백 개의 작은 폭탄으로 나뉘어 폭발하는 무시무시한 폭탄이다. 큰 폭탄(엄마 폭탄) 속에 작은 폭탄(아들 폭탄)이 여러 개 들어 있다고 해서 모자 폭탄이라고도 불린다.

특히 노란 색깔에 음료수 캔만 한 크기여서 아이들은 '노란 병'이라고 부른다. 한때 연합군에서 뿌린 구호 식랭팩과 색깔이 같아서 아이들에게 큰 위협이 되기도 했다. 아이들은 특유의 천진함과 신기한 물건을 만지고 싶은 호기심 때문에 더더욱 쉽게 위험에 빠지고 있다. 놀랍게도 우리나라는 집속탄 세계 2위 생산국이라는 불명예를 가지고 있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 몸을 해하는 노란 병 생산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책은 앞뒤 면지에 제주도 있는 '곶자왈 작은 학교' 아이들이 쓴 글이 실려있다. 그 중 하나를 옮긴다.

"평화는 '무기'를 싫어한다. 다툼은 할 수 있지만 다툼에 무기가 들어가면 전쟁이 터지기 때문이다. 나는 평화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몇몇 사람에게만 평화가 있다면 그것은 평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평화의 '평(平)'은 공평할 평! 평화의 뜻처럼 모든 사람에게 평화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평화가 공평하지 않다. 어떤 곳에서는 정말 평화롭지만 어떤 곳에서는 지금도 전쟁과 분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초5 하00)
'평화는 '마음 껏 뛰어노는 거'"(초3 김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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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꾼 평강과 온달 | 어린이 2008-12-16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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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태양의 딸, 평강

정지원 글/김재홍 그림
한겨레아이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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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머리에 남아있는 '평강공주'는 울보였다. 울보 고집을 꺾기 위하여 천하의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는 아버지 평원왕 엄포가 현실이 되어 바보 온달과 결혼하였고, 그 바보를 고구려 최고의 장군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어린아이들에게는 익숙한 옛이야기이다.

 

현명한 아내가 어리석은 바보를 위대한 장군으로 만들었다는 이 논리를 재해석한 동화가 나왔다. '사랑이 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랫말을 쓴 정지원씨가 <태양의 딸 평강>을 썼다. 

 

현모양처 개념이 강하게 자리잡은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보다는 '여성의 주체성'에 바탕한 평강에 대한 재해석이라 할 수 있다. 정지원씨는 머릿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에는 많은 공주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평강보다 더 당당하고 용감한 공주를 알지 못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는 친구들이 평강처럼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기를 바랍니다."(지은이 말)

 

평강은 고구려 공주로서 주체성이 확고한 여성이었고, 당당하고 거침없는 발걸음을 통하여 '바보'가 아닌 가장 따뜻하고, 매력 넘치는 사람이었던 온달이 고구려 역사를 온몸으로  써 내려가도록 인도했다.

 

하늘에서 내려온 해모수와 물의 신 하백의 딸 유화 사이에서 태어 난 주몽의 자손 평강.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먼저 보내고 아버지 평원왕의 사랑을 받지 못 하며 계모(도화부인)의 모함으로 인해 자신을 돌보든 유모까지 잃게 된다. 평강공주는 차가운 눈빛과 침묵으로 저항하며 평원왕과 도화부인에게 저항한다.

 

자신이 고구려의 공주라는 사실을 증오하며 자신을 부정하고 백성들의 슬픔과 고통을 외면하며 살아간다. 그런 그녀 앞에 나타난 온달. 가난으로 인해 굶어 죽고 귀족의 종으로 팔려가야 하며 귀족 외 백성들에게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굴욕스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백성들의 현실에 피를 토하듯 절규하는 사내의 말에 평강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하오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굴욕스러운 삶을 공주님은 결코 이해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가난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얼마나 갈기갈기 찢어 놓는지 공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까? 굶어 죽을 수 없어서 자식을 귀족들의 종으로 팔아넘기는 아비의 심정을 아십니까?"(45쪽)

 

이 대목을 읽는 이들은 지금까지 '천하의 바보'였던 온달에 대한 기존 관념이 흔들리는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 온달이 바라는 세상이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는 사내였던 온달을 통하여 평강은 강인한 고구려의 딸. 안락한 궁중의 생활을 버리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 갈 줄 아는 힘을 되찾고 백성들의 가난과 슬픔과 고통을 함께 아파하고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그들의 어미로 평강은 되살아난다.

 

"그래 너희가 내 자식들이다. 나는 이제부터 너희 모두의 어머니답게 살아갈 것이다. 이 나라의 아이들이 모두 내 아이들이다."(173쪽)

 

자기가 낳은 아이가 죽었지만 다른 아이들에게 자신의 젖을 물리면서 평강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신분보다는 사람 자체를 더 사랑하고, 귀하게 여겼다. '밥이 평등해야 사람도 평등해진다'는 평강의 말은 지금도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혁명적이 사고였다. 평강은 이 말을 머릿속에만 담아 두거나, 말만 한 것이 아니라 몸으로 살았다.

 

평강은 진정 주체적인 삶을 살았다. 여성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인간으로 사는 바람을 간직했다. 온달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되기를 소원한 것처럼 평강도 신분이 사람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이유만 하나만으로도 가장 가치 있는 존재임을 평강은 알았고, 그 사람을 위해 살았다.

 

지은이는 평강과 온달을 통하여 그저 바보가 장군이 되었다는 옛이야기, 그래 열심히 공부하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놀라운 결말로 우리를 인도한다. 지은이는 평강과 온달을 통하여 아직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우리 세상을 향한 외친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답게 살고 싶어 우리는 싸웠다네. 임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웃어 주소서. 임아,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답게 살고 싶어 우리는 싸웠다네. 그대들은 나를 알 것이다. 우리는 땅 한 뙈기 없이 태어났다. 굶주림보다 더한 능멸을 받았고 죽지 못해 사는 거리고 생각핬다. 그때 우리는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다름 없었다. 그대들은 왜 나와 함께 이 험한 전쟁터로 왔는가? 그대들과 내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인가? 나는 내 목숨보다 더 귀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여기에 왔다."(221쪽)

 

울보와 바보가 만나 결혼하고 울보가 바보를 열심히 가르쳐 장군이 되게했다는 옛이야기를 가감히 뒤로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꾼 온달과 함께 평강은 진정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고자 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세상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시대가 아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고 할 때마다 거대한 세력은 온달이 경험했던 그 경험을 더하려한다. <태양의 딸  평강>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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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창제 일화 | 어린이 2008-08-03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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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초정리 편지

배유안 저/홍선주 그림
창비 | 2006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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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때마다 깨닫는 일은 우리말을 너무 모른다는 사실이다. 띄어쓰기·맞춤법이 틀리고, 중간 중간에 외국말이 뒤섞인 글은 엉망이다.

 

내 글이 얼마나 엉망인지 <오마이뉴스>에서 최종규님이 “'-의' 안 써야 우리말이 깨끗하다” “'-적' 없애야 말 된다” “얄궂은 한자말 털기,” "'것'에 갇혀 우리 말투를 잃어버리다"를 보면 얼마나 내가 우리말을 모르는지 알 수 있다. 좀 배웠다고 하는 사람이 우리말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는 일은 비극이다.

 

이 비극은 우리 아이들을 보면 더 심각해진다. ‘어륀지’로 등장한 영어몰입교육은 우리말을 죽음으로 이끌고 있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외치면 온 나라가 분노하지만 우리말을 영어로 가르치겠다는 정부 정책에 겉으로는 화를 내도 내심 내 아이 영어에 뒤떨어지지 않을까 안절부절이다. 

 

말과 글은 나라와 민족의 정신과 문화를 담는 그릇이다. 모든 나라가 자기네 말과 글을 통하여 미래 세대를 가르치고, 물려주는 일을 가장 중요한 교육 정책으로 삼는 이유다. 글과 말을 잃어버린 나라와 민족치고 정신과 문명을 이어가는 나라와 민족은 없다.

 

얼마 전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둘러싼 이야기를 담은 <초정리 편지>를 읽었다. 배유안씨가 글을 쓰고, 홍선주씨가 그림을 그린 <초정리 편지>는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 이후 눈병 때문에 충북 청원군 초정 약수터로 요양을 갔던 일화를 담은 책이다.

 

초정에 사는 '장운'이라는 사내아이가 있다. 장운 천민이다. 천민으로 살아가기 버거운데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석수장이로 살다가 다리를 다쳤다. 하나뿐인 누이는 어머니 병 수발에 들어간 돈 때문에 결국 다른 집에 보내진다.

 

신분과 환경에서 절망만 있는 석수장이 장운이가 자신이 가진 꿈을 이루어가는 이야기를 통하여 한글 창제에 관한 이야기를 숨겨 놓았다. 장운은 나무를 하러 산에 갔다가 눈이 빨간 양반 할아버지를 만난다.

 

눈이 빨간 할아버지는 “ㄱ ㅋ ㄷ ㅌ” 따위로 만들어진 그림 같은 글자를 장운에게 가르쳐주고 다음날 외워오면 쌀 한 되를 선물로 주겠다고 약속하면서 서로는 동무가 된다. 어느 덧 장운은 할아버지와 새로운 글자로 필답을 하고, 누이에게도 글을 가르쳤다. 할아버지는 장운에게 “허허, 너와 네 누이가 내 근심을 많이 덜어 주었느니라”고 한다.

 

고귀한 한자를 버리고, 천한 언문을 가질 수 없다는 신하들 등쌀에 힘들어 했던 세종에게 장운은 얼마나 고마운 존재였을까? 근심은 나랏일을 맡은 중신들이 아니라 장운이 들어주는 장면은 글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목적이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글은 신분제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어느 누구나 쓰고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말을 할 수 없다. 그 때 글을 통하여 생각을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귀한 일인가?

 

장운은 할아버지가 가르쳐주신 글은 어렵지 않아 쉽게 멀리 다른 집에 팔려간 누이에게 편지를 쓸 수 있었다.

 

"빚 때문에 남의집살이를 하러 간 누이 일로 큰 슬픔에 빠진 장운은 때맞춰 할아버지도 떠나는 바람에 쓸쓸하게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장운은 누이로부터 새 글자로 쓴 편지를 받고 숨이 멎을 듯한 충격을 받는다. 생각을 종이에 적어 보낼 수 있다니! 야, 내 생각을 이렇게 적을 수 있다니 참 좋다."(p84)

 

숨이 멎을 듯한 충격, 기쁨, 고귀하다는 중국글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어찌 놀랍지 않은가? 글이란 배우기 어려워야 고귀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이가 쓰고, 읽을 수 있어여 고귀한 것임을 글쓴이는 말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신분질서는 견고하다. 중인 출신 석수장이 ‘상수’는 장운에게 신분제가 드리운 견고한 성이다. 감히 천한 노비가 글을 읽고, 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무나 읽고, 쓸수 있는 새로운 글이 만들어졌지만 신분제는 거부한다.

 

“인마, 글이라는 게 아무나 쓰는 게 아니야. 양반이나 우리 같은 중인은 되어야 쓰는 거지, 너같이 노비 출신이 글은 무슨 글이냐? 웃기게.”

“그 글자는 백성들 누구나 다 쓰라고 만든 거예요.”

“누구나? 그 글자 못 써, 인마. 필요 없다고 다들 반대하는 글자야.”

“윤초시 댁 마님도 좋은 글자라고 하셨어요.”

“호기심이겠지. 글자라는 게 한자처럼 점잖고 어려워야 글자지, 아무나 다 쓰면 그게 무슨 글자냐?”

“누구나 다 쓸 수 있으면 좋잖아요.”

“좋긴 뭐가 좋아? 양반 상놈 구분도 안 되게. 그리고 양반들은 그런 거 안 써. 평생 배워 온 진서가 있는데 뭐 하러 그까짓 걸 새로 배우냐?”

장운은 입을 다물고 발길을 떼었다.

“네 주제에 뭐, 사람들을 가르쳐? 분수를 알아라. 네 신분을 좀 알란 말이다.” (152 - 153쪽)

 

<초정리편지>는 어느 누구나 쉽게 쓰고, 읽을 수 있는 위대한 문자 '한글'을 할아버지(세종)와 장운, 누이와 동무들의 꿈과 좌절이 담긴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생생하게 들려준다.

 

장운과 동무들, 석수장이들은 조선시대 하위계급들이다. 아니 중인과 양반층 부녀자들도 천민은 아니지만 남성 양반에 비하면 하위계급이다. 한글은 이들 하위계급들의 고단한 삶, 철저한 신분사회에서 고통당하는 삶에 파고들었다.

 

한글은 영원히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그들에게 생각하게 하고, 말하게 하고, 글을 쓰게 해주었다. 글을 통하여 정신과 문화까지 만들어가는 참 인간으로 새롭게 거듭나게 된다. 

 

지금은 사라진 '아래아(·)' 따위 15세기 한글표기로 된 편지가 더해져 보는 재미까지 준다. 옛날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옛글을 독해하기 위하여 머리를 싸맸던 시절을 생각나게한다. <초정리편지>는 글은 신분을 가름하는 기준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생각을 나누고, 전할 수 있는 고귀한 것임을 깨닫게 한다.

 

세종 시대 '중국말'로 신분제를 구축했던 어러식은 양반기득권세력이 한글을 언문으로 비하했듯이 우리 시대는 영어가 한글을 비하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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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라는 선물 | 어린이 2008-04-20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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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마음이 ...

신동익 원작/오은영 글
홍진P&M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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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어떤 영화볼래?"


"마음이 보고 싶어요?"


"왜 마음이 볼려고 하는데."


"아빠가 성탄절 선물로 <마음이>를 사주셨는데 영화도 보고 싶었어요?"


"<마음이> 읽고 무슨 생각을 했어?"


"마음이 아팠어요? 어른들이 마음이를 때릴 때에 눈물이 났어요? 왜 예쁘고 착한 마음이를 때리는지 모르겠어요?"


 


지난 1월 경기 구리 목사님 댁에서 나눈 이야기 한토막이다. 지난 해 성탄절에 아내가 아


 

이들에게 받고 싶은 선물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둘째 서헌이가 고른 선물이 <마음이>였다. <마음이>는 그렇게 우리 집에 들어왔고, 결국 영화까지 보게 되었다.


 


대부분 책이 먼저 나오고 영화가 제작되지만 <마음이>는 영화로 제작되고 책으로 나온 특이한 경우다. '찬이'와 '소이' '마음이'는 사랑을 잃어버린 존재였다. 찬이와 소이는 버림을 받았고, 강아지 한마리도 어미개 젖에서 철저히 외면 당했다.


 


외면 받은 이는 외면받는 마음을 알았을까? 찬이는 강아지를 훔친다. 훔쳐 동생 소이에게 생일선물로 준다. 그 때까지 강아지로 존재했던 그에게 소이는 '마음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오빠, 우리 이 강아지 이름 마음이로 하자."


"마음이?"


"나, 엄마한테 강아지 갖다 달라고 기도했거든. 근데 엄마가 내 마음을 알았나 봐. 그러니까 마음이로 하자. '윤. 마. 음"(12쪽)


 


소이는 버림 받았지만 그는 아직 분노를 알지 못한다. 오히려 마음이를 통하여 사랑을 회복하고자 한다. 어른 그를 버렸지만 아이는 아직 버림을 증오로 변화시키지 않고 있다. 마음이를 통하여 소이는 사랑을 확인해가고 있었으며 거의 다 자란 마음이는 소이와 동화된다.


 


하지만 찬이는 아니다. 미술 시간이 만나고 싶은 얼굴을 그리지만 뭉개진 얼굴이다. 눈과 코가 뭉개진 얼굴 '엄마?'


 


"전 … 만나고 싶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안만들었습니다."(21쪽)


 


거짓말? 참말?만나고 싶었지만, 버림받았다는 분노때문일까? 아니면 정말 만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만나고 싶었지만 기억나지 않았을까? 그 날 찬이는 PC방에서 게임을 하다가 엄마 아빠가 없다는 동무들 놀림에 분노하고 만다.


 


찬이가 분노할 때, 소이는 그런 오빠를 한없이 기다린다. 누구를 기다린다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희망이다. 버스가 지나가도 오빠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 오빠는 올 것이다.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한 기다림이지만 그것은 사람에 대한 기다림이다. 비록 다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을 오빠가 안겨다 주어 눈물이 났지만 오빠와 마음이와 함께 그들은 하나가 된다.


 


엄마가 버렸지만 소이는 엄마놀이 빠졌다. 엄마 옷, 엄마 스카프, 엄마 립스틱. 소이가 마음이와 하는 엄마 놀이.


 


"엄마가 돈 많이 벌어 올 테니까. 너 학교 잘 갔다 와. 애들하고 싸우지 말고 아이스크림 두 개만 사먹어. 자, 돈."


 


엄마 소이는 딸 마음이에게 다정한 엄마였지만 엄마는 그렇게 돈 벌러 갔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마음이를 자신으로 생각하였지만, 엄마는 소이가 아니었다. 마음이에게는 가방도 매어주었지만, 마음에게는 금방 돌아왔지만 엄마는 소이에게 가방을 매."어주지 않았고,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에게 돌아가지 않는 부모들이 많다. 아이들은 한 없이 사랑을 주지만 어른은 사랑을 주지 않는다. 돈과 공부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한다. 소이를 겨울 강물에 잃어버리고 엄마를 찾아나선 찬이 하지만 엄마는 그에게 너무 멀었다.


 


"보고 싶어도 참고, 힘들어도 참고, 잊어버리고 그렇게 살아야지 …."(66쪽)


 


엄마 방에 누웠지만 엄마 냄새 조차도 낯설었을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엄마가 내민 것 역시 돈이었다. 사랑과 아픔을 나누는, 이미 강물과 동무가 되어버린 소이는 엄마와 찬이에게 아무런 존재도 아니었다. 사랑과 아픔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소이가 없는 그곳은 엄마와 찬이를 영원히 하나되게 하지 못하는 간극이다.


 


찬이는 부산에 갔다. 씨뎅을 만나고 잃어버린 아이들을 만났다. 하지만 그곳은 또 다른 죽음이 도사리고 있었다. 폭력만 존재하는, 힘이 진리인 곳이었다. 찬이와는 비교할 수없는 권력, 그 권력의 지독한 사랑을 받는 마음이와는 다른 베키가 있었다.


 


마음이는 소이가 남긴 보관함에서 소이 냄새를 맡았다. 작은 불빛은 소이 목소리가 되어 마음이에게 속삭인다.


 


"여기 있으면 오빠가 꼭 올거야. 우리 둘이 기다리는 거야. 이렇게 둘이 있으니까 하나도 안무섭다. 그치?"(83쪽)


 


여기에 이르자 거룩함을 경험했다. 소이와 소통하는 마음이. 이는 인간이 범잡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 이성을 뛰어넘는 무엇인가가 있다. 두목과 하나인 베키와 소이와 마음이, 그리고 찬이를 통한 극명한 두 세계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같은 공간이지만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두목을 개를 죽음으로 이끈다. 권력을 통하여 개뿐만 아니라 버림받은 아이들까지 죽음이라는 난장으로 이끌어가기를 원한다.


 


"마침내 베키가 마음이 목을 물었습니다. 마음이는 목을 물려 꼼짝 못하다가 간신히 몸을 빼냈습니다. 마음이 목에 핏물이 번져 나왔습니다. 피를 보자 두목 눈빛이 미친 사람처럼 번득였습니다.."(110쪽)


 


두목과 베키가 만든 죽음이라는 세상은 무엇일까? 두목도 버림 받는 자였고, 베키도 마음이 같은 개다. 다를 바가 없다. 그들도 버림 받았으면서도 그들은 지금 죽음이라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 죽음이라는 난장을 마음이와 찬이, 씨뎅은 거부한다.


 


죽음의 저주를 만든 두목을 향하여 마음이는 저항한다. 마음이에게 이 저항 정신은 어디서 왔을까? "이 새끼 죽이삐라"고 외치는 두목을 향하여 마음이는 저항한다. 그렇다. 생명을 해하는 그 어떤 누구도 마음이는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소이의 죽음을 통하여, 찬이가 겪은 고통을 통하여 생명이라는 존엄성을 해하는 것을 마음이는 인정할 수 없었기에 그는 저항했다.


 


마음이도 인간존엄성을 해하는 것에 저항한다. 그가 존엄성이라는 고귀한 것을 이해할 능력은 없지만 그는 본능을 통하여 깨달은 것이다. 자신을 버림으로 얻는 것은 무엇일까? 훔쳐온 개 '마음이' 그가 아프다. 죽음이 그를 어떻게 맞아줄까? 죽음이 찬이와 영원히 만나지 못하게 할까? 아니면 소이와 영원한 삶을 누리게 할까?


 


"소이, 소이 보고 싶으면, 정말 소이가 많이 보고 싶으면 … 그렇게 해. 더 이상 아프지 말고 …. 소이한테 가. 난 괜찮으니까…… 더 이상 아프지 마."(159쪽)


 


아이들과 아내가 <마음이>를 읽고 울었다. 왜 울었을까? 슬픔, 아픔, 폭력, 애잔한 사랑. 그 무엇이든지 중요한 것은 마음이를 통하여 아이들이 사랑을 통하여 더불어 사는 삶, 사랑이 우리를 슬퍼게 할 수도 있음을. 사랑은 많은 고통과 아픔이 따름을. 함께 나누는 일이 얼마나 중요함을. 폭력을 통한 죽음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알았으면 좋겠다. 버림과 폭력을 통한 죽음이 난무하는 세상이 아니라 사랑과 나눔, 희생을 통한 더불어 사는 세상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알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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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눈물 | 어린이 2007-11-1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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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하느님의 눈물

권정생 저
산하 | 1998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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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7일 권정생 선생께서 육신의 장막을 내려놓았습니다. 그 분이 남긴 많은 글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저는 <하느님의 눈물>이라는 동화를 제일 좋아합니다.

 


돌이 토끼는 산에 사는 산토끼입니다. 돌이는 어느 날 문득 '칡넝쿨', '과남풀'이 맛은 있지만, 자신이 뜯어 먹게 되면 풀이 모두 없어질 것 같아 걱정을 합니다. 풀이 없어지는 것이 마음은 아프지만 먹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자신을 보면서 갈등합니다.


 


산에 오르면서 돌이는 풀무꽃풀을 만났습니다.


 


"풀무꽃풀아, 널 먹어도 되니?"


"……"


"널 먹어도 되는가 물어 봤어. 어떡하겠니?"


 


돌이가 물었을 때 풀무꽃풀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풀무꽃풀의 대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갑자기 그렇게 물으면 넌 뭐라고 대답하겠니?"


 


돌이는 생각할 수 없는 대답이었습니다. 허를 찌른 답입니다. 배가 고픈 돌이는 그냥 해본 말입니다. 돌이도 배가 고플 때마다 먹으니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돌이는 생각 없이, 악의 없이 풀을 먹지만, 어쩌면 풀무꽃풀은 생각해서 물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힘 있는 자가 힘 없는 자를 대하는 모습을 그대로 읽을 수 있습니다. 힘 있는 자는 자기 배를 채우는 일에 관심을 가집니다. 자기 배만 부르면 다른 사람이 배고픈 것을 알지 못합니다. 내가 더 배부르면 다른 사람이 배고픈 것을 알지 못합니다. 풀무꽃풀은 말합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대답을 제 입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에 몇이나 있겠니?"


"정말이구나. 내가 잘못했어. 풀무꽃풀아. 나도 그냥 먹어 버리려니까 안 되어서 물어 본 거야."


 


돌이는 배가 고파 먹고 싶어 그냥 해 본 말이지만 풀무꽃풀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가장 중요한 물음입니다. 돌이와 같은 물음을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돌이는 지금 욕심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도 욕심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무심코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자기 중심, 이기적인 생각이 내면에 흐르고 있습니다. 돌이가 풀무꽃풀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중심으로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자기 중심입니다. 자기 중심은 욕심을 잉태합니다. 욕심이 잉태하여 결국은 죽음을 낳게 됩니다. 지금 세상은 너무 욕심이 많습니다. 세상이 먹히고 먹히는 세상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먹히는 위치에 서 있는 사람에게 '너 먹어도 되겠니?'라는 물음은 먹히는 것도 더 무서운 일입니다. 풀무꽃풀은 아예 말합니다.


 


"차라리 먹으려면 묻지 말고 그냥 먹어."


 


'그냥 먹어.' 진심입니다. 사실입니다. 그냥 먹으면 되는데 왜 묻는거야. 그런 말이 나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나에 대한 모욕이라는 말입니다. 힘 있는 네가 마음대로 하면 되지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니 그냥 먹어라는 말은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삼성비자금 생각이 납니다. 삼성은 힘 있는 자입니다. 엄청난 시혜를 베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힘은 어쩌면 돈에서 나오는지 모릅니다. 시혜를 돈으로 갚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네가 배고픈 것 알고 있다. 돈 줄 테니까 그냥 있어'라고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협합니다. 보십시오.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사람들 면면을 보면 지극히 힘 없는 자-세상의 기준인 권력과 돈-입니다. 하지만 힘 있는 자-세상의 기준인 권력과 돈-는 경제가 어려우니 특검을 하지 말자. 국가근간이 흔들린다고 합니다. 힘 있는 자들이 오히려 더 두려워하고, 걱정이 많습니다. 우스운 일 아닙니까?


 


오늘 김인국 신부님 인터뷰를 읽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부패에 너무 관대하다. 그 실상을 보는 게 가장 충격이다. 작년 이맘 때 '인문학의 위기'로 한바탕 소란을 떨었는데 그걸 종교적으로 말하면 '하느님이냐, 재물이냐'이다. 재물에 영혼을 팔고 그런 거래를 한 번도 후회하지 않고 괴로워하지도 않는 실상이 깜짝 놀랄 만한 일이다. 재물의 힘이 워낙 막강해서 한번 영혼을 팔면 판단능력도 없는 것 같다."<오마이뉴스 '김인국신부인터뷰'>


 


돈에 자신을 팔았습니다. 어쩌면 저 자신도 돈에 저 자신을 팔았는지 모릅니다. 돌이가 풀무꽃풀에게 하는 '너 먹어도 되겠니'란 물음은 돈에 자신을 팔아버린 죽은 인격을 가진 것과 별 다르지 않습니다. 돈에 자신을 파는 것과 나만 생각하고 다른 이는 생각하지 않는 말과 행동 때문에 그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내 맡기게 하는 일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죽은 인격을 되살릴 방법은 없을까요?


 


돌이는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고 차라리 죽는 것 낫겠다고 합니다. 그 때 하늘을 보았습니다. 돌이는 말했습니다.


 


"하느님, 하느님은 무얼 먹고 사세요?"


"보리수 나무 이슬하고 바람 한 줌, 그리고 아침 햇빛 조금 마시고 살지."


"어머나! 그럼 하느님, 저도 하느님처럼 보리수 나무 이슬이랑, 바람 한 줌, 그리고 아침 햇빛을 먹고 살아가게 해 주셔요."


 


이슬만 먹는 다는 것은 '욕심이 없다'입니다. '내 살자고 다른 사람 것을 빼앗지 않겠다'입니다. 하느님 말씀에 돌이는 이슬만 먹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돌이처럼 온 세상이 다른 사람 생명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세상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오로지 이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해합니다. 하느님께서 애타게 기다리지만 사람들은 남은 것을 탐내는 일에만 관심을 가질 뿐입니다. 그 때 하늘에서 이슬 한 방울이 돌이 얼굴에 떨어졌습니다. '하느님의 눈물'입니다.


 


이슬만 먹고 사는 세상은 만들 수 없을까요? 답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길은 있습니다. 돌이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이슬만 먹는 것은 나와 네가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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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아이를 위한 철학동화 | 어린이 2007-11-12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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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생각하는 아이를 위한 철학동화

김해원 글/정주현 외 그림
계림(계림북스) | 2001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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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 외국어고 시험문제 유출 보도를 접한 후 문득 떠오른 생각은 '왜?'였다. 외국어 고등학교 갈 정도면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 아닌가? 시험 문제 유출은 법과 양심을 어긴 것이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스스로 문제 해결 능력이 부족한 것이라는 마음이 들어 착잡했다.


 


일류대학 병이 나은 병폐이면서 머리 좋은 아이들까지 스스로 공부하는 능력을 빼앗은 한국 사회가 앓고 있는 무서운 병이 터졌다. 부모님, 선생님이 해주지 않으면 풀어갈 능력이 없다. 이는 어릴 때부터 특정 과목 성적에만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깜짝 놀란 경험이 한 두번이 아니다. 사물 하나하나에 관심이 많다. 특히 '왜?' '무엇'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 때 부모가 아이에게 단순히 돼지, 소, 양, 버스라고 말하기보다는 같이 묻고, 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조금 더 자라면 단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다. 엄마와 아빠가 단순히 호칭이 아니라 자신과의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을 알아가는 것은 국영수 점수를 잘 받는 것과는 다르다. 이 앎을 '철학'이라 할 수 있다.


 

<생각하는 아이를 위한 철학동화>는 아이가 생각하고, 사물을 이해하고, 단어를 정의할 수 있고, 개념을 알아가게 한다. 진짜 공부가 무엇인지 엄마와 아이, 아빠와 아이가 함께 읽어가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를 알게 한다.


 


동물과 사물을 통하여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는 '희망과 가능성' '차이' '시간' '선입견' '변화' '가치' '삶과 죽음' 등을 알려준다. 아이들은 모든 것을 다하고 싶어한다. 엄마와 아빠는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희망이 모든 가능성을 가진 것은 아니다.


 


'희망과 가능성'에서 돼지는 하늘을 날기 위하여 닭 깃털과 새 깃털을 부지런히 모은다. 굵은 실을 한올 한올 묶어 날개를 만들었다. 지붕 위에 올라가 날개짓을 한다. 어른들이 읽으면 웃음만 나올 것 같지만 아이들은 무한한 상상력을 통하여 돼지가 날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질 것이다. 어른들은 돼지 행동을 보고 코웃음을 치지만 아이들은 아니다. 희망을 통하여 가능성을 본다. 돼지는 하늘을 나는 희망은 접었지만 달리기 선수가 되는 희망을 가졌다.


 


열심히만 하면 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에 따라 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그 일을 이룰 때에 정말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이다.


 


동물나라에 싸움이 벌어졌다. '하마와 원숭이'가 다투었다. 사자, 코끼리, 여우, 너구리, 흰머리독수리가 모였다. 하마와 원숭이가 싸우는 이유는 하늘에 떠 있는 해님 때문이다. 원숭이는 해님이 아침에 더 가깝고, 한낮에는 더 멀다고 생각하지만 하마는 거꾸로 생각했다. 원숭이는 가까운 것은 크게 보이고, 먼 것은 작게 보인다는 논리다. 하지만 하마는 아침에는 시원하기 때문에 가깝고, 낮에는 덥기 때문에 가깝다고 했다.


 


어른들은 과학을 통하여 이미 알고 있기에 원숭이와 하마가 말하는 주장이 우습다. 이 두가지 전제가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침 해님과 한낮 해님 거리는 똑같다. 우리 눈의 착시다. 그리고 아침에 시원한 것은 멀기 때문이 아니라 저녁에 식어버린 지열 때문이지 크기 때문이 아니다.


 


이 책이 좋은 점은 과학원리를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숭이와 하마가 생각이 '다름'을 말해준다. '틀렸다'가 아니라 '다르다'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숱한 차이를 만날 것이다. 부모들은 그 차이를 '틀리다'로 강요한다. 틀리다만 존재하는 세상은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세상이다. 하지만 차이를 '다르다'로 알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사는 세상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임을 <생각하는 아이를 위한 철학 동화>는 말한다.


 


<진품명품>을 보면 이가 빠진 청자와 백자는 가치가 많이 떨어진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이가 빠진 그릇은 가치가 없음을 자기도 모르게 생각하게 된다. 이가 빠진 항아리가 길가에 떨어져 있다. 아이들이 발로 툭 차버린다. 비가 오는 날에도 누구 하나 항아리에 관심이 없다.


 


어느 날 할머니 한 분이 항아리를 만난다. 사람들이 이가 빠졌다고, 더럽다고 버린 항아리를 고이 안고 집에 가져간다. 할머니는 항아리에 꽃을 담았다. 꽃병이 된 것이다. 모든 이가 버린 항아리가 이제는 아름다운 꽃을 담은 꽃병이 된 것이다. 이것이 '가치'라고 말한다. 가치란 껍데기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임을 자연스럽게 알게 한다.


 


아이들은 시간을 만날 아침과 저녁이 반복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시간은 흐르는 것임을, 반복은 변화를 낳는 것임을 책은 말한다. <생각하는 아이를 위한 철학동화>는 아이들이 만날 경험하는 일들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통하여 사물을 이해하고 생각의 깊이로 이끌어 준다. 주입식이 아니라 아이들 삶에서 일어나고, 사물을 통하여 단어와 가치관을 까닫게 한다. 아이들과 함께 읽어가면 이야기와 대화를 통하여 생각하는 아이, 부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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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도 아름답다 | 어린이 2007-11-08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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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름다운 가치사전 1

채인선 저/김은정 그림
한울림어린이 | 2005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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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단어 외울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사전(辭典)'한 장을 다 외우고 나면 찢어서 먹는 것"이라던 중학교 선생님 말씀이 기억난다. 사전(辭典은 그 만큼 익숙하지만 지겨운 것이다. 한 단어를 정의할 때 반드시 동반되는 설명은 '사전적 의미'다. 이는 사전에서 설명하는 의미를 그릴 탐탁하지 않게 생각할 때 자주 쓰는 말이다. 사전에서 설명하는 의미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사전적인 의미보다 더 깊고, 넓은 의미를 찾아나서는 것이 지적인 사람들이 즐기는 삶의 방편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 단어의 의미를 깨닫는 아이들에게는 사전적인 의미가 매우 중요하다. 사전적인 의미를 분명히 알고 생각이 깊어지고 배움이 더 해질 때 아이는 그 단어에 대한 풍부한 의미를 알아갈 수 있다. 역시 기초가 중요하다. 기초가 중요하지만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사용하는 사전을 주면 아이는 두께와 무게에 질려 다시는 사전을 찾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버릴 것이다.



채인선 씨가 지은 <아름다운 가치 사전>(한울림어린이)은 이런 의미에서 매우 좋은 책이다. 사전을 '아름답다'로 표현한 자체가 우선 흥미를 끈다. 물론 책에서 담고 있는 단어들이 '아름다운' 단어들이기에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일반 사전이 주는 중압감에 비하면 얼마나 적절한 표현인지 모른다.



<아름다운 가치 사전>은 아이들에게 아름답고 가치 있는 단어 24개를 말한다. 아이들에게 믿음 있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칠 때, 대뜸 하는 말이 "엄마! 아빠! '믿음' 무슨 말이야?" 묻는다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사전을 찾을 것인가? 선뜻 설명할 수 없다. 채인선은 믿음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믿음이란, 자전거를 타러 가며 언니가 혼자만 앞서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아이들 삶에서 믿음을 말하고 있다. 이는 설명이 아니다. 언니와 자전거를 타는데 언니가 혼자만 가지 않고 자기와 함께 갈 것이라는 생각을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믿음은 종교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관념이라 개념을 설명하려면 복잡하다. 언니가 자기를 버려두고 가지 않고 함께 가려는 생각을 믿음이라 말하면 아이들은 나중에 동무에게도 믿음을 연관시킬 수 있고, 나중에 종교를 가진다면 자신이 믿는 신과 연결시킬 수 있다.



'감사, 겸손, 공평, 관용, 마음 나누기, 믿음, 배려, 보람, 사랑, 성실, 신중, 약속, 신중, 예의, 용기, 유머, 이해심, 인내, 자신감, 정직, 존중, 책임, 친절, 행복'이란 단어가 <아름다운 가치 사전>에 담겨졌다. 어느 단어 하나 아이들이 물을 때에 쉽게 답할 수 없다. 관념과 추성적인 단어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이 단어들을 알고, 삶을 살아간다면 세상이 더욱 밝아지고, 아름다운 모습이 될 것이다. '아름다운 가치 사전'이라 이름 지은 뜻을 알 것 같다.



"공평이란 강아지와 고양이를 똑같이 사랑해주는 것, 강아지 밥을 줄 때 고양이 밥도 같이 주는 것"(본문 20쪽)



애완동물을 키우는 아이들이 많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아이, 고양이를 좋아하는 아이가 서로 자기가 좋아하는 동물만을 사랑하고 다른 동물을 미워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공평하지 않는 것이다. 공평이 무엇인지 말할 때 똑같이 사랑해주는 것이라 말하면 아이들은 쉽게 깨닫게 되리라. 하지만 공평은 무조건 똑같이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공평이란 필요한 사람에게 더 많이 주는 것."(21쪽)



매우 중요한 뜻이다. '똑같이'라는 말은 두 사람일 때 둘로 나누어 가지는 것이 아니라 약하고, 부족한, 힘없는 이가 조금은 더 가질 수 있는 것이 공평이라는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완전히 물들어 살아가는 어른들에게도 공평을 필요한 사람에게 더 많이 주는 것이라는 뜻이 매우 중요한 설명이다.



단어를 설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때는 '만화'로, 어떤 때는 '이야기'를 통하여 단어를 어떤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지 말해주고 있다. 나열식, 주입식 사전이 아니라 아이들이 책을 읽어가면서 만화와 이야기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단어 뜻을 알게 하는 배려가 보인다.



"관용이란 공통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있다는 것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것."(25쪽)



다원주의 사회를 살아가지만 왠지 획일성이 지배하는 사회다. 아이들 신발을 보면 딸 아이 신발은 다 분홍색이다. 어디 사줄만한 신발 색깔이 없다. 관용이 없다는 것이 여자 아이는 모두 분홍색 신발을 강제적으로 신어라는 말밖에 다른 뜻이 없다. 누구를 좋아한다고 할 때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 운동선수, 정치인이 아니면 무조건 욕하거나, 비난한다. 관용이 상실되어 버렸다. 관용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당신도 좋아해야 한다는 획일성을 비판하면서 다양한 사회를 위해서 매우 필요한 삶의 방식임을 아이들은 알 것이다. 치마를 입을 수 있고, 바지를 입을 수 있다. 관용이란 말속에는 다양성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알게 한다.



어른들이 24가지 단어를 읽어가면서 자기 자신도 얼마나 획일적인지 알 수 있다. 상상력과 풍부한 감성을 상실해버린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관용을 말할 수 있지만 공통점과 다른 점이 있다는 사실까지도 망각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정치 계절이다. 다른 정파를 인정하지 않는다. 관용이 사라져버린 어른들의 삶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 시대는 상상력이 사라졌다. 아이들이 셋이지만 나 역시 획일적이다. 강압이 몸에 배여 있다. 상상력과 다양성, 배려와 관용이 없는 나 자신이다. 내가 읽어야 할 책이다. 설명하는 사전이 아니라, 아이들이 살아가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하여 그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말한다. 두꺼운, 무거운 사전에 주눅들 것이 아니라 아주 평범함 속에서 단어 하나하나를 알아가는 것은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읽어가면서 이야기와 만화, 자신들의 삶에서 관용과 공평, 사랑을 삶에 적용해보는 재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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